방일권(27살)씨는 상모돌리기로 전국 으뜸이 되는게 꿈이다.
상모가 머리우에 오롯이 놓여지면 이상하게도 늘 익숙했던 친구를 만나는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는 그는 상모춤 례찬론자다.
“상모춤 외에는 한눈 팔지 않을겁니다”
망설임없이 말하는 그다.
방일권씨가 돌리는 상모가 어지럽게 돌며 흥겨움이 극에 달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것을 쉽게 놓아버리는 요즘 젊음의 패기가 넘치는 그는 우리의 “흥겨움”을 돌고 도는 상모에 실어 전한다.
지난해 연길에서 있은 제1회 전국조선족농악무대회에서 방일권씨는 자신의 상모를 쉴새없이 움직이며 쓰러질듯 비스듬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몸놀림으로 대상을 받아 안았다.
“요즘 세월에 새파란 젊은이가 상모라니, 근데 아따 상모는 엄청 잘 돌리네구려!”
상모춤꾼 방일권을 처음 봤을 때, 다들 그랬다.
사람들은 그렇게 무심한듯 자랑스러운 눈길로 응원을 보냈다.
고운 빛갈로 멋을 낸 한복을 맞춰입은 방일권씨는 신명나는 우리 전통음악에 맞춰 마음껏 몸을 움직인다. 32메터 되는 긴 상모를 돌리는데 사뿐히 땅을 밟는것처럼 날며 시선을 비집고 들어온다. 상모에 달린 오색빛갈 초리가 땅에 질질 끌리며 달팽이처럼 모여있다 순간 뱅글뱅글 하늘을 향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고 돈다.
이윽고 몸을 돌리더니 잠시뒤에는 물구나무를 서듯 몸을 들어올리며 놀라운 집중력으로 열두발 상모연기를 이어가는 모습에 저도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온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이렇게 상모에 빠져들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노래부르고 춤추기를 즐겼던 그였다. 하지만 어려서 지병으로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졌던 그는 어쩔수없이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 해야 했다. 그러다 지난 2009년 지인의 소개로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상모춤 주급 전승자인 한상일선생의 맘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상모춤을 배우게 됐던거였다. 류달리 약삭빠른 그의 모습이 마음에 쏙 들어서 였단다.
농악놀이에서 빼놓을수 없는 상모돌리기의 다양한 춤사위에 방일권씨는 상모춤에 확 빠져버렸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단동으로 공연을 떠났다 우연한 기회에 조선피바다가극단의 무용수 고정철선생과 인연이 닿으면서 그의 상모춤 실력은 일취월장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펼쳤을 상모놀이는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 선조들에 대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우리 전통 농악무이지만 요즘은 상모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많지않습니다”
그는 상모돌리기에서도 난이도가 제일 높다는 자반돌리기도 식은죽먹기로 해낸다. 지난 2011년에는 CCTV-3 프로의 “비상 6+1”(非常6+1), “행복을 향해 출발"(向幸福出发), “음력설문예야회에 나갈래요”(我要上春晚) 등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음껏 상모를 돌렸다. 이외에도 상해, 호남 등 지방 텔레비죤프로에도 출연하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상모에 달린 추의 무게를 느끼고 무릎을 리용해 통통 튀여오르게 하는건 말로는 쉽지만 그 무게를 느끼고 돌려내는건 쉽지않다. 고개를 좌우로 젓고 연습을 하다보면 그냥 머리가 빙빙 돌아서 토할것같은 느낌이 든단다. 게다가 쇠로 만들어진 상모추에 이리저리 맞혀 온몸은 일년내내 피멍이 들어 성한 날이 없다.
그럼에도 하루라도 상모를 안 돌리면 뭔가 허전하다면서 스스로 상모에 “미쳐 산다”고 말하는 방일권씨는 오늘도 상모를 돌리며 열두발 상모에 우리의 잊혀져가는 이야기를 흩뿌리며 전한다.
연변일보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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