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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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소론
2005년 03월 10일 00시 00분  조회:4930  추천:51  작성자: 관리자
종교소론

연변대학 우상렬


종교하면 얼마전까지만해도 談虎變色하는 우리. 우리는 법적으로 종교신앙 자유라 하지만 사실상 누가 종교를 믿는다면 좀 이상한 눈길로 보아온것도 우리. 여하튼 전반 사회분위기, 무드가 종교하고는 좀 삐꺽하는 쪽으로 흘러왔음. 그것은 종교는 아편이요, 미신이요 하며 귀에 따까리 앉도록 교육을 받은 조건반사적 자연스러움 그 자체.

나는 유물론자이다. ‘종래로 그 무슨 구세주가 없다’는 <국제가>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종교는 분명히 허황하고 미신적인것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과학문명이 찬연히 꽃피는 현대에 있어서조차도 종교라는 이 괴물이 사라지지 않고 그 세를 더 떨치니 나로서는 좀 아연해지고만다. 그래서 괴물로 인정할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만 보아도 6만이 넘는 교회가 있고 해외에 세워진 한인교회는 4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저녁에 서울남산에 올라가 여기저기에 보이는 헤아리기에 바쁜 교회의 붉은 십자가만 보아도 실감이 간다. 사실 종교는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고 선진국을 비롯한 사람이 사는 곳이면 다 존재하는 인간 삶과 문화의 한 양상이다.
그럼 우리는 왜 종교라는 괴물을 못 벗어나는가?

첫째, 주지하다싶이 인간은 감성과 리성의 유기적통일체이다. 이 량자가 엇갈려 나타나거나 얽혀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런데 심층심리학에서 지적하다싶이 우리의 감성에는 생래적으로 맹목적인 신앙심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신앙심을 전제로 한 종교적성향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여기서 신앙심은 그 어떤 대상을 믿고 우러르며 따르는 경향을 말한다. 이로부터 마조히즘적인 안온감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는것이다. 이른바 전지전능한 전일적인 하느님과 같은 허황한 우상에 대한 숭배는 이런 안온감과 희열을 최고로 느낄수 있는 환영에 놀아남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말의 가장 좋은 주석으로 된다.

둘째, 인간은 지적인 동물. 인간은 과학을 통하여 지적인 욕구를 만족받는다. 그런데 현대과학이라는것이 아무리 발전했다해도 그것이 인간의 모든 지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줄수 있는것은 아니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는 항상 련속부절히 우리앞에 펼쳐진다. 인간의 기원 하나만 놓고 보아도 다윈이 과학적인 원숭이진화설을 내오자 이것에 대한 반론 또한 지금까지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인간기원설은 아직도 중구난방.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독교기원설은 그 가운데 하나. 인간기원설에 뚝 부러진 정설이 없다고 할 때 하느님창조설이 인간의 이 방면의 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족하다. 한마디로 말하여 인간이 종교의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을 통하여 지적인 만족을 받는것은 가장 손쉬운 방편의 하나다. 현대과학의 거장들인 뉴톤, 아인슈타인 등이 과학연구의 끝발에 가서 결국 신의 세계로 떨어지고만것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셋째, 인간은 누구나 다 죽는다. 생로병사의 약한 존재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그런데 종교는 허황한 약속, 세계에서나마 죽음의 두려움을 갈무리해준다. 천당으로 대표되는 이 세상 연장선상의 저 세상 설정은 바로 새로운 보다 복된 삶의 시작에 다름 아니다. 이로부터 어쩔수 없이 다가오는 무거운 죽음의 숙명앞에서 천당 운운을 받아들일 때 인간은 그만큼 홀가분해지고 초탈의 맛을 볼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눈물보다는 찬송가로서 동료들의 죽음을 보내는것은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넷째, 현대는 화려한 물질문명을 자랑하지만 아직도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사회적재부의 불공정한 분배 및 끊임없는 경쟁의식 등으로 말미암아 절대적빈곤 혹은 상대적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개성이 강조되고 살아나는 시대다. 개인본위로 따로따로 많이 움직인다. 그만큼 현대인간들은 외롭다. 개개인이 남남이다. 이로부터 현대인간들은 인간의 귀소(歸巢, 자궁회귀본능), 귀속(歸屬)본능을 만족 못받고 사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생존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직장생활같은데서 이런 귀소, 귀속본능을 만족받을 여지는 도저히 없다. 현대인간들이 무슨 등산애호단체요, 테니스협회요, 바둑협회요 하며 많은 동호인단체를 무어 휩쓸려 다니며 노는것은 이런 귀소, 귀속본능을 만족받기 위한 모지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종교는 신적존재를 매개로 하여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어느때든지 언제든지 누구나 다 수시로 받아들여 도닥여주는 포옹력으로 인간의 귀속, 귀소본능을 가장 충분히 만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불행한 사람의 귀의처인것이다. 현대 여러모로 많이 소외되고 불행한 사람들, 그리고 가장 지성을 자랑하는 과학자들조차 종교에 귀의하는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미국의 종교세력이 한국에서 대성을 하고 한국종교가 그토록 빨리 세를 확장할수 있은 원인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외되고 불행한 자들을 많이 포옹한데 있다. 한국교회계통의 많은 자선단체의 활약은 그 구체적보기가 되겠다.

이상 종교의 보편적론의를 전제로 우리 조선족의 상황을 좀 보도록 하자.
현재 우리 조선족의 종교인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는듯하다. 연길교회의 크리스마스같은 특이한 날은 더 말할것도 없고 주일례배때 차고 넘치는 인파만 보아도 그간의 사정을 잘 알수 있다. 그리고 도시뿐만아니라 농촌까지 파고든 교회당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우리도 얼마전, 특히 개혁개방전에는 확고히 맑스주의, 공산주의를 믿었다. 맑스주의, 공산주의가 우리의 ‘종교’이고 신앙이였다. 그런데 개혁개방 및 있따른 시장경제도입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격변기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신앙면에서 많이 헷갈렸다. 이른바 신앙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돈을 믿었다. 돈이면 이 세상 다인줄로 알았다. 우리는 아직도 많이들 이렇게 믿고 있는듯하다. 그런데 진작 돈을 잡고 보니 분명 돈이 이 세상 다 아니였다. 우리는 돈 때문에 너무도 많은 대가를 치렀다. 인격적, 도덕적 파탄, 농촌파탄, 가정파탄, 아이들 교육란맥상 등등 코앞에 들이닥친 많은 문제들은 우리를 경악케하고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돈이라는것이 생각대로 그리 쉽게 벌어지는것이 아니다. 손에 있던 돈을 날리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이른바 뼈빠지게 일해도 돈이 안 모아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초청사기에 우리가 당하고 한국 3D업종에서 우리가 고역을 치르는것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이래저래 우리는 불행하다. 아직 많이 어렵다. 이래서 우리는 우의 첫째의 경우 인간의 본능적인 신앙심이나 넷째의 경우 인간의 귀소, 귀속본능이 발동되여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헤매게 된다. 여기에 맞닥뜨린것이 ‘하느님’품. 물론 우리에게도 우의 둘째, 셋째의 경우처럼 지적인 문제, 죽음의 문제로부터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을것이다. 우리의 경우 많은 종교인들이 늙은이들임은 그간의 사정을 얼마간 말해주고 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리성적인 령역보다는 감성, 감정적인 령역에 속한다. 그래서 맹신이나 광신으로 흐르기 쉽다. 모종 의미에서 ‘異端’이라는것이 그 보기가 되겠다. 이런 맹신이나 광신이 광적으로 흐를 때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된다.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의 ‘법륜공’, 일본 옴진리교의 독가스살포사건, 그리고 지난세기말 한국 등 일부 나라의 종교단체에서 나타난 말세론설교 등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종교는 강한 결집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력대의 농민봉기들이 종교의 기치를 많이 들고 나왔고 유태인들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해온것도 다름아닌 종교의 결집력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민족, 한 나라의 지도자들은 종교에 대해 대단한 신경을 쓴다. 그런데 종교문제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그것은 약이 될수도 있고 독이 될수도 있다.

종교문제, 어디까지나 생각의 문제이고 의식의 문제이다. 그런만큼 강압적인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 어디까지나 깨닫게 하고 유도하는것이 상책이다. 이로부터 과학 및 그것의 미래비전 등 과학성에 대한 제시로 인간의 지적인 문제, 죽음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본능적인 신앙심같은것은 잘 유도해서 허황한 우상숭배나 미신으로 나아가게 할것이 아니라 확실한 진리나 과학을 신앙하게 함으로써 승화를 가져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완벽한 사회복지를 마련하여 인간의 귀소, 귀속본능을 비롯한 삶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소외되고 불행한 사람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요’사회의 추구, 그리고 선진국에서의 복지사회추구는 바로 이 방향과 일치한줄로 안다. 한마디로 말하여 종교문제는 과학성, 승화, 복지의 문제를 잘 풀이하면 스스로 잘 풀릴 문제로 사회의 약이 되는 존재로 남을것이다.

현단계 우리 조선족의 경우도 여기서 례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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