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페막연설 때 일이다.
오바마가 페막연설을 마치고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드리고 싶군요”고 말했다. 이는 오바마가 개최국에 대한 례의로 한국 기자들이 미국대통령에게 직접 질문을 할수있는 특권을 준 것이다. .
하지만 손을 든 한국 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오바마는 “한국어로 질문하면 아마도 통역이 필요할 겁니다”라며 웃음으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때 한 명의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 기자는 한국 기자가 아닌 중국 기자였다. 오바마는 정중히 거절하며 한국 기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질문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대통령에 대한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로 넘어갔다.
이에 비춰 2001년 10월 15일에 있은 “중국연변/한국현대뻐스생산판매투입소식발표회”가 생각된다.
그 발표회에 중, 한 신문 매체와 중, 한동업자, 국내 구매업체에서 참가하였다. 주체측이 소식발표를 끝내고 기자들에게 질문을 청하였는데 질문자가 없었다. 이에 필자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저 일어나 자신을 연변일보기자, 한국 ‘중앙경제신문’ 연변지사장이라고 밝히고 “오늘 발표에서 국내외적으로 자동차산업경쟁이 심하다고 하는데 한국측에서는 오지로 불리는 연변이 어떤 우세가 있기에 연변현통과 손을 잡았는가?”를 질문해 기자들의 체면을 지켰다.
2011년에 필자가 중한수교의 전기인물인 한성호박사의 “건강법”을 칼럼으로 썼더니 한박사가 하는 말이 “내가 북경대학에서 나의 건강법을 강의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따금씩 질문을 해도 아무 대답이 없었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시간을 줬는데도 한 사람의 질문도 없더라”며 “기자는 그 누가 무슨 상을 탓고 누구를 만났다는 사적만을 쓸 것이 아니라 질문으로 그 사람의 사상을 써내야 한다”고 교시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질문을 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 가지 리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한마디로 우리들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교육은 태교,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있다.)
원래 우리는 말을 시작하면서 부모에게 “나는 어디에서 왔어요? ’’ “왜 사람은 날수 없어요?,, 는 등등의 질문으로 부모가 지칠 정도였다. 그런데 흔히 많은 부모들(가정교육)이 “그건 크면 알게 된다”, “그건 몰라도 된다” “어른의 말에 대꾸(질문)를 하면 못 쓴다” 며 아이들의 질문을 막아 버린다.
그리고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몇점을 맞았나?”며 점수로 자녀들을 단속한다. 그리고 학교도 정답형 학생을 만들기 때문에
학령이 늘어날수록 학생들이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린다.
세상엔 답이 있는 것보다 답이 없는 것이 많고 답 자체를 스스로 창조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학교는 수능으로 대변되는 시험을 중심으로 오로지 한 문제에 하나의 답만이 있는 훈련과 그 답을 잘 맞힌 학생이 높이 평가되는 속에서 학생들이 배양된다.
“서울대학에서 누가 A+를 받는가”는 책의 저자(리혜정)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공부법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돕자고 연구를 했는데 결과가 예상치 못하였다.
저자는 서울대 2, 3학년의 최우등생 150명중 46명의 학생을 심층 인터뷰를 한 기초에서 일반 학생 1,213명을 설문조사를 하고나서 최우등생과 일반학생들을 비교했는데 최우등생들의 특별한 공부법이 바로 독특한 노트필기였다. 즉 교수의 강의를 토 하나도 빼지 않고 필기하는 것인데 최우등생의 87%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를 받아 적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필기로 시험공부를 한단다. 결과 교수의 말 자체가 정답이고 그 정답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 A+ 성적을 따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여러가지 참고자료를 찾아 푹넓게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니 최우등생들의 방식대로 해 보았더니 거짓말처럼 성적이 올랐다. 결국에 그 학생은 공부가 재미없다고 하였다.
이로보아 학교 교육시스템이 학생들로하여금 질문을 멀리하고 비판적 사고를 상실해 버리는 정답형 학생으로 만들었다.
.유태민족은 세계인구의 0,25%로 력대 노벨상 개인수상자의 22%와 미국 억만장자의 40%를 차지한 위대한 민족으로 그들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은 우리와는 거의 반대이다.
그들에게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런 문화가 인재를 배출한 비결이다. 아버지는 아직 학교에 다니기 전의 자녀와 “탈무드”를 펴놓고 서로간 번갈아 관련 내용을 읽고 론리적 공격과 방어를 반복한다. 지고 이기고는 관계없이 자식의 지혜와 사고력을 풍부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부모는 자녀교육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질문이다. 자녀가 하학하면 부모는“오늘 뭘 배웠나?”를 묻지 않고 “오늘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나?”를 묻는다. 이렇게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 그 학급의 리더로 된다.
그렇다면 질문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질문이 없다는 것은 지적 호기심이 빈약하다는 것, 질문이 사라졌다는 것은 현상에 대한 의문이 없다는 것이다.
의문이 없는 것은 “비판적 사고”가 결여한 것이다. 누구나 당연한 현상에 “정말 그럴까?”는 의문을 던질 수 있을 때 성장과 발전이 있어 새로운 것이 탄생될 수 있다. 비행기, 내피없는 타이어, 휘발유 없는 라이타...는 “... 새처럼 날수 없을가?” “... 공기를 주입하지 않으면 안 될가?”, “...휘발유가 없어도 안 될가?”...는 가지가지의 현상에 호기심이 많은 “엉뚱한 사람”들로 창조되였다. .
지적인 호기심으로 수 없는 “왜?”를 풀려면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지식이 있을 때 “지식의 공백”을 점점 더 느끼며 더 알고자는 욕구가 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당연히 독서이다. 독서로 습득한 다양한 지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적 호기심의 세계에로 이끈다. 그래서 세계의 문은 “질문”을 통해서 열린다고 한다.
독서는 우리들에게 지식의 부재를 알게 하고 실제로 느끼게 함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지적인 호기심을 갖도록 한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고 본 것만큼 느끼고 느낀 것만큼 쓰고 행동한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주장들이 충돌하게 되며 그 충돌 속에서 살아남은 독자가 비판적 사고라는 엄청난 무기를 얻게 되며 그에 따라 비판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비판적 사고는 독서를 통해 얻은 지적 보물이다.
지적인 호기심, 비판적 사고와 함께 독서가 잃어버린 질문을 되살릴 수 있기에 지적인 호기심을 느끼는 당신이 당연히 “질문”을 하면서 “질문”으로 세계의 문을 연다.
2008년에 이스라엘 주한국대사로 부임된 투비아 이스라엘리(Tuvialsraeli.55세) 는 유태인의 특성을 첫째는 독서, 둘째는 모든 것에 의심을 품고 기존 권위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 셋째는 독립심과 자기희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라면서 한마디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라고 하면서 한국인들의 자녀교육에 이런 조언을 하였는데 우리에게도 귀감으로 된다.
ㅡ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교육제도가 핵심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바 없다. 다만 한가지 개선을 바란다면 유태인들의 전통 교육법인 “질문교육”을 강화하였으면 한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더 좋은 답변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핵심요소다. 책이 물고기라면 질문과 토론은 낚시법이다.
ㅡ 다음으로 지적할 점은 독서이다. 요즘 한국인의 독서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위험한 일이다.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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