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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 윤동주
※ 필명은..
동주(童舟, 童柱)입니다.
한자로는 두 가지입니다.
본명인 東柱는 '동쪽의 기둥' 이라는 의미이고,
필명인 童舟는 아이동 자에 배주 자를,
또 한 개인 童柱는 아이동 자에 기둥주 자를 썼습니다.
Mizmor S린.이 참말로 사랑하는 詩입니다.
여기에선 한글 맞춤법 규정에 따르지 않고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나의 習作期의 詩 아닌 詩'에 써진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詩人이 스무살되던 해(1936년), 12월 중의 기록으로 잡습니다.
앞서 기록된 詩 끝에 '一九三六. 十二月'이라고 끝맺음이 되어있고, 이어 기록되었거든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아픕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시랍니다.
그대로 일상의 곤궁함이 뼈 속으로 아주~ 살며시,
그러나 너무도 선명하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슬프지만,
아름답게 보듬어지는 한 가족의 사랑이...
붉은 사과 한 개 속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비참했던 우리 민족의 삶이 생생히 묘사된 사실문학이라 한다면,
... 어려운가요?
이 한 편의 시 속에 담긴 가족의 애틋한 사랑은 너무도 귀합니다.
마치 진흙 속의 진주 처럼 가족 간의 사랑이 매우 고결한 빛을 냅니다.
제 눈엔, 제 가슴엔 그렇게 보입니다.
"붉은 사과 한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채로 송치까지
다ㅡ 나눠먹었소."
/윤동주
이 시는 1930년대~40년대의 고통받는 민중의 사회상이며,
또 인간, 특히 가족 관계 속의 情(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시입니다.
단순히 개인주의적 낭만시, 서정시를 지나,
아이들을 위해 쉽고 예쁘게 씌어진 童詩를 지나,
이에서 더 나아가 민족의 歷史요, 人間事, 苦海 속 사랑의 의미를 또한 봅니다.
제도와 권력의 횡포가 낳은 불평등 사회의 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
억압받는 약자 계층이 필연적으로 앓을 수 밖에 없었던 탈출구 없는 빈곤...
이러한 일이 어찌 오래 전, 일제 치하 뿐이겠습니다?
그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라면...
이젠 사과 한 개를 껍질 채로 송치까지 다아 나눠먹은 일가족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 때보다 더한 정서적 폭정과 학정 속에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사로잡고서 우리의 영혼을 핍절하게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일제가 아닙니다.
이 소중한 가족의 사랑을 빼앗고 입에 담지못할 온갖 패륜을 돌려주는 사회...
참 슬픈 세상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 사랑이 있다면 희망이 있을 것을...
과연 이 시대가 빼앗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처한 이 곤궁하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소망하고 되찾아야 할 것이 있다면 풍요가 아니라
나를 돌보며 너를 위하는 바로 이 '사랑'이겠습니다.
나만 먹이지 않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다~ 나눠 먹습니다. 껍질 채로 송치까지...
단순히 참여적 측면에서 제 감상을 이해하진 말아주십시오.
혹이라도 시가 너무 맑고 아름다워서 그 맑은 물줄기 속에서
고통의 맥박을 듣지 못하실까 하여 편중하여 말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진실로 이 詩가 전해주는 아름다움은
고통스런 현실을 이기는'사랑의 힘'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가 '동주의 詩, 사과'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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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빗자루
요오리 조리 베면 저고리 되고 이이렇게 베면 큰 총되지. 누나하고 나하고 가위로 종이 쏠았더니 어머니가 빗자루 들고 누나하나 나하나 엉덩이를 때렸소 방바닥이 어지럽다고ㅡ 아아니 아니 고놈의 빗자루가 방바닥 쓸기 싫으니 그랬지 그랬어 괘씸하여 벽장속에 감췄드니 이튿날 아침 빗자루가 없다고 어머니가 야단이지요
<카톨릭 소년 1936년 12월호>
이 시는 방바닥을 어지럽혀서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자 빗자루가 방바닥을 쓸기 싫어서
윤동주 빨래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
쨍쨍한 7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이 시는 고요한 7월의 오후에 빨랫줄에 널려 있는 흰 빨래들 중에 작은 빨래만 빨리 마른다는 내용이다.
윤동주 사과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 채로 송치까지 다아 나눠 먹었소.
이 시는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네사람이 |
여기서 송치는 원래 옥수수 이삭의 속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 시에서는 사과 씨가 있는 딱딱한 부분을 뜻한다.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일제 강점기이다. 그 당시에는 일제의 탄압에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던 때이다. 윤동주 시인의 사과라는 시는 그런 상황에서 사과 한 개를 껍질부터 속까지 남김없이 나누어 먹는 가난한 가족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게 하는 마음아픈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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