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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2017년 08월 17일 02시 11분  조회:2230  추천:0  작성자: 죽림


단풍나무가 되는 나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죽여야겠다고/가을 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안도현 시인의 ‘단풍나무 한 그루’라는 시입니다. 온 산이 붉게 물든 이 늦가을에 무척 어울리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가을은 그리운 누군가가 절실하게 더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곧 퇴락의 겨울을 맞게 될 것이므로 지금 만나지 않으면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드는 것이지요. 

시 쓰기에 앞서 남이 쓴 좋은 시를 많이 읽어 보는 것이 꼭 필요한데 이는 남의 좋은 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며 시의 발상에서완성까지의 구체적인 방법을 익히는 공부가 됩니다. 남의 시를 읽다가 자기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만나면 그 시인의 시집을 구해서 꼼꼼히 읽는 게 좋습니다. 자신이 공감한 시를 쓴 시인은 자신의 체질이나 성향에 맞는 시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그만큼 배울 점이 많습니다. 문학의 스승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집니다. 

그렇게 선택된 시를 읽을 때는 그 시를 쓸 당시의 시인의 마음이 되어서 읽어보십시오. 그 시인이 처한 환경 조건이나 심정을 유추하며 한 행 한 행 같이 시를 써 나가는 기분으로 읽는 것이지요. 위의 시 같은 경우는 가을비가 오는 날 단풍나무 아래 서 보는 것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온통 몸이 달아 벌겋게 된 단풍잎, 그 사이에서 알절부절 못하고 찬비를 맞고 있는 나… 목석이 아니라면 누구나 처연한 심정이 될 것입니다. 처연한 심정이 되면 모든 것이 간절해지는 법이고 그러면 누군가가 못견디게 그리워질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수순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도달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 정황들을 어떤 식으로 엮어 구체적으로 드러낼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만 막연해집니다. 

이제 그 한 해답을 안도현 시인에게서 얻어 봅시다. 우선 가을산 찬비와 나의 관계를 엮는 고리로 시인은 ‘너 보고 싶은 마음을 눌러 죽’이는 지독한 그리움의 감정을 설정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아무도 없는 가을산에서 찬비를 맞고 있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이런 발상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의도적이라고 해도 그런 발상을 거쳐 그런 마음을 먹은 시인은 더욱 처연한 심정이 됩니다. 빗소리만 들리는 고적한 산중턱, 그리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나. 이 정황은 비장한 정적이며 폭발 직전의 절정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 죽’이려고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그 하나의 발상이 가을산과 빗소리의 분위기를 시적인 정황으로 창조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풍나무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엮어가고 있습니까. ‘너 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에서 드러나듯이 보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어쩌지 못해 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비장한 인내와 비 오는 가을산의 정적이 드디어 단풍으로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시적 대상과 시 쓰는 자아가 동일시되는 서정시의 전형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개속에 묻힌 나를 찾아 



어느새 일 년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늘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와 티끌만큼 남은 시간의 유한함에 몸을 떨게 됩니다. 한 장만 달랑 남아 있는 달력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바빠지고 다 이루지 못한 일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달이기도 합니다. 정말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잠시도 멈추거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문학은 이런 세계의 유한함에 대항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한한 시간을 인정해 버리고 거기에 무방비로 던져진 상태의 인간은 무력해지거나 즉물적인 쾌락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말을 앞두고도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끝나더라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끝나면 세상도 끝나는 것으로 압니다. 

문학은 이를테면 그런 현세적인 가치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입니다. 자기만의 것에 골몰한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인생과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삼라만상에 눈을 돌리도록 하는 것, 유한한 것이라고 믿는 인간의 시간을 무한한 순환의 수레바퀴로 돌려놓는 작업이 곧 문학이 추구하는 일입니다. 자기 살기도 바쁜 세상에 남의 인생까지를 참견해야 하는 문학은 그래서 고통스럽고 복잡다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물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의 지워진 두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툭툭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툭툭 소리를 냈다. 


위의 시는 오규원 시인의 「안개」라는 시입니다. 여기서 우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안개가 나를 가린다’가 아니라 ‘안개가 나를 지운다’고 말한 점입니다. 나 위주로 판단하면 안개는 분명히 나의 시야를 가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나’는 강과 돌, 초지와 둑, 망초같은 것들과 동격입니다. 그런 사물들과 함께 내 육체도 안개에 의해 서서히 지워지고 있습니다. 나의 의식은 내 몸을 강둑에 버려둔 채 팔짱을 끼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자기자신까지도 객관화시켜 전체의 맥락 속에 놓을 수 있어야 참다운 글쓰기가 가능해집니다. 

여기서의 안개는 무심히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가는 시간일 수도 있고 우리의 존재를 지배하는 외부적인 힘이나 나태한 관습, 고정관념 따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안개에 가려 길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위기 상황을 인식한 내가, 내 존재의 여부를 확인해 보기 위해 하체를 손으로 툭툭 쳐 보는 것입니다. 

문학은 이렇게 끝없이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형체없는 안개가 자기 몸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촉수로 무감각해진 자기 존재의 하체를 한 번 툭툭 건드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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