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면서 떠나지 않은 것
1. 하나의 전제
박인환은 8.15직후에 김경린, 김수영, 조병화 등과 더불어 나온 일군의 모더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들은 스스로 모더니즘의 갈래에 드는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들로 공동시집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당시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로 문단에 들어선 인환은 도시적 비애와 감상주의적 기질과 1940년대의 시대고를 주로 읊었다. 또 1950년대의 전쟁과 비극, 퇴폐와 무질서, 불안, 초조 등의 시대적 고뇌를 리드미컬하게 노래하였다. 1946년부터 1956년까지 광복의 기쁨과 동족상잔의 6.25, 그리고 조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안 속에서 인환은 시를 썼다. 기성 질서에 대한 대담한 반역과 도전을 끊임없이 시도했고, 남들이 전 생애를 통하여 이룩한 일을 30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온 힘과 정열을 기울여서 성취하려고 몸부림쳤으며, 자유에의 강렬한 열망과 좌절과 고뇌를 술과 친구와 사랑과 시를 쓰는 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환의 내면에 산재해 있는 부정과 긍정, 자기 존재와 부재, 그리고 생명에 대한 경외로움은 평론가들에 따라서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 윤석산 교수가 `내재적인 정신의 면모를 외모에까지 나타내려고 했던, 전형적인 댄디스트’였다고 한 반면에 이동하 교수는 `한자어의 범람, 어휘의 빈곤, 경박한 멋부리기, 산만한 이미지’ 등의 이유로 부정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인환은 자기본능의 요소가 다른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래서 자신이 시를 쓴다는 사실에 대해 한 번도 회의나 부정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31세의 짧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신경쇠약으로 27세라는 짧은 나이에 음독 자살을 한 고월 이장희에 비해 인환은 31세로 유명을 달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詩作을 단순히 겉멋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단조로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따라서 그의 실질적인 본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갈등하고 지향했던 문제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이런 차원에서 이 글은 인환이 모더니스트로서 추구하고 현실의 고통 속에서 더욱 憺者로서 빛나게 되는 일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고통에서 빛나는 단독자
1) 갈등과 지향
인환은 1946년 12월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후 48년의 <신시론>과 49년에 출간한 동인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그리고 전후에 구성된 <후반기>동인 활동을 했다. <후반기>는 동인지 없는 동인으로 무산되고 말았기 때문에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으나 인환이 새로움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어둠을 바라보게 되는 <신시론>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인환의 독특한 개성과 침잠된 존재에서 고조된 세계를 추구하는 모더니즘의 요소를 갖고 있다.
김기림의 모더니즘 선언에 의하면 모더니즘은 감상적 낭만주의와 편내용주의에 대한 두 개의 부정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들의 시방법은 `이미지의 창조와 추구’라는 회화성(繪畵性)이다. 그리하여 기성에 대한 강한 반발과 외부의 눈을 뜨게 된다. `새로움’ 이란 존재는 항시 과거의 것에 대해 지독히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인환에게도 본질적으로 가장 강하게 나타났던 것은 지난 것에 대한 기성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었다. 이러한 형태는 그의 첫 작품 <거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스콜 같은 슬픔, 코코아의 시장, 아세틸렌 냄새, 베링 해안, 베고니아’ 등과 같은 엑조틱한 어휘들과 시대를 예민하게 관찰한 도시적 감각이 잘 드러나 있다.
넓고 개체 많은 토지에서
나는 더욱 고독하였다
힘없이 집에 돌아 오면 세 사람의 가족이
나를 쳐다 보았다 그러나
나는 차디찬 벽에 붙어 화상에 잠긴다.
<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일절
비록 겉으로는 화려하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듯 하지만 인환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가족’에서 갈등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회상에 잠기는 인환의 강한 자존과 단독적인 정신의 소유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시이다. <신시론>이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지난 1949년 4월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게 된다. 이 동인지를 내면서부터 인한은 본능과 현실이라는 현장에서 체험하게 되는 불안을 항상 지니고 살아 간다. 그러면서 나아가서는 두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고뇌에 침잠하게 된다.
나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이 불균정한 싸움 속에서,
시민정신에 이반된 언어작용만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 중략 ……
그러나 영원히 일요일이 내 가슴 속에 찾아 든다. 그러할
때에는 사랑하던 사람과 시의 산책의 발을 옮겼던 고뇌의
원시림으로 간다. 풍토와 개성과 사고의 자유를 즐기던 시
의 원시림으로 간다.
<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문 일절
여하튼 나는 우리가 걸어 온 길과 갈 길, 그리고 우리들 자
신의 분열한 정신을 우리가 사는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나
타내 보이며 순수한 본능과 체험을 통해 본 불안과 희망 두
세계에서 어떠한 것을 써야 하는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작품
들을 발표했었다.
(선시집 후기에서)
위의 두 인용문에서와 같이 `풍토와 개성과 사고의 자유를 즐기던 시의 원시림’으로 가서 `불안과 희망 두 세계에서 어떠한 것을 써야 하는가’를 고뇌해서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인환이었다. 인환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며, 서구지향적 일면의 단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전통적 세계와는 다른 도시적 우수가 깃든 페이소스와 센티멘탈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적으로 토착화시키고 있다.
거북이처럼 괴로운 세월이
바다에서 올라 온다
일찍이 의복을 빼앗긴 土民
태양 없는 말레이
너의 사랑이 백인의 고무園에서
자스민처럼 곱게 시들어졌다.
…… 중략 ……
눈을 뜨면
南方의 향기가
가난한 가슴팍으로 스며든다.
< 남풍> 일절
이 시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미지의 산만함이 없으며 어휘의 경박한 멋부림도 없다. `눈을 뜨면 태양 없는 말레이’가 `남방의 향기’가 되어 밀려드는 현실의 과학적 통찰이 잘 수용된 상당히 수준 높은 시이다. <남풍>에서 증명되듯 현실의 여러 고통스러운 문제들에 대하여 문학이 갖고 있는 궁극의 목적, 인간 정신의 회복과 시대와 사회에 대한 투명한 비평정신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자 한 인환의 면모를 볼 수 있다.
2) 자기 존재와 부재
인환이 <후반기> 편집을 맡아 조판까지 끝낸 상태에서 6.25가 터졌다. 인환은 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지하실과 골방을 전전하며 수복이 될 날을 기다렸다.
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가 너의 나라는 어데 있느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어린 딸에게> 일절
적 치하라는 공포 속에서 태어난 딸을 생각하며 쓴 이 시는 딸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살아 있을 것인가’하는 존재를 의식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겉멋이 아닌 심정적인 진실을 표현하는 예지를 갖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 중략 ……
…… 아 최후로 이 성자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의 회화 속의 裸女와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에게 팔은
철없는 시인
나의 눈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다.
<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시는 고독과 불안으로 충만된 작품으로 `살아 있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한 체험’으로 존재를 부재로서 연결하여 `속죄’나 `裸女’에게 팔은
`단순한 상태의 시체’로 보고 있다. 이것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싸르트르식 명상을 수용하여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인간적 가치를 상실한 시체의 상태로서만이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인환이 존재와 부재를 모두 초월하려고 한 의지를 암시 받을 수 있다. 이와는 좀 색다르게 자기 부재를 갈망하는 <검은 신이여>라는 시가 있다.
슬픔대신에 나에게 죽음을 주시오
인간을 대신하여 세상을 風雪로 뒤덮어 주시오
건물과 창백한 묘지 있던 자리에
꽃이 피지 않도록
하루의 1년의 전쟁의 처연한 추억은
검은 신이여
그것은 당신의 主題일 것입니다.
< 검은 신이여> 일절
죽음은 존재가 아닌 부재이다. 인환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면서 전쟁이 주는 인간의 한계와 신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인환 자신도 심경의 변화에 동요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슬픔 대신에 죽음’을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을 관장하는 것도 `당신의 주제’로 파악하여 한 줌의 슬픔에 절규하고 있다. `인간을 대신하여 세상을 풍설로 뒤덮어 줄’ 신의 부재, 여기에는 존재를 가탁한 부재의 참담함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존재를 규정하기 위한 의식의 주제로 인환이 현실을 바라보는 직시적인 안목이 나타나 있다.
나는 10여년 동안 시를 써 왔다. 이 세대는 세계사가 그러한
것과 같이 참으로 기묘한 불안정한 그러한 연대였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 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혼란
하였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다.
시를 쓰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의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었다.
(선시집 후기에서)
인환이 마치 이것을 의식하였는듯이 대표작 <목마와 숙녀>를 쓰게 된다. 이 시는 인환 자신의 `마지막 것’처럼 떠나간 것에 대한 비애의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목마를 타고 떠난, 가을 속으로 떠났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떠나는 것일까’ 등의 현실 부재의 정황을 나타내고 있다. <목마와 숙녀>는 인환의 존재와 부재, 또는 자신의 세계를 리리시즘의 방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다소 표면적인 감정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부재의 현실을 극복하고 있다. 그래서 목마를 타고 떠난 지금도 우리들 가슴에 `술병에 별이 떨어지는 소리’로 귓전에 남아 깊은 여운을 준다.
3. 떠나면서 떠나지 않은 것
인환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하기까지 10여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60여 편의 시와 다섯 편의 산문을 썼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인환의 시는 시대고와 도시민의 삶의 애환을 리드미컬하게 표현한 모더니스트이다. 그러나 인환은 서구적 문명을 선망하는 본질이 갖게 되는 갈등을 작품을 통해 인간적인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비애와 고독감에 빠지게 된다.
나는 돌아가서도 친구들에게 얘기할 것이 없고나
유리로 만든 인간의 묘지와
벽돌과 콘크리트 속에 있던
도시의 계곡에서
흐느껴 울었다는 것 외에는……
<새벽 한 시의 시>일절
`벽돌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의 계곡에서’ 인환은 울었다. 그러나 도시적 문명의 위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순수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뒤이어 나온 <아메리카 시편>에서는 인환의 주관적인 감성에 의해서 보다 면밀하게 직조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만큼 인환이 내적 변화를 주관적이며 가장 개성적인 입장에서 노래했다는 뜻이 된다.
1953년 육군 종군작가단에 가입한 인환은 전장을 떠돌며 사실적이고 보다 절박한 작품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것은 거개가 전쟁이 주는 허무감과 비참한 `벽’이었다.
담배를 피우듯이
태연한 작별을 했다
그가 서부전선 무명의 계곡에서
복잡으로부터
단순을 지향하던 날
운명의 부질함과
생명과 그 애정을 위하여
나는 이단의 술을 마셨다.
< 어떤 날까지> 일절
어두운 밤이여
마지막 작별의 노래를
그 무엇으로 표현하였는가
슬픈 인간의 유형을 벗어나
참다운 해방을
그는 무엇으로 신호하였는가
<신호탄> 일절
전장의 종군시, 해병대 중위와 수색대장 K중위의 장렬한 전사를 읊은 두 시는 죽음을 `복잡으로부터 단순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환에게 죽음은 개인의 궁극적인 소멸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듯이 태연한 작별’을 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따라서 죽음을 단순으로 인식하고 `마지막 작별의 노래’를 `참다운 해방’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그것은 단순한 최후의 표현이 아닌 참다운 해방과 죽음과 생명에 대한 경외로움의 순화였다.
인환의 시에 많이 산재해 있는 시어는 떠나기 위한 몸짓의 어두운 이미지들이다. 주지하다시피 인환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도 `떠난다’는 결별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다음 시 <밤의 미매장>에서도 죽음에 대해 평면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당신과 내일부터는 만나지 맙시다
나는 다음에 오는 시간부터는 인간의 가족이 아닙니다
왜 그러할 것인지 모르나
지금처럼 행복해서는
조금전처럼 착각이 생겨서는
다음부터는 피가 마르고 눈은 감길 것입니다.
< 밤의 미매장> 일절
오직 단독자로서의 고독을 뼈아프게 절감하고 자기 존재의 밑바닥을 예시할 수 있는 직관력으로 일체의 죽음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면은 `죽음을 친구와 같이 다정스럽게’ 생각하는 <미스터 모의 생과 사>에서도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떠나기 위해 부침했던 인환에게 작용한 요인들은 상흔과 같이 남아 있는 불안과 허무였다. 전쟁이후 반자연, 반서정, 거기에다 시대고가 겹친 허무와 휴전협정 이후 각종 문인총회가 결성되고 기타 종합지로 인한 문단의 재변화가 위축된 심리로 불안하게 하였다. 이것은 시대의 고민이었건, 한 개인의 고민이었건 그에게는 실로 심란한 요인들이었다.
불행한 신
어데서나 나와 함께 사는
불행한 신
당신은 나와 단 둘이서
얼굴을 비벼대고 비밀을 터 놓고
오해나
인간의 체험이나
孤絶된 의식에
후회치 않을 것입니다
또다시 우리는 결속되었습니다
황제의 신하처럼 우리는 죽음을 약속합니다
지금 저 광장의 전주처럼 우리는 존재합니다.
< 불행한 신> 일절
인환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광장의 전주처럼 존재’하고 있는 현실적인 어둠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떠나기 위한 시를 쓰면서 인환은 어쩌면 세네카의 역설과 같이 `완벽하게 사는 길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라는 삶에 대한 의지적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불행한 신’과 단 둘이 있는 인환이 `불행한 신’이다. `어데서나 얼굴을 비벼대고 비밀을 터 놓아도’ 후회하지 않는 `결속된 우리’로 보아 언젠가다가 올 죽음에게 `신화처럼’ 약속을 하고 있다.
인환이 작고한 지 45년이 되지만 그의 시는 아직도 `그의 눈동자 입술’처럼 남아 人口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인환이 떠나면서 떠나지 않은 인상을 주는 시는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의 끝부분이다.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일절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세월이 가면> 일절
두 시 다 여운을 남겨 아쉬움을 나타내고, 또 긍정의 기대감으로 영원히 떠나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세월이 가면>에서 인환이 죽은 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면서 오래오래 부리워지기를 예감했을까? 또 <목마와 숙녀>에서와 같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처럼 허무하고 쓸쓸한 시대를 조용히 그리고 체념했을까? 비록 그가 죽음, 울음, 허망, 불안 등에서 심리상태가 위축되었다하더라도 결코 겉멋과 센티멘탈만으로 시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환에게는 그 이상의 자기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인환이 죽기 전 `이상 추모의 밤’에서 `인간은 소모품 그러나, 끝까지 정신의 섭렵을 해야지’하며 이진섭에게 써 준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인생을 소모품’이라고 보는인환 자신의 고통의 문제를 그는 죽는 날까지 섭렵하였다. 난잡한 이국적 어휘와 외면과 내면의식의 대립, 그리고 도시민의 애환, 겹친 시대고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강한 열의를 그는 자신의 고통문제로 수용하여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인환에 대한 평가는 논자에 따라 분분하나 너무나 절실했던 자기 고통 때문에 더욱 빛나는 `등대’로 밝힌 그의 시심은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인환이 선시집 후기에서 밝혔듯이 `시를 쓴다는 것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으로 보아 인환도 `본질적인 시에 대한 정조와 신념’만을 지켜 온 시인이었으나, 그 자신도 결국 `불행한 신’이 되어 목마를 타고 하늘 속으로 떠나고 말았다.
출처: 시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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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없다면
―미겔 에르난데스(1910∼1942)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
외로운 두 개의 개미집일 따름입니다.
그대의 손이 없다면 내 손은
고약한 가시다발일 뿐입니다.
달콤한 종소리로 나를 가득 채우는
그대의 붉은 입술이 없다면
내 입술도 없습니다.
그대가 없다면 내 마음은
엉겅퀴 우거지고 회향 잎마저 시들어가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대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내 귀는 어찌 될까요?
그대라는 별이 없다면 나는 어디를 향해 떠돌까요?
그대의 대꾸 없어 내 목소리는 자꾸 약해집니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그대 냄새 좇아
희미한 그대 흔적을 더듬어봅니다.
사랑은 그대에게서 시작돼
나에게서 끝납니다.
사랑으로 마주보는 눈을 잃은 내 눈은 뜨고 있어도 뜬 게 아니다. 개미떼가 우글거리는 듯 따끔거리고 어지럽다. 그대의 보드라운 손을 잡을 수 없으니 내 손을 마구 휘두르고만 싶구나. 사랑하는 이여, 왜 내 곁을 떠났나요? 내 가슴에는 아직 사랑의 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대상을 잃은 잉걸불이 그 가슴을 애태워 이렇듯 뜨거운 실연 시가 태어났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그토록 사랑하는가?’로 시작되는 시 ‘비행(飛行)’의 시인이기도 한 미겔 에르난데스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 정치범으로 투옥돼,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죽었다. 슬픈 정열의 시들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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