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문학성과 창조성이 없는 글은 수필도 아니며 죽은 글이다...
2017년 06월 09일 00시 30분  조회:2080  추천:0  작성자: 죽림


 (3) 자기 고백성(自己告白性)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한 자기 고백적 문학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겪고 생각한 것 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켜 
표출해 놓은 것이 바로 수필인 것이다. 
물론 소설이나 시, 희곡 등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수가 많다. 
그만큼 문학 작품을 쓰는데 있어 체험은 아주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이다. 
문학 작품과 체럼은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나아가서는 체험은 모든 문학의 근원이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있듯이, 
모든 문학은 체험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체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문학 작품이란 존재할 수도 없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또한 체험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의 문학 장르에서는 작가의 체험이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다시 여과되고 변형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즉 이러한 문학 장르들에 있어서는 작가가 자신이 겪은 체험에다 
작가 나름대로의 상상이나 허구적 구성들을 더하여 새로운 형태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아가서는 자신이 겪은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이나 허구적 구성 등을 통해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그 작품 속에는 작가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겪은 수많은 체험들이 알게 모르게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소설이나 희곡 등에 있어서는 작가의 의도나 필요성 등에 따라 다시 변형되고 
이에 적합한 등장인물들이 설정된 후 그들의 행동이나 모습, 체험 등으로 나타난다. 
즉 자가의 체험이 원형 그대로 작품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런 문학 장르의 특성이다. 
이에 비해 수필에 있어서는 작가의 체험이나 모습, 
또는 행동이나 사상등이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작가의 체험이나 작가의 여러 가지 모습이 
원형 그대로 작품 속에 그려져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수필이 작가의 체험을 직접적으로기록한 '자기 기록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이 자신의 삶과 사상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자기고백의 문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수필에서는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처럼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키거나 확대, 축소하여 표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또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체험이나 모습, 
사상 등을 간접적으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수필문학의 특성이요, 수필 작법에 있어서의 기본 수칙이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쓰여지는 수필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필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수필은 이처럼 자신의 체험이나 삶, 사상, 느낌 등을 가식없이 진솔하게 
고백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그것은 읽는 독자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것이 수필문학이 지닌 특성이요, 수필문학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는 바탕이다. 
그래서 김진섭도 그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백하는 심경(心境)이 고결하면 할수록 그 수필의 문학적 생명이 오랜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수필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이 되는 것은 숨김없이 자기를 말한다는 것과 
인생사상(人生事象)에 대한 방관적 태도, 이 두 가지에 있을 따름이요 이것만을 기초로 삼고 
붓을 고요히 듦에 제목 여하(如何)는 물을 필요가 없다... 

장백일도 그의 [고뇌와 창조]라는 글을 통해 수필이 '자기 고백의 문학'이요, 
'자기 체험의 진솔한 밝힘' 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편의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진정으로 대변해 준다. 
진솔한 인간체험에의 언어적 형상화가 그 자신을 진심으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필은 곧 작가의 마음이라 함도 그 소이가 여기에 있게 된다. 
이 언어적 수필 미학에서 작자의 창작 심리의 번득임을 읽게 될 때 우리는 
그의 수필의 특질을 파악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표현을 통해 작자가 무엇을 구하고 호소하는가를 듣게 된다... 
...흔히 수필을 퍼스널 노트로서의 체험의 자조문학(고백문학)임을 강조한다. 
이 또한 생명에의 의의있는 가치평가, 즉 새로운 의미 부여로 집약되어진다. 
그 점에서 수필은 무엇을 다루었건간에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혼을 
울려주는 생명의 구경적인 의미 반론과 표현에의 인간학임을 전제한다. 
그러기에 수필은 인간 체험에의 언어적 의미화로 시의 가치있는 시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나(인생)와 수필이 따로 있음이 아니다. 
나 자체 속에 수필이 요구됨에 '수필 쓰는 일'이 곧 나의 비판적 고백으로서의 
자기 실현을 꾀해가는 그 인간 작업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여기에 전심전력으로 수필을 사랑해야 하는 성실한 생활태도가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 생활태도는 이미 밝힌 바 참(試)이다. 
즉 참(試)으로 참(眞)을 찾는 삶이다... 

이현복도 그의 [수필의 문학성]에서 수필문학이 작가 자신의 표출이며 
자기 고백적 문학임에 동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필문학에서는 작가가 직접으로 독자에게 보내는 전달이기 때문에 
경험을 전달하는 소설과 다르며 상연과 행위를 강조하는 희곡과 다르며 
기분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와 다르다고 하였다. 
함께 나눈 경험, 목격한 행위, 엿듣는 감정이 수필 문학의 특징이다. 
따라서 수필문학에서의 중요한 요소는 주제다. 
독자는 표현기교와 수법보다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도에 더 흥미를 갖는 것이다. 
수필문학 작품은 작가의 심적과정이며 작가 자신의 표출이며 독백이다. 
그러나 그 독백은 작가 한 사람의 독백이 아니요, 여러 사람들에 대한 독백이다. 
독백이 독백으로 끝난 작품은 메아리 없는 산울림과 같아서 수필의 경지로 승화될 수 없다. 
한 사람의 독백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어 대화의 독백이 되어야 한다... 

C.카운터 쿨웰은 수필이 작가 자신의 솔직한 표출이며 
자기 고백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압축하여 나타내고 있다. 

'수필에서의 작가는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처럼 수필은 작가 자신의 솔직한 표출이며, 진지한 자기 고백이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삶을 경건히 되돌아 보면서 참회하고 각성하는 문학이다. 
또한 이것이 수필문학의 특성이자 참된 가치이다. 
그리고 수필문학이 지닌 위대한 힘이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수필에서의 '자기 고백성'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천주교에서의 
'고백성사(고해성사)'와 같이 거룩함마저 있는 것이다. 

(4) 광범성(廣範性) 

수필문학의 범위는 참으로 넓다.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다른 문학장르들보다도 그 범위가 훨씬 더 광범한 것이 바로 수필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형식에 의해 쓰여진다. 
또한 이러한 문학 장르들은 각기 정해져 있는 형식이나 제약을 무시하거나 거부할 수 없고 
최소한도로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때문에 이러한 문학 장르들은 각기 그 형식에 얽매이거나 제약을 받아 
그 장르적 범위가 아무래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수필은 그 형식이나 제약 등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문학이다. 
오히려 어떠한 형식이나 제약 등으로부터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것이 
수필이 지닌 커다란 특성이요, 매력일 만큼 자유로운 것이 수필문학이다. 
따라서 수필문학의 범위는 그만큼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필은 문학의 다른 여러 장르들보다도 그 제재(題材)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우리의 삶이나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수필의 제재가 될 수 있을 만큼 수필의 제재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고, 듣고,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의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까지도 얼마든지 수필의 제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런 만큼 수필문학의 범위는 더욱더 넓어진다. 
물론 소설이나 시, 희곡 등도 제재의 선택에 있어서 제한이나 구속은 없다. 
이런 문학 장르들도 작가의 의도나 필요성 등에 따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또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 속에서도 제재를 선택해 내고 이를 작품화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은 각기 정해져 있는 형식이나 제약을 회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 구성상 정리나 압축, 재구성, 허구의 삽입 등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자연히 제재의 선택 폭 또한 좁아지기 쉽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을 도로가 있어야 달릴 수 있는 자동차나 
레일이 있어야 달릴 수 있는 기차에 비유한다면 수필은 항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새나 비행기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비행기도 여객기 같은 경우에는 정해진 항로에 따라 가는 것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비행기란 전투기와도 같이 이런 제한된 항로에 구애받지 않는 비행기를 뜻한다. 
수필의 종류만 살펴보더라도 문학성을 갖춘 문예수필을 비롯하여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書簡文), 감상문, 칼럼, 전기, 자서전, 권두언 등 많은 글들이 수필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다 옛날에 쓰여진 수필 형식의 각종 글들까지 포함시킨다면 
수필의 종류나 범위는 더욱 다양하고도 광범해진다. 
그래서 '국문학 산문(散文) 중에서 소설, 희곡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수필이다' 
(우리 어문학회[국어학개론])라는 견해마저 있을 정도로 수필의 영역은 실로 넓다. 
[세계문예강좌 문학개론]에서도 수필의 영역이 참으로 넓음을 역설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필을 산문문학의 대표적 양식이라고 볼 때 수필의 범위는 
거의 종잡을 수 없는 정도로 광범위해진다. 
그것도 학문이나 과학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일반적 산문, 가령 문학평론, 
수상, 일기, 서한, 자서전, 전기, 격언, 각종 의견 등 기타의 창작적 요소를 지닌 
일체의 산문 문학적 문장을 총칭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수필은 전문적 산문(학문이나 과학) 이외의 창작적인 요소를 지닌 
모든 산문 문학적 문장을 의미한다.... 

김진섭 또한 그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이란 글에서 
수필의 외형적 광범성과 제재의 다양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요의 일부만 살펴보면 이렇다. 

...분망(奔忙)중에 쓰인 일편(一片)의 서간(書簡), 
남몰래 적힌 일업(一業)의 일기라도 그 문장 속에 필자 그 사람의 생명이 약동하고 있기만 하면 
그것이 훌륭한 수필문학 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제재 역시 그것이 바드시 '문학적인 것'일 필요는 조금도 없는 것이니, 
여기 가령 과학자가 과학을 말하든, 정치가가 정치를 말하든, 
혹은 여행기(旅行記)가 만연(漫然)한 견문(見聞)을 말하든 여하간에 말하는 사람이 
누구임과 말하는 대상이 무엇임을 막론하고 말하는 그 사람의 심경이 전인생(全人生) 위에 
확충(擴充)되어 있기만 하면 그 말은 반드시 문학적 가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수필은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라고도 볼 수 있을지니 
무엇을 그 속에 담든 그것은 오로지 필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필은 그 담는 내용과 그것을 요리하는 필자에 준해서 
그 취향이 여러 가지로 변화할 것은 또한 물론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볼 수 있는 이 수필의 종별(種別)이 
변화무쌍할 것은 이의 당연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연설집이나 설교집, 
또는 철학론, 종교론, 과학론 등도 수필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가리켜 '종교적 수필'이니 '철학적 수필'이니 
'정치적 수필'이니 하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도 수필의 영역이 넓고 외형적으로나 제재상으로나 자유스럽고 폭넓은 문학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의 영역이 이처럼 넓고 외형적, 제재상으로 아주 자유스럽고 폭넓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나, 구성, 문체, 논리성 등이 부족하고 문학성, 작품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결코 수필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은 단지 신변잡기나 기록문, 설명문, 비망록, 신상보고서, 또는 낙서 따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수필은 그 영역이 아주 넓고 수필처럼 보이는 글들이나 
수필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글들은 많지만 정말로 문학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 
'진짜 수필'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5) 창조성 (創造性)과 문학성 (文學性)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들과 마찬가지로 창작 예술이다. 
따라서 수필은 각 작품마다 고유의 개성이나 독특한 특징이 있어야 하고, 
문학으로서의 새로운 면이나 시도도 있어야 하며 문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즉 수필은 순수한 창작 예술인 만큼 그에 걸맞는 창조성과 문학성, 
또는 예술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수필이 아니라 잡문에 불과한 것이다.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많은 글들이 진정한 수필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고작 잡문 대접을 받는 것도 수필이 지녀야 할 창조성과 문학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필에 있어서도 창조성과 문학성은 꼭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물론 수필다운 수필, 멋지고 훌륭한 수필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이나 훌륭한 구성, 
예리한 관찰력, 상념의 넓은 폭과 깊은 여과 과정, 유머와 해학 등 여러 가지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과 함께 창조성과 문학성도 꼭 필요한 것이며, 그 비중 또한 크다. 
게다가 좋은 문장이나 훌륭한 구성 등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창조성과 문학성의 범주에 속한다. 
특히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진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예리하게 살펴보고, 깊은 고뇌도 있어야 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조적 사고(思考)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독창적이고도 문학성이 높은 수필 작품을 빚어낼 수 있다. 

즉 고정관념의 파괴와 창조적 사고가 충분해야만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또 문화 예술이란 원래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새롭고 독특한 사고로서 새것을 창조해 내는 행위이다. 
그래서 미국의 시인 에머슨도 일찍이 '새로운 문화예술은 옛것을 파괴한다'고 했다. 
또 프랑스의 자가 발자크도 '문화예술의 사명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평범한 사고나 고정관념, 
또는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모방하려는 자세로서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없다. 
또 이렇게 해서 쓰여진 수필(엄밀한 의미에서는 수필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은 
독자들의 공감이나 갈채도 얻지 못하는 법이다. 
때문에 좋은 수필, 독자들의 공감이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우선 창조적 사고력이 있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와 '의식의 담금질'이 계속되지 않으면 안된다. 
수필을 쓰는 kr가 자신부터 변해야 창조성과 문학성이 뛰어난 수필 작품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범하고도 흔한, 그저 그렇고 그런 잡문밖에 쓸 수 없다. 
또한 수필을 쓰는 작가의 창조적 사고와 의식의 변화는 
곧 작품의 창조성과 문학성으로 이어져 나타난다. 
그리고 수필 작품에 있어서의 창조성과 문학성도 자연히 훌륭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자연히 그 작품의 문학성도 떨어진다. 
이 점에 대해 김구봉은 그의 [내력과 성격으로 본 수필의 문학성과 창조성]에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문학성이란 소재의 정시화요, 주제의 효율적인 이미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성이란, 이 문학성에 의해 그것이 문장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생명은 문장이라할 만큼 창작 기능과 문장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수필의 문학성은 곧 창조성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윤오영(尹五榮)은 일찍이 수필의 창조성과 문학성을 곶감에 비유하여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필은 곶감에 비유될 것이다. 
감나무와 고욤나무는 똑같아 보이지만은 감나무는 감이 열리고, 고욤나무에는 고욤이 열린다. 
고염과 감은 별개다. 
소설이나 시는 잘못되어도 그 형태로 보아 소설이요 시지, 다른 형태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잡문은 감나무롸 고욤나무가 서로 다르듯,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면 곶감이란 어떤 것인가 
감나무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푸른 열매가, 그러나 그 푸른 열매는 풋감이다. 
늦은 가을의 풍상(風霜)을 겪어 모든 나무에 낙엽이 질 때 
푸른 하늘 찬서리 바람에 비로소 붉게 익은 감을 본다. 
감은 아름답다. 
이것이 수필이다. 
수필의 찬란하고 화려함을 말한다. 
그러나 감은 곧 곶감이 아니다. 
껍질을 벗겨야 한다. 
껍질을 벗겨 찬서리 내리는 데서 말려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손질해야 한다. 
그러면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시설( 雪)이 거기에 앉는다. 
만일 그 감이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생기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 그것을 여러 가지 형태로 접는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다... 

장백일도 그의 [고뇌와 창조]라는 글에서 수필에서의 창조성과 문학성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이것은 작가의 깊은 고뇌와 창조적 고통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그러기에 수필은 구상화(具象化)에의 산문이기도 하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형상화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창조(창작)를 뜻한다. 
즉 정서와 상상과 사상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창작성을 말한다. 
수필은 이데올로기를 위한 선전도구도, 
무엇을 위한 계몽 수단도 아닌 오직 인생의 본질적인 나타냄으로서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수필의 어려움이 있다고 여긴다. 
수필이 정서와 상상과 사상 속에 용해되는 문학성을 떠나는 순간, 
그것은 한낱 무용의 공염불이나 불모의 사막으로 화하는 
신변잡기가 아니면 신변잡사로 추락하고 만다. 
거기엔 수필적 진통과 고뇌가 없어서이다. 
그 점에서 작자의 수필작업에의 진통과 고뇌는 수필 창작에의 어머니이다. 
위대한 생명이 위대한 진통에서 태어나듯 좋은 수필, 
훌륭한 수필은 소재를 작자의 정서와 상상 속에서 여과시키는 
창작에의 진실한 진통과 고뇌로부터 피어난 꽃이다. 
수필의 감동은 그로부터의 결과이다... 
...작자의 개성이 갖는 창작은 
그 개인으로부터 열리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개명(開明)이요 해명이 아닌가. 
그 창작성이 언어 예술화로 꾀해질 때 그것이 바로 수필의 문학성으로 이어진다. 
그러기에 진통과 고뇌의 창작성은 수필의 문학성도 더욱 진지하게 고취시킨다. 
그래서 진정한 수필은 고뇌로부터 탄생되어진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통해 볼 때 수필가나 수필을 쓰려는 사람들은 
문학적 창조를 위한 고뇌와 고통을 더욱 깊이 겪지 않으면 안된다. 
또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기꺼이 받아들일 때 
창조적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또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작품의 창조성과 문학성을 높이고 정말 좋은 수필, 
수필다운 수필로 태어나게 한다. 
창조성과 문학성이 없는 글은 수필도 아니며 죽은 글이다.   


-------------------------------------------------------------------------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신현림(1961∼ )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전쟁으로 사스로 죽어가더니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마음을 주려 하면 사랑이 떠나듯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 절벽이 달려옵니다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당신도 매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헤매는군요
저도, 홀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린 딸을 키우며 제 힘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여성 시인의 삶과 꿈이 다감하게 담긴 시집 ‘해질녘에 아픈 사람’에서 옮겼다. 항상 배란기인 듯 제 몫의 삶을 뜨겁게 끌어안고 세상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시인의 그림자가 시편마다 어른거려서 감탄과 애틋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시집이다. 신현림의 발랄한 생명력은 그가 가슴에 태양처럼 품고 있는 시와 삶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대고 있을 테다. 이 사랑의 투사(鬪士)도 ‘홀로 어둠 속에 있’을 때가 있다. 아니, 그토록 치열하게 삶을 가동시키니 밋밋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자주, 혼자 있는 시간이면 나가떨어진 채 밀려오는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으로 캄캄해질지 모른다.
 

 

‘슬퍼하지 마세요’, 화자는 속삭인다. 둘러보면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단다.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고,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단다. 우리는 왜 외로워하고 슬퍼할까. 인생은 외롭고 슬픈 것인데 외롭지 않은 삶에 대한 꿈, 슬프지 않은 삶에 대한 꿈, 그 허망한 꿈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닐까. ‘꿈이 빗나가는 세상에서/꿈속 세상이 있기에 나는 살아지는데/당신은 꿈마저 버려서 살아진다 합니다’(시 ‘당신도 꿈에서 살지 않나요?’)라고 노래한, 꿈이 삶의 동력원인 시인이 ‘당신’에게 동의하는,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운 시간’….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당신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고, 세상의 수많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제 슬픔을 묽히는 슬기를 화자는 전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30 목련아, 나와 놀자... 2017-06-09 0 2805
529 시는 메모에서 완성하기까지 고심에 련마를 걸쳐야... 2017-06-09 0 2388
528 동시인은 "스스로 어린이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2017-06-09 0 2153
527 시인은 관습적으로 길들여진 자동화된 인식을 버려야... 2017-06-09 0 2272
526 시인은 시제목을 정할 때 신경을 써야... 2017-06-09 0 2558
525 문학성과 창조성이 없는 글은 수필도 아니며 죽은 글이다... 2017-06-09 0 2080
524 인공지능시대 미래를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자세는?... 2017-06-02 0 2865
523 인간 글쓰기 지위 일락천장 추락되다... 2017-06-02 0 2736
522 인공지능 번역은 어처구니없는 번역... 2017-06-02 0 2814
521 세상은 교과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2017-06-02 0 2100
520 인공지능 왈; "이 장기를 수술해 잘라내라".../수술의사: ???... 2017-06-02 0 2381
519 시인들이여, 정신 차리라! 로봇트 세계 최초 시집 발간했다!!! 2017-06-02 0 2644
518 [작문써클선생님들께] -우리 말 공부, 난제를 풀며 공부해야... 2017-06-01 0 3021
517 시계가 걸어온 길을 알고싶다...(3) 2017-06-01 0 3615
516 시계가 걸어온 길을 알고싶다...(2) 2017-06-01 0 3756
515 시계가 걸어온 길을 알고싶다...(1) 2017-06-01 0 3785
514 삶이란 련습없이 태여나서 실습없이 사라진다... 2017-05-31 0 2612
513 미래를 념려하다가 결국 현재와 미래를 다 놓쳐버리다... 2017-05-31 0 2340
512 수필은 원칙적으로 산문으로 쓰여져야... 2017-05-31 0 2631
511 [고향문학인소식]-원로시인 최룡관 고향 문학계 소식 전하다... 2017-05-31 0 2418
510 "수필쟁이"들이여, 수필이라는걸 알고나 씁니껴?!...(2) 2017-05-31 0 2983
509 "수필쟁이"들이여, 수필이라는걸 알고나 씁니껴?!... 2017-05-31 0 2547
508 시의 본질적인 문제를 인공지능이 파악할수 없다... 2017-05-28 0 2363
507 시인이라면 초고를 쓰는 고통을 감내할줄을 알아야... 2017-05-28 0 2544
506 시도 예술도 모르는 사회는 배부른 돼지의 세계이다... 2017-05-28 0 2843
505 시인은 인공지능이 시를 쓰든 말든 신경쓰지 말고 시를 쓰라... 2017-05-28 0 2634
504 수필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행위이다... 2017-05-28 1 2607
503 시간의 그 끝머리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하나의 과정과 방식... 2017-05-28 1 2847
502 소금은 죽음에서 피여나는 생명의 꽃이다... 2017-05-28 0 2588
50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우리 말(어원)의 유래?... 2017-05-24 0 2870
500 시문학을 일상의 생활속에서 이어가는 삶은 아름답다... 2017-05-24 0 2527
499 생명은 타지 않으면 썩는다 / 박문희 2017-05-24 0 2698
498 시는 신비한 언어로 시행사이에 사색적인 공간을 엮어줘야... 2017-05-24 0 2662
497 시의 제목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2017-05-23 0 3041
496 시인은 쓰고자 하는것을 마음속으로 먼저 그려보아라... 2017-05-23 0 3347
495 시를 랑송할때는 시인의 느낌과 청중의 공감을 터득해야... 2017-05-23 0 3880
494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시와 씨름한 독일 시인 - 파울 첼란 2017-05-23 0 3045
493 허두남 우화시 고찰 / 최룡관 2017-05-23 0 2577
492 동시인들은 아이들을 위하여 랑송시 창작에 몰두해야... 2017-05-22 0 2111
491 시는 이미저리의 원형과 수사학적 기법을 잘 활용해야... 2017-05-22 0 2603
‹처음  이전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