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수필은 원칙적으로 산문으로 쓰여져야...
2017년 05월 31일 21시 04분  조회:2633  추천:0  작성자: 죽림

수필이 지닌 여러 가지 특성 또는 특징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은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무형식성(無形式性) 
2) 산문성(散文性) 
3) 자기 고백성(自己 告白性) 
4) 광범성(廣範性) 
5) 창조성(創造性)과 문학성(文學性) 

이를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무형식성(無形式性) 

수필은 이미 잘 알려줘 있는 바와 같이 어떤 형식(形式)으로부터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문학이다. 
즉 일정한 형식이 없는 문학 장르가 바로 수필인 것이다. 
이것이 수필문학이 지닌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요, 수필문학이 지닌 독특한 개성이다. 
수필문학을 가리켜 흔히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수설이나 시, 희곡 등은 각기 그 나름대로 독특한 형식에 의해 쓰여진다. 
즉 소설이나 시, 희곡 드은 각각 정해져 있는 형식이나 제약을 무시하거나 거부해서는 안되며, 
최소한도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에 있어서는 허구(虛構)에 기초를 둔 인물과 사건, 배경, 
줄거리 등을 설정하고 등장 인물의 호칭 등도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이러한 형식의 설정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고서는 소설이 될 수 없다. 
또한 시에 있어서도 운율(韻律)이나 메타포, 시어(詩語)의 선택과 압축 
또는 절약 등 시를 쓰는데 필요하고도 요구되는 형식을 무시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희곡에 있어서도 무대나 장면, 출연진, 대화 내용, 
연기 방법 등을 세밀히 고려하고 지시하면서 형식의 제약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수필에 있어서는 이러한 형식이나 제약 등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진섭(金晋燮)은 수필문학의 이러한 '형식의 자유', 
또는 '무형식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 시, 소설, 희곡 등 속의 문학이 일견 명료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서, 
수필은 문학으로서의 일정한 형식을 갖지 못하고 수필은 그것이 차라리 작품으로서 형식을 갖지 않는다. 
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우에 의해서는 제약도 없으며, 질서도 없으며, 계통도 없이 자유롭고 
산만하게 쓰인 모든 문장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까닭으로 주는 것이지만, 
사실 문학은 자기의 협애(狹隘)한 영역안에 수필이라 하는 이 자유분방하고 
경묘탈려(輕妙脫麗)하고 변화무쌍한 양자(樣子)를 포함하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김광섭(金珖燮)도 그의 [수필문학 소고(小考)]에서 
수필문학의 무형식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문학 형식에서 보면 수필에는 소설이나 시나 희곡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어떤 완성된 폼이 없다. 
단편 소설을 제작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애드거 알렌 포나, 안톤 체홉이나 
혹은 모파상에게 잠시라도 사숙(私塾)하여야 하겠고, 시나 희곡을 지으려면 
괴테나 사옹(沙翁)이 나 혹은 입센 등에게 완성된 폼은 비록 모델로 삼지 않는다 할지언정 
살펴볼 아량쯤은 있 어야 하겠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형식을 구하거나, 
참고하려고 반드시 찰스 램이나 헤를 릿드를 찾을 필요성까지는 없을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찾아 우리의 문학적 항심 (恒心)을 만족시키며 
충족시키는 점은 찬하여 마지 않을 바이나, 그 형식의 섭취에 구속될 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으로서의 수필문학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 이요, 내용이다. 

이와같은 견해들에 대해 이현복(李賢馥)은 
그의 [수필문학 작품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통해 약간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필의 형식은 과연 무형식의 형식인가? 
'무형식'이란 말은 김진섭의 말처럼 
'제약도, 질서도, 계통도 없이 자유롭게 산만하게 쓰여지는 것'이고, 
김광섭의 경우처럼 '붓가는 대로 써지는 시필(試筆)쯤에 그치는 것'이며, 
피천득의 견해처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그렇게 써지는 것'일까? 
이 말들을 표면적 의미로 본다면 수필은 낙서요, 
잡다한 생각의 산만한 표출이요, 문장 수련의 과정일 뿐이다. 
이와 같은 수필관에서 쓰여진 수필은 어의(語義)대로의 수필 일 뿐 문학적 수필은 아니다. 

수필문학에서 '무형식'이란 말은 필자의 마음이 형식이라 하리 만큼 일정한 형식이 없다는 의미이다. 
수필의 형식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소설적인 구성도 없고 논거를 제시해야 하는 
논문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일정한 사물이나 과제를 쉽게 풀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설명문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수필은 다만 초점을 향하여 문장이 집결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전문에 생기가 넘치는 글이란 뜻이다. 
또한 문장기법상에서 '무형식'이란 말은 자유롭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설명, 논증, 서사, 묘사라는 문장의 세가지 기술 양식을 모두 부려 쓸 수 있으므로 
그 형식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형식적이 아닌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무형식의 내용으로 오직 자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무형식이란 말은 붓가는 대로의 무질서한 글이 아닌 것이다. 
결국 무형식이란 말은 일정한 틀에 박힌 틀이 없다는 뜻에서 플롯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수필에서 무형식의 '붓가는 대로'를 고쳐 풀이하면 붓가는 대로써도 될 만큼 
문장력에 있어 숙련에 들어간 작가가 '한가로운 심경'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의지'나 '정감'의 정화를 원숙한 언어로 표출해 낸 것이 수필이라 하여 
중년고개를 넘어서 원숙한 글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수필은 쉽게 쓰여지는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수필은 문장의 수련과 인생의 달관에서 자연히 유로되는 격조 놓은 문학이다.... 

한편 문덕수(文德守)도 그의 [신문장강화](新文章講話)에서, 

...수필은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다른 형식의 문학이 형식으로서의 
뚜렷한 경계(境界)를 그었을 때 그 어느 형식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형식을 용해할 수 있는 부분으로 남은 것이다..... 

라고 하며 수필문학의 넓은 포용성을 강조했다. 
조연현(趙演鉉) 또한 그의 [문학개론]에서 
'수필은 여러 문학 양식 중에서도 가장 그 형식이 자유롭다. 
즉 수필에는 서정시적 정서나 감흥은 물론, 서사시(소설)적 구성이나 희곡적 대화, 
그리고 비평적 판단 작용까지도 다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구성이다'라면서 
수필문학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다는 데에는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그렇다고 수필이 무형식적 무성격적인 것은 아니다. 
서정시적 정서나 감흥을 가지면서 서정시가 아니고, 소설의 구성을 가지되 소설이 아니고, 
희곡적 비평적 요소를 가지면서도 희곡도 비평(批評)도 아닌데 
수필의 독자적인 양식이 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수필문학이 무형식의 문학' 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다른 문학 장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수필이 전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즉 수필문학의 영역이 넓기 때문에 다른 문학 장르들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구인환(丘仁煥)과 구창환(丘昌煥)도 그들이 공동 집필한 [문학개론]에서, 

...수필도 구성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구성의 진행이나 방법에 별다른 제약을 받음이 없이 씌여진다. 
여기에 수필의 무형식적 형식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수필문학의 형식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편 김시헌(金時憲)은 그의 [대중수필과 본격수필]이라는 글에서 
수필의 표현 형식과 호칭 문제를 연관시켜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필은 표현 형식이 자유롭고 대부분 1인칭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문학인 시, 소설, 희곡은 제작 형식이 고정될 뿐만 아니라, 호칭도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1인칭 호칭을 쓴다해도 그 1인칭은 작가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작품 속의 주인공을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수필과 잡문은 다같이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자유로운 방법에 의해서 쓰여지고, 
회칭도 함께 1인칭을 대부분 쓰고 있다. 
꼭 그 1인칭이 작품 소그이 주인공이 아니고 작가 자신을 바로 가리키고 있다.... 

이와같은 수필문학의 특성이나 특질, 또는 수필의 본질, 
그리고 여러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수필이 다른 여러문학 장르들에 비해 
그 형식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필문학이 이처럼 형식에서 무척 자유롭고 
'무형식의 문학'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형식이나 제약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2) 산문성(散文性) 

흔히 수필을 가리켜 '산문(散文)문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필은 사실 산문으로 쓰여진 글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수필이 산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또 수필이란 대부분 산문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물론 수필 중에는 운문(韻文)으로 쓰여진 것도 더러 있다. 
이를테면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는 원래 운문체로 쓰여진 글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일기체 형식의 기행문이다. 
따라서 이 [일동장유가]는 운문 형식으로 쓰여진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이란 보통 산문으로 쓰여진 것을 말한다. 
즉 적당한 길이의 산문으로 쓰여진 것이 수필의 일반적인 모습인 것이다. 
조연현도 그의 [문학개론]에서 수필의 사눔ㄴ성에 대해, 

...수필은 산문문학의 대표적 구성이라고 볼 때 수필의 범위는 거의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광범해진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수필은 전문적 산문(학문이나 과학)이외의 창작적인 요소를 지닌, 
모든 산문문학적 문장을 의미한다... 라고 했다. 
다시 말해 수필은 산문으로 쓰여진 문학 구성이라는 뜻이다. 
김구봉은 그의 [내력과 성격으로 본 수필의 문학성과 창조성]이란 글을 통해 
수필이 역시 '산문문학'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정서나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 도는 문자로써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와 더불어 예술 작품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전설, 가요, 화술이 언어에만 의존한 구비문학(口碑文學) 또는 전승문학(傳乘文學)임에 대하여 
수필은 시, 소설 등과 더불어 문자에 의한 기록문학이며, 
그 기록문학 중에서도 순수문학의 영역에 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수필은 어떤 정치적 또는 계몽적 동기에서 유발된 공리주의적 목적문학에 대하여 
가장 순수한 예술적 충동에 의해서 형성된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문학의 전 기능에 의한 구극적(究極的)인 순수성을 추구하며 
사회적 사상적인 색채가 없이 작가의 순수한 예술적 욕구로써 형성되며, 
한갓 흥미 위주의 대중문학에 대하여, 미적 정서에 호소하여 인간 탐구를 지향하는 문학인 것이다... 
... 그런데 수필은 원래 독립된 문학적 형태로, 
하나의 장르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각종 기록적 서술의 일보, 즉 속성을 이루고 있는 문학적 표현이거나 
순수문학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형식적 기교에 불과했다. 
그런데 수필은 여기에서 문학적 속성만을 독립시키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형식적인 기교에서 탈피하여 인간 본연의 순수 의식과 정서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산문의 창작을 시도함으로써 발생한 것이 수필인 것이다.... 

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새로운 산문의 창작을 시도함으로써 발생한 것이 수필' 이라며 
수필이 새로운 산문을 창작하기 위한 시도에서 발생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실 산문은 근대에 와서 발전했다. 
또한 근대에 와서 이러한 산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수필문학이다. 
옛날에는 서사시와 같은 운문이 널리 성행했다. 
또한 옛날에는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이 운율에 맞추어서 시를 읊으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흡사 노래를 들을 때처럼 장단을 맞추거나 따라서 하기도 하고, 
시의 운율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했다. 
프랑스의 샹송이 원래는 프랑스의 음유시인들이 부르던 시에서 발달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운문은 주관적이고도도 정서적이며 비논리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산문은 보다 객관적이고 이지적(理智的)이며 논리적인 경향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산문은 근대에 와서 과학정신, 
합리주의 정신이 등장하고 발전하면서 함께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권위적, 보수적, 폐쇄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중세 시대에서 보다 개방적이며 
과학적인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 등이 확산되면서 등장하고 발전한 것이 바로 산문인 셈이다. 
프랑스의 몽테뉴나 영국의 베이컨이 수필문학을 새롭게 탄생시키며 
수필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기(16~17세기)였는데, 
이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몽테뉴나 베이컨의 수필 작품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게 된 데에는 
그들의 수필 박품들이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과학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 등이 확산되던 시기와 
'산문의 문학'인 수필이 잘 마자 떨어진 것도 큰 이유가 된다. 

뿐만 아니라 산문은 그 자체가 과학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소설도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소설이란 옛날의 전설이나 서사시, 중세에 있어서의 이야기 등을 이어 받아 
근대에 이르러 발달한 문학 장르로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하여 구상되거나 
어떤 사실이 각색된 주로 산문체(散文體)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나 소설은 작가의 생활이 반영되어 있으되,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의 세계를 산문으로 표현하는 문학이다. 
다시 말해 소설은 '픽션(fiction)의 이야기'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소설을 노블(novel), 
혹은 로망(roman)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들 속에서 '이야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프랑스의 문학자이자 평론가였던 띠보데는 
그의 [소설의 독자]라는 글에서 로망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 

,,,로망(즉, 소설)은 그 이름이 보여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승려 문학시대에 있어서 
라틴어로 쓰여진 정규적인 적서에 대하여 속어(俗語)로 쓰여진 것을 의미하고 있다. 
로망이라는 말이 결국 '이야기'를 뜻하게 된 것은 로망어, 
즉 속어로 쓰여진 것 대부분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도 소설이 원래 '이야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小說)이라는 한자어도 '시중(市中)에 일어나거나 들려오는 
여러 가지 일이나 이야기 따위를 기록한 것'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옛날에는 소설책을 가리켜 흔히 '이야기책' 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소설과 이야기라는 말이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부터 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여러 가지 이야기나 
구전문학이 그대로 혹은 새로 다듬어지거나 보완되고, 여기에다 작가의 상상이나 허구, 
가공 등이 보태어져 산문으로 구성하여 쓴 글이 바로 소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소설과는 달리 수필은 자가의 생활을 직접 산문으로 구성하여 쓴 것이다. 
즉 같은 산문으로 구성하더라도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가 배제된 거이 수필이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수필에 있어서도 일부나마 허구가 용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아직까지 소수 의견에 불과하며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수필에서는 근본적으로 허구가 인정되어 오지 않았던 것이 이제까지의 통례이다. 
때문에 오창익(吳蒼翼)은 그의 [문장은 주제 의미화의 생명력 요소]라는 글에서 
수필이 다른 산문들과는 다리 허구나 과장 등이 배제되고 진솔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그래서 여타 산문과는 다리 수필의 문장은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한 솔직성과 진실성, 
그리고 상징과 비유, 암시와 상상적 수사기능을 생명시 한다. 
자가 자신이 하앙 자기 작품의 주인공이어야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지나친 논리나 주장, 
과장이나 미화(美化)로써는 독자의 공감과 감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이현복은 그의 [수필의 문학성]이라는 글을 통해 수필은 산문의 문학이며 
과학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문학정신이 바로 산문정신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흔히 현대를 '산문의 시대'라고 한다. 
문학의 양식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때 현대라는 과학문명의 시대에 적합한 기술양식은 산문이다. 
과학정신에 가까운 문학정신은 산문정신이다. 
조연현은 '산문정신은 토의의 저인으로서 가공 보다는 사실, 
주관보다는 지성에 더많이 기초한 합리주의적인 증명정신이다'고 하였다. 
근년에 이르러 논픽션(non-fiction)이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은 이런 경향을 말한 것이다. 
현대인은 인생 문제에 대하여 
직접 그 인격의 체험과 진실을 직접 듣고 싶어하는 요구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경향에 편승하여 산문문학인 수필문학은 환영 받는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아나톨 프랑스(Anatikefrance)는 
'수필이 어느 날엔가는 온 문예를 흡수해 버릴 것이다. 
오늘이 그 실현의 초기 단계이다' 라고 한 바 있다.... 
...수필문학은 산문문학이다. 산문정신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비판정신이다. 
여기에서 비판성이란 준엄하고 냉혹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인간미를 풍기는 비판이다. 
그 비판은 자유로운 유희의 자세와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비판의 기준이 율법이나 윤리적 목적을 벗어나서 
오로지 변화하고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사랑하고, 
인생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순수한 충동에서의 비판이다... 

결국 수필은 독특한 특성을 지닌 산문문학이며, 
수필은 원칙적으로 산문으로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더러 운문으로 쓰여진 수필도 있으나 이것을 수필의 본도로 보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이홍섭(1965∼)

일평생 농사만 지으시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절을 잘하셨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나는 무엇보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절하시는 모습이
기다려지곤 했는데

그 작은 몸을 다소곳하게 오그리고
온몸에 빈틈없이 정성을 다하는 자세란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만히 그 모습을 떠올리며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끝을 모아보지만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란 자세라
제풀에 꺾여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먼 훗날 내 자식이 또한 영글어
제삿날 내 절하는 모습을 뒤에서 훔쳐볼 때
그 모습 그대로 그리워지길

 

그리워져서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생각해주길 내처 기대하며
나는 또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가만히 발끝을 모아보는 것이다



그 옛날에는 손윗사람을 만나면 절을 하는 게 상례였지만 요새는 거의 죽은 사람한테만 한다. 개신교 신자들은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까 그나마도 절을 할 일이 없을 테다. 나는 개신교 신자도 아니건만 십대 이후로 절을 한 적이 없다. 동창생 몇과 은사님을 뵈러 갔던 어느 설날이 생각난다. 어느샌가 일행이 은사께 줄줄이 세배를 드리는 게 아닌가. 이윽고 한구석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나를 힐끗 보시는 은사님께 쥐어짜듯 말씀드렸다. “저는 세배 안 해요.” 그에 심드렁히 “그러든지” 하실 줄 알았건만 은사님은 엄한 눈빛으로 “왜?” 하고 물으셨다. “그냥요…”라고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절하는 동작을 보이는 데 대한 무대 공포증이 빚어낸 행태였는데, 은사님은 본데없이 자란 게 분명할 이 제자가 걱정스러우셨을 테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절하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 절은 공경의 마음이 우선이지만 격식에 따른 자세도 중요하리라. 모든 동작처럼 절도 기본자세가 됐을 때 아름다우리라.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끝을 모아’, ‘그 작은 몸을 다소곳하게 오그리고/온몸에 빈틈없이 정성을 다하는 자세란/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뿐 아니라 산 사람들한테도 감동을 줄 테다. 운동 삼아서라도 절하는 연습을 해볼까. 나도 절을 아름답게 할 줄 알았다면 은사님께 날아갈 듯 세배를 드렸으련만. 화자와는 정반대로 오늘날 ‘본때 있는’ 집안에서 ‘본데없이’ 자란 이들에게도 절하는 법을 배우기를 권하고 싶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30 목련아, 나와 놀자... 2017-06-09 0 2806
529 시는 메모에서 완성하기까지 고심에 련마를 걸쳐야... 2017-06-09 0 2388
528 동시인은 "스스로 어린이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2017-06-09 0 2154
527 시인은 관습적으로 길들여진 자동화된 인식을 버려야... 2017-06-09 0 2272
526 시인은 시제목을 정할 때 신경을 써야... 2017-06-09 0 2558
525 문학성과 창조성이 없는 글은 수필도 아니며 죽은 글이다... 2017-06-09 0 2080
524 인공지능시대 미래를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자세는?... 2017-06-02 0 2865
523 인간 글쓰기 지위 일락천장 추락되다... 2017-06-02 0 2737
522 인공지능 번역은 어처구니없는 번역... 2017-06-02 0 2814
521 세상은 교과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2017-06-02 0 2100
520 인공지능 왈; "이 장기를 수술해 잘라내라".../수술의사: ???... 2017-06-02 0 2381
519 시인들이여, 정신 차리라! 로봇트 세계 최초 시집 발간했다!!! 2017-06-02 0 2645
518 [작문써클선생님들께] -우리 말 공부, 난제를 풀며 공부해야... 2017-06-01 0 3022
517 시계가 걸어온 길을 알고싶다...(3) 2017-06-01 0 3616
516 시계가 걸어온 길을 알고싶다...(2) 2017-06-01 0 3756
515 시계가 걸어온 길을 알고싶다...(1) 2017-06-01 0 3785
514 삶이란 련습없이 태여나서 실습없이 사라진다... 2017-05-31 0 2612
513 미래를 념려하다가 결국 현재와 미래를 다 놓쳐버리다... 2017-05-31 0 2340
512 수필은 원칙적으로 산문으로 쓰여져야... 2017-05-31 0 2633
511 [고향문학인소식]-원로시인 최룡관 고향 문학계 소식 전하다... 2017-05-31 0 2418
510 "수필쟁이"들이여, 수필이라는걸 알고나 씁니껴?!...(2) 2017-05-31 0 3022
509 "수필쟁이"들이여, 수필이라는걸 알고나 씁니껴?!... 2017-05-31 0 2547
508 시의 본질적인 문제를 인공지능이 파악할수 없다... 2017-05-28 0 2363
507 시인이라면 초고를 쓰는 고통을 감내할줄을 알아야... 2017-05-28 0 2544
506 시도 예술도 모르는 사회는 배부른 돼지의 세계이다... 2017-05-28 0 2843
505 시인은 인공지능이 시를 쓰든 말든 신경쓰지 말고 시를 쓰라... 2017-05-28 0 2634
504 수필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행위이다... 2017-05-28 1 2607
503 시간의 그 끝머리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하나의 과정과 방식... 2017-05-28 1 2849
502 소금은 죽음에서 피여나는 생명의 꽃이다... 2017-05-28 0 2589
50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우리 말(어원)의 유래?... 2017-05-24 0 2870
500 시문학을 일상의 생활속에서 이어가는 삶은 아름답다... 2017-05-24 0 2527
499 생명은 타지 않으면 썩는다 / 박문희 2017-05-24 0 2698
498 시는 신비한 언어로 시행사이에 사색적인 공간을 엮어줘야... 2017-05-24 0 2662
497 시의 제목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2017-05-23 0 3044
496 시인은 쓰고자 하는것을 마음속으로 먼저 그려보아라... 2017-05-23 0 3349
495 시를 랑송할때는 시인의 느낌과 청중의 공감을 터득해야... 2017-05-23 0 3881
494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시와 씨름한 독일 시인 - 파울 첼란 2017-05-23 0 3045
493 허두남 우화시 고찰 / 최룡관 2017-05-23 0 2577
492 동시인들은 아이들을 위하여 랑송시 창작에 몰두해야... 2017-05-22 0 2113
491 시는 이미저리의 원형과 수사학적 기법을 잘 활용해야... 2017-05-22 0 2604
‹처음  이전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