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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은 작가 개인의 내부생명, 즉 자아(自我) ·혼(魂)의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정표출의 예술’에 있다. 이 운동은 우선 회화에서 시작되어 다른 조형예술을 거쳐 문학 ·연극 ·영화 ·음악에까지 미쳤다.
미술에서의 표현주의라는 명칭은 베를린의 《슈투름(폭풍)》지(誌)의 주간 헤르바르트 바르덴이 보급한 것이며, 이 경우에는 1910~1920년에 벌어진 모든 반인상주의(反印象主義)를 표방하는 운동의 총칭이 된다. 그러나 이 개념은, 광의로는 시대를 초월한 유럽 미술의 저류(底流)의 하나이다. 즉, 지중해 세계에 대립되는 북방 게르만의 풍토를 반영하고 조형적인 ‘형식’과 그 자율성에 대해 혼의 힘과 그 분출을 특징으로 하며, 고전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의 대립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회화의 범국제적인 보편성과 비교하여 표현주의를 특징짓는 강한 정신체험, 가시적(可視的) 세계를 초월한 환상, 때로는 냉혹 ·잔인할 만큼의 분석과 풍자는 위기적인 시대상황에 찢긴 개인의 미와 윤리에 수렴되는 비중이 훨씬 크다. 이런 의미에서 표현주의의 선구는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들, 특히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祭壇畵)》에 거슬러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반인상주의의 입장에 섰던 뭉크, 호들러, 앵소르, 고흐, 고갱의 1885년부터 1900년에 걸친 화업(畵業)이 주목의 대상이 된다. 상징주의와 아르 누보 양식의 박진성과 평행하는 이들 화가들의 주관적 표현은 드라마틱하고 또한 집념에 가까운 테마를 소수의 강렬한 색채와 대비시키고 왜형(歪形)된 포름(형식), 단순 ·긴밀한 구도, 선의 그래픽한 예리함과 역동성(力動性)으로 파악하였다. 이상의 조형적 특색은 그대로 독일의 표현파 작가에게도 공통된다. 독일 표현주의 회화에는 세 그룹이 있다. 첫째는 1905년 드레스덴에서 결성된 ‘브뤼케(橋)’ 그룹으로 키르히너, 헤켈, 슈미트 로틀루프 외에 놀데, 페히슈타인도 참가하고 연차전(年次展)과 집회가 조직되었다. 이 그룹은 독일 현대회화의 출발점을 이루었고 프랑스의 포비슴과 북유럽의 뭉크에 고취되었다. 그 중심인물은 원시미술에서 생명력을 파내고, 격앙된 색채와 예리한 관찰로써 대도시의 가두풍경을 그린 키르히너이다. 둘째는 1910년 베를린에서 바르덴이 창간한 예술잡지 《슈투름》 및 같은 이름의 화랑(畵廊)에 의하여 만들어진 ‘슈투름그룹’으로, 오스트리아의 화가 코코슈카의 자아와 외계의 상극을 새긴 심리적 초상화로 대표된다. 바르덴은 자기 나라의 젊은 전위화가(前衛畵家)를 화랑에 결집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미래파, 초기의 프랑스 큐비스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였고, 잡지에는 칸딘스키와 마르크의 논문 및 들로네(클레의 번역에 의하여), 레제의 기사를 게재하는 등 전위의 거점이 되었다. 특히 약 15개국 90명의 작가와 366점의 작품을 모아 일찍이 보지 못한 최대의 국제전을 열었다. 셋째로는 칸딘스키, 마르크를 중심으로 1911년 뮌헨의 신예술가동맹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결성한 청기사(靑騎士) 그룹이다. 구성원으로는 이 밖에도 클레, 야우렌스키, 마르케, 쿠핀, 뮌터 등이 있고, 전람회는 뒤에 드레스덴의 ‘다리’, 베를린의 ‘분리파협회’, 프랑스 작가(루소, 피카소, 브라크 등), 러시아 작가(말레비치)를 추가하여 확대시켰다. 이론가인 칸딘스키는 논문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을 발표하여 유물론과 리얼리즘에 지배당하고 있는 미술에 반기를 들었으며, 화가의 내적필연(內的必然)에서 우러나는 정신성 ·환상성을 주장하였다. 그의 제작과 더불어 마르크, 클레 등의 형태의 분석 ·종합의 시도는 ‘청기사’ 운동이 지향하는 현대 추상회화의 중요한 주류의 하나로서 주목된다. 이 밖에 베크만, 그로스 그리고 여류화가 모다존 베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표현주의 화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재차 그룹을 결성하지도 못한 채 나치스 체제의 발흥과 동시에 ‘퇴폐예술’로 낙인찍혀 개별적으로 어려운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혹은 스스로 붓을 꺾고 예술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벨기에에서 일어난 플랑드르 표현파가 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코브라’ 그룹(알레신스키, 아펠)의 추상적 표현주의, 초기의 루오, 그로메르 등의 화가도 표현주의의 진영에 넣을 수 있다. 조각에서는 확대된 인체(人體)의 모습을 추구한 렘브루크, 농민의 중후한 종교성을 탐색한 바를라흐가 있다. 표현주의 건축은 최근의 연구에서 관심을 끌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 환상적 형태와 색채에 특색을 보인 치히와 타우트를 들 수 있다. 문학 ·연극에서는 베데킨트, 트라클, 카이저, 조르게, 괴링, 베르펠, 하인리히 만 등이 있고, 음악에서는 쇤베르크, 힌데미트 등을 대표적 작가로 꼽는데, 이 두 사람은 한결같이 영감에 의하여 파악된 감정의 표출과, 자아감정(自我感情)을 고양시키는 것을 기조로 하여, 참신하고 대담한 수법에 의한 예술적 변형에 특색을 나타내었다.
또한 표현주의는 대도시의 실내장식 ·포스터 ·진열장 전시에 이르기까지 일세를 풍미하였는데 특히 영화사의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다. ‘슈투름’의 세 화가(헤르만 바름, 발터 뢰리히, 발터 라이만)가 협력한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1919)는 그 금자탑(金字塔)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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