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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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우석과 김 문학 그리고 맹신
2010년 10월 07일 11시 21분  조회:4885  추천:30  작성자: 김광림

 

                                             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광림의 보스턴통신8

 

                벌거숭이 김문학-<김문학 解體新書>(4)                 

 

                   6. 우석과 문학 그리고 맹신

 

한국의 수의학자이고, 생명공학자이며 원서울대학교 교수였던 황 우석과 김 문학은 차원이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어떤 사회현상을 비교분석하는데는 더 없이 좋은 분석대상이다.  그럼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까?

황 우석은 수의학자로서 훌륭한 연구성과를 많이 내놓았고 동물복제분야에서는 세계에서도 제일 첨단을 달리는 권위자이다. 같은 의미로 김 문학을 보면 조선족 가운데서는 아직까지 누구도 따라잡지 못 할 정도로 다산작가이고  중한일 삼국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수십권 이상의 책을 출판했고 동아시아비교문화론 분야에서는 여러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황 우석이 한 때 한국 최고의 과학자로 수많은 상을 받고 사회적으로 각광을 많이 받았던 것처럼 김 문학도 조선족 사회에서는 국경을 넘나들면서 많은 저서를 출판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조선족 최고의 문화인 정도로 평가를 받은 것 같고, 조선족 문학상도 여러 개 받았다.

그러나 황 우석은 2005 8월에  <사이언스> 잡지에 발표한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논문이 고의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그해 11월에 한국의 MBC PD수첩에  의해 폭로되면서 결과적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직에서 박탈당하고 한 때 자자하던 명성이 거의다 훼손되고 말았다. 김 문학에게는 물론 그런 스캔들같은 일은 없다. 그러나 김 문학의 일련의 사회비판서는 출판되는 당초부터 여러 사람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고, 특히 친일언행에 대해서는 분노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가 황 우석과 김 문학을 비교해보자는 것은 이 들이 사회에서 비판받을 때 지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거의 맹신에 가깝고 열광적인 비판이 거꾸로 그런 비판자들에게 돌아가고 일시적으로 그런 비판자들이 상당한 수모를 당하게 되고, 별의별 욕설을 다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황 우석 연구팀의 논문조작 의혹이 PD수첩에  의하여 폭로되어 결과적으로 황 우석이 서울대학교에서 해임되는 과정에서 황 우석지지자들이 황우석죽이기를 그만두라고 얼마나 한국사회를 소란하게 굴었는가? 오늘날 김 문학의 사회비판서중에 심각한 친일언행이 보이기에 연변대학교 김관웅교수가 비판에 나서니 김 문학죽이기를 그만두라고 맞아죽을 각오를 한다면서 조글로에 나와서 지금까지 대체 16번 정도나 김 문학옹호론 그리고 김 문학옹호를 위한 타인비판을 한 사람도 있다.

  또 미국의 어느 조선족 사이트  운영자는 거기에 북치고 장구치면서 김관웅이 혼자서 벌이는 문화대혁명을 이제 그만두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 두명만이 아니라도 앞에서 나서지는 않았지만 김 문학비판을 저들의 유명인콤플렉스의 발로라고 비판자를 비앙거리는 사람들로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시적이라도 오히려 비판자가 초라해보이고 비판받는 대상이 더 당당해보인다. 황 우석도 좋고 김 문학도 좋고 분명히 비판받을 점이 있어서 비판하는데 일부 지지자들은 그것을 받아 들이려 안 한다. 물론 김 문학비판은 그에 대한 전면적인 비평보다 결점만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줄 소지도 있었다. 필자도 김 문학에 대하여 비평해보면서 알게 되는데 김 문학이 동아시아삼국을 넘나들면서 저술활동을 하기에 그의 책의 전모를 다 파악하고 책을 다 찾아서 비평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자연히 눈에 띄우는 책을 가지고 비평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고, 일본에서 출판된 책은 비평하는데 어느 정도 언어적인 장애도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황 우석과 김 문학 지지자들이 비판자들의 의견을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면에는 자기들이 믿고 따르고 지지하던 대상에 대한 맹신이 생기여 그 대상의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을 받아도 자기들의 맹신을 부정하지 못하여 그래서 오히려 일시적이라도 그런 비판자들에 맹렬한 공격을 가하는 것 같다.

  김 문학비판에 의해 생긴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생동하게 분석하기 위하여 황 우석이 가짜 논문으로 한국에서 비판받는 과정에서 지지자들이 보여 준 움직임을 먼저 소개해보겠다.  

필자가 황 우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05년 초 쯤으로 생각되는데 황 우석이 일본방문차 동경의 한국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과학에는 국경이 없어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취지의 강연을 한 것을 재일한국인 신문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때 과학자가 어찌 이렇게 말을 잘 하는가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 후 얼마지나지 않아 Newsweek誌 일본어판에 황 우석의 최첨단 생명공학연구가 소개되고 생명윤리라는 면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되었다. 그 때문에 필자도 황 우석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한 때 한국에서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 분의 생명공학연구가 성공되면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의료분야의 원천기술을 가지게 되고, 거대한 국부가 창출된다는 설이 많았다. 그래서 여야를 불문하고 대통령후보자들도 황 우석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지나지 않아서 그해 11월에  MBC PD수첩이 황 우석교수팀이 8월에  <사이언스> 잡지에 발표한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논문이 고의로 조작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그러면서 한동안 한국사회가 이 문제로 시끌벅적하였다. 필자도 상당히 관심이 있어서 이 문제의 추이를 인터넷을 통하여 많이 관찰했는데 초기에는 한국의 보수적인 주류미디어가 이 사건을 더 이상 터뜨리지 말고 조용히 덮어두고 가기를 바라는 여론을 조성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적인 미디어는 이 문제를 철저히 파헤치자 하고 젊은 과학자들이 가만 있지 않고 이 문제의 진상을 많이 폭로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황 우석을 크게 믿고 따른던 사람들이 자연히 지지단체를 결성하여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MBC사옥앞이나 서울의 청계천광장에 나가서 초불시위 를 벌이면서 PD수첩이 황 우석연구팀에 관한 진상보도를 그만두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지지자들의 움직임은 그후 한동안은 점점 더 거세지여 한국사회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필자도 황 우석의 연구에 크게 기대했기에 황 우석이 그렇게 추락하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그리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아리러브 황우석」이라는 지자자들의 사이트를 알게 되어 거기에 자주 드나들면서 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봤고, 정말 황 우석이 무사하기를 기대했다. 그런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극렬성도 보게 되었다. 그 극렬성이란 참으로 가관이었다. 금 기억이 나는 대로 지지자들의 그 때 극렬한 언사들을 여기서 잠깐 재현해보겠다.

아무리 MBC사옥앞에 가서 황 우석연구팀에 관한 PD수첩의 폭로 보도를 멈추라고 지지자들이 초불시위를 벌여도 결과적으로 보도는 진행됐고, 그 보도의 결과에 따라 서울대학교는 자체로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사이언스>잡지에 발표한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논문이 고의로 조작됐다는 점이 발표되고 황 우석이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그 때 지지자사이트에서는 그 발표를 했던 서울대학교 부총장을 얼마나 인신공격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연구능력으로는 황 우석 교수의 발바닥에도 못가는 인간이 개기름 번듯한 얼굴을 하고서 어떻게 저런 발표를 할 수 있는가? 황 우석교수의 연구수준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서울대학교에 없다. 진정으로 검증하자면 국제검증단에 의뢰해야 한다 등 주장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지지자들이 서울대학교에 몰려가서 학교본부앞에서 매일 데모를 하고 대학교 관계자들이 나오면 욕설을 퍼부으면서 난리가 났다. 그들이 매일 하는 얘기가 황 우석교수 죽이기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황 우석교수 능력에 따라가느냐 하는 얘기가 항상 따랐다.

그러는 과정에서 황 우석을 변호하기 위한 소위 논리가 많이도  떠돌았다. 황 우석교수가 수의출신이여서 서울대 의대교수들이 질투를 하여 죽이기를 한다. 수의대가 의대보다 힘이 모자라서 황 우석교수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새튼이라는 교수가 황 우석교수의 원천기술을 훔쳐가려 한다. 한국의 기독교계가 자기들의 교리에 위배된다고 황 우석교수를 말살시키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황 우석의 논문 조작과 오류가 명백히 들어나고 소위 배아줄기세포라는 것을 세계최초로 배양해냈다는 것이 가짜라고 판명나는데도 문제가 되던 1번줄기세포는 한국국익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국정원의 어느 금고에 튼튼히 보관되고 있다고「아리러브 황우석」의 운영자가 지지자들에게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래서 황 우석교수팀이 연구해낸 원천기술을 미국이 절대 훔쳐가지 못한다는 설명이 따랐다.      

 아무리 그래도 황 우석교수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조작됐다는 것이 부정할수 없게 되고 세계최초로 배양해냈다는 배아줄기세포도 없다는 것이 판명되니 이번에는 지지자들이 황 우석교수 수하의 연구자가 조작질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같이 협력한 병원원장이 사기를 쳤다 등등 너무나도 많은 설을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황 우석은 하나도 나쁘지 않고 마치도 신적인 존재처럼 지켜려 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 순신장군이 임진왜란때 백의종군을 마치고 나라의 부름에 따라 다시 수군통제사로 나설때 선조대왕에게 올린 狀啓에臣에게는 아직 戰船 12척이 남아있습니다( 이 순신장군은 그 12척의 戰船에 戰船1척을 보태여 戰船 133척의 일본수군을 대파하여 명량대첩을 이루었다)  라고 한말을 본따 황 우석지지자들이 황 우석교수에게는 아직 대한민국의 원천기술이 남아있습니다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하고 다녔기에 이 순신장군 후손들이 주의까지 주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아무리 지지자들이 떠들어도 결국 황 우석은 서울대학교를 떠나게 되고, 그후 오랜기간의 재판과정을 걸쳐 작년에 법원에서 논문조작을 한 사실이 인정되고 징역 2, 집행유예3년형이 선고되었다. 황 우석은 서울대학교를 떠난후에도 민간인사들의 후원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생명공학분야의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필자가 이 연재를 쓰면서 정말이지 5년만에 인터넷에서 아이러브 황 우석이라는 지지자사이트가 혹시 아직도 남아있는지 해서 찾아보았더니 확실히 그 사이트는 남아있었고, 지지자가 극소수로 줄었지만 초심 그대로 변함없이 우리는 간다! 끝까지!라는 구호를 사이트 대문짝에 걸어놓고 아직도 황 우석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감동이 다가오고 황 우석이 연구에 힘내여 이분들의 기대에 보답해드리기 바랐다.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때아이러브 황 우석같은 지지자사이트에서 매일 같이 쏟아져나온 황 우석을 지키기 위한 갖은 변명, 소위 설들이 출처가 결국 황 우석 본인한테서 나온 것이 많았던 같다. 생명공학계의 사정, 또 연구내용까지 일반지지자들은 그런 것을 알 지식도 없었다. 그 당시의아이러브 황 우석사이트의 운영자는 미디어사업에 종사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황 우석의 홍보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안되는 생명공학연구자로서 홍보관을 달고 다니면서 자기 홍보를 하고, 문제가 터지니까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성원에 힘입어 거기서 빠져나가려 황 우석 자신이 교묘하게 지지자들을 상대로 언론플레이 한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황 우석비판만 하면 누구든지 욕을 먹게 되고 모욕까지 당했다. 한국 최고의 學府인 서울대학교가 한때 그런 열광적인 지지자들로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그러고 보면 황 우석은 과학자로서 연구에서 엄중한 실수가 있은 것만 아니고 그 실수를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과실이 있었다. 그 때문에 지지자들이 더 황 우석을 맹신하고 열광적인 지지를 했던 것이다. 그런 반면 황 우석은 오히려 한국 과학계에서 더 차가운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지지자들이 황 우석을 이토록 지지하고 법원의 재판결과가 나와도 그 신조를 굽히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필자도 한 때 심정적으로 황 우석지지자였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문지식의 부족과 그래서 오는 맹신이라고 판단된다. 현대사회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정보가 넘쳐나기에 누가 아무리 사회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모르는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사회 각 분야마다 전문가를 필요한다. 사실 황 우석지지자들 중에 황 우석이 연구하는 생명공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척추마비나 파킨슨병 등 난치병환자나 가족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의하여 난치병을 치료할수 있다는 일루의 희망을 가지고, 혹은 황 우석교수 연구팀이 연구한 한국의 원천기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애국주의자, 황 우석이 동물복제연구에서 세계최고권위자라는데 매혹된 사람, 황 우석교수의 단정한 외관과 재치있는 말재주에 끌리운 여성들, 지지자들은 다양했지만 생명공학에 대한 전문지식은 정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한번 황 우석에 대하여 맹신을 하기 시작하니 아무리 과학자들이 나서서 황 우석이 과학자로서 중대한 실수를 했다해도 귀에 들어가지 않고 한동안은 황 우석죽이기를 그만두라고 정말이지 처절한 몸부림을 부렸다. 

  김 문학은 아직 황 우석같이 큰 틀내에서의 사회적 영향력은 없다.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서는 좋던 그르던 분명히 인지도가 있고 10년 정도 긴 시간속에 조선족 지식인들이 알게 모르게 김 문학평가를 놓고 찬반양론을 펼쳐왔고 금년봄부터  김 문학이 조글로에 등장하여 두편의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김 문학이 글 가운데 연변의 비판자들을 자극하는 언어표현을 자주 사용했고, 거기에  자극받았는지 김 관웅교수가 금년 5월부터 중국조선족문화통신 사이트에 김 문학이 일본에서 출판한친일파 중국인에 의한 참을수 없는 일본질책론-반일에 미친 중국,우호를 구걸하는 일본(, 2004)을 소개하면서 그의 친일언행에 대한 비판을 진행하였다.  

  필자는 이번에 조글로와 중국조선족문화통신에서 김 문학의 글과 김 관웅교수의 글을 찾아보면서 도대체 누가 먼저 비판의 포문을 열었는가 찾아봤. 생각밖으로 김 문학이 상대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먼저 열었다.  

김 문학이 조글로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금년 324일이고 첫 시작 글은 「131세 사상가 안 중근을 만나다」인데 330일까지 3회에 나누어 발표하고 나서 56일에신조선족월경론」이라는 연재를 시작했다. 런데 그 연재의 제2회 글「포스트개조론」에서 김 문학은 김 문학비판자에 대하여 자극적인 언사를 던졌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여기서 인용하겠다.

 

 한국이나 조선족사회에서는 저자인 필자에게 조선족 '문화기수','신세대 지성의 대표주자', '문화선구자'로 예찬했는가하면 '민족반역자', '친일파매국노', '총탄으로 저격해야 할 원쑤'라고 외친 극렬 '안티김문학' 지식인도 있었다. 유순호氏의 표현을 차용한다면 '장장 10년을 친일매국노'로 몰아부친것이다.

 '개조론'의 발표는 조선족정신사의 일대 사건이며, 또한 이에 대한 센세이션에 따른 찬반의 논란 역시 일대 사건이였다.

 그리고 유순호氏가 주도했던 2009 '연변 6'에 대한 비판은 '신조선족'의 월경하는 문화적 창조활동을 지극히 부정적 마이너스 의미로만 포착하면서 '매국역적', '반화분자'로 왜곡 중상한 일부 연변조선족의 민족주의자 (협애한 민족주의자?)에 대한 '신조선족'의 정면으로부터의 '반란'이였다.

  물론 이것 역시 필자의 속단으로는 조선족 정신사의 일대 사건이며 특기할만한 한페지를 열었다고 추찰된다. 中略)

  그러므로 유순호氏가 리드했던 작년의 반란은 '포스트 개조론'의 대사건으로서 조선족의 고루한 '1940년대 정풍시기' '전근대적 사고양식' '문화대혁명'의 유령으로 전신을 무장한 수구파(민족주의자?)에 대한 비판이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중대하다. 中略)

 

  유감인 것은 근대도 아닌 '후근대성'으로 칭해지고 있는 21세기의 지금에 와서도 다시 100년전 근대로 되돌아간듯한 일부 조선족의 고루한 양상을 다시 비판개조해야되는 아이러니, '포스트머더니즘의 아이러니'에 필자는 그만큼 가슴이 쓰리다.

 

 이상의 비판이 아주 점잖은 상대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3자가 봐도 상대에 대해 도전장을 던져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최근에 시작된 김 관웅교수의 김 문학비판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중국조선족문화통신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518일이었다. 글의 제목은「日本軍國主義의 走狗 金 文學의 代表作 소개(1) 」였다. 제목을 봐도 과격한 언사가 들어있는 것은 분명하나 김 관웅 교수에 대표되는 김 문학비판자들에 대하여 최근에 먼저 포문을 연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봐도 김 문학이 확실하다. 그러면서부터 조글로에서 김 문학이 연재하는신조선족월경론에서 수시로 김 문학비판자들을 지칭하여 연변의 고루하고 도태되어야 할 구조선족이라 비꼬고 심지어 본인도 그 속의 일원으로 의식하는 신조선족을 海鯨,본인에 대한 비판을 하는 조선족 지식인들을 구조선이라는 이름으鰍魚라고 비꼬기도 했다.
  사실 최근에 김 관웅교수가 중국조선족
문화통신에서 하는 김 문학비판은 주로친일파중국인에 의한 참을수 없는 일본질책론-「반일」에 미친 중국,「우호」를 구걸하는 일본(, 2004) 이라는 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책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만약 중국 주류미디어나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면 가히 그 可恐할 후과를 연상할 수 있다. 13억의 중국인이라면 철이 못든 아이들은 제외하고 아마 10억은 격분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고 보면 김 관웅교수가 중화인민공화국공민으로서, 또 학생들을 가르키는 대학교의 책임있는 교수로서 이 책에 대해 비판에 나선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김 관웅교수의 비판글이 사고방식에 경직된 감이 있고, 거기다가 상대에 대한 과격적인 언사가 있어, 그런 것이 상대에 대한 인격적인 모욕에 해당할 수 있기에 이 점만 없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호응했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김 문학도 시종일관 점잖은 말로 상대비판을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본인을 海鯨, 상대를 鰍魚로 비유하는 것도 상대에게 모욕감을 크게 주는 표현이다. 또 상대 비판은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한마디로 물리치는 표현을 여러번 쓴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김 관웅교수의 김 문학비판에

는 실명을 공개하면서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데 김 문학

에 대해서는 조글로에서 실명을 공개하면서 맞아죽을 각

오로 김 문학을 변명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 열성도

대단하여 조글로에서 오늘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순간까

지 헤어보니
16번이나 (혹시 계산이 틀리면 이 분한테 미

안하다
) 김 문학에 대한 옹호론, 김 문학과 관련하여 김

관웅교수 그리고 필자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 본인은

20번도 그런 옹호론을 쓸 생각이었다하니 아마 좀 더 대

한민국 서울에서 쏘아올리는 문화미사일이 조글로사이

트에 와서 작렬하면서 중국의 구조선족들의 귀청을 울려

주고 포연을 자욱하게 날릴 것 같다
. 이 사람이 조글로에

서 김 문학을 언급한 것은 금년
57일에 발표한
누가

김 문학을 뜨게 했나
?라는 글에서부터이다.  56일에
김 문학이
신조선족월경론」을 연재하기 시작한 그

이틑날부터 이미 이 사람의 김 문학옹호론이 시작되었고
그 다음부터 정말이지 객관적이 입장에서 보기에도 집요

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김 문학옹호론을 줄곧 벌이고 있

.  


 
또 사정이 있어서 조글로에 실명을 올리면서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연변의 중견문화인들 비판과 함께 그런 문화인들의 촌스러운 문화적인 역량을 단 한번에 공중분해시킬 怪力의 소유자로서 김 문학을 학술저서 58종의 국제대학자로 치켜세우더니 조글로와 중국조선족문화통신에서 김 문학에 대한 찬반양론이 벌어지니 이 사람도 굉장히 바빠지고 양으로 음으로 역할을 많이 했다. 조글로에 공개적으로 나오지 않은 역할에 대해 구구히 언급할 필요는 없는데 정말 필자가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친일파중국인에 의한 참을수 없는 일본질책론-「반일」에 미친 중국,「우호」를 구걸하는 일본(, 2004)에서 김 문학의 친일언행이 불보듯 뻔하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본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김 문학의 친일언행은 부정못하지만 그 친일언행은 과거문제이고  현재는 김 문학이 인권탄압을 받고 있기에 그를 지지한다는 취지의 선언문을 대문짝에 올려 놓은 것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도 있는가? 사실말이지 현재 누가 김 문학이를 죽이고 있고, 김 문학이 누구한테서 인권탄압을 받고 있다는 말인가? 단지 욕먹을 글을 썼기에 욕을 먹고 있고, 때로는 그 욕이 너무 직설적이니 들으면 기분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선언문을 발표하는 그 당시도 김 문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욕한 것은 김 관웅교수뿐이었다.

  김 문학과 몇 안되는 김 문학지지자들이 너무나 일부 고루한 조선족 지식인들이 장장 10이나 김 문학죽이기를 한다기에 필자도 그런 죽이기의 총본부라고 할 만한 중국조선족문화통신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반문화지향의 중국인》(이채,1999),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우석, 1999), 조선족대개조론》(2001)를 출판했을 당시 조선족 지식인 사회에서 일시적으로 열띤 비판이 있었던 것 같았고, 그후에는 극히 간헐적으로 일부 지식인들이 비판글을 어디에다 올린 정도가 아닌가 추측된다. 중국조선족문화통신 사이트에서 현재는 과거의 그런 글들을 찾아내기도 힘들다. 김 관웅교수가 그 사이트에서 최근에 김 문학비판을 시작한 것도 필자가 이미 객관사실을 검증해보았듯이 김 문학의 도발에 의해 나선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여기까지 쓰다보면 김 문학이 조글로에 나타나면서부터 몇명 지지자들이 그를 위한 변명을 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한국에서 황 우석 지지자들  하던 행태와 비슷하다는 점에 다시 놀란다. 물론 황 우석의 과학논문조작과 김 문학의 문제점은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김 문학의 친일언행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그런데 황 우석지지자들이 황 우석의 과학자로서의 엄중한 실책에 대하여 한사코 외면하고 그런 실책을 비판하고 문책하는 사람들에 향하여 광기가 어린 저주를 퍼 붓듯이 조글로에 자주 김 문학옹호론을 발표하는 사람의 글에서는 김 문학에 대한 맹신, 김 관웅교수에 대한 너무 지나친 비판을 서슴치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그 사람도 조글로에 나타나는 사람 이상으로 본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아직도 김 문학변명의  구실을 만들어내고 친일언행에 대해서는 이제 더 변명을 못하겠으니 자기의 조국에 대하여 왜곡된 역사교

과서 비판을 하는 용기있는 김 문학을 정권에나 아부하는 너희들이 비판자격이나 있느냐 하는 질문을 댓글에서 던진다 .그런 과정에서 누가 쓰는 글인지 일본의 중국침략은 침략이라는 명분이 있으나 문화대혁명은 그런 명분도 없는 일이고 일본의 세균무기보다 김 관웅의 문화대혁명의 유령이 더 나쁘다는 댓글이 사이트에 올라와 필자도 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리고 또 개발되는 구실이 저서 50여종을 출간한 김 문학에게 저서 고작 몇권밖에 안되는 학자들이 나서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얼핏 들어보면그럴듯 해 보인다. 황 우석논문조작문제를 서울대에서 조사할 때도 지지자들은 서울대는 조사할 능력도 없다고 했다. 황 우석은 동물복제연구, 생명공학연구의 세계최고의 권위자이니까 이 세상에 누가 황 우석을 조사할 능력이 있느냐 말이었다. 그래서 지자자들이 인정하는 외국의 최고의 생명공학학자들을 모셔다가 서울대 조사를 다시 재조사하라고 웨쳤다.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하단 말인가? 그래 김 문학비판은 중국의 余 秋雨, 한국의 李 御寧정도가 비판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말인?

  결과적으로 황우석의 과학적 오류는, 과학자로서 성실하지 못한 자세는 한국의 소학생 정도여도 비판할 수 있고, 김 문학의 친일언행은 중국과 한국의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토록 집요하고 외고집스럽게 만드는가? 황 우석의 지지자들의 경우에서 이미 봤지만 한번 자기들이 맹신한 상대에 대하여 아무리 허물이 드러나도 자기들이 맹신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

하여 맹신에 맹신을 더해가는 것이 이들의 심리가 아닐까? 그리하여 누구나 분노할 만한 친일언행에도 될수록 외면하려하고 기껏 내놓는 소리가 다양한 사회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것이다. 결국 김 문학에 대한 진정어린 애정보다 자기들 자존심문제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황 우석의 지지자들은 그래도 순순한 동기가 대부분이었다. 그 위대한 우리민족의 과학자를 지켜주자는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현재까
지 김 문학옹호에 열성을 부리는 사람들은 우리 조선족의 전무전후한 저술가이고 월경하는 문화인인 김 문학이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안타까워서만 그럴까? 객관적인 사실을 보아도 현재까지 김 문학비판에 실명을 공개하고 나서 사람은 김 관웅교수이고 그 다음 필자 정도이다. 조글로에서 댓글형식으로 김 문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 김 문학옹호론자나 필자의 글에 댓글을 다는 정도이지 그런 댓글에 죽어날 김 문학은 더구나 아니다. 또 김 문학을 비판하는 것도 김 문학의 욕을 먹을 점을 지적하는 것이지 무조건 김 문학의 저술활동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필자의 이 연재에서 알다싶이  김문학을 전면적으로 분석해보면 좋은 점도 많이 보이고 욕 먹을 점도 많이 보인다. 그래서 현재까지 과대포장되고 있는 김 문학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비판받을 점을 비판받을 점대로 나누어 보자는 것이 필자의 이 연재의 要諦 이. 그러면 결국 죽이기는 아니지 않는가? 실상을 제대로 알고나서 김 문학에 옳바른 자세로 대하기가 무조건 올리치켜세우고 맹신하는 것보다 월등히 좋은 일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왜서 이토록 집요하단 말인가? 너무나도 집요하니 이런 지지자들의 동기가 의심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혹시 반대급부를 바라고 하는일, 같이 해외에 있다는 점에서의 연대감에 김 문학과의 제휴에 어떤 이상적인 기대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보는데 근거없는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그렇다쳐도 여기서 꼭 짚어볼 점이 있다. 황 우석지지자들이 생명공학에 전혀 전문지식이 없었기에 맹목적으로 황 우석을 지지하고 또는 황 우석과 지지자사이트 운영자의  교묘한 얼론풀레이에 놀아난 면이 강하다. 대다수 새명공학자가 황 우석이 분명히 논문조작을 했고 과학자로서 중대한 실책을 했다고 설명을 하고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도 그런 설명에 수긍이 가는데 극소수의 지지자들만이 그런 설명이 귀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무지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마침 아이러니 하게도 김 문학에 대한 비판을 하는 김 관웅선생, 그리고 필자는 중국조선족 지식인 사회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비교문화의 전문가들이고 비교문화의 책에 관해서는 그 진가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의 김 문학에 대한 평가를 한사코 말꼬리만 잡아서 깍아내리려 하고 필자의 글에서는 말꼬리도 잡을 것이 없으니 댓글에다 이런저런 욕설을 퍼붓으면서 이 연재를 중단하기를 은근히 촉구하고 있다.

 마침 알고보니 김 문학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다 문화적인 일을 하고는 있으나 그렇게 많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소문을 어느 댓글에서 봤다. 그러면 본인들이 잘 모르는 분야도 있고 그런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인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이어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그러기는커녕 학자님들의 그릇이 어떻소 하면서 본인들이 그런 정도의 학자도 되지 못한 어떤 저주같은 같은 것이 이 사람들의 언사에서 스며나오고 있다. 본인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또 본인이 의식하지 못 할 수가 있어도 글 읽는 사람들은 그런 심리를 보아낼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은 조선족 가운데서 학자라고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질투심도 생기고 그런 학자들을 한꺼번에 다 날려보낼 怪力의 소유자인 다산작가이고 월경하는 문화인 김 문학한테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아닐까? 이들은 또 한편으로는 해외의 대도시에 있다는 점에서 연변땅에나 남아있는 조선족 지식인들에게 일종의 우월감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서로 모순되는 심리가 묘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무지에 의한 맹신이 어떻게 무서운지 김 문학에 관하여 한번 예를 들어보겠다.

   김 문학에 대한 찬반양론이 심하게 전개될 때 조글로에는 북경에서 날아온 特報같은 김 문학 학술,언론계 초청으로 북경방문이라는 기사가 대문짝에 올라왔고 미국의 어느 사이트에서도 거의 리얼타임으로 대문짝에 내걸었다. 그러더니 조글로에 대뜸 그 내용을 봤느냐? 그것을 보고서도 김 문학비판이냐? 졻은 연변골짜기에서 너희들은 비판해도 북경,서울같은 대도시에는 김 문학이 이렇게 대환영을 받는다 이런 뉴앙스의 글이 올라왔다. 그러니 속담에 있다 싶이 되놈이 김 상헌을 안다더냐 하는 식의 어느 정도 추궁마저 하는 기세였다. 필자가 이 연재를 쓰면서 조글로에김 문학 학술,언론계 초청으로 북경방문이라는 기사가 올라온 시간을 보니 823014분이고, 위에 언급한 사람이김 문학은 친일매국노?라는 글이 조글로에 올라온 것이 같은 날 1435분 이었다. 그러니 그 기사를 보고나서 그날로 글을 써서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도 분명히 김 문학에 의한 어떤 의사가 존재하고 그 것을 맹신하는 모습도 분명했다. 필자도 처음에 이 기사를 보니 그럴듯해서 김 문학이 과연 대단하구나 했는데, 그 기사의 출처를 보니 중신출판사라고 김 문학의 책을 내준적이 있는 북경의 어느 출판사의, 그것도 조선족인 듯 보이는 직원이 쓴 기사였다. 그러고 아무리 다 사실이라고 해도 한 출판사의  광고였을수는 있으나 공인된 언론기관의 보도는 분명히 아니었다. 필자도 처음에 中信社 라고 나오니 중국신화사의 약칭으로 쓴 것인가 하여 과연 김 문학이 유명하구나, 신화사가 다 따라다니는구나 했는데 며칠 후 조글로에서 다시 보니 처음에 中信社라고 나오다가 다시 中信出版社라고 고쳐진 것 같아서 일순 허무맹랭해졌다. 언론사 기사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렇게 떠드는가? 그리고 그 기사내용을 보면 현재 확실한 내용이 별로 없었다. 어떤 시리즈의 책을 어디에서 낼 계획이라든가, 인민대학교에서 특별교수로 모실 의향이 있다든가, 언제 어떤 유명한 사람들과 책이 나올 것이라든가, 대체 이런 내용이 많이 들어있고 김 문학에 대한 칭찬이 많이 소개되었다. 또 어느 조선족으로 보이는 북경대학박사가 별장에서 초대하였다 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데 친구나 고향후배로 보이는 어느 젊은 박사가 북경대학교 어느 연구소차원이 아니고 개인 입장에서 초대한 것으로 밖에 안보인다. 보통 대학교 세계에서는 박사라하면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이나 아직 확실한 교수직을 가지고 못있는 젊은 학자를 부르기 좋게 누구누구 박사라고 불러준다. 이러면 이 기사가 무슨 그렇게 대단한 기사여서 거기에 따라 춤춰야 하는가? 

한국의 李 御寧, 중국의 余 秋雨와도 이제 문명대화집을 낼 것이라 하니 지지자들은 눈이 휘둥그래진것 같다. 그래서 더 김 문학이 하늘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도 김 문학에 관한 이 연재를 하면서 김 문학의 저서를 찾아보니 중국에서 李 御寧의 책을 두권 번역( 번역은 남한테 시키고 본인이 審稿했다) 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李 御寧이 김 문학이 한국에서 낸 책 여러권에 서문을 써주었구나 하고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대단한 유명인들도 알고보면 다같은 인간들이니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余 秋雨와 중국인민대학 교수이고 노신박물관 관장과 김 문학 사이에도 비슷한 주고 받음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김 문학이 한국이나 일본에서 이 사람들의 책을 번역하는데 주선해준다는 등 말이다. 그러면 이 기사내용에 별로 놀랄 것도 없고 이 기사때문에 그것 가지고 김 문학비판자들을 비꼬는 행위가 너무 가벼운  소행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오히려 김 문학이 왜서 출판사를 통하여 조글로에 자기 홍보를 하고, 출판사관계로 귀주일보에 자기 홍보를 하는데 정작 중국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環球時報나 新京報의 인터뷰요청에는 완곡히 거절했다고 나오는지 필자에게도 의문이 남는 점이다. 개인홍보에는 이런 큰 신문들이 전국적인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간단한 예를 들겠다. 어제 올라온 김 문학지지자의 글에서 김 문학이 중국에서 낸 新丑陋的日本人》이 미국의 인류학자 Ruth Benedict국화와 칼(1948)의 일본론 수준을 초과했다고 평가하는 것 같은데 그런 판단은 어떤 근거에서 나오는지? 중국에서 나온 新丑陋的日本人》의 표제에 선전문구로 그런 내용이 나와있기는 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누구의 객관평가가 아니고 출판사나 김 문학 본인이 책이 잘 팔리는 것을 바라서 달아놓은 선전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余 秋雨나 李 御寧이 실명을 밝히면서 이 책이 Ruth Benedict국화와 칼》을  초과했다고 하면 그 것은 객관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화와 칼》이라 하면 중국독자들은 그리 잘 아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본 꽃집의 국화를 베는 식칼얘기인가 하고 믿는 중국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의 판매전략으로서는 일본의 軍刀보다 더 예리하게 일본을 찔렀다고 선전하는 것이  더 잘 됐을 것이다. 이 책의 일본어판 3의 모국 일본국민에게 고한다! 일본에 귀화한 한국계 중국인에 의한 警世的일본론(,2007)의 선전문구에는 아예  Ruth Benedict국화와 칼을 초과했다는 얘기가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니 무지에 의한 맹신이 무섭다고 한다. 옛적에 공자께서 政猛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니라했는데 인터넷이 발달하여 정보발신이 쉬워지고 누구나 손쉽게 마구 자기 의견을 쏟아내는 시대이니 식견과 자기절제능력이 강하지 못하면 무지에 의한 맹신에 의하여 상대공격도 서슴치 않기에 무지한 맹신은 빈라덴보다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201010

                                            

설명: 이 연재는 4회에 마치려 했는데 신중하게 논증을 하려 하고 여러 가지를 비교하여 설명하려 하니 생각외로 글이 길어져 5회까지 연재를 끌게 됐다. 필자로서도 김 문학연재를 한시라도 빨리 마치고 제 할 일을 하고 싶은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많고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기도 어렵다. 아무튼 제5회까지 인내성 있게 기다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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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7 ]

37   작성자 : 최영
날자:2011-02-05 14:30:22
김광림씨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고 하여 댓글의 내용이 모두 김광림씨를 지목하여 남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밝히고싶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은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김문학 죽이기는 이상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나,어느 국가,어느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토론은 가치가 있겠지만 한 개인에 대한 집요한 비판과,한 개인의 사생활까지의 심층분석,토론은 점점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뭐~저와 같은 일개 평범한 인간이 이런 말을 하여 오래동안 끊어지지않는 김문학 비판이 멈추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한해에는 넉넉한 마음으로 김문학 개인,김문학 글들을 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김광림선생님의 조글로에 올린 글들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분이 문인이든, 비교문화 학자든 그분의 성과와 위치는 높게 보고 탄복합니다. 다만 앞으로 어느 한 개인을 위한 글보다 김광림이라는 자체로 이 세계와, 민족,사회를 위한 좋은 글들을 많이 보았으면 더 좋겠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공간을 볼때 김문학 한 사람때문에 너무도 훌륭하고 박식한 사람들이 골이 뜨거워지며 두 쪽으로 갈라져 판가리싸움을 하는 것 같습니다. 동아리 분위기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개인의 객관적이고,랭철하고,공정하고,진지한 판단과 생각,주장이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36   작성자 : 한마디
날자:2011-02-05 12:20:50
최영씨는 김광림씨가 어떤 면에서 김문학씨를 비판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읍니다. 김광림씨의 글들을 잘 읽고나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편이 나을 것같읍니다. 그리고 김광림씨는 문인이 아님니다. 김광림씨는 비교문화학자입니다. 비교문화학으로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일본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는 분입니다. 근래에는 버클리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장장 2년간이나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따라서 김광림씨는 김문학씨의 한중일 비교문화 관련 저작들을 전문가로서 학문적으로 날카롭게 분석해 볼 수있는 훈련된 시각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조선족 사회에 말이 많았던 김문학씨에 대한 김광림씨의 비평은 가장 적절한 비평가로서 사실 늦은 감이 있었읍니다. 김광림씨의 등장은 김문학씨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봄니다. 학자들은 늘 같은 분야에 있는 다른 학자들의 동료 검토 (peer review)가 필요합니다. 그런 검토를 받으면서 자신이 자신을 알게되고 반성할 건 반성하면서 분발하게 되는 것임니다. 이런면에서 김문학씨는 김광림씨에게 감사해야 된다고 봄니다. 그리고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김문학 관련 얘기들이 잠잠해진 것이 김광림씨의 등장 이후임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김광림씨는 한중일 비교문화분야에서 세계적 대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분입니다. 김광림씨를 계속 주목해서 보세요. 기대에 부응할 것입니다.
35   작성자 : 최영
날자:2011-02-05 11:09:24
뭐 김광림씨의 김문학씨에 대한 "조사"에 대한 글에 절대적인 지지나,미사구려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건전한 토론문화,댓글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중상비하는 하지않았다고 봅니다. 적어도 오랜시간동안 김관웅선생을 비롯한 분들이 불로그에서,이 곳에서 또 기타 공간에서 게시물로,코멘트로 끝이없는 중상비하에 비하면 저와 같은 사람은 새발에 피가 아닌가요? 김문학씨에 대한 일련의 비판게시물과 저의 코멘트를 비긴다면 중상비하라는 것은 마치도 집돼지와,메돼지가 지금 한창 미인선발대회에서 누가 더 이쁜가의 겨룸같아 보입니다. 저는 김문학씨의 팬이 아닙니다. 절대 지지자가 아닙니다. 이 분의 문장중에 제가 공감되지않는 것들도 있고,분노를 느끼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김문학선생의 많은 문장중에 사람들한테 경종을 남기고 각성하여할 것들이 존재한다고도 봅니다. 우리가 듣기 싫고 보이기 싫어하는 치부를 샅샅히 들추어냈다하여 그것이 민족반약자,매족,매국은 아니라고 봅니다.우리가 응당 고쳐야 할 것은 필요없는 자존심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드러내고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김문학씨와 가깝게 지내보지 못하여 이 사람의 인간성에 대하여 전 잘 모릅니다. 다만 한 사람의 인간성은 타인한테 피해를 주지않는 한 함부로 평가하고 그 개인을 질타하는 도구로 사용하여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김광림씨의 글도 조글로에서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솔직히 공감되고,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다만 김문학씨에 대하여 그것도 한 개인에 대하여 심층분석하고 사생활까지 공개할 정도로 몇편으로 나누어 이런 사이버공간에 내놓는 것은 아무리 읽어보다도 그 동기가 민족적 의분과 학자로서의 민중 계몽적 동기는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김관웅선생과 같이 욕설이나, 비방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 이제는 한 평범한 문인에 대하여 관심을 끊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것이 김문학 개인에 대한 가장 좋은 반대,비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문인이라면 문학적인 각도로 한 문인과 그 문인의 글을 평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동안의 김문학에대한 투쟁은 되려 연변문학계와 연변조선족의 얼굴에 먹칠한다고 봅니다. 대범하지도 못하고,지어 속되여 보입니다. 진정한 문인이고 학술계에 거장 못지않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이 열심히 하여야 할 것에 정력을 쏟고 심혈을 기울이며 독자들을 위한 좋은 일들을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34   작성자 : 한마디
날자:2011-02-05 05:41:04
최영씨는 건전한 토론 문화, 댓글 문화가 자리 잡혀가는 조글로에서 글쓴이들을 중상비방하는 글들을 삼가해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합니다. 본인의 이름을 내놓고 책임있는 글을 쓰며 김문학씨를 비평한 김광림씨의 글은 비평이지 김문학씨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이 아님니다. 김광림씨의 글 쓴 동기는 민족적 의분과 학자로서의 민중 계몽적 동기가 있읍니다. 김문학씨를 따르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아는대로 진실을 알리면서 알건 제대로 알고 판단하라는 계시와 김문학씨의 책을 읽으며 김광림씨 본인이 느꼈던 의분을 적은 것입니다.
33   작성자 : 최영
날자:2011-02-05 01:23:05
다시말하면 조선족문학계에 김관웅과 김문학 패거리들의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문학계가 이렇게 더럽고 유치한 세상인 줄은 정말로 생각못하였습니다. 소위 문학을 한다는 치들이 이게 뭡니까?
32   작성자 : 최영
날자:2011-02-05 01:20:19
김관웅선생님을 비롯한 김광림선생님 모두 이제는 김문학선생에 대한 관심을 끊고 이런 공간에서 보내면 안될까요? 김관웅선생님이나, 김광림선생님 글 아주 즐겨보는 사람입니다. 또한 김문학선생님의 글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왜서 한 작가가 또 하나의 작가를 이렇게도 오랜세월동안 자신의 의식속에서도 놓지않고 비판 지어 욕설을 오래도록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어느 작품에 대하여 비판하기보다 개인적 감정이 력력히 보입니다. 그렇게 김문학선생이 의식됩니까? 이렇게 김문학선생의 사생활까지 심층분석할 정도까지 김문학선생은 김관웅,김광림선생한테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요? 이제는 김관웅의 김문학에 대한 싸움도전은 신물이 날 정도입니다. 일개 한 대학의 교수로,작가로 보내는 분이 이제는 자신의 품위마저 잃을 정도로 사이버 곳곳에서 김문학에 대한 그것도 천박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듣기거북한 욕설로 인신공격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김관운선생의 프로필을 다시 읽어보고싶은 충동이 생기고 그분의 인격에 질의를 드립니다. 적어도 친일파,매국,매족을 하였다는 김문학은 김관웅에 대하여 대응할 가치를 못 느껴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만하세요. 일생에 왜서 가치가 없는 일에 이다지도 목을 매고있는지요???
31   작성자 : 청노새
날자:2010-10-21 22:22:58
수노는 미국 생활 10년에 영어를 몰라서 코리안타운만 맴돌며 하루 세끼 김치찌개만 먹고 산다면서.ㅉㅉ
30   작성자 : 넉아웃
날자:2010-10-09 11:55:47
넉아웃이란 권투에서 상대방의 턱을 올리쳐놓고 달아나는것을 말한다. 동경대학 박사에게다가 내가 졌다고 손을 들고 투항한다고 해놓고 사라지는 고졸생의 굽신거림. 백분의 백프로 넉아웃이다. 김광림박사의 기분이 아주 더러웠을것이다... 이런것을 이겨도 진것이고 져도 진것이라고 하는것이 아닐가?
29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09 00:30:22
나는 유순호씨에게 아직도 미련을 갖고있다. 항일역사에 대한 강열한 탐구욕.그에 따른 학문적 깊이.인간으로서의 어느정도의 정의감...이런것만으로도 충분히 높게 평가받을만 하다. 그러나 지금 김무학에 대해서 언론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방패로 억지 옹호론을 펼치고 있는다. 나는 지금 이시각에도 유순호씨가 저러는건 아직 김무학에 대해 깊은 요해가 없어서 이러는것일거라고 자아위안을 하고 있는다. 아...그리고 김무학이 몇번인가는 동생과 함께 글을 쓴적이 있는데 근년엔 그 동생이 전혀 소식이 없다.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김문학선생의 일본이름도 공개해봤으람 좋겠는데...ㅎㅎ 이젠 벼라별게 다 궁금해난다.ㅎㅎㅎ
28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09 00: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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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작성자 : 태산
날자:2010-10-08 20:33:06
중국이 반일교육에 대하여 일본극우파들이 이렇쿵 저렇쿵하지만 한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그 당시 중국의 인구가 4억5000만정도였는데 항일전쟁시기 전쟁 때문에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튼 비정상적인 사망인구가 5000만명이라고 한다. 인구뿐만아니라 전쟁때문에 원래 궁핍한 생활이 더더욱 궁핍하게 되였다. 완전 나라가 거덜나기 일보직전이였다. 이렇게 일본이라는 침략국에 의해 거대한 희생을 낸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는가? 중국인들의 눈에서 불이 나지 않게 되였는가를? 만약 미국이 자기 인구의 10분의 1 즉 약 3000만 정도가 외침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죽고 전쟁경비로 나라가 거덜나게 생겼다가 겨우 전승하였다고 한다면 어쨌을까? 과연 오늘과 같은 초강대국의 전승국의 여유로움이 있었을까? 소련도 2차대전시기 인구가 2억정도였는데 전쟁에서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인구가 2000만명, 약 인구의 10분의 1이 전쟁으로 죽었다. 하지만 독일은 반성을 철저히 하고 환골탈태하였다. 그렇지만 소련은 전쟁기념일을 성대히 거행하고 있으며 2차대전에 관한 소설,시,영화 음악 등 차고 넘친다. 학교교육도 마찬가지다. 중국도 전쟁소재의 소설,영화,시,노래 등이 차고 넘치고 항일전쟁승리를 기념한다.또 9.18을 국치일로 정했다. 근데 중국의 반일교육이라는 것을 들여다 보면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저주와 증오를 선동한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국민과 일본군국주의세력을 갈라보는 이분법을 적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대다수 일본국민은 전쟁은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대다수 일본인민은 증오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이 논리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근데 전후 일본은 독일과 같은 철저한 군국주의 청산을 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어떻게 하나 침략을 미화,분식하면서 침략책임에서 요리조리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이러니 5000만의 거대한 희생과 경제적 손실을 본 중국인들이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26   작성자 : 태산
날자:2010-10-08 18:54:54
만주국이 어떤 나라인가? 당시 중국에는 국제상 광범한 승인 받고 있는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중화민국정부가 있었다.그런데 일본은 중화민국땅에 막후 조종하는 수법으로 만주국을 불법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이는 중국을 분열하는 행위로서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지 못햇다. 김문학씨가 일본의 중국침략은 인정하면서 만족국이니 낙토니 하는것은 분명 논리적으로도 자체모순에 빠진다. 침략에 어찌 만족이 있고 낙이 있을수 있을까? 일본이 만주국에다 많은 기간시설건설투자, 공업,농업을 발전, 민생 도모, 교육을 향상 하였다고 만족국이요 낙토요 할수 있을까? 만주국건립은 목적과 동기상으로로 보면 중화민국이라는 대륙정통국가를 위한 투자가 아닌 오히려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기지를 만들기 위함이다. 물론 그 투자로 인해 일자리가 생기고 또 복지가 증대되면서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일정하게 제고된것은 사실이오나 (그당시 만주국인구는 3000만명 정도고 중국전체의 인구는 4억정도였습니다) 소수의 만주국 백성들의 생활향상의 댓가로 4억중국인은 국토를 상실하였고 또 그 국토를 수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군비를 늘여야 하고 또 피를 흘리고 생명을 바치며 거대한 댓가를 지불하여야 했다. 만주국의 자원과 값싼인력으로 전쟁에 필요한 살인무기와 장비들을 생산하고 일본의 노화교육으로 인해 일본화된 3000만 인구가 중화민국에 엄청난 위협으로 된다. 실제 동북(만주국)이라는 든든한 후방(조선반도도 포함)은 일본군의 대규모 관내침략전쟁에 막대한 공헌을 한것이다. 일제가 남긴 동북의 인프라 산업시설이 해방후 중국의 발전에 적지 않은 역활을 한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데까지나 중국( 소련,미국 등 동맹국포함)이 일제와 피어린 싸움을 하여 빼앗은 노획물일뿐이다. 즉 말하자면 피어린 항쟁으로 수많은 생명과 피와 막대한 전쟁경비를 소모하여 바꾸어 온것이다. 일본이 선사한것이 아니다. 그런데 중국이 해방후 동북산업시설의 덕을 봤다고 만족국이라고 할수 있을까? 오히려 당시 상황을 보면 동북에 산업이 발전하였기에 일본은 큰 힘이 생기게 되었고 중국은 더욱더 힘들게 되었기에 차라리 낙후한 동북이 중국항전에는 더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수 있겠다. 근데 일본 극우들은 마치 자기들이 중국에 큰 선사나 한듯이 나불댄다.중국이 전승국이 아니었더면 그 시설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마치 일본이 아무리 발달한들 그것이 중국과는 상관없듯이 ……. (참고로 원래 일본이 동북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전 장작림은 영국,미국 등 나라의 투자를 유치하여 동북의 기간건설을 함으로서 일본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이 눈치를 챈 일본이 장작림을 황고툰에서 폭사시켰다. 그리고 소련이 대일전장 참전댓가로 뜯어갈수 있는 설비는 대부분 뜯어 갔다가 후에 중국원조명의로 다시 돌려받았다고 한다. ) 만주국의 치안이 좋았다고 하는데…. 그 치안이 어떤 치안이었는가? 항일세력은 비적으로 몰아 무차별 잔인하게 진압,학살하는 치안이었다. 또 항일연군과 백성들간의 연계를 차단할 목적으로 집단부락을 만들어 담장을 쌓고 포대를 설치하고 백성들을 감시했다. 동북에는 일본군중에서도 최정예인 관동군이 70만(가장 많을땐 100만)이 상주하고 있으면서 항일연군을 무자비하게 잔혹하게 토벌학살했다. 오직 천황과 만주국 황제에 충성하고 그 앞잡이질 하거나 순종하여야만 안전한 생활을 누릴수 있었다. 교육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그 교육이라는 것이 어떤 교육었는가? 천황에 대한 충성을 세뇌,강요하는 노화교육이다. 창씨개명,민족엄라살 민족정체성말살 등 철저한 일본화교육을 실시했다. 일본화된 인재가 당연히 일본을 위해 봉사할것이며 이는 중화민국에는 도움이 안된다. 전후 일제시절 교육받은 인재들이 전후 복구건설에 일정하게 기여한건 사실이지만 이것을 마치 일본이 중국을 위해 인재를 양성해준것처럼 말하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도 중국이 피어린 투쟁을 하여 승전국이 되었기에 가능했으며 크나큰 댓가를 지불하고 빼앗아 온 “노획물”이다. 만주국 농촌을 보면 만주국성립과 함께 조선반도와 일본에서 엄청난 개척이민들이 밀려들어 왔다. 이들은 중국인들의 농사짓던 땅을 강제적으로 빼앗거나 무력을 동원하여 헐값에 땅을 내놓도록 강요했다. 이리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이 생계를 유지하던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그 자리를 개척민들이 차지했던 것이다. 하여 벼가 보급되고 그 벼가 다시 전쟁마당으로 일본군의 식량으로 공급되었다.(더러는 일본본토로 공급) 당시 일본은 만주국의 민족구성을 바꿀려는 음흉한 속셈으로 일본인 이민사업을 국책사업으로 간주하고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1937년부터 일본은 20년내에 일본이민 500만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는데 실제 20만이민이 들어왓다) 물론 일본이 만주국에 투자한 자본이나 시설에 대해 정확하게 조사하고 통계내어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공개한다고 일본의 중국침략이 미화되는 것이 아니며 그 성격이 개변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만주낙토요 만족국이요 할 중국인은 거이 없을 것이다.
25   작성자 : 여보게
날자:2010-10-08 09:03:37
유순호가 사람이 되였나 아니면 뒤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나? 이 뉴욕의 미꾸라지는 잘못건드렸다가는 큰 코 친다. 어지간한 사람은 안중에 넣지도 않는다. 모두들 주의하게나. 모두 불시로 존경어를 쓰면서 그러는가? ㅎㅎㅎ
24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08 08:43:33
유순호씨. 팔로군이 일본군과 한번 합작했다고 떠들어대는데 내보기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게 있습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동북 항일역사에서 항일연군이 괴뢰군과 내통한 사실은 부지기수이기때문입니다. 이는 유순호작가가 나보다.아니 여기 그 어느 회원들보다도 더 잘 알것입니다>??? 적어도 김일성의 회억록에는 괴뢰군(물론 양심적인 만주군 장령들)들과 쟈잘리(결의형제)를 맺고 어쩌구 저쩌구 했다는 얘기가 푸술하게 나옵니다. 그런 특정된 역사적인 환경에서 왜 적과 전술적인 내통을 하면 안됩니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것입니다.
23   작성자 : 서울 對 뉴욕
날자:2010-10-08 07:44:11
미국의 대도시인 엘에이, 뉴욕 등의 대도시에 사는 한국인들을 만나보면 그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 속에 살며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 온 이래 그 한 곳을 기반으로 평생를 살게 된다. 그래 영어를 잘해 미국 미디어를 통해 미국이 돌아가고 세상이 발전해 나가는 것을 쫓아가질 못할 경우에는 정보통신의 세계 최선진국이고 현 세계 기술혁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의식,사고, 유행, 테크날리지에 대한 이해가 뒤쳐져 미국 촌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지금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전반적으론 한국에 한인들보다 의식수준과 유행을 쫓는 데에 뒤쳐져 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의 서울처럼 정치,경제,문화,교육,문화,미디아,대기업의 본부,부자,인재들이 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뉴욕 : 미디아, 금융, 문화의 중심 엘에이 : 연예 산업, 방위 산업의 중심,이민자 문화의 중심, 대아시아 경제교류의 중심 시카고 : 중부 지방의 중심, 뉴욕에 주식시장이 있다면 시카고에는 선물시장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 진보문화의 중심, 주변에 스탠포드, 버클리. 첨단산업이 몰린 실리콘밸리가 있다. 시애틀 : 북서부의 중심, 마이크로 소프트, 보잉, 아마존, 스타벅스, 코스트코 본사가 있다. 보스톤 : 하버드와 MIT가 위치한 최고의 교육 도시 마이애미 : 미국의 중남미 문화인 라틴컬쳐의 중심 휴스턴 : 석유 산업, 우주항공 산업의 중심 애틀란타 : 동남부의 중심, CNN 본사가 위치 네쉬빌 : 컨트리 뮤직의 본고장 뉴올린즈 : 재즈 뮤직의 본 고장 미국에서 성인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 ; 1.시애틀 2.샌프란시스코 3.보스톤 서울처럼 모든 것이 집중되어 갖게되는 시너지를 미국의 어느 대도시도 갖고 있지 않다. 지금 서울은 세계적으로 놓고봐도 부자들도 대단히 많은 도시다. 부자들이 많으니 문화가 피어나게 되있다. 집 값이 거의 다 100만불 이상이어서 부유층으로 봐야 될 서울 강남만 놓고봐도 인구가 150만이니 뉴욕 맨하탄 인구(160만)와 거의 같다.
22   작성자 : 유 순호
날자:2010-10-08 05:23:52
김광림박사, 당신과 직접 대화할수 있어서 기쁩니다. 당신이 직접 장문의 답플로 대답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본문을 쓰고 있으니까, 그런데 먼저 한마디 하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는것은, 당신의 표현속에 ‘도랑물같은 조글로’에서라는 말은 불쾌하게 들립니다. 도랑물이던 시냇물이던 동경대 박사출신인 당신도 활약하고 있는 마당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당신이 주신 답플은 정말 가관입니다. 당신의 표현대로 이 ‘도랑물같은 조글로’에서 나는 당신의 패자입니다. 제가 투항을 선포합니다. 그러니 우리 이 일로 더는 부딪치지 맙시다. 같은 미국에 있는 ‘김광림박사’와 ‘유순호작가’가 서로 반목하고 대칭점에서 논쟁을 불길을 올린다는 것은, 남보기에도 좀 이상하고 얼마나 많은 심술이 비뚤어진 사람들이 잘코니를 부르면서 깨고소해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나의 잘못이 더 큽니다. 내가 사과합니다. 미국의 어느 구석에서 운영되고 있는 니카 (이것은 당신의 표현입니다) 의 대표이면서도, 조글로의 독자이기도 한 나는 처음 당신을 발견하는 순간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우리 미국에도 이처럼 멋진 조선족학자가 교환교수로 나타났구나, 빨리 연락하고 니카에 모셔와야지, 하고 생각하고 여러모로 연락하는 방법을 강구했으나 잘 안되였습니다, 후에 조글로와 친한 박문희선생께 연락해서 좀 연락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던적도 있습니다. 나는 조글로에서 당신을 알기 이전에 허동식이라는 분과, 김정룡선생, 이 두분의 글을 좋아합니다. 결국 두분과 다 연락이 통했는데 허동식선생은 니카에 글을 싣지 못하겠다고 거절받았고, 김정룡선생께서는 허락받았습니다, 후에 박문희선생께서 배우고 조글로 필진들의 프로필을 열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프로필에는 이메일들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의 프로필에는 이메일이 없더군요, 당신의 이메일을 발견하고 곧바로 연락하려다가 한창 ‘도랑물같은 조글로’에서 당신의 ‘김문학 옷 벗기기’ (벌거숭이 김문학)가 시작된 것을 보고, 잠깐 지켜보기로 한다는 것이 그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어쨌던 이번 답플을 통하여 당신도 매일같이 니카에 들어와보고 있으며, 당신의 글을 니카에서 발표하였으면 하는 의중을 내비치셨습니다, 니카에 회원가입을 신청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회원가입을 신청하면 자동으로 레벨이 주어지면서 바로 글과 리플을 작성하실수 있습니다, 때문에 니카가 폐쇄된 공간이라는 것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니카는 백프로의 다양한 이견의 글을 발표할수 있지만 당신의 표헌대로 ‘도랑물같은 조글로’에서는 발표하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나같은 異見분자는 조글로에 미니홈피도 갖고 있지못할뿐더러, 몇 번 순수 문학성이 짙은 글을 탈고해보았지만 실어주지 않습니다. 조글로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조선족 싸이트 ‘모이자’라는 싸이트에서도 운영자가 직접 나한테 당신의 폐이지는 만들어들이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당신은 니카를 비웃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당신의 어린 동생이 되는 수많은 젊은 대학생들, 유학생들이 활약하고 있는 니카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도리에 맞습니다. 니카의 회원들이 유치하고 문제가 많다면 당신같은 사람이 와서 더욱 가르쳐주고 인도해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요? 그러리라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음 김문학선생의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솔직히 당신도 이런 일로 소모전을 펼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만은 아니리라고 믿습니다, 나도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그러나 나는 딱 하나의 주견이 서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미국 뉴욕에서 1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하나의 신념처럼 받아들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반일도 좋지만, 친일도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은, 지금 내가 아무리 많은 이론을 가지고 설명해도 조선족의 다수 독자들은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어느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자기의 최대의 적인 공산주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바로 일본이라는 나라 안에서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사무실을 내오고 공개활동을 할수 있듯이 말입니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렇게까지 주장합니다. 우리가 천안문광장 한복판에 모택동기념당을 만들어놓고, 모택동의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놓고, 두고두고 추앙하듯이, 일본이 자기 나라 땅안에 야스구니긴쟈를 만들어놓고, 자기들의 애국자를 참배하는 것도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나면 모든 것이 다 풀리게 됩니다, 어느땐가 김광림박사가 뉴욕에 오신다면 한번 만납시다. 그리고 뉴욕에서 한동안 살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적어도 뉴욕에서 한 1년쯤 살아보고나서 나랑 김문학선생의 문제를 가지고 다시 대화해봅시다. 그때는 우리 사이에 개념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많이 줄어들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하버드에서 많은 중국과 한국에서 온 작가들과 만나 세미나도 하고 만남도 가져서 뉴욕에서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수 있다고 자랑도 하시던데, 그러면 그 중국에서 온 작가들속에 여추우나 의중천, 류재복 같은 사람들이 들어있던가요? 아니면 한국에서 온 작가들속에 이어령같은 사람도 들어있던가요? 만약 당신의 그런 논리가 성립된다면, 김문학선생이야 말로 여추우나 이어령같은 사람들과도 항시 만나서 대화할수 있는 친숙한 사이이니 이아니 대단합니까, 내가 왜서 당신이 꼭 뉴욕에서 한 몇해쯤 살아본 뒤에 나와 김문학선생의 문제를 가지고 대화하자고 요청하겠습니까, 이 뉴욕바닥에는 버클리뿐만 아니라 하버드를 나오고도 실업을 당하고 직업을 구하지 못하여 여기저기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쌔고버렸습니다, 단 메사추세츠 이공대학만은 예외입니다. 이 대학을 나오면 실업자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학자들인 리택후나 류재복이나 뉴욕에는 자주 온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하버드에 가서 뭐를 한다는 소리는 아직까지 한번도 못 들었습니다. 이 유명인들은 뉴욕에 오면 서점 윗층 같은 복도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맘대로 서서 구경할수 있게끔 만들고 세미나를 하고 기자초대회도 하군 합니다, 초대장도 필요없고 입장료도 다 필요없습니다, 림표 강청 반혁명집단의 유가족들이 가끔씩 뉴욕에 와서 기자초대회를 하는 것도 구경하고 되고 조자양의 손녀와 며느리도 얼마전에 뉴욕의 중국 동네에 왔다갔던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산보를 하는데 한무리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데, 가서 구경하니 대만총통 마영구가 아침 달리기를 하고 있더군요, 오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손을 저어보이고 말도 건네고 합디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이런 일들도 뉴욕타임스 기사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뉴욕의 신문들은 정치인들과 학자들의 기사를 제1면에 잘 내주지 않습니다, 물론 절대적은 아니지만 대부분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기괴한 사고 사건들이 제1면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뉴욕의 상층과 중층 하층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뉴욕의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부룩클린 다리를 건너가다가 마주오는 자전거와 부딪쳤는데, 그쪽에서 먼저 사과하고는 길을 내드리더라고 합니다. 아주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자세하게 보니 뉴욕시장이더라는 것입니다, 뉴욕에서 교통공사가 데모를 일으키고 지하철과 버스가 모두 멎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장이 텔레비에 나와 자기는 낼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닐것이니까, 겁 먹지말라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 진짜로 뉴욕시장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개인 자산이 몇백억달러가 되는 세계 몇 번째 되는 부자 시장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보면 아직도 김문학선생의 책을 놓고 친일이니, 반화, 반공이니, 매국, 배족이니 하고 웨치는 학자들이 아주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꾸 학자들을 비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여기서 딱 한번만 더 말하지요. 실제로 정말 김문학선생의 표현대로 ‘정신에 이상이 온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상이 좀 경직되였을 뿐, 친일파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틀리지 않지 않는가고 억울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하게 말하건데, 그런 식으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을 틀리는 것입니다, 왜 틀리냐? 이것도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설명하다보면 끝없는 소모전이 이어질 것이고, 김광림박사와도 영영 평행선을 달리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에 계시니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두고 봅시다, 어떻겠습니까? ‘도랑물 조글로’에서의 이번 논쟁은 제가 졌습니다. 두손 들고 투항하겠습니다, 이건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아니고 진심입니다…
21   작성자 : 관리자
날자:2010-10-07 23:09:35
* 이 댓글은 유순호씨가 본문 제5번째 리플로 2010-10-7 15:25:53에 올린것이지만, 내용상 한 단락이 현재 중국실정으로 보아, 외국에 관한 부적절한 표현이 들어있기에 그 부분만 삭제하여 다시 붙여올림을 양지하기 바란다.-관리자 NAME : 유순호 | 2010-10-07 전문적으로 글 한편을 써서 김광림박사를 반박하려다가 하지않기로 마음 정했습니다. 그냥 여기서 좀 긴 댓글을 한편 달아올리겠습니다. 김광림박사는 김문학선생의 적지않은 저서들에 연구를 진행한것 같지만, 지금 보면 근본적으로 내가 진행한 연구와는 방법도 다르고 나아가 서로 인식하고 있는 개념자체도 다릅니다. ‘검은 석탕덩어리와 흰 눈덩이’처럼 서로가 다릅니다. 또 김광림박사는 동경대 박사이고 자신도 고백하다싶이, 우리 조선족학자들속에 그렇게 많지 않은 비교문화학자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대학은 커녕 전문학원이나, 중등전문학교 문전에도 못 가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김광림박사를 질투하거나 시샘한다고 덮어씌우는 것은 억지입니다. 학벌도 좀 비슷하고 근사하게 쫓아가야 시샘이나 질투같은 것이 생길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닙니다. 내가 고졸생인 것은 조선족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나는 나의 모든 책들에 최후학력을 고절로 밝히고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정년 김광림박사를 부러워할 지언정 시기하거나 시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러하던 마음이 거의 깡끄리 사라져가고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내가 어느 시골에서 자그마한 대학정도나 나오고, 또 어디서 석사, 박사정도 흉내라도 내다가 미끌어진 사람이라면, 혹시나 누구를 시샘하고 질투할지 모르지만, 학위나 학벌같은 것으로 논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처럼 너무 거리가 아득하게 멀기 때문에 종래로 학벌을 가지고 누구와 걸고들지 않습니다. 푼수도 모르고 걸고 들어봐야 면상과 뒤통수가 모조리 풍비박산이 날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연구는 꼭 박사나, 교수, 학자만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나도 김문학선생의 저서들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가면서 많은 연구를 진행하여 왔습니다. 김문학선생의 문제가 되는 저서들을 나에게 제일 먼저 전해주었던 사람이, 바로 김관웅교수입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2001년에 김교수의 댁에 놀러갔다가 문제가 되는 그 책들 여러권을 빌려다보고는 돌려주지 않고, 내가 이미 돌려주지 않았더냐고 오리발을 내밀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이 글을 읽으면 김관웅교수는 대뜸,망할자식이, 그때 확실히 네놈이 가져가고 돌려주지 않았던 것이 맞구나! 이렇게 무렆을 때릴지도 모릅니다. 후에 한국에 가거나 할 때면, 꼭 교보문고에 들려 김문학선생의 이름을 검색해서 최신 책들을 사오군 했고, 2007년 여름에도 또 일본에 갈 기회가 있어, 도꾜에서도 여러 책을 구입해다가 읽었고, 나름대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김정룡선생의 말처럼 연변의 학자들이 많은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사실과 맞지 않을수 있습니다. 나는 과거에 김관웅교수를 친형처럼 좋아하였고, 댁에도 자주 놀러다니군 했는데, 그의 집에는 그때까지만 했어도 나는 평소에 구경도 못했던 책들이 산더미를 이루고있었습니다. 김관웅교수의 독서량은 장난이 아닙니다. 적어도 연변대의 학자들속에서는 아마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김관웅교수와 앙숙간이 최삼룡선생도 고개를 끄떡이며 승인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도 그때 김관웅교수의 댁에서 얻어다가 읽었고, ‘국화와 칼’도 역시 그의 댁에서 빌려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분명히 돌려드렸는데, 끝까지 내가 돌려주지 않았다고 고집해서 나도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이야기고- 김광림박사는 이번 글에서 공개적으로 실명을 내놓고 김문학선생을 지지하는 나와 김정룡선생에 대해서도 한참 거론하였던데, 특히 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비아냥대고 조소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늬앙스를 뿜기는 말씀을 꽤 많이 하였습니다. 아마 저번 몇편 글에서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나는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묻고싶은 것과 몇마디 하고 싶은 것은, 김광림선생은 미국 생활 1년 남짓하지요? 그리고 세계 정치, 문화, 교육의 제1번지로 불리는 뉴욕에서는 며칠이나 살아보셨는지 묻고자 합니다. 반면에 나는 미국에 온지 10년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줄곧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김광림박사가 더도 말고 뉴욕에 와서 1년만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지 않고 대학에 가서 학문을 연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뉴욕의 거리에서 1년만 활보하고 다니면서 그냥 여기저기 구경만 하고 다녀도 됩니다. 그런 뒤에 나는 김광림박사와 김문학선생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저작들의 언론들에 대하여 시비를 하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은 내가 위에서 잠간 언급한바 있는 ‘검은 석탄덩어리와 흰 눈덩이’ 사이의 개념문제입니다. 이런 개념문제들은 김광림박사가 뉴욕에서 한 1년쯤만 살아봐도 긴 변론이 없이 스스로 사라지게 될 것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나와는 ‘검은 석탄덩어리와 흰 눈덩이’처럼 차이가 많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지지와 맹신’에 대하여 논하시면서 황우석을 가져다 붙이고 하던데, 개념이 십만팔천리로 틀려버린 마당에 황우석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을 가져다 붙이고 뉴톤을 가져다붙인들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 환기시켜드리고 싶은 것은, 김문학선생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저작들은 대부분 역사에 관한 것들이고, 역사에 관한 것을 풀자면, 먼저 역사부터 배우고 역사부터 연구하여야지, 역사는 하나도 모르고, ‘나는 동경대에서 박사까지 딴 비교문화학자인데’하고 나서면, 세상을 웃기는 것은 물론하고, 나아가 나같은 고졸생도 웃기게 됩니다. 바로 지금의 김관웅교수처럼 망신만 당하고 결국 가서는 자기 자신의 처지만 더 곤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김광림박사는 역사지식에는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비교문화이론만 가지고 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지 지금까지의 글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모두 요란한 修辭만 펼쳐놓았을 뿐 근본 문제에 들어가서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하고 있지 않고 무엇입니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근본 문제’란 바로, 김문학의 친일 언론들 A,B,C를, 과거 우리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기간을 거쳐오면서 왜곡될대로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통하여 입에 신물이 나도록 배워왔던 엉터리 역사지식을 김관웅교수처럼 그대로 쭉 잡화가게 벌려놓듯이 벌려놓지만 말고, 적어도 해외에서 10년은 학문을 탐구해온 김광림박사 자신의 역사지식 DEFG를 가지고 멋들어지게 반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오늘 1-4편에 이르도록 펼쳐놓은 김광림박사나름대로의 비교문화이론에 따르면 ‘김문학의 친일언론이라는 것은 결국, 일본의 우익세력의 언론과 같기 때문이고, 그래서 욕얼 얻어먹어야 하고, 비판받아야 한다는 주장’ 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어느 한편에서도 ‘김문학은 만주국을 만족국이라고 했는데…’ 김문학의 이 주장과 근거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에 의하면 ‘만족국이 아니다’는 근거를 내놓고 독자들을 설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김관웅교수처럼, ‘만주국은 중국인민의 치욕이니. 수치니, 일제침략의 산증거니…’ 등 별의별 증거들, 즉 중국의 왜곡된 역사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지식들을 그대로 쭉 펼쳐놓고 ‘그래서 김문학은 죽일 놈이고, 때려죽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 이것은 나나 김정룡선생이 주장하는대로, 아닌게 아니라 이미 학자이기를 포기한 사람이여야 합니다. 김문학선생의 표현대로라면 말그대로 ‘조폭의 방망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됩니다. 적어도 김광림박사는 김관웅교수처럼 그렇게 막대먹게 나오지 않고 학문적으로 김문학의 주장들에 대하여 참으로 설복력있게 반박하실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니였습니다. 긴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널어놓았지만, ‘맹신이니, 지지니, 반대니’하는 지엽적인 이야기들에만 집착하고, 여전히 김관웅교수 못지않게 김문학선생의 많은 저작들의 목록들이나 연길 서시장에 난전을 벌이듯이 나렬하는데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구경? 어째서? 김문학선생의 친일논조들이 틀렸으며, 옳지 않으며, 그래서 비판받아야 한다는 이유와 근거는 김광림박사 역시 ‘침략을 미화하는 일본내 우익세력들의 주의주장과 닮았거나, 또는 상당하게 같기 때문’이라는 그 선상에서 멎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도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일본내 우익세력들의 주의주장은 또 어떻게 틀렸다’는데 대하여서도 김광림박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지식에 근거하여 論證해주어야 합니다. 어디메 논증해준 것이 있습니까? 온통 황우석이야기, 황우석을 맹신하는 지지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김문학선생과 김문학선생을 지지하는 김정룡선생과 나의 이야기로 혼란만 조성할 뿐 가장 근본적인 論據와 論證은 모조리 피해버렸습니다. 동경대 박사는 비교문화연구를 이렇게 하십니까? 그리고 이것이 어디 비교문화를 가지고 논해야 할 문제인가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김문학선생의 다수의 친일언론들이란, 거의 대부분 역사와 관련한 것이고, 이 방면의 역사지식이라고는 주로 왜곡된 중국의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들이 거의 전부라고 말할수 있는 김관웅교수나 김광림박사가 기껏 論據를 들고나와봐야, 더 이상 무엇을 들고나올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들고나올 論據가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論證을 진행한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김관웅교수나 김광림박사는 論證을 아주 잘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김관웅교수처럼 중국 관방에서 공개되더 있는 공식자료들을 모조리 베껴다가 한바탕 펼쳐놓고는 이것들이 바로 論據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면에서는 새삼스럽게도 시골 연변대나 세계 명문대의 하나의 동경대학의 수준도 별로 차이가 알라지 않습니다. (삭제-관리자) 내가 이렇게 힘들여 설명하는 까닭은, 김관웅교수나 김광림박사는 장황스럽게 비교문화이론을 펼치지 말고 확실한 論據들을 가지고 조목조목 論證을 진행하라는 것입니다. 말끝마다 ‘김문학의 친일언론, 친일언론’하는데, 어느 언론이 어째서 틀렸다는, 주제를 규정하고, 그것을 반론하는 論據들을 제출하고, 다음 비교의 방법으로 論證을 진행하면, 그와 같은 사실 앞에서는 천하의 김정룡이래도 좋고, 유순호래도 좋고, 또 다른 어떤 맹신자들도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말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김광림박사는 아직까지 그렇게 해낸 것이 하나도 없지않고 무엇입니까. 오히려 시선을 소란시키고, 자칫하다가는 문제의 본질을 회피해가게 만드는 所期의 목적에 도달하기가 딱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조글로’ 독자들의 수준을 믿습니다. 때문에 김광림박사가 말끝마다 ‘미국의 모 사이트 운영자는 어쩌고 있다’면서, 아주 불만스러워하는 어투에 대해서도 일일이 반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김광림박사는 세계명문대인 동경대의 박사이고 교수인 반면에, 나는 고졸생에 불과하기 때문이어서 서로의 수준상 비교문화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 처럼, 마찬가지로 김광림박사는 미국에서 1년밖에 살아보지 못하였지만, 나는 10년 가까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김광림 박사가 이 1년마저도 뉴욕에서 살면서, 뉴욕의 거리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다녔다면, 형편은 또 달라집니다. 뉴욕은 세계정치의 제1번지이고, 이 지구상에 所謂 억울하다고 떠드는 사람들의 怨聲이 모조리 몰려들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유엔이 뉴욕에 있고, 세계 각 나라의 유엔대표부들이 모두 뉴욕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의 모든 정치가 뉴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계를 알려면 뉴욕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서의 제일은 미국에서의 제일이고, 미국에서의 제일은 바로 세계에서의 제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인종들이 몰려와서 살고있는 도시가 바로 뉴욕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문제가 큰 문제이지만, 뉴욕에만 오면, 이것보다 더 큰 문제들이 쌔고버렸고, 그처럼 더 큰 문제들을 둘러싸고, 찬, 반 양론의 반대편에 있는 뉴욕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눈을 부릅뜨고 반목하고 대립하면서도, 또 얼마나 친절하게 서로 인사를 건네고 같이 커피도 마시고 빵도 나눠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냥 구경만 다녀도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김광림박사가 미국에 온지 1년쯤 되었고, 서부에서 살다가 얼마전에는 동부 보스톤쪽으로 기차여행했다는 글도 읽었습니다. 기차 창문으로 미국 구경을 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자랑은 하지 마십시오. 뉴욕에 와서 다문 며칠이라도 밥 해먹고 살면서,이 세계의 인종들이 어떤 모양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구경하지 못하였으면, 이제 그만 입을 다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버클리고 하버드고 다 소용없습니다. 탁상공론밖에 뭐가 더 되겠습니까…
20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07 21:27:15
7.이렇게 간단히 위안부 급여에 관해서만도 그 날조.궤변이 금방 탄로납니다. 그런데 이러루한 일본우익세력의 침략전쟁.식민지지배에 관한 날조.궤변들은 이루다 말할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가양각색입니다. 그런걸 우리 조선족사회가 불시로 하나하나 조사하고 연구한다는건 사실상 거의 무리에 가깝습니다. 주정부에서 혹은 동북공정에서?ㅎㅎ 연구자금을 대주고 프로젝트를 뭇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ㅎㅎ 그럴 가능성도 없을거고 더욱이 필요성도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냥 일본애들끼리 그러다 말라고 하죠. 걔들이 그냥 이렇게 해서 이득이 될게 하나도 없습니다.저런 날조.궤변들을 아무리 곱게 포장해서 내놓는다고 해서 한국사회나 중국사회의 반일감정만 더해가면 갔지 아.일본애들 그때 잘한거구나..라고 동감을 표할 한국인.중국인은 거의 없을겁니다. 개가 짖겠음 짓고 기차는 그냥 갑니다.
19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07 21:09:26
6.일본우익들의 주장에 교묘한 거짓말들이 많습니다. 예로 [위안부들의 월급이 당년의 일본군 고급장교들보다 더 높았다] 라는 주장. 이는 단순히 개별적인 사례.그리고 위안부들이 잇었던 최전선의 인플레가 상당했다는 점등을 전혀 무시한.주장입니다. 아래 링크를 보고 무학씨나 광림씨도 참고로 하시길... http://oshiete.goo.ne.jp/qa/3045617.html 제가 80년대에 한번 연변일보에서든가 이런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혹시 다른분들도 기억이 있을지...) 일본에서 몇몇 사람들이 훈춘?에 어떤 할머니한테 와서 위안부는 거짓이였다는걸 증명녹음하려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라는 기사를 말입니다. 만약 그때 그 할머니가 증언을 햇더라면 이게 또한 일본우익들이 대대적으로 이용해먹을번한 사례였을겁니다. 난 그후로부터는 우익애들의 소위 증명자료같은건 의심하는 상황입니다. 일본 우익들의 날조와 궤변은 사실 우리가 하지않아도 일본국내의 양심적인 학자. 양심적인 많은 분들이 이미 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것만 찾아와도 하나하나 반박해낼수 잇습니다. 유순호씨 일본어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보기엔 그정도의 열독력은 갖추고 있을것이라고 보니 님도 찾아 읽어보십시오.
18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07 20:52:49
4.일본은 독일에비해 전후처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습니다.천황을 살아있게 놔두고 갑급전범 몇몇만을 처리하고는 몇천명의 핵심정치세력은 그냥 그대로 놔두었을뿐만아니라 그중의 일부는 그채로 이용했습니다. 그외 학술계.문화계.교육계...군국주의 세력은 큰 타격을 받지않고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하여 히틀러에 대해 철저하게 부정하는 독일에 비해 일본에서는 독일과 상반되는 상황이 출연됩니다.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각종 연구들이 여러가지 단체들에 의해 착착 진행되여 왔고 통계.자료수집...방대한 양입니다. 이런걸 반세기동안이나 진행해왔습니다.그들에게는 사활적인 문제이니 집요하게 철저하게 진행해왔죠, 그동안 우리 중국이나 한반도에서는 몇몇 대학교 역사학 교수들이 대수간 연구하고 결론을 내린채로 더 발전은 가져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아니 중국의 경우엔 그 보다 더해서 연구다운 연구도 없이 그냥 혁명적인 결론으로 역사교과서를 기술햇었습니다. 이러니 김무학이가 처음 일본에 갔을때 이런것들을 보니 두눈이 환장할 지경인것입니다. 그러다 이런 내용들을 한국이나 중국에서 책으로 내면 대박 낼것같다는 예감이 들었던것입니다. 5.김광림선생더러 하나하나 역사자료들을 조사연구해서 발표하라고 하는데... 참 솔직히 말해 이런건 우리 사학계에서 응당 해야할 일인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광림선생이 그런걸 하나하나 해야할 하등의 의무는 없습니다.그리고 의미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우선 먼저 김무학이 먼저 우리 조선족사회에 구체적인 논거들을 내놓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껏 김무학은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지 않습니까? 말로는 수준이 달라서 그런다고 하지만.ㅎㅎㅎ 옆에서 자꾸만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이 볼은 먼저 김무학씨에게 쥐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내보기엔 김무학씨는 일본우익들의 역사자료의 신빙성에 별로 신심이 없다고 봅니다. 무학씨는 그저 겉보기ㅤㅎㅓㄾ기만 했지 그런 자료들에대해서 깊이있는 연구를 한건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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