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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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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초인 부대-로버트 하인라인 지음-박홍근 옮김
2021년 09월 20일 14시 04분  조회:504  추천:0  작성자: 강려
 초인 부대-로버트 하인라인 지음-박홍근 옮김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원수 / 박홍근
문학박사 최인학
이학박사 김희규
공학박사 양옥룡
 
 
책머리에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정말 놀랄 만한 숫자입니다. 백색, 황색, 흑색, 머리 좋은 사람, 머리 나쁜 사람, 상냥한 사람, 무서운 사람, 그러나 모두 같은 인간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당신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어쩌면 괴물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슈퍼맨(초인)일지도 모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미래인 일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은 그와 같은 슈퍼맨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인간이 있을 수 있느냐구요? 인간은 이 몇백 년 사이에 크게 변했습니다.
이제부터 미래에 걸쳐서도 달라집니다. 벌써 달라진 사람들이 조금씩 태어나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글쎄요, 이렇게 책을 좋아하니까 말이에요.
 
 
<차 례>
 
수상한 사나이·················· 4
연락할 수가 없다················ 16
트럼프로 말하자················· 24
억만장자 캐슬리 부인·············· 35
헬리콥터로 탈출················· 46
이상한 목장··················· 57
노버 효과의 비밀················ 67
용기 있는 사람들················ 74
드디어 출동··················· 84
캐슬리 저택으로················· 98
드디어 평화가················· 112
 
작품 해설··················· 120
 
수상한 사나이
 
달세계의 로켓이 지구에 도착했다.
“나의 이름은 애브너. 무역상입니다.”
라고 말하고 세관을 통과한 남자는 바로 지하철 전차에 올랐다.
남자는 곧장 세면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전기 면도기를 꺼내서 수염을 밀고, 턱수염도 떼어버렸다. 눈썹도 짧게 하고, 머리에 바른 기름도 씻어낸 다음, 달세계의 옷을 벗고 보통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로써 나는 길리아드 대위이다……. 아주 분주하구나.>
하며 남자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길리아드 대위도 애브너도 이 남자의 진짜 이름은 아니다.
남자는 달세계의 옷을 갈가리 찢어서 변기에 흘려보내고, 애브너의 이름으로 된 신분 증명서도 찢어버렸다. 그리고 가방의 덮개도 벗겨버렸는데, 가방은 이때까지는 갈색이었으나 이번에는 거슬거슬한 은색이 되었다.
지하철 전차가 멈추었을 때,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가방 속의 마이크로필름 2다스뿐이었다. 이 남자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필름이다.
타고 있던 손님들이 모두 내린 다음, 그는 옆에 있는 차로 옮겨 타더니 곧 나와서 플랫폼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선생님, 신세계 호텔입니까요…….”
하며 키가 조그만 남자가 그의 가방을 받아들려고 했다. 호텔의 손님을 끄는 인객꾼이었다.
“훌륭한 호텔입죠. 이 근처에서 가장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죠. 달세계에서 고생하셨다면, 좀 싸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요.”
길리아드 대위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에는 언제나 사보이 호텔에 투숙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호텔에 투숙하는 편이 보다 남의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방을 놓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했으나, 인객꾼에게 맡기지 않으면 아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리라.
귀중한 가방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면 더욱 좋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인객꾼이 가방을 가지고 도망치게 할 어리석은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가방을 인객꾼에게 넘겨주며 유쾌하게 말했다.
“그럼, 가기로 할까.”
“감사합니다요, 선생님.”
하고 인객꾼은 가방을 받아들고, 길리아드 대위에 앞서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인객꾼은 구석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길리아드 대위는 한쪽 발을 가방에 바싹 붙였다.
엘리베이터는 곧 만원이 되고, 그는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밀렸다. 그런데 뒤에서 유난히 이상하게 미는 사람이 있다.
그는 주머니에 닿은 손을 얼른 붙잡았다. 그놈은 손을 빼려고도, 또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길리아드 대위는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왼손으로 가방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놈의 손을 잡고 있다가 밖으로 끌어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놈은 바로 그 인객꾼이었으며, 남자의 지갑을 쥐고 있었다.
“선생님, 자칫하면 이 지갑을 잃을 뻔했습니다요. 주머니에서 빠지려고 했거든요.”
놈은 참 심장도 강하다. 부끄러워하거나 비는 것은 고사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길리아드 대위는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고,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지퍼가 열려 있지도 않았는데 지갑이 빠지려고 했을까……? 이봐, 경찰관은 어디 있지?”
인객꾼은 멈칫하는 듯했으나,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래봤자 별 수 없을걸요.”
남자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본 사람은 자기밖에 없으며, 놈의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는 경찰관도 곤란하리라. 더욱이 자기의 신분도 알려지고 싶지 않다.
그는 놈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럼 가봐. 특별히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이 뻔뻔한 인객꾼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팁을 줄 수 없을까요?”
길리아드 대위는 주머니에서 10센트를 꺼내서는 휙 던졌다.
“썩 꺼져버렷! 그 손목이 부러지기 전에 말야.”
하고 길리아드 대위는 역전 광장에서 신세계 호텔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 인객꾼이 아무래도 수상한 자라는 것을……. 사람들 틈에 끼여서 뒤쫓아 올 것이 분명하다. 놈은 소매치기일까, 아니면?
그는 길가에 있는 가게로 들어가 문 옆에서 신문을 사려고 멈추었다. 5센트를 넣으면 최신판의 신문이 자동적으로 인쇄되어 나오는 것이다.
신문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그는 옆에 있는 우편용 튜브를 세 개 집어들고 돈을 지불했다. 편지나 작은 물건은 우편 튜브에 넣어 우체국의 우체통에 집어넣으면 압축 공기의 힘으로 보내질 주소로 핑 날아가는 것이다.
벽의 거울을 슬쩍 보았더니, 그 인객꾼은 역시 미행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가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리아드 대위는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맥주를 주문하고,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으며 커튼을 내렸다. 그러곤 재빨리 가방을 열고, 조그마한 마이크로필름 아홉 개를 끄집어내어 한 개의 우편 튜브에 넣었다. 그리고 보낼 주소를 쓰는 곳에 ‘시카고 사서함 1060, 레이먼드 칼라한’이라고 썼다.
또 전자 기호도 썼다. 튜브는 전자 장치에 의해 보낼 곳에 따라 나누어진다. 그 장치가 행선지를 정하는 데 필요한 기호도 썼다. 이로써 틀림없이 칼라한에 닿게 되는 것이다.
서둘러서 행선지를 쓰고, 튜브를 치우기 전에 여 종업원이 들어왔다. 여자는 맥주를 놓으면서 힐끗 튜브를 보았다.
“그걸 부쳐드릴까요?”
길리아드 대위는 얼른 생각했다. 어딘지 가볍게 보이는 여자지만, 그 인객꾼의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가게에 들어올 줄 미리 알고 있었을 리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튜브를 부치고 오겠다는 것은 단지 팁을 받기 위해서리라. 이 여자에게 부탁하면 거리로 나가자마자 부쳐줄지도 모른다.
“고마워요. 그러나 우체국 앞을 지날 거니까……. 자, 맥주 값 받아요.”
라고 말하며, 그는 지갑에서 1달러 짜리를 꺼냈다.
“거스름돈은 가져도 좋아요.”
“어머, 감사합니다.”
하고 여자는 기쁜 듯 생긋 웃고는 나갔다.
그런데, 길리아드 대위는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가지고 자기 지갑을 보고 있었다.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거 야단났구나. 좀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인객꾼 놈이 바꿔치기 한 거다. 놈을 산채로 껍질을 벗기는 한이 있더라도, 누구의 조종을 받고 그런 짓을 했는지 조사했어야 했다.>
크기나 모양도 똑같다. 무게도 같고 가죽까지도 같다. 그러나 어쩐지 자기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안을 열어보니, 돈도 거의 같게 들어 있다. 그거 가입해 있는 탐험가 그룹의 회원증도 들어 있고, 개의 사진도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잘 만들어진 가짜였던 것이다.
보다 더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는 칸막이를 한 방의 전등을 껐다. 그러고 나서 주머니칼을 꺼내 지갑의 솔기를 조심조심 째보았다.
비밀 주머니는 붙어 있지 않았다. 또 카드도 들어 있지 않았다. 진짜 지갑에는 카드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만일 그 지갑을 훔친 사람이 밝은 곳에서 카드를 끄집어내면 폭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놈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필름을 노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갑을 훔쳐 그 속에 없다는 것을 알면, 다시 뒤쫓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가게까지는 오지 못하리라.
길리아드 대위는 가게를 나오자, 광장을 가로질러 우체국으로 향했다.
그러자 두 사나이가 그에게 가까이 접근해 왔다.
<이자들이구나. 무슨 짓을 할 모양이다. 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생각한 대로였지만, 너무나도 엉뚱한 일이 일어났다.
꽈앙!
굉장한 폭발 소리가 남과 동시에, 번쩍 하는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
“아이쿠!”
“사람 살려!”
함성과 울부짖는 소리가 광장 한복판에서 뒤섞여 일어났다.
무서운 놈들이다. 길리아드 대위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 속에 폭탄을 던진 모양이다.
두 사나이가 길리아드 대위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대위는 소동에 정신을 팔고 있는 척하면서, 앞에 오는 사나이의 무릎을 힘껏 걷어찼다. 때를 같이하여 다음 사나이를 가방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주춤하는 그자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무릎을 채인 사나이는 땅에 쓰러져,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가슴에 손을 넣으려고 했다. 권총이나 칼을 빼려고 하는 것이다. 대위는 재빨리 놈의 머리를 걷어차고, 유유히 그자를 타고 넘어 우체국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걸어야 한다. 천천히 걷는 거다. 서두르면 당장에 눈치챈다!>
그는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걸었다. 뛰어가면 두 놈에게 발각되고 만다.
우체국은 가까워졌다. 아직 뒤쫓아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간신히 우체국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우편 튜브에 보낼 주소를 타자하는 기계 옆에 너더댓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길리아드가 뒤에 서자, 그 뒤에 곧 한 사나이가 다가왔다.
길리아드 대위는 세 개의 튜브를 꺼내 천천히 보낼 주소를 타자하기 시작했다.
‘뉴욕, 탐험가 그룹, 길리아드 대위’
그 보낼 주소 다음에 전자 기호를 찍었다. 될수록 뒤에 있는 사나이에게 잘 보이도록…….
그러고 나서 그는 튜브를 보내는 곳으로 갔다. 뒤에 있던 사나이는 당황해하면서 길리아드 대위의 뒤를 쫓아왔다.
그는 담배를 꺼내는 척하며 그중 한 개를 주머니에 들어 있는 진짜 우편 튜브와 바꿔치기 했다.
씨익!
압축 공기의 소리가 울리면서 우선 한 개의 튜브가 날아갔다.
피융, 피융!
둘째, 세 번째 것이 날아가자 길리아드 대위는 힘있게 돌아서며, 바로 뒤에 있는 사나이의 발을 힘껏 짓밟았다.
“아야얏.”
“이크,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즐거운 듯 이렇게 말하고, 그자로부터 떨어져 우체국에서 나왔다.
 
 
연락할 수가 없다
 
계단 아래 한 사람의 경찰관이 서 있었다. 광장 복판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구급차 쪽을 지켜보고 있다.
길리아드 대위는 말을 건넸다.
“왜 저럽니까?”
“네? 아아, 어떤 바보 같은 녀석이 불꽃인가 뭔가를 터뜨린 모양입니다. 그러고서 두 사나이가 싸움을 시작했는데, 아주 신나게 했는지 양쪽 모두 쓰러진 모양입니다.”
“그것 참, 바보 같은 놈들도 다 있군요.”
라고 말하고, 길리아드 대위는 신세계 호텔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위험은 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름은 이미 보냈다. 그래서 그는 기분이 좋았다.
호텔 로비로 들어선 그는 지갑을 훔쳐간 인객꾼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이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는 방을 부탁하고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심부름하는 아이와 함께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할 때, 그 인객꾼이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이 호텔에서 묵는 것은 위험한데.>
하고 생각하면서, 길리아드 대위는 불렀다.
“이봐, 꼬마! 장사는 어때?”
인객꾼은 대위를 보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그대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자기 방으로 들어간 길리아드는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팁을 주었다.
“무엇을 시키실 일은 없어요? 음료수라도…….”
“아니, 아무 것도 필요 없어.”
“그럼, 텔레비전을 켜드리지요.”
하며 심부름하는 아이는 스테레오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벽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거기에는 마치 진짜 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뒤에는 몇십 명의 합창단이 서 있다.
“생방송입니다요.”
“그렇겠지.”
길리아드는 끄덕이면서 입체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여자도 합창단도 휙 사라지고, 노래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됐어. 이제 나가줄 수 없겠니. 텔레비전보다 목욕을 하고 싶어. 지금의 텔레비전도 내 계산에 들어가는 거지?”
보이는 어깨를 움찔하고는 곧 나갔다. 길리아드 대위는 입은 옷을 모조리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물 속에 들어가 10년은 젊어진 기분으로 있다가 나와봤더니, 옷도 내의도 죄다 없어지고 말았다.
여행 가방은 남아 있었다. 조사를 해보니 그대로이다. 없어져도 별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보냈으니까.
가방에 남아 있는 것은 보잘것없는 책을 찍은 필름이다. 그러나 염려가 되어 그 필름을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가 가지고 온 것과는 다른 물건이었다.
<지갑, 마이크로필름……, 이런 자질구레한 것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구나. 참, 탄복할 만하다.>
그는 혀를 차며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네…….”
전화의 화면이 밝아지고 귀여운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전화 교환수가 아니면 객실에서 일 보는 아가씨이리라.
“옷이 없어졌어, 찾아줄 수 없어요?”
“급사가 맡아 가지고 있는데요…….”
“부탁한 적 없어. 돌려줘요.”
곧 화면에 비치는 얼굴이 남자로 바뀌었다.
“부탁하시지 않아도, 신세계 호텔에서는 무료 봉사로서 세탁해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길리아드는 다소 화난 듯이 말했다.
“어쨌든 돌려줘, 빨리! 이제부터 여왕님과 만날 약속이 있어.”
“알았습니다.”
하고 남자의 얼굴은 사라졌다.
길리아드 대위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미 큰 실수를 저질렀다, 적의 힘을 너무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키 작은 사나이에게 걸려들지 않았어야 했던 거다.
이제 앞으로 몇 분 살아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므로 그 몇 분 동안에 귀중한 마이크로필름을 어디로 보냈는지를 두목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붙은 적들을 처치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그는 방 한구석에 비치되어 있는 암호 통신용 다이얼을 돌렸다. 타이프라이터를 치면 도중에서 알 수 없도록 글자가 뒤섞이게 되는 기계이다.
그런데 곧 스크린에 여자 얼굴이 나타났다.
“신세계 호텔의 교환대입니다. 암호 통신을 부탁할 건가요?”
“그렇소.”
“참으로 죄송하게 되었어요. 암호 통신 선이 조금 전에 고장이 났답니다. 지금 수리하고 있는 중이에요. 교환대에서 이어드릴까요?”
“좋아요. 보통 전화로 할 테니까…….”
“정말 죄송해요.”
그는 두목에게 직접이 아니라 중계하는 곳의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연결되지 않고, 같은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죄송해요. 먼저 하신 분이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른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면…….”
“그것 참. 그럼 혹시 전서구를 갖다줄 수 없을까?”
하고 전화를 끊으며,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
이 호텔에 있는 자들은 모두 적일까? 길리아드 대위는 한동안 생각한 끝에 친구가 있는 스타 신문사에 걸었다. 그러나 걸리지 않는다. 같은 동료가 있는 탐정사는 어떨까? 물론 그것도 걸리지 않는다.
적은 이 호텔 외부의 누구에게도 연락을 못하게 하고 있다. 그는 급사를 부르는 벨을 울리고, 안마 의자에 앉아 버튼을 눌렀다. 확실히 이 호텔의 시설은 좋다. 욕실도, 이 의자도……. 그러나 적의 소굴인 모양이다.
문이 열리며 급사가 들어왔다. 먼젓번의 급사는 아니었다. 비슷비슷한 몸집이다. 급사는 알몸뚱이로 있는 길리아드의 모습에 멍청하니 입을 벌렸다.
“부르셨습니까요?”
대위는 녀석에게 가까이 가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자네에게 일이 좀 있어서…….”
라고 말하면서 그는 급사의 명치를 힘껏 쥐어질렀다. 녀석이 신음하며 앞으로 숙이자, 목덜미를 수도로 쳤다.
바닥에 쓰러진 급사의 웃옷을 벗겨서 입었다. 어깨가 좁다. 반대로 구두는 헐렁헐렁하다. 그러나 2분 후 길리아드 대위는 호텔의 급사로 변신해 있었다.
“좀 미안한데…….”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살짝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곧 손님이 타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때, 한 손님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급사, 결혼식장은 어디지?”
“네, 앞으로 가서 왼쪽으로 도십시오. 그리로 곧바로 가시면 됩니다요.”
하고 둘러댔지만, 처음 온 호텔이라 알 리가 없다. 순 엉터리다.
그는 얼른 호텔 종업원만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지하실로 내려갔다. 거기는 식료품이 산처럼 쌓여 있는 창고였다.
그곳에서 일이 있는 것처럼 왔다갔다하다가, 식료품을 운반해 들이는 출입구를 발견했다.
그때, 그 문이 닫히며 벨 소리가 울렸다.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데, 두 사람의 경찰관이 나타났다. 모르는 척하며 그 앞을 지나가려고 하자, 키가 큰 쪽의 경찰관이 그를 지켜보며 팔을 잡았다.
“길리아드 대위시죠?”
“뭐라구요?”
“당신이 길리아드 대위냐고 묻고 있는 거야!”
다른 한 사람의 경관은 3미터쯤 떨어져서 마르크하임 냉동총을 겨누고 있다. 그것에 맞으면 몸이 얼어붙는다.
그를 붙잡은 경찰관은 뽐내듯 말했다.
“당신은 오늘 1달러 짜리 가짜 지폐를 사용했어.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중앙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고서 말야. 그러니 아무 말 말고 얌전히 따라와!”
“그럴 리가…….”
순간 길리아드 대위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가짜 지폐든 아니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미 마이크로필름은 보냈으니까, 경찰관에게 끌려가는 것이 썩 안전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따라갈 테니까 이렇게 팔은 비틀지 말아요.”
세 사람은 호텔을 나왔다. 길모퉁이에 순찰차가 서 있다.
“자, 저걸 타는 거다.”
경찰관이 이렇게 말하자, 길리아드 대위는 머리를 내저었다.
“걸어가겠어. 저 모퉁이만 돌면 바로인데.”
마르크하임 냉동총을 맞은 것은 그때였다. 이빨이 덜덜 떨리는 추위를 느꼈을 때, 그는 벌써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잃었다.
 
 
트럼프로 말하자
 
자동차에서 끌어내려질 때 비로소 그는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긴 복도를 끌려가는 동안에 겨우 조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경찰관들이 그를 뒤에서 밀치고 있었다. 철커덕, 철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길리아드 대위는 얼굴을 번쩍 들었다.
“여어, 안녕하시오?”
하는 태평스러운 소리가 났다.
길리아드 대위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눈을 끔벅거렸다. 그의 단련된 몸은 이미 마르크하임 냉동총을 맞은 충격에서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니, 마치 서부극에라도 나옴직한 유치장이었다. 앞쪽과 문은 죄다 굵은 쇠막대로 엮어놓았고, 벽은 콘크리트였다.
그리고 방금 말을 건넨 사나이가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이는 쉰 살 정도, 살이 찌고 사람 좋아 보인다. 길리아드는 그 얼굴을 보자 생각이 났다. 무엇 때문에 그도 이런 곳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볼드윈 박사! 이상한 곳에서 뵙게 되는군요.”
그러나 볼드윈 박사라고 불린 자는 머리를 내저었다.
“하지만 다르다고. 내 이름이 볼드윈이라는 것은 확실하나 박사는 아니니까……. 하나 나는 자네를 알고 있어. 탐험가로서 유명한 길리아드 대위지. 자네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어.”
길리아드 대위는 그자를 지켜보며 대꾸했다.
“그런가요? 나도 당신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이론물리학 회의 때였던가…….”
사나이는 큰 입을 벌리고 웃었다.
“그래서 알았다는 거군. 자네가 만난 것은 내 사촌인 허드레이 볼드윈이야. 시시한 사나이지. 나는 그레고리 볼드윈, 친구들은 모두 꿀꿀이라 부르지. 내가 하는 장사는 헬리콥터 매매야. 신품이나 중고 어느쪽도 다 취급하네. 우리 광고를 본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꿀꿀이 볼드윈은 헬리콥터의 왕이라고 말야.”
“그러고 보니 본 일이 있어요.”
그러자 볼드윈은 명함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어때, 한 대 살 생각은……? 허드레이의 친구로서 10센트 싸게 해주지. 사용한 지 1년밖에 안 된 커티스는 어떨까? 자가용으로 전혀 상한 데가 없는 좋은 거라구.”
길리아드는 명함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필요가 없으니 거절하지요. 그런데 볼드윈 씨, 여기는 좀 색다른 사무소인데요.”
볼드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긴 일생 동안에 있어서는 이상한 일도 일어나는 거라구. 대위, 나는 당신이 왜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급사 차림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묻지도 않겠어. 아무튼 나를 꿀꿀이라고 불러줘요.”
“알았어요…….”
하고 길리아드는 일어나서 문 쪽으로 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큰소리로 외쳐보았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무엇을 걱정하고 있지, 대위?”
볼드윈 쪽을 뒤돌아보니 그자는 벤치 위에 트럼프를 펴놓고 혼자서 점을 치고 있었다.
“변호사를 부르려고 하는데요.”
꿀꿀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소용없으니 트럼프라도 하는 게 어때? 한 짝 더 가지고 있으니까 말야.”
“하고 싶지 않소. 여기서 나가고 싶을 뿐이오.”
하고 그는 또 큰소리를 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입만 피로할 뿐이야. 대위, 놈들은 마음이 내킬 때만 오는 거야.”
하며 볼드윈은 두 짝의 트럼프를 펴고 있었다.
길리아드 대위도 심심풀이 삼아 해볼까 하고 벤치 끝에 앉았다. 꿀꿀이는 길리아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설명을 했다.
“두 짝을 사용하라고. 검은 카드는 0이야. 붉은 것이 하트와 다이아몬드, 어느 쪽이나 26장씩 될 거야. 하트는 1부터 시작해서 하트의 킹까지 13이야. 다이아몬드는 14부터 시작해서 킹까지 26이야. 알았어?”
“아아…….”
“검은 것은 세지 않아……. 찌꺼기야.”
“방법은요?”
“간단해. 점수가 많은 쪽이 이기는 거야.”
하고 사나이는 익숙한 솜씨로 다섯 장씩 펴놓기 시작했다.
길리아드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검은 것은 0, 다음은 다이아몬드의 7이므로 20, 다음은 하트의 8이므로 8……, 암호다!
길리아드 대위는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하트의 1을 A로, 2를 B로 바꿔보았다.
× 20 8 × 25
3 1 14 × ×
× × × 19 5
8 5 1 18 ×
× 21 19 × ×
△ T H △ Y
C A N △ △
△ △ △ S E
H E A R △
△ U S △ △
× 놈 들 × 이
감 시 하 × ×
× × × 는 중
도 청 기 도 ×
× 있 다 × ×
 
 
하트의 5가 두 장밖에 없으니까 말의 글자 수는 부족했지만, 그 뜻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놈들은 우리를 감시하고 있으며, 도청기도 장치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길리아드 대위는 카드에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해봅시다. 그런 점이라면 이겨 보이겠소. 열 장 걸겠어요.”
하고 카드를 나란히 놓았다.
 
×어떻게× ××××× ×할작정× 인데요×× ×××××
 
볼드윈은 돈을 내고, 또 카드를 나란히 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보기 좋게 넘어뜨리겠어.”
 
×나는×× ×당신의× ××××× ×편이다×
 
“또 이겼는데…….”
하면서 길리아드는 기쁜 듯이 카드를 모았다.
 
×예××× ×정말×× ×입니까×× ×이유×는
 
볼드윈은 또 돈을 내놓았다.
“자네는 너무 잘 맞추는군. 카드를 이리 주게.”
 
××당신× ×탈출하× 는××일× ×도와주지
 
길리아드 대위는 돈을 돌려주고 카드를 놓기 시작했다. 볼드윈은 힘있게 말했다.
“자, 다음 차례가 돌아왔어. 돈을 두 배로 걸지 않겠어?”
“좋고 말고요…….”
 
××아니× ×나는×× ×경찰쪽× ××더안전
 
“이번에는 꼭 이긴다. 이번에도 배를 걸지.”
 
××여기× ×경찰×× ×아니다× ×××××
 
게임은 계속되었다.
 
××계속× ×얘기해× ××××보 ×××시오
 
볼드윈은 대답했다.
 
여기××× ××××신 ×××세계 ×호텔××
 
길리아드 대위는 카드를 거두면서 생각했다. 여기가 신세계 호텔의 어디라는 것은 아마 진짜일 것이다. 놈들이 애써 잡은 것을 쉽게 함부로 경찰의 손에 넘겨줄 리가 없다.
이 사나이가 한편인지 적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 일도 안 된다. 길리아드는 카드를 폈다.
 
×××××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인데!”
하고 말하며 볼드윈은 또 카드를 편다.
 
×필름×× ×행방은× ×알지×× 못하게×× ×되었다×
 
길리아드가 카드를 모으고 다시 펴려고 하자, 볼드윈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이제 그만두자구. 자넨 너무 잘 나와.”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볼드윈은 필름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와 같은 FBI의 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해 보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적은 아닐지라도 한편 역시 아니라는 뜻인가?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자는 대체 무엇일까?
길리아드 대위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카드를 간추리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놈인지도 모른다. 신용할 수만 있는 사나이라면!
이때, 한 마리의 거미가 천장에서 소리 없이 내려오더니 이 사나이의 손에 앉았다.
그러자 볼드윈은 떨쳐버리기는커녕, 살그머니 벽 쪽의 마룻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비켜라, 꼬마야. 무서운 아저씨에게 밟히고 만다.”
이것은 그야말로 조그만 사건이었으나, 길리아드 대위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볼드윈에게 카드를 돌려주고,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꼭 10달러 빚진 거요, 잊어버리지 마시오……. 어떤 자가 왔는가 볼까요?”
발소리는 창살문 앞에서 멈추었다.
두 사람이었다. 경찰복은 입고 있지 않았다. 이젠 변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리라.
한 사람은 좀 떨어진 곳에서 마르크하임 냉동총을 쥐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문의 자물쇠를 열고 있었다.
“뚱뚱이, 너는 벽에 붙어. 길리아드 넌 나와라. 얌전하게 하지 않으면, 잠재워서 이빨을 모조리 부러뜨려 놓겠다.”
세 사람이 유치장에서 멀어져가자 볼드윈은 다시 벤치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혼자 트럼프 점을 계속하는 듯했으나, 실은 길리아드가 맞춰둔 순서대로 펴보는 것이다. 펴보고는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대위가 남긴 통신문은 이러했다.
 
×알려라× FBI×× ×사서함× ××맡겼음 ×시카고×
 
 
억만장자 캐슬리 부인
 
두 사나이는 길리아드 대위를 넓은 방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갔다.
오른쪽에 있는 큰 창문으로는 시가지의 경치와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왼쪽 벽에는 달세계의 입체 컬러 사진이 걸려 있다. 그리고 길리아드 바로 앞으로는 큰 책상이 놓여 있는데, 거기에는 쉰 살 가량의 아주머니가 앉아서 둥근 수틀을 가지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 앞에는 우편 튜브가 두 개, 슬리퍼가 한 켤레, 천이며 플라스틱이 흐트러져 있다.
이 아주머니는 얼굴을 들자, 마치 노래라도 하는 것 같은 달콤한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길리아드 대위님?”
대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유명한 억만장자 캐슬리 부인이다.
“아니, 미세스 캐슬리?”
“나를 아시나 보군.”
“물론이죠. 자선 사업으로 유명한 분이니까. 다른 건 세상에 감추고 계시는 모양입니다만.”
“감사해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그만두고……, 실은 당신과 거래할 일이 있어요.”
라고 말하면서, 부인은 두 개의 튜브를 가리켰다.
“무슨 일이지요?”
“대위, 당신은 세 개의 튜브를 보냈지요. 그중 두 개는 가짜고, 나머지 한 개는 행선지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직 가방 속에 들어 있는지도 모르잖습니까.”
“이야기를 딴 데로 돌리지 맙시다. 어디로 튜브를 보냈는지 꼭 알고 싶어요. 당신에게는 약을 먹여도 안 되고, 고문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렇잖으면 비밀 수사관이 될 수 없으니까. 아무튼 그 튜브는 손에 넣고 싶은데, 얼마면 되겠어요?”
“내가 돈으로 움직일 사람같이 보입니까?”
“이봐요, 대위. 시간만 있다면 당신의 성격을 바꿔놓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나 같은 아주머니는 시간을 헛되이 하지 못해요.”
“당신의 나이보다, 지금 당장 손에 넣지 못하면 영영 손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지요.”
“어때요, 천만 달러면?”
“천만 달러에 목숨을 걸란 말이오?”
“아니오. 가르쳐주기 전에 틀림없이 은행에다 넣죠.”
“말은 그럴듯합니다!”
“정말이오. 내 나이쯤 되면 누군가 정확한 사람과 손잡지 않으면 안 돼요. 둔한 작자들 뿐이라 곤란할 때가 많아요. 당신과 나라면 잘되어 갈 거예요. 당신과 손잡고 싶어요.”
“그렇지만 부인, 나는 싫은데요.”
그러자 캐슬리 부인은 책상 위의 버튼을 눌렀다. 왼쪽 문이 열리며, 두 사나이가 한 귀여운 아가씨를 끌고 들어왔다.
아가씨는 길리아드 대위가 광장의 가게로 들어갔을 때 맥주를 날라왔던, 바로 그 여종업원이었다. 아가씨는 거의 알몸이다시피 옷이 벗겨진 상태였다.
“무슨 짓이에요? 남의 옷까지 벗기다니!”
“이봐 아가씨, 잠자코 있지 못해!”
아가씨는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대위, 당신은 튜브를 우체국에 가지고 가기 전에 이 아가씨를 만났어요. 그래서 조사하는 거예요.”
캐슬리 부인이 말하자, 길리아드는 머리를 내저었다.
“그 아가씨는 아무 것도 모르오. 약을 먹여보면 당장 알 수 있소.”
“아니지, 이 아가씨가 당신과 같은 비밀 수사관이라면 약은 듣지 않아요. 나는 늙은이라서 약보다는 간단한 방법을 신용한다오.”
하고 부인은 옆에 있는 사나이에게 신호를 했다.
“그만둬! 그런 지독한 짓은…….”
사나이가 벽장에서 꺼낸 도구를 본 순간, 길리아드 대위는 이렇게 외치며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인가에 아찔할 만큼 코를 부딪쳤다.
“미안해요, 대위. 미리 말해 둘 걸 잊었군요. 이 방은 두 방으로 나뉘어 있어요. 특수한 유리로 막고 있으므로 보이지 않지요.”
“잠깐만 기다려라!”
“그래 좋아요, 대위.”
“그런 짓을 해도 이미 때는 늦었소. 아가씨와 나를 여기서 내놓아 주는 것이 좋을 거요. 알고 있겠지만 몇백 명의 수사관이 나를 찾아 뛰고 있어. 어떻게든 찾아내요.”
“글쎄, 잘 될까요……? 당신을 닮은 사나이는 신세계 호텔에 와서, 20분 후 남아프리카로 가는 로켓을 탔어. 당신의 신분 증명서를 가지고 말야.”
그러자 길리아드는 열심히 말했다.
“저 아가씨를 혼내 줘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저런 아가씨를 우리들이 쓰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이 아가씨에게서 뭘 캐내자는 건 아니오. 그보다는 당신한테서 무슨 말을 들을 수 없을까 이 말이지.”
순간 사나이 중의 하나가 묻듯이 부인 쪽을 바라본다. 부인은 그러라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가씨는 사나이가 꺼낸 도구가 무엇하는 데 사용되는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아가씨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는데, 그것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드디어 아가씨는 정신을 잃고 비명도 멎었다.
두 사나이는 다시 아가씨를 일으켜 세웠다. 아가씨는 영영 못쓰게 된 두 손끝을 미친 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손목에서 피가 준비해 둔 플라스틱 깔때기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길리아드 대위는 반항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지키려고 하는 마이크로필름이 든 튜브에는 몇억이라는 인간의 생명이 걸려 있는 것이다.
그것에 비한다면 이 아가씨 한 사람의 생명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 때문에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단지 저 두 사나이의 얼굴을 마음속에 새겨둘 뿐이었다.
아가씨가 숨을 거두자, 캐슬리 부인은 말없이 방에서 나가버렸다. 곧 두 사나이는 대위를 다시 유치장으로 데리고 갔다.
사나이들이 가버리자, 꿀꿀이는 벽에서 떨어지며 길리아드의 어깨를 두들겼다.
“다시는 못 만날 거라 생각했지. 그래 어때, 굉장했어?”
“아니, 간단히 물어보았을 뿐이오…….”
아가씨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길리아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러자 볼드윈은 머리를 흔들었다.
“운이 좋은 사람이군. 난폭한 녀석들인데 그 정도로 그치다니……. 변호사는 불러주던가?”
“아니오.”
“그럼 아직 조사를 안했군.”
길리아드는 벤치로 가 앉았다.
“싫은 작자들이야. 카드 한번 더 안 하겠어?”
하고 볼드윈이 카드를 내놓자, 길리아드 대위는 힐끗 보고는 천천히 놓기 시작했다.
 
××××× 도망×칠× ××××때 ×××언제
 
“그러면 이쪽 거지.”
하면서 볼드윈은 카드를 놓았다.
 
××내일× ×부××× 탁할××× ××××까
 
“상대가 안 되는군요.”
 
××아니오 ×오늘×× ××××× 해요×××
 
“잘 붙는데. 좋아, 그럼 두 배로 걸고 하기로 하지. 돈을 바꾸고 싶으니까 말이야.”
하고 투덜거리면서, 볼드윈은 카드를 놓았다.
 
××××× 놈들이×× ××모르게 ×서로××
××연극× ×하××× 는×××× ××거다×
 
“좀 잘 해보시오. 원, 시시해서.”
라고 말하고, 길리아드는 다시 카드를 놓기 시작했다.
이때, 볼드윈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길리아드의 손목을 꽉 붙들었다.
“이놈! 생각한 대로였어. 이기기만 하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그러자 길리아드는 손을 뿌리쳤다.
“뭐라고? 이 징그러운 뚱뚱보야!”
“이 사기꾼이 잘했다고 지껄이는 거야!”
하며 꿀꿀이는 다시 길리아드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두 사람은 곧 엎치락뒤치락 마룻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길리아드는 곧 알았다. 이 별난 뚱뚱이는 정말 싸움의 선수이다. 더욱이 급소를 잘 알고 있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진짜 싸우는 흉내를 낼 수 있다. 소리는 요란하지만 어느 주먹도 별로 아프지가 않다.
곧 복도를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길리아드 대위는 곁눈으로 힐끗 문 밖을 보았다.
철창이 방해가 되어 마르크하임 냉동총을 쏠 수가 없는지, 한 사나이가 얼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나이는 총을 겨누며 뒤로 물러서 있다.
볼드윈은 그런 것을 모르는 척하며 격투를 계속했다. 그런데 한 사나이가 옆으로 다가오자, 재빨리 길리아드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눈을 감아!”
라고 말하고 그는 떨어졌다.
길리아드는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으나, 순간 감은 눈에도 눈부신 빛이 번쩍 하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고 보니, 안으로 들어온 사나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쓰러져 있다. 그리고 마르크하임 냉동총을 가진 사나이는 얼굴을 한쪽 손으로 감싸고서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볼드윈은 허리를 굽히고 그놈에게 다가갔다. 눈부신 빛에 눈을 뜨지 못하게 된 사나이는 발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무턱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볼드윈은 재빨리 놈의 발목에 달려들어 둘은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볼드윈은 시체에서 물러서며 일어나더니 마르크하임 총을 손에 잡고 복도를 힐끗 보고 난 후 물었다.
“눈은 어때?”
“괜찮아요.”
“그럼 이 총을 가지라고.”
길리아드는 달려가서 그 마르크하임 총을 쥐었다.
볼드윈은 복도 끝까지 뛰어갔다.
거기엔 시가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이 있었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헬리콥터가 내릴 만한 장소도 없었다. 그러나 볼드윈은 되돌아서서 갇혀 있던 방에 뛰어들더니 벤치를 끌어내어 창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누가 와요!”
길리아드는 외쳤다.
복도 모퉁이에 사나이의 얼굴이 기웃거렸다. 길리아드는 방아쇠를 당겼다. 사나이는 마룻바닥에 쓰러져 갔다.
볼드윈은 벤치를 들어 무서운 힘으로 창문을 내리쳤다. 플라스틱제 창문은 부풀어오르고, 비눗방울 터지듯 깨져나갔다. 벤치는 그대로 300미터나 아래를 향하여 떨어져갔다.
길리아드는 볼드윈이 어떻게 해서 도망치려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볼드윈은 두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휙!’ 하고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곤 손을 흔드는 것이다.
그 순간, 마구 교통 규칙을 위반하고서 한 대의 헬리콥터가 날아올랐다.
 
 
헬리콥터로 탈출
 
헬리콥터는 창문으로 날아와, 빌딩 벽에 닿지 않을 만큼 가까이에 떠 있었다. 곧 헬리콥터의 문이 열리면서 로프가 내려졌다.
볼드윈은 로프를 잡아 날쌘 동작으로 창문 손잡이에 비끄러매었다.
“자네가 먼저 타, 빨리!”
길리아드는 로프에 매달렸다. 헬리콥터는 조금 물러나면서 로프를 팽팽하게 당겼다. 다음으로 볼드윈이 로프를 타고 건너기 시작했다. 마치 살찐 거미가 줄을 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조종사가 한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을 끌어올렸을 때, 부서진 창문으로 사나이들의 모습이 우루루 나타났다.
“출발시켜라, 스티브!”
볼드윈의 외침 소리와 동시에 조종사는 로프를 끊어버렸다. 헬리콥터는 힘차게 신세계 호텔에서부터 멀어져갔다.
볼드윈은 잠시 조종사에게 뭐라고 속삭이고 나더니 소개를 했다.
“집으로 가자. 그런데 이쪽은 스티브 패러디, 그리고 이쪽은 조. 참, 조, 성은 뭐더라?”
길리아드가 대답했다.
“조 그린입니다.”
조종사는 자동 조종 장치를 목적지에 맞춰놓고 잡지를 펼쳐서는 읽기 시작했다.
길리아드 대위는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잘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뚱뚱이는 어떤 사람일까? 단순한 헬리콥터 업자는 아니다……. 더욱이 어떻게 해서 필름에 대해 알고 있을까?
“꿀꿀이 씨, 비행장에 내려줄 수 없을까요? 급히 가야 합니다.”
그러자 볼드윈은 웃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나, 그 별난 옷을 갈아입는 것이 좋지 않겠어? 그건 너무 눈에 띈단 말야. 그리고 돈도 없을 텐데……. 나한테 오면 빌려줄 수 있는데 어때?”
길리아드는 끄덕이며 말했다.
“그도 그렇군요.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그런데 거기는 왜 들어가게 됐어요?”
“이야기하자면 좀 복잡해. 한가할 때 내 가게로 오게나. 그때 천천히 얘기해 줄 테니까.”
“좋습니다. 되도록 빨리 가보죠.”
“아아, 그때 그 중고 커티스도 사주길 바라겠어.”
벨이 울렸다. 조종사는 잡지를 놓고 헬리콥터를 볼드윈의 회사 옥상에 착륙시켰다.
볼드윈은 약속을 지켰다. 길리아드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는 곧 옷을 가져오게 하고, 두툼한 돈뭉치도 주었다.
“우편으로 갚아줘도 좋아.”
“내가 가지고 오고 싶은데요.”
“그건 어떻든 조심하라구. 놈들이 감시하고 있으니까 말야.”
“물론이죠.”
하고 길리아드는 회사 밖으로 나왔는데, 그 볼드윈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였다. 아무튼 적은 아닌 것 같았다.
볼드윈의 회사가 있는 빌딩 대기실에 공중 전화가 있었다. 길리아드는 그리로 들어가서 뉴워싱턴에 있는 국장에게 연락을 했다.
“조! 대체 어디에 있었나?”
“그건 뒤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우선 이것부터.”
그는 암호로 필름은 시카고의 사서함 1060에 보냈으니까 빨리 찾으라고 했다.
국장은 화면에서 사라지더니 곧 다시 나타났다.
“좋아, 찾으러 보냈어.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나중에 얘기하지요. 여기서 머뭇거리다간 머리에 구멍이 날 테니까요.”
“그럼 빨리 오라구. 기다리고 있겠어.”
길리아드는 전화를 끊자, 발걸음도 가볍게 빌딩을 나갔다. 일을 무사히 끝냈기 때문에 마음도 들뜨는 것 같다. 놈들이 올 테면 오라지.
그러나 적은 더 이상 습격해 오지 않았다. 그는 FBI 본부가 있는 뉴워싱턴까지 가는 비행기 속에서 계속 졸고 있었다.
길리아드는 비밀 통로를 지나 FBI 국장실로 들어갔다.
본 국장은 그를 쏘아보았다. 언제나 눈길이 그러하다.
“비밀 수사관 조 브릭스, 임무 끝내고 지금 돌아왔습니다!”
“뭐라구, 이 바보! 잘도 뻔뻔스럽게 나타났구나.”
“아니, 국장님, 잠깐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봐, 브릭스, 솜씨가 뛰어난 자들이 열두 명이나 가지러 갔어. 시카고 우체국 사서함 1060에 말야. 그러나 상자는 비어 있었어. 필름은 어디 있지? 그건 적을 속이기 위한 수단일 뿐, 자네가 가지고 왔다는 건가?”
지금까지 길리아드 대위로 불린 조 브릭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확실히 우편 튜브로 부쳤습니다. 기계가 빼냈는지도 몰라요. 손으로 전자 기호를 써야만 했으니까요.”
본 국장은 다소 안심하는 듯한 얼굴을 하며 책상 위의 버튼을 눌렀다.
“조의 우편 튜브 있잖아……, 그 행선지의 이름으로 수신자 불명이 된 것을 모조리 조사해라. 기호 순서로 캐내라. 모든 일은 뒤로 미루라! 튜브에 달라붙어라!”
그러자 조는 조용히 말했다.
“온 미국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그래도 할 수 없잖아. 자네는 그 필름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모르는가?”
“그건 달세계 기지의 사령관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자네는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장 가치 있는 무기를 잃어버린 거야. 그런데도 담배 따위나 잃어버린 것처럼 눈을 끔벅이고 있을 뿐인가?”
“무기라구요? 자살을 무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버 효과라는 것은 별 하나가 온통 태양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잃어버렸다는 것은 해당되지 않지요. 수사관으로서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취하여 임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필름은 도착하지 않았어!”
“달 기지로 가서, 또 하나의 프린트를 가지고 올까요?”
본 국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안 된다.”
“왜 안 됩니까?”
국장은 좀 망설이고 나서 목소리를 낮췄다.
“필름은 두 벌밖에 없어. 자네가 가지고 있던 것이 정부의 비밀 창고에 들어가면, 다른 하나는 곧 태워버리게 되어 있어.”
“그래서요?”
“필름에 담겨진 후 노버 효과에 관계되는 모든 기록은 불태워지고, 모든 관계자와 기술자에게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주사를 놓는다. 그 실험이 수행된 것을 아는 사람은 열 명도 안 돼.”
조는 헬리콥터 업자까지도 알고 있다고 말할까 했으나, 한동안 입을 다물기로 했다.
본 국장은 계속했다.
“장관은 자네의 필름이 언제 손에 들어오느냐고 불이 나게 연락해 왔어. 어찌나 끈덕지게 묻는지 자네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4,5분내에 무사히 필름을 보내겠다고 대답했단 말야.”
“그래서요?”
“그래도 모르겠어, 이 멍청이……. 장관은 곧 다른 하나를 즉시 태워버리라고 명령한 거야.”
조는 마음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너무 서둘렀군요.”
“그렇다. 자네가 서두른 것이 되는 거야, 자네가 필름은 사서함에 있다고 했으니까 말야.”
“거기로 보냈다고 그랬지요.”
“아니,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지.”
“녹음 테이프를 꺼내 들어보면 알 수 있죠.”
“테이프는 없어. ……대통령의 명령으로, 이 일에 관계되는 한 녹음은 일절 하지 않고 있다.”
“허, 그럼 어째서 지금은 녹음하고 있죠!”
그러자 본 국장은 날카롭게 대답했다.
“누가 책임을 지게 되든, 나는 아니라는 증거로서 말야.”
조는 천천히 물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지운다는 의미군요?”
“그렇다고는 하지 않았어. 장관일지도 몰라.”
“아니, 두 사람 다 나에게 책임을 떠넘길 모양이군요. 그러나 그렇게 결정하기 전에 나의 보고를 듣는 쪽이 좋을 겁니다. 계획이 달라질지도 몰라요. 무척 이상한 일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본 국장은 책상을 치면서 성난 듯이 말했다.
“말해 보라구!”
그리하여 조는 달세계 기지에서 필름을 맡았을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자세히 말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국장은 일어나서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외치듯이 말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뚱뚱한 사나이와 카드를 하고, 지갑이 바꿔쳐지고, 옷을 도둑맞고……, 더욱이 캐슬리 부인이라구? 그 부인은 친절하기로 이름난 분이야!”
조가 잠자코 있으니까 국장은 계속했다.
“자네가 지구에 도착한 데까지는 그대로다. 그런데…….”
“어떻게 알지요!”
“자네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런 일을 단 한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느냐 이 말이다!”
“왜 그렇다고 말해 주지 않았어요?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는데.”
“자네는 인객꾼과 만나고 헤어진 후에 가게로 들어갔어. 그리고 우체국으로 가서 세 개의 튜브를 부쳤어. 그중 하나에 필름이 들어 있었는지 어떤지는 몰라. 자네는 거기서 신세계 호텔로 가서 20분 후 도로 나와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
“그런데 왜 여기에 있지요?”
“그 점은 모르겠어…….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있는 편이 좋았겠지. 자네의 입장은 몹시 불리해. 자네는 이 일에 실패한 것이 아니야……, 배신한 거야!”
“체포한다는 겁니까?”
“사건의 형태가 확실해지기까지 말이야.”
조는 사건의 형태가 확실해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사직하겠습니다. 안녕, 국장님.”
그가 방에서 나가려고 하자, 본은 책상으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섰거라! 체포한다.”
 
 
이상한 목장
 
조는 재빨리 국장의 목을 내리치고, 다시 배에다 한방 먹였다.
국장이 바닥에 쓰러지자 조는 책상 속에서 주사기를 꺼내어 세 시간 가량 잠잘 수 있는 약을 국장의 등뼈 옆에 있는 점 옆에다 주사했다. 그리고 녹음 테이프를 모조리 지워버리고 난 후, 얼른 그 비밀 통로로 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곧장 비행장으로 가서 시카고 행 표를 샀다. 그리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자동 판매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점원한테서 샀다. 얼굴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가 착륙했다. 그는 전송객들 사이를 헤치고 세면소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왔을 때, 그의 얼굴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50분쯤 지난 후, 그는 장거리 트럭의 조수가 되어 서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우편 튜브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행선지를 잘못 쓴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시카고에 도착하기 전까지 분류되는 곳은 다섯 군데가 있다. 그때마다 기계가 받지 않았더라도 계원이 틀림없이 제대로 보내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국장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튜브는 시카고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뚱뚱이 볼드윈은 자기가 남긴 카드의 통신문을 읽은 거다. 그리고 헬리콥터 안에서도 누군가에게 연락했을 거다. 그렇게 볼 때, 그 필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볼드윈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트럭이 200마일쯤 갔을 때, 조는 운전사와 싸우고 쫓겨났다.
그는 곧 볼드윈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한테 돈을 빌린 사람이라고 하시오.”
곧 뚱뚱이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여어, 어땠어?”
“해고당했어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어.”
“그보다 심해요. ……쫓기고 있어요.”
“당연한 일이야.”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좋아, 어디에 있지?”
조는 장소를 말했다.
“추적 당하고 있을 텐데?”
“앞으로 두 시간 정도는 괜찮아요.”
“거기서 가까운 비행장에 가 있어. 스티브를 보낼 테니까.”
 
스티브가 나타나 고개를 끄덕였다. 헬리콥터가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그는 자동 조종 장치를 켜놓고 또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조는 헬리콥터가 날고 있는 방향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가는 거지?”
“두목이 가지고 있는 목장이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조는 지금 자기가 가고 있는 앞길에 어쩌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뚱뚱이 볼드윈은 그를 구해 주기는 했다. 그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캐슬리 부인에게 처치 당했을 거다. 그럼 볼드윈이 도와준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어쩌면 캐슬리 부인과 손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이크로필름을 빼돌린 것은 그 뚱뚱이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윽고 헬리콥터는 크고 넓은 목장에 내렸다. 그러자 아름다운 별장에서 어머니 같은 느낌을 주는 상냥한 노부인이 나타났다.
“나는 미세스 가버예요. 당신은 조지요. 방은 동쪽 끝이에요. ……목욕을 하고 식당으로 와요. 10분 후에 저녁 식사니까.”
조는 목욕을 끝내고 식당으로 갔다. 남자와 여자가 10여 명 있었다.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얼마 후, 식사의 종이 울리면서 음식이 왔다. 아주 맛이 좋았다.
이윽고 자기 방으로 되돌아 온 조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그러고는 무슨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조는 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간을 잤던 것이다.
그는 침대에서 뛰어나와 문 옆으로 갔다.
문 밖에서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튜메크?”
“네!”
“쯔룬치.”
“이피비쯔 뉴.”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말이라기보다는 소리 같다.
조가 입고 온 옷과 내의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돈이나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은 그대로 있었으며, 그 옆에 새로운 팬티와 셔츠가 놓여 있었다.
미국 제일의 비밀 수사관의 잠을 깨우지 않고 바꿔놓았던 것이다.
그 옷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나왔다.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음식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따뜻한 햄에그와 갓 구운 빵이 있었다. 마치 조가 잠깨는 시간을 미리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준비되어 있다.
20분 후, 조는 오래간만에 한가로운 기분으로 베란다에 나갔다. 좋은 날씨다. 하늘은 푸르게 개어 있고, 솔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집 뒤에서 역시 짧은 바지를 입은 아가씨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아가씨이다.
“안녕, 아가씨.”
조가 인사를 하자, 아가씨는 두 손을 허리에 대고 그를 훑어보았다.
“어머! 당신에 대해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내 이름은 조 그린이라고 해요.”
“저는 게일……. 망아지 보러 안 가시겠어요?”
두 사람은 마구간의 망아지를 보러 갔다. 그리고 망아지와 얼마간 논 다음, 포플러 그늘에서 뒹굴었다. 마치 어린이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노버 계획이나 캐슬리 부인, FBI 등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했다.
한참 후에 조가 물었다.
“게일……, 튜메크라는 것이 뭐지요?”
그러자 아가씨는 눈을 깜빡이면서 되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들었나요?”
“방안에서. 복도에서 들려왔어요.”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
조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게일은 얼굴을 발갛게 붉히면서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런 걸 듣지 못했을 텐데요?”
“하지만 들었어요.”
“그럼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
그는 먼저보다 좀더 정확하게 들은 대로 말해 보려고 했다. 그러자 게일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아, 대강 짐작이 가요. ……상대는 타리아라는 여자였겠죠. 언젠가 어떤 힘센 남자가 그 여자의 목을 조르고…….”
“그게 무슨 일이오?”
게일은 조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그를 찾아낸다면, 싫다고 해도 당신의 부인이 되겠어요!”
“안 돼요. 결혼은 누구하고도 하지 않을 거요. 아직 빠르니까.”
이때, 누군가가 언덕 위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여어, 조! 조 그린, 두목이 부르고 있어.”
조는 일어섰다.
“가봐야지…….”
게일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다시 봐요……. 조, 친하게 지내요.”
 
 
노버 효과의 비밀
 
뚱뚱이 볼드윈은 기분 좋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조, 앉아요. 어때, 여기는?”
“굉장한데요. 항상 그런 식사가 나옵니까?”
그러자 볼드윈은 큰 배를 두들겨 보였다.
“내 별명이 왜 붙었는지 알 만하지?”
“꿀꿀이 씨, 알고 싶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음……, 자네가 FBI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게 된 건 나 때문이야. 정말 미안해.”
“그보다 당신은 캐슬리 부인과 손잡고 있는 게 아닙니까?”
“무슨 소리, 나는 그 여자의 적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아직 못 믿겠어요. 나와 처음 만난 것은 창살 안에서였소. 거기는 왜 들어갔어요?”
“놈들에게 붙잡혔지.”
“나와 거기서 만난 것은 우연한 일이었나요? 같은 감방 안에 들어간 것도 우연, 트럼프를 두 벌 가지고 있었던 것도 우연입니까?”
뚱뚱이 볼드윈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달에서부터 계속 자네를 감시하고 있었어. 그리고 자네가 신세계 호텔로 들어가자, 나도 일부러 붙잡히도록 했지. 자네를 구해 주려고 나도 FBI의 사람처럼 보인 거야.”
“캐슬리 부인이란 대체 어떤 여자지요?”
“갱의 여왕이야. 보통 갱이 아니라,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여자야.”
“꿀꿀이 씨, 당신의 정체를 알고 싶은데요.”
“이봐 조, 나는 자네가 좋은 거야. 어려움을 끼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러면 어떻겠어? 누구도 자네를 절대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새로운 지문을 만들어주겠어. 이 지구의 어디든 좋은 곳에 살 수 있게 해주지. 필요한 만큼 돈도 주겠다……. 어때?”
“싫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주시오!”
“생각해 봐, 자네에게는 부모나 형제도 없잖아. 자네를 본래의 일자리로 되돌아가게 할 수는 없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싫습니다. 나는 이번 사건을 결말짓고 싶은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 다시 생각해 주게. 이젠 이런 시끄러운 일에서 발을 빼는 게 어때?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싶지 않느냐 말야.”
이때, 책상 위의 스피커가 울렸다.
“에니 르 헤그 릴프.”
라고 대답하더니 볼드윈은 얼른 난로 옆으로 갔다. 그러고는 난로 전체를 앞으로 끌어냈다. 벽에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그 속에 계단이 있었다.
“조, 그 계단을 내려가게. 정리해야겠어.”
볼드윈은 책상으로 되돌아와서 서랍을 열더니 세 개의 필름을 꺼냈다. 조는 그가 그것을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고 멈추었다.
“어서 내려가야 해, 조. 발견되면 죽음을 당해.”
두 사람은 곧 지하 깊숙이 내려갔다. 조금 전에 있던 방과 똑같이 생긴 모양의 방으로 들어갔다. 창 너머로 경치가 보이지 않는 것만 다르다.
볼드윈은 책상 위의 마이크를 향해 그 이상한 말로 뭐라고 말했다.
“정리해야겠다니, 무슨 말이지요?”
“FBI의 작자들……, 자네의 그전 한패거리지. 마마 가버가 잘 처리해 줄 거야. 이 필름을 되찾기 위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양이지……. 자, 이걸 보라구.”
볼드윈은 한 개의 필름을 조에게 던져주었다. 그 필름을 조사해 보니, 확실히 진짜였다.
“본 국장은 저의 보고를 일단 조사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조가 중얼거리듯 말했을 때, 스피커에서 그 이상한 말이 몇 마디 울렸다.
“본 국장이라는 자는 시시한 사나이야. 그렇게 꼼꼼히는 조사하지 않아. 내가 부자니까 사양하는 모양이다. 세상을 떠난 전 국장은 대단한 사나이였는데.”
조는 급히 물었다.
“뭐라구요? 설명해 주지 않겠어요?”
“차차 알게 될 거야. 조, 필름은 조사했어? 했으면 돌려줘.”
“미안하지만…….”
하고 조는 거절했다.
그러자 볼드윈은 머리를 내저으며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지 말라구, 조.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아. 어느쪽이든 죽고 말 뿐이야, 아니면 둘이 모두. 만약 내가 죽으면 자네는 아무 것도 모르게 돼.”
조는 다시 생각하고 필름을 돌려주었다.
“고마워, 조.”
이렇게 말하고, 볼드윈은 놀랍게도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세 개의 필름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벽에는 조그만 소각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넣어 불태워 버린 것이다.
“아니……?”
조가 깜짝 놀라며 무슨 말을 하려 하자, 볼드윈이 먼저 말했다.
“가까스로 위험물을 정리해 버린 거다.”
조는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물었다.
“나는 당신이 노버 효과를 손에 넣어, 그것으로 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천만에! 그건 나를 잘못 본 거야. 조, 자네는 대체 이 노버 효과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지?”
“별로 알고 있는 건 없어요. 몸서리를 칠 정도로 무섭다는 것밖에……. 무서운 힘을 가진 수소폭탄 같은 것이죠.”
“수소폭탄 정도가 아니야, 이 지구를 불태워 버리는 수단이야……. 어떤 행성도 태양으로 바꿔버리는 방법이지.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도 생물도 죽어버린다. 그런데 자기가 권력을 잡기 위하여 어떤 일도 사양치 않는 시래미 같은 놈이 세상에는 있게 마련이다. 캐슬리 부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지. 나는 그런 놈들을 해치우는 거다. ……조, 자네는 앤티 에스라는 이름의 작은 행성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
“알지요. 항상 태양 반대쪽에 있는 바윗덩이로서 지구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렇지. 그러나 지금은 없어. 불타 없어졌어.”
조는 너무나 놀라서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노버 효과란 책에만 있는 이론이 아닙니까?”
꿀꿀이는 머리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방금 그 필름을 모두 조사해 봤다면 앤티 에스가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거야. 로봇 우주선을 보내어 찍었어.”
“왜 필름을 불태워 버렸어요? 아무리 무서운 것이라고 하지만, 굉장한 대발견이 아닙니까?”
“인류에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어. 더욱이 모조리 나의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으니까.”
“흥, 당신과 당신의 사촌이라는 허드레이는 동일 인물이군요.”
“물론이지. 그러나 나는 꿀꿀이 볼드윈이기도 해. 허드레이의 나로서도 그 필름을 마음대로 해도 좋은 거야. 노버 효과는 내가 생각해 낸 것이니까.”
여기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책상 위의 스피커가 다시 울려왔다.
“마마 가버가 이젠 올라와도 좋다고 했어.”
라고 말하고, 볼드윈은 계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조는 그 뒤를 따랐다.
“이럴 때 마마 가버 같은 할머니에게 잘도 맡길 수가 있군요.”
조가 이렇게 말하자, 뚱뚱이 볼드윈은 빙긋 웃었다.
“그 여자는 놀라운 머리의 소유자야. 내가 모든 것을 지시하고는 있지만 말야.”
“뭐라구요?”
조는 놀랐다 지시할 시간 같은 것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하실에서 한 말은 겨우 한두 마디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이 뚱뚱이는 자기가 지시했다고 말한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
 
두 사람은 다시 지상에 있는 방으로 되돌아 왔다. 아까와 같은 조용한 목장의 별장이다.
조는 이제 절대로 FBI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그 마이크로필름은 불타 버렸으니까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제부터는 여기서 사는 길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볼드윈은 이렇게 말했다.
“조, 자네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있어.”
“그래서 당신들의 무리가 되라는 말입니까?”
“나는 자네와 처음 트럼프 놀이를 했을 때, 당장 알아차렸다. 자네는 나의 정체를 물었지. 웃지 마, 나는 슈퍼맨(초인)들이 모인 단체의 지배인과 같은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뭐!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그 카드를 읽는 속도 말입니다……. 그리고 필름을 불태운 것 등이지요.”
“조, 슈퍼맨이란 것이 대체 뭐겠어?”
조가 생각에 잠겨 있자, 뚱뚱이 볼드윈은 말하기 시작했다.
“엑스선과 같은 눈, 강철같은 근육……, 그런 것은 만화에 지나지 않아. 슈퍼맨이라는 것은 현재의 지구 인류 다음에 나타날 새로운 인류야. 자네도 그 새로운 인류일지도 모른다.”
“내가요?”
“그렇다, 조, 오늘날의 인간에게 더 보태져서 좋을 능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조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처럼 잘 보이는 눈일까, 병에 걸리지 않는 일일까?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하늘을 나는 일일까? 조는 곧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보다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일 겁니다.”
“그대로다! 휠체어에 실려 있던 루스벨트, 간질병에다 위가 나빴던 케사르, 외눈에다 외팔의 넬슨, 눈먼 밀턴……, 중요한 것은 신체가 아니라 두뇌야. 지금의 인간은 머리가 지나치게 나빠. 그래서 머리가 필요한 곳을 언제나 그대로 두고 있어. 조금만 머리가 좋은 인간이라면 백만 장자가 되는 것도, 대학 교수가 되는 것도 실로 쉬운 일이야. 조, 우리는 10년 동안 자네에게 점을 찍고 있었어.”
“허어?”
“조, 자네는 나쁜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생각을 가져본 일이 없는가? 사회의 암이라고 하는 것들을 말야. 우리는 죽어도 좋을 인간들의 명단을 만들고 있다. 그들이 만약 지나치게 날뛸 때, 우리는 곧 처치하기로 되어 있어.”
조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을 그 정도까지 믿고 있다면, 참 재미는 있겠지요.”
“우리는 언제나 옳아. 예를 들어 캐슬리 부인을 봐, 그 여자를 죽이는 데도 자네는 망설이겠나?”
“아니오.”
“자, 우리와 한 무리가 되겠는지 자네의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일이죠. 그런데 꿀꿀이 씨, 이것 한 가지는 나에게 시켜줘야 하겠어요.”
“어떤 것?”
“캐슬리 부인은 내가 해치우고 싶어요.”
“좋아. 그러나 자네가 훈련을 받을 동안, 그때까지도 그 여자가 살아 있다면 맡기기로 하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나를 훈련한다는 것은?”
FBI의 비밀 수사관으로서 엄하고 고된 훈련을 거쳐온 자기에게 어떤 훈련을 하려는 것일까? 조는 매우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볼드윈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확실히 자네에게는 슈퍼맨의 소질이 나타나 있어. 그렇지만 훈련을 충분히 쌓지 않으면 진짜는 곤란하겠어.”
그러면서 볼드윈은 마이크를 향해서 불렀다.
“게일!”
그러고는 그 알 수 없는 말을 한 마디 덧붙였다.
게일은 곧 모습을 나타냈다.
“데리고 가 줘. 게일이 책임지는 거야.”
이 말을 들은 게일은 두 손을 비비면서 기뻐했다.
“어머, 반가워요!”
 
게일은 조를 지하실로 데리고 가면서 말했다.
“자, 오늘부터 제가 당신의 선생이에요.”
“무엇을 가르쳐주는 거요?”
“보는 것, 듣는 것, 기억하는 것, 그리고 말하는 것, 또 생각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돼요.”
조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지금 입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란 말요? 무엇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게일은 웃었다.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돼지가 꿀꿀꿀 떠드는 것 같아요. 우선 이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들어간 지하의 교실에는 많은 기계가 있었다. 게일은 그 하나에 스위치를 넣었다. 순간 스크린에 숫자가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다.
“조, 저것은요?”
“123이야.”
“그럼 이번에는요?”
“96072……, 그것밖에 모르겠는걸.”
“조, 1초의 천분의 일 사이에 충분히 비취고 있었어요. 왜 왼쪽 끝밖에 몰라요?”
“그것밖에 읽지 못한걸.”
“전부 봐야 해요.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 다만 보기만 하면 돼요.”
하고 게일은 또 다른 숫자를 비췄다.
조는 본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이 공부가 그 기억력을 더욱 좋게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는 시키는 대로 한가롭게 숫자의 나열을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윽고 전체 숫자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게일은 숫자를 영사하는 시간을 더 짧게 했다.
“게일, 이 기계는 뭐지요?”
“렌소스코프라고 해요.”
제2차 세계 대전 때,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렌소 박사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지니고 태어난 능력의 5분의 1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 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기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박사가 죽은 후, 볼드윈은 그 기계를 찾아내어 그것을 훈련에 사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조가 이 기계로 충분히 훈련될 때까지 게일은 그 이상한 말을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볼드윈과 긴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이 별장에 있는 사람들은 조 앞에서도 그 말을 쓰게 되었다. 잠깐 말해도 매우 긴 동안 이야기한 것과 같은 모양이다. 이상한 말이었다.
때로는 누군가가 통역해 주는 일도 있었다(대체로 마마 가버였다). 조는 그들의 한 무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가장 낮은 후보생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어른들 속에 섞인 어린이였다.
이윽고 게일은 이상한 말을 들려주고, 그것을 발음해 보였다. 겨우 한 글자의 소리였으나 조가 그것을 소리내자 게일은 고개를 저었다.
“틀려요. 조, 봐요.”
게일이 발음한 말은 스크린에 선이 되어 나타났다. 소리에 맞춰 여러 가지 곡선이 나타나는 기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 해봐요.”
조는 입을 움직였다. 게일이 발음한 선 밑에 자신이 발음한 선이 죽 그어졌다. 거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떻습니까, 선생!”
조는 기쁜 듯이 말했으나, 게일은 웃어넘겼다.
“아직 형편없어요. 그 정도 가지고는 들어도 전혀 알 수 없어요. 다시 한번 해봐요. 그리고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둬요.”
다시 반복했다. 이번의 발음 중에서는 군데군데 바른 것은 게일의 선과 겹쳐서 사라지고 틀린 곳만이 남았다.
“자, 다시 한번, 조.”
“이봐요 게일, 이 말의 뜻을 가르쳐줄 수 없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발음하는 것보다는 뜻을 알고 하는 것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거요.”
게일은 어깨를 옴츠리며 말했다.
“안 돼요, 조. 우선 듣고 말하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지금의 말은 ‘먼 곳의 지평선은 가까이 끌어올 수 없다’라는 뜻이에요. 별로 쓸모가 없는 말이죠.”
조는 놀라고 말았다. 지금 발음하고 있는 말은 ‘아아’라든지 ‘오오’ 정도의 길이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긴 뜻의 말이라고 한다.
지금 조가 연습하고 있는 말은 어느 나라의 말도 아니며 볼드윈 등이 만들어낸 말로서, 고속어(아주 빠른 말)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알파벳은 100가지 정도의 음인데, 그 하나하나가 여러 개로 바뀔 수 있다. 길이, 악센트, 높고 낮음으로……. 귀가 훈련되면 고속어로 1,2초 말하는 것이 보통 말로 몇 분 동안 이야기한 것에 해당되게 된다.
조 그린=길리아드=브릭스는 귀로 듣고 입으로 발음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스크린에 비치는 조의 발음이 게일의 발음에 겹쳐 완전히 지워지는 날이 왔다. 게일은 미리 준비한 모양이었다. 트럼펫이 높이 울리고,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게일은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마마의 착한 아기예요.”
조는 게일 쪽을 향하면서 대꾸했다.
“게일은 결혼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지. 만약 나하고 결혼하려고 협박을 하면, 엉덩이를 때려주겠어.”
이렇게 말하는 조의 얼굴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드디어 출동
 
그날 밤, 볼드윈이 나타나서 조를 불렀다.
“조, 공부를 할 때는 자네의 그 끈덕진 성질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후엔 해수욕을 가든 말을 함께 타든 자네 자유야. 그러나 공부 시간은 공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빨리 졸업하기를 바라네.”
“게일이 뭐라고 했나요?”
“어리석은 소리. 자네의 진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내가 할 일이야. 게일이 잔소리를 할 정도라면 아마 자네를 때렸을 거야. 조심하라구, 그 아이에게는. 게일의 진짜 직업은 자네와 같아. 300명 이상의 사람을 죽였어.”
조는 얼른 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캐슬리 부인은 어때요? 아직 살아 있을까요? 빚진 것이 있어요.”
“붙잡으려면 달에 가야 해. 거기에 별장을 만든 모양이야. 나이 먹은 것을 자기도 느낀 모양이다. 그 여자에게 빚을 갚으려면 빨리 숙제를 정리해야지.”
달세계 식민지는 돈 많은 노인들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즐거운 곳이었다. 인력이 적기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으며, 젊어진 기분도 들 뿐더러, 실제로 오래 살 수도 있다.
“알았습니다. 하겠어요.”
이윽고 조의 우수한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녁 식탁에서 모두가 하는 말을 조금씩 알게 되고, 간단한 고속어로 대답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게일은 수업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그리고 4,5일 동안에 몇만 개의 새로운 말을 가르쳐주려고 하여 조는 자기도 모르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만둬요, 게일. 나는 슈퍼맨이 아냐. 실수해서 들어온 것 뿐이야.”
“그런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자, 들어요.”
“만일 낙제를 한다면……, 나를 용서하겠어요?”
게일은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만약에 낙제를 하면 당신의 목을 찢어서 입에 쑤셔 넣지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낙제를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좋은 남편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너무 말이 많은 걸요.”
두 사람은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조는 머리가 좋았다. 새로운 말을 모조리 외워갔다.
조는 끝내 고속어를 배워치웠다. 그러자 게일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는 이제부터예요……. 다른 선생에게 넘기기 전에,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어요.”
“알았어요. 배가 고플 때에도 이때까지와 같이 빨리 생각하고 고속어로 말해야 한다는 거군.”
조가 말하자 게일이 받았다.
“잘도 아시는군요. 누가 슈퍼맨이 아니라고 할까 봐서요?”
“예, 선생.”
게일은 조의 귀를 잡아당겨,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안녕, 조.”
그 후 몇십 일 동안 조는 게일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의 초감각을 조사한 것은 윔즈라는 키가 작은 남자였다. 초감각이란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텔레파시(정신 감응), 먼 곳의 것을 꿰뚫어 보는 천리안, 마음의 힘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염동력 등을 말한다.
조의 초감각 능력 중에서는 염동력이 가장 우수해서, 작은 주사위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톤의 무게를 가진 것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아직 없었다.
어느 날 천리안의 힘을 조사 받고 있을 때, 조는 자기도 모르게 윔즈와 텔레파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시간은 짧았지만 고속어로 꽤 긴 말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럼. 사람의 생각이란 말하는 것과 같으니까 말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군. 뇌가 전파 같은 것을 내보내는 사람도 있어. 어떤 사람은 훈련에 의해서 할 수 있게 되지. 아무런 훈련을 받지 않아도 갑자기 되는 사람도 있어. 아무래도 전혀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보다 더 우수한 생물이면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우리들은 넓은 바다 밑에서 조그만 돌멩이를 줍고 있는 것과 같은 거야.
-어떡하면 나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될까?
-곧 알게 될 거다.
여기서 갑자기 텔레파시는 끊어졌다. 그리고 윔즈는 일어섰다.
“조, 너의 수업은 끝났어. 너는 텔레파시에는 적합하지 않군. 그만두겠어.”
“그러나 윔즈 박사, 지금 것은 마치 전화처럼 확실했어. 그러면 내일이라도…….”
그러나 윔즈 박사는 머리를 내흔들었다.
“너의 텔레파시 능력은 우연하게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으니까 말야.”
사실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루에 24시간밖에 없다는 것은 매우 짧다. 그러나 아무 하는 일없이 멍청하니 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24시간은 너무 길다.
훈련은 거듭 계속되었다. 조는 얼굴 모양이나 머릿속도 달라지고,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처럼 되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의 조는 자연 그대로의 천재였으나 지금은 훈련받은 천재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뚱뚱이 볼드윈과 조는 말을 타고 목장을 돌았다. 볼드윈이 말했다.
“자네도 이제는 차츰 일을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되어서 말야.”
고속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볼드윈의 대화 방법에는 그다운 침착함이 스며 있다. 조는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요.”
“우리들이 천사의 편에 서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 때문에?”
“네. 지금의 인류의 행복에 우리가 과연 유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입니다.”
그러자 볼드윈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조, 세상은 재미있는 거야.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야. 우리들이 일하는 것은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디서 스피커가 볼드윈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아주 작은 라디오를 꺼내더니 고속어로 한 마디 했다.
“조, 방에서 기다려 줘!”
볼드윈은 말을 몰아 뛰어갔다.
무엇인지는 모르나 굉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조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곧 볼드윈이 그를 불렀다. 서둘러서 가봤더니 게일도 와 있었다.
볼드윈은 안색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
“조, 자네가 할 일이 생겼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캐슬리 부인이다.”
“즐겨 하겠습니다.”
조가 서슴없이 대답하자, 볼드윈은 설명하기 시작했다.
“좋지 못한 뉴스다……. 그 마이크로필름에는 세 번째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캐슬리 부인은 손에 넣었어. 그리하여 노버 효과를 일으키는 장치를 신세계 호텔에 설치했어!”
“그런 어리석은…….”
“그 장치를 파괴하려고 하면 곧 폭발하게 되어 있어. 또한 달에 있는 방아쇠를 당겨도 폭발이 일어난다. 물리학자로서의 내 견해인데, 달에 있는 방아쇠를 파괴하지 않는 한 신세계 호텔에 있는 노버 폭탄은 없애지 못한다. 그럴 때는 이 지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볼드윈은 여전히 안색도 변하지 않고 계속했다.
“그 방아쇠는 달에 있는 캐슬리 부인의 돔(반구형의 지붕) 속에 있어. 그 여자의 곁에 있는 모양이다. 그 스위치를 끊지 않는 한, 그 돔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지 않고 억지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이것 또한 노버 폭탄의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거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먼저 캐슬리 부인을 죽인다.
2. 다음에 방아쇠의 회로를 부수고, 지구에 전파로 지령을 보내는 기계를 부순다. 이것을 재빨리 하지 않으면, 그 여자의 부하가 기계를 손에 넣으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3. 그 회로를 파괴했다는 보고가 지구에 닿는 동시에 우리는 신세계 호텔을 공격하고, 노버 폭탄을 파괴한다.
4. 세 번째 필름을 찾아내 태워버리고, 노버 폭탄과 그 회로를 만들어낸 기술자 전원에게 기억을 없애는 약을 주사한다.
자, 질문이 있으면 하라구.“
그래서 조는 물었다.
“지구를 불태워 버리면 달도 함께 말려든다는 것을 그 여자는 모르고 있습니까?”
“그 여자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여자다. 그녀가 있는 돔에서는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지구가 태양으로 변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있는 거야. 그 여자는 지구의 여자 황제가 되어, 지구를 정복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때까지 전 지구를 정복한 사람은 없으니까 말야. 그리고 아무도 그런 흉내를 내지 못하도록, 자기가 죽으면 그 몇 시간 후에 저절로 지구가 불타오르도록 조차 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여자군요. 그럼 나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음, 계획은 다음과 같다…….”
하고 볼드윈은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조와 게일은 달로 가서, 달세계 식민지에 있는 부유한 노부부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그 노부부는 우리 편이다. 그러는 동안 노부부는 지구로 돌아오게 되겠지만, 조와 게일 두 사람은 달이 마음에 든다면서 남아 있기로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는 광고를 낸다. 그때쯤 캐슬리 부인의 집에서는 사고가 일어나고, 하인 두세 명이 없어진다. 그 여자는 아마 너희들 두 사람을 고용할 것이다. 달에서는 하인을 좀처럼 구하기 힘드니까 말야.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캐슬리 부인의 돔에 들어가면, 조와 게일 두 사람이 생각해서 해야 한다. 돔에는 이미 매킨디라는 사나이가 들어가 있는데, 그가 둘의 통신을 도와줄 것이다. 한패는 아니지만, 우리의 앞잡이로서 텔레파시를 할 수 있다. 그 사나이의 능력은 텔레파시뿐이다. 게일은 매킨디에게 텔레파시로, 그 사나이가 조에게는 소형 라디오이다.
볼드윈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조는 게일을 바라보았다. 게일은 생긋 웃었다. 게일이 텔레파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볼드윈은 다시 계속했다.
“게일은 캐슬리 부인을 죽인다. 조는 재빨리 들이닥쳐 기계 회로를 부순다. 알았어?”
조가 캐슬리 부인은 자기가 죽이겠다고 말하려 하는데 게일이 먼저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네, 알겠습니다.”
“좋아. 조 자네의 지능지수는 85, 게일은 95야. 두 사람은 부부로 행세한다. 아내가 우쭐대는 형이군.”
그러자 게일은 조를 보고 생글거리며 웃었다.
볼드윈은 끝으로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조, 지휘를 하는 것은 자네야. 자네들의 서류는 지금 만들고 있어. 다시 말해 두지만, 최대의 스피드가 필요하다. 정부가 아무 것도 모르고 신세계 호텔을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기는 하겠지만, 서둘러서 해줘야 한다. 그럼 행운을 빈다.”
 
 
캐슬리 저택으로
 
캐슬리에 대한 작전은 볼드윈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었다. 8일째, 달세계 신문에 두 사람의 구직 광고가 나자, 곧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캐슬리 부인의 집사로서 제임스라고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시는 모양이신데…….”
“그렇습니다. 될 수 있으면 급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만.”
“그렇다면 캐슬리 부인이 가장 좋을 거요.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시험이라고 하면 좀 뭣하지만…….”
이리하여 두 사람의 슈퍼맨은 보통 인간에게 시험을 보았다. 합격될 것은 뻔하다.
이틀 후, 조와 게일은 캐슬리 부인의 돔에 들어갔다. 게일은 주위를 둘러보고 난 후 고속어로 속삭였다.
“조, 저와 진짜로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저는 당신 정도로 참겠어요.”
“그만둬요, 게일. 누군가가 듣고 있을지도 몰라.”
“들어 봤자 내가 천식 환자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이봐요, 조, 나도 훌륭한 아가씨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인기가 좋은 아가씨인데 그것을 희생하고 여기까지 와서…….”
“무슨 인기? 300명 죽인 인기?”
“정말 얄미워. 가까이 와요, 때려줄 테니까.”
이때, 집사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안내를 받으며 돔을 견학했다.
“야아, 정말 큰 돔인데요?”
조가 놀라는 척 말하자, 집사는 마치 자기 것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했다.
“달에서 가장 큰 돔이야. 어떤 나라 정부의 돔보다 크니까 말야.”
“과연 훌륭합니다. 공기가 없는 달에서 돔을 만들고, 언제나 새로운 공기를 넣어두고……. 과연 억만장자가 아니고서는 못할 일이죠?”
집사는 웃었다.
“억만장자 정도가 문제가 아니지. 캐슬리 부인은 몇천 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
조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거기에다 지구 전부를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지. 저 욕심에 찬 할멈이!>
하인들이 사는 건물만 해도 놀랄 정도로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넓은 돔 속에 크고 훌륭한 건물이 몇 개나 서 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캐슬리 부인의 저택이다. 그 밖의 곳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되어 있다.
길게 잔디밭이 계속되고, 가지각색의 꽃이 피어 있었다. 그 정원에 둘러싸인 큰 연못도 있었다. 달에 있는 단 하나의 연못이다.
연못 한복판에는 섬이 있고, 그곳에는 작은 그리스 신전과 같은 건물도 있다. 그 주위에는 몇 명의 감시원이 서 있다.
“저 섬에 있는 신전 같은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집사는 끄덕이며 대답했다.
“캐슬리 부인의 가장 귀중한 보물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세 사람이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돔의 천장이 차츰 어두워져 왔다. 그리고 별들이 희미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달에서는 밤이 반 달마다 온다. 그렇게 되면 곤란하니까 돔에서는 하루 동안 열 다섯 시간을 밝게 하고, 그 후는 밤이 되게 하지. 그러니까 지구와 같게 살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집사는 둥둥 15미터 정도 날아서 두 사람을 하인들의 건물로 안내했다.
달에서는 인력이 작기 때문에 누구나 멀리까지 날 수가 있다.
“여기가 당신들 방이야. 마음에 들어?”
이렇게 말하고 집사는 또 자랑스레 방안을 둘러본다. 큰 거실, 부엌, 침실, 응접실로 이어지는 깨끗한 주택이다.
두 사람은 그날 밤부터 당장 다른 하인들과 친해졌다.
매킨디라는 사람은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였다. 진짜 원예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텔레파시로 게일에게 알려주었다.
<이 돔에는 200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 모두 캐슬리 부인의 하인이다. 돔 공기부의 기사, 전기 기술자, 돔을 지키는 군대로 나뉘어 있으며 제각기 계급이 있다.>
<그럼, 우리들의 계급은?>
<집안에서 일하는 하인이니까, 중간 정도일 것이다.>
매킨디가 알려주는 것을, 게일은 한 마디로 조에게 알려주었다.
그날 밤, 하인들만의 잔치가 있었다. 새로 들어온 게일과 조를 환영해 주는 모임이었다.
잔치가 끝나갈 때쯤, 매킨디는 모두가 말하는 것을 게일에게 알려주었다.
<게일, 당신은 좀 말괄량이기는 하지만, 사람은 좋다고……. 그런데 그 늙은 바보 같은 남편에게는 아까울 정도로 상냥한 부인이라고 하고 있다.>
<그대로다. 그리고 다른 것은?>
<조와 결혼하기 전에는 미용원에서 일을 했다고……. 정말인가?>
<정말이다.>
한 사람에게만 말해도 무엇이든 곧 퍼져나간다. 물론 조는 바보스럽기는 해도 사람은 괜찮다는 것, 게일은 안마의 명수라는 것, 그것은 곧 알려졌다.
다음날 당장 하녀 한 사람이 게일을 찾아왔다.
“게일 씨, 당신은 안마를 잘하신다죠? 머리가 좀 아픈데, 안마로 안 될까요?”
“글쎄요……. 한번 해보죠, 뭐.”
게일은 천천히 하녀의 머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하녀에게 최면술을 거는 정도는 게일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하녀의 두통은 곧 씻은 듯이 나았다.
그 소문은 날개 돋친 듯이 퍼져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캐슬리 부인의 비서까지도 안마를 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더욱이 그것은 돈도 받지 않은 무료였으니, 게일에 대해서 나쁘게 말할 사람은 없으리라. 말할 것도 없이 게일은 곧 영리하고 상냥한 하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캐슬리 부인의 몸종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조는 안마 같은 것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안성맞춤으로 집사가 이렇게 명령했다.
“조, 밤에는 집안에 있는 화분을 모두 밖으로 내놓게.”
“네, 밖으로요?”
“그렇다네. 밖에 내놓는다고 해도 돔의 안이니까, 집안에 두는 것과 같지만 말이야. 아무튼 정원에 내놓아 주게. 캐슬리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거야. 식물은 밤이 되면 집 밖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그것은 조에게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그러기를 바라도 잘 안 될 것이었다.
돔 안이 어두워지자, 조는 화분을 정원으로 옮겨놓았다. 정원을 돌아다니는 병사가 조에게 웃어 보였다.
“이봐, 조, 힘들겠는데. 많아서 말야.”
“뭐 그렇지도 않아. 가벼우니까 힘들지는 않다구.”
연못가에 있는 병사들도 조와 친해지려고 했다. 왜냐하면 신전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보초를 설 때는 담배를 못 피우게 되어 있었던 것인데, 사람이 좋은 조를 대신 세워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연못 한복판의 신전, 거기가 수상하다. 거기야말로 노버 폭탄의 방아쇠 회로가 장치되어 있는 곳이다. 캐슬리 부인 곁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그 신전에서 지구로 무서운 전파가 날아간다. 그 전파의 신호를 받으면 지구에 있는 신세계 호텔에서는 어찌 되는가? 거기에 장치되어 있는 노버 폭탄은 폭발을 하고, 지구는 순식간에 태양처럼 불타오르고 만다.
밤이 깊어서 조는 자기 방으로 되돌아갔다.
게일은 누가 불쑥 들어와 보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리고 입술을 그의 귀에다 대고 고속어로 한 마디 속삭였다. 다른 사람이 보면 꼭 입을 맞추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이 방에 비밀 마이크가 장치되어 있어요. 우리가 하는 말이 녹음되어 있을 거예요. 무서운 자들이죠.”
조는 끄덕이고 큰소리로 말했다.
“정말 좋은 집에서 일하게 됐어. 먹는 것도 좋고, 방도 깨끗하고…….”
“네, 정말 잘됐어요. 급료도 괜찮구요…….”
하고 나서, 게일은 고속어로 속삭였다.
“매킨디가 조금 전에 알려주었어요. 그 신전이 틀림없다구요. 그 건물과 기계에 폭탄이 장치되어 있대요. 그리고 노버 폭탄의 방아쇠가 끊어져 있을 때에도 파괴하려고 하면 폭발하는 모양이에요.”
조는 게일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
“이제 잘까, 게일?”
“네, 그래요.”
게일은 침대로 들어가면서 속삭였다.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요?”
“음, 그 할멈도 수리를 한다든가 할 때를 대비해서, 폭발시키지 않고 건물을 열게 하고 있을 거라구.”
“어디에 있을까요?”
“손에 가지고 있을 거야. 방아쇠의 스위치 앞에 안전 스위치가 있을 것이 틀림없어요.”
“그럼, 죽이기 전에 그걸 빼앗아야겠군요.”
게일은 담요를 뒤집어쓰더니 조의 귀에 뭔가 조그마한 것을 꽂아 넣었다.
“조, 매킨디와 연락하는 라디오예요.”
 
 
드디어 평화가
 
다음날 아침, 조가 화분을 다시 집안으로 들여놓고 있는데 귓속의 라디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매킨디가 게일에게 이야기하는 말이다.
<여어, 게일 씨, 안녕.>
<안녕하세요, 매킨디 씨.>
<비서인 톰슨 씨가 부르고 있었어요. 아마 안마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 그래요? 곧 가보겠어요.>
그러고서 얼마 후, 게일의 말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역시 안마 때문에 저를 부르셨군요. 톰슨 씨가 아니고 부인이시라구요? 네에, 낮부터 어깨를 주물러달라구요…….>
<허허, 하녀를 그만두고 안마업을 차렸으면 좋겠어.>
조그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 말을 듣고, 조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게일은 캐슬리 부인의 방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을 지키는 병사가 감시하고 있을 것은 뻔한 일,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저녁 식사 때, 게일은 지나치면서 한마디했다.
“점심때 해보고 마음에 든 모양이에요. 그러니 아마 오늘밤도 부를 거예요. 그럼 반드시 부인의 침실로 들어가서 잠들 때까지 안마를 하게 돼요.”
“좋아. 오늘밤에 일을 거행하는 거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텔레파시를 할 수 있는 매킨디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게일이 텔레파시로 알려오는 보고를 조에게 전해 주게 되어 있었다.
조는 홀에서 집사인 제임스와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귓속의 라디오에서 속삭였다.
<게일은 지금 부인의 방에 있다.>
조는 집사를 보고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형은 우리 누나와 결혼했어요. 참 이상하지요.”
“뭐가 이상해? 자네 누나가 형의 부인이 된 것인데, 뭘.”
“그렇게 말하면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 또 이 꽃을 밖에 내놓아야겠군요.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부인에게 욕 먹어요.”
“그렇지. 얼른 마치고 잘 자라구, 조.”
“제임스 씨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고 조는 화분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다시 귓속의 라디오가 울리기 시작했다.
<안마를 시작한 모양이다. 무전 스위치를 발견했다. 허리띠에 달고 있다. 잘 때는 침대 곁의 테이블에 두는 모양이다.>
<부인을 죽이고, 그것을 뺏으라고 전해라.>
<전했다. 그러나 먼저 닿으면 폭발할 신전의 장치를 캐물을 모양이다.>
<우물쭈물하지 말라고 말해라.>
조는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기에게는 텔레파시의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매킨디를 통해서 게일에게 명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때였다. 돌연 조의 머릿속에서 게일의 소리가 똑똑히 울려왔다.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은 부드러운 소리다……. 우연하게만 나타나는 조의 텔레파시 능력이 가장 중요한 때에 나타난 것이다.
<조! 당신의 소리가 들려요. 제 소리 들리나요?>
<음, 들려……. 매킨디, 계속 라디오 옆에 있어 줘. 잘 되면 자네의 라디오는 내버려라!>
<알았다!>
다시 게일의 소리가 울려왔다.
<이제 곧 뻗을 거예요. 최대로 아프게 했어요.>
<좋아. 더 최대로 아프게 해요!>
조는 신전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게일, 당신은 아직 남편을 찾고 있소?>
<벌써 발견했는걸요.>
<나와 결혼해요. 그러면 토요일 밤에는 언제나 두들겨주겠어.>
<나를 두들길 사나이는 없어요.>
<내가 두들겨주지.>
곧 조는 감시병에 가까워졌으므로 뛰는 것을 그만두었다.
“여어, 조!”
<두들겨봐요. 약속했어요.>
병사는 다시 조를 부르며 태평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여어, 조, 성냥 가지고 있어?”
“응…….”
하고 조는 성냥을 꺼냈다.
순간, 성냥을 꺼낸 손이 연못가에 서 있는 병사의 명치를 내리쳤다. 그러고서 조는 연못 한복판의 섬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게일, 지금이다! 해치워!>
<죽었어요!>
<좋아, 허리띠를 조사해. 볼드윈이 가르쳐준 것과 다른 것이 안전 스위치다.>
하며 조는 연못을 뛰어넘었다.
“서라! 뭘 하는 거야, 조?”
감시병이 외치며 총을 들이대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조의 오른손이 먼저 날아 그자의 목을 내리쳤다.
<허리띠를 풀었어요, 조!>
<가지고 도망쳐요!>
<안 돼요, 조. 밖에 있는 감시병이 열지 않으면 문이 안 열려요!>
조는 재빨리 신전의 문을 열었다. 안전 스위치가 들어 있지 않으면 폭발했을 문이다.
그는 볼드윈이 준 작은 도구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것을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쇠 구멍에 댔다. 쇠는 새빨갛게 되어 녹기 시작했다.
신전 주위에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게일의 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게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별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 놈들이 문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그쪽은 괜찮나요?>
<응. 매킨디, 자네가 증인이 돼주게!>
하며 조는 이렇게 말했다.
<나 조 그린은, 당신 게일을 아내로 맞아……>
그 말에 조용히 대답하는 게일의 소리.
<나 게일은, 당신 조 그린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조의 머릿속에서는 게일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소리가 음악처럼 울려왔다. 그리고 최후의 문이 열렸다.
<죽음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는 날까지……>
<죽음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는 날까지……>
<게일, 최후의 문을 열었어. 당신을 사랑해요. 이제부터 들어간다.>
<침실 문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저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조, 문이 부서졌어요. 모두 내 쪽으로 오고 있어요. 조, 안녕! 정말 행복했어요.>
그것으로 게일의 텔레파시 소리는 끊어지고 말았다. 죽음을 당한 것이다.
조는 노버 폭탄의 방아쇠, 그 신호의 발신 장치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다른 작은 상자를 꺼냈다. 조는 그것을 발신 장치 앞으로 밀어 넣으며 버튼을 눌렀다.
무서운 폭발이 일어났다. 발신 장치와 함께 조는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물론 폭파용으로 가지고 온 작은 상자도 함께…….
그러나 그 뚜껑에는 분명히 새겨져 있었다.
「모든 친구와 지구를 위하여 죽어가는 조 그린 부부, 여기에 잠들다」
라고.
 
*끝*
 
 
작품 해설
 
로버트 하인라인에 대하여
 
밤하늘을 우러러보세요. 반짝이는 별 중에 다소 불그레한 별이 있지요. 적색 항성, 곧 붉은 태양입니다.
자연의 핵융합 원자로라고도 할 수 있는 태양에는 언제나 수소가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고 오랜 동안 수소가 탄 가스가 쌓여, 태양은 부풀어올라 나중에는 이치에도 맞지 않게 크고 붉은 늙은 항성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들의 태양도 지구에 닿을 만큼이나 커지게 됩니다. 물론 지구는 불타버리고, 생물은 모두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태양은 갑자기 줄어들어 굉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노버 신성(新星)이라고 합니다.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대폭발입니다. 단 한 발로 지구를 날려버릴 정도의 초대형 수소 폭탄이라 하더라도 노버에 비하면 장난감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폭탄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노버 폭탄이라는 것은 먼 우주 끝의 별과 전쟁을 할 때에나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초인 부대」는 이 폭탄을 사용하려는 나쁜 할머니를 죽이고, 지구를 지키려는 초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초인이란 무엇일까요? 총알보다 빨리 달리고, 높은 빌딩도 뛰어넘고, 기관차보다 힘이 강한 슈퍼맨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뚱뚱이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초인이라는 것은 잘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초인들은 그렇게 되기 위하여 엄격한 훈련을 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밖에도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입과 귀를 사용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힘입니다. 이것을 텔레파시라고 하며, SF에만 나오는 말이 아니라 세계 여러 대학에서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초심리학이라고 합니다.
텔레파시와 같은 초능력을 초감각이라고 합니다. 초감각에는 텔레파시 외에 투시력도 있습니다. 벽 저쪽에 숨어 있는 갱을 꿰뚫어 보는 힘입니다. 서울에 있는 사람이 제주도에 있는 사람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천리안이라고 말합니다.
「초인 부대」의 주인공에게는 주사위의 눈을 마음대로 달라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텔레키네시스, 염동력(念動力)이라든지, 정신동력(精神動力)이라는 것으로서, 마음의 힘으로 자동차를 뒤엎거나 총을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며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마음의 힘으로 어디에나 날아갑니다. 이것을 텔레포테이션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정신 감응 이동이라고 합니다.
또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아는 공간 감각, 철의 벽도 뚫고 나가는데 구멍이 없다는 분자 침투,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며 미래에 일어날 것을 아는 능력도 있습니다.
작자 하인라인은 “인간은 반드시 진보하며, 그러한 힘을 몸에 지닌다, 단 그때에 초인들은 그 힘을 올바른 데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에는 힘, 눈에는 눈으로 맞서고, 정의를, 우리 지구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은 예의를 지키고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일이며, 또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벌을 가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한 아이는 채찍으로 때리지 않으면, 세상은 잘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하인라인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우수한 SF 작가입니다. 세계의 SF 작가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인라인은 1907년 미국의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아나폴리스 해군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중령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 1934년에 해군을 그만두었습니다. 27세 때 해군 중령이었다고 하니 꽤 우수한 군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경험은 1959년 SF 대상 ‘휴고상’을 받은 「우주 전사」에 훌륭히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병사가 훌륭하게 성장해 가는 것을 그린 명작으로 남자 어린이는 꼭 읽어야 할 명작입니다.
이 작품에는 미국은 왜 싸우느냐, 불량 소년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 정의라는 것은 무엇이냐, 공부라는 것은 무엇이냐,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는 것이 자꾸만 되풀이되어 나옵니다.
군인을 그만두고, 하인라인은 대학에 가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또 건강이 나빠져서 대학도 그만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광산에서 일하기도 하고, 외교원이 되기도 하고, 건축 일에 종사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일을 한 후 1939년에 겨우 SF 한 편을 썼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을 때는 벌써 유명한 SF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하인라인은 어린이를 좋아하여, 작품을 보면 절반은 어린이용입니다. 그리고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 미래의 역사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그것에 의해 많은 소설을 쓴 점이 다른 작가와는 다릅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그는 곧 해군의 기술관이 되어 레이더 연구를 시작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혀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곧 명작을 써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미국에서 가장 좋은 문예 잡지에, 미래사에 기초한 소설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우주 항로의 장님 시인 라이슬링, 우주선의 사고로 장님이 된 로켓 기관사의 이야기.
 
지구의 푸른 언덕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지구의 땅을
지금 다시 한번
밟을 것을 허락해 주세요
나의 눈으로 하여금
푸른 하늘에 든 한번 칠한 구름에
그렇지 않으면 향기로운
푸른 언덕에서 편히 쉬게 해주세요
 
이렇게 시작되는 이 단편 소설은 SF의 역사에 남을 명작입니다. 또 「끝없는 감시」는 생명을 버리고 지구를 지키는 젊은 사관의 이야기이며, SF를 알지 못했던 많은 미국 사람들의 가슴속에 큰 감격을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인라인은 어른들의 소설 16권과 어린이 소설 12권을 지어 SF계의 제1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믿고 항상 말하는 것은…… 공부를 해라. 규율을 지켜라. 목적을 향해 돌진해라. 그리고 정의를 쟁취해라.
 
 
 
 
책명   초인 부대
  SF 세계명작 16
 
인 쇄      1975년 10월 5일
발 행      1975년 10월 10일
역 자      박홍근
제 판      명림정판사
옵 셋      장원정판사
인 쇄      일신사
제 본      양지실업(주)
발행인     박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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