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gli 블로그홈 | 로그인
강려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전체 [ 16 ]

16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끝 댓글:  조회:832  추천:0  2019-12-2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3-1   감성과 지성과 영성의 문학(1) 홍문표   1. 문학의 길, 인간의 길   이 거대한 우주, 이 영원한 우주 속에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야 무신론자라면 인간이란 지상에 생존하는 생명체의 하나로 자연환경 속에서 어떤 단백질 인자가 무수히 많은 진화와 변이를 거쳐 고등생물로 진화한 존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생명체들 중에 왜 인간만이 모든 만물을 대자적으로 사고하고 의식하는 존재가 되어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까. 그것도 특별한 진화의 결과인가. 그렇다면 현생 인류의 전 단계는 무엇인가, 원숭이인가, 침팬지인가. 만일 원숭이나 침팬지가 인류의 전 단계라면 왜 아직도 원숭이와 침팬지가 현존하는가, 그들은 아직 진화가 덜 된 것들인가. 이렇게 진화론과 창조론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인간을 진화론으로 볼 것인가. 창조론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인간의 존재이유가 하늘과 땅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지금도 저 열대의 밀림에서 서식하는 침팬지가 우리 할아버지가 되고 인간이 더 진화하면 우리도 하늘을 나는 조류가 된다는 논리가 되는데, 만일 그런 논리에 동의한다면 우리 인간은 아직도 진화과정에 있는 동물의 하나일 뿐이며 그러기에 인간의 존엄이나 영혼의 소중함이 무시되는 유물론의 메마른 인생관만 남게 된다. 그러나 모든 생명들이 각각의 유전자와 각각의 생존질서를 가지고 탄생한 것이라면 여기엔 조물주의 창조적 계획과 목적을 생각해야 하고, 특히 모든 생명체들 중에 유독 인류만이 최고의 의식적 존재이며 영혼을 가진 존재로 이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별한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 왜 우리 인간은 수백만 생명체 중에서 의식이 있고, 정신이 있고, 영혼이 있는 존재로 만들어 졌을까. 그냥 우연히 운 좋게 진화되어 만들어진 존재라면 우리도 개나 돼지처럼 잠시 세상에서 약육강식의 본능으로 살다가 가면 되는 것이지만 모든 만물을 판단하고 경영하고, 지배할 수 있는 신의 속성을 가지고 창조된 영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라면 영장으로서의 역할, 사고하고, 모방하고, 창조하고, 변형할 수 있는 지적 존재로서의 역할, 그 존재 이유와 삶의 방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유와 행동이 요구된다. 그리고 창조적인 인간, 영장으로서의 인간, 영적존재로서의 인간, 로고스(loges)를 가진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다면 마땅히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그 해답을 모색할 것이며, 그러한 존재 인식의 바탕에서 독특한 인간의 문화와 문명을 만들 것이고, 문학도 해야 할 것이고 역사를 창조하고 기록해 가야 할 것이다. ​ 만물의 영장을 자인 한다면 인간의 첫 번째 작업은 마땅히 인간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인간의 연원, 인간의 출발, 인간의 탄생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출발지가 없다면 과정도 없고 종착지도 없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성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모든 존재들의 실체는 어떤 원인과 결과,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한다. 의식이 없는 목석이나 동물들은 이런 문제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만은 정신과 영혼과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에 존재의 근원과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상의 모든 민족들의 그 연원이나 탄생에 대한 생각들을 보면 모두가 우주를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히브리민족들은 야웨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고, 인간도 특별히 하나님이 창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히브리와 대조를 이루는 인본주의 그리스 민족도 제우스 신으로부터 인류가 탄생되었고 로마에서는 주피터, 중국에서는 삼황이. 인도에서는 브라만이, 그리고 한국에서는 환인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를 더러는 신화니 비과학이니 허구니 하지만 한국인에게 천손 사상은 허구가 아니라 역사이고 정신이고, 믿음이고, 그러기에 그것은 진실이다. 이처럼 모든 인류의 출발은 초월적인 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은 목석이나 짐승과는 전혀 다른 정신과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다. 정말 신의 형상을 입은 영적인 존재다. 그러기에 인간의 기원을 자연이나 아메바나 침팬지에서 찾을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류의 출발은 이처럼 하늘로부터 천손으로, 로고스로, 신령한 존재로 시작했는데 인류의 역사과정과 현재는 매우 비관적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형상을 입고 창조된 인간이 득죄하여 실락원의 저주를 받게 되었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지상의 형극을 걷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비관적 인생관은 기독교의 교리만이 아니라 불교에서도 그렇다. 불교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세상의 어느 것도 고정적인 것이 없고 그러기에 실상도 없는 것인데 그런데도 인간은 그런 가변적인 사바세계에 집착하여 허망한 꿈을 꾼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장 현실주의적인 공자의 유교적 사고에서도 도(道)가 상실된 현실을 개탄하면서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는 독백을 하게 된다. 이점에 대하여 혹자는 또 이들을 종교적 망상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 그렇다면 가장 냉철한 이성적 사유의 철학에서는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는가. 놀랍게도 철학자들도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 키엘케고르는 인간은 근원적으로 불안한 존재라 했다. 순진무구한 경우는 그 무지가 불안한 것이고, 삶은 늘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선택의 불안이 있고, 득죄한 이후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형별, 그 유한성에 대한 불안이 있다고 했다. 인간이 불안한 존재이기에 결국 절망적인 존재라는 인식은 무신론의 철학자도 마찬가지다. 싸르트르는 인간은 목석이나 동물과 달리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는 대자적 존재인 바 그래서 오히려 인간들은 늘 결핍을 느끼게 되고 걸신들린 아귀처럼 그 결핍을 채우고자 몸부림치는데 문제는 아무리 결핍의 항아리에 물을 부어도 밑 빠진 항아리는 채울 수가 없으며 그러다가 마침내는 무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허무를 세계내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아무리 뛰어도 유한한 지상의 소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상황의 존재라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프로이드는 인간을 욕망의 존재라 하였고,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욕구불만과 갈등을 느끼게 되는데 욕구를 채우면 또 다른 욕구가 분출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란 만족과 불만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불만의 존재라 하였다. ​ 그렇다면 문학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 그동안 문학에 대한 정의를 보면 문학이란 인간의 사상 감정을 미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며 이를 통해 교훈과 쾌락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공통된 문학관이었다. 말하자면 감동적인 문학형식을 통해 기쁨도 주고 깨달음도 준다는 것이 과거의 문학관이다. 왜 인간에게 교훈과 쾌락이 필요했을까 그것을 역으로 설명하면 그것은 인간이 무지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인간이 완전하고 행복했다면 교훈과 쾌락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문학에 대한 정의나 목적이 그러한 위안이나 교훈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문제해결의 문학, 치유의 문학, 구원의 문학이라는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왜 현대에 와서는 치유와 구원을 문학의 기능과 역할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는가. 그것은 인간이 과거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와 갈등에 빠져 있고, 중병에 걸려 있고, 죽을 지경의 절망에 있거나 뭔가를 상실했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 이처럼 인간은 신적인 형상을 입고, 탄생한 그 화려한 출발과는 다르게 그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서는 종교나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문학이나 모두가 자아의 상실, 주체와 타자의 분리, 또는 본질과의 괴리로 인한 갈등과 좌절, 그 허무와 불안을 인간의 실상, 즉 실존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영혼을 가진 인간의 당면 문제가 되고 문학의 과제가 되고 그러기에 종교나 문학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바로 인간의 존재이유가 되고 문학의 존재이유가 되고 최고의 가치가 되고 최고의 윤리가 되는 것이다. ​ 물에 빠진 자, 잃어버린 자, 정상이 아닌 자, 얽매인 자, 배고픈 자, 그래서 마침내 고독과 허무와 죽음에 이르게 된 자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물속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이며, 정상을 회복하는 것이며,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결핍을 채우는 것이다. 이를 포괄적으로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종교나 문학이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구원이 그 핵심이 된다. 그런데 종교가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문학에도 구원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변별성이 있는가. 그리고 문학에서는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내가 창작하고 있는 내 작품들이 또는 우리들의 작품들이 정말 구원에 봉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유행 따라 물결 따라 덩달아 춤이나 추는 맹목의 손짓인가 스스로의 문학에 질문하면서 우리에게 절실한 문학적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하겠다. ​ 그렇다면 먼저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에는 어떤 과정이 있는가. 이 점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하겠는데 이에 대하여 일찍이 키엘케고르는 구원의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한 바가 있다. 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이 그것인데 이는 인류가 추구하는 예술, 도덕, 종교와 관련한 문화적 구원의 방식일 뿐만 아니라 감성과 이성을 통한 인간 구원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라는 점에서 문학적 구원을 검토해보고자 하는 본 주제와 밀접한 것으로 사료되기에 이를 함께 검토하면서, 정말 문학을 하는 우리들의 궁극적인 과제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도 문학적 구원이란 주제에 동참할 것인가 그 길을 물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 2. 미적 실존과 감성의 문학 ​ 키엘케고르는 그의 저서 『불안의 개념』에서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불안한 존재라고 하였다. 이는 곧 인간만이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을 느낀다는 말과 같다. 그러기에 인간은 불안에서 피할 수도, 그것을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절망이다. 그래서 불안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불안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허무하고 슬픈 존재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면 이를 극복 해야할 책임과 사명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근원적인 불안과 절망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고 거기에 구원이 있는 것이다. ​ 구원이란 결국 유한과 무한, 시간과 영원, 불가능과 가능, 구속과 자유, 죽음과 영생, 인간과 하나님, 지상과 천상이 분리된 단절에서 벗어나 완전한 일치와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그러한 일치가 불가능하다. 그것이 인간이고 실존이고 근원적인 불안과 고독인 이유다. 따라서 인간의 불안과 절망, 그 원죄의 천형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지만 불행하게도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자력이 아닌, 타력, 어떤 절대자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인데 신이 인간에게로 다가온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이성적인 역설이기 때문에 과학과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인간들로서는 그러한 기적을 믿기가 어렵다. 그래서 인간들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성과 감성을 가진 인간이 시도 할 수 있는 구원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가 미적 실존의 단계다. ​ 인간이 불안과 절망의 상태에서 시도할 수 있는 첫 단계는 미적 실존 또는 감성적 실존의 방식이다. 이는 가장 기초적이고 직접적이며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생활태도다. 사실 개개인의 현존재에 대한 출발점은 직접성이나 감성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미적 실존의 생활은 오직 그날 그날의 현실적인 생활에 만족하며, 그것에서 기쁨을 얻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모든 것은 내 자신의 힘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고통 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활방식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감성과 관능에 따른 만족이나 향수의 입장에 서는 것이 미적 실존이며, 또한 심미적 실존의 인간관이다. 비근한 예이지만 인간이 불안할 때 이를 회피하기 위하여 술에 취하거나 심지어는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자극을 통해 이를 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더욱 악화 시키는 방법이다. 그래서 보다 고상하게 승화시키는 방법으로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을 통한 초월의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미적 실존의 생활은 육체적인 것, 감각적인 것만을 주로 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비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향락과 쾌락을 추구할 뿐이다. 키엘케고르는 그의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미적 실존의 결과는 언제나 무라고 하였으며 그러기에 미적인 생활에서는 아무것도 얻어질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 감각적인 탐미를 통하여 현실을 도피하려 하지만 결국은 우수와 불안, 그리고 권태로 끝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미적 실존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쾌락의 윤작(rotation of crops)을 되풀이 한다. 쾌락의 윤작이란 끝없이 새로운 쾌락을 추구하는 것, 즉 심미적으로나 또는 감각적으로 항상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전환 없이는 신선한 자극이 없고, 신선한 자극 없이는 그 생활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악순환이다. 이는 술이 술을 부르고, 죄가 죄를 부르고, 미가 또 다른 미를 부르는 탐미적이고 악마적인 것이기도 하다. ​ 이러한 탐미적 실존의 대표적인 인물이 돈 판이다. 그는 수많은 여성을 단지 감성적 쾌락으로만 사랑할 뿐이며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부터 육체의 자유를 선언했을지라도 돈 판은 계속 불안에 쫓긴다. 아무리 새로운 쾌락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 쾌락의 순간이 끝 날 때마다 불안과 우수 그리고 권태는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탐미적 결과는 마침내 죽음을 수반한다. 따라서 심미적 실존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쾌락의 생활은 일시적이고 육체적인 만족은 가져다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그의 정신 또는 영적인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심미적 관심의 대표적 문화양식이 바로 문학예술이다. 특히 문학의 경우 낭만주의나 예술주의 또는 실험적인 형식주의들은 모두 감각이나 정서를 통한 미적 실존의 구체적인 표현행위가 된다. 그런데 우리 문학사에서 보더라도 불안 심리가 극도로 고조되었던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을 보면 국권상실과 자아상실이라는 이중의 불안에서 이를 벗어나고자 찾은 곳은 오히려 어둡고 축축한 현실 도피적인 공간이었다. ​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 아 밑없는 -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 이상화 「말세의 희탄」에서 ​ 이러한 병적인 감성의 시는 이상화뿐만 아니라 당시 황석우의 「태양의 침묵」, 홍사용의 「눈물의 왕」, 오상순의 「허무혼의 선언」, 박영희의 「일광으로 짠 병실」 등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이 절망과 불안의 심리를 벗어나기 위하여 모색한 탐미적 정서는 오히려 더욱 병적 정서에 침잠하는 퇴행적 자학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자조와 퇴행이 일시적인 위안은 될 수 있겠지만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정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라는 비판에 부닥치게 된다. ​ 미적 실존의 허구는 예술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 에서도 볼 수 있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나 「광화사」같은 소설을 보면「광염소나타」에서는 미적 욕망과 이상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주인공인 천재음악가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하여 방화와 살인을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광화사」에서는 주인공 화가가 눈먼 소녀를 범하고 죽이는 사건으로 미를 창조한다는 내용인데 모두가 미를 추구하지만 결과는 영혼의 공허함과 황폐함을 보일 뿐이다. ​ 한편 문학에서 미적인 관심은 특히 형식 창조라는 관점에서 끝없는 모색을 실험하고 있는데 새로운 형식의 실험, 낯설게 만들기, 기존 형식의 해체와 창조 등의 구호를 내걸고 도전하는 모든 형식주의들이 그것이다. 최근에 볼 수 있는 다다이즘, 쉬르리얼리즘, 모더니즘, 이미지즘, 포멀리즘, 해체시, 메타시, 키치시, 하이퍼시 등 시대마다 새로운 구호를 내걸고 도전하는 실험시들의 반란은 모두 새로운 형식의 도전이며 미적 감성의 욕망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의 미적 탐구들이 분명 일시적으로는 정서적 충격이나 해방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영원한 행복감이나 영혼까지 구원을 보장하는 궁극적인 해답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예컨대, 이상의 「오감도」가 당대 현실에서 정서적 미학적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기존의 것들에 대한 부정과 해체라는 돌발적인 용기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오감도가 인간의 영혼까지 구제하는 영원한 깃발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춘수의 무의미 시 가령 「눈물」같은 시가 독자들에게 일시적인 당혹감을 줄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형식 실험의 시들이 불안과 절망과 상실감의 현대인을 구제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해체시나 하이퍼시도 그렇다. 그것이 시적인 미학의 탐구는 분명하지만 그래서 일시적으로 신선한 감성의 충격을 주고는 있지만 그러한 당혹감으로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시적 감동이나 충동으로는 영원한 행복을, 또는 영혼의 구원을 담보하기란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다.   홍문표 시 창작 강의 노트 53-2 감성과 지성과 영성의 문학(2) ​ 홍문표 ​ 3. 윤리적 실존과 이성의 문학 ​ 그래서 지쳐버린 미적 실존 즉 감성적인 문학은 드디어 자신의 생활이 외면적, 육체적, 감각적, 개인적, 쾌락의 노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참된 자기의 모습을 찾기 위한 엄숙한 자각과 결단을 하게 된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에서 집단적인 것으로 감성적인 것에서 이성적인 것으로 미적인 것에서 윤리적인 것으로 양심과 정의와 평등의 실존으로 그래서 키엘케고르는 실존의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 실존을 미적 실존의 모순성을 의식하고 양심의 입장에 서는 실존이라고 했다. 즉 윤리적 실존의 인간은 유한과 무한, 상대와 절대, 시간과 영원과의 대립에서 유래하는 자기모순의 사실에 직면하여 불안이나 절망을 회피함 없이, 그것을 사실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통합하려고 결의하는 실존의 모습이다. 따라서 윤리적 실존은 모순된 현실에 직면하여 엄숙한 양심을 가지고 보편적인 것, 인간적인 것을 유한성인 자기 속에 실현하는 것을 자기의 의무로 자각하여 그것을 결단하는 실존이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실존의 생활은 보편적인 것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같은 윤리적 실존의 생활태도에는 항상 양심과 엄숙 그리고 사회적 의무만이 요구된다. 양심의 입장에 서서 자기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할 때 윤리적 실존은 행복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키엘케고르는 미적 실존을 영위하는 자들을, 꿀을 찾아 이곳에서 저곳으로 계속 이동해 가는 나비에 비할 수 있다면 윤리적 실존을 영위하는 자들은 자신의 임무에 절대 충직한 꿀벌에 비할 수 있다고 했다. ​ 이들은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미적 실존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견해를 표명하게 된다. 미적 실존에서는 결혼을 연애의 무덤으로 간주하므로 그것을 회피하고 계속 새로운 사랑을 찾아 유랑하는 반면 윤리적 실존은 결혼을 신이 제정한 성스러운 제도로 확신하고 평생토록 일편단심 충절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윤리적 실존의 단계에 이른 자들은 어디까지나 칸트가 말했던 실천 이성의 지상명령, 즉 이성과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그 어떤 형편에서도 내적 균형을 잃지 않고 합리적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조와 정직, 성실과 충절을 그 무엇보다 중시한다. ​ 그러나 윤리적 실존에서도 인간이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행복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 할 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도덕률마저 완전히 지킬 수 없다는 유한성, 즉 자기 자신이 너무 무력하며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윤리적이 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가 바라다보는 도덕적 이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우리는 현실의 자기가 너무나 추악하고 불순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통절히 느끼게 된다. 키엘케고르에 의하면 윤리적 실존은 이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이 거짓된 진지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절망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윤리적 행동과 수고는 자기도취, 자기 신격화의 거짓된 진지성으로 끝나고 만다.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자기를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리적 실존 속에서는 아무리 성자 같은 구도자라 할지라도 불안과 절망이 깃들어 있으며, 자기의 내면성에 깃든 불안과 부자유를 아무리 윤리적으로 포장해도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 문학에서도 감성의 문학이 윤리적인 문학으로 전환하였는데 그것은 먼저 중세 문학이나 고전주의 문학에서 볼 수 있다. 중세에는 금욕주의적인 종교와 철학이 역사를 주도하면서 문학의 주제는 권선징악이라는 율법적인 윤리가 주도하게 되었다. 감성은 늘 죄악시되었고, 윤리와 도덕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 설은 관념이나, 이성 또는 도덕이나 철학이 얼마나 중시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동양에서도 그렇다. 특히 중국의 공자는 사무사(思無邪)라하여 문학에 사특한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문학이란 도를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러한 도덕주의, 윤리주의 환경에서는 문학도 인간도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감성의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은 것이 근대 낭만주의였지만 지나친 감정의 과잉과 비현실적 이상의 추구는 다시 이성의 회복, 현실의 회복, 진실의 회복이란 사실주의 문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사실주의는 환상적인 미래보다 당장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현실 속에서 진리를 찾는 이성의 윤리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 1920년대 이 땅에서 제기된 리얼리즘의 양심은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의 인식이었다. 염상섭은 「만세전」에서 “모두 뒈져버려라!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라고 했다. 최서해도 「기아와 살육」에서 “모두 죽어라! 이놈의 세상을 부수라! 복마전 같은 이놈의 세상을 부수라, 모두 죽어라!” 이러한 개인적 분노는 마침내 집단적 분노로 발전한다. 원래 양심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고 집단적인 공동체적 삶의 율법이다. 그래서 이성과 양심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실주의는 개인적인 저항에서 집단적인 저항, 계급적인 저항으로 발전한다. 이 땅에 계급적 정의와 양심이 등장한 것은 1925년대부터다. 그러나 계급주의 윤리는 결과적으로 조국 분단과 동족 상생의 비극적 역사에 기여했고, 아직도 민족 분열과 대립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으며, 그토록 빈궁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내세운 리얼리즘의 진보적 윤리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빈부의 문제나, 사회적 모순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소란한 북소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1960연대 이후 참여문학이나 민중문학의 그 치열했던 양심과 정의와 민주화와 평등의 윤리도 소리만 요란했을 뿐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불신과 갈등만 커져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 사회란 양심과 정의와 평등의 윤리가 모든 것을 해결할 만큼 도덕적으로 그렇게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데서 미적 실존은 물론 윤리적 실존의 절망이 있는 것이다. ​ 4. 종교적 실존과 인간의 구원 ​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과 절망, 유한한 인생의 한계성에 대한 절망과 좌절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그래서 감성적 실존, 즉 미적 실존에 투신해 보지만 감성은 더욱 감성을 요구하고, 쾌락은 더욱 쾌락을 요구하고. 미적인 창조적 욕망은 더욱 미적인 욕망을 요구하는 악순환 속에서 절망은 더욱 깊어만 간다. 우리는 감성적이고 미적인 문학을 통하여 낭만주의, 예술주의, 형식주의, 다다이즘, 쉬르리얼리즘, 해체시, 낯설음의 시학, 메타시, 아방가르드, 무의미 시, 하이퍼 시 등 무수히 많은 미적 상상력을 탐닉하였지만 영혼은 여전히 공허할 뿐이며 돌아보면 그저 자아도취라는 허구의 환상에서 맴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개인보다는 집단, 주관보다는 객관, 감성보다는 이성, 환상보다는 현실에서 진리와 양심과 정의와 평등의 윤리와 도덕을 앞세워 투쟁을 하였다. 리얼리즘, 내추럴리즘, 공리주의, 계몽주의, 반영론, 컴뮤니즘, 소시얼리얼리즘, 민족주의, 민중주의, 계급주의, 역사주의라는 갖가지 진실과 정의와 평등과 총체성의 수식어로 포장된 이데올로기의 깃발을 흔들며 가열차게 윤리적 투쟁을 전개했지만 여기서도 분열과 대립과 갈등만 더욱 조장되었을 뿐 현실은 여전히 모순과 대립의 이전투구가 있을 뿐이다. ​ 그렇다면 미적 실존이나 감성적 문학, 윤리적 실존이나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문학, 형식이냐 내용이냐, 순수냐 참여냐 하는 이원론적 흑백논리 등 불완전하고 유한한 이들 인간의 휴머니즘으로는 결코 궁극적인 구원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구원이나 영원한 행복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역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 밖의 존재, 인간보다는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만이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전지전능한 신 앞에 참회하고 자비를 구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키엘케고르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고, 전능한 존재이고 무한한 존재이고, 그러면서도 우주만물을 창조한 존재이고, 지금도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정말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불가능한 존재가 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한성이나 가능성은 오직 초월자 신에게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의 무한성과 가능성을 믿고 그 능력에 의지하여 인간의 유한성과 불가능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종교요, 그것이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이 되는 것이다. ​ 휠라이트는 인간의 사고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수평적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수직적 사고다. 수평적 사고란 일상적이고 세속적이고 현실적이고 물질적 사고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이나 감성을 앞세운 모든 인본주의적 문명이 바로 수평적 사고다. 그러나 우주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이성은 마침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헤겔은 말했지만 우주의 시작과 끝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수평적 사고로는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후의 세계도 그렇다. 그런데도 불가사의한 우주는 여전히 건재하고, 죽음의 검은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를 엄습한다. 그러니 우주의 시간이나 공간, 사후의 시간이나 공간은 영원히 초월의 영역이고 신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 여기서 우리는 세속적 영역과 신성의 영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속의 영역은 감성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이지만 원천적으로 불완전한 영역이기에 결국은 불안하고 허무하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절망하고 죽어야 하는 원죄의 공간이다. 그러나 신성의 공간은 모든 것이 가능한 무한한 공간이다. 신성의 공간은 죽음이니, 절망이니 하는 세속적 사고의 영역을 벗어난 절대 자유와 행복이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적 사고의 뒤뜰에는 천국이 있고, 낙원이 있고 극락이 있게 된다. 따라서 세속의 영혼들은 바로 이러한 신성의 세계로 가는 것이 절체절명의 소망이 된다. 그러나 수평적 사고의 원죄에 갇혀 있는 세속의 인간들로서는 신이 거처하는 신성의 세계로 갈 수 없는 단절이 있다. 그렇다면 이 단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것은 인간들끼리의 수평적 사고가 아니라 오직 신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사고만이 가능한 것이다. ​ 그런데 수직적 사고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이 지상에 하강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르는 상승의 방법이다. 따라서 종교에는 인간이 절대자의 경지에 이르는 종교와 절대자가 인간에게 다가와 역사하고 구속하는 종교가 있게 된다. 고행과 참선과 명상과 수도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종교들은 인간이 노력하여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종교이고 신이 하강하여 인간에게 섭리한다는 종교는 기독교가 그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먼저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르는 인위적인 종교를 보자. 키엘케고르는 이러한 종교는 영원한 행복을 생활의 연장 위에 있는 실존으로 보며 자기 스스로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것에 닿을 수 있음을 확신하는 인위적인 종교라고 했다. 이것은 신적인 것들이 모든 인간에게 현존하며, 인간 존재의 깊이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종교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적 실존은 윤리적 척도를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신에게 두고 있다. 윤리적인 실존이 보편성 가운데 자기 자신을 세우려 하는 반면 종교적 실존은 자신이 신의 요구에 합당한 실존이 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자기 자신을 멀리한 채 신이 보시기에 합당한 실존이 되고자 무한한 정열로 변혁을 시도한다는 말이다. ​ 언제나 내가 누구를 만나든 나를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을 더 나은 자로 받들게 하소서. ​ 그늘진 마음과 고통에 억눌린 버림받고 외로운 자들을 볼 때, 나는 마치 금은보화를 발견한 듯이 그들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 누군가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나를 욕하고 비난하며 부당하게 대할 때 나는 스스로 패배를 떠맡으며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되게 하소서. [출처] 누구를 만나든 ------------티벳트 명상시|작성자 스타 ​ 이러한 종교적 실존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살아갈 뿐, 지상적인 쾌락을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왜냐하면 유한성에 마음을 두게 되면 절대적인 신과의 관계는 끊어지기 때문이다. 즉 유한성에 속하는 것을 얻으려 하자마자 무한성을 향한 추구는 정지되고, 유한성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 티벳 사원의 길가에서는 오늘도 맨땅을 수년간 엎드려 절하며 오르는 신심을 본다. 오체투지의 고행이다. 양 팔꿈치, 양 무릎을 땅에 대고 절하며 몇 번이고 수 천리 언덕길을 기어간다. 갠지스 강가에는 지금도 평생을 명상하는 수도자들이 있다. 더러는 제 몸을 태우는 소신공양도 있다. 모두가 자신을 포기하고 신의 경지, 초월의 경지를 향한 고행의 행진이다. 그런데 키엘케고르는 인위적인 종교가 내면적 변혁 말고는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이 절대적 목적을 위하여 고난을 짊어지고 가는 실존을 그는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실제로 인위적인 상향적 종교는 절대적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사실은 없기 때문이다.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전 실존을 걸고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목적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죄로 인해 정립된 정신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 이상 죄의 침입을 막을 수는 있어도 이미 들어와 있는 원죄에 대하여는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 그래서 키엘케고르는 인간의 힘으로 신적 경지에 이르는 상향적 초월의 종교로는 궁극적인 구원을 기대할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절대 타자인 천상의 신, 절대자가 인간에게로 다가오는 방식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말한다. 신이 지상에 하강하는 종교의 경우 신의 영역 즉 신성(神聖)의 존재는 단지 인간이 상상하는 가공의 영역이 아니라 신성이 세속에 직접 현현됨으로 인간은 그 신성을 경험하게 된다. 엘리아데는 이 신성의 현현을 성현(hierophany)이라고 불렀다. 신성은 루돌프 오토가 지적한 바와 같이 신비와 공포와 매력이 신성에 접했을 때에 인간 쪽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이렇듯 신성은 절대 타자로서 체험되는 종교적 실재다. ​ 성경의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하였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신성이 인자(人子)로 온 성현의 대표적 예인데 이를 기독교에서는 육화(incarnation)라고 한다. 이러한 성현은 물론 수평적 사고로는 인식할 수 없는 역설적 사건이다. 신이 인간이 되고 신성이 사물에 접신된다는 것은 합리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의 성현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우리들 인간들의 삶 속에서 경험되고 있는 것이다. ​ 사실 신이 하늘에서 하강한다는 신앙이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건은 우리의 오성, 우리의 과학,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계선 밖의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로는 부조리한 것이며 그 무엇으로 증명될 수 없는 역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역설을 시인하지 않는 한 진정한 구원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구원이란 유한자가 영원자를 통해서만 영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힘으로 신에게로 다가간다거나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겠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키엘케고르는 진정한 구원의 종교는 신이 하강한 종교만이 그 정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과학적 논리, 하나님의 성육신이라는 이 파격적이고 역설적인 논리를 믿는 데는 오직 이성과 감성의 인간적인 집착을 내어던지는 결단이 요구됨을 지적하였다. 결국 키엘케고르의 결론은 감성적 실존이나 이성적 실존, 미적 실존이나 윤리적 실존으로는 결코 진정한 구원이 불가능하며, 종교적 실존으로 비약해야 하는데 종교적 실존이라 해도 인위적인 종교가 아니라 절대 타자인 신으로부터 내려받는 은총의 종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홍문표 시 창작 강의 노트 53-3 ​ 감성과 지성과 영성의 문학(3) ​ 홍문표 ​ 5. 구원의 문학과 영성의 문학 ​ 이처럼 인간적인 감성적 사고나 이성적 사고, 미적 실존이나 윤리적 실존에서는 결코 영원한 행복, 진정한 구원이 불가능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러기에 겸손히 신적인 세계, 초월적인 힘, 절대자의 능력과 자비를 통하여 보다 높고 넓은 구원을 실현할 수 있다는 수직적 사고 또는 그러한 신앙적 인식 태도를 우리는 영성(sprituality)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영성은 세속을 초월한 궁극적인 실재를 인정한다. 또한 인간이란 결코 감각적이고 이성적인 영역 이상의 초감각적 초이성적 품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보다 깊은 가치들과 의미들을 찾아 명상하고 기도하며 소통한다. 바로 세속의 삶, 일상의 삶, 외적인 삶에서 내적인 삶, 내적인 생명의 무한성과 영원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품은 결코 특정한 인간에게만 부여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영성이 있다. 신의 형상을 입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절박할 때는 누구나 신을 찾는다. 영성이 있다는 증거다. ​ 영성의 경지에서야 세속적인 자아는 더 큰 실재와 소통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더 커다란 자아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진정한 깨달음 또는 거듭남이라 한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세속의 진부한 집착에서 벗어나 분열된 너와 내가 하나 되고 자연과 우주와도 합일되며 마침내 신성의 영역(divine realm)과 합일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을 법열이니 충만함이니 엑스타시라고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진정한 자유요, 해방이요 구원이다. 이러한 경지에서는 사물을 직관이나 영감을 통해서 보게 되고, 예언과 계시의 신성한 언어를 구사하게 되는데 문학이 이러한 경지에서 쓰여지게 될 때 영성의 문학이 된다. 따라서 영성의 문학은 궁극적인 실재, 즉 절대자가 있고, 초월이 있고, 속세의 집착을 벗어난 자유가 있고, 사랑이 있고, 우주 자연과의 합일이 있고, 신성(神性)의 놀라운 예언이 있다. ​ 그렇다면 우리의 문학사에서 오늘도 수없이 쏟아지는 문학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찌 살고 있으며 어떤 문학을 쓰고 있는가. 문학은 감성이고 예술이고 창조라 하여 이미지와 메타포와 리듬과, 구성과, 문체와, 형식의 미적인 실험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학은 이성과 양심과 자유라 하여 총체성과, 계급과, 빈부와 민주화와 반영과 비판과 투쟁과 혁명과 리얼리즘과 이데올로기의 깃발만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이집트에서 사백 년이나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모세가 그의 민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네 아비에게 물으라”였다. 역사에 모든 해답이 있다는 말이다. 개화기 이후 신문학의 역사도 이제 백 년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시인 작가들이 한국 문학이라는 영봉을 향하여 오르다 갔고, 지금도 수많은 문인들의 행렬이 문학의 등성을 타고 있다. 그러나 대개는 이름 없이 갔고, 더러는 한동안 반짝이다가 역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수많은 고난의 시대를 넘어서 지금도 빛나는 예언이 되고 감동이 되고 구원의 이정표가 되고 있는 몇몇 작품도 있다. 어떤 작품들인가, 이들은 놀랍게도 한결같이 영성이 있는 작품들이다. 일백 년 문학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감동을 주고, 영향을 주고 깨우침을 주고 있는 시들을 보자. 1920년대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소월의 「산유화」를 들 수 있다. 이 시대 대부분 시인들이 낭만주의니 감상주의니 하면서 불안과 좌절의 정서를 어둠과, 동굴과 죽음으로 노래하던 병적인 분위기에서, 또는 암울한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고 투쟁을 선언하던 리얼리즘과 계급주의의 치열한 분위기에서 한용운은 이들 양극화의 세속을 뛰어넘어 오히려 부재한 절대자 님을 향해 통곡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강한 영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비록 님과의 상실이 있지만 그래도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그 지극한 신앙에 민족적인 위로가 있고 구원이 있다. 김소월은 자연을 절대화하는 영성을 보여 우리들의 가슴을 울린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여름 없이 꽃이 피네” ​ 1930년대 서정주의 그 많은 시중에서 그래도 생명력이 있는 시는 「국화 옆에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바로 수직적인 불교의 영성이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서시」도 그렇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시는 하나님에 대한 부끄러움과 참회의 영성이 있어 지금까지 애송하게 된다. 이육사의 「광야」 한 구절이 생각난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는 유학을 했고, 독립운동을 했고, 사회주의에도 관심을 가진 매우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암담한 현실을 초극하고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절대성을 긍정하는 영성의 시를 써서 계속 감동을 준다. 1940년대 조지훈의 「승무」도 그렇다. 그의 시가 단순히 춤사위나 보여주는 미적 표현이었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까.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거기엔 현실을 초극하려는 불심의 지극한 영성이 있다. 1950년대 김춘수는 많은 미적 실험 시를 썼다. 무의미 시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남은 시는 무의미 시가 아니라「꽃」이다. 존재성에 대한 깊은 성찰의 영성이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김수영은 현실 비판의 많은 시를 썼다. 시대적 양심과 정의의 시들이다. 그러나 김수영을 기억하게 만든 시는 그러한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의 시가 아니라 「풀」이다. 민초를 절대화한 영성의 시만 확실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 이는 세계적인 몇몇 소설에서도 확인되는 바다. 괴테는 젊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다. 이미 약혼한 여인을 짝사랑하다 마침내 자살한다는 대중소설이다. 한 여인에 대한 집착, 이것을 사랑의 극치로 미화하는 미적 실존, 소위 탐미적 낭만주의는 결국 자기 파멸로 끝이 난다. 미적 실존의 한계다. 그런데 그의 「파우스트」는 세계적인 고전이 되고 있다. 어째서일까. 「파우스트」의 주인공은 윤리적 실존의 대표적 인물이다. 노년에 이르러 허무함만 느끼고 있을 때 젊음과 여인의 유혹을 받는다. 미적 실존의 욕망이다. 그러나 결과는 비극이었다. 결국 그의 영혼을 구한 것은 윤리나 미가 아니라 천상의 음악이었다. 톨스토이에게도 「안나까레리나」가 있다. 부부생활에 실증을 느낀 안나가 다른 남자와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지만 여의치 못하자 결국 자살한다는 대중소설이다. 미적 실존의 절망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부활」은 세계적인 고전이 되었다. 어째서일까.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이성과 양심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회가 있고,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도스또예브스키의 「죄와 벌」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는 양심과 정의의 상징이다. 말하자면 윤리적 실존의 표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무익한 노파를 죽이고도 떳떳했다. 그러나 그의 참회는 신을 믿으면서도 몸을 팔아야 하는 소냐를 통해 이루어진다. 종교적 실존에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는 영성의 작품이다. ​ 이처럼 소설에서도 인간적인 욕망과 이성, 미와 양심과 정의에 집착한 「젊은 벨텔의 슬픔」이나 「안나까레리나」나 「죄와 벌」의 라스코리니코프는 마침내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절망이 있을 뿐이다. 만일 거기에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쾌락이나 정당성의 환상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신을 의지하고, 신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는 「파우스트」나 「부활」이나 「죄와 벌」의 참회에 영원함이 있고 구원이 있는 것이다. ​ 영성의 문학에는 절대적 가치가 있고, 초월이 있고, 신이 있고, 종교가 있고 영원한 구원이 있다. 그리하여 이들 작품에서는 일상의 감성이나 이성의 유한하고 불완전한 세계를 벗어나 보다 넓고 보다 깊은 세계에 대한 감동과 깨달음을 만나게 되고, 소통하게 되고, 그리하여 함께 영혼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렇다고 이들 영성의 작품들이 감성과 이성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지금까지 감동과 깨달음과 예언으로 우리를 일깨우는 이들의 작품들은 모두가 문학성에 충실하면서도 신성이 있고, 초월자의 섭리가 있고, 자유가 있다. ​ 문학의 기본은 문학성이고, 시의 기본은 시성이다. 따라서 영성의 문학이라 하여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나 교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시의 경우 메타퍼와 리듬과 관념에 충실하면서 그 위에 영성이 있어야 한다. 소설도 그렇다. 리얼리즘이니 현실의 반영이니 하여 세상에 칼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소설 문학 형식에 더하여 영성이 있어야 한다. ​ 이는 오늘날 작품을 쓰는 모든 문인들이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문학은 예술이라 하여 미학적 기교에만 집착하는 형식주의나, 문학은 내용이라 하여 윤리적 이데올로기에만 집착하는 역사주의는 문학사에서 보듯이 일시적인 인기와 관심은 있었겠지만 영구히 행복한 문학은 아니었다. 모두가 유행가 가사처럼 시대마다 반짝이다 사라진 것들이다. 지금 다다이즘, 쉬르리얼리즘, 무의미 시, 해체 시는 어디 있는가, 계급문학, 민족 문학, 참여문학, 민중문학은 지금 어디 있는가. 낭만주의 리얼리즘, 형식주의 역사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또 어디 있는가. 깃발을 흔들 때마다 그것만이 진리인 줄 알고 박수를 쳤던 우리들의 어리석음, 유한한 인간들의 무상한 시행착오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 그렇다면 이제 인생도 문학도 철이 들 때가 되었다. 깨달을 때가 되었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그 험난한 세월 속에서 그래도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깨달음을 주고 희망을 주고 보다 높고 깊은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작품들은 한결같이 문학성에 충실하면서도 초월적인 세계와 소통하는 영성의 문학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신문학 일백 년 우리는 형식이냐 내용이냐, 순수냐 참여냐, 감성이냐 이성이냐, 낭만주의냐 사실주의냐, 보수냐 진보냐, 그 흑백의 양극화 논리에 모두들 매달려 상처뿐인 진창 놀이를 반복해 왔다. ​ 이제는 유한한 인간의 감성과 이성, 낭만주의와 리얼리즘, 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만으로는 결코 영원한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인간 존재의 실상을 분명히 알고 그 양극화의 허망한 미로와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유한한 인간의 실존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 거대한 우주와 자연 속에서 초월자의 섭리와 사랑을 느끼며 지상의 절망과 불안을 벗어나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영성의 문학에서 우리들 문학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으로, 영혼을 지닌 인간이 가야 할 길이며 문학자의 소명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시적인 구원이 아니라, 일시적인 놀라움이 아니라 영원한 놀라움과 영원한 구원이 약속되는 영성의 삶, 영성의 문학으로 비약하는 기적이 있어야 하겠다.
15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15 댓글:  조회:814  추천:0  2019-12-2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2-1 좋은 시의 조건과 창조시학(1) ​ 홍문표 ​ 1. 시인의 꿈, 시의 꿈 ​ (1). 박완서의 「시인의 꿈」 소설가 박완서가 「시인의 꿈」이라는 소설을 써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딱지같은 판자촌이 헐리고 궁전 같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하루아침에 거지같은 생활에서 궁전 같은 도시문명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궁전 같은 아파트촌 구석에 아직도 어느 노인이 사는 판잣집 하나가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이 그걸 보고 놀라 부모들에게 말했다. 부모들은 그걸 철거해야 한다고 시청에 진정도 하고 반상회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건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 했다. 아니 곧 죽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다시 그 판자 집에 갔다. 들어가 보니 그림책이 있어 열어보니 거기엔 수많은 곤충들 사진이 가득했다. 그때부터 소년은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원래 시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시인이 없어서 시가 없어졌다고 했다. 사람들이 시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금지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몸에 이로운 것만 쓸모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인은 시가 있으면 살맛이 난다고 하면서 다시 시를 쓸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어를 수집하러 다니는데 요즘 말은 모두 욕심을 위한 말뿐이어서 시어를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시를 쓰려면 욕심이 없는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은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과 만나는 것이라 했다. ​ 여기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이란 무엇인가. 바로 욕심으로 때 묻지 않은 삶, 물질과 문명과 경쟁과 욕망으로 때 묻지 않는 삶, 물질과 문명과 경쟁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모두 제정신이 나간 이 황무지 같은 삶이 아니라 눈물이 있고 사랑이 있고, 감동이 있는 삶, 진실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자유로움이 있는 삶, 그것이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이고 시인이 꿈꾸는 세계가 아닐까. ​ (2). 워즈워드의 「무지개」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이란 말을 들으니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가 생각난다. ​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어려서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여전히 그러하기를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신이시여 지금이라도 내 목숨을 거둬가소서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생애 하루하루가 타고난 그대로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 시인 워즈워드의 꿈은 어린 시절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울렁거리던 그 마음, 그 감정, 그 순수함이 어려서나 커서나 늙어서나 한결 같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도 울렁거림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울렁거림이 없는 시인, 울렁거림이 없는 독자, 울렁거림이 없는 시, 울렁거림이 없는 세상, 거기엔 시인도 죽고, 시도 죽고, 세상도 죽은 것이라는 것이 바로 워즈워드의 시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싶은 좋은 시란 울렁거림의 시가 아닐까. 울렁거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감동이다. 충격이다. 호기심이다. 깨달음이다. 깨어남이다. 기쁨이고 반가움이고 충만함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좋은 시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 2. 문학에서 좋은 작품을 선별할 수 있는가. ​ (1). 좋은 시의 구별은 우선 주관적인 평가의 문제다. 좋은 시란 평가적 용어다. 시인이라면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고 선망한다. 그런데도 자신의 시를 누가 비판할 경우엔 누가 감히 내 시를 평가할 것인가 내 시는 내가 잘 안다 라는 것이다. 남들이 뭐라든 땀 흘려 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사물에 부딪친다. 그때마다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하고, 그 사물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묻게 된다. 따라서 평가는 불가피한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그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려면 그 동안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만 그 사물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 사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저마다 살아온 과거가 다르다. 거기다가 과거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삶도 있고 미래에 대한 삶의 욕망도 있고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어떤 사물의 가치는 각자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한 삶의 총체적인 인식이 된다. 이 때 나와 그 대상의 관계인식이 보다 긍정적인 때는 좋은 것으로 부정적일 때는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 따라서 한편의 시를 보고 좋은 시라고 인식하는 것은 시에 대한 나의 과거·현재·미래의 경험과 지식과 소망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고, 나쁘다는 것은 부정적인 반응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필요가 다르고 욕망이 다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의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치는 개인의 주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 문학비평에서 개인의 주관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하는 비평을 인상비평, 또는 주관비평이니 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2). 그러나 문학은 제도와 관습의 산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나 소설이나 드라마라고 하는 이 문학의 장르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어느 개인이 멋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가 오랜 역사를 통해 만들어서 즐겨온 제도와 관습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룰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갖고 있는 모든 문화는 그 나름의 제도와 관습을 갖고 있다. 제사에는 제례가 있고, 결혼에는 혼례가 있고, 공놀이에는 경기규칙이 있다. 특히 공놀이에는 축구도 있고 야구도 있는데 같은 공놀이이지만 저마다 다른 규칙이 있다. 이는 문학의 경우도 그렇다. 문자를 상상력과 결합하여 즐기는 문학놀이에는 시도 있고, 소설도 있고, 드라마도 있다. 이들은 모두 문자 놀이이기는 하지만 시는 시로서 소설은 소설로서의 제도와 관습의 룰이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축구를 보면서 어떤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다. 첫째는 그 선수가 정해진 규칙, 즉 룰 안에서 공놀이를 잘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느 시인의 작품을 칭찬하는 것도 시라는 제도와 관습을 모범적으로 잘 지키는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선수를 칭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다른 선수들보다 공놀이를 잘 하는 경우다. 문학에서도 그렇다. 이처럼 좋은 문학, 좋은 시를 말하는 것은 첫째는 문학이라는 장르의 제도와 관습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고 그 둘째는 다른 시인 다른 작품보다 개성 있게 언어를 잘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좋은 시이냐 나쁜 시이냐 하는 작품의 평가는 개인적 지식과 경험과 욕구에 따라 주관적으로 구분될 수도 있지만 사회적 역사적 제도와 관습이라는 객관적 룰에 의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 (3). 문학 평가의 네 가지 관점 그런데 문학을 인간 공동체의 제도와 관습이라고는 하지만 축구나 야구의 제도는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구별되지만 문학에서 제도와 관습이란 민족마다 시대마다 보는 관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엘리옷 같은 사람은 시의 정의에 대한 역사는 한마디로 오류의 역사라고 지적한 바다 있다. 사실 문학이란 수치로 재기 어려운 사상 감정을 표현한 것이기에 이를 과학적으로 수치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분명히 우리들의 문화 속에 시는 소설과 다르고, 소설은 드라마와 다르고, 문학은 수학과 다르게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같은 시라고 해도 작품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충격이 다른 점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러기에 어째서 느낌이 다르고 충격이 다른지를 구별해 보는 것이 비평이고 시학이고 시를 보다 잘 쓰려는 시인들의 관심이 된다. ​ 작품에서 느낌이 다르고 충격이 다름을 경험하는 것을 우리는 작품 감상이라고 하고 그 느낌이 왜 다른지를 구별하는 논리적인 작업을 비평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는 주관이든 객관이든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경험하게 되며 그러기에 우리는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구별할 수밖에 없는데 작품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는 반드시 평가기준이 있어야 한다. 잣대가 있어야 길고 짧음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을 평가하는 잣대는 애당초 물건과 달리 여러 개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다. ​ 문학을 보는 잣대가 다양한 것은 기본적으로 문학이란 단지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생산한 작가도 있고, 그 작품을 읽어주는 독자도 있고, 또 작품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자료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을 보는 데는 적어도 작품자체의 입장, 작가의 입장, 독자의 입장, 작품의 재료에 관한 입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문학사를 보면 작품 작가 독자 재료라는 이 네 가지 요소들이 모방론·표현론·효용론·존재론이란 관점의 잣대가 되어 저마다 평가해 왔으며 좋은 작품에 대한 입장도 이 네가지 관점에 따라 다름을 볼 수가 있다 ​ 모방론이란 문학이 아무리 날고뛰는 창작이라 해도 결국은 자연이나 인생이나 사회를 모방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여기서 모방이라는 단지 사물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문학의 질서를 배우고 사회를 소재로 하여 문학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을 사회의 반영이니 인생의 거울이니 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표현론의 입장은 문학이란 인생이나 사회의 거울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적 감정이나 욕망이나 꿈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을 촛불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문학이란 인간에게 어떤 유익함을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의 존재가치를 실용성, 또는 효용성의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는데 이를 실용론 또는 효용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상의 것들은 문학작품의 외적 조건일 뿐이며 궁극적으로 남은 것은 작품 그 자체라는 것이며 그러기에 반영이니 표현이니 실용이니 하는 것들도 결국은 작품이라는 구조 안에 수용되는 것이기에 문학의 가치평가는 작품 그 자체에 한해야한다는 존재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 (4). 네 가지 문학관에서도 좋은 시는 있다. 그런데 이러한 네 가기 관점은 단지 이론이나 관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좋은 작품 그렇지 않은 작품의 구별이란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모방론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문학은 현실을 잘 반영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어떤 이는 박노해의 「부모를 이겨라」이런 시를 좋은 시로 추천한 경우가 있다. ​ 자식이 진정한 자식이 되는 길은 부모의 반대를 뚫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 지상의 모든 자식의 의무는 부모를 이기는 것 부모를 이겨라 낡은 세대를 이겨라 조금은 가슴 아프게 조금은 배반 스럽게 - 박노해 「부모를 이겨라」에서 ​ 이 시는 젊은이들이 부모와 과거를 뛰어 넘어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하라는 교훈적인 시다. 그러나 부모를 낡은 세대로 규정하고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는 태도는 매우 정치적이고 현실 비판적이다. 시를 상상과 창조의 미학으로 본다면 이 시는 행갈이만 있을 뿐 직설적이고 선동적인 구호다. 그런데도 이런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방론이나 효용론의 입장에 있다고 모두 이런 시를 좋은 시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신경림의 「갈대」를 추천한 경우가 더 많다.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의 「갈대」 ​ 이 시에서 갈대는 자신일 수도 있고, 갈대 같은 농민의 상징일 수도 있다. 이 시는 울고 있는 갈대와 온몸이 흔들리는 갈대를 통하여 존재를 새롭게 깨닫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비극적인 존재의 자각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부적인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모방론이나 효용론의 입장에서 쓴 시지만 앞의 박노해의 시와는 시적인 감동이 전혀 다름을 볼 수 있다. 같은 잣대의 시에서도 이렇게 좋은 작품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표현론이나 존재론의 입장에서 쓴 시의 경우도 그렇다. 다음 두 시를 보자.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유치환의 「행복」 ​ 이 시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좋은 시로 추천되고 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가치가 있다는 이 평범한 진리가 이기적인 세상, 이기적인 사랑으로 만연된 현실에 어르신 말씀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깃발」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생명파 유치환 시인의 작품이라는 데서 그 권위가 플러스되어 더욱 좋은 작품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는 평범할 뿐만 아니라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사춘기 멜로드라마 같아서 독자를 긴장시키거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시는 아니다. 같은 사랑의 시 일지라도 다음의 시는 느낌이 다르다. ​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유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물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도 하늘에도 네가 있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흔들고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에도 하늘에도 내 안에 있는 이는 누구일까, 그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 유치환의 「행복」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관계인식과는 많은 편차가 있다. 유치환의 화자와 연인 간에는 매일 편지를 보내는 관계이고, 연연한 진홍 빛 양귀비꽃의 관계이고 사랑을 주는 시혜(施惠)적인 관계다. 그러나 유시환의 화자와 연인간의 관계는 물에 하늘에 내 안에 가득찬 관계다. ​ 그들의 관계성을 각각 결론으로 말하는 대목도 너무나 차이가 난다. 유치환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라는 일방적이고 시혜적이고 훈계적인 고백이다. 그런데 유시화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다. 그대와 내가 한 몸으로 있는데도 그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너무 크기에 늘 결핍을 느낀다는 패러독스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시환의 작품은 내 안에 있는 이가 반드시 연인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내 의식을 지배하는 또 다른 자아라는 생의 성찰을 가능하게도 한다. ​ 물론 유치환의 시 세계를 「행복」이란 작품 하나로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유시환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비교할 경우엔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작품 간의 차이는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유치환의 「깃발」과 「행복」을 비교해보면 거기에도 편차가 크다.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 이 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뛰어 넘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허무와 고독을 깃발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나부끼는 순정, 백로처럼 날개, 애수 등의 다양한 이미지를 창조하여 독자들을 아득한 허공에서 울렁거리게 한다. 앞의 「행복」이란 작품에서 느끼는 떨림과는 전혀 강도가 다르다. 따라서 같은 시인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표현 방법에 따라 또는 작품에 따라 독자에게 다가오는 충격과 감동은 많은 편차를 보인다. ​ 이상에서 보듯이 같은 모방론이나 효용론의 입장에서 쓴 박노해의 「부모를 이겨라」와 신경림의 「갈대」라는 작품을 비교할 때 신경림의 「갈대」가 보다 감동이 있고 충격이 크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보다 좋은 시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표현론이나 존재론의 입장에서 쓴 유치환의 「행복」과 유시환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비록 유치환이 문학사적으로 훨씬 비중 있는 시인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두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는 사랑의 시적 담론은 유시환의 것이 훨씬 간절하고 적극적이라는 데서 보다 좋은 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말하자면 같은 주제의 작품일지라도 그 주제를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했느냐에 따라서 보다 좋은 시로 평가된다는 말이다. 이는 같은 시인의 작품에서도 그렇다. 유치환의 경우 「행복」과 「깃발」은 확연히 느낌과 떨림에 차이가 있다. 물론 박노해의 「부모를 이겨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유치환의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보다 감동과 떨림이 시인의 꿈, 시의 꿈이라고 할 때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좀 더 비평적인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비교해 볼 때에는 그보다 분명 우위에 있는 작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시를 쓰는 우리는 시 몇 편 쓰고 시집 몇 권 냈다는 것으로 누가 내 작품을 평가할 것인가 라든지 작품의 우열은 관점에 따라서 다르다는 오만한 고집만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한 자세로 작품들 간에 이처럼 상대적 우위에 있게 되는 시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 비밀을 터득하여 보다 감동이 있고 떨림이 있는 좋은 시를 쓰고자 노력하는 성실한 시인이 되자는 것이다.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2-1 좋은 시의 조건과 창조시학(1) ​ 홍문표 ​ 1. 시인의 꿈, 시의 꿈 ​ (1). 박완서의 「시인의 꿈」 소설가 박완서가 「시인의 꿈」이라는 소설을 써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딱지같은 판자촌이 헐리고 궁전 같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하루아침에 거지같은 생활에서 궁전 같은 도시문명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궁전 같은 아파트촌 구석에 아직도 어느 노인이 사는 판잣집 하나가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이 그걸 보고 놀라 부모들에게 말했다. 부모들은 그걸 철거해야 한다고 시청에 진정도 하고 반상회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건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 했다. 아니 곧 죽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다시 그 판자 집에 갔다. 들어가 보니 그림책이 있어 열어보니 거기엔 수많은 곤충들 사진이 가득했다. 그때부터 소년은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원래 시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시인이 없어서 시가 없어졌다고 했다. 사람들이 시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금지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몸에 이로운 것만 쓸모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인은 시가 있으면 살맛이 난다고 하면서 다시 시를 쓸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어를 수집하러 다니는데 요즘 말은 모두 욕심을 위한 말뿐이어서 시어를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시를 쓰려면 욕심이 없는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은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과 만나는 것이라 했다. ​ 여기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이란 무엇인가. 바로 욕심으로 때 묻지 않은 삶, 물질과 문명과 경쟁과 욕망으로 때 묻지 않는 삶, 물질과 문명과 경쟁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모두 제정신이 나간 이 황무지 같은 삶이 아니라 눈물이 있고 사랑이 있고, 감동이 있는 삶, 진실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자유로움이 있는 삶, 그것이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이고 시인이 꿈꾸는 세계가 아닐까. ​ (2). 워즈워드의 「무지개」 가슴이 울렁거리는 삶이란 말을 들으니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가 생각난다. ​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어려서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여전히 그러하기를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신이시여 지금이라도 내 목숨을 거둬가소서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생애 하루하루가 타고난 그대로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 시인 워즈워드의 꿈은 어린 시절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울렁거리던 그 마음, 그 감정, 그 순수함이 어려서나 커서나 늙어서나 한결 같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도 울렁거림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울렁거림이 없는 시인, 울렁거림이 없는 독자, 울렁거림이 없는 시, 울렁거림이 없는 세상, 거기엔 시인도 죽고, 시도 죽고, 세상도 죽은 것이라는 것이 바로 워즈워드의 시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싶은 좋은 시란 울렁거림의 시가 아닐까. 울렁거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감동이다. 충격이다. 호기심이다. 깨달음이다. 깨어남이다. 기쁨이고 반가움이고 충만함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좋은 시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 2. 문학에서 좋은 작품을 선별할 수 있는가. ​ (1). 좋은 시의 구별은 우선 주관적인 평가의 문제다. 좋은 시란 평가적 용어다. 시인이라면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고 선망한다. 그런데도 자신의 시를 누가 비판할 경우엔 누가 감히 내 시를 평가할 것인가 내 시는 내가 잘 안다 라는 것이다. 남들이 뭐라든 땀 흘려 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사물에 부딪친다. 그때마다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하고, 그 사물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묻게 된다. 따라서 평가는 불가피한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그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려면 그 동안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만 그 사물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 사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저마다 살아온 과거가 다르다. 거기다가 과거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삶도 있고 미래에 대한 삶의 욕망도 있고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어떤 사물의 가치는 각자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한 삶의 총체적인 인식이 된다. 이 때 나와 그 대상의 관계인식이 보다 긍정적인 때는 좋은 것으로 부정적일 때는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 따라서 한편의 시를 보고 좋은 시라고 인식하는 것은 시에 대한 나의 과거·현재·미래의 경험과 지식과 소망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고, 나쁘다는 것은 부정적인 반응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필요가 다르고 욕망이 다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의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치는 개인의 주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 문학비평에서 개인의 주관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하는 비평을 인상비평, 또는 주관비평이니 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2). 그러나 문학은 제도와 관습의 산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나 소설이나 드라마라고 하는 이 문학의 장르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어느 개인이 멋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가 오랜 역사를 통해 만들어서 즐겨온 제도와 관습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룰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갖고 있는 모든 문화는 그 나름의 제도와 관습을 갖고 있다. 제사에는 제례가 있고, 결혼에는 혼례가 있고, 공놀이에는 경기규칙이 있다. 특히 공놀이에는 축구도 있고 야구도 있는데 같은 공놀이이지만 저마다 다른 규칙이 있다. 이는 문학의 경우도 그렇다. 문자를 상상력과 결합하여 즐기는 문학놀이에는 시도 있고, 소설도 있고, 드라마도 있다. 이들은 모두 문자 놀이이기는 하지만 시는 시로서 소설은 소설로서의 제도와 관습의 룰이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축구를 보면서 어떤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다. 첫째는 그 선수가 정해진 규칙, 즉 룰 안에서 공놀이를 잘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느 시인의 작품을 칭찬하는 것도 시라는 제도와 관습을 모범적으로 잘 지키는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선수를 칭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다른 선수들보다 공놀이를 잘 하는 경우다. 문학에서도 그렇다. 이처럼 좋은 문학, 좋은 시를 말하는 것은 첫째는 문학이라는 장르의 제도와 관습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고 그 둘째는 다른 시인 다른 작품보다 개성 있게 언어를 잘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좋은 시이냐 나쁜 시이냐 하는 작품의 평가는 개인적 지식과 경험과 욕구에 따라 주관적으로 구분될 수도 있지만 사회적 역사적 제도와 관습이라는 객관적 룰에 의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 (3). 문학 평가의 네 가지 관점 그런데 문학을 인간 공동체의 제도와 관습이라고는 하지만 축구나 야구의 제도는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구별되지만 문학에서 제도와 관습이란 민족마다 시대마다 보는 관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엘리옷 같은 사람은 시의 정의에 대한 역사는 한마디로 오류의 역사라고 지적한 바다 있다. 사실 문학이란 수치로 재기 어려운 사상 감정을 표현한 것이기에 이를 과학적으로 수치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분명히 우리들의 문화 속에 시는 소설과 다르고, 소설은 드라마와 다르고, 문학은 수학과 다르게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같은 시라고 해도 작품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충격이 다른 점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러기에 어째서 느낌이 다르고 충격이 다른지를 구별해 보는 것이 비평이고 시학이고 시를 보다 잘 쓰려는 시인들의 관심이 된다. ​ 작품에서 느낌이 다르고 충격이 다름을 경험하는 것을 우리는 작품 감상이라고 하고 그 느낌이 왜 다른지를 구별하는 논리적인 작업을 비평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는 주관이든 객관이든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경험하게 되며 그러기에 우리는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구별할 수밖에 없는데 작품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는 반드시 평가기준이 있어야 한다. 잣대가 있어야 길고 짧음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을 평가하는 잣대는 애당초 물건과 달리 여러 개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다. ​ 문학을 보는 잣대가 다양한 것은 기본적으로 문학이란 단지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생산한 작가도 있고, 그 작품을 읽어주는 독자도 있고, 또 작품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자료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을 보는 데는 적어도 작품자체의 입장, 작가의 입장, 독자의 입장, 작품의 재료에 관한 입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문학사를 보면 작품 작가 독자 재료라는 이 네 가지 요소들이 모방론·표현론·효용론·존재론이란 관점의 잣대가 되어 저마다 평가해 왔으며 좋은 작품에 대한 입장도 이 네가지 관점에 따라 다름을 볼 수가 있다 ​ 모방론이란 문학이 아무리 날고뛰는 창작이라 해도 결국은 자연이나 인생이나 사회를 모방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여기서 모방이라는 단지 사물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문학의 질서를 배우고 사회를 소재로 하여 문학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을 사회의 반영이니 인생의 거울이니 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표현론의 입장은 문학이란 인생이나 사회의 거울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적 감정이나 욕망이나 꿈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을 촛불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문학이란 인간에게 어떤 유익함을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의 존재가치를 실용성, 또는 효용성의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는데 이를 실용론 또는 효용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상의 것들은 문학작품의 외적 조건일 뿐이며 궁극적으로 남은 것은 작품 그 자체라는 것이며 그러기에 반영이니 표현이니 실용이니 하는 것들도 결국은 작품이라는 구조 안에 수용되는 것이기에 문학의 가치평가는 작품 그 자체에 한해야한다는 존재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 (4). 네 가지 문학관에서도 좋은 시는 있다. 그런데 이러한 네 가기 관점은 단지 이론이나 관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좋은 작품 그렇지 않은 작품의 구별이란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모방론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문학은 현실을 잘 반영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어떤 이는 박노해의 「부모를 이겨라」이런 시를 좋은 시로 추천한 경우가 있다. ​ 자식이 진정한 자식이 되는 길은 부모의 반대를 뚫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 지상의 모든 자식의 의무는 부모를 이기는 것 부모를 이겨라 낡은 세대를 이겨라 조금은 가슴 아프게 조금은 배반 스럽게 - 박노해 「부모를 이겨라」에서 ​ 이 시는 젊은이들이 부모와 과거를 뛰어 넘어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하라는 교훈적인 시다. 그러나 부모를 낡은 세대로 규정하고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는 태도는 매우 정치적이고 현실 비판적이다. 시를 상상과 창조의 미학으로 본다면 이 시는 행갈이만 있을 뿐 직설적이고 선동적인 구호다. 그런데도 이런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방론이나 효용론의 입장에 있다고 모두 이런 시를 좋은 시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신경림의 「갈대」를 추천한 경우가 더 많다.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의 「갈대」 ​ 이 시에서 갈대는 자신일 수도 있고, 갈대 같은 농민의 상징일 수도 있다. 이 시는 울고 있는 갈대와 온몸이 흔들리는 갈대를 통하여 존재를 새롭게 깨닫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비극적인 존재의 자각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부적인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모방론이나 효용론의 입장에서 쓴 시지만 앞의 박노해의 시와는 시적인 감동이 전혀 다름을 볼 수 있다. 같은 잣대의 시에서도 이렇게 좋은 작품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표현론이나 존재론의 입장에서 쓴 시의 경우도 그렇다. 다음 두 시를 보자.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유치환의 「행복」 ​ 이 시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좋은 시로 추천되고 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가치가 있다는 이 평범한 진리가 이기적인 세상, 이기적인 사랑으로 만연된 현실에 어르신 말씀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깃발」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생명파 유치환 시인의 작품이라는 데서 그 권위가 플러스되어 더욱 좋은 작품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는 평범할 뿐만 아니라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사춘기 멜로드라마 같아서 독자를 긴장시키거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시는 아니다. 같은 사랑의 시 일지라도 다음의 시는 느낌이 다르다. ​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유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물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도 하늘에도 네가 있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흔들고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에도 하늘에도 내 안에 있는 이는 누구일까, 그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 유치환의 「행복」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관계인식과는 많은 편차가 있다. 유치환의 화자와 연인 간에는 매일 편지를 보내는 관계이고, 연연한 진홍 빛 양귀비꽃의 관계이고 사랑을 주는 시혜(施惠)적인 관계다. 그러나 유시환의 화자와 연인간의 관계는 물에 하늘에 내 안에 가득찬 관계다. ​ 그들의 관계성을 각각 결론으로 말하는 대목도 너무나 차이가 난다. 유치환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라는 일방적이고 시혜적이고 훈계적인 고백이다. 그런데 유시화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다. 그대와 내가 한 몸으로 있는데도 그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너무 크기에 늘 결핍을 느낀다는 패러독스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시환의 작품은 내 안에 있는 이가 반드시 연인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내 의식을 지배하는 또 다른 자아라는 생의 성찰을 가능하게도 한다. ​ 물론 유치환의 시 세계를 「행복」이란 작품 하나로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유시환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비교할 경우엔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작품 간의 차이는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유치환의 「깃발」과 「행복」을 비교해보면 거기에도 편차가 크다.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 이 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뛰어 넘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허무와 고독을 깃발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나부끼는 순정, 백로처럼 날개, 애수 등의 다양한 이미지를 창조하여 독자들을 아득한 허공에서 울렁거리게 한다. 앞의 「행복」이란 작품에서 느끼는 떨림과는 전혀 강도가 다르다. 따라서 같은 시인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표현 방법에 따라 또는 작품에 따라 독자에게 다가오는 충격과 감동은 많은 편차를 보인다. ​ 이상에서 보듯이 같은 모방론이나 효용론의 입장에서 쓴 박노해의 「부모를 이겨라」와 신경림의 「갈대」라는 작품을 비교할 때 신경림의 「갈대」가 보다 감동이 있고 충격이 크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보다 좋은 시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표현론이나 존재론의 입장에서 쓴 유치환의 「행복」과 유시환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비록 유치환이 문학사적으로 훨씬 비중 있는 시인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두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는 사랑의 시적 담론은 유시환의 것이 훨씬 간절하고 적극적이라는 데서 보다 좋은 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말하자면 같은 주제의 작품일지라도 그 주제를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했느냐에 따라서 보다 좋은 시로 평가된다는 말이다. 이는 같은 시인의 작품에서도 그렇다. 유치환의 경우 「행복」과 「깃발」은 확연히 느낌과 떨림에 차이가 있다. 물론 박노해의 「부모를 이겨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유치환의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보다 감동과 떨림이 시인의 꿈, 시의 꿈이라고 할 때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좀 더 비평적인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비교해 볼 때에는 그보다 분명 우위에 있는 작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시를 쓰는 우리는 시 몇 편 쓰고 시집 몇 권 냈다는 것으로 누가 내 작품을 평가할 것인가 라든지 작품의 우열은 관점에 따라서 다르다는 오만한 고집만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한 자세로 작품들 간에 이처럼 상대적 우위에 있게 되는 시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 비밀을 터득하여 보다 감동이 있고 떨림이 있는 좋은 시를 쓰고자 노력하는 성실한 시인이 되자는 것이다.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2-2 좋은 시의 조건과 창조시학(2) ​ 홍문표 ​ 3. 좋은 시는 시의 제도와 관습에 충실하다 ​ (1). 제도와 관습은 문화적 룰이다. 그렇다면 좋은 시인 좋은 작품은 어떻게 쓸 수 있는가. 앞서 같은 공놀이라도 축구와 배구는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축구와 배구는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우선 공에 차이가 있다. 경기장의 크기도 다르다. 선수 숫자도 다르다. 경기 방법도 다르다. 다시 말하면 축구와 배구는 경기규칙이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와 소설은 엄연히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른가, 어떤 차이가 시와 소설을 구별하게 하는가. 그것은 축구와 배구가 경기규칙이 다른 것처럼 시와 소설도 언어의 표현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 물론 시와 소설의 규칙은 어느 날 몇 사람이 모여서 정한 운동규칙과는 다르다. 그러나 시와 소설과 드라마도 인류의 오랜 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는 문화로 정착된 제도와 관습이 있고 소설은 소설로서의 제도와 관습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행위란 무엇인가, 이는 시라는 제도와 관습을 알고 이를 창작에 잘 적용하는 것이다. ​ 축구는 축구규칙을 잘 아는 선수들이 직접 경기장에서 그 규칙의 범위 안에서 상대방과 대결하는 놀이다. 그렇다면 시인이란 시적 규칙, 시적 장르의 제도와 관습을 충분히 익혀서 작품을 창작하고 이를 독자들과 시적인 소통을 하는 언어놀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가장 기초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적인 제도와 관습, 말하자면 시가 소설과 다른 규칙을 올바르게 숙지하는 일이다. 운동경기에서 규칙을 어긴 반칙선수는 관중의 비난을 받고 심판의 제제를 받는다. 문학에도 완장을 한 심판은 없지만 독자라는 심판관이 있고 비평가란 심판관이 있고, 문학사라는 심판관이 있다. 따라서 시인은 또는 문인은 자기 장르에 대한 기본적인 룰을 확실히 습득하는 일에 충실해야 하고 이 기본적인 룰을 지키고서야 좋은 시를 논의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를 모르고 멋대로 시랍시고 써대며 시인행세를 하려는 오늘의 많은 시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저들을 시의 기초가 덜된 시인, 시가 뭔지를 모르는 시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 (2). 시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와 관습은 무엇인가. ​ 그렇다면 시가 소설이나 드라마와 다른 가장 근본적인 제도와 관습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시를 시답게 하는 기본 규칙은 무엇인가. 이 말은 이 요소들이 빠지면 시의 기본적인 속성이 상실된다는 말이기도 한데 시를 시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필자는 리듬(rhythm) 메타포(metaphor) 코노테이션(connotation)이라고 말하겠다. ​ 소쉬르는 언어학에서 모든 언어의 의미는 기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밤과 밥의 의미가 왜 다른지를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밤’과 ‘밥’은 ‘바’에 ‘ㅂ’받침인가 ‘ㅁ’받침인가 하는 음운의 차이에서 올 뿐이다. 따라서 시가 소설과 다른 점은 시는 소설보다 리듬이 보다 강조되고 보다 메타포가 강조되고 보다 코노테이션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소설과 구별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경우 이 세 요소 중 어느 한 요소가 미흡하면 좋은 시의 조건을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좋은 시를 위해서는 이 세 요소를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이해해야 하겠다. ​ (3). 시는 첫째로 리듬이다 ​ ⓵. 리듬은 음성만의 율동이 아니다. 시의 기본 룰은 첫째로 리듬이다. 리듬(rhythm)의 의미는 율동(律動)이다. 이 말은 규칙적인 동작이란 뜻이다. 따라서 리듬은 소리의 일정한 규칙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로 리듬을 음악의 요소로만 배워왔고 고대시가의 경우 운문(verse, 韻文), 율격(metre, 律格), 음수율, 음보율 등으로 작시법을 말하고 있기에 리듬이라면 음악의 요소나 소리의 일정한 규칙으로 알고 있고, 시에서 리듬이라면 당연히 음성적인 규칙인 것으로만 알고 있다. 이러한 선입관을 버려야 시의 진실을 체득할 수 있다. ​ ⓶. 리듬은 지상적인 인식의 단위다. 규칙적인 동작의 인식, 모든 것을 나누어 보고 같은 것끼리 모아보고 마디를 나누어 보는 것은 인간의 감성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사물의 변별성과 의미의 차이와 가치를 구별한다. 천상엔 영원한 시간 · 영원한 공간 · 영원한 감성만 있기에 길고 짧음, 시작과 끝의 변별성이 없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존재는 처음과 끝이 있고, 전체와 부분이 있고, 모든 전체는 부분과 마디들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다. ​ ⓷. 모든 생명체는 리듬이 있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호흡과 맥박의 리듬이 있고, 탄생, 성장, 죽음이란 성장의 리듬이 있다. 인간의 경우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한다. 시간의 경우도 과거 · 현재 · 미래, 역사의 경우는 고대, 근대, 현대라는 마디의 리듬이 있다. 따라서 리듬이 있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고 변화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에도 리듬이 있다. 해달 별들은 각자의 리듬을 가지고 우주 질서를 유지한다. 따라서 문학, 특히 시가 생명력을 갖는 것도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 ⓸. 뿐만 아니라 리듬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문학의 생명은 감동이다 그런데 감동이란 변화와 반복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자극의 길이, 강도, 성질에 따라 반응도 다르다. 따라서 리듬은 슬픔 · 기쁨 · 놀라움 등 인간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그 조절의 대표적 양식이 음악이고 시다. 음악은 소리의 리듬으로 감정을 조절한다. 시도 다양한 리듬을 통해 감정을 조절한다. 그러나 감정의 조절은 소리뿐만 아니라 색깔, 냄새, 일정한 동작과 의미 있는 언어의 반복으로도 가능하다. ​ ⓹. 시의 리듬 만들기 ​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 ​ 난초도 거문고도 백자항아리도 버리고 장서도 가족들도 꽃밭도 버리고 ​ 바다만 앞에 있는 바다만 뒤에 있는 바다만 옆에 있는 바다 망망한 가운데 심해선 저쪽 일렁이는 파도 위를 알몸 누워 간다. ​ 가슴에는 다만 하늘 가슴에는 다만 태양 ​ 갖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알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보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 처음 혼자 홀로인 혼자만의 나 순간이 그 영원 영원이 그 순간으로 출렁거리는 ​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 동해 파도 한가운데 바다로 간다. - 박두진「바다로 간다」 ​ ​ 행과 연의 반복 – 이시를 보면 전체를 6연 19행으로 나누어 전체적인 리듬을 조성하고 있다. 문장의 반복 – 인용한 시를 보면 우선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라는 문장이 처음과 끝에 반복된다. 구절의 반복 – 동일한 어구나 어절을 반복하는 경우다. 앞에 인용한 「바다로 간다」 에서 보면 이러한 방식이 두드러진다. 어휘의 반복- 인용한 시에서 ‘바다’라는 명사가 7회나 반복된다. 뿐만아니라 ‘간다’, ‘있는’, ‘버리고’, ‘싶던’, ‘아무것도’ 등의 낱말들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조사의 반복-조사의 경우 ‘도’ ‘는’ ‘만’ ‘에’ ‘로’ 등이 많고 어미의 경우 ‘ㄴ다’ ‘고’ 등이 있어 음악적 흥취를 고조시키고 있다. ​ ⓺. 의미의 반복 리듬이란 소리의 일정한 반복만이 아니다. 행동의 일정한 반복, 사고의 일정한 반복, 빛의 일정한 반복도 리듬이다. 모든 움직임의 규칙적인 반복이란 뜻이다. 따라서 현대시의 리듬, 현대시의 내재율을 이해하는 길은 반드시 시에 나타난 음성적 규칙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반복, 의미의 반복, 정서의 반복도 모두 시의 리듬이다. ​ 님은 갔습니다(a1)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a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지고 갔습니다.(a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b1)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습니다.(b2)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 다.(b3) - 한용운「님의 침묵」에서 ​ 위의 (a1) (a2) (a3)는 님과 이별 ‘갔습니다’의 의미상 반복 리듬이다. (b1)(b2)(b3)는 님의 부재에 대한 심정의 반복리듬이다. ​ ⓻. 이미지의 반복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a1) 비밀한 울음.(a2) ​ 한 번 만의 어느날의 아픈 피 흘림(a3)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의 위에 떨궈진 ​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a4) - 박두진「꽃」에서 ​ ​ 이미지(a1) (a2) (a3) (a4)는 모든 이미지의 반복리듬이다. ​ ​ 시는 이처럼 크게는 행갈이나 연 갈이를 통해서 구절이나 어휘나 심지어는 의미나 이미지들까지도 반복적인 구성을 통해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감정을 들어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시인과 독자 간에 떨림을 공유한다. 물론 산문도 리듬이 있다. 그러나 산문의 리듬은 완만하여 그것이 감각적으로 직접 작용하지 못한다. 최근 시의 산문화 현상을 거론하는데 이는 산문과 다른 시의 제도와 관습이라는 원칙에서는 벗어나는 일이다. 시조 5백년사에 정형적인 평시조와 이를 이탈하는 엇시조, 사설시조, 즉 시조의 산문화현상이 있었는데 좋은 시로 성공하지 못했다. 감동적인 떨림이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이라면 시의 리듬이야말로 시의 존재성, 시의 변별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핵심적인 규칙이다. ​ (4). 시는 둘째로 메타포다. ​ ⓵. 메타포의 바른 이해 시가 산문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변별성을 첫째는 리듬이라고 했다. 그다음 시를 시답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메타포다. 메타포(metaphor)란 meta 초월, 벗어남(over, beyond)의 뜻과, phor 이동한다(carring)뜻의 합성어다. 기존의 의미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이동시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메타포를 수사법의 하나로 해석하면서 오해가 시작 된다. 수사법(修辭法, rhetoric)이란 말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의 수사학은 말을 꾸미고 변론하는 정치꾼이나 철인들의 화법이었다. 그래서 시에서 메타포라면 사물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란 오해를 하게 된다. 더욱 웃기는 일은 비유어를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이라 하여 메타포를 시의 보조적 기능으로 오해하게 하는데 이것도 메타포를 왜곡하는 것이다. ​ ② 감추인 것의 드러냄 메타포의 본질은 첫째로 은유(隱 – 숨을 은 喩 – 깨달을 유)가 말하듯이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기존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불멸의 고전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마 13:34―35) ​ 비유의 본질은 감추인 것들을 드러냄에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고.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 이다. 직유도 비유다. 그러나 직유는 수사적 요소가 있다. “꽃처럼 예쁜 그녀”, 여기서 꽃처럼은 다분히 수사적이다. 따라서 비유의 참뜻은 꾸밈이 아니라 내면을 드러내는 표현(表現, express)이고, 볼 수 없는 신이 인간에게 어떤 게시물을 통하여 보여주는 현현(顯現, epiphany, theophany)의 놀라운 신통력이다.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박두진의 「꽃」에서 ​ 박두진은 일상적인 꽃에서 그 안에 숨어 있는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아픈 피흘림, 엇갈림의 핏방울이란 이미지를 발견하여 꽃의 감추인 내면을 보여준다. ​ ③ 변화와 확장과 창조 메타포의 본질은 둘째로 트롭(trope)에 있다. 그 어원은 전환(turn)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유를 전이(transform)라고 한 것과 같다. 시를 포에트리(poetry) 라고 하는데 이는 만들다. 창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메타포는 사물, 의미 등 모든 기존 개념을 전환하고 바꾸는 것, 재구성하는 것, 그리하여 기존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창조하고 확장하여 새로운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 이 창가에서 들어요 둘이서만 만난 오붓한 자리 빵에는 쨈을 바르지요 ​ 오 아니예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예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 먹어요. 전봉건의 「과수원과 꿈과 바다 이야기」에서 ​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내며 부스러져 내릴 것만 같다 ​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 장력처럼 널 만났다 ​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 언제까지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 엄원태,「물방울 무덤들」전문 ​ ④ 상호충돌과 낯설음 은유의 보다 근본적인 속성은 본래의 사물과 변경된 메타포의 사물이 대치나 전이를 통하여 두 사물 간에 낯설은 충돌, 각각의 존재들이 부딪쳐 낯설게 작용하는 구조다. 휠라이트는 삶의 원리를 투쟁의 원리, 곧 긴장의 원리로 보고 시의 경우도 이러한 투쟁의 원리가 은유의 형식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투쟁이나 긴장은 두 사물의 유사성이나 친밀성보다는 전혀 유사성이 없는 비 친숙의 관계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메타포도 리듬처럼 감동과 떨림의 메카니즘이다. ​ 나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본적은 거대한 계곡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 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다.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 김종삼 「나의 본적」 ​ ⑤ 육화와 화해와 구원의 시학 메타포의 최대 사건은 하나님이 인자로, 불가시의 존재가 가시적 존재로 육화(Incarnation)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이 회복 된 화해가 이루어 졌고 이로써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데오 메타포(Theo Metaphor) 신적 메타포, 우주적 메타포라고 말하고 싶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 앞서 시에서 꽃을 피 흘림, 본적을 마른 잎으로 메타포 했을 때 이를 드러냄 전환 충돌로 설명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분열된, 이질적인, 두 사물이 동격이 되고 하나가 되어 화해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적 구원이다, 그런데 육화라는 신의 데오 메타포는 단지 문자로만 들어내고 전환하고 충돌하는 언어적, 시적 립 서비스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 실물로 나타나 메타포를 현실화 했다는 데서 시적 구원과 종교적 구원의 편차가 있다. 그렇지만 메타포가 구원을 모색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에서 메타포의 참뜻이 있음을 알게 된다. ​ (5). 시는 셋째로 코노테이션이다 시를 시답게 하는 세 번째 룰은 코노테이이션(connotation)이다. 코노테이션이란 내포 또는 함축이라는 뜻이다. 언어는 사상과 감정의 전달수단이다. 그런데 언어는 같은 언어라도 과학적 용법으로 쓰여 지는 기능과 문학 특히 시로 쓰여 지는 언어의 기능과 의미가 다르게 작용한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두 기능을 외연(denotation)과 내포(connotation)로 설명한다, 외연은 언어가 지닌 사전적인 의미를 말하고, 내포는 그 언어가 풍기는 분위기, 다양성, 암시력, 연상과 상징적인 의미까지를 뜻한다. 물의 외연적 의미는 산소와 수소가 결합된 수분이지만 시에서 물의 기능은 시의 문맥에 따라 생명, 탄생, 정화, 죽음, 이별, 마음 등 무수히 다양한 의미로 변신한다. 그러기에 리처즈는 시적 언어의 특성은 정서적이요, 내포적으로 사용된 모든 언어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반대로 기술과 해명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의 특성은 지시적이요 객관적이요 말과 사물이 1:1의 관계다. ​ 이와 같이 시적인 언어는 내포적이어야 하고 함축적이어야 한다. 소설의 언어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기에 객관적인 언어의 사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어는 사물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외연적 의미 외에 묵시와 연상과 상징과 여운과 분위기를 수반하는 내포적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촌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에서 ​ 이 시에서도 시어가 갖는 다의적 내포성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눈’은 외연적으로는 겨울의 눈이지만 내포적으로는 추위 · 괴로운 세상 · 시인 자신의 고독감일 수 있다. 매화향기 · 가난한 노래 · 백마 · 초인 · 광야 등도 일상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보다 깊고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인’이란 말은 사전을 통해 보면 인간적인 것을 극복한 천재나 영웅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초인은 애국자 · 민족 · 시인 · 해방 · 미래 · 영광 · 권위 등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이처럼 지금까지 인류가 시라는 제도와 관습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소설이나 희곡과 달리 기본적으로 시는 리듬도 있어야 하고 메타포가 있어야 하고 외연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내포적이고 함축적 의미인 코노테이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의 근본적인 룰이었다. 따라서 좋은 시란 이러한 기본 조건들을 충실히 갖추고 실천하는 것이 마땅한 불문율이다.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2-3 좋은 시의 조건과 창조시학(3) ​ 홍문표 ​ 4. 보다 좋은 시와 보다 창조적인 시학 ​ (1). 스타플레이어와 보다 좋은 시 ​ 모든 운동경기에서 느끼는 일이지만 특히 축구경기를 보면서 우리가 박수를 보내는 것은 우선 선수가 경기규칙을 잘 지키는 경우라고 했다. 그래서 경기규칙에 따른 정정당당하고 공정하게 경기하는 태도를 페어플레이(fair play)라고 한다. 따라서 페어플레이어는 경기에 대한 기본 규칙을 철저히 인지하고 이를 경기장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는 자이다. 문학의 경우도 그렇다. 시의 경우 시는 시적인 리듬과 메타포와 코노테이션을 충분히 알고 이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면 일단은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으로 간주할만하다. 그런데 축구 경기를 보게 되면 규칙을 잘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싸울 뿐만 아니라 규칙을 잘 지키면서도 또한 다른 선수보다 재빠르고 날렵하게 정말 신기에 가까울 만큼 볼을 잘 다루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꼴 문을 가르는 돋보이는 선수를 본다. 이 때 우리는 열광적인 박수와 찬사를 보내며 그를 스타플레이어(star player)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시단에서도 기본적인 시의 제도와 관습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시인보다 월등하게 감동이 오고 충격이 오는 작품을 쓰는 시인이 있다면 이는 분명 스타 시인이 아닐 수 없다. ​ 작품에 분명 리듬도 있고, 메타포도 있고, 의미의 코노테이션도 있는데 어째서 작품마다 감동이 다르고 떨림이 다른 것인지, 따라서 시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시는 모두 좋은 시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처럼 보다 감동적인 시는 보다 좋은 시로 평가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똑같은 재료로 음식을 했는데도 음식 맛이 다르고 그 중에서도 더 맛이 있는 음식이 있는데 그 비밀은 또 무엇인가, 바로 여기에 좋은 시 위에 더 좋은 시의 해법이 있는 것이다. ​ 언어학자 소쉬르는 인간의 언어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랑그라는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빠롤이라는 언어다. 랑그(langue)는 언어활동에서 사회적이고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룰의 언어이다. 반면 빠롤(parole)은 그 규칙을 바탕으로 하되 현장에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능력으로 개성 있게 드러내는 언어다. 언어는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서로 공통된 규칙이 존재한다. 바로 보편적인 룰, 시의 경우 제도와 관습이라는 장르적 룰이다. 이처럼 공통된 문법이나 낱말들에 존재하는 서로간의 규칙으로 고정적인 것을 랑그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대화현장에서는 같은 규칙의 말이라도 억양 태도 단어 구사 등이 달라 반응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말을 잘 한다는 것은 공통의 룰인 랑그에도 충실하지만 실제 사람들과 소통하는 현장에서 그때그때 개성을 발휘하여 설득력 있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 문학도 그렇고 시도 그렇다. 공통적인 장르적 룰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이를 실제 창작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같은 소재 같은 주제라도 보다 뛰어나게 표현해 낸다면 이는 좋은 작품에서 보다 좋은 작품으로 격상될 수 있는 것이다. 시 창작에 있어서 이처럼 보다 좋은 시로 평가되는 비밀이 무엇일까, 그것은 보다 놀라운 상상력이나 보다 뛰어난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포괄적으로 말하여 필자는 보다 창조적인 시 즉 창조 시학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리고 이 창조 시학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 장르의 기본적인 제도와 관습이 리듬 · 메타포 · 코노테이션인 만큼 보다 좋은 시의 조건은 보다 창조적인 리듬 · 보다 창조적인 메타포 · 보다 창조적인 코노테이션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 (2). 보다 좋은 시와 보다 창조적인 리듬 ​ 앞서 시인의 꿈을 울렁거림이라 했다. 울렁거림은 놀라울 때, 충격을 받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시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자 하는데 있다. 그런데 일상을 벗어나려면 변화를 위한 충격이 있어야 한다. 잔잔한 호수에 바람이 불거나 돌팔매질이 있어야 파동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파동은 지속적일 때 보다 효과가 있다. 시에 있어서 리듬이란 바로 잔잔한 호수에 돌팔매질이고 그 돌팔매질의 강도와 지속성에 따라 물결도 다르게 반응한다. 좋은 시와 보다 좋은 시의 논의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 과거에는 시의 리듬을 엄격하게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충실 한 시를 좋은 시라 했다. 그 당시로서는 시의 리듬규칙을 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익숙해져서 충격도 약해지고 떨림도 약해졌다. 첫사랑은 정말 떨림이 대단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 황홀했던 떨림이 무뎌진다. 우리에겐 계속 떨림이 필요하다. 떨림이야말로 삶의 변화와 개혁과 활력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습관적인 리듬 규칙을 깨고 새로운 리듬을 모색하게 된다. 그것이 현대 자유시의 리듬 정신이다. 그렇다면 자유시의 리듬은 언제나 고정적인 것을 거부한다.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것은 고인 물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에 끊임없이 창조적 리듬이 시의 기본조건으로 제기되는 이유가 있다. 시의 존재이유가 독자에게 떨림과 충격을 주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떨림이 더욱 신선하고 강도가 있고, 그러면서도 지속적인 것이 되도록 계속 창조정신을 발휘해야한다. ​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 ​ 그대의 것도 되고 나의 것도 되곤하던 목너머 마슬로 가는 나지막한 이 오솔길 ​ 인기척 혼자내고 가는 항가새꽃 핀, 이 길 서벌 「뒤 늦게 캔 느낌」 ​ 수백 년 간 헌법처럼 지켜온 3장 6구의 시조리듬이 서벌에 이르면서 고정적인 리듬을 탈피하고 보다 창조적인 시조의 리듬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랑그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개성 있는 빠롤의 창조적 모험을 통해 충격과 떨림을 신선하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정철시조와 같은 3행시를 아직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떨림의 강도나 신선도에 분명 차이를 느끼게 한다.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김동명 「내 마음은」 ​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꽃의 시듬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새로이 지어 주시다 김현승 「눈물」 ​ 김동명의 「내마음은」은 “내 마음은 호수”라는 은유의 다양한 반복리듬을 시도하고 있어 좋은 시이기도 하지만 너무 기계적이고 규칙적이어서 노랫말이 되었다. 각 연이 2행으로 고정 되어 있고 시어 구성도 일정한 틀에 맞춘 느낌이어서 개성 있는 리듬의 창조성이 약하다. 반면 김현승의 「눈물」은 행과 연과 시어들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오는 충격과 떨림이 신선하다. 개성적인 리듬의 창조가 보다 떨림이 좋은 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3). 보다 좋은 시와 보다 창조적인 메타포 ​ 시어에 메타포는 시가 산문과 달리 보이지 않는 세계의 드려냄이고 기존의 존재 의미를 변형하거나 새롭게 창조한다는 데서 변별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시를 시이게 하는 열쇠가 된다고 했다. 따라서 시의 문학성 · 시의 예술성 · 보다 좋은 시의 논거는 바로 얼마나 시가 창조적으로 메타포를 구사했느냐에 있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시조 ​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박두진「하늘」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먼 볕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박두진 「꽃」 ​ 같은 시조라도 앞의 정철의 시조와 황진이의 시조는 리듬은 동일한데 너무나 시적 떨림이 다르다. 무엇 때문일까, 창조적 메타포의 문제다. 황진이의 시조에는 밤의 허리, 춘풍 이불, 굽이굽이 펴리라는 뛰어난 메타포가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조 중 황진이의 시조가 가장 애송되는 것은 바로 보다 창조적인 메타포가 있기 때문이다. ​ 같은 박두신의 시이지만 「하늘」과 「꽃」은 충격과 떨림이 다르다. 「하늘」도 “하늘이 내게로 온다” “나는 하늘을 마신다”에서 하늘에 대한 시인의 메타포가 좋은 시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하늘은 호수처럼 푸른 하늘이고 향기로운 하늘이어서 하늘에 숨어 있는 새로움을 드러내거나 새롭게 변형하여 독자에게 다가오는 은유적 충격이나 떨림이 약하다. 다만 하늘과 동화되는 자연 친화의 일반적 주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꽃」은 꽃의 상투적인 인식을 벗어나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아픈 피흘림”, “엇갈림의 핏방울”, 등의 다양한 메타포를 통하여 꽃의 내면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드려내고 새롭게 변형하여 충격과 떨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바로 보다 창조적인 메타포가 구사되어 보다 좋은 시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략- ​ 5. 그렇다면 결국 좋은 시란 무엇인가. 좋은 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동과 떨림으로 다가오는 시다. 그래서 시인은 저마다 떨림의 시를 꿈꾼다. 물론 저마다 최선을 다해서 쓴 창작인데 좋은 시니 떨림이니 하는 평가가 적절한 것인가 하는 비판도 있고 보는 관점에서 다르다는 이론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떨림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그 떨림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시인의 꿈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했다. ​ 그렇다면 그 떨림의 차이의 비밀, 즉 좋은 시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축구나 배구에도 룰이 있듯이 시와 소설도 각기 다른 제도와 관습이 있는 만큼 그 제도와 관습을 기본적으로 익히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시를 시답게 하는 핵심적인 제도와 관습, 그 기본적인 룰은 리듬, 메타포, 코노테이션이라고 했다. 따라서 시인은 이 기본적인 룰을 충분히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기본 조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다 좋은 시를 쓰려면 보다 창조적인 리듬, 보다 창조적인 메타포, 보다 창조적 코노테이션이 요구된다. 그러기에 시인은 기본 룰에 더하여 끊임없이 개성적인 창조적 리듬, 창조적 메타포, 창조적 코노테이션을 위하여 노력하는 창조시학의 스타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오늘 논의해본 창조시학의 골자다. 그렇다면 아직 스타 시인도 아니고 보다 좋은 시로 각광받지 못하는 오늘의 대다수 시인들은 시인도 아니고 시도 아니란 말인가. 이 점에 대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다시 정리한다. ​ 첫째, 내가, 좋으면 좋은 시다. 요즘 같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시를 좋아하고 시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하다. 따라서 남들이 뭐라든 내가 좋고 내가 만족스러우면 좋은 시다. 그러한 작업 속에서도 자신에겐 위로가 있고 치유가 있고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 둘째, 그러나 남들도 좋아하면 더 좋은 시다. 시는 우선 내가 좋아야 쓴다. 그런데 남들까지 좋아한다면 나도 시적으로 구원받고 남도 구원할 수 있었으니 마땅히 더 좋은 시가 아니겠는가. 셋째, 나도 좋고 남들도 좋을 뿐만 아니라 읽을수록 새롭고, 읽을수록 떨림이 있고 읽을수록 깨달음이 있는 시는 더더욱 좋은 시다. 시는 일시적인 유행가가 아니다. 일시적으로 유명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더더욱 좋은 시는 언제나 살아있고 떨림이 있어야한다. ​ 넷째,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좋아 하는 시는 명시(名詩)다. 시간과 공간과 인종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 누구나 좋아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명시다. 다섯째, 하나님까지 좋아하면 성시(聖詩,Theo Poetry)다. 인간들끼리만 좋아하는 시가 아니라 신들도 좋아할 수 있는 영적인 시, 천상의 시, 신령한 영역까지 떨림일 수 있는 시야 말로 인간적인 정서적 구원을 넘어 영혼의 구원으로 이끄는 신령한 시가 될 것이다.  
14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14 댓글:  조회:810  추천:0  2019-12-2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1-1 일상의 시학과 메타포의 시학(1) ​ 홍문표 ​ 1. 들어가면서 (1) 몇 개의 이야기 ​ 개그;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 지식 중심 서열중심 개미와 베짱이, - 실용중심주의 풀라톤의 시인 추방설 - 내용중심주의 크라인 바움의 “죽은 시인의 사회”, 웰튼고교 키팅선생 토드 연극희망 부모 의사희망 자살 키팅 퇴출 학생들 오 캡틴 환송 –지식 실용중심 비판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인간 인공부화장 생산 매일 해피드럭, 존 부모의 자궁으로 탄생 반문명인 보호 구역 동물원 원숭이 취급, 죽으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신이다 술이다 시다 - 기술 진보 과학 중심 비판 별주부전, 용왕중병 토끼 간, 별주부 토생원 유혹 간이냐 용궁이냐- 물신주의 비판 ​ (2) 세상과 시인 세상은 객관적인 것, 합리적인 것, 물질적인 것, 도덕적인 것, 전통적인 것, 상식적인 것, 바로 일상적인 것들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음, 이를 달리는 세속적이니 통속적이니 현실적이니 함, 이러한 세상에서 시인의 존재감, 시의 본질 시의 목적시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라신느의 “숨은신”, 신이 숨어 있는 모순된 세상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모순된 현실에 타협하는 길, 현실과 대결하는 길, 현실을 도피하는 길, 현실을 초극하는 길, 시인의 길 – 현실을 뛰 넘는 것, 새 하늘 새 땅을 선취하는 것, 바로 현실을 초극하는 길,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시학의 원리가 웰렉과 워렌이 말한 “시는 리듬과 메타포다” metaphore(meta=over, phore=carryng) 넘다와 옮기다, 뛰어넘다, 초극하다, 따라서 시에서 모든 뛰어넘기의 논리가 바로 메타포의 시학이다. ​ 2. 뛰어넘기(메타포) 시학 정리 (1) 객관에서 주관으로 ㉠ 국화 : 명. 식물. 엉거시과에 속하는 식물. 줄기는 나무질화 하며 잎은 대개가 깊이 찢어지고 품종이 다양함. 대국. 중국. 소국으로 나눠지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하국. 추국. 동국으로 나누기도 함. - 현문사 「한국어 대사전」에서 ​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국화 옆에서」에서 ​ ㉠의 문장 :국화에 대한 객관적, 사전적, 학술적 서술, 국화의 생태, 종류, 특징들을 객관적으로 인식, 그러나 생명력 감동이 없는 문장 ㉡의 문장 : 국화에 대한 시인 자신의 주관적 견해, 비과학적 서술, 국화꽃과 소쩍새, 국화와 누님, 과학적으로 전혀 무관, 그런데 생명력, 감동, 풍요로움이 있음 객관적 세계 인식에서는 인간과 물질, 정서와 사상, 사물과 사물 모두가 개별화 고립화 되어 있다. 여기에 객관적 세계의 소외가 있고, 고독이란 비극이 있다. 따라서 객관에서 주관으로의 뛰어 넘기는 바로 소외와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한 방식이다. ​ (2) 이성에서 감성으로 ​ 인간은 근원적으로 이성(logos)과 감성(pathos)을 공유한 존재다. 그런데도 문명사는 이성, 지혜, 지식, 합리성, 과학성의 우월성만을 강조, 이성만능주의, “아는 것이 힘이다” 감성적 기능을 경시 최근의 뇌과학- 좌뇌-이성적 기능, 우뇌-감성적 기능. 두뇌의 좌측을 상한 사람은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우측을 상한 사람은 감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좌뇌를 상하면 수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뇌를 상하면 눈물이나 웃음을 모르는 목석같은 인간이 된다. ​ 최근의 천재교육- 우뇌를 키워라,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를 높이는 것 신은 우리에게 좌뇌와 우뇌를 균형있게 개발하여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삶을 향유하도록 축복하셨다. 그런데 인간들은 좌뇌만 개발하여 이성적 사고, 이성의 문화에만 치중한 정신의 반신불수, 불구자의 삶을 살게 된다. 하버마스의 도구적 이성과 이성의 타락 - 지식, 기술, 이권만을 중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인간의 물질적, 기술적, 지적, 권력 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적 이성으로만 수행되어질 때, 세상은 이기적이고, 경쟁적이고,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으로 타락됨. 여기에 현대인의 비극이 있음. 오늘의 진짜 대도는 지식 기술이 우세한 고학력 계층의 정치 경제범, 여기에 이성을 뛰어넘어 감성의 메타포를 모색해야하는 당위가 있음 ​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내게로 불 밝혀 가야 하는 땅이 보인다. 세상을 다 받아들고도 비어 있는 손 잠들지 못하는 나라 산맥이 일어서고 골짜기가 깊다. 강물이 꿈을 꾼다. 바다가 깨어 있다. 미래의 내 음성이 들리는 곳 손바닥 깊이 들어가면 고요하다. 이 고요한 길속에 길이 엇갈려져 끝이 없다. 혼돈과 창조의 거센 바람소리 우주의 숨소리 밤하늘 별의 운행이 화안히 비친다. - 이성선「손의 명상」에서 ​ (3) 추상적에서 구체적으로 감정은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어서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감정은 가장 주관적이며 개별적인 것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실 주관적이란 말은 사물을 공통된 것으로 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특성을 구별하여 보는 것이며 이는 개별적인 존재성을 살리는 시적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라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 김수영 「사랑」에서 ​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금잔디」 ​ (4) 과학적 진실에서 시적 진실로 ​ 시가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것이라면 진리를 담보할 수 없다. 과학적 진리에 대한 우상- 과학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이기 때문에 이성중심의 인간들은 과학에만 진리가 있다는 우상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과학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진리와 패러다임- 최근에는 같은 과학이라도 관점이나 구성방식, 해석과정에 따라 그 진실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갖는다. 쿤은 어떤 사물의 의미를 결정하는 전체적 관점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하였다. 가장 분명한 예로 물리학에서는 전기를 파장(波長)으로 보지만 화학에서는 미립자(微粒子)로 보는 것이다. 즉 어떤 패러다임이냐에 따라 과학에서조차 진실은 천의 얼굴을 갖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패러다임조차 애당초 존재한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체계라는 것이다. ​ 시적 진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진리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즉 과학적 진실은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고, 종교적 진실은 종교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며, 시적 진실은 시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만이 진실이 아니라 종교적 진실도, 시적 진실도 각각 그들 나름의 진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 (5) 약물치료에서 시 치료로 ​ 일상을 뛰어넘는 문학의 최대 기능은 망과 정서의 해방감. 행복감, 만족감, 충만함을 주는 것인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catharsise)라고 했다. 인간은 어떠한 자극을 받는가에 따라 신체의 각 기관이 다양하게 반응하고 이에 따라 슬픔, 기쁨, 웃음, 노여움, 두려움, 놀라움, 그리움, 사랑스러움 등의 정서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시끄러운 소리는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는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짜증스런 기분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경쾌한 리듬은 소화기능을 돕고, 즐겁고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바로 좋은 시는 그러한 기능을 수행한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카타르시스는 바로 스트레스 해소, 정신 정서 심리적 힐링, 동시에 육체적 건강에 지대한 효과 - 시 치료, 문학치료 예술치료(대체의학)의 근거가 됨 ​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거나 양지바른 산자락에 앉아 시나 몇 줄 쓰고 싶다. ​ 청청한 하늘 바라보면서 새털구름 한 자락 잘라 백두산에는 바늘꽃 심고 한라산에는 미나리아재비 밤에는 초롱한 별빛을 세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나 부르고 싶다. ​ 가지는 꺾이어도 좋다. 허리는 부러져도 좋다. 잎들이 떨어져 너에게 짓밟혀도 좋다. ​ 봄이면 속살이 돋고 여름이면 또 꽃이 피는 것을 꺾어지면 어떠리 부러지면 어떠리 짓밟히면 어떠리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1-2 일상의 시학과 메타포의 시학(2) ​ 홍문표 ​ (6) 현실에서 상상으로 시, 또는 문학 그리고 예술은 어떤 존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telling) 세계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방법으로 감동하게 하는 세계라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은 구체적인 것이라 했다. 여기서 구체적이란 어떤 존재를 감각적으로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는(showing) 방식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예술의 행위는 바로 어떤 생각이나 심정을 구체적인 어떤 사물이나 사건으로 예를 들어 보여 주는 작업이 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은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여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사물을 이미지(image)라 하고 이러한 사고를 상상(imagination)이라 한다. ​ 골짝물이 이렇게 조잘대며 흐르는데 ​ 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꺼야 ​ 산나리가 이렇게 예쁘게 웃어주는데 ​ 나무들에게도 정말은 눈이 있을 꺼야 ​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표현-“골짝물이 이렇게 조잘대며 흐르는데”, “산나리가 이렇게 예쁘게 웃어 주는데” - 일상의 시학 상상적이고 창조적인 표현-“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 거야” “나무들에게도 눈이 있을 거야” -메타포 시학, 이처럼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이 없다면 미래도 없고, 초월도 없고, 자유도 없고, 삶의 확장도 없다. 그것은 시만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다. ​ 이 창가에서 들어요 둘이서만 만난 오붓한 자리 빵에는 쨈을 바르지요 오 아니예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예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서 먹어요 - 전봉건 「과수원과 꿈과 바다 이야기」에서 ​ ​ (7) 낯익음에서 낯설음으로 ① 낯익음의 언어 ​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 쉬클로프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시의 문학성은 시어의 낯설음의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친숙한 의미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소한 충격을 주는 이미지, 뭔가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활력을 주는 언어의 창조가 바로 낯설음이며 산문과 구별되는 시어의 정수가 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언어,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공식적인 언어는 이해는 있으나 감동이 없다. 바닷가의 파도소리, 친숙화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반복되어 습관화되었을 때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각은 자동화되고 감각은 마비되어 낯익은 사람 사이에는 언어를 생략하고 손짓이나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탈언어화 상태가 된다. 지각적인 의식의 언어가 생략될 때 남는 것은 기호뿐이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호만 존재하게 될 때 그것은 시의 세계가 아니라 수학이고 과학이고 산문이다. 추상적인 개념과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 존재하는 삶이란 이미 창조적 인간이 아니고 기계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비인간화의 무의미한 세계일뿐이다. ​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낯익음의 일상의 시 ​ ② 낯설음의 언어 시어의 참 기능 - 따라서 예술가가 대항하고 투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일상과 습관과 안일과 매너리즘의 권태다. 대상을 습관적인 문맥에서 뜯어내고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함께 묶음으로써 시인은 상투적 표현과 거기에 따르는 기계적 반응(stock response)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서 대상들의 감각적인 결(texture)을 뛰어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언어는 바로 일상적인 낯익음의 용법의 일상적인 시학을 을 배제하고 보다 낯선 뛰어넘음의 메타포 시학 통하여 지각의 신선함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적 자유이고 해방이다. ​ 당신은 짐승, 별, 내손가락 끝 뜨겁게 타오르는 정적 외로운 사람들이 따 모으는 꽃씨 외로운 사람들의 죽음 순간과 머나먼 곳, 異邦의 말이 고요하게 시작 됩니다 당신의 살갗 밑으로 大地는 흐릅니다 당신이 나타나면 한 개의 물고기 비늘처럼 무지개 그으며 내가 떨어질 테지만 - 이성복 「당신은 짐승, 별」 ​ (8) 워킹(walking)에서 땐싱(dancing)으로 ​ 시인 발레리는 산문과 시를 구분하면서 산문은 도보(walking)요 시는 무보(dancing)라고 했다. 도보 즉 걷기는 사건이나 행동의 시작이 있고 중간 과정이 있고 마침이 있다. 그러나 무보 즉 춤추기는 제자리에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시가 리듬이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시에 반복적인 리듬이나 메타포가 없다면 그것은 일상의 시학 ​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고 너는 내 욕망의 무지개가 되어 내 손에 가득한 장미가 되어 흐느적거리는 육질의 껍질을 벗고 날마다 비상하는 오월이 되어 육자배기로 돌아가는 자유가 되어 현재로 자족하는 서정시가 되어 아스라이 펄럭이는 깃발이 되어 홍문표 「늘 푸른 강물이듯이」에서 ​ (9) 인접성에서 등가성으로 시인들이 시어를 선택하여 산문과 다른 낯설음을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하여 야콥슨은 등가성(equivalence) 원리를 제시하였는데 그는 시의 언어는 등가성의 규칙에 따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시어를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비하여 일반 산문은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으로 하지만 결합의 경우는 접촉성에 의한다는 것이다. ​ 외인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다란 별빛이 내리고, ​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時計)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김광균의 「외인촌」에서 ​ 1) 일상어법       접촉성       접촉성                                   저       식사       한다     나 는 +     밥   을 +   먹는다     소인       끼니       때운다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2) 시의 어법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폭포     흐르는   퍼런   징소리     분수 처럼+ 흩어지는 + 푸른 + 종소리     빗물     뿌려지는   시퍼런   새소리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 산문의 문장은 낱말과 낱말이 인접성에 의하여 환유적으로 결합하는 구조이고 시의 문장은 낱말들이 등가성에 의하여 은유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다. 따라서 웰렉이 현대시는 은유(metaphor)다 라고 한 말을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시의 원리가 리듬이라는 것도 사실은 등가성의 원리에 있다. 어휘반복, 구절반복, 이미지반복, 의미 반복 등 모든 반복의 규칙은 바로 등가성의 원리와 일치하는 논리다. 시는 등가성의 원리에 따라 계열축의 언어를 선택의 축으로 하여 결합해 가는 언술이고, 산문은 전체와 부분이라는 환유적 접촉으로 결합해 가는 언술이다. ​ (10) 분열에서 통합으로 메타포란 meta-over와 phore-carrying, 기존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옮기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 옮긴다는 말이 또 다른 분열과 혼란으로 오해될 수 있는데 시에서 메타포의 본질은 분열에서 통힙이다. 예컨대 “내 마음은 호수요”, “인생은 나그네길”,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그대는 보름달” 등에서 마음과 호수, 인생과 나그네, 하나님과 목자, 그대와 보름달은 서로를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동일시하여 분열된 상태를 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 사고 과학적 사고는 사물을 분석하고 구별하여 너와 나를 분리하는 것이고 문명어 또한 모든 사물을 기호화, 상징화하여 모든 존재들 사이의 정서적 관계가 상실되고. 주체와 타자의 분리, 인간의 소외와 고독을 조장했다. 메타포는 이처럼 신과 인간과 자연이 분열되고 소외된 정신적 절망에서 너와 나 주체와 타자의 화해와 통합을 통한 에덴의 세계, 구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지상의 종교다.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번만의 어느날의 아픈 피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어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 박두진의 「꽃」에서 ​ (11)통합에서 구원으로 ​ 메타포는 분열에서 통합이라고 했다. 이성과 과학은 세상을 분열시키지만 시의 상상과 메타포는 분열된 것들을 감성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이다. 통합은 대결이 아니라 화해요 사랑이다. 그런데 분열된 것을 통합한다는 시정신은 좋으나 솔직히 “내 마음은 호수요”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등의 논리가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된다. 마음과 호수가 동일할 수 없으며, 죽음이 바위와 동일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상상과 메타포가 시적 방법이라 해도 이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휠라이트는 시를 역설(paradox)이라했다. 여기서도 prra는 ‘넘어서다’이고 doxa는 ‘이견, 다르다’는 뜻이다. 시는 현실을 넘어선 다른 의견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이성적으로는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진실로 믿는 것, 거기에 시적 구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파라독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설을 진실로 믿는 자에게는 기독교적 구원이 가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학에서도 상상이니 메타포니 하는 사실을 뛰어넘는 이 모든 역설들을 단지 기교로 볼 것인가. 그것은 분열에서 통합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갖는 것이며 그러한 통합을 진실로 믿는 믿음의 단계에 이를 때, 진정 시적으로 구원된 경지라 하겠다. ​ 시인은 시를 왜 쓰는가. 취미인가, 심심풀이인가, 말장난인가, 분열된 세계를 사랑과 열정으로 통합하여 화해된 세상 모두가 하나된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 메타포의 시학은 바로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지상의 종교다.  
13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13 댓글:  조회:787  추천:0  2019-12-2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9 생태주의와 생태시 ​ 홍문표 ​ (1) 21세기와 에코토피아 ① 21세기의 환상 정보통신의 혁명 - 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농업-산업-정보) 지구촌시대. 디지털시대. 하이 퍼리얼리즘. 싸이버리즘 생명공학의 혁명 - 생명연장, 생명체조작, 헉슬리의「Brave new world」 신중심주의 - 인간중심주의 - 물신주의 - 과학신주의 ​ ② 자연파괴와 종말론 환경오염 - 지구온난화, 천재지변, 쓰나미 현상 생태계 파괴 - 우주, 생명, 인간, 유기적 관계, 먹이사슬 관계, 생존질서파괴 유전공학 - 생명 체계변화, 난치병, 괴물, 변종의 재앙 ​ ③ 인간중심주의의 허실 하나님의 천지 창조 - 인간. 생명체 모두 피조물-자연 인간 모두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담의 원죄 - 선악과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 의 계율)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 인간의 영원한 유혹) 아담의 후예들 -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헤겔,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 인간중심주의 - 이성중심주의 - 인간우월주의 인간 - 만물의 영장 자연. 생물 - 하등한 것. 파괴의 대상. 인간 욕망의 대상. 자연파괴 정당화. 과학기술의 발달 - 자연파괴 가속화. 농업시대 - 산업화. 자본주의. 공장공업, 대량생산. 대 량소비, 자본. 재화 돈 중심의 물신시대. 인간상품화. ​ ④ 휴머니즘 - 인간중심주의 - 이성중심주의 모든 사물의 가치화 계량화 모든 인간의 서열화 계급화 플라톤 - 본질과 비본질. 진리와 비진리. 인간의 서열화 공자 - 도와 비도. 군자와 소인. 인간의 서열화. ​ ⑤ 플라톤과 공자와 이성중심주의 그들은 이성적 가치기준을 정하여 본질과 비본질, 도덕과 부도덕, 문명과 야만, 선과 악 등 이분법적 사고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서열주의는 귀족과 평민, 양반과 상놈, 남성과 여성, 주인과 노예 등 계급주의를 정당화했고 마침내는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전쟁이나 계급투쟁을 위한 피의 숙청,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운 나치즘의 유태인 학살 등 민족주의, 제국주의, 계급주의, 전체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파괴적인 폭력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 ⑥ 인간중심적 디스토피아에서 생태시의 에코토피아로 이처럼 인간 우월주의, 이성중심주의가 가져온 기술문명과 물신주의가 자연환경과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고 인간 생존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디스토피아(distopia)의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생태문제를 인식하고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자생력을 회복하여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공존 공영하는 생태회복의 낙원(ecotopia)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것이 21세기 비평의 최대 화두일 뿐만 아니라 생태시(ecolyric)의 목표가 된다. ​ (2) 생태시의 형성 ① 생태시의 의미 생태시(ecolyric)라는 명칭은 헤켈이 제시한 생태학(ecology)과 서정시(lyric)의 합성어다. 생태학이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시가 사물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라면 생태시는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관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된다. ​ ② 생태학과 생태시 생태학이란 특정한 유기체와 주변환경 간의 연관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생태학적 인식구조와 생명존중의 철학,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환경보호 운동의 여러 이념이 생태시의 정신적 기저(基底)를 형성한다. 생태시는 이 같은 학문적, 사회적, 정치적 인식에 근거하여 인간, 동물, 식물이 생태계의 변화에 어떠한 반응과 변화를 나타내는가를 사실적인 언어로 재생해내는 현대시의 한 장르이다. ​ ③ 기존의 시, 인간중심의 시 지금까지 시라고 할 때 공통된 조건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음악적인 언어, 상상적인 언어를 통하여 미적인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시의 주체가 철저히 인간이라는데 있다. 인간의 사상, 인간의 감정만을 유일한 시의 주제로, 시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비록 사물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일지라도 이것은 인간의 사상을 자연에 투사하거나 동화하여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냈을 뿐이다. 따라서 자연은 다만 타자이고 수단일 뿐이고 주체나 목적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 ④ 생태시의 특징 생태시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사실적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시이며 환경파괴의 사회적 원인들을 고발함으로써 독자의 비판의식과 개혁의지를 일깨우려는 목적성을 가진 시다. 그리하여 생태시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모든 생명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며 생명체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까지도 인간과 유기적 공동체임을 인정하고 생명과 우주의 유기적 질서를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여기에 상생주의(相生主義, win-win theory)라는 21세기 철학이 있다. ​ ⑤ 생태주의와 환경주의 생태주의는 환경주의와 다르다. 환경주의자들은 자연 파괴의 문제를 인간의 이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견지한다. 그들은 인간의 생활공간을 편리하고 쾌적하게 조성하기 위해서라면 주변의 자연환경을 충분히 가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끝내 인간중심주의다. 따라서 생태주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차등의식, 소유의식을 갖는 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자연과 대등한 관계, 공존의 관계회복이라는 근본적인 의식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생태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평등을 내세우는 인간중심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자연과 우주 모두가 평등한 생태학적 민주주의, 절대의 민주주의다. ​ (1) 독일 중심의 생태시 ① 생태시 운동의 출발 ​ 생태시 운동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독일어권에서 1950년대 태동기를 지나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살포 등 환경오염. 각국의 핵무기 개발 등에서 반전 반핵 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녹색당. 그린피스가 가동되고 1970년대는 독일의 경우 환경정화노력이 전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운동이 시로 구체화되어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 가 제작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시인 92명이 쓴 206편의 생태시 앤솔로지 ​ ②「시조새의 꿈」 - 파충류와 인간이 공존했던 생태학적 에코토피아 ​ 오랜 세월동안 나는 너를 알고 있단다 수천 년 동안 늪처럼 이끼처럼 웃음을 머금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예감하는 나, - 발터 헤레러의 「시조새의 꿈」에서 ​ ③ 물, 공기, 대지의 오염 ​ 우리는 대지의 살점을 도려내고 대지의 피부로부터 털을 깎듯 숲을 베어 냅니다. 더구나 구멍 숭숭한 상처 속에 아스팔트를 메꾸어 숨통을 틀어막지요 ​ 어느새 우리는 대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인정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강도가 되어 밤낮 구별 없이 대지를 약탈하고 있습니다. - 엘케외르트겐의 「대지」에서 ​ ④ 산업화, 도시화, 기술문명, 물신주의 ​ 우리 모두 마음껏 즐겨보자 우리는 쾌락의 칼로 하늘의 내장을 도려내 버렸다 천사들은 이미 노래를 멈추었으니 뮤직박스를 틀어라 광란의 재즈로 발을 뜨겁게 달구어라 - 다그마르 닉의 「증명」에서 ​ ⑤ 지구 멸망의 묵시록 ​ 어제 우리는 마지막 남은 늑대들을 쏘아 죽였다 이제 들판은 영영 정복된 셈이다 사과나무도 잔디도 우리의 것이 되었고, 세상은 온통 정원으로 변해가 된다 - 한스 위르겐 하이제의 「징후」에서 (2) 미국의 생태시 ① 미국생태시의 형성 미국에서 생태학과 문학의 관계는 19세기 미국의 문인이자 사상가인 에머슨과 소로우로 거슬러 갈 수 있지만 네이쳐 라이팅(Nature Writing)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명으로 생태학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시가 씌어진 것은 197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나 머윈(W.S Merwin), 시어도어 레스키(Theodore Roethke),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 의 시들이 생태학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 ② 게리스나이더의 「거북이 섬」 해변가에 위치한 유레카. 핵발전소, 쌓아 논 목재더미. 타지 사람이 주인인 제재소들. 나무들이 잘려나간 산둥성이의 그루터기. 바다 안개 언저리에 서 있는 유레카. 여기 사는 사람은 누구도 이 마을을 다스릴 힘이 없다. - 게리 스나이더의 「유레카에서의 예술인들 모임」에서 ​ (3) 생태시의 두 유형 ① 고발적, 사실적, 르뽀적 생태시 ​ 1952년 런던 상공에 하얗게 피어오른 구름떼가 불과 일주일 만에 성인 4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그 구름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스모그 이것은 스모그(연기)와 포그(안개)를 합쳐놓은 이름이다 (화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산화황과 질산이 결합된 물질로서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흔히 광화학 스모그라고도 한다) -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시 아닌 글」에서 ​ ② 은유, 상징 등을 사용한 세련된 문학형식의 생태시 ​ 새의 몸뚱이는 풍만하다 뼈들은 바닷 속으로 떨어져 내리고 피에 젖은 감람 잎사귀들이 앞으로 앞으로 흘러가는데 깃털들이 흘러가고 물고기들은 날아가며 나는 목이 마르다 - 에리히 프리트 「홍수」에서 ​ (1) 생태주의와 동양사상 ① 불교와 생태주의 ​ 불교에서는 인간의 죽은 영혼이 초목조수에 깃들인다는 전주설(轉住說)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과 자연이 적대관계가 아니라는 생명사상이고 특히 자타불이(自他不二) 라는 아트만(Atman)사상도 생태주의와 관계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불(成佛)이라는 점에서 인간중심적 요소가 있다. ​ ② 노장사상과 생태주의 노장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 만물일체(萬物一體)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일체 인위적인 사고와 행동, 공자적 태도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생태주의와 일치하나 적극적인 친자연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허무를 강조한 소극적인 생태주의라고 할 수 있다. ​ (2) 한국생태시의 형성 ① 과거 한국의 시와 생태 과거 한국시는 생태학적 관심보다 자연에 대한 관심, 향가에서 주술성, 고려가요에서 보는 현실 도피처로서의 자연, 조선조에서 보는 불변성에 대한 도덕적 가치, 서경적 자연, 현대 서정시들이 보이고 있는 심미적 자연, 모더니즘 시가 보여주는 탈 개성적 자연들이다. ​ ② 생태시의 확인 우리 문학사에서 생태문제가 거론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다. 사회단체로 환경보호단체들이 있었고 정부에 환경청이 생긴 것도 역시 이 시기에 이르러서다. 생태주의 비평으로는 신동춘, 최병현, 손유성, 이동승, 박이문, 송용구, 김욱동, 문덕수, 홍문표 「한국생태시의 과제」(1991) 등이 있고 시집으로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 고진하와 이경호가 엮은 생태사화집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가 출간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생태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연대의식이 가시화되었다. 그밖에도 김지하의 「중심의 괴로움」 신진의 「강」 강남주의 「흐르지 못하는 강」 이승하의 「생명에서 물건으로」 고진하의 「우주배꼽」 정현종의 「한꽃송이」 문정희의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송용구의 「풀피리 소리보다 향기로운」 홍문표의 「지상의 연가」 「나비야청산가자」 등이 있다. ​ (3) 한국 생태시의 유형 ① 환경파괴 실상을 르뽀 형식으로 고발한 작품 ​ 그날 그 도시에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이 영문도 모르게 설사와 구토 피부병을 시작했고 임신중인 산모들이 태아를 유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 김용락의 「대구의 페놀수돗물」에서 ​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사옵니다. 낮은 땅의 뜻만 땅에서 창궐하고 이사옵니다. 동맥경화에 걸린 샛강과 폐암에 걸리고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공장들 피가 맑아야 한다는 동의보감은 휴지가 되고 있사옵니다. 자외선이 쏟아지는 하늘 구멍을 향해 사람들은 대패질을 계속합니다. - 강남주의 「비행기에서 보는 세상」에서 ​ ② 생태파괴로 인한 종말, 묵시록의 언어 ​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자면 흘러내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 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 최승호 「공장지대」 일부 ​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이 일어날 때의 시간인데도 산의 그늘만이 길게 뻗쳐 있다 햇빛이 해골의 눈 속을 통과하여 바람이 불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지구는 혼자 외로이 겨울을 빠져나가면서 공중에 떠 있을 분 인류는 모두 어디에 갔는가 - 고형렬의 「지구묘」에서 ​ ③ 생태주의 먹이사슬의 문화. 생물 평등주의 그 마지막 희망 ​ 똥보면 베먹고 싶어 새벽 샘물 샘 뒤 언덕 위 산죽닢 스쳐 오는 바람을 마셔 동트는 분홍 산봉우리 흰 안개구름 마셔 똥만 보면 못 견디게 베 먹고 싶어 내 몸이 곧 흙이어설 게야 흙이 똥을 마다 안함 오곡이 장차 가득가득히 익어 끝내는 열매 열리게 될 터이어설게야 똥 속에 배시시 애린이 웃어설 게야 꼭 그럴 게야 - 김지하의 「똥」에서 ​ 올해도 꾀꼬리는 날아왔다 마음 놓인다. 꾀꼬리야, (걱정 많은 생명계의 균형의 숨은 움직임을 번개처럼 알리니) 네 소리의 품속에 안기고 또 안긴다. 네 소리의 경전에 비하면 다른 경전들은 많이 불순하다. 번개처럼 귀밝히며 또한 천지를 환히 관통하는 이 세상 제일 밝은 광음(光音), 새소리! ​ 아, 올봄도 꾀꼬리는 날아왔다. 1991년 5월 7일 오전 9시 43분. - 정현종의 「한」에서 ​ 우리집 아이들은 딸기를 먹을 때마다 신을 느낀다고 한다 ​ 태양의 속살 사이사이 깨알같은 별을 박아 놓으시고 혀 속에 넣으면 오호! 하고 비명을 지를 만큼 상큼하게 스며드는 아름다움 잇새에 별이 씹히는 재미 문정희의 「딸기를 먹으며」에서 ​ 늘 푸른 강물이듯이 나는 당신의 목덜미를 잡고 당신은 내 외로움의 등줄기를 잡고 할딱거리는 대낮의 정사처럼 엉클어지는 운명이게 하소서 바다는 강물의 발목을 잡고 강물은 청산의 겨드랑을 잡고 해적선 노예들의 족쇄처럼 화인 맞은 엉덩이의 문신처럼 나는 당신의 폭력이 되고 당신은 나의 눈물이 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훠이훠이 날아가는 서역 구만리 홍문표의 「늘푸른 강물이듯이19」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0 페미니즘과 여성시 ​ 홍문표 ​ (1) 페미니즘 운동 ① 아담과 이브 지상의 역사는 누가 쓰기 시작한 것일까. 아담일까. 이브일까.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었겠지만 에덴에서 득죄하고 추방되는 인간사의 주체는 단연코 이브였다. 어느 민족의 역사를 보아도 원시시대는 여인이 중심인 모계사회였다. 그만큼 당초의 여성은 강한 존재였다. 그러나 농경사회 이후 노동력이 생계의 수단이 되면서 또한 자본과 화폐가 모든 가치와 삶의 중심이 되면서 차츰 남성의 역할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의 역사는 이제 남성 중심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남성 중심의 역사는 철저히 여성을 차별화하고 복종하게 하고 지배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문화다. ​ ② 분노한 이브 사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는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하였다. 그만큼 공평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역사는 오랜 동안 남성중심으로 왜곡되어 왔다. 최근 여성들이 이러한 불평등의 역사에 반기를 들었다. 남성중심의 역사를 바로잡고 여성을 여성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feminism)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문학이나 페미니즘 시는 여성의 제값 찾기를 위한 모든 활동이다. ​ ③ 경계허물기 시대의 전략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 그리고 생태주의가 제기되면서 본격화된다. 이들 논리의 핵심은 기존의 모더니즘이 이성중심주의, 언어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라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남녀차별이 있고 서열이 있고 계급이 있고 불평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지금까지의 서구문화는 이성=합리=남성=진리, 감성=불합리=여성=비진리라는 등식의 가부장제, 남근중심주의였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사고체계의 해체를 주장했다. ​ ④ 여성비하의 논리 밀레트(K. Millet)는 『성의 정치학』에서 남녀문제를 기본적으로 성(性)의 권력투쟁으로 파악한다. 남자들이 그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고 여성들을 영원히 복종시키기 위해 거짓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그것을 진리로 제도화시킴으로써 여성들을 억압하고 속박해 왔으며 거기에 세뇌된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이데올로기 속에 안주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제도가 가부장제(partriarchy)이고 대표적인 이데올로기가 바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라고 보았다. ​ 한편 남녀의 문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보봐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을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라서 여성의 집단적 자각만이 이 불평등한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엘만(M.Ellmann)은 여성에 관한 사고에서 미국문학에 나타난 상투적인 여성의 속성을 보면, 무정형성, 수동성, 불안성, 제한성, 실용성, 순결성, 물질주의, 정신주의, 비합리성, 순종선, 반항성 등 11가지 유형이라고 한다. 이를 요약하면 천사와 마녀라는 이원화된 이미지로 구분될 수 있다. 집안의 천사는 현모양처형 여성으로, 가사노동과 육아에 속박되어 가정의 평화를 위한 순종적인 여성형이고 마녀형은 남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주체적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고안한 모든 악의 조력자로서 여성형이다. ​ ⑤ 최근 여성문학의 과제 최근 여성의 문제나 여성의 글쓰기의 문제를 보면 여성의 역사와 여성 문학사의 재구성, 문학적 정전의 문제, 여성과 대중문화, 사회가 구성하는 성(gender) 개념과 생물학적 결정주의, 양성(androgyny)개념, 동성애 문학, 성적으로 읽기, 여성적 글쓰기의 본질과 이 글쓰기를 생산하는 조건, 성차별, 여성적 언어의 특수성과 이런 언어의 존재 여부, 가부장적 언어의 전복 문제, 주체성과 성적 정체성의 구성, 여성적 인식론의 가능성 등이다. 여기서 페미니즘 문학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여성으로서 글읽기, 여성적 글쓰기, 성차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할 수 있다. ​ (2) 전통적인 여성시 양상-복종 애원 남성중심 ① 백제시대의 정읍사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이여 높이 좀 돋으시어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아! 멀리 좀 비치옵소서 어긔야 어강됴리 어긔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아으 다롱디리 ​ 져재 녀러신고요 시장에 가 계신가요 어긔야 즌 대랄 드대욜세라 아! 진 곳을 디딜까 두려워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긔야 어강됴리 ​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느 곳에든 놓고 오십시오 ​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아! 내 님 가는 그 길 저물가 두려워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긔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아으 다롱디리 ​ 출전 : 악학궤범, 백제시대 어느 행상의 아내, 행상을 떠난 남편의 무사 귀환 염원. ​ ④ 고려시대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가시렵니까 가시렵니까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날 버리고 가시렵니까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증즐가 대평성대 ​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나더라 어찌 살라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버리고 가시렵니까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붙잡아 두고 싶지만 선하면 아니 올셰라 서운하면 오지 않을까 두려워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서러운 님 보내옵나니 가시난 닷 도셔 오쇼셔 나난 가자마자 다시 오소서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 임과의 이별의 정한 기 - 원망적 애소 , 승 - 애소의 고조, 전 - 전제와 체념, 결-기도자적 애소. ​ ⑤ 조선조의 여류 시조들 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春風니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굽이굽이 펴리라 - 황진이 ​ 임이 가신후 소식이 頓絶하니 窓밖에 櫻桃花가 몇 번이나 피였는고 밤마다 燈下에 홀로 앉아 눈물겨워 하노라 - 송대춘 ​ (1)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의미 ① 남성의 영원한 타자 고대 사회에서는 여성은 영원한 타자다. 남성은 자기의 주체를 확립하려 할 때 그 주체를 한정하고 부정하는 타자가 필요했고, 따라서 여성은 비본질적인 타자가 되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언제나 종속적이고 부차적이고 부정적이다. ​ ②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이분법 프로이드는 그의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성적욕망이라고 보고 특히 남성과 여성의 욕망이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된다고 하였다. 남성 - 지팡이, 양산, 막대기, 나무, 모자, 칼, 창, 총, 수도꼭지, 연필, 넥타이, 뱀, 열쇠, 산, 하늘 등 여성 - 구멍, 웅덩이, 동굴, 항아리, 병, 트렁크, 상자, 방, 호주머니, 배, 종이, 책, 테이블, 달팽이, 조개, 교회, 사원, 숲, 사과, 복숭아, 구두, 마당, 셔츠, 물, 바다 등 융은 인간의 정신 내면에는 남성의 경우는 아니마 (anima), 여성의 경우는 아니무스 (animus)라는 심리적 원형을 지닌다고 했다. 아니마의 원형은 남성의 정신에 있어서 여성적 측면이며, 아니무스의 원형은 여성의 정신에 있어서 남성적인 측면이다. 아니마(anima) - 남성의 여성적 측면, 영원한 여성상, 처녀, 여신, 천사, 마녀, 악마, 거지, 창부, 친구, 악녀, 베아트리체, 헬렌, 이브, 춘향, 심청, 소, 고양이, 호랑이, 뱀, 동굴, 몽상, 꿈, 언어, 이상적 자아, 밤, 휴식, 평화, 부드러움, 선 아니무스(animus) - 여성의 남성적 소망, 명배우, 권투선수, 정치가, 지도자, 이상적 남성, 독수리, 황소, 사자, 창, 탑, 현실, 역동성, 낮, 염려, 야심, 동물, 능동, 분열, 합리적 추상적 사고, 국가, 사회. ​ ③ 신성과 타부로서 여성 그러나 여성을 타자로 해도 끝내 자연현상은 여성을 신성시하고 타부시한다. 이는 모든 생명들이 대지와 물에서 탄생하고 여성으로부터 종족이 탄생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생명은 대지로 돌아간다. 이는 여성으로 돌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지는 탄생과 죽음이 있고 여성도 탄생과 죽음이 있다. 어머니인 대지는 그 뱃속에 그녀의 아이들의 유골을 내포한다. 인간 운명의 실(系)을 쥐고 있는 것은 여성인 것이다. 전설 속에 죽음의 모습이 여성의 얼굴로 되어 있고, 죽음 자체의 주재가 여성의 소관임은 흔히 쓰이는 「운명의 여신」 이라는 말이 뒷받침해 줄 것이다. ​ ④ 마녀재판과 처녀귀신 서양에서는 모든 불행이나 잘못된 일에는 늘 마녀나 마귀할멈 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17-8세기에는 이단이나 이상한 짓을 하는 여인을 잡아 처형했다. 동양에는 처녀 귀신이 귀신 중에도 가강 무서운 귀신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속설도 모두 남성중심주의가 낳은 것들이다. ​ (2) 남성의 여성지향적인 시 ① 여성 편향의 시 이상의 논거에서 볼 때 남성의 영웅적인 모습, 또는 독재성을 드러낼 때는 여성성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독재자나 영웅들은 여성을 제외한다. 그러나 남성이 또는 남성적인 사회가 죽음이나 탄생의 생사문제, 극단적인 선과 악의 문제. 민족, 집단, 사회가 이념적인 것을 지향할 때 감성적인 삶을 지향할 때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남성은 모성이나 여성을 지향하게 된다. 이브의 원죄를 저주한 남성의 역사는 마리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찾게 된다. 우리의 현대시사에서 특히 일제하에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를 여성적 편향(female-complex)라고 한다. ​ ② 모성지향적인 시(mather- complex) 나는 王이로소이다 나는 王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 아들 나는 王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十王殿에서도 쪼끼어난 눈물의 王이로소이다. ​ 「맨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럿케 어머니서 물으시면은 「맨처음으로 어머니 받은 것은 사랑이엇지오만은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겟나이다 다른것도 많지오만… -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5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축축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니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 신석정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 ③ 님 지향의 시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緣연分분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平평生생애 願원하요데 한데 녜자 하얏더니, 늙거야 므삼 일로 외오 두고 글이난고. 엊그제 님을 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 더대 엇디하야 下하界계예 나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삼年년이라. 臙연脂지粉분 잇내마난 눌 위하야 고이 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疊첩疊첩이 싸혀 이셔, 짓나니 한숨이오, 디나니 눈물이라. - 정철 「사미인곡」에서 ​ 맨첨에 만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첨에 이별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첨에 만난 님과 님이 맨첨으로 이별하였읍니까 다른 님과 님이 맨첨으로 이별하였읍니까 ​ 나는 맨첨에 만난 님과 님이 맨첨으로 이별한 줄로 압니다 만나고 이별이 없는 것은 님이 아니라 나입니다 이별하고 만나지 않은 것은 님이 아니라 길가는 사람입니다. - 한용운 「최초의 님」 ​ ④ 누이 지향(sister-complex) 의 시 ​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바져나와 바닷가에서자. ​ 비로소 가슴울렁이고 눈에 눈물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진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 비늘을 닮아야하리. 천하에 많은 할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 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 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 박재삼 「밤바다」 ​ ⑤ 여성화자의 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덜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의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 (1) 개화기에서 1960년대까지 ① 이 시대 여성문학 개관 개화기 문학에서 여성문제가 거론된 것은 1900년 이해조의 「자유종」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부인들이 모여 남성에게서 억압받는 여성의 인권문제를 질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성의 문제가 시로 거론된 흔적은 찾기 어렵다. 1920년대에 김명순, 김원주, 나혜석 등 여성문인이 등장하는데 많은 에피소드만 있고 작품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1930년대는 김오남, 노천명, 모윤숙, 백국희, 장정심 등이 이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여성 시인들이다. 그 중에서는 단연 모윤숙과 노천명이 돋보인다. 모윤숙이 기교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자유분방한 정열을 표출하는 시인이었다면, 노천명은 단아하고 명상적이며 회화적인 절제된 정서를 표현하는 시인이었다. 이 두 여성 시인들의 대조적인 시 세계를 후대에 와서도 여성 문학의 두 흐름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 광복, 좌우 대립, 6.25와 산업화 초기 단계를 거치는 동안 매우 두터운 여성 문인층이 형성되었다. 이때 활발한 활동을 보인 여성 시인들로는 이영도, 조애실, 이영희, 노영란, 홍윤숙, 김남조, 허영자, 김지향, 김하림, 김여정, 임성숙, 김윤희 등을 꼽을 수 있다. 많은 문예지들과 일간지의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한 이들 여성 문인들은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말까지 이른바 여류문학의 전성기 동안 질적 양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시에 대하여 평자들은 ‘과거지향적’이며 ‘단조로운 방법으로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으며 ‘정서적인 긴장감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② 이 시대 여성시 애정 모티브 임이 부르시면 달려 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나는 가지요. ​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 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덤이로 옘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 죽음으로 갚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임의 원이라면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다. ​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 모윤숙 「이 생명을」 ​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나 보다. ​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질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 노천명 「사슴」 ​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 김남조 「너에게」 ​ (2) 1970년대 이후 여성시 ① 이 시대 여성시 개관 1970년대 민중문학의 열기를 거쳐 8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시, 90년대의 생태주의, 사이버리즘의 문화현상은 그동안 모더니즘이 고집해온 모든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이러한 세계의 변화는 여성의 경우 여성해방은 물론 여성의 정체성 찾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 70년대에 등장한 강은교의 사색적 허무주의, 그리고 김승희의 파괴적 내면주의는 고정희의 씩씩한 민중적 상상력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 그녀들의 가열한 내면세계와 시대정신은 80년대의 최승자에 이르면 가장 치열한 종합을 이룬다. 이어 등장한 김혜순의 블랙유머를 기조로 한 경쾌한 악마주의는 성숙한 모성적 인식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황인숙은 아주 독특한 감각적 시세계를 그려 보인다. 90년대 시단의 한 징후로 보이는 포스트모던한 글쓰기를 볼 수 있으며, 이선영,이진명 등의 한국 여성시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시인들을 한 줄에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원칙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들이 개인에 따른 편차는 있지만, 그녀들은 특히 남성들에 의하여 「여성적」이라고 여겨져 왔던 시문법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들이 여성이 되기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이다. ​ ② 페미니즘 시대의 여성시 보기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허허벌판에 누워/ 깨끗한 남자를 기다린다.// 불꽃이 울면서 짐승같이/ 젖무덤 속으로 기어든다.// 나무들은 간지러워/ 푸른 소리를 지르고// 드디어 그 남자가/ 길을 무찔러오는 소리// 부끄러운 머리채를 이끌며/ 내가 어둠과 함께 도망친다.// 바람 지나가면/ 날개가 크게 걸리는/ 거미줄을 타고/ 얼굴 모르는 신과 만난다.// 뱀과 미친 깃털이/ 낄낄거리며 흩어진다.// 모든 것을 용납하는/ 그 야수의 무덤 속으로/ 나는 바삐 숨는다. - 문정희 「떠오르는 방」 ​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을 낳았기 때문에 국토분단 장벽보다 먼저 민족분단 장벽보다 먼저 남녀분단 장벽허물 일이 급선무 - 고정희 「여성해방출사표」에서 ​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 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최영미,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어떤 마법의 한 마디를 이 타들어 가는 갈색 육체 위에서 간직할 수 있을까. 푸른 공작새를 위한 어떤 먹이. 어떤 황홀한 불의 최면 상태가 형태도 없이 떠가는 이 피의 방주를 다시 완전케 할 것인가 어떤 주문의 모차르트 어떤 장미의 원소. 어떤 태양의 기억이? - 김승희, 「어떤 흑연빛 시간의 오이디프스」 ​ 나의 눈 코 이 어깨 허리 다리 발 심장 신장 대장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이 모두가 한번은 버려져야 할 것들이다 낡아가는 것들. 종종 고장이 나고 마침내 수명이 다하는 것들과 함게 살아간다 그 어느 해 가을과 또 다른 해의 가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례로 그랬듯 버려질 엄마 아버지 남편 그리고 나 버려지기 전까지는 손발 닳도록 살아간다 - 이선영, 「버려진 냉장고」 ​ 조용하여라. 한낮의 나무들 입 비비는 소리는. 마당가에 떨어지는 그 말씀들의 잔기침. 세상은 높아라. 하늘은 눈이 시려라. 계단을 내려오는 내 조그만 애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라. 만상이 흘러가고 만상이 흘러오고. 조용하여라. 한 해만 살다 가는 꽃들. 허리 아파라. 몸 아파라. 물가로 불려가는 풀꽃의 해진 색깔들. 산을 오르며 사람들은 빈 그루터기에 앉아 쉬리라. 유리병마다 가득 울리는 소리를 채우리라. 한 개비 담배로 이승의 오지 않는 꿈. 땅의 양식을 이야기 하리라. 만상이 흘러가고 만상이 흘러가고 - 이진명, 「청담(淸談)」  
12    홍문표 시창작강의 노트 12 댓글:  조회:829  추천:0  2019-12-21
홍문표 시창작강의 노트 47 ​ 시와 사회 시대 역사 ​ 홍문표 ​ (1) 문학과 사회 ​ 문학과 사회의 관계는 운명적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듯이 인간은 개별적으로 태어나는 것이지만 태어나고 보면 가족이 있고 시대가 있고 국가가 있고 사회가 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사회라는 집단 속에 태어나 그 사회와의 관계를 맺고 살다 가는 사회적 존재다. 그러기에 문학적 상상력도 시대 역사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바다 속에 있는 한 문학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에 대한 주제를 배제할 수 없다. 거기엔 사회적 언어가 있고 문화가 있고 정치. 경제 등 다양한 공동체의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날드는 문학은 사회적 표현이라고 했고 테느는 문학을 종족, 시대, 환경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연극은 인생의 거울이니 소설은 시대의 반영이니 하는 말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 (2) 삶의 두 세계 - 문학의 두 세계 ①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 그런데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니 문학을 사회의 거울이니 하는 논리만 고집하면 개인적 존재 개체적 존재로서의 삶이나 독자적인 문학성 등이 무시 된다. 따라서 인간들의 삶의 목적이나 존재가치를 논할 경우 크게 구분되는 것이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개인의 가치와 자유를 최대한 인정하고자 하는 가치관에서는 문학도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독자성을 강조하게 되지만 인간의 가치를 더불어 사는 삶,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삶을 최대한 내세우고자 하는 인생관에서는 윤리적인 문학, 공리적인 문학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늘 개인적이냐, 사회적이냐 하는 이 이분법적 세계관의 굴레에서 갈등하기 마련이다. ​ ② 상반된 두 세계의 길 그래서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유물론과 유신론, 정치나 경제에서는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등 갖가지 상반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갈등하고 투쟁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된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헤겔의 말처럼 정반합의 변증법적 통합이니 발전이니 진보니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어느 한쪽만을 절대 진리나 가치로 하여 다른 쪽을 적대시하고 무참히 파괴하는 피의 역사를 만든다는 데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 ③ 문학의 두 갈래길 문학사에서도 이 두 세계는 개인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을 만들었고 개인적인 문학이냐 사회적인 문학이냐로 끈질긴 논쟁의 역사를 만들었다. 교훈론과 쾌락론이 그 출발이다. 그 뒤 사회적 상상력은 고전주의나 사실주의 모방론, 반영론, 목적론, 계몽주의, 계급주의, 사회정의, 휴머니즘, 공리주의, 역사주의, 진실성 등 갖가지 사회적 세계관의 문학론을 만들어 깃발을 흔들었고 개인적 상상력은 본질주의 존재론, 모더니즘, 순수문학, 무목적의 문학, 문학을 위한 문학, 심미주의 낭만주의나 상징주의 형식주의 등 개인적 세계관의 문학론을 만들어 또다른 깃발을 흔들었다. ​ ④ 상생과 상호보완으로 사회적인 시의 이해 최근 우리문학사에서도 내용이냐 형식이냐 좌익이냐 우익이냐 순수냐 참여냐 진보냐 보수냐의 대립에서 갈등해왔고 문학단체 마저 양분되어 갈등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글로벌 시대로 전환하면서, 경계 허물기 시대, 절대적 이데올로기의 종언, 다양성, 상호보완, 상생의 진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개인적인 상상력의 시와 사회적 상상력의 시는 대립보다 다양성 상호보완이란 측면에서 보아야하며 그러한 입장에서 사회의식의 시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3) 사회적 상상력의 다양한 문학 ①사실주의 문학과 이데올로기 문학 ​ 문학이란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반영하거나 재현하는 거울로 만족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역사주의 문학론이나 사회학적 문학론은 그렇게 보았다. 그리하여 사회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사실주의(realism)라고 했다. 그런데 역사나 사회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해 가는 공동체적 삶의 과정이기 때문에 거기엔 삶의 목적과 윤리를 요구하게 되고 그러한 당위의 논리를 진실이니 정의니 가치니 하는 것으로 이념화하게 된다. 이를 우리는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이데올로기(ideologie)는 넓은 의미로 세계관, 가치관, 사상, 기본적 사고 방식이지만 행동지향적인 신념 체계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상과는 차이가 있다. 고전문학의 공통된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근대사상의 주제는 자유와 평등이다. 여기에 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있고 계급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있다. 자유와 평등의 해석과 실천의 차이가 상반된 이데올로기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 ②변혁의 수단으로서 문학 그런데 문학의 이데올로기가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한 나머지 문학이란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고 변혁을 도모하는 수단이라는 논리로 발전할 경우, 이는 상상의 문학이나 감성의 문학이 아니라 무기로서의 문학, 칼로서의 문학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반영론과 당위론에서 문학의 존재가치는 당연히 그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극단의 논리에서는 문학의 예술성이니 독자성이니 하는 것들은 유보 될 수밖에 없다. 로마의 호라티우스가 문학이란 쓰디쓴 철학을 약탕기에 달콤한 꿈을 바르는 것, 즉 문학당의설(文學糖衣說)을 주장한 것이나 도를 전하는 재도지기(載道之器)로 보았던 유가들의 문학관이나 마르크스주의가 계급투쟁에 복무하는 문학을 말한 것들은 모두가 사회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학을 말하는 것이다. 1920년대 프로문학론에서 박영희는 “문예의 전목적은 작품을 선전 삐라화 하는데 있다”라고 했고 1950년대 김일성의 교시에는 문학이란 “인민들의 수중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예리한 무기가 되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 ​ ③ 우리에 관한 다양한 문학 문학의 사회적 관심은 윤리나 정치적 목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계몽문학, 종교문학, 민족문학, 대중문학, 도시문학, 농촌문학, 노동자 문학, 민중문학, 계급문학, 생태문학, 여성문학, 사이버문학 등 나 아닌 우리에 관한 것이면 그 어느 것도 사회적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된다. ​ ④한국 현대문학사와 사회적 상상력 개화기에는 개화계몽을 위한 계몽문학, 일제하에서는 항일민족주의문학, 계급주의를 수용하면서는 프로문학, 해방 공간기에는 좌익문학 우익문학, 1960년대는 참여문학, 1970년대에는 농민문학, 민중문학, 1980년대에는 노동문학, 통일문학 1990년대에는 생태주의 문학, 페미니즘문학 등 시대마다 우리, 민족, 역사, 현실의 사회적 문제를 문학으로 시로 드러내었다. 특히 북한의 경우는 광복이후 현재까지 줄곧 일관된 사회주의 리얼리즘문학이나 주체사상문학의 전체주의적 당위를 위한 수단으로 문학이 봉사되고 있는 것이다. ​ (4) 고대시와 재도지기(載道之器) ① 고대시가의 서정성 우리의 시사에서 고대시가의 확인은 고조선의 「공무도하가」 고구려의 「황조가」 백제시대의 「정읍사」 신라시대의 향가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고려시대의 「가시리」 「청산별곡」등을 볼 때 오히려 서정성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翩翩黃鳥 [편편황조] 雌雄相依 [자웅상의] 念我之獨 [염아지독] 誰其與歸 [수기여귀] ​ 펄펄나는 저 꾀꼬리여 암수가 서로 정답구나 나의 외로움을 생각하니, 그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오. 고구려 유리왕 ‘황조가’   ​ ② 재도지기의 시 그런데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서정적 전통을 볼 수도 있으나 치국이념이 유교적이어서 충효 등 교화적인 시가들이 많다. 이 시대 문학관은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주자학의 문학이란 도를 싣는 그릇 즉 재도지기(載道之器), 도덕적 교화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 정철 ​ (5) 개화 계몽기의 교화시 ① 풍속개량과 교화 개화기 박은식은 「서사건국지」서문에서 소설이란 풍속계급과 교화정도에 관계가 심한 것이라 했다. 윤상현은 「천희당시화」에서 시는 국민언어의 정화라 하면서 건강한 시정신을 요구했다. ​ 잠을 깨세 잠을 깨서 사 천년이 꿈속이라 만국이 회동하여 사해가 일가로다. ​ 구구세절 다 버리고 상하동심 동덕하세 남의 부강 불어말고 근본 없이 회빈하랴 - 개화기 가사에서 ​ (6) 계급주의 이념시 ① 카프의 시단 1925년 사회주의 계열의 문인들은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FP)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계급주의 시를 쓰게 된다. 계급주의란 사회를 유산자인 브르조아와 무산자인 프롤레타리아로 구별하고 이러한 계급모순을 타파한 무산자 중심의 평등사회를 실현한다는 이념으로 시는 계급혁명이란 목적을 위하여 복무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 ② 임화, 권환 의 경우 ​ 오빠! -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주고 갔에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안었에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잇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 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 - 임화 「우리오빠와 화로」에서 ​ ××과 끝까지 싸우게 하는 그대를 우리는 다만 한 광부 우리들의 좋은 동무만으로 알았더니라 다만 침착하고 세상일 잘 알고 정다운 동무만으로 알았더니라 다만 한 좋은 동무만으로 알았더니라 ​ 그러다가 인제야 알았다 그대를 ×들의 손에 뺏기고 난 인제야 그대를 다른 많은 용감한 동무들과 같이 ××× 에 끌려 보내고 난 뒤 한달 된 인제야 알았다 그대도 우리의 가장 미더운 지도자의 한 사람 땅 밑을 파고 다니는 숨은 지도자 조선의 ××의 한 사람인 줄을 - 권환 「그대」에서 ​ (7) 항일 민족시인 ① 일제하 시인의 선택 일제 36년간 일본의 총독과 일본의 헌병, 순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시인의 선택은 일제에 굴복하거나 회피하거나 아니면 목숨을 걸고 항거하는 일이다. 그러나 목숨을 건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제하에 형무소를 드나들며 항거한 몇몇 시인들이 있다. 항일민족 시인이란 작품으로만 항일 정신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항일하고 작품으로 항일한 시인들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삶은 늘 영어에 있었고 그들의 목숨도 무사하지 못했다. ​ ③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 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 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④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 내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깝치지 : 재촉하지 , 지심 : 기음 ​ ⑤ 이육사의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山脈) 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 하였으리라. ​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⑥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2) 식민지 시대 궁핍한 현실증언 ① 오장환의 「북방의 길」 눈 덮힌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 ② 이용악의 「낡은 집」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 - 중략 - ​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던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짓두광주리 : 반짓고리, 갓주지이야기 : 무서운이야기. 글거리 = 그루터기.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8 광복 이후 사회적 역사적 상상력의 시 홍문표 ​ (1) 광복의 감격과 좌우익의 시 ① 광복의 감격과 좌우익의 다른 목소리 1945년 광복은 전 민족적 감격이다. 그러나 1945년 8월 16일 과거 프로문학에 참가했던 좌익 문인들은 조선문학건설 본부를 만들고 민족진영의 우익은 1946년 전 조선 문필가 협회를 만들었다. 또한 우익에서는 「해방기념시집」 좌익에서는 「연간조선시집」을 만들어 각각 광복의 감격을 표현했다. ​ ② 해방기념시집과 우익의 시 ​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에 못박힌듯 기대어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왔는가. ​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굽이굽이로 ​ 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 이제 눈 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 환희 트이는 이마 위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 상달의 꿈과 같고나 ​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 조지훈 「산상의 노래」 ​ ③ 연간 조선 시집과 좌익의 시 ​ 노름꾼과 강도를 잡던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 가난한 동포의 주머니를 노리는 외국 상관(商館)의 늙은 종들이 광목과 통조림의 밀매를 의논하는 폐(廢) 왕궁의 상표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 위에 국기를 날릴 필요가 없다. ​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 살인의 자유와 약탈의 신성이 주야로 방송되는 남부 조선 더러운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 동포여! 일제히 깃발을 내리자. - 임화 「깃발을 내리자」 ​ (2) 한국전쟁과 초토의 시 ① 동족상쟁의 비극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쟁, 전국토가 폐허가 되었고 5백만이 넘는 국민이 죽었거나 부상당했다. 골짝마다 시산시해.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국권을 상실한지 36년 겨우 찾은 광복이지만 조국은 동강나고 사상이 무엇인지, 그 이데올로기는 동족애도 부모형제도 없었다. ​ 적의 콩볶는 듯한 속성 음향을랑 남기고 ​ 뽀뿌라 가로수에 낙렬(落裂)하는 칠십오밀리의 순발탄(瞬發彈) ​ 백오 고지를 점령한 우군이 적 소굴을 소탕하는 화염방사기의 불기찬 광채 그리고 불똥이 만무(滿舞)하여 훤히 비치는 서대문지구의 거리 거리와 큰 집 작은 집들 - 이영순의 「연희고지」에서 ​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荒廢한 風景이 무엇 때문의 犧牲인가를... ​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姿態대로 머리만 남아 잇는 軍馬의 屍體 ​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傀儡軍 戰士 ​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生靈들이 이제 ​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多富院 ​ 진실로 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잊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安息이 있느냐 - 조지훈의 「다부원에서」 ​ (3) 4.19혁명과 시의 응전력 ① 4.19 정신 광복 후 국민이 열망하던 민주화는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독재, 6.25전쟁, 3.15 부정선거로 왜곡되었다. 이에 학생들의 거국적인 의거는 죽음을 무릅쓰고 경무대를 향했다. 200여명의 희생이 있고서야 국민의 호응이 있었고, 대통령이 하야하고 내각제 정부가 들어섰다. 학생들에 의한 민주화의 쟁취다. ​ ② 혁명과 시의 응전력 ​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이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절규를 멈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피 불로 외쳐 뿜는 / 우리들의 피 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우리들 아직도/ 스스로는 못 막는/ 우리들의 피 대열에 흩을 수가 없다./ 혁명에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민족. 내가 살던 조국이여./ 우리들의 젊음 들./ 불이여! 피여!/ 그 오오래 우리에게 썩어 내린// 악으로 불순으로 죄악으로 숨어내린/ 그 면면한. 우리들의 속의 썩은 것을 씻쳐내는,/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에 맑은 것을 솟쳐 내는,/ 아, 피를 피로 씻고,/ 불을 불로 사뤄,/ 젊음이여! 정한 피여! 새 세대여!// 너희들 이미 일어선 게 아니냐/ 분노한 게 아니냐?/ 내달린 게 아니냐?/ 절규한 게 아니냐?/ 피 흘린 게 아니냐?/ 죽어간 게 아니냐?// ​ - 박두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에서 (4) 역사적 현실의식과 참여시 ① 실존주의와 현실참여 전후의 허무에서 실존주의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하게 된다. 하나는 신의 은총에 의지하는 것이다. 야스퍼스의 경우다.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갖고 현실에 참여(engagement)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현실참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하여 사르트르는 정치적. 역사적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라 했고 까뮈는 작품으로만 참여하는 것이라 했다. 한국은 6.25와 4.19를 거친 역사의식과 민주화 의식을 토대로 사르트르적인 논리를 내세워 문학의 현실참여를 실천하게 된다. ​ ② 신동엽의 반전 반외세 ​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③ 김수영의 자유의 절규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 자유를 위하여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푸른 하늘은」 ​ ④ 이성부의 「전라도」 ​ 노인은 삽으로 榮山江을 퍼올린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머지않아 그대 눈물의 뿌리가 보일 때가지 노인은 다만 성난 사랑을 혼자서 퍼올린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인은 끝끝내 영산강을 퍼올린다 가슴에다 불을 짊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논바닥은 붉게 타는데 바보같이 바보같이 노인은 바보같이 ​ -이성부의 「전라도7」에서 ​ (5) 1970년대 민중시 ① 참여에서 민중으로 50년대의 한국시가 한국전쟁의 충격과 파장에서 전개되었듯이, 60년대의 시는 4.19의 파장과 영향권에서 형성되어 상황과 응전이라는 현실 참여적 경향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것이 70년대에 들어서는 유신 체제라는 통치체제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부정적 현실과 역사에 대한 강한 비판적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이른바 민중문학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 대표적 시인들로 김지하, 신경림, 고은, 조태일, 이성부, 정희성, 김명수, 이동순, 문병란, 김중태, 양성우, 이시영, 김창완, 김용범, 최하림 등을 지적할 수 있다. ​ ① 김지하의 현실 풍자 ​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쪽/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 「오적」에서 ​ ② 신경림의 소외된 농민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리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농무」 ​ (6) 1980년대 민중시 ①고은의 통일시 ​ 나는 가야 한다 나는 가야 한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말아라 저 끝에서 길이 나라가 된다 그 나라에 가야 한다 한평생의 길 오가는 겨레 속에 내가 살아 있다 남북 삼천리 모든 길 나는 가야 한다 기필코 하나인 나라에 이르는 길이 있다 나는 가야 한다 나는 가야 한다 - 고은의 「길」에서 ​ ② 박노해의 노동자의 노래 ​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 박노해의 「하늘」에서 ​ (7) 문민정부 시대의 노래 ①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들 열어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째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 이성부 「우리앞이 모두 길이다」  
11    홍문표 시창작강의 노트 11 댓글:  조회:872  추천:0  2019-11-01
홍문표 시창작강의 노트 45 광복이후 모더니즘 시의 전개 ​ 홍문표 ​ (1) 광복기 모더니즘 ① 광복 공간기 시단 ​ 좌파시단- 오장환 이용악 설정식 박아지 임학수 등 우파시단 -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신석정 유치환 서정주 등 중간파시단 - 김광균 구상 김춘수 조병화 박인환 김종길 김규동 전봉건 등 ​ ② 김기림의 모더니즘 퇴조와 절필 초기 - 모더니즘 시론의 대표자, 새로운 감수성 주장 (1930) 중기 - 모더니즘의 위기, 전체시론 강조(친일) (1939) 후기 - 시와 정치의 결합. 모더니즘 시 퇴조 (1945) 1947년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를 발표하고 절필 ​ 철쭉꽃 피면 강화섬 가자던 약속도 잊어버리고 좋아하던 ‘존슨’ ‘브라운’ ‘테일러’와 맥주를 마시며 저 세상에서도 흑인시를 쓰고 있느냐 ​ 해방후 수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 땅 진흙밭에 너를 묻고 온 지 스무 날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 -김기림“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1947 ​ ​ ③「신시론」동인과「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 모더니즘 시가 새로운 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은 1948년 김경린, 박인환, 등이 중심이 된 ‘신시론’ 동인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1948년 동인지 『신시론』을 발간하고 1949년 동인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을 발간한다. 신시론 동인은 1950년 『신시론』을 『후반기』로 개제하고 조향, 이한직 등이 새로 참여한다. ​ ④ 시인, 시민, 도시 ​ 시민들은 샘물이 흐르는 도심지대를 향하야 질주하고 있었다. - 김경린「나부끼는 계절」 ​ 폭풍이 머문 정거장 거기가 출발점 정력과 새로운 의욕 아래 열차는 움직인다 격동의 시간 꽃의 질서를 버리고 - 박인환「열차」 ​ (2) 195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 ① 모더니즘시의 새로운 모색 1930년대의 열정 1940년대의 퇴조 -「신시론」,「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1950년대의 새로운 모색 -「후반기」동인 6.25와 폐허의 도시, 현대인의 불안, 새로운 존재인식 ​ ② 후반기동인 1949년 김수영, 김경린, 박인환 등이 모더니즘을 표방한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을 펴내고, 그해 이한직, 조향, 박인환, 김경린 등이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후반기’ 동인을 결성한다. ‘후반기’ 동인은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활동했다. ​ ③박인환, 김규동, 김경린의 전쟁과 도시 ​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박인환「목마와 숙녀」에서 ​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피 묻은 육성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 기계처럼 작열할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 김규동「나비와 광장」에서 ​ 오늘도 성난타자기처럼 질주하는 국제열차에 나의 젊음은 실려가고 - 김경린「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에서 ​ 목마와 숙녀 - 산문적 리듬감, 전후의 서울, 불안, 허무 나비와 광장 - 6.25와 상처에 대한 관심, 신선한 발상 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 - 도시의 역동성 ​ ④ 조향의 초현실주의와 데뻬이즈망 ​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 -여보세요! 에 피는 들국화 ​ -왜그러십니까? ​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바다의 층계」 ​ 데뻬이즈망이란 자리바꿈, 곧 전위를 의미한다. 조향에 의하면 전위시키는 방법으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들을 한데 갖다 붙이는 방법 ​ ⑤ 김춘수의 존재탐구와 언어중심주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 ​ 언어는 존재의 집 - 하이데거 언어가 있기에 사물이 존재한다. - 언어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모더니즘, 존재탐구 소쉬르,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기표의 독립성 - 무의미시의 계기 ​ ⑥ 김수영의 반이성적 아이러니 시작 ​ 흥분할 줄 모르는 나의 생리와 방향을 가리지 않고 서 있는 서가와 서가 사이에서 도적질이나 하듯이 희끗희끗 내어다 보이는 저 흰 벽들은 무슨 조류의 분뇨와도 같아 ​ 오 죽어있는 방대한 서책들 ​ 너를 보는 설움은 피폐한 고향의 설움일지도 모른다 예언자가 나지 않는 거리로 창이 난 이 도서관은 창설의 의도부터가 풍자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립도서관」에서 ​ 책의 죽음 - 이성의 죽음 책 - 근대 - 전통에 대한 아이러니 역사적 현대의식 - 참여적 관심 ​ (3) 1960년대 모더니즘 시 ① 1930년대 시단 순수시 - 박용철, 김영랑 카프시 - 임화, 권환, 이용악 모더니즘 - 이상,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 ② 1945년대 문단 좌파시, 우파시, 중간파 모더니즘 퇴조 ​ ③ 1960년대 시단 참여시 - 김수영(모더니즘), 신동엽, 이성부, 조태일, 최하림, 김준태 순수시 - 김춘수, 전봉건, 김구용, 김종삼, 김광림 (모더니즘) 전통시 - 서정주, 박목월, 이동주, 박재삼, 이형기, 박용래 ​ ④ 4․19와 참여시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푸른하늘을」 ​ 4․19직후 작. 문학의 현실참여. 정치참여고취 ​ ⑤ 김춘수의 무의미 ​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 김춘수 「처용단장」 1-4 ​ 언어-기표(응성기호)와 기의(의미) ​ 기표만의 언어, 의미 배제 관념적인 참여시, 목적시 반대 - 관념의 공포- 서술적 이미지 추구 비유적 이미지(의미 대리) - 서술적 이미지(의미 배제) - 순수시 자유연상 - 대상의 사라짐 액션페인팅 - 기하학적 추상에서 추상적 표현주의, 행위중심(퍼포먼스), 글쓰는 행위. ​ ⑥「현대시」동인들의 다양한 모색 ‘현대시’ 동인은 1962년 처음 발행된 시집 『현대시』1집부터 1972년 마지막 발행된 26집까지 10년 동안 26권의 동인지를 펴내면서 60년대 우리 모더니즘 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전봉건, 김광림, 김요섭, 김종삼, 박태진, 주문돈, 신동집, 허만하, 김하림, 민웅식, 장만영, 김수영, 박양균, 한성기, 이수익, 정진규, 장호, 박남수, 김춘수, 김윤성, 등 ​ 월광의 물 비늘과 비늘이 부서지는 라벨의 비단 손 가을의 차고 선명한 물의 월광 광란의 여름을 전송하고 그는 돌아온다 성으로 바람이여 빈 천정을 울리는 월광의 물결소리 - 김형태의「월광」에서 ​ 현실이 탈락한 추상의 공간 - 시인의 내면 자유연상, 초현실주의, 밝은 환상, 환각적 유희. ​ 사나이의 팔이 달아나고 한 마리 흰 닭이 구 구 구 잃어버린 목을 좇아 달린다. 오 나를 부르는 깊은 명령의 겨울 지하실에선 더욱 진지하기 위하여 등불을 켜놓고 우린 생각의 따스한 닭들을 키운다. 닭들을 키운다. 새벽마다 쓰라리게 정신의 땅을 판다. 완강한 시간의 사슬이 끊어진 새벽 문지방에서 소리들은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것은 하아얀 액체로 변하더니 이윽고 목이 없는 한 마리 흰 닭이 되어 저렇게 많은 아침 햇빛 속을 뒤우뚱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 이승훈「사물A」 ​ 젊은 시절의 내면풍경, 어두운 환상, 환각적 유희. ​ 내가 한마디의 말을 알았을 때 처음 내가 한마디의 말을 알았을 때 나의 나무엔 슬기의 이파리 하나 피어나고 점 점 그것은 예지의 숲을 이루어 가던 그러한 나의 영광이여, 집중의 때여 - 정진규「집중」에서 ​ 나뭇잎이 처음 피어나는 순간의 감각, 황홀감 ​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사랑의 ​ 풀잎되어 젖어 이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 이수익「우울한 샹송」 ​ 상실한 사랑과 현대인의 우수 - 내면풍경 - 우체국 ​ 밤이 자기의 심정처럼 켜고 있는 가등 붉고 따뜻한 가등의 정감을 흐르게 하는 안개 ​ 젖은 안개의 혀와 가등의 하염없는 혀가 서로의 가장 작은 소리까지도 빨아들이고 있는 눈물겨운 욕정의 친화 - 정현종「교감」 ​ 사물들의 감각교환, 사물의 친화 - 욕정, 에로티시즘 ​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뜰의 달콤한 구석에서 언어들이 쉬고 있다 추상의 나뭇가지에 살고 있는 언어들 중의 몇몇은 위험한 나뭇가지들 사이를 날아다니다 떨어져죽고 나의 고장난 수도 꼭지에서도 뚜욱뚜욱 언어들이 죽는다 - 오규원「환상의 땅」 ​ 언어의 휴식과 죽음. 추상과 사물에외 언어의 죽음 ​ (4) 1970년대 모더니즘 시 ① 1970년대 시단 민중시 - 김지하, 조태일, 신경림, 고은, 최하림, 이성부, 정희성 전통시 - 조정권, 나태주, 이성선 외 전통적 서정시인들. 도시적 감수성의 시 (모더니즘 계열) 언어시 - 김춘수, 황동규, 김영태, 이승훈, 정현종, 오규원. 도시시 - 감태준, 김광규, 이성복, 최승호, 정호승. ​ ② 도시적 감수성 -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경계 산자락에 매달린 바라크 몇 채는 트럭에 실려 가고, 어디서 불볕에 닳은 매미들 울음소리가 간간이 흘러 왔다 다시 몸 한 채로 집이 된 사람들은 거기, 꿈을 이어 담을 치던 집 폐허에서 못을 줍고 있었다 ​ 그들은, 꾸부러진 못 하나에서도 집이 보인다 헐린 마음에 무수히 못을 박으며, 또 거기. 발통이 나간 세발자전거를 모는 아이들 옆에서, 아이 들을 쳐다보고 한번 더 마음에 못을 질렀다 - 감태준 「몸바뀐 사람들」에서 ​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삶 - 리얼리즘 상실한 자아, 분열된 삶 - 모더니즘 ​ 한줄의 시는커녕 단 한줄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들은 어디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 김광규 「묘비명」 ​ 삶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 리얼리즘 낯선 언어형식의 추구 - 모더니즘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 신경림 「농무」에서 ​ 대상 - 집단, 민중 역사적 주체, 통합된 자아. ​ ③ 이성복의 새로운 모더니즘 실험 ​ 어느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벼는 잠들지 못한다 어느날 갑자기 재별의 아들과 고관의 딸이 결혼하고 내 아버지는 예고없이 해고 된다 어느날 갑자기 새는 갓 낳은 제 새끼를 쪼아먹고 캬바레에서 춤추던 유부녀들 얼굴 가린 채 줄줄이 끌려나오고 어느날 갑자기 내 친구들은 고시에 합격하거나 문단에 데뷔하거나 미국으로 발령을 받는다 어느날 갑자기 벽돌을 나르던 조랑말이 왼쪽 뒷다리를 삐고 과로한 운전수는 달리는 버스 핸들 앞에서 졸도한다 -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 오세영 - 파격적 산문시, 회화의 직접 도입 대위법적 이미지, 내면 독백 형식의 자유연상, 언어 실험 이승훈 - 그는 기존문법을 파괴하고, 우연의 미학을 강조하고, 유물적 초현실주의를 지향 한다. 그가 노리는 것은 무슨 결론이나 해결이나 종합이 아니라 끝없는 부정이고, 이 부정이 아방가르드적 요소가 된다. 그가 보여주는 이런 특성은 80년대에 이른 바 해체시라는 용어를 낳는다.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6 1980년대 이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홍문표 ​ (1)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①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리얼리즘 - 총체성의 회복 (이성중심) 모더니즘 - 질서회복(이성중심) 포스트 모더니즘 - 질서와 총체성 부정 (이성중심 거부) ​ ② 작가란 무엇인가 모더니즘 리얼리즘 -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 포스트 모더니즘 - 작가의 특권 부정, 작가의 죽음, 독자 중심, 다원주의 ​ ③ 진리의 현현이 가능한가 모더니즘 리얼리즘 - 진리의 현현(epihany) 가능, 중심, 절대 신봉 포스트모더니즘 - 진리는 계속 유보됨. 디페랑, 계시록적 시대. ​ ④ 확실성의 문제 모더니즘 리얼리즘 - 언어에 의한 확실성 포스트모더니즘 - 구심점, 축, 절대적 확실성 없음 ​ ⑤ 양극화의 극복 리얼리즘 - 예술의 이념화, 모방, 산문적 모더니즘 - 예술의 형식성, 차이, 시적 포스트 모더니즘 -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양극성 초월 ​ ⑥ 제임슨의 포스트 모더니즘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문화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초기 시장자본주의가 사실주의를 독점자본주의나 제국주의가 모더니즘을 등장시킨 것이라면 다국적 자본주의 형태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미학적 대중주의, 역사의식의 빈곤, 의미의 해체, 행복감, 비판적 거리의 말소, 반영이데올로기의 약화를 들고 있다. ​ (2) 1980년대의 해체시 운동 ① 해체시의 의미 80년대 우리 시를 지배한 건 리얼리즘과 해체이다. 민중시나 해체시나 궁극적으로 노린 것은 현실 부정이고, 현실 파괴이고, 현실을 지배하는 질서 파괴이고, 질서를 구성하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죽이기이다. 그러나 방법은 다르다. 리얼리즘이 형식을 지킨다면 해체시는 형식을 파괴한다. ​ 80년대 해체시의 감각은 우선 ‘광주’로 대표되는 한국 근대성의 파산에 기초하고 있다. 60년대 이래의 근대화가 이룩한 한국 산업자본주의와 그 문화인 한국 모더니즘이 모순의 한 극점에 이른 것이 ‘광주’로 시작된 80년대라 할 수 있다. 해체시는 80년대가 보인 한국 근대성의 끔찍한 얼굴에 직면하면서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몸짓에서 생성되었다. 전면적인 부정이라는 점에서 해체시는 전위적이다. ​ ② 해체시의 전략 -형태파괴 그러니까 형태파괴의 전략은 1) 우리 삶의 물적 기초인 파편화된 모던 컨디션과 짝지워진 ‘훼손된 삶’에 대한 거울이며, 2) 파시즘에 강타당한 개인의 ‘내부파열’ 에 대한 창이며, 3) 의미를 박탈당한 언어의 넌센스, 즉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란이었으며, 4) 검열의 장벽 너머로 메시지를 넘기는 수화의 문법이었다고 할까요? ​ - 황지우 「끔찍한 근대성」 ​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붉은 글씨)를 잡읍시다 벽4 1984년은 쥐띠 해이다 재앙의 날들이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다오 - 황지우「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를 잡읍시다」 ​ 벽보라는 일상의 세계와 시적 상상력의 경계해체. 시니피앙의 강조, 콜라주기법(다다이즘) - 신문기사인용 인쇄효과 (미래파) ​ ③ 유물적 초현실주의 바퀴벌레들이 동요하고 있어 꿈이 떠내려가고 있어 가라앉는 산, 길이 벌떡 일어섰어 구름은 땅 밑에서 빨리 흐르고 어릴 때 돌로 쳐죽인 뱀이 나를 감고 있어 깨벌레가 뜯어먹는 뺨, 썩은 나무를 감는 덩굴손, 죽음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있어
10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10 댓글:  조회:1037  추천:0  2019-11-0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2 모더니즘시의 이해와 창작 ​ 홍문표 ​ (1) 모더니즘의 일반적 개념 ① 근대 또는 현대의 지향 - 모더니즘(Modernism)은 바로 모던(modern), 즉 근대 또는 현대를 지향하는 인간 문명의 역사적 이념이다. ② 이성중심주의 - 근대는 인간의 이성에 의한 합리적, 과학성, 전체성을 향한 플라톤 이래의 보편적, 본질적 가치중심주의 사상이다. ③ 반과거 주의 - 모더니즘은 언제나 전시대를 불완전한 것으로 보고 완전을 향해 진보한다고 보는 변증법적 사고다. 헤겔 - 현재는 과거의 완성이다. ​ (2) 20세기 모더니즘 문학 ① 반 19세기 사조 기존의 리얼리즘과 합리적인 기성 도덕, 전통적인 신념 등을 일체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 도시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넓게는 니체의 허무주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혁명이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포함한다. ② 20세기 모더니즘의 두 양상 주지적 모더니즘 - 20세기 모더니즘은 이미지즘, 주지주의, 형식주의, 구조주의, 기호학 등 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 - 다다이즘, 미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부조리문학, 해체주의, 포스 트모더니즘 등이 있다. ​ (3) 모더니즘 문학의 공통적 특징 ① 전위성과 실험성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은 모더니즘과 관계가 있다. 실험적인 까닭에 이들은 일정한 형식을 이루지 못한다. 또한 모더니즘의 예술은 의식적으로 제작하는 만큼 기존의 것들을 파괴한다. 이런 경우 파괴는 거의 현대문명, 과학적인 기술 등에 의해서 창조의 의의를 갖게 된다. 그리고 파괴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통, 특히 바로 전 시대의 예술방법과 주제 및 소재다. ​ ② 반사실주의 모더니즘은 더 직접적으로는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19세기적 유물론과 관련이 깊은데 모더니즘은 그러한 유물관은 물론 일체의 물질주의와 산업주의를 개인 정신의 부자유로 보고 반발한다. 그런 점에서는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와도 상통한다. ​ ③ 현실과 미래 지향 모더니즘 문학은 과거 지향적이라기 보다는 현실 지향적이고 나아가서는 미래에 대하여 예언적인데, 그 예언은 묵시록적인 세상의 파멸, 반 유토피아에 대한 비젼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 ④ 지적인 문학 반낭만은 필연적으로 주지적이다. 이는 낭만주의가 주정적이기 때문이다. “시는 현대의 지성과 정신을 통하여 의식적으로 소위되는 정신적 소산물인 따름이다.” - 김광균 “시는 언어의 구조물이다” - 김기림 ​ ⑥ 형식화된 내용 사상이나 내용은 일정한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형식화된 내용이 바로 문학이다. 사상의 조형성(造形性)이 최대의 관심이다. ​ ⑦ 이미지의 중시 사상의 형식화, 조형성의 논리는 바로 이미지즘의 시각성 내지 감각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운드(E. Pound)의 시각시(phanopoeia)에 통하는 개념이고, “시어는 시각적이며 구체적인 언어”라고 말한 흄(T.E. Hulme)의 정의에 통하는 말이다. 플린트(F.S. Flint)의 이미지즘(Imagism)이나 랜솜(J.C.Ransom)의 물질시(physical poetry) 엘리엇(T.S. Eliot)이 말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도 같은 개념이다. ​ ⑧ 현실비판 모더니즘시는 이성적이고 도시적이지만 동시에 도시적인 현대와 문명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엘리엇의「황무지」김기림의「기상도」등이 그것이다. ​ ⑨ 도시어 사용 모더니즘 시인들은 도시어․ 문명어․ 외래어 등을 즐겨 사용한다. 김광균의 경우 시집명으로서「와사등」과 「기항지」가 있고 그밖에 공장, 교당, 분수, 호텔, 급행열차, 전신주, 새로팡지, 램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사용했다. ​ ⑩ 반자연, 비개성적 자연 모더니즘시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모든 자연, 또는 사물에 감정을 배제한다. 소위 객관적 주관의 서술태도를 보인다. ​ 바다는 뿔뿔이 달아 날랴고 했다. ​ 푸른 도마뱀처럼 재재 발렸다. ​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 정지용의「바다」에서 ​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 박두진「하늘」에서 ​ (2) 주지주의적 모더니즘 시 ① 주지주의(主知主義, intellectualism) 문자로 보면 지성을 모든 가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정리하면 인식론에서는 감각론, 경험론, 직관주의, 신비주의 등에 대립하며 실재는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이성중심주의에 근거한다. 주정주의의 대립개념으로 감각과 정서보다는 지성을 중요시하는 창작태도 또는 그 경향을 의미한다. ​ ② 주지주의와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 1) 시는 개성과 정서으로부터의 도피 엘리어트는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시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도피다. 그것은 개성의 표현이 아니고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지금껏 전통적인 시론은 감정과 개성을 시의 절대적인 요건으로 생각하였는데 엘리어트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 2) 의미와 이미지가 동일한 객관적 상관물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효과는 작가의 자서전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기교, 즉 이미지에 의한 깊은 매체로서의 작품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미와 이미지가 동일하게 되어야 한다. 이처럼 관념이나 정서와 동일한 이미지를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라고 그는 부른다. 객관적 상관물은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 정서와 사상에 상응하는 사물의 이미지나 장면 등을 찾아내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창작에 있어 감정보다 이미지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 난 인생을 커피 숟갈로 되질하듯 살아왔던 것이다. - 엘리어트의「J.A. 프로푸록의 연가」에서 ​ 인생을 커피 숟갈로 되질했다는 표현은 바로 객관적 상관물의 설명에서 특정한 정서(particular emotion)가 될 수 있는 일단의 대상, 상황, 사건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지겹고 무의미하게 살아온 과거를 ‘커피 숟갈로 되질한 인생’이라고 표현할 때, 우리는 갑자기 충격적인 정서적 환기를 실감하게 된다. ​ 그러면 우리 갑시다, 그대와 나, 지금 저녁은 마치 수술대 위에 에텔로 마취된 환자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같은 작품에 나타난 일절이다. 여기서는 희미하고 몽롱한 저녁을 ‘수술대 위에 에텔로 마취된 환자’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대응함으로써 신선한 감각의 환기를 느낄 수 있다. ​ 3) 사상의 감각화 이는 결국 사고의 감각적 파악, 사고를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으로 귀착된다. 말하자면 사상을 장미꽃 향기처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시론이기도 하다. 사상의 감각화, 이를 통합된 감수성(unified sensibility) 이라고도 한다. ④ 랜섬의 형이상시와 컨시트 1) 시의 세 유형 랜섬은 시를 사물을 표현하는 형이하적인 물질시(platonic poetry)와 사상만을 나타내는 관념시(physical poetry), 메타포와 내포적 언어를 쓰는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로 구분하면서 사상만으로 치우친 명상시, 감정으로만 치우친 낭만주의 시 등은 감수성의 분열( dissociation of sensibility)을 보이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힘, 즉 사상과 감각이 통합된 감수성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형이상학적 기상(metaphysical conceit) 즉 컨시트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 푸른 치맛 자락을 훨훨 휘두르며 학교와 탑 밑 잔디밭을 거쳐, 늙은 완고덩이 선생들의 강의 들으러 가라 한 마디로 믿지는 말고 ​ 흰 리본으로 너의 윤나는 머리를 묶어라 그리고 결말 같은 건 전연 생각지 마라 저 풀밭을 거닐고 하늘에서 지저귀는 푸른 새들과 같이 -「푸른 소녀들」 ​ (2) 모더니즘과 이미지즘 ① 흄의 이미지론 1) 건조하고 단단한 이미지 영국의 비평가 겸 철학자인 흄(T.E. Hume)은 종래 낭만주의 문학의 주관적인 입장과 시의 모호성을 비판하고 예술에 있어서 객관성과 훈련은 물론 시에 있어서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wet and damp) 시가 아니라 건조하고 단단한(dry and hard) 이미지의 시이기를 강조하였다. ​ 2) 음악에서 조각으로 새로운 시는 음악보다 조각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청각에 대해서보다는 시각에 대하여 호소한다. 그것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조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 3) 정확, 정밀, 확실 이미지는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구상의 언어이기 때문에 그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는 시의 세 가지 목표로서 정확, 정밀, 확실을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이론이 이미지즘(imagism) 형성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 가을밤의 싸늘한 촉감 나는 밖을 걸으면서 얼굴이 붉은 농부같이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를 넘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멈춰 서서 말을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레에는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 흄「가을」 ​ ③ 파운드의 이미지론 시란 간결하고 견실한 언어, 리듬과 의미의 일치, 관용적인 표현의 거부, 형용사는 장식이 아니라 직접 내용이라는 것인데 이는 한자나 한시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한자가 갖는 상형성은 소위 은유의 그림(picture of metaphor)과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고도로 긴축된 언어의 묘미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다. ​ 군중들 사이에서 홀연히 나타난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의 꽃잎들 -「지하철 정거장에서」 ​ “3년 전에 나는 파리의 라꽁꼬르드의 지하철에서 내려 갑자기 한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한 아름다운 어린아이의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서, 그 날 종일 그 인상 받은 것을 나타낼 말을 찾고자 애썼지만, 그 돌연한 감정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30행의 시 한편을 썼지만 그것을 찢어버린 것은 그것이 소위 강열도 제 2위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후에 그 반 정도 길이의 시를 썼고, 7년 후에 위와 같은 글귀를 지었다.” - 파운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3 아방가르드, 다다와 초현실주의 시 ​ 홍문표 ​ (1)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① 예술의 혁명운동 전위, 아방가르드(avant garde)란 본시 군대용어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의 뜻이다. 이것이 변하여 러시아혁명 전야 계급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적의식으로 일관된 정당과 그 당원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것이 예술에 전용(轉用)되어 끊임없이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을 전복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전위예술경향 또는 그 운동을 뜻하기에 이르렀다. 아방가르드는 1차 대전 전후 유럽에 나타난 것인데 아도르노는 물화된 이성의 해방을 위해 비이성적 세계관으로 대응하는 예술운동이라고 했다. 다다이즘․ 미래주파 운동이 그 출발이었고, 추상예술과 초현실주의가 전위예술의 2대 조류를 이루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기성예술에의 반항이나 혁명정신 그 자체가 대중사회의 다양한 풍속 속에 확산하여 전위예술은 특정 유파나 운동에 그치지 않고 첨단적인 경향의 총칭이 되었다. ​ ②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는 모두가 반과거적 새로움의 지향이지만 주지적 모더니즘은 이성을 통한 새로움의 추구이고, 아방가르드는 반이성, 비이성을 통한 새로움의 추구라는데 차이가 있다. ​ (2) 다다이즘 ① 다다의 선언 “나는 하나의 선언을 한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나도 무엇을 말하려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주의를 내세우는 선언에는 반대하는 바이다. 나는 주의 자체를 반대한다. 그리고 나는 설명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의의란 것이 싫기 때문이다. 다다이즘은 관념을 버린다는 말이다. 다다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다다, 기억의 폐지, 다다, 고고학의 폐지, 다다, 예언자의 폐지, 다다, 미래의 폐지, 다다, 자연에서 비롯된 모든 우상에 대한 이의없는 절대적 신앙, 다다.” - 트리스탄차라, 1918 ​ ② 다다의 형성 다다이즘은 세계 1차대전 도중에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1916년 루마니아에서 스위스 쮜리히에 망명해 온 트리스탄 차라(T.Tzara)를 비롯하여 같은 해 독일로부터 역시 쮜리히에 망명해 온 위고 발(H. Ball) 등 몇몇 망명 예술가들에 의해 ‘다다’라는 단체가 조직되고 1919년 파리에서 브르똥(A. Breton), 아라공(L.Aragon), 수뽀(P.Soupault) 등 여러 시인들이 「문학」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이 운동에 가담함으로써 시의 한 조류를 이루게 되었다. ​ 소리도 없이 많은 문이 열렸다. 그것은 팔을 내밀은 무거운 광야의 날개다. 쇠의 초원은 길잃은 대상의 뼈가 흩어져 있는 운하를 넘는다. 공중에 매달린 길에 뻗은 주검은 추운 군중의 목구멍 속에서 타고 있다. 하상에는 녹모토의 한 가닥 빛이 가로누어 유리의 축으로 바람은 찢어지고 있다. 바다의 뇌우에서 눈은 익고 기르는 빛에 싸인 많은 옥석은 많이 모여서 잠든다. 어떤 고통도 입술의 물결에 미끼를 뿌리지 않는다. 권태는 야생의 직물원료의 물가에 좌초했다. - 차라의「문은 열렸다」에서 ​ (3) 이상의 전위적 모더니즘 ① 이상과 전위적 모더니즘과 그 계보 이상의 시는 20년대 정지용이 보여주던 미래파적 요소나 임화가 보여주던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새롭게 계승된 것이라고 봄. 이런 변증법적 연속이 50년대 김수영의 초현실주의적 기법이나 조향의 데뻬이즈망, 김춘수의 무의미 시, 60년대 ‘현대시’ 동인 일부가 보여주는 내면탐구, 비대상 시, 80년대의 박상배, 이성복, 황지우, 최승호, 90년대의 송찬호, 박상순같은 시인들에 의해 계승됨. ​ ② 분열과 단절의 현대성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꽃나무가 하나도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 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 이상스런흉내를 내었소. -「꽃나무」 ​ 꽃나무로 표상되는 자연과의 소외, 대상과의 단절감, 공포의 확인. 이 시는 자연과 자아의 단절, 대상과 주체의 단절뿐만 아니라 자연의 내적 분열, 자아의 내적 분열이라는 2중의 단절을 보여준다. 30년대 많은 이미지스트들이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상에만 집착함으로써 주체의 고뇌나 불안이나 절망을 괄호친다면 이상에 의해 비로서 우리 모더니즘 시는 주체와 객체의 단절, 주체의 내적 분열이라는 현대적 주제가 드러난다. ​ 1)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 ​ 2)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오감도시 제15호」 ​ 1)의 시는 이상시의 모태이며 출발점으로 대상, 객체, 세계와 단절되면서 이상이 체험하는 내적 분열, 자아 찾기, 자아 성찰의 풍경이며 그는 마침내 이 풍경 속에서 분열한다. 그의 자아 찾기는 네 가지 모티프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거울, 신체기관, 섹스, 수학적 기호이다. ​ 2)의 시에서 ‘거울 속의 자아’는 진정한 자아, 혹은 자아의 본질에 해당된다. 이상은 이런 자아, 본질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 이유는 거울 속의 자아는 허위의 자아, 가상, 이미지, 허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자아 찾기는 허구와의 만남으로 끝나고, 산책자로서의 그의 시선, 보고 / 보여지는 시선은 분열되고 리얼리즘이 아니라 기호의 공간으로 넘어간다. ​ ③ 절망에서 기호로 몽타쥬 기법 - 파편성 강조 ​ (수염(鬚.鬚)- 그밖에 수염일수있는것들모두를이름) 1 눈이존재하여있지아니하면아니될처소는삼림인웃음이존재하였다 2 홍당무 3 아메리카의유령은수족관이지만대단히유려하다 그것은음울하기도한것이다 -「수염」 ​ 유기적결합법칙파괴 초현실주의기법시도 ​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또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나는눕는다. -「절벽」 ​ 무의식의드러남, 자동기술법, 성행위묘사, 반합리주의 ​ (5) 초현실주의와 자동기술법 ① 브르똥의 쉬르레알리즘 선언 다다의 일원이었던 브르똥은 다다와 결별하고 쉬르레알리즘이란 초현실주의를 선언하였다. 쉬르레알리즘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아폴리네르로 알려져 있다. ​ “초현실주의란 새로운 표현방법도 아니고 보다 순수한 것도 아니고 시의 형이상학도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정신 및 그것에 관련된 모든 것으로서의 전적인 해방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고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 사상의 허약성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이, 즉 기성 가치관들이 얼마나 흔들리는 기초이며 다져지지 않은 땅 위에 흔들리는 집을 짓고 있는가를 알려주려고 한다. 우리는 부정의 전문가다. 초현실주의는 시의 단순한 한 형식이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스스로의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정신의 절규다.” ​ ② 초현실주의와 자동기술법 무의식의 언어 질서 초현실주의는 자연에서 직접 얻어지는 이미지 대신에 잠재의식의 이미지를 비현실적(또는 초현실적)으로 결합하여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각된 의식에서 보면 무질서하고 일종의 분열증을 일으켜 조리가 닿지 않지만 정신분석학상에서 보면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혁신의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동기술법에 의해 이미지의 아날로지(유사성)를 무시하는 듯이 보이지만 원래 이미지는 아날로지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게 마련이며 쉬르레알리즘이라 해서 이 일반적인 언어의 구성원칙을 부정할 수는 없다. ​ 여름도 다간 무렵 중앙 시장을 지나가는 그 여자 손님은 발톱으로 걷고 있었다 하늘엔 절망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 막대한 배암풀을 굴리고 있었다 핸드백 속에는 나의 꿈 그 신의 어버이만이 빨아들였다는 ​ 소금 프라스크가 들어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개에게 마치 상태가 수증기처럼 퍼져 있었다 거기에 막 시비의 판단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젊은 여인은 그런 시비의 판단으로 흉악하게 보이고 또 눈총을 받는 도리밖에 없었나 보다 나는 대체 조상 칼리움의 대사 부인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인가 - 브르똥「해바라기」 ​ (6) 조향의 초현실주의와 데뻬이즈망 ​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 -여보세요! ​ 에 피는 들국화 ​ -왜그러십니까? ​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 그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 -「바다의 층계」 ​ ​ 데뻬이즈망이란 자리바꿈, 곧 전위를 의미한다. 조향에 의하면 전위시키는 방법으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들을 한데 갖다 붙이는 파피에 콜레, 이것이 발전된 콜라주, 살바돌 달리의 편집광적 기법 등이 있다. 이 시의 경우 ‘뽄뽄따리아’ ‘디이젤 엔진’ ‘들국화’ 같은 이미지들은 일상적 합리적 문맥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는 오브제가 된다. 그러나 너무 기계적이다.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44 한국 모더니즘 시의 두 양상 ​ 홍문표 ​ 1.은유와 환유 1) 은유법의 기초 은유는 시(詩)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사법으로 가장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표현기법이다. 직유법이 “달처럼 예쁜 얼굴” 등 유사성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표현기법이라면 은유법은 유사성이 약하거나 없는 사물이나 개념을 대비시켜 동일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표현기법이다. 은유법은 표현적 유사성보다 '내면적 동질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은유의 핵심은 등가성, 두 사물을 동일시하려는 시인의 상상력이 작용하며 여기엔 분열된 사물을 통합하려는 시 정신이 있다 ​ 하늘은 동전이다. 책은 칫솔이다. 눈발은 마음의 어두움을 가리는 하얀 커튼이다. 창문은 영혼의 통로다. 너는 나의 반쪽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 2) 환유법의 기초 ​ 수사학에서 환유법은 대유법 중 하나로 대유법에는 제유법과 환유법이 있다. 이중 제유법은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하는 비유로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에서 빵은 음식 전체를 그 일부인 빵으로 대신한 경우다. “빵(식량, 먹거리 전체) 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빼앗긴 들(조국 강토 전체) 에도 봄은 오는 가” 한편 환유법은 부분이 아니라 특징으로 전체를 대신하는 비유로 예를 들어 철수가 항상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할 때, "야, 저기 야구 모자 온다."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철수가 온다는 것인데 야구 모자로 철수 전체를 대신한 것이다. 이런 것을 환유법이라고 한다. “펜(글)이 칼(무력)보다 강하다” “요람(탄생)에서 무덤(죽음)까지” “한 잔(술) 했다” 글이나 문장 또는 문학작품을 펜이라고 할 때 이것도 넓게는 은유 또는 상징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은유와 근본 차이는 등가성이 아니라 인접성 또는 접촉성이다. 따라서 이는 사물을 더욱 분리하고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은유와 환유에 대한 문제는 단지 이런 수사학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 철학 언어학 시학의 근본적인 문제이고 서정시와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설명하는 원리가 되고 있다. ​ 2. 은유와 환유의 시학적 이해 1) 야콥슨의 시와 산문과 은유와 환유 시인들이 시어를 선택하여 산문과 다른 낯설음을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하여 야콥슨은 등가성(equivalence) 원리를 제시하였는데 그는 시의 언어는 등가성의 규칙에 따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시어를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때 등가성이란 바로 은유적 방식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일반 산문은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으로 하지만 결합의 경우는 접촉성에 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접촉성은 환유의 방식이 된다. ​ ㄱ) 일상어법       접촉성       접촉성                                   저       식사       한다     나 는 +     밥   을 +   먹는다     소인       끼니       때운다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 ㄴ) 시의 어법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폭포     흐르는   퍼런   징소리     분수 처럼+ 흩어지는 + 푸른 + 종소리     빗물     뿌려지는   시퍼런   새소리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등가성                                     ​ 산문의 문장은 낱말과 낱말이 인접성에 의하여 환유적으로 결합하는 구조이고 시의 문장은 낱말들이 등가성에 의하여 은유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다. 시는 등가성의 원리에 따라 계열축의 언어를 선택의 축으로 하여 결합해 가는 언술이고, 산문은 전체와 부분이라는 환유적 접촉으로 결합해 가는 언술이다. ​ 2) 프로이드의 꿈과 은유와 환유 ​ 그런데 은유와 환유의 원리를 프로이드는 꿈에서 찾고 있다. 프로이드는 꿈을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이나 소망의 변장된 성취라고 했다. 말하자면 현실이 어떤 욕망을 직접 충족하지 못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억압을 느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꿈이라는승화 방식을 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꿈은 잠재적 꿈과 현시적(드러난) 꿈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둘은 인과론적 관련성을 가지는 것으로 무의식적 꿈의 사고라는 것이 먼저 존재하고, 그것이 꿈의 작업이라는 변형(위장) 과정을 거쳐서 의식계에 떠오른 것인데 우리가 잠을 깨고 기억하는 현시적 꿈이 그것이다. 왜 잠재적 꿈이 위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이는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계에 떠오르기에 부적절하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굴 죽였으면 또는 누구와 잤으면 하는 부도덕한 무의식적 욕망이 그대로 꿈에 나타난다면 도덕적인 의식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이 허용하는 방식으로 그 욕망을 변형시켜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죽이고 싶다 자고 싶다는 것은 꿈 사고를 이루는 잠재적 꿈이고 위장하는 과정이 꿈 작업이며 실제로 우리가 꾸는 꿈이 현시적 꿈이된다. 꿈의 해석은 이 현시적 꿈을 재료로 해서 꿈 작업을 해명하고 잠재적 꿈을 알아내는 작업이다. 문학이나 시도 그러한 꿈의 원리와 같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상상이란 창조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내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 작업에는 크게 압축방법과 전치(치환, 자리바꿈)방법이 있다. 압축이란 하나의 꿈이 잠재적인 꿈보다 내용이 적어지는 것으로 잠재적인 것이 생략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압축의 꿈 작업이 문학 창작에서는 은유의 문장으로 드러난다. 반면 전치는 실체를 위장하기 위해 일련의 연상을 통해 잠재적 꿈 사고의 요소들을 현시적 꿈의 요소들로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여인과 자고 싶다는 무의식은 여인과 관련 있는 핸드백이나 머플러 등을 만지는 꿈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전치의 작업이 문학에서는 환유가 된다. ​ 3) 라캉의 무의식의 언어와 은유와 환유 ​ 한편 라캉은 인간이 태어나 사회 생활을 하는 과정을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소쉬르 등의 언어학과 결합하여 설명한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 어떻게 의식이 형성 되는 가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삼 단계로 설명한다. 상상계를 거울단계라고 하는데 생후 6개월 내지 18개월 된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영상을 보고 거울 앞의 모습과 실제를 혼동한다. 어린이는 처음에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손이나 발 등이 자신이 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의 전부일 뿐이다. 그러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주체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자기 몸 일부를 사랑하는 자기성애의 단계에서 몸 전체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며 발전해간다. 상상계에서 어린이는 아직 자신과 타인의 구분하지 못한다. 어린이는 다른 아이가 울면 따라 우는데 이것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가장 가깝게 지내는 어머니도 자신과 동일시한다. 상상계는 이러한 상상적 오인을 특징으로 하는데 상상계에서 형성되는 주체성은 결국 허구적일 뿐이다. 왜냐면 자신이 본 자신의 총체적인 모습은 거울을 통해 본 허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와 타자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보는 사고를 은유적 사고라고 한다. 자궁에 대한 그리움 어린 시절 고향이나 엄마 품에 대한 그리움의 원천은 바로 나와 객체간의 구별이 없는 상상계의 무의식적 심리다. 이는 에덴에 대한 향수도 그렇다. 왜 시인은 나와 사물을 동일시하는 가 그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서정시가 나와 사물을 동일시하고 은유가 나와 너를 동일시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어린이는 '자아'라는 개념을 갖게 되면서 아이의 자아는 분열되고 만다. 분열된 자아 때문에 상상계에서 어린이는 혼란을 겪게 된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상징계로 넘어간다. ​ 상징계는 언어와 문화로 이루어진 보편적 질서의 세계다. 자아가 형성될 수 없었던 상상계와는 달리 상징계에서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이러한 상징계로의 진입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 외에 아버지라는 금기를 받아들임으로서 상징계로의 진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상징계로 진입한 어린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아버지의 법으로 전치 즉 바꾸게 된다. 그동안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별다른 정의 없이 그 존재를 이해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외부의 금기를 받아들이고 사회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외부 사회의 무엇을 받아들일 때는 그 사물의 이미지를 그 사물의 이름으로 전치하게 된다. ​ 실재계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항상 의미작용의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즉 상징적 질서바깥에 존재하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과 분리되는 것을 뜻하는데 라캉은 이 영역을 ‘실재계’라고 부른다. 특히 우리는 어머니의 몸과 분리되어 있다. 사람들이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위기를 겪은 다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소중한 대상을 다시 획득할 수 없는 일이다.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상상계(바라봄만 있는 세계)와 상징계(보여짐을 의식하는 세계)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것이 실재계다. 즉 나의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킬 짝이라고 믿었다가(상상계), 포착하는 순간 허상이 되고(상징계), 이 때 상징계로 들어가며 제외된 부분이 잔여물(대용물)로 남아 다시 숭고한 대상이 생긴다(실재계). 라캉의 실재계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균형을 탈선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이러한 균형을 진행시켜 주기도 한다. 1 ​ 한편 소쉬르 이론에서는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랑그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개개의 주체사이의 관계에 대한 빠롤이라고 했다. 그런데 랑그는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칙의 세계이다. 개인들이 말을 하기 위해선 그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 규칙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의미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언어체계 안에서 랑그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 규칙에 따라 의미를 말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사고나 판단은 개개의 ‘주체’가 하는 게 아니라, 언어의 의미체계(구조) 속에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의미나 판단 혹은 사고가 ‘주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언어 구조에 내장되어 있고, 거꾸로 ‘주체’들이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이 언어 구조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 가능해진다. 그 결과 ‘주체’는 더 이상 자기가 말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의 중심이 아닌 게 되며, 그 중심은 오히려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라는 객관적 구조에 있다는 게 분명해 진 셈이다. 이는 은유중심의 언어에서 환유중심의 언어로 전환함을 의미하며 주체에서 타자로 개인에서 사회로 통합에서 분열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논리가 된다. ​ 나’라는 주체 속에는 바라봄과 보여짐이라는 두 개의 주체가 있다. 데카르트식 주체는 보기만 하는 주체, 즉 보여짐을 당하는 주체를 상정하지 않은 셈이다. 보여짐을 모르는 주체는 왜 위험한가. 그것은 아직도 거울단계에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대상을 실재로 믿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소외된 신경증환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 고착에서 벗어나 대상이 허구임을 깨닫고 다시 또 연기된 대상을 향해 가는 것, 대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대상에서 벗어나는 반복 없이 삶은 지속될 수가 없는 것이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고립된 주체는 심한 경우 히틀러처럼 역사를 광기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 3. 시에서 은유와 환유 ​ 시의 언어는 기호의 차원에서 두 가지 기본적인 수사학을 상정할 수 있다. 은유와 환유가 바로 그것이다. 은유는 기호가 기호 체계 너머의 세계나 관념과 같은 지시대상을 지칭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언어관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환유는 하나의 기호가 지칭하는 세계가 또 다른 기호일 뿐이라는 기호 내적인 언어관을 지향한다. 환유에 의해 형성되는 기호는 그러므로 기호 너머의 세계를 지칭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더니즘시의 기호관이 대표적인 환유적 기호관이다. ​ 이에 비해 서정시의 기호는 그것 자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 너머에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는 곧 은유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은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기호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기호와 지시대상 혹은 관념과의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을 상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시의 언어는 언어 기호의 차원을 넘어 사상이나 관념, 정서 혹은 절대의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서정시가 근원 혹은 본질을 지향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1) 서정시와 은유 서정시란 주체의 감정을 드러내는 시다. 이는 보여줌의 시가 아니라 바라봄의 시다. 그리하여 세계를 자아화한 동일성의 세계로 만들어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통일되는 세계다. 과거에는 이를 감정이입(感情移入, empathy)이라 했다. 자기의 감정을 대상 속에 투입하여 나와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를 시도하고 심적 연합을 이룩하려는 시적 태도다. ​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 동일성의 논리는 나와 너, 자아와 세계,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되는 화해의 시학이기도 하지만 고정된 사물의 의미가 새롭게 명명되고 전환되는 창조적 행위이기도 하다. 동일시는 내가 네가 되는 객체의 주체화,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이 되는 사물의 변질, 정신이 물질이 되고 물질이 정신이 되는 전이와 창조가 자유롭게 실천되는 세계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나 의미가 해체되고, 새롭게 재구성되고 재창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에서 동일성의 논리는 바로 시학의 원리이기도 하고 시를 창작하는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 존재는 근원적으로 개체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체적인 만큼 존재는 고립적이며 단독자이며 그래서 정서적으로 보면 고독하고 불안한 것이다. 그러기에 존재들이 지니는 근원적인 불안의 속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보면 신앙적 구원 논리가 되고, 철학적으로는 초월의 논리가 되며, 시적으로는 상상을 통한 정서적 구원의 논리가 된다. ​ 물결이 햇살을 마시면서 토한다 歲月에 결리는가 이따금 허릴 튼다 바람이 손 발을 씻고 내 머리에 닦는다 ​ 山이 거꾸로 매달린 채 빠져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내 얼굴도 걸려 있다 아무리 또 건져봐도 자꾸만 달아난다 ​ 때묻은 本性을 열심으로 헹궈냈다 썩어가는 俗性을 하나하나 씻어냈다 한웅큼 떠서 마셨다 고대로 하늘 맛이다 ​ 나도 자꾸 마시면서 토한다 하늘을 마시고 山을 마시고 나를 마신다 난 그만 저 江이 된다 기어이 江이 된다 - 유제하 「강」 ​ 2) 은유적 모더니즘시 ​ 1930년대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등을 우리는 모더니즘 시인 또는 주지주의 또는 이미지즘 시인이라고 한다. 모더니즘시라면 서정시와 달리 모두가 환유적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들 시에도 은유적인 요소가 강하다. ​ 琉璃에 차고 슬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 유리창의 차가우면서도 투명한 이미지 속에 자신의 정서를 담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이미지를 통해 다른 그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이미지들이 재현적 차원의 세계를 담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정서를 담아내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사용에서 은유적 관점의 언어관을 읽을 수 있다. ​ 정지용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그 너머에 항상 관념이나 정서의 덩어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은유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동일성을 상정하고 기호가 지시대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은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 아모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 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公主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 이 시에서 서술 대상인 나비와 자아는 완전한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점은 수사학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기림은 이 시기의 시에 오면 이처럼 자아와 대상 사이의 일체감을 회복하면서 대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아와 대상 사이의 동일성의 세계를 회복하게 될 때, 대상에 대한 풍자나 조소는 사라지고, 자아와 대상 사이에서 달성되는 동일한 정서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나비의 정서는 자아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자아와 정서와 나비의 정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성 속에서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 外人墓地의 어두은 수풀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나리고 空白한하늘에 걸녀있는 村落의時計가 여윈손길을 저어 열시를가르치면 날카로운 古塔같이 언덕우에소사있는 褪色한 聖敎堂의 집웅우에선 ​ 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종소래 - 김광균, 「외인촌」 ​ 김광균의 모더니즘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는 시 중의 하나인 이 시에서는 도시적인 소재와 이미지를 통해 당대의 도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이들 모더니스트들의 지향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진하게 묻어나는 감정의 밀도에서 김광균만의 독특한 한 측면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김광균은 이러한 도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을 객관화된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주관적인 정서를 덧씌워 표현한다. ‘공백한 하늘’, ‘여윈 손길’ 등과 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표현 속에는 시인이 지닌 고독과 비애의 정서가 강하게 묻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독이나 비애의 정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 하는 데 있다. 서정시는 본질적으로 자아와 대상 사이의 동일성을 지향하는 장르이다. 자아의 정서와 대상의 정서가 완전한 일체감을 이룸으로써 이 둘 사이의 구분이 전혀 불가능한 융화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서정시의 본질적인 요소라면, 김광균의 시에 나타나는 대상이나 이미지가 바로 이와 같은 서정시의 본질과 동일한 측면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30년대 모더니즘시의 한 특성을 읽을 수 있다. 정지용이나 김기림의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김광균의 시에서도 은유적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면, 30년대 모더니즘시 특히 영미 주지주의 계열의 모더니즘시는 본질적으로 은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서정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3) 환유적 모더니즘시 ​ 같은 1930년대라도 이상의 경우는 은유라기보다 환유적임을 볼 수 있다. ​ 1 나는거울없는室內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 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陰謀를하려는中일까. -이상 일부 ​ 화자인 '나'는 거울이 없는 실내에서 거울 속에 있을 또 다른 '나'를 생각하고 있다. 거울은 이상적 자아가 존재하는 무의식적 공간을, 그리고 실내는 의식적 공간인 현실을 상징한다. 그런데 거울 속의 '나'는 이미 실내에 나와 있기 때문에 ‘外出中’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하기 이전에 거울 속에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다른 '나'가 있으며,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왜냐 하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거울 속의 욕망하는 '나'가 '나'를 ‘어떻게 하려는 陰謀’를 하는 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室內에 있을 뿐만 아니라 거울 속에도 존재하는데 그 두 명의 '나'는 화합이 되지 않고 균열을 보이고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내가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나는 존재한다"는 라캉의 상상계에서는 거울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가 일치한다. 은유가 그렇고 서정시가 그렇다. 그런데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무의식에서 생각하는 '나'는 일치하지 않고 분열된 상태이다. 이는 상징계다. 바로 환유적 발상이다. 이러한 태도는 1960년대 김춘수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다. ​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3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김춘수< 나의 하나님> 전문 ​ '하나님'은 '늙은 비애', '살점', '놋쇠 항아리', '어리디어린 순결', '연둣빛 바람' 등의 다양한 이미지에 비유되면서 시적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구체화 또는 확장된다. 특히 비유적 이미지들이 ‘늙은/어리디어린, 생물/무생물, 밝음/어두움, 구체/추상’ 등으로 대립되면서 통합되지 않고 분열된다. '하나님의 의미를 지연시키고 그 폭을 확장시킴으로써 모호성이 극대화되어 그 통일된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는 의미의 고정화가 아니라 무한한 지연,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연기된다는 점에서 환유적이다. ​ 잎진 후박나무 아래 땅을 파고 새끼를 낳는 어미 개 싸락눈이 녹아드는 두 눈을 반쯤 감고 태반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배 밑에서는 아직 눈이 감긴 새끼가 꿈틀거리고 턱 밑으로는 몇 줄기 선혈이 떨어지고 ​ 그 위로 어린 싸락눈은 비껴날고 - 오규원, 「후박나무 아래․1」전문 ​ 오규원의 시도 대상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후박나무/어미 개/새끼/싸락눈/태반/선혈’ 등이 어미 개를 중심으로 한 시간과 공간의 인접성 사물들로서의 환유적 언어체계를 보여줄 때, 우리는 은유적 사유체계로부터 환유적 사유체계로 이행해 온 한국 현대시의 한 모습을 본다. ​ 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알았다 ​ 이제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황지우 “수은등 아래 벚꽃” ​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수은등 아래 벚꽃)이라 했을 때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는 건 "죄"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지만 거기 느닷없이 "죄"라는 추상어를 데려옴으로써 삶의 심각한 본질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다시 벚꽃의 만개와 겹치면서 아름다움과 죄악을 현란하게 교직한다. 이처럼 그의 환유는 이 시의 중심축이 된다. ​ 은유는 남자의 문자현상을 특징짓는 기법이라면 환유는 여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적인 글쓰기는 만져지는 무엇을 비롯한 근접한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환유적 욕망이 승한 특징을 보이기 쉽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은유란 무엇인가를 보다 생생하고 풍성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방식이라면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된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9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9 댓글:  조회:1068  추천:0  2019-11-0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8 반자연의 미학과 역사적 자연 ​ 홍문표 ​ (1) 전통적 자연의 시학 1) 원래 자연은 시학의 근본개념이었다. 시학으로서의 자연은 첫째 시인의 타고난 재능을 의미한다. 동양의 소위 기상론(氣象論)은 이 타고난 천품의 재주와 기상을 후천적 수련보다 더 중시한다. 2) 둘째로 자연은 시의 한 기법을 가리킨 말이다.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고 할 때 ‘자연의’란 말은 ‘자연을’하는 목적어의 구실도 하지만 ‘자연스럽게’란 기법을 의미한다. 낭만시학의 자발성, 우주원리에 조화로움. 3) 셋째로 자연은 인간성을 뜻한다. 이 경우 인간성은 사상과 감정의 단순성․소박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비합리적이고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인격 양상이다. ​ (2)현대와 반자연의 시학 1) 인위적, 인공적 세계의 삶 - 인공성과 복잡성은 전통적인 자연의 시학을 거부한다. 2) 반자연적 미학의 탄생 - 인공적인 자연의 탄생. 모더니즘 시학의 태도. ​ ① 김춘수의 반자연 시학 ​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近郊에서는 보지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 먹고 있다. 越冬하는 忍冬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人間의 꿈보다도 더욱 프르다 -「忍冬잎」 ​ 이것은 과거의 자연시와는 다른 차원에 놓인다. 현상적으로 보면 실제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뎃상 같지만 이 풍경은 시인의 내면속에만 존재하는 별개의 세계다. 시인의 상상력이 실제의 자연을 해체해서 재구성한 내면풍경이다. 즉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자연이다. 그리고 화자는 인간 편에 서지 않고 사물 편에 서서 사물만을 내용으로 삼는다. 인간의 탈을 벗기려 하는 데서 사물시는 탄생한다. ​ 도토리나무 어깨가 떨리고 있다. 도토리는 陰山山脈 이쪽 萬里長城 이쪽 始皇帝 발등에도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뭐가 그리 이상하냐 푸줏간 식칼은 뒤로 실컷 휘고 ​ 가도 가도 하늘은 黃砂빛이다 달이 뜨면 밤에는 늑대가 운다 -「匃奴」 ​ 이 작품의 자연물도 실제의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적 질서에 따라 재조직된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자연이며 이 자연에서 오는 익명의 정서 역시 이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정서다. 실제의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장면들을 유사성에 의해 결합시키지 않고 폭력적으로 병치시킴으로써 이 작품은 아무런 논리적 의미를 갖지 못한 무의미시로서 익명의 정조만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 (3) 자연의 변화성 현대시인은 과거의 자연과 같은 불변적이고 항구적인 것보다 자연의 변화와 역동성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자연도 정신적인 것이라기보다 물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그 자체로 보는 객관적 태도의 시나 자연에 인간적 감정을 투영한 주관적 태도의 시를 가리지 않는다. ​ 구름을 휘몰아 허공을 달리며 숲과 지붕을 마구 덮치고 짓밟으며 시머리 자진머리 온갖 장단과 가락을 마음대로 뽑는 名唱이다가 ​ 꽃가루와 열매를 옮겨 은밀한 입김으로 싹트게 하다가 애무하며 흔들어 못견디게 자라게 하다가 ​ 강물을 넘치게 하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며 일체를 부수고 쓸어버리는 行動으로 나타내 보인다. - 李仁石,「바람」의 일부 ​ 바람의 역동적 이미지, 정적 서경적 자연이 아니라 변화무상한 자연 ​ 겨울 육지에서 불던 바람이 바다끝에서 끝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 썰물이다 썰물 마른 가지들이 산 기슭에서 속삭이고 허망하게 갈매기가 울다가 파도와 함께 부서진다 아 밀물이다 밀물 갈매기들은 사라지고 이윽고 모든 뻘밭이 바다가 되어 무너진 바람을 빨아 들이고 있고 빈 가지들이 밤에 잠기어서 개처럼 앓고 있다 - 李裕憬「草落島4」 ​ 겨울과 밤이라는 자연의 시간적 배경만이 음산한 분위기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너지고 속삭이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자연의 움직임들이 그 변화성이 풍경을 을씨년스럽게 한다. 여기서의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상하게 변화하고 움직이는 자연이다. 그것은 영원히 본질적인 것을 표상하던 과거의 자연과는 무관한 자연이다. ​ (4) 분열된 자연 ① 자아해체의 상관물 현대의 자연은 파괴되어 조각이 나버린, 고뇌로 가득 찬 자연이다.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비정하게 파괴되는 비참한 모습으로 현대시에 수용되고 있다. 그것은 자아해체의 상관물이기도 하다. ​ 그리움으로 더욱 희어진 기억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너는 마르고, 길고 험한 마음의능선마다 잡목숲이나 거느리며 너는 계곡처럼 아프게 패여만 간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으련가 그대여, 아무리 불러봐도 좀처럼 성한시절의 메아리를 되돌려주지 않는 먼 산이여 방부 처리된 생선 통조림 같은 세월의 빈깡통들만 걷어채이는데 못잊힐 그 날의 흔적조차 거의 판독할수 없는 문자로 희미하게 푸른바위손에 덮여 가는데 허나 누구도 그걸원한건 아니었는데 너는너대로, 나는나대로 여전히 하나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둘이되지도 못한 채 그냥 이대로 늙어갈것인가 - 임동학「먼산」에서 ​ ② 현대문명의 비판 자연의 파괴감은 자아의 내적 고뇌만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엘리어트의 「황무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속화되고 타락된 현대 문명사회의 비판을 담고 있다. 그것은 기계문명이 가져온 정신의 황폐화와 비인간화를 고발한다. ​ 현기증나는 활주로 최후의 결정에서 흰 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 기계처럼 작렬한 작은 심장을 축일 한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나비의 안막(眼膜)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 김규동「나비와 광장」에서 ​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 김광섭「성북동 비둘기」에서 ​ (5) 역사적 현실의 자연 ​ 눈으로 덮힌 前方의 저녁은 포도빛으로 저문다. ​ 休戰線 안에서는 콧잔등이 얼어붙은 여우들이 헤맨다. ​ 나무사이로 누벼 돌개울 上流로 사라졌다. ​ 가시덤불 깃든 까투리가 놀라 날아오른다. - 박목월「발자국」에서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 신경림의「갈대」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9 시와 인생 ​ 홍문표 ​ (1) 시와 인생 ① 시의 정의 시는 상상과 정열의 언어다. - Hazlitt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다. - Poe 시는 인생의 비평이다. - Arnold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 - Hudson ​ ② 인생에 대한 두 가지 관심 존재론 - 나는 누구인가. 개인적 존재. 사회적 존재. 근원적 존재. 당위론 - 어떻게 살 것인가. 문학의 사회적 역사적 기능 ​ ③ 인생과 서정시 서정시가 자아를 표출하는 것이나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한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과 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에 불과하다. 누구나 자아를 우주의 주체로 하여 세계를 인식한다. 이 때 때로는 자아를 우주에 빗대어, 예를 들어 흘러가는 구름이나 강이나 계절이나 꽃이나 이런 자연에 비교하면서 자신을 자연에 투사하거나, 자연을 자기에게로 동화하는 방식으로 상상하는데 이러한 동일시의 방식이 서정시다. ​ ④ 시와 철학과 종교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절대자나 근원적인 우주와의 관계를 인식하려는 철학적인 또는 종교적인 자세, 시의 서정적 자아가 인생과 우주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의 노래가, 궁극적으로는 자유와 해탈과 구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시가 고도의 예술적 언어형식을 통하여 초월을 시도하는 것에 비하여 철학은 사변의 논리를 거치고, 종교는 믿음이라는 종교적 행위를 거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 ⑤ 인생에 대한 보다 강한 관심의 시 어느 시대나 시는 인생의 표현이다. 그러나 근대이후 물신주의, 기술만능주의에서 인생의 위기, 자아 상실감, 정체성의 위기를 맞으며 생의 철학, 허무주의, 실존주의, 정신주의를 논하게 되고 시에서도 이러한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인생파, 생명파라 한다. ​ (2) 생명파 또는 인생파 시 ① 생명파의 등장 1936년 일제의 암울한 시대 동인지『시인부락』에 모인 서정주. 오장환. 함형수와 이들 노선을 함께 한 유치환은 그동안 ‘시문학파’가 음악성과 서정성으로, 모더니스트들이 도시적이고 지성적인 이미지의 구사로 일정 부분 순수문학을 일궈낸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지나친 감각주의와 기교주의 성향에 대해서는 반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의 시적 추구는 저 시원(始原)의 꿈틀거리는 인간의 생명력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생명파 또는 인생파라고 부르게 된다. ​ ② 서정주의 생명의식 ​ 麝香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슲음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 꽃다님 같다 ​ 너의 하라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이른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무러 뜨더라. 원통히 무러 뜨더 ​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하라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리는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 石油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가보다 - 꽃다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 크레오파트라의 피 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 슴여라 배암! 우리 順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 같은 고운 입설- 슴여라 배암...... -「花蛇」전문 ​ 「자화상」“애비는 종이었다”「문둥이」“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화사」와의 관계, 니체의 허무주의와 권력의지, 보들레르의 악의 꽃 영향. 인간의 이중성, 원죄와 욕망, 선과 악, 이성과 감성, 미와 추.「화사」는 보들레르의「악의 꽃」- 꽃과 뱀의 연결 ​ ③ 유치환의 허무에의 의지 ​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에 물들지 않고 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億年 非情의 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生命도 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전문 ​ 서정주가 보들레르적이라면 유치환은 니체의 허무와 의지에 가깝다.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생명의 서」 허무를 초극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 ​ (3)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 ​ 잊어버려야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다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 가야만 한다 - 조병화「하루만의 위안」에서 ​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정호승「수선화」에게 ​ 이렇게 말을 하고 저렇게 말을 바꾸어 보아도 인생은 쓸쓸한 것이다. 서글픈 것이고 외로운 것이고 적막한 것이다. 언제든 쓸쓸하지 않으려고 서글프지 않으려고 할 때 산통이 깨졌다. 일이 터졌다. 이눔아 나도 이렇게 쓸쓸하고 서글프고 외롭고 적막한데 네 놈이라고 별 수 있겄냐! 하늘 위에서 누군가 대갈일성 호령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소리. 후두둑 빗방울 던지신다. 이마 위에 찌익 날아가던 새가 물똥 갈기신다. 나태주“골목길” ​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이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황진이- ​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은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자리에서 사는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 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김용택 “산” ​ 날마다 산에 오른다 오를수록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아슬한 오만을 키우기 위하여 악착같이 기어오른다. ​ 날마다 산에 오른다. 오를수록 순진하게 복종하는 시퍼런 독재를 키우기 위하여 목숨 걸고 기어오른다. ​ 날마다 산에 오른다. 오를수록 외로워지는 내영혼의 절망을 위하여, 빗살처럼 흔들리는 아쉬운 지상의 연민을 위하여 안간힘으로 기어오른다. ​ 바람으로 이미 어질펴진 목숨 너절한 인연들의 손짓들은 측백나무 마른 가지에 걸어두고 기다리는 마음 한곡조 흥얼거리면서 홀홀단신 빈몸으로 기어오른다. - 홍문표「날마다 산에올라1」 ​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0 기독교적 서정시 ​ 홍문표 ​ (1) 종교와 시 ① 공통점 유한성의 극복, 마음의 평화와 위로, 정신의 구원. 객관적 논리의 초월, 직관과 비유의 언어 사용, 불가시의 세계를 가시의의 세계로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하나님=목자) 내 마음은 호수요(마음=호수) ​ ② 다른 점 종교 - 신의 힘에 의한 유한성의 극복, 도덕적 실천 믿음을 통한 현실 극복, 믿음은 하늘나라 와 구원이라는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가는 마음과 행동 , 천국이라는 공간과 미래의 시간 문학 - 인간의 상상에 의한 정서적 자유, 감성적 체험 상상을 통한 현실 극복, 상상은 상상력을 통한 다양한 세계로의 벗어남 상상의 공간은 제한이 없으며 시간도 과거 현재 미매가 있음 ​ (2) 기독교문학의 구조원리 ​ 일반언어: 발신자 - 사상과 감정 - 수신자 (일반 문법에 따른 어법) 성서 : 하나님 - 하나님 나라 - 인간 (육화와 계시의 문학적 어법) 문학 : 작가 - 사상과 감정 - 독자 (이미지와 플롯의 문학적 어법) 기독교문학 : 작가 - 하나님 나라 - 독자 (이미지와 플롯의 문학적 어법) - 홍문표「기독교문학의 이론」에서 ​ (3) 기독교시의 세 유형 첫째는 기독교 사상의 진리나 구원의 논리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여 사랑, 희생, 봉사, 용서, 회개 등을 시어로 채택하면서 기독교적이기를 강조하는 경우.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접근이 아니라 극히 교화적이고 설교적인 서술의 시. 둘째로는 기독교를 신앙하는 입장에서 전도의 목적이나 신앙의 고백 형식으로 발표되는 경우,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말씀의 전달이라는 명제 때문에 문학을 단순히 전도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대개는 목적의식이 앞서 시로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엇은 이를 ‘이류의 시’라고 했음. 셋째로는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추구, 침묵하는 신에 대한 몸부림, 고난과 구원으로 엮어지는 신의 은총에 관한 문제 등을 고도의 예술적 은유와 상징을 통하여 표현하는 경우. 이는 기독교시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문학의 문제. ​ (4) 서정적 기도시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이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가을의 기도」 ​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 주소서 ​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배드로의 절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 죽음의 쓴 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은 돌무덤에 갇힌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깨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게 하소서 - 이해인「기도」 ​ (5) 기독교적 신앙시 ​ 신발이 다 닳고 발바닥이 피흘러도 올라갈 수 없어라. ​ 정강이로 오르고 무릎으로 오르고 가슴과 턱 이마로 올라가도 다다를 수 없어라. ​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의 하늘 끝 마음으로 닿을 수 있는 마음의 마음 끝 어떻게도 이대로는 바라다볼 수 없는, ​ 그 음성 아득하게 내리시올 자비 커다랗게 허릴 굽혀 안아 올려 주실 그 정상 이마직서 홀로 울어라. - 박두진「지성산(至聖山)」 ​ 내 목숨을 꽃밭처럼 씨뿌리게 하소서. 왕이신 당신의 집 보석으로 깎은 궁전이게 하소서. 그러나 나는 지금 마음대로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꽃밭 같은 내 목숨의 의미, 그것을 모르고는 나는 확실하게 시들 수가 없습니다. 왕이신 당신을 수정궁에 모시지 않고서는 나는 마음대로 낡을 수도 없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으신 이여. 나는 당신을 위해 어떻게 죽으리까, 언제 죽으리까, 어디서 죽으리까, 죽었다가 일어나서 어떻게 살리까 죽었다가 사신 그대를 위해 무엇을 감히 바칠 수가 있으리까 땅위를 걸어가는 나날의 아, 별떨기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빛나리까, 어떻게 피우리까. - 이향아「땅 위의 나날」 ​ 하늘 빛 침묵으로 겹겹이 숨겨온 비밀 천년의 밤을 지켜온 지순한 옥빛 기다림 ​ 문둥이 시몬 그 천형의 살점을 어루만지시던 당신의 다스한 온기에 나의 긴 밤은 아침 이슬이 되고 ​ 당신과의 만남은 오히려 이별의 시작일 수 있고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의 절망과 이승의 마지막 식탁일 수 있기에 이제 내 가슴에 숨겨온 기다림의 옥함을 열겠습니다. ​ 그리하여 나는 당신의 머리칼로 흐르는 향유의 빛깔이 되고 당신 발아래 엎드린 가난한 마리아 후회 없는 기억의 향기가 되겠습니다. ​ 그러나 이별은 만남의 시작이 되고 순간이 영원일 수 있다는 당신의 언약으로 하여 슬픔은 기쁨의 노래가 되고 나는 또다시 향유로 가득한 옥합이 되어 새 천년을 기다리는 돌이 되겠습니다. - 홍문표「옥합을 열겠습니다」 ​ 하나님이 쓰시다 사망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신 이야기를 성경책에 쓰시고 그래도 부족했던지 어린 풀잎에 쓰시고 하찮은 곤충의 애벌레 위에 쓰시고 삼라만상에 쓰시다 ​ 믿음이 없는 세대를 위하여 늘 불안한 세상을 위하여 제자들과 미리 음식을 잡수시고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시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래도 부족했던지 친수(親手)로 쓰시다. ​ 봄이 오는 들판에 쓰시고 버들가지와 실개천에 쓰시고 어디메 불어오는 남쪽 바람 위에 쓰고 또 쓰시다. - 김지원「하나님이 쓰시다」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1 불교적 서정시 ​ 홍문표 ​ (1) 불교시의 이해 ① 한국 불교시의 형성 토속적인 샤머니즘 + 불교 - 삼국시대, 국교 신라시대 향가로 승화 고려시대 대장경, 호국불교 조선시대 척불숭유(斥佛崇儒)로 퇴조 현대 불교문학의 전통유지 ​ ② 불교문학의 개념 신문학 초기 - 승려들의 문학작품 최근 - 불교의 사상 또는 신념을 문학적으로 표현 모든 불교의 경전 및 불교인의 불교적 삶, 포교 행위를 포함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 ​ ③ 삼보란 무엇인가 불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귀의 대상인 불 법 승을 삼보(三寶)라 한다. 이를 통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불교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불(부처림, Buddha)’은 석가모니의 출현과 성도(成道)를 인정하는 데에서 귀의 대상이 되며 불교의 출발점이 된다. ‘법(Dharma, 부처의 가르침)’은 그가 남긴 가르침이며 그 법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불교를 성립시키는 두 번째 기본요소이다. ‘승(Sagha, 僧家)’, 진리[佛法]는 그 가르침을 듣는 자가 있어야 하며, 실천자가 있어야 한다. 가르침을 듣고 불[覺者, 깨달은 자]이 되기 위해 도를 실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승’이라 한다. ‘승’이 있음으로써 불교의 생명이 영원히 계승되는 것이다. ​ (2) 초기 불교시 ① 1920년대 불교시단 - 홍사용, 박종화, 오상순, 한용운 1) 박종화 「석굴암대불․1」 ​ 천 년을 지키신 沈黙 萬劫도 無恙쿠나 ​ 태연히 앉으신 자세 배움직함 많사이다 ​ 동해바다 물결이 드높아 ​ 허옇게 부서져 사나우니 미소하시어 누르시다 천 년 긴 세월을 두 어깨로 받드시다 新羅의 功德이 임 때문이시라 -「석굴암대불․1」에서 ​ 3) 한용운 -「불교유신론」「님의 침묵」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한용운「나룻배와 행인」 ​ (3) 1930년대 불교시 - 김달진, 서정주, 조지훈, 신석조 ① 서정주,「귀촉도」「동천」 ​ 내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천」 ​ 이 시집의 후기(後記)에서 미당은 “특히 불교에서 배운 특수한 은유법의 매력에 크게 힘입었음을 여기 고백하며, 대성(大聖) 석가모니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고 불교의 삼세인연(三世因緣)을 바탕 삼은 시세계인 것을 지적했다. ​ ② 조지훈 승무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깍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 보선이여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합장인양 하고 ​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4) 광복이후 불교시 ① 1950년대 - 조병화, 이원섭, 이설주, 김관식, 이형기, 박희진, 박제삼, 고은 ② 1960년대 - 박제천, 김초혜, 박정만, 홍신선, 문정희, 오세영, 허영자, 정진규 ③ 1980년대 - 김지하, 황동규, 정현종 ④ 1990년대 - 석지현, 장이두, 김정류, 이청화, 이향봉, 석성우, 돈연, 석성일, 석자명, 박진관, 조정권, 최동호 ​ 버리고 찾는 것 모두가 덧없음이라 끝내는 無心으로 돌아선 그대 ​ 깊은 가슴 열어 밝혀도 지난 시간 되찾을 수 없어 멀고 괴롬인 것을 ​ 어찌하면 편안하겠소 돌 위에 무릎꿇어 모두 버리는 뜻 견디려하오 - 김초혜 「사랑굿」 ​ 업보처럼 쑥쑥 자라는 아이들만 남았다 ​ 지은 죄 많고 아직도 더 죄지을 듯 불안한 하루하루 눈앞에 커다랗게 업보처럼 남았다 ​ 다 놓아버릴 수 없을까 마음만 그저 노을처럼 떴다간 스러지고 ​ 한 방울 두 방울 씩 가슴 밑에 고이는 업보사랑 - 김지하「업보」 ​ 어릴 때 참 많이도 본 나팔꽃 아침을 열고 이슬을 낳은 꽃 아침하늘의 메아리 이슬 맺힌 꽃 이슬에 비췬 꽃 만다라 무한반영의 꽃 만다라 피, 붉은 이슬 의 메아리, 그 메아리 속에 생명 만다라 눈동자 에 맺히는 이슬 그 이슬 속에 삶 만다라 - 정현종「생명 만다라」 ​ 모든 것은 단지 하나의 먼지라고 술주정뱅이가 뇌까렸다 가로수 잎이 깔깔대고 웃는다 하늘과 땅이 깔깔대고 웃는다 온 우주가 깔깔대고 웃는다 - 돈연「백개의 이야기․49」 ​ 나는 부처를 팔고 그대는 몸을 팔고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고… 밤마다 물위로 달이 지나가지만 마음 머무르지 않고 그림자 남기지 않는도다 - 조오현「절간 이야기 25」에서 ​ 잔잔한 바다처럼 쓸어놓은 빗자루 흔적 새벽 기침소리 바다 위에 뜬 작은 나뭇잎 - 최동호「나뭇잎 하나  
8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8 댓글:  조회:984  추천:0  2019-11-01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4 시의 종류와 서정시 ​ 홍문표 ​ 1. 시의 종류 (1) 형식상 ① 정형시: 일정한 형식(틀)에 맞추어 쓴 시. 시조가 대표적인 형식 일본 하이꾸. 중국 한시. 서구 소네트. 한국 시조.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멀리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이순신 ​ ② 자유시 : 정형시가 지니고 있는 운율적, 형식적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 현대의 대부분 시 ③ 산문시 : 시의 내용을 행의 구분 없이 연 단위로 산문처럼 표현한 시. ​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따먹고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구름은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들을 늘어놓고, 혼자서 히죽이 웃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보기도 하고…… 어디로 갈까? 냇물로 내려가서 목욕이나 하고 화장이나 할까보다. 저 뭐라 는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휘파람이나 불까보다…… 그러나 구름은 딸 기를 몇 개 더 따먹고 이런 청명한 날에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 김춘수의 「구름」 ​ (2) 내용상 ① 서정시 :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와 감정을 표현한 시, 과거와 현대의 대표적 인 시 ② 서사시 : 일정한 사건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노래한 시, 과거 영웅시, 소설 의 원류 ​ [1] (아아,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 밤에 남편은 두만강(豆滿江)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강안(國境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경(巡警)이 왔다 갔다 오르며 내리며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마차(密輸出馬車)를 띄워놓고 밤 새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脈)이 풀려서 파아 하고 붙는 어유(漁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서 ​ ③ 극 시 : 극적인 내용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 시, 공연을 고려하지 않을 때 극시(dramatic poetry) 공연을 고려할 때는 시극(poetic drama)이라 함. ​ ※시를 내용상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나누는데 이는 다분히 고전적 구분이다. 원래 문학은 언어의 음악성이 서정시로 사건이 서사시로 행동이 드라마로 발전한 것이라면 서정시는 오늘의 시로 서사시는 오늘의 소설로 극시는 오 늘의 연극으로 분화 발전된 것이기에 시의 주류는 서정시이고 오늘의 서사 시 극시는 시에 소설과 드라마 의 형식을 혼합한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 (3) 목적상 ① 순수시 : 예술성을 추구한 시, 비정치 비이념의 시, 사물시 ​ 깊고 그윽한 저녁으로 빠진다./ 물의 근원 속엔/ 내가 빠져 있고,/ 나는 몇 개의/돌로 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삽질을 한다./ 묻힌 나를 캐어낼 수록/ 어린 날의 혼돈은 뛰쳐나와/ 시름겨운 정열을/ 옛 사랑을, 보여준다 – 마종하 「한여름날」 ​ ② 참여시 : 역사와 현실의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목적의 식의 시 계몽시 정치시 이념시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 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의 「푸른하늘은」 ​ (4) 경향상 ① 주정시(主情詩) : 개인의 정감과 정서를 노래한 시, 서정시가 대표적 ② 주지시(主知詩) : 감정보다 이성과 심상을 중시한 시, 이미지즘시 모더니즘 시 ​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홀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김광균의 「추일서정」 ​ ③ 주의시(主意詩) : 인간의 의지의 측면을 중시한 시, ​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 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의 「절정」 ​ 2. 서정시(抒情詩)의 어의 1) 악기에 맞춘 가사 서정시(lyric poetry)는 원래 리라lyra라는 현악기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서정시는 본래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가사를 뜻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주로 읽기 위해 쓰여진,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짧은 시를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이란 개인의 정서, 상상 또는 사상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2) 마음의 드러냄 한자어의 抒情은 마음을 끄집어 냄, 털어냄의 뜻으로 내면, 감정, 마음, 주관 등을 밖으로 드러내는 시라는 말이다. 3) 서사시(敍事詩)와 서정시 서사시는 敍事, 즉 사건을 펼침.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는 시라는 데서 서정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천상병 「강물」 ​ 3. 서정시의 연원 1) 서양의 서정시 서양에서는 서정시의 장르가 여러 가지로 변화 발전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오우드ode, 소네트sonnet, 엘레지elegy, 패스토럴pastoral, 쌔타이어satire, 에피그램 epigram 등이다. 오우드는 음악과 같이 노래를 불렀던 시형식으로서 그리이스 시대부터 신과 영웅찬양, 소네트는 14행의 소곡, 엘레지는 비가, 만가, 패스토럴은 목가, 쌔타이어는 풍자시, 에페그램은 경구시. 2) 한국의 서정시 우리나라에서 서정시의 전통은 오래된다고 보겠는데 고대의 경우, 고구려 시대 유리왕의 작이라고 하는「황조가」, 곽리자고의 처가 불렀다는「공무도하가」를 비롯하여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등에도 수많은 서정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시의 경우 90%가 모두 서정시다. ③ 서정시와 리듬 1) 서정시와 음악 서정시(lyric poetry)는 악기의 명칭에서 유래될 만큼 음악과 밀접하다. 그러나 시의 본질을 이해하는 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나 시나 근본적으로 감동을 위한 표현양식. 모든 것을 지적으로만 전달하지 않고 감동적으로 전하려는 어법이라는 사실이다. 2) 고대시가의 음악적 리듬 따라서 고대시가는 음악적 리듬(음성율, 음위율, 음수율)을 최대한 활용한 운율, 율격을 사용하였다. 또한 감동의 언어적 기능을 신비롭게 생각하여 신과 영웅의 찬양, 집단의 소망, 기쁨의 표현 양식 등으로 활용하였다. 3) 노래시의 보편적 형식과 민요 노래와 어울린 고대시는 개인적이기 보다 집단적이다. 모두가 공유해야하는 노래시는 낱말과 수사법이 선율과 어울려야 할 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서 동시에 쉽게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노래의 호흡, 리듬, 선율 등 음악적 조건에 맞도록 말의 음성적 요소들을 선택하고 배열한 결과 이른바 율격(meter)이 라는 것이 발생하였다. ​ 우이와라 우이와라 아랫논에 메베 비고 웃논에 참베 훑어 우리 오빠 장가갈 때 메쌀일랑 밥을 하고 찹쌀일랑 떡을 찧어 너두 한 상 채려 주께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이와라 우이와라 - 부여 지방 민요 ​ 민요의 특성은 공동성, 단순성, 보편성, 민중성, 민족성, 개인성이라고 장덕순은 지적한 바가 있다. 인용한 민요를 보면 전통적인 2음보의 반복형식이다. ​ 4) 개인적 서정시 문자언어의 활발한 발달은 노래시가 갖는 음악적 리듬보다 언어가 갖는 감각적 이미지, 의미의 반복적 강조 등을 통하여 내면적인 리듬을 통한 감동의 형식으로 현대에는 서정시가 변모되기에 이르렀다. ​ 내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의 「동천」     서정시의 본질, 세계의 주관화 ​ 홍문표 ​ (1) 공간세계의 주관화 ① 과학과 시의 공간 과학 - 모든 사물의 분리, 차별성의 확인, 개체적 존재확인, 물리적 공간 분리 - 소외 - 고독 - 절망 (에덴의 상실) 시 - 주체와 객체의 통합, 모든 사물의 동일성, 융합과 조화 주관적 공간 평화공존 - 충만함 - 시적 구원 (에덴의 회복) ② 물리적 거리의 초월, 객관적 공간의 주관화 서정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아의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가 철저히 결합하거나 충돌하는 관계다. 이를 주관적인 정서와 객관적인 사물의 교감에 의하여 빚어지는 창조라고도 말한다. 또한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 세계와 자아, 객체와 주체 등의 대응관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시인의 내면적인 의지와 외부적인 세계와의 긴장이나 충돌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조망하는 아름다운 노력인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거리의 초월이며 객관적 공간의 주관화다. ​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 ③ 내 마음의 공간 듀이 - 마음이란 동사(verb)다. 마음은 외부세계와 끝임 없이 교섭하고자 한다. 훗설 - 의식의 지향성, 노에시스(noesis) 슈타이거 - 서정시란 자아에의 회귀 ​ ④ 동일성의 세계 듀이는 자아와 세계의 만남이 동일성으로 이루어질 때 이를 미적 체험이라고 하였다. 유기체와 환경의 각각 특성이 소멸된 완전한 결합, 즉 자아와 세계가 각각 특수한 성격을 상실하고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융합된 주객일체의 경지, ​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 말라 마신다. ​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박두진 「하늘」 ​ 저 안에 천둥 몇게 저 안에 벼락 몇 게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장석주 「대추한알」 ​ (2) 시간의 주관화 ① 물리적 시간과 시적 시간 물리적 시간 - 물리적 시간은 화살처럼 가는 시간, 과거 - 현재 - 미래 불가역의 시간, 일회적 시간, 실존의 시간, 절망의 시간 시적시간 - 원형적 시간, 수직적 시간, 초월의 시간, 구원의 시간 ​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 김남주 「사랑은」 ​ ② 시간의 동일성 1) 비동일성의 세계 플라톤 - 인간은 한 순간도 동일할 수 없다. 만물은 계속 변한다. 자기정체성 불가 2) 자기동일성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물리적인 논리로 볼 때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이를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려는 몽상, 그리하여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연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고정적인 존재라는 생각이나 느낌이 바로 자아 동일성의 한 단서가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과거 - 현재 - 미래 라는 선조적 수평적 시간관을 파괴하고 수직적, 또는 혼합적 시간의 질서를 새롭게 구축한다. ​ 훠이훠이 산을 넘고 엉겅퀴 어우러진 골짝을 지나 억만 년 숨어 사는 넓적바위 아래 옹달샘 하나 낮에는 푸른 하늘 가슴에 품고 밤에는 은하수 한줄기로 목을 축이고는 졸졸졸 찬송가 78장을 연거푸 불러대는 저 태고의 청아한 목청 - 홍문표 「생수를 마시며」에서 ​ ③ 영원한 현재 서정시에 있어서의 시간은 과거를 현재화하고 미래도 현재화한다. 이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한순간도 동일할 수 없는 삶이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 불변의 영원함을 찾으려는 플라톤적 이상이기도 하며 불변하는 자아의 동일성을 지속적인 시간 속에서 발견하려는 통시적 인생관이기도 하다. 또한 인과관계나 객관적인 논리를 통하여 인생의 리얼리티를 표현하려는 서사시나 소설과는 달리 순간의 감정과 정서와 관념을 표현하려는 것이 서정시이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물리적 시간의 순서를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도 현재로 허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에서 서정시는 영원한 현재가 되는 것이다. ​ 에밀레가 운다 에밀레가 운다. 시간조차 스며들 수 없는 무쇠성 속에 갇히어 어린 슬픔이 운다. 목이 타서 목이타서 호소할 곳 없는 기막힘이 운다. - 이원섭 「에밀레」에서 ​ (3) 세계의 주관화 의미와 정서의 동일성 ① 객관적 세계의 비극 객관적 세계는 존재들을 한결 같이 사전적 개념, 인습적 개념의 울타리 속에 감금하고 있다. 따라서 객관적 세계 인식에서는 인간과 물질, 정서와 사상, 사물과 사물 모두가 개별화 고립화 되어 있다. 여기에 객관적 세계의 소외가 있고, 고독이란 비극이 있다. ② 시정신, 그리고 서정시 - 새 하늘과 새 땅 따라서 시의 본질은 바로 객관적 세계인식의 고립화, 소외현상을 극복하고 세계의 통합, 감금된 개념의 철폐, 모든 존재들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 이질적인 의미와 정서의 동일성을 찾아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끝없는 탐험이다. ​ 낙엽은 나비가 되고 나비는 가난한 불꽃 새벽이슬 비탈진 언덕의 개나리 빙하기의 공룡 발자국 여자의 아린 눈물 가시 돋힌 흑장미 에덴의 처음남자 - 자작시 「낙엽은 나비가 되고」에서 ​ 의식은 한 마리 작은 산새 톱니 같은 부리와 羽毛의 날개를 단 무색투명한 어둠 속의 새 무성한 여름 날엔 나무가지 잎새 속에 숨어 살면서 까칫까칫 잎새마다 구멍을 뚫다가 목말라, 목말라, 구멍을 뚫다가 - 홍윤숙 「한 마리 작은 새」에서   한국서정시의 전통 ​ 홍문표 ​ (1) 사랑과 한의 노래 과거 서정시의 중심은 역시 사랑의 노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부재(不在)한 님에 대한 연민의 노래가 주류를 이룬다. 현재는 님이 없는 그래서 님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의 정이 시로 표출된다.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이나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여인의 안타까운 감정이 심화된 상태를 우리는 한(恨)이라고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이별을 경험한 민족이기에 부재한 님에 대한 연민과 한이 많다. ​ 펄펄나는 꾀꼬리는 쌍쌍이 즐기는데 외로운 이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거나 - 유리왕 「황조가」 ​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나난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 잡사와 두어리 마나난 선하면 아니욜셰라. 위증즐가 태평성대 ​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가시는 듯 도셔오셔쇼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 「가시리」 ​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버혀내어 춘풍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 황진이 시조 ​ (2) 현대시의 서정적 전통 ① 서정적 전통의 의미 한국시의 서정적 전통이라면 한국적 정서,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시를 말하는 것인데 정서적으로 보면 앞서 본 것처럼 부재한 님을 노래하는 사랑의 시와 민중성을 지니고 있는 민요적 가락, 한국적 특징을 나타내는 자연미의 표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② 근대시에 나타난 서정적 전통 개화기 이후 근대시에 나타난 전통적 서정은 한과 애상(哀傷)을 기조로 하고 역시 전통적 형식인 민요적 율격을 사용하여 독특한 시의 세계를 개척한 것이 김소월이다. 또한 서구사조를 수용하면서도 전통적인 가락과 정서를 표현했던 김억, 일제라는 현실에서 부재한 님을 노래했던 한용운 등은 소월의 유교적 의식, 김억의 서구적 의식, 한용운의 불교적 의식이라는 편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정서와 가락에 접맥된 서정시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시문학파, 1940년대 청록파 등에서도 전통적 서정을 발견할 수 있다. ​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김소월 「접동새」에서 ​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와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 저고리 호장 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발고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면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밤에 옛날에 살아 눈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 조지훈「고풍의상」 ​ ③ 현대시에 나타난 전통적 서정 1950년대 이후 전통적 서정의 모습은 구자운, 박재삼, 박성룡 등에서 볼 수 있고 1970년대를 넘으면서도 전통적 서정의 맥락은 여전하다. 송수권, 민용태 등의 시는 향토적인 자연을 소재로 하여 그 안에 살고 있는 한국의 서민 의식을 재치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질정(質定)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 - 박재삼 「밤 바다에서」에서 ​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爭爭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는 苦惱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山茶色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 송수권 「山門에 기대어」에서 ​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한밤중을 느꼈습니다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 조정권 「벼랑끝」에서 ​ 난 물이 좋아 맑디맑은 물이면 더욱 좋지만 진흙탕 물이라도 좋아 더러운 것도 좋아 물로 사는 나의 식욕은 뭘 먹어도 곰삭아 날마다 순수를 배설하고 시퍼런 결백으로 푸르른 깃대 하나 세우고 하늘만을 바라보며 널 기다리는 그리움이 되거든 난 뜨거운 것도 좋아 활활 타는 햇살이면 더욱 좋아 널 먹고 서야 봄부터 기다려온 여린 꽃봉오리 붉디붉은 가슴 활짝 열고 네가 오는 소부리 길목에서 청사초롱 불꽃으로 태어나거든 -홍문표“연꽃의 노래”  
7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7 댓글:  조회:953  추천:0  2019-10-24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29 리듬의 본질과 한국시가의 율격 ​ 홍문표 ​ (1) 리듬의 본질 ① 리듬은 소리의 반복성만이 아니다 리듬(rythm)의 기본 의미는 율동(律動)이다. 이 말은 규칙적인 동작이란 뜻이다. 따라서 소리의 일정한 규칙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로 리듬을 음악의 요소로만 배워왔고 고대시가의 경우 운문(verse, 韻文), 율격(metre, 律格), 음수율, 음보율 등으로 작시법을 말하고 있기에 일반적으로 리듬이라면 음악의 요소나 소리의 일정한 규칙으로 알고 있고, 시에서 리듬이라면 당연히 음성적인 규칙인 것으로만 알고 있다. 이러한 선입관을 버려야 시의 진실을 체득할 수 있다. ​ ② 리듬은 지상적인 인식의 단위다. 규칙적인 동작의 인식, 모든 것을 나누어 보고 같은 것끼리 모아보고 마디를 나누어 보는 것은 인간의 감성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사물의 변별성과 의미의 차이와 가치를 구별한다. 천상엔 영원한 시간, 영원한 공간, 영원한 감성만 있기에 길고 짧음, 시작과 끝의 변별성이 없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존재는 처음과 끝이 있고, 전체와 부분이 있고, 모든 전체는 부분과 마디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다는 인식체계를 갖고 있다. 혈관의 맥박 즉 혈류의 리듬을 통해 병세를 진단하는 것도 그런 이치다. ​ ③ 모든 생명체는 리듬이 있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호흡과 맥박의 리듬이 있고, 탄생, 성장, 죽음이란 성장의 리듬이 있다. 인간의 경우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한다. 시간의 경우도 과거, 현재, 미래, 역사의 경우는 고대, 근대, 현대라는 마디의 리듬이 있다. 따라서 리듬이 있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고 변화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에도 리듬이 있다. 해달 별들은 각자의 리듬을 가지고 우주 질서를 유지한다. 따라서 문학, 특히 시가 생명력을 갖는 것도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 ④ 리듬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문학의 생명은 감동이다 그런데 감동이란 변화와 반복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자극의 길이, 강도, 성질에 따라 반응도 다르다. 따라서 리듬은 슬픔, 기쁨, 놀라움, 깨달음 등 인간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그 조절의 대표적 양식이 음악이다. 음악은 소리의 리듬으로 감정을 조절한다. 그러나 감정의 조절은 소리 뿐만 아니라 색깔, 냄새 등 모든 감각적 요소로도 가능하며 동작과 의미 있는 언어의 반복으로도 가능하다. ​ ⑤ 리듬의 신통력 리듬은 개인의 감정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집단의 감정을 조절한다. 노동, 전쟁, 제사, 군중대회 등에도 리듬의 음악과 반복되는 가사가 사용된다. 기도문, 주문, 최면사의 주문도 그 반복성으로 신비감을 체험한다. ​ 모시자 모시자 지신님네를 모시자 지신님네를 모시어라 남선부중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이요 면은 기성면이요 기성아 대동아 시우야 삼년만큼 우별신으로 드리시구요 좌별신을 드리시는데 차례차례로 모시어라 - 울진군 지성면 기성리 지신굿 무당의 주문 ​ 강신제 - 접신 - 엑스타시(extasy) 굿거리장단 + 무당의 주문 + 춤 = 격렬한 반복적 리듬이 작용. ​ (2) 리듬의 체험 ① 우주자연의 리듬 천체의 운행 1년 365일의 반복. 해와 달의 주기적 운행. 밤과 낮의 반복. 4계의 반복. 밀물과 썰물. 소생. 개화. 결실. 낙엽의 반복. ② 생리적 리듬 맥박. 호흡. 운동. 동작. 일과 휴식. 잠과 깸. ③ 심리적 리듬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족. 쾌감과 불쾌감. 희망과 절망. 아픔. 괴로움. 두려움. 쓰라림. 달콤함. 외로움 등 감정의 변화. ④ 삶의 리듬 성공과 실패.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 선과 악. 결합과 분열. 가치와 무가치. 진실과 거짓. 전진과 후퇴. ⑤ 리듬의 정의 따라서 리듬이란 음성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 속에 나타나는 등시성(等時性), 등장성(等長性), 반복성(反復性), 규칙성(規則性)등 율동(律動)으로 야기되는 감동(感動)의 현상을 말한다. ​ (3) 고대시가와 리듬 ① 음악적 리듬만을 중요시한 고대시가 고대시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악적 리듬을 시의 감동적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고대 문학의 2대 장르 운문(韻文, verse)과 산문(散文, prose) 운문 : 운이 있는 글. 여기서 운(韻)이란 소리의 규칙이다. 그 규칙을 운율(韻律) 또는 율격(律格)이라고 한다. ② 한시의 운율 운율은 소리(sound)의 규칙이다. 좀 더 감동적인 시가를 위해 과거 한시나 영시에는 소리의 규칙을 정했는데 이러한 규칙을 압운법(押韻法) 이라 한다. 한시의 압운법은 짝수구 말미를 동일한 운으로 하는 것이고, 영시의 압운법은 자음과 모음, 또는 서두(두운) 중간(요운) 끝(각운)에 동일한 음성을 배치한다. ​ 客睡何曾着 객수하증착 나그네 잠이 어찌 일찍 오리 秋天不肯明 추천불긍명 밝은 가을 하늘 즐기지 않는데 入廉殘月影 입렴잔월영 새벽 달 그림자 발 사이로 비취고 高枕遠江聲 고침원강성 베개를 높이니 멀리 강물 소리 計拙無衣食 계졸무의식 재주가 없으니 옷도 밥도 없어 途窮仗友生 도궁장우생 살아감이 어려워 친구에게 의지했네 老妻書數紙 노처서수지 늙은 아내 몇 장의 편지에는 應悉未歸情 응실미귀정 못 가는 내 뜻을 다 안다고.. - 杜甫의 「客夜」 ​ 위 시는 다섯 자를 규칙으로 한 오언시다. 그리고 두 구절을 한 행으로 한 오언율시다. 그런데 시인은 짝수 구 마지막 자를 명․성․생․정 등 ㅇ음으로 압운하고 있다. 이를 압운법이라 한다. 이러한 시를 운문이라고 한 것이다. ​ (4) 한국시가와 율격 ① 한국시가의 특징 한국 시가는 한시나 영시와 같이 엄격한 운율, 즉 압운법은 형성하지 못했다. 간혹 압운의 형태를 볼 수 있지만 정해진 규칙이라기보다 우연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 저 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 앞 江물 뒷 江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김소월,「가는 길」전문 ​ 압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위로서 ‘그’(그립다,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하’(할까, 하니)를 지적할 수 있다. 이 경우는 모두 ‘두운’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규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음성의 청각적 효과가 리듬감을 조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② 한국 전통 시가의 율격 다만 한국의 전통적 시가에는 압운법 대신 율격이 있었다. 율격이란 시가의 모든 음성적 규칙이라는 면에서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음수율, 음성율, 음위율을 말한다. 여기서 음수율은 글자의 수, 음절의 수를 말하고, 음성율은 음성의 고저, 장단, 강약, 음위율은 운의 위치 즉 압운을 말한다. 이중에서 한국의 시가는 음수율(音數律)과 음보율(音步律)만 있다. ③ 음수율 1) 자수의 규칙 음수율은 음절의 수, 곧 행의 마디를 구성하는데 사용되는 일정한 자수의 규칙을 말하고 있다. 영시에서는 강약 중심의 운율이 사용되지만, 한국 시에서는 중국의 오언시, 칠언시, 그리고 일본의 하이꾸(배구)와 같이 음절수를 율격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음수율은 음절의 수, 곧 자 구 행을 구성함에 일정한 수를 배열하는 법칙, 즉 음절시(syllabic verse)의 율격이다. ​ ㉮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청산별곡」에서 ​ ㉯ 元渟文 仁老詩 公老四六 李正信 陣翰林 雙韻走筆 -「翰林別曲」 ​ ㉰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궂지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 하리라. - 李滉의「陶山十二曲」에서 ​ ㉱ 무심한 세월은 물흐 고야 염냥이  아라 가 고텨오니 듯거니 보거니 눗길 일도 하도 할샤 - 鄭徹의「사미인곡」에서 ​ ㉲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 박목월의「윤사월」에서 ​ ㉮ 3 3 2 조 ㉯ 3 3 4 조 ㉰ 3 4 3 4 조 ㉱ 4 4 조 ㉲ 7 5 조 ​ 2) 음수율의 문제점 한국의 전통시가의 음수를 보면 2자 3자 4자가 가장 많다. 그러나 이것은 규칙이라기 보다. 한국어의 어휘가 2음절 또는 3음절이어서 조사가 붙으면 3자 또는 4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시조의 경우 3․4․3․4(초장) 3․4․3․4(중장) 3․5․4․3(종장) 이라하지만 이 규칙에 맞는 시조는 7%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 시가의 음수율은 객관성이 약하다. 이에 음보율이 제기된다. ​ ④ 음보율 1) 음보의 규칙 음보(音步, foot) 는 낭독시 읽혀지는 호흡단위로 이는 악보의 마디와 같다. 4박자 마디일 경우 음절(가사)이 몇이든 4박자의 길이(시간) 안에 소리를 내듯이 한국 시가는 한 행이 3음보, 4음보의 등장성으로 되어 있다. ​ ㉮ 대동강 / 너븐디 / 몰라셔 비내여 / 노다 / 샤공아 -「서경별곡」에서 ​ ㉯ 내버디/ 몇이나니/수석과/송죽이라 동산의/오르니/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다 밧긔/ 더야/ 무엇리 - 윤선도의「오우가」에서 ​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민요「아리랑」에서 ​ ㉮ 3음보 ㉯ 4음보 ㉰ 3음보 ​ 2) 동량음보와 층량음보 인용된 ㉮는 한음보의 음절이 3이다. 그러나 ㉯와 ㉰의 음보는 음절수가 각각 다르다. 앞의 것을 동량음보, 뒤의 것을 층량음보라 한다. 3) 음보의 전통과 현대시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김소월「진달래 꽃」에서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 있으리다// - 김소월「못잊어」에서 ​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 한용운「복종」에서 ​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해야/ 솟아라// 산넘어/ 산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넘어/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뛴 얼굴/ 고운해야/ 솟아라// - 박두진「해」에서 ​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 박목월「윤사월」에서 ​ 그립고/ 아쉬움에/ 가음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국화옆에서」에서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 김영랑「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김광균「설야」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0 현대시의 리듬 ​ 홍문표 ​ (1) 보다 감동적인 형식으로서 시의 리듬 ① rythem and metaphor 시의 근본적인 특성이 무엇일까. 논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웰렉과 워렌은 시의 근본적인 특성을 rythem과 metaphor(은유)라고 했다. 이는 보다 감동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산문도 리듬이 있고 은유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시보다는 약하다. ② 과거엔 리듬을 외형적 음성의 규칙에 있다고 생각했다. 정형시 - 5언시, 7언시, 4.4조, 7.5조 율격 - 음수율, 음성율, 음위율, 음보율 운율 - 두운, 요운, 각운, 모음운, 자음운. ③ 현대시는 리듬을 외형적(객관적, 기계적) 음성규칙에 한하지 않고 개성적이고 다양한 리듬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내재율(內在律)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대시에도 리듬이 절대적 요건이고 앞으로도 불변의 요소다. ​ (2) 현대시의 개성적 리듬과 행과 연 갈이 ① 리듬으로 행과 연 가르기 시의 행과 연은 산문이 사건의 연속을 드러내기 위해 어휘를 연속적으로 기술하는 것과 달리 행과 연을 갈라 사물의 어떠함을 느낌의 마디(행), 의미의 마디, 이미지의 마디를 만들고 있는데 그 원칙은 오직 개인의 창조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구분한다. ​ 이 개미들을 위하여 6월은 연분홍 잠옷속에 있는 소녀의 ​ 이마위에서 푸른 6월은 총살되고 - 전봉건의 「개미를 소재로 하나의 시가 쓰여지는 이유」에서 ​ 이 시는 과거의 음성적 규칙, 음수율, 음보율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행갈이와 연 갈이를 통해 개성적이고 신선한 리듬을 창조한다. 감동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② 객관적 등장성과 현대시의 주관적 등가성(等價性) 과거의 행갈이는 음수나 음보의 길이의 동일한 규칙, 즉 등장성에 근거했다. 4.4조, 7.5조, 3음보, 4음보가 그것이다. 그러나 현대시는 철저히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등가성의 기준에 따른다. 전봉건의 앞의 시에서 각 행은 음수도 음보도 다르지만 각행의 중요성, 가치, 중량은 동일하다는 시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쓰여진 것이다. ​ (3) 현대시의 리듬 만들기 ① 문법적 어휘의 반복 1) 문장의 반복 ​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 ​ 난초도 거문고도 백자항아리도 버리고 장서도 가족들도 꽃밭도 버리고 ​ 바다만 앞에 있는 바다만 뒤에 있는 바다만 옆에 있는 바다 망망한 가운데 심해선 저쪽 일렁이는 파도 위를 알몸 누워 간다. ​ 가슴에는 다만 하늘 가슴에는 다만 태양 ​ 갖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알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보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 처음 혼자 홀로인 혼자만의 나 순간이 그 영원 영원이 그 순간으로 출렁거리는 ​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 동해 파도 한가운데 바다로 간다. - 박두진「바다로 간다」 ​ 인용한 시를 보면 우선 “나 혼자 훌훌 떠나 바다로 간다.”라는 문장이 처음과 끝에 반복된다. ​ 2) 구절의 반복 동일한 어구나 어절을 반복하는 경우다. 앞에 인용한 「바다로 간다」에서 보면 이러한 방식이 두드러진다. ​ (1) 바다만 앞에 있는 바다만 뒤에 있는 바다만 옆에 있는 ​ (2) 가슴에는 다만 하늘 가슴에는 다만 태양 ​ (3) 갖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알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보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 3) 어휘의 반복 셋째로 동일한 낱말의 반복을 들 수 있다. 인용한 시에서 ‘바다’라는 명사가 7회나 반복된다. 뿐만아니라 ‘간다’, ‘있는’, ‘버리고’, ‘싶던’, ‘아무것도’ 등의 낱말들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동일한 낱말의 반복은 그것이 명사일 수도 있고 동사나 부사일 수도 있다. ‘바다만 앞에 있는’ ‘가슴에는 다만 하늘’ ‘갖고 싶던 아무것도 잊어버리고’ 의 경우 마지막 단어를 보면 한 행의 끝인데도 관형어, 명사, 부사어 등으로 그 다음을 생략해 버린 경우도 있다. ​ 4) 조사의 반복 조사의 경우 ‘도’ ‘는’ ‘만’ ‘에’‘로’ 등이 많고 어미의 경우 ‘ㄴ다’ ‘고’ 등이 있어 음악적 흥취를 고조시키고 있다. 허사는 이처럼 실사들의 관계나 문법적인 기능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반복적 배열을 통하여 시의 리듬을 강화하고 의미의 요소들이 해결할 수 없는 보다 섬세한 감정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② 의미의 반복 리듬이란 소리의 일정한 반복만이 아니다. 행동의 일정한 반복, 사고의 일정한 반복, 빛의 일정한 반복도 리듬이다. 리듬이란 바로 율동(律動)이다. 모든 움직임의 규칙적인 반복이란 뜻이다. 따라서 현대시의 리듬, 현대시의 내재율을 이해하는 길은 반드시 시에 나타난 음성적 규칙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반복, 의미의 반복, 정서의 반복도 모두 시의 리듬이 된다. ​ 1) 님은 갔습니다(a1)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a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지고 갔습니다.(a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b1)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습니다.(b2)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b3) - 한용운「님의 침묵」에서 ​ 2) 구겨진 누더기들의 동그란 어깨 위에 해는 지고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a1) 누더기들의 하얀 가슴팍엔 진한 땀내음이 번지고 있었다.(a2) 누더기들의 입언저리엔 오장육부에서 튀쳐 나오는 구린내가 번지고 있었다.(a3) - 정상구「북을 치는 綠豆의 씨들」에서 ​ 1)의 (a1)(a2)(a3)는 님과 이별 ‘갔습니다’의 의미상 반복. (b1)(b2)(b3)는 님의 부재에 대한 심정의 반복 2)의 (a1)~(a3)는 누더기의 상태에 대한 의미의 반복. ​ ③ 이미지의 반복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a1) 비밀한 울음.(a2) ​ 한 번 만의 어느날의 아픈 피 흘림(a3)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의 위에 떨궈진 ​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a4) ​ 꺼질 듯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a5) ​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湖心아.(a6) - 박두진「꽃」에서 ​ 이미지(a1) - 해와 달이 속삭임 이미지(a2) - 비믹한 울음 이미지(a3) - 아픈 피흘림 이미지(a4) - 엇갈림의 핏방울 이미지(a5) - 아름다운 정적 이미지(a6) - 사랑의 호심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31 구조시학의 논리 ​ 홍문표 ​ (1) 시와 구조 ① 사물에 대한 구조적 인식 1) 구조의 의미 - 구조란 사물을 지탱하고 있는 골격. 존재원리를 말한다. 모든 사물은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계라든지 우주만물은 모두 그 속에 원리가 있다는 생각은 이성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부단한 이상이다. ​ 2) 구조의 역사적 논리 플라톤 - 현상은 본질(Idea)의 그림자다. 아리스토텔레스 - 문학작품은 하나의 물고기 마르크스 - 경제적 하부구조와 문화적 상부구조 프로이드 - 이드, 자아, 초자아. 과학 - 물질 = 분자 - 원자 동양 - 음양오행 인식론 - 정신과 물질, 이성과 감성 소쉬르 - 언어 = 랑그 + 빠롤 ​ 3) 구조주의 입장 ㉮ 전체성의 논리, 전체는 부분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다.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체. 문학 - 형식적 부분 - 소리, 낱말, 문장. 내용적 부분 - 주제, 소재, 태도. 소리의 구조, 낱말의 구조, 문장의 구조, 주제의 구조. ㉯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 언어-문법, 국가-헌법, 물질-원리 축구-규칙, 바둑-규칙, 식사-규칙, 정치,경제, 문화, 삶, 역사를 지배하는 원리 ㉰ 구조의 법칙은 자율적이고 독립적, 축구와 농구는 규칙이 다름. 물질과 정신, 시와 소설도 모두 규칙이 다름, 모든 차이와 변별성은 규칙의 차이 구조의 차이. ② 시의 구조에 대한 역사성 1) 시의 구조에 대한 전통적 논의 - 그 원론적 관점 내용과 형식(2원론) 현실의 반영(인과론) 이성과 감성(심리론) 현실과 상상(심리론) 욕망과 전이(심리론) 2) 시의 구조에 대한 현대적 논의 - 존재론적 관점 시는 언어의 구조(형식주의, 뉴크리티시즘, 구조주의, 기호학) 형식주의 - 낯설음의 구조(쉬클로브스키) - 전경과 후경의 구조(무카로부스키) 뉴크리티시즘 - 객관적 상관물(엘리엇) - 텐션(테이트) - 역설(브룩스) - 아이러니(시플레이) 구조주의 - 계열체와 통합체(소쉬르) - 은유와 환유(야콥슨) 기호학 - 외연과 내포(퍼어스) ​ (2) 시와 산문의 언어구조 ① 문장쓰기의 원리 1) 언어의 선택과 결합 문장 쓰기란 단어들의 선택과 결합이다. 그런데 단어를 선택할 경우 유사한 단어, 즉 같은 계열의 축에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그 다음의 단어는 앞의 단어와 어울리는 단어를 선택하여 계속 결합해 가는 것이다. ​ 선택의 축  
6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6 댓글:  조회:904  추천:0  2019-10-24
이미지란 무엇인가 ​ 홍문표 ​ (1) 이미지의 이해 1) 시에서 이미지의 참뜻 원래 이미지(image)란 사물의 그림자 즉 사물의 모상을 말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심상(心象) 즉 mental picture라고 한다. 여기서 마음에 새겨지는 그림이라 하니까 시각적인 언어, 그림 언어만을 생각 하는데 사실은 감각 기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을 통해서 반응 되는 모든 현상을 말한다. 시는 지적인 이해(머리)의 문장이 아니라 정서적인 감동(가슴)의 문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에 이때 사용되는 언어들은 감각적인 언어가 된다. 이를 시에서는 이미지어 또는 이미지라고 한다. 2) 이미지와 현대시 과거의 시 - 주로 청각에 자극을 주는 청각적 이미지의 시들이 많았다. ​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래랑 먹고 靑山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얄랑셩얄라리얄라 -고려 청산별곡에서 ​ 현대의 시 - 1910년대부터 시의 시각성을 강조하는 회화시 운동 즉 이미지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시는 시각적인 이미지 시여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 데 물론 시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시는 모든 오관의 이미지어를 사용한다. ​ 가을밤의 싸늘한 촉감 나는 밖을 걸으면서 얼굴이 붉은 농부같이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를 넘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멈춰 서서 말을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레에는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 흄 「가을」 ​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에서 ​ 3) 왜 감각적이어야 하나 예술 - 정서적, 환기적, 감동적 세계 음악 - 음성을 통한 청각적 환기 미술 - 회화를 통한 시각적 환기 시 - 언어의 감각성을 통한 5감의 환기 ​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 ​ 구름 한점 없는 먼 하늘에 둥근 사발물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 하얗게 - 조병화 「겨울날」 ​ (2) 이미지의 기능 1) 감동의 수단 이미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각적 감각적 체험이나 대상을 재구성하여 시의 세계를 실감있게 형상화한다. 또한 정서를 환기하여 보다 감동하게 한다. 이는 시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분위기나 배경, 상황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죽어있는 일상의 언어를 신선한 충격과 감동의 언어로 만든다. 2) 의미내용의 구체화 약대와 바늘구멍 -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 3)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표현 ​ 물에서 갓 나온 여인이 옷 입기 전 한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 ​ 달빛에 젖은 탑이여! ​ 온몸에 흐르는 윤기는 상긋한 풀 내음새라 ​ 검푸른 숲 그림자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채는 부드러운 어깨 위에 출렁인다. ​ 희디흰 얼굴이 그리워서 조용히 옆으로 다가서면 수줍음에 놀라 그는 흠칫 돌아서서 먼뎃산을 본다. - 조지훈 「여운」에서 (3) 이미지의 종류 이미지의 종류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으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을 종합해 보면 첫째는 정신이나 마음에 나타나는 감각적 경험만을 강조하는 감각적 이미지(mental image), 둘째는 어떤 관념이나 사물을 비유하여 보여주는 비유적 이미지(figurative image), 셋째는 어떤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관념을 암시하는 상징적 이미지(symbolic image)로 나누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감각적 이미지 감각적 이미지란 우리의 신체 구조상 외부의 사물에 대한 직감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감각기관, 즉 시각, 촉각, 후각, 미각, 근육감각, 기관감각 등을 통하여 지각될 수 있는 직감적인 사물이거나 상상적인 사물을 말한다. 1, 시각적 이미지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 a, 직접적 시각 이미지 ​ 그는 잔에 커피를 담았다 그는 커피 잔에 우유를 넣었다 그는 우유 탄 커피에 설탕을 넣었다 그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다 그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그는 잔을 내려 놓았다 내겐 아무 말 없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프레베르의 「아침식사」 ​ b, 비유적, 상상적 시각 이미지 해는 출렁이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 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버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神殿이다 정현종의 「초록기쁨」 2, 청각적 이미지 과거의 정형시 - 음성적 리듬 현대시 - 사물의 소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사물의 가청화(可聽化) a,의성어가 대표적임 ​ 우면산 가랑이에서 떡갈나무 등걸에서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숫매미 자지러지면 집 떠난 처녀들 귀 가렵고 아파트에 혼자 누운 그 사람들 속 쓰리다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삐요시 삐요시 삘릴리이 박라연의 「서울매미」 ​ b, 의성어가 아닌 사물의 가청화 이미지 ​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주요한의 「빗소리」에서 ​ 3, 근육감각적 이미지 감각적이미지는 5감(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한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이미지다. 그러나 시각과 촉각을 겸한 신체근육 감각이미지도 실감나는 감각적 이미지다. 몇 개의 낱말들이 놀고 있다. 희부연한 안개를 움켜쥐고 물구나무 선 놈도 있고 황달들린 하늘을 베고 낮잠을 즐기는 놈도 있다. ​ 그래도 나이는 먹어 더러는 주름진 얼굴이고 청자빛 이끼가 돋아난 가슴도 있다. - 자작시 「비구상전」에서 ​ 마지막으로 잠긴 창의 단추를 벗기고 단추구멍의 실밥을 벗겨내고 자갈 위로 눈 내리는 소리를 듣자. 여섯 개의 수정 깃을 달로 어둠을 자기 몸만큼씩 흔들어 녹이고 어둠과 함께 팔다리도 녹이고 끝내는 몸뚱어리까지 녹여 없애고 작고 하얀 자들이 날아 다닌다. 없는 팔로 바람을 껴안고 서로 만나고 피하며 부딪치고 숨다가 바람이 바람이 되기 위해 몸을 흔들 때 하나씩 들켜 하얀 결정체가 되어 내린다. - 황동규 「겨울의 빛」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23 이미지 드러내기 ​ 홍문표 ​ (1) 사물의 감각화 ① 사물의 구체화와 변형화 이미지는 기존의 사물들을 보다 구체화하거나 기존의 사물을 변형함으로 신선한 감각적 미학을 조성한다. ② 사물의 변형화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흘림 - 박두진 「꽃」에서 ​ ③ 사물의 구체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eh -김소월의 금잔디 ​ (2) 정서의 감각화 이미지를 통해 사고하는 것을 심상사고(image thinking)라 하고 이를 달리는 상상(想像)이라 한다. 여기 상(想) 자에 묘미가 있다. 마음(心) 위에 어떤 모양(相)을 얹어 놓은 글자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보이는 어떤 모양으로 형상화(形像化)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이미지는 마음, 즉 내면의 무형한 느낌의 세계를 유형화하는 수단이다.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어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최후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귀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 김동명 「내 마음은」 ​ 가슴 속에 키워온 그리움 하나 어느 무더운 여름밤 견디다 못해 모래밭에 피를 쏟듯 배앗았더니 천지가 가득 채우는 고래가 되어 바다를 꿀꺽 삼켰습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캄캄한 몸뚱일 뒤척이면서 어둠 속에 기슭까지 기어오서는 가늘고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밤새도록 잠 안자고 울었습니다. - 신규호 「밤바다」 ​ (3) 의미의 감각화 이미지는 사물이나 정서만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의미, 즉 사상이나 관념까지도 감각화한다. 이는 인간의 삶 전체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시적 미학의 본질이기도 하다.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기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풀」에서 ​ 1. 호루라기는, 가끔 나의 걸음을 멈춘다 ​ 호루라기는, 가끔 권력이 되어 나의 걸음을 멈추는 어쩔 수 없는 폭군이 된다. ​ 2. 호루라기가 들린다. 찔끔 발걸음이 굳어져, 나는 뒤를 돌아 보았지만 이번에는 그 권력이 없었다. 다만 예닐곱살의 동심이 뛰놀고 있을 뿐이었다. ​ 속는 일이 이렇게 통쾌하기는 처음 되는 일이다. - 박남수 「호루라기의 장난」 ​ (4) 이미지의 사물화 절대적 이미지- 이상에서 보면 이미지는 어떤 사물의 감각성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정서적 분위기를 들어내거나 사물과 나와의 주관적 관계가지도 명료화하려는 리얼리티의 구체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철학적 사고나 현실 상황에 대한 정치적 관심 등 내면적인 의미나 가치의 문제들도 감각적 이미지로 구체화하는 방식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순수하게 사물의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일이나 관념의 이미지화를 모두 거부하고 무의미한 기호로 남거나 전체적인 논리성이나 관련성을 거부하고 서로가 병치적인 상태에서 어떤 심리적 분위기만을 드러내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김춘수는 이러한 시를 무의미시라 하였고 일부에서는 탈 언어화 언어의 기호화 절대적 이미지라는 말들로 사용하기도 한다. ​ (1) 1+3 3+1 3+1 1+3 1+3 3+1 1+3 1+3 3+1 3+1 3+1 1+3 ​ 선상의일점A 선상의일점B 선상의일점C ​ A+B+C=A A+B+C=B A+B+C=C - 이상 「3차각 설계도 선에 관한 각서 2」 ​ (2) 바보야, 우찌 살꼬 바보야. 하늘수박은 올리브 빛이다 바보야, 바람이 자는가 자는가 하더니 눈이 내린다 바보야, ​ 우찌 살꼬 바보야, 하늘수박은 한여름이다 바보야, 올리브 열매는 내년 가을이나 바보야, 우찌 살꼬 바보야, 이 바보야, - 김춘수 「하늘수박」 ​ (5) 동적 이미지 드러내기 ① 명사형 이미지 지금까지 이미지라면 심상(心象)이니, 영상(映像)이니 하는 말들 때문에 마음에 비춰진 그림이나 그림자, 즉 사물의 어떤 상태를 정적으로 또는 명사형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시적 이미지의 종류를 말할 때도 대개는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에 주력하게 되며 이들 이미지의 대부분은 명사형이다. ​ 꽃 - 속삭임, 울음, 피흘림 (박두진의「꽃」) 마음 - 호수 (김동명의「내 마음」) 풀 - 민중 (김수영의「풀」) ② 동사형 이미지 그러나 시에 있어서 이미지의 근본 기능은 정서적 환기, 감동하는 마음의 움직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명사형보다 동사형에 그 생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달빛이 웃는다. 달빛이 춤춘다. 달빛이 발광을 한다. 달빛이 떨고 있다. 달빛이 구역질을 한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에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인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은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새처럼 날러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1」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24 비유의 개념과 직유 ​ 홍문표 ​ (1) 비유의 올바른 이해 ① 수사학적 인식의 오해 원래 한자어인 비유(比― 견줄비 喩― 깨달을 유)의 본 뜻은 다른 것과 비교하여 참 뜻을 깨닫는 어법이다. 그런데 수사학(修辭學)이라면 말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기술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문학은 꾸미는 것, 기교주의, 형식주의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원래 그리스의 수사학(rhetoric)은 꾸미고 변론하는 화법이었다. 전형적인 정치꾼들이나 철인들의 어법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 문채(文彩)란 말을 쓰기도 한다. 이것도 장식적 개념이다. 모두 묘사적 개념이다. 그러나 비유의 참뜻은 묘사가 아니라 표현(表現)이고 현현(顯現)이다. 감추어져 있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어법이다. ② 감추인 것의 드러냄 비유란 한자어에서 보듯이 비교하여 새로운 것을 깨닫는 어법이다. 불멸의 고전 성경과 예수의 어법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마 13:34―35) ​ 감추인 것들을 드러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줌. 내면의 세계를 드러냄 telling→ showing ​ 그대 물음표 투성이의 가슴을 가르고 들어가 생 빛 한 줄기 찾으려 했네 얼굴도 눈도 없이 허공만 숨어사는 그대 몸 전체에서 거듭되는 어제를 지켜보며 동행할 빛을 잃었네 - 김초혜 「사랑굿」에서 ​ ③ 변화, 창조, 확장 비유의 올바른 개념은 트롭(trope)에 있다. 그 어원은 전환(turn)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유를 전이(transform)라고 한 것과 같다. 이는 사물, 의미 등 모든 기존 개념을 바꾸는 것,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 그러기에 기존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창조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 언덕은 꿈을 꾸는 짐승 언덕을 깨우지 않으려고 유월이 능금꽃 속에 숨어 있었다 꽃잎 지는 소리가 옛날의 바람소리 같다. - 김요섭 「옛날」 ​ ④ 육화와 생명화 진리의 가시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 (1) 꽃이 피어 있다 (2) 꽃이 그녀의 미소처럼 웃고 있다. (3) 꽃은 그녀의 미소다. 그녀의 웃음이다. ​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 지난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 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 이가림 「석류」 ​ (2) 비유의 방법 ① 유사성의 비유 비유적 이미지의 대표적인 구조는 유사성에 의한 비교 형식이다. 유사성이란 두 사물간의 공통점, 비슷한 점, 등가성, 인접성, 동일성이란 말로도 설명되겠는데 이는 서로 두 사물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인정하여 두 사물을 동일시하거나 등가성을 내세워 표현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1) 포옹은 죽음의 신비와 같다 아니 검푸른 심연의 그 암담한 빛깔과 같다 - 조지훈 「포옹」에서 ​ (2)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에서 ​ ​ (3) 환한 아침 햇빛에 그것을 읽었을 때 글씨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 로웰 「형태」에서 ​ (4)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 김광섭 「비 개인 여름 아침」 ​ ② 비유사성의 비유 비유적 이미지의 대표적인 형식은 유사성이나 등가성에 의한 동일성의 구조가 되겠지만 때로는 비유사성, 대조성에 의해서 오히려 본의를 분명히 하거나 정서적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경우가 있다. ​ 사랑하는 하나님, 당신은 늙은 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 金春洙, 「나의 하나님」에서 ​ 모래 밭에서 受話器 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만 그림자 ​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뷰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 나비는 機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 趙鄕, 「바다의 層階」 ​ (3) 직유의 방법 ① 언어의 발달 단계 언어학자 어번(W.M. Urban)은 언어의 발달 단계를 사실 그대로 흉내 내거나 그대로 기록하는 모사적 단계, 기지(旣知)의 사물로 미지(未知)의 사물을 미루어서 인식하는 유추적 단계, 관념의 세계를 가시적인 사물로 대신 표시하는 상징적 단계가 있다고 했다. ② 직유의 방법 직유나 은유나 모두 비유이지만 ‘-같이’, ‘-처럼’ 등의 서술형식을 가지고 비유하는 것이다. ​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네 이는 목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저마다 쌍둥이를 낳은 양 같구나.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한 쪽 같구나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둥이 노루 새끼 같구나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흠 잡을 데 하나 없구나. - 구약성서 「아가 4장」에서 ​  
5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5 댓글:  조회:1020  추천:0  2019-10-24
시어론 1, 정서적 시어 ​ 홍문표 ​ (1) 시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 ① 창세기의 말씀 인간은 언어적 존재- 인간은 언어 속에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사용하다가 언어를 남기고 간다. 창조주와 언어-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인간들만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언어를 사용하신다. 성경 요한복음 첫 줄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다. 창세기 첫 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언어의 창조능력을 말한 것이고, 신의 존재성도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언어는 존재의 집-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하였다. 모든 존재는 언어라는 집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언어라면 의사전달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탄생, 소멸, 창조의 힘을 가진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어를 통하여 그 절대성을 행사하신다. 이처럼 언어는 문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신이나 인간, 과학과 예술, 철학과 종교, 문명과 문화 등 모두가 사용하는 소통수단이다. ② 문학과 비문학 그런데 모두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문학과, 철학과, 과학이 구별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라는 재료는 동일하나 그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문학과 비문학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선택과 배합의 방법이 다를다. 따라서 문학을 이해하고 문학을 창작하는 일은 바로 언어를 예술적으로 선택하고 배합하는 기술, 그 비밀을 터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③ 시와 산문의 차이 이는 같은 문학이라도 시와 소설이 구별되는 이유도 그렇다. 시와 산문도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시의 언어, 즉 시어란 무엇인가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2) 시어의 의미 ① 시적인 언어와 시의 언어 여기서 시어라는 말을 하지만 시어에 대한 개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언어 가운데 시적인 성격을 지닌 언어가 따로 있어 이를 골라서 사용해야 한다는 시적인 언어(poetic diction)라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시에 사용되는 일상의 언어를 모두 시어라고 하는 입장인데 이를 통칭 시의 언어(language of poetry)라 한다. 말하자면 시에만 사용될 수 있는 시적인 언어와 시에 사용된 모든 언어를 통칭하는 시의 언어로 구분된다는 말이다. ② 고전적 시어관 ― 시에만 쓰는 말(시적인 언어) 문어체- 문장을 쓸 때 상투적으로 정해진 말씨, ‘각설하고’ ‘가라사대’ 등 완곡어법- 서양시의 경우, 소년들 - 게으른 자손들, 물고기 - 지느러미 달린 족속, 양 - 음매하고 우는 짐승 시조어법- 이 말도 거즛말이 져 말도 거즛말이 시비를 뉘 아더니 하늘이 알려마난 어즈버 구만리 우희 뉘 올나가 살아보리. ③ 근대적 시어관 ― 워즈워드의 「서정 민요집」 시적인 언어의 시관에 대한 붕괴는 워즈워드에 이르러서다. 그는 진정한 시어법은 자연적인 것이고 인위적인 것은 거짓된 시어법이라 했다. 시는 소수의 오락물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어야 하며 형식이나 제도에 얽매인 문어체가 아니라 개성적이고 일상적인 구어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서정 민요집」의 골자였다. 그는 훌륭한 시는 강한 정서가 자연 발생적으로 넘쳐흐르는 것(over flow)이라고 되풀이하여 말했다. ​ 수탉이 운다 강물이 흐른다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호수가 빛나고 푸른 벌판이 햇빛에 잠들고 있다 늙은이와 어린것들이 장정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들소들이 풀을 뜯는다 머리조차 들지 않고 마흔 마리들이 하나같구나! - 워즈워드 「3월에 부침」 ​ ④ 필자의 시어론 시가 시답고 산문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변별성은 무엇인가. 그것을 시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에서 찾고자 한 것이 필자의 「시어론」인 바 여기서는 정서적 시어, 상상적 시어, 동일서의 시어, 낯설음의 시어, 내포적 시어 등으로 나누어 살피고자 한다. ​ (1) 시적 정서의 의미 ① 시다움의 언어 시를 시답게 하는 언어의 용법은 먼저 정서적인 언어를 추구한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물질적 요소를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것이다. 정신적이란 말은 매우 포괄적이다. 그래서 대개는 정신을 지(知), 정(情), 의(意)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성, 마음과 영혼, 심리, 자아, 감각과 지각, 상상 등 무수히 많은 용어들로 정신적인 세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종합해 본다면 결국 인간이란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분별하는 이성적 세계와 감각기관이나 내면적 심정을 통하여 느끼는 정서의 세계가 있다. 그런데 과학이나 철학은 이성적 세계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하고 예술은 정서적 세계를 통하여 세계를 인식하고자 한다. 여기에 시다움의 언어는 보다 정서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② 정서의 의미 여기서 느낌의 세계를 다시 세분한다면 감정, 기분, 정조 등의 용어를 생각할 수 있고 이러한 환기성을 포괄적으로 정서(情緖)라고도 한다. 정서란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마음이 어떤 자극이나 동기에 의하여 일어나는 감정적 현상이다.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슬퍼한다든지, 만족스러울 때 기쁨을 느끼거나 웃음을 짓는 일, 슬픔, 기쁨, 즐거움, 괴로움, 놀람, 미워함, 사랑함, 불안함, 외로움, 그리움 등 참으로 미묘한 심리적 변화가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③ 정서의 기능 과거엔 정서를 감각적 기능으로만 생각했거나 중추신경의 반응 체계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실험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에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부분과 감정적 사고를 하는 부분으로 구별되고 있음을 앞서 좌뇌와 우뇌의 기능으로 설명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두뇌의 온전한 기능이나 사고의 온전한 기능이란 바로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사고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되겠는데 현대인들의 사고 경향은 이성적인 사고, 즉 지적인 세계, 실용적인 세계, 물질적인 세계만을 추구하고 있어 사고의 불균형, 정서의 결핍, 삶의 부조리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의 극복은 안정감, 행복감은 물론 육체적 건강까지 돕는다. ​ (2) 정서적 시어의 모색 ① 감탄사와 정서적 시어 시적 정서를 유발할 수 있는 시어법에서 언어의 품사 중 감정 표출도가 높은 감탄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일본의 요시모도는 감정 표출의 정도, 즉 표출도(表出度)에 의한 품사를 구별하면서 자기표출도가 강한 순서를 보면 감탄사, 조사, 조동사, 부사, 형용사, 동사, 대명사, 명사의 순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여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물방울 뚝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 청자기! - 박종화 「청자부」에서 ​ 감탄사 시 조사 적 부사 ↑ 형용사 자 동사 기 표 대명사 출 명사 지시표출 → 산문적 ​ ② 언어의 리듬화 둘째로 과거의 시어들은 후렴구나 반보적인 어휘, 정형적인 자수율을 통하여 음악적 리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도 결국은 시어의 정서적 기능에 대한 인식에서다. 음악성이야말로 우리의 심리적 충동을 강하게 유도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다.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 김소월 「못잊어」 ​ ③ 유포니의 시어 셋째는 시어의 미적인 효과를 높이고 환기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음운의 성질을 활용할 수 있다. 의성어나 의태어가 그 대표적인 것인데 이 밖에도 양성모음은 밝고 단단하며 작은 느낌을 주며, 음성모음은 어둡고 거칠며 큰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장모음은 느린 동작을, 전설모음은 빠르고 선명하며 가늘고 밝은 느낌을 주며, 후설모음은 느리고 둔하고 맥빠지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는 점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자음의 경우, 유성음은 무성음에 비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호음조(euphony)를 이루기 쉽다. 그리고 평음은 평순한 느낌을, 경음과 격음은 강하고 예리한 느낌을, 파열음과 마찰음과 파찰음은 거칠고 둔탁하고 부딪히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악음조(cacophony)를 이루기 쉽다. 또 어말에 있어서[m]은 넓고 평평한 느낌을, [n]은 가벼운 느낌을, [ng]은 둥글고 가득찬 느낌과 웅얼거리거나 노래하는 느낌을, [r]과 [l] 같은 유음(流音)은 흐르는 느낌을, [s], [ts] 같은 처음은 섬세하고 가볍게 부딪히는 느낌을 준다. ​ 얇은 사(沙)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 조지훈 「승무」에서 ​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 ​ 시적 조어- 시작에 있어 서술형의 변형, 새롭게 만드는 시적 조어(詩的造語)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고요한-고요로움, 푸른-푸르른, 흙냄새-흙내음, 파란-파아란, 아득히-아스라히, 곱게-고웁게, 천천히-시나브로, 조그만-조매로운, 뒷길-뒤안길, 따뜻한-다사로운 등도 그러한 예들이다. 정서적 어휘들- 그런가 하면 일상적인 어휘 중에서도 시어의 정서적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 감탄사나 조사의 어미 등을 제외하고도 주로 심리적 현상을 표현하는 어휘, 예를 들어 사랑, 그리움, 아련함, 슬픔, 회상, 사연, 안타까움, 외로움 등이 있는가 하면 시각이나 청각에 호소하는 색채어, 의성어를 들 수 있는데 우리의 시가에서 색채어를 사용하는 빈도를 보면, 청(靑)-백(白)-적(赤)-흑(黑)-황(黃)의 순으로 밝혀지고 있다. 말하자면 파랑, 하양, 빨강, 검정, 노랑의 순으로 색채어를 사용하여 정서적 효과를 노리거나 의성어나 의태어를 통하여 보다 사실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자연물에 있어서는 특히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거나 익숙해진 것으로 나무, 풀, 꽃, 과일, 별, 태양, 물, 공기, 땅, 새 등의 명칭을 통하여 시적 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시어론 2, 상상적인 시어 ​ 홍문표 ​ (1) 처량하다와 밝은 초롱 ① 정서적 언어에서 상상적 언어로 과거 시어법은 정서적 효과를 위해 감탄사, 리듬, 유포니 등의 언어의 음성적 성질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정서적 효과는 음성적인 청각적 기능만이 아니라 시각적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 기능 즉 오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이러한 기능은 신선한 감각적 이미지, 즉 상상을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앍게 되었다. 훌륭한 연기자는 자신이 우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그 연기를 상상하며 울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 ② 처량하다와 밝은 초롱 ​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 홍난파 「봉선화」에서 그 푸른 잎새 속에 층층이 밝은 초롱을 걸었다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잠자던 여인의 피가 이 여름 봉선화로 피어…… 사나이의 체취같은 더위를 안아 꽃은 저리도 붉었다 앞 뒤 주변의 그 뭇 풀들이 너에게로 부득부득 기어 오르고 이 계절에 지친 마음 속에 핀 젊음은 진정 너 같이 아름다운 것. 꽃은 뉘에게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 그 마음으로 피어있다. - 이석 「봉선화」에서 ​ 봉선화 처량하다 밝은 초롱 구별 관념어추상어불가시어직설적 형용사정서어막연함자기표출감정의 주관화관습어 사물어구체어가시어상상적 이미지상상어분명함공감감정의 객관화창조어 ​ (2) 포엠과 포에트리 ① 포에트리와 창조성 현대는 포엠(poem)은 있어도 포에트리(poetry)는 없다는 말이 있다. 외형적으로는 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포엠은 많아도 포에트리의 어원이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말처럼 시적 창조성을 드러낸 상상력을 구사한 시는 드물다는 뜻이다. ② 산문, 시적인 글, 시 ​ (1)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그동안 잔악한 일제의 압제에서 고생하다가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광복을 맞게 되었다. ​ (2) 아아! 얼마나 기다렸던 그날인가! 파도처럼 솟아나는 광복의 기쁨이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아름답게 피리라 민주주의 꽃 영원히 빛나라 조국강산아. ​ (3)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차일을 둘은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 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 서정주 「밀어」 ​ (3) 상상적 시어의 모색 ① 광인과 연인과 시인 ​ 광인과 연인과 시인은 똑같이 상상으로 가득하나니, 광인은 넓은 지옥을 채우고도 넘칠 마귀들을 눈으로 보고 마찬가지로 사랑에 들뜬 연인은 집시의 낯짝에서 헬렌의 아리따움을 보며, 시인의 눈은 예민한 황홀 속에 구르며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미지의 사물의 형상을 상상이 구현하면 시인의 붓은 그들에게 모습을 부여하여 존재하지도 않은 것에다 있을 집과 이름을 준다. - 세익스피어 「한 여름 밤의 꿈」에서 ​ ② 비유적인 상상 시어의 정서적 효과는 상상적 언어를 통해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상상이 일차적 작업은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비유적 언어란 드러내고자 하는 사상, 감정, 사물 등 미묘하고 난해한 세계를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낯익은 사물들로 대신하여 사물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거나, 새롭게 하거나, 정서를 신선하게 하는 것으로 이는 상상적 어법의 기본적 작업이다.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한번 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박두진의 「꽃」에서 소재 의미 비유 꽃 신비성개화붉은 빛 해와 달의 속삭임비밀한 울음아픈 피 흘림 ​ ③ 감각적인 상상 그런데 상상적 언어의 공통적인 특징은 반드시 구체적인 감각성을 지니는데 있다. 구체적인 감각성이란 빛깔과 무게와 소리와 냄새가 있어 우리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는 언어를 말한다. 예술이 감성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시의 경우도 당연히 감동성을 지녀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감동은 언어의 감각성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감각적 언어가 시각에 호소하는 회화적 이미지, 청각에 호소하는 음악적 이미지가 된다. 그밖에도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 이미지가 있다. ​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에서 ​ 시몬느, 너의 머리칼 숲 속에는 커다란 신비가 있다. ​ 너는 마른풀 냄새가 난다. 너는 짐승이 자고 난 돌의 냄새가 난다. 너는 무두질한 가죽 냄새가 난다. 너는 타작한 밀 냄새가 난다. 너는 아침마다 가져오는 빵 냄새가 난다. 너는 무너진 흙담에 나란히 핀 꽃 냄새가 난다. 너는 나무딸기 냄새가 난다. 너는 비에 씻긴 등나무 냄새가 난다. 너는 저녁때 베어 들이는 등심초와 양치풀 냄새가 난다. 너는 호랑가시 냄새가 난다 너는 이끼 냄새가 난다. 너는 생울타리 그늘에 자라서 여물고 말라버린 노랑풀 냄새가 난다. 너는 꿀풀과 나비꽃 냄새가 난다. 너는 마소거름 냄새가 난다. 너는 우유냄새가 난다. 너는 회향풀 냄새가 난다. 너는 호두냄새가 난다. 너는 잘 익어서 따온 실과 냄새가 난다. 너는 꽃이 만발한 버들과 보리수 냄새가 난다. 너는 벌꿀 냄새가 난다. 너는 목장을 헤지를 때 갖는 삶의 냄새가 난다. 너는 흙과 시냇물 냄새가 난다. 너는 정사(情事)냄새가 난다. 너는 불 냄새가 난다. ​ 시몬느, 너의 머리칼 숲 속에는 커다란 신비가 있다. - 구르몽 「시몬느」에서   시어론3, 동일성의 시어 ​ 홍문표 ​ (1) 심리적 동일시 ① 욕구불만과 대리만족 인간은 심리적으로 자기가 목표로 하는 것이 이룩될 수 없을 때 목표를 수정하거나 대리적 목표를 설정하여 대리만족 하려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욕구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욕구불만이 생기고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심리상태를 해소하고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하여 보상이나 합리화, 승화, 동일시, 투사 등의 심리적 방어기제 defence mechanism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솝 우화에 여우가 포도를 못 먹게 되자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라고 하는데 이를 합리화 라고 한다. ② 프로이트의 동일시 프로이트는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를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화장대 앞에서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보고 만족하는 나르시즘적 자기애(self love)에 빠지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자식에게서 얻으려는 목표대치의 동일시, 부모의 인정을 받으려고 부모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대상상실의 동일시, 그리고 법을 지키거나 아니면 도둑이 무서워 도둑의 편에 서는 공격자와의 동일시가 있다는 것이다. ​ (2) 동화와 투사 시란 객관적인 세계를 자아의 욕망과 의식의 지향에 따라 가정하고 창조하는, 그리하여 분리된 세계와 자아를 동일성의 세계로 만들어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통일되는 세계다. 심리학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그것은 동화(assimilation)와 투사(projection)의 방식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세계를 시인의 내면인 세계로 끌어들여 자아화하는 것은 동화의 방식이고 자신을 객관적 세계에 이입시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꾀하는 것을 투사하고 하겠다. ​ ① 노래도 바람도 아닌 괴이한 소리 따라 산을 넘어가고 있노라면 ​ 뒤에서 부르는 소리 있어 돌아다 보면 아무도 없는데 내가 이고 가던 하늘이 저 나뭇가지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 최선령의 「다리를 건널 때」에서 ​ ②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슬한 봉우리 휘날리는 깃발 가을 하늘에 덩그랗게 빛나는 결실 바로 추수군의 얼굴입니다 - 홍문표의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에서 ​ (3) 감정이입 시학에 감정이입(感情移入, empathy)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감정을 대상 속에 투입하여 나와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를 시도하고 심적 연합을 이룩하려는 시적 태도다. ​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 (4) 자기화의 언어 ① 분열된 인간 이성의 세계, 과학의 세계는 철저히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을 차별화하고 분열화한다. 여기에 근본적인 소외와 고독과 절망이 있다. 따라서 시는 이처럼 분열된, 상실된 자아를 회복하는 데 있다.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오마는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의 「거울」에서 ​ ② 동일성의 시학 동일성의 논리는 나와 너, 자아와 세계,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되는 화해의 시학이기도 하지만 고정된 사물의 의미가 새롭게 명명되고 전환되는 창조적 행위이기도 하다. 동일시는 내가 네가 되는 객체의 주체화,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이 되는 사물의 변질, 정신이 물질이 되고 물질이 정신이 되는 전이와 창조가 자유롭게 실천되는 세계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나 의미가 해체되고, 새롭게 재구성되고 재창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에서 동일성의 논리는 바로 시학의 원리이기도 하고 시를 창작하는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 바다는 강물의 발목을 잡고 강물은 청산의 겨드랑을 잡고 청산은 하늘의 허리를 잡고 해적선 노예들의 족쇄처럼 화인맞은 엉덩이의 문신처럼 ​ 자작시 “늘푸른 강물이듯이”에서 ​ (5) 공간과 시간의 동일성 ① 공간의 동일성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변별성 위에 그 나름의 자율성을 지닌다. 존재는 근원적으로 개체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체적인 만큼 존재는 고립적이며 단독자이며 그래서 정서적으로 보면 고독하고 불안한 것이다. 그러기에 존재들이 지니는 근원적인 불안의 속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보면 신앙적 구원의 논리가 되고, 철학적으로는 초월의 논리가 되며, 시적으로는 상상을 통한 정서적 구원의 논리가 된다. 여기서 구원의 논리란 바로 공존성의 인식이다. 그것은 너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며 이질적인 개체적 공간들을 동질적인 공간으로 융합하는 노력인 것이다. 신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종교적 구원이라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시적 구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나를 버리거나, 기존의 존재성을 포기해야 한다. 이질적인 공간을 해체하여 어느 한쪽으로 통합하거나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형해야만 하는 것이다. ​ 물결이 햇살을 마시면서 토한다 歲月에 결리는가 이따금 허릴 튼다 바람이 손 발을 씻고 내 머리를 닦는다 ​ 山이 거꾸로 매달린 채 빠져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내 얼굴도 걸려 있다 아무리 또 건져봐도 자꾸만 달아난다 ​ 때묻은 本性을 열심으로 헹궈냈다 썩어가는 俗性을 하나하나 씻어냈다 한웅큼 떠서 마셨다 고대로 하늘 맛이다 ​ 나도 자꾸 마시면서 토한다 하늘을 마시고 山을 마시고 나를 마신다 난 그만 저 江이 된다 기어이 江이 된다 - 유제하 「강」 ​ ② 시간의 동일성 부단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한 순간도 머무를 수 없고, 고정적일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세계라면, 자아의 발견이나 인식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허무와 좌절의 욕망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간 속에 단절감이나 부단한 변화 속에 고정된 자아의 실체를 발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실존을 인식하면서도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영원한 자아를 몽상하고 연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며 시간적 동일성을 발견하려는 시적인 삶의 정당성이기도 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물리적인 논리로 볼 때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이를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려는 몽상, 그리하여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단절적인 존재가 아니라 연속적인 존재라는 생각이나 느낌이 바로 자기 동일성의 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한한 시간, 그 한스러운 시간의 족쇄에서 잠시 자유를 얻는다. ​ 훠이훠이 산을 넘고 엉겅퀴 어우러진 골짝을 지나 억만 년 숨어 사는 넓적바위 아래 옹달샘 하나 낮에는 푸른 하늘 가슴에 품고 밤에는 은하수 한줄기로 목을 축이고는 졸졸졸 찬송가 78장을 연거푸 불러대는 저 태고의 청아한 목청 ​ 수백길 암반을 뚫고 피를 토하듯이 땀을 흘리듯이 오직 순수로 솟아나는 열정 샘물은 용감한 혁명이 되어 가장 확실한 믿음이 되어 역사를 만들고 목숨을 다스린다. - 홍문표 「생수를 마시며」   시어론 4, 낯설음의 시어와 내포적 시어 ​ 홍문표 ​ (1) 낯익음과 낯설음 ① 쉬클로브스키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 쉬클로프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시의 문학성은 시어의 낯설음의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친숙한 의미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소한 충격을 주는 이미지, 뭔가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활력을 주는 언어의 창조가 바로 낯설음이며 산문과 구별되는 시어의 정수가 된다는 것이다. ② 낯익음의 언어 일상적인 언어,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공식적인 언어는 이해는 있으나 감동이 없다. 바닷가의 파도소리는 처음엔 낯설지만 차츰 익숙해 진다. 이를 친숙화라 하는데친숙화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반복되어 습관화되었을 때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각은 자동화되고 감각은 마비되어 낯익은 사람 사이에는 언어를 생략하고 손짓이나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탈언어화 상태가 된다. 지각적인 의식의 언어가 생략될 때 남는 것은 기호뿐이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호만 존재하게 될 때 그것은 시의 세계가 아니라 수학이고 과학이고 산문이다. 추상적인 개념과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 존재하는 삶이란 이미 창조적 인간이 아니고 기계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비인간화의 무의미한 세계일 뿐이다. 바로 분열과 소외가 그것이다. ​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 ③ 낯설음의 언어 시어의 참 기능- 따라서 예술가가 대항하고 투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일상과 습관과 안일과 매너리즘의 권태다. 대상을 습관적인 문맥에서 뜯어내고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함께 묶음으로써 시인은 상투적 표현과 거기에 따르는 기계적 반응(stock response)에 치명적인 일격(coup degrace)을 가해서 대상들의 감각적인 결(texture)을 고양된 상태에서 인식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언어는 바로 일상적인 낯익음의 용법을 배제하고 보다 낯선 용법을 창조하여 지각의 신선함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적 자유이고 해방이다. ​ 당신은 짐승, 별, 내손가락 끝 뜨겁게 타오르는 정적 외로운 사람들이 따모으는 꽃씨 외로운 사람들의 죽음 순간과 머나먼 곳, 異邦의 말이 고요하게 시작됩니다 당신의 살갗 밑으로 大地는 흐릅니다 당신이 나타나면 한 개의 물고기 비늘처럼 무지개 그으며 내가 떨어질 테지만 - 이성복 「당신은 짐승, 별」 ​ (2) 전경과 후경 역시 형식주의자 무카로브스키는 낯익음과 낯설음의 관계를 전경(foregrounding)과 후경으로 설명했다. 일상적인 친숙한 언어는 후경, 즉 배경의 언어가 되고 시어는 전경으로 내세워져 전경과 후경이 이질화됨으로써 보다 신선한 시적 충격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사진 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거나 클로즈업시키는 것과 같다. ​ 활자 사이를 코끼리 한 마리가 가고 있다. 잠시 길을 잃을 뻔하다가 봄날의 먼 앵두 밭을 지나 코끼리는 활자 사이를 여전히 가고 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끼리, 코끼리는 발바닥도 반짝이는 은회색이다. - 김춘수 「은종이」 ​ 코끼리 은종이 (전경) (낯설음) (후경) ​ (3) 낯설음의 정도 그렇다면 여기서 같은 낯설음의 언어라 할지라도 낯익음과 낯설음의 차이, 전경과 배경의 거리에 따라서 시적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평가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비록 낯설음의 언어가 시적이기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1) 어린이가 노래한다. (2) 새가 노래한다. (3) 꽃이 노래한다. (4) 강물이 노래한다. (5) 돌이 노래한다. (6) 질투가 노래한다. (7) 고독이 노래한다. ​ (4) 시어의 내포적 의미 ① 시적 언어의 특성 지금까지 시의 언어는 정서적이고 상상적이라 했다. 이 점은 음악과 미술과 같다. 그러나 이들과 다른 점은 시어는 음성적 요소도 있고 회화적 요소도 있지만 의미를 움켜쥐고 있는 언어라는 점이다. 언어는 소리, 형상, 의미라는 세 요소가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경우도 의미의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언어는 정서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일반 언어와 달리 내포적 의미가 있다는데 시의 특성이 있다. ② 내포적 의미 의미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을 H2O라고 할 땐 물이라는 의미 이외에 전혀 다른 의미가 없다. 이처럼 음성 기호인 문자와 그것이 지시하는 의미가 1:1의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언어의 의미를 외연(denotation)적 의미라고 한다. 객관적, 사전적, 일상적 의미다. 그런데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그러한 사전적 의미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선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내포(connotation)적 의미라 하는데 달리는 함축적, 주관적, 다의적, 심층적, 2차적 의미라고 한다. 리처즈는 이를 ‘의미의 의미’라고도 하였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에서 ​ 시어 외연적, 1차적 의미 내포적, 2차적 의미 눈초인 겨울의 눈뛰어난 사람 괴로운 시대, 고독감 등구원자, 광복 등 바르트의 기호학적 의미분석 2차 언어…(내포) 초인(기표)  광복, 구원자(기의) 1차 언어…(외연) 초인(기표) 뛰어난 사람(기의)      ​ (5) 문맥적 의미 ① 개념의 시간화와 공간화 문학이란 추상적인 세계를 언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형상화의 작업이다. 그런데 언어 행위는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므로 구체화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개념의 공간화와 시간화다. ​ 꽃 : 침묵의 언어 아침에 핀 꽃(시간화) 우리집 마당에 핀 꽃(공간화) 아침이면 나를 반겨주는 우리집 마당의 꽃(시간․공간화) ② 문맥적 의미 산문에서 쓰이는 지시적, 외연적, 언어는 주체와 객체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전적 의미(lexicat meaning)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주체와 객체와 언어가 분리된다. 그러나 내포적 언어는 주체와 객체가 상호침투하면서 문맥적 의미(contextual meaning)로 작용한다. 주체와 객체와 언어가 하나되어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언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 「국화 옆에서」 에서 ​ 누님(나이 많은 여자 형제) + 거울앞 = 중년부인(문맥적 의미) 국화(식물) + 누님 = 원숙한 꽃(문맥적 의미) ​ 내 영혼의 벌판에 쏟아지는 꽃비 그 속을 걸어가며 때로는 눈보라 때로는 달빛 때로는 폭우로 쏟아지는 혼자서 걸어가는 그 속의 외로움 - 박두진 「너」에게 ​ 내 영혼의 벌판(심리상태) + 꽃비 + 눈보라 + 달빛 + 폭우 = 인생살이(문맥적 의미) ​ 나는 그림 그리는 푸주업자를 알기를 원한다. 시를 짓는 빵 제조업자를 노래로서 그 영혼을 잘 일깨워주는 촛대 만드는 자를 아니면 벙어리 - 브라우닝 ​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라 아름다운 배앞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로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 서정주의 「화사」에서 ​ (6) 영원한 디페랑 ① 계시의 언어, 묵시적 언어 예수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 무지개 ② 소쉬르의 기의와 기표 의미의 불확정성 ③ 데리다의 디페랑 ― 포스트모더니즘 의미는 차별성을 지니면서도 끊임없이 미래로 유보되는 차이와 연기 즉 차연(differance)이라고 했다.  
4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4 댓글:  조회:905  추천:0  2019-10-24
시적 언술의 시간 ​ 홍문표 ​ (1) 서사문학과 과거의 시간 ① 완결의 형식 서사란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보고형식으로 쓰는 글이다. 문학에서는 소설, 수필 등이 대표적인데, 소설이 비록 허구적인, 즉 꾸며진 글이라도 인과성 있는 필연성의 사건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경험을 재구성하여 질서정연한 줄거리를 가진 완결된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서사(narration)적인 문학 양식은 과거 시제나 과거완료 시제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 ② 김동인의 「감자」에서 ― 과거시제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 서방, 또 한 사람이 어떤 한방의사―왕 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의사의 손에도 십 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실려갔다. - 김동인의 「감자」에서 ​ (2) 서정시와 현재의 시간 ① 서정시의 현재성 그러나 서정시는 서사문학의 양식인 소설이나, 주인공의 행위를 중심으로 언술하는 서사시와는 달리 시인 자신의 현재 순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을 인과관계나 시간적인 순서에 의해서 서술하는 서사문학과 달리 현재의 시제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는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를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건이나 인물의 인상이나 정서를 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어떠하다’고 표현하는 것이지 ‘어떠했다’고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 ② 시의 허구적 현재 서정시가 현재의 시제를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시적 언술의 시간이 물리적으로 현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사실을 가상적으로 현재화한다는 데 그 특성이 있다. 말하자면 허구적 현재라는 말이다. 이는 과거의 사건이든 미래의 사건이든 모두 현재의 감정이나 인상인 것처럼 가장하는 시의 장치다. ​ 주름의 집이 기우뚱 하수구 위로 기운다. 금방 쓰러져 캄캄한 하수구 맨홀 속으로 빨려들 것처럼 구부린다. 아주 주저앉는다. 집이, 오랜 세월 견뎌온 주름의 집이, ​ 그리고는 차창에 스치는 붉은 꽃을 마구 토해낸다. 환한 대낮, 수많은 주름이 집을 의지한 채 길가에 비틀비틀 부지런히 방향을 찾고 있다. - 유강희 「노인」 ​ 한 개의 원이 굴러간다. 천사의 버린 지환이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 꽃잎들……. 금빛, 수밀도만한 세 개의 원이 천 개의 원이 굴러간다. - 문덕수 「원에 관한 소묘」에서 ​ (3) 전달을 위한 의도적인 시간 물론 서정시는 현재를 원칙으로 하지만 어떤 사실을 의도적으로 전달, 호소하고자 할 때, 과거나 미래의 시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목적시나 의지적인 시에서 볼 수 있다.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며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윤동주 「참회록」 ​ (4) 무시간의 시적 언술 ① 무시간성의 문장 논설문이나 논증문은 시제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어떤 인물의 행위나 개인적인 감정의 궤적을 기록하는 시간적 형식이 아니라 사실을 객관적으로 공간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 자연에 인공이 끼여서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미추를 초월한, 미 이전의 세계다. 사람의 꾀에서 생겨나는 인공의 미가 여기서는 있을 수가 없다. 자연에는 오직 자연의 미가 있을 따름이다. 자연의 섭리에 입각한 만유존재 그 자체의미가 있을 뿐이다. 미추를 인식하기 이전, 미추의 세계를 완전 이탈한 미가 자연의 미다. - 강원용 「한국의 미」에서 ​ ② 무시간성의 시 시간은 살아 있는 존재, 생명이 있고, 감정이 있고 존재의 행동이나 심리변화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문학에서 시간성이 요구된다는 것은 결국 생명 있는 존재를 언술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추상적인 공간성이 요구되기에 시간성이 배제된다. 그런데 시의 경우에도 극단적으로 시간성을 배제하여 시의 공간화, 시의 무시간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실험적인 시의 방법이나 철저히 사물을 객관화할 경우다. ​ 數字의方位學 數學의力學 時間性(通俗事考에依한歷史性) 速度와座標와速度 - 이상 「3차각 설계도 선에 관한 각서 6」에서 ​ 하얀 창 앞에 마구 피어 오르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다. ​ 바다 앞세 날리운 모닥불 같은 것으로 스스로 전율에 이어온 사랑 ​ 여기 아무도 반거(蟠居)할 수 없는 하나의 지역에서 가을의 음향을 거두는 것이다 - 임강빈 「코스모스」     시의 공간과 거리 ​ 홍문표 ​ (1) 공간의식과 시적 상상력 ① 시적 공간의 탄생 인간이란 지상에 던져진 공간적 존재다. 지상에 태어나 지상을 경험하고 그 공간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러한 질서를 진리로 인식하며 그러한 공간적 경험들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공간을 그려본다. 그것이 상상(imagination)이다. 이는 자연적 공간이 아니라 시인의 주관적 공간, 상상적 공간, 바로 시적 공간이 된다. ​ (ㄱ) 능수버들이 지키고 있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 ​ (ㄴ)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 두레박을 넘쳐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박을 넘쳐흐르는 푸른 전설만 길어 올리시네. - 김종한의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에서 ​ (ㄱ) - 자연적 공간 (ㄴ) - 상상적 공간 ② 상징과 은유의 공간 상상에 의한 가시적 공간을 시학에서는 이미지라고 말한다. 이미지란 시인의 실제 경험한 현실적 공간의 재구성인데 이러한 상상적 공간은 실제의 공간만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이나 정서 등 불가시의 세계도 대신 들어 내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이미지를 상징이나 은유의 공간이라고 한다. ​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을 되돌아 올 뿐 - 박두진의 「도봉」에서 ​ 산 - 현실공간 + 상징공간 ③ 시적 공간화의 의미 시가 현실공간에서 상상공간으로 확대 변형할 수 있음은 바로 현실에서 이상으로, 지상에서 천상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유한한 삶의 한계를 벗어나는 자유, 해방, 구원의 방식이기도 하다. ​ (2) 시적 공간과 심리적 거리 ① 긴장의 관계와 심리적 거리 공간에 대한 의식은 내가 어떤 공간에 관심을 가질 경우, 또는 공간이 나에게로 다가오는 경우인데 감동이란 결국 나와 대상과의 관계성에서 야기되는 심리현상이다. 따라서 나와 대상, 대상과 대상 사이의 공간적 거리, 심리적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미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현대시에서 긴장의 문제는 충돌의 논리나 병치의 논리에서 잘 드러나고 있지만, 결국 이는 현실공간과 시적 공간 사이에 나타나는 대응관계에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일이다. ​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에서 ​ 어둠 + 새, 돌 꽃 = 병치, 충돌, 심리적 거리 조정 ② 시적 대상과 거리 시인은 시적으로 사물을 보고 표현한다. 여기서 시적으로 본다는 것은 주관적인 순수한 심정에서 사물을 보고 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표현일 경우 그 대상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 멀리서 볼 것인가, 가까이서 볼 것인가, 표면만 볼 것인가, 내면까지 볼 것인가 하는 거리의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서 이러한 거리의 문제란 결국 그 대상에 대한 내 감정의 개입을 어느 정도 함으로써 미적 표현이 성취될 것인가 하는 심적 거리를 말한다. ​ (1) 선은 가냘픈 푸른 선은 아리따웁게 구을러 보살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에 4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 박종화 「청자부」에서 ​ (2) 바다는 강물의 발목을 잡고 강물은 청산의 겨드랑을 잡고 청산은 하늘의 목숨을 잡고 해적선 노예들의 족쇄처럼 화인 맞은 엉덩이의 문신처럼 ​ 나는 당신의 폭력이 되고 당신은 나의 눈물이 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훠이훠이 날아가는 서역 구만리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 19」에서 ​ ③ 바람직한 시적 대상과 미적거리 미적거리- 시인과 작품과 독자 사이에 감동을 자아내는 미적 거리의 조건은 무엇일까. 칸트는 예술적인 미를 사심 없는(disinterested), 이해관계를 초월한 상태에서의 경험이라 했고, 벨로우(E. Bellough)는 육지의 안개와 바다에서 느끼는 짙은 안개와의 심리적 차이를 심리적 거리(psychicaldistance)의 효과라 했다. 객관적 상관물- 여기서 엘리어트(T.S. Eliot)가 지적한 것처럼 감정과 이성의 등가(等價)적 작품이 가장 적절하다고 한 말을 수긍할 수 있다.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조절하는 행위는 바로 시인의 의도적인 작업이며 이를 조절하는 시적인 장치가 바로 시적 형식이며 시적 창조작업이다. 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이나 여러 요소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구조(structure)로 보는 것, 무질서한 감정이나 사고를 미적으로 형식화(forming)하는 것은 모두가 적절한 거리 조정(distancing)작업이다. 이에 대하여 엘리어트는 “시는 정서로부터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정서로부터의 도피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정서로부터 시는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일상적인 개성과 정서에서 벗어나 시적이고 미적인 정서와 개성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로서 여기에는 대상과의 미적거리, 심리적 거리가 요구되며 그 구체적인 장치가 바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라고 하였다. 그는 예술적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어떤 대상을 시적으로 표현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정서나 관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은유화 하거나 상징화한 특정한 이미지를 통하여 보다 새로운 정서와 개성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고 특정한 화자와 특정한 어조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이다.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 허공에 매달린 외줄이 우리들 밥 멕이는 밥줄이요 밥줄. 줄광대 한평생 뼛골만 쑤셔 마디마디 삭아버린 삭신 죽어 송장 염도 못할 거요. 그냥 이대로 화장터에 불살라서 한줌 가루 고향으로 보내주면 쓰겄소 잉. - 이성부 「줄광대 김씨」 ​ ④ 부족한 거리와 지나친 거리 조정 심리적 거리의 적절한 조정, 이것이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데 있어서 고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하였다. 너무 대상과의 거리를 가까이 한답시고 일상적인 감정을 직설적으로 노출하는 경우 부족한 거리조정(underdistancing)이 될 수 있고, 감정을 배제하고 관념만을 드러낼 욕심으로 무슨 정치적 구호를 내뱉을 때는 시적인 미학과 무관한 지나친 거리조정(overdistancing)이 될 것이다. ​ (1) 바람아, 오― 폭풍아 흑풍아 그 불꽃을 ​ 불어 날려라 쓸어 헤치라 몰아 무찔러라. - 오상순 「허무혼의 선언」에서 ​ (2) 산야에서 푸르른 새순들은 돋고 진달래는 선홍을 피어 타오르는데 쑥국새 하염없는 울음속에 우리들 4월의 혼은 잠들 수 없다. 지나간 25년의 세월 하루도 편할 날은 없었다. 코쟁이 쭉발이들 감놔라 대추놔라 호령하는 소리 이 땅의 똥개나 뀌고 힘깨난 쓴다는 자들 금방망이 도끼방망이 제멋대로 휘두르는 소리 이 통에 민주주의 계속 작살나는 소리 - 채광석 「산자여 답하라」에서   시의 화자와 어조 ​ 홍문표 ​ (1) 시의 화자와 소설의 화자 ① 문학의 허구와 화자 문학이란 시인이나 소설가 자신이 말하는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직접 언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인물들을 내세워서 언술하는 간접화법을 쓰기도 한다. 다른 인물을 내세워 말하게 하기에 허구(fiction)라 하는데 이것도 상상이고 창작이다. 뿐만 아니라 청자도 임의로 설정하여 말을 듣도록 한다. 그래서 임의로 설정한 화자를 허구화된 화자, 또는 청자를 허구화된 청자라고 한다. 이는 소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도 그렇다. 여기에 시 창작과정에서 화자와 청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② 소설 화자와 시점 소설에서는 허구화된 인물의 이야기 방식을 화자의 시점(point of view)이라고 한다. ​  사건의 내적 분석 사건의 외적 관찰 스토리 속의 등장인물로서의 화자 ① 주인공이 자신의이야기를 함 ② 부수적인 인물이주인공의 이야기를 함 스토리 속의 등장인물이 아닌 화자 ④ 분석적이고 전지적인 작가가 사상과 감정을 포함한 이야기를 함 ③ 작가가 관찰자로서 이야기를 함 ​ 이 도표에서 보듯이 소설에는 네 가지 유형의 서술 시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사건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나’라는 주인공이 자신이 경험한 사실들을 서간체, 일기체, 수기, 신변소설, 심리소설 형식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상의 「날개」나 김유정의 「봄봄」이 그런 경우다. ​ 나는 우선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보다. - 이상 「날개」에서 ​ 둘째는 사건의 부수적인 인물인 ‘나’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셋째는 작가가 관찰자가 되어 등장인물을 모두 3인칭화하여 서술하는 방법이다. ​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윤 초시네 증손녀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 황순원 「소나기」에서 ​ 인용한 문장에서는 작가가 소년과 소녀의 행동을 관찰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네 번째는 1인칭 ‘나’나 3인칭인 ‘그’를 고정적으로 하지 않고 외부적인 사건이나 내부적인 심리까지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서술해 가는 전지적 작가의 서술이다. 이광수의 「무정」이 그 예에 속한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크게 네 가지로 화자의 서술 시점을 구분하고 있다. ​ (2) 시의 화자와 청자 ① 시의 화자와 청자 시의 경우도 작품 속에는 시적 화자가 있고 시적 청자가 있으며 이들 각각에는 드러난 화자 드러난 청자, 숨은 화자 숨은 청자가 있다. 시작품(text) ​ 실제시인 → 시적화자 드러난 화자 → 드러난 청자숨은 화자 → 숨은 청자 시적청자 → 실제청자 ​ ② 드러난 화자와 드러난 청자 시의 언술을 보면 시 문장에 ‘나’라는 화자가 명시될 뿐만 아니라 나의 상대인 ‘너’나 ‘그’나 어떤 대상이 명시되어 독특한 대화의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 ③ 드러난 화자와 숨은 청자 둘째로는 시 문장 속에 구체적으로 ‘나’라는 화자만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그 대상인 청자는 숨겨진 경우가 있다. ​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오르는 아침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끝없이 강물이 흐르네」 ​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뿐이다. ​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랄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고 한다 - 김윤성 「나무」 ​ ④ 숨은 화자와 드러나 청자 셋째로는 화자는 숨어 있고 청자만 드러난 경우가 있다. 이 때 청자는 물론 너라는 2인칭의 형식이 되겠지만 다른 사물을 2인칭화 하여 명령하거나 권고하거나 요청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 (1)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 김수영 「눈」에서 ​ ⑤ 숨은 화자와 숨은 청자 네 번째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시의 문 면에 시적 화자나 시적 청자가 모두 생략되어 버린, 숨은 화자와 숨은 청자의 시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말의 일상적 어법에서도 영어에 비하여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시에 있어서 언술의 주체인 화자나 청자를 숨기거나 생략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말의 어법의 관습이 아니라 가급적 화자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사물의 인상을 객관화하려는 모더니즘적 기법에서 볼 수 있는 언술이다. ​ (1) 1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 2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 ​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軍艦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 김춘수 「처용단장」에서 ​ (3) 시의 화자와 어조 시인이 시적 화자를 세울 경우, 필요에 따라 남자를 세울 수도, 여자를 세울 수도 있다. 또한 남자인 경우라도 어른이나 어린이, 도시인이나 농촌사람 등 무수히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세울 수 있으며 이들을 통하여 말을 할 때는 시적 화자의 개성과 시적 청자에 대한 관계상황에 따라 그 나타내는 태도나 목소리를 달리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의 어조(tone)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조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시에서는 통일성, 리듬감, 정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 개나리 보고 싶어. 할머니 병아리떼 물어낸 개나리 보고 싶어, 봄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도 찾아낸 그 병아리는 닭장에서 나오지 않고 왜 그림책 속에만 갇혀 있지. 할머니 봄비도 보고 싶어. - 양왕용 「도회의 아이들 8」에서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 김소월 「가는 길」에서   시적 진술의 세 유형 ​ 홍문표 ​ (1) 누구에게 말하는가 ① 진술의 대상에 따른 언어의 기능 말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 즉 발신자가 있겠고, 그 말을 들어주거나 말에 따라 움직여 줄 수 있는 수신자, 즉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발신자인 내가 2인칭인 ‘너’에게 향해서 말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너’가 아닌 제3자적인 인물이나 사물에 향하여서도 말할 수 있다. 사실 연설문이나, 사랑의 편지 등은 듣는 청중이나 어떤 대상에게 무엇인가 요구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학술적인 문장이나 공공의 언어들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하기도 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그런데 문학, 특히 시의 경우는 2인칭인 ‘너’나 3인칭인 ‘그’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화자 자신의 심정을 넋두리처럼 말할 수도 있다. 혼자 중얼거리는 형식이다. 이렇게 스스로 중얼거리는 독백을 언어의 정서적 기능이라 하고 ‘너’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언어를 사역적 기능, 그리고 그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지시적 기능이라고 한다. ② 야콥슨의 소통 구조와 언술의 기능 야콥슨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언술을 좀더 세분하여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는 제시물인 관련사항만 있을 것이 아니라 무의미 시처럼 전언 그 자체를 지향하는 시적 언어, ‘여보세요’, ‘네’ 등 접촉성을 나타내는 친교적 언어, 신호체계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메타언어가 있다고 하였다. ​  지시적(referential)     ↕     시 적(poetic)         정서적(emotive) ↕   능동적(coactive)  ↕          친교적(phatic)     ↕     메타언어적(metalingual)      관련상황(context)     ↕     전 언(message)        발신자(addresser)  ↕ 수신자(addressee)    ↕          접촉(contact)     ↕     신호체계(code)        ​ (2) 독백적 진술 ― 화자지향형 ① 독백적 진술의 성격 독백적 진술은 스스로가 시적 대상이 되어 반성하고 기원하는 형태다. 말하자면 1인칭 지향형이다. 이는 철저히 자아에 대한 자각이며 넓게는 인생에 대한 자각일 수 있다. 자각은 과거를 통한 현재의 자작이거나 현재를 통한 미래에의 소망일 수 있다. 따라서 회고적 독백과 기원적 독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화자 지향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자기에 대한 이야기도 자아가 둘로 분리하여 하나의 자아가 다른 자아를 관찰자 입장에서 이야기할 경우에는 화제 지향형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화자 지향형이란 의 주관적인 정서나 신념을 다루는 유형으로 제한해야 한다. ​ ② 회고적 독백 ​ 어제 내가 본 건 그럼 뭐더라? 해변도 아니고 마을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교회의 첨탑은 더욱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그럼 뭐더라? 꿈이런가? 어제 내가 본 건 어제밤 내가 벚꽃이 비바람에 떨어지던 학교 뒤뜰에서 본 건 그럼 누가 본 건가? - 이승훈 「어제 내가 본 건」에서 ​ ③ 기원적 독백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 (3) 권유적 진술 ― 청자지향형 ① 권유적 진술의 성격 권유적 진술은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을 단수인 너(you)뿐만 아니라 복수인 너희(you)에게 적극 동조하기를 요청하는 진술형식이다. 따라서 2인칭인 청자지향형이다. 개화 계몽기의 많은 시가들을 보면 대부분 부국강병, 문명개화를 부르짖는다. 윤리도덕이나 이념적인 내용을 내세우는 경우도 권유적 진술을 한다. 특히 국가나 단체의 중요한 행사를 할 경우 행사의 성공적인 기원이나 참여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정치적 모임에도 권유적인 목소리가 강하다. 그런데 권유적 진술에는 화자가 청자보다 우위에서 강요하는 경우, 하위에서 애원, 찬양하는 경우가 있다. 선동시나 어용시가 그렇다. ​ ② 화자가 우세한 경우 (명령적 권유) ​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 ③ 화자와 청자가 대등한 경우 ​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몇십 년 동안 누린 것 몇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 고은 「화살」에서 ​ ④ 청자가 우위에 있는 경우 (기원) ​ 말씀이 뜨거이 동공에 불꽃튀는 당신을 마주해 앉으리까 랍오니여 발톱과 손가락과 심장에 상채기 진 피흐른 골짜기의 조용한 오열 스스로 아물리리라 이 상처를 랍오니여 조롱의 짐승소리로 이제는 노래절벽에 거꾸러짐도 이제는 율동 당신의 불꽃만을 목구멍에 삼킨다면 피눈물이 화려한 고기비늘이 아니리라 랍오니여 발광이 황홀한 안식이 아니리라 랍오니여 - 박두진 「당신이 사랑 앞에」 ​ (4) 해석적 진술 ― 화제지향형 ① 해석적 진술의 성격 해석적 진술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시인이 주관적으로 상상적으로 해석하고 이러한 해석을 제3자인 다중에게 설명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언술에는 문맥의 표면에 화자나 청자가 잠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정서적 표현과 의미 부여를 억제하고, 카메라 렌즈로 사물을 비춰 보이듯 이미지화 하는 것이 특징이다. ​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진 꽃밭이다. 맹진사 댁 청사초롱이다. 사월의 산언덕 포등한 등성이마다 ​ 너울 쓴 신부처럼 파닥이는 가슴이다. ​ 두려움의 껍질들이 허물을 벗고 차마 부끄러워 마지막 정절에 혼절하는 잔인한 환성이다. ​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헐고 한 순간의 황홀을 위하여 아, 온몸을 투신하는 아리디 아린 눈물이다. - 자작시 「꽃밭에서」 ​ 햇살은 모두 둑 밑에 내려와 있다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강 바람이 분다 ​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골 청년 자전거 바퀴 살에 햇살이 실려서 돌아간다 ​ 그 바퀴 살 사이로 투명한 강 ​ 얼마쯤 걸었을까 미루나무도 가고 있는지…… 미루나무는 조금씩 작아져 갔다 - 한성기 「둑길․1」 전문   주제와 소재의 형상화 ​ 홍문표 ​ (1) 시의 주제 ① 산문의 주제 산문의 필수적 요소- 주제(主題)를 글자의 뜻으로 보면 문장의 중심이 되는 제목이라든지 핵심이 되는 과제라는 뜻인데 이는 산문의 필수적인 것, 말하고자하는 핵심이다. 사실 일반 학술 논문에서는 주제와 제목이 일치한다. 예를 들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논함」이라든지 「춘향전의 근대성에 대한 연구」라는 등의 제목은 그대로 그 글의 중심 과제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소설이나 희곡, 또는 수필의 경우 반드시 주제는 있어야 하지만 그 주제는 형상화되어야 한다. 소설론에서는 이를 이야기꾼과 작가, 말하기(telling)와 보여주기(showing), 스토리와 플롯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전자는 사건의 서술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흥미있게 전달하기만 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사건의 서술을 인과관계에 의해 서술하면서 이야기 속에 어떤 주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② 소설의 대표적인 주제 포스터- 탄생, 밥, 잠자리, 죽음, 사랑 현대문학의 주제- 첫째로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대립을 볼 수 있다. 현대는 물질주의, 기계 만능, 폭력, 전쟁, 권력의 횡포 등 갖가지 비인간적인 것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유린한다. 과거에는 선과 악의 갈등, 즉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으로 이분되었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들의 대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낡은 것과 새로운 것들의 마찰이다.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보수와 진보, 과거의 가치관과 현대의 가치관의 대립 등은 결국 지나간 것들과 새 것들의 갈등이기도 하다. 셋째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도시적인 것과 농촌적인 것, 전통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 등의 대립이다. 넷째로 개성적인 삶과 상식적인 삶,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또는 한 개인에게 있어서 내면적인 심리적 갈등, 생의 근본 문제 등에서 오는 갈등이 있을 수가 있다. ③ 시의 주제에 대한 인식 관점에 따라 문학의 인식 차이- 모방론, 표현론, 효용론, 존재론 시와 산문의 장르적 차이- 소설은 주제를 드러내는 문학양식, 시는 사물에 대한 감정, 태도의 표현양식 사르트르- 시는 있음(being), 즉 존재의 문학이고 소설은 행동(doing), 즉 당위의 문학이다. ​ 시는 둥근 과일처럼 만질 수 있고, 잠잠해야 한다.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다만 존재해야 한다. - 매클리시의 「시법」 ​ 발레리- 시는 춤(dancing)이고 소설은 걷기(walking)이다. 소설은 주제의 보여줌(showing)에 중심적인 양식이고 시는 존재의 보여줌(showing)에 중심을 두는 양식이다. ​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리 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이상 「날개」에서 ​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 댁 ​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 산 넘어 바다는 보름사리 때 ​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 서정주 「영산홍」 ​ (2) 주제의 형상화 시가 존재의 표현 양식이라 하지만 존재라는 말에는 물질적 존재 역사적 존재, 인간적 존재 등이 있어 정치적인 사상적인 문제를 주제로 할 수 있다. 문제는 물질적 존재든 역사적 존재든 시적인 미학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 ​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개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 - 김남주 「다 쓴 시」 ​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팔러 간다 ​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팔러 간다. - 김지하 「서울 길」 ​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지난 밤 별똥별도 주워서 닦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닦는다. 이 세상 별빛 한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목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메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별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 정호승 「구두 닦는 소년」 ​ 햇살이 칼날 하나를 빼어 눈을 후려친다 하루가 팔딱 뛰어 일어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 민용태 「청개구리 만세」 ​ 그대 물음표 투성이의 가슴을 가르고 들어가 생 빛 한 줄기 찾으려 했네 ​ 얼굴도 눈도 없이 허공만 숨어 사는 그대 몸 전체에서 거듭되는 어제를 지켜보며 동행할 빛을 잃었네 - 김초혜 「사랑 굿 11」에서 ​ (3) 소재의 형상화 ① 벽돌집 흙은 바로 벽돌이 되지 않는다. 흙을 뜨거운 불에 구워서 질적인 변화를 주어야 벽돌이 된다. 흙으로 직접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듯이 소재를 상상력의 용광로에 넣고 구운 다음 시라는 새로운 집에 알맞은 이미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 나의 내부는 무척 은밀하다 깎아 놓은 붉은 과일과 갈아 놓은 시퍼런 칼이 깊이 간직되어 있으므로. ​ 나의 내부는 항상 무섭다 가능한 모든 짐승의 발톱과 번뜩이는 눈을 담고 기막힌 싸움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 그러나, 나는 싸우지 않는다 더욱 더 무섭게 살아갈 것이다. ​ 언제나 깎아 놓은 붉은 과일과 갈아 놓은 시퍼런 칼이 있으므로 나는 살아 있다. 분명, 살아 있다. - 임승천 「나의 내부는」 ​ ② 살아있는 생명체 둘째로 소재는 살아서 행동하고 사고하고 감동해야 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동물로 태어나 독자적인 삶을 행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의 소재는 그것이 사물이든 관념이든 상관없이 새로운 생명과 영혼과 감정을 가지고 우리 앞에 다정히 다가와야 하는 것이다. ​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몇 개 따먹고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구름은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羊)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것들을 늘어놓고, 혼자서 히죽이 웃어 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 보기도 하고 어디로 갈까? 냇물로 내려가서 목욕이나 하고 화장이나 할까 보다. 저 뭐라는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휘파람이나 불까 보다…. 그러나 구름은 딸기를 몇 개 더 따먹고 이런 청명한 날엔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 김춘수 「구름」 ​ ③ 다양한 소재와 형상화 셋째로 시의 소재는 도시든 농촌이든 전통이든 통일이든 민중이든 부자든 가난이든 그 어느 것도 선택될 수 있다. 전통이나 자연을 소재로 해야만 참다운 시고 농민이나 노동자를 소재로 한 것은 불온한 것이 아니다. 어느 것을 소재로 하든 소재가 정서화되고 내면화되고 형상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3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3 댓글:  조회:941  추천:0  2019-10-24
시와 제목 ​ 홍문표 ​ (1) 제목의 의미 ① 이름 놀이의 세계 모든 존재는 이름이 있다. 인간도 그렇다.(국적, 호적) 이름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명명. 명명되지 않은 존재는 존재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지상의 조건 ― 세계내 존재(하이데거) 그러기에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 학술적인 제목 ― 연구 주제를 나타냄 「소월 시의 민요성에 대한 연구」 문학작품의 제목 ― 제목을 본문과 함께 작품의 구성요건(작품 = 제목 + 본문) ​ 중국의 시인 왕유는 「녹시(鹿柴)」라는 제목의 시를 쓴 일이 있다. 사슴 울타리라는 뜻이다. 매우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그러나 작품 내용은 예상밖이다. ​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近景入深林(근경입심림) 復照靑苔上(복조청태상) ​ 텅빈 산 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 말소리만 들려올 뿐 석양볕만 깊은 숲에 스며들어 어제처럼 이끼 위를 비추고 있네 ​ ② 넥타이와 스카프 내용과 조화- 바람직한 시의 제목이라면 우선 시의 내용과 조화와 통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시는 각 부분들이 생물체의 기관들처럼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서 통일체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시의 제목은 시의 주제나 의미, 정서, 분위기, 이미지 등과 서로 부합되어야만 한다. 신선한 제목- 그러나 시의 제목은 참신하고 매력이 있어야 한다. 시의 제목은 넥타이와 같다. 여인의 스카프라고 할 수도 있다. 넥타이와 스카프는 분명 외모를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과 교양과 매력을 동반한다. ​ (2) 소재를 드러낸 제목 ① 중심소재와 부분소재 소재라는 말에는 하나의 작품을 이루기 위한 중심적인 재료, 즉 제재(題材)와 부분적인 재료를 소재(素材)라고 한다. 그러나 제재를 포함하여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재료를 소재라고 하기도 한다. ② 중심소재를 제목으로 한 경우 ​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 노천명 「사슴」 ​ 제목 주제 중심소재(제재) 소재 사슴 향수 사슴 긴 모가지, 관(뿔), 물 속, 그림자, 전설, 향수, 산   ​ ③ 부분소재를 제목으로 한 경우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 사람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낙엽들이 걸어간다 낙엽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 뒤를 쓸쓸히 개미 한 마리 따른다 그 뒤를 쓸쓸히 내가 따른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비로소 별이 보인다 개미들도 누더기별이 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 - 정호승 「누더기별」 ​ ④ 이미지화 된 제목 결국 시의 제목은 시의 본질이 창조성에 있듯이 제목도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창조적이란 바로 제목부터 상상력이 구사된 제목이며 이는 이미지화 된 제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온몸이 몇천만 도로 타면 시체의 기억을 태워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아닌, 순금의 기억, 아 기억만을 후대도 아닌, 손닿지 않고 느껴지기만 하는 느껴지지 않고 간직되기만 하는 간직되지 않고, 있는 그런 순금의 보통명사를 남겨줄 수 있을까? - 김정환 「純金의 기억」 ​ (3) 주제를 드러낸 제목 ① 명사형 주제를 제목으로 한 경우 ​ 주신 것 잎새. 꽃. 때 이르러 열매이더니 오늘은 땡볕에 달궈 낸 금빛 씨앗. - 김남조 「선물」에서 ​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 모든 神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 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 ―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 씁쓸한 자양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김현승 「堅固한 고독」 ​ 제목 주제 이미지 견고한 고독 고독 1연 ― 흰 얼굴 2연 ― 손발 3연 ― 창끝 마른 떡 칼날 4연 ― 목관악기 굳은 열매   ​ ② 주제문(theme sentence)을 제목으로 한 경우 ​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 별빛이 쓸고 가는 먼 길을 걸어 당신께 갑니다. 모든 것을 다 거두어간 벌판이 되어 길의 끝에서 몇 번이고 빈 몸으로 넘어질 때 풀뿌리 하나로 내 안을 뚫고 오는 당신께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동짓달 개울물 소리가 또랑또랑 살얼음 녹이며 들려오고 구름 사이로 당신은 보입니다. 바람도 없이 구름은 흐르고 떠나간 것들 다시 오지 않아도 내 가는 길 앞에 이렇게 당신은 있지 않습니까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 도종환 「당신과 가는 길」 ​ (4) 내용과 무관한 제목 ​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 김춘수 「눈물」   시의 행 가르기 ​ 홍문표 ​ (1) 행과 연의 원리 ① 시와 산문의 구성단위 일반문장- 단어 → 단문 → 단락 - 문장 모든 존재- 부분 + 부분 = 전체 시- 행 + 행 = 연 + 연 = 작품 ​ 바람은 발기발기 찢어진 기폭 ​ 어두운 산정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 비장하게 휘날리다가 절규하다가 ​ 지금은 그 남루한 자락으로 땅을 쓸며 경사진 나의 밤을 거슬러 오른다. - 정한모 「바람 속에서」 ​ 4연 12행의 시인데 산문으로 표기하면 “바람은 발기발기 찢어진 기폭, 어두운 산정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비장하게 휘날리다가, 절규하다가 지금은 그 남루한 자락으로 땅을 쓸며 나의 발을 거슬러 오른다.” 단일문장이 된다. ​ ② 행갈이의 본질 왜 시는 이처럼 행과 연을 갈라 문장을 도막치는가. 바로 여기에 산문과 구별되는 시의 원리가 있다. 산문은 이야기 문장이기 때문에, 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완결된 문장이기 때문에 연속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시는 이야기 문장이 아니라 마디마디로 느낌을 토해내는 감정적인 문장이고, 충동적인 문장이기 때문에 리듬이 있고, 호흡이 있고, 행마다, 연마다 독립된 단절이 있어야 한다. 이는 시가 음악성이나 회화성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 ③ 행과 연의 등가성 등가성(等價性)의 원리- 그렇다면 행과 연은 어떻게 가르는가. 마음대로 가르는가. 물론 과거의 시는 행과 연에도 일정한 규칙, 즉 자수율이나 운율이 있었지만 현대시는 이러한 규칙이 없으니 당연히 마음대로 가른다는 것이겠지만 여기에 엄연히 내적인 규칙이 있다. 전통적인 우리 시가의 행은 3음보나 4음보의 규칙적인 반복이고, 음보의 원리는 읊조릴 때 시간의 등장성(等長性)을 단위로 한다. 이에 대하여 현대시는 행과 연 구분의 원리를 주관적인 등가성(等價性)으로 한다. ​ 눈이 오는데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 ​ 아아 ​ 여기는 명동 성 니콜라이 사원 가까이 - 박목월 「폐원」에서 ​ 행구분의 원리는 리듬, 즉 감동을 조성하는데 있다. 리듬은 일정한 것의 반복적 형식이다. 시는 행갈이와 연갈이의 문학장르다. 구분의 원리는 시인의 주관적인 등가성이다. ​ (ㄱ) 눈이 오는데 (ㄴ) 눈이 오는데 ​ (ㄱ)은 ‘눈이’와 ‘오는데’가 대등한 단계다. (ㄴ)은 ‘눈이’가 주고 ‘오는데’는 종속이다. ​ 행과 연은 시인의 사물에 대한 주관적, 예술적, 창조적 관심을 말한다. 이를 수치로 말하면 ‘눈이’가 10g일 경우 ‘오는데’도 10g,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도 10g이고, ‘아아’는 따라서 30g이어야 한다. 물론 ‘여기는’도 10g, ‘명동’도 10g, ‘성 니콜라이 사원 가까이’도 10g이어야 한다. ​ ④ 이미지 마디와 행갈이 과거엔 자수나 음성적 리듬이 행갈이와 연갈이의 규칙이었지만 현대시의 행갈이는 이미지를 단위를 행갈이로 하여 보다 감각적인 효과를 노린다. ​ 푸드득 푸나무 서리 푸르름 하나 이파리 이파리 이파리 파도 이파리의 바다 여름 ​ 푸석이는 가을 녘 푸르뎅뎅한 눈두덩이며 엉덩이며 풍년을 모아놓고 푸닥거리나 한다 ​ 날 때는 우리 모두 푸르렇고 날 때는 우리 모두 조그마 했고 이제 우리 모두 푸석푸석한 푸나무 몇 단 - 민용태 「푸닥거리」에서 ​ 월 화 수 목 금 토 하낫 둘 하낫 둘 일요일로 나아가는 「엇둘」소리…… ​ 자연의 학대에서 너를 놓아라 역사의 여백(餘白)…… 영혼의 위생(衛生)데이…… 일요일의 들로 바다로…… ​ - 김기림 「일요일의 행진곡」 ​ ⑤ 의미마디와 행갈이 행과 연을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의미를 단위로 하는 경우이다. 이는 한 행에 하나의 의미, 한 연에 독립된 의미를 표현할 수도 있고, 전체적인 작품에서 의미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를 중요시하는 관념시나 목적시의 경우 행 갈이나 연 갈이의 비중을 덜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도의 시적 기교를 통한 문학성보다 주제의 설득이나 의미의 전달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 해가 지기 전에 산 일 번지에는 바람이 찾아온다. 집집마다 지붕을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 얹는다. 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 신경림 「산 1번지」에서 ​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면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에서 ​ ⑥ 현대시와 내재율 고시가의 정형성과 등장성- 과거의 시는 리듬을 들어내기 위하여 정형적, 외형적, 자수율, 음보율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음보나 자수는 등장성(等長性), 즉 길이가 일정한 음성적 형식의 반복으로 하였다. ​ 오 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회고가」 ​ 장르 행 음수율 음보율 의미마디 시조 1 2 3 3 4 3 4 3 4 3 4 3 5 4 3 4음보 4음보 4음보 도착 상태 회고   ​ 현대시의 내재율- 현대시도 리듬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웰렉은 현대시의 특징을 리듬(rhythm)과 메타퍼(metaphor)라고 하였다. 다만 현대시에서 리듬을 들어내는 방식이 과거의 외형적 정형적 등장성이 아니라 주관적, 내면적, 창조적 등가성의 리듬을 활용한다. 앞서 ① 행과 연의 구분방법에서 음수나 음보의 등장성이 아니라 주관적 가치의 등가성으로 행과 연이 구분됨을 밝혔다. ② 이미지 마디를 통한 반복적 리듬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③ 의미마디를 반복적 리듬으로 하여 행과 연을 가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리듬의 방식을 내재율이라 한다. ​ ⑦ 전통적 리듬과 현대시 시행의 일정한 규칙성은 한국 고대시가나 한시, 그리고 영시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는 시의 리듬감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민요나 노래를 위한 가사의 경우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으며 현대시에서도 과거 시가의 운율을 답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말한다. ​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긴 날을/ 문 밖에/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 들려요// - 김소월 「님의 노래」에서 ​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 「윤사월」 ​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조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 한용운 「복종」에서 ​ 말많은놈 엮어엮어 뒷골큰놈 엮어엮어 눈깔큰놈 엮어엮어 귀밝은놈 엮어엮어 이리 엮고 저리 치고 요리 얼렁 조리 뚱땅 돈 발라 탈 섹스 발라 분 발라 탈 디올 발라 - 김지하 「탈」에서   현대시의 연 가르기 ​ 홍문표 ​ (1) 연의 의미 원래 연을 영어로는 스탠자(stanza)라 하여 방(房)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하나의 집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지듯이 한 편의 시도 여러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따라서 연 구분의 원리도 행 구분이 논리를 확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행들이 작은 리듬의 단위, 이미지의 단위, 감정의 단위로 설명된다면 연은 그보다 확대된 리듬이나 이미지나 의미나 감정의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2) 현대시의 바람직한 연 구분 현대시를 리처즈와 테이트는 충돌과 긴장이라고 했다. 무카로브시키는 낯설음이라 했다. 이는 외형적 규칙성에서 주관적이고 내면적이고 창조적인 행갈이와 연갈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간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히 그대를 떠나오리라. - 김동명 「내마음」 ​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는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눈물」 ​ (3) 시의 연과 내면 구성 ① 시의 내면적(주관적) 논리성 시의 행이나 연들의 경우 객관적인 논리성을 요구하는 산문의 구성방식과 동일할 수는 없지만 시도 일차적으로는 의미나 메시지가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언어 행위이며 여기에 정서적 환기나 시학적 미학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인 만큼 행과 연의 구성방식은 시인의 시적 창조성과 더불어 의미와 정서를 표출하는 의식적 행위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한 편의 작품을 의미상 단일구성, 2분 구성, 3분 구성, 4분 구성, 기타 잡다한 열거식 구성을 하는데 이들은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적 필연성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 ② 2분 구성법 확대와 축소의 2분 구성 요즈음은 詩 몇 줄 쓰기 바쁘게 지워 버리기 일쑤입니다     5 ①     개나리 진달래 木蓮       ②     이런 것들이 책상머리에 와서 빤히 눈을 뜨고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간신히 잡은 詩 한 줄을 뭉개 버립니다       ①     錦江 洛東江 漢灘江       ②     그리고 南漢江의 돌밭에서 만나 함께 내 집에 와서 살게 된       ①       - 전봉건 「요즈음의 시」에서 ​ ③ 3분 구성법 외형과 내면의 일치된 3분 구성(초중종형) ​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성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 내면적 3분 구성 아내는 두 번이나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毛髮은 구름 위에 있다.     5 ①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西歸浦의 남쪽을 불고 있다.       ②     西歸浦의 남쪽 아내가 두고 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 마굿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③       - 김춘수 「이중섭 2」 ​ ④ 4분 구성 외형과 내면의 일치된 4분 구성(기승전결형)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 ​ 내면의 4분 구성 황아장수 황아짐 따라 장길 골목을 기웃대다 얻었구나 잡동사니 온 주머니 가득 얻었구나     5 ①     피리 소리 꽹과리 소리 초라니 따라 떠돌다가 잃었구나 다 잃었구나       ②     털털 빈 손 남았구나 풀밭에 무릅 꿇으면 보이느니 핏빛 노을 돌밭에 턱 괴이면 들리느니 설은 설움       ①     빗소리 바람소리에 몰려 밤길 진흙길 허둥대다 찾았구나 잃은 세월 그 잃었던 모든 것들       ④       - 신경림 「길」 ​ ⑤ 열거식 구성 ​ 난초 잎은 차라리 수묵색 ​ 난초 잎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 난초 잎에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 난초 잎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 난초 잎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쩌지 못한다 ​ 난초 잎은 작은 바람이 오다 ​ 난초 잎은 춥다 - 정지용 「난초」 ​ 무연의 열거행 ​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이야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 살이 간 분이는 아이를 뱃다더라. 어떻할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 신경림 「겨울밤」   시적 표현의 네 단계 ​ 홍문표 ​ (1) 묘사와 표현 ① 산문문장의 서술방법 목적 서술방법 알려주기 서술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설명) 주장하기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설득한다(논증) 그려내기 느낌과 인상을 잘 표현한다(묘사) 이야기하기 내용의 줄거리를 늘어놓는다(서사)   ​ ② 묘사와 산문문학 묘사의 방법- 묘사란 사물의 현상을 관찰하여 그 인상을 감각적으로 언술하는 양식이다. 여기서 현상이란 사물의 형태, 색채, 감촉, 향기, 소리, 다른 사물과의 관계 장소 등 주로 감각적이고 표면적인 인상을 말한다. 물론 인상이란 객관적일 수도 있고, 주관적일 수도 있다. 인식의 정도, 관찰의 각도, 관심 등에 따라 차이가 드러날 수도 있다. ​ ① 비가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 ② 빗방울이 유리창을 흔들어대고 있다. ③ 빗방울은 유리창에 날벌레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르르 뒹굴고 흠이 지고 한다. ​ ①은 비교적 사실적인 문장이다. ② 비가 유리창을 흔들어댄다는 표현을 통해 그 묘사가 좀 구체적이다. ③은 묘사가 세부적이고 비유적이어서 훨씬 실감나는 언술이 되었다. ​ ③ 주관적 묘사와 개관적 묘사 - 주관적 묘사 만추는 햇살이 만든다. 햇볕이 나면 풀과 나무가 활짝 꽃피며 웃다가 해만 구름에 가리면 금방 시무룩하니 몸을 움츠린다. 코를 찌르던 여름의 풀 냄새는 없고 산에서는 마른풀 향기가 희미하게 떠돈다. 잎이 성긴 나무들이 서 있는, 아무도 없는 과수원에 들어선다. 한쪽 양지바른 풀밭, 버려진 묘 위에 털썩 드러누우니, 참 억새며 다 자란 풀들이 눈앞을 가리고 해에 비쳐 반짝인다. 눈을 감고 사지를 뻗으면 한가한 즐거움이 나른하게 몸에 와서 잠긴다. 나는 마른풀에 볼을 비비며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 진동기의 「가을 풀」에서 ​ - 객관적 묘사 사십이 가까운 처녀인 그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훌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맘대로 쪽지거나 들어올리지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 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 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악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놀랠 때에는 기숙사생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 현진건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 ④ 시의 표현과 현현 묘사와 표현- 묘사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의 실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언술방법이지, 시에서처럼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전복적 언술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①의 첫 문장은 꽤 암시적이다. 그러나 그 의도는 햇볕과 풀과 나무의 불가분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언술하고자 한 것이며, ②의 언술도 주인공 노처녀의 인상을 보다 실감 있게 설명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러나 시의 경우는 보다 효과적인 설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질적으로 다른 사물로 개조하는데 있다. 이 말은 기존의 의미에서 완전히 깨닫지 못했던 존재성을 발견하고 새롭게 명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나 예술에서는 묘사란 말보다 표현(表現)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시와 표현- 표현(expression)이라는 말은 내면적, 정신적, 심적인 상태를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불가시의한 세계를 가시의 세계로, 무형의 세계를 유형의 세계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인상주의가 외부적인 사물의 형상을 내면에 각인시킨 다음 이를 다시 나타내는 것이라면 표현주의는 처음부터 내면의 세계를 외형화 한다는 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처럼 표현은 철저히 무형의 유형화다. 이 말은 표현(表現)이라는 뜻과 일치한다. 시와 현현- 한편, 시는 자신의 내면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내면, 즉 숨겨진,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를 들어낼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를 현현(顯現)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시는 묘사적 언술이 아니라 표현적 언술이고 현현적 언술이다. ​ 참 맑은 물살 발가락 새 헤적이네 애기 고사리순 좀 봐 사랑해야 할 날들 지천으로 솟았네 어디까지 가나 부르면 부를수록 더 뜨거워지는 너의 이름 ​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출렁거리는 산들의 부신 허벅지 좀 봐 아무 때나 만나서 한몸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 곽재구 「참 맑은 물살」 ​ (2) 시적표현의 네 단계 ① 이토 케이치의 나무를 보는 방법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객관적인 나무)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동적인 나무) (4) 나무의 이파리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 나무속에 승화된 생명력을 본다.(내면의 나무)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생각해 본다.(나무 저편의 세계) (8)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 ② 객관적인 나무 먹구름 뚫고 파아란 하늘만 우러러 폐원의 石塔처럼 겨우내 앙다문 裸木 ​ 오늘도 不動이다. ​ ​ 사나운 눈보라에 시달린 胴體 사지는 바람에 찢기우고 여름을 여윈 가슴은 밤마다 무서운 객혈이어도 ​ 선채로 억 년을 지켜 동결된 계절의 이랑 끝에 저리도 오만하게 버틴 겨울 哨兵이여! - 홍문표의 「裸木」 ​ ③ 동적인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유시화의 「새와 나무」 ​ ④ 내면의 나무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정현종 「사물의 꿈 1」 ​ 길이 없다면 ​ 내 몸을 비틀어 너에게로 가리 ​ 세상의 모든 길은 뿌리부터 헝클어져 있는 것, 네 마음의 처마끝에 닿을 때까지 아아, 그리하여 너를 꽃피울 때까지 내 삶이 꼬이고 또 꼬여 오장육부가 뒤틀려도 나는 나를 친친 감으리 너에게로 가는 ​ 길이 없다면 - 안도현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 ⑤ 나무 저편의 세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2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2 댓글:  조회:831  추천:0  2019-10-24
상상의 세계와 시적 창조 ​ 홍문표 ​ (1) 상상의 이해 ① 상상과 예술과 인생 시,또는 문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전하려는(telling) 세계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방법으로 감동시키려는 세계라고 했다. 그러기에 추상적인언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의 표현이 생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물 표현의 보다 효과적인 방법에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사물이나 사건으로 보여주는(showing) 방법이 최상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예술의 행위는 바로 어떤 생각이나 심정을 구체적인 어떤 사물이나 사건으로 예를 들어 보여 주는 작업이 된다. 이때 예를 들어 보여 주는 그 사물, 비유적 상관물을 이미지(image)라 하고 이러한 사고를 상상(imagination)이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은 사물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고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며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 ​ ② 상상의 개념 상상(想像)을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과거의 경험으로 얻어진 기억의 심상(心像 image 기억 에 남아 있는 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생각해 내는 것이므로 상상이라고는 하지 않으며, 사고(思考)는 과거의 경험을 추상적 으로 유추하는 것으로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상과는 구별된다. 또한 상상의 내용이 물리적 현실에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이것을 공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 여행은 공상이었지만 점차 상상으로 발전되더니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망상(忘想)이나 환각(幻覺)은 있지도 않은 것을 현실로 생각해 낸다는 데서 상상과는 구별된다. ​ (2) 상상의 탄생 ① 상상의 원리 체험의 재구성- 축적된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 제임스- 상상은 과거에 보고 듣고 느꼈던 원물(原物)의 이미지를 재생하는 것. 예술적 창조- 과거 경험했던 이미지를 결합하여, 새로운 작품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 ② 시대와 상상 르네상스 이전-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은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는 이상심리로 간주하였다. 특히 플라톤은 이것을 비합리적 세계라 하여 위험시하였고 진리와 실재의 발견에 저해되는 기능으로 보았다. 문학예술 경멸, 시인 추방설 칸트 이후- 그러나 이성과 상상의 대등한 위치, 칸트(Kant)는 진(순수이성비판), 선(실천이성비판), 미(판단력비판)를 구분, 진과 선은 이성적 영역, 미는 감성적, 상상적 영역으로 인정. 한편 급진적인 낭만주의자들은 상상과 이성의 대등한 관계나 상호 보조적 관계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참다운 인생이나 예술에서는 이성을 아주 제외하던가 극히 부차적인 역할만을 맡기고자 하였다. 시인 블레이크(Blake)는 상상만이 본질적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뛰어난 상상력을 천재성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예술지상주의 ​ ③ 체험의 재구성 방법 ​ 골짝물이 이렇게 조잘대며 흐르는데 ​ 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꺼야 ​ 산나리가 이렇게 예쁘게 웃어주는데 ​ 나무들에게도 정말은 눈이 있을 꺼야 ​ 상상- 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꺼야, 현실+상상, 바위(광물)+귀(생명체) 상상과 인생- 우리의 삶이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이듯이 상상은 현실을 미래로, 풍요로, 가능성으로 이끌어 주는 영원한 깃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상상이 없다면 미래도 없고, 초월도 없고, 자유도 없고, 삶의 확장도 없다. ​ 우두커니 서서 뒤뜰을 지키던 오동나무 보랏빛 향기 산으로 불어 보내면 ​ 발정한 수캐처럼 부리나케 내달려 오는 밤꽃 냄새. ​ 목하(目下) 산천은 온갖 교성(嬌聲)으로 들끓는다. ​ 덩달아 헐떡이는 나무들, 그 곁에 기대어 서면 나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가슴. ―김승봉의「자연(自然)」전문 ​ ④ 직관과 영감 현대에 와서 상상의 문제를 강력히 제기한 사람으로, 크로세(Croce)는 예술을 직관(intuition)이라 하였는데 이는 영감(inspiration)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심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전에는 직관이나 영감의 놀라운 상상력을 음악의 신인 뮤즈(muse)의 특별한 신통력, 즉 접신(接神)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인이나 무당이나 사제들은 시를 쓰거나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뮤즈의 이름을 불러 강신(降神)을 청하는 초령(evocation)의 행사를 벌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직관이나 영감도 잠복되었던 과거 경험의 이미지가 갑자기 드러나는 상상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 (3) 심상사고와 무심상 사고 ① 존재의 두 세계 물질의 세계 , 정신의 세계 (산, 밥, 돈/사랑 진실 영원) 물질의 세계, 의미의 세계 (산-의지, 밥-목숨, 돈-생활), ② 언어의 두 세계 물질적인 언어, 비물질적인 언어 감각적인 언어, 관념적인 언어 이미지가 있는 언어(장미, 달, 강), 이미지가 없는 언어(진리, 생명, 계속) ③ 심상 사고(image thinking) 무심상 사고(imageless thinking) 이렇게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에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물질이나 형상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전혀 이미지가 없는 관념의 세계도 있다. 언어에도 물질적 이미지가 있는 언어가 있고 전혀 이미지가 없는 관념적 언어도 있다. ‘사과’나 ‘장미’는 물질적 이미지의 언어지만 ‘성실’이니 ‘민족’이니 하는 언어에는 물질적 이미지가 없다. 이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언어와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는 관념적 언어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바로 과학적 언어와 시적인 언어, 과학자와 시인의 사고의 차이 이기도 하다. ​ ④ 심상사고와 시인 이미지를 지닌 언어는 모양과 부피와 무게가 있고 빛깔과 냄새와 움직임이 있어 사물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없는 관념적인 언어는 이성적인 판단을 통하여 추상적으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바로 이미지를 지닌 언어를 사용하여 보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물질적인 세계는 물론 비물질적인 관념의 세계까지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다. 헬렌켈러와 사랑(love)의 교육. ​ ⑤ 작품 보기 ​ 1) 닫힌 창고가 열리고 2) 하나의 현실을 세우기 위하여 3) 굳은 열매가 쪼개지고, 지금 4) 아직도 이루지 못할 통일을 위하여 5) 철조망의 가시가 붉게 붉게 녹이 슬고 있다. 6) 열 두 시가 되기 위하여 시계는 열 시를 지나 열 한 시로 가고 7) 우리는 죽음의 자유를 위하여 건강한 육체를 키운다. 박남수의「무제」 행 무심상사고 (추상) 심상사고 (구체) (1) (2) (3) (4) (5) (6) (7) (부자유, 고통, 분단) 현실 (분단, 자유, 통일) 통일 (분단, 휴전선) (통일 접근) (국력신장) 닫힌 창고 쪼개지는 열매 철조망의 가시 열한시, 열두시 건강한 육체   ​ 1)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2) 저 안에 태풍 몇 개 3) 저 안에 천둥 몇 개 4) 저 안에 벼락 몇 개 5)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6)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7)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8)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의 ‘대추 한 알’ ​ 행 무심상사고 심상사고 (1) (2) (3) (4) (5) (6) (7) (8) 대추의 붉음 저 안에 저 안에 저 안에 대추의 둥금 저안에 저안에 저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무서리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   ⑥ 무심상사고와 심상사고의 혼합 그러나 시인이라고 해서 순전히 심상사고만으로 시종할 수는 없다. 심상사고는 의식이 가장 집중될 때만 가능한데 그러한 집중적인 상태로만 오래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인의 정신은 고도의 심상세계로 올라갔다가 다시 일반적인 개념의 세계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또 시인의 상상이 심상세계를 비상(飛翔)하는 경우일지라도 그러한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여 통일된 서술(discourse)을 확보하는 고리는 전치사와 접속사 등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관계사와 추상적인 언어다. 따라서 시인은 과학자에 비하여 보다 사물을 상상적으로, 즉 심상을 통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예술가들이고, 과학자는 보다 무심상사고를 통하여 사물을 보려는 입장이다. ​ 삼월의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시각의 촉각적 심상)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 퇴색한 성교당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시각의 청각적이미지) 김광균의 “외인촌”에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시적 상상의 세 유형 ​ 홍문표 ​ (1) 상상의 분류 ① 제임스(W. James) 그는 상상을 과거에 느꼈던 원물의 이미지를 재생하는 능력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말하면서 상상을 재생적 상상(reproductive imagination)과 생산적 상상(productive imagination)으로 나누었는데, 전자는 과거 감각의 이미지가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고, 후자는 여러 원물들에서 축출된 요소들이 결합해서 새로운 전일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이란 무한한 창조의 능력이 아니라 과거 체험을 기본으로 하여 보다 새로운 이미지와 관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② 윈체스터(Winchester) 창조적 상상(creative imagination)- 경험에 의하여 주어지는 요소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전일체를 만들어 낸다. 이 결합이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라면 그 기능을 공상(fancy)이라 부른다. 연상적 상상(associative imagination)- 물체, 관념 혹은 정서에다 정서적으로 친근한 이미지들을 연합한다. 그러한 연합이 정서적 친근성 위에 기초를 두지 않을 때에 그 과정을 공상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해석적 상상(interpretative imagination)- 정신적 가치 혹은 의미를 지각하여 그러한 정신적 가치가 들어 있는 부분 또는 성질을 가지고 대상을 표현한다. ​ (2) 연상적 상상 ① 유사성의 재구성 연상적 상상은 우리가 일상적 경험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지(旣知)의 유사성에 근거한 상상이며 창조적 상상은 시인의 비상한 직관에 의해서 전혀 유사성이 없는 사물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강철이다”라는 말은 그 사람의 강인한 체력을 강철에 견주어서 표현한 연상적 상상이지만 “그 사람은 놋쇠 항아리다”라는 말은 분명 상상력에 의한 진술이지만 사람과 놋쇠항아리 사이에는 전혀 예상을 뛰어넘는 이질성을 느끼게 하는 창조적 상상이다. ​ ② 길과 넥타이 ​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 김광균 「추일서정」에서 ​ ③ 빵과 쨈과 과수원 ​ 이 창가에서 들어요 둘이서만 만난 오붓한 자리 빵에는 쨈을 바르지요 오 아니예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예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서 먹어요 - 전봉건 「과수원과 꿈과 바다 이야기」에서 ​ ④ 겨울나무와 악기 ​ 잎이 지면 겨울 나무들은 이내 악기가 된다. 하늘에 걸린 음표에 맞춰 바람의 손끝에서 우는 악기. ​ 나무만은 아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보아라. 얼음장 밑으로 공명하면서 바위에 부딪혀 흐르는 물도 음악이다. ​ 윗가지에는 고음이. 아랫가지에서는 저음이 울리는 나무는 현악기. 큰 바위에서는 강음이 작은 바위에서는 약음이 울리는 계곡은 관악기. ​ 오늘처럼 천지에 흰 눈이 하얗게 내려 그리운 이의 모습이 지워진 날은 창가에 기대어 음악을 듣자. ​ 감동은 눈으로 오기보다 귀로 오는 것. 겨울은 청각으로 떠오르는 무지개다. - 오세영의 「음악」 ​ (3) 창조적 상상 ① 비유사성의 상상 앞서 인용한 시들은 모두 물질적 소재와 물질적 이미지의 상상적 연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광균의 「추일서정」에서 낙엽이 지폐로 되거나 전봉건의 작품에서 쨈이 과수원으로 되거나 돌이 연꽃으로 되는 일은 모두가 물질과 물질의 이미지를 1:1로 단순 대비한 유사성과 비유사성의 관계다. 그러나 물질과 물질의 이미지나 관념들이 상식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비유사성으로 결합하는 경우가 있다. ​ ② 돌과 연꽃 ​ 내가 돌이 되면 ​ 돌은 연꽃이 되고 ​ 연꽃은 호수가 되고 - 서정주 「내가 돌이 되면」 ​ 나(인가)와 돌(광물)- 비유사성 돌(광물)과 연꽃(식물)- 비유사성 연꽃(식물)과 호수(광물)- 비유사성 ③ 나와 위험한 짐승 ​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 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그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 ④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 ​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의 「동천」 ​ (4) 해석적 상상 우리는 사물에 직면하게 될 때 먼저 객관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게 되고, 연상작용을 통하여 인식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나와 인생과 세계와 어떤 관계, 어떤 의미가 있는 가를 주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이를 이미지로 표현한다. ​ ①당신과 눈송이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 김현승의 “절대신앙” ​ ②손의 상상적 해석 ​ 물상(物像)이 떨어지는 순간, 휘뚝, 손은 기울며 허공에서 기댈 데가 없다. ​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왔을까. ​ 잠깐씩 가져보는 허무의 체적(體積). ​ 그래서 손은 노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기원이 된다. ​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어왔을까. ​ 손이 이윽고 확신한 것은,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박남수의 “손” ​ ③ 나무의 상상적 해석 ​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정현종 「나무의 꿈」   에덴의 상실과 회복 시정신을 찾아서1 ​ 홍문표 ​ (1) 에덴의 상실 ① 에덴의 특징 영원한 시간, 무시간의 세계 거리가 없는 무한한 공간 생로병사가 없는 곳 완전한 행복, 욕망, 결핍이 없는 곳 인간과 타자가 공존하는 세계, 이성보다 감성의 세계 ② 에덴의 상실 성서적 설화, 금단의 열매 선악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의 상징물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지혜(이성)의 욕구 이성적 욕망의 선택과 감성적 삶의 상실 이성(지혜)의 선택은 인간중심주의로의 전환(신중심에서) 신, 인간, 자연의 공존질서 붕괴, 죽음과 저주, 신과 단절, 진리의 부재 치열한 투쟁의 세계, 카인과 아벨 시간 공간의 유한한 세계내 존재(하이데거),허무, 절망 ③ 이성의 타락과 인간의 절망 이성의 두 얼굴- 하나님 말씀 같은 logos적 보편적 이성과 이성,양심 물질적, 인간적 욕망을 계산하는 도구적 이성 이성의 타락- ‘말씀’같은 보편적 지혜인 logos 보다 물신주의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전락 이성의 도구화, 이성의 물화(物化), 폭력화 폭력화된 이성, 인간성 상실, 주체와 타자의 분리, 물신주의, 빈부 격차, 불평불만, 방그라데시의 행복 지수 서열주의, 개인마저 소멸, 절망의 실존상 ​ 나무도 없는 산정이다 여윈 등성이 한줄기 바람 고목의 가지가 바르르 떤다 ​ 허공을 향한 무위한 응시 영겁을 더듬다 지쳐버린 침묵 사나운 부리가 언덕을 치닫는다 마지막 심장마저 노리는 두려운 대낮 벼랑에 매달린 아슬한 절망이다. - 자작시 「산정에서」에서이상, 거울 ​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없을것이오 ​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귀가있소 ​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 거울때문에나는거울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의 “거울” ​ (2) 에덴의 회복 ― 구원의 길 ① 구원의 본질적 구조 실낙원 → 복락원 지상(인간) → 천당(신) 유한한 시간 → 영원한 시간 분리된 공간 → 너와 내가 공존하는 공간 죽음 →영생 불안 → 평화 절망 → 희망 신과의 회복, 진리의 회복, 참 존재와의 만남, 구도의 길 ② 인간으로서 구원은 불가 불교-제행무상, 기독교-죄의 값은 사망 키에르케고르- 실존의 세 단계 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초월은 신의 영역(인간의 영역이 아님) ③ 인간으로서 가능한 길 불교-참선수행, 기독교-신의 은총과 믿음으로 상상을 통하여 분리된 공간에서 너와 내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느끼는 사고 물화(物化)- 내가 네가 되는 것(인간의 사물화․ 신격화) 육화(肉化)- 네가 내가 되는 것(사물의 인격화, 신의 인격화) 이성 → 감성(동일시, 상상, 시적 구원의 가능성) ​ 그렇게 산은 말하고 있었다. 뭉치면 산다고 뭉쳐서 덩어리져서 푸르딩딩 버티면 산으로 남으면 산다고 산은 말하고 있었다 뭉치자고 덩어리지자고 이렇게 웅크리고 잔뜩 웅크리고 버티자고 산은 산들에게 산은 산 것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박의상 「산 1」에서 ​ 아무도 안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오지 않은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손으로만 다녀가는 봄아, 오십년 살고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 김남조 「봄에게」에서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시조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깊섶 위에 떨꿔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박두진의 “꽃”     존재탐구와 시적 구원 시정신을 찾아서2 ​ 홍문표 ​ (1) 자아의 존재인식 ① 인간의 길 인간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인간의 정체성)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나의 정체성) 자연, 세상 등 존재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자연과학적․인습적 참모습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고 깨닫고 느끼는 실존적 참모습은 무엇인 가 인간은 삶의 정당한 것, 궁극적인 것,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는 존재 ② 나(인간)는 어떤 존재인가 불교- 인연의 존재, 무상의 존재 유교- 음양오행의 운명적 존재 기독교- 피조물, 타락한 죄인의 존재 프로이드- 욕망의 존재(이드, 이고, 슈퍼이고) 사르트르- 인간(대자), 자연(즉자)의 부조리한 존재 하이데거- 인간은 존재 망각의 과정 ③ 불완전한 결핍의 존재 ​ 흘러도 흘러도 바다를 향한 춘향의 丹心 ​ 하루도 열두 때 걸신들린 갈증이게 하소서. ​ 분화구로 치솟는 불만의 식욕이기에 강물은 늘 들녘을 적시고 시간을 적시고 서러움을 적시고 이 바스락거리는 목숨을 적시고 ​ 정갈한 낮이면 하늘 언저리 순진한 감색자락 입에 물고 찝질한 사랑가도 불러 봅니다.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2」에서 ​ (2) 참존재는 어디 있는가 ① 존재의 은폐성 이러한 질문은 참모습, 참진리가 은폐되었다는 것이 전제된다. 종교적 은폐성- 본래 하나님은 본 사람이 없으되(요 1:18) 하나님, 절대자의 은폐성 ② 존재의 가변성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변함, 참모습의 변질(본질의 상실, 변질) 골드만의 「숨은신」- 보편성의 상실 니이체- 신은 죽었다 ​ 신을 찾는 것 본질을 찾는 것 진실을 찾는 것 가치를 찾는 것     5 참을 밝히려는 노력       ​ ③ 시인의 길, 시의 궁극적인 목표, 가치 ​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별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서정주 「꽃밭의 독백」 ​ (3) 참존재와의 만남 ① 존재와의 만남은 불가능한가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낙관주의) 과학- 물질적인 존재발견(가설과 증명) 철학- 우주와 인생의 존재발견(사유) 종교- 신앙생활(득도, 체험) 불가능하다(허무주의) ② 만남의 방법과 조건 만남의 조건- 소통이 가능해야 함. 소통을 위해서는 소통의 통로 코드(code), 계시물, 중개자필요. 전열기와 전선 무당 신(신의 코드)과 인간(인간의 코드)의 근본적 단절(코드가 다름) 천상과 지상, 참존재와 현실 소통 불가능은 코드가 다르기 때문 코드를 일치시킬 수 있다면 소통이 가능- 만남, 깨달음, 득도, 구원 일반종교 : 인간의 노력으로 신적 코드 가능(상향적) 불교 유교 기독교 : 신의 사랑에 의한 하향적 코드(인자, 육화) 시의 원리- 상상과 이미지에 의한 코드의 발견과 소통 ③ 소통과 만남의 원리 주체 - 코드 - 객체 화자 - 메시지 - 청자 신 - 계시물 - 인간 하나님 - 예수 - 인간 시 - 이미지 - 시적 진실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 ④ 존재증명의 유일한 수단 하이데거- 은폐된 존재를 발굴하는 유일한 수단은 언어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존재의 집 그런데 참다운 존재는 이성적 언어, 산문적 언어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휠더린의 시, 반 고호의 회화가 오히려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시적인 언어). 직관과 영감- 직관이란 논리적인 유추를 통해서 사물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 에 잠재되었던 체험이나 이미지가 돌발적으로 노출되면서 놀랍게 사물의 존재성을 발견하 는 방식이다. 이를 달리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이것을 시신(詩神)이 접 신 되어 작용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 (3) 시적 구원의 길 ① 종교적 구원 불교- 종교적 구원이란 불교의 경우, 번뇌와 무상의 사바에서 벗어나 성불이 되는 경지다. 이러한 과정에는 고행이 있고, 깨달음의 과정에 법열이 있고, 마침내 아트만(atman), 즉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경지와 해탈이 있다. 기독교- 아담의 원죄는 에덴의 타락, 신과의 단절, 죽음인데 신의 사랑으로 예수의 현현과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를 믿음으로 구원된다. 이 과정에 성령의 역사하심, 충만함, 영혼의 자유, 영생이 있다. ② 구원의 본질 ― 영혼과 육체의 치유 불완전에서 완전, 유한에서 무한, 무지에서 깨달음, 절망에서 희망, 구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감정, 인식- 삼매경, 법열, 입신, 엑스타시(extacy) 신명, 충만함, 카타르시스, 영혼의 치유, 육체의 치유(대체의학, 마음이 육신을 지배하고 치유한다) ③ 시적 구원 물아일체, 깨달음, 초월의 경지, 새로운 명명, 새로운 세계의 창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과 기쁨, 해탈, 자유. ​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고 너는 내 욕망의 무지개가 되어 내 손에 가득한 장미가 되어 흐르적거리는 육질의 껍질을 벗고 날마다 비상하는 오월이 되어 육자배기로 돌아가는 자유가 되어 현재로 자족하는 서정시가 되어 아스라히 펄럭이는 깃발이 되어 ​ 존재의 뿌리가 되어 존재의 가지가 되어 존재의 존재가 되어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 17」에서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 너의 눈은 번개와 눈물의 조국 말하는 고요 바람없는 폭풍, 파도 없는 바다 갇힌 새들, 졸음에 겨운 황금빛 맹수 진실처럼 무정한 수정 숲속의 환한 빈터에 찾아온 가을, 거기 나무의 어깨 위에선 빛이 노래하고 모든 잎사귀는 새가 되는 곳 아침이면 샛별같이 눈에 뒤덮인 해변 불을 따 담은 과일 바구니 맛 없는 거짓 이승의 거울, 저승의 문 한낱 바다의 조용한 맥박 깜박거리는 절대 사막   - 옥따비오 빠스 「너의 눈동자」  
1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1 댓글:  조회:917  추천:0  2019-10-24
1. 시학의 길 ​ ​ 홍문표 ​ (1) 시학의 개념 ① 시학의 의미 시학(poetics)이란 시에 대한 학문이다. 법학이 법에 대한 학문인 것처럼, 시학은 시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이며 객관적인 진술이다. 따라서 거기엔 엄격한 이성의 사고와 과학적 탐구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② 시학의 어려움 그러나 시는 과학의 대상처럼 고정적인 물질이거나 객관적인 논리를 통하여 제작된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논리나 이성을 초월한 상상과 정서를 통하여 표현된 창조적 산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논리적인 대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어떤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③ 인생관과 시관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시인들도 시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시적인 체험과 인식을 토대로 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의 정의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된다. 그러므로 엘리어트는 시의 정의에 대한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지적하면서, 시의 정의를 논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④ 시학의 정당성 그러나 인생관이 분명하지 않은 자의 삶이 무가치, 무책임한 것처럼 시에 대한 분명한 논리와 신념과 비젼이 없을 때 그는 다만 언어를 희롱할 위험이 있다. 시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분명한 시관이 있고서야 전문적인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2) 시학의 방법 ① 종합주의와 다원주의 산 밑에 있을 때는 자기가 오르려는 산봉우리 아니면 몇 그루의 나무만 보인다. 그러나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이고 여러 개의 산이 있음도 알게 된다. 학문의 길, 시학의 길도 보다 많이, 보다 높게 산에 오른 자가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시를 볼 수 있다. 이는 인생의 길도 그렇다. ​ 발치엔 질퍽하게 밟히는 아카시아향 중턱엔 천년 침묵의 속살을 후벼대는 쑥국새 정수리에 오르니 하늘문이 열리네. ​ 무질근한 일상을 털고 신발끈 조여매고 허위허위 오른 산길 엉클어진 호흡을 내뱉으며 한 시간을 버틴 결심 팔각정에 앉으니 하늘 복판에 내가 있네. ​ 손 끝에 잡히는 새하얀 낮달 싱싱한 햇살 몇 두룸 소나무 잔가지에 걸어 놓고 눈을 감으니 사르르한 이브의 눈짓 세상이 온통 꽃밭이네 - 자작시「날마다 산에 올라․5」 ​ ② 장님과 코끼리 시의 이성적 접근 방식으로 인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일화를 들고 싶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소감은 경험한 조건에 따라 각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학이나 문학비평에 다양한 이론과 논쟁은 결국 어느 한 편만을 보고 주장한 편견의 역사다. 그러나 그들의 소감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본다면 어느 정도 코끼리에 근사한 모습을 추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에 몽타주라는 수법이 있다. 여러 사람들의 부분적인 인상을 들어서 이를 종합하여 실물과 유사한 모습을 재현하는 일이다. 시학이란 결국 시적 체험들의 논리적 종합이고, 시적 인식들의 객관적 몽타주이다. 거기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론들의 종합적인 정리가 있어야 하고 작품 속에 나타난 구조의 원리를 발견해야 하는 분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광범위한 시론의 정리와 작품의 분석을 통한 끝없는 모색과 논의가 가장 정직한 시학의 접근 방식이다. 흄은 보편적 지식의 유일한 토대는 경험과 관찰이라고 했다. 물질적 영역은 실증주의, 정신적 영역은 경험주의다. ​ (3) 에이브럼스의「거울과 등불」 ① 문학의 기본적인 구성조건 시학에의 접근방식은 물론 관점에 따라 무수히 열려질 수 있는 세계다. 그러나 아무리 시학의 영역을 확대한다 하여도 그 기본 문제는 작품 그 자체에 관한 것, 작품을 창조한 시인, 작품을 읽는 독자, 그리고 작품과 시인과 독자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 즉 우주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에이브럼스는 그의 문학 이론서인「거울과 등불(The Mirror and The Lamp)」에서 예술 작품을 형성하는 네 요소를 들어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술 작품이란 소재와 사건 또는 환경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우주(universe), 예술가(artist), 그리고 청중(audience)이 삼각을 이룬다고 하였다. ​ 우주(모방론) 작품 (존재론) 예술가(표현론) 청중(효용론) 따라서 그의 이론은 작품과 그 대상인 우주와의 관계에서 전개되는 모방론(mimetic theory), 작품과 독자와의 실제적 효용관계에서 전개되는 실용론(pragmatic theory), 작가의 내면적 정신, 영혼, 상상, 정서 등의 표출이라는 관점에서 전개되는 표현론(expressive theory), 작품을 어떤 외부적 사항과 독립시켜 오직 작품 그 자체만의 객관적 존재로 논의되는 존재론(objective theory)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의 이해나 해석을 작품 외적인 조건과의 총체적인 관계성에서 파악하려는 자세와, 그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다각적으로 조명한다는 입장은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 (4)모방론의 시관 ① 모방론의 의미 거울의 시학- 모방론이란 거울처럼 우주, 자연, 인간, 사회, 현실에 대한 생각을 거울처럼 작품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뜻에서 에이브럼스는 거울의 시학이라고 했다. 무엇에 대한 시학-따라서 시나 예술이 작가에 의하여 표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부분이 바로 무엇(object)을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다. 오랜 전통- 모방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라든지 플라톤이 “지상의 모든 현상은 본질(idea)의 모방”이라는 고대의 문학관에서 시작하여, 고전주의나 근대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력한 문학의 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② 모방론의 유형 플라톤의 모방론- 플라톤의 견해처럼 모방이란 진리나 본질과는 무관하고 무가치한 현상을 흉내내는 정말 거짓의 모조품(imitation)이란 생각이다. 현상은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예술은 바로 진리의 그림자인 현상만을 흉내낸다는 데 모방의 부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은 그의 철인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시인추방설을 제기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이란 모든 예술의 본질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며 본능의 만족은 또한 즐거운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방은 관념의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상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진실을 삶의 현실에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모범에 대한 모방- 모방은 문학적 모범에 대한 모방을 뜻했다. 이것은 작가의 글쓰는 훈련을 강조한 로마시대 이래 지속되는 개념이다. 이른바 고전이 후배 작가의 모범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믿어지고 있다. 고전주의나 복고주의도 그러한 발상이다. 재현과 반영- 근대에는 모방론이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는 우주적 본질의 모방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말이다. 이는 특히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발전과 관계가 깊은 개념이다. 근대문학은 인간의 본질, 실재보다도 눈에 보이는 사실의 표면을 충실히 보여주는 일에 주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재현은 다시 반영이란 말로 바뀌었다. 반영의 경우에는 사실의 반영보다 현실의 반영에 주안점을 두었고, 현실은 또한 역사적 현실이나 모순된 현실 등 비판적 관점에서 비판적 사실주의 계급주의에서는 계급간의 투쟁을 반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제기된다. ​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 (5) 효용론의 시관 ① 효용론의 의미 문학의 존재이유- 문학도 인간의 것이라고 할 때 작품은 필연적으로 작가는 물론 독자와도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기 마련이다. 즉 작품은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하는 작품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것이다.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서 생각할 때 문학은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준다는 효용성이 제기된다. 심리적 효과와 교훈적 효과- 독자에 대한 효과는 크게 보아 독자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심리적 효과와 삶에 유익한 지식이나 도리를 알려준다는 교훈적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끝없는 논쟁- 문학의 존재성을 개인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 심리적인 것인가. 윤리적인 것인가. 오락적인 것인가. 교훈적인 것인가. 세계관, 인생관에 따라 문학의 존재이유는 늘 논쟁거리가 된다. ② 효용론의 전개 시인추방설과 시적 카타르시스- 일찍이 플라톤은 시인이란 본질(idea)을 추구하지 않고 본질의 그림자인 현실을 모방하고 쾌락을 조장하는 시인을 추방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에 유익한 교훈적인 시만은 인정한다고 했다. 교훈설의 선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행복의 속성이라 했고, 유덕한 생활이 바로 쾌락이라고 했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도 쾌락이라 했다. 그러나 비극시에서 보듯이 모순되는 두 정서, 공포와 연민을 통해 마침내 평형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그는 쾌락이란 말보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란 심리적 정화작용이다.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닲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한일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 독자중심의 문학론- 그동안의 문학은 작가가 독자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하는 작가 중심적 문학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작품의 존재성을 독자가 결정하는 논리로 전환했다. 이는 오늘날의 상품은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시장경제의 논리와 같다. ​ (6) 표현론의 시관 ① 표현론의 의미 등불의 시학- 모방적 시관이 시는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로 설명되고, 효용론적 시관이 시는 독자에게 어떤 실제적 효과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표현론의 시관은 시인의 내면적 세계를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입장이다. 예술 작품이란 근본적으로 내면 세계의 구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과정은 시인의 지각이나 사상, 감정 등이 결합하여 구체화된다. 따라서 표현론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하는 등불의 시학이 된다. 낭만적 시관- 표현론의 중심은 물론 낭만주의이겠지만 고대에는 시인의 창조적 기능을 신비적인 영감의 산물로 보려 하였고, 근대에 와서 워즈워드의 정서의 자발성이나 코울리지의 상상설이 대표적이며 동양에서는 詩言志나 詩氣論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② 표현론의 전개 영감과 창조- 표현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근대 낭만주의시대이지만 시가 시인의 내면적인 특성으로 창조된다는 생각은 고대로부터 시작하였다. 먼저 플라톤은 시를 특별한 영감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시인이란 신령한 힘에 접신된 상태에서 그의 입을 통하여 말, 즉 시를 토해내는 것이라 하였다.「대화편」이온에서는 그것을 시신(muses)이 준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의 영감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시는 영감을 받은 물건이라든지 시의 기술이라는 것은 천부의 재주를 가진 자 또는 광기가 있는 자가 가질 물건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후대의 천재론과 결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영감론을 비판하고 문학이란 후천적 연마의 소산이라는 기술(art)론을 제기하였다. 로마의 실용적 사고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다. 워즈워드의 자발성- 시신의 영감을 받아서 시를 쓴다거나, 시인은 보통 사람과 달리 특별한 재능을 지닌 천재라는 논의는 마침내 문학의 보편적인 법칙성을 극복하고 창조적 개성이니 독창성이니 하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선구자로 워즈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시란 감정의 자발성(spontaneity)에 의한 흘러 넘침(over flow)이라고 했다. .코울리지의 상상력- 내면의 표현은 결국 상상력으로 구체화된다. 해즐리트는 시는 오직 상상의 언어라고 했고, 코울리지는 상상은 시적 능력이고, 시적 능력은 곧 시인이라고 하였다. ​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때를 날려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 (7) 존재론의 시관 ① 존재론의 의미 존재의 의미- 한 사물이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드러날 때 이를 존재(being)라고 한다. 물론 존재의 본질적 개념은 비유(非有)나 무에 대한 대립 개념이며 상징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을 점하고 있는 실재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의 존재란 작품 그 자체라는 의미이며, 이는 객관적(objective) 또는 형식적(formal) 관점에서의 인식이기도 하다. 존재론의 문학관- 문학 작품이 작가에 의하여 제작되고 독자에 의하여 인정된다 하더라도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내용과 형식을 지니며 독특한 미학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작품의 고유한 존재 양식의 구조를 통해서 문학을 인식하려는 것이 존재론(objective theory)의 관점이 되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존재론은 작가가 한 작품을 통하여 드러내고자 한 설명된 내용(paraphrasable content), 즉 이야기 되어진 무엇(what)이 아니고 어떠한 방법(why)으로 이야기 되었는가 하는 표현방식이 문제가 된다. 형식화와 형상화- 작가는 작품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작품 제작이라는 커다란 종합화, 즉 형식화의 과정을 충족시키는 부분들이다. 작품 속에서의 사상 감정이란 다양한 의미 구조일 뿐이며 그것이 형식화되지 않으면 작품이란 전체 속에 참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상과 감정은 형식을 통해 형상화된다. ② 존재론의 전개 처음․중간․끝-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완전한 전체는 처음, 중간, 끝이 있는 것이다. 처음은 필연적으로 그 앞에 아무것도 따르지 않되, 그 뒤에는 다른 것이 자연히 따르는 것을 말하고, 끝은 그와 반대로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따르되 그 뒤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중간은 무엇을 따르고 동시에 뒤에 무엇이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플롯을 엮는 사람은 아무데서나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다. 유기적 형식- 낭만주의 시대 문학관은 다양성과 통일성, 생명적, 역동적인 형식을 말했는데 쉴러는 살아있는 유기체적 형식만이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움의 최고 이념은 ‘사실과 형식의 완전한 결합과 균형’이라고 했다. 여기서 유기적 형식이란 전체와 부분이 생명체와 같이 긴밀한 조화를 갖는 것을 말한다. 구조적 형식- 현대에 와서는 형식이란 말보다 구조라는 말을 사용한다. 러시아 형식주의, 영미 신비평, 프랑스 구조주의 등 일련의 형식주의는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하는 내적 질서로 본다. 내적 질서에 대한 용어로는 랑그(lange), 아이러니(irony), 역설(paradox), 긴장(tension), 낯설게 만들기, 전경화 등의 말들을 사용한다. ​ 한 개의 원이 굴러간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꽃잎들...... 금빛의 수밀도만한 세 개의 원이 천 개의 원이 굴러간다. ​ 신의 눈알들이다. 어떤 눈알은 모가 서서 삼각형이 되어 쓰러진다. 어떤 눈알은 가로 누운 불기둥이 되어 뻗는다. 한 개의 원이 8월 한가위의 달만큼 자라서 굴러간다. 문덕수의 「원에 관한 소묘」     사물 인식의 두 방법 ​ 홍문표 ​ 1.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 (1) 국화와 누님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우주나 사물이나 내면의 세계를 시라고 하는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시인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란 말은 결코 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도 사물을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한 진리를 언어로 기술하는 점에서 시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시가 구분되고 철학과 시가 구분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음 두 글을 보자. ​ ㉠ 국화 : 명. 식물. 엉거시과에 속하는 식물. 줄기는 나무질화 하며 잎은 대개가 깊이 찢어지고 품종이 다양함. 꽃의 빛깔이나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대국. 중국. 소국으로 나눠지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하국. 추국. 동국으로 나누기도 함. - 현문사「한국어 대사전」에서 ​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국화 옆에서」 ​ ㉠의 문장 :국화에 대한 객관적, 사전적, 학술적 서술 국화의 생태, 종류, 특징들을 객관적으로 인식 ㉡의 문장 : 국화에 대한 시인 자신의 주관적 견해, 비과학적 서술 국화꽃과 소쩍새, 국화와 누님, 과학적으로 전혀 무관 그러나 시인은 모든 현상들이 유기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 주관적 인식 ​ (2) 주관과 객관 ① 인간의 의식 작용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이란 언제나 움직이는 에너지다. 만일 의식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어 있거나 잠자는 상태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이고, 깨어 있다는 것은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의식의 움직임은 밖으로 나아가려는 원심력과 안으로 들어가려는 구심력으로 항상 줄다리기를 한다. 이렇게 의식이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 원심력은 기존의 객관적 기준에 의한 인식이고 구심력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준에 의한 인식이 된다. 이를 객관과 주관이라 한다. ② 과학자의 의식 작용 : 원심적, 객관적, 사회적, 역사적, 물질적, 실증적, 추상적, 합리적 ③ 시인의 의식 작용 : 구심적, 주관적, 개인적, 개별적, 정신적, 구체적, 정서적, 심정적 ④ 객관적 인식의 특징 : 일회적, 지적, 현실적, 실용적, 물질적, 침묵적 ㉠의 문장 ⑤ 주관적 인식의 특징 : 생명력, 영원성, 충만함, 행복감, 감동적 ㉡의 문장 ​ 2.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 (1) 감성과 이성의 본질 인간은 근원적으로 이성(logos)과 감성(pathos)을 공유한 존재다. 그런데도 문명사는 이성, 지혜, 지식, 합리성, 과학성의 우월성만을 강조, 이성만능주의, “아는 것이 힘이다” 감성적 기능을 경시 (2) 좌뇌와 우뇌 최근의 뇌과학- 좌뇌와 우뇌의 기능분석, 좌뇌-이성적 기능, 우뇌-감성적 기능. 두뇌의 좌측을 상한 사람은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우측을 상한 사람은 감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좌뇌를 상하면 수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뇌를 상하면 눈물이나 웃음을 모르는 목석 같은 인간이 된다. 좌뇌는 사물을 판단하고 계산하고 추상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우뇌는 척추신경과 더불어 느끼고 상상하고 창조하고, 즐거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의 천재교육- 우뇌를 키워라,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를 높이는 것 (3) 현대인 비극 신은 우리에게 좌뇌와 우뇌를 균형있게 개발하여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삶을 향유하도록 축복하셨다. 그런데 인간들은 좌뇌만 개발하여 이성적 사고, 이성의 문화에만 치중한 정신의 반신불수, 불구자의 삶을 살게 된다. 지식, 기술, 이성만을 중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인간의 물질적, 기술적, 지적, 권력 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목적으로만 수행되어질 때, 세상은 이기적이고, 경쟁적이고,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만듦. 여기에 현대인의 비극이 있음. (4) 시는 감성적, 주관적 세계 인식 시란 이성 중심에서 감성 중심으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세계를 인식하여 이성중심의 불균형의 삶에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 삶을 회복하려는 구원의 행위다. ​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내게로 불 밝혀 가야 하는 땅이 보인다. 세상을 다 받아들고도 비어 있는 손 잠들지 못하는 나라 산맥이 일어서고 골짜기가 깊다. 강물이 꿈을 꾼다. 바다가 깨어 있다. 미래의 내 음성이 들리는 곳 손바닥 깊이 들어가면 고요하다. 이 고요한 길속에 길이 엇갈려져 끝이 없다. 혼돈과 창조의 거센 바람소리 우주의 숨소리 밤하늘 별의 운행이 화안히 비친다. 모두가 죽어 여기 돌아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항시 침묵으로만 말하는 내 미지의 손이여. 이 깊은 신비의 기슭에서 누군가 밤마다 내 영혼을 향하여 활을 쏘고 있다. - 이성선「손의 명상」 ​ 3. 과학적 진실과 시적 진실 (1) 과학적 진리에 대한 우상 과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이기 때문에 이성중심의 인간들은 과학에만 진리가 있다는 우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나 지식의 세계는 개개의 구체적인 실존이나 리얼리티를 무시하고 이들의 공통된 속성만을 축출하여 이를 개념적으로 추상화한다. 그것은 존재의 다양성이나 존재의 절대성을 무시하는 평균적인 것이며 산술적인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0세라 한다. 이는 매우 과학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꼭 80세, 일 분 일 초도 틀리지 않는 만 80세 정각에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평균 수치로 그러한 결론을 추상할 뿐이다. 이처럼 개개의 존재들에 대한 실체가 사멸되고 추상화된 기호만 남는다는 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망각’이며 릴케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개개의 사물을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의 세계는 개별성, 특수성, 내면성, 영혼의 세계가 무시된 한 쪽만의 세계일 뿐이다. (2) 진리와 패러다임 최근에는 같은 과학이라도 관점이나 구성방식, 해석과정에 따라 그 진실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갖는다.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의 의미는 그 전체의 방향과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쿤은 이와 같이 개별적인 구성요소의 의미를 결정하는 전체적 관점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하였다. 가장 분명한 예로 물리학에서는 전기를 파장(波長)으로 보지만 화학에서는 미립자(微粒子)로 보는 것이다. 즉 어떤 패러다임이냐에 따라 과학에서조차 진실은 천의 얼굴을 갖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패러다임조차 애당초 존재한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체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만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지닐 수 없으며 과학적 진리도 상대적이며 오히려 주관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과학적 진리가 객관적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일정한 패러다임이라는 범주 내에서 논리성을 지녔다는 뜻일 뿐이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바뀔 경우 객관성이나 논리성은 함께 상실되거나 변하는 것이 과학적 진리의 서글픈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3) 시적 진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진리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즉 과학적 진실은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고, 종교적 진실은 종교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며, 시적 진실은 시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만이 진실이 아니라 종교적 진실도, 시적 진실도 각각 그들 나름의 진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 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조지훈「승무」에서 ​ 우리의 전통무용 중에 승무(僧舞)라는 춤이 있다. 고깔 쓰고, 장삼 입고, 때로는 법고를 두드리며 춤을 춘다. 명칭 그대로 승무는 불가의 승려들이 추는 춤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이든 남승들이 추는 승무를 보면 좀 투박하고 지루한 느낌이다. 그런데 조지훈의 시「승무」를 읽노라면 승무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춤사위에 사로잡힐 뿐만 아니라 세사에 시달린 우리들의 번뇌마저 벗어나는 듯한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승무가 대수롭지 않은 춤인데 감성적으로 표현된 시「승무」를 통해 보면 황홀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현실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성적 사고 속에 매몰되어 있던 승무의 의미가 이처럼 시인의 감성적 언어를 통하여 이른 봄의 개나리처럼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머나먼 비단길을 구부려 낙타 등을 만들어 타고 가고 입 벌린 나팔꽃을 구부려 비비 꼬인 숨통과 식도를 만들고 검게 익어가는 포도의 혀끝을 구부려 죽음의 단맛을 내게 하고 여자가 몸을 구부려 아이를 만드는 동안 곧은 약속을 구부려 반지를 만들고 - 송찬호,에서 ​ 구부리다라는 단순한 낱말이 이처럼 낯설게 사용되어 우리 정서를 얼마나 세련되게 하며 공간과 시간 또 다른 의미의 세계를 창조하고 확장하여 정신의 깊이와 폭을 넓혀가고 있는가? 또한 개념적인 낱말들이 구부리다라는 한 시어 속에 들어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면서 얼마나 폭 넓은 감동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가? 정보 언어와 유통언어에 물든 관습적인 기존 가치 세계를 뒤집고 한 번도 여행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며 끝없는 상상력으로 우리를 초대하는가?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 홍문표 ​ 1. 시는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1) 미묘한 감정 감성 감정 정서 마음 등의 용어들을 실질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오감을 통해 느끼는 순간적 감각적 인식이다. 이성의 세계, 지식의 세계는 한 번 습득하면 영구적이지만 감성의 세계는 순간 느꼈다 사라지는 감각이다. 이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순간순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늘 변할 수 있는 예민하고 미묘한 세계다. ​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마음」 ​ (2) 감정과 카타르시스 이원론과 서열주의- 플라톤이래 본질과 현상,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이원화하여 본질, 정신, 이성 등에 우월한 것으로만 서열화하여 감성적 예술, 시 경멸했다. 그러나 감정은 해방감. 행복감, 만족감, 충만함을 주는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인간은 어떠한 자극을 받는가에 따라 신체의 각 기관이 다양하게 반응하고 이에 따라 슬픔, 기쁨, 웃음, 노여움, 두려움, 놀라움, 그리움, 사랑스러움 등의 정서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시끄러운 소리는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는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짜증스런 기분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경쾌한 리듬은 소화기능을 돕고, 즐겁고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카타르시스는 바로 스트레스 해소 육체적 건강에 지대한 효과- 시치료, 문학치료(대체의학)의 원인이 됨 ​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거나 양지바른 산자락에 앉아 시나 몇 줄 쓰고 싶다. ​ 청청한 하늘 바라보면서 새털구름 한 자락 잘라 백두산에는 바늘꽃 심고 한라산에는 미나리아재비 밤에는 초롱한 별빛을 세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나 부르고 싶다. ​ 가지는 꺾이어도 좋다. 허리는 부러져도 좋다. 잎들이 떨어져 너에게 짓밟혀도 좋다. ​ 봄이면 속살이 돋고 여름이면 또 꽃이 피는 것을 꺾어지면 어떠리 부러지면 어떠리 짓밟히면 어떠리 ​ 순리를 씹으며 고독을 씹으며 풋내를 씹으며 ​ 바람처럼 살다가 강물처럼 살다가 청산에 붙어사는 나무가 되고 싶다. - 자작시「나무가 되고 싶다」 ​ (3) 가슴의 세계 정서는 지성적인 사고와 지식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머리의 세계가 아니라 충격과 놀라움과 뜨거움으로 느끼는 가슴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물론 가슴의 세계란 비유적 표현이고 과학적으로는 뇌와 중추 신경의 작용이다.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은 칸트의 혈관에는 이성이라는 맹물이 흐른다는 말을 했다. 드퀸시는 지식의 문학과 힘의 문학을 구분한 바가 있다. 지식의 문학은 가르치는 것(to teach)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힘의 문학은 감동시키는 것(to move)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지식의 문학은 언제나 유용성을 따지고 논리를 따지고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살피며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힘의 문학, 즉 시의 세계는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것을 품는다. 그리움과 슬픔과 사랑과 황홀함으로 세계를 끌어안는다. ​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는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어렸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렇기를 바라노니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리. - 워즈워드의「내 가슴은 뛰누나」에서 ​ (4) 정서의 훈련 정서의 의미- 리쳐즈는 정서를 일종의 유기적 혹은 전신적 감각이라고 하였다. 제임스는 자극이 되는 사실을 지각한 뒤를 따라 신체적 변화들이 일어나는데 그 변화의 의식이 곧 정서라고 하였다. 시인과 예술가와 악기- 정서란 악기와 같은 것이다. 특히 예민한 현악기와 같은 것이다. 가야금이나 바이올린은 반드시 그 예민한 줄을 자극했을 때만 소리가 난다. 뿐만 아니라 악기는 잘 다루면 다룰수록 그 소리가 더욱 예민하고 예술적이다. 명기(名器)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장인이 만든 소리가 뛰어난 악기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명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기도 같아서 잘만 길들인다면 좋은 명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음부(音符)들이 떨어진다. ​ 은행 이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어휘들을 적어 본다. ​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들을 한다. - 양명문「은행나무 산조」에서 ​ 2. 감정의 구체적 표현 (1) 사랑의 묘약 ① 감정의 구체성 감정은 순간순간의 느낌이기에 보다 구체적일 때 보다 효과적인 속성이 있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란 너무나 미묘하고, 어떠한 경우도 동일할 수 없다. 이것이 사랑의 실존이고 진실이다. 따라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추상적으로 또는 막연한 언어로 기술한다면 이는 사랑을 느끼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 ② 춘향전이 위대한 이유 ― 구체적 표현 ​ 월하의 삼생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花雨東山) 옥란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청루미녀(靑樓美女) 금침같이 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의 수양같이 펑퍼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南倉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옥장(銀藏玉藏)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映山紅綠)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黃蜂白蝶) 꽃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주 떠 노는 사랑, 년년 칠월 칠석야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양귀비를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 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 「춘향전」에서 ​ ​ ③ 사랑의 묘약 감정은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어서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감정은 가장 주관적이며 개별적인 것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실 주관적이란 말은 사물을 공통된 것으로 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특성을 구별하여 보는 것이며 이는 개별적인 존재성을 중시하는 시적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 윤동주 「소년」에서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라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 김수영 「사랑」에서 ​ (2) 사물의 구체화 ① 시간의 구체화 봄 - 이른 봄 - 이른 봄날 - 이른 봄날 아침 - 이른 봄날 아침 동트는 시각 ② 공간의 구체화 무덤 -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사철나무 아래 할머니 무덤 ​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금잔디」 ​ 공간 - 잔디 → 금잔디 → 심심산천 →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시간 - 봄 → 봄빛 → 버드나무 끝 → 실가지 봄 → 봄빛 → 봄날 → 심심산천 → 금잔디 ​ ③ 예수와 바울 ― 구체화와 감동 바울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예수 :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 ​ (3) 시의 원근법 ① 원근법의 표현 ​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 두 구비를 ​ 청노루 맑은 눈에 ​ 도는 구름. - 박목월 「청노루」 ​ 머언 산 → 청운사 → 느릅나무 → 청노루 → 맑은 눈 → 도는 구름 (최원경) (원경) (중경) (근경) (최근경) (심경) ​ ② 구체적 공간과 시간 ​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성삼문 「이 몸이 죽어가서」 ​ 죽음의 공간화 - 봉래산 - 제일봉 - 낙락장송 죽음의 시간과 공간 - 백설(겨울 시간) - 만건곤(공간) - 독야청청(의미공간)   감정과 지성의 조화 홍문표 ​ (1) 지나친 감정 표현 ① 감정의 여러 모습 미묘한 정서는 시시각각으로, 분위기에 따라서 무수히 변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상황이나 대상의 변화에 따라 정서는 천태만상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일곱 가지 정서, 즉 칠정(七情)이라 하여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이라는 정서의 유형을 말한 바가 있고, 러스킨(J. Ruskin)은 사랑(love), 존경(venernation), 찬탄(admiration), 기쁨(joy)과 이에 대응하는 미움(hate), 분노(indignation), 공포(horror), 슬픔(grief) 등 여덟 가지 정서를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시인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떤 시인은 늘 한가지 감정만을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지나칠 경우는 센티멘탈리즘이 되지만 적절할 경우는 시인의 독득한 개성이 된다. ② 1920년대 센티멘탈리즘 1920년대 「백조」, 「장미촌」 등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감정이 중시되는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였는데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 3․1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마침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세기말 사상 등으로 이 시대 낭만주의 시들은 실망, 좌절, 허무, 이별 등 어두운 감정을 주로 하는 경향이었다. 이를 센티멘탈리즘이라고 한다 ​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 아 - 밑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아 -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집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 이상화 「말세의 희탄」 ​ 바람아, 오― 폭풍아 흑풍아 그 불꽃을 불어 날려라 쓸어 헤치라 몰아 무찔러라 ​ 오, 위대한 폭풍아 세계에 충만한 그 불꽃을 오, 그리고 한없고 끝없는 허무에 춤추어 비치라. - 오상순 「허무혼의 선언 ​ (2) 1930년대 ‘시문학파’의 밝은 감정 그러나 1930년대는 싱싱한 자연을 발견하면서 다시 순수하고 깨끗한 정서로 어두움이 극복되고 밝은 하늘과 자연 속에 속삭이는 심정의 순수함을 보게 된다.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 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3) 1970년대 ‘민중시’의 부정적인 감정 1970년대부터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되었고, 소외계층의 불만은 가진 자, 지배자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정서로 팽배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자각은 민중의식이라는 이념과 행동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이러한 의식에서 제작된 시를 민중시, 실천시 등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이들 시의 공통점은 권력과 자본의 불평등에 대한 철저한 비판, 부정 개혁이었다. ​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정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상 두려운 하늘이다 ​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 박노해 「하늘」 ​ (4) 뜨거운 감정의 시 ​ 정서가 고정화될 때 정조가 되고 정조가 불건전할 때 센티멘탈리즘에 빠진다고 하였는데 감정이 지극하면서도 뜨겁게 타는 경지를 열정이라고 한다. 원래 열정을 영어로 패션(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통을 받는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고통을 감수하고 고통을 내재한 언어야말로 가장 값진 시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지는 사건을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즉 패션으로 표기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달게 받는 사랑의 경지야말로 열정의 최고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 (5) 절제된 감정 ① 모더니즘시의 실험 서구 문학사에서 낭만주의가 세기말 사상과 결탁하여 침울하고 병적인 퇴폐주의(decadanism)로 후퇴하였을 때 감정보다는 지성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발생했는데 이미지즘과 더불어 이를 모더니즘이라고 한다. 이들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감각적인 이미지 즉 객관적 상관물로 드러내고자 했다. ​ ② 사물의 객관화 ​ 바다는 뿔뿔이 달아 날려고 했다 ​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렀다 ​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 흰 발톱에 찢긴 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 정지용 「바다」에서 ​ ③ 지나친 지성 그런데 모더니즘 시의 경우도 지나치게 지성적이어서 감동보다는 난해성으로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 ELEVTER FOR AMERICA 세마리의닭은사문석의층계이다.룸펜과모포 빌딩이토해내는신문배달부의무리.도시계획의암시 둘째번의정오싸이렌 비누거품에씻기어가지고있는닭.개아미집에모여서콩크리트를먹고있다. - 이상의 ‘대낮’ ​ (6) 감정과 지성의 등가 현대시의 두드러진 경향은 과거의 규칙적인 음성적 리듬의 시에서 개성적인 리듬의 시로, 과거의 지나친 주정적인 시에서 주지적인 경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시가 주지적이라고해서 감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감성과 이성을 균형있게 배열한 감정과 지성의 등가(等價)의 시를 말한다. 엘리어트는 시란 감정과 지성의 등가물(等價物)이라고 하였다. ​ 가장 깊은 부리에서 아슴히 높은 정수리까지의 내 외로움을 사람아 너에게 드릴밖에 없다 동쪽 비롯함에서 서녘 끝 너메까지 한 솔기에 둘러 낀 하늘 가락지 돌고 돌아서 다시 오는 이 마음을 - 김남조 「雅歌」 ​ 새양철 지붕위로 쏟아지는 쇠못이여 쇠못같은 빗줄기여 내 어린날 지새우던 한밤이 아니래도 놀다 가거라 ​ 잔디 위에 흐느끼는 빗줄기여 늬맘 내 다 안다 ​ 늬맘 내 다 안다 내 어린날 첫사랑 몸져눕던 담요짝 잔디밭에 가서 잠시 놀다 오너라 - 조정권의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1’에서 ​ 몇 트럭씩 논밭으로 실려 나가는 묶인 고뇌와 고장난 시간들 ​ 지나다 보면 낯이 선 사투리들이 발길에 툭툭 채였다.   - 노향림의 ‘K읍 기행’에서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