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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시간 초특급 -레이 커밍스 작. 이원수 역
2021년 09월 19일 21시 01분  조회:565  추천:0  작성자: 강려
 시간 초특급 -레이 커밍스 작. 이원수 역
 

책머리에
 
우리가 가령 5천년 전 옛날로 되돌아가 볼 수 있다면, 단군 임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백만 년 전으로 갈 수 있다면 공룡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 년 후의 미래에 가면 어떤 세상을 보게 될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공상의 날개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이 시간의 과거와 미래를 날아가는 이야기가 '시간의 여행' 입니다.
이 책 '시간 초특급' 은 젊은이들이 만든 텔레비전에 비친 이상한 소녀와 경치에서 그것이 현재의 모습이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되고 악한을 뒤쫓아 미래에로 혹은 과거로 자유로이 시간을 날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시간의 탑'이나 '시간로켓' 등은 타임머신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악한과 싸우는 용기 있고 착한 젊은이들의 모험을 펼쳐봅시다.
 
<차 례>
 
스크린의 미소녀················· 4
타버 박사···················· 16
시간의 탑···················· 28
시간 투시기··················· 51
심야의 탈주··················· 63
기쁨의 재회··················· 75
배반자····················· 82
인디언의 여신·················· 93
타버 제국··················· 101
최후의 통고·················· 109
윈자분해포·················· 113
타버의 최후·················· 120
 
작품 해설··················· 127
 
스크린의 미소녀
 
"야아, 드디어 완성이다!"
"그래, 이제 스위치만 넣으면 되는 거야." 두 젊은 청년, 앨런과 에드워드는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 앞에는 부품들이 드러난 그대로의 커다란 컬러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이 용돈을 아껴서 반년 동안에 조금씩 부품을 사 모은 끝에, 이제 겨우 완성한 것이다. 보기에는 아주 볼품없는 텔레비전이지만, 두 사람의 눈에는 무엇보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보물같이 보였다.
여기는 미국의 대도시, 뉴욕의 한복판 센트랄 파크에 가까운 어느 고층 아파트의 한방.
어느덧 한밤중, 12시가 가까웠다.
"그럼, 어서 어느 방송국의 심야 방송이라도 비쳐 볼까?"
하며 앨런이 스위치에 손을 대려고 했을 때, 에드워드가 황급히 말렸다.
"기다리라구. 이 텔레비전에는 자네 누이동생인 나네트도 꽤 돈을 냈단 말야. 그러니까 시험하는데 참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하면서 부엌 방으로 달려가, 밤참 준비를 하고 있는 나네트를 데리고 왔다.
"어머나, 기어이 다 됐군요. 정말 멋져요!․,
하며 나네트는 큰 눈을 반짝였다
"쳇, 자네는 내 누이동생에 대해서 몹시도 신경을 쓰는군."
앨런이 투덜대며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넣었다. 부웅 소리가 나며 스크린이 확 밝아졌다. 세 사람의 눈은 일제히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러나 -
"웬일이지, 나오지 않잖아. 그럴 리가 없는데."
앨런은 급히 다이얼을 돌렸다. 에드워드는 혹시 배선이 잘못 됐나 하고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상해요? 아직 병아리 엔지니어들이라서 그렇죠."
라고 나네트가 놀리듯 말했을 때였다.
돌연 스크린에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그림자가 휘돌면서 물결치듯 하다가 겹쳐지며 나타났다.
"야아, 나온다. 나왔어."
"그러나 이건 뭐가 뭔지 알 수 없쟎아․?"
세 사람은 숨을 죽이고 스크린을 지켜보았다.
7가지 색깔 그림자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더니, 전체가 차츰 안개처럼 흐려져 왔다.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안개의 중앙부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다른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유난히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곧 이어서 소용돌이치던 희미한 안개가 갑자기 싹 걷히고, 거기에 나타난 이상한 광경!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 울창한 숲, 졸졸졸 흐르는 개울,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곳이 어울려서 피어 있는 잔디밭, 하얀 벽 - 어느 곳의 정원 같았다.
다음 순간, 스크린 중앙의 푸른 그림자가 뚜렷이 그 윤곽을 드러냈다.
"아니?"
세 사람은 일제히 놀라서 소리쳤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거대한 수정을 생각케 하는 모습의 아름다운 탑이었다! 그 탑은 온통 푸른빛을 발하며 당당히 솟아 있었다. 곳곳에 창이 있고, 맨 아래 부분에 문인 듯한 것이 보였다.
"이게 뭘까?"
앨런이 눈을 크게 떴을 때, 그 문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열렸다. 그리고 그 곳에 외롭게 서 있는 사람의 모습.
그건 소녀였다.
밤과 어둠을 보고 있는 그 얼굴은 꽃처럼 아름답고 싱싱해 보였다. 숱이 많은 금발 머리는, 몸에 착 달라붙은 은백색의 옷 어깨에 늘어뜨려져 있다.
갑자기 화면이 흔들렸다. 그러자 탑과 소녀와 정원 같아 보이던 풍경이 희미해졌다. 세 사람은 자세히 보려고 눈을 비비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스크린에는 어느덧 아무 것도 없었다.
"그건 대체 어디였을까? 본 적이 없는 경치였는데?"
세 사람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엇에 흘린 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느 외국 방송의 전파가 우연히 뛰어들어온 것이 아닐까요?"
하고 나네트가 말했지만, 앨런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게 아닐 거야. 어딘지 매우 현실을 떠난 그런 풍경이었는걸. 이를테면 먼 별나라라든가, 아니면 아주 먼 미래의 시대라든가……"
그 말에 에드워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무튼 스위치를 끄지 말고, 그대로 두고 좀더 기다려 보기로 하자고. 어쩌면 그 기묘한 광경이 또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이 에드워드의 예감은 바로 들어맞았다.
그날 밤, 새벽 가까이, 세 사람이 피곤해져서 단념하려고 할 무렵- 다시금 스크린이 7가지 색깔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이상스럽고 비현실적인 광경이 돌연 나타난 것이다.
세 사람은 일시에 쏟아지던 졸음이 달아났다. 그들의 눈은 스크린에 붙들어맨 듯이 빨려들었다
밤중에 보던 것과 거의 같은 광경이었다. 역시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밤하늘, 숲, 별빛이 반짝이는 개울물, 그리고 그 거대한 탑- 다만 이번에는 그 탑의 입구가 열린 채로 나타난 것이다.
그 입구에서 젊은 남자가 나왔다. 화면 밖에 누가 있는지 그 쪽을 향해 자꾸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때, 그 뒤에서 소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젊은 남자와 아주 닳은 얼굴이었다.
"아아, 아까 본 그 소녀다!"
하고 앨런이 소리쳤다
스크린 속의 남녀는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입구의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세 사람은 기대와 불안으로 몸을 구부리고 스크린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중앙의 탑이 희미해지면서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는 유령처럼 반쯤 투명해지며 유난히 푸른빛을 냈다.
그러자 하얀 벽이 사라져 버렸다. 뜰도. 밤하늘의 별도, 모든 배경이 7가지 색깔의 안개 속에 싸여들어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탑만은 여전히 청백색의 빛을 내면서 화면 중앙에 멈춰 있었다.
그러다가 화면이 갑자기 깜박이면서 환히 밝아졌다. 안개가 걷히고 새로운 광경이 나타났다.
거대한 빛의 탑은 이제는 울창한 숲 속에 솟아 있었다.
환히 빛나는 달빛 아래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사람이다. 세 사람, 아니 다섯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이상했다.
"저것 봐, 인디언이 아닌가?"
하고 앨런이 침을 삼켰다.
머리에는 새의 깃털을 꽂고 얼굴에는 물감 칠을 한, 상반신은 맨몸뚱이인 사나이들이었다. 화살을 겨누고, 수풀 뒤에서 거대한 탑을 두려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 인디언 같은 건 없어. 저건 아무래도 4,5 백년 예전의 모습이야:'
에드워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숲과 인디언의 모습은 희미해지면서 사라져 버리고, 배경은 다시 7가지 색깔의 소용돌이로 되돌아왔다.
거대한 빛의 탑은 그대로 중앙에 남아 있었다.
잠시 후, 또 다시 화면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이른 아침의 광경이었다.
어두움 속에 나무들과 수풀이 잠겨 있었다. 꼬불꼬불한 오솔길, 넓은 잔디밭, 희미하게 켜져 있는 가로등- 어디선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돌연 앨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앗! 이, 이건 센트랄 파크가 아닌가? 이 뉴욕의!"
"뭐, 뭐라고? 아, 그렇구나. 저 가로등의 모습, 정말 그렇 군."
세 사람은 일제히 소파에서 몸을 앞으로 더욱 구부리고 눈은 스크린에 못 박혀 뗄 줄을 몰랐다.
지금은 그 거대한 탑이, 세 사람이 잘 아는 풍경 속에 당당히 솟아 있는 것이다.
이때, 화면 오른쪽 구석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경찰관이다! 그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거대한 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탑의 문이 열렸다. 그 금발의 소녀가 문에서 걸어나오더니, 급히 어두운 쪽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문은 다시 닫히고, 탑의 윤곽이 흐릿해지며 흔들렸다.
다음 순간, 탑은 어렴풋하게 흐려지더니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니?"
"이상해!"
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어느 새 스크린 속의 하늘은 환히 밝아있었다.
그 아침의 광경 속에 경찰관이 놀라서 실망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거대한 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춘 것이 그에게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여기서 센트랄 파크의 광경은 사라지고 텔레비전의 스크린은 본래의 회색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고서는 아무 것도 비치지 않았다.
세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때, 우연히 밝아져 온 창 밖을 내다본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저 저걸 봐! 저 아침 노을의 구름을 보란 말야. 지금 스크린에서 본 것과 똑같은 구름이야. 그러니까 그 화면은 바로 저 센트랄 파크에서 일어난 일이 비친 거란 말이야."
하고 에드워드는 흥분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창 밖에 센트랄 파크 쪽을 가리켰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알겠네."
하고 앨런은 손가락을 젖히며 똑 소리를 냈다.
"뭘 알았다는 거지? 어디 말해봐."
"그 탑은 말야. 틀림없이 타임머신일 것이네. 말하자면 시간을 날아가는 기계란 말야. 우리가 본 여러 가지 광경은 아마도 센트랄 파크의 어떤 장소에 있어서 미래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었을 것이네."
"그렇다면 그 소녀는 미래에서 온 것이지요. 그렇죠?"
라는 나네트의 말에, 에드워드는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렸다.
"미래에서? 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현대에 왔을까? 단순히 구경을 하러 온 거라고는 할 수 없을텐데 그래! 경찰에 보고해서 그 소녀를 찾도록 해 볼까?"
하고 전화기를 들려고 하는 에드워드를 앨런이 말렸다.
"그만두라고. 어차피 믿어 주지도 않을 거야. 그보다 지금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잠시 두고 보기로 하세."
 
 
타버 박사
 
앨런의 말은 바로 들어맞았다. 그날 석간 신문이 다음과 같은 농담 비슷한 기사가 실렸던 것이다. 「유령탑, 센트랄 파크에 출현? 순찰 중의 경찰관이 목격했다고 주장-」 그러나 앨런 들의 눈길을 끈 것은, 다른 석간 신문의 한 귀퉁이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조그마한 기사였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소녀, 센트랄 파크 부근에서 발견되다. 기억 상실증인지? 즉시 타버 병원에 입원-」
 
"이건 확실히 그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하필이면 타버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니……."
하며 앨런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침울한 얼굴로 혀를 차는 것을 보고, 에드워드가 의아스러운 듯 물었다
"타버가 어떻다는 건가?"
그러자 앨런은 말을 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이윽고 불쾌한 목소리로 내뱉듯이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대학 교수였어. 타버 박사는 그때 조수로 있던 사람이야."
"그래, 그래서?"
"그 자는 꽤 천재였어. 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어떤 학과도 다 뛰어나게 잘했다더군. 그러나 머리는 좋았지만 마음은 간사스럽고 부정한 사나이였어. 그리고……"
여기까지 말하고, 앨런은 왠지 머뭇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나네트가 또렷한 목소리로 오빠를 재촉했다
"오빠, 상관없어. 에드워드에게 얘기해 줘요:'
"그래, 말하마. 에드, 사실은 타버란 놈이 말이야, 나네트가 마음에 든다면서 꼭 신부로 데려가겠다고 해 왔었어."
"뭐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타버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물론 나네트도 타버를 몹시 싫어했지. 그래서 깨끗이 거절했었어."
"아아, 그것 참 잘했어."
에드워드는 아주 다행이란 듯이 말하고는, 힐끔 나네트를 쳐다보고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말야……"
앨런은 갑자기 어두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타버란 녀석, 그것에 원한을 품고 아버지의 대학에서 많은 돈을 훔쳐내고는, 그 죄를 아버지한테 뒤집어 씌웠지. 그 때문에 아버지는 직위에서 쫓겨나시고, 그때의 충격으로 중한 병을 얻어 돌아가신 거 야."
"아, 그런 나쁜 놈을 가만뒀어?"
하고 에드워드는 주먹을 흔들며 소리쳤다.
"증거를 잡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타버는 오랫동안 어디에 가서 숨어 있었는데, 요즈음 다시 나타나서 병원을 차렸다네."
라고 말을 끝낸 앨런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의 괴이한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려면 그 소녀를 꼭 만나야 하는데. 과연 타버가 면회를 시켜줄지 어떨지 그게 문제야."
"자네는 타버를 만나도 태연할 수 있겠나?"
"그야 뭐 시치미를 떼고 있기로 했으니까 걱정 없지." "그럼 좋은 수가 있네. 내가 신문 기자로 가장하고 자네를 따라가겠네, 소녀의 가족을 찾기 위해 신문에 기사를 쓰겠다고 하면, 그 자가 그것까지 안 된다고는 못할 것 아닌가."
"글쎄, 잘 될는지……"
아무리 궁리를 해 보아도 다른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결국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타버의 병원으로 갔다. 석조 건물인데, 6층이나 되는 지나치게 큰 빌딩이었다.
응접실에 안내되었을 때, 우선 눈에 뜨인 것은 대낮인데도 창에 무거운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는 것이었다.
단 둘이 되었을 때, 앨런은 그 블라인드를 슬쩍 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이 병원은 이상스러운 구조로 돼 있군. 한가운데가 빈터로 되고. 딴 건물이 서 있어."
"에드워드도 같은 말을 했다.
"더욱이 저 건물도 괴상하지 않은가. 높이가 6층 높이나 되는데, 창이 하나도 없지 뭔가"
그 높은 건물에는 맨 아래쪽에 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빌딩 쪽도 2층에서부터 위로는 창이 없었다. 마치 뜰에 있는 건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은 설계로 되어있는 것이다.
"가끔 이 병원에 대해서 묘한 소문이 들리던데 과연 그럴 듯한 일이야."
"묘한 소문이라니?"
"이 병원에는 유령이 나온다는 거야."
하고 앨런이 말했을 때,
"거짓말이야. 유령이란 게 어디 있어요. 어른들이 미신을 믿는군요"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났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싱글싱글 웃으며 서 있었다
"넌 누군지?"
"난 맹장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는 거여요. 찰리라고 해요. 곧 퇴원하게 되지만, 저어 아저씨 이상해요."
하더니 소년은 발돋움해서 앨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전 이 병원의 일은 뭐든지 다 잘 알고 있어요. 정말이지 유령 같은 건 없어요. 단지 밤중이 되면 가끔 이상한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요"
"어디서?"
"저 창문 없는 건물 속에서요"
"그래 ? 저 집안에는 무엇이 있지?"
그러자 찰리는 조금 아쉬운 얼굴을 했다.
"난 보지 못했어요,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원장 선생님과 몸집이 큰 인디언 조수뿐이거든요. 그 속에서 무엇인지 굉장한 비밀 실험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면서 찰리는 자신만만하게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다가 대낮에도 이렇게 무거운 블라인드를 쳐놓고 내다보지 못하게 하고 있잖아요. 밤이면 더해요. 창이나 문도 모두 쇠를 잠가서 아무도 이 병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까요. 그렇지만요……"
찰리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가만가만 속삭였다.
"뒷문은 달라요. 그 문만은 안에서 고리를 벗기면 열리거든요."
"넌 참 잘 알고 있구나. 그밖에 또 무슨 눈치챈 것은 없니?"
"있어요, 또 있어요!"
하며 찰리는 눈을 빛냈다.
"아주 예쁜 누나가 있어요. 어제 아침에 데려 왔어요. 그런데 좀 이상해요. 맨 윗방에 자물쇠를 걸고 가둬 버렸어요."
"허어, 정말 이상한 일이구나."
"그 원장 선생님은 나쁜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예쁜 누나가 아주 무서워하고 있었거든요. 난 그 누나를 구해 주고 싶었어요."
"이 녀석, 제법 어른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사실 말이지, 이 아저씨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럴 까닭이 있어서 말야."
"앗, 아저씨들은 경찰이셔요? 저는 말하겠어요. 전 원장 선생님이 참 싫어요. 그러니까 저도 도와드리겠어요:'
이때, 복도에 발자국 소리가 났다. 앨런은 황급히 찰리에게 말했다.
"고맙다. 그럼 찰리, 오늘 밤 10시에 뒷문을 살짝 열어 주겠니 ? 부탁한다."
"좋아요,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10시라고 그러셨죠?"
하고 찰리는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응접실을 나갔다.
그러자 찰리와 엇갈려서 몸이 비대한 검은 수염의 사나이가 들어섰다.
"여어 타버 박사, 오랜만입니다"
하며 앨런이 손을 내밀었으나 타버는 그 손을 냉정하게 피했다.
"난 자네보다 나네트를 만나고 싶네 그래, 오늘은 대체 무슨 용건인가?"
"사실은 어제 여기 기억상실의 소녀가 들어왔지요? 그 때문입니다. 친구인 신문 기자 에드워드가 꼭 크게 기사를 써서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는군요. 그래서 그 소녀를 만나러 온 겁니다"
타버는 순간 움찔하는 것 같았으나, 곧 차가운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기억상실의 소녀? 그런 사람은 여기에 없어."
"숨겨도 소용없어요. 우리들은 경찰에서 확인을 하고 왔으니까요. 아니, 우리한테 만나게 하고싶지 않은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런 것은 없어."
"역시 입원해 있는 거죠? 정말 면회를 시켜 주지 않겠다면 경찰에서 정식 허가를 맡아오는 수 밖에……"
앨런은 일부러 경찰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타버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다구. 하는 수 없지. 만나게는 해 주겠지만 5분 동안만이야. 곧 치료를 시작해야 하니까."
하며 타버는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6층까지 데리고 갔다.
긴 복도를 걸어서 맨 끝의 병실 앞에까지 오자, 맞은쪽 문에서 커다란 몸집의 인디언 사나이가 얼굴을 쑥 내밀었 다.
찰리가 말한 타버의 조수임에 틀림없다. 그 큰 사나이는 두 사람을 쏘아보고 있었다
타버는 그 사나이에게서 열쇠를 받아들더니 병실 문에 꽂으면서 이렇게 변명을 했다.
"기억 상실자는 곧잘 도망을 치려고 하지. 그래서 감금해 놓고 있는 거야."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의자에 앓아 있던 소녀가 놀란 듯이 일어섰다.
'역시 어젯밤 텔레비전에 나타난 그 소녀다!'
앨런과 에드워드는 서로 눈짓으로 이렇게 주고받았다.
물결치는 금발, 파란 큰 눈동자, 은색의 옷. 날씬하고, 인형처럼 아름다운 소녀였다.
"이름이 뭡니까?"
앨런이 말을 건네자, 뒤에서 타버가 말했다.
"소용없어.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아. 어딘지 먼 나라 사람 같으니까."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 한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의 파란 눈동자에는 공포와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타버에게만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앨런을 보는 소녀의 눈은 그 무엇을 호소하는 듯이 보였던 것이다.
"이젠 됐지?"
하고 타버는 초조해하며, 두 사람의 팔을 잡아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문이 닫힐 때까지, 낯선 그 아름다운 소녀는 애원하듯 앨런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만나세, 앨런군. 그러나 이번에 또 올 때는 꼭 나네트를 데리고 와 주었으면 좋겠네."
타버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뻔뻔스럽게도 이런 말을 한다. 두 사람은 울화가 치미는 것을 꾹 참고 견디었다.
병원을 나섰을 때, 드디어 에드워드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놈은 정말 돼먹지 못한 놈이야. 두 번 다시 나네트의 말을 해 봐라, 가만 두지 않을 테다."
"이봐, 그렇게 흥분하지 말라구. 그런데 그 빛의 탑에서 나온 소녀 말이야, 타버는 그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애 . 그놈이 하는 짓이니 반드시 무슨 흉계를 꾸며서, 그 곳에 감금해 놓은 것이 틀림없어."
"그럼, 그 소녀를 어떻게 해서라도 구출해 내자는 말인가?"
"그렇다네. 오늘 밤 10시, 타버 병원 뒷문으로 침입한다. 찰리가 아마 잘 해 줄 걸세."
 
시간의 탑
 
그날 밤늦게, 거리에 인적이 끊어졌을 때, 어둠을 타고, 앨런은 타버 병원 뒷문에 가만히 다가갔다.
에드워드는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놓고, 나네트와 함께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나네트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뒤에 남아 있기로 한 것이다.
앨런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바늘은 정각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권총을 빼들고 조그만 소리로 찰리를 불렀다.
"됐어요, 아저씨! 문고리를 벗겨 놓았어요."
문안에서 찰리의 나지막하지만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전등 밑에 찰리가 서 있었다.
"고마와. 아무도 보지 않았겠지?"
"네, 모두들 자고 있는 걸요."
"됐다. 그럼 얼른 그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 방으로 가자. 네가 안내를 좀 해 줘."
"그럴 수가 없게 됐어요. 지금 그 곳에 없어요. 조금 전에 원장 선생님과 운커스, 그 인디언 조수가 데려가 버렸어요."
앨런은 아차 싶었다
"어디로 ? "
"저기 창문 없는 실험실로요. 그 안에 가둬놓고 곧 돌아왔나 봐요."
"음, 기어이 무슨 흉계를 시작하려는가 보군.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냐. 찰리, 안뜰로 안내해 주겠니?"
"그래요. 절 따라 오셔요."
둘은 발소리를 죽여 가며 복도를 걸어나왔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몇 번이나 꼬부라져서 안뜰로 나왔다
바로 눈앞에 높다란 실험실 건물이 덮쳐 누를 듯이 시커멓게 솟아 있다.
"문은 어디 있니 ?"
"왼쪽에 있어요."
둘은 건물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림 너는 병원 쪽을 지켜보고 있거라."
라고 찰리에게 말하고, 앨런은 가만가만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문은 밀어도 당겨도 열리지 않았다. 앨런은 어둠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타버가 언제 불쑥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서 빨리 감금된 소녀를 구해내야 하는데……'
이제 최후의 수단은 문을 부수는 길밖에 없다. 다행히 문은 나무로 되어 있으니까 몸으로 부딪쳐서라도……
앨런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가, 몸을 웅크리고 어깨를 들이대듯하며 문으로 돌진했다.
콰앙 !
조용한 안뜰에 지나치게 큰 소리가 울렸건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앨런이 다시 한 번 돌진하려고 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확 열렸다.
앨 런 앞에는 키가 큰 사나이가 서 있었다
"앗, 운커스!"
앨런도 놀랐지만, 키 큰 인디언은 더욱 놀란 모양이었다. 입을 벌리고 우뚝 서 있기만 했다.
때를 놓칠세라, 앨런은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권총을 쑥 뽑아들었다.
"움직이지 말고 손들엇!"
키 큰 사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그것을 보고 찰리가 소리쳤다.
"잘했어요 ! 아저씨, 잘 하시는데요."
"쉿, 큰 소리를 내면 안 돼"
하고 앨런은 재빨리 실험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 아름다운 소녀는? 과연 거기에 있었다 놀람과 두려움에 와들와들 떨며 벽에 딱 붙어 있었다. 그러나 뛰어든 사람이 앨런인 줄 알자, 안심하는 빛이 눈에 나타나 보였다.
"찰리, 얼른 데리고 나가! 빨리빨리!"
말은 통하지 않지만, 소녀는 앨런이 자기를 구하러 와 준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찰리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앨런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권총을 겨눈 채, 슬금슬금 문 앞으로 뒷걸음쳐 갔다.
이때, 비로소 앨런은 이상한 것에 눈길이 갔다. 두 손을 쳐들고 있는 키 큰 사나이 뒤에, 그 뒤에 높이 솟아 있는 무서우리만큼 큰 시꺼먼 물체-
로켓이다!
삼각형의 날개가 양쪽에 나와 있고, 아래쪽 끝에는 분사관처럼 보이는 것이 붙어 있었다 끄트머리 쪽은 6층 모두를 뚫어낸 높은 천장에 닿을 것 같다.
'아니, 이런 거대한 로켓이 어째서 천장이 있는 방안에 놓여 있는 것일까? 대체 무슨 목적으로?'
라는 의문이 앨런의 머리 속을 스쳐갔다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와서 보니 주변이 어수선했다.
"아저씨. 빨리 가요. 모두들 눈치 챈 것 같아요."
뒤돌아보니 거의 모든 창문에 불빛이 환해지고, 환자와 간호원들이 얼굴을 내밀고서 보고 있었다. 떠들썩한 소리는 점점 커져왔다.
"찰리. 어서 도망칠 곳을 가르쳐 줘."
앨런이 말했을 때, 돌연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그 운커스라는 큰 사나이가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병원 쪽에서 땅딸막한 큰 사나이가 달려왔다. 타버였다.
앨런은 슬쩍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타버는 곁눈질도 하지 않고 실험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니, 이상한데?'
앨런은 갑자기 호기심에 끌려, 위험한 것도 잊고 살금살금 실험실 문으로 돌아가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타버가 바야흐로 그 시꺼먼 로켓 속으로 뛰어들고 입구가 닫히는 순간이었다
'저 녀석이 어떡할 셈이지?'
그러자 다음 순간, 뜻밖의 일이 거기서 일어났다.
욍, 윙, 윙, 윙, 윙, 위위위위-
앓는 듯한 소리가 로켓 안에서 들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로켓의 모양이 희미해져 가는 것이었다. 뒤이어 유령처럼 흐릿한 반투명으로 변하더니, 획 지워버리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아하……!"
앨런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랬구나. 그게 예사 로켓이 아니었어. 소녀가 나온 그 빛의 탑처럼 역시 일종의 타임머신이었던 거야.'
날개와 분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 시간을 날아갈 뿐 아니라 공간도 움직이도록 개조한 것이 분명하다. 즉 '시간 로켓'인 것이다.
"아저씨, 빨리요!"
찰리에게 소매를 이끌지라 비로소 앨런은 정신이 났다.
"이쪽이어요. 이쪽."
앨런과 소녀는 황급히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는 복도를 뛰어, 가까스로 뒷문을 빠져나와 병원 밖으로 뛰쳐나왔다.
"찰리, 고마왔어! 이젠 안심이다. 은혜는 꼭 갚을테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 알겠지?"
손을 흔드는 찰리를 뒤로하고, 앨런은 소녀를 부축해서 에드워드와 나네트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에드워드와 나네트는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걱정하고 있었다."
"오빠, 무사하셨군요."
두 사람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앨런은 소녀를 차 뒷좌석으로 태웠다.
소녀는 충격과 추위 때문인지 새파래져서 떨고 있었다.
"나네트, 너의 외투를 덮어 주렴."
라고 말하고, 앨런은 핸들을 잡았다. 차는 인적이 끊어진 뒷골목 길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앨런은 타버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두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이미 이 괴사건의 내용을 대강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아름다운 소녀는 시간을 날아가는 탑에서 다른 시대, 아마도 먼 미래로부터 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악한 타버 박사도 시간을 나는 장치-공간도 날 수 있다는 점에서 탑보다도 뛰어난 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소녀는 확실히 타버를 알고 있으리라. 그래서 몹시 무서워하고 미워하기까지 하는 것이리라. 아마도 타버가 꾸미고 있는 흉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의 말을 모르는 이 소녀로부터 그런 일을 어떻게 들어볼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런데 앨런, 자네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작정인가?"
하고 에드워드가 물었다
"우선 이 소녀를 우리 아파트에 숨겨둬야겠지."
차는 밤의 대로를 달려, 차츰 센트랄 파크로 가까이 가고 있다.
이 때, 나네트가 소리쳤다.
"오빠, 이 아가씨가 무엇인지 내게 말을 하려는가 봐요."
하며 소녀에게 상냥히 웃어 보였다.
그것에 용기를 얻었는지 소녀는 더듬더듬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말은 기묘한 억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전혀 뜻을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음악과 같아서 귀에 매우 듣기 좋았다.
"리어. 리어."
소녀는 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풀이해 말했다.
"어머, 이 아가씨 이름이 리어인가 봐."
하며 나네트는 몸짓 손짓으로 리어와의 회화에 정신이 없었다.
돌연 나네트가 소리쳐 말했다.
"탑이란 말을 알았나 봐. 이봐요 리어, 왜 그래요?"
리어는 차창 밖으로 센트랄 파크의 숲을 간절히 바라보면서,
"타워, 타워!"
하며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에드워드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앨런, 어쩌면 그 빛의 탑이 또 센트랄 파크에 나타나는 지도 몰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참이야. 좋아!"
앨런은 센트랄 파크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그 거대한 빛의 탑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앨런과 그의 친구들은 낙심을 하고 되돌아서려고 했다.
그런데 리어는 아직도 차의 문을 덜컥덜컥 밀어 대면서,
"타워, 타워 ! "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밖에 나가고 싶은 모양이야. 하고 싶은 대로 해 줘 보자구. "
문을 열어 주자, 리어는 기쁜 듯이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모두 나와 달라는 듯이 손을 쳤다.
모두 차를 내렸다. 그러자 리어가 앨런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로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듯했다.
"리어는 이 근방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모양이지?"
하고 에드워드가 나네트에게 속삭였다.
세 사람은 곧 리어를 따라 나무 그늘 밑으로 해서 오솔길을 지나갔다.
곧 넓은 잔디밭에 나섰다. 가로등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아, 여기는…… 텔레비전에 비친 그 곳이 아닌가!"
앨런과 에드워드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럼, 역시 그 탑이 이제 곧 여기에 나타나겠구나."
"그럴지도 모르지. 리어는 그걸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군."
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잔디밭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위잉, 위잉!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희푸른 거대한 빛의 기둥이 희미하게 흔들리더니, 보고 있는 동안에 점점 탑의 모양으로 변해 왔다. 다음 순간, 그것은 확실한 빛의 탑이 되어 잔디밭 위에 높다랗게 솟아 있었다.
"오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는 '시간의 탑'의 거대함에, 앨런 일행은 놀람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자 시간의 탑 문이 스르르 옆으로 열리더니 리어와 비슷한 청년이 나타났다.
"선!"
리어는 반가운 듯 소리치며 달려가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위이, 위위 -
시간의 탑 바로 옆에, 또 다른 거대한 희푸른 그림자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점점 로켓과 같은 모양으로 변해 갔다.
"아아, 타버의 시간 로켓이다!"
앨런이 소리치기가 바쁘게 고체로 변한 시간 로켓의 문이 썩 열리면서, 3명의 사람이 우르르 지상에 뛰어 내렸다.
리어가 비명을 질렀다. 시간의 탑 청년이 앨런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다.
"에드워드, 어서 피해라!"
하고 소리치고 나서, 앨런은 나네트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가 그만 나네트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 앨런은 얼른 나네트를 붙들고 일으키려 애를 썼다.
시간 로켓의 세 사나이가 두 사람을 뒤쫓아왔다.
타버와 인디언 키다리, 또 한 사람, 짐승의 털가죽을 몸에 두른 원시인 같은 사나이였다.
"야앗!"
털가죽의 사나이가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돌도끼를 쳐들었다․
앨런은 재빨리 돌도끼를 어깨로 받아넘기고는 넘어지면서 권총을 쏘았다. 가슴에 총탄을 받은 털가죽의 사나이는 '으악' 소리치며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그러나 이때 나네트는 타버에게 붙잡혀 시간 로켓 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오빠, 에드워드, 저 좀 도와 줘요!"
인디언의 큰 사나이와 맞붙어 싸우고 있던 에드워드는 비명을 듣고, 필사적으로 인디언을 밀어젖혔다.
"타버, 거기 서라!"
그러나 타버는 나네트를 안고, 한달음에 시간로켓 입구로 숨어 들어가고 말았다. 뒤쫓아간 에드워드도 정신없이 그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뒤이어 인디언도 시간 로켓으로 들어가자, 입구의 문이 닫혔다.
"큰일 났구나. 나네트, 에드워드!"
어깨의 상처를 입고 정신을 잃었던 앨런은 벌떡 일어나서 시간 로켓을 향해 뛰어갔다.
리어와 시간탑의 청년이 앨런을 붙잡고 말렸다.
우~우~ , 우~ 잉-
타버의 시간 로켓은 큰 소리를 내면서, 보고있는 사이 희미해져서 이내 획 사라져 버렸다.
"두고 보자, 타버놈 !"
앨런은 털썩 잔디밭에 주저앉았다. 상처의 아픔이 새삼 느껴져 왔다. 결국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그만 픽 쓰러지고 말았다.
놀란 리어와 청년은 급히 앨런을 안아들고, 시간탑 속으로 옮겼다.
앨런은 문득 눈을 떴다. 눈앞이 온통 핏빛으로 새빨갛다.
"불이 났다!"
하고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머리 위에 붉은 등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앨런은 그 붉은 광선을 쬐며 새깃처럼 부드러운 침대에 뉘어져 있는 것이었다.
어깨로 손을 가져가서 만져 보니, 상처는 거의 다 나아 있었다. 아프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붉은 광선이 상처를 빨리 낫게 하는 효력이 있는 것 같았다.
앨런은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쇠붙이로 된 벽과 천장과 방바닥. 창과 문은 모두 꼭 닫혀 있었다.
'음, 여기는 시간의 탑 속이다!'
앨런은 그제야 정신이 났다. 침대에서 가만가만 내려오자, 덜덜덜 작은 진동이 느껴져 왔다.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의 탑은 지금 시간 속을 마구 달리고 있는 거다.'
앨런은 오싹하는 전율을 느꼈다. 그런데 이 탑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일까? 과거로 달리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를 향해 달리는 걸까?
저쪽 벽에는 수없이 많은 다이얼이 붙어 있고, 그 앞에 리어와 청년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앨런이 일어난 걸 알았는지 리어가 웃는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앨런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리어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선."
하고 리어가 청년을 소개했다.
"나는 앨런이라고 합니다. 구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
선이란 청년은 리어와 닳은 얼굴이었으므로, 어쩌면 리어의 오빠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선은 빙긋이 웃음을 띠며 미터기가 하나를 가리켰다. 1980 이란 숫자가 보였다.
'그렇다. 이 탑은 지금 미래를 향해서 가고 있는 거다 아마 자기들의 세계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앨런은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몹시 안타까웠다.
그들의 세계는 현대의 말 같은 건 죄다 잊어버린 먼 미래에 있는 것이다.
이때, 갑자기 앨런은 누이동생과 친구의 일이 생각났다.
"나네트, 에드워드, 지금 어떻게 하고들 있을까?"
"나네트? 에드워드?"
하며 리어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리어 ! 말만 통할 수 있다면…… 나는 나네트와 에드워드를 한시 바삐 구해내야 해. 어떻게든 나네트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해."
하면서 앨런은 자기도 모르게 리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리어는 앨런이 하고 싶어하는 말을 어렴풋이 나마 알아차린 것 같았다. 갑자기 눈을 빛내며 2층으로 올라가더니, 낯익은 듯한 외투를 들고 내려왔다.
리어가 구출되었을 때, 나네트가 입혀 준 바로 그 외투였다.
리어는 그것을 가리키고, 다음은 연대를 표시하는 미터 기기를 손가락질하며,
"예스, 예스!"
하며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했다.
앨런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음, 이 외투가 있으면 나네트가 어디 있는지 곧 알게 된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라고 깨닫자, 앨런은 우선 안심이 되었다.
'아마 자기들의 세계에 돌아가서 어떻게 도와주겠지……'
앨런이 안심하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리어는 미소를 머금으며 이번에는 앨런의 손을 이끌고 통 모양으로 생긴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는 두 사람을 시간의 탑 꼭대기에 있는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곳은 사방의 벽에 투명한 특수 유리가 끼워져, 시간탑의 밖이 한눈에 바라보이게 되어 있었다.
"아앗!"
밖을 내다보았을 때, 앨런은 너무도 이상한 광경에 기절할 듯 놀랐다. 마치 영화 필름이 빠른 속도로 스크린에 비춰질 때처럼, 바깥의 광경이 어지럽도록 빨리 변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센트랄 파크를 둘러싸고 있는 빌딩들이 점점 높아지고 모양을 바꾸며, 보고 있는 사이에 미래적인 건물로 되어 갔다.
한 순간마다 광경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데, 그것은 낮과 밤이 급속도로 이어져 가기 때문이리라.
앨런은 얼핏 옆에 있는 연대 미터기에 눈이 갔다. 숫자가 자꾸 늘어 나가고 있었다.
1995- 2000- 2005
앨런은 지금 단 몇 초 동안에 몇 년 치의 광경을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방의 변화에 속도가 부쩍 높아졌다. 시간의 탑이 속력을 더 낸 것이다.
주위의 광경이 몽롱하게 7가지 빛깔로 흐려지더니, 드디어는 흰 회색 한 가지 빛깔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빛깔이 완전히 섞이면 회색이 된다.'
라는 빛깔의 법칙을, 언젠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생각났다.
이제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은 꾸불꾸불한, 형태로 변한 미래적인 빌딩의 희미한 검은 그림자뿐이었다.
2100- 2200- 2300
도시는 자꾸 거대한 것으로 되어 갔다.
빌딩의 그림자는 점점 높이를 더하여, 마침내는 시간탑의 3배나 되도록 높아졌다. 빌딩들 사이로 고가 도로의 띠가 높게 낮게, 마치 거미줄처럼 나 있었다.
시간탑의 속력이 더욱 올라갔다
3000- 3200- 3400
이 근처에까지 왔을 때, 빌딩의 그림자의 변화가 느려져왔다.
도시 문명은 드디어 절정에 이르러, 진보가 멈추어져 버린 것이다.
4400-~ 4600 ~ 4800
빌딩들의 여기저기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퇴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5000-5200-5400
이제야 도시는 제 모양이 잃게 되고, 시간의 탑 주위에는 거대한 빌딩의 폐허가 질펀하게 널려있었다.
여기저기에 숲이 나타났다. 빌딩이 폐허는 차츰 수풀에 묻혀 들어갔다.
6700-6800
갑자기 주위의 광경이 회색에서 벗어나 7색으로 물들었다. 시간의 탑 속력이 떨어진 것이다.
'드디어 목적지에 가까워졌나 보다.'
앨런은 그제야 자기 정신으로 되돌아온 듯 눈을 비볐다.
리어는 앨런을 이끌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해서 아래로 되돌아왔다.
아래서는 선이 긴장한 얼굴로 바쁘게 미터기와 다이얼을 조절하고 있었다.
시간의 탑은 점점 속력을 늦추었다.
6990-6995-7000
미터기가 7012를 가리켰을 때, 선은 레버를 당겼다.
진동 소리가 딱 그쳤다. 앨런은 한순간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곧 나았다.
문이 스르르 옆으로 열리며 따뜻한 햇빛이 환히 흘러들었다.
앨런은 선과 리어의 팔을 붙들고, 5천년 미래의 센트랄 파크에 조심조심 내려섰다.
 
 
시간 투시기
 
울창한 숲,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 처음 보는 꽃들이 어울려서 핀 넓은 정원,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하얀 벽.
"아아, 이 광경은……"
앨런은 곧 기억이 났다.
'우리가 컬러 텔레비전으로 본 맨 처음의 화면이 여기였었구나. 하긴 그때는 밤이었지만……'
앨런은 강한 태양 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7012년의 광경이 자연의 장난에 의하여 5천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앨런들의 시대, 즉 20세기에 다다른 것이다. 어쩌면 저 거대한 시간의 탑이 시간을 뛰어 넘음으로써, 자연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깨어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앨런은 리어와 선을 따라 하얀 벽의 문을 빠져나갔다. 눈앞에는 평평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5천년 이후의 뉴욕인가?"
하고 앨런은 불현듯 소리내어 외쳤다.
"뉴욕? 누야크?"
하며 리어가 돌아다보며 말했다.
이 시대에는 뉴욕이 변하여 누야크로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그 뉴욕이 아직 그대로 있을 때, 여기는 맨해튼섬이라고 불린 큰 섬이었건만 지금은 빌딩의 무리가 깨끗이 사라졌으므로 거의 전부가 한 눈에 보였다.
멀리 조용한 허드슨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곳곳에 잘 갈아놓은 밭이 보이고, 여기저기에 추녀가 짧은 석조의 집들이 몇 채씩 모여 서 있었다.
앨런은 그 집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 보았다. 여기저기 창문에서 주민들이 얼굴을 내밀고, 어떤 사람은 손을 들어 보이며 밖으로 나왔다.
몸에 착 달라붙은 은색의 옷, 흰 유리 구두,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여자들은 길게 늘어뜨린 것 외에는 모두 똑같은 복장이다.
어른도 아이들도 이마가 넓으며, 20세기 사람들보다 지능이 퍽 높은 것 같았다.
앨런은 신기해하며 유심히 바라보는 주민들 사이를 지가, 하나의 커다란 건물로 안내되었다.
긴 염소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마중을 나왔다. 리어는 반가운 얼굴로 노인을 얼싸안고 무슨 소리인지 속삭였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앨런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리어를 위험에서 잘 구해 주셨소. "
이 말을 듣고 앨런은 깜짝 놀랐다. 노인의 말은 조금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훌륭한 영어 그대로가 아닌가.
노인의 이름은 폴이라고 했으며, 리어와 선의 할아버지였다.
폴 노인은 이 시대의 드문 대과학자의 한 분이었으며, 시간 여행의 방법도 그가 발명한 것이었다. 그 시간의 탑을 만든 사람도 폴이란다. 그리고 몇 번이나 20세기를 찾아갔을 때, 영어를 배워 익혔다는 것이다.
"그 시간 여행의 방법을 응용하여, 나는 '시간투시기'라는 것도 만들었소. 말하자면 시간의 과거와 미래를 어떤 먼데서라도 볼 수 있는 기계라고나 할까."
하며 폴 노인은 앨런을 위로해 주려고 애쓰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당신 누이동생이나 친구가 있는 곳도 찾아낼 수가 있을 거요. 지금 나의 제자 렌쯔에게 기계 준비를 시켜 놓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앨런은 노인의 친절에 깊이 감사를 표하며, 전부터 품고 있던 커다란 의문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저어, 리어와 여기 여러분은 저 악한 타버 박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라고 하자, 노인의 얼굴은 금방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지더니 더듬더듬 얘기를 시작했다.
"오래 전에 내 아들, 즉 선과 리어의 아버지가 시간의 탑을 타고 당신네 시대, 1960년대를 찾아간 일이 있었소. 그런데 몰래 한 사나이가 시간의 탑에 올라타고 이곳으로 밀행을 해 왔었소. 그 자가 저 타버였지요. 그 놈은 머리가 비상하게 좋아서, 처음에는 얌전하게 있길래 믿고 여러 가지로 편의를 보아주었던 거요. 그러나 얼마 후에는 악인의 본성 을 드러내어 우리가 발견한 시간 여행의 비밀을 훔쳐내어 자기 손으로 '시간 로켓'을 만들어서는 도망쳐 간 것이오."
라고 말하는 노인의 눈에는 증오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오, 우리 리어에게 결혼을 강요하다가 듣지 않으니까 그 앙갚음으로 리어의 아버지를 죽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금과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을 몽땅 훔쳐갔다오."
"아아, 그러면 저와 사정과 똑 같군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악독한 타버를 반드시 멸망시키고 말겠다고 하늘에 맹세했소. 그러나 나는 이미 늙어서 시간탑을 탈 수가 없고, 선은 시간탑을 지켜야 하니까 항상 그것을 타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그러니 결국 리어가 모든 것을 맡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거요."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계속했다. '
"그러나 리어의 힘으로는 타버를 쓰러뜨리기에는 힘에 겨운 모양이오. 그놈이 당신네 시대에 병원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리어를 보내봤지만, 결국 속수무책이었소. 만일 당신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리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형편이오."
여기서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분한 듯이 흰 수염을 떨었다.
"또 한 가지 억울한 일은, 우리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없는 일이오. 오랜 평화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무기 만드는 과학은 필요가 없었다오."
"타버란 놈이 그렇게도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이지. 울트라라는 미사일이요. 타버는 수소폭탄의 몇 천 배의 위력을 가진 초강력 병기를 발명한 모양이오. 게다가 타버는 당신네들 시대와는 달리, 2440년대의 뉴욕에 강력하게 무장을 한 근거지를 갖고 있다오.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거요."
"시간 투시기로 다른 시대를 찾을 수는 없는가요?"
"그게 원통하게도, 그 기계는 무엇이든 실마리가 될 것이 없이는 찾으려는 걸 찾아내지 못하는 거요. 물론 시간의 탑을 미래로 가져가 보기도 했지. 그랬지만 미래는 어디까지 가도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되고 있어서 무기 같은 건 하나도 없단 말이오. 사실 과거에는 확실히 무서운 무기가 있었어. 기록에 의하면 5천년 경에 어떤 물질이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원자로 분해되어 버리는 비밀 병기가 발명됐다고 하오. 그런 무기만 있으면 좋겠는데, 불행히도 그것이 발명된 시대가 확실치 않단 말이야. 첫째 그걸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느냐가 문제고, 발명자로부터 간단히 빌려 쓸 수도 없는 터이니까 말이요. 기록에는 완전한 형태로 어느 역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니까, 그 곳이 뒷날 폐허로 된 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오. 한시라도 빨리 그 시대와 장소를 알아내야 하겠는데..."
이때, 나무 가지처럼 야윈 안경잡이 사나이가 나타나 노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마 시간 투시기의 준비가 된 모양이니 날 따라오시오."{
앨런이 따라간 곳은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다.
중앙에 빨강, 파랑, 초록의 네온사인 같은 튜브가 얽혀 있는 복잡한 기계가 웅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기계의 한 쪽 끝에는 스크린이 붙어 있었다. 이 기계가 '시간 투시기'인 모양이다.
폴 노인은 아까 나타났던 안경 쓴 사나이를 앨런에게 소개했다.
"내 제자인 렌쯔요. 나와 타버 외에 시간 여행의 비밀을 아는 건 이 사람뿐이오."
"앨런씨, 잘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는데, 렌쯔도 꽤나 영어를 잘 하는 것이었다.
"이 기계는 찾으려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뇌파, 즉 뇌에서 나오는 희미한 전기가 배어들어 있는 물건만 있으면 어떤 시대에서도 그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렌쯔는 리어로부터 받은 나네트의 외투를 기계 속에 있는 유리판 위에 얹었다.
"스크린을 잘 보아주시오. 이 외투가 누이동생의 뇌파의 파장에 맞아들면 곧 화면이 나타납니다."
곧 유리판 위에 놓인 외투에 푸른 광선이 쏟아지듯 비쳤다.
앨런은 숨은 죽이고 스크린을 지켜보았다. 5분 - 10분 -
그러나 스크린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렌쯔는 그만 스위치를 끊었다.
"이거 찾을 것 같지 않군요."
이때, 기계를 점검하고 있던 폴 노인이 소리쳤다.
"렌쯔, 이 쪽 튜브가 깨져 있어. 이래서야 나타나지 않지."
"예? 정말이군요. 이거 죄송합니다 곧 고쳐 가지고 오겠습니다."
하고 렌쯔는 몹시 당황해 하며 얼른 옆방으로 달려갔다.
폴은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태 저런 실수를 하는 사나이가 아니었는데……"
렌쯔가 고친 튜브를 가지고 돌아왔다 다시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잘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스크린에 또렷이 나타난 광경을 보고 앨런은 바짝 긴장했다.
달빛이 환한 밤의 숲 속이었다. 까만 제복들을 입은 사나이들과 새깃 장식을 한 인디언들이 함께 바쁜 듯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숲 저 쪽에 강물이 빛나고 그 강가에 크게 모닥불이 타고 있다.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높이 우뚝 서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타버의 시간 로켓이었다. 그리고 입구에 서 있는 뚱뚱한 사나이, 그는 말할 것도 없이 타버였다.
"1664년 9월이군."
폴 노인이 미터기의 숫자를 읽었다.
선이 노인에게 다가와서 무언가 속삭였다. 노인은 앨런을 돌아다보았다
"선이 그러는데, 여기는 허드슨강의 맨해튼섬 강기슭이 틀림 없다는군."
이라는 말을 듣고, 앨런은 즉시 결심했다.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시간의 탑을 빌려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노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앨런, 선, 리어 세 사람은 곧 준비를 갖추어 다시 시간의 탑에 올랐다.
폴 노인이 입구에 서서 앨런의 손을 꼭 쥐었다
"행운을 빌겠소."
반드시 타버 놈을 쓰러뜨려 보이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문이 닫히자, 우렁 우렁 우렁하는 소리와 함께 시간의 탑 은 과거를 향해 맹렬한 속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시간 여행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앨런은 한동안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으나 이내 회복이 되었다.
"괜찮아요?"
리어가 걱정스러운 듯 앨런을 쳐다보았다. 앨런은 빙긋이 웃어 보였다.
이때, 엘리베이터가 2충으로부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앨런, 리어, 선은 앗 하고 서로 얼굴을 보았다. 이 시간의 탑에는 그들 3명 외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거기서 나온 것은 야위고 키가 큰 안경잡이 사나이였다.
"렌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그러자 렌쯔는 히죽히죽 어색한 듯이 웃었다.
"도와 드리려고요. 나도 폴 선생님의 비밀을 훔쳐간 타버 놈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생각할수록 분해요."
"그렇지만 선생님의 허락을 얻었나요?"
"아뇨, 말씀은 드려 보았지만 허락해 주지 않았소. 그래서 밀항을 한 거지요."
"그렇다면 리어와 선의 의견을 들어보시오."
렌쯔는 미래의 말로 그들에게 설명을 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는 앨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지 않소? 그리고 내가 있으면 당신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거요. 당신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내가 통역이 되어 드리겠소."
 
 
심야의 탈주
 
한편, 나네트와 에드워드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우선 그들 두 사람이 20세기의 센트랄 파크에서 깊은 밤중에 타버의 시간 로켓에 납치되던 때로 돌아간다.
나네트가 타버에 의해 시간 로켓 안에 끌려 들어가는 걸 본 에드워드가 위험도 무릅쓰고 그 뒤를 좇아, 자기도 시간 로켓 속으로 뛰어들어갔던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혼자이다. 아무리 완력이 강하다 해도 혼자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에 타버의 부하들에게 얻어맞고 쓰러져, 시간 로켓 속의 한 방에 처박혀져 있게 된 것이다.
얼마 동안 그는 기절해 있었다. 그러다가 가늘게 방바닥을 흔드는 진동 소리에 에드워드는 퍼뜩 정신이 났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차디찬 회색 벽과 창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아픈 몸을 이끌고 창 있는 대로 기어갔다
창 밖에서는 센트랄 파크를 에워싼 빌딩과 거리의 모습이 어지러울 정도로 변해 가고 있었다.
회색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들은 점점 낡은 것으로 변해 갔다.
'음, 나는 지금 타버 놈의 시간 로켓에 갇혀 있구나. 그리하여 시간을 거꾸로 한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다..'
에드워드는 창틀에 매달려 쉬지 않고 변해 가는 바깥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재미있나, 에드워드군?"
갑자기 놀리듯이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타버가 문 앞에 서 있었다.
"타버! 네놈은 우리들을 어떡할 셈이냐? 나네트는 어떻게 했어 ? 어디 있느냐 말야."
에드워드는 주먹을 불끈 쥐고 타버에게 대들듯 소리 쳤다.
"조용히 하라군. 여기서는 아무리 덤벼 봤자 소용없다는 것쯤은 자네도 잘 알 텐데."
타버의 손에는 어느새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나네트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소중한 손님이니까 말야. 자네도 마찬가지지. 하긴 우리가 초대한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느냐? 네게는 방해가 될 뿐이 아닌가?"
그러자 타버는 어깨를 움찔해 보이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단지 나네트가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지. 난 나네트와 결혼을 하고 싶어. 그러니까 기분을 잡치게 할 수는 없단 말이야. 조금 있다가 적당한 시대에 혼자 남아 있게 해 주지."
타버가 히죽히죽 웃는 것을 보고, 에드워드는 머리에 피가 왈칵 솟는 것을 느꼈다.
'너 같은 악한에게 나네트를 넘겨줄 수는 없다.'
"그런데 얌전하게만 하고 있으면 여기서 내놓아 주겠네. 나네트도 만나게 해 주고 말야. 어때?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겠나?"
식사! 에드워드는 갑자기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벌써 백년 동안이나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듯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네트가 무사한지 그의 모습도 빨리 보고 싶다!
에드워드는 할 수 없이 악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네트도 에드워드를 만나보고는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고 타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 다. 타버도 일부러 나네트에게 상냥하게 구는 듯이 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우리들을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인가?"
에드워드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이렇게 물었다
"어디라고 ? 아무데도 가지 않는 거야."
타버는 빈정거리는 웃음을 띠며 대꾸했다.
"알겠나? 우리는 줄곧 이 허드슨강 상공에 떠 있는 거야. 다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을 뿐이지"
"그러면 어느 시대로 갈 작정인가?"
"1664년이야. 거기서 하룻밤만 묵는다. 멋진 보물을 인디언들로부터 손에 넣을 작정이다. 금과 은과 보석들이지."
타버는 의기양양해서 지껄여댔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2445년의 대뉴욕의 시대로 간다."
"2445년? 왜냐?"
"거기 나의 최대의 근거지가 있기 때문이야. 내가 발명한 초병기 울트라 미사일을 갖춘 내 무적의 타버성이 있지."
"그런 걸 가지고 대체 어떡할 작정이냐?"
"물어볼 것도 없지. 나의 오랫동안의 꿈은 세계를 정복하는 일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그 대사업에 착수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타버의 두 눈은 미친 사람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다! 20세기의 그 나치스 독일의 히틀러처럼……'
에드워드는 불현듯 등골이 써늘해짐을 느꼈다.
식사를 할 때, 에드워드는 시간 로켓에는 참으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는 걸 알았다
털가죽 옷을 입고, 몽둥이를 쥔 고릴라 같은 원시인이 있다. 그런가 하면 고대 그리스말을 지껄여대는 자도 있고, 아프리카의 흑인도 있다.
조너스라는 이름의, 선과 리어와 같은 시대의 사람 같아 보이는 미래인도 있다. 이 사나이는 이 시간 로켓의 조종사였다.
그리고 타버의 조수 운커스, 이 사나이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원시인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타버는 두 사람을 조종실로 데리고 갔다
"조너스, 폴이란 놈이 발명한 그 지긋지긋한 '시간 투시기'에 우리가 붙잡혀 있진 않겠지?"
하고 타버가 조종사에게 물었다.
"예, 염려 없습니다. 적어도 시간을 날아가고 있는 동안은 발견될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그 사나이가 잘 숨겨 주리라 생각하니까요."
"음, 그렇지. 놈을 우리편에 끌어넣은 건 자네의 공이야. 내가 세계를 정복할 때는 자네한테도 듬뿍 상을 주겠네."
"헤헤,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 리어와 선이란 놈은 끈질깁니다. 늦기 전에 그 시간의 탑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
옆에서 듣고 있던 에드워드는 이 주고받는 말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시간 투시기니, 그 사나이니 하는 것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에드워드군, 자네는 기계를 만지기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디 내 시간 로켓의 구조에 대해서 가르쳐 줄까?"
하고 타버는 자못 만족스러운 듯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지껄이는 설명이 반쯤 지났을 때, 갑자기 조너스가 타버를 가로막았다.
"주인님, 드디어 1664년에 가까이 왔습니다
"좋아, 밤을 택해서 착륙해."
시간 로켓의 속력이 불쑥 떨어졌다. 회색이었다. 창 밖의 광경의 색깔이 짙어지고, 밤과 낮의 교대가 뚜렷이 보였다
1664년.
그 곳이 어떤 세계였던가는 에드워드는 학교에서 배운 역사에서 미루어 보아 대강 짐작이 갔다.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 1492년, 허드슨강의 발견자 헨리 허드슨이 이 근방을 탐험한 것이 1609 년이다.
그 후, 이 맨해튼섬 남쪽 끝에 네덜란드 사람이 상륙하여 식민지를 건설하고 뉴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영국인이 이 식민지를 빼앗아 뒤에 뉴욕으로 발전시켰다.
타버의 시간 로켓이 착륙 예정인 1664년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충돌이 시작된 해에 해당한다. 물론 그 즈음의 이 근방은 아직 울창한 정글이었고 많은 원주민, 즉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있을 것이다.
창 밖의 낮과 밤의 교대가 점점 느려져 갔다.
밟았다 어두웠다, 또 밝아졌다가는 어두웠다 하고 있었다.
진동 소리가 딱 그쳤다.
"꼭 알맞게 잘 됐어. 예정한 대로 해가 진 바로 뒤로군."
하고 타버는 조너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슈슈슈웃 !
시간 로켓은 곧 분사 불길을 토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허드슨강 언덕에 착륙했다.
타버의 부하들이 우르르 밖으로 뛰어나가, 큼직한 모닥불 을 피우기 시작했다. 붉은 불꽃이 강물을 물들였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몇 척의 카누가 줄지어 상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달빛이 쏟아지는 강물에서 노를 젓고 있는 것은 모두 인디언들이지만, 뱃머리에 서서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은 백인들이었다.
타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것이 내가 기다리고 있던 보물선이다. 곧 짐을 내릴 거야.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금과 은을 모두 합쳐서 몇 10억 달러 어치가 되는지 짐작도 못할 거다. 하하하……"
"야아, 과연 굉장하군. 타버, 어때? 내게도 당신의 그 보물이란 걸 한 번 보여 줄 수 없을까? 저렇게 굉장한 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테니까."
하고 에드워드가 말하자, 타버는 수상쩍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무슨 계획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나네트는,
"나도 한 번 보고 싶군요."
하고 나섰으므로 결국 타버는 승낙을 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운커스가 권총을 쥐고 경비를 맡고 나섰다. 배의 인디언들은 이미 짐을 부리고 있었다. 건장하게 생긴 인디언들이 차례차례 짐짝을 들어 내리면, 타버는 일일이 그 나무 궤짝을 열어 속을 들여다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 속에는 많은 금과 은, 다이아몬드 원석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짐 부리는 일을 감독하고 있는 사람은 카누를 타고 온 몇 사람의 백인인데, 보기에 네덜란드인 같았다.
"타버씨, 어떻습니까? 인디언들을 부려서 이만큼 모았습니다. 이만하면 당신의 굉장한 성으로 데려다 주시겠습니까?"
"아, 그러고 말고."
"고맙습니다. 영국인들과의 전쟁에 끌려드는 건 딱 질색이니까요."
라는 대화가 토막토막 들렸다.
타버는 아주 보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경비를 맡고 있는 운커스까지도 그 막대한 금은보화에 두 눈을 휘둥그래 뜬 채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나네트, 갑자기 아픈 시늉을 해요. 그러면 내가 저 놈의 권총을 뺐을 테니까."
에드워드가 가만히 속삭이자, 나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야얏, 아야……"
갑자기 나네트가 배를 움켜쥐고 죽는 시늉을 했다. 에드워드가 소리를 쳤다.
"우, 운커스, 나네트가 갑자기 병이 났어. 아까 먹은 것이 잘못된 모양이야. 로켓으로 옮겨 가야겠으니 도와주게."
그러자 운커스는 놀라며 권총을 쥔 채 나네트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에드워드의 재빠른 솜씨.
얏 ! 둔한 소리를 내며 에드워드의 당수가 운커스의 목덜미를 갈겼다.
운커스는 한 마디 소리도 못 내고, 땅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나네트! 이때다!"
에드워드는 운커스의 권총을 빼앗아 잡고는 나네트의 손을 잡고, 뒤쪽의 어두운 정글 속으로 뛰기 시작했다.
"야, 저기다! 누구든지 저놈을 빨리 잡아라!"
타버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은 강 언덕에서 100 미터쯤 되는 곳을 죽어라고 뛰고 있었다.
 
 
기쁨의 재회
 
이야기는 다시 시간의 탑으로 돌아간다.
앨런, 리어, 선, 그리고 렌쯔네 사람은 지금 전속력으로 1664년의 그 밤을 향해 시간을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1 시간이면 목적지, 아니 목적시간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타버의 시간 로켓으로부터 1 마일쯤 떨어진 곳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거기 도착하면 곧 시간 로켓을 습격하여 나네트와 에드워드를 구해내고, 또 될 수만 있으면 타버를 쓰러뜨린다는 것이 앨런의 계획이었다.
"자네는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나?"
하고 렌쯔가 앨런에게 물었다
앨런은 권총을 꺼내 보였다. 렌쯔가 그것에 손을 대려고 하므로,
"안 돼. 이건 내가 사용해야 해. 자네 무기는?"
라고 묻자, 렌쯔는 품에서 칼날이 긴 나이프를 꺼냈다.
"나는 칼 던지기에 약간 자신이 있어서 말야."
"그것 됐어. 소리가 안 나는 편이 유리하지. 우리 둘이서 힘을 합하면 어떻게든 타버를 쓰러뜨릴 수 있어. 잘 부탁하네."
"좋아. 더욱이 그 시대를 시간 투시기로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으니까 지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길 안내도 내게 맡기게."
이때, 리어도 같이 가고 싶어하는 시늉을 했다.
"아니, 리어는 선과 같이 여기 남아 있어야해."
앨런이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하자 리어는 무언지 빠른 말로 렌쯔에게 떠들었다.
렌쯔가 통역을 했다.
"리어는 그 시대의 인디언과 말을 할 줄 안다고 그러는군. 전에 한 번 그곳에 갔을 때 연구를 한 모양이야. 인디언들로부터 여신이란 말을 듣는다는 거야."
"그래, 그래. 이 탑, 마술의 탑."
"인디언들은 이 탑을 보고 마술의 탑이라 하며 놀란 모양이지. 그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우리들을 도와주게 한다고 말하고 있어."
그래도 앨런은 여전히 머리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안 돼. 여자는 거치적거릴 뿐만 아니라, 타버에게 붙들리는 날엔 큰일이니까."
리어는 그제야 단념을 했다.
얼마 후, 시간의 탑은 목적한 곳에 도착했다.
앨런의 일행은 전망대에 올라가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높은 탑 위에서라서 허드슨강도 눈알에 있는 듯이 잘 보였다.
동쪽에 빛나고 있는 건 이스트강이겠지. 그리고 남쪽에서 빛나는 희미한 불빛, 모닥불 같은 것이 보였다.
"저기가 타버가 있는 곳이다."
하고 렌쯔가 말했다.
앨런은 그 위치를 마음속에 또렷이 새겼다. 그리고 눈 아래 울창하고 넓은 정글 지대를 내려다 바라다보았다.
그 곳에는 그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이 곳에서 지금부터 3 백년 후로 되돌아가 서 있다는 것이 앨런에게는 어쩐지 믿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선, 만일 위험한 일이 일어나거든 우리들을 내버려두고, 시간의 탑을 출발시켜 주게."
이렇게 명령하고 나서, 앨런은 리어의 손을 꼭 쥐었다. 어 쩌면 이것이 마지막 될지도 모른다.
"앨런, 조심해요."
"염려 말어.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앨런은 안심하라는 듯 빙긋 웃어 보이고는 손을 흔들며 렌쯔와 함께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괴로운 여행이었다.
두텁게 우거진 수풀, 쓰러진 큰 나무들, 질퍽거리는 낮은 지대, 험한 벼랑, 물결 쎈 개울.
그리고 언제 어디서 맹수와 인디언이 습격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번은 풀뿌리를 붙들며 벼랑을 내려갔을 때, 뒤따라오던 렌쯔가 갑자기 떠밀린 듯이 앨런에게로 와서 부딪쳤다. 앨런은 하마터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왜 이래 렌쯔?"
"미안해요. 발이 미끄러졌어."
방향도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는 렌쯔는 아무래도 왼쪽으로만 굽어져 가는 것 같이 앨런에게 느껴졌다.
"이봐, 저쪽이 아닌가?"
"아니야, 남쪽은 이쪽일걸."
지형에 밝은 렌쯔의 말이므로 앨런은 고래를 갸웃거리면서도 따라가고 있었다.
괴로운 길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후미진 곳을 지나칠 때였다. 앞쪽에서 마른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우뚝 멈춰 섰다.
"앗! 누가 있나보다."
두 사람은 옆의 나무 그늘에 숨어서 앞쪽을 살펴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흐르는 달빛 사이에 희끗희끗 보이는 두 개의 그림자. 그것은 차츰 이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혹시 인디언이나 아닐까?두 사람은 식은땀을 홀리고 있었다. 심장의 고동이 심해 왔다.
그러자 그 두 사람의 그림자는 빈터로 나왔다. 달빛이 환히 그들을 비쳤다. 남자와 여자다.
앨런은 벅찬 목소리로 불렀다. .
"나네트, 에드워드, 나야 앨런이야!"
하며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오빠!"
"앨런, 구해 주러 왔구나."
에드워드와 나네트는 마치 공이 구르듯이 달려왔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좋았어,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이런데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세 사람이 기뻐하고 있을 때, 에드워드는 갑자기 엄숙한 얼굴이 되었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뒤쫓고 있는 놈이 바로 가까이 와 있을지 모른다. 빨리 시간의 탑으로 도망쳐야 해."
그러나 시간탑이 있는 곳이 어느 쪽인지 방향을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렌쯔, 자네는 어느 쪽으로 생각돼?"
"글쎄요, 이쪽이겠지요."
"그럴까? 그 쪽은 남쪽이 아닌가?"
앨런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에드워드가 동의를 했으므로 그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얼마쯤 나아가자 나무 가지 사이로 멀리 달빛에 반짝이는 강물이 보여 왔다.
"저것은 이스트강이오."
하고 렌쯔가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가? 그럼 타버의 시간 로켓은 저쪽 허드슨강 훨씬 남쪽이고, 우리의 시간의 탑은 이쪽이 되는군."
네 사람은 또 길도 없는 길을 묵묵히 헤쳐가고 있었다.
 
 
배반자
 
이따금씩 먼데서 기분 나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네트는 겁에 질려 에드워드에게 매달렸다. 캄캄한 정글을 등불도 없이 헤쳐 가는 터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자 돌연 앞쪽 나무 사이로 반짝 빛나는 밝은 빛.
"오! 시간탑인가 보다."
네 사람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그 빛은 시간탑의 희푸른 불빛이 아니라 누르스름한 빛깔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의 불빛이다.
앨런이 수상쩍어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 리가 없는데...... 설마 인디언의 텐트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어디 좀 살펴보고 와야겠다. 자네들은 덤불 속에 숨어들 있게."
라고 말하고 앨런은 발소리를 죽이며 나아갔다.
조금 후 보고 온 것은 높다란 통나무 울타리와 나무로 지은 오두막집들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이 근처에서 인디언밖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하면 뉴암스테르담밖엔……'
이때, 문득 앨런은 생각해 냈다.
'그렇다! 그럴 거야.'
앨런은 부리나케 일행이 있는 데로 되돌아왔다.
"렌쯔, 이놈! 네가 우리를 속였지. 저곳은 뉴암스테르담이 아닌가? "
렌쯔는 깜짝 놀랐다.
"무, 무슨 말이오? 나는……"
그러자 에드워드가 나서며 말렸다.
"이봐. 앨런 자네 미쳤나? 우리편끼리 싸움은 그만둬."
"이 놈은 우리편이 아냐. 적의 끄나풀이란 말야. 아까 본 강은 동쪽에 있는 이스트강이 아니라, 서쪽의 허드슨강이었단 말이네. 렌쯔는 우리를 북쪽으로 안내하는 척하고 실은 남쪽으로 끌고 왔어."
"뭐라고?"
별안간 렌쯔는 한 걸음 썩 물러서더니, 품에서 나이프를 빼들었다.
"탄로 난 이상 하는 수 없지. 네 말대로 나는 타버의 스파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타버의 시간 로켓은 바로 저 쪽에 있다. 네놈들은 도망칠래도 못 쳐!"
"이 배반자!"
앨런이 권총을 빼들자, 렌쯔는 칼을 번쩍 쳐들었다. 그러나 나이프가 날아오기 전에 먼저 권총이 불을 뿜었다.
타, 탕!
총성은 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숲 속에 울려 퍼졌다.
렌쯔는 오른쪽 어깨를 맞고 나이프를 툭 떨어뜨렸다. 그러더니 급히 왼손으로 그걸 집어들고, 나무 그늘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기 섯!"
하고 뒤쫓으려는 앨런을 에드워드가 붙들었다.
"그만둬. 이번 총소리로 적이 눈치챘을 테니까 빨리 도망치자구."
세 사람은 마구 달렸다.
그러나 뉴암스테르담은 잠이 깨어 눈뜨기 시작했다. 등불이 하나 하나 켜지며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2개, 3개, 4개- 횃불과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도망치는 세 사람의 뒤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10분 후, 앨런 일행은 횃불들에 에워싸이고 말았다.
"할 수 없다. 운명에 맡기자."
세 사람은 두 손을 들고 멈춰 섰다.
빙 둘러선 네덜란드인들은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여자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나네트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건들이지 마."
에드워드가 소리치는 영어를 듣고, 어마어마하게 무장을 한 네덜란드인들은 별안간 왁자하게 떠들어댔다.
"너희들은 영국인들이지? 이놈들이 벌써 이런 데까지 들 어왔구나. "
"죽여버려라."
"아냐, 그러기보다는 영국 놈들과 전쟁에 필요한 인질로 잡아 두는 것이 좋아. 총독 (식민지의 장관) 각하께서 좋아하실 걸세."
네덜란드인들은 의기 양양해서, 세 사람을 마구 몰아 뉴암스테르담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곳은 동네라기보다 요새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거대한 통나무로 짜서 만든 문을 들어서니 튼튼한 통나무집들이 길가로 죽 늘어서 있었다.
어느 집도 환하게 램프를 켜놓고 창문으로는 저마다 무슨 소리인지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이 시대는 영국이 네덜란드에 식민지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는 때이다. 좋지 않은 때에 붙들렸군."
하고 역사에 밝은 에드워드가 앨런과 나네트에게 말했다.
"그래? 그래서 인질로 잡아두자는 거로군."
"이 자들에게 우리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사람이고, 미래로부터 왔다고 얘기해 봤자 들을 턱도 없고 말이야."
이때, 갑자기 세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을 끌고 가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뭔지 의논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일행은 세 사람을 데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려는 걸까? 놓아 보내 주려는 건가?"
라고 앨런이 말하자, 영어를 아는 듯한 네덜란드인이 획 뒤돌아보았다.
"놓아주진 않아. 그러나 오늘 밤 이 동네는 몹시 붐비고 있어. 너희들 영국 군함이 바다 복판에 나타났기 때문에, 전쟁 준비에 바빠서 너희들을 잡아둘 장소가 없단 말이다."
조금 후, 앨런 일행은 동네 밖의 누추한 오두막집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각각 밧줄로 얽어매어 집안에 갇히고, 몇 명의 사나이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등불도 없는 캄캄한 속에서 에드워드가 가만히 속삭였다.
"나네트, 다친 데는 없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무서워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래도 타버에게 붙잡힌 것보다는 나아. 네덜란드인이 설마 우리를 죽이지야 않겠지."
에드워드의 말에 앨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직 희망은 있다. 어떻게든 여기서 탈출하기만 하면……"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서는 전혀 탈출할 희망이 없었다. 세 사람은 칭칭 동여매어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럴 즈음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쿵쿵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문이 열렸다.
등불을 들고 들어온 사람은 발목을 묶은 밧줄만 풀어 주더니, 다시금 동네 안으로 끌고 갔다.
"너희들을 만나겠다는 사람이 있다."
"우리들을 만나고 싶다고?"
앨런은 불안 속에 휩쓸려 들었다.
그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어느 큰 통나무집에 들어섰을 순간, 귀에 익은 야유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야아, 수고들 했군."
"앗, 타, 타버!"
세 사람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았지?"
"렌쯔가 알려 줬으니까."
타버는 이 말 한 마디뿐, 세 사람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고 뉴암스테르담의 총독인 듯한 사나이와 네덜란드 말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의논이 된 모양이었다. 타버는 커다란 가 죽 주머니에서 보석과 금덩이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산같이 쌓아놓았다.
총독은 떨리는 손으로 그 보석과 금괴를 집어들고, 욕심에 빛나는 눈을 번득였다.
타버는 싱글거리며 세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자, 자네들은 어서 나네트에게 작별 인사를 해라. 너희들도 같이 맡으려고 했지만, 뭐니뭐니 해도 몸값이 많아져서 말일세. 양해해 주기 바라네."
"뭐, 뭐라고?"
타버와 말뜻을 깨달은 앨런과 에드워드는 손목을 묶인 채 덤벼들려고 했다. 그러나 곧 네덜란드인들이 붙잡혀 꼼짝하지 못했다.
"새삼스레 버둥거리는 건 꼴사납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자네들의 행운을 빌겠네."
타버는 내뱉듯이 말하고는 나네트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오빠, 에드……"
차츰 멀어져 가는 나네트의 목소리- 그러나 두 사람은 분노에 이를 갈 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타버가 가고 나자, 앨런과 에드워드는 다시 아까 갇혀 있던 오두막집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은 모두 방바닥에 뒹굴려진 채, 이미 절망한 나머지 말할 힘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피로에 지쳐 잠이 들려던 앨런은 이상스런 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찌지직! 무언인지 머리 위의 지붕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 또 찌지직 !
"이봐, 에드워드 일어나! 이상하다."
갑자기 먼 곳에서 기묘한 함성이 일어났다.
캬호, 캬호, 캬호- 서부 영화에서 듣던 인디언의 외치는 소리.
탁, 탁, 탁! 지붕에, 벽에 화살이 퉁겨나가는 소리가 우박 소리처럼 점점 심해 왔다.
바깥에 서서 감시하던 네덜란드인의 사나이는 곧 허둥대기 시작했다. 덮어놓고 총을 쏘며, 오두막 안에 있는 앨런과 에드워드를 내버려 둔 채 허겁지겁 요새를 향해 도망쳐 갔다.
"앗, 앨런, 불이다!"
하고 에드워드가 비명을 질렀다.
통나무 벽의 저편에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인디언들이 불화살을 쏘기 시작한 것이다.
노린내가 나는 횐 연기가 오두막집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세찬 기침을 했다.
그러나 꽁꽁 묶인 두 사람은 연기를 피해 가려 해도 갈 수가 없다. 그저 바닥에서 발버둥칠 뿐이었다.
캬호, 캬호, 캬호! 인디언들의 외치는 소리는 자꾸 가까워 졌다.
"에드워드, 아마도 우리들의 운명은 이로써 끝인가 봐."
불빛에 얼굴이 벌개진 앨런이, 연기에 목이 메인 소리로 단념한 듯 속삭였다. 에드워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단 번쩍 기세를 올린 불바다 속에 건장한 인디언들이 함성을 올리며 뛰어들었다.

 
인디언의 여신
 
이야기는 다시 시간의 탑에 타고 있는 리어와 선에게로 돌아간다.
두 사람은 전망대의 창틀에 기대서서, 미래의 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빠, 앨런은 언제 돌아올까요?"
"아마 새벽녘이겠지. 리어야, 앨런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틀림없이 나네트와 에드워드를 구해서 무사히 돌아올 거다."
선은 누이동생의 염려를 웃음으로 넘기면서도 자신은 초조하여 방안을 왔다갔다 거닐고 있었다.
시간은 달팽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가고만 있었다. 리어는 점점 불안이 커져 왔다. 불안을 달래려고 리어는 지껄이고 있었다.
"오빠, 우리가 전에 한 번 이 곳에 왔을 때 일을 기억하고 있나요? 그 실버워터 (은빛의 물)란 별명을 가진 인디언의 추장이 있잖아요."
"아아, 있었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 추장의 힘을 좀 빌릴 수 없을지 모르겠어요. 그 일족은 나를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이라 믿고 있어요. 시간의 탑을 '태양의 배'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힘을 빌리는 건 좋지만, 그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문제야. 이 캄캄한 정글 속에는 사나운 다른 인디언도 많이 있는데 말야."
"그렇긴 하지만……"
하다가 갑자기 리어가 귀를 기울였다.
"오빠, 누구 사람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얼른 창으로 달려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리어, 나야! 문 좀 열어 줘."
이번에는 똑똑히 들렸다. 렌쯔의 목소리였다.
리어는 문을 열기가 무섭게 이리저리 휘둘러보며 소리쳤다.
"앨런! 앨런은?"
그러나 방으로 뛰어들어온 것은 렌쯔 뿐이었다. 오른손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렌쯔는 아픔을 가까스로 참으며 신음하듯 말했다.
"리어, 놀라지 말고 들어요. 사실은. 사실은 앨런은 당했어. 타버란 놈의 권총을 맞았어. 나도 이 꼴이 되고......"
"어머, 앨런이?"
순간 리어는 새파랗게 질려 비틀거렸다. 선이 황급히 붙들려고 했다.
린쯔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등뒤로 돌리고 있던 왼손의 날카로운 칼을 휘둘렀다. 선의 심장을 향해 꽉 찔렀다.
"앗!"
그러나 선은 운수가 좋았다. 리어의 몸무게 때문에 비틀거렸던 탓으로, 칼은 왼쪽 어깨를 스쳐 허공을 찔렀던 것이다.
"무슨 짓이야, 렌쯔!"
깜짝 놀라 소리치는 선에게 렌쯔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덤벼들었다.
선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있는 힘을 다해 렌쯔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렌쯔의 몸은 공처럼 퉁겨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 순간-
"으윽!"
렌쯔는 그만 자기 가슴에 칼이 꽂히고 만 것이었다. 그는 칼자루를 쥔 채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자마자 쿵하고 도로 바닥에 쓰러졌다.
선은 하얗게 된 얼굴로 와들와들 떨며 울고 있는 리어를 끌어안았다. 선의 얼굴도 놀람에 핏기가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 렌쯔가, 렌쯔가 반역자 였다니……"
"앨런은, 앨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때, 쓰러져 있던 렌쯔가 가느다란 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음에 이르러 비로소 양심이 눈을 뜬 것일까.
"리어. 바른 대로 말하겠어."
렌쯔는 몇 분 후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기 전에 모든 것을 리어와 선에게 털어놓았다.
'앨런과 에드워드는 뉴암스테르담에 붙들려 있다. 어떻게든 구해내야 한다.'
리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시간탑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축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은 창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앗, 리어 저건 인디언들이야. 이 이상 여기 있다가는 큰일 나겠어. 빨리 도망쳐야 해."
하며 선은 부리나케 조종 장치로 달려갔다.
그러나 리어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막았다.
"잠깐 ! 저 인디언들을 봐요. 땅에 엎드려 이 쪽을 향해서 절을 하고 있지 않아요? 저건 필시 실버워터의 일족일 거여요."
리어는 곧 아까 말한 계획대로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리어가 문을 가만히 열고 조용조용히 문 앞에 나가 서자, 땅바닥에 엎드려서 축원을 하던 인디언들은 일제히 놀람과 존경의 소리를 질렀다.
"오! 숲의 아들들이여!"
하며 리어는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인디언 말로 엄숙하게 말했다.
"겁내지 말라 나는 은혜로운 태양의 여신이로다. 나는 나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에게는 절대로 벌을 주지 않느니라. 그러니 그대들은 안심할지어다."그러자 인디언들은 안심을 했는지. 더욱 큰 소리로 축원을 하기 시작했다.
리어는 인디언들이 완전히 자기 뜻대로 따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횐 수염의 실버워터 추장을 앞으로 불렀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추장에게 리어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저 남쪽의 피부 색깔이 횐 사람들이 사는 마을 밖에 작은 집이 있다. 그 곳에는 신통력을 일은 두 남자 신이 붙들려 있다. 그대들은 즉시 힘센 젊은이 30명을 데리고 가서. 백인 파수꾼들을 쫓아버리고 두 신을 구할 것이며, 구해서는 이리로 데리고 오라. 그러지 않으면 그대 일족에게 반드시 엄한 천벌이 내릴 것이니라."
늙은 추장은 횐 수염을 땅바닥에 바싹 붙이고, 몸을 떨며 맹세를 했다
"기필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앨런과 에드워드가 갇혀 있는 집을 습격한 것은 바로 그들 실버워터의 일족이었다.
이리하여 오두막집이 불에 타서 내려앉기 직전에 두 사람은 구함을 받았으며, 리어와 선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다.
 
 
타버 제국
 
앨런과 에드워드, 리어, 그리고 선의 네 사람이 시간탑을 미래로 향해서 출발시킨 것은 타버의 시간 로켓이 바야흐로 본거지인 2445년을 향해 간 바로 조금 뒤였다
그들 네 사람이 가려는 목적시간은 물론 2445년이었다.
나네트를 납치한 타버가 최후로 가려는 시간대가 바로 2445년인 것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앨런은 위로하듯 말했다.
"에드워드, 우리가 2445년에 닿으면 곧 정부 당국에 신고를 하자구. 그 시대 사람들은 아주 머리도 좋고, 또 과학을 잘 알고 있을 거니까 말야. 그들의 도움을 얻을 수만 있으면 기필코 타버의 손아귀에서 나네트를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이네."
그러나 에드워드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입으로 말하기보다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 좋아요. 당신들이 2445년으로 가면 우리는 5000년에 가겠어요,"
하고 리어는 서투른 말로 이렇게 말했는데, 앨런은 곧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리어는 선과 함께 5000년 전후의 도시 폐허 속에 묻혀 있다는, 전설 속의 그 강력한 무기를 다시 한번 찾으러 가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차 찾아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을 과연 찾아낼 수 있을까?'
앨런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법이다
"염려 없어요. 타버에게 지지 않을 무기, 우리 둘이서 꼭 찾아오겠어요."
하고 리어는 굳은 결심의 빛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탑 밖의 경치는 끊임없이 변해 가고 있었다. 이윽고 초고층 빌딩이 솟아오른 시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선이 조정 장치를 만지자, 시간탑은 갑자기 속력을 낮추어 바로 2445년에서 딱 멈추었다. 동시에 거대한 도시의 소음이 창으로, 문으로 해서 탑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곳은 바로 보행 전용 도로 위였다. 기묘한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빛의 탑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앨런과 에드워드는 리어와 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길거리에 내려섰다.
다시 시간탑이 윙윙거리며 청백색으로 흐려지면서 사라져 버리자 통행인들은 더욱 놀란 듯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멀찍이 에워싸고 서서 무엇인지 떠들어 대고 있었다.
한편 앨런과 에드워드도 주위의 굉장한 광경에 크게 놀랐다.
하늘에라도 닿을 듯한 미래의 거대한 빌딩들, 몇 가닥으로 겹쳐져서 빌딩 사이를 누비고 있는 색색의 고가도로, 그 위를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투명한 바퀴 없는 차들- 그것들을 만든 재료는 모두가 합성 플라스틱과 초합금인 모양이었다.
"여보시오, 당신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교통 방해가 아니오!"
라는 큰 소리가 갑자기 귓가를 울렸다.
큰 도회지에 처음 나온 시골뜨기처럼.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앨런과 에드워드는 놀라서 돌아다보았다.
거기에는 깨끗한 횐 제복을 입은 큰 사나이가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시대의 경찰관인 듯했다
같은 횐 제복을 입은 다른 몇 경찰관은 구경꾼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머리 위쪽에 다리처럼 걸려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도 맡은 차들이 멈춰 서서,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역시 경찰관의 주의를 받고는 차를 출발시키고 있었다.
"아무튼 경찰서까지 같이 갑시다."
하고 경찰관이 두 사람의 팔을 붙들었다.
악센트는 퍽 이상스러웠지만 틀림없는 영어였다. 아직 이 시대에서는 20세기와 말이 그다지 많이는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저어. 우리는 뭐 잘못한 건 없는데요."
하며 앨런은 이렇게 부탁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친구요. 경찰에 갈 것이 아니라, 이곳 정부 당국에 데려다 주시오. 타버라는 사람의 일로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그럽니다."
"타버?"
경찰관은 움찔 놀라는 모양이었다 앨런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는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훨씬 상냥한 태도로 흰 경찰차로 안내했다.
두 사람을 태운 경찰차는 고음 사이렌을 울리며 자동차 전용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다리 위에 이르렀을 때, 앨런은 커다란 전광 문자판에 눈이 가자 소리쳤다.
"에드워드, 저걸 봐! 타버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어."
그 전광 문자는 이러했다.
「타버, 대뉴욕시 북부 전 지역의 강제 매수를 통고. 매수 가격은 4조 6천억 달러가 한도라고 주장.」
뒤이어 다른 문자가 번쩍였다
「시의 최고 위원회는 타버의 최후 통고에 대비하여 현재 대책을 협의 중.」
결국 타버는 영토를 넓히기 위해, 시를 협박해서 토지를 점령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망할 놈의 타버, 여기서도 덤비기 시작했군."
에드워드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잠시 후. 경찰차는 큰 강을 내려다보는 이르렀다.
2445년의 허드슨강이었다. 주위의 광경은 아주 달라져 있지만. 강의 모양은 20세기 때와 다름이 없는 것이 묘하게 그리운 마음을 일게 했다
그 허드슨강 가에 서 있는 거대한 원통형의 빌딩이 시청 빌딩이었다. 경찰은 그 앞에 두 사람을 내려 주었다.
이 시대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스피드였다. 친절한 태도로 두 사람을 맞이한 대뉴욕 시장은, 이야기를 시작한 지 1시간도 못되어 두 사람의 증언을 진실이라고 인정해 준 것이다.
더욱이 시간 여행은 가능한 것인지, 이 시대 사람들이 솔 직하게 믿어 줄지 어떨지,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그것도 대뜸 믿어 주었다.
예상한 이상으로 순조롭게 되어 가는 것이 두 사람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장은 듣기를 마치자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타버가 이 시대 사람 같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나마 느끼고 있었지요. 경찰 당국이 그자의 신원을 아무리 조사해도 언제 어디서 출생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어요."
시장의 말에 의하면 이 시대에서의 타버 행동은 이러했다.
10년 전 2435년 초에 돌연 타버는 돈 많은 자본가로 나타나, 이 대뉴욕시의 남쪽 변두리의 땅을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후, 그의 재산과 세력은 눈사람을 만들 때처럼 불어가서 이제는 시의 남쪽 끝의 반을 모두 자기 소유로 하고, 스스로 '타버 제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그는 자기의 군대까지 가지고 있어서, 사실상 독립 국가로 자처함으로써 시와 경찰도 손을 댈 수 없게 되었고, 물론 세금 같은 건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저걸 보시오. 저편에 번쩍이는 엄청나게 큰 금빛 돔(반구형의 지붕)이 보이지요?"
하며 시장은 시청 빌딩 남쪽 창 밖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저것이 돈의 힘으로 타버란 자가 만들어 놓은 '타버성'이랍니다. 듣기로는 저 지붕이 모두 금으로 도금한 것이라는군요. "
 
 
최후의 통고
 
"그리고 어제는 갑자기 타버가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해 온 거랍니다. 타버의 제국을 더 넓히겠으니 시의 북쪽 땅의 반을 팔라고 하며, 동시에 시민들은 그 땅에서 물러가라는 겁니다."
더구나 사들이는 값은 4조 6천억 달러라는 터무니없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물론 이런 값으로 시가 그 땅을 팔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짓이었다.
"모두가 그 자가 울트라 미사일이라는 초강력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들의 세계에는 그것에 대항할 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파괴 병기의 제조는 금지되어 있는 것입니다. "
"그럼, 무기라고는 전연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
"아니, 가지고 있긴 하지요. 최면 가스총이라든가, 아무튼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는 무기뿐이지요."
이 말을 듣고 앨런은 한숨을 쉬었다.
'이래 가지고는 타버가 뽐내기 꼭 알맞다. 그 놈이 이 시대를 택한 것은 세계 정복이 가장 손쉽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당신들이 말한 미래의 강력한 병기가 희망일 뿐이오."
앨런의 마음은 점점 더 침울해졌다. 과연 리어 일행이 그 무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돌연 시장 책상의 버저가 울렸다. 통신실에서 보내는 비상 연락이다.
“시장님, 바로 지금 타버가 최후의 통고를 보내 왔습니다. 회의실 정면 스크린에 스위치를 바꾸겠습니다.”
“드디어 왔군!”
시장과 위원들은 얼굴빛이 변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새워 회의를 하느라고 핏발이 선 눈을 크게 뜨고, 정면에 있는 스크린을 지켜보았다.
확 밝아진 스크린 위에 타버의 얄미운 붉은 얼굴이 커다랗게 비쳤다. 그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띠고 지껄이기 시작했다.
"시장 및 최고 위원 여러분 ! 여러분은 나의 정당한 신청에 대해서 일부러 회답을 늦추고 있는 모양이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하여 최후 통고를 하는 바이오. 지금 이 시간부터 10시간 내에, 여러분은 내가 제의한 적절한 값으로 북부 지구를 팔고, 그 곳의 주민을 철수시키시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즉시 우리 타버 제국의 군대가 행동을 개시하여 북부 지구를 점령할 것이오. 그럴 때에는 주민의 생명을 보장하지는 않을 거요. 또 여러분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줄 알지만 우리 제국은 현재 7발의 울트라 미사일을 가지고 있소. 미사일은 각각 다음 여러 국가의 수도를 겨냥하여,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게 되어 있소. 즉 다음의 7개 대 수도들이오.
 
북유럽 연합의 수도 모스크바
남유럽 연합의 수도 런던
아시아 동맹의 수도 서울
아프리카 민주 연맹의 수도 카이로
남태평양 연방의 수도 캔버라
남아메리카 왕국의 수도 브라질리아
남극 공화국의 수도 프린스 헤럴드
 
만약 여러분들이 지나치게 저항해서, 우리 제국의 안전을 위협할 때에는 버튼 하나로 그들 모든 국가가 증발해 버리게 된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기를. 끝으로 한 가지 덧붙여 말하겠소. 나의 바라는 바는 이들 국가를 통일하여 대 타버 제국을 건설하는 일이오. 그럴 때에는 이 북아메리카 합중국 수도 대뉴욕은 대 타버 시로서 우리 대제국의 수도가 된다는 것이오. 이번의 나의 제안은 그 대제국 건설의 첫출발이 되는 셈이니 여러분의 반가운 회답을 기대하는 바이오."
하더니 타버의 자신만만한 얼굴은 스크린에서 획 사라져 갔다.
시장과 위원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음인지 어금니를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앨런과 에드워드도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앞으로 10시간…… 그 10시간 안에 리어가 미래에서 원자분해포를 가지고 와 주었으면!.'
이제 최후의 희망이라고는 그것뿐이다.
그러나 그 10시간을 빤히 보고만 헛되이 보낼 수 는 없는 것이다. 시장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곧 북부 지구 시민들에게 피난 명령을 내렸다.
시민들은 차로, 자가용 비행기로, 홍수같이 시외로 시외로 피난해 갔다.
 
윈자분해포
 
드디어 10시간에서 앞으로 1시간밖에 안 남았다. 그 동안 앨런과 에드워드들은 시간탑이 나타날 장소를 둘러싸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리어의 시간탑은 나타나지를 않는다.
'남은 1시간. 만약 그 동안에 리어들이 원자분해포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만사는 끝이다.'
시계바늘은 사정없이 가고만 있다. 순식간에 10분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10분.
그런데 다음 10분이 지나려고 할 찰라, 돌연 웅웅 웅웅하고 그 정다운 진동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더니 그 거대한 빛의 기둥이 눈앞에 쑥 솟아올랐다.
"오오, 시간탑이다!"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와아 하는 환성이 일어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찌 된 셈인지 시간탑의 모습은 다시 희미해지더니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찌 된 셈이지 ?"
돌연, 이번에는 머리 위에서 진동 소리가 일어났다. 앨런 들은 급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희미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은 모습이-
"아아, 저건 타버의 시간 로켓이다!"
그 순간, 앨런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똑똑히 깨달았다.
미래에서 다시 날아오는 리어의 시간탑을 타버의 시간 로켓이 발견하고 뒤따라 온 것이다. 그리고 시간탑이 그 시대에 정지하려는 것을 타버가 방해하려는 계획임에 틀림이 없었다.
'만약 양쪽이 동시에 정지해서 고체화된다면!'
앨런은 식은땀이 났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굉장한 대폭발이 일어나서, 다 같이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앨런과 에드워드는 눈앞에 펼쳐질 거대한 그림자와 그림자의 싸움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 있었다.
때때로 두 그림자가 합쳐질 때마다 앨런은 온 몸이 오싹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그림자로 있을 동안은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탑이 나타나고, 로켓이 돌진해 갔다. 양쪽이 동시에 확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서 잠시 후에 다시 탑의 그림자가 나타나면서, 이번에는 그냥 그대로 점점 그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조종사인 선은 드디어 시간탑을 고체화시키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시간 로켓 쪽에서도 고체화를 시작하여, 탑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앗, 저런 상태로 충돌을 하게 되면……'
앨런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시간 로켓은 탑에 부딪히는 순간,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획 사라져 버렸다.
시간탑은 드디어 완전 고체화가여 도로 위에 우람하게 솟아 있었다.
"이겼다! 이겼다!"
앨런 일행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거대한 빛의 탑으로 달려갔다.
입구의 문이 열렸다. 선과 리어가 복잡한 기계의 부품들을 안고 뛰어나왔다.
"앨런! 찾아냈어요. 기어코 찾아냈어요.!'
"오! 리어, 선, 고마와. 잘도 찾아냈어."
하고 앨런은 감격한 나머지 리어와 선의 손을 꼭 쥐었다.
 
원자분해포는 조사해 본 결과, 비교적 간단한 설계로 된 무기였다. 부품은 커다란 렌즈와 많은 코일, 그리고 겨냥할 때 쓰는 망원 스크린과 강력한 배터리뿐이었다. 더구나 운반하기가 편리한 소형병기였다.
기계의 원리도 곧 알 수 있었다. 전기 에너지를 가득 모았다가 강력한 진동파로 바꿔서 내보낸다. 그것을 받기만 하면 어떤 물질이라도 세차게 흔들려서 원자의 크기 정도로까지 산산이 분해가 되어버린다.
"이제 이것만 가지면 타버 같은 것한테 지지 않는다."
하고 앨런은 과학자와 기사의 앞에서 원자분해포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30분이야. 30분 동안에 어떤 일이 있어도 조립해 낸다."
앨런의 계획은 이러했다.
시청 빌딩 맨 꼭대기에 이 원자분해포를 올려놓고, 타버 제국의 본거지인 타버 성을 겨냥해 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드디어 약속된 10시간이 지나갔다. 타버 제국 군대는 밀물같이 진군을 개시하여, 시의 북부 지구에 밀려들었다.
그들을 맞아 싸우는 것은 시의 경찰군이었다. 경찰군들은 빈약한 무기로도 용감하게 대항해 싸우고 있었다.
'제발 이 기계가 완성될 때까지 적을 막고 견뎌 주었으면……'
하고 앨런 일행은 마음속으로 빌었다.
10분, 20분, 마침내 30분이 지났다.
"됐어. 기어이 완성했어 ! "
바로 이때다. 적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에드워드로부터 다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큰일 났어, 앨런 ! 타버성의 둥근 지붕이 지금 막 두 조각으로 벌어졌어. 앗, 벌어진 데서 지금 7발의 미사일이 머리를 내밀었다!"
"뭐? 야단났군. 우리 쪽 움직임을 보고 불안을 느낀 모양이다."
앨런은 아찔했다.
'한시 바삐 원자분해포를 시청 빌딩 꼭대기까지 올려 가야 한다.'
통화 스크린에 타버의 의기양양한 얼굴이 나타났다.
"여러분! 경찰군의 쓸데없는 저항을 즉각 중지시켜라. 말할 것도 없이 우리 타버 제국의 승리는 확실한 것이다. 어디 내가 지금 울트라 미사일의 발사 버튼에 손을 대고 있는 걸 눈으로 보겠는가?"
앨런은 타버를 노려보았다.
"기다려, 타버! 미사일만은 그만두기 바란다."
"그렇다면 빨리 경찰군을 철수시켜라."
"그래, 알았다."
하고 앨런은 타버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경찰 서장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되도록 경찰군을 천천히 철수시켜 주십시오. 그 동안에 원자분해포를 지붕 꼭대기까지 끌어올릴 테니까요."
이런 일은 꿈에도 모르는 타버는 스크린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뭘 하는 거야? 빨리 빨리!"
그러나 바로 이때, 원자분해포는 7발의 울트라 미사일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타버성의 금빛 돔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타버의 최후
 
"발사 개시 ! "
에너지 미터기의 바늘이 한껏 올라갔을 순간, 앨런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발사 단추를 눌렀다.
삐이, 삐삐, 삐잇!
녹색 광선이 일직선으로 금빛 도움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패인가?'
앨런의 가슴은 불안에 떨었다. 이때, 망원 스크린에 비친 도움이 파르르 잘게 흔들리더니 확 폭발을 했다.
"됐다, 됐어!"
앨런 일행은 뛰어오르며 함성을 질렀다. 바로 지금까지 돔이 있던 근방에는 뭉게뭉게 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루가 되어 버린 금속 물질 원자의 소용돌이였다.
그러자 이때, 에드워드가 앗 하고 소리치며 타버성의 상공을 가리켰다. 지금 막 검고 큰 그림자가 나타나서, 뚜렷한 윤곽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시간 로켓이다! 그것은 천천히 드러나 있는 돔의 마루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앨런은 재빨리 원자분해포의 조준을 시간 로켓에 맞추었다.
이때였다. 돌연 시간 로켓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의 여자가 뛰어내리려 하는 것이 보였다.
"앗, 기다려! 앨런, 저 여자는 나네트야. "
그러나 곧 뒤에서 조너스가 나타나더니, 나네트를 억지로 끌어들였다. 그 순간, 돔의 마루바닥에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 둘이 나타났다.
"타버와 운커스다!"
앨런은 소리치며 황급히 겨냥했다. 타버는 시간 로켓의 문으로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기다려! 저 속에는 나네트가"
하며 에드워드는 앨런을 붙잡고 늘어졌다.
"용서해 줘, 에드워드. 지금 타버를 놓치면 영영"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어찌 된 까닭인지 돌연 시간 로켓이 타버들을 내버려 둔 채,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획 사라져 버린 것이다.
"좋아, 지금이 기회다!"
하고 앨런은 재빨리 버튼을 눌렀다.
삐삐! 삐잇! 타버와 운커스는 격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노란 원자의 소용돌이로 변해 버렸다.
"잘 했어. 드디어 타버는 쓰러졌어!"
그러나 다음 순간, 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일단 사라졌던 시간 로켓이 갑자기 공중에 모습을 나타냈는가 했더니 보는 사이에 큰 소리와 함께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나네트를 태우고 있을 그 시간 로켓이-
 
평화가 다시금 세계에 소생했다.
타버와 그의 일당 가운데 중요한 자들은 모두 죽고, 나머지 인물들은 체포되었다.
리어와 선은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미래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싸움으로 나네트를 잃은 에드워드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나네트가 그 대폭발에서 살아 남았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직 한 가지 괴이한 일이 있었다. 잔해에서는 조너스의 시체밖에 보이지 않은 점이다. 그럼 나네트의 시체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아마도 대폭발 때문에 시체도 남기지 못했으리라.'
앨런도, 에드워드도 단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나네트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어디에? 그것은 시간 속에서다.
무슨 나네트의 유품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하고, 타버성의 돔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고 있던 에드워드는 너무나 놀랐다. 갑자기 공중에 몽롱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보는 동안에 사람 모습이 되어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에드워드는 다음 순간, 다시 한번 더 기절할 듯 놀랐다.
"나네트! 나네트가 아니냐!"
나네트는 실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생명에는 별 일이 없어, 병원에서 곧 기운을 회복했다.
'도대체 이런 기이한 현상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을까?'
앨런과 에드워드는 이상하기만 했다.
"그때, 나네트는 어떡하고 있었니?"
"조너스가 타버를 내버려두고 미래로 도망치려고 하길래, 나는 문에서 뛰어내린 거여요. 그때, 이왕이면 시간 로켓을 부숴 버릴 생각을 하고, 조정장치의 전선을 끊어버렸죠."
"그래? 이제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앨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하여 고장을 일으킨 시간 로켓은 곧 폭발을 일으킨 거야. 그런데 나네트는 시간을 날아가고 있던 중에 밖으로 뛰어내렸으니까, 그냥 그대로의 기세로 3일간 시간을 날다가 고체화한 거야."
이 말을 듣고, 에드워드는 기쁨에 젖었다. 밝은 미소를 머금고 외쳤다.
"오오! 그렇게 된 거로군 ! 이제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게 됐어."
"아냐, 아직 한 가지 남아 있어."
하며 앨런은 진지한 얼굴로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그건 자네들이 언제 결혼을 하느냐 하는 문제지."
갑자기 에드워드와 나네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에드워드도 지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나에게도 한 가지 걱정이 있네. 그건 자네와 리어가 언제 결혼을 하느냐하는 문제야."
그러자 이번에는 앨런의 얼굴이 붉어져 왔다.
 
 
 
 
작품 해설
 
시간 여행에 대하여
 
SF(공상 과학 소설)에는 현실적으로 있을 것 같지 않은 공상 이야기가 많습니다. 로봇, 우주 여행, 인공 두뇌, 돌연변이체, 반중력 장치, 살인광선, 4차원 여행 등.
이 밖에 시간을 과거와 미래로 여행하는 이야기도 물론 공상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주 여행 같은 것은 이미 현실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로봇이나 인공 두뇌, 돌연변이체, 살인광선 같은 것도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말미암아 머지 않은 장래에 생겨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반중력 (중력을 없애는 힘)의 연구도 미국이나 소련에서는 이미 일부 과학자들이 연구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 여행만은 과학자들 중에서 아직 아무도 연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간 그 자체의 성질조차 아직 깊이 알지 못한 형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SF작가로 뛰어난 과학자인 아서 C. 클라크라는 사람은,
"사람은 생각해 내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든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클라크도,
"시간 여행만은 예외이다."
하며 단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하니 만큼 시간 여행의 아이디어는 인간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는 것입니다.
시간 여행에 대해서 최초로 과학적인 이야기로 씌어진 것은 영국의 H. G․웰즈의 「타임 머신(1895년)」입니다.
19세기 말, 타임 머신을 발명꾼 청년이 80만 2천 년 후의 미래로 가서, 거기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미래의 인류를 도와 괴물로 변한 지하 인종과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로서 SF 에 최초로 등장하는 시간을 나는 기계 '타임 머신'은 오토바이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그 후 SF 작가들은 둥근 공 모양, 스포츠카 모양, 침대 모양, 전차통 모양 등 여러 가지 모양의 타임 머신을 생각해 냈습니다.
시간 그 자체의 성질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방법이 차츰 복잡해졌습니다. 최초 시간 여행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마치 화성이나 금성에라도 가는 것처럼 과거와 미래에 가서 모험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 어떤 작가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내가 나기 전의 시대로 되돌아가서 나의 아버지를 죽게 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큰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좀더 깊이 펴 나가면,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발견을 방해한다면?'
'제 2차 대전 중의 독일군에게 제트기를 빌려준다면?'
라는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큰 문제에 대해서 SF작가들은 여러 가지 답을 소설로 썼습니다.
"그 순간부터 역사가 달라진다."
"아무리 과거의 일을 변동시키려 해도 한 번 일어난 일이므로 변동시키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이 거기서 가지를 뻗쳐, 역사를 바꾼 사람은 본래 역사의 흐름에 되돌아오지 못한다."
등등입니다.
그 중에는, 이러한 역사를 바꾸려 하는 범죄인을 다스리는 시간 경찰이 생겨서, 그들의 활약을 써놓은 소설도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튼 앞에서 이런 시간 여행은 실지로는 실현 불가능이라고 했습니다만, 어느 때 시간을 자유로이 나는 방법이 뜻밖에도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까닭은 지금까지에 이미 몇 차례 인간이 갑자기 과거로 가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보고 온 이상스러운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1901년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구경하고 있던 2명의 영국인 교사가 갑자기 현재와는 아주 다른 풍경 속에 들어가서 옛날 옷을 입은 남녀와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나 사람들이 어쩌면 1789년 프랑스 혁명 시대의 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근래의 예로서는, 1946년 11월의 폭풍우 치는 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부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변호사가 벼랑에 자동차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구하러 내려갔다가 4명의 시체와 중상의 소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경찰로 달려가서 이 일을 알리고 되돌아와 보니, 차도 시체도 중상을 입은 소녀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그것은 22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일시적으로 인간이 과거에 갔다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설명할 길이 어쩌면 미래의 그 어느 곳에서 온 시간 여행자가 아닌가 싶은 사람의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이한 시간이라는 것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요즈음 미국의 물리학자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나왔습니다. 즉,
'지금 우리들의 우주는 커져 가고 있지만 클 대로 커져서, 이제까지와는 반대로 줄어들기 시작하는 순간, 시간도 미래에서 과거로 거꾸로 가기 시작하지 않을까?'
또 소련의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시간은 전기나 광선과 같이 에너지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시간도 전기나 빛과 같이 자유로이 다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끝으로 이 「시간 초특급」의 지은이에 대해서 소개하기로 합니다.
레이 커밍스는 1887년 미국 출생으로, 어릴 때부터 과학 공부를 좋아하여 한동안은 발명왕 에디슨의 조수로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 1930년대에 미래 과학에의 꿈을 담은 즐거운 SF를 많이 썼으며, 195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웰즈와 베르느에서 시작된 SF를 크게 발전시킨 점에서, SF의 역사상 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시간초특급
레이 커밍스 작. 이원수 역
 
아이디어 회관 과학문고
174 P 19cm (SF세계명작15)
 
인 쇄      1975년 10월 5일
발 행      1975년 10월 10일
역 자      이 원 수
제 판      명림 정판사
오프셋     장원출판사
인 쇄      일 신 사
제 본      양지 실업 (주)
발행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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