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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양서인간 AMPHIBIAN HUMAN - 베리야에프 А. ВЕЛЯЕВ 지음
2023년 08월 23일 13시 54분  조회:320  추천:0  작성자: 강려
양서인간
AMPHIBIAN HUMAN
 
베리야에프 А. ВЕЛЯЕВ 지음
 
베리야에프
1884년 소련 태생.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특히 뇌의 의식과 인체 개조 등의 생물학과 의학의 문제가 특색 있게 다루어졌다. "합성인간" "아리엘"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원수, 박홍근 / 문학박사 최인학
공학박사 양육룡 / 이학박사 김희규
전교육감 김성욱
 
 
<차 례>
 
바다의 악마··················· 5
돌고래를 타고················· 15
스리다의 실패················· 21
카디스 박사·················· 28
병든 손녀··················· 34
이상한 뜰··················· 38
세 번째의 담·················· 42
기다리는 스리다················ 46
양서인간을 만나다··············· 52
로스모의 하루················· 56
젊은 아가씨·················· 57
와루코의 계획················· 61
시내······················ 68
작은 복수··················· 73
초조한 스리다················· 79
불쾌한 상봉·················· 86
새로운 친구·················· 92
여 행····················· 103
바다의 악마다!················ 111
전속력···················· 119
포 로····················· 126
내버려진 메두사호··············· 134
침몰선···················· 139
갑작스런 아버지················ 145
까다로운 사건················· 152
천재적인 미치광이··············· 156
피고의 발언·················· 163
감옥 안···················· 172
탈 출····················· 194
새출발···················· 203
 
작품해설··················· 205
 
 
등장인물
 
로스모 : 카디스 박사의 수술로 양서 인간이 되어 바다와 육지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된 청년으로 바다의 악마란 별명을 얻게 된다.
루이제 : 스리다의 청혼을 거절하고 물에 빠져 자살하려고 했는데, 로스모에게 구조된다. 로스모를 진심으로 사랑하나 끝내 스리다의 흉계로 헤어지게 된다.
카디스 박사 : 유명한 외과 의사로서 인디오인들에게 신처럼 존경을 받고 있다. 로스모를 루이제와 결혼시키면 한몫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르센 : 루이제를 외국으로 가게 하려고 하다가 루이제가 스리다에게 납치되는 바람에 실패한다. 그러나 끝내 루이제와 미국으로 함께 이주한다.
 
 
바다의 악마
 
아르헨티나의 여름밤은 상당히 무더웠다. 맑게 개인 하늘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로 빛나고 있었다.
메두사 호는 닻을 내린 채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다는 조용하고 파도 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판에는 진주를 캐는 사나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자고 있었다. 모두가 낮의 고된 일과 뜨거운 태양에 지쳐서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은 힘없이 겨우 일어나서 비틀비틀 물통으로 걸어가서 물을 퍼마셨다. 목이 무척 마른 모양이었다.
물 속에는 수압이 강하기 때문에 물 속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식사는 해가 진 후에 먹기로 되어 있었다. 그 식사라는 것도 소금에 절인 물고기가 고작이었다.
메두사 호의 선주이며 선장인 브르고스 스리다는 스페인 계통의 대단히 인색한 부자였다.
밤에는 대개 그 스리다의 조수인 아루바가 숙직을 한다.
아루바는 인디오(남아메리카의 원주민)로서 젊었던 시절에는 유명한 진주잡이였으며 보통 사람보다 두 배 정도나 오래 물 속에 들어가 있을 수 있었다고 젊은 진주 캐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치곤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거야 어릴 때부터 엄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지. 나는 열 살 때부터 메세타라는 사람한테 진주 캐는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됐었다. 그에게는 나처럼 어린 견습생들이 12명이나 있었다. 그는 굉장히 엄한 사람이었다. 하얗고 작은 돌을 물 속에 던져놓고는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찾아오면 이번에는 좀더 깊은 곳에 돌을 던져 넣는다. 만약에 돌을 줍지 않고 그냥 올라오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다시 물 속에 처박혀 버린다. 하여간 이렇게 하여 우리들은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익혔다. 다음에는 물 속에서 오래 견디는 훈련을 받게 되는데, 그것도 역시 무척 고통스러웠다. 어른들이 바다 밑으로 들어가서 닻에다가 바구니를 단단히 묶어놓는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걸 풀어서 배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역시 그냥 올라왔다가는 말도 못하게 두들겨 맞게 된다. 결국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친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그걸 끝내 견디어 내어 결국 이 근처에서는 제일 가는 진주잡이가 되었지."
그러면서 상어에게 깨물려 굽혀지지 않는 왼쪽 발과 닻의 쇠사슬에 걸려 다쳤다는 옆구리의 흉터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루바는 나이가 많아져서 바다 속에 들어가 진주조개를 캐는 위험한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진주와 산호와 조개 껍질 등을 파는 작은 상점을 마련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자란 아루바는 육지에서의 생활은 여간해서는 견디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가게를 딸에게 맡겨 놓고 진주잡이 배에 타곤 하는 것이었다.
진주 업자들은 누구나 아루바를 무척 잘 대해 주었다. 왜냐하면 이 지방의 해저 상태와 진주조개가 있는 장소를 아루바 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진주의 품질도 그만큼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루바는 통에 걸터앉아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방은 조용하고 파도 소리와 잠자는 사나이들의 코고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먼바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루바는 눈을 떴다. 누군가 소라 껍질로 만든 피리를 불었다. 이어서 '아, 아!'하는 기운찬 고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배의 고동 소리와도 다르고, 물에 빠진 사람의 비명 소리와도 달랐다.
아루바는 뱃전으로 가서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어두워서 그런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루바는 갑판에 누워 자고 있는 한 사나이를 걷어찼다.
"야, 부르짖고 있다. 틀림없이 그 놈이다."
"예?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데요."
사나이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서더니 귀를 기울였다.
그때, 또 피리 소리와 이어서 '아, 아!'하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다. 틀림없이 그놈이다."
다른 선원들도 일어나 우르르 마스트에 켜 있는 등불 밑으로 모여들었다.
그 소리는 한번 더 들리고는 다시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바다의 악마다!"
선원들은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놈은 상어보다 더 무섭다!"
"빨리 선장에게 알려라!"
그러자, 선장인 스리다가 털이 시커멓게 돋은 가슴을 쓰다듬으며 갑판 위로 올라왔다.
꼭 옛날 해적선의 선장과 같은 느낌을 주었고 혁대에는 항상 권총을 차고 있었다.
"웬 소란이냐?"
스리다의 걸직한 목소리와 관록이 붙은 몸집은 선원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저, 바다의 악마가 외치는 소리가 조금 전에 들려왔습니다."
"잘못 들었겠지."
"아닙니다. 모두가 들었습니다."
"빨리 여기서 떠나도록 합시다."
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했다.
"알았다. 그럼 날이 밝으면 떠나도록 하자."
스리다는 하는 수 없이 승낙하고 자기 선실로 돌아갔다.
잠이 달아난 스리다는 담배를 피며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가끔 이 근처 바다에 나타나 어부들을 놀라게 하는 이상한 괴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직 똑똑히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 있는 것은 EMB00000f9869a2분명한 모양이었다.
하여튼 꽤 오래 전부터 어부나 선원들 사이에 그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들은 마치 괴물이 들을까 조심하는 것처럼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 이야기 중에서 공통적인 것은 나쁜 짓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구해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바다의 귀신이다. 천년에 한번씩 나타나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혼내주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바다의 악마다. 성당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모두가 기도를 올리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라고 성당의 신부들은 말했다.
이런 소문은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전체까지 퍼져갔고 신문도 바다의 악마에 대한 기사를 자주 실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어선이 침몰되거나, 그물이 찢어지거나, 애써 잡은 물고기가 없어지거나 하는 것은 모두 바다의 악마가 한 짓이라고 하며, 익사 직전의 사람들을 구해주고 어선에 몰래 큰 물고기를 던져 넣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바다의 악마를 봤다는 사람들의 말이 서로 너무나 달라서 도대체 어떻게 생긴 괴물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뿔이 났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염소처럼 수염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발은 사자 같다거나 개구리 같다는 둥 너무나 엉뚱한 소문이었다.
경찰은 처음에는 이런 소문을 누가 장난 삼아 지어내서 퍼뜨린 것이라고 코웃음만 치고 있었다.
그러나, 소문이 너무 퍼져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자 경찰은 조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안 경비 모터보트가 사방으로 흩어져 가까운 바다와 해안을 2주일간이나 수색을 계속했다. 그러나 소문을 퍼뜨린 몇 사람의 어부를 붙들었을 뿐이고 바다의 악마는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경찰서장은,
"경찰 당국은 그 동안 총력을 기울여 바다의 악마 수색 작전을 벌여온 바, 할일 없는 사람들이 지껄인 뜬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소문을 지어낸 사람들은 모조리 체포해서 엄중하고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어부 여러분은 뜬소문에 현혹되지 마시고 바다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바다의 악마는 경찰서장의 성명을 조롱이라고 하는 듯 또 그 모습을 나타냈다.
어부들이 경찰서장의 성명을 믿고 바다로 나갔는데 또 바다 속에 내린 그물이 고기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찢겨져 있었다.
또 다른 어선 한 척에는 양 한 마리를 언제 누가 데려다 놓았는지 양이 우는 소리에 깜짝 놀래서 허둥지둥 항구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신문들은 바다의 악마가 또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을 크게 보도하면서 과학자들에게 그 정체를 알아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누구나 바다의 악마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누군가가 조작한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몇 명의 과학자들은 반대 의견을 발표했다.
"과학은 지구의 생물 전체에 대해 샅샅이 연구를 한 것이 아니며, 더구나 바다의 생물에 대해서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어떤 상상도 못할 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의견은 너무나 막연하여 설득력은 없었지만,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결국 이 논쟁을 결말짓기 위해서는 학술 조사단을 보내서 과학적으로 조사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조사단도 바다의 악마를 만날 수가 없었다. 단지 몇 가지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지만 그것 역시 바다의 악마에 대한 결정적인 것은 되지 못했다.
조사단의 보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바닷가 몇몇 장소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흐릿하게 나 있었다. 그 발자국은 이상하게도 모두가 바다 쪽에서 육지로 나와 다시 바다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보트를 타고 바닷가에 가까이 온 사람들이 그런 발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
둘째, 그물을 끌어올릴 때 예리한 칼 같은 것으로 그물이 끊겼다고 하는 몇 개의 그물을 조사해 보았으나 수중의 바위나 쇳조각에 걸렸을 때에도 그렇게 끊겨질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셋째, 어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폭풍우가 있던 날 돌고래 한 마리가 모래밭으로 밀려 올라와 다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 돌고래는 밤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모래밭에는 발자국과 긴 손톱 같은 갈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된다.
넷째, 양에 대해서는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살짝 보트로 운반해 와서 어선에 던져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보고서를 읽고 의문이 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장난으로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더욱이 과학자들의 보고서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사건은 짧은 시간에 상당히 먼 두 곳에서 일어났다. 그게 사실이라면 바다의 악마는 굉장한 속도로 헤엄칠 수 있거나 적어도 둘 이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욱 무서운 일이다.
스리다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에 날이 밝고 창가에는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스리다는 등불을 끄고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그때 갑판에서 돌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스리다는 얼굴을 씻다말고 급히 트랩(배나 비행기의 오르고 내리는 층계)을 뛰어올라가 갑판으로 나갔다.
벌거숭이 사나이들이 뱃전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로프로 달아매어 놓은 보트가 모두 풀어져서 벌써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스리다는 바다에 뛰어들어가 보트를 붙들어 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주춤주춤하면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리다는 명령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바다의 악마에 잡혀 먹히려면 선장 자신이 뛰어들어가면 되잖소!"
하고 떠들었다.
스리다는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을 댔다. 사나이들은 뒷걸음질을 치면서 마스트 주위에 모여들어 스리다를 원망스럽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드디어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루바가 중간을 가로막고 나섰다.
"나는 상어나 바다의 악마 같은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고 바다로 뛰어들어가더니 가까운 보트를 향해서 헤엄쳐 가는 것이었다.
모두 떨면서 아루바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루바는 늙었고 EMB00000f9869a3발 한쪽은 잘 못 쓰지만 헤엄치는 것은 빨랐다. 이윽고 가까운 보트에 도착하자 재빨리 기어올라갔다.
"로프는 칼로 끊겨 있다. 이 끊긴 자리는 면도칼같이 날카로운 칼로 잘린 것이 틀림없다."
아루바가 외쳤다. 아루바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고 다른 어부들도 차례차례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돌고래를 타고
 
태양이 떠오르고 점점 더워져갔다. 메두사 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 20킬로미터쯤 되는 곳으로 내려가 바위로 빙 둘러싸인 항구에 돛을 내렸다. 곧 보트가 배에서 내려졌다. 보트에는 진주 캐는 사나이들이 둘씩 타고 있었다.
한 사람은 로프로 몸을 감고 물 속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것을 당겨 올렸다.
두 사람은 교대로 물 속에 들어갔다.
그 중 한 척의 보트는 바위 바로 옆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물이 깨끗하고 맑기 때문에 바다 밑에 들어가서 진주조개를 모으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트 위에서도 잘 보였다.
돌연 물 속에 들어가 있던 사나이가 심한 요동을 치면서 로프를 강하게 당겼다. 보트에 있던 사나이는 웬일인가 하면서 로프를 힘차게 잡아당겨 그 사나이를 보트 위로 끌어올렸다. 물 속에서 올라온 사나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통스러운 듯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왜? 상어라도 있던가?"
사나이는 아무 말도 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보트에 타고 있던 사나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 바다 속에 있는 바위 옆에서 붉은 보랏빛의 연기 같은 것이 천천히 떠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피였다.
그 옆에는 시꺼먼 것이 움직이다가 바위 그늘로 사라져 들어가는 것이 보였는데 그건 상어가 틀림없었다.
정신을 잃은 사나이를 메두사 호로 급히 노를 저어 운반했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정신을 되찾고 나서도 벙어리같이 입만 딱 벌리고 있을 뿐 한참동안은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었다.
모두 걱정이 되어 그 사나이의 수위로 모여들었다.
사나이가 겨우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보았다! 바다의 악마를......."
"정말인가?"
"정말이고 말고! 언뜻 보니 상어였다. 그 놈이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꼼짝없이 죽게 됐다고 생각했다. 큰 입을 딱 벌리고 내 곁에까지 왔다. 그런데 그 상어 뒤에서 무엇이 헤엄쳐오고 있었다."
"그게 뭐든가? 또 한 마리의 상어였나?"
"아니야. 바로 바다의 악마였다."
"뭐라고? 그래 어떻게 생겼든? 머리도 있던가?"
"머리? 있었어. 눈은 쟁반같이 둥글둥글했지."
"손도 있던가?"
"손은 개구리 같고, 손가락은 길고 녹색인데 손톱이 있고 물갈퀴도 있었다. 몸뚱이는 물고기의 비늘같이 빛났다. 바다의 악마는 상어에게 나가오다가 한 손을 쑥 내밀었다. 상어의 배에서 피가 튀겨 나왔다."
"그놈의 발은 어떻게 생겼었나?"
한 사나이가 물었다.
"발? 발 같은 건 없었어. 긴 꽁지가 있었고 그 꽁지 끝은 두 개로 갈라져 있었어."
"너는 상어와 그 괴물 중에 어느 편이 무서웠냐?"
"그거야 괴물이지. 나의 생명을 구해주기는 했지만 분명히 그것은 바다의 악마였으니까."
"그렇다! 그건 정말 바다의 악마였다."
"아니,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는 바다의 신일지도 모른다."
이 소문은 즉시 항구로 퍼져서 어부들은 작은 배를 타고 메두사 호로 달려왔다.
바다의 악마에게 구조 받은 사나이는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다보니 점점 흥이 나서 그 바다의 악마는 코에서 붉은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든지, 또 날카로운 이가 보였다는 등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스리다는 사나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가면서 갑판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사나이가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 스리다는 그 사나이가 상어의 습격을 받고 놀란 김에 이야기를 꾸며서 늘어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부 만든 이야기라고는 볼 수가 없다. 누군가가 상어의 배를 찔렀다는 것은 사실이겠지. 바닷물이 빨갛게 물들었으니까. 그게 정말 이상한 일이야.)
스리다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바위 벼랑에서 돌연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메두사 호의 승무원은 그 소리를 듣고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란 토끼 모양 이야기도 뚝 그치고 새파랗게 질려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닷가의 바위 근처의 물위에 돌고래의 무리가 나타났다.
한 마리의 돌고래가 무리에서 벗어 나와 흡사 피리의 신호에 대답하는 것 같이 크게 콧숨을 쉬고 재빨리 바위 저쪽EMB00000f9869a4으로 헤엄쳐 사라졌다.
모두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다. 돌연 그 돌고래가 또 모습을 나타냈다.
돌고래 등위에는 아까 그 사나이가 이야기하던 그 바다의 괴물이 말을 타듯 타고 있었다.
괴물은 인간의 몸과 거의 똑같이 생겼었다. 얼굴에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두 개의 큰 눈이 태양 빛을 받아 빛나고, 피부는 파란 은같이 윤기가 났었다. 손은 개구리같이 손가락은 길고 물갈퀴가 붙어있었다. 무릎 아래는 물 속에 잠겨서 그것이 꼬리인지, 사람과 같은 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괴물은 커다란 소라 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입에 대고 불더니 사람처럼 명랑하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리이딩, 스피드를 내라!"
라고 외치며 개구리 같은 손바닥으로 돌고래의 등을 두드렸다. 돌고래는 힘차게 스피드를 냈다.
메두사 호 승무원은 그것을 보고 무의식중에 소리를 쳤다.
돌고래 등에 탄 괴물은 뒤돌아보다가 재빨리 돌고래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숨어버렸다. 돌고래의 등을 두드리고 있는 녹색의 손만 조금 보였다.
돌고래는 슬며시 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그 괴물과 같이 바다 속의 바위 그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메두사 호의 갑판 위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인디오들은 무릎을 꿇고 바다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젊은 멕시코 사람은 마스트로 이어 올라가 떠들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진주를 캐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리다와 아루바는 겨우 모든 사람을 진정시켰다.
메두사 호는 닻을 올리고 북쪽으로 향해 출발했다.
 
 
스리다의 실패
 
스리다는 자기 선실로 돌아가더니 머리끝에서부터 물을 끼얹으며 중얼거렸다.
(바다의 괴물이 틀림없이 사람의 말을 하다니......? 도대체 이것이 꿈일까? 그렇지 않다. 모두가 그 바다의 악마를 보았다. 아무리 믿을 수 없는 일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스리다는 또 한번 물을 끼얹고 머리를 식혔다.
(하여튼 그 괴물은 인간과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고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물 속에서나 땅 위에서나 자유로이 활동할 수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말도 할 줄 안다. 바꿔 말하면 우리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 놈을 붙들어서 훈련시켜 진주를 캐도록 하면 어떨까? 그놈은 물 속에서 살 수가 있어. 그놈 한 놈만 있으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채용할 필요가 없다. 어부를 고용하면 급료로 캔 진주의 4분의 1을 주어야 하나 그놈에게는 아무 것도 줄 필요가 없다. 그러면 큰 돈벌이가 될 것이다.)
스리다는 혼자 미소지었다.
스리다는 지금까지 큰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지니고 악착같이 인간의 손이 아직 닿지 않은 진주조개를 찾고 있었다.
페르시아 만과 실론 서해안은 물론, 홍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해안 등은 진주가 많이 나는 산지로 유명하나, 그곳으로 가기에는 메두사 호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그렇다고 새 배를 살만한 돈도 없었다.
그래서 스리다는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참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바다의 악마를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1년 내에 큰 부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째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 스리다는 승무원을 모두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들은 바다의 악마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어떻게 됐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모두 경찰에 붙들려서 감옥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니 너희들도 바다의 악마를 보았다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길로 감옥에 들어가서 평생동안 나오지 못할 것이다. 생명이 아깝거든 바다의 악마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
하고 주의를 주고 스리다는 아루바를 불러서 계획을 털어놓았다.
아루바는 스리다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난 뒤에 대답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바다의 악마는 백 명의 어부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 붙잡느냐가 문제로군요."
"그물로 붙잡겠다."
스리다는 말했다.
"그놈은 그물 같은 것은 상어의 배를 자르는 것처럼 쉽게 잘라버리고 말 겁니다."
"강한 철사줄로 그물을 만든다."
"누가 그놈을 잡으러 갑니까? 이 배의 모든 사람은 바다의 악마를 직접 봤기 때문에 겁에 질려서 아무 것도 못합니다."
"아루바, 자네는 어떤가?"
"나는 바다의 악마 같은 것을 상대해 본 일이 없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군요. 그놈의 몸이 살과 뼈로 되어 있다면 죽이는 것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 채로 사로잡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아루바, 자네는 바다의 악마가 무섭지 않은가?"
"그거야 상대의 정체를 잘 모르니까 무서운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무서운 동물과 싸우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스리다는 아루바의 손을 잡고 곧 계획을 상의하기 시작하였다.
"보수는 많이 주마. 하여튼 이 계획에 참가하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너는 인디오 중에서 5명만 뽑아다오. 그들은 용감하니까. 바다의 악마는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첫째로 그놈이 사는 곳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러면 간단하게 그물을 쳐서 사로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스리다와 아루바는 곧 일을 착수하였다. 스리다는 둥글고 긴 원기둥 모양을 한 커다란 금속 그물을 주문했다. 아루바는 5명의 인디오를 설득시켜 바다의 악마를 생포하는 일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준비가 다 끝나자 메두사 호는 바다의 악마를 처음 본 항구로 향했다. 바다의 악마가 의심하지 않게 메두사 호는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닻을 내렸다.
스리다 이하 인디오들은 고기를 잡으러 온 어선처럼 행동을 하면서 바다 속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2주일이 지나갔다. 바다의 악마는 여전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스리다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가자 돈은 점점 줄어져 갔다. 스리다는 굉장히 인색한 사람이었다.
3주일 째 되는 날 드디어 바다의 악마가 나타났다.
아루바는 고기잡이를 끝내고 고기가 꽉 차 있는 보트를 바닷가에 대놓고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잠깐 들렸었다. 그리고 되돌아와서 보니 보트는 비어 있었다.
이것은 바다의 악마의 행동임에 틀림없다고 아루바는 생각했다.
그날밤, 인디오 중의 한 사람이 항구 남쪽에서 피리 소리를 들었다. 이틀 후, 이른 새벽에는 젊은 인디오가 바다의 악마를 보았다고 보고했다.
바다의 악마는 돌고래와 나란히 헤엄을 쳐서 바닷가 가까운 절벽까지 오자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스리다는 기뻐하면서,
"낮에는 바다의 악마가 바다 깊숙이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이 틀림없다. 빨리 그곳을 찾아내야 하겠다. 누가 그 일을 맡겠는가?"
모두 바다의 악마와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아루바가 선뜻 나서더니,
"내가 하겠소!"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메두사 호의 승무원은 모두 보트를 타고 절벽 쪽으로 갔다.
아루바는 로프의 한쪽 끝을 허리에 묶고, 날카로운 단검을 손에 쥐고, 큰 돌을 발 사이에 끼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모두 숨을 죽이고 어두운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40초가 지나고 5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났다. 이윽고 로프가 당겨졌다. 아루바는 물 위로 떠오르자 심호흡을 하고서 말했다.
"좁은 통로가 지하의 동굴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 속은 캄캄했습니다. 바다의 악마가 숨을 수 있는 곳은 아마 그곳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잘 됐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일하기가 좋다. 거기에 그물을 치자. 그러면 틀림없이 걸려들 것이다."
스리다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해가 지고 나서 인디오들은 금속 그물을 굵은 로프에 매달아서 동굴 입구에 내려놓았다. 로프에는 방울을 달아놓았다. 그물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그 방울이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사방은 곧 어두워졌다. 달이 떠올라 바다를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했다. 돌연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로프를 달려 그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물은 무거웠다. 로프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뭔가 그물 속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그물을 수면에 당겨 올려보니 그물 속에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날뛰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달빛에 비쳐서 커다란 눈과 은색의 비늘이 빛나고 있었다. 바다의 악마는 그물에서 빠져나가려고 가진 힘을 다하여 설치고 있었다. 드디어 한 손이 그물에서 빠져 나왔다. 바다의 악마는 허리에 찼던 단도를 빼 들더니 그물을 끊기 시작했다.
"이놈,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거다!"
아루바는 로프를 끌어당기면서 호통을 쳤다. 그러나 금속 EMB00000f9869a5그물은 끊어졌다. 바다의 악마는 재빠른 동작으로 끊긴 그물의 구멍을 넓히기 시작했다. 인디오들은 빨리 그물을 바닷가로 당겨 올리려고 하였다."좀더 빨리 당겨라!"
아루바가 외쳤다.
그러나 거의 다 올라왔다고 생각한 순간 바다의 악마는 그물의 구멍에서 빠져 나와 물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인디오들은 너무 놀라서 그만 그물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스리다는 이를 갈면서 원통해 하였다.
"좋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잠수부를 고용해서 항구 전체에 그물을 쳐서라도 네 놈을 생포하고야 말겠다."
 
 
카디스 박사
 
스리다는 곧 생포 작전을 시작했다. 항구 밑바닥에 가시철사를 쳐 놓고, 금속으로 된 그물을 치고 여러 군데에 함정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함정에 걸려든 것은 물고기 뿐, 바다의 악마는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날씨가 점점 나빠져 갔다. 파도가 높이 일고 항구의 물도 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스리다는 매일 바닷가에 나와서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바다의 악마란 놈이 해저의 깊은 곳에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놈을 사로잡으려면 이쪽에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한 스리다는 아루바에게 말했다.
"곧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잠수복과 산소 봄베를 두벌 사 가지고 오라. 그리고 수중용 회중전등도 잊지 말고 사와야 한다."
"바다의 악마가 있는 곳에 손님으로 가시렵니까"
아루바가 물었다.
"물론 너와 같이 간다."
아루바는 고개를 끄덕이고 즉시 시내로 갔다. 얼마 후 아루바는 두벌의 잠수복과 회중전등과 단도를 사 가지고 왔다.
다음날 아침 바다에는 파도가 일고 있었으나 스리다와 아루바는 잠수복을 입고 바다 밑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은 동굴 앞에 쳐놓은 금속 그물의 밑바닥을 뚫고 어두운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회중전등을 비추자 작은 물고기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동굴 속은 상당히 넓고 높이가 4미터, 폭은 5미터쯤 되었다.
스리다와 아루바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동굴은 점점 좁아졌다. 갑자기 스리다는 깜짝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회중전등의 빛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육중한 철문을 비쳤기 때문이다.
스리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철문을 밀기도 하고 당겨도 보았으나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아마 철문은 문 저쪽에서 빗장이라도 걸어놓은 것 같았다. 그건 더욱 놀랄만한 수수께끼였다.
스리다는 곰곰이 생각했다.
(바다의 악마는 머리가 뛰어나게 좋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힘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바다의 악마는 돌고래를 길들일 뿐만 아니라 쇠를 다루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바다 속에 저렇게 육중한 철문을 설치해 놓았겠지. 아니,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물 속에서 정말 쇠를 다를 수 있을까? 없다. 그렇다면 바다의 악마는 바다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육지에도 올라와 살 수 있을 것이다.)
스리다와 아루바는 별 수 없이 동굴을 나왔다.
바닷가에 올라와서 잠수복을 벗고 스리다는 물었다.
"아루바,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루바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그 철문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혹시 그 동굴은 출입구가 두 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나의 출입구는 항구에 있고 또 하나의 출입구는 땅 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땅 위를 조사해 보자."
두 사람은 곧 바닷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스리다는 바닷가를 걷고 있는 동안 하얀 돌로 쌓아놓은 높은 담을 발견했다. 담은 10헥타르나 되는 넓은 땅을 둘러싸고 있었다.
스리다는 그 담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입구는 단 한 개뿐이고 문은 육중한 철문으로 되어있었다. 철문은 안에서 열쇠로 잠겨 있어서 아무리 힘껏 떠밀어 보아도 끄떡도 안 했다. 벽의 주위에는 바위와 절벽으로 되어있고 밑에는 항구가 펼쳐 있었다.
요새 같다고 스리다는 생각했다.
스리다는 2,3일 동안 담의 주위를 걸어다니면서 입구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담 저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스리다는 메두사 호로 되돌아와서 아루바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항구 위에 있는 그 요새와 같은 집은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인디오에게 물어보았더니 카디스 박사라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카디스 박사는 어떤 사람인가?"
"신이라고 합니다."
아루바가 대답했다.
"농담할 때가 아니다. 아루바!"
"나는 들은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이 근처에 살고 있는 인디오들은 카디스 박사를 신처럼 존경하고 있으며, 구원의 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누구를 어떻게 구해 주었길래 그러나?"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해주고 있답니다. 카디스 박사는 절름발이에게 다리를 붙여주기도 하고, 더욱이 죽은 사람을 소생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엉뚱한 소릴 지껄이고 있구나. 해저에는 바다의 악마가 있고 육지에는 구원의 신이 살고 있다는 말인가? 아루바, 자네는 바다의 악마와 구원의 신 사이에 무엇인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큰일이 나기 전에 빨리 여기를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카디스 박사가 고쳐 주었다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보았는가?"
"예. 만나 봤습니다. 발이 부러져 카디스에게 치료를 받고 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다니는 사나이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머리통이 깨어져서 죽어버린 사람이 카디스 박사의 덕택으로 살아났다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그러면 카디스 박사는 환자를 진찰하는 모양이지."
"진찰 받는 사람은 인디오 뿐이라고 하더군요."
스리다는 아루바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자 곧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리다는 카디스 박사가 인디오를 치료하고 있고, 인디오에게 정말 신과 다름없는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스리다는 또한 의사들에게 카디스 박사가 천재적인 외과 의사지만 좀 남다른 데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카디스 박사는 외과 수술에는 최고의 권위자이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의사 사이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의사들은 자기가 손댈 수 없는 환자를 만나면 곧 카디스 박사를 불러서 수술을 부탁했다.
카디스 박사는 어느 곳이든지 가서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을 구했다. 그러나 카디스 박사는 많은 돈이 생기자 고향으로 돌아가 개인 연구실을 마련하여 거기에 틀어박혀 연구에 열중하고 의사의 일은 그만두어 버렸다. 단지 인디오의 치료만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카디스 박사가 의사라면 환자의 진찰을 거절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환자인 양 가장해서 그 담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라고 스리다는 결심했다.
스리다는 철문 앞에 가서 가만히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힘을 주어 세게 두들겨 보았으나 역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스리다는 화가 나서 큰 돌을 들어 철문에다 집어던졌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이윽고 담 저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누군가가 철문으로 가까이 왔다.
"무슨 일이오?"
철문 안쪽에서 소리가 났다.
"환자입니다. 빨리 열어주십시오."
스리다는 대답했다.
"환자라면 그렇게 문을 두들기지 않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선생님은 진찰을 하지 않으십니다."
"의사라면 환자를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리다가 호령을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스리다는 화를 내면서 메두사 호로 되돌아왔다. 배에 되돌아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자 스리다는 차차 침착해졌고 지금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스리다는 갑판으로 올라가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닻을 올려라!"
하고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메두사 호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했다.
 
 
병든 손녀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있는 먼지투성이의 시골길을 나이가 많은 인디오가 발을 질질 끌면서 걷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누더기였으며 조그만 계집애를 안고 있었다. 계집애의 목에는 큰 종기가 나 있어서 괴로운 듯 울고 있었다.
"제발 죽진 말아라."
그 노인은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철문 앞까지 오더니 그 늙은 인디오는 계집애를 왼손으로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철문을 네 번 두드렸다. 문은 곧 열렸다. 인디오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흰옷을 입은 흑인이 서 있었다.
"아이가 병이 나서 박사님께 진찰을 좀 해주십사 하고 왔습니다."
인디오가 말했다.
흑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철문을 걸어 잠그고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따라가면서 인디오는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그리 넓지 않은 앞뜰이었다.
그 앞뜰은 바깥쪽의 높은 담을 지나서 안쪽에 또 한 개의 담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두 번째 문이 있는 곳에 하얀 집이 있었다.
그 앞뜰에는 환자 같은 인디오의 남녀가 서너 명 앉아 있었다.
애를 끌어안고 발을 절룩거리는 할머니의 곁으로 가자 그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따님이십니까?"
"손녀입니다."
인디오가 대답했다.
"나쁜 병이 당신 손녀의 몸에 들어간 겁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그분은 나쁜 병을 내쫓아 주실 것이니까요. 그러면 손녀는 병이 나을 겁니다."
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인디오는 끄덕였다.
흰옷을 입은 흑인이 아이가 있는 곳까지 와서 하얀 집의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인디오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흰 시트가 깔린 좁고 긴 테이블이 있었다.
안쪽 유리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흰옷을 입은 카디스 박사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얼굴은 약간 검은 편이었다. 눈은 몹시 날카로웠다.
인디오는 인사를 하고 아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카디스 EMB00000f9869a6박사는 환자를 받아 들고는 둘둘 싸놓은 낡아빠진 포대기를 펼치고, 계집애를 들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목의 종기를 주의 깊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한달 후에 이 아이를 찾으러 오십시오. 그때까지는 병을 고쳐놓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늙은 인디오의 대답도 듣지 않고 아이를 끌어안더니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인디오는 카디스 박사의 뒷모습에 절을 하고 나갔다.
그로부터 꼭 한달 후에 나이 많은 인디오는 그 방에 다시 들어왔다. 방의 유리문을 열고 병이 다 나은 조그만 계집애가 깨끗한 옷을 입고 아장아장 걸어나왔다.
인디오는 쫓아가서 계집애를 끌어안았다. 목의 종기는 완전히 없어지고 수술한 작은 흉터가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계집애의 뒤를 따라 카디스 박사가 들어왔다.
"자, 이 아이를 데리고 가십시오. 당신은 알맞은 때에 데리고 왔습니다. 만약 하루만 늦었더라도 이 아이는 생명을 잃었을 겁니다."
인디오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자 애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카디스 박사 앞에 꿇어앉더니,
"박사님은 저의 손녀의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돈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 보수로 저의 몸뚱이를 드리겠습니다. 제발 가져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당신의 몸뚱이를 갖다니......, 무슨 말씀이오?"
박사는 깜짝 놀랐다.
"저는 늙었습니다만 아직은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며느리에게 데려다주고 곧 돌아오겠습니다. 제발 저를 써주십시오. 저는 저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박사님께 바치겠습니다. 제발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기쁘게 다 하겠습니다."
박사는 생각에 잠겼다.
박사는 새 사람을 더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거리는 많았다. 넓은 뜰의 관리는 토레라는 흑인 혼자로서는 힘겨웠다.
(아마 이 인디오라면 틀림없겠지. 상당히 성실해 보이는군.)
"당신 생각이 정 그렇다면 좋습니다. 언제부터 이곳에 와 주시겠습니까?"
"일주일 후에 오겠습니다."
인디오는 머리를 숙였다.
"당신의 이름은?"
"와루코입니다."
"그러면 와루코, 어서 갔다 오시오."
와루코는 계집애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계집애는 울기 시작하였다. 와루코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이상한 뜰
 
일주일 후에 와루코가 돌아왔다. 카디스 박사는 와루코의 얼굴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잘 듣게나. 와루코, 너를 고용하겠다. 식사를 주고 월급도 지불하겠다."
와루코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월급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박사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고마운 소리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게나. 단 한가지만 약속해주기 바란다. 여기서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제가 그런 소리를 하거든 제 혀를 끊어주십시오."
"그럼, 그런 일이 없도록 약속을 꼭 지켜다오."
이렇게 말하고 카디스 박사는 흰옷을 입은 흑인을 불러서 말했다.
"와루코를 안내해서 토레에게 보내 주어라."
흑인은 아무 말 없이 인사를 하고, 와루코를 데리고 흰 집을 나와서 두 번째 담의 철문을 두드렸다. 담 안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잠시 후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흑인은 와루코를 대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곳에 서 있는 또 다른 흑인에게 빠른 말로 뭔가 말하고는 돌아갔다.
노란색에 까만 반점이 있는 표범 같은 동물이 와루코를 향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면서 담에 몸을 바싹 붙였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가까운 나무에 올라갔다. 표범 같은 동물이 개 같은 소리로 짖어댔다.
흑인은 그 이상한 동물을 향해서 '시이!'하고 소리냈다. 동물은 짖는 것을 그치고 땅에 앉았다.
흑인은 이번에는 나무 위의 와루코를 향해서 '시이'라고 말했다.
"왜 당신은 '시이, 시이'라고만 하죠? 혀가 없소?"
와루코는 나무 위에서 물었다.
흑인은 화난 것 같이 끙끙댔다. 와루코는 그 흑인이 혹시 벙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이 흑인은 비밀을 안 지켰기 때문에 혀를 끊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라 와루코는 무서워졌다.
흑인은 다가오더니 와루코의 발을 잡아당겼다. 와루코는 하는 수 없이 나무에서 내려와서 억지로 웃음을 짓고 한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하며 물어보았다.
"당신이 토레입니까?"
흑인은 끄덕였다.
"당신은 혹시 벙어리가 아니오?"
흑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혀가 없소?"
흑인은 아무 대답도 않고 표범 같은 동물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가더니 '시이, 시이'하고 뜻도 모르는 소리를 하였다. 동물은 일어서서 와루코의 냄새를 맡더니 천천히 저쪽으로 갔다.
와루코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토레는 와루코에게 손짓을 해가며 넓은 뜰을 여기저기 안내하였다.
뜰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바닷가 쪽으로는 경사가 멀리까지 완만하게 되어 있었다. 뜰 안에는 조개 껍질을 깔아놓은 좁다란 길들이 가로 세로로 이어져 있었다. 뜰 한가운데는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이 인공 분수가 물을 하늘높이 뿜어 올리고 있었다. 뜰에는 갖가지 새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와루코는 생전 이런 동물들을 본 일이 없었다. 거기에는 정말로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여섯 개의 발을 가진 도마뱀이 녹색의 비늘을 번쩍이면서 좁다란 길을 가로질러 가는가 하면, 나무에서는 머리가 두 개나 달린 큰 뱀이 내려와서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와루코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와루코는 깜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토레가 큰 소리로 '시이'라고 하자 뱀은 머리를 흔들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발이 두 개 달린 뱀도 있었다.
우리 안에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돼지가 끙끙거리고 있는가 하면 몸뚱이가 두 개나 붙어있는 두 마리의 흰쥐가 아장아장 걸어가기도 했다.
몸뚱이가 한데 붙어있는 두 마리의 양도 있었다.
와루코가 가장 놀란 것은 장미색의 털이 없는 벌거숭이 개였다. 개의 등에는 원숭이의 머리와 가슴과 손이 흡사 개의 몸뚱이에서 솟아 나온 것 같이 붙어 있었다. 개는 와루코의 옆에 가까이 오더니 꼬리를 흔들고, 원숭이는 손으로 개의 등을 두들기는 것이었다.
앵무새 머리를 한 참새가 나무에서 날아올랐다. 좀 떨어진 풀밭에는 소의 머리를 한 말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와루코는 꼭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머리를 좀 식히려는 생각으로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물 속에는 물고기의 머리와 아가미를 가진 뱀, 개구리 같은 발을 가진 물고기, 도마뱀 같은 긴 머리를 한 큰 개구리 등이 헤엄치고 있었다.
와루코는 도망가고 싶었다. 토레가 돌을 깔아놓은 널따란 마당으로 와루코를 데리고 갔다. 뜰 한가운데는 대리석으로 만든 깨끗한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뒤에는 주택과 작업장과 창고 등이 있었다.
그 저쪽에는 선인장의 숲이 흰 담 있는 데까지 계속 이어져 있었다.
(또 담이 있다?)
와루코는 생각했다.
토레는 와루코를 작고 깨끗한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이 방이 당신이 사용할 방이라고 손짓으로 설명하고는 가 버리고 말았다.
 
 
세 번째의 담
 
와루코는 이상한 뜰에 차차 익숙해져 갔다. 이 뜰에서 살고 있는 동물은 새도 짐승도 뱀도 잘 길들여져 있었다.
첫날에 와루코를 놀라게 한 표범의 몸뚱이를 한 개는 와루코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
열두 명의 흑인이 이 동물들을 돌보아주고 있었다. 모두가 토레와 같은 벙어리인지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토레는 이 뜰의 책임자이고 모든 사람들의 일을 감독하고 있었다.
와루코는 토레의 조수가 되었다. 일은 쉽고 식사도 좋았다. 와루코에게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으나 단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카디스 박사의 일과는 규칙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환자를 진찰하고 9시에서 11시까지 수술을 하고, 그 이후는 뜰 한가운데 있는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동물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수술과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와루코는 세 번째의 담 저쪽을 구경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모두 쉬고 있는 틈을 타서 세 번째 담 가까이 가 보았다.
담 안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아이들 소리에 섞여서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와루코는 뜰에서 카디스 박사를 만났다. 박사는 와루코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와루코, 자네가 여기에 온지 한 달이 되었는데 열심히 일을 해주어서 고맙다. 실은 아래 뜰의 관리인 한 사람이 병이 나고 말았다. 자네는 그 사나이를 대신해서 일해줘야겠다. 단, 아래 뜰에서 무엇을 보아도 절대로 딴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와루코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좋다. 그런데, 자네는 안데스 산맥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알고 있나?"
"저는 그 산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럼 참 잘 됐군. 머지 않아 동물과 새를 잡으러 가게 될 것 같다. 그때는 너를 데리고 가기로 하겠다. 자, 아래 뜰에 가 있거라. 토레가 너를 안내해 줄 것이다."
와루코는 아래 뜰에 가 보고 또다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태양이 비치고 있는 넓은 초원에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원숭이와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인디오의 아이들인데, 모두 EMB00000f9869a7카디스 박사의 수술을 받고 거기서 요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 살에서 열두 살까지의 아이들이 이 초원에서 뛰고 놀면서 치료를 받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면 양친에게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원숭이가 사이좋게 같이 놀고 있었다.
원숭이는 꼬리가 없고 몸에는 털이 나 있지 않았다. 놀란 일은 원숭이들이 인간과 같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 원숭이들의 말소리는 높고 날카로워서 듣기에 힘이 들었다.
와루코는 그것이 정말 원숭이인지 사람인지조차 분간할 수도 없었다.
와루코는 뜰을 걷고 있는 사이에 위 뜰 보다 이 뜰이 더욱 경사졌으며, 바다에 가까운 것을 알았다. 한 모퉁이에 큰 바위가 절벽같이 솟아올라 있었다.
큰 바위 아래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와루코는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않게 조심하며 뜰을 샅샅이 조사해 보았다.
수일 후 그 바위가 콘크리트로 만든 인공 바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위에는 철문이 붙어 있었다.
철문은 바위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 철문은 어디로 통하고 있을까? 바다로 통하게 되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붉은 풍선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풍선은 뜰을 지나 바다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붉은 풍선을 본 순간 와루코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와루코는 카디스 박사에게 가서 부탁했다.
"박사님, 이제 우리들은 안데스 산중으로 가야 된다고 하셨죠?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떠나기 전에 딸과 손녀를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카디스 박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박사는 고용인이 여기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하였다.
와루코는 잠자코 박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 수 없군. 3일간 여가를 주마. 단 여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돼!"
카디스 박사는 옆방으로 가서 돈이 들어있는 작은 상자 곽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딸과 손녀를 위해서 써 다오. 이것은 입을 열지 않는데 대한 대가라고 생각해도 좋다."
 
 
기다리는 스리다
 
"아루바, 오늘도 그놈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너와 인연을 끊겠다."
스리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가에서 아루바를 만나자 곧 그렇게 말했다.
아루바는 몹시 초조해져 가고 있었다. 와루코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형인 와루코를 카디스 박사가 있는 곳에 스파이로 보낸 것을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와루코는 아루바보다 늙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튼튼하고 표범같이 민첩했다. 와루코는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어떤 나쁜 짓이라도 예사로 저지를 인간이었다. 스파이로서는 안성맞춤이나 그렇게 신용할 수 있는 인간은 못 되었다. 조그만 이익 때문에 형제의 인연이라도 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리다는 그런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루바 못지 않게 걱정을 하였다.
"아루바, 내가 하늘로 올린 붉은 풍선을 와루코가 보았다고 생각하는가?"
아루바는 대답 대신 거북하게 웃었다. 태양은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스리다도 아루바도 기다림에 너무 지쳐 있었다. 그때 저 먼 쪽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났다. 아루바는 흥분하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형님이다!"
"어서 오게!"
와루코는 힘찬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미 늙은이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어때 '바다의 악마'를 보았나?"
스리다는 초조하게 물었다.
"그것은 아직 이릅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나는 카디스 박사에게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데 박사는 나를 굉장히 신용하고 있소. 병들은 계집애를 내 손녀라고 거짓말을 했으니까."
"어디서 계집애를 손에 넣었나?"
스리다가 물었다.
"계집애쯤은 얼마든지 있소. 병을 고쳐준다고 하니까 아주 기뻐하면서 나에게 돈까지 주어 계집애를 맡겨 주었소."
와루코는 카디스 박사에게 얻은 돈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계집애의 어머니에게 돌려준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카디스 박사는 아주 굉장한 동물원을 가지고 있더군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와루코는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다 얘기했다.
"그것 참 신기한 얘기로군. 하지만 바다의 악마에 대한 비밀을 알지 못했으니 문제가 아닌가. 이제부터 어떻게 할 계획이지?"
"카디스 박사와 같이 안데스 산맥에 사냥을 하러 가게 되어 있소."
"그럼 잘 됐다! 카디스 박사의 집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사냥간 틈을 습격하여 바다의 악마를 빼내도록 하자."
와루코는 고개를 저었다.
"표범에게 물려죽지 않으면 다행이오."
"그럼 이렇게 하지. 사냥을 떠나는 카디스 박사를 미리 앞질러 가서 숨어 있다가 인질로 해서 바다의 악마와 교환하기로 하자."
"숨어서 박사를 기다린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오. 그러나 카디스 박사가 바다의 악마를 넘겨준다고 약속한다고 해도 정말 넘겨줄 것 같소?"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
스리다는 초조해져서 되물었다.
"천천히 기다리는 것이 좋소. 카디스 박사는 나를 신용하고 있소. 나를 신용하게 되면 나에게도 바다의 악마를 소개해 줄 것이오."
"그래서?"
"카디스 박사를 여러분들이 습격해 주시오. 그리고 내가 카디스 박사를 구조해 주는 것이오. 그러면 카디스 박사가 나를 신용할 것입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세 사람은 카디스 박사를 습격할 장소에 대해서 의논하기 시작했다.
1시간 가량 의논을 하자 계획이 세워졌다.
 
스리다와 와루코는 세 명의 부랑자들을 고용해서 강도처럼 변장시키고 무기까지 주어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EMB00000f9869a8서 말을 타고 기다리게 했다.
밤이 되었다.
그들은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도 카디스 박사가 사냥을 가는데 자동차를 이용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뜨리고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리고 밝은 헤드라이트의 빛이 비쳤다. 그 순간 검은색의 자동차가 그들의 옆을 번개같이 지나갔다.
스리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땅을 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아루바가 말했다.
"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소. 낮에는 덥고 밤은 서늘해서 밤에 가기로 했을지도 모르오. 낮에는 분명히 어디에서 쉬게 될 것이오. 급히 뒤를 쫓아 봅시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달렸다.
두 시간쯤 뒤쫓아갔을 때 멀리서 모닥불이 보였다. 아루바가 혼자 정찰을 하고 돌아왔다.
"그놈들이오.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하고 있는 중이며 와루코가 망을 보고 있습니다. 빨리 해치웁시다."
음모자들은 일제히 달려들었다.
카디스 박사가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박사, 와루코, 세 명의 흑인 등은 모두가 꽁꽁 묶이고 말았다. 누군가 박사에게 많은 돈을 요구했다.
박사는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큰 돈은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
"돈을 주지 않으면 날이 새기 전에 너희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
"그런 큰 돈을 가지고 있을 까닭이 없잖소!"
박사는 음모자들이 놀랄 정도로 침착했다. 음모자들은 자동차 안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표본용 알코올을 찾아내어 돌려가며 마셨다.
술에 취하여 모두들 땅바닥 위에 쓰러져 코를 골고 자는 것이었다.
먼동이 틀 무렵 와루코가 살금살금 카디스 박사에게 기어갔다.
"접니다. 와루코입니다. 요행히 끈을 풀었습니다. 놈들은 모두 자고 있습니다. 운전사가 마침 자동차를 다 고쳤습니다. 빨리 달아납시다."
모두 재빨리 자동차에 올라탔다. 운전사는 부랴부랴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뒤쪽에서 고함 소리와 총소리가 났다. 카디스 박사는 와루코의 손을 말없이 꽉 붙잡았다.
 
 
양서인간을 만나다
 
와루코는 카디스 박사가 곧 바다의 악마를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디스 박사는 와루코에게 상금만 주었을 뿐, 그대로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었다.
와루코는 네 번째 담에 달린 비밀의 철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비밀의 철문에는 작은 스위치가 붙어있었다. 그것을 눌렀더니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와루코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저절로 닫혔다.
와루코는 걱정이 되어서 다시 문을 열려고 하였다. 그러나, 스위치는 아무 데도 없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와루코는 사방을 살펴보았다. 뜰에는 나무가 많이 서 있었다. 바다와 경계가 되는 담 가장자리에는 큰 풀이 있었다.
와루코는 깜짝 놀랐다.
(바다의 악마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드디어 찾아냈구나!)
와루코는 반가워서 풀의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풀 바닥에는 큰 원숭이가 앉아서 와루코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원숭이가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참 신기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보니 원숭이의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오므라졌다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것이 바다의 악마란 말인가? 이건 물 속에서 살 수 있는 원숭이가 아닌가!)
와루코는 무의식중에 웃음을 터뜨렸다.
와루코는 비밀을 알아내게 되어서 기뻤으나 이런 것이 어떻게 해서 어부들을 놀라게 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모습은 소문에 들은 내용과는 달랐다.
그러나 꾸물거리고 있을 순 없었다. 와루코는 빨리 담이 있는 데까지 되돌아와 여기저기 살피며 넘어갈 곳을 찾다가, 담에 걸쳐있는 큰 나무를 발견했다. 곧 나무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담 위로 건너가 발을 부러뜨릴 각오를 하고 뛰어내렸다.
겨우 일어섰을 때 카디스 박사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와루코, 어디 있나?"
와루코는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고 있는 척 하였다.
"여기 있습니다."
"와루코! 따라오라."
박사는 비밀의 철문 쪽으로 다가갔다.
"이 철문은 이렇게 하면 열린다."
박사는 와루코가 이미 알고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나는 비밀을 이미 알았어요.)
하고 와루코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풀 속에는 아직도 원숭이가 있었다. 와루코는 처음 보는 것처럼 크게 놀라는 척 하였다.
카디스 박사는 원숭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원숭이는 급히 풀에서 뛰어나와 가깝게 서 있는 나무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박사는 허리를 굽히더니 풀 속에 있는 녹색의 철판을 눌렀다. 풀의 양쪽 해치가 열리지 풀의 물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리고는 저절로 해치는 닫혔다. 어디서인가 모르게 쇠사다리가 천천히 밀려나왔다.
"가자, 와루코."
박사는 풀의 바닥으로 내려갔다. 박사가 깔아놓은 돌 한 개를 밟자 풀의 바닥 중앙에서 일 제곱미터쯤 되는 해치가 열렸다. 거기에서 쇠사다리는 지하로 통하고 있었다. 와루코는 박사의 뒤를 따라 쇠사다리를 내려갔다. 쇠사다리는 길고 지하는 캄캄했다.
"넘어질라, 주의해라. 자, 다 왔다."
카디스 박사는 벽을 더듬더니 스위치를 넣었다. 사방이 갑자기 밝아졌다. 눈앞에 육중한 철문이 보였다.
박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또 스위치를 넣었다.
한쪽 벽이 유리로 되어있는 넓은 방이었다. 박사는 스위치를 넣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방은 캄캄해지고 유리벽 쪽은 밝아졌다. 그것은 큰 수족관 같았다. 그것은 해저와 계속 이어져 있는 큰 유리로 만든 집이었다. 바닥에는 해초와 산호가 무성해 있었다. 그 사이를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해초 사이에 인간 같은 것이 모습을 나타냈다. 눈은 크게 튀어나와 있고 손은 개구리 같았다. 신체는 파란 은색의 비늘이 빛나고 있었다.
그 생물은 재빨리 유리벽 쪽으로 헤엄쳐 와 박사를 보고 반가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쪽의 작은 유리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 작은 방의 물은 금방 빠졌다. 기묘한 생물은 문을 열고 그들이 서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안경과 물갈퀴를 벗어라."
박사가 말했다.
기묘한 생물은 안경을 벗고 물갈퀴를 벗었다. 그러자 늠름하고 잘생긴 청년으로 변해버렸다.
"소개하겠다. 로스모다.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양서인간이지. 바다의 악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바로 이 청년이다."
청년은 빙긋이 웃으며, 와루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와루코는 그 손을 쥐었다. 너무나 놀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로스모를 돌보아주던 흑인이 병이 났단다. 와루코, 네가 잠시 동안 대신해서 잘 돌봐 주어야겠다. 잘 돌봐주면 계속해서 네게 맡길 작정이다."
와루코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로스모의 하루
 
먼동이 틀 때가 가까워졌다. 공기는 습기가 많았으나 따뜻하고 목련꽃의 달콤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로스모는 허리에 단검과 수중 안경과 손과 발의 물갈퀴를 차고 뜰의 좁은 길을 걸어갔다. 풀 앞에까지 온 로스모는 걸음을 멈추더니 수중 안경을 쓰고 손갈퀴과 발갈퀴를 달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줬다. 그 순간 아가미가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물고기로 변하는 것이었다.
로스모는 풀의 난간을 잡고 바다로 통하는 수중 터널로 기어 들어갔다. 어둡고 긴 터널을 통해서 바다로 나가는 곳에는 철문이 있었다.
로스모는 손으로 더듬어서 철문을 열고 바다로 나갔다. 바다 속도 아직은 어둡다. 여기저기 푸르스름하게 빛을 내고 있는 발광 생물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곧 날이 새었다.
로스모는 조용한 아침 바다를 좋아했다. 이윽고 아침해가 바다에도 비쳐 와서,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눈을 뜨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로스모도 손과 발을 써서 넓은 바다를 기운차게 헤엄쳐 돌아다녔다. 그리고 아침 식사는 굴이나 조개를 따서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조금 쉰 후, 물고기나 돌고래와 같이 바다를 헤엄쳐 돌아다녔다.
때때로 물위에 떠올라와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갈매기와 신천옹(날개를 펴면 3미터 가량이나 되는 커다란 새로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음)과 장난을 치면서 파도를 타고 놀았다. 그러나 배가 나타나면 곧 바다 밑으로 기어 들어가 버린다.
로스모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는 카디스 박사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남쪽 바다는 아름다웠다. 물은 한없이 맑고, 붉고 푸르며 노란 물고기가 나비 떼처럼 쉬지 않고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이렇게 하루를 바다에서 지내고 저녁이 되면 다시 풀로 되돌아와서 물위로 올라와 꽃향기를 맡으며 침대에서 자는 것이다.
 
 
젊은 아가씨
 
언젠가 로스모는 폭풍우가 멎은 뒤에 바다로 나가 헤엄치고 있었다. 상당히 멀고 깊은 바다에서 이곳저곳 바라보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흰 천 같은 것이 둥둥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엇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사람이었다. 더욱이 젊은 아가씨였다. 그 아가씨는 나무 조각에 걸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죽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일까?)
로스모는 나무 조각을 잡아끌며 바닷가로 헤엄쳐 나왔다. 바닷가까지는 좀 멀었다.
로스모는 힘을 다해 헤엄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아가씨를 꼭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끈을 풀고 여자를 살며시 끌어안아 풀 위에 옮겨놓고 인공 호흡을 시켰다.
아가씨의 속눈썹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로스모는 아가씨의 심장에 귀를 대어보았다. 가냘픈 심장의 고동이 들려왔다.
(아, 살아있다!)
로스모는 하늘에라도 뛰어오를 듯이 기뻤다.
아가씨는 눈을 뜨고 로스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로스모는 실망했다. 그러나 기뻤다.
아가씨의 생명을 구해 준 이상, 이곳을 빨리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가씨를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먼데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EMB00000f9869a9들려왔다. 로스모는 곧 바다로 뛰어들어가 바위틈에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모래사장 저쪽에서 수염이 많이 나고 얼굴이 검게 탄 사나이가 오고 있었다.
사나이는 그 아가씨를 보자마자,
"아니, 이런 곳에 있다니!"
하고 중얼거리며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내려다보고 곧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가 다시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서 인공 호흡을 시키는 것이었다.
(왜 저런 짓을 할까?)
로스모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그러나 당신을 나무 조각에 묶어놓은 것은 잘 했다."
아가씨는 눈을 뜨고 머리를 들었다. 그 얼굴에는 놀람과 실망의 빛이 나타났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나이는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아가씨를 일으켜 세웠다.
아가씨는 일어서자마자 곧 모래 위에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삼십 분쯤 지나서야 겨우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아가씨는 불쾌한 표정으로 수염난 사나이에게,
"당신이 나를 구해주셨지요? 고맙습니다. 틀림없이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을 겁니다."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신의 가호보다 너의 사랑을 더 원하고 있어."
"이상하다. 내 옆에는 괴상하게 생긴 괴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너의 착각이다. 그러나 혹시 악마가 붙어 네 피를 빨아먹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제는 안심해라."
아름다운 아가씨와 수염이 덥수룩한 사나이는 모래사장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로스모는 수염난 사나이는 왜 자기가 그 여자를 구해줬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로스모는 자기도 모르게 슬퍼졌다.
 
 
와루코의 계획
 
와루코가 로스모를 잘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카디스 박사는 이젠 와루코를 사냥 가는데 동행시키지 않았다.
와루코는 잘 됐다고 기뻐했다. 박사가 없는 동안 흉계를 꾸밀 수도 있고, 아루바와 자유로이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로스모를 훔쳐갈 것인가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와루코는 풀의 곁에 있는 로스모의 집에 살면서 항상 로스모를 보살펴 주는 것이 일과였다. 두 사람은 곧 친해졌다. 인간과 교제가 없는 로스모는 육지 생활을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와루코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바다의 일이라면 로스모는 어떤 과학자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더욱이 로스모는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식물학, 동물학 등을 상당히 많이 공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몰랐다.
로스모는 날씨가 더우면 지하의 터널을 통해 바다로 나가 하루종일 바다 속에서 살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되돌아와 아침까지 집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가 오든지 풍랑이 심한 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게 되는 것이다.
로스모가 거처하는 집에는 부엌, 식당, 도서실, 침실 등이 있었다. 침실은 크고 방 한가운데 풀 같은 큰 욕탕이 있고 창가에 침대가 있었다. 로스모는 침대에서 잘 때도 있으나 오히려 물이 들어있는 욕탕 속에서 자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카디스 박사는 출발하기 전 로스모에게 일주일에 3일은 침대에서 자도록 해야한다고 명령하고 떠났다. 그래서 와루코는 항상 로스모의 방에 가서 왜 침대에서 자지 않느냐 하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래도 나는 물 속에서 자는 것이 더 기분이 좋은 걸요."
로스모는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렸다.
"박사님은 침대에서 자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나쁩니다."
로스모는 카디스 박사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와루코는 그 관계가 의심스러웠다.
로스모의 손과 얼굴이 흰 것은 항상 물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카디스 박사는 스페인 사람인데 로스모의 얼굴 형태는 와루코와 같은 인디오 종족이었다.
와루코는 로스모의 피부 색깔을 자세히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로스모는 항상 몸에 꼭 맞는 비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왜 당신은 잘 때에도 그 옷을 벗지 않나요?"
"이 비늘 옷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으니까요. 지느러미와 살갗의 호흡을 방해하지 않고, 또한 상어의 습격을 당하거나, 칼로 끊으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정말 이 옷은 부드러우면서도 쇠보다 더 강해요."
"그럼 그 안경과 물갈퀴는 왜 씁니까?"
와루코는 옷장에 걸려있는 개구리발 같은 물갈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손갈퀴와 발갈퀴는 헤엄칠 때 필요하죠. 이 수중 안경은 물 속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지요. 이것을 쓰고 있으면 물 속이 잘 보이거든요."
"당신은 항상 풀에서 항구로 나가십니까?"
와루코는 알고 싶은 비밀을 물었다.
"그래요. 요즘은 다른 수중 터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나쁜 사람들이 터널의 출입구에 그물을 쳐놓고 나를 사로잡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아주 조심하고 있습니다."
"항구로 나가는 터널은 하나 뿐이 아니군요."
"물론이죠. 여러 개가 있죠. 당신이 물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안내해 드릴텐데....... 바다의 말에라도 태워드리고......."
"바다의 말이라니....... 뭡니까?"
"돌고래지요. 어떤 날 폭풍우가 심했었는데 돌고래 한 마리가 바닷가에 떠밀려 올라가고 말았어요. 그놈은 지느러미에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난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놈을 바다로 끌고 와서 상처가 다 아물게 될 때까지 돌보아 주었어요. 그래서 그놈은 나를 아주 좋아하게 되어 지금은 아주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죠. 다른 돌고래와도 친해졌습니다. 돌고래와 노는 것은 참 재미가 있어요. 그 외에도 친구들이 많습니다. 내가 바다 속을 헤엄치고 있으면 물고기들이 슬슬 뒤따라옵니다."
"그럼 적은?"
"적도 있지요. 상어라든지 큰 문어라든지....... 그러나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단검이 있으니까......."
"그래도 상대편이 몰래 다가온다면 곤란하겠지요."
로스모는 그 말에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것도 잘 들을 수가 있어요."
"물 속에서도 들립니까?"
로스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와도?"
"그럼요. 귀와 살갗으로 느낄 수가 있어요. 적이 움직이면 물이 진동하고 그 진동이 빠르게 전달되어 오니까 나는 그 진동을 느끼고 미리 준비하지요."
"자고 있을 때에도?"
"그럼요."
(스리다가 이 청년을 사로잡아서 한번 돈을 잘 벌어 보겠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나이를 수중에서 사로잡는 것은 어렵겠다. 이 사실을 빨리 스리다에게 알려주어야 되겠다.)
라고 와루코는 생각했다.
"얘기는 좀 다르나 왜 당신은 어부의 그물을 찢기도 하고 고기가 들어있는 배를 뒤집기도 해서 어부들에게 골탕을 먹입니까?"
"그거야 당연하지요. 그들이 못 먹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기 때문에......."
"어부는 팔기 위해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스모는 이 말의 뜻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듯 했다.
"즉, 다른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와루코는 설명했다.
"인간이 그렇게 많이 있어요? 육지의 새들이나 짐승들 만으로서는 부족한가요? 왜 인간은 바다에까지 와서 고기를 잡아가나요?"
"그런 것은 간단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곧 주무십시오. 꼭 침대에서 자야 합니다."
하고 말하고 와루코는 자기의 방으로 돌아갔다.
EMB00000f9869aa다음날 아침 일찍이 로스모의 방으로 가보니 그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물이 젖어 있었다.
"또 욕탕에서 잤구나."
그날 로스모는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쩐 일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디 갔다 왔어요?"
와루코가 물었다.
"오늘 돌고래와 같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까운 해안에 갔다가 참 아름다운 여자를 보았어요. 눈은 파랗고 머리는 금발이었습니다. 여자는 나를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며 달아났습니다. 내가 수중 안경을 쓰고 물갈퀴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전에 나는 바다에 빠진 젊은 아가씨를 구해 준 일이 있었는데 오늘 만난 아가씨가 어쩐지 그 아가씨와 비슷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쨌지요?"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되돌아오지 않았군요. 와루코, 그 아가씨는 이제는 다시 바닷가에 오지 않을까요?"
(이 사나이가 여자를 좋아하니 다행한 일이다. 시내가 데리고 나가기만 하면 사로잡는 것은 간단하겠군.)
와루코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젠 바닷가에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내가 그 아가씨를 찾아 드릴까요?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나와 같이 시내로 갑시다."
"그러면 그 아가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
로스모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시내에는 아가씨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 아가씨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지금 곧 갑시다."
"오늘은 너무 늦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이 출발합시다. 당신은 항구까지 나와주십시오. 나는 옷을 가지고 해안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옷을 구해 오겠습니다."
(오늘 정겨운 아우를 만나고 오자.)
라고 와루코는 생각했다.
 
 
시내
 
로스모는 항구에서 솟아올라 해변가로 올라갔다. 와루코는 흰 양복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로스모는 뱀 껍질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그것을 보다가 하는 수없이 입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양복을 입는 것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와루코는 넥타이를 매어 주고 만족스럽게 로스모를 살펴보았다.
"자, 갑시다."
와루코는 로스모를 놀라게 하기 위해 시내의 중심지로 데리고 갔다. 그것은 실패였다. 시내는 소음과 많은 사람들로 혼잡해 있기 때문에 로스모는 곧 피로에 지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젊은 아가씨가 눈에 뜨일 때마다,
"있다!"
라고 외치고 와루코의 손을 잡아당기었다. 그러나 곧 그 아가씨가 자기가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자 실망하곤 했다. 점심때가 되어 와루코는 식사를 하기 위해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거기도 역시 시끄럽고 무더웠다.
로스모는 냉수만 마시고 식사에는 손을 대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슬프게 말했다.
"이렇게 혼잡한 곳에서 사람을 찾기 보단 바다 속에서 친구인 물고기를 찾는 것이 훨씬 좋겠습니다. 시내라는 곳은 정말 싫은 곳입니다. 나는 옆구리가 아파요. 자, 그만 갑시다. 와루코!"
"알았습니다. 잠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 곳에 들렸다 갑시다."
"나는 이젠 인간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은 싫어요."
"바다로 가는 도중입니다. 그리고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와루코는 로스모를 달래서 거리로 나왔다. 로스모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고통스럽게 숨을 쉬면서 와루코의 뒤를 따라 빌딩과 빌딩 사이를 빠져서 교외로 나왔다.
"여깁니다."
와루코는 이렇게 말하고 어두컴컴한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로스모는 상점 안을 두루 살펴보았다. 거기는 바다의 밑바닥 같았다. 벽과 마룻바닥에는 크고 작은 각종의 조개 껍질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천장에는 산호와 불가사리와 성게 등이 실로 꿰매져 매달려 있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는 진주가 들어 있었다. 로스모는 자기와 낯설지 않는 것들을 보고는 조금 안심했다.
"조금 쉬십시오."
하고 말하면 로스모를 안락 의자에 앉히고 상점 안을 향해 외쳤다.
"아루바! 루이제!"
"형님이셔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옆방에서 소리가 났다.
와루코는 그 방으로 들어가 곧 문을 닫았다.
아루바는 진주를 문지르고 있었다.
EMB00000f9869ab"아루바! 루이제는?"
"세탁소에 갔으니 곧 돌아올 겁니다."
"스리다는?"
와루코는 계속 물었다.
"스리다는 아침에 또 한바탕 말싸움을 했으니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루이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스리다는 만날 때마다 결혼하자고 조르지만 루이제는 죽어도 싫다고 거절하면서 피하고만 있잖아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라고 하지만 스리다 같은 부자에게 시집을 안 간다고 하는 그 마음을 모르겠어요. 스리다는 술이나 퍼마시고 있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지?"
"데리고 왔어요?"
"저기 앉아 있는데......."
아루바가 문틈으로 상점 안을 내다보았다.
"없는데요?"
"없어? 안락 의자에 앉아있을 텐데......."
"루이제 외에는 아무도 없어요."
두 사람이 후다닥 상점으로 나와보니 거기에는 루이제 혼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있던 청년 어디 갔지?"
아루바가 물었다.
"제가 들어오자 그 청년은 눈을 휘둥거리더니 별안간 휙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상해서 곧 쫓아나가 보았지만 이미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 와루코는,
(아아, 그 아가씨라는 것이 루이제였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로스모는 거리를 곧바로 빠져 나와 해안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바닷가에 다다르자 재빨리 바위틈에 숨어서 사방을 돌아보고 양복을 벗어 그것을 바위 밑에 감추고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물 속으로 기어 들어가니 일시에 피로가 사라져버렸다.
로스모는 해안을 따라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 근처의 바다도 로스모는 잘 알고 있었다.
 
와루코는 집에 와서 크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로스모는 사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흘이 되자 푸르스름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어디에 갔다 왔어요?"
와루코는 로스모를 보고 기뻐서 물었다.
"바다 밑바닥에......."
"왜 그렇게 파란 얼굴을 하고 있어요? 왜 그래요?"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요."
로스모는 와루코에게 뭔가 숨기고 있었다.
"배가 고파요. 먹을 것을 좀 주셔요."
로스모는 아무 말도 없이 식사만 하고 수중 안경과 물갈퀴를 가지고 곧 다시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와루코는 그저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작은 복수
 
진주 파는 상점에서 뜻밖에 파란 눈을 한 아가씨를 만난 로스모는 자기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 이제는 크게 후회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번 더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와루코에게 부탁을 하면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웬일인지 와루코와 같이 그 아가씨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로스모는 처음 그 아가씨를 만났던 바닷가에 매일같이 헤엄쳐 갔다. 그리고 하루종일 바위틈에 숨어서 그 아가씨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닷가에 올라가서 그 아가씨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안경과 물갈퀴를 벗고 흰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때로는 2,3일 계속 기다리면서 지냈다. 밤이 되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와 굴을 먹고 물 속에서 잤다.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큰마음을 먹고 그 상점에 가보았다. 문이 열려있었으나 그 아가씨는 없었다.
로스모는 바닷가로 되돌아왔다. 뜻밖에 바닷가 절벽 위에 그 아가씨가 서 있었다. 그 아가씨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로스모는 바위틈에 숨어서 동정을 살폈다. 그 아가씨는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었다. 키가 큰 청년이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청년은 그 아가씨의 곁에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잘 있었소? 루이제!"
"안녕하셔요? 오르센!"
그 아가씨가 반갑게 대답했다.
오르센이라는 청년은 루이제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 로스모는 어쩐지 슬퍼졌다.
"가져왔군요."
오르센은 루이제의 진주 목걸이를 보고 물었다. 루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에게 들키지나 않았소?"
"들키지 않았어요. 아무튼 이제 제 것이니까 어떻게 하든지 누가 뭐래요?"
그들은 해안의 높은 절벽 쪽으로 걸어갔다.
루이제는 진주 목걸이를 벗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렸다.
"정말 아름다워요! 저녁 노을을 받아 더 아름답게 보이죠? 자, 받으셔요. 오르센."
오르센은 손을 뻗쳤다. 그 순간 진주 목걸이는 루이제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다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 어쩌지!"
두 사람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 같았다.
EMB00000f9869ac"바다에 들어가서 찾을 수 있을까?"
"안 돼요. 여기는 깊어요. 큰일났군요. 오르센!"
로스모는 루이제가 슬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방금 오르센을 미워하던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로스모는 바위틈에서 나와 천천히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오르센은 얼굴을 찌푸렸다. 루이제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로스모를 바라보았다.
다가오고 있는 청년은 바로 며칠 전에 상점에서 뛰어나간 그 청년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당신은 진주 목걸이를 바다에 빠뜨린 모양이군요. 제가 건져 드릴까요?"
로스모가 물었다.
"제 아버지라도 여기서는 안될 것이어요. 아버님보다 더 오랫동안 잠수하는 사람은 없어요."
"한번 해 봅시다."
로스모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리고 루이제와 오르센이 어리둥절히는 사이에 옷도 벗지 않고 높은 절벽 위에서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바다를 살펴보고 있었다. 1분이 지나가고 2분이 지나갔다. 로스모는 떠오르지 않았다.
"죽고 말았어요."
루이제는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로스모는 자기가 물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루이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 오래 물 속에 있는 것을 느끼고 급히 떠올라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바닥에는 바위가 많아서 찾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꼭 찾아드리겠습니다."
2분 후에 로스모는 다시 떠올라왔다.
"찾았습니다."
로스모는 바위를 타고 해안으로 기어올라왔다. 옷에서는 물이 폭포같이 떨어졌다. 로스모가 조금도 숨이 차지 않는 것을 보고 루이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루이제는 로스모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진주 목걸이를 받았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이제는 로스모가 보고 있는 앞에서 진주 목걸이를 오르센에게 넘겨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당신은 그걸 왜 저분에게 넘겨드리지 않습니까?"
로스모는 오르센을 손으로 가리켰다. 오르센은 얼굴이 붉어졌다.
루이제는,
"아, 그랬지요."
라고 말하고 목걸이를 오르센에게 건네주었다. 로스모는 즐거웠다. 그로서는 이것은 아주 작은 복수였다.
로스모는 루이제에게 인사를 하고 재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혼자되고 보니 여러 가지 의심이 떠올랐다.
(오르센이라는 청년은 어떠한 사람일까? 왜 루이제는 오르센에게 진주 목걸이를 주는 것일까?)
그날밤 로스모는 또다시 돌고래와 같이 바다를 헤엄쳐 돌아다녔다. 다음날은 하루 종일 바다 밑에서 진주를 찾았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이 항상 가던 해안으로 올라가서 양복을 입었다. 저녁 무렵 루이제가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로스모는 바위틈에서 나와 루이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루이제는 로스모를 보고 반가운 듯 다정하게 물었다.
"당신은 나의 뒤를 따라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은 요전 진주 목걸이를 오르센에게 건네주기 전에 그것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진주를 좋아하십니까?"
"예."
"그러면 이 진주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루이제는 로스모의 손바닥 위에 있는 진주가 지금까지 본 어떠한 진주보다도, 또 아버지에게 이야기 들었던 어떤 진주보다도 훌륭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양이 좋고 아무런 티도 섞이지 않았으며 200캐럿 정도의 무게가 되었다. 따라서 그 값은 정말 굉장한 것이다. 루이제는 눈을 휘둥그래 뜨고 진주와 늠름한 청년을 번갈아 보았다.
(이 청년이 왜 나에게 비싼 진주를 주려고 하는 것일까?)
"자, 받아주십시오."
로스모는 다시 말했다.
루이제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니어요. 그렇게 비싼 선물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뭐, 별로 비싼 선물은 아닙니다. 이런 것은 바다 밑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루이제가 웃었다.
"부탁입니다. 받아주십시오."
로스모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도저히 받을 수가 없네요."
로스모는 기분이 나빠졌다.
"당신이 필요 없으면 오르센에게 주십시오. 그 사람이면 좋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제는 화를 냈다.
"오르센이 진주를 좋아해서 그때 진주를 준 것이 아니어요. 당신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면 정말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그러자 로스모는 진주를 바다 멀리 내던지고 루이제에게 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루이제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비싼 진주를 돌멩이같이 내던지는 사람을 지금까지 한번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좀 기다려 주셔요."
그러나 로스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걷고 있었다. 루이제는 뒤쫓아가서 로스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로스모로서는 생전 처음 흘리는 눈물이었다.
"용서해 주셔요. 당신을 슬프게 만들어서......."
루이제는 로스모의 손을 꼭 잡았다.
 
 
초조한 스리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매일 해질 무렵이 되면 로스모는 시내에서 가까운 그 바닷가로 헤엄쳐 가서, 바위틈에 숨겨 놓은 양복을 갈아입고 루이제와 만나서 바닷가를 산책했다.
로스모는 머리가 영리해서 루이제가 모르는 일들을 많이 알고 있었으나 그와 반대로 시내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이라도 알 수 있는 일도 몰랐다. 루이제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로스모는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루이제가 아는 것은 로스모가 어느 부잣집 의사의 아들이라는 것 뿐이었다.
때로는 두 사람은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발 아래에는 파도가 밀려오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럴 때면 로스모는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아, 이게 행복이라는 거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가야겠어요."
하고 루이제가 말하면 로스모는 마지못해 일어나서 루이제를 시내 가까이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바다로 되돌아와 옷을 벗어 숨겨놓고 바다에 뛰어들어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활이 매일 계속되었다.
로스모로서는 루이제가 소란스럽고 먼지투성이인 시내에서 살고 있는 것보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바다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이제는 바다 속에서 생활할 수가 없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또 로스모도 땅 위에서만은 살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육지에 있으면 로스모는 옆구리가 쑤시고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로스모는 루이제와 오르센의 관계가 궁금했으나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에 루이제는 로스모에게 내일은 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왜요?"
"일이 있어요."
"무슨 일인가요?"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아니어요. 바래다주지 않아도 좋아요."
루이제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 혼자 돌아가는 것이었다.
로스모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 바다 바닥에 물이끼가 낀 돌 위에서 하룻밤을 꼬박 세웠다. 너무 슬펐다. 밤새도록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먼동이 틀 무렵 자기 집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항구 가까이에서 어부들이 돌고래를 잡고 있었다. 큰 돌고래가 총알에 명중되었다. 돌고래는 물위로 높이 뛰어 올랐다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리이딩이다."
로스모는 깜짝 놀랐다. 한 어부가 바다에 뛰어들어가 상처 입은 돌고래를 쫓았다. 돌고래는 고통스럽게 숨을 쉬어가면서 다시 떠올랐다.
어부는 재빨리 돌고래 있는 곳으로 헤엄쳐 갔다. 로스모도 곧 돌고래를 구조하러 나섰다. 로스모는 물 속으로 들어가서 어부를 뒤따라가 발을 이로 깨물었다. 어부는 상어에게 습격 당했다고 생각하고 발을 힘차게 내두르며 단검을 정신없이 휘둘렀다. 단검이 로스모의 목에 닿았다.
그 순간 로스모는 어부에게서 떨어졌다. 어부는 급히 배로 되돌아갔다.
로스모는 상처 입은 돌고래를 데리고 물 속의 동굴로 기어 들어갔다. 거기는 물이 반정도 밖에 없고 천장의 바위틈에서 공기가 들어오고 있어서 돌고래는 자유로이 호흡할 수가 있었다.
로스모는 돌고래의 상처를 살폈다. 총알은 피부를 뚫고 들어가 지방이 많은 곳에 박혀 있었다.
로스모는 총알을 빼냈다.
"자, 이제는 됐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여기에 있어야 한다."
로스모는 돌고래의 등을 정답게 두드렸다.
이번에는 자기의 상처를 걱정하여야 되었다. 로스모는 지하 터널을 통해서 자기 집으로 되돌아왔다. 와루코는 로스모의 목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어찌된 일인가요?"
"돌고래를 구하려다 어부에게 당했어요."
와루코는 믿지 않았다.
"혼자 또 시내에 갔었지요?"
와루코는 부상을 치료해 주면서 물었다.
EMB00000f9869ad"비늘을 조금 들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면서도 와루코는 로스모의 어깨 비늘을 젖혀 보았다. 어깨에는 붉은 반점이 있었다.
"노로 두들겨 맞았어요?"
와루코는 손으로 만져가면서 물었다. 부어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날 때부터 있었던 점 같았다.
"아니어요."
로스모는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와루코는 잠시동안 생각에 잠기고 있다가 이윽고 급히 방을 나왔다. 와루코는 급히 시내에 잇는 아루바의 상점으로 갔다.
상점에는 루이제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루이제는 손으로 옆방을 가리켰다. 와루코는 아루바의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아루바는 와루코의 얼굴을 보자마자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정말 야단났어요. 스리다는 왜 바다의 악마를 잡아오지 못하느냐고 화만 내고 루이제는 집에 있지도 않고 스리다만 나타나면 달아나 버립니다. 스리다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힘으로라도 루이제를 데리고 가겠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그 놈이 어떤 짓을 할는지 모르겠군요."
와루코는 동생의 넋두리를 듣고 말했다.
"로스모를 데리고 못 오는 것은 그놈도 루이제와 마찬가지로 항상 집을 비우고 없으니까 그렇다. 거기에다 그놈은 나와 같이 시내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 요새는 웬일인지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때 문이 휙 열리며 스리다가 불쑥 들어왔다.
"형제가 모여 앉았구나. 너희들은 언제까지 날 속일 작정이냐?"
와루코는 일어서면서 애교 있게 웃으면서 말했다.
"힘껏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바다의 악마는 머리가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한번 겨우 여기까지 데리고 왔었는데 그땐 당신이 없었잖아요? 그 후 바다의 악마는 시내에 나오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기 싫다면 안 도와도 좋아.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이번 주 안으로 나는 두 가지 일을 해치울 작정이다. 카디스 박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며칠 후면 돌아올 겁니다."
"그렇다면 빨리 서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힘센 녀석들 몇 놈을 골라서 데리고 갈 테니 와루코, 너는 문만 열어주면 된다. 뒷일은 내가 맡을 테니까. 모든 준비를 갖춘 다음 아루바에게 알리겠다."
스리다는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아루바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너와는 내일 말하겠다. 알았지. 이제는 최후의 수단을 써야지 안 되겠다. 그런 줄 알게."
스리다는 호통을 치고는 나가버렸다. 상점에서 스리다는 루이제에게 작은 소리로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싫어요!"
루이제의 소리가 들려왔다. 와루코와 아루바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불쾌한 상봉
 
로스모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목의 상처가 몹시 쑤셨고, 물 밖에서는 숨쉬기가 곤란했다.
그래도 루이제를 만나러 바닷가로 나갔다. 루이제는 낮 12시가 조금 지나자 도착했다.
날씨는 점점 무더워져 갔고 그만큼 로스모는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져 갔다.
"오늘은 아버지가 볼일로 상점을 비우기 때문에 내가 상점을 보게 되었어요."
"그럼 빨리 돌아가야겠군. 바래다 드리죠."
두 사람은 상점으로 가는 먼지투성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오르센이 오고 있었다.
그러자 루이제는,
"저 사람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조금 기다려 주셔요."
하고 말하고는 오르센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소곤소곤 무엇인가 한참 이야기를 했다. 루이제가 무슨 부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았어. 그러면 오늘 저녁 열두 시쯤......."
오르센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르센은 루이제와 헤어져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루이제가 되돌아왔을 때는 로스모는 얼굴과 귀가 빨개져 있었다.
로스모는 이 기회에 루이제에게 오르센과 사이를 물어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다.
로스모는 헐떡이면서 말했다.
"나는 알고 싶어요. 당신과 오르센의 관계를....... 당신은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저녁 12시쯤 만나기로 했죠?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
루이제는 로스모의 손을 잡고 상냥하고 웃으면서 물었다.
"당신은 나를 믿고 있어요?"
"물론이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괴롭습니다."
로스모는 옆구리가 찢어지는 아픔을 참으면서 고통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했다. 빨갛던 얼굴이 이제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루이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당신은 굉장히 아픈 모양이어요. 부탁이어요. 그 사람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마셔요.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얘기해 드리죠."
그때 말을 탄 사나이가 지나가다가 갑자기 말을 되돌리어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로스모는 어디선가 본 일이 잇는 사나이라고 생각했다. 얼굴 색이 거무스름하고 수염이 난 사나이........
(그렇다! 루이제가 바다에 빠졌을 때 해안에서 만났던 사나이다.)
그 사나이는 급히 루이제의 손을 잡고는 호령했다.
"이제 겨우 찾았다. 결혼식 전날 딴 젊은이와 밀회하고 있는 신부를 본 일은 없어!"
루이제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면서 발끈 화를 냈으나 그 사나이는 루이제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빨리 돌아가거라. 나도 1시간 후에 간다."
로스모에게는 마지막 이야기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목에는 무엇이 걸린 것 같아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너는...... 정말로...... 나를 속이고 있었구나!"
그렇게 말하고 로스모는 갑자기 높은 절벽 위로 달려가더니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루이제는 비명을 지르고 스리다를 향해서 외쳤다.
"빨리......, 빨리......, 저 사람을 구해주셔요!"
그러나 스리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살하는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루이제는 바다로 뛰어들어가기 위해 해변가를 향해 달리EMB00000f9869ae기 시작했다. 스리다는 놀란 듯 말에 채찍질을 하여 뒤쫓아가서 루이제의 어깨를 잡아 말에 태우고는 시내를 향해서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자살하고 싶은 놈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좋은 거야. 루이제, 바보 같은 짓을 하지마!"
그러나 루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점 가까이에 다 왔을 무렵 스리다는 물었다.
"그 젊은 사나이는 누구냐?"
루이제는 스리다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 손, 놓으셔요!"
스리다는 기분이 나빴다.
"야, 아루바!"
스리다의 호령 소리를 듣고 아루바가 급히 밖으로 나왔다.
"자네 딸을 맡아라! 젊은 녀석을 뒤쫓아 바다에 뛰어들어가려고 하는 걸 구해주었다. 두 번씩이나 목숨을 구해주었는데도 조금도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이제 곧 결판을 짓고 말겠다. 나는 1시간 후에 올 것이니까 약속을 잊으면 안 된다!"
스리다는 큰 소리로 웃다가 말에 채찍질을 했다. 아루바와 루이제는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루이제는 힘없이 의자에 털썩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루바는 상점 문을 닫고 루이제의 주위를 왔다갔다하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루이제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로스모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사람은 바다에 뛰어들어가 죽고 말았을 거야. 불쌍하게도! 오르센을 만나고 또 스리다를 만났으니 완전히 오해하게 되었을 거야. 그런데 왜 스리다는 나를 신부라고 불렀을까? 이젠 모든 것이 끝장이야.)
루이제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로스모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금 수줍은 사람이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은 없지. 이제부터 어쩌면 좋을까? 로스모의 뒤를 따라 바다에 뛰어들어가서 죽어버릴까?)
아루바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루이제, 그렇게 되면 이 상점은 파산이다. 이 상점의 물건들은 모두가 스리다의 것이다. 만약에 네가 결혼을 거절하면 그 사나이는 이 물건들을 모두 가져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나가지? 조금이라도 이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생각해다오."
"그러니 스리다에게 시집을 가라는 말씀이죠? 싫어요!"
루이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바보 같은 것!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 스리다가 힘으로라도 너를 끌고 갈 거다!"
아루바는 문을 확 열고는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친구
 
일주일이 지나갔다. 오르센은 어선 위에서 바다를 살피고 있었다. 방금 수평선으로 올라온 태양이 항구의 바다 밑바닥까지 비추고 있었다. 바다 속 흰모래 바닥에는 몇 명의 인디오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숨쉬기 위해 가끔 물위로 떠올랐다가 또 밑으로 들어가곤 하는 것이었다.
오르센도 물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껴 옷을 벗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물이 차가워서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세 번째 들어갔을 때 바다 속에서 작업을 하던 인디오들이 상어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별안간 허겁지겁 물위로 떠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러나 하고 바다 속을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개구리와 인간의 중간쯤 생긴 괴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온 몸이 초록색의 비늘로 덮여 있었고, 눈이 툭 튀어나온 이상한 괴물이었다.
오르센이 떠오를 사이도 없이 그 괴물은 개구리 같은 손으로 오르센의 손을 잡고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다. 물 속이라서 아무 것도 들리지는 않았으나 오르센은 괴물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오르센은 급히 수면으로 떠오르며 괴물의 손을 뿌리치고 배 위로 기어올라갔다. 그러자 배에 타고 있던 인디오들은 바다로 재빨리 뛰어들어가 해안을 향해서 헤엄쳐 도망쳤다.
그런데 그 괴물이 뱃전을 잡고는,
"내 말을 들어다오. 오르센, 나는 루이제에 대해서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소."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오르센은 물 속에서 괴물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놀랐다. 그러나 안심도 되었다.
오르센은 용감한 청년이었다. 상대가 자기와 루이제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상 틀림없이 인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소."
오르센은 대답했다.
로스모는 배에 올라와 뱃전에 앉았다.
오르센은 상대의 둥그렇게 튀어나온 눈을 보고 생각했다.
(안경이겠지.)
"내 이름은 로스모라 하오. 전에 당신에게 바다 밑에서 진주 목걸이를 찾아 준 일이 있소."
"그러나 그때 당신은 인간다운 눈과 인간다운 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던데......?"
로스모는 빙긋이 웃으면서 개구리 같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것은 자유로이 벗었다 꼈다 하는 것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인디오들은 해안의 바위 위에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당신은 루이제를 좋아하죠?"
로스모가 물었다.
"그렇소."
오르센은 솔직히 대답했다.
로스모는 한숨을 쉬었다.
"루이제도 당신을 좋아하나요?"
"물론."
"그러나 루이제는 나를 좋아합니다."
"그건 루이제의 자유지요."
오르센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녀의 자유? 그러나 루이제는 당신의 약혼자가 아니오?"
오르센은 깜짝 놀랐으나 이내 침착해지면서 분명하게 대답했다.
"아니, 루이제는 나의 약혼자가 아닙니다."
"거짓말 마시오! 말을 탄 거무스름한 사나이가 그녀를 신부라고 불렀소."
"나의?"
로스모는 놀랐다.
수염이 난 사나이가 루이제를 오르센의 신부라고 말하지는 않았어도 루이제 같이 젊은 아가씨가 그렇게 나이가 많고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의 신부가 된다는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나이는 그녀의 친척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스모는 계속 물었다.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요? 진주를 캐고 있습니까?"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거요? 루이제에게서 당신 이야기를 조금 들었었기에 그대로 두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신을 바다에 처넣었을 것이오. 그렇소. 진주를 캐고 있소."
"내가 바다에 던졌던 진주를? 루이제가 당신에게 이야기해 주었죠?"
오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진주를 좋아하나요?"
"나는 여자가 아니니까 진주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소."
"그러나, 진주는...... 팔면 돈이 되잖소?"
오르센은 또 끄덕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돈을 좋아하겠군요."
"당신은 도대체 내게 무슨 요구를 하고 있는 거요?"
오르센은 화를 내면서 물었다.
"나는 루이제가 왜 당신에게 진주를 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소. 그리고 당신은 그녀와 결혼하려는 것이죠?"
"아니, 그런 마음은 없소. 만약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도 때는 이미 늦었소. 그녀는 딴 사나이와 결혼하고 말았소."
로스모는 새파랗게 질려 오르센의 손을 잡았다.
"그 수염을 기른 사나이와?"
EMB00000f9869af"그렇소. 그녀는 스리다와 결혼했소."
"뭐라고? 그녀는 날 사랑하고 있었을 텐데......."
로스모는 정말 놀랐다.
오르센은 로스모를 동정하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녀는 정말 당신을 사랑했었던 것 같소. 그러나 당신은 그 루이제가 보는 앞에서 바다로 뛰어들어가 버리지 않았소? 그래서 루이제는 당신이 자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소."
로스모는 깜짝 놀랐다. 자기가 물 속에서도 샅 수 있다는 것을 루이제에게 이야기한 일은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높은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것을 자살이라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르센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제 저녁, 나는 루이제를 만났습니다. 루이제는 당신의 자살을 무척 슬퍼하면서 '로스모가 자살한 것은 나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럼 그녀는 왜 그렇게 빨리 결혼하고 말았을까요? 그리고 그 아가씨의 생명을 구해 준 사람도 바로 납니다. 나는 물에 빠진 아가씨를 바닷가까지 끌어다놓고 누가 오는 것 같기에 바위틈에 숨었었소. 그런데, 그 스리다란 놈이 와서 자기가 구해줬다고 루이제에게 말하는 것이었소."
"루이제도 누가 자기를 살려 주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왜 당신은 그 사실은 말하지 않았나요?"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해서....... 그런데 왜 그런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소."
"당신이 아는 데까지 만이라도 좀 이야기해 줄 수 없겠소?"
"좋아요. 나는 단추 만드는 공장에서 조개를 사오는 일을 하고 있었소. 루이제의 아버지에게 부탁을 받아서 자주 조개를 갖다 주곤 하였었소.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되었으며 자주 항구와 해안을 산책하곤 했지요.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어떤 돈 많은 늙은이에게 졸리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것이 바로 스리다겠군요?"
"물론 그렇죠. 루이제의 아버지 아루바는 그 스리다에게 오래 전부터 도움을 받아 오고 있는 형편이라 그렇게 훌륭한 사람과의 결혼을 거절하면 안 된다고 열심히 루이제를 설득하고 있었소."
"나이도 많고 험상궂은 사람을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죠?"
"그거야 아루바 자신에게는 좋은 사윗감이니까요. 아루바는 스리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만약 루이제가 결혼을 거절하면 스리다는 아루바를 파산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루이제는 크게 고민하고 있었지요. 스리다는 결혼하자고 계속 졸라대고, 아버지에게는 꾸중만 듣게 되고......."
"왜 루이제는 스리다와의 결혼을 거절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당신은 젊고 힘도 좋지 않소? 왜 스리다를 해치우지 못했나요?"
오르센은 깜짝 놀랐다. 바보도 아닌데 왜 그런 엉뚱한 말을 하는지 오르센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가 않소. 법률이나 경찰이나 법원도 모두 스리다와 아루바의 편이니까요."
"그러면 루이제는 집을 나와버리면 될텐데."
"루이제도 집을 뛰쳐나올 생각을 했었지요. 그리고 나도 협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나는 전부터 미국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권했습니다."
"당신은 그녀와 결혼할 작정이었군요?"
"바보 같은 소리! 우리는 친구라고 말했잖소."
"그럼 당신들은 왜 여길 도망치지 못했지요?"
"여비에 쓸 돈이 없었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미국까지 가려면 상당한 돈이 든단 말이오. 그래서 루이제는 자기의 진주 목걸이를 팔기로 했었소. 그리고 준비도 다 되었는데......."
"잠깐, 그러면 그녀는 나를 버리고 갈 작정이었단 말이오?"
"이런 일들은 전부 당신과 만나기 전에 시작된 일이오. 당신과 안 후에는 그녀는 당신에게 그 이야기를 할 작정이었소."
"그래도 집을 뛰쳐나올 계획을 의논한 상대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잖소?"
"나는 1년 이상 그녀의 친구였으니까요."
"좋아요. 그 다음 얘기를 해 주시오."
오르센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여간 준비는 다 되었소. 그랬는데 당신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바다로 뛰어들어갔소. 그 다음날 아침 나는 공장에 가기 전에 아가씨의 집에 들렸지요. 배표를 샀기에 밤 10시까지 출발 준비를 하도록 그녀에게 전하기 위해서였소. 그녀의 상점에 가자 아루바가 나오더니 슬픈 얼굴로 '루이제가 없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날 내가 가기 한 시간쯤 전에 스리다가 멋있는 자동차를 타고 왔다는군요. 그렇게 멋있는 자동차가 상점 앞에 멈추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라서 아루바도 루이제도 상점에서 나와 그 자동차를 보러 나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스리다가 자동차의 문을 열고 나오더니 루이제에게 시장까지 태워다 줄 테니 타라고 하더라는군요. 스리다는 루이제가 매일 아침 시장에 가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도 루이제가 거절하자 '체면 차리는군. 그러면 내가 거들어 주지'라고 말하면서 루이제를 억지로 자동차에 떠밀어 넣고는 그대로 떠나 가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나는 화가 나서 아루바에게, '딸을 솔개가 병아리를 채가는 듯이 데리고 가는 데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라고 말했더니, '걱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지. 딴 사람 같으면 몰라도 스리다는 옛날부터 잘 알고 있으며 루이제와 결혼하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이다. 부자가 그리 흔하게 있는 것이 아니야. 부자와 결혼하면 사치스러운 생황을 할 수 있잖아. 스리다는 파라나 강 가까이에 큰 저택을 가지고 있다. 거기는 스리다의 어머니가 살고 있지. 틀림없이 스리다는 루이제를 거기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라고 말하더군요."
"당신은 왜 아루바를 두들겨 주지 않았소?"
로스모가 물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싸움만 계속해야 되는군요. 물론 나도 아루바를. 두들겨 주고 싶었지요. 그러나 그런 짓을 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나고 마는 것이오. 나는 아직 그녀를 구출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루이제를 만나러 갔습니다."
"스리다의 집에?"
"그렇소."
"당신은 왜 스리다를 죽이고 루이제를 구출해 오지 않았죠?"
"또 그런 소리를 하는군요! 당신은 그렇게 싸움을 좋아합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너무 심하잖소?"
로스모는 눈물이 핑 돌았다.
오르센은 로스모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하긴 그렇소. 그런 짓을 하는 놈은 해치우는 것이 좋긴 하죠.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간단한 것이 아니지요. 루이제도 이제와서는 스리다와 떨어질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왜요?"
"첫째로 당신이 자살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오.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과 같아요. 나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어요. 나는 이미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어요. 신부님이 나의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어 주고, 이 세상 만사는 하나님의 뜻대로이다, 하나님이 맺어준 일은 인간의 힘으로서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스리다와 같이 살아도 조금도 행복하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기 싫어서 스리다와 같이 살 수 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런 바보 같은 소릴....... 하나님이란 어린아이들에게나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것이다' 라고 나의 아버지는 늘 말하고 계십니다. 오르센, 당신은 루이제를 결국 설득시키지 못했군요?"
"어쩔 수 없었오. 루이제는 신앙심이 강합니다. 더구나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소. 스리다는 결혼식 후에 큰 소리로 웃으면서, '이제 한가지의 일은 끝났다. 사랑스러운 작은 새를 잡아 새장에 넣었으니까. 남은 것은 물고기를 잡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스리다는 루이제에게 바다의 악마를 잡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간다고 말하더군요. 바다의 악마란 바로 당신이 아니오? 당신은 물 속에 언제까지라도 있을 수 있고 더욱이 어부들을 놀라게 하고 있으니까."
로스모는 오르센에게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으려고 생각하다가 꾹 참고 물었다.
"왜 스리다는 바다의 악마를 잡으려고 할까요?"
"바다 속을 돌아다니면서 진주를 캐기 위해서죠. 당신이 바다의 악마라면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
"충고, 정말 고맙습니다."
로스모는 자기의 장난이 유명하게 되어서 신문과 잡지에 실려있는 것을 몰랐다.
"나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루이제를 만나고 싶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습니다. 파라나 시라고 했죠? 그 곳은 알고 있습니다. 파라나 강 어구에 있는 도시죠. 스리다의 저택은 어디 있습니까?"
오르센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로스모는 오르센의 손을 힘차게 쥐었다.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을 겉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좋은 친구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자, 그럼 나는 루이제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지금 곧?"
"1분도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로스로는 물에 뛰어들어가 해안을 향해서 헤엄쳐 나갔다. 오르센은 혀를 차며 헤엄쳐 가는 로스모를 바라보았다.
 
 
여 행
 
로스모는 재빨리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바닷가에 숨겨 놓은 양복과 구두를 싸서 허리띠에 묶어서 어깨에 걸쳐 매고 단도를 차고 수중 안경을 쓰고 물갈퀴를 끼고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파라나 강의 입구에는 기선과 어선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밑바닥에서 위를 쳐다보리 큰 딱정벌레가 물위를 헤엄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닻을 단 쇠줄이 물 속에 수풀 같이 서 있었다. 해저는 쇠 부스러기와 유리 조각과 먼지가 쌓여 있어서 강물은 더러웠다. 하구로 갈수록 빠른 흐름을 거슬러서 헤엄쳐야 했다.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로스모는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바로 그 군간 머리 위로 검은 것이 피나갔다. 파라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선이었다.
(잘 됐다!)
로스모는 기선 바닥에 툭 튀어난 곳을 꽉 붙잡았다. 기선은 삼각주 지대를 통과하고 파라나 강 안으로 들어갔다. 강은 상류에서 많은 진흙이 흘러 내려와서 흙탕물이었다.
로스모는 숨쉬기가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꾹 참고 뱃바닥을 꽉 잡고 있었다. 손에서 쥐가 났다. 거기에다 배도 무척 고팠다. 조금 쉬어가야 될 것 같았다. 로스모는 배에서 손을 떼고 내려가 진흙이 쌓인 강바닥으로 내려가 바닥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가자미 같은 것도 없으며 굴이나 조개는 전혀 없었다. 민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로스모는 하는 수 없이 그 고기를 잡아먹었다. 민물고기는 여물고 흙내가 났지만 워낙 배가 고팠으므로 그런 대로 먹었다.
잠은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강바닥의 큰 돌 틈바구니에 끼어서 잤다. 그러나 곧 깨었다. 로스모는 상류로 올라가는 기선을 기다려서 또다시 배에 매달려 가는 여행을 계속했다.
고생 끝에 파라나 시에 도착했다. 여행의 반이 끝난 셈이EMB00000f9869b0었다. 그러나 나머지 반이 로스모로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육지의 여행이었었다.
로스모는 소란스러운 항구에서 사람이 없는 강변까지 헤엄쳐 가서 사방을 돌아다보며 강변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수중 안경과 물갈퀴 등을 벗어 강변의 모래 속에 묻고 양복을 아침 햇볕에 말렸다. 형편없이 구겨진 양복을 입은 로스모는 꼭 불량배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런 데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로스모는 오르센이 가르쳐 준 대로 강의 오른쪽 길을 걸어갔다. 더워는 점점 심해져 갔다.
로스모는 목이 타고 정신이 흐릿해져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기운을 되찾기 위해서 로스모는 몇 번인가 물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겨우 오후 4시쯤 되어서 나이 많은 농부를 만났다. 노인은 로스모의 이야기를 듣고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저 밭 가운데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큰 연못이 있을 것이오. 연못에는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서 작은 언덕을 올라가면 스리다의 저택이 보이지요."
"얼마나 먼가요?"
"저녁때면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로스모는 밀밭 사잇길을 빠르게 걷기 시작하였다. 목이 타고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주위에는 물이 없었다.
(큰일이군. 빨리 연못에 도착해야지!)
로스모는 이렇게 생각했다.
배도 고팠다. 돌담 안에는 귤과 오렌지의 가지가 늘어져 있었다. 거기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바다 속과 달라서 무엇이든 주인이 있는 것이니 마음대로 따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저쪽에서 금색의 단추와 하얀 복장에 흰 모자를 쓰고 허리에 피스톨을 찬 뚱뚱한 사나이가 다가왔다.
"스리다 씨의 저택은 여기서 멉니까?"
뚱뚱한 사나이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로스모를 살펴보다가,
"무슨 볼일이 있나? 어디서 왔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라고 로스모가 입을 열자 그 뚱뚱한 사나이는 긴장하는 것 같았다.
"조금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로스모는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꺼내었다.
"두 손을 이리 내라."
하고 뚱뚱한 사나이가 말했다.
로스모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으나 별 생각 없이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뚱뚱한 사나이는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서 재빨리 로스모의 두 손이 채웠다.
"이젠 됐다. 자, 가자. 스리다의 저택으로 데리고 가주마!"
"왜 이런 것을 내 손에 채웁니까?"
로스모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잔소리 말고 따라와 ! "
뚱뚱한 사나이는 엄하게 명령했다.
로스모는 하는 수 없이 따라가기는 했으나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로스모는 어제 저녁 이 근처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과 경찰이 범인을 찾고 있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또 구겨진 양복을 입고 있어서 의심을 받고 있는 줄은 까마득히 몰랐다.
더욱이 로스모의 애매한 대답은 의심을 한층 더 받게 된 것이었다.
경찰관은 로스모를 파라나 시의 경찰서로 호송하기 위해 가까운 마을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로스모는 어떻게 하든지 도망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연못이 보였다. 연못에는 좁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로스모는 걸음을 빨리 하였다.
"천천히 걸어!"
경찰관이 호령을 했다.
두 사람은 다리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다리 중앙까지 오자 로스모는 갑자기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경찰관은 수갑을 찬 사람이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로스모는 뚱뚱한 경찰관이 자기 뒤를 쫓아서 연못으로 뛰어들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관의 입장에서는 애써 잡은 범인을 익사시킬 수는 없었다. 경찰관도 뒤따라 물에 뛰어들어 로스모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연못은 깊었다. 로스모는 그대로 경찰관을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경찰관은 곧 손을 놓았다. 로스모는 수 미터 앞으로 헤엄쳐 가서 물에서 머리를 내밀고 살펴보았다. 경찰관은 로스모의 머리를 보고 호령했다.
"이놈! 물에 빠져 죽는다! 이쪽으로 헤엄쳐 나오너라!"
그 순간 로스모의 머리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 살려! 빠져죽겠다.......!"
로스모는 그렇게 외치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 속에서 경찰관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경찰관은 한참동안 헤엄쳐 다니면서 로스모를 찾아 헤매다가 포기하고 연못가로 올라EMB00000f9869b1갔다.
(곧 되돌아가겠지.)
로스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관은 돌아가지 않고 동료들의 응원을 얻어서 익사한 범인을 찾아낼 작정이었다.
그때 다리 위로 한 농부가 지나가고 있었다. 경찰관은 그 농부를 부르더니 쪽지에 무엇을 적어 주면서 가까운 경찰서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로스모는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경찰관이 망을 보고 있기 때문에 로스모는 물위로 떠오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물 속에는 거머리가 있었다. 거머리가 손과 발에 달라붙었다. 로스모는 경찰관이 눈치 못 채게 물이 출렁거리지 않도록 조용히 거머리를 떼어내고 있었다. 30분쯤 지나서 세 명의 경찰관이 고무 보트와 쇠갈퀴를 가지고 왔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쇠갈퀴로 연못 바닥을 긁어 가며 익사한 사나이를 찾기 시작했다.
로스모는 그런 것은 조금도 두렵지가 않았다. 가끔 장소를 조금씩 옮기면 되었다. 경찰관들은 연못을 샅샅이 찾았으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관들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로스모는 유쾌했다. 그러나 곧 얼마 안 가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경찰관들이 밑바닥을 뒤집어 놓아 물이 온통 흙탕물로 변해서 로스모는 도저히 아가미로 호흡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할까? 떠오르면 경찰관에 붙잡히고 만다. 그러나 딴 방법은 없었다. 로스모는 비틀거리면서 물이 얕은 쪽으로 걸어가서 물위로 목을 불쑥 내밀었다.
"아 아 아 ! "
한 경찰관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보트에서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둑을 향해서 헤엄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맙소사!"
보트에 남아있던 경찰관은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로스모는 이렇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곧 이 스페인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경찰관들은 저승에서 망령이 온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로스모는 온통 진흙 투성이었다. 로스모는 좀더 놀라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드러내고, 크게 눈을 뜨면서 무서운 신음소리를 냈다. 물가에서 땅으로 기어올라가 일부러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경찰관들은 벌벌 떨면서 꿇어앉아 있을 뿐 누구 한 사람도 로스모를 뒤쫓으려고 하지 않았다.
 
 
바다의 악마다!
 
스리다의 모친은 돌로레스라고 부르는 아주 뚱뚱하고 성미가 몹시 고약한 할머니였다. 아들이 젊은 신부를 데리고 오자 할머니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우선 루이제의 아름다움이 할머니에게는 전혀 못마땅하였다.
"저런 신부를 얻으면 고생을 한다."
할머니는 아들과 둘이만 있게 되면 항상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이었다.
"아니, 잘 훈련시키면 괜찮아요."
스리다는 스리다대로 항상 같은 대답을 하며 자기 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달을 쳐다보면서 공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 저녁도 돌로레스 할머니는 뜰 벤치에 걸터앉아 모기를 쫓으면서 새로운 토지를 사서 저택을 넓히는 공상을 하고 있었다.
돌연 낮은 돌담 위에 사람의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곧이어 수갑에 채인 손이 나타나더니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뜰 안으로 뛰어내렸다.
(죄수가 도망쳐 들어오고 있다.)
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일어서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하였으나 몸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수갑을 찬 사나이는 살금살금 걸어서 창 밑 가까이 와서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루이제 ! "
하고 그 사나이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그랬구나 ! 며느리에게 저런 사나이가 붙어 있었구나!)
라고 돌로레스 할머니는 생각했다.
그 순간 할머니는 루이제에 대한 미움과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되자 힘이 솟아올랐다. 할머니는 일어서서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빨리! 죄수가 뜰에 몰래 들어와서 루이제를 부르고 있다!"
라고 할머니는 스리다에게 말했다. 스리다는 곧 방을 뛰쳐나와 입구에 있는 커다란 삽을 들고 살짝 집을 돌아갔다. 창 밑에는 진흙 투성이의 옷을 입고 수갑을 찬 사나이 가 서 있었다.
"요 녀석 혼 좀 나봐라!"
스리다는 삽을 높이 들었다가 사나이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죄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이 놈을 어떻게 할까?"
스리다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연못에 던져 넣으면 어떻겠니? 연못은 무척 깊으니까."
"떠오르지 않을까요?"
"돌을 달면 되지."
할머니는 집안으로 들어가 로프를 가지고 나왔다.
"돌을 수갑에 묶어서 달면 된다."
스리다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체의 발을 잡고 뜰 모퉁이에 있는 연못으로 끌고 갔다. 연못에서 스리다는 로프로 큰 돌을 묶고 그것을 시체 수갑에 달아서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
"피로 물이 빨갛게 물들텐데......"
할머니가 말했다.
"괜찮아요. 이 물은 흘러내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루이제를 혼 좀 내줘야겠군......."
스리다는 루이제가 있는 방의 창문을 흘겨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루이제는 이층 한가운데의 방을 쓰고 있었다. 그날밤 어쩐지 루이제는 잠이 오지 않았다. 무더웠고 모기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좋지 않은 생각만이 머리에 떠오르고 있었다. 로스모에 대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 스리다와 그의 모친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하면 이제까지의 생활이 지루하고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문득 루이제는 로스모의 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다. 뜰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이제는 더욱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창 밖이 환해지자 루이제는 일어나서 뜰로 나왔다. 아직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루이제는 무의식중에 발을 멈췄다. 정원의 모래에는 퍼가 묻어있었다. 곁에는 피묻은 삽이 팽개쳐 있었다.
(어제 저녁 여기서 싸움이라도 일어났던 모양이군.)
루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핏자국을 따라서 걸어갔다. 피가 연못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물 속에서 로스모의 얼굴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마의 살이 찢어지고 그 모습은 처참했다.
루이제는 눈을 휘둥그래 뜨고 물 속에 가라앉은 로스모의 얼굴을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내가 정신이 나간 것일까?)
라고 루이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루이제는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달아나려 하여도 로스모에게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로스모의 얼굴은 물이 천천히 출렁거리면서 물위로 나타났다. 그리고 수갑에 채어진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가냘픈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루이제! 이제 만나게 되었구나! 나는......."
루이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아니, 사라져라! 유령은 보기 싫다. 당신은 죽고 말았잖아요. 왜 이런 데서 나타나지요?"
"아니오. 루이제, 나는 죽은 것이 아니오. 이렇게 살아 있소. 거짓말이라고 생각되거든 이 손을 만져보구려."
로스모는 수갑 찬 두 손을 내밀었다. 루이제는 뒷걸음질을 하였다.
"무섭게 생각하지 마오. 나는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나는 딴 사람과 달라서 물 속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바다에 뛰어들었어도 죽지 않았던 것이오."
로스모는 비틀거리면서도 빠른 말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루이제, 나는 당신을 찾고 있었소. 어제 저녁 여기까지 왔다가 스리다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실신했는데 스리다는 나를 연못 속에 던져 넣었다오. 나는 연못 속에서 숨을 되쉬게 되었어요. 묶어놓은 손을 벗기려 해도 이것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소."
로스모는 수갑을 보였다.
루이제는 눈앞에 있는 것이 유령이 아니고 정말로 인간이라는 것을 믿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수갑에 채였어요?"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루이제, 나와 같이 달아납시다. 나의 아버지 집에 숨어있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이 삽시다. 루이제, 내 손을 만져봐요. 오르센이 나를 바다의 악마라고 말했지만 나는 인간이오. 루이제, 왜 나를 무서워하죠?"
EMB00000f9869b2로스모는 진흙과 돌이 달린 채 못에서 기어 나왔다. 그러나 지쳐서 비틀거리며 풀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루이제는 로스모에게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며 손을 꽉 잡았다.
"가련한 로스모!"
"그런 곳에서 밀회하다니......?"
돌연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뒤돌아보자 가까이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스리다는 루이제의 비명을 듣고 뜰로 나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엿들었다.
눈앞에 있는 놈이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 헤매었던 바다의 악마라는 것을 알게 된 스리다는 무척 기뻤다. 즉시 로스모를 붙잡아서 메두사 호로 데려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고쳐 딴 방법을 쓰기로 했다.
"야, 로스모, 너는 루이제를 카디스 박사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어. 루이제는 이제 내 마누라니까. 그리고 너도 아버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경찰이 너를 찾고 있으니까!"
"나는 아무 나쁜 짓을 한 일이 없소!"
로스모는 버럭 큰 소리를 쳤다.
"경찰은 죄 없는 인간에게 수갑을 채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붙잡아서 경찰에 넘겨야 하겠다."
"당신은 정말 그렇게 할 작정입니까?"
루이제가 스리다에게 말하였다.
"그럴 수밖에 도리가 없어."
거기에 돌로레스 할머니가 다가왔다.
"죄수를 도망치도록 하다니....... 그런 짓을 하면 또 다른 집에 들어가 딴 새댁을 훔쳐내지 않을까?"
루이제는 스리다의 손을 붙잡고 상냥스럽게 부탁을 했다.
"제발 부탁이어요. 저 사람을 풀어주십시오. 나는 당신에게 대해서 아무 나쁜 짓을 한 일이 없습니다."
돌로레스 할머니는 깜짝 놀라면서 고함을 쳤다.
"스리다, 이런 여자의 말은 듣지 마라!"
"아무래도 내게는 여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약점이 있는 모양이야. 그럼 그렇게 하지."
스리다는 기분 좋게 들어주었다.
"너는 벌써 공처가가 되고 말았구나!"
할머니는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어머니는 잠자코 계셔요. 좋다, 로스모! 너의 수갑은 줄로 끊어주마. 그리고 옷도 갈아 입혀 주고 메두사 호에 태워 주마. 너의 집 가까운 항구에 닿거든 바다에 뛰어들어가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기라. 단지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너는 루이제를 잊어야 한다. 그리고 루이제, 너도 같이 간다. 그런 것이 더 안심이 되겠지."
"당신은 생각 보단 좋은 사람이네요."
루이제는 감사하다는 듯이 말했다.
스리다는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띄었다.
돌로레스 할머니는 아들의 꿍꿍이속을 알고나 있는 듯이,
(자식, 또 무슨 음흉한 계획을 꾸미는 모양이군.)
하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전속력
 
그로부터 수일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아루바 상점에서는 와루코가 동생인 아루바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디스 박사는 내일 돌아온다. 내가 좀 일찍이 오려고 생각했으나 몸에 열이 있어서 이렇게 늦었다.
아루바, 정말 우리들은 스리다를 위해 할만큼은 다 한 것 같았다. 그놈은 우리들보다 훨씬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바다의 악마를 잡아오게 하여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 아니꼬운 수작이 아니고 뭐겠니? 난 바다의 악마를 스리다에게 꼭 넘겨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진주 같은 것을 캐지 않아도 좋다. 바다에는 보물을 실은 배가 많이 가라앉아 있다. 그런 배에서 보물을 꺼내오도록 하면 좋지. 그건 그렇고, 아루바 ! 로스모가 루이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나?"
아루바가 뭔가 말하려 하는 것을 와루코가 손으로 막고,
"잠자코 들어라.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야. 로스모는 정말 루이제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루이제도 로스모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가 보는 눈은 틀림이 없다. 둘은 자주 만나고있다. 어떠냐? 루이제의 신랑으로는 스리파보다도 로스모가 몇 배 더 훌륭하지 않을까?"
아루바는 한숨을 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 하나 옛날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미 20년 전의 일이지만 너의 아내가 친정에 가 있었지. 너의 부탁을 받고 친정으로 내가 데리러 갔었다. 그런데, 네 아내가 오는 도중 산중에서 아기를 낳다가 산모와 아기가 다같이 죽었다고....... 나는 그때 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너를 너무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한 가지만은 숨긴 것이 있었다. 그것을 지금 말해주마. 너의 아내는 도중에 죽었으나 그 아기는 살아있었다. 마침 그곳은 인디오의 마을이었다. 한 할머니가 나에게 그 근처에 있는 카디스 박사라는 하느님 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루바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할머니는 나에게 아기를 카디스 박사에게 데리고 가면 목숨을 건질 수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카디스 박사에게 아기를 데리고 갔었다. 박사는 아기를 받아서 진찰을 해보고, '이 애는 힘들겠다'고 말하더군. 나는 저녁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때에 흑인이 나에게, '갓난애는 죽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되돌아오고 말았다."
와루코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기는 사내애였다. 그 애의 어깨에 점이 있었다. 그 점의 형태를 나는 잘 알았다. 그런데 최근 나는 로스모의 어깨에 똑같이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루바는 눈을 휘둥그래 뜨면서 와루코를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로스모가 내 아들이라는 말씀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카디스 박사가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 네 아들은 절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카디스 박사는 그 애를 바다의 악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몹쓸 놈이로군! 좋다. 나는 이 손으로 박사를 죽이고 말겠다!"
"안 된다. 참아라! 그리고 이것은 내가 잘못 알았을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20년 전의 일이니까. 어깨의 점이라고 해서 딴 사람에게는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서둘면 안된다. 너는 카디스 박사에게 가서 '로스모는 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증인이 되어주지. 너는 박사에게 내 아들을 돌려다오.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병신으로 만든 것을 법원에 고발하겠다'라고 말해라. 박사로서는 그것을 제일 곤란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해도 로스모를 되돌려 주지 않거든 정말로 법원에 고발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되거든 로스모를 루이제와 결혼시키는 것이 좋다. 루이제는 너의 양녀이니까. 네가 아내와 아들의 죽음을 너무나 슬퍼하고 있기에 내가 데려다 준 딸이 아니냐?"
아루바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방안을 걷기 시작했다.
"내 아들? 내 아들! 아, 이젠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구나!"
"왜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는가?"
와루코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형님이 누워 계실 때 루이제를 스리다에게 시집 보냈습니다."
그 말에는 와루코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로스모도 스리다에게 붙잡혔습니다."
"뭐라고?"
"정말입니다. 아침에 스리다가 여기에 와서 큰 소리로 웃더니, '이제는 너희들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나 혼자 바다의 악마를 붙잡았단 말이다. 너희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못하겠다'라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아루바는 아주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와루코는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아루바를 쳐다보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이야말로 단호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동생 녀석은 일을 거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일을 그르치고 있으니.......)
사실 로스모가 아루바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은 꼭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틀림없이 그 아이에게는 어깨에 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으로서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와루코는 로스모의 어깨에 점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여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루바가 그 말을 듣고 그렇게 흥분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와루코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루바를 크게 놀라게 했다.
"언제까지나 슬퍼만 하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내일 이른 아침에 카디스 박사가 되돌아온다. 내일 날샐 무렵에 방파제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로스모를 구출해야 한다. 카디스 박사에게 로스모는 내 아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스리다는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북쪽으로 갔다고 생각됩니다. 스리다는 그전부터 파나마 해안에 가고 싶어하였으니까요."
와루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내일 아침 해안에서 만나자. 혹시 내가 좀 늦는다 해도 꼭 기다려야 한다."
와루코는 급히 되돌아갔다.
그날 밤 와루코는 한숨도 자지 않고 계획을 짰다. 카디스 박사는 이른 아침에 집에 도착했다. 와루코는 인사를 하고 슬픈 얼굴로 그럴 듯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박사님이 안 계실 동안에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로스모에게 항구에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는데도......."
"어떻게 되었나?"
"붙들려 가서 배에 태워 갔습니다. 나는......."
카디스 박사는 와루코의 어깨를 잡고 눈을 쳐다보았다. 와루코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됐다. 거기에 대한 것은 나중에 자세히 듣자."
그렇게 말하고 카디스 박사는 와루코의 어깨에서 손을 놓고는 흑인을 불러 무엇인가 명령하고 와루코에게 말했다.
"날 따라 와!"
카디스 박사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뜰로 향했다.
와루코는 그 뒤를 따라갔다. 세 번째 담 있는 곳에서 카디스 박사는 풀이 있는 곳까지 와서 풀 속의 해치를 밟았다. 풀의 물이 빠졌다.
두 명의 흑인이 따라왔다.
"따라 오라!"
하고 박사는 지하의 계단으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와루코와 두 흑인은 박사의 뒤를 따랐다. 지하 바닥까지 오더니 박사는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오른쪽 문을 열고 어두운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는 내리막길이었고 멀리 계속되어 있었다.
박사는 스위치를 넣어 불을 켰다. 거기에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는 큰 동굴이 있었고 돌 바닥 높이까지 물이 채워져 있었으며 물위에는 잠수함이 떠 있었다. 네 사람은 잠수함 속으로 들어갔다.
카디스 박사는 선실에 불을 켜고 한 흑인은 해치를 닫고 또 한 사람은 엔진을 가동시켰다. 잠수함은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스모를 붙잡아간 놈들은 어디로 갔는가?"
"해안을 따라 북으로 갔다고 합니다. 나는 도중에서 아우를 데리고 갈까 생각합니다. 이미 해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EMB00000f9869b3겁니다."
"왜?"
"동생이 그러는데 로스모를 잡아간 놈은 진주업자인 스리다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너는 그런 것을 알고 있는가?"
박사는 의심쩍게 물었다.
"내가 로스모를 붙잡아간 배 형태를 설명하니까 아우는 그것은 틀림없이 스리다의 메두사 호라고 말해 주더군요. 스리다는 로스모를 붙잡아가서 진주를 캐는데 쓰려고 할겁니다. 나의 아우는 진주조개가 있는 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생각에 잠겼다.
"좋다! 네 동생을 데리고 가자!"
아루바는 방파제 위에서 와루코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수함은 해안으로 향했다. 아루바는 카디스 박사를 보고서는 얼굴이 굳어지는 듯했으나 상냥하게 인사했다.
"전속력!"
박사는 명령했다.
박사는 브리지에 올라가서 바다 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포 로
 
스리다는 로스모의 수갑을 줄로 쓸어 끊어주고 새 양복을 입힌 다음 강가 모래 속에 몰래 감추어 둔 수중 안경을 가지고 오도록 하였다. 그런데 스리다는 로스모가 수중 안경을 가지고 갑판에 오르자마자 선원들을 시켜 로스모를 배의 창고에 가두어버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리다는 식량을 싣기 위해서 잠깐 정박했다.
스리다는 루이제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 가까운 항구에서 로스모를 석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은 곧 탄로 났다. 밤에 창고 쪽에서 고함 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루이제는 그 소리가 로스모의 소리라는 것을 곧 알았다.
스리다는 그때 갑판에 있었다.
루이제는 선실로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문에는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루이제는 주먹으로 문을 두들겼다.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스리다는 로스모의 고함 소리를 듣고 인디오 선원을 데리고 브리지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창고 안은 어두컴컴하고 무더웠다.
"왜 떠드는가?"
스리다가 난폭하게 물었다.
"나는....... 나는 숨쉬기가 곤란하다.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여기는 너무나 무덥다. 이대로 있으면 내일까지 넘길 수가 없겠다."
로스모가 죽는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스리다는 선원들에게 명령해서 로스모의 방에 물을 담은 통을 넣어주었다.
로스모는 곧 통 속으로 들어갔다. 선원들은 그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 죄수가 바다의 악마라는 것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통은 작아서 몸을 쭉 뻗을 수도 없었다. 단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통에서는 소금으로 절인 물고기 냄새가 났다. 그래도 무더운 창고 속보다는 나았다.
스리다는 항상 브리지에 있었으나 날샐 무렵 선장실로 되돌아갔다. 루이제가 이미 잠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루이제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스리다를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며 노려보았다.
"당신은 나를 속였어요!"
스리다는 우물쭈물하면서 일부러 기분 좋은 듯이 대답했다.
"로스모는 스스로 이 배에 남아있겠다고 했어. 언제까지든지 네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거짓말 마셔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싫어졌어요. 나는 당신을 미워해요."
루이제는 돌연 벽에 걸려 있는 단도를 빼들어 스리다에게 겨누었다.
"아니, 위험해!"
스리다는 재빨리 달려들어 루이제의 손을 비틀었다.
단도는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흥분하지 마! 물이라도 마시고 자라."
스리다는 단도를 주워들고 선실을 나왔다. 태양이 떠올랐다. 스리다는 여전히 갑판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곧 고집을 꺾어놓고야 말겠다."
스리다는 루이제의 일을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스리다는 선원들에게 닻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메두사 호는 닻을 내리고 정지했다.
"쇠사슬을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창고에 있는 사나이를 여기로 데리고 오너라!"
스리다는 로스모를 빨리 바다에 넣어서 진주를 캐도록 하고 싶었다.
로스모는 두 선원에게 부축되어 곧 모습을 나타냈다.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스모는 사방을 살펴보았다. 뱃전까지 몇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였다.
로스모는 돌연 선원의 손을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한 발자국 정도 남았다. 그러나 그 순간 스리다의 큰 주먹이 로스모의 머리를 후려쳤다.
로스모는 정신을 잃고 갑판에 쓰러졌다.
"당황하지마!"
스리다는 엄하게 말했다. 선원은 쇠사슬을 갖고 왔다. 가늘고 긴 튼튼한 사슬이었다.
스리다는 사슬 한쪽 끝을 로스모의 허리에 감았다.
"이놈 머리에 물을 퍼부어라."
로스모는 물세례를 받자 곧 정신을 되찾고 자기 몸에 감겨 있는 쇠사슬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이제는 달아날 수가 없다. 너를 바다에 넣어주마. 너는 진주조개를 찾는 거다. 많이 따 가지고 오면 오랫동안 물에 넣어줄 것이나 못 따오면 또 창고에 처넣을 것이다. 알겠나?"
로스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에 와서는 깨끗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며, 딴 일은 어떻게 되든 좋다는 기분이었다.
로스모는 사슬에 묶인 채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사슬을 끊고 싶었으나 빈손으로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로스모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주조개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바다 속은 무더운 창고와 달라 기분이 좋았다.
배 위에서는 선원들이 숨도 쉬지 않고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 로스모는 떠올라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수면에 거품이 떠오르다가 곧 그 거품도 사라졌다. 물이 맑아서 해저를 돌아다니고 있는 로스모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선원들은 이렇게 오래 물 속에 들어가 있는 인간을 본 일이 없었다.
로스모는 쇠사슬을 당겨서 신호를 했다. 올라온 로스모의 허리에 찬 큰 주머니에는 진주조개가 가득 들어 있었다.
진주조개는 수일간 태양 빛에 내놓아 조개가 썩고 나면 진주를 빼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선원들이나 스리다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곧 조개를 열어보았다. 놀라는 함성이 선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수확은 스리다의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형태가 좋고 빛깔도 아름다운 굵은 진주가 20개 이상이었다. 이것만해도 굉장한 재산이었다. 스리다는 선원들이 진주를 탐내는 눈치를 알아차리고 급히 그것을 자기 모자 속에 넣었다.
"자, 여러분! 식사하러 갑시다. 로스모, 정말 수고했다. 선실이 하나 비어있으니 오늘부터는 너를 거기에 있도록 해주마. 선실 쪽이 창고보다 시원하다. 거기에 금속제의 큰 탱크를 마련해주마. 아니, 그런 것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매일 바다 속에 들어갈 것이니까. 물론 쇠사슬을 단 채로."
로스모는 스리다와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가 욕심덩어리인 인간이라면 이쪽에서도 체면 차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거야 냄새나는 창고보다 탱크 쪽이 좋지요. 그러나 나를 병이 나지 않게 하려면 물을 30분마다 갈아주어야 할 겁니다."
"건방지게 굴지 마!"
"건방지게 구는 것이 아니오. 큰 물고기를 양동이 안에 넣어둔 채로 놓아두어 보시오. 물고기는 곧 죽고 말거요. 물고기는 물 속의 산소를 마시고 있으니까요. 나도 역시 물고기와 같단 말이오."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써서 계속 너의 탱크에 펌프로 물을 퍼 올리게 하자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파산하고 말 거다. 네가 캐오는 진주 정도로서는 아무래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로스모는 진주의 가격이 대단히 비싼 것과 스리다가 어부들에게 지불하고 있는 급료가 싼 것을 모르기 때문에 스리다의 이야기를 신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붙들어 가지고 수지가 맞지 않으면 나를 놓아보내 주십시오!"
로스모는 바다를 살펴보았다.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스리다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해주시오. 그렇게 해주면 나는 당신에게 진주를 갖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전부터 산더미같이 진주를 모아 놓았습니다. 나를 놓아주신다면 그 대신으로 진주를 다 드리겠습니다."
스리다의 안색이 변해졌다.
"거짓말 마라!"
로스모는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진주는 어디에 있는가?"
"해저의 동굴에 있습니다. 그 장소는 물론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이놈이 말하는 것이 정말이라면 나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큰 부자가 되겠구나.)
라고 스리다는 생각했다. 그러나 스리다는 딴 사람의 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로스모의 보물을 어떻게 하면 쉽게 빼앗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 루이제를 이용하자. 루이제의 부탁이라고 하면 그놈은 진주를 틀림없이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곧 너를 석방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주마."
로스모는 다시 뱃바닥의 창고에 갇히었다. 금속제의 탱크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리다는 기분 좋게 선장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진주가 가득 들어있는 모자를 루이제에게 보였다.
"나는 너에게 훌륭한 진주를 선물할 약속을 한 일이 있었는데 로스모의 덕분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봐라, 한번에 이렇게 많은 진주를 얻었다."
루이제는 힐끔 진주를 쳐다보고 무의식중에 비명을 지를 뻔하다가 겨우 참았다. 스리다는 그것을 눈치채고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제일 가는, 아니 아메리카 대륙에서 제일 가는 큰 부자가 된다. 당신에게 궁전 같은 집을 지어주겠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사주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로 이 진주를 반쯤 당신에게 주지."
"불법으로 손에 넣은 것은 필요 없어요. 나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마셔요."
루이제는 쌀쌀하게 말했다.
스리다는 당황했다.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은 로스모를 석방시키고 싶지 않소?"
그러나 루이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스리다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신은 어떻게 할 작정이지요?"
하고 차갑게 물었다.
"로스모의 운명은 네 손에 달려있다. 로스모는 바다 어딘가에 많은 진주를 감추어 두었다. 네가 로스모에게 말해서 그 진주를 메두사 호까지 가져오도록 하여다오. 그렇게만 해주면 즉시로 로스모를 자유롭게 해주겠다."
"천만에요. 당신은 진주를 손에 넣고 나면 로스모를 또 쇠사슬에 묶어둘 것이 틀림없어요. 이제 다신 당신의 그런 나쁜 계략에 걸려들지 않을 겁니다."
스리다는 선장실에서 나와 자기 선실로 들어가 가방에 진주를 정리해서 자물쇠를 채우고 천천히 갑판으로 올라갔다.
스리다는 루이제와의 언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큰 부자가 되고 난 뒤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스리다는 갑판으로 올라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항상 눈치 빠른 스리다도 선원들이 모여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버려진 메두사호
 
스리다는 갑판에 서 있었다. 기관사의 지시로 5,6명의 선원이 스리다에게 달려들었다. 이들은 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사람의 수효가 많았다. 그러나 스리다를 때려눕히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스리다는 있는 힘을 다해 선원들의 손을 뿌리치고 마스트 있는 쪽으로 달아났다.
스리다는 항상 권총을 차고 있었으나 공격이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그것을 뺄 정신이 없었다. 스리다는 천천히 뒷걸음질치다가 날쌔게 마스트로 기어올라갔다. 한 선원이 발을 붙들었다.
스리다는 자유로운 한 발로 그 선원의 머리를 차고 더 높EMB00000f9869b4이 기어올라가 허리에 찬 권총을 빼들었다.
"가까이 오는 놈은 사정없이 쏘겠다!"
선원들은 뒷걸음질을 쳤다.
"선장실에 무기가 있다. 문을 부숴 버리고 가져오라."
기관사가 외쳤다. 몇 사람의 선원들이 해치를 향해서 달렸다.
(실패다!)
라고 스리다는 생각하고 바다 쪽을 내려다보았다.
스리다는 자기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잠수함이 물을 헤쳐가며 메두사호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 살려! 빨리, 도와주시오!"
스리다는 큰 소리로 외쳤다.
무기를 손에 들고 해치에서 달려온 선원들은 그 소리를 듣고 무의식중에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잠수함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스리다를 죽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리다는 기뻐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았다.
잠수함의 브리지에는 아루바와 와루코가 서 있었다. 그 곁에 또 한 사람, 아주 날카로운 눈매를 한 키가 큰 사나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스리다! 로스모를 즉시 보내라! 5분 동안의 여유를 주마. 말을 안 들으면 배를 침몰시키겠다!"
(이놈의 자식, 배반했구나!)
스리다는 와루코와 아루바를 원망 섞인 눈으로 노려보면서,
(그러나 로스모는 죽어도 되돌려 보내지 못하겠다.)
하고 생각했다.
"지금 곧 로스모를 데리고 오겠소."
스리다는 마스트에서 내려오면서 대답했다.
선원들은 빨리 달아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급히 보트를 내리거나 또는 바다에 뛰어들어가서 해안을 향해서 헤엄쳐 갔다.
모두 선장인 스리다를 구조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스리다는 자기 선실로 달려 들어가서 진주가 들어 있는 큰 가방을 열어 진주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혁대와 수건을 손에 쥐고 그대로 층계를 달려왔다. 루이제가 있는 방의 자물쇠를 열고 루이제를 끌어안고 갑판으로 뛰어올라왔다.
"로스모는 병이 나서 선실에 드러누워 있습니다. 빨리 데려 가시오."
스리다는 그렇게 외치고 나서는 루이제를 끌어안은 채 뱃전으로 달려가 구명 보트를 내려 루이제를 태우고 자기도 그 안으로 뛰어내렸다.
루이제는 잠수함 위에 자기 아버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 로스모를 살려 주셔요 ! 로스모가 있는 곳은......."
그러나 루이제는 끝까지 말할 수가 없었다. 스리다가 루이제의 입에 수건을 쑤셔 넣고 두 손을 혁대로 묶었다. 그것을 본 카디스 박사는 호령을 했다.
"그 여자에게서 손을 떼라!"
"이 여자는 내 아내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을 필요가 없다."
스리다는 오히려 호통을 치면서 보트를 젓기 시작했다.
"섰거라! 그렇지 않으면 쏘겠다!"
그러나 스리다는 여전히 배를 젓고 있었다. 카디스 박사는 피스톨을 쏘았다. 탄환은 보트에 맞았다. 스리다는 루이제를 끌어안고 총알받이로 썼다.
"몹쓸 놈 같으니!"
카디스 박사는 중얼거리면서 권총을 내렸다.
아루바는 잠수함의 갑판에서 바다로 뛰어들어가 구명 보트를 뒤따라 헤엄쳤다. 스리다는 이미 해안에 거의 다다랐다. 스리다는 해안으로 뛰어 내리자 루이제를 끌어안고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스리다를 따라가도 소용이 없다고 느낀 아루바는 메두사호 쪽으로 헤엄쳐 갔다. 갑판 위로 올라간 아루바는 배 안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로스모는 없습니다!"
아루바는 카디스 박사에게 외쳤다.
"그러나 로스모는 어딘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입니다. 스리다 놈이 루이제의 입을 막지 않았더라면 거처를 알 수 있었을텐데......."
와루코는 분한 듯이 말했다.
와루코가 해면을 살피고 있을 동안에 물 속에서 마스트 끝이 튀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침몰된 배 같았다.
"아마 스리다는 로스모에게 침몰선의 보물을 찾도록 시킨 것이 아닐까요?"
와루코가 말했다.
아루바는 갑판에 떨어져 있는 쇠사슬을 주워 올려 보았다.
"스리다는 이 쇠사슬로 묶어서 로스모를 바닷속으로 들여보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로스모는 도망치고 말 것이니까. 아니, 침몰선 안에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스리다를 쫓았으나 로스모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실망해서 한숨을 쉬었다.
 
 
침몰선
 
카디스 박사와 아루바 일행은 그날 아침 메두사 호에서 일어난 사건을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선원들은 밤새도록 비밀히 의논을 계속한 결과 기회를 보아서 스리다를 죽이고 로스모와 메두사 호를 뺏기로 결정했다. 스리다는 망원경으로 해면을 살피고 있었다. 배의 마스트 같은 것이 수면에 튀어나와 있었다. 그 가까이에 구명 용구가 떠 있었다.
보트를 타고 가 조사해보니 그 구명 용구에는 '마파르트 호'라고 적혀 있었다.
(마파르트 호가 침몰된 곳이로군.)
라고 스리다는 생각한다. 그 배는 큰 여객선이었다.
(이런 배는 비싼 보물들을 많이 싣고 있을 것이다. 로스모에게 찾아오도록 시킬까? 그러나 쇠사슬이 모자란다. 쇠사슬로 묶어 두어야 로스모는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물건이 욕심이 난다고 해서 로스모를 도망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스리다는 어떻게 할까 하고 한참 생각했다. 메두사 호는 수면까지 튀어나온 마스트 끝까지 가서 정지시켰다. 마파르트 호는 S.O.S(에스 오우 에스; 무선 전신에 의한 조난 신호)를 칠 사이도 없이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무전기가 고장이 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금쯤은 항구에서 많은 구조정이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로스모를 쇠사슬에서 풀어놓고 물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나 로스모를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놓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리다는 야비한 웃음을 머금고 자기 방으로 가서 종이 쪽지에 뭔가 써서 로스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로스모, 너는 글자를 읽을 줄 알겠지? 루이제가 이것을 너에게 전해주라고 하더라."
로스모는 편지를 받아서 읽어라.
"로스모! 저의 부탁을 들어주셔요. 메두사 호 가까이에 배가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 배 안으로 들어가서 금은과 보석을 훔쳐 가지고 오셔요. 스리다는 그 대가로 당신을 묶어놓은 사슬을 풀어줄 것입니다. 당신은 메두사 호로 틀림없이 돌아와야 해요. 그것은 저를 위해서 부탁합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당신은 곧 자유로운 몸이 됩니다. 루이제로부터."
로스모는 지금까지 루이제로부터 편지를 받은 일이 없어서 글씨체를 알 수가 없었다. 로스모는 단지 루이제에게서 편지를 받았다는 것만이 기뻤다. 그러나 곧 이것은 스리다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제는 왜 이 편지를 직접 가지고 오지 않지요?"
로스모는 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루이제는 지금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네가 다시 돌아오면 너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더군."
"왜 루이제는 보석을 갖고 싶어하는 건가요?"
로스모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듯 갸우뚱했다.
"여자는 누구든지 아름다운 옷과 보석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군? 그 때문에 돈이 필요한 거야. 여객선에는 금화를 많이 싣고 있다. 그런데 가라앉아 버리면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너는 그것을 주워 모아서 루이제에게 주면 된다. 더욱이 배 안에서 죽은 승객이 금제품과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듣고 로스모는 화를 벌컥 냈다.
"나는 죽은 사람의 물건을 뺏는 것은 죽어도 싫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루이제는 욕심이 없는 사람인데 그것을 나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다."
(이놈의 자식! 잘 설득시키지 않으면 걸려들지 않겠는데.)
라고 스리다는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졌다. 너를 속이는 것은 정말 어렵군. 이렇게 된 바에야 내 진심을 말하마. 마파르트 호의 금화를 탐내는 것은 루이제가 아니고 바로 나다. 이렇게 진심을 말하면 너는 내가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있겠지?"
로스모는 갑자기 웃었다.
"물론이지!"
"그럼 좋다. 하여간 나는 금화와 보석이 탐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마파르트 호에 있는 가치 있는 물건을 모두 갖다준다면 너를 놓아주겠다. 그런데 너는 나를 믿고 있지 않다. 만약 쇠사슬을 풀어서 너를 바다 속으로 보낸다면 너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걱정이다."
"난 돌아온다고 하면 꼭 돌아온다."
"말로서는 신용할 수가 없다. 너는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도 조금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너는 루이제를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루이제가 말하는 것은 듣겠지. 그렇겠지? 그래서 나는 루이제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물론 네가 자유로이 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 것이다. 그럼 알겠지?"
로스모에게는 스리다가 말하는 것 모두가 그럴 듯 하다고 생각되었다. 로스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리다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마파르트 호의 금화를 가져오도록 하고 다음에 진주를 가져오도록 하면 두 가지 다 내 것이 된다.)
그러나 로스모로서는 스리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로스모는 갑판으로 나와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선원들은 로스모가 쇠사슬을 풀고 바다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곧 스리다가 침몰된 마파르트 호에서 금화를 끌어올리려는 흉계를 알았다. 스리다에게 막대한 재산을 독차지시킬 수는 없었다. 꾸물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선원들은 스리다에게 달려들었다.
메두사 호 갑판에서 선원들이 스리다를 쫓고 있을 동안에 로스모는 침몰된 배를 조사하고 있었다. 해치로 기어 들어가서 넓은 복도로 나왔다.
사치스러운 객실이 여러 개 연달아 있었다. 그러나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틀림없이 구명 보트를 타고 침몰되기 직전에 배를 떠난 모양이군.)
라고 로스모는 생각하고 아래층 객실도 기어 들어갔다. 그곳은 삼등 선실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은 방마다 사람들의 시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어딜 가나 시체들뿐이었다.
로스모는 소름이 쪽쪽 끼쳤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나빠졌다.
(침몰된 배속을 뒤진다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루이제는 생각이나 했을까? 혹시 또 스리다에게 속고 있는 건 아닐까? 좋다. 루이제를 직접 만나서 물어보기로 하자.)
로스모는 물고기와 같이 침몰선에서 살짝 빠져 나와 메두사 호로 다가갔다.
"스리다! 루이제!"
로스모는 힘껏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을까? 스리다가 또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닐까?)
로스모는 조심스럽게 구명 보트를 붙잡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루이제!"
"여기다!"
해안 쪽에서 스리다의 소리가 들려왔다. 숲 속에서 스리다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루이제가 아프다! 빨리 이곳으로 와라!"
(뭐라고? 루이제가 아프다고......?)
로스모는 곧바로 뛰어들어가 해안으로 헤엄쳐갔다. 막 땅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순간 루이제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스리다가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어요! 로스모 빨리 달아나셔요."
로스모는 재빨리 방향을 바꿔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느 정도 헤엄쳐 간 다음 뒤돌아보았다. 해안에서는 흰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루이제, 고맙다. 이제 우린 언제 또다시 만나게 될까?)
로스모는 깊은 바다 쪽으로 헤엄쳐 갔다. 먼 쪽에는 흰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작은 배가 보였다.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로스모는 해저로 내려갔다.
 
 
갑작스런 아버지
 
잠수함에서 되돌아온 아루바는 무척 실망했다.
로스모를 찾지 못했고, 스리다는 루이제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루바는 상점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루바, 로스모가 돌아왔다."
와루코의 소리가 들려왔다.
"뭐요?"
아루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로스모가 돌아왔다. 내가 말한 대로 로스모는 그때 침몰선 안에 있었다고 한다. 우리들이 돌아온 뒤에 로스모가 돌아왔다."
"나는 지금 카디스 박사에게 쫓아가서 아들을 돌려달라고 하겠소."
"절대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쉽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카디스 박사와 끝까지 싸우겠다. 지금 곧 갑시다."
와루코는 깜짝 놀라면서 손을 저었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원래 카디스 박사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번 일로 더욱 심해져서 아무도 만나려고 하질 않아. 나도 만나보기 힘들다."
"좋아요. 그럼 카디스 박사에게는 내일 가기로 하고, 난 지금 항구로 나가보겠소. 자식놈의 모습을 보게 될는지도 모르니까."
아루바는 해변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밤새도록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눈에는 달빛이 비쳐 아른아른 거리는 흰 파도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순간 먼바다 위에 검은 점 같은 것이 움직였다.
아루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건 틀림없이 사람이다. 그런데 저렇게 바다 멀리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은 로스모 밖에 없다. 그렇다! 틀림없이 로스모다.)
아루바의 생각은 틀림없었다. 요즘 로스모는 새벽이나 저녁때에만 바다에 나오고 있었다.
"야, 로스모!"
아루바는 손을 흔들고 고함을 치고는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로스모의 모습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렸다. 아루바는 별 수 없이 바닷가로 나와 다시 바위 위에 걸터앉아 로스모가 보였던 곳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루바는 카디스 박사의 집 문 앞에서 철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흑인이 철문 위의 조그만 창을 열고 물어보았다.
"박사님께 전해드릴 게 있습니다."
"박사님은 아무도 만나지 않습니다."
흑인은 그렇게 대답하고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래도 아루바는 계속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담 저쪽에서는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카디스 박사, 어디 두고보자!)
아루바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랴부랴 시내로 들어가 법원 근처에 있는 살롱으로 들어갔다.
그 살롱은 법원에 일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만나거나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따라서 그 살롱에는 법원의 여러 가지 수속과 절차를 잘 아는 사법 서사나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다. 아루바는 그곳에 가면 고소장을 써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카레나 씨, 오셨소?"
아루바는 입구에서 보이에게 물었다.
"예, 오셨습니다."
카레나라는 사람은 돈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교활한 변호사인데 아루바와는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뚱뚱하고 대머리인 카레나는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가 아루바를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했다.
"자, 앉게. 어쩐 일인가?"
"카레나 씨, 큰일났소. 정말 큰 문제입니다."
"무슨 일인데......?"
"바다의 악마를 아십니까?"
"만난 일은 없지만 그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그 바다의 악마라고 불리는 인간이 바로 나의 아들인 로스모입니다."
"시원찮은 소리! 자네 혹시 술이라도 취한 게 아닌가?"
"그런 소리 마십쇼. 나는 어제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럼 더욱 큰일이군."
"머리가 돌았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돌지 않았습니다. 자, 잘 들어보셔요."
아루바는 그 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카레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나중에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탁 치면서 말했다.
"그거 썩 잘됐군! 충분히 돈벌이가 되겠다. 그러나 자네가 로스모의 아버지라는 증거가 조금 희박하지만......."
"의심하고 계십니까?"
아루바는 화를 내면서 카레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렇게 화내지 마. 난 단지 법률가로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하여튼 이 일은 큰 돈벌이가 되겠다."
"나는 아들이 필요하지, 돈 같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돈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이네. 너도 아들이 생기면 EMB00000f9869b5더욱 필요하게 된다. 이번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카디스 박사가 하고 있는 실험과 수술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 약점을 이용하면 된다.""나는 아들이 필요하오. 카레나 씨,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만들어 주시오."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 것은 최후수단으로 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처음에는 카디스 박사에게 정중한 편지를 보내는 것이지. '우리들은 당신의 실험과 수술이 불법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에 알릴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원하지 않는다면 십만 달러를 보내시오'라고 써 보내는 거다."
카레나는 아루바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루바는 불쾌한 표정을 한 채 잠자코 있었다.
"둘째로 그 돈을 받은 다음, 카디스 박사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내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다. '로스모의 진짜 아버지가 나타났다. 우리들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아들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법원에 고소해서 당신은 로스모를 병신으로 만들었다고 폭로하겠다. 당신이 고소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로스모를 당신 곁에 두고 싶거든 우리들이 지정한 장소에 백만 달러를 가지고 오시오.' 그러면 자네는 백만 달러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카레나는 더 이상 얘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아루바가 주먹을 쥐고 무섭게 찡그린 얼굴로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레나는 그렇게 화를 내고 있는 아루바를 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돈만 벌 것이 아니야. 아루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
"좋소, 계속 말해 보시오."
"카디스 박사는 백만 달러를 지불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받아두었다가 로스모에게 주면 되잖아. 물론 나도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니 당연히 배당을 좀 받아도 괜찮겠지. 카디스 박사가 백만 달러를 지불하면......."
"법원에 곧 고소해야겠소."
"아니 조금만 더 들어봐. 이번에는 신문사와 잡지사에 '카디스 박사의 무서운 범죄'라는 기사를 파는 거다. 그것이 끝나거든 너는 법원에 고소해서 아들을 되찾으면 되잖아."
카레나는 이야기를 끝내고 단숨에 포도주 한잔을 비워버렸다.
"어떠냐?"
"나는 한숨도 자지 않고 로스모의 일을 생각했는데 당신은 재판을 미룰 생각만 하고 있군."
"그래도 그것은 백만 달러 때문이다. 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이 손에 들어오는 거다. 알겠나? 너는 20년 동안이나 로스모 없이도 잘 살아왔잖아."
"그러나 지금은 틀려요. 어쨌든 법원에 제출할 서류나 만들어 주시오."
"아루바 정신차려! 큰 부자가 되는 거다. 자동차든 배든 무엇이나 살 수 있단 말이다."
"하여간 서류나 꾸며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딴 변호사에게 부탁하겠소."
아루바는 딱 잘라 말했다.
카레나는 더 이상 아루바에게 이야기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어 쓰기 시작했다.
아루바의 아들을 마음대로 빼앗아 병신으로 만든 카디스 박사를 법원에 고소할 서류가 다 되었다.
"한번 다시 생각해보지 않겠나?"
카레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루바는 고개를 힘있게 저었다.
"그럼 이것을 검사에게 제출하게."
카레나는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검사실에서 나오다가, 아루바는 스리다를 우연히 만났다.
"장인 어른, 어째서 이런 델 왔소? 나를 고소하러 온 것은 아니겠죠?"
스리다는 의심쩍게 아루바를 쳐다보았다.
"사실은 몽땅 고소하고 싶다. 내 딸을 어디다 감추어 두었나?"
"당신이 어떻게 내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소? 당신이 루이제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나는 당신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오."
스리다는 아루바를 떠밀어버리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까다로운 사건
 
검사실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에서 가장 큰 교회의 가루소라는 신부였다.
키는 그리 크지 않으나 살이 찌고 수염을 기른 검사는 당황하게 일어서서 정중하게 신부를 맞아들여 의자를 권했다. 가루소 신부는 야위었으며 코가 조금 뾰족하였다. 여기에서는 교회가 가장 권위 있는 곳이라서 모두 신부를 겁내고 있었다. 신부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용건을 말했다.
"나는 카디스 박사의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가 알고 싶소."
"아, 그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계십니까?"
검사는 곧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싹싹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스리다가 밀고해 주었기에 우리들은 카디스 박사의 집을 수색했습니다. 스리다는 카디스 박사가 아주 좋지 않은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말 그대로였습니다. 카디스 박사의 연구소는 병신 동물을 만들어내는 공장 같아서 정말 놀랐습니다. 카디스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가택 수색의 일이라면 신문을 보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카디스를 어떻게 할 작정인가 하는 것이오. 카디스는 이미 체포했겠죠?"
"물론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범죄의 증거로서 로스모라는 청년도 잡아놓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은 그 청년이 세상을 놀라게 한 바다의 악마였으니까요. 우리들은 지금 대학 교수에게 감정인으로서 박사의 뜰에 있는 괴물을 조사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동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이곳으로 운반해 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로스모는 교도소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있습니다. 그 청년은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그 청년의 신체를 양서 인간으로 변경시켜 버린 모양입니다. 과학자들은 언젠가 이 문제를 똑똑하게 밝혀줄 겁니다."
"나는 그런 문제보다도 카디스 박사의 지금부터의 운명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오. 어떻게 될 것 같소?"
"카디스 박사의 사건은 법률상으로 보면 참 까다로운 사건입니다. 어떤 죄가 되는지 아직은 똑똑히 모르겠습니다마는 불법적으로 동물을 해부해 온 것과 로스모를 병신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죄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는 얼굴을 찌푸렸다.
"카디스 박사의 죄는 단지 그것뿐인가요?"
"또 있습니다. 아루바라고 하는 인디오가 로스모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감정인이 아루바와 로스모 사이에 혈통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면 아루바를 증인으로 쓸 것입니다."
"그렇다면 카디스 박사의 죄라는 것은 기껏해야 의사의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과 아버지의 허가 없이 남의 아들을 수술했다는 것뿐이군요?"
"거기에 아이를 병신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추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까다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잘못하면 정신이상자로 처리되고 말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에게 이런 싱거운 이야기만 듣게 될 줄은 몰랐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검사는 깜짝 놀라면서 가루소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교회의 재판은 신의 재판입니다. 신에 순종하고 있는 우리들은 카디스 박사의 행위를 당신들과는 달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드리겠소."
EMB00000f9869b6"부탁합니다."
검사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성서에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습에 닮게 인간을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오. 그런데 카디스 박사는 하나님이 만든 인간을 불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손을 대어서 양서 인간 같은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행위이며 하나님에 대한 범죄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모두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그 동물의 몸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는 것을 허락해도 좋겠습니까? 이것도 역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카디스 박사는 엄한 벌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하는 말을 검사는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본 신부는 의기양양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카디스 박사는 물론 로스모에게도 마음이 걸립니다. 로스모는 카디스 박사의 희생자인데 그러한 인간이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상 아무래도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만들어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산다면 양서 인간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카디스 박사와 로스모를 엄하게 처벌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인간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잘 알았습니다. 신부님의 덕택에 카디스 박사의 범죄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박사와 로스모에게 무거운 벌을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재적인 미치광이
 
카디스 박사는 원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교도소 안에서도 논문을 쓰고 교도소의 의무실에 가서 환자들의 수술도 해주었다. 수술을 받은 사람 중에는 교도소 소장의 부인도 있었다. 그 부인의 병은 위암이었기 때문에 딴 의사들은 손도 대지 못한 채 수술을 포기한 것을 카디스 박사의 수술을 받고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드디어 재판 날이 다가왔다. 넓은 법정 안은 이 재판을 방청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카디스 박사는 피고석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그 태도가 너무나 당당해서 피고가 아니라 재판장 같이 보였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카디스 박사에게 모였다.
사람들은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바다의 악마인 로스모가 끝내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로스모는 교도소 지하실에 갇힌 이후 건강이 나빠져서 물탱크 속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바다에 대한 생각만으로 꽉 차 있을 뿐이었다.
로스모의 재판은 카디스 박사의 재판이 끝난 다음에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감정인으로 위촉된 세 사람의 과학자가 그 동안 감정한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자는 베이도스 교수였다.
"법원의 위임에 의하여 우리들은 카디스 박사의 연구소에 가서 박사가 수술한 동물과 로스모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설비가 잘 되어 있는 실험실과 수술실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기 메스(수술하는 칼)와 자외선 등 최근의 외과 기술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기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카디스 박사 자신이 발명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박사의 동물 실험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이 실험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동물의 기관과 조직을 이식하기도 하고 두 마리의 동물을 합쳐놓기도 하고 수놈을 암놈으로 만드는 등,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실험이었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정말 천재적인 과학자이며 동시에 뛰어난 외과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뜰에는 생후 4~5개월에서 14세 정도의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인디오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떠한 상태인가요?"
검사가 말했다.
"모두가 건강하고 힘차게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거의 전부가 카디스 박사가 죽음에서 구해준 아이들입니다. 인디오들은 박사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아메리카 대륙 여러 지방에서 중병에 걸린 아이들이 박사에게 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병이 낫는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방청석에서 누군가가 한숨을 쉬었다.
검사는 걱정이 되었다. 가루소 신부의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부터는 카디스 박사에게 될 수 있는 한 무거운 죄를 씌우려 했는데 감정인이 박사를 칭찬하고 있으므로 침착하게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베이도스 교수, 박사의 수술은 사회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백발의 재판장은 감정인이 '예'라고 대답할 것 같아서 급히 말을 꺼냈다.
"재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감정인의 개인적 의견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로스모라는 청년을 조사한 결과를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EMB00000f9869b7베이도스 교수는 보고를 계속했다.
"로스모의 신체는 인공적 피부로 덮여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여물고 탄력 있는 물질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물질인지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또 물 속에서는 특수한 유리로 수중 안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수중 안경을 사용하면 물 속의 물건들이 똑똑하게 보입니다. 그의 인공적 피부를 벗겨 보니 좌우 어깨마디뼈 밑에 직경 10센티미터 정도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은 상어의 아가미처럼 생겼습니다."
방청석은 웅성거렸다.
"그렇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로스모는 인간의 폐와 상어의 아가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로스모는 땅 위에서는 물론 물 속에서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양서 인간이라는 말씀입니까?"
검사는 비꼬아서 질문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여 로스모에게 상어의 아가미가 붙어 있을까요?"
재판장이 질문했다.
"그것은 수수께끼입니다. 아마 카디스 박사가 거기에 대해서 설명해 줄 겁니다. 우리들의 의견은 지구상의 생물은 오랜 세월 동안에 하등 생물에서 고등 동물로 진화되어 오게 된 것인데 각기 그 생물들은 성장의 과정에서 진화의 모든 단계를 거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먼 선조도 옛날에는 아가미를 가지고 물 속에서 살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검사가 일어서니까 재판장은 손으로 제지했다.
"생기고 나서 20일째의 태아는 네 개의 아가미처럼 생긴 주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태아는 성장함에 따라 그 주름이 귓구멍과 아래턱으로 변해져 갑니다. 우리들은 카디스 박사가 로스모를 태아 때부터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장된 인간에게도 간혹 턱 밑에 아가미의 주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가미의 유물로서는 물 속에서 호흡할 수는 없습니다. 태아는 성장하는 도중에 아가미가 계속 발달하거나 또한 아가미가 사라지고 말거나 그 두 가지 중에 한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만약 아가미가 계속 발달되면 귓구멍과 턱이 없는 병신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로스모는 틀림없는 정상적인 인간이며 보통 인간과도 같습니다. 귀와 아래턱과 폐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욱이 말짱한 아가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가미와 폐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물이 입과 폐를 통해서 아가미에 가는지 하여튼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들은 로스모를 해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해부를 한다고 해도 현재의 형태와 조직밖에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카디스 박사만이 설명할 수 있는 수수께끼라고 밖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카디스 박사에게 어떻게 해서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원숭이를 만들었을까 하는 설명을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감정인으로서 당신의 결론은 어떻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베이도스 교수도 역시 유명한 외과 의사였는데 교수는 명백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으로 말해서 나는 카디스 박사가 왜 이러한 수술을 했는가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카디스 박사가 해놓은 일은 천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카디스 박사는 아마 동물과 인간의 신체를 자유로이 변경시켜 보려는 아심을 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그러나 박사의 이러한 생각은 미치광이와 별로 다름이 없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그 소리를 듣고 냉소를 지었다. 베이도스 교수는 카디스 박사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미치광이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교도소에서 감금 생활보다는 정신병 환자로서 병원에서 지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디스 박사는 베이도스 교수의 동정심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베이도스 교수는 카디스 박사가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덧붙여 말했다.
"나는 박사가 미치광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의견으로서는 카디스 박사를 잠시동안 정신병 환자 요양소에 입원시켜서 정신병의 진찰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재판장은 말을 꺼냈다.
"그런 문제는 따로 심의하도록 합시다. 카디스 박사, 당신은 감정인과 검사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카디스 박사는 대답했다.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말하도록 해 주십시오."
 
 
피고의 발언
 
카디스 박사는 천천히 일어나 누구인가 찾는 것같이 법정을 휘둘러보았다. 방청석에는 아루바와 와루코와 스리다도 있었다. 제일 앞줄에는 가루소 신부가 앉아 있었다. 카디스 박사는 신부를 보고 살며시 웃고 다시 법정 전체를 휘둘러보고 누구인가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피해자가 없는 모양이군요."
카디스 박사는 말했다.
"내가 피해자입니다!"
아루바가 갑자기 일어나면서 외쳤다.
와루코는 재빨리 아루바의 소매를 잡아당겨 의자에 앉혔다.
재판장이 물었다.
"어떤 피해자입니까? 당신이 수술한 동물이라면 수가 너무 많아서 여기까지 데리고 올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양서 인간인 로스모라면 이 건물의 지하실에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카디스 박사는 침착하고 똑똑하게 대답했다.
(이 사람이 정말 돌아버린 것일까? 그렇잖으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미친 척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그렇게 설명할 정도의 것은 못됩니다. 나의 사건에서 최대의 피해자이고 그리고 단 한 사람의 피해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밖에 없을 겁니다. 검사는 내가 하나님의 권위를 손상시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만들어놓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돌연 한 의사가 '하나님이 만든 것이 잘못됐다. 새로 고쳐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만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 말을 빠짐없이 정확히 기록해 둘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검사는 자기가 모욕이나 당한 것처럼 외쳤다.
카디스 박사는 고개를 움츠렸다.
"나는 기소장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를 재판에 서게 한 이유는 즉 그런 것이겠지요. 나는 기소장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생체 해부를 해서 병신이 된 동물과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나를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또 다른 이유가 첨가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까닭입니까? 교회가 이 사건에 손을 뻗친 것은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고 카디스 박사는 가루소 신부를 쳐다보았다.
"당신 생각으로는 원고는 피해자인 하나님이고 피고는 가해자인 나와 다윈(진화론을 주장한 영국의 학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동물과 인간의 신체는 불완전하여 반드시 개량할 필요가 있다고 내가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을 여기서 한번 더 똑똑히 밝혀 두겠습니다. 이것은 여기에 계시는 가루소 신부님도 인정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방청석은 한참 웅성거렸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의 일이었습니다만 나는 가루소 신부의 맹장을 수술하고 신부의 신체의 일부분이지만 개량시킨 일이 있습니다. 그때 수술대 위에 누워 계시던 가루소 신부는 내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 돌기를 칼로 오려내는데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죠?"
카디스 박사는 가루소 신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신부는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가냘프게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시내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을 때 여기 계시는 검사도 나에게 정형 수술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검사는 뭔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자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EMB00000f9869b8"옆길로 가지 마시오."
재판장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것은 검사에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내가 아니고 검사 쪽이니까요."
"좋소. 계속해 보시오."
"아까 베이도스 교수가 인간은 동물과 물고기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말했을 때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 중에서는 아무도 놀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베이도스 교수는 태아 이야기 같은 것은 안 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나는 태아에게 손을 댄 일은 없습니다. 나는 외과 의사입니다. 나의 무기는 하나의 조그만 칼뿐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의 환자를 수술하고 있는 동안 자주 신체의 각 조직과 기관을 이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나는 그 방법을 개량하기 위하여 동물의 조직을 이식시키는 실험을 했습니다. 나는 기관을 이식시키면 그 기관이 어떻게 되는가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관찰했습니다. 관찰이 끝나면 그 동물을 뜰에 내놓았습니다. 나의 동물원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내가 특히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예를 들면 포유동물과 물고기와 같이 서로 아주 다른 동물간의 기관을 바꾸는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다른 과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성공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 로스모는?"
베이도스 교수가 물었다.
"로스모는 나의 자랑거리입니다. 로스모를 수술할 때 아가미 뿐만 아니고 신체의 모든 기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인간을 수술하여도 좋다는 확신을 가질 때까지 나는 여섯 마리의 원숭이를 미리 실험했었습니다."
"그 수술은 어떤 수술이었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나는 로스모에게 젊은 상어의 아가미를 이식했습니다. 그래서 로스모는 땅 위에서는 물론 물 속에서도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놀란 듯 더욱 웅성거렸다.
"그 후 나는 더 큰 성과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나의 새로운 수술은 양서 원숭이입니다. 나의 연구소의 풀 속에 있는 원숭이는 땅 위에서나 물 속에서나 아무리 오래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로스모는 물이 없는 곳에서는 3,4일 이상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상 물이 없는 곳에 있게 되면 폐가 피로해지고 아가미가 말라서 로스모는 옆구리에 진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 좋은 예로서 로스모는 내가 집을 비웠을 때 너무 오랫동안 육지에 있었기 때문에 신체의 상태가 많이 달라져서 지금은 하루의 대부분을 물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검사는 일어나서 재판장에게 말했다.
"피고에게 질문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디스 박사, 당신은 어떤 목적으로 양서 인간을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등 동물에서 진화함에 따라서 하등 동물이 가지고 있지 않는 많은 장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등 동물이 가지고 있던 많은 훌륭한 성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 물 속에서도 생활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동물의 진화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은 물 속에서, 즉 바다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후 지상에서 살고 있던 몇 종류의 동물은 다시 바다로 되돌아갔습니다. 돌고래는 본래는 물고기였었으나 육지로 올라와서 포유동물이 된 다음 또 바다로 되돌아가서 고래와 같이 포유동물 그대로 바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래와 돌고래는 폐로 호흡을 합니다. 돌고래도 수술을 해주면 폐와 아가미의 양쪽으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로스모의 친구인 리이딩이라는 돌고래에게 이러한 수술을 해줄 작정입니다. 그렇게 하면 리이딩은 로스모와 똑같이 언제까지라도 물 속에서 지낼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딴 인간들도 로스모와 같이 물 속에서도 생활할 수가 있게 된다면 인간의 생활은 지금과는 아주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바다는 지구 겉넓이의 십분의 칠 이상이 됩니다. 더욱이 바다에는 식량과 자원이 무진장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원과 식량은 현재 아주 약간만 인간에게 이용될 뿐입니다. 에너지도 그렇습니다. 바닷물은 790억 마력에 해당하는 태양열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만약 바다가 그만한 열을 공기 중에 조금도 발산하지 않았더라면 바다는 이미 옛날에 열로서 부글부글 끓어버렸을 것입니다. 하여간 거기에는 굉장한 에너지가 인간에게 사용되지도 못한 채 헛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해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멕시코 만류와 플로리다 해류만 해도 1시간에 10억 톤의 물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강에서 흘러내리는 양의 약 삼천 배입니다. 한 해류도 이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힘을 인간이 이용하고 있습니까?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도와 조수도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도 인간은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땅 위의 생물은 공중의 그리 높은 곳까지도 올라가지 못하고 땅 속 깊은 곳까지도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다 같으면 적도에서 북극과 남극에 이르는 동안, 물의 표면에서 10킬로미터의 깊이까지 거의 대부분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바다에는 무진장한 자원이 묻혀 있으나 우리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습니까? 겨우 바다의 표면에 가까운 곳에서 물고기와 해초와 조개를 잡고 있을 뿐입니다. 바다 깊은 곳은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바다 속에서 하고 있는 일은 거의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다리를 놓기 위한 지주를 세운다든지 침몰한 배를 끌어올리는 것들뿐입니다. 그러한 작은 일에도 인간으로서는 참 위험한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이 2분 이상 물 속에 들어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어떻게 바다 속에서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이 잠수복을 입지 않고 산소 장치도 가지지 않고 바다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완전히 변해질 겁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다면 인간은 바다 속에서도 수많은 큰 발견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로스모는 해저에서 귀중한 금속과 광물을 발견했습니다. 바다 바닥에는 이런 금속과 광물이 많이 있을 겁니다. 또 양서 인간이 나옴으로써 침몰한 배와 같이 해저에 가라앉은 귀중한 물건들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로스모도 아직 그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깊은 해저에 들어가려면 심해어와 같이 큰 수압에 견딜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당신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었다는 기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검사가 앞질러 말했다. 카디스 박사는 검사의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만약 인간이 물 속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되면 바다의 개발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되어나갈 겁니다. 그렇게 될 때 바다는 우리들에게 조금도 무서운 곳이 아니며 나아가서 물에 빠질 걱정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방청석의 사람들은 카디스 박사의 말을 감탄하면서 듣고 있었다.
재판장도 박사의 말에 말려들어서 질문을 했다.
"당신은 그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왜 실험의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했더라면 나는 더 빨리 재판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디스 박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나의 발명은 이익보다 해를 더 가져올는지도 모릅니다. 그 증거로 이미 로스모를 서로 빼앗으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를 법원에 고소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여기에 있는 욕심꾸러기 스리다입니다. 그리고 스리다는 로스모를 훔쳐냈습니다. 만약 로스모가 스리다의 것으로 되고 나면 스리다보다 더욱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리다에게서 로스모를 빼앗고 나쁜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 틀림없을 겁니다. 모두가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나의 발명을 발표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카디스 박사는 잠시 동안 말을 중단하고 조금 흥분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선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하면 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려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카디스 박사는 베이도스 교수 쪽을 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나는 설사 천재적 미치광이라고 하더라도 미치광이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미치광이나 정신이상자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했을 뿐입니다. 나의 연구의 성과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눈으로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한 일이 법률에 위반되었다고 생각하시거든 제발 나를 엄하게 처벌해 주십시오. 나는 죄를 가볍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옥 안
 
로스모를 조사한 감정인들은 로스모의 신체뿐만이 아니라 지능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해인가? 지금은 어느 달인가? 오늘은 며칠인가? 오늘은 무슨 요일인가?"
감정인들은 물어보았다.
그러나 로스모는,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로스모는 보통 아이들도 대답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로스모의 지능이 보통 인간과 비교해서 뒤떨어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 알만한 것을 모르는 것은 카디스 박사의 집과 바다 속에서밖에 생활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감정인들은,
(로스모는 법률적으로 책임을 질 수 없는 인간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로스모는 아무 벌도 받지 않게 되었다. 법원에서는 로스모의 재판을 정지시키고 로스모에게 후견인(부모 대신 돌보아주는 사람)을 정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 후견인이 되겠다고 신청해 왔다. 그것은 스리다와 아루바였다. 로스모를 잃고 카디스 박사를 원망하고 고소한 스리다였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스리다는 카디스 박사가 벌을 받아 복역하는 동안 그 틈을 타 로스모를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리다는 곧 후견인이 되겠다고 신청했다. 그리고 값비싼 진주로 재판관들을 매수했다.
스리다는 제일 유력한 후견인 후보가 되었다.
아루바는 자기가 로스모의 친아버지이니까 당연히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루바에게는 운이 없었다. 변호사 카레나가 여러 가지로 노력을 했는데도 감정EMB00000f9869b9인들은 로스모가 20년 전에 낳은 아루바의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증인이 와루코 한 사람 뿐이라는 것도 불리하였다. 와루코는 아루바와 형제간이었다. 형제의 증언은 법률적으로 별로 강력한 효력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루바는 완전히 실망했다.
와루코는 아루바 집으로 옮겨와 있었는데 이렇게 실망하고 있는 아우를 보고 걱정했다.
아루바는 식사나 잠자는 것도 잊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흥분해서 상점 밖으로 뛰어나가 정신없이 거리를 헤매면서
"내 아들이다! 내 아들이다!"
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갖은 욕설을 다 퍼붓는 것이었다.
어떤 날 아루바는 갑자기 와루코에게 말했다.
"형님, 나는 지금부터 감옥에 갑니다. 간수들에게 진주를 주고 로스모를 면회하겠습니다. 그리고 로스모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로스모는 내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모를 까닭이 없습니다. 로스모에게는 나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와루코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아루바는 형무소로 갔다.
간수를 만날 때마다 그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하고 최후에 진주를 선물로 주면서 차차 형무소 안으로 들어가 겨우 로스모가 있는 감방까지 갈 수 있었다.
로스모가 있는 작은 방은 창에 철창이 붙어있고 컴컴하고 무덥고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감옥의 간수는 물통의 물을 자주 갈아주지 않았고 마룻바닥에는 썩은 물고기가 이쪽저쪽에서 뒹굴고 있었다. 물고기는 로스모의 식량이었다.
창과 반대쪽 벽에는 철제의 커다란 물통이 놓여있었다.
아루바는 물통 쪽으로 가서 더럽혀진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로스모!"
아루바는 작은 소리로 불렀다.
"로스모!"
또 한번 불렀다.
물 표면은 약간 출렁거리고 로스모는 물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조금 후에 아루바는 떨리는 손을 살며시 뻗쳐서 미지근한 물 속에 넣었다. 손이 로스모의 어깨에 닿았다. 물 속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로스모의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누구요? 무슨 볼일이요?"
아루바는 꿇어앉아서 말했다.
"로스모! 아버지가 왔다. 너의 친아버지다. 카디스 박사는 너의 아버지가 아니야.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그 사람은 너를 병신으로 만들었다. 로스모, 로스모! 자 내 얼굴을 똑똑히 보아라. 설마 너는 아버지를 모르지는 않겠지?"
물은 로스모의 머리카락에서 얼굴을 흘러내려 턱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로스모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늙은 아루바를 쳐다보았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모릅니다."
로스모는 대답했다.
"로스모, 나를 잘 보아라!"
그렇게 말하고 아루바는 갑자기 로스모의 머리를 붙잡고 앞으로 끌어당겨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로스모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로스모는 이 돌연한 행동에서 몸을 빼내려고 손발을 내두르며 물통의 물을 퉁겼다. 누군가의 손이 아루바의 어깨를 잡고 아루바를 일으켜 방 모퉁이로 내동댕이쳤다.
아루바는 돌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신음했다. 눈을 떠보니 거기에는 스리다가 서 있었다. 스리다는 주먹을 불끈 쥐고 종이 한 장을 들고 승리한 사람같이 그것을 뒤흔들고 있었다.
"잘 보아라! 로스모의 후견인을 나에게 임명한다는 증명서다. 너는 딴 곳에 가서 부잣집 자식을 찾는 게 좋다. 이 청년은 내일 아침 내가 데리고 간다. 알겠나?"
아루바는 마룻바닥에 누운 채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루바는 재빨리 일어나 고함 소리를 지르면서 스리다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어 스리다를 거꾸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아루바는 스리다의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 입에 넣고 씹어 삼켜 버렸다. 그러고도 무서운 힘으로 스리다를 두들겼다. 엎치락뒤치락하고 싸움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간수는 아무에게도 편들지 않았다.
간수는 두 사람에게 상당한 뇌물을 받았기에 중립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스리다가 아루바의 목을 조르자 간수는 당황했다.
"목 졸라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스리다는 듣지 않고 아루바의 목을 계속 조르고 있었다.
"이것 참 재미있다! 힘으로 후견인을 결정할 작정인가!"
카디스 박사의 소리가 났다.
"너는 왜 멍청하게 서 있는가? 자기 임무를 잊고 있나?"
카디스 박사는 간수에게 명령하는 투로 말했다.
카디스 박사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간수는 당황하여 싸움을 말리러 뛰어들었다.
이 소동을 듣고 딴 간수들도 달려왔다. 얼마 안 되어 스리다와 아루바를 떼어놓았다. 스리다는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재판에서 진 카디스 박사를 모두가 존경하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놈들을 방에서 쫓아내어라! 나는 로스모와 단 둘이서 얘기하고 싶다."
카디스 박사는 간수들에게 말했다.
간수들은 박사의 명령에 따랐다.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어도 결국 스리다와 아루바는 끌려나가고 방문은 닫히었다.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기다려 카디스 박사는 물통 쪽으로 가서 로스모에게 말했다.
"일어서라, 로스모. 방 한가운데로 나오너라. 너를 진찰해야 되겠다."
로스모는 물통에서 나와서 방 한가운데로 가 섰다.
"그래, 그래. 좀 밝은 쪽으로 오너라. 숨을 들여 마셔라. 더 많이. 그만, 됐다."
카디스 박사는 로스모의 가슴을 두드려 보고 호흡의 상태를 조사했다.
"숨쉬는 것이 힘드는가?"
"그렇습니다, 아버지."
로스모가 대답했다.
"내가 잘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바깥에 나와 있었구나."
로스모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스모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카디스 박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버지, 왜 물 밖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안 됩니까? 딴 EMB00000f9869ba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는 왜 안 되는 겁니까?"
카디스 박사로서는 슬픔에 꽉 찬 로스모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법정에서 답변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박사는 그 고통을 참았다.
"그것은 너는 딴 인간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는 몸이다. 로스모, 만약 보통 사람과 같이 땅에서만 사는 것과 물 속에서만 사는 것과 그 중 하나를 선택하려고 하면 너는 어떤 쪽을 선택하겠니?"
"잘 모르겠습니다."
로스모는 생각에 잠겼다. 로스모로서는 바다의 세계도 땅과 루이제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루이제는 이미 영원히 떠나버렸다.
"지금 심정 같으면 바다의 생활을 선택하겠습니다."
하고 로스모는 대답했다.
"너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 길을 선택하고 말았구나. 너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물에서 나와 있었기 때문에 신체 구조가 변화되어서 지금부터는 물 속에서밖에 생활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버지! 이렇게 더러운 물 속은 싫습니다. 이런 데서 계속 있을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날 겁니다. 나는 넓은 바다에서 살고 싶어요."
카디스 박사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네가 될 수 있는 대로 이 감옥에서 빨리 나갈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겠다. 그러니까 로스모야,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내도록 해라!"
카디스 박사는 로스모의 어깨를 꼭 잡고 힘을 북돋아 주었다. 외과 의사 치고 누구나 다 그렇게 되었을 것이나 카디스 박사도 몇 번이나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카디스 박사의 실패로 죽어갔다. 그러나 그 동안 불완전한 수술의 방법을 많이 고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죽은 몇 사람의 경험은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수술 방법의 진보를 가져왔다. 그 일에 대해서 박사는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스모의 운명에 대해서는 큰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로스모는 박사의 자랑거리였다. 박사는 로스모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고 친자식같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박사로서는 로스모의 병과 지금부터의 운명이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들어오십시오."
카디스 박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박사님께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교도소 소장이었다.
"아니, 괜찮소. 그런데 부인과 아이들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박사님 덕택으로 아주 건강합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가족은 멀리 안데스 산으로 보냈습니다."
"정말 잘 했소. 산의 기후는 여기 보단 훨씬 건강에 좋으니까요."
박사는 말했다. 소장은 돌아가려고 하지 않고 문 쪽을 힐끔 쳐다보다가 재빨리 박사 곁으로 다가와서 귓속말을 하는 것이었다.
"박사님! 박사님 덕택으로 집사람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의사로서의 나의 의무니까요. 감사할 필요가 없소."
"나는 어떻게 하든지 박사님에게 은혜를 갚아드리고자 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지식이 없는 사람입니다만 신문을 읽고 박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훌륭한 학자를 불량자와 도둑놈과 같이 이런 감옥에 넣어둔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동료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아마 나는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는 요양소로 보내질 것 같군요."
카디스 박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요양소라면 감옥과 같은 곳이 아닙니까? 잘못하면 더 나쁠지도 모릅니다. 미치광이들과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장은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서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산중으로 보낸 것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나는 박사님을 여기서 빠져나가게 하고 저도 자취를 감출 작정입니다. 저는 생활이 빈곤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붙들리지 않을 겁니다. 박사님도 종교인과 장사꾼들이 들끓고 있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계속 사셔야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발 먼 딴 나라로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또 한가지 박사님에게 조용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소장은 조금 주저하다가,
"박사님께 중대한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고 입을 열었다.
"너무 신세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오히려 내가......."
"아닙니다. 꼭 은혜를 갚겠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우선 그 무서운 명령은 양심에 어긋나서 도저히 실행할 수가 EMB00000f9869bb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비밀을 폭로하여 단순히 양심의 고통을 면하려고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박사님은 나를 위해서 여러 가지로 애써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범죄의 하수인으로써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범죄?"
카디스 박사는 깜짝 놀랐다.
"그렇습니다. 형식상으로는 그럴 듯하게 로스모의 후견인으로 스리다를 정했습니다만 실제로는 스리다에게도 로스모를 넘겨주지 않을 것입니다. 스리다는 로스모의 후견인이 되기 위하여 많은 뇌물을 썼습니다만 도저히 로스모를 손에 넣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로스모는 아무도 모르게 죽여버리기로 되어 있으니까요."
카디스 박사는 무의식중에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뭐라고요? 아니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로스모는 독살 당할 겁니다. 이 일을 제일 먼저 주장한 사람은 가루소 신부입니다. 특히 가루소 신부는 로스모를 죽여야 한다고 직접 표현하지 않았습니다만 나에게 독약을 주었습니다. 아마 청산가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는 오늘 저녁 이 독약을 로스모의 물통 속에 넣기로 되어 있습니다. 담당 의사는 이미 매수되어 있습니다. 그 의사는 로스모의 시체를 조사하고는 무조건 로스모는 박사의 이식 수술의 부작용으로 결국 죽고 말았다고 진단을 내리기로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 명령을 실행하지 않으면 나는 엄한 벌을 받을 거라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설령 명령대로 한다고 해도 결국 나는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를 죽여야 그들에게는 범죄의 증거가 남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도망갈 것을 결정했습니다. 이미 도망갈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나로서는 로스모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두 사람 다 구출할 수는 없습니다. 박사님 한 분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구출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거야 나도 로스모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사님의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박사가 살아 계신다면 또 다른 로스모를 만들어 낼 수가 있겠지만 또 한 사람의 카디스 박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카디스 박사는 소장의 손을 힘껏 쥐면서 말했다.
"당신의 친절....... 정말 고맙습니다만 그러나 나를 위해서 그런 희생을 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체포되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체포되지 않습니다. 나는 충분히 생각하고 빈틈없이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하여튼 나는 나 때문에 당신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로스모를 구출해 주신다면 나는 나 자신을 구출해 주시는 이상으로 당신에게 감사드리겠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힘도 있고 더욱 어디를 가나 내 편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젠가는 나를 도와줄 겁니다. 그러나 로스모는 지금 당장 여기에서 구출해 내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박사님의 말씀이 옳을 것 같군요. 노력하겠습니다."
소장이 나가고 나서 카디스 박사는 빙긋이 웃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잘될 것 같다. 분쟁의 씨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불쌍한 로스모......."
카디스 박사는 책상 앞으로 가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나서 잠시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서 문을 두들겼다.
"소장에게 만나고 싶다고 전해주시오."
소장이 들어오자 카디스 박사는 말했다.
"한가지 더 부탁이 있습니다. 한번만 더 로스모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로스모와 만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지금 저보다 높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그것 참 잘 되었군요. 부탁 드리는 김에 한 가지만 더......."
"예, 좋습니다."
"로스모를 구출해 주십사 하고 정식으로 부탁드립니다. 내게는 그것 이외에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박사님은 아내의 생명을 구해주셨는데 그 정도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EMB00000f9869bc"아니올시다. 제 입장에서도 그 이상 더 고마울 게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가족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자, 여기에 편지가 있습니다. 이 주소로 찾아가십시오. 주소와 내 이름의 첫 글자 'C(시이)' 밖에 써놓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숨어있어야 할 형편이 되거나 돈이 필요할 때는 이 사람이 도와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양할 필요는 없어요. 자, 나를 로스모에게 데려가 주십시오."
로스모는 카디스 박사가 금방 다시 왔기에 놀랐다. 그때와 같이 슬퍼 보이면서도 부드러운 표정을 한 카디스 박사를 본 일이 없었다.
"로스모, 생각보다 빠르게 너와 헤어지게 되었구나. 아마 오랫동안 헤어져 있게 될 것 같다. 나는 너에 대해서 걱정이 너무나 많다. 너에게는 위험이 많이 따르고 있다. 만약에 너를 여기에 그대로 둔다면 너는 죽고 말 것이다. 설사 죽지는 않는다 하여도 스리다 같은 욕심쟁이 놈들의 포로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나는 형을 받고 2년 정도 감옥에서 보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더 길어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감옥에 있을 동안 너는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 가 있어야 되겠다. 그런 곳이 있는데 여기서는 아주 멀다. 남아메리카 저쪽 태평양에 있는 투아모투 제도의 한 조그만 섬이다. 너 혼자 거기까지 가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행의 위험은 네가 여기에 남아있을 때 받게 될 위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마음이 나쁜 놈들의 손에서 달아나려고 애쓰기보다 그 섬까지 헤엄쳐 가는 것이 더 쉬울 거다. 그러나 어떤 길을 택해서 그곳까지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어쨌든 여기서 서쪽으로 가는 길이라도 남아메리카를 북쪽에서 도는 길과 남쪽에서 도는 길의 두 가지가 있다. 어느 길을 택해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북에서 도는 길은 좀 멀다. 이 길을 선택하면 먼저 대서양을 북으로 올라가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나가야 한다. 파마나 운하를 통과하는 것은 위험하다. 수문 있는 곳에서 붙잡힐는지도 모르고 까닥 잘못하면 배에 눌려 죽을지도 모른다. 파나마 운하는 그렇게 넓지도 않고 깊지도 않다. 가장 넓은 곳은 91미터이고 깊이는 12미터이다. 요즘에 와서 배가 커졌기 때문에 배 바닥이 운하의 바닥에 거의 닿을 것이다. 그 대신 너는 항상 따뜻한 물 속에서 헤엄쳐 갈 수가 있다. 거기에다 파나마 운하에는 큰 수로가 세 개나 있다. 그 중 두 개는 뉴질랜드로 가는 수로이다. 거기에 가는 기선의 뒤를 쫓아가든지 또는 기선을 붙들고 가면 너는 편하게 투아모투 제도에 도착할 수가 있다. 특히 뉴질랜드로 가는 배는 투아모투 제도의 바로 옆을 통과한다. 그러니 그 기선을 붙잡고 가다가 뉴질랜드보다는 조금 북쪽에서 떠오르면 된다. 남아메리카의 남단을 도는 길은 가깝지만 그 대신 남극 대륙이 가깝기 때문에 바닷물EMB00000f9869bd이 굉장히 차갑다. 특히 푸에고 섬의 남쪽 바다가 가장 차갑다. 그렇다고 푸에고 섬의 북쪽 마젤란해협으로 가기보다는 남쪽으로 도는 쪽이 좋다. 길은 약간 멀지만 그쪽이 안전하다. 바닷물이 점점 차나, 갑자기 차가워지지는 않으니까 너는 그 차가움에 익숙해지리라고 믿는다.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식량의 걱정도 없다. 물고기와 조개를 먹으면 된다. 더욱이 너는 어릴 때부터 바닷물을 마시고 있었으니까. 푸에고 섬 남쪽에서 투아모투 제도에 가는 것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보단 조금 어렵다. 그곳에서는 북서쪽으로 큰 기선이 갈 수 있는 수로가 없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투아모투 제도의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가르쳐 주지. 그리고 위치를 알기 위한 기구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약간 짐이 되어서 헤엄치는데 곤란을 느끼겠지만.......""나는 리이딩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짐은 리이딩에게 운반시키겠습니다. 내가 없으면 리이딩은 쓸쓸할 테니까요."
"좋겠지. 리이딩을 꼭 데리고 가도록 해라. 투아모투 제도에 도착하거든 조금 떨어진 한 개의 산호초로 된 섬을 찾아라. 곧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섬에는 높은 기둥이 서 있고 그 기둥 끝에는 물고기 형태를 한 것이 달려 있으니 그것을 목표로 하여 찾으면 된다. 그 섬을 찾기에는 2,3개월 걸릴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 근처의 바닷물은 따뜻하고 굴이 많이 있다. 먹는 것에는 조금도 곤란을 받지 않을 것이다."
로스모는 카디스 박사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더 참을 수가 없어서 물었다.
"그 섬에는 누가 있습니까?"
"내 친구가 있다. 동정심이 많고 자상한 나의 옛 친구인 아루만 빌보아라는 과학자가 살고 있다. 프랑스 사람인데 유명한 해양학자이지. 옛날 유럽에 있을 때 나는 그 빌보아를 알게 되어 친한 사이가 되었다. 거기다 빌보아는 참 재미있는 친구인데 지금 여기에서 자세한 얘기할 겨를이 없다. 그 친구가 왜 유럽을 떠나 태평양 한 가운데의 외딴 섬에 살게 되었는가는 그쪽에 가서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빌보아는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인도 있고 딸과 아들도 있다. 부인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아들은 25세이고 딸은 아마 17세일 것이다. 너에 대한 것은 편지로 알려놓았으니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다. 그리고 친자식처럼 대해줄 것이다. 물론 너는 하루의 대부분을 바닷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하루에 5,6시간은 섬에 올라와서 그들과 같이 생활할 수가 있다. 그러는 동안에 너의 건강이 회복되면 너는 전과 같이 더 오래 땅에서 생활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너는 빌보아를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조수가 되어 해양학의 연구를 거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가 조수가 된다면 빌보아는 무척 기뻐할 것이다. 아무튼 너는 지금이라도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에 대해서는 어떤 대학 교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카디스 박사는 빙긋이 웃었다.
"법원의 감정인들은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다. 네게 오늘이 몇 월 며칠인가 하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다니....... 그러한 질문에 네가 대답할 수 있을 까닭이 없지. 너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가 없으니까. 이왕 질문을 하려면 해류라든가 수온이라든가 또는 아르헨티나의 가까운 바다의 상태가 어떤가 하는 것을 물었어야지. 그러면 네가 바다에 대해서 얼마만큼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았을 것이다. 너는 그쪽으로 가거든 그 지식을 더욱 넓혀 인류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 좋다. 빌보아와 같은 대과학자와 네가 힘을 합친다면 해양학을 크게 진전시킬 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만한 연구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확신하고 있다. 빌보아도 너와 같이 일을 하고자 하고 있다. 머지 않아 빌보아와 나란히 네 이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 때가 틀림없이 올 것이다. 너는 과학에 이바지함으로써 인류를 위해 이바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여기에 남아 있으면 너는 욕심쟁이들에게 이용될 뿐이다. 그쪽에 가서 깨끗한 바다와 빌보아의 따뜻한 가정 분위기에 싸이면 너는 정말로 행복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 저녁 너는 바다로 들어가게 될 거다. 바다에 들어가거든 곧바로 바다 안의 터널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지금 집에있는 사람은 짐뿐이다. 집에 도착하거든 헤엄치기 위한 도구와 단도를 가지고 곧바로 바다로 되돌아가서 리이딩을 찾아서 날이 새기 전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알겠니? 잘 가거라, 로스모!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카디스 박사는 로스모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서 빙긋이 웃고 로스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는 훌륭하니까 도중에서 조난 당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탈 출
 
오르센은 단추 공장에서 퇴근하여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오르센은 귀찮은 것 같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문이 열리며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루이제였다.
"루이제? 아니 어떻게 왔지요?"
오르센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셔요? 오르센, 어서 식사를 계속하셔요."
루이제는 문에 등을 대면서 말했다.
"전 이제 남편과 시어머니와 같이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되돌아가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것 참 잘했군요! 앉으세요. 아니 발을 떨고 있는데 어찌된 셈인가요? 당신은 전에 하나님의 뜻으로 맺어진 것이라고 절대로 이별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었소? 이제 그 말을 취소한다는 말인가요? 그건 그렇고 하여튼 반갑군요. 당신은 아버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갔나요?"
"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간다면 스리다가 알고 곧 데리러 올 것이 분명해요. 그래서 나는 친구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할 작정인가요?"
"공장이나 나가서 일할 작정이어요. 그래서 부탁하러 왔어요. 오르센, 어떤 일이라도 좋습니다."
오르센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어려워요. 가기에다 스리다는 당신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런 것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나 스리다는 당신이 있는 곳을 알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 아니오?"
오르센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루이제, 당신은 지금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스리다는 꼭 당신을 찾아낼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도 잘 알겠지만 스리다는 절대로 당신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겁니다. 법률과 여러 사람들은 스리다를 편들 겁니다."
루이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상관없어요! 그러면 나는 캐나다나 알래스카에 가겠어요."
"그린랜드나 더 북쪽이 좋지요!"
오르센은 농담같이 말하고 곧 정색을 하며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아르헨티나에 있어서는 위험합니다. 나도 전부터 어떻게 하든지 이 나라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종교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그때 못 떠난 것이 정말 유감스럽소. 당신을 스리다에게 뺏기고 배표와 돈이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소. 지금 나는 한푼도 없습니다. 당신도 그렇겠지? 유럽에 가기 위한 뱃삯 같은 것은 없다하더라도 굳이 꼭 유럽에 안 가도 좋을 것 같소. 우루과이나 브라질이라도 우선 가게 되면 스리다가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으로 갈 준비를 하면 됩니다. 당신이 간다면 물론 나도 같이 가겠소. 당신 혼자 가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카디스 박사와 로스모는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로스모가요? 로스모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왜 감옥에 들어갔습니까? 만나도록 해줄 수 없어요?"
루이제는 깜짝 놀란 얼굴로 한꺼번에 물었다.
"로스모는 감옥에 들어가 있지요. 그리고 스리다의 노예가 되고 말 것 같소. 카디스 박사와 로스모는 엉뚱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말았지요."
"정말 무서운 일이군요. 구출할 수는 없을까요?"
"나는 줄곧 그 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대로 잘 안됐는데, 예상외로 형무소 소장이 우리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로스모를 구출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조금 전에 카디스 박사와 형무소 소장에게서 편지를 받았소."
"로스모를 만나고 싶습니다! 나도 같이 갈 수 없을까요?"
루이제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오르센은 생각에 잠겼다.
"그만두는 것이 좋겠군요. 당신은 로스모를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죠?"
"로스모는 환자입니다. 로스모는 물고기로서는 건강하지만 인간으로서는 환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로스모는 이제 와서는 공기를 거의 호흡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약에 당신이 로스모를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생각해 보시오. 로스모나 당신이나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로스모의 당신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물에서 나와서 육지에 오래 있으면 로스모는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루이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말했다.
"그렇겠군요."
"우리들과 같은 보통 인간과 로스모와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다입니다. 로스모는 바다 없이는 살아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바다만이 로스EMB00000f9869be모가 살아 갈 곳입니다. "
"그러나 어떻게 해서 살아 나갈까요? 넓은 바다 속에서 단지 물고기와 돌고래와 어울려 행복할 수 있을까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로스모는 바다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루이제는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이제 와서는 그전처럼 행복할 수 있을지......."
"그만둬요."
루이제는 슬프게 말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마음의 상처도 잊혀지겠죠 그러는 동안에 로스모도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고기와 돌고래와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되겠죠."
해는 점점 어두워져갔다. 방안은 이미 어두워졌다.
"나는 시간이 다 되어서 형무소에 가야 되겠군요."
오르센은 일어섰다.
루이제도 일어섰다.
"먼 곳에서 보는 것쯤은 괜찮겠지요?"
루이제는 물었다.
"물론 괜찮겠지요. 당신이 있다는 것을 로스모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 주셔요."
 
오르센이 물을 운반하는 사람의 복장을 하고 마차를 끌고 형무소의 뜰에 도착할 무렵 사방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간수가 오르센을 불러 세웠다.
"어디 가시오?"
"바다의 악마 때문에 바닷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르센은 형무소 소장이 가르쳐 준 대로 대답했다.
오르센은 형무소의 건물 모퉁이를 돌았다. 그 곳에는 취사장과 감방의 간수들이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복도와 입구에 서 있어야 할 간수들을 소장은 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 밖으로 출장을 보냈다.
로스모는 소장이 데리고 나왔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 빨리 물통 속으로 들어가시오."
소장이 말했다.
로스모는 재빨리 물통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자, 어서 가시오."
오르센은 말에 채찍질을 하여 감옥의 뜰을 나와 천천히 거리를 빠져나가 역 앞을 지났다. 마차에서 조금 떨어져서 루이제가 쫓아오고 있었다. 마차가 시내를 빠져 나왔을 때는 어두웠다.
길은 해안을 따라서 계속되고 있었다. 바람은 강하게 불고 파도는 해안으로 밀려와 바위에 부딪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르센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보였다. 자동차가 지나가도록 기다렸다. 자동차는 붕붕 소리를 내면서 사방에 밝은 빛을 비춰가면서 시내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지금이다!"
오르센은 뒤돌아보고 루이제에게 바위 그늘에 몸을 감추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나서 통을 두들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착됐소! 나오시오!"
물통 속에서 머리가 나타났다.
로스모는 사방을 둘러보고 재빨리 물통 속에서 기어 나와 땅으로 뛰어내렸다.
"오르센, 정말 고맙습니다."
로스모는 젖은 손으로 오르센의 손을 힘차게 쥐었다.---
로스모는 숨을 헐떡거렸다.
"잘 가시오! 부디 조심하시기 바라오. 앞으로는 너무 해안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나쁜 놈들에게 붙들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르센은 물론 로스모가 카디스 박사에게 어떠한 지시를 받았는가는 모르고 있었다.
로스모는 숨을 헐떡이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먼 섬으로 갈 작정입니다. 오르센,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로스모는 바다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바닷가까지 가서 로스모는 갑자기 돌아서더니 외쳤다.
"오르센, 오르센! 언젠가 루이제를 만나는 일이 있거든 잘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잊지 않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로스모는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로스모는 조금 헤엄쳐 가다가 목을 내밀고 바닷가를 향해서 외쳤다.
"루이제, 안녕!'
그리고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로스모, 안녕......!"
루이제가 바위 그늘에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바람은 점점 심해져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왔다.
오르센은 루이제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갑시다. 루이제!"---
오르센은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EMB00000f9869bf오르센은 루이제를 한길로 데리고 왔다. 루이제는 한번 더 바다를 되돌아보고는 오르센의 손에 매달려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새출발
 
카디스 박사는 형기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박사는 먼 곳으로 여행할 준비를 서두르는 것 같았다. 와루코는 카디스 박사 밑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스리다는 새 배를 사서 지금은 캘리포니아 만에서 진주를 캐고 있다. 스리다는 아직 아메리카 제일의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해마다 저축이 늘어가고 있었다.
루이제는 스리다와 이혼하고 오르센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뉴욕에 가서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어촌에서는 지금은 이미 바다의 악마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끔 더운 밤이 되면 늙은 어부들은 젊은 어부들에게 먼바다의 이상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바다의 악마는 흡사 저렇게 소라로 만든 피리를 불었던 것이었단다."
그리고 바다의 악마에 대한 전설을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단 한 사람 로스모를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주 나이가 많고 거의 미치다시피 한 아루바라는 거지였다.
아이들은 이 거지를 알고있어서 길에서 만나기만 하면,
"야, 바다의 악마의 아버지가 왔다!"
라고 말하면서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그러나 이 늙은 거지는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스페인 사람을 만나면 이 늙은 거지는 반드시 뒤돌아보고서 침을 뱉었고 뜻도 알 수 없는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내버려두었다. 머리가 돌았다고 해도 이 거지는 온순하고 누구에게도 난폭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다가 험해지면 이 늙은이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는지 급히 바닷가로 달려가 바위 위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고 파도에 휩쓸려 갈 것도 잊고 고함을 계속 지른다.
바다가 잔잔하게 될 때까지 낮이건 밤이건 계속 고함을 지른다.
"로스모! 로스모! 내 아들 로스모! 조심해라, 로스모!"
그러나 바다는 비밀을 감춘 채 아무 말도 없었다.
 
-끝-
 
작품해설
 
인체 개조와 기관 이식
 
베리야에프는 1884년에 태어나 1942년에 세상을 떠난 소련의 SF 작가인데 50편 이상의 SF를 썼습니다.
그 중에는 우주 비행 이야기, 텔레파시 이야기, 극지 개발과 해저 생활 이야기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뇌의 이식과 인체 개량 등의 생물학과 의학의 문제가 특색 있게 다루어졌습니다.
소년 시절에 베르느의 SF 소설을 애독하고 하늘을 그리워하여 양산과 홑이불로 만든 낙하산을 타고 지붕에서 뛰어내리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신부였기 때문에 아버지 명령을 거역 못하여 11살 때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신부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연극과 바이올린에 열중하였다고 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또다시 베리야에프는 법률 학교에 입학하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베리야에프는 1915년 척추병에 걸려 5년 동안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5년간 베리야에프는 일어날 수도 없었고 돌아누울 수도 없어서 겨우 머리만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창 밖에서 날아 들어온 벌레가 얼굴에 앉아도 손으로 그 벌레를 쫓을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베리야에프는 그러한 부자연스러운 생활에서 고통을 이겨가며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공상에 잠기기도 하고 병을 이겨내가면서 쓴 합성인간(제1집 3권)을 1925년에 발표했습니다.
현재에는 아직 심장의 이식도 완전히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심장 이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장의 이식을 하려면은 건강한 심장을 가진 한 사람이 죽지 않으면 안 되고, 이식될 심장은 가능한 건강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심장의 이식도 완전히 성공할 수 없는데 머리, 즉 뇌의 이식을 실현시키려면 아직 요원합니다. 그러나 절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베리야에프는 겨우 머리만 움직일 수 있는 생활을 하면서, 자기 머리를 다른 건강한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수술이 가능하다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까 하고 생각하면서 합성 인간이라는 소설을 썼던 것입니다.
베리야에프가 의학적인 문제와 인체 개조를 주제로 하여 1928년 발표한 두 번째 작품이 양서인간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지구상의 생물은 아메바 같은 단순한 생물에서 오랜 세월동안에 차츰 진화되어 사람 같은 고등동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진화의 최고의 산물이며 다른 동물에 볼 수 없는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동물이 가지고 있는 많은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 신체로서 새와 같이 하늘을 날을 수도 없고 물고기 같이 물 속에서 생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사람은 그 뛰어난 두뇌를 써서 일찍부터 도구를 만들어내고 도구와 기계로서 자기 신체의 결점을 보충해 왔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달리는 데에는 자동차 같은 것을 이용했고, 하늘을 나는 데에는 비행기를, 바다를 건너는 데에는 배와 잠수함을, 먼 곳을 똑똑히 보기 위해서는 망원경 등을 만들어 지금의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우주 개척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주 과학의 발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구와 기계는 편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편한 것도 많습니다.
사람은 비행기를 사용하여 새같이 난다고 하여도 자기 자신이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잠수함 등을 사용하여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물 속에서 물고기같이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신체를 개조하여 새같이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물고기같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양서 인간에 나오는 카디스 박사가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며, 다른 점은 열심히 연구하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끝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인체를 개조하는 것을 주제로 SF를 쓰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인체는 자연계에서 가장 복잡한 조직체이므로 그 개조는 쉬운 일이 아니고 더욱이 사람의 신체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죽을 염려가 많아서 섣불리 작품을 쓰면 어떤 영향이 미칠지 몰라서였습니다.
둘째로 사람의 사회에는 옛날부터,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라는 기독교의 신앙이 거의 2000년간을 인간의 사고 방식을 지배하여 왔고 사람의 신체에 손을 댄다는 것을 모두 싫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리야에프는 인체 개조를 주제로 한 SF 소설에 일찍이 손을 댄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 신체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위를 끊어내는 현대적 외과 수술을 하고, 충치를 빼내고 이를 갈아넣고, 맹장 수술 등은 오래 전부터 실시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신체를 개조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도 없을 것입니다.
카터스 박사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인디오 소년에게 상어의 아가미를 이식시켰습니다.
사람은 폐로써 공기 중의 산소를 마시고 살며, 물고기는 아가미로써 물 속의 산소를 흡수하여 사는 것인데 육지나 물 속에서도 자유롭게 생활하기 위하여서는 폐와 아가미를 같이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하여도 사람에게 상어의 아가미를 이식하는 것은 카디스 박사도 큰 용단을 내려 실험한 것입니다.
현재에는 사람끼리 서로 한 사람의 내장을 다른 사람 내장에 이식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가 있고 또 자유로이 실행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과 물고기와의 몸 구조는 대단히 다릅니다.
사람은 온혈 동물이고 물고기는 냉혈 동물이기 때문에 기관의 이식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식도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가능할 것입니다.
지구상의 생명은 하등 생물에서 고등 생물로 차차 진화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선조도 태고시절에는 물고기 시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태아는 그 모친의 배 안에서 한 사람의 형태가 될 갓난아이로 성장될 때까지는 생물의 진화의 과정을 밟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물고기 사이에는 핏줄의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고기의 아가미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알습니다. 이것이 카더스 박사의 신념입니다.
카디스 박사는 물고기처럼 바다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양서 인간 로스모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로스모는 아직 육지에서나 바다 속에서나 완전히 자유롭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
물 속에서 나와 오랫동안 육지에서 생활하면 로스모는 호흡에 곤란을 느꼈습니다. 카디스 박사의 수술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스모의 신체에 그러한 성질이 있는 것은 지구상의 많은 양서류, 즉 개구리나 도롱뇽 등이 항상 물 가까이에 살고 있고 물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살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스모는 물 속에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는 뭍 속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런데도 로스모는 인간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었습니다. 육지에서는 돈벌이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로스모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생을 당하고 말게 된 것입니다.
착실하고 마음씨가 곱고 용감하면서 동정심이 많아 누구에게도 호감을 사는 로스모인데도 마음씨가 비틀어진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홀로 쓸쓸한 남쪽 바다로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예사롭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는 한 로스모는 인간 사회로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자입니다. 또 달리 생각해보면 로스모는 카디스 박사의 연구에 대한 희생자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카디스 박사는 생각이 깊고 훌륭한 과학자이지만 그에게 양서인간의 수술을 받은 사람은 역시 고독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양서인간을 쓴 다음 해에 베리야에프는 {얼굴을 잊은 사람}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여기에서는 외과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역시 인간의 개조를 주제로 한 SF입니다.
사람의 신체 내에는 여러 가지 호르몬을 내는 내분비선이 있습니다. 호르몬은 신체 작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얼굴을 잊은 사람은 그 내분비선에 어떤 작용을 하면 얼굴 형태뿐만 아니라 키와 피부색까지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약품을 발명함으로써 일어나는 사건을 쓴 이야기입니다.
희극 배우 브레스트는 태어나면서부터 못생긴 얼굴과 이상한 몸매 때문에 미국에서 희극왕이 되었으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웃기고 영화 배우로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브레스트는 자기 얼굴과 몸매가 추잡한 것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이라도 좋으니 미남자가 되어봤으면 했습니다.
미남자가 되어도 미남자 역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고 브레스트는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브레스트는 소로킨이라는 의학 박사가 특별한 약을 사용해서 사람의 얼굴 형태를 변화시키는 치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소로킨 박사를 찾아가서 그 약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약은 차차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형편없던 코가 잘생긴 코로 변하고, 얼굴 형태도 미남형으로 변해지고, 키도 커지고....... 급기야 브레스트는 어느 누가 보아도 훌륭한 미남자로 변했습니다.
브레스트는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보기에 추잡한 희극배우였기 때문에 브레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추잡한 형태를 잃고 미남으로 된 브레스트를 한 사람도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화에도 출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희극배우 시절에 저축하여 둔 재산도 법률에 의하여 모조리 몰수당하고 말았습니다.
브레스트는 화가 나서 복수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소로킨 박사가 가지고 있는 마술의 힘을 가진 약을 훔쳐내어, 자기에게 해롭게 한 사람들에게 몰래 먹여서 그 사람들을 추잡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그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1930년에 베리야에프는 {호이치 도이치}라는 이상한 제목을 가진 중편소설을 썼습니다.
서커스에는 간혹 셈을 할 수 있는 개가 등장하는 수가 있는데, 여기서는 셈은 물론이고 사람의 말도 알고 글자도 쓸 수 있는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코끼리는 정말로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글자를 쓸 수도 있었습니다. 이 코끼리는 호이치 도이치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독일의 서커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조련사에게 두들겨 맞고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모래 위에 빗자루로,
"나는 코끼리가 아니라 사람이다."
라고 써놓고 달아난 것이었습니다.
그 코끼리가,
"나는 사람이다."
라고 써놓은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이 코끼리는 와구넬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사람의 뇌를 이식시킨 코끼리였기 때문입니다. 와구넬 박사는 죽은 사람의 뇌를 빼내어 코끼리 머리 안에 이식시켰습니다.
이 코끼리는 밀림 속에서 와구넬 박사 일행과 떨어져 나와 대자연 속에서 야수의 생활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자세히 체험합니다. 그러나 코끼리로서는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야수를 죽일 뿐만 아니라 인간끼리 서로 살생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뇌를 가진 코끼리 도이치는 도저히 야수와 섞일 수가 없어, 사람에게 학대를 당해 가며 고통스러운 여행의 나날을 보내다가 문명의 세계에 와서 서커스의 인기배우로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문명 세계에서도 평화로운 생활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동물의 입장에서 본 사람의 잔인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베리야에프는 이외도 기관의 의식과 인체의 개조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 끝으로 베리야에프의 노령기(194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리엘}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리엘은 양서인간과 흡사한 이야기인데 여기에서는 아무런 장치도 없고 날개도 가지지 않았으면서도 새같이 자유로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물위에 꽃가루를 떨어뜨리면 꽃가루는 이상하게 움직입니다. 그것은 무질서한 운동으로 돌고 있는 물의 분자가 꽃가루에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액체와 기체의 이러한 무질서한 분자 운동을 브라운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이드라는 과학자가 전기의 힘을 이용하여 분자의 무질서한 운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의 신체의 분자 운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보내면 그것은 뇌파에 일정한 전하(물체가 띠고 있는 정전기의 양)를 가지게 되어서 사람의 몸은 대지와의 전기적 반발력으로 하늘을 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리엘이라는 소년은 하이드의 이러한 실험으로 날개도 가지지 않고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리엘 소년의 운명도 로스모의 운명과 같이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리엘은 베리야에프 최후의 장편 소설입니다. SF작가로서의 베리야에프는 인체 개조를 주제로 SF를 쓰기 시작하여 인체 개조의 주제로 작가 생활을 끝마쳤습니다.
더욱이 인체 개조를 주제로 쓴 베리야에프의 작품은 거의 비관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체 개조로 인하여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내어도 결국은 인간 사회의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 악용될 뿐이라는 베리야에프의 생각이 작품 속 깊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인체의 큰 개조는 반드시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베리야에프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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