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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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절 수필문학
2007년 08월 13일 10시 02분  조회:4124  추천:15  작성자: 최균선

                                                     제2절 수필문학

   1. 수필의 함의
   수필은 서구의 에세이에 관한 지식과 개념들이 들어오면서 문학적의미를 갖게 되였기에 에세이와 수필을 명확하게 구분할수 없다. 에세이는 프랑스의 몽테뉴로부터 비롯된 시론(诗论), 시도(试图)라는 뜻이다. 이것이 영국으로 건너가서 발전했다. 에세이는 “시금” “시험하다”의 뜻을 가지고있으며 라틴어에서 그 어원을 두고있는바 “계량하다. 음미하다”의 뜻을 가지고있다.
   서양에서 에세이라는 용어로 된 문집은 세계적인 사상가이며 산문시조인 프랑스의 몽테뉴의 ≪에세이≫가 있고 영국의 ≪수상록ㅡ생활과 도덕에 관한 충언≫이 있으며 영국의 챨스 램의 ≪엘리아≫가 있다. 프랑스의 R. M 알베레스는 “에세이는 그 자체가 원래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이미지로 된 문학”이라고 정의했다. 몽테뉴는 수필집 ≪독자에게≫서 이렇게 쓰고있다.

    …여기 이 책은 아주 성실, 정직한 책이다. 독자여, 책머리에서 당신에게 그 사실을 말해 두지만, 나는 이 책속에 내가족적인 사사로운 일밖에는 아무런 다른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 책에서 당신에게 대한 어떤 보탬이나 또는 나의 영광을 위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와같은 마련은 내힘에 넘치는 일이다. (중략)
     …이 책에선 내결심이 생생하게 그대로 읽혀질것이고 또 나의 타고난 외모도 독자들에게 용서받을수 있는 례절의 한도안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여질것이다. 만약 내가 아직껏 자유관대한 자연의 최초의 법칙밑에서 산다는 그런 민족들속에서 생활한다면 틀림없이 나는 당신들에게 모든것을 다 털어놓고 아주 기꺼이 완전하게 벗어붙인 나를 드러냈을것이다. 그러니까 독자여, 내자신이 바로 내책의 내용이다. 이렇게도 가볍고, 이렇게도 별 볼일없는 내용이니 당신의 한가한 시간을 사용할 만한 구실도 못된다. 그러면 안녕.
                                                                      1580년 3월 1일. 드 몽테뉴.

    몽테뉴에 의하면 수필은 가장 절실한 체험의 표현이다. 몽테뉴의 이 독백이 바로 수필의 시작이고 성격으로 형성되였다. 에세이는 포오멀 에세이와 인포멀 에세이로 나뉘어져있다. 전자는 객관적진리와 무게있는 지식을 정연한 론리적전개를 통해 나타낸 글을 말한다. 흔이 베이컨형 에세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가 말하는 중수필개념과 통한다. 후자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고 정서와 기쁨을 주는것을 목적으로 하는바 몽테뉴형 에세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한국수필은 “미셀러니”에 속한다고 하면서 신변잡기, 감상문, 잡문 등을 가리켜 미셀러니라고 말한다. 사전적의미로 “미셀러니란 여러 필자가 여러가지 제재에 대하여 쓴 작품을 모은것, 또는 수필이나 시와 같은 여러가지 작품을 모은것”이 된다.
   “인포멀” 이란 말은 정격(正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객관적진리와 무게있는 지식을 전달하는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다만 독자에게 기쁨을 주는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독자를 자극시키지 않고 마음을 늦추게 하는 글로서 한가한 시간에 쓰여지며 한가한 시간에 읽는 글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수필이 한낱 소일거리로 된다는것은 광채로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수필이란 송조이래의 잡기견문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최초로 수필이라는 용어를 책이름으로 한 단문집으로는 12세기 남송때 홍매(洪迈)의 ≪용재수필≫이였다. 홍매는 “意之所之 随即记录 因其先后 无复诠次 故目曰随笔”라고 썼는데 “마음에 생각이나 느낌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적고 앞뒤의 순서를 바로 잡지 않았으므로 이 책에 수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였다. 홍매가 개인적인 책목록으로 사용했을뿐 쟝르로서의 일반개념이 아니라 특수개념을 말하는 고유명사인것이다.
중국에서는 “5. 4”이래 수필이 십분 류행되였는데 경물을 빌어 서정을 토로하고 사물에 기탁하여 뜻을 펼치고 혹은 사물의 도리를 밝히거나 시비를 캐고 론단하기도 하였다. 그속에 풍유도 있었으며 내용이 풍부하고 형식이 다양한 일종의 문학적대화양식이 되였다.
    흔히 수필을 서양어에 대한 번역으로만 생각할수 있는데 어원상 동서양의 수필개념은 거의 일치한다. 수필의 내함을 글자그대로 풀이하며 내용상 잘되지 못한 수필을 잡문이라 취급하는것은 우심한 오도이다. 더구나 여러가지 종류의 기록을 모은 책을 “잡문, 잡기, 잡록” 이라 부른다고 해석하거나 수필문학을 스스로 잡문, 잡기, 잡록으로 폄훼시키는것이라 하는데 중국에서의 잡문의 발전과 양태를 모르고 글자대로 곧 잡글이라고 단정하는것은 무지의 소행이다.
    글자대로 풀이하여 수필은 “여가에 붓가는대로 쓰여지는 글”이라는 정의가 아닌 정의를 맹종하여 내키는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것으로 오도하며 신변잡기쯤으로 간주하는데 스스로 수필의 격을 낮추고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수필은 산만성과 무질서, 무형식의 글, 락서가 아니다.
    산문과 수필의 공통한 특징을 찾는다면 작자가 “나”라는 신분으로 쓰는 글이라는 점이다. 수필은 비전문적이고 격식에 매이지 않고 생활감수와 사색을 자유롭게 쓴 산문이고 넓은 의미에서 일기, 기행문, 편지 등도 포함시켜 자기성찰의 문학이라고 하는 말에는 산문과도 또 다른 깊은 함의가 있다.
수필은 말 그대로 떠오른 생각을 쓰는 느낌글이지만 자률성이 고유하고있다. 말하자면 자아의식에 주체성은 그가 원하든 않든간에 “보편적규정”속에 존재하고 작가의 의식자임을 자각할 때 자아와 객관사물, 의식과 의식된것과의 관계속에서만 대상의식을 형성한다.
    수필에 대한 어떤 학술적정의보다도 중요한것은 어떻게 정서적감동을 독자에게 전달할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려과하고 자기나름의 느낌과 사색을 조리있게 기술하는 글일진대 그 감동의 전달이 인간과 인생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의미롭게 승화시킨 철학으로서 공감되여야 개성있고 생명력이 있는 수필다운 수필로 자리매김될것이다.
    2. 수필의 의의
    수필이 개체의 생명운동으로서 그 본질에 접근했을 때 허위와 가식없는 인성의 고백이 된다. 고백이란 말을 문학에 적용한 사람이 수필의 원조인 몽테뉴이며 고백을 문학으로 보여주고 그 고통을 체험시켜준 사람이 루쏘이다. 두사람의 ≪법의 정신≫과 ≪참회록≫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세계독자를 울리고있다. 고통스러운 고백에 생명체의 근원이 약동하기때문이다.
   한국작가 윤오영선생은 “소설의 구체적인 서술성과 시의 다채로운 축약성이 무리없이 조정되면서 진과 미를 구심점으로 하는 비판정신이 살려져있는 독립된 문학쟝르라”고 그 방향을 제시했는데 아주 적중한 론단이라 할것이다. 이 시점에서 수필은 세속적인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초연하게 인생을 바라보는 관조의 문학만은 아니다. 뼈저린 체험,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내면화하는 동안 걸러진 고백이고 지혜와 진리에 접근한것이여야 한다. 이런 수필은 우리의 인생현장을 비추어주고 심령을 밝혀주는 등불역할을 하게 된다.
   수필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인가? 등 의문을 던져보고 스스로 대답하는 문학으로서 생명의 원천에 대한 탐색이 되고 인생을 반추하는 자성일 때 소중한것이 된다. 수필이 자기고백의 글이라지만 아무도 사회의 국외인으로 살수 없거니와 아무도 상아탑속에서 간드러진 피리만 불수는 없다. 인생현장은 근원적으로 력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겪고 생각한것을 문학적으로 표술하는 글이기에 작가의 인간상, 또는 사상 등이 적라라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고백하기 위한 고백,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경건히 돌아보면서 참회하고 각성하는 글이므로 투철한 작가정신, 치렬한 창작열, 전문성이 수필의 특징이다. 이 특징이 체현되지 못하면 그저 생활수기로 남는다.
   수필의 의의는 교훈성보다는 쾌락성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재미란 물론 미적충동이나 감동으로 인한 즐거움이지 이야기내용이 아니다. 허드슨은 그의 표현본능설에서 쾌락은 자기표현을 위한 욕망, 인간과 인간행위에 있어서의 흥미로운것,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와 우리의 존재를 떠올리는 상상세계에의 흥미로운것들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행위”이거나 “만족할만한 상태”라고 했다.
    수필은 회의성의 문학이다. 회의적이고 지성적일수록 적극적인 의미를 지닐수 있고 창조적일수 있다. 회의를 앞세우고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때문에 다양한 체험과 사색은 수필의 개성이 된다. 적극적인 탐구로 창조를 이룩하고 다각적인 관찰로 특유의 개성을 살린 수필은 문학과 철학에 접근한다.
   회의를 앞세우고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때문에 다양한 사색은 수필의 발견이 된다. 적극적인 탐구로 창조를 이룩하고 다각적인 관찰로 특유의 개성을 살린 수필은 인생철학에 접근한다. 그러나 담백하다는 리유때문에 단순해질수 있다. 생활기록과 수필의 분계선을 알고 생신한 느낌과 깨우침을 줄수 있는지 알고 붓을 들어야 수필다운 수필이 나올것이다.
    수필은 작가의 정감세계의 로출이므로 진실성이 생명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명쾌하고 절서정연할것이 요청되여도 산만하고 무질서는 용납될수 없다. 수감, 일기, 서한, 기행문, 칼럼 등을 수필의 범주에 넣고있어서 일일이 형식을 정해 정의할수 없지만 수필만큼은 작가의 자재적인 창의성을 많이 요구하고있다.
    비평가 R.M. 알베르는 “수필은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이미지의 문학” 이라 했다. 허버드 리드는 자기의 ≪영국산문록≫에서 “마음속에 표현되지 않은채 잠재해 있는 관념이나 기분ㅡ정서 등과 상응하는 어떤 류형을 언언로써 창조하는 비형식의 시도이다. …한마디로 수필은 특정인에게 보낼 필요가 없는 하나의 공개장이다.”라고 쓰고있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란다. 수필만이 삶의 문학인가? 모든 문학이 삶의 메아리이다. 수필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하고 그냥 락서일수도 있다는데 수필이 자신의 삶에 대한 자각과 의미부여에서 그치면 일기차원이다. 남에게 전달되지 않은 정서는 다만 개체의 심리활동일뿐이다. 자기 인생을 의미화하는 궁극적목적은 독자와의 대화속에서 강렬한 정서성을 전달하려는데 있다.
    수필은 글쓴이의 인생경험과 인격력량의 소산이다. 수필은 자기 삶의 향기를 피워올리거나 생명을 연소시키는것으로서 자기 자신만큼의 초상화일수밖에 없다. 자기를 닮지 않은것을 낳는 동물이 없듯이 수필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수식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질수 있을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수필에는 작자만의 캐릭터가 있게 되는것이다.
   수필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현실생활일수도 있고 생활론리를 전제로 한 형상사유의 결정체일수 있다. 보통 신변잡기라는 말을 잘 쓰는데 광의적의미로 모든 문학적인 글은 신변잡기라 할수 있다. 하지만 수필은 자기 신변잡사를 횡설수설하는 잡글이 아니라 인생의 보편적인 경험을 다양한 예술방법으로 토로하는 문학예술이다. 그만큼 독자들과 공유되여야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수필은 쓰는 사람이 쓰면서 즐기던 글로부터 읽는 사람이 읽으면서 즐기는 문학으로 되였다. 따라서 우리가 수필이라고 말할 때 느끼던 그 격조라는 감각은 어느덧 사라지고 가볍게 일컬어지는 신변잡기가 범람하게 되였다. 공공적인것보다는 사적인 가벼운 주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철학적인것보다 감상적내용의 수필을 즐겨쓰는것이 현시대의 풍조로 되였다.
   수필을 쓰는데 지식함량이나, 인격함량, 필력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것은 수필에 대한 오해이다. 수필은 누구나 쓸수 있지만 아무나 쓸수는 없다. 아무나 쓸수 없다는것은 수필이란 지어내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수필의 의의는 모대상에 대한 정서, 정감표출에서 체현되는 인간미이다. 좋은 수필은 일상사를 사상으로 부연하여 독특한 사상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의의를 가진다.
   수필은 완성된 인생의 표현이 아니라 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호소하는 문학이다. 비유하건대 곡식이 술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수필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문학이 사람사는 이야기일진대 수필이 그 삶을 조명하려 했다면 자아세계의 새 경지를 찾는 자조의 글이나 결국 자기 구원의 글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인생철학이요, 살아왔고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개성의 미학이다. 수필은 언어의 미학이라든지, 수사라든지, 이미지의 창조라든지, 언어예술의 조각이라 하는 리론을 넘어서 삶의 실감이며 생존의 증언이며 존재의 확인이며 삶의 지향의 토로이기에 청자연적일수만은 없다.
    진정한 수필은 맹종하지 않으며 기죽지 않으며 공리에 구애되지 않고 류사성을 바라지 않는다. 청고한 심리상태에서 자연과 인생의 섭리를 터득하면서 인류사회의 도리와 심령을 파헤친다. 그러나 이런 창작심리상태는 결코 수필이 시대상에 눈감고 자기의 상아탑속에서 문은 닫아걸고 수레를 만드는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무병신음하거나 제멋에 겨워 뇌까리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필은 인생일사나 자연의 천태만상, 력사사회현실에서 느끼고 사색한 자신의 삶과 체험을 나름대로 나타내기에 형식이 없다고 하고 형식이 없기에 수필이 된다. 수필은 지성적사고의 능력을 전제로 한 문학행위일수도 있고 도덕적인 의지행위일수도 있으며 미학적가치 판단에서 오는 사변성을 지닌 문학활동이기도 하기때문이다.
    이 시대는 선악의 박투, 사랑과 한의 교차, 령혼과 육체의 충돌, 정과 리(理)의 부조화, 진실과 허위의 대결, 미와 추의 모호, 광분과 침체의 실조, 음모와 성실의 무승부, 얻은자와 잃은자의 희열과 울분, 경쟁시대 우승렬패의 희비극…등으로 인한 불안정서가 민중의 보편적심리로 꽉 차있다. 바람세찬데 고요히 서있을 나무가 없으며 “도화원에서 밭갈며” 음풍영월로 자족할수는 없다.
    리론적인것, 비평적인것, 학문적인것, 설득적인것이 그 본질은 아니지만 단순한 신변적인 일상만을 뜻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의 발견이나 깊은 사고를 거친 깨달음이기에 수필처럼 인간성을 띤 문학형식은 없을것이다.
    수필은 사람의 정감을 쓰고 사실을 쓰고 어떤 인생도리를 쓰는 등 삼라만상을 포섭하지만 천지간의 법칙을 벗어날수는 없다. 제약이 없는 수필의 자유창작은 필경 반면에로 나갈수밖에 없다. 이런 수필들에는 시대의 숨결을 들을수 없을뿐만아니라 인간생명의 약동감도 느낄수 없다. 물론 수필이 시대의 주선률이 될수는 없지만 “변연문체” 혹은 “업여문체”로 자족할 일도 아니다.
    수필의 진수는 인성의 발굴에 있고 수필의 맛은 인성의 풍경선, 인간미 그 자체이다. 수필의 주제는 인생현장을 투시하고 삶에 대해 사색하며 희노애락을 반추하는데서 형성되기에 진실되고 랭철한 가슴으로 써야 한다. 수필은 심령의 메아리로서 모종의 정서적흥미로 독자의 심령속에서 미적향수로 메아리쳐야 하며 너 나의 인생에 대한 유익한 제시라야 문학으로서의 수필의 가치를 지닌다.
   수필은 가슴에 새겨진 체험, 사색의 과정을 거치여 내면화되는 동안 려과된 정서로서 지혜와 진리에 접근하려는 정서이다. 이런 수필은 지혜의 내용으로써 우리의 인생현장을 비추어주는 등불 역할을 하게 될것이다. 수필은 회의성의 문학이다. 사회와 인생에 회의적이고 지성적일수록 한편의 수필이 나를 위안하려는 글만이 아닌 어떤 적극적인 의의를 담은 글이 될수 있다.
    독일 현대파시인 노발리스는 “보이는것은 보이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 /들리는것은 들리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생각되는것은 생각되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고 했다. 문학창작은 세상을 보는법을 배우는것이다. 소설과 같은 다른 쟝르들이 예술경지에 이르게 한다면 수필은 인생경지에 이르게 한다.
    본다는것은 단순한 목적일수 있지만 생각하는것은 무목적일수 없다. 본다는것은 관찰, 발견, 촉동, 사색에 이르고 수필은 그것을 드러내기이다. 현재 사인화경향으로 나가고있는 수필창작에서 우선 제기되는 문제는 “자유”와 “약속력”간의 모순이다. 혹자는 수필의 핵은 “수의성”이라고 하며 심지어 “무엇이 생각나면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쓰고싶으면 어떻게 쓴다.”는 정도에 이르렀다.
    정취가 있고 재치있는 수필은 직접 시대를 반영하지 않지만 시대의 밝고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으며 시대의 맥박을 무시하지 않는다. 진정 훌륭한 수필은 시대를 포용하면서 시대를 초월한다. 또 시대를 초월하려면 심령의 빛으로 생활적인 시대를 조명해야 한다.
   옛날 장자의 산문은 그 시대의 변연에 처해있었지만 그 시대를 무시하지 않고 아울러 “자아”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강렬한 심령의 빛을 반사하였다. 그의 이런 심령의 빛은 일체 어두운면을 투시하였으며 인생, 생명과 인성의 심처까지 조명해보였다. 수필창작에서의 변증원리는 찬연함과 담담함의 관계속에서도 체현된다. 한면으로는 변화무궁하여 마치 봄날처럼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다른 한면으로는 담담한 숲같고 무색무미의 맑은 물과 같다. 따라서 수필의 가장 큰 매력은 “비확정성”과 “창조성”이다.
   자아표현으로 되는 수필창작이라도 작가는 주동적인식자로 될 때 인식주체가 되여지고 적극적심미자로 될 때 곧 심미주체로 되여지고 능동적창조자가 될 때 가치창조의 주체가 되여져야 하므로 정신주체의 부동한 층차에서 가장 높은 층차는 바로 자아실현이다.
   인생을 해석하는 철학의 폭이 좁다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짧을것이다. 인간을 다루는 문학으로서의 수필은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캐내고 고양하는 글이다. 수필가들이 자기에게만 흥미로운 지극히 사사로운 사연을 두고 내 사정이 곧 네 사정이라는 주관의지로 쓴것은 수필답지 않다.
    3. 수필의 사상내용
    1) 수필의 사상
    영국에서는 수필을 “사상을 소유한 서정시”라고 한다. 그만큼 “모든 문학은 모두 선전”이라 한다. 한국작가 이현복은 그의 ≪수필의 문학성≫이라는 글에서 수필은 산문의 문학이며 과학정신과 합리주의정신에 바탕을 둔 문학정신이 바로 산문정신이라고 역설하고있다.
   동일한 상태에 철학 또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 사상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과 인생에 대한 사색에서 질적차이가 생긴다. 흔히 사상이라면 거창한것을 떠올리는데 사상과 감정을 문학언어로 표현했을 때의 그 체험과 소감이 바로 작자의 사상감정이다.
   모종 의미에서 문학은 리상주의문학을 낳을수밖에 없다. 수필은 의도적으로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적일 필요가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보다 랭철한 비판을 스스로 가할수 있어야 한다. 고요한 달밤의 피리소리만 있는 인간세상이 아니기에 우리에게 격동이 있게 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분명한 비판정신과 선동성을 뼈대로 한 수필을 필요로 하게 된것이다.
축적된 서책지식이 생활철학을 낳는것이 아니다. 붓을 들기전에 사색하고 붓을 달리면서 사색하고 수필을 끝낸후에도 사색하는 작가라야 인생철리를 도출해낼수 있다. 용광로에 쇠덩이를 넣어서 강재를 제련해내듯 수필의 철학은 사색에서만 얻어진다. 그것은 원인에서 결과를 추출해낸 사상의 정화이다.
    사회비리, 인간도덕, 변색한 사랑, 리페가 사이비한 문제, 인생고, 생로병사 등에 대한 지적인 사색에서 철학이 자란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생고란 무어냐 하는 사색의 저 끝에 철학이 묻어나온다. 철학사상의 뿌리는 생활의 옥토에만 뻗어있다. 수필이라는 글나무로 말할 때 꽃은 문학성이요 뿌리는 사상이다.
    천차만별의 각자의 생활감수가 토로되는 수필이 일매지게 “녀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로 펼쳐질수도 없다. 깊은 수림속에 벼라별 새들이 다 한목소리, 한곡조로 노래할수 없다. 검지도 희지도 않고 온화하고 우아하기만 하고 인생고를 도외시하고 미소를 띠게 하는 글만일수도 없다.
    체험은 각양각색이고 그 반응도 천층만층이다. 감각에는 간지러움만 있는것이 아니라 아픔도 있고 통증도 있다. 그것에 대한 사색이 심각한 사상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모든 감정에는 사상이란게 고유하기에 일단 자기를 고백하면 모종 견해와 주장을 피력하게 된다.
   수필은 물과 같아서 고정된 모양이 없는바 어떤 그릇에 담기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한다. 수필은 단일한 정태적생명현상이 아니며 또한 단일한 동태적생명현상만이 아니라 상호간에 전화하고 상호간에 보충해주는 변증적통일, 화합의 관계에 놓여있다.
   수필에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것은 정감이다. 그러나 “예술정서는 본질상에서 지혜의 정서(디드로)”일 때 수필작가의 자연정감 내지는 사인정감이 심미적승화를 거쳐 일정한 예술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수필이 아무리 진솔한 “자화상”이라도 개체관념의 “유령”으로 되기십상이다.
    포에르바하는 인격층차설에서 “자아의 초월”은 외부환경의 약속밑에서 외부세계와의 융합하에서만 실현된다고 하였는데 수필에서 “개체”속으로만 파고든다면 개체정서가 아무리 아기자기하고 달착지근할지라도 독자일반의 심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면 그저 멋진 칼집속에 녹쓴 보검이나 다를바 없다.
    수필은 재치있는 글솜씨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감각, 짙은 흥미성, 정서적감염. 평화로운 기분, 유익한 지식성, 느끼하지 않은 교훈성, 삶에 대한 재인식, 생활에 대한 애착감, 교묘하게 심어주는 지혜의 불씨…등 가치발견과 의미부여로부터 받아안은 인생공부가 되는데서 산생된다.
   수필은 그만큼 생활 및 감수 자체인것이 아니며 그저 글을 짓는 재간만으로 쓰는것도 아니다. 진정한 수필작품은 작가의 지식, 인생경험, 미학적추구, 전부의 인격력량이 체현되여있는 지혜로운 사색의 결정이고 작가의 철학적사색과 예술정취가 현연되는 또 다른 심령세계의 축도인것이다.
    2) 수필의 내용
   수필을 쓰려면 풍부한 경험, 순수한 느낌, 진실한 생각, 자아의 정체성, 정교한 구성 그리고 선명한 주제, 명확하고 정확한 표현, 이런것들이 필요한것이지 자아표현의 도취나 발설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시대를 초월할수 있는 영원성을 지닌 인간생존의 보편성을 내포한 작품, 개성적인 개인을 살면서 개성을 초월한 보편성을 지녀야 참다운 수필이 될수 있다.
따라서 한편의 수필에 무엇을 담을가? 하는 문제는 우선 나서는 난제이다. 수필작가가 리별의 고통, 고독의 애수, 생사의 허무, 성패의 고뇌, 환득환실의 무상함, 향수의 애절함, 영예와 치욕, 희비 등등에 대해 쓰고 사랑, 우정, 가정의 행불행을 찬미 혹은 개탄할 때 인간일반의 사상운동을 등지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심령세계를 파헤칠 때 생명의 본질이 파악된다. 생명운동과 그 표현보다 더 심각한 주제는 없다. 사상은 생명력을 가지고있다. 동일한 사람의 수필이 동일한 문제로 엮어지는 리유는 사적인 울타리안에서 나오지 못하기때문이다. 정감의 우물안에서 보는 하늘이 넓으면 얼마나 넓겠는가?
    보편성은 어떤 인간, 어떤 사건에도 공유한다. 하여 개체성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저변에 보편성이라는 분모로 련결된다. 가장 민족적인것은 세계적인것이라는 말도 이와 소통된다. 수필문학에서의 개별성과 보편성도 마찬가지이다.
    “재능의 번뜩임, 매력적인 이미지의 정서, 그러한것이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서 법망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들 세계의 밤을 비추어주는 글ㅡ(이온 알베레스)”여야 정서적이미지가 현연되는 수필이 될것이다. 그러자면 사적인 소재를 자기화하면서도 일반화하고 다시 주제화하여야 할것이다.
   수필은 정감을 리성화해야 한다. 수필은 자아표현이지만 결국 문학적대화이다. 명제는 작자의것이로되 흔상은 작자 혼자만의것일수 없다는 동화현상 즉 공감이나 감동의 동질화를 노린 정감발로이다. 자아표현이 독주하면 자아실현은 되고 주제의식은 분명해질지 모르되 독자와의 대화관계를 맺어주는 보편정서의 흐름은 막힐 위험이 있으며 접수미학의 효과는 령점이 되기십상이다.
    수필에서 사상의 정서화는 원활하게 이루어야 한다. 사상의 정서화란 제재를 내면적요구에 의해 즉 작자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으로 합리화하는 개성적인 시각이자 마음이다. 이때의 개성은 어디까지나 보편성을 기조로 한 인간과 삶에 대한 자기분석이요 자기 평가이다. 때문에 지성의 정서화는 사상의 정서화가 되여야만 가능하다.
무릇 주제는 글의 핵이다. 수필은 나무를 쓰면서 가지나 뿌리, 잎이나 열매중 그 어느 하나를 통해 나무전체를 말하려 한다. 이런 창작시각에서 라도향의 ≪그믐달≫과 같은 작품이 좋은 사례이다.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이 손을 댈수도 없고, 말을 부칠수도 없이 깜찍하게 어여쁜 계집애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우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삼키려는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妇)와 같이 비정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公主)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만,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에 정든 님 그리워 잠 못들어 하는 이나 못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은 보여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것이다.

    수필은 비유와 상징적문장으로 주제의 선명도를 높여주고있다 작가가 어떻게 살고있고 어떻게 생각하면 어떤 수필이 나온다. 살아가는것과 문학창작은 궁극적으로 세상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작자는 체험의 내용과 느낌을 전달하지만 독자들은 사실보다 느낌, 사변적인 의미의 부여에 더 관심하게 된다.
    수필의 매력은 그 소탈하고 진지한 정감교류에 있다. 수필에서 주제의 생신성이 곧 생명이므로 일상에서도 숨겨진 본질을 파낼수 있어야 한다. 우주만물의 천태만상, 인간의 상호관계, 인간내심의 오묘한 변화와 그것의 발로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니고 투시하는 자세가 없으면 수필글감이 스쳐지나고 만다.
     작가의 령혼이 가장 리상적인 예술미의 옷을 입고 참신한 사상의 발걸음으로 심령세계의 기묘한 풍경구를 답파도 하고 혹은 불붙는 정조의 산마루에 치달아 올라 쩌렁—메아리치도록 한소리 웨쳐도 봄직하고 혹은 마음의 깊은 호수에 심상의 쪽배 둥실 띄워놓고 외가닥 노를 열심히 저어갈 때 련꽃잎에 령롱한 이슬같은 오감이 뇌리속에 비쳐듬직도 한것이다.
    때론 망각의 이끼 푸른 력사의 기구한 돌무더기사이로 회고의 수레를 몰아가며 자기성찰의 채찍도 쨩—울려보고 되돌아와 붐비는 인생현장에서 숙명 비슷한 비애를 느낄 때, 내자세부터 정리하면서 반성의 쓴 술잔도 기울여보고 때로는 먼지낀 관습의 구석구석을 비평의 비자루로 쓸어도 보며 생명의 꽃잎 지는 세월의 언덕에서 두다리 퍼더버리고 초로인생의 허무함에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도 보는 때, 자기 심령의 뒤뜨락에 파놓은 참회의 우물에 갈구의 드레박을 철렁!넣어보는 때가 곧 수필의 매력으로 현연되는것이다.
    그러면서도 류의할바가 있다. “산문은 조금 전기식이 될수도 있는데 자질구레한 ‘제1전기식’같은 신변잡사를 쓰기보다 심령생활의 ‘제2전기식’을 써야 한다. 개인의 희노애락을 쓴 산문이라도 정신경계의 구별, 정조의 구별, 인격의 구별이 있다. (류재복)” 작가의식을 고통이 없는자, 가짜 고통이 있는자, 작은 고통이 있는자, 대고통자, 대각오자 네부류로 나누어 고찰할수 있다.
    자고로 문학은 대고통자, 대각오자들의 납함과 혈로를 개척하는 고매한 정신에서 활력을 확보해왔다. 이런 대고통자, 대각오자들에게 미래문학이 기탁되여졌다. “문학의 공리성에서 ‘공’은 당대에 있고 ‘리’는 천추에 있다.”는 말은 다 진리이다. 수필은 “인간구원의 본령”만은 빛나게 지켜야 할것이다.
     4. 수필의 창작원리
    수필은 시작부터 친구와 무릎을 맞대고 속삭이는듯한 부드러운 어조를 잡을수도 있고 콕 찌르는듯한 맵짠 어조로 시작할수 있다. 수필은 묘사, 설명에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있다. 수필전반에 걸쳐 느낌만 쓸게 아니라 자기의 태도, 평가가 주축이 되여야 한다.
    수필은 어떤 면에서 흥미를 끌수 있도록 운치있게 소재를 다루어야 한다.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물어내고 그 생각이 다음 생각의 단서가 되도록 생각과 느낌의 이음새를 빈틈없이 짜나가면서 사색의 론리성, 정감파동의 론리성을 도모하는것이 이른바의 “붓가는대로” 쓴다는 수필의 운치이고 향기인것이다.
    한국의 수필리론가 원형갑선생도 아주 유익한 교시를 하고있다. “수필은 지성으로서의 시력을 떠날수 없고 따라서 시대, 사회를 외면할수 없다. 문학이 세계에 대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그려내고 제시하는 작업이라 할 때 그 세계와 인간관계를 지성적으로 전개하는것이 수필이라 할수 있다.”그러므로 가장 절실한 생활얘기로부터 내용을 펼쳐나가되 단순한 사실같으나 어떤 의의를 부여할 때 평가를 내리고 의로운 방향에로 슬며시 끌고나가야 한다.
   수필을 씀에서 해학적인 자세로 우스꽝스러운 인생마당을 조명하는 적극적이고 당돌한 마음의 준비가 특별히 요청되는데 가능한 정서적이여야 한다. 정서는 수필글을 살찌게 하는 기름이요 서정성은 수필의 령혼이다. 철학적사색이 융화되여있으나 서정이 없는 수필은 돌배같이 틉틉하다. 그래서 어우러진 정과 철학이 절실한것이다.
     1) 수필의 주제의식
     수필의 주제란 작가가 나타내려고 한 인생에 대한 태도나 관점이며 수필에 용해되여 있는 사상으로서 수필의 의미내용에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이다.달리말하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의미이고 해석이다. 수필은 자기만을 의식할게 아니라 희곡창작에서 무대를 의식하고 쓰듯이 우선 독자를 의식하고 화제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주제를 취급하느냐에 의해 그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관이 엿보인다. 주제는 수필창작의 동기에서 비롯되지만 동기 그 자체는 아니다.
    수필의 주제는 체험담이라든가 모종 사건속에서 구체화되여 나타나지만, 글감 그 자체는 아니다. 수필주제는 작가가 수필을 쓰려고 하는 의도나 목적과 관련은 있지만 목적 자체는 아니다. 주제는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상에서 이루어지지만 작가의 인생관 그 자체가 주제는 아니다.
   수필의 주제는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상이 의미화, 형상화된 일종 정신경지이다. 수필의 주제와 작가의 체험담, 인생관이 별개의것이 될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보다 무거운 소재 즉 인생현장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투시할수도 있다. 이렇게 볼때 개인의 체험, 사실 모두 수필거리가 될수 있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수 없다. 작가가 작품속에서 표현하려는 주제의식 여하에 따라서 작품의 문학성을 가늠할수 있다. 똘스또이가 주로 인도주의를, 와일드가 탐미주의를 작품의 주제로 취급한것도 그의 인생관과 맥을 같이한다. 필요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질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문제와 결부할 때가 많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한 사람은 소재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소재가 대체로 자연물과 연관된다. 어떤 이는 철학적소재를 즐겨찾으며 또 어떤이는 주제와 소재를 제한없이 구사하기도 한다.
   수필은 인류감정의 상태를 개선하는 문체이고 풍부하고 다채로운 인생이 피워올린 꽃, 독특한 향기가 있는 생명의 꽃송이다. 체험과 사색의 결정체인 수필에서는 담화내용을 야하지 않고 경박하지 않게 설정해야 하며 대화를 이끌어나가다가 매섭게 또는 힘차게 매듭을 짓되 사색의 여지를 두면 좋다.
    이런 인생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확대, 발전되면 인간의 문제로 객관화되고 문제의식으로 살아움직이게 된다. 문제의식은 인간의 근원적인 과제와 련결되며 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문제가 되고 인류공통의 문제로까지 확대될수 있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문자란 워낙 민감한것이므로 주제화전략차원을 부단히 높여야 한다. 작가는 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공감을 나눌수 있는 가치있는 모멘트를 포착하고 문제의식이 예리한것일지라도 론증하지 않으면서도 자아의식의 정당성과 공익성을 예술적으로 감득시킬수 있어야 독자들이 귀를 기울여보는 심령의 “회음벽”이 될수 있다. 한국 수필평론가 장세진 선생의 일가견을 참조해 보자.

    …흔히 수필과 에세이가 같은 의미로 통칭되고있지만 전자는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를 살아있음에 대한 가벼운 환기쯤으로 그친다면 후자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그려 존재하고있음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것이 아닐가 한다. 편견이라는 두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볼 때 수필은 신변잡기에 불과하고 에세이는 문학이 된다는 가설을 해봄직하다…

   아주 명석한 론술이다. 수필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층차의 선택성과 가치함량에 대한 훌륭한 제시이다. 참으로 훌륭한 수필이라면 자아실현의 주체척도가 되고 개인의 심미표준이 되기도하면서 나아가서 력사의 범주속에 들어가서 시대성을 띠게 된다.
가) 주제의 의미화: 주제의 의미화란 주제의식을 구체화, 문학적인 자기화(自己化)의 수법으로서 일종의 기법이 아니라 작자의 독창적인 정감의 발현인이다. 부는 바람을 덧없는 인생에 비유하고 흐르는 물을 무정한 세월로 의미화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바람을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로, 물을 유연하게 사는 삶의 자세 등으로 해석할수 있다. 그것이 수필의 생리이자 호흡이다.
    독일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아도르노는 “예술의 인식공능은 그의 비판원칙을 체현하는것이고 진정한 미학적감수는 필경 객관에로의 지향이며 예술의 추향은 진리이다. 예술은 반드시 현실의 모순성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예술은 그것의 진실한 내함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반사(反思)의 변증법을 체현해야 한다.”고 력설하면서 “수필은 특별한 비판형식이다.”라는 명제까지 내놓았다. 아도르노의 미학사상은 구라파사회에서 행복한자들의 귀에 거슬리는 이단철학이였지만 수필창작에서 자아의식가치 취향에 대한 밝은 지시등이 아닐수 없다.
   훌륭한 수필은 새로운 감각, 짙은 흥미성, 정서적감염, 평화로운 기분, 유익한 지식성, 느끼하지 않은 교훈성, 삶에 대한 재인식, 생활에 대한 애착감, 교묘하게 심어주는 지혜의 불씨…등 인생의 가치 발견과 의미부여로부터 받아안은 인생공부가 되는데서 산생된다.
    수필은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개길을 허위단심 넘으면서 생활의 모퉁이 모퉁이에 이런저런 풍경들에 감흥이 절실할 때 혹은 무시로 마주오는 상념과 마주하고 잠간 숨돌리며 여유있는 마음가짐으로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보고 이제 또 걸어갈 길을 가늠할 때 문뜩 피여나는 정감의 꽃이라고 할수도 있다.
    나) 주제의 상상화: 주제의 상상화 즉 중심사상의 상상처리는 바로 모종 주제전달을 도모하는것이다. 수필의 주제전달은 사실의 서술에서가 아닌 정서의 구체화나 의식의 형상화로써만 의미있기에 리성보다는 정감을, 직설보다 우회적수법을 써야 효과적이다.
    그 내용이 설사 교훈적인것, 비평적인것이라 해도 그 전달에서 독자가 느끼게 하고 공감하게 하고 깨닫게 하는 동화효응을 도모해야 한다. 수필은 사실보다는 감수를, 머리보다는 심장을 통함으로써만 주제전달이 이룩되는 문학이기때문이다.
   “자기를 너무 자신에게만 집중시키지 말고 사회를 자신에게 집중시켜야 한다.”(고리끼), “위대한 작가들은 사회를 묘사하는데 있어 단순히 묘사방식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작가는 좀 더 비판적인 과제를 가지고있다고 할수 있다.”(엘렌지우스) 개체정서가 아무리 아기자기하게 서술될지라도 독자의 심벽을 울리지 못한다면 칼집속에 보검이나 다를바 없다.
    다) 주제발굴: 수필작가는 “내우주”의 대문을 활짝 열고 “나”의 감성, 정감, 사상으로 자연과 사회, 인생과 대화하는 과정에 “외우주”의 맥박에 감응되고 그로부터 방출된 사상의 불꽃은 자신의 심령세계의 조명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심령세계에 향도의 빛이 될 때 작가의 자아의식의 가치실현이 이루어진다.
    수필적소재는 많지만 그것을 독자를 취하게 만드는 미주로 만드는 일은 별개의것이 된다. 그만큼 감수의 라렬이 아니라 작자의 지식결구, 인생경험, 미학적추구 등 전부의 인격력량이 체현되는 지혜의 결정체이고 그만의 철학적사색과 정취가 현연되는 심령세계의 생생한 축도로 된다.
    주제의식은 작가의 철학과 련관된다. 필자 자신의 내부에 어떤 심리준비가 되여있느냐에 따라서 대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비극적철학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불행한 사실에 시선을 박고 종교적인 인생관을 지닌 사람은 련민과 사랑, 구제와 초월에의 사실에 눈길이 머물고 눈물을 머금고 동조하게 될것이다.
    그리하여 타인에게는 평범한 사실이 자신에게는 충격적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때 평소에 지녔던 문제의식이 활발하게 움직여 이를 분석, 정리하여 주제를 파내는데 제재보다 주제가 선행될 때가 있고 반대로 제재가 주제보다 먼저 주어질 때가 있다. 수필을 무성한 백양나무에 비유할 때 푸른 잎속에는 끊임없이 수액(树液)이 흐르고있다. 그 잎이 소재라면 그 수액이 수필의 주제가 된다. 흐르고있는 수액이 끊어질 때 잎은 락엽이 된다. 락엽이 많이 생기면 조화와 균형과 완전성을 잃어버린 병든 나무이다.
    라) 주제의 생명력: 수필의 생명력은 주제의식에서 결정된다. 수필은 감응정서를 본바탕으로 한 인간화, 지성화의 문학이다. 수필에서의 지성화란 자기 감정의 순화요 승화이다. 따라서 수필은 개인정서를 보편화해야 한다. 정서를 보편화함으로써 많은 청자를 얻을수 있고 자기를 독자에게 리해시킬수 있다.
   무거운 제재라도 관념화되여 주제의식이 리해와 공감의 벽을 넘지 못하면 단명할것이다. 소재는 자기감동으로 선택하나 주제전달은 독자의 접수로 완성된다. 그것이 청자연(靑瓷硯滴 |)이든 란초이든 백학이든 그리고 청초한 녀인이든 내 울타리안에 풍경만이라면 뜨락풍경일뿐 대천세계는 못되는것이다.
    수필작자는 어떤 류형의 정서이든 지성화해야 한다. 정서의 지성화란 정서를 객관화, 보편화함으로써 자기감정의 순화와 자기 리해에 이르는것이다. 그 지성화가 부재하면 자기중심에 몰입되거나 혼자 흥분하면서 감상일변도의 정서를 과장하여 글을 허공에 뜨게 한다.
    반대로 지성을 정서화해야 한다. 지성의 정서화는 자기과시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것이다. 정서의 지성화는 사적감정의 과다한 로출을 제거하는 작업으로서 사실의 긴축, 대화의 함축, 의론의 간결화 등이 이에 속한다. 수필에서 의미화는 작가의 공감을 전제로 한 정감화이고 제시성적인 사상화이다.
    흔히 자기안으로만 몰입하거나 흥분에 사로잡히면 지성화작업이 잘 안되고 자기감상에 매달린다. 아무리 론리적이고 사변적인 내용이라 해도 마주앉은 독자를 무시하는듯한 주장, 설교 일변도의 대도리로써는 공감을 얻을수 없다. 박종화의 수필 ≪淘河와 靑庄≫이 정감화, 사상화한 좋은 례이다.

    세상에 가장 가련한것은 일하고도 먹지 못하는것이요, 그 대신 가장 가증한것은 놀고도 잘 먹는것이다. 인간의 온갖 불평과 눈물의 반 이상이 여기에 연유함이라 해도 틀림이 없을것이다.
   “淘河勞而常飢 靑庄佚而常饱”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淘河는 애를 쓰고도 늘 주리는데, 靑庄은 놀면서도 늘 배불리 먹는다는 말이다. 여기에 淘河와 靑庄이라는것은 물새의 이름이다. 一名으로 淘河라고도 하는, 俗名으로는 “사다새”이니, 이 새는 하루종일 고기를 엿보며 강물의 벌흙속으로 다니면서 날개와 입부리를 더럽혀 가며, 고기를 찾느라 애를 쓴다. 그러나 꽤많은 고기들은 淘河의 그림자를 피해 물가로 숨어 나오는것이다.
     그런데 靑庄은 항상 물가에 멀쑥하니 서서 밖으로는 한가한척 아무것도 구하는것이 없는 듯이 보이나, 淘河에게 쫓겨 물가로 숨어 나오는 고기들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날름날름 배부르게 잡아먹는것이니, 그러므로 옛사람들이 일찍이 淘河와 靑庄을 世间利慾人에게 비겨 말해 온것이다……
    애를 쓰고도 항상 굶주리는 淘河와 놀면서도 항상 배불리 먹는 靑庄을비교하여 어렵잖게 “불평등”이란 주제의식을 침투시켰다. 시가 주관정감으로 감동을 주는 문학이라면 수필은 개체정감을 객관화 하여 독자의 감동을 시도한다. 수필작가들은 강렬한 정서성을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전제로 내세운다.

    조설근선생이 “세상에 정통함은 학문의 힘이요 인정에 숙달함은 문장의 힘이니라”하였는데 수필작자로서는 참조계가 아닐수 없다. 같은 모래에서도 금싸라기를 찾아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 체험한대로, 느낀대로 토로해야지 무병신음하지 말아야 한다.
    2) 수필의 진술방식
   수필은 그 특징, 창작수법상 산문과 대동소이하다. 수필은 일정한 사건체계가 없이 필자가 생활에서 체험한 사실과 사건, 사물에서 받은 정감충동, 사색의 파동을 적는 글이므로 느낌이 주체이지만 감정을 서정화한 동시에 객관화한 글이다. 수필은 사실적인 경험문학이라 할 때 상상과 수필은 어울리지 않는것같지만 그 자체가 지성을 바탕으로 정서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로 부연하기에 상상력 련상능력이 수요된다. 수필에서의 상상은 작가의 경험적사실을 진실에 근접시키기 위한 미적창조과정다.
수필은 자기 체험에서 인기된 인생의 보편적의미를 비쳐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그것이 바로 수필이 노리는 형상화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 거울속에서 예술적향수를 느끼면서 자성하게 되고 계발을 받아 자기 인생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게 한다. 이렇듯 수필이란 인생미학을 창출하므로 생활수기와도 다르다.
   수필작가의 창조적사고와 의식의 변화는 곧 작품의 창조성과 문학성으로 이어져 나타난다. 례문에서 작자의 개인적정서나 체험을 보편적인 공감대를 전제로 자기의 체험을 재치있게 공유화하였다. 쌀로 밥짓기는 지능인이면 다 배워낼수 있지만 쌀로 술을 빚어 쨍ㅡ 취하게 하는것은 확실히 복잡한 기술이다.
    수필이 사실 그대로의 기술이라면 무의미한 기억의 재생일뿐이다. 사실을 완벽하게 반영하는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단순한 사실의 라렬로는 아무런 감동을 느낄수 없다. 즉 재생적상상과 생산적상상이 작가의 경험적사실과 한데 어울려 이루어진것이 바로 수필이다.
    수필에서 체험은 바탕이고 감수가 생명이지만 독자의 공감대를 념두에 두고 선재해야 한다. 해저무는 창가에서 석양을 보며 생각을 불태운다거나 밤새워 풀벌레소리에 귀기울이며 어떤 사색에 잠기는 일은 붓쟁이가 아니라도 다 가능하다. 그만큼 작가는 선택한 제재의 자기동화(自己同化)보다 독자화해야 수필이 공적인것으로 살아난다.
    제재에의 동화란 물아일체(物我一体)의 동질화(同质化) 현상이다. 이는 철저하게 나를 먼저 비움으로써만 가능하다. 비운자리에 다시 채우는 정감, 그게 곧 나의 내심세계의 진실이다. 그 주제의 함의가 인간성 즉 인간화된 작가의 개성적품질이고 인생자세이다.
    3) 수필창작의 기법
    (1) 수필의 발상: 발상은 창작동기 또는 실마리를 잡는 두뇌작용으로서 착상, 령감, 구상(아이디어)으로 표현된다. 수필에서의 발상은 일반적으로 경이와 충격에서 얻어진다. 세인들이 일상적으로 겪거나 볼수 있는 일반적현상에서 자기만의 받아안은 충격과 경이로움, 그것은 독창성을 띤 수필의 주제를 떠받치는 제재가 된다.
    수필은 어떻게 쓰이는가?…비유해 말하면 한 사람이 늘 하던듯이 길을 가는것이 곧 산문과 같다고 할수 있다. 산문은 생활속에서 가치있는 그런것을 써낸다. 알심들이지 않고 지어내지 않으며 더구나 골머리를 앓지 않으며 뇌즙을 짜내지 않는다. 산문은 최종적으로 감각을 좀 쓰고 정감을 좀 쓰며 어떤 맛을 좀 쓰면 된다. 그런데 조금 쓴다는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잊을수 없게 한다.
   시가 불쑥 튀여나온다면 소설은 대뇌의 긴장한 로동의 결과이다. 산문이 태여날 때는 특별하다. 산문을 하늘에 구름같다고나 할가. 어디서 오는줄 모르고 언제 생겨날지 모른다. 당신의 생활, 당신의 마음은 씻은듯 맑고 푸른 하늘이다. 당신이 머리들면 산문의 편단들이 방불히 흰구름처럼 이미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깨달음에서 온것이다. ( ≪산문≫ 1997년 제2호)

   한편 구름덮인 하늘아래서 번마다 꼭 비가 오는것은 아니다. 우뢰울고(정감의 격렬한 파동?) 번개가 번쩍거려도(사색의 순간적방전?) 한바탕 심령세계만 소동할뿐 비는 끝내 내리지(글이 잘 이루어지지?)않을 때가 흔히 있다.
생활체험(구름)속에 잠재한 모종 현상, 사물과 나의 정감, 사색이 충격적으로 “방전”되여 잠간 천둥(창작충동의 격발?)친 것뿐일수 있다. 때때로 떠오르는 쪼각구름 몇송이를 보고 애써 끌어모아서 비를 내리게 하려고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 쪼각구름은 하늘을 수놓는 한두점의 풍경일뿐 비구름이 아니다.
   열개의 축적에서 하나를 골라쓰면 좋은 글이 될수 있고 세개를 루적하고 하나를 골라쓰면 꽤 읽을만한 글이 되며 둘을 저장하고 곧 하나를 골라쓰면 옷소매를 잡고 팔꿈치를 보는격이 되고 하나에서 하나를 쓰면 곧 번대머리가 중이 되는격이라 근근이 재료일뿐이다.
    가) 발상의 전제: 수필을 위한 발상이 자연발생적일수도 있지만 발상에 선행하는것은 관찰과 사색이다. 수필의 시작은 모든것에 애정을 주느냐에 달려있다. 모든것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그 마음에 다가오는것이 있게 되는데 그것이 곧 글감이 될수 있다. 늘 보는것일지라도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보느냐 않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관심과 사색을 달리기전에는 보이지 않던것들이 내가 관심을 주게 되면서부터 특색 있어 보인다. 그것들을 단순히 보이는것들로만 보지 말고 그것들의 독특한 소리, 빛깔, 모양을 작가적인 촉각으로 듣고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잡아내는것이 수필적핵의 발견이다.
    나) 발상의 기법: 수필착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착상은 모방, 선택, 분석, 종합, 리상화의 론리구조속에서 그 씨앗을 품는다. 꾸준한 독서와 사색과 체험의 축적에 의한 지적인 자산을 가지고있는 사람에게서만 일어난다.
   ① 체험적발상: 수필의 발상은 체험의 충격과 파동에서 출발한다. 문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지만 수필은 자기의 이야기이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인만큼 지성인은 직접적인 경험의 세계에서 무시로 불현간에 발상의 계기를 만날것이다.
   ② 상상적발상: 문학은 상상의 소산이고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의 존재이다. 상상의 세계는 있을법한 가능성의 세계로서 사물을 직시하는 눈이 표면적이라면 상상은 립체적공간을 의미한다. 자기가 가지고있는 지식이나 감상, 체험들을 새로운 정서로 용해시켜야 한다.
   ③ 정서적발상: 많은 감정중에서 유독 강하게 지배하고있는 분위기가 정서이다. 개성적인 인간이므로 정서에 짝이 있을수 없다. 시인은 시적령감을 통해서 작품을 탄생시키지만 정서를 폭발시키여 암시와 상징, 정과 한, 삶의 진실과 고뇌를 사색하고 관조하면서 새로운 예술경지를 펼친다.
   ④ 편중적발상: 느낌에는 짝이 없다. 같은 생활소재라도 기호에 따라 시각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연에만 관심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인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자기 관심분만을 애착함으로써 그 분야의 전문적인 식견을 수필로 나타낼수 있다.
   ⑤ 직업적발상: 오래동안 한가지 일을 하다보면 모든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리해하는 단계에서 직업적인 견해가 우선적으로 따르는수가 많다. 나무를 보았을 때도 교사는 교사로서의 직업의식이 발동하고 기술자는 기술자적인 직업의식이 발생하기마련이다.
    (2) 주제설정: 주제는 동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동기자체가 바로 주제는 아니다. 주제는 작자가 수필을 쓰려고 하는 의도나 목적과 관련되지만 목적 자체도 아니며 주제가 작자의 인생관, 세계관 또는 사상에서 이루어지지만 인생관, 세계관 그 자체만도 아니다.
   주제설정의 기준에 네가지가 있다. 우선 되도록 한정적인것이라야 한다. 주제한정은 사상의 약속이다. 나무를 그림에서 소설이라면 뿌리, 줄기, 가지를 있어야 할 제자리에 완벽하게 갖추어야 하겠지만 수필에서는 곁을 쳐서 복판을 울리는 수법을 잘 쓴다.
    주제는 처리가능한것이라야 한다. 경험한 그 실체는 창조의 동기가 된다. 수필은 작가의 생활일상을 재음미, 재조명함으로써 의미화가 가능한 문학이기때문에 주제는 독자가 공감할수 있는것이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우에 상상력, 련상력, 직감력, 분석력, 추리력, 창조력, 유모아 등 일곱가지의 자질도 겸비해야 할것이다. 주제설정의 요령을 다음같이 귀납할수 있다.  
   ① 가설추리: 가령 세계적명화가 도미니크 앵그르의 비너스나, 샘, 목욕탕 등 명화에 녀인들은 어이하여 모두 풍만한가? 왜 정신적으로도 가냘픈 심성의 질이 아니고 근육질일가? 이런 가설에서 련상을 발휘해 고대미의 기준과 현대미의 기준에 대해 사색해 볼수 있다.
    ② 류사현상; 자연을 사랑하다보면 어떤 느낌을 얼마든지 정리해볼수 있다. 그리고 습관이나 공통된 생활현상에서 류사성을 발견해 낼수도 있다. 이소프우화 ≪락타와 양≫의 이야기에서 사실을 통해 능력의 한계와 각자 장단점이 있다는 도리를 류추해 볼수도 있다.
  ③ 대비현상: 가령 사람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접근이 가능할수 있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서 얻을수도 있다. 례컨대 조선족은 톱을 당기면서 자르는데 중국식톱은 톱이가 반대방향으로 되여 밀면서 자른다든가, 스픈의 사용에서도 미국인은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 사실 등 대조에서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할수 있다.
   ④ 의문현상: 모든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이 있다. 인간사회는 원래 곤혹스럽고 접수할수 없는 의문투성이로 굴러가는데 스스로의 자문이 없을수 없다. 인생현장을 조명하고 파헤치려는 마음만 가진다면 의문의 갈구리를 들고 인생의 미궁속에서 금싸라기같은 수필소재를 파낼수 있다.
   ⑤ 역설적착상: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반대로 생각해보는 착상이다. 가령 갑부들이 재산을 끌어 모으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로심초사하는 현상과 비록 가난하나 평화가 깃든 집에서 살며 가난이 죄라지만 꼭 불행만은 아니라는 도리를 역설적으로 증명할수도 있다.
   ⑥ 고정관념: 가령 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다 보면 슬픈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독서의 계절중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⑦ 시점변화: 사물을 관찰하려면 전방위적으로 해야 하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하다.
   ⑧ 풍속착상: 낡은 지식, 낡았다고 생각되는 사고, 사상, 낡았다싶은 인습이나 풍속에서 새로운 인성의 양상을 발견할수도 있다. 가령 첫눈길을 걸을 때 앞에서 걷는 사람의 발자국을 밟으려는 본능적행동에서 인습의 내막을 깊이 파헤칠수도 있을것이다.
    ⑨ 결합착상: 이 사고법은 이것저것 이질적인것들을 서로 결합시켜보는 사고법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고있는것에 관계없거나 혹은 인연이 먼것들을 끌어들여 둘러맞추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생길수 있다.
    ⑩ 사회문제발굴법: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보면 새로운것을 창안해 낼수 없다. 사회페단을 전문 발굴하여 볼 필요도 있다. 수필은 작가의 인생모습을 투영시킨 글로서 주변인물이 아닌 작가의 심경, 리상과 철학, 인생관, 교양, 취미까지도 드러낼수 있다.
    (3) 수필의 기법: 수필의 기법이라 하면 흔히 발상의 기법, 주제설정의 기법, 소재선정의 기법, 서두쓰기의 기법, 제목붙이기의 기법, 구성의 기법, 문장표현의 기법, 해학의 기법, 상상의 기법과 마무리기법 등을 포함시키고있다.
   ① 류추의 기법: 서로 다른 사실들을 몇가지 렬거하고 공성을 류추해내는 기법이다. 이러한 기법은 수필에서만 가능한 수법이다.
   ② 순서점진식기법: 시간순서에 따른 구성은 려행수필에 많이 쓰이고 공간순서는 소설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두가지 구성법을 혼합될 때 참신한 맛을 줄수 있다.   
   ③ 이야기식수법: 수필의 계기로 되는 사건을 긴박감나게 소묘하고 곧 해석에 들어가는것인데 친근한 글로 접수될수 있다.
   ④ 교훈식기법: 주제를 끌어내기 위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쓰면서 생활적정서를 불러일으키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법이다.
   ⑤ 주정토로기법: 걷잡을수 없이 정서를 쏟아내는 기법이다. 긴박감과 충격속에 계속 정서를 쏟아내여 감동과 공명에로 이끌어간다.
   ⑥ 묘사형기법: 정서가 풍기는 경물묘사로 주제사상에 배경을 설치하는 기법이다. 이것은 인간적공감성에 바탕을 둔 기법이다.
   ⑦ 시적기법: 명시 한구절 인용하여 시작을 떼여 면면한 사색으로 정제되여 간결하면서도 철리시처럼 글을 짜나가는 기법이다.

례: 생명의 줄이 끊어질 때
      너도 그 한가닥이라면
      울리는 조종(弔鐘)은 너를 위해서도 울리나니
      묻지를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⑧ 의론식기법: 주장이나 결론으로 시작한다.

   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말은 정신적가치를 중요시할 때 흔히 인용되는 금언이다.   

    ⑨ 인용형기법: 유명한 말이나 명언 등을 인용하여 시작한다.

    례: 죽은 녀인보다도 더 불행한 녀인은 잊혀진 녀인이라는 말을 누가 했던가? 살아있는 존재로서 곧 잊혀진다는것은 슬픈 조우이다.

    ⑩ 해설형기법: 해석으로 시작한다. 제목의 뜻, 집필동기, 말풀이 등이다.

    ⑪ 가정형기법: 가정적설문으로 시작한다.

    례: 인간의 타락요인중에서 가장 본질적인것은 무엇일가? 이 현념적인 물음에 나는 얼마나 정확하게 대답할수 있을가?  

    ⑫ 고백형기법: 자기의 약점을 곧이곧대로 고백하는것으로 시작한다.

     례: 나는 남이 다 가지는 장기중에서 하나도 가진것이 없다. 장기가 뭐냐고 물으면 어정쩡하게 독서라고 말한다. 독서가 장기일수는 없음을 알면서도 나로서 쉽게 나가는 말이다.  
 
    ⑬ 심경토로법: 본론에 앞선 작가의 느낌이나 현재의 절절한 심경을 토로하는것으로 시작한다.

    례: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고 한다.  첫사랑을 마지막 사랑으로 장식하겠다던 맹세들은 어찌하여 변질하는지 생각해본다.

   ⑭ 전도적서술법: 결론적인 의의 또는 중심사상을 우선 문장 첫머리에 제시하고 거기에서 하고싶은 말을 풀어나가는 기법이다. 이 서술방법은 다음의 서술내용을 알고저 하는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의키고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⑮ 문제제기법: 사회적인 열점화제로 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글을 시작하는것이다. 독자는 저절로 그것의 해답을 사색하게 한다.
    어떠한 기법으로 쓰든 한편의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진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수필은 정서적이미지와 지적이미지의 결합으로 되여있다. 그중에서 수필은 정서쪽에 무게를 실었다. 여기에 신변잡기라는 취약성이 끼여들어 수필의 질적저하를 불러온다. 한국의 한상렬선생의 수필을 례로 들어보자.

    우리들은 두가지의 시계를 갖고있다. 하나는 문자판우에 바늘이 돌아가며 시각을 알리는 아날로그형이요, 또 하나는 직접 숫자가 나타나서 시각을 표시해주는 디지털형의 시계다. 아날로그형의 시계는 하루의 시간을 문자판에 공간화시켜놓고 그우를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돌아가도록 되여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할수 있을뿐더러 영속적인것으로 시간을 파악한다.
    그런 시침이나 분침을 보고 시각을 알아낸다는것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해나 별의 위치로 시각을 어림짐작하던 우리 옛 선인들의 시간관념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이와는 달리 디지털시계는 보는 시각이 읽는 시간으로 바뀌여있다. 이는 시간을 한점으로만 알려 주어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략)
    3) 수필의 문체
    수필을 씀에서 함축성이 있는 간결체, 설명적요소가 있으나 군더더기가 없는 만연체, 호방, 침착, 진중, 강직 등 힘차고 굳센 성격을 띤 강건체, 혼자하는 말처럼 문장의 성격이 순하고 부드럽고 우아하며 지적이라 할수 있는 우유체, 실용적인 성격을 띠는 글로서 표현이나 묘사에 구애없이 뜻의 전달과 리해를 기하는 일에 충실한 건조체 등은 작자의 개성, 애호, 해당 수필의 내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택되여야 할것이다.
    얼핏 보면 문장이 화려하나 자칫하면 말장난이 되기 쉽고 대상의 본질을 흐리는수가 있고 말초신경에 머물뿐 중추신경까지 전달되지 않아 감동을 주지 않는다. 례문을 보자.

          서른아홉의 노래/주부

    강물은 나의 모든 것을 싣고 영원한 생명같이 흐른다. 돌아오지 않는 무지개되여 먹구름처럼 어두운 가슴속을 수놓으면서 아득한 사련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은빛, 금빛 찬란히 번득이며, 저녁노을에 황홀하게 빛나는 약동의 생명이던 나의 사랑의 고뇌, 삶의 진실과 환상으로 아롱지는 꿈의 현실이다.

   례문은 갖은 형태의 부사어를 동원하여 미사려구를 꾸미고있다.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것이 없고 알맹이 없는 말들이 말초신경만 건드린다. 구체적인 삶의 실체가 없는 말장난이다. 수필은 산문정신으로 쓰는 글이다. 산문정신이란 사실개념에 바탕을 두고 분식하거나 과장하지 않는것을 말한다. 수필은 론리로서가 아니라 정서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공감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인생작업이기에 감지할수 있는 생생한 감동을 창출해내야 한다.
   4) 수필의 형태
   대체적으로 지성적사고의 능력을 전제로 한 철학적, 사변적수필을 중수필이라 하는데 이에 상대하여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쓴 경수필도 제맛과 멋이 있지만 수필로서의 품위와 문학적함량은 력대로 중수필에서 체현되였다.
    중수필은 시작부터 리지적이고 론리적이며 지성적이고 표현이 직설적인것이 특징이다. 하여 신변잡사보다 공성을 가진 사회문제나 인성문제를 격조높이 토로한다. 그만큼 랭철한 판단력과 리성적인 태도를 음페하지 않고 론리정연하게 기술하여 충격적인 사색을 선물한다. 그러나 너무 학술적이면 생경하고 메마른 감을 줄수 있다.
   창작태도에 따라 감성적이고 주관성격이 다분하며 사색이 위주인 수필은 서정적수필이고 지성적 객관적 성격을 지니되 통찰력에 근거한 비평적인 수필은 보다 론리적이고 지적이다. 내용상에서 자연, 인생에 대한 철학적사고를 쓴 사색적수필, 작가개인, 문단상황, 기타 문화예술 등에 대한 소감을 쓴 비평적수필, 주관적리념을 배제하고 사실만을 기술한 기서성수필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상생활수필, 잡기수필, 경물수필, 서정수필, 사설수필, 기행수필 등 이름이 붙기도 하고 형식상에서 서술체, 일기체, 서한체, 기행체 수필 등으로 나뉘기도 하고 진술방식에서 크게 교양적수필, 극적수필, 서정적수필, 서사수필로 나누기도 한다.
   (1) 교양적수필: 인성, 륜리, 도덕, 사회페단 등에 대한 작자의 사색과 비판을 통해 사람들의 심령을 다스리려는 수필이다. 그 내용, 어조에서 필자의 인생관이라고 할수 있는 신념과 삶의 태도 등이 드러난다. 독자에게 쾌락보다는 교훈을 주려는것으로서 공리적이다.
   (2) 극적수필: 서술하려는 사실자체가 다분히 극적으로 서술되는 수필이다. 작자는 극적효과를 위해 어떤 수난을 겪었을 때나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여주면서 독자의 경이를 끌려한다. 계용묵의 수필 ≪구두≫가 좋은 례문으로 될수 있다.
   (3) 서정적수필: 일상 생활현상에서나 자연에서 받은 감수를 서정적필치로 토로하는 수필이다.

    은혜로운 가을해살의 축복속에 익은 가을의 들녘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황금빛 철철 넘치는 논벌이 그렇게 흐뭇하게 안겨올수 없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기폭처럼 옷자락을 날리며 추억을 지팽이로 삼고 옛고향의 논둑길을 재이듯 걸어본다. 노랗게 영근 벼이삭들이 가득히 황금빛 파도를 이루어 일렁이고있다. 잘 여문 벼들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술렁대는 논벌끝엔 어느 자심한 농부가 만들어 세워놓은듯한 허수아비가 어서오라고 싱거운 두팔을 펄럭인다……(필자)

    (4) 서사수필: 필자가 겪은 생활체험 혹은 예상외의 조우를 사실적으로 서술하면서 정감을 곁들이는 수필이다. 이런 수필의 원천은 다양한 생활이다.
    작자의 마음의 파동을 어떻게 수필화 할것인가? ≪문심조룡≫에 문심(文心)이야말로 수필을 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글쓰기의 바른 마음을 가질것인가에 유익한 계발을 주고있다. 문(文)은 예술적인 마음(心)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며 조룡(雕龙)은 곧 룡(龙)의 문양을 나무에 새기는(雕)것에 비유될만큼 수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학임을 말하고있다.
    문심이란 바로 문학활동에 있어서 마음의 작용(为文之用心)을 의미하는것으로서 “마음으로부터 문학작품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문학창작이나 감상, 비평 등 활동이 작가가 언어를 매개로 하여 만들어내는 제반예술활동을 위한 마음의 전체적인 움직임, 인간의 정신과 감정 및 령감의 작용이다.
    인간의 심미추구가 문학을 탄생시켰다. 수필은 무엇보다 마음이여야 한다. “마음에 느낌이 생기면 언어로 확립되고 언어가 확립되면 문장으로 표현되는것은 자연스러운 리치이다.” 만일 마음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면 바람 한점 없는데서 연을 날리려는것과 같다.
    수필창작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생동한 계시를 주는 이런 글이 있다. “만물을 살펴보면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아름다운 무늬를 지니고있다. 룡과 봉황은 그림같은 아름다운 무늬로 상서로움을 나타내고 범이나 표범도 아름다운 문채로 자태를 이루고있다. 구름과 노을의 오묘한 빛깔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능란한 선과 색상을 릉가하고 꽃으로 장식된 풀과 나무는 비단짜는 사람의 솜씨를 기다릴것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
    류협이 말하고자 한것은 “문(文)”이 시청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만물의 형상인것처럼 사람은 마음을 움직여서 문화를 창조하는것으로 인류문화의 본체는 바로 사람의 마음(心)이라는것이다. 론어에 “심재불언 시이불현(心在不焉 视而不見)”이라 하였는데 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나타나지) 않는다고 한것과 같이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움직임, 다시 말해서 쓰기전에도 감동, 쓴 후에도 감동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그 마음이 솔숲에 이는 바람같으면 그런 수필이 나올것이요, 뜨거운 해빛아래서 서늘한 매미소리를 들으면 그런 수필이 나올것이다. 한편의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는 수필이 진솔한 인간체험의 언어적형상화로 그 자신을 진심으로 드러내기때문이다. 그래서 수필문학은 두말할것도 없이 정서적이미지와 지적이미지의 결합으로 되여야 하는데 지금은 수필은 정서쪽에 기울어지면서 신변잡기가 끼여들어 수필의 질적여하를 불러온다.
    오늘 수필작가들이 나아갈 길은 어떤 길이여야 할가? 무엇보다 신변잡기의 차원을 뛰여넘어 현실생활의 맥락안에서 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하여 의미로운 삶의 제공하는 장르로 거듭나야 한다. 수필도 진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진실성은 장르로써의 문학성을 지닌 미의식으로 발휘되여야 존재의 리유가 당당해진다. 그저 류행되는 장르로서가 아니라 독특한 작가사유, 인생을 말하면서 자기만의 감수를 문학성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수필은 개체의 체험과 감수, 정서를 문자화하지만 문자밖의 어떤 어떤 의미를 표술하기 위해 상징같은 문학적장치를 동원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어 떤 이야기, 감수를 쓰더라도 그 일상성을 탈출하지 못한다면 수필은 시대성을 띠지 못하게 될것은 자명하다. 문학은 사회와 함께 존재하고 시대와 함께 발전 하는데 그냥 마음의 골방에서만 맴돌지 말아야 한다.
    분명한것은 시대적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길이요, 가면서 통찰하고 사색하고 해석하는 길이라는것이다. 수필이 재미와 감동을 주는 몫도 있지만 사회나 인생에 대한 성찰이나 사색, 명상의 글임임을 상기한다면 인간의 가치, 인간애, 인간의 본성, 인간의 능동성, 개성중시라는 인본주의적인 접근을 통한 인간성의 문화를 꽃피우며 새 인문환경속에서 륜리관 탐색도 진행되여야 한다.
    수필의 뿌리에는 쓰는 이의 인간고,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심, 사회발전사에 대한 믿음을 앞세운 선의적비판, 내향토, 내겨레에 대한 소망과 사랑이 슴배여있어 누구나 자기일, 자기 마음을 쓴듯이 따스한 정을 느낄수 있도록 해야 수필이 수필구실을 할수 있다.
   흔히 칼럼과 수필을 거의 비슷하게 보는데 기실 대동소이한것이 아니다. 신문, 잡지의 특별 기고. 또는 그 기고란. 주로 시사, 사회, 풍속 등에 관하여 짧게 평론하는것으로서 신문과 잡지들의 정해진 지면에 련재되거나 기고된 기사해설 등을 통털어 칼럼이라 부르는데 기사와는 달리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는만큼 수필성도 고유하고있는것은 사실이다.
    수필은 유일하게 사실을 근간으로 하는 문학으로서 외연이 크기에 칼럼이 수필의 범주에 드나들 소지가 고유한다. 수필은 일상에서의 미적가치를 정감적으로 발굴하고 정서적으로 표현하므로 일상성이 원천이 되고 칼럼은 사회생활에서의 이런저런 현상에 대하여 리치를 따져가며 론평하는만큼 사회적편달이 취지로 된다. 여기서 칼럼과 수필의 완전히 동질의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칼럼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숨긴채 다른 사람의 견해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 있다. 칼럼은 어떤 제약도 없어보이지만 고도의 형식미가 있으며 철학적사색을 바탕으로 해야 제격이다. 칼럼 혹은 사회칼럼의 구별점을 더 구체적으로 대비해 보자.
    첫째로, 수필은 출발점이 “나”이므로 개인적이고 개성적이며 정서적이다. 칼럼의 출발점은 “우리”이기에 대중적이고 사회적이며 론리성이 우선한다. 칼럼, 사회칼럼에는 수필글의 바탕인 진지하고 풍부한 정서가 개입되지 않는다. 주관적감수보다는 객관적인 론거에 치중하는것이 특징이기때문이다.
    둘째로, 수필은 일상에서의 체험성이 주선이지만 사회칼럼은 학문적이고 사변성이 강하며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설파한다. 사회수필에서 상징은 구체적인것을 추상화함으로써 여운을 주며 문예적인 효과도 얻게 된다.
    셋째로, 수필과 칼럼의 구별점은 문체와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사회칼럼의 문체는 강경하다. 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표현도 론리적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수필의 문체는 유연하다.
    넷째로, 미적가치와 론거에서 구별된다. 수필이 일상에서의 미적가치를 추구하고 전달하려는데 반해 칼럼은 사회현상에 대해 론평하는 평론인만큼 사회성이 기조가 되고 론리적이라면 수필은 자아표현으로서 서정성이 생명이다.
    칼럼은 론리적이고 수필은 형상적이다. 칼럼은 사실적이고 보고성적이나 수필은 예술상상력이 수요된다. 수필은 정감의 산물이기에 가슴으로 쓰는 글이라 하며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언어가 선호된다. 칼럼은 론리의 그물로 엮어지기에 머리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정보전달, 사상의 교류가 칼럼의 임무라면 자기 정감의 표백과 감동의 부여가 수필의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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