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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제5편)
2013년 02월 21일 08시 26분  조회:3972  추천:0  작성자: 훈이

 

                                           호텔 카지노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호텔은 반드시 1층 카지노를 통해야만 객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우리 속담으로 풀면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게》 꾸민 곳이 카지노 호텔이다. 호텔 문을 들어서니 영화에서 자주 보는 광경이 필자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호텔 카지노에 가장 많이 배치된 것이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만져볼 수 있는 슬럿머신이다. 그 외 작은 공을 회전시켜 숫자나 색을 맞추는 룻렛, 주사위를 던져서 하는 박카라, 트럼프로 내기하는 포커판도 있다. 카지노에 없는 것이 딱 두 개인데 그것은 창문과 시계다. 창문이 없으니 날 밝은 줄 모르겠고 시계가 없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 바로 카지노다. 한마디로 카지노는 시간 개념이 배제된 곳이다. 

 《라스베가스에 와서 카지노 안 하면 바보》라고 했으니 바보 면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손을 대봐야지. 필자 내외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슬럿머신을 택하기 시작했다. 한 번 누르면 20불씩 나가는 건 도저히 할 수 없고 5불씩 나가는 것도 잠깐이면 몇 백 불 나가니까 포기해야 했고 1불씩 나가는 것 역시 초보자에겐 부담스럽고 50센트나 25센터는 숙련된 담에 하는 것이고 5센트도 별로 파악이 안가서 결국에는 필자 내외가 택한 것은 우리 돈으로는 1전에 해당되는 1센트였다. 한 사람이 10불씩 나눠 갖고 시작한 슬럿머신인데 아내는 거푸 10분도 안되어 10불을 그냥 기계에 넣어주고 말았다. 카지노에서 《돈이 담배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흡연이 허용된 카지노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돈이 날아난다는 뜻이다. 필자는 아마 타고난 운이 있었는지 슬럿머신 단추를 누를 때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짧게 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때로는 100배 되는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도 있었다. 소리만 요란했지 판돈이 적어 딴 돈이 적었다. 1센트 백배면 고작 10불이다. 1센트 판돈으로 노는 놀이에서 한번에 100배를 딴다는 것은 아주 운이 붙었다는 것으로 된다. 100배를 딸 때마다 곁에 앉은 백인 할아버지가 나한테 엄지손가락을 내들며 《굿!》을 연발했다. 아내는 아예 내 곁에 붙어 앉았다. 필자가 구경만 하지 말고 다른 기계에서 해보라고 하니 아내는 운이 없어 돈만 까먹기에 포기했다고 한다. 인젠 필자에게만 승부가 걸렸다. 첨엔 운이 좋았다. 10불로 시작한 게임이 80불로 늘어났다. 이때 아내가 제동을 걸었다. 

 《피곤한데 그만 하고 갑시다.》

 《아니야. 지금이 기계가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야.》

 기계가 열을 올린다는 말은 가이드한테서 들은 말이다. 가이드는 호텔 카지노에서 슬럿머신을 선택할 때 손으로 만져봐서 기계가 뜨거운 것, 기계 앞에 놓인 담배 재떨이에 꽁초가 수북한 것을 택하라고 했다. 기계가 열이 올랐다는 것은 누군가 한참 놀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담배꽁초가 많다는 것은 누군가가 기계 열만 올리고 따지 못해 애꿎은 담배만 연신 태웠다는 증거로 된다고 했다. 가이드는 열을 올렸지만 돈이 안 나온 기계를 선택하면 돈 잃을 확률이 많이 떨어지고 오히려 돈을 딸 확률이 높아진다고 계시를 주었다.

  필자가 선택한 것이 바로 그런 기계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내가 또 제동을 건다.

 《가이드 말이 판돈 회수하면 무작정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나요? 지금 당신은 판돈에서 8배나 더 땄어요.》

 아내가 아주 《쉬》를 날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본 《도박 지침》에 바로 《무작정 일어나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 지침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시간 이상 하는 것 보다는 5분 이내 따든지 잃든지 그만 두는 것이 돈을 따는 길이다. 오래하면 한 시간 이상 놀면 따는 사람 보다 잃는 사람이 훨씬 많다. 땄을 때 그만 두어야 한다. 딴 금액이 조금씩 줄고 있으면 이미 본전 보다 조금이라도 딴 상태라면 무조건 일어서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서 그냥 단추를 눌렀더니 돈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확률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한다. 흘끔 뒤 돌아보니 어느새 자리를 떴는지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먼저 객실로 올라간 것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필자는 담배 한 대 붙여 물고는 웨이터에게 맥주 한 병 청했다. 호텔 카지노에선 술과 음료수는 무료다. 단, 웨이터에게 팁으로 1불 주어야 한다. 맥주 한 모금 넘긴 후 필자는 도정신하고 슬럿머신에 마주 앉았다. 운 좋게 100배 되는 판이 여러 번 터졌다. 딴 돈은 150달러 선을 넘어섰다. 판돈에서 15배를 딴 셈이다. 이 때 낯모를 50대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내 곁에 다가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굿!》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얼굴 모양을 보니 동양계였다. 필자가 답례로 고개를 끄덕이니 그 사람이 나한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카지노 거지》다. 《카지노 거지》란 카지노에서 돈을 잃고 집으로 갈 수 없는 신세지만 그냥 동냥으로 카지노를 노는 도박중독자를 일컫는 말이다. 

 한창 열을 올리는 판에 《카지노 거지》가 나타났으니 재수 없는 일이다. 호주머니에 있은 잔돈 내팽개치듯 주어버리니 연신 고맙다고 허리를 굽실거린다. 어서 썩 꺼지라고 손을 홱 내저으니 입으로 《땡큐!》를 연발하면서 물러간다. 그 녀석 때문인지 그 뒤로 필자의 도박 운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돈 떨어지는 소리가 드물어지고 딴 돈 액수가 줄어든다. 이럴 때 《한 번만 더, 한 번 더》 하는 식으로 주춤하지 말고 무작정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도박 지침》이 가르치고 있지만 필자는 그 가르침을 무시했다. 한 것은 돈 떨어지는 소리가 드물어지는 대신 대박의 《7777》 숫자 맞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숫자가 돌아가다가 멈춰서는 순간마다 기계는 단박 대박이 터질 듯 굉장한 소리를 냈다. 이것이 도박심리를 자극하는 줄 모르고 필자는 곧 대박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연신 단추를 눌러댔다. 돈 액수는 곤두박질하듯 순식간에 본전에 가까운 선으로 떨어졌다. 에라, 대박은 그만두고 몇 십 불만 따고 가자. 《도박 지침》에는 이런 심리를 도박에 빠져드는 심리, 종국에 가서 돈을 몽땅 날리게 되는 심리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필자로서는 스스로 주체할 수 없었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단계가 도박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단계》라고 한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단계》라고 한다. 필자는 딴 돈 다 잃고 판돈 10불마저 거의 밑바닥이 날 때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단계》에 들어섰다. 대박의 숫자에 육박하면서 굉음이 터질 듯 말듯 할 때 필자는 판돈마저 몽땅 날렸다. 단박 대박이 터질 순간이라 필자는 지갑을 넣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 때면 사람이 도박을 노는 것이 아니라 도박이 사람을 삼킨다. 온 호주머니를 다 들췄으나 지갑이 없었다. 분명 아내가 뽑아간 것이다. 동동 발을 구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카지노를 하는 사람이 몇 명밖에 안되었는데 우리 관광 팀에 속한 분들이 아니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 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10불이라고 꾸고 싶은 생각까지 치밀었다. 이 날 필자는 도박의 유혹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했다. 돈을 넣으라고 깜박거리는 슬럿머신을 멀거니 내려다보면서 필자는 언젠가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한 여인이 있는데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카지노를 찾았다. 남편은 재미로 놀다가 어디론가 자리를 뜬 사이 단박 대박이 터지려는 순간 그 여인은 필자 경우처럼 돈이 떨어졌다. 다만 그 여인과 필자의 판돈 액수가 다를 뿐 경우는 마찬가지였다. 돈 있는 여인인지라 판돈은 3천불이었다. 그 여인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남편을 찾았지만 남편은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찾을 길 없다. 그 순간이 사람 말리는 순간이라고 했다. 남편을 《죽일 놈, 살 놈》 하고 속으로 욕하고 나중에 저주까지 했지만 기다리던 남편이 나타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백인 노인에게 자리를 내 주었는데 그런데 이럴 수가. 그 자리에 앉은 백인 노인이 몇 분 만에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액수는 5만 불이였다나. 그 여인은 그냥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단다. 후에 그 여인이 하는 말이 대박이 터지는 순간 눈앞에 벼랑이 있으면 떨어져 죽을 생각까지 들었단다. 도박 중독자는 대체로 크게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즉, 희열, 패배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절망! 그 여인은 이 세 단계를 다 거쳐본 분이다. 필자의 경우 그 날 아내가 지갑을 빼내지 않았더라면 대박을 기대하면서 줄기차게 돈을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그리곤 허망에 빠지고 나중엔 절망도 절감했을 것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내가 그 날 지갑을 빼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긴 그 당시 속으로 아내를 실컷 욕했지만. 

 그날 아쉬운 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필자는 그만 카지노의 《미아》가 되어버렸다. 우리 관광 팀이 투숙한 호텔은 여덟 개 호텔 건물에 도합 5천여 개 객실을 가진 호텔인데 건물마다 일층 카지노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도박에 정신 팔다나니 필자가 투숙한 객실이 어느 건물에 속했는지 알 길이 없다. 카지노 호텔은 며칠 전 미리 예약해야 하기에 여행사측은 객실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관광객 이름으로 예약한다. 때문에 호텔 측에 필자의 기록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있다고 해도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무작정 절로 방을 찾아야 했다.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큰 카지노에 필자만 남았다. 필자가 카지노를 내려올 때 기억을 더듬으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지만 어느 출구나 다 똑같이 생겨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다. 객실을 찾지 못하면 큰일이다. 밤을 새야하는 것을 둘째 치고 관광 팀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필자는 진짜 라스베가스 《미아》로 남게 된다. 한참 헤매고 다니는데 호텔 종업원 복장을 입은 흑인 남성이 구세주마냥 필자 앞에 나타났다. 뭐라고 묻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아 필자는 호주머니에서 객실 키를 꺼냈다. 호텔 종업원은 키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뭔가 더 내놓으라고 한다. 필자가 호주머니를 들추니 자그마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객실 배당 시 가이드가 준 것이었다. 호텔 종업원은 그 종이를 보더니 《오케!》를 부르면서 필자를 안내했다. 아마 그 종이에 객실이 속한 건물 이름이 적혀 있었던 모양.  결국 그 종업원 덕으로 필자는 간신히 카지노 《미아》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아내가 눈을 흘겼지만 필자는 피곤하지만 작가로서 도박꾼 심리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경험 한번 했다고 생각하면서 꿈 나락에 빠져들었다.  

 

                                   나오면서

 

  라스베가스를 나오면서 나름대로 라스베가스에서 받은 인상과 가이드 소개를 정리해 보았다.

 스베가스가 있는 네바다주는 표고가 높고 습기가 적고 기온이 높아 고혈압이나 당료 환자들이 살아가기엔 최적의 환경. 그래서 은퇴한 노인들이 몰려온다. 그들에게는 라스베가스가 천국.》

 《과거에 네바다 주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였다고 한다. 주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되기도 하고, 핵 실험장으로 대여하기까지 했다는데 지금은 라스베가스가 있어 가난의 모자를 벗어버렸다.》

《절제가 강요되지 않는 도시에서 인간의 삶은 파괴될 수도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삶 위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부가 축적되고 있는 라스베가스는 그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적 도덕률의 전형, 희망과 실망, 절망이 공존하는 곳.》

7시가 넘어 눈을 떠 아침 창문을 여니 어젯밤의 그 도시는 간데없다. 여느 도시와 달리 출근길 북적대야 할 거리에 노숙자 한두 명 어슬렁댈 뿐, 인적도 차량도 없다. 간 밤 카지노 기계 앞에서, 온갖 화려한 쇼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불태우고 동트는 태양 아래 허망하게 서있는 도시를 뒤로하고 떠나왔다-어느 여행자의 일기.》

 공항에 들어오는 입국 승객들은 하나같이 희망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러나 바로 위층의 출국하는 승객들 모두 하나 같이 씁쓸한 표정으로 이곳을 떠나간다.-한 외국인 관광객 소감》

 《폭파되어 역사 속에 사라진 유명 호텔 자리에 더 멋진 호텔이 들어서는 라스베가스는 무한 성장의 도시!》

  이 글이 라스베가스를 떠나는 내 마음에 들었다. 라스베가스의 유명 호텔들은 폭파,  신축, 또 폭파, 다시 신축을 거듭했다. 세계적으로 초호화 호텔인 알라딘 호텔, 벨라지오 호텔, 베네시안 호텔이 그 실례로 된다. 어느 시인은 라스베가스를 《불모의 땅 사막위에 핀 번영의 꽃》이라고 했고 또 누구는 《사막의 오아시스로 변모한 축복의 땅》이라고 했다. 필자는 시인이 아니어서 화려한 문구보다도 그저 라스베가스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도시, 그냥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도록 철저히 계획이 된 도시》라고
라스베가스를 이름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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