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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센터(Getty Center)는 장 폴 게티 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과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게티 리서치와 보존, 교육 연구소가 있는 대규모 예술 종합 센터이다. 르네상스에서 후기 인상파 작품까지 유럽의 소장품이 특히 많이 전시된 게티 센터는 석유사업으로 재벌이 된 장 폴 게티가 로스앤젤레스에 기증한 것이다. 그리피스 공원 역시 1800년대 멕시코 은광 개발과 캘리포니아 금광 그리고 남가주 지역의 부동산 투자로 일약 부동산 재벌로 등극한 그리피스 대령의 기부로 건설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현대 회화, 사진, 가구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게티 센터를 자주 찾는 이유는 게티 센터가 로스앤젤레스를 부감하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고 게다가 500여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꽃의 미로》라고 이름 지은 정원이 있어 역사와 만나는 장소, 명상의 공간으로 아주 적격이기 때문이다.
그리피스 공원은 나와 아내가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찾는 등산코스다. 이곳엔 등산로가 70여개가 된다. 등산객들 중 한국인이 많은 편이다. 그리피스 공원에 있는 할리우드산 자락엔 그리피스 천문대가 있다.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우주 천체를 관측하고 공부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는 이 천문대에서 로스앤젤레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별 밝은 밤에 로스앤젤레스를 굽어보면 시내 전체가 마치도 하늘의 별무리가 내려앉은 듯하다.
내가 즐겨 찾는 좋은 명상의 공간, 등산코스를 마련해 준 두 위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두 위인에 대한 소개를 간추려본다.
장 폴 게티, 24살에 석유 재벌로 등극하고 1957년부터 20년 동안 세계 최고의 부자 자리를 세계적인 대부호, 재부, 경영방식, 지어 사생활까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인물. 대부호로서 남다르게 예술품 수집에 광적인 열성을 보임. 그가 본격적으로 예술품 수집에 나선 것은 1938년경. 그는 생전에 30억 달러를 들여 예술품을 사들였다. 예술품에 대한 그의 고견이다.
《미술은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의 생생한 화신이다, 미술품들은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의 희망과 분노와 그 작품들이 탄생되었던 시대와 장소를 보여준다. 미술작품보다 더 매혹적이고 풍요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게티가 세운 세계8대 석유그룹에 속하는 게티 오일사는 게티 사후 7년만인 1988년 텍사코사에 흡수되어 역사 속에 사라진다. 그러나 그의 예술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게티 센터로 하여 그의 신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젠킨스 그리피스(Griffith J. Griffith) 대령, 캘리포니아 금광사업에 성공해 1882년 4,071 에이커의 로스 펠리즈 땅을 매입한 후 1896년 12월 16일 3,015에이커의 땅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하고 즐기라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무 조건 없이 시에 기증한다. 그리피스 대령은 《로스앤젤레스가 깨끗하고 행복해지는 좋은 도시가 되는 게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성공한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나의 도리이다》고 생전에 밝혔다.
해발고가 495미터 높이에 있는 그리피스공원은 지금 미국 내 대도시에 인접한 자연공원 중에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말하면 이 공원은 서울 남산 같은, 북경인으로 말하면 향산 같은, 연변 조선족으로 말하면 모아산 같은 존재이다. 한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거대한 공원 관리에 운영비 적자가 생겨 공원 입장료를 받으려 했으나 그리피스 가문에서 만약 입장료를 받으면 다시 공원을 돌려 달라고 강력히 항의해 무산된 바 있다. 그리피스 대령의 뜻을 받들어 시민들의 안식처가 된 그리피스 공원을 LA시의회가 2008년 1월 《역사, 문화 유적지》로 지정했다.
두 곳을 자주 찾으면서 거듭 받는 느낌을 우리 속담인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로 대신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생이지만 탐욕스럽게 돈을 벌고 벌어들인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기에 급급한 재산가들에게는 장 폴 게티와 그리피스가 귀감이 될 위인이 아닐 가 싶은 생각도 해본다. 한 때 나는 칼럼리스트로 매주 칼럼을 써서 방송한 적이 있다. 칼럼 중 제목을 《관을 베고 자는 사람》이라고 달고 20년이나 30년 후 재산의 증식을 위해 묘 자리를 많이 사두는 재산가들을 혹평한 적이 있다. 그 칼럼의 한 대목을 그냥 인용한다.
《그 옛날 날아가는 새도 호령 한마디에 떨어진다는 황제들도 어마어마한 왕릉을 수축하면서도 자기 무덤이 후세에 가서 땅값이 얼마나 오를 것인가를 타진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꾀바른 타산으로 미리 묘 자리를 사두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속을 채우는 타산에는 밝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꾀바른 타산으로 하여 인간의 삶의 공간이 해마다 얼마씩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황폐화되고 사막화되어 가는 대지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무덤입니다. 그 무덤이 날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도시 공간에 자기의 묘 자리를 미리 마련해놓는 것은 자연의 무덤을 더 늘이는 소행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내가 한국에 방문차로 갔을 때 저는 경주에서 석굴암과 세계에 유례가 없는 왕의 수중릉인 문무왕 대왕암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신라시대의 종교와 자연 그리고 예술의 응결체로 그 극치를 자랑하는 석굴암보다 바닷물 속에 무덤을 앉힌 문무왕의 대왕암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문무왕의 수중릉은 바닷물에 잠긴 큰 바위 돌이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문무왕은 자기는 죽어서도 바다로부터 침입해 들어오는 왜적을 막는 수호신으로 바다 속에 남겠다고 바다 속에 무덤을 앉히라고 유언을 남겠다고 합니다. 육지의 땅 한 치라도 차지하지 않고 바닷물 속에 남아 자기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남겠다는 문무왕에 현대인을 비할 생각은 없지만 미리 묘 자리를 사두어 좁아지는 삶의 공간에 무덤을 늘여 가는 사람들이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의 철학가 플라톤의 명언엔《인생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플라톤의 말대로 한다면 장 폴 게티와 그리피스도 나를 이긴 승자다. 혹시 그들도 부를 이룰 때 인정, 사정, 물, 불을 가리지 않는 악착스런 자본가였을 수도 있다. 그냥 막대한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면 그들의 이름이 치부 사상 악명으로 남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년에 가서 바꾸려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을 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였든 두 분은 어디까지나 위인으로 남았고 자신의 신화를 계속 엮어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그리피스가 후세에 남긴 것은 천문대가 아니라 《우주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이런 위인들이 계속 자신의 신화를 엮어가고 있고 《우주에 대해 도전》하고 있기에 로스앤젤레스는 언제나 활력으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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