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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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잡담153] 정치령감님이 력사로친네와 혼사를 할 때 댓글:  조회:5477  추천:0  2012-02-26
      사람은 3-4살 때 일이 약간 기억된다고 한다.내가 3-4살이였을 때 일이였을것이다. 전기없는 산간마을의 겨울밤, 석유등잔 아니면 콩기름등잔 빼대대한 불빛아래서 제일 무서웠던것은 어른들이 해주는 승애이야기였다.떼질쓰는 애들을 무작정 잡아먹는다는 승애!  그 승애가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려고 노력하였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누구에게도 공포스럽던 기억이 있다.공포를 못당해본 인간이 몇이나 될가?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공포스러운 일이 있다.목하 중국사회에 있어서 약간 공포스러운 일은 정치령감님과 력사력사로친네가 혼사를 하는 일이다고 생각된다.        정치리익과 력사진실성이 뒤죽박죽이 될때, 사회심성은 험상해지고 정치리익을 위해서는 력사진실이 무조건 양보해야만 한다.               남경시정부방문단이 일본 나고야시를 방문하였다가 나고야시 시장이 남경대학살을 부인하는 말을 꺼냈기에 언론이 끓는다.  또 정치령감님이 력사로친네와 혼사를 할려다가 일이 발생된것이다.               남경대학살은 중국사람들의 심리상처인것은 물론이다.그것은 우선은 력사상처였지만 정치상처로 민족상처로만 리용되기도 함은 부인할수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동창생 들과 남경대학살에 곁들어 약간 이야기해보았다.             사마천 에 진나라가 장평전역으로 조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40만 대군을 생매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국민당동남아원전군 손립인(孙立人)장군이 일본포로들을 생매장하였다고 하는데 이 두가지 사실을 남경대학살과 비교를 해보면 어떨가? 소위 시공을 넘나드는 비교법을 써보라는 나의 너스레에 자리에 있던 동창생들 모두가 일 제히 웨치기를 .              나는 오늘날에도 동창생들이 웨치던 를 완벽하게 리해못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된 시대와 장소가 다르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는 짐승들이 범한 죄행이고 하나는 사람이 범한 죄행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정치와 민족을 위한 력사라면 부동한 평가를 내려도 된다는 말인가?...        살아가려면 정치령감님과 력사로친네가 혼사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근데 중국에서는 그 혼사가 성공될 가능성이 적다.        집권사회에서는 정치령감님이 득세한다. 실리적이고 감성적인 사회에서는 력사로친네는 거의 페물이다.력사의 진실성을 무시하기를 즐기는 문화권에서 력사로친네는 이라는 평을 받는다.         남경대학살이 가짜라고는 생각하지않는 나도 사실은 남경대학살의 진실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는가? 거의 백지장이다.남경대학살에 대한 실증주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에는 또는 정치와 민족자존심에만 리용되기만 하면 일본우익세력들은 영원히 남경대학살은 날조라고 외쳐댈것이다.        우리가 력사책과 텔레비죤드라마에서 교육받고 만들어지는 력사지식은 어떠한것인가? 력사로친네라는 형상인물은   모범로친네일가? 아니면 이제는 년세를 잡숫고 페물짝일가?       중국의 일반민중들이 생각하는 2차대전은 항일전쟁은 중앙텔레비에서 나오는 같은 텔레비죤드라마에만 그친다. 무엇이 2 차대전이고 무엇이 항일전쟁인지를 뒤범벅으로 만들어주는 력사교육이다. 그 때문일가? 정치령감님과 력사로친네가 혼사를 하면 중국인들은 무조건 정치령감님편을 들어주고 그 혼사를 망가버린다.      언제면 정치령감님과 력사로친네가 혼사에 송공하고 그 술 한잔 받아먹을수가 있으라.
199    [잡담152] 왜서 모택동시대가 아니면 등소평시대뿐인가? 댓글:  조회:3984  추천:2  2012-02-12
       중국인들도 정치담론을 무척 즐긴다.인테리들도 부자들도 그리고 지식도 없고 돈도 없는 서민들도. 서민들의 정치담론은 흔히 정치인물들에 대한 평 또는 그러한 잡담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일전에 술 먹다가 사람들이 모택동시대가 좋은가? 등소평시대가 좋은가에 대하여 담론하는 장면을 만났다.      갑: 그래도 모택동이 좋았다.누구나 다 잘 살릴려고 노력했다.       을: 모택동 시대에는 배가 고팠다.등소평 시대에는 술도 마음껏 먹는다.      병: 등소평 시대에는 몇만원 모태주를 먹는 사람이 있고 몇원짜리 똥배갈을 먹는 사람도 있다      정: 모택동 시대에도 중앙간부들은 모태주를 먹었다.3년재해시기에 수천만명 굶어죽었다.      갑: 모택동은 자기 직계 후손들에게 아무것도 안남겼다.현재 돈있고 세도가 태자당들이 무더기천지라고 한다!      을: 등소평은 결혼 두번 하였지만은 모택동은 결혼 몇번 하였는가? 친구들도 많이 죽였다.     ......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에 대한 평으로부터 정치인물들의 인품에 대한 평으로 넘어갔다.사실은 시대에 대한 평과 정치인물들에 대한 평을 마구 뒤섞어보였다.     모택동시대를 어떻게 볼건가? 등소평시대를 어떻게 볼건가? 두 시대를 어떻게 비교할건가는 나같은 소인들이 할 일이 아닌것 같다.그러나 밥먹고 할짓이 없어서인지 하도 많은 세상만사중에서 모택동시대와 등소편시대만을 비교하려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보고싶다. 물론 모택동과 등소평의 개인적 인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력사 또는 시대의 참조물은 자기 집구석에서만 찾으면 우리는 결국은 영원히 먹고 자고 하는 수준에만 머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만날 모택동시대가 아니면 등소평시대뿐인가?     온가보총리가 말한 을 따지려면 중국인들의 시안도 넓어지고 커져야 함을 느낀다.     중국에만 력사가 있는것이 아니고 시대가 있는것이 아니다.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보고 요구해보는것이 길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모택동시대이든 등소평시대이든 인간사의 최고품위는 아니다.
198    [잡담151] 2011년은 知情权이 그리운 한해였다 댓글:  조회:3701  추천:0  2012-01-10
         새해가 시작되자 화북평원에 안개가 살판쳐서 음력설려객운수가 힘들다는 아우성이 뉴스로 범람한다. 음력설려객운수가 힘든것은 사실이지만 왜서 음력설려객운수가 힘들게 되였다는것만은 아직도 화북평원 농무처럼 기만술을 부린다.여러 전문가들의 해석은 가려운 곳만 살살 건드리고 아픈 곳은 슬쩍슬쩍 피해버리고.그것이 중점발전책과 일부분 지역과 사람이 우선 부유해지자는 국책의 부작용품이기에도 불구하고,산업이전중에 뒤받침으로 되여야 할 호적개혁,교통시설건설에서의 부정부패 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는것을 가지고 우리의 언론은 장난질한다.       우리의 관방매스컴들은 음력설려객운수에 대한 뉴스로서 중국인들의 주의력을 진정으로 관심하는 일로부터 다른곳으로 슬그머니 이전시키려고만 한다. 음력설은 필경은 중국인 생활의 전부가 아니다.그보다도 막심한것은 생활이고 생활의 존엄이다. 어째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것은 날마다 푸짐해지지만 길거리에 서서 하늘을 삿대질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많아지는것일가? 대학교육에서의 거의 3분의 1은 공산주의를 선양하는 이델레오기교육이 위주이지만, 수많은 대학생들은 에 질의를 품고 있는것인가?       배불리 먹여주는것으로 따듯하게 입혀주는것으로만 중국인들더러 만족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롱락일수밖에 없다. 어느 주의가 유일한 최상의 진리로 되려는것은 사실은 거짓말이다.그 배후에는 리익만이 질벅하게 존재한다. 개혁개방이래 기득권이 굳건하게 만들어지고 공공권력은 민주화가 아닌 상대적인 집중과 피라미트구조만을 엄청나게 쌓아놓았다.때문에 진실을 덮어감추는려는것은 상추수단이고 진실을 승인하지 못하는것이 오늘날 진실이다.        사회진상을 덮어감추지못할 경우에는 라는 한마디로 두리뭉실하게 눈감아버린다.자꾸만 사람의 시선과 사유의 초점을 이전시키려고만 한다.행정도덕과 권력도덕이 대낮에도 길거리에서 벌거벗고 다니는데도 우리 만백성들더러 고 하는식은 자질구레한 도덕요구만을 꺼내놓는다.        2011년,우리의 기억에 남은것은 무엇일가? 고속철도사고일가? 도시개발, 부동산개발 ,도로건설같은 일에서 불공정성을 당한 누가 자작폭탄들을 련꽃처럼 터뜨린 사건일가? 홍십자회처럼 대기만술을 쓰는 권력부문과 행정부문이 제 배만 채우는 일일가? 국내에 발생한 대사건들에 대하여 모호한 대답도 아닌 대답밖에 없다. 대내로 이렇다면 대외로도 마찬가지다.까자피에 대한 선호라든가 천안호사건에 대한 선호라든가 모두가 불투명한 장난질로서 만백성에게 진상을 감추기만 하는 2011년이다.        중국인에게 있어서는 작년 한해는 知情权이 그리운 한해였다.
197    [잡담150] 안중근동상 그리고 댓글:  조회:7267  추천:5  2011-11-29
     안중근동상이 할빈에서 사라진지 몇해가 된다.안중근이 민족독립의사이든 테러분자이든 그의 동상이 사라진것은 어떠한 리유로 실행되였든간에 조선민족의 문화기억을 억누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어느 민족을 물론하고 문화기억은 민족이 살어갈수 있고 지탱할수 있고 자신심을 얻을수가 있고 정신가원을 챙길수 있는 씨앗임은 부인하지 못한다.소위 휘황찬란한 문화성과를 이루지못하고 대외령토확장의 피비린 력사를 만들어내지도 못한 약소민족들도 마찬가지이다.그러한 민족문화기억은 신화전설로부터 시작되고 실물과 정신재부로 구성이 된다.농경문화지역의 문화기억 실물들은 조상들의 무덤을 파헤치는 고고학이 지주를 이룬다.그래서 조상들이 사치함을 누렸고 호화로운 喪葬문화를 추구하였던 중국은 도처에 그러한 문화기억 실물들이 전시된다.그뿐이가? 산더미처럼 남겨진 문자기록들에도 그러한 문화기록들이 활활 타오른다.잔혹한 賭城책을 실시하였던 몽고족나라 원은 중국의 력사에 정식편입되지 못하였다.그러다가 만청시기에 중국사에 정식편입되였다. 그래서 세상에 당할자가 없는 물리적인 힘으로 과시될 때에는 중국사로, 세상에 제일 야만적인 략탈문화로 표시될적에는 외족문화로 취급받은것이 원의 력사이다.       력사는 가짜기록이 많지만은 어디까지 진실하여야 한다.력사사건과 력사인물들을 기념함에 있어서 자기의 리익과 시각만을 고집하지 말고 인간사라는 력사관이 있어야 한다.현대정치도덕리론에서만 출발하여 안중근의사를 테러분자로 점찍는 일은 우습다.진짜로 무엇이 테러인지도 모르는 작자들의 람용이다.기껏해야 안중근동상을 은페시키려거나 없애버리려거나 하려는 의도를 적라라하게만 알려준다.       남들의 문화기억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기전에 중국근대사 이야기 하나가 필요한듯 하다.갑오중일전쟁에서 실패한 중국은 민족의 자존과 자존심을 거의 상실하였다. 바로 그 시기인 20세기 초엽에 하남성 안양에서 갑골문들이 출토되였고 중국민족문 화기억은 천여년을 더 거슬러 올랐다.중국사람들의 자존과 자존심을 불러일켰고 그 뒤에는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모두 분발하게 만들어주었다.때문에 갑골문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자살한 사람은 자살하고 위만주국에 가서 벼슬을 누린 자는 광채롭지못한 한페이지를 엮었지만 중국인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이 문화민족기억을 크게 자극해주고 살려준 일은 감사하게만 생각할뿐이다. 중국도 근대사에서 이처럼 참통한 교휸과 뼈저린 문화기억작극운동이 있었다.그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그런데 남들의 문화기억을 존중해야 함은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안중근의사가 조선민족에게 있어서만이 아니라 일제 침략과 수모를 받은 여러 나라와 민족들의 대단한 문화기억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상적으로 모셔지지 못한다는것은 큰 유감이 아닐수가 없다.연변에 가면 두만강 간도섬에 세웠던 무엇이 사라졌다는 말을 얻어들었다.역시 남들의 문화기억을 존중하지 않으려는 심리이고 행위이다.       쓰달린이 연해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력사가 있다.그것은 쓰 딸린의 발명창조가 아니다. 당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포로와 유민들을 먼 실크로드지역까지 이주시켰다. 그것들은 모두가 문화기억을 매장해버리려는 책이였다. 중국은 盛唐이야기를 꺼내기를 즐긴다. 인류최고의 문명을 누렸다고 떠들기를 즐 긴다.인간사에서 성세가 없었고 중국사에도 성세는 없다.그저 그러한 수치스러운 일들이 감추어지고 괜찮은 일들만 멋지게 포장될뿐이다. 새삼스럽게 고구려유민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것은 성당에서 고봉기를 이루었다는 중국의 포용문화와 중용문화에 대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중국문화가 박대하고 포용적이고 중용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실용문화, 말하자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않는, 루루를 구분하지않는 문화임을 말하고싶기 때문이다.그것은 성당으로 시작된것일가?       중국인들이 세계인으로 되려면 아직은 만리장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때면 안중근동상 이야기도 시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것이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갑자기 정판룡교수의 최홍일선생의 최국철선생의 등도 모두가 우리의 문화기억을 자극해주는 좋은 문학작품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196    [잡담149] 썩다! 댓글:  조회:5141  추천:2  2011-08-21
는 유기물이 부패균에 의하여 분해됨으로써 원래의 성질을 잃어 나쁜 냄새가 나고 형체가 뭉개지는 상태가 되다고 간단한 해석이 된다. 소위 사회학학자들을 흉내 중국사회를 유기물체로 보려고 한다. 그 리유는 인간들이 유기물체이고 인간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가 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중국사회가 썩은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썩어있는가?는 %로 형용하지 못하겠다. 나로서는 그럴 재간이 없고 또 고 또는 고 떠드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갑자기 유기물이 썩어드는 속도가 소위 제1우주속도보다도 빠르지 않을가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가 헌법을 비롯한 번번듯듯한 사상에까지 기록된것에 비하면 중국사회는 너무 썩어있지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중국사회가 너무 썩어들었다는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것일가? 인간의 리상주의심리에서 생겨나는것일가? 반발심에서 나오는것일가? 다른 참조물들과의 비교에서 생겨나는것일가? 하여튼 너무 썩었다는 생각은 떨쳐버릴수가 없다. 중국사회를 오장륙부가 있고 여러가지 복잡한 생리를 지닌 유기물로 본다면 나는 백년을 가도 썩지않는다는 모발마저도 썩어들었다는 생각이 있다. 인간사회의 칼날같은 모발로 표현되야야 하는것이 문학이고 인간량심이고 사회량심일것이다. 그런데 8기 모순문학상에 张炜的 450만자 대하소설 《你在高原》이 당선되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你在高原》은 읽어보지 못하였고 450만자 소설이 모순문학상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은 못하겠다. 근데 《你在高原》을 통독하지도 못하였다는 평심들이《你在高原》에 오케이를 마구 선사하였다는것은 썩어빠지게 재미있는 일이다. 읽어보지도 못한것에 박수갈채를 해준다는것이 현재 모순문학상이다. 주고싶은대로 하고싶은대로 하는것이 모순문학상이다.모순선생에 대한 모욕이고 문학에 대한 모욕이고 사회량심에 대한 모욕이다. 흐흐 이러다가는... 살아가려면 리익사슬에 매달리게 된다. 문학인들도 모순문학상 평심들도 리익사슬에 완전 묻혔구나. 그 리익사슬속에서 모발도 이제는 썩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품으면 어느 석굴사에서 보았던 부처님의 인자한 얼굴이 떠오른다. 중국이 약삭빠르게 썩어가는것은 리익사슬체재가 생생하게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는 빗좋고 허황한 슬로건 아래에는 기득권이나 소수 부류만이 잘 살어갈수가 있는 사슬이 굳굳게 억물린 사실이 중국의 을 가로막는다.이제는 력사라는것을 읽어보면 어제 오늘 래일 하는 시간개념을 만든 작자들까지도 가증스럽다. 때로는 변화란 화려한 욕마에 속하지 않느다.변함은 표상뿐이다. 인간을 탓하지말자.인간의 속성을 탓하지말자.인간의 단점을 극복할수 있게 하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모두가 유심론이라 하여도 위대한것이다.(물론 하나님 조직이나 부처님 조직은 다른 문제이다.) 인간들이 인간의 단점들을 극복하게 개변하게 하는 인간사회제도가 그립다. 인간사회체재가 그립다.
195    [잡담143] 영화<황해> 로부터 보여지는 동북인 댓글:  조회:2898  추천:44  2011-05-25
   영화 <<황해>>를 보면서 해남도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여럿이 모인 식사중에  나는 공항으로 이동해야만 하였다.나는 택시를 리용하려고 하였는데 자리에 모인 동북인들중에서 나보다는 몇살 어릴 친구가 꼭  자가용으로 나를 공항으로 데려다준다고 하였다.그는 동북인들의 호기가 넘치도록 <<한고향 사람이 왔는데, 친구가 왔는데.>>를 곱씹었다.첫만남이였지만 직성적이였고 극성적이였다. 근데 그 친구가 몰고 나 오는 차가 <<아우디>>찦차여서 나는 좋았고 또 운전하는 그 친구의 팔뚝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의 오른팔뚝 왼팔뚝에도 칼자욱들이 질벅하였다! 그래서 나는 부동산업까지를 운영한다는 그 친구는 <<싸움대장>> 이였을거라는 판단을 했다.그의 고향이 백산림장이라니 그 친구는 장백산맥 북쪽에서 살았고 나는 장백산맥 남쪽에서 살았다는 말이 된다.그것을 턱대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그 친구가 해남도에서 살아온 궤적을 어렴풋하게 알게 되였다.빈 주먹으로 해남도에 와서 주먹질도 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돈 벌고…     개혁개방이래 동북3성은 힘들게 살아오는 지역임은 틀림이 없다.산업이전중에서 동북3성 민초들은 큰 대가를 지불하였다.수많은 기업소들이 문닫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하강>>하고.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관내로 밀려들고,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은 형사범죄 또는 그러한 내용에 말려드는 업종에 종사하고. 그래서 주강삼각지에서는 <<동북호랑이>>이라는 말에 거의 사람들마다가 허깨비를 만난 얼굴을 해보이고…                   개혁개방 이래 동북인들이 형사범죄를 얼마만큼 송출하였는지는 몰라도, 또 동북의 형사범죄률이 얼마나 높은지는 잘 모르지만, 동북인들은 중국에 동북인은 폭력경향이 크다는 인상을 남긴것은 사실이다. 동북인들의 폭력경향성 바닥에는 동북3성 경제 사회 력사 등 여러가지 배경이 복잡하게 작동한다. 춥고 수확이 적은 생존환경, 이주민사,문화전승…     조선족들도 동북에서 살아왔다.그러한 동북3성의사회 경제 력사 등 배경을 공유한다.그런것들에 물젖어왔다.그래서 한국인들 눈에도 <<폭력적>>으로 보이는건가? 조금 복잡한 문제이다.     동북으로 나가면 연변의 택시기사들은 입이 더럽고 승객들에게도 폭력적인 경향성을 내보이고 있는것은 나에게 인상이 깊었다.    영화 <<황해>> 제작진은 중국 동북3성의 이러저런한 일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가? 연변의 밑바닥 생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가?        근데 중국사람들은 <<황해>>를 警匪오락片으로 보아주는 사람도 있다.   
194    [잡담142] 뚱뚱보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의 가난의 근원 댓글:  조회:2790  추천:32  2011-05-23
   소학교 몇학년을 다닐때던가? 촌마을 조무래기들이 만나면 서로 배를 쭉우욱 내밀면서 <<호한삼이 돌아왔다!>>고 지껄이기를 즐긴적이 있다.영화 <<반짝이는 붉은 별>>에서 지주악당인 호한삼이 총을 들고 반동자라는 아이에게 내뱉던 한마디이였던가? 아무튼 나도 <<호한삼이 돌아왔다!>>을 흉내낸 적이 있다.   어제밤.나는 어느 친구와 내가 어릴적에 구경한 최고급 뚱뚱보는 영화에서 나오는 호한삼이였고 실생활에서는 뚱뚱보 남자를 만난적은 없다는 한담을 해주었다.나는 왜서 어릴적에 촌마을에서 뚱뚱보 남자 하나를 구경도 못했을가? 영화에서 나오는 호한삼에게 뚱뚱보라는 연변사투리의 의미를 리해하여야만 하였을가? 수백명을 초과하여 거의 천명을 이룰 촌마을에서 뚱뚱보 남자 하나를 구경도 못해본 유감스러운 동년을 보내야 하였을가? 그 세월에는 촌마을 어른들도 애들도 거의가 말라꽹이뿐이였을가?     20세기 70년대 연변의 촌마을은 가난하였다. 농사군들이였는데도 흉년도 아니였는데도 잡곡도 배불리 먹지못하게 가난하였다. 그 때문에 나는 동년시절에 촌마을에서 뚱뚱보 남자 하나를 구경도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아야만 하였다.     20세기 60-80년대 연변 시골만 아니라 중국 민초들은 모두가 가난하였다.그 가난의 원인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보고싶다.내가 배운 교과서에는 우리는 과거에 생산력이 락후하고 생산력발전에 적응된 생산관계를 해방하지 못하였으므로 가난하였다고만 적혀있다.물론 생산력이 락후하여 가난하였다는 말에 수긍이 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생산관계의 부실성에 대하여서는 교과서에 적혀있지않는것들에 스스로의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생산관계를 이루는 3요소중에서 분배방법은 중요하다고 하는데 과거에 연변을 비롯한 촌마을에서는 어떠한 분배방법을 하여왔을가? 듣는 말에 의하면 구사회에서 악독한 지주들이 소작농들과 땅세를 소작에서의 50%-70% 받어가고 나라에서 또 인두세를 포함해서 조세라는것과 부역세라는것과 여러가지를 받어가서 농민계급들은 착취당하였고 째지게 가난하였고 그래서 농민봉기가 있었고 또 송강이라는 농민봉기<<투항파>>까지 있었다는데…. 나의 동년시절에 지주도 없었고 인두세도 없었고 부역세도 없었는데 왜서 촌마을은 가난하기만 하였을가? 복잡한 문제여서 대답이 잘 안나온다. 그러나 나는 매년 가을마다 촌마을 탈곡장으로부터 <<糧站>>으로 이전되던<<공량>> 이라는것을 생각해본다.<<공량>>을 싣고 가던 줄지은 달구지들의 삐꺽거리던 소리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땅세든지 조세든지 인두세든지 또 <<공량>>이든지 사실적인 결과는 마찬지이다.어떠한 언어학적인 리론적인 해석을 해주어도 농사군들에게 있어서는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배고픈 가난!그리고 뚱뚱보 남자마저도 구경못하는 동년시절!     중국 민초들의 가난은 수천년을 지속하여왔다.지금도 중국민초들은 상대적인 가난을 누리고 있다.그 가난의 밑바닥에는 체재문화가 가져오는 음영이 깔리여있다.개혁개방 이래 국가경제는 훌쩍훌쩍 뛰여넘기 장끼를 내보이는 발전을 가져왔지만 국가소득과 비교하면 민초들의 소득은 훌쩍훌쩍 뛰여넘기를 표현한적은 크게 없다. 기것해야 조본산이 말한것처럼 <<시골 내려가면 돼지고기를 먹을수 있고 밥을 먹을수 있고>>정도의 변화상이나 가져왔다.수많은 시골사람들과 후진지역의 민초들은 아직도 사실적인 한심한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중앙집권에 안받침되는 치국사상은 집체와 나라의 리익을 위해서는 개체생명의 리익을 희생시켜도 괜찮다는, 나라의 리익을 위해서는 부분지역의 리익을 희생시켜도 괜찮게 합리하다는 사상이다.이 치국사상은 유가의 옷을 차려입고 법가의 지팽이를 짚고 수천년을 행패질하여왔다.중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부분적인 나라에서 동남아에서도…. 이러한 중앙집권에 안받침되는 치국사상에 대하여 나는 질의를 품고 있다.대다수를 위하여 소수를 희생시켜도 된다는,그것도 마음대로 희생시켜도 된다는 말들에 대하여 의문부호를 달아보고 싶다.    이 세상에는 만백성이 부강하여 나라가 부강한 이야기와 나라는 적잖지만 나라가 부강하여 만백성이 부유한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구쏘련이 막강한 국력을 키운적은 있었지만 민초들의 삶은 찌들어졌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민초들의 소작이,말하자면 로동성과가 과대하게 집중되면 그 분배권을 행사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배만을 채우기에 열중하고 민초들의 로동성과를 집대성시킨 국력을 은총를 베풀듯이 민초들에게 약간 나누어주면서 그 과정에 부정부패가 성행하고…     텔레비에는 싱가포르 이광요가 정치무대에서 사라진다는 뉴스가 나온다. 미국경제위기뒤에도 좋은 경제성장을 보이는 나라인데, 아세아의 <<갑부구락부>>에 들어있지만은 국민경제성장과 비교하면 싱가포르 민초들의 삶은 고달프다는 …, 그래서 리광요의 무슨 정당이 의회선거에서 조금 참패하였다는 등등…     운이 좋게도 <<동물농장>>이라는 소설을 읽어보다가 어지러운 글을 갈겨본다. 그리고 중국 근대의 저명한 학자 엄복은 <<나라가 부강한 뒤에 만백성을 잘 살게 만들어주려는 길보다도 만백성이 잘 산 다음에 나라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부강해지는 길이 좋다?>>라는 내용의 언론을 하였다는 기억을 더듬어본다.  
193    [잡담141] 우리의 삶에 대뇌가 있을가? 댓글:  조회:5349  추천:64  2011-05-14
  어제밤, 술을 먹었다. 자리에 난주 본토배기 조선족이 하나 끼여있었다. 아마 연변에서 태여났지만 동년부터 <<안쪽>>을 줄기차게 살어온 친구, 조선말은 한두마디 알아들을수는 잊지만 내뱉을수가 없는 사람이다. 할빈 어느 이공과 대학을 나왔고 공자 로자도 조금 읽고 중국문화를 대충은 알고 있다고  자부심도 내보이기도 하는 사람이다. 생활층으로 보면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좋은 국영기업소에 다니여서 밥벌이 는 쉬운 친구이다. 술 한잔이 목구멍에 넘어가자  모택동과 항미원조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무조건 모택동이 항미원조를 통하여 중국인 생존환경을 확보하였고 미국을 두들겨패주  었고…. 잘 했다였다! 사실 나는 모택동과 항미원조에 대한 생각이 그 친구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조선족의 립장으로서 아니라 한반도의 립장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인 립장으로서부터 볼 때에도 모택동과 항미원조에 대한 생각과 판단이 다르다. 중국이 항미원조를 통하여 도대체 무엇을 얻었을가? 엉청난 재력과 인력을 쏟아넣고 중국이 무엇을 얻어내 였을가? 누가 제1리익획득자일가? 국민일가? 아니면 … 이런저런 물음들은 확답은 없지만 스스로의 생각을 굴려볼 때도 있다. 교육이란 무서운 물건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줄 때도 있지만 마귀로 무지한 인간으로 만들어줄 때가 있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중국의 교육은 사람을 무지에로 내몰기를 좋아한다. 독립적인 사고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려는것이 아니라, 괴뢰로 대뇌가 없는 괴물로 만들어주려는것이 우리 교육의 내용이고 방식이다.     력사인물 또는 정치인물에 대한 도덕륜리적인 평가를 진행하려는 생각은 없다. 또 력사사건에 대한 가설을 해볼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베일속에 가려진 항미원 조와 모택동에 대한 나 스스로의  생각을 굴려볼 자유는 있다. 고향사람에게 얻어들은 말이다. 연변 어느 시골에서 지원군참군을 동원하는 회의가 있었다. 지원군입대를 자원하는 회의였는데 자정이 지나도록 담배질만 하고 자원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부스깨>>에 토막나무를 죽어라고 집어넣는다. 온돌이 사람이 앉아있을수가 없을 정도로 달아오른다…. 드디여 누군가(혹시는 가마목에 앉아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에구 뜨거워라, 그럼 내가 지원군에 나가보리라… 호미를 잡던 농사군이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지원군에 나간다. 죽은 사람도 많고 부상당한 사람도 많고 또 남을 죽이고. 부상입히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는 모르지만 50년 넘게 지나간 일을 두고 우리의 세대들은 항미원조와 모택동에 대한 생각을 다시 굴리지않으면 안된다. 자기의 대뇌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대뇌를 주입할 필요가 있다. 책속의것을 무조건 믿어주는 삶이 무식쟁이와 다를바가 없다.  우리는 지지눌린 수동족인 삶을 산다. 몸뚱이도 대뇌도 수동적이다.
192    [잡담140] 음주운전죄로부터 보여지는 法制와 法治 댓글:  조회:4366  추천:57  2011-05-12
올해 5월 1일부터 음주운전죄가 형사범죄로 되여있다. 음주운전만 하면 범죄 주관욕망조건이 있든 말든, 음주운전이 객관사실결과를 초래하든 말든, 남에게 사회에 피해를 끼쳤든 말든 죄다 형사범범죄로 치부한다는 <<아다모끼>>법이다. 이 <<아다모끼>>법은 法理에 어긋나는 법이다. 범죄란 주관의식과 행위와 결과라는 3인자가 확정되였을 때만이 범죄로 된다. 그런데  <<아다모끼>>법들은 상술한 3인자를 분해시키고 그중에서의 하나만 성립되면 범죄로 치부한다. 음주운전범죄를 다루는 법과 비슷한 법들이 중국법률에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가? 법학자들이나 머리를 싸매고 통계할 일이다.전에 진시황도 법치를 하였으니 중국도 옛날부터 법제국가였다는 어느 학자의 글을 읽은적이 있다. 이 학자는 법제와 법치를 혼동한 사람이다.    법치와 법제는 그 목적과 수단과 결과가 다른 사회현상이고 부동한 개념으로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리상적인 법제는 제도로서 사회 각 계층과 각 지역의 인간들로 하여금 모순과 충돌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원칙과 절차이며 그러한 인위적인 공간이다. 때문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통치하는 수단>>이라고 말하기보다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모순과 충돌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원칙과 절차이라고 말할수가 있다. 때문에 법제국가에 접근한 나라들의 법률에는 소송법을 비롯한 절차(程序)법이 발달되여 있다.그러나 法治法이 우세를 차지하는 나라는 법제원칙이 아니라 법치원칙이 위주이며 절차법이 상대적으로 락오되고 법조목들의 반포와 진행이 隨意성을 적잖게 지니고 있다. 법제와 법치는 근본적으로 보면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는 문화원에서 발기된다. 법제는 상대적인 통치권이 피통치권도 지녀야 할 인간성과 인간존엄에 대한 승인이고 통치권이든 피통치권이든 모순을 공정하게 해결하려는 문화사상이 안받침되였다. 때문에 통치권의 리익과 편리가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되고 또는 은밀하게 숨어있다.그러나 법치는 우선은 통치권의 리익과 편리가 공개적으로 로출되고 있다. 그런것들은 때로는 <<만민을 위하여 1인의 리익과 공정성을 희생시키는>>것으로 <<집단리익을 위하여 개인리익을 희생시킨다.>>는 언어표현으로 사상표현으로도 나타난다. 영미법계는 상대적으로 법제에 속한다. 때문에 그들의 법제목적은 법치가 아니다. 그들의 법제목적은 인간성과 인간존엄을 보호하고 인간사회의 공정성을 뚜렷하게 내세우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추구하는 인간성 인간존엄에 대한 보호와 공정성이 100%로 실현되였다는 사실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법제의 목적을 법치에 두지않는것은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일이 아닐가? 법치국가는 법제가 수단에만 속한다. 법제의 목적이 바로 법제라는 까다로운 말이 존재하지 못한다. 통치자들과 관리자들의 리익 또는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법제사상을 떠난 법치가 나타난다. 때문에 어떤 법률조목들이 모든 계층과 지역의 존중을 받기가 힘들다. 다만 강압적으로 발포되고 실시될뿐이다. 법치는 다만 통치와 관리를 위한 위장된 법제이다. 법제국가는 행정권이 법제의 엄격한 공제를 받는다. 법치국가는 행정권이 법제권을 간섭하고 멸시한다. 통속하게 말해서 법제국가는 대통령도 송사를 받을 때가 있고 경찰기관 검참기관 그리고 법원은 날마다 <<아웅다웅>>한다. 그러나 법치국가는 국가수령이 법제를 초월할 때가 있는가 하면 공안국 검찰원 법원이 <<단짝>>이 될때가 많다. 분명 인치가 법치로 표현되고 있는데 법제라는 말을 더럽히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191    [잡담138] 학술의 벽과 조선족대개조론 댓글:  조회:6148  추천:52  2010-10-09
  NAME : 허동식   |   HOME : http:// VOTE : 14   |   HIT : 281           1   조글로에 박문희 선생님의 <학술의 벽…>>이라는 글이 올랐는데 읽어보고 싶지만 비밀글이라 읽지 못했다.(오늘 아침 읽어보았다) 맹랑한 김에 나도 학술의 <벽>을 생각해본다. 학술의 진미는 진실추구이다. 인류의 인식능력은 주객관원인의 제한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객관진실과 동등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탐색한 어떠한 진실이든지 객관진실에로의 무한대 접근이며 객관진실의 완전무결한 재현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술의 진실추구는 끝이 없다. 학술의 진실추구는 본질적으로 어떤 정치세력이든가 이델레오기와도 관계없이 또 어떤 민족도덕감정이라든가 공리성목적과도 관계없이 자아독존의 무한대라는 존재특점의 합리성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학술에는 학술 자아가 만들어놓은 <벽>이 있을수가 없다. 하지만 인류력사를 되돌려보면 학술에는 <벽>이 존재하여왔다. 그 <벽>을 뛰여넘기 위하여 진실추구를 최종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였다. 교회의 지구중심설을 부정하고 哥白尼의 일심론을 선양하여 종교재판소의 화형을 당한  布鲁诺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찌하여 학술의 본의와는 다르게 <벽>이 생기는것인가? 인간과 인간사회는 다면체이고 복합체이다. 인류는 진실추구에 대한 황홀한 정신세계를 이루어온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물질성(물질세계에 대한 의뢰성과 무한대의 항락성) 을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어느 학술이 누구의 물질리익과 사회상층건축과 이델레오기의 장애물로 되면 자연히 <벽>을 만나고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학술의 <벽>이란 학술자아의 소생이 아니라 공리사회의 제한성이 가져오는 현상임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2   <조선족대개조론>이 학술의 <벽>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어떤 벽을 넘어섰을가?    나는 <<조선족대개조론>>만 읽어보았고 김문학선생의 다른 책들이라든가 문장을 읽지를 못했음으로  <조선족대개조론>만을 화제로 하고싶다. 첫째, <<조선족대개조론>>의 집필목적과 <벽> <조선족대개조론>의 첫머리와 맺음말에 씌여진 문자들을 읽어보면, 그리고 <조선족대개조론>이라는 글 제목으로부터 보면 김문학선생이 적극적인 사회목적을 두고 쓴 글이라 느껴진다. 소위 상아탑식 순수한 학술연구가 아니라 조선족사회를 진맥하려는 사회공리적인 본의가 적극적인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족대개조론>에 이러한 김문학선생 자신이 만든 <벽>이라 할수 있는 목적과 기준이 있다면, 김문학선생이 뛰여넘은 <벽>은  김문학선생이 자신에게 만들어준 <벽>이 아니며 당연히 누구 또는 사회가 <조선족대개조론>을 감금하려는 <벽>임에 틀림이 없다. 두번째,  <<조선족대개조론>>의 연구방법과 언술방식 그리고 <벽> 김문학선생이 조선족사회를 연구한 방법이 실증주의 방법은 아님은 명백하다. 확실한 사회연구조사와 통계자료수집을 통하여  론거를 받침으로 하는 론증과정이 없이 조선족사회현상들을(김문학선생은 전형적인 사회현상이라 생각했을수도 있겠다.) 라렬하면서 또 언술수법이 엄연한것이 아니라 演義식으로 되여있어 일반 독자들의 취미성을 만족시킬수 있는 반면에 과격적이고 정서적이고여서 전통적인 <학술문>과 거리를 둔 글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조선족대개조론>이 정확한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을 넘어섰음은 확실하게 보여진다. 때문에 김문학선생의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적이고 합리한 면을 지닌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이 <자유화>된 사회이다. 그 <자유화>에 비해서는 상술한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은 난쟁이에 불구하다.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자유화>가 엄청난 원동력인 이상, 누구든지 김문학선생의 <조선족대개조론>의 학술방법과 언술방식을 비판하고 부정할수는 있지만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으로는 <조선족대개조론>을 감금할 능력은 없다. 새번째, 김문학의 개인사항과 <벽> 김문학선생이 어떤 출신이든, 현재 중국국적이든 국제인이든 중국조선족사회에 대해 연구한다는것은 공리적인 목적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학술자유에 속하며 그 학술성과가 어떤 집단이라든가 개인에게 리용당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본이든지 한국이든지 중국이든지 어디에서든지 공개하는것도 김문학선생의 개인적인 학술자유에 속한다.  김문학선생이 중국조선족출신이므로 조선족사회의 부족점을 거론하지 말라 또는 <좋게> 거론하라는것은 <벽>이며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이다. <조선족대개조론>에서 김문학선생이 상술한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을 뒤여넘었는가? 나의 옹졸한 생각에는 상술한 <벽>을 완전히 뛰여넘지 못했다 판단한다. <조선족대개조론>의 언술이 아무리 졸렬하다 할지라도 어떠한 민족도 민족사회도 부족점이 없을수가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나 개인은 <조선족대개조론>의 언술을 객관적으로 읽어볼수있는 심리준비가 되여있다는 자아위안을 하고나면, <조선족대개조론>의 밑바닥에 애족감정이라는 정서가 흘렀음을 감지한 이상, 나는  <조선족대개조론>이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을 완전히 뒤여넘지를 못했다 생각된다. 좀 빗나가는 이야기이지만 아침마다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 경우가 있고 날마다 제 조국을 욕하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인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반면에 <조선족대개조론>에서 김문학선생이 자신의 개인사항으로 말미암아 민족도덕적인 감정적인 자존적인 <벽>을 뒤여넘지 못했음임야말로 <조선족대개조론>이 학술성이 부족한 직접적인 주관원인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네번째, <조선족대개조론>과 김문학선생의 매국배족 그리고 <벽> 畵蛇添足이기는 하지만 <조선족대개조론>과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의 락인을 받았다는 <사실>(김문학선생의 근년의 저술과 구체적인 언행에 대한 전면적인 료해가 없이는, 구체적인 語境을 떠난 斷章取義에 가까운  분석만을 읽고, 어느 교수의 문장 하나를 두고 김문학선생에게 매국배족이라는 력사정치개념을 착용함은 나는 시기상조라 보여진다)의 련관성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조선족대개조론>의 내용과 형식에서는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으로 전락할 직접적인 필연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조선족사회를 비판했다고 하여서 필연적으로 매국배족으로 전변한다는 론리도 성립불가능이다. 시간의 순위로 보면 <조선족대개조론> 뒤에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의 언행>을 떠들고  있는데  그러한 後現象인 김문학선생의 <매국배족의 언행>으로 前현상인 <조선족대개조론>을 비판하고 전부 부정한다는것은 론리가 타당하지 않다. 김문학선생의 근년의 <매국배족언행>으로 오래전의 <조선족대개조론>을 해석하려는 현상이 있다면, 나는 그런 현상속에서 우리들이 직면한 주관주의라는 감성주의라는 <벽>을 느낀다.   다섯번째,  <조선족대개조론>의 홍보와 <벽> 조선족사회의 언론체계는 언론인들의 구성과 언론지들의 구성이 자아의 특점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에서 경제 사회 문화의 언론을 주도하는 분들이 많이는 문학과 련관을 두고 있으며 언론거재물도 문예지와 많이 련관되여 있다.  <조선족대개조론>이 크게 고명한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언젠가 흑룡강 김**?라는 분이 <청년생활>에 조선족사회 조사보고와 비슷한 좋은 글을 련재하였고 그 사회반응이 <조선족대개조론>보다 적었던 기억이 난다.-작자분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음만을 알고있음) 언론계(사실은 문학계)의 론의를 일으키고 <조선족대개조론>과 련관되는 홍보자 홍보지들마저 거의 사회민족정치의 변두리에 내몰고 있음은 어론계를 대변하려는 우리 문학계에 엄연한 <벽>이 크게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할뿐이다.    <칼도마>장사나 <밀고제>나 문학계에 존재하는 <벽>의 표현이다. 김문학선생이 지금 바다건너 일본에서 <조선족대개조론>을 두고 내가 이러쿵 저러쿵하는것을 알면 아직도 <벽>속에서 게임을 하고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우리들을 코웃음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190    [잡담137] 김문학선생의 實體驗說로부터 댓글:  조회:5216  추천:55  2010-10-09
1 <<신조선족>>월경론 39인 체험으로서의 “한중일비교문화론”등을 읽어보면 김문학선생은  3국어를 구사할수 있는 언어우세를 지닌 <<신조선족월경>> 대표자? 로서 공간한계(국경)를 넘나들며 3국문화를 실체험하는 행위우세를 경력하고 축적하는 과정에 “한중일비교문화”영역을 개척한 학자로,  3국어로 한중일3국  비교문화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학자로 성장되였음을 자처하고 있고 또 자신의 한중일3국의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려는 비교문화 립장과 그러한 문화비교 립장은 3국을 넘나드는 순수한 문화척도만을 내세우려는 리유에서  발기된것임을 설명하고 있고 다음으로는 自己文化와 异文化를 비교할때 근대화의 선발성과 후발성을 거론하여(근대화가 선발적이면 선진적이고, 후발적이면 후진적이라는 의미도 약간 내포한듯) 이문화를 알려면 시간적원가가 아주 필요하다는( 그 나라의 문학, 사상, 철학 등 숙성된 문화콘텐츠를 시간을 들여 읽는것, 그 사회안에서  컬쳐쇼크를 감내하면서 문화를 실체험 하는것, 이런 축적, 知的축적이  이루어질 때 비로서 이문화의 심층을 해독할수 있게 된다.) 一說을 설명하고 있는듯 하다. 2   실체험이 문화비교의 중요한 래원의 하나이고 수단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과학정신의 제일체현자인 리성실험주의를 잣대로 한다면, 비교문화를 과학적으로 진행하는데는 실체험이 으뜸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언어적 우세만를 받침하는 한순간적인 실체험 하나로서는,  문화비교의 성공성을 보증한다는 장담은 어딘가 어불성설이다. 언어학자가 꼭 비교문화대가로 될수가 없듯이 3국어를 구사할수가 있는 중국조선족들이 3국문화비교에서 우등?을 따낸다는것은 조금은 김빠진 론리이다. 문화비교에 있어서 실체험외에도 과학적인 사유방법, 과학적인 론술방법 등 인소들도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함은 사실이다. 언어적인 우세와 실체험적인 우세는 김문학선생을 대표로 하는 중국조선족들의 3국문화비교에 특색과 이색과 그리고 개인적인 쓰질을 부여할수는 있지만 그것은 필경은 3국문화 비교의 비슷한 필요조건의 하나만을 만족시킬 뿐, 그러한 3국문화비교가 꼭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얻어낸다고는 말할수가 없다. 끓는 솥뚜껑에 냉수를 퍼붓는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때로는 객관적이고 整體적으로 평한다면 중국조선족(월경조선족도 포함)들의 학문경력과 학문능력은 아직은 겸손을 간직하여야 하는 급수라고 생각해본다 . 인문학문이란 1세대 2세대로서는 어디까지나 소아과 급수이다. 력사적인 지성학적인 원인으로 그리고 스스로의 원인으로 하여 우리가 배울바는 많고도 많지가 않은가?.    만일 누구인가 한중일3국 문화비교에 견마지로라도 해내려는 웅심을 간직하고 있다면 고마운 일이겠고, 그가 특별사항적인 우세를 지닐수도 있겠지만은, 문화비교라는 깊이를 알수가 없는 물은 소심스럽게 겸손하게 건느는것이 방법이겠다. 3         문화풀이란 복잡하고 방대한 학문공정으로서 그것은 문화풀이를 진행하는 학자의 학술목적, 특히는 무엇이나 객관적으로 풀이하고 현실공리주의와 력사공리주의를 뛰여넘어 문화의 본질적인 일면을 제시하려는 기질과 능력이 겸비되여야 한다.         김문학선생은 3국인의 립장을 초월하여 3국문화를 비교한다고 언설하는듯.(물론 대단히 좋은 일이다),그러나 <<신조선족>>월경론을 읽는 사람들더러 김문학선생의 어떤 관점들과 서술법들이 3국을 초월하지 못하고 력사적인 시공을 초월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느 부류인들의 주장들과 합치성을 다소 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다소의 합치성이 우연적으로 발생한것이라면 괜찮지만, 그것은 다만 독자들의 수요를 만족하는 시장점령원리를 리용한다거나  또는 어느 부류인들의 구미를 돋구려는 욕정이 안받침된 주장과 표현이라면 아주 유감이 아닐수가 없다. 김문학 선생의 근대사를 一筆한 흔적들에는 일본우익의 주장과 합치된듯한 그림자가 언뜰거리는것이 조금은 수상스럽게 여겨진다.(이등방문이 본의는 한반도도 중국도 일본식 근대화를 실현하게 하였다고 한 대목들이나 <손문의 지팡이로 된 일본인들>이라든가는 <<동아시아적 連帶의 사상가-김옥균 재발견>>들의 내용과 언어표현이 문화비교가 아니라 근대사를 해석하는 雷人식  언설이라는 느낌이 온다.) 재삼 강조하고싶은것은 일본우익의 주장들은 학문적 주장이 아니라 협애한 민족리익식 주장임을 알아야한다.    4  한중일 근대사를 상대하여 력사도덕륜리적인 평가를 내리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일본군국주의가 어떠한 화려한 차림새와 리유를 내세워도, 일본군국주의가 한반도와 중국에 끼친 해는 一抹로 되지는 않을것이며 어디까지나 죄악으로 평받는다.     일본이 근대화수단을 일부 전수하였다고 하여도, 한반도인들의 심성에 어떤 부족점이 존재한다 하여도, 중국인들의 력사서술과 편찬에 부족점이 적잖다고 하여도 그것은 일본군국주의가 여러 나라와 자국에 끼친 죄악과는 다른 내용이고 력사사건으로서 혼잡한 서술이 아닌라 명확한 설명을 앞세워야만 근대화 재조명이 된다. 물론 일부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의 무조건적인 협일정서라든가 현재일본인들더러 그들의 조상들이 범한 죄악의 덤테기를 감당하라는것은 리유가 불충분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유가 불충분한것을 비판하려면일본군국주의 실천력사에 있어서의 포장된 동기와 은페된 과정을 론거로 내세움은 학문이 아니고 십분 위험한 일이 아닐가?          끝으로 일본군국주의란 력사적인 산물인가 아니면 일본문화의 산물인가를 이야기하는 글이나 부탁하고싶다.   
189    [잡담136] 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의 일본 댓글:  조회:5457  추천:43  2010-09-28
      소위 근대화란 일본어식 표현이다. 과거에 서방세계의 선진적인 일면을 모방한다거나 또는 따라배운다는 말로서  근대화 내용과 근대화 형식이 그 실질이다. 일본은 동아시아 나라중에서 또는 아시아 나라중에서 근대화진척이 제일 이른 나라였음은 틀림이 없다. 1868년에 시작된 명지유신을 통하여 일본식근대화를 이루었다.  명지유신이 성공한것은 일본의 구체적인 사회배경과 그 시대에 서방렬강들이 갑자기 가난하고 물산이 적은 일본에 대한 식민욕구를 낮추어버리고 또 미국남북전쟁 뒤에 그들의 내부분쟁백열화 그리고 식민책 시선이 아메리카로부터 풍요한 중국대륙에 쏠린 국제외부환경과도 련관이 된다. 아무튼 약삭빠른 일본인들은 내외환경을 교묘하게 리용하여 명지유신에 비교적 성공하였고 그 뒤에는 서방렬강들의 근대화일본을 리용하여 짜리러시아의 동방침투 욕구와 사실을 견제하려는 책략을 리용하여 갑오전쟁에서 승리국으로 되였다. 어떤 일본인들의 심리에는 아직도 저들이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 스승이였다는 일면이 존재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통하여 아시아나 동아시아가 배운것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나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본과 배워온것은 기껏해야 근대화라는 낱말같은 신흥 한자조어거나 신흥 학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석유나 성냥이나 등 일용품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근대화란 무엇인지를 배워주지도 않았고 배워내지도 못하였다.이등방문처럼 중국을 근대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는것은 천방야담이다.그 수작뒤에는 일본리익이라는것이 공개적으로 숨어잇었고 작간하였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력사사실이다. 진정한 근대화란 무엇인가? 서양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된 물질재부의 존재형식을 모방 또는 따라배우는것이 근대화가 아니다. 근대화란 우선은 물질재부 창조방식이며 경제방식이며 그 다음에는 그 경제방식뒤에 따라지는 사회체재이며 문화모식이며 사회운영모식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민간경제활성화라는 경제방식과 경제자유와 사상자유라는것은 뒤전에 둔 근대화로서 그 근대화가 아시아와 동아시아에 가져다준 利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害도 엄청나다. 그 害가 바로 아직도 아시아와 동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집체력사의식으로 남아있는 크나큰 상처로 연장된다.  근대화를 이어서 군국주의로 부상한 일본이 아시아에 가져온 해는 언어로는 표현이 아니된다. 일본의 대외침략으로 이루어진 아시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경제손실, 생명손실 그리고 정신손실은 해보는 말로 여러 아시아 나라들의 근대화를 몇번이나 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군국주의를 실행한 일본인들의 후세들더러 군국주의선인들의 과거식 죄악의 책임을 담당하라는 말에 리치가 비여있듯이 근대화 스승인 일본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도 어처구니 없는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나라들의 력사적인 교훈의 하나라면 그것은 그 누구나 근대화 과정에서 누구를 스승으로 보아두거나 모실수는 있다. 그리고 국제정세를 교묘하게 리용할수는 있다. 그러나 스승으로 되여서 다른 나라를 진심으로 부추켜주려는 나라는 드물다. 또 하나의 교훈이라면 자아생존만을 위한 근대화의 종극은 생존수단을 가리지않는 악마식 나라가 등장할수도 있다. 그러한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근대화는 차라리  원시사회에 머물러서 오구작작 살아가기보다도 못하다.     
188    [잡담135] 생존권과 평등생존권 댓글:  조회:5027  추천:40  2010-09-27
      현대사회 리상리념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인권중에 생존권이 제일 중요하며 리상사회한 생존평등권의 영주권식 정착이라고 말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든, 민족이 민족을 상대하든, 국가가 국가를 상대하든 상대방의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명사회가 아니고 야만사회이다. 평등생존권이 없는 사회는 문명사회라 하여도 부실한 문명사회이다. 인류력사의 문명사가 수천년을 넘긴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력사학에서 말하는 문명사이고 문자적인 문명사일뿐이다. 인륜리상의 립장에서 시각에서 보면 2차대전시기도 랭전시대의 대부분 현상도 문명사라고 점찍기는 힘들다. 계급투쟁설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온갖 구실을 빌어서 무력으로 력학의 원리로 상대의 생존권을 략탈하려고 하였기 때문이였다.   조어도어선사건 때문에 중일관계가 세인의 주목을 받는다. 조어도사건의 배후에는 중일해양령토충돌이 뒤받침되고 그 다음에는 일본정세의 변화(수상선출) 같은것이 뒤받침되지만 그러한것들에 대하여 관심이 적은 적잖은 네티즌들은 < 개새끼 도투새끼>를 쏟아내고 <일본인이 무섭지가 않다>는 격동을 <일본과 전쟁을 하여도 무섭지가 않고 괜찮겠다>는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과 전쟁을 하여도 무섭지가 않다?> 말이 쉽지만 그것은 전쟁이란 무엇인지를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의 입담이다. 전쟁이란 바로 당신들이 흔장만장 먹고 놀아대는 일상의 사라짐이요 바로 당신들의 형재자매들의 피와 생명이라는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엽다. 물론 중국이 일본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리유는 없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새로운 리상리념인 평등생존권을 키우려면 보급하려면 우선은 상대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 너 일본놈들은 다 뒈져랴> 하는식의 언론은 옛날 일본군국주의 <대동아 공영권> 감언리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시장이 없다. 오늘날의 일본은 무력과 력학의 원리로 밥먹는 나라가 아님은  존중을 받을 일이다.그리고 무력과 력학의 원리로 생존권을 확대하려는 일부 일본인들을 중국인들을 조심해야 한다.
187    [잡담134] 령혼이란 기약없는 약속일지도 모른다 댓글:  조회:4743  추천:33  2010-09-02
1 꽤나 오래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대목이다. 개혁개방뒤에 미국 나들이를 하였던 중국인 하나가 거리에서 미국인 몇명을 불러세우고 < 당신들, 미국인들은 어찌하여 중국인을 싫어하느냐? 그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고 질문을 해보았다. 랭전시대의 제한성으로 하여  미국인은 무조건 중국인을 혐오한다는 인상을 엄청나게 간직한 작자였던 모양이였다. 그리고 감히 당돌한 물음도 진행할수가 있었던 작자였던 모양이였다. 홍두깨 질문을 받은 미국인 몇명은 거리에서 먼 하늘을 물끄러니 바라보다가 그 작자에게 < 당신네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령혼이 있다는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고 대답해주었다고 한다.    중국인이 빨갱이기 때문에 싫은것이 아니고 반도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자기네들과 전쟁하였길래 싫은것이 아니고 자기네들과 정반대로 그저 령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혐오감을 느낀다는것! 그 대답은 그적의 대부분 중국인들이 전혀 리해를 진행할수가 없었던것은 사실이다. 령혼설을 신앙하지 않기에 사람처럼 보지를 않는다고?! 물론 길가던 미국인 몇명의  < 당신네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령혼이 있다는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가 미국인들 생각을 완벽하게 대표한다고는 말할수가 없었겠지만 지금에 와보면 그것은 부동한 문화권 사이의 혐오감으로도 해석이 조금 될듯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현재도 령혼의 존재를 믿는 인간들은 령혼불존재를 믿는 인간들을 잘 믿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心魂은 믿어왔지만 령혼의 존재를 불신앙하는 중국인에게 < 당신네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령혼이 있다는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를 리해시키려면 지금도 아주 힘든 일이다. 하지만 문화권 사이의 차지로만 해석이 간단하게 가능할가?   2 서방세계에서 말하는 사람의 령혼이란 先驗적인 존재로서 사람의 몸뚱이와 상대적인 독립을 이룬 존재이며 사람 몸뚱이는 죽어도 령혼만은 영구하다고 말한다.    종교문화사적으로 보면 동방문화권은 고대부터 여러가지 종교를 믿어왔지만 사실 령혼불멸설만은 믿지를 않았다. 믿는다 해도 기껏해야 조상의 혼이 먼 하늘나라에서 자손들을 내리보고 계신다는 생각에만 그치였을뿐, 령혼과 매 생명개체의 삶의 련관성에 대하여, 령혼의 형이상학적인 의미에 대하여서는 생각이 적었고 <먹고 살고 놀아대는> 실용문화가 주류를 차지하여왔다. 그러다가 근대로부터 영국의 실험주의철학과 독일의 민족정체주의철학이 러시아를 통해 중국에 들어오면서부터 령혼설은 중국에서 아주 <거리를 지나가는 쥐>모양새로 변해버렸고 우리들 대부분은 지독한 령혼설을 때려부시기에 여념이 없었던것이다. 령혼설에 대한 반신반의로부터 절대적인 否定으로 진입한것이다. 3   령혼설에 대한 절대적익 부정시대에 령혼에 대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더듬어보고싶다. 령혼설이 정설이라고 권해보고싶은 생각은 없고 증명할 재간은 없지만 실용주의문화에 푹 젖어있으므로 역시 실용의 시각에서 령혼에 대한 생각을 해보고싶다 령혼이란 우리에게 그야말로 아무런 소용도 없는것일가?.    령혼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령혼부존재 와 령혼불멸, 유물론과 유심론 등등의 끝없는 답이 없는 싸움을 떠나서도 그 존재의 가치가 있는듯 하다. 령혼설을 신앙하며 령혼의 가치를 매 개인의 삶에 의식시키는 서방문화는 동방문화와 구별되는 미학적인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있음은 공인된 점이다.       한다면 령혼설은 인간에게 도대체 어떤 삶을 가져다주는것일가? 4 인간은 지금까지도 자아팽창의 길을 즐겨 걸어왔다. 인간이 자연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인간이 인간과 사회를 상대함에 있어서도 자아중심에서 출발되는 자아팽창을 무한대로 연장하려고만 한다. 그 과정에 온갖 방법과 수단을 헤아리지 않기를 즐긴다.          하지만  령혼설을 신앙하는 인간은 인륜도덕뿐만 아니라 령혼설에서 오는 무형의 제한을 받기가 쉬우며 사유와 행위에 제한성이 뚜렷하다. 그러나 령혼불존재를 믿는 인간은 인륜도덕의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때로는 인륜도덕보다도 한층 높은 층차인 령혼의 제한을 받지못함으로 하여 <굴레벗은 말>식의 싸담으로 변할때가 있다.(서방세계에도 령혼까지를 배반하고 싸담으로 변한 인물이 수두룩하다)  인간을 모순체이라면 량면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天性적이든 후천적이든 누구나 성인으로 될수가 있고 마귀로도 될수가 잇다. 인간이 마귀로 되는것을 제약하는 인간사회의 수단으로 사회제도도 벌규, 인륜도덕 그리고 령혼불멸설이다. 누구이든 사회제도와 법규, 인륜도덕을 뛰여넘어가고 령혼이라는 장애마저를 뛰여넘으면 마귀로 전변되는것이다. 령혼이란 사실 인간이 만들어냈든 사실적 존재이든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규범화하려는 하나의 보호층이며 령혼불멸설을 믿는 인간에게는 륜리도덕을 초월하는 기약없는 약속이 아닐가? 그 기약없는 약속에 령호불멸설의 묘용이 있다. 언젠가 어느 대통령이 < 종교를 신앙하는것이 신앙하지 않는것보다는 좋다.>고 말하였던 일과 영국소설 <呼啸山庄>의 녀주인공이 <몸뚱이가 없어도 나는 죽고 령혼이 없어도 나는 죽는다.> 던 말들이 다시 새삼스러워진다.     
186    [잡담129] 公과 私 (허동식) 댓글:  조회:4567  추천:40  2010-07-30
    중국은 물론 어느 나라이든지 公과 私는 문화의 저변을 이루는 주축적인 개념이 아닐수가 없다. 현재는 물론 과거나 장래나 公과 私가 없는 인간사회는 상상이 아니된다. 인간은 군체생태를 떠나서는 존속과 발전을 운운할수가 없고 또 그 군체생태를 살면서도 동물본성의 私를 완전히 떨쳐버릴수가 없다. 그래서  公과 私는 개념인 동시에 인간사회상의 본질적인 표현이 된다.   우리는 한동안을 公에 대한 지나친 열정과 公주의리용술을 크게 떠받들었던 결과로, 私를 너무나도 멸시하였고 私를 팍팍 잡아먹으려고만 덤벼들었다.  그 결과로 사회도 개체도 손해를 많이 출산하였고 오늘날에 있어서 우리들더러 인간본성중의 私적인 요인에 대하여도 많이 생각하게 한다. 공산권나라들이 자아와 자본주의권나라들의 私에 대하여 대규모적인 토벌작전을 하고있을 때, 인간본성중의 私를  헌법의 신성불가침이라는 조목으로 번듯하게 모시였던 소위 서양세계는 잠자코만 있은것은 아니다. 그들도 私는 신령처럼 모시고 公은 허약한 자리에만 놓아둔 자신들의 제도와 문화에 대하여 심층적인 검토를 진행하였고 그 허약증을 치료하는 수많은 방법을 강구하여왔으며 물질재부의 지나친 세습과 유전에만 기울어진 사회제도 사회문화를 개혁하기에 전력하여왔다.   私를 멸종하면 사실 인간사회는 인간사회로 될수가 없으며 인간은 인간상을 지닐수가 없다. 또 私만이  울창하고 公은 담장우의 풀대처럼 작은 바람에도 크게 허우적거리는 인간사회는 리상적인 군체사회로 될수가 없다.   公과 私, 私와 公은 표현적으로 개념적인 언어적인 극단분화와 모순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종극적으로 유기적인 조합체를 이룬다. 私를 존중하지않고 私의 합법성과 합리성을  승인하지않는 모든 公은 허튼소리이며 존속할 기반과 여지가 없으며 반인류적이다. 반면에 公을 모르는 私는 인간성만 알고 인간사회성을 모르는 무지이며 손가락질을 받고 지어는 <혁명>도 당하는것이며 반인류사회적인 속성을 나타내게 되는것이다.   인간이 신령이 아니고 인간인 이상, 인간사회가 신령이 아닌 인간들이 모여서 운영되는 한, 公과 私는 모두가 인간 생존수단의 보물로 되여야 할것이다. 이제부터라도 公과 私는 어떤 주의나 어떤 인물이나 어떤 집단들의 특수무기로 둔갑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개념적인 표현적인 모순체는 사실 一體성적인 존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公과 私를 두개의 巨輪으로 리용하여 멋들어지게 굴러가는 꽃마차 하나가 나의 시야를 얼른거리기도한다.           
185    [잡담128] 우리의 마음정리는 어디로부터 시작할일가? 댓글:  조회:3679  추천:37  2010-07-15
 술 한잔 하다가 고향이 산동성인 친구 하나가 <요즈음 한국인들이 중국과 령토요구가 있더라!>고 한마디 하였다. 내가 조선족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친구인데 나는 그를 평소에 시시껄렁한 말만 지껄이는 인품소유자인줄을 알고 있고, 또 속으로는 < 그 수준에 대학에서 강의를 어떻게 하고 있나?>는 식으로 시원치않게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 나는 그런것에 대하여 잘 모른다>라는 한마디로 얼버무려버렸다.     중국어에 <里外都不是人>이라는 말이 하나 있다. 나는 갑자기 중국을 사는 조선족들이 또는 중국국적을 지닌 조선족들이 요즈음은 <里外都不是人>보다도 험악한 <里里外外都不是人>식  신세를 경유하고 그러한 심리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괴상망칙한 생각을 지니게 된다. 물론 나는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비하하는것이 아니며 모든 중국인들이 우에서 거론한 친구처럼 힘든 질문을 내던지는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간 어디가 비틀려졌는지 어딘가 우리는 우리의 심리상을 조금이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된다.     고부싸움에 끼이어 생모와 마누라 성화를 받아야 하는, 그러면서도 어쩔줄을 모르는 남자의 생활상이 중국 조선족의 생활상이고 심리상이다. 중국에서는 조선이 어떻고 한국이 어떻다는 시비의 눈총을 남먼저 당할줄을 알아야 하고, 반도로 나가면 어느 중국인보다도 대륙인 대접을 한사발 더 받아내야 하고, 안쪽을 살면 연변내기 대접을 받고 연변을 가면 안쪽사람 대접을 받아야 하고.     복잡한 세상을 간단하게 살아가는것도 행복을 찾아내는 좋은 열쇠이라고 말할수가 있겠다. 근데 말이다. 간단하게 살어갈수가 없으므로 힘들다. 바같세상이 당신을 복잡하게 만들고 복잡하게 지켜본다 하더라도 심리상만을 1마저도 초과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고수하고 싶지만은, 때로는 조금은 복잡한 산수인 분수와 소수점이 흔들거리고  산수를 훨씬 뒤여넘는 수학이라는 미적분이요 선성대수요 하는것들이 우리의 주위를 얼른거린다.     중국조선족은 간단한 산수계산시대를 벗어나서 복잡다단한 세상을 마주하면서부터 외력의 침입으로 하여 무수한 익점을 따내기는 하였지만 반면에 심리적인 고초를 거듭하고 있고 때로는 역행적인 심리상을 지니게 되였다. 우리들은 우리들로서의 스스로의 마음정리가 필요하다. 마음정리가 잘 되지 못하면 복잡한 시대의 조만간의 장기쪽신세를 면하기가 어렵고 정리가 리상적이면 복잡한 세상을 돠도록이는 간단하게 살어갈수가 있으리라.     민족심이 없으면 민족심이 없다고 욕먹고 애국심이 없으면 애국심이 없다고 욕먹고 인심이 없으면 인심이 없다고 욕먹고 문화가 없으면 문화가 없다고 욕먹고 기술이 없으면 기술이 없다고 욕먹고 그러다가 우리들끼리도 서로 맞대고 욕사발을 탕 둘러메치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직면하려면 지혜로운 마음정리도 필요하다.    요즈음, 중국 조선족내에 민족의 정체성을 두고 약간의 혼란성이 빚어지고 있는 사실은 민간인들과 학계인들의 복잡한 립장과 심리상을 다소는 설명해주는것일수도 있다. 사실적인 설명이 보다 필요한데도 개념적인 쟁론으로 서로 등을 맞대는듯한 이들도 가끔 나타나는것은 고부싸움에 시달리는 남자들 낭패상을 많이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정리는 어디로부터 시작할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을것인가?  
184    [잡담127] 내가 구경한 <봉황열반> 댓글:  조회:2953  추천:48  2010-07-13
잡담127 내가 구경한 <봉황열반> 허동식  금방 중학교를 들락날락하는척 하던 때, 어느 봄날 학교 가기가 너무 싫어서 친구 몇이서 책가방을 학교 가는 길 풀숲에 묻어두고 외진 한족마을 행차를 하였다. 확실한 목적은 없고, 한족마을 동네에 있는 큰 나무 정상에 있는 까치둥지인지 까마귀둥지인지를 둘추어서 새알 몇개라도 사냥해보자는 어느 친구의 제안에 모두들 동의한것이다. 큰 나무 아래에 이르자, 나무에 잘 기여오르는 친구가 거의 20메터 이상인 백양나무를 기여오르고 나머지는 나무아래에서 학수고대의 멋진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고공에서 흘러내리는 말이 < 에씨, 개불알도 없다!>였다. 나무에 잘 기여오르는 친구는 새알 사냥의 맹랑함의 분풀이를 하려고 그랬는지, <에씨, 다 태워버릴테다>를 부르짖으며 호주머니에 지닌 성냥개비로 새둥지에 불을 지펴놓고 나무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높은 백양나무를 절반쯤 내리여서부터는 <에씨, 따가워라 에따, 따가워라>라는 아우성을 련속 내질렀다. 새가 하나하나 물어다가 둥지를 구축한 나무가지는 불이 달리자 원래의 응집상태가 회손되면서 그것들이 아래로 마구 하락하기 시작하였던것이다. 그 불똥과 불이 달린 바싹 마른 나무가지들이 떨어지면서 나무를 내리는 중의 친구의 몸속으로  침입한것이였고 나무를 내리는 중에 어쩌할수가 없는 친구는 그래서 <따까워라>를 울부짖은것이였다. 나무아래서 학수고대의 배역을 하던 우리 몇은 참지못하고 그것이 재미있다고 까르르 웃어주었다. 근데 그 환락을 거퍼 몇초도 향유하지 못하고 새둥지로부터 하락되는 불씨가 나무아래 바싹 마른 풀숲에 작은 산불을 지펴놓는 바람에, 우리는 너도나도 학수고대의 자세를 버리고 산불잡이를 하느라고 땀을 풀썩풀썩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무를 내려온 방화범도 저의 목과 잔등에  생겨난 화상을 검사하지도 못하고  우리와 같이 봄날의 큰 산불로 변해버릴듯한 산불잡이를 하느라고 헉헉 헉헉 신고를 하였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깐다>는 이야기는 조금 알고 있었지만도, 우리 몇은 깊고깊은 반성커녕, 새알 사냥에서 당한 맹랑함과 산불잡이에서 당한 울분을 어디에 쏟아보고싶었다. 상론끝에, 한족마을은 조선족마을과 달라 거위를 키우는 집이 있는데 닭고기는 먹어보았지만 거위고기는 먹어보지못한 우리 신세가 얼마나 가엽나! 한마리 잡아다가 해란강가에 가서 구워먹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고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합의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에서 나오는 일본군인들이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행색을 훙내보이면서 한족마을길을 두리번두리번 하였다. 마침 울바자 아래를 뚱기적거리는 흰 거위 한마리가 보였고 한족마을은 텅 빈여있는듯 하였으므로 누군가 거위의 길고 날씬한 <미인목>을 잡아쥐려는데, 맙시사 누가 거위가 그렇게 흉악스러울줄을 알았을가? 흰 거위가 날개를 퍼득거리고 꽥꽥 소리를 내지르며 길고 날씬한 <미인목>을 거의 땅바닥에 내리드리우며 우리들에게 달려드는것이 아닌가! 겁쟁이 우리들은 잔인한 거위의 기세에 눌리여 뒤걸을 하였고 나중에는 한족마을 개들도 꽁무니를 쫓는 통에 그만 줄행랑을 하고 말았다. 한족마을을 나오자, 친구 하나가 우리에게 털어놓기를 <야, 우리 마다배 그러든데 , 게사니두 집을 잘 지킨다구!>     고중에 들어가서 곽말약의 <봉황열반>을 배우는척 할 때에는 방화범 친구야말로 <봉황>이 될번했다는  중학교 때 우리들 몇이 깜찍하였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가끔은 컴퓨터를 마주하여 전자게임을 하면서 <소고기는 출산지는 랭장고요, 고추의 출산지도 랭장고요>를 되뇌인다는 요즘의 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여본다. 그런데 이 놈들은 우리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줄가? 어리석다고 생각해줄가?  
183    [잡담126] 그대는 어떤 나라를 살고싶어유? 댓글:  조회:4485  추천:42  2010-07-06
  인간의 몸에 달랑 매달린 선택권은 유한되여 있다. 그래서 어느 인간도 부모를 자아선택할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와 사회지위의 세습문화를 박산낸다고 수십년 떠들던 중국의 오늘날, 인간선택권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가, 望子成龍보다도 望父成龍이 용한 성구로 되여있는것은 자식이 좋은 부모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회심리의 우습깡스러운 표현으로 보여진다. 그대는 어떤 나라를 살고싶어유? 곁에 이상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이상한 물음을 받았다. 글쎄…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내가 어떻게 대답하누? 말은 그렇게 얼버무렸으나  속궁리가 뒤숭해진다. 대부분 인간들은 자신의 국적을 자아선택할수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국적선택의 환상자유는 있다. 그럼 나의 환상을 이야기해볼가? 그런데 쥐꼬리만한 환상력으로 이야기거리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것은 어떻게 하노? 내가 살고 있는 감숙성은 호금도주석과 온가보총리가  젊은 시절의 땀을 흘린 동네이다. 그리고 또 부주석의 부친께서 혁명을 시작하던 동네이다. 그래서 정치인지 무엇인지 관심이 있는듯한 사람들은 많이 수근거리기를, 감숙성이 잘 되려면 여차여차하게…, 또 수근거리기를 다음번 국가주석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감숙성이 여차여차하게… 감숙성의 약삭빠른 지방에서는 이미 박물관도 만들어놓고 과거와 과거에서 오늘까지 뻗쳐오는 인맥을 주물러서 한몫을 보려고 들락날락하고 있다. 중앙재정집권의 나라에서 중앙재정의 도움을 받으려는것은 다소는 납득이 되지만 누가 나라 지도자인가만을 되세게 리용하려는것은 나는 많이도 납득이 아니된다. 중국사회가 진짜 그렇게 나아간다면 나라주석두 각 성의 출신들을 윤번으로 내세워야 하는것이 아닌가? 만일 림표가 죽지않구 나라주석이 되였다면 중국은 어떻게 되였을가? 4인방이 타도되지 않고 나라주석이 되였다면 현재 중국은 어떤 상태일가? 범부속자들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인물들도 많은 자리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들속에는 만백성들의 일상마저도 나라지도자 구체상황과 엉켜든 과거의 서러움이 있다. 중국력사책은 나라의 지도자 인품적인 성격적인 특성이 만백성 삶의 행복지수를 결정한것처럼 서술된 경우가 아주 많다. 그것을 력사경험이라고 하는가? 력사의식이 발달된 중국인들은 오늘날에도 높은 하늘을 우러르며 좋은 령도자가 용솟음하기만을 기다리는것이 아마도 중국특색인듯 하다. 촌에서는 좋은 촌장, 향에서는 좋은 향장, 현에서는 좋은 현장, 성에서는 좋은 성장 , 나라에서는 좋은 나라주석을 학수고대한는것이 풍경이다. 그 풍경의 시말은 복잡한것이지만 나는 그 풍경을 싫어한다. 다음날, 그대는 어떤 나라를 살구싶어유? 하던 친구의 물음에 한마디 대답을 하게 되였다. 글쎄 누가 나라주석이 되든 만백성의 생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나라를 살구 싶구 나라주석이 누구인지두 모르는 백성들두 잘 살수가 있는 나라를 살구싶어유.  
182    [잡담124] 세계어 그리고 언어의 한계 (허동식) 댓글:  조회:3727  추천:45  2010-06-25
      어릴적에 세계어가 있다는 말을 얻어들었다. 그것을 배운다고 덤벼들었다가 며칠 안되여서 허참, 세계어 선생님도 없고 교과서도 없다! 하고 투덜대는 사람들을 1-2명(일본어를 배운다고 하다가 그만둔 사람) 보았던 기억이다. 세상에 세계어가 있다니? 그것만 배우면 조선말두 중국말두 일본말두 영어두 죄다 필요가 없다우, 앞으로는 이 세상에 세계어가 통행할터인데 하루 빨리 그것을 배웁시다!      언어기회주의가 그처럼 고집을 부리던 시대는 아직도 기억속에 인상이 깊다.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 파금선생도 세계어에 애착을 두었고 신중국 건국뒤에도 세계어는 개별적인 학자들의 행위로 존속하여왔다. 그런데 그들에게 실망을 남겨준것은 오늘날에 있어서 세계어는 세계적으로 중국적으로도 흐지부지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현재 세계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 1000명, 세계어를 괜찮게 사용할수 있는 사람이 10만명내지 200만명?이라고 어리벙벙하게 기록이 나온다. 나에게는 세계어란 全球化 세계화처럼 아름다운 말인듯 하다. 복잡다단한 언어의 장애물들을 폴각폴깍 뛰여넘어 하나의 언어로 조화롭게 살아가자는 그 황홀한 경지야말로 그림이고 시이다. 다원세계를 단원세계로 인공하여 인간세상의 불공평과 모순을 이겨내려는 그 심사는 여겨볼만하다. 그러므로 세계어란 언어령역에서의 종교가 아닐가? . 인간세상을 잘 가꾸려는 생각은 예수님도 하셨고 공자님도 하셨고 부처님 그리고 후계자들도 하셨다. 그리고 혁명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간들이 실천하여왔다. 그중에는 세계어 실천도 한몫이 있다. 괴로운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명상과 실천들이 한계성을 내보여왔다. 세상은 아직도 먼지투성이요 피투성이다. 세계어라는 착상도 먼지투성이 앞에서는 피투성이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세계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들은 비록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인간들이 사용하지만 인간들의 욕심대로 세상을 쥐여흔들수가 없다.       모든 언어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기에 표준어사전을 엄청 편찬하고 언어쟁론도 많지만은 필경은 언어에 불과하다. 언어를 미신하지 말자 .  
181    [잡담123]1차대전뒤 이델레오기령역에서의 2개의 마귀 댓글:  조회:3794  추천:39  2010-06-19
       1차대전이 끝나고 민족국가주의가 흥기하면서 이 세상에는 이델레오기 령역에서의 2개의 마귀가 살판을 쳤다 하나는 나치스주의고 하나는 쓰달린주의다. 나치스주의와 쓰달린주의가 인류사회에 어느 정도의 재난을 가져왔을가? 직적접인 재난은 수천만 인명을 빼앗아가고 태반의 인류물질재부를 회손시켰다. 과거에 우리는 나치스주의에 대하여 대성호질을 하였지만은 쓰달린주의의 제자가 되는척하면서 쓰달린주의에 대하여서는 찬송가를 불러왔다. 그것은 정치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정치력사로서 력사의 진실성을 덮어감추는 행위였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우리는 아직도 쓰달린주의에 대한 청산이 부족하고 쓰달린주의가 맑스주의의 계속이고 발양인줄로 오산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나치스주의는 대민족주의고 극권주의다. 그런데 역시 대극권주의고 대민족주의인 쓰달린주의는 대민족주의를 <<계급주의>>와 <<세계해방주의>>라는 가면구로 감추어버리고 극권주의는 공연하게 실행하여왔다. 그 과정에서 맑스주의가 쓰달린주의에 리용당하고 강간당하면서 객관적으로 좋은 역활을 하지는 못하였다. 우리가 쓰달린주의 때문에 무엇이 자본주의인지를 잘 몰랐던것처럼 서양자본주의에서도 본원적인 원인과 쓰달린주의와 구쏘련 때문에 무엇이 사회주의인지를 공산주의인지를 잘 모르고 지내왔다. 그것들은 국가정치에서 발원되는 랭전을 민간사회 깊이에까지 보편화시켰고 우리 사회주의 인간들은 자본주의를 <도탄속>이라고 자본주의 인간들은 사회주의를 네편네도 <공산>한다고 생각하였고 손가락질하였다. 가끔은 어리벙벙한 생각을 하여본다. 중국에는 <<책속의것을 다 믿을것이면 차라리 책도 읽지를 말라!>는 말이 있다. 서적이 인류문명의 최고기둥으로서 인간사회를 큰 빌딩으로 만들어주지만, 그 기둥에는 목제와 세멘트와 철근과 플라스틱…. 수없는 성분이 들어있다. 수없는 력사학자들이 력사를 기록한다고 한지만 <편찬>된 력사는 너무나도 많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보다 진실한 력사와 인간사회를 책속에서 읽어낼것인가는 문제는 아직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듣자니 요즘 대학입시에는 세계사 과목도 들어있지를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정말인가? 애들의 공부짐을 줄여내려고 그러는건가? 아니면 아직도 인간사의 진실한 흐름을 기만하려고 그러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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