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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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9 ]

39    윤동주 詩作에서 표현되는 종교체험(신앙체험) 댓글:  조회:3740  추천:60  2009-03-03
  하느님이란 <신약>에서 나오는 하느님과 누구에게 冥冥중에서 환상되거나 감지되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나뉘어진다. 두번째 하느님은 종족과 언어와 시대에 따라 부동한 명칭으로 표현이 될수가 있다. 흔히 말하는 샤머니즘의 神靈도 좋고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알라도 좋고  자본주의기독교(新敎)에서의 하느님도 좋고 인도불교가 아닌 동방불교에서 나오는 부처님도 보살도 모두가 상술한 하느님 표현중의 事例라고  생각된다. 객관세계에 하느님이 實存하는가 虛存하는가 하는 쟁론과는 거의 상관이 없이, 아직도 많은 인간의 심목중에는 하느님이 존재함은 사실이다. 비종교인중에 종교인들의 신앙을 거짓으로 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종교체험이 전혀 없거나 적은 비종교인이 종교인들의 경건한 신앙심을 리해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종교체험은 고난체험과 苦難체험중에서의 명상체험으로 실천이 된다. 때문에 자연조건(기후 지형과 련관되는 자연생존조건)이 빈약할수록, 사회조건이 험악할수록 그속에 進駐한 종족과 개인의 종요체험은 집중표현으로 남아있다. 중국의 중학교력사교과서에서 말하던  戰亂시대에 불교가 여차여차하게 흥기되였다는 一理가 바로 그것이다.    반도사에서 근대사는 고난의 력사가 아닐수가 없다. 반도에 먼 옛날에는 전혀 고난이 없은것은 아니지만, 력사란 멀리 가버릴수록 흔적과 기록만 남게 된다는 時間效應으로 하여 우리의 심목중에 짜릿하게 남은 상처중에서 근대의 상처가 유별나게 표현이 된다. 이런 전제조건하에서 근대에 이르러 전래된 종교와 재래의 종교와 새로운 종교가 반도에 흥기된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볼수가 있다. 그러한 고난의 시대를 살았고, 시인의 민감된 신경을 지니였으며 유력한 언어문자 표현력을 소유한 윤동주시인과 그 詩作중에 은밀하게 또는 유표하게 드러나는 종교체험은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윤동주 시작중의  <서시> ,<십자가>, < 또 다른 고향>만 읽어보아도 우리는 그속에 담긴 종교체험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 우러르는 하늘과 갈망하는 십자가, 그것은 고난중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며 하늘에 바라는 갈망이 아닐수가 없다. 고금중외에 종교체험으로 문학의 정수를 만든 작가와 작품이 수두룩하다. 우리 문학사중에서 종교체험이 다분하였고 재기있게 표현한 문학인중에서 윤동주시인이 으뜸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38    [잡담74] 중일한 3국 수뇌회의 댓글:  조회:3639  추천:49  2008-12-05
  [잡담74] 중일한 3국 수뇌회의    허동식   12월 일본에서 중일한3국 수뇌회의가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중일한 3국이 단독으로 협상을 한다는 회의라는데 동아시아경제문제를 비롯해 북한비핵화는 무조건 거론될것이다고 뉴스가 전한다.       중일한 3국이 단독으로 협상회의를 한다는것은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과거처럼 미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고, 의식형태대결시기처럼 옴니암니 침방울전을 할 필요도 없고.     세상이 이만치 걸어왔지만도, 서로가 가까이 살지만도, 다 같이 인간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면서도 중일한 3국은 무난히도 서로 헏뜯고 중상하고 혐오하면서 시야를 지나간 일에만 못 박는 행위를 진행하여왔다. 따라서 민감한 령토문제도 거론되면서 민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아직도 서로의 불신임과 협오감이 주류를 이룬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사이에도 과거에는 동아시아와 비슷한 일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2차대전뒤에 시장자유경제를 전제조건으로 서로의 경제침투가 활발해지고 문화교류가 깊어짐에 따라 , 서로가 상대방의 異점존재를 존중하고 또한 同점을  찾아서 공인가치취향 구축에 힘써온 결과, 동아시아보다는 화목하게 살고있다.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밝은 거울이 아닐수가 없다.     현재 중일한 3국은 여전히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경제의 상호침투와 문화적인 동인점이 허약하다. 말로는 동일한 한자권문화권이?一衣带水라 하지만 상대방의 국민이 내 나라에 와서 땅을 산다는것은 엄금이 되여있고 문화심리는 거부감과 불신임이 살판침은 3국의 통병이다. 2차대전시에 일본이 아시아 큰형님 노릇을 한다고 중한2국과 남양각국에 끼친 피해와 자신이 겪은 피해가 아주 막심하였던 원인의 하나는 일본이 고취한 나는 사람이고 남은 사람이 아니라는 문화심리에 집결된다. 더불어 살아가련다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면서도 공인가치취향을 무시한 일본의 작법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大敵이다. 그러므로 오늘과 래일에 있어서 중일한 3국이 문화同認점 발견과 실존구축은  큰 과제이고 평화공존의 필수조건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갑자기 친구도 경제능력이 비슷하면 사이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생각해본다. 봉페된 북한경제시스템이 이번 금융위기에서 받는 영향이 개방경제나라보다 적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원인인지는 잘 모르지만 중일한 3국 수뇌회의에 북한만이 묘하게 빠져나갔다는 점은 유감이 아닐수가 없다.  
37    문천에 부치는 시 댓글:  조회:2579  추천:86  2008-06-09
문천에 부치는 시   허동식산정을 비추는 해빛이 다 내려오기를 기다릴려면 한나절 걸릴거라 판단이 되도록 쳐다보는 산벼랑은 아스라이 높았고 산아래 외가집에 떡 먹으러 가려면 형님 누나 없는 아이 홀로는 어딘가 겁날거라 생각이 나도록 내려다보는 골은 엄청 깊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동네 농가 정원에는 뙤약볕이 잘도 뛰놀았고 사품치는 민강의 언덕우 다락밭에서 얼굴이 까맣게 탄 사람들이 흰 이발 드러내어 자꾸자꾸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천료리의 짜고 매운 기운이 질척거리는 오붓한 거리에서 하루밤 자고 아침 일찍 깨여나 끼니을 배불리 먹고 정갈한 고요속에서 길을 떠나던 일은 몇해전의 기억이다   하지만 오늘은 먼 길을 떠난다고만 생각하고싶은 그대들 아침밥 배불리 먹고 가는가 아침밥 배불리 먹고 가는가   寄汶川   高望巍峨山岭曾自想: 要等到山顶上的阳光走下来 也得好一阵的吧 俯瞰深长沟壑曾自言: 要回山下姥姥家混个好吃的 没有兄长陪伴的孩儿会感害怕的吧   未料这山高沟深之域 农家庭院里雀跃着活泼的阳光 河岸梯田里演绎着 露出皓齿热情招手的一幕幕   在涌动着川菜麻辣之舞的县街 投宿了一夜 次日清晨醒来 吃早饭格外地多了些 之后离开沉静中的井然 记得已是好些年之前的事了   今日 我只在痴想: 正如当年路途中的我一样 他们只是踏上了新的一程 我只在痴念: 他们可是吃好了早饭的吧 吃好了早饭之后启程的吧
葛红兵교수의 카페에는 《中国应停止宣仇式反日宣传》는 글이 이미 자원 삭제되여 있음으로 알고있음-역자   葛红兵교수의《中国应停止宣仇式反日宣传》를 읽고- 감성과 리성사이                              自由奔马 솔찍하게 말해서 葛红兵교수는 나의 学长이다(명인과 인연을 맺으려는 혐의를 받을만도 하다). 하지만 나도 《中国应停止宣仇式反日宣传》을 읽고 입에 담지못할 더러운 욕설들이 마구 튕겨나오려 하는것을 어렵게 참았다. 인터넷에 한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또 무슨 보복행위를 할려고 그러는지 葛红兵교수 집주소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葛红兵교수를 법에 기소한다(2007년 7월 가원량이라는 사람이 상해 어느 법원에 기소했음-역자 주)는 소식을 전해듣고나서부터 나의 정서가 조금 완하되였고 랭정한 생각을 해보고싶었다 . 나의 감성이 감염되기는 했지만 리성도 정상으로 돌아온듯했다.  우리의 자아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본에 대한 원한이라는 명제를 초월하여 리성주의 葛红兵교수와 감성주의 네티즌들 표현형태에 있다.   나도 读书人인으로서 리성의 중요성을 알기는 하지만 늘 감성주의에 감염되기도 한다. 나도 일본사람을 미워하고 일본사람을 욕하고싶다. 하지만 모든 일본사람이 아닌 일본전쟁범과 우익세력만을 상대해서말이다. 또 일본의 <蜡笔小新>  <聪明的一休> 등 그림영화도 좋아하고 川端康成과 大江健三郎의 소설도 즐긴다. 그리고 도쿄의 사랑이야기와 高仓健 그리고 午夜凶铃도 즐기고 카메라를 사면서 결국은 일제를 산다. 그러다가 항일전쟁과 신사참배를 생각하면  자신을 리성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면서도 격분된 정서를 삭일수가 없다. 일본인도 사람인줄은 알지만 일본관련문제를 론하면 머리속에는 늘 그들의 만행이 떠오른다.  나는 그들을 용서할 능력이 없다. 또 그 누구나 나더러 그들을 용서하라 강박한 일도 없음을 안다. 피비린 기록들인 항일전쟁 사진을 나는 보아야 하며 앞으로 자식을 데리고 볼것이다 .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한 력사이고 우리의 마음을 저미는 악몽이기 때문이다. 건망증과 무감각이 우리의 렬근성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한, 老好人식의 관용이 우리의 좋은 습성이 아닌 이상, 항일전쟁에 대한 기념과 선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현대인들을 리해할수는 있지만 력사를 감추려는, 진정한 민주의식과 평등의식을 잃어버린  일본우익정치인들은 리해하지 못한다. 나는 葛红兵교수의 본의는 理性이며 인테리의 反思精神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反思에 대해 反思를 진행할 필요성이 있다 생각된다. 그는 중국인들의 정서반발력에 대해 너무나도 경솔한 판단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이고 문학평론가이기는 하지만 중대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전심전의으로 감성과 리성을 투입한 언설을 진행하지않았다. 그의 언설은 너무 관방적이고 자태가 너무 높다. 자신을 너무나도 정영인물의 위치에 놓고 민중을 바보로만 보는 착오를 범했다. 우리의 항일전쟁기념은 아직은 우리를 협애한 민족주의로 몰고갈 정도는 아니며 또 더 중요한것은 우리 민중들이 력사를 잊어버리는 위험성이 력사를 외곡하는 위험성과 거의 동등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상황은 우리와 다르다. 독일은 력사에 대한 반성을 했으며 유럽나라들은 공동리익을 위하여 유럽공동체도 만들었다. 중국사람은 몇번 당하고서야 반항하는데도 일본인들은 력사문제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을 해버리고 있으며 따라서 중일모순은 升级할뿐이다. 목하 중일갈등은 절때로 중국인들이 력사를 두고 소처럼 반축한 결과가 아니다. 葛教授의 말씀이 나더러 소름이 기치게 한다.또 葛教授을 목독하는 음성들도 나더러 공포를 느끼게 한다. 언어의 폭행이다. 언어폭행이 행위폭행으로 전환한다면(갈교수를 법정에 내모는것이 합법적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합리성은 없다.) 더 무서운 일이다. 중국에 대해 좋은 심보를 품지않은 일본인들이 알면 깨고소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서적인 언행만 하는 민중은 몽매하며 리성주의 결여된 민중이다. 갈교수에게 한간이라는 모자를 씌우는 사람들이 홍위병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 네티즌들의 언행이 바로 葛红兵교수의 사람은 民主意识이 없으면 公正하고 客观적이며 就事论事적으로 问题를 볼수 없다는 말을 실증하고 있는 셈이다 . 또 일본인들더러 우리를 진보가 없고 아직도 약자를 깔보고 蒙昧하며 내부분쟁에 열정을 투입하는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비웃을 근거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갈교수나 네티즌들이나 모두가 쟁론의  分析이 深入하지못했고 높은 경지에 이르지못했다.
35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 (역고) 댓글:  조회:2841  추천:49  2008-03-29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 葛红兵 (상해대학 교수) 듣는 말에 의하면 일본에  중국 각지 <항일전쟁기념관>  <반일> 사진 철수요구를 목적으로 하는 초당파의원련맹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련맹의 진실한 목적은 나는 모른다. 만일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사실을 덮어감추려는것이면 우리는 마땅히 반격을 해야 하지만 만일 앞으로의 중일우호관계를 념두에 둔었다면 그들의 요구가 전혀 도리가 없는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중국각지의 2차대전기념은 여러가지 声光기술과 광학기술을 리용하여 일본인들의 살육과 간음 등 만행을 사실주의 수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내가 보건대 < 宣仇>가 기본 목적이여서 참관자에게 특히는 청소년들에게 正面적인 의의를 많이 주지를 못한다. 반면에 負面적인 의의로서 그들의 마음에 원한을 심어주고 < 전쟁이란 전인류의 재난이다>는 판단보다도 <우리는 강대해야만 전쟁에서 우리를 보호할수 있고 적들의 침해를 받지않을것이고 앞으로의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는 판단을 지니게 한다.       이런 선전은 애들더러 전쟁의 잔혹성과 반인류성이라는 관점을 지니게 하는것보다도 <정의>적이고 <복수>적인 전쟁을 갈망하게 함으로서 살기와 잔폭성을 지니게 할수 있다. 적의 잔폭성에 대하여 반복적이고 자세한 료해를 했다면 적보다도 더 잔폭해야만 적을 소멸하고 승리를 이룰수 있다는 론리를 지니게 할수 있기 때문이다.   宣仇式  2차대전기념은 중국의 2차대전기념이 직접적인 반일선전으로 변했고 일본도 2차대전의 희생자임을 잊게 하며 전쟁은 전인류의 재난임을 잊게 한다. 동시에 오늘날의 일본은 민주국가이며 민주국가란 전쟁수단이 아닌 시장경제수단으로 생존공간을 만들고 무력이 아닌 협상으로 권익을 얻음을 잊게 한다.  어떤 2차대전기념선전도 평화와 안녕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宣仇式기념은 반인류적이며 그 악과는 이미 목하 젊은이들의 狭隘好斗하고 仇恨을 荣耀로 간주하는 추세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각지의 2차대전기념에 리용되는 피비린 사진자료들이 <인성>교육에 적합하지 않으며 중소학생들이 좋은 인생관 인류관 전쟁관을 수립하는데도 좋은 역활을 보이지 못한다.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2차대전기념관을 참관했지만 그들이 2차대전에서 겪은 고난이 중국보다 가벼운것은 아니지만 피비린 사진들을 전시함을 많이 보지못했다. 우리는 아이들더러 인류는 善적이고 아름다운 존재이며 래일은 평화롭다는 마음을 지니게 하여야 한다. 나는 <영국인들은 어떻게 2차대전을 기념하는가>는 문장을 쓴 일도 있지만 우리도 영국인을 배워야 한다 생각한다.   2차대전이 끝난지 50년이 된다. 우리는 남아시아의 싱가포르 태국 등 나라를 배울점이 많다.그들은 仇日정서가 없이 일본과 사이좋게 보내고있다.또 仇德정서가 없이 독일과 사이좋게 보내는 프랑스 영국을 배워야 한다. 50년 뒤에도 날마다 우리가 락후한것은 일본침략을 받었기 때문이라고 언행을 진행하여서는 안된다.       원한은 독약이다.사람의 心智를 죽이는 독약이다. 또한 한 민족의 심지를 죽이는 독약이다. 1차대전에서 실패한 독일이 원한에 중독되여 2차대전을 발동했던 사실로부터 전쟁발동국가에 대한 징벌과 도덕멸시 그리고 책임추구가 어느 국한성을 넘어서면 생각밖의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한다. 죄인(일본-역자 주)의 방식으로 죄인을 처벌한다든가 죄인더러 반복적인 사죄를 하라든가 죄인을 羞辱하는 방식(꿇어앉아 사죄)으로 죄인을 <교육>한다든가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중에서 우리도 죄인과 똑 같은 과오(죄가 아닌 过犯)를 범할수 있기 때문이다. 관용은 상처와 인성의 약점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다. 사람을 상대하든 국가를 상대하든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宣仇式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한다. 2차대전기념도 반전쟁을 목표로 하여야하고 나라간의 원한과 적시상태를 선양하지말아야한다.     葛红兵,1968年11月生,新生代作家,批评家,文学博士,文艺学教授,英国剑桥大学东方所访问学者,上海大学中文系副主任,中国当代文学研究会理事、中国文艺理论学会理事,贵州师范大学中文系客座教授,中国当代中篇小说经典文库主编,20世纪中国文化散文精选编委。出版有长篇小说《我的N种生活》等4部,随笔集《人为与人言》等5部,长篇小说《沙床》由长江文艺出版社出版。学术方面,葛红兵教授1991年起先后师从曾华鹏、许志英先生从事中国现当代文学研究,出版《文学史形态学》等专著十余种,另有多卷本《葛红兵文集》面世。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를 읽고서 1           葛红兵교수는 <중국은 宣仇식 반일선전을 그만두어야>라는 글을 쓰고 중국에서 광범한 독자들로부터 일본우익세력의 호응분자로서 매국한간이라는 비판을 받는, 그리고 극소수인들의 긍정도 받은 인물이다. 2          어떤 언론에서도 목청이 높은 사람이 진리의 소유자라고는 말할수 없다. 또 어떤 주장이라든가 생각이 다수인의 마음에 들어 좋은 평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경우도 많음을 생각해본다. 많은 경우에는 다수인들보다도 소수인들의 안광이 더 예민하고 날카롭고 정확함을 느껴본다. 3          온가보총리의 < 우리는 원한을 지속할 생각은 없지만은 잊지는 않으련다—원문은 잘 기억이 안남 >는 한마디를 생각해본다. 물론 정치인의 외교어이다.론리가 있는 말이다.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할수 있을가? 중국인과 일본인중에서 어느 하나가 참여하지 않아도 이루어질수는 없는 목적이다. 4          葛红兵의 一言이 그의 본의와는 다르게 일본우익세력에 리용당할수도 있겠다. 그러는 경우에  葛红兵는 어떤 상책이 있을가? 우리는 또 어떻게 평판을 하여야 할건가? 5          도덕의 층차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인간도덕도 있고 집단도덕도 있지만 또 인류도덕도 있다. 도덕의 3층차가 주객관원인으로 모순체를 형성할 때, 어느 도덕을 기준으로 하여야 하는가? 6          소위 <매국역적에> 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학적인 해설도 있고 사회도덕적인 해설도 있지만 력사사실적인 해설도 있을것이다. 리홍장은 우리가 력사교과서에서 <마관조약>에 싸인한 청나라대신으로서 엄청난 매국역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홍장을 매국역적으로 판명함은 리홍장의 후세에 지속된 정치의 작간이며 <력사란 현실을 위해 복무한다>는 공리주의의 결과이다. 중국에 리홍장만큼한 애국자가 (청나라 황실을 사랑했든 국민을 사랑했든) 몇명이나 될가고 생각해본다. 7          일본우익세력이 기세 사납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평화를 사랑하지만 소수인들이 지랄발광한다>는 말이 진실여부가 어떠한지는 나는 전혀 모른다. 일본이 민주국가여서 어떠한 생존철학도  자유를 보장받아 우익세력도 합법성을 지니다 하지만 일본 곁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을 생각하든 앞으로의 <만일>을 생각하든 소름이 끼침을 느낀다. 또 일본인들도 <만일>을 앞둔 사유를 할 자유가 있음으로 하여 목하는 서로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나라와 나라사이 민족과 민족사이에 생존방식을 서로 강권함이 합당하지 않다고 우리는 생각한다.(우리가 남으로부터 그런 권고를 받을 때).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본인에게 우리의 생존철학을 강권하지는 못한다. 한다면 우리도 전쟁으로 일본우익세력을 교육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이 있을가?     
34    내가 좋아하는 시-'바다의 아버지 L형' 댓글:  조회:2862  추천:152  2007-06-05
내가 좋아하는 시-'바다의 아버지 L형'허동식곁에 살던 친구 하나가 선원이였다. 아주 오래전에 대련항에서 야채를 나르는 장사군으로 가장하고 밀차를 밀고 원양선에 오른것이 부산항에 내렸다가 << 돈 벌려면 배군을 해라>>는 로인들의 말을 듣고 한국 원양어선에 오른것이 거의 오년을 태평양 대서양을 넘나들면서 남극하고 가까운 아르헨띠나 해역에서 북조선 어선하고도 만나고 중국어선하고도 만나서는 어떻게 어떻게 프로노 록화테프하고 술하고 무엇들을 물물 교환도 해보았다는 친구, 현재는 이것저것 장사를 해서 돈도 좀 벌고 괜찮은 자가용도 끌고 다니고 리혼도 잘 하고 결혼도 잘 하는 친구, 당신 그래도 피땀으로 벌어온 돈으로 장사를 했으니 말이지 하고 내가 고향에 있는 어느 농사군 형이 한국어선에서 몇년간 그물을 댕기느라 손마저 변형이 됐는데 고향에 돌아온 지금은 여차여차하게 삶이 시원치가 않다고 이야기 했더니 그게 머저리지 노예질을 했으면 노예주도 해야지 하고 재미있는 대답을 하던 친구, 참으로 어딘가 내 마음에 드는 친구.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하고 우리 교포들은 농사군들이라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일하거나 어선에서 일하려면 우선 직업적인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치였더니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여 , 선원 하나를 1년 교육시키는 비용이 선원 하나의 2년 봉급이여 하는 말씀에 나는 입을 딱 벌리고는 가슴 어딘가 막 답답해지던 일.    다행이 한국에 나가 계시는 친지들속에는 배군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어 한숨이 좀 나온다. 그러면서 어쩐지 리범수시인의 << 바다의 아버지 L형>>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바다구경도 못했던, << 사실  수영은 개발헤염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개도 먹지 아니하는 돈>>  때문에 <<바다의 아버지>> 되여있지만도 마음 어딘가에는 아름답고 소박하고 진지한 것들을 많이도 소중히도 간직하고 살어가는 이들 , 참으로 우리들더러 <<풀려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들이다. 남 다 자는 밤이면 멀리 한국에서 사는 형님 누나 그리고 조카들이 그리우면 우리 리범수시인의 시 << 바다의 아버지 L형>>을  다시 한번 읽어 보자. 읽으면서  눈물이라도 흘리자.
33    행복이란 무엇인지 댓글:  조회:2762  추천:138  2007-05-29
       티벳에 가면 때벗이가 많이 되여 옛날보다는 현지인들 원초적인 생활상을 구경하기가 힘들다.좀 구석진 고산초원지대일지라도 목축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핸드폰을 들고 맥주를 마시고 하니 어디 티벳 냄새가 나는가? 그래서 버렸어 다 버렸어 하고 한탄하는 려행객들도 있으니 나는 나의 생각으로 당신네들 그렇게 고약한가? 저희들은 현대물질문명의 덕을 실컷 보면서도 왜서 티벳인들은 가난하고 락후되고 원시적인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가? 고 한마디 내뱉기도 했다. 아무리 돈을 쓰고 려행을 한다 하더라도 다만 제 눈요기를 하기 위해서는 티벳인들더러 구식생활방식을 보존해달라는 욕념을 내보이는 려행객들의 심사는 알길이 없었다.   헌데 그런게 아니야, 잘 먹고 잘 입는다고 행복한것은 아니야 하고 대답을 하는 분들도 있었기에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도 해보았다.행복이란 사실 심리적인 감응으로서 제가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아야 행복한것은 틀림이 없다. 산해진미에 릉라주단에 고관대작에 하는 따위의 조건이라든지 평판의 척도가 있다 할지라도 누구나 자신이 행복감에 도취되여야만 행복한것이다. 아무리 잘 살고 남들의 흠모의 눈길을 받는다 하더라도 행복감이 결여된 사람이라면 행복할수가 없다. 누구나 어느 사회나 어느 종족이나 자신의 습관과 환경에 걸맞는 행복관을 지니고 있다. 티벳인들은 현세보다도 래세에 대한 관심이 커서 좀 굶주리고 헐벗은 삶을 할 지라도 부처님에 대한 깨끗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극락세계로의 진입을 행복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그들의 생활상이요 행복감이요 하고 쑥덕쑥덕 공론한다는게 어딘가 미안하기도 하다.   현재 중국인들은 개혁개방 초기보다 행복지수가 많이 내려갔다. 도시인도 그렇고 시골인도 그렇고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어졌고 행복감이 지속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소요되기에 갈팡질팡 하는 삶을 지내고 있다. 라는 장편소설을 쓴 여화라든가 와 라는 장편소설을 쓴 가평와의 이야기를 빈다면 중국인들은 확실히 마음이 허공에 둥둥 떠서 사회신인감 위기와 전통적인 도덕륜리의 상실로 불행한 삶을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회사 아래는 먹자골목인데 밤낮으로 먹고 마시고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또 그 대렬에 끼여들어 곤드레 만드레 마시고 마작도 하고 이렇게 사는 내가 좀 근심스럽고 괘씸하기도 하다. 행복의 口腹화가 싫기는 하지만 그 옹노에 걸려들어 발악하는 나의 모습을 추라한 그림 하나로 그리고싶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관에 대하여 검토해볼 욕심이 많아짐을 어쩌할수가 없다.
32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많이 실패했다는 그 원인에 대한 상상 댓글:  조회:2865  추천:122  2007-04-16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많이 실패했다는 그 원인에 대한 상상허동식밥먹고 할일이 없어 조금 생각을 해본다. 우선은 하기 상상에 대한 아무런 도덕적인 법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그리고 읽어주시는 분들이 제발 참고로만 보아주시면 고맙겠다.   1.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여 운영하는 항업과 항목들이 돈을 벌만한 항업과 항목이 적다. 한국에서는 지탱하기가 어려운 기업들이 중국은 인금과 땅값이 싸다는 생각을 유일한 근거로 남들이 다 해먹은 로동력밀집형의 제조업으로 중국에 진출하고나면 상품의 원가를 인하시키는 면에서 중국의 기업을 대등하기가 어려우며 아무런 우세도 없다. 2 한국기업인들이 중국을 너무 깔보고 모른다. 중국은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중국 나름의 부유한 점과 우점도 있고 또 신문지상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정책과 운영도덕도 있지만은 중국식 잠재규칙(潜规则)이 엄청 존재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례를 들면 땅값이 싸지만은 대신 향장이라든가 촌장에게 드리는 돈이 땅값보다 많다는 것) 3 외국의 오단을 받을 생각만 하면서 중국시장은 상품의 단가가 싸기에 남을것이 없다는 판단하에서 중국시장을 개발하는데 힘을 쓰지않느다. 4 대만 홍콩 그리고 화교들 기업과 비교하면 통역과 관리일군을 사용하는 면에서 비용이 높다. 5 장기적인 타산이 적다. 중국에서 금방  크게 벌려는 욕심뿐이고 오래동안 눌러앉아 더 크게 더 넓게 생각을 굴리는 기업이 적다.(주요원인은 주식회사가 적고 개인회사가 많다?.) 6 중국의 각 령역에(특별히 국책과 지방정책) 이르는 조사와 연구가 필수적임을 알면서도 지키는 분은 적다. 7 중국은 변증의 나라이고 변증법의 나라임을 귀뜸하고싶다.   이상 두서없는 내용을 참고의 참고로.  
31    방문취업제에 대한 생각 댓글:  조회:2605  추천:126  2007-04-05
                         방문취업제에 대한 생각                                                              허동식나도 한국에 몇번 다녀왔다.회사일로 출장을 다녔기에 하고싶은 려행도 못했고 또 번마다 친구분들의 신세를 가득 지고 돌아온 탓일가  언제면 또 한국행을 하는가는 전화를 받으면 예 앞으로 돈 좀 있으면 배낭려행이나 할렵니다고 대답을 하지만 한국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받을 때마다 한국공무원의 날카로운 눈길을 받으면서 조선족이세요 하는 물음에도 한족인것처럼 알아듣지 못하는듯한 표정을 보이고 입국허가 도장을 받고나서는 내 도망을 안가니 너무 그러지 마시요 한마디 넌지시 던지여 한국공무원의 성난 얼굴을 아주 재미있게 쳐다보던 일들이 상기된다. 앞으로도 그런 질문을 받고 그런 눈길을 받는다면 한국땅을 딛고싶은 욕심이 적어진다.     살아가면서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잘 알고 있다.한국의 국민소득과 중국의 국민소득이 현저한 거리를 두고있는 현실앞에서 우리는 온갖 수단을 가리지않고 한국에 가려고 버득거리고 있고 한국은 또 나라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동포들에게 적으나 많으나 례의와 혜택을 베풀려고 노력은 하고있음은 사실이다. 그래서 방취제라는것도 출현되였고 실행법사항이 리상적이 못되여 동포사회의 물의를 빚어내면서 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처를 남기기는 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입장에서 방취제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성도 존재한다.     어떤 나라든 문제거리와 근심이 없는 나라는 없다.한국도 마찬가지다. 국내로서는 빈부의 차이가 심하여 여러가지 경제문제 사회문제 정치문제 때문에 골머리가 아플거고 6자회담을 둘러싸고 라렬되는 대북문제 한일관계 한중관계 등등이 <<집집마다 말못할 사정이 있다.>>는 중국속담의 진미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 있어서 중국에 사는 동포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어떠한 책을 취하는가 하는것은 별로 큰 사회문제점도 아니고 정치문제점 아니다. 다만 그들이 정치를 운행하는 작은 장기쪽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적인 력사적인 인륜도덕적인 책임이라는 천평에나 올려놓을가 말가 하는 문제점에 지나지 않는다.     헌데 우리는 잘 살지를 못하니 방취업에 신명이 나고 그러다가 또 격분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제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내 엄마 말씀을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정인갑교수의 이야기하신 자강책이야말로 우리가 平常心을 지니고 살아갈 방법이다.   
30    [단상] 한가지 후회되는 일 (허동식34) 댓글:  조회:3066  추천:165  2007-03-04
한가지 후회되는 일허동식작년 11월에 고향행을 했다. 고향마을에 이르러 변모된 촌락의 모습을 둘러보고 현재는 동네 사람이 살고있는, 부친이 손수 지으신 초가삼간도 찾아보니 아름다운 동년이 기억나고 마음이 설레였다. 나를 배동한 셋째 매형도 24살에 우리 셋째 누나한테 혼사말을 왔을 때 바로 이 집이였고 또 내 누나를 데려간 집도 이 집이라 하며 무척 감개하다가 나중에 나보고 산에 올라 부친의 산소로 가보자 하였다. 하지만 나는 제사날도 아니고 추석도 아닌데 하며 외고집을 어물거리고는 끝내 아버지 산소로 가지않았다. 나는 여태껏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아무짓도 쓸모 없다는 실용주의를 신봉하여 왔다. 부친 생전에 아무런 효도를 못한 내가 부친께서 세상뜨신 20년 뒤에 부친의 산소에 가서 술을 붓고 절을 하고 하는 형식주의는 나로서는 실행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또 실말을 하여 나로서는 부친 산소로 가볼 용기도 별로 없었다. 부친이 저 세상으로 가신 뒤에 한번도 산소를 찾은적이 없었으므로 아무리 소위 유물론적인 삶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마음 깊이 어딘가에 큰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형의 권고도 마다하고 부친께서 묻혀있는 먼 산만을 쳐다보고 말았다. 헌데 요즘은 후회를 한다. 효도를 못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제사를 지내는 날이 아닐지라도 시간이 나는대로 아버지 산소로 가보아도 괘찮다는 느낌이다. 술을 붓고 절을 하는 의식절차를 모른다 하더라도 또 벌초법마저도 모른다 하더라도 부친 산소옆에 조용히 앉아보는것으로만 하여도 나같은 인간으로서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제사도 그렇고 습관에 어긋난 성묘도 그렇고 모두가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실행해야 할 민속이고 도리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고달픈 삶으로 하여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도 아버지 삶을 대신 정리해보고 우리의 삶을 정리하여 영위하기 위해서는 홀로가 아니라 형제들과 같이 조카들과 자식을 데리고 아버지 산소로 가보는 일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의 죽음에 대한 행사의식을 포함한 민속습관이 물론 옛날부터 전해지는 낡은  습관이기는 하지만 그 진정한 내용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행사의식임을 조금 느낀듯하다.    오늘날처럼 종족의 인구가 마이너스성장을 보이고 인정이 마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는 현상을 거절하려면 우리의 민속을 지켜가는 일도 방법중의 하나라고도 생각된다.  
29    [단상] 우리도 생각하는 종족이 되자 (허동식33) 댓글:  조회:2956  추천:139  2007-03-04
 우리도 생각하는 종족이 되자허동식  사람마다 종족마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모두가 생각은 하겠지만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내용이 다르다. 말하자면 사유능력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오랜 세월 물산이 풍부하지 못한 곳에 집거하여 살면서 먹고살기가 너무 어려웠고 또 문화적인 지배를 많이 받아왔기에 우리는 우리의 독특한 사유체계와  문화를 키워오기는 했지만 우리의 사유와 문화는 너무 실용주의에 머무르고 습관주의에 물젖어 있다는 생각이다. 많은 한국분들한테 <<한국사상사>> 아니면 <<한국문화사>> 비슷한 서적을 부탁하기는 했지만 <<야, 한국에 사상사 있나?>> 하는 대답이 아니면 찾아보아도 별로 마땅한 서적이 없더라는 기별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사상사란 문화사란 사상과 문화의 시간적인 맥락을 기록한 서적에 불과하지만 그런 부류의 좋은 서적을 구입하기 힘든 일에서도 우리의 사상사가 문화사가 빈약하다는 나름의 판단을 해본다. 실말을 하여 우리는 아직까지 아주 훌륭한 사상가를 배태한적이 없고 전민족적인 문화적인 반성이 풍족하지 못한 사실은 우리의 사유와 문화가 어느 정도는 빈약한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된다. 한개 종족의 사상과 문화를 이루는데는 여러가지 인소가 복합적인 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인소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우리 종족의 많은 주관적인 인소가 우리의 사상과 문화에 소극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객관 사물과 인간정신 등에 대한 태도로 볼때  흔히는 남들의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이기는 하지만 <<소화시스템>>이 잘 발달되지 못하여 영양분을 섭취함에 있어서 리상적이 못된다. 유학이 살판칠 때에도 그랬고 근대로부터 받아들이는 기독교문화도 여전히 <<우리식>>으로 전변을 하여 우리의 삶을 보다 훌륭하게 가꾸는 면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이루지못하고 있다.거듭되는 생각과 쟁론과 선택성이 결여된 탓일가? 아니면 독립적인 자주적인 사유능력의 결핍 때문일가? 이문화를 대함에 있어서 우리는 지금까지는 <<수박겉층먹기>>수준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본신과 우리 문화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먼 옛날부터 그랬다는 낱말 하나로서 도든것을 대체하고 우리의 사유와 행위에 대한 심층적이고 폭이 넒은 반성을 하는 사람이 적고 또 그런 반성적인 반항적인 습관이 잘 키워지지를 않는다. 그 원인은 잘 몰라도 이러한 현상들이 앞으로 우리의 머리를 활성시키는 면에서는 큰 장애물임은 틀림이 없다. 중국에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이색적인 문화권에 살고 있지만 나름의 생각을 거친 반복적인 정리도 없이 남의 소리만 잘 받아외우고 다른 문화의 정수를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우리는 지금도 많이는 빈 소리만 하면서 지치여서 살고있다. 오늘날처럼 사람이 종족이 살아가면서 사상과 문화의 유효력이 뚜렷하게 표현되기는 처음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정보산업의 발달과 교육의 보급화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반면에 또 우리가 생각하는 종족으로 커가는 면에서 좋은 챤스를 만들어 주고있다고 생각된다. 먹는데만 신경을 쓰지말고 노는데만 신경을 쓰지말고 우리도 사유능력을 높이는데 힘써보자는 욕심이다. 그리고 또 아주 이색적인 사유를 도입하거나 창발하거나 하는 .<<미친놈>>들이 생긴다 하더라도 달갑게 받아들이고 사랑하여주고 흉금이 드넓은 문화환경을 만들자는 욕심이다. 그럼 우리도 생각하는 종족이 되자.  
28    아픈데만 건드리는 의사 그리고 기타 댓글:  조회:2997  추천:122  2007-02-28
로신은 모주석 할아버지의 높은 평가를 받은 분이다. 문학가이고 사상가이고 혁명가이고 수두룩한 가의  칭호를 받았고 또 그 때문에 중국 현대사에서 거의 신으로 받들리는 정도에 이른 신화적인 인물로 되여있다. 헌데 누군가 만약 로신이 당대까지 생전이였더면 건국 뒤에 수많은 인테리들을 투쟁해버린 모택동이 <<욕을 잘 하>>는 로신을 가만 놔두었을가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로신은 중국 사람의 아픈 곳만 칼로 해부하는 사람으로서 또 인격적으로도 모주석 할아버지의 그릇된 점을 용서할 분이 절때 아니다. 한다면 로신이 건국뒤에도 생전이였다면 모주석 할아버지와 로신 사이에는 어떤 혈투라도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론리적으로는 성립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중국인들의 재미있는 가설력에 감복도 한다. 20일전에 책 한박스를 들다가 허리를 크게 상했다.그래서 봉사님 의사들이 운영하는 맛싸지 집에 부지런히 다녔다. 다친 허리에 맛싸지를 받으면서야 소경들도 이렇게 부지런히 사는데 나도 일 잘 해서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또 봉사님 의사들이 아주 고의적으로 내 아픈 허리의 근육을 힘차게 주물러주면 아파서 새된 소리를 지르고는  속으로는 이게 어디 맛싸진가? 이런 수준이면 치료가 아니라 나를 완전 병신으로 만들어주는게 아닐가 하는 의구심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아픈 곳에 맛싸지를 많이 받으니깐 많이 좋아진듯 하다. 생각을 해본다. 허리에 있는 근육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아픈데는 힘차게 주물러야, 칼로 해부해서 고름을 제거해야 아픔이 낳아진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모두가 불합리적이고 병태적인 일면이 있다. 현재 중국도 마찬가지다. 잘 살려면 우리도 로신처럼 아픈데만 건드리는 용맹한 의사들이 필요하다. 헌데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아픈데만을 건드리는 의사들이 별로 많지는 못하다. 더러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알다싶이 어느 권력자에게 당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느 고용된 깡패무리에게 죽게 당하는 신문기자도 있다. 그래서 글을 쓴다든가 연구를 한다든가 하는 어떤 인테리들은 나는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문제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학리적으로 문제를 생각한다는 명안을 고안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마음 구석 어디엔가는 만약 문화대혁명 비슷한 운동이 또 오면 어떻게 살어? 하는 불안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사유능력과 어느 정도의 사회경험을 가진 자는 그 누구나 아픈데만 건드리는 의사가 좋은 의사인줄을 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우리는 아픈데만 건드리는 의사들을 용납하고 지켜주고 키워줄 여건이 아주 부족하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다. 현실적인 원인도 있고 제도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나는 언감생심 중국은 먼 옛날부터 아픈데만을 건드리는 의사를 좋아하는 문화전통이 부족한 동네라는 생각을 해보고싶다. 먼 옛날 진시황 시기의 <<분서갱유>>도 사실은 제왕사상을 지배적인 사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아픈데만 건드리는 의사들과 그런 의사들의 사상을 도살해버린 피비린 교훈이다. 그 뒤에도 간언을 하는 충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중앙집권과 제왕사상을 수호하는 이야기가 더 두툼하게 기록되여 있는 력사이다. 만일 중국의 문화전통에 이런 고질이 정말 존재하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도 그런 원죄를 벗어날수가 없다. 모택동 할아버지도 그렇고 평민들도 그러한 문화전통의 고질을 다소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잘 살려면 아픈데만 건드리는 의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새삼스레 느낀다.아픈데만 건드리는 의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분들이 필요함을 새삼스레 느껴보는 지금이 우리에게는 행운이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그리고 아픈데만 건드리는 의사들이 술술 배태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온다면 나의 이처럼 시시한 이야기는 아마 들어줄 사람이 하나라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27    중국 시문화의 몰락 그리고 일견 댓글:  조회:2775  추천:116  2007-02-21
 1곁에 동년배 시인이 한분 있다. 언젠가는 열혈남아로서 詩作도 엄청나게 했었고 대학교 詩社의 회장도 지냈으며 지금은 대학교 선생으로 일하는 시인의 시집 한권을 얻어 읽었다.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끝까지 읽어내려갈수가 있는 그런 詩作들은 아니였다.시인은 지금은 시창작을 그만두고 소설을 쓴다고 한다. 인터넷에 인기소설을 많이 연재했고 또 출판도 해서 많이 판매되여 돈도 벌었고 동료들로부터 명과 리를 일거량득한 유명인물이라고 부러움을 받으며 산다. 그래서 시집외에도 시인의 소설책도 안받침하여 받았는데 나로서는 읽어내려갈 자신이 없는 소위 대학생생활소설이라 그만 책장에 넣어버렸다. 물론 사람마다 흥미가 다르고 사는 재미가 다르겠지만 나는 과거에는 정열적인 순수 문학도였고 소박한 詩情을 너무나도 틀에 째이게 표현하던 (시인의 시에 대한 나의 느낌) 시인이 현재는 독자들의 구미에 따라 소설창작도 아닌 소설<<제작>>을 하는 상업형 작가로 대전환된데 대하여 조금 아쉬움을 느끼면서 그 시인의 문학창작의 대전환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다시 20세기 80년대 말엽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시가 독자들을 많이도 잃어버렸고 중국의 시인들이 어떻게 보면 漫長하기도 한 이 세월을 침묵으로만 대하는 현상을 소위 중국 시문화의 몰락이라 이름짖고 그 현상과 근원에 대하여 좀 생각해보고 싶었다. 2중국은 먼 옛날부터 詩國이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하는 문자가 표현수단이 이미지적인 문자이고 또 유학의 學과 術을 바탕으로 삼은 과거시험제도를 대표로 하는 문화전통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음운문이 아주 각광을 받아왔었다. 그래서 중국 전통적인 인테리들의 공부는 시공부가 많았었고 시를 모르면 인테리(士)라고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시문화는 관방문화권과 귀족문화권 그리고 인테리문화권만이 아니라 민간문화권에서도 절대적인 중심을 자리매김하여 왔었다.중국고전소설의 대작으로 꼽히는 <<홍루몽>> <<삼국연의>> <<수호전>>도 사실은 명나라 후기부터 시작되는 市井문화권 산물로서 <<이야기 집>>에 평민들이 모여들어 선생의 <<說書>>를 얻어듣던 시대의 이야기 각본에서 기인되였으며 그 시대에는 문학의 高品에 전혀 끼이지도 못했었다. 중국의 문학적인 목적을 지닌 서사문학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서방문화와 서방소설을 접하고 백화문운동을 해서부터 시작된다. 그 뒤에는 파금 전중서를 비롯한 소설 名家들도 많이 나타났고 20세기 30년대로부터 서서히 문학의 서사시대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문학쟝르형식의 전이과정에서도 중국문학은 시문화와 완벽한 리탈을 한것은 아니다. 深厚한 시문화 우세를 빌어 국난시기와 격변시기에는 詩國 이름에 손상이 없도록 곽말약 애청 등 훌륭한 현대시인들을 배출하였었다.당대에 들어서서는 비상시기였던 50년대로부터 70년대 초엽까지는 시를 쓰고 읽는 사람도 많았고 全民이 시를 쓰는 애국운동까지 했었지만 별로 훌륭한 시인들을 낳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엽에 발생했던 북경시민들이 천안문광장에 모여 주은래총리를 기념하는 집회와 <<4인방>>을 분쇄하던 사회정치사건을 배경으로 北島를 대표시인로 하는 몽롱시파가가 중국의 시문화사의 또 하나의 크지도 작지도 않는 고봉기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80년대말엽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사문학의 상대적인 번영과는 판이하게 시문학은 독자군체가 많이 줄어들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중국시인의 사회지위 사회영향 등이 아주 미소해졌다. 내가 대학을 다닐적에는 문과생은 거지반 시집을 몇권씩은 챙기고 있었는데 요새 우리 회사에 취직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태반이 문과생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집사람 학생들을 보아도 시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별로 없다. 대학생들마저 시를 별로 읽지를 않는다면 서점의 시집이 잘 팔리지않는다는 문화현상은 리해하기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볼 때에도 전에는 시를 자별나게 좋아했느데 요새는 시 읽을 기분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이러한 시문화현상을 나는 중국시문화의 몰락이라 칭하고싶다.3경극을 비롯한 중국의 전통적인 희곡들이 거의 박물관에 보존되여 가듯이 중국의 시와 시인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어버리는것이 아닐가? 眼下를 둘러보면 시와 시인은 냉대를 받지만 나의 생각에는 아무것도 아닌 超女들이 크게 환대받고 있으며 또 새로운 문화형식과 문화현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것들을 보면서 나는 詩徒로서 조금은 당황감을 다소 지니게된다.나는 중국 시문화가 몰락하는 원인은 우선은 문화표현교류수단의 다양화와 중국국민경제의 쾌속적인 공상업화와 국민들의 물질생활의 향상 반면에 내존하는 非적응성이라는 객관원인에서 찾아보고싶다. 문화가 언어와 문자에만 크게 의뢰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과학기술의 발전과 리용에 따라 현시대는 여러가지 표현수단이 중겹으로 사용되는 시대이다. 문자에만 종이에만 매달리던 사유가 현재는 테레비요 인터넷이요 하는 여러가지 현대적인 표현교류수단을 리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빠르게 전수하고 빠르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보급되는 소위 快餐문화가 주요한 문화표현교류형식으로 변해감에 따라 언어문자가 아닌 符號들이 조금은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우리의 사유방식과 문화방식을 영향주고 간섭하고 또 <<신신인류>>계층의 생활방식을 지배한다.따라서 언어문자와 인쇄업을 표현전달수단으로 하는 시문화는 자연히 그 수단의 전통성과 어느 정도의 <<시수양수준>>을 필수로 하는 詩文자아요구로 하여 자연히 독자들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였고 시문화와 시인은 부득불 사회지위의 하락을 맞이하게 된다.거의 30년이 되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사실은 선진적인 공상업시대로 돌입하는 초급단계이다 .중국은 기나긴 농경사회를 거치였고 또 수십년에 달하는 침침한 계획경제시대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공상업화의 물결에 휘말려들었기에 공상업시대의 視角과 높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하여야 할 전통문화정리를 미처 끝내지 못한 사정이며 어떻게 보며는 버리지말어야 할 문화전통을 많이도 잃으며 또 허겁지겁 버리기도 한다. 중국시문화도 당연히 그 재화를 입고있다. 공상업사회의 혜택을 입어 물질생활수준의 향상되는 반면에 詩徒들을 포함한 중국의 인테리들과 국민들의 삶은 개인소유시간의 소실이 많아졌으며 또 제한된 개인시간소유내에도 가볍게 쉽게 오락적이게도 접촉할수 있는 문화생활형식이 많아졌으므로 자연히 인간의 정서와 사상을 조금은 <<까다롭게>> 발로하는 특징을 지닌 시문화를 버리고 꺼리고 있다. 快餐문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시간소모가 길고 정서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시문화는 상술한 사회변혁조건하에서는 렬세에 처하여있으며 또 공상업사회의 초급단계에 보여지는 중국인테리들과 국민들의 自若이 부족한 非적응성은 중국의 시문화를 더욱 창백하게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4 중국의 시인과 시문화는 이러한 현실앞에서 흰기를 내들것은 아니다 .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는한, 언어와 문자가 인류사회의 제일 기본적인 교류수단으로 사유수단으로 존재하는한 나는 중국인의 언어와 문자를 통한 사상정서의 발로가 필연코 존재하리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중국시문화의 몰락을 거절하고 중국시가 문화와 문학의 一席을 차지하려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나는 중국 시문화의 남다른 자아반성도 중국시문화 몰락을 저지하는 필수품이 아닌가고 생각한다.중국은 詩國이기는 하지만 서구문화권과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인은 아주 적다. 그 주요한 원인은 중국시를 다른 문자로 옮기는 번역난문제에 있기는 하지만 문화력사적인 시각으로부터 볼 때는 나는 중국시인 인문정신의 폭과 깊이가 제한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거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테리와 중국시인들의 머리를 지배하여온 사상은 유학사상이다. 물론 중국인테리와 중국시인들이 불교와 도교의 사상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불교사상은 중국식불교사상이였고 도교사상도 많이는 <<개인적인 삶의 경지>> 에만 제한되였다. 서구와 비교하면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의 인간수업은 <<우국우민>>과 <<治天下>>이라는 리상적인 境界도 있기는 하였지만 인간의 終極價値에 대한 관심과 神과의 대화( 형식적으로는 신령과의 대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으로서 인간과의 대화가 아닌가고 생각한다)를 지니지를 못했었다. 따라서 중국의 인테리와 시인들은 종교사상의 洗禮와 인문사상의 대폭팔(서구에서의 문예부흥)을 감지하지 못했으며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과 높이가 지역성이 짙었고 지방정치색채가 짙었다. 때문에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은 줄곳 대인문정신부족증에 깊이 빠져있었었다. 그 대신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은 전통적으로 지역정치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민감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력대적으로는 실리를 추구하여 국가기구와 지배층에 아부도 많이 했고 의뢰도 많이 했으며 반항도 많이 했다. 굴원의 시는 <<楚왕에게 드리는 애원가>>였고 리백 두보를 대표로 하는 당시인들도 자신을 알아주는 좋은 황제를 만나 한자리 하려는 幹谒詩라는 시형식마저 만들었으니 옛날 중국시인들의 내실의 일부분을 알아보기에는 알마춤한 실례라고 생각한다. 중국시인들의 대인문정신부족증은 당대 시인들의 몸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아주 재간둥이였던 곽말약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쓴 詩作과 유명한 시인이였던 애청의 문화대혁명이 금방 끝난 시기에 쓴 詩作들을 읽으면 그러한 陋習의 변형형이 일목료연하게도 잘 보여진다. 중국인테리들과 중국시인들의 대인문정신부족증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판단이 된다면 , 당대에 있었던 거짓말도 아주 화려하게 꾸미던 중국시인들의 詩作을 읽으면 지금 겪고 있는 중국시문화의 몰락은 리해하기가 쉬운 문화현상이 아닐가? 개혁개방이래 중국국민들의 사유의 폭과 깊이가 엉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심층적으로는 전통보다도 높은 차원의 심미요구와 대인문정신을 기대하고있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중국인테리들과 중국시인들이 자아반성은 아주 필요하며 중국도 진정으로 령혼의 자유를 지니고 있는 시인 만들기를 하는 작업이 바로 시문화 부흥의 묘약의 하나가 아닐가 하는 욕심을 생각해본다.
26    텔레비와 뉴스 그리고 기타 댓글:  조회:2950  추천:115  2007-02-21
소학교시절이였다고 기억된다. 겨울방학에 용정시골 큰 누나집에 놀러갔다가 심양에서 온 외사촌형과 이상 외조카 그리고 나 셋이서 해란강변에 있는 어느 휴양소에 텔레비구경을 갔다. 헌데 휴양소는 문을 닫고 있어 <<영화가 나오는 기계>>를 구경도 못하고 돌아왔다.중학교 시절에 미장공으로 일하는 한족집에서 동네에서는 처음으로 흑백텔레비 한대를 사놓았는데 온 동네 애들이 그 집에 밤마다 사태처럼 밀려들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말 방송을 시청하던 일이 있었다.고중에 들어가서는 현정부 청사 어느 사무실을 <<방문>>하여 텔레비드라마 <<곽원갑>>을 구경했는데 나로서는 채색텔레비가 난생처음이였고 즐거웠었다.대학을 졸업해서 결혼할 때만 하여도 채색텔레비 냉장고 세탁기가 3대기물이였던 시절이여서 나도 피땀으로 번 외화권 3500원(암가격으로 인민페 5000원정도)으로 지금 생각하면 아주 고가로 20촌 채색텔레비를 사놓고 쳐다보았다.현재는 텔레비를 쳐다볼 욕심이 별로 없다.아무리 좋은 텔레비라 하여도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다.위성중계로 하여 수십개의 챤넬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별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기가 어려운 일인듯 하고 또 나이변화에 따라 관중적인 흥미가 없어지는듯하다. 다만 이 세상을 사는데는 뉴스라도 좀 보아야 할것 같아 뉴스프로그램은 조금씩 쳐다보지만 뉴스같은 뉴스는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이 넓은 땅 뉴스라는건 령도자들의 행적과 바다처럼 출렁거리는 회의뿐인듯하다. 더 우스운건 지방텔레비에 나오는 뉴스는 엄동설한에 북방의 푸른 전야에서 농군들이 어찌고 또 어떻고 . 맙시사 新闻 아니라 旧闻도 아닌것을 가지고 떠들어대는 방송국이 가련하다.물론 좀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모택동시대 《枪杆与笔杆》논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언론업체들은 신경과민증에 허덕이고 있으니 뉴스의 내용과 형식이 많이 좋아지려면, 언론업체가 만백성의 나라의 언론업체로 전변하려면 아직도 피타는 노력이 요구된다. 언론업체들의 新闻자유화와 민주화는 좋은 살림을 구축한다는 현대사회진입의 필수조건이면서 또 그 목적이기도 하다.
25    대학입학난 그리고 기타 댓글:  조회:2826  추천:137  2007-02-21
석간지는 어느 시골 한 가정에서 올해 자식 셋이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았는데 경제난으로 부모가 자식 셋을 모여놓고 소위 <<제비뽑기>>로 누가 대학교에 갈건가 나머지 둘은 대학을 포기할건가를 정한다는 기사가 실리였다. 다음날에는 그 애들의 대학입학을 위하여 사회인들이 모금을 시작했고 또 돈 얼마를 모금했다는 련속기사가 보도되였다. cctv에서도 <<공동관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입학을 앞두고 경제난에 허덕이는 민고들을 엄청나게 방송하고 또 녕하는 얼마 복건은 얼마 하는 식으로 기금의 수액배렬을 이야기하고 있다.얼마 안되는 중국의 국민생산액과 비교하면 교육의 산업화과정에 교육비용은 껑충 올랐고 많은 교육비리가 사회문제로 나타났으며 가난한 사람들 대학공부는 하늘의 별따기로 되였다. 헌데 인구대국이면서 또 빈부의 차이가 나날이 심해지여 빈곤선 아래서 허덕이는 절대인구수가 수천만을 헤아리는 나라에서 단 기금이라는 자비심이라는 수단으로만 대학공부난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할수가 있을가고 나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해본다.나도 내가 사는 동네의 깊은 시골로 가서 <<희망공정>>이라는 명목하에 세워진 소학교를 구경한적도 있고 <<희망공정>> 소학교의 선생님들과 이야기도 좀 나누었으며 또 공청단성위 <<희망공정>> 일군과도 <<희망공정>>의 <<내속>>을 알아보면서 <<희망공정>>의 실행에 대하여 좀 실망을 햇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교육제도와 보장제도에 대하여 여태껏 그 <<쇼>>적인 일면을 부정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따라서 대학입학난을 두고 진행하는 <<모금운동>>도 다소는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 얼마 납세는 못했지만도 납세인의 생각으로서 우리 납세인들의 돈이 다 어디로 흘러갔을가고 생각도 해본다. 민간에는 관리배들을 두고 <<담배 한갑에 우리 한달 식량이요, 식사 한끼에 우리 부림소 한마리요, 엉뎅이 아래는(승용차를 말함) 집 한채요>> 하는 말도 류행하다싶이 현재 중국의 재정수입의 태반이 공무원들의 소비돈으로 되여있다. 언젠가 주용기 전 총리가 <<밥통정부>>라는 말을 했듯이 방대한 관료기구가 납세인들의 피땀을 엄청아게 빨아먹고있다. 각급 정부마다 재정적자를 보는 현상이 수두룩하고 공무원의 봉급이 얼마 안되는 상황하에서도 <<공무원시험>>에 참가하는 사람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현상을 보더라도 그 누구나 공무원직에서 풍기는 <<비린내>> 잘 알기 때문이 아닐가? 나의 욕심으로는 공무원직에서 풍기는 <<비린내>>를 철저히 없애는 밀방이 있다면 오늘날의 <<제비뽑기>>라는 슬픈 이야기는 자연히 많이 사라질거고 또 불쌍한 기자친구들의 진땀을 빼면서 벌리는 <<쇼>>도 관중이 많이 없어질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24    축구와 사회불신임 그리고 기타 댓글:  조회:3074  추천:149  2007-02-21
아시아녀자축구컵의 반결승전에서 조선이 중국에게 0:1로 패했다. 축구에서도 성패는 병가지상사로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울면서 축구장을 떠나는 조선의 축구선수들을 보면서 어딘가 마음이 아주 아팠다. 잘 못사는 나라일수록 나라의 영예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욕심은 오히려 더 크다. 올해 또 홍수때문에 갖은 신고를 해야 할 살림일거고 또 그럴수록 똘똘 뭉쳐서 가난과 봉쇄를 이겨나가려면 심리적인 기둥이 무조건 필요품이 아닐가?중국은 이겨서 좋기는 하지만 인터넷을 들여다보면 중국국민들이 이번 축구경기에 대한 평판보다도 이 시합에 나왔던 재판과 아시아 축구협회에 대한 불만이 더 많이 표현된다. 이태리籍 재판의 3차나 되는 잘못된 판단과 또 이 시합에서 오스틀라리아의 邊裁를 사용했다는것은 물의를 일으킬한만한 일이다.현재 중국의 축구든 이탈리아의 축구든 세계의 축구든 내막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종말적으로 돈이 살판을 친다. 스포츠정신과는 거리가 멀게 축구의 매력과는 반대로 축구는 상업적인 종족적인 정치적인 투기수단으로 전변하고있다.현대 사회에 있어서 축구와 스포츠는 사회의 주요한 一環으로 되여있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그리고 인류의 위대한 스포츠정신은 인류사회의 발전을 대변하는 유력한 근거의 하나임도 틀림이 없다. 반면에 축구와 스포츠의 타락현상은 사람들더러 스포츠와 사회에 대한 불신임을 지니게도 한다.축구와 스포츠에 대한 불신임은 인간사회에 대한 불신임중의 하나로서 또 언젠가는 사회불신임위기의 계기로 될지도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는 현재 국내사회와 국제사회에 어느 정도의 신임과 불신음으로 살고 있을가? 나라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또 수학적인 정답도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겠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은 살펴보면 반신반의가 류행이다. 너무 신임해도 당하고 너무 신임하지 못해도 당할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반신반의와 사회와의 타협으로 살아가고 있는것이다.이런 의미에서는 나처럼 신령을 믿지도 못하는 사람은 산다는게 어딘가 불행한 이야기로도 된다.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그리고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에 신임을 주지못하고 <<눈을 딱 부릅뜨고>> 살아간다는것은 힘들고 지쳐버릴 일이다.요새 조선의 핵문제 해결책으로 진행되던 6자회담은 아주 종무소식이다. 小題大作라는 의심을 받을만도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조선의 협력만 요구했을뿐 조선의 신임을 받을만한 일은 별로 하지를 못했다고 생각한다. 만날 <<독재의 나라>> <<악의 나라>> 등 언어공격과 형상회손에 전력하고 경제봉쇄와 외교봉쇄술로만 대처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조선은 어느 정도의 신임도를 지니고 있을가? 나는 다만 조선의 국제사회에 대한 신임도가 령으로 저락하지 말었으면 하는 욕심뿐이다.1차세계대전뒤에 독일은 전쟁수단으로써 국제사회의 불신임과 불평등을 벗어나려는 욕심에서 파쑈의 길을 걸었고 또 인류발전사에서의 침통한 교훈도 빚어내였던것처럼 度를 지난 制裁는 목적과는 다르게 상대의 큰 반발심과 불신임을 가져오기가 쉽다.또 우리로서는 제 안속만 차리기를 좋아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만 바라볼것이 아니라 조선으로부터의 신임도를 높이기에 노력해야 하겠다.
23    중국 고급인테리들과 사면초가 댓글:  조회:2918  추천:147  2007-02-21
근간에 내가 사는 동네 대학교의 마흔살을 앞둔 부교수 한분이 컴푸터 앞에서 폭사(暴死)를 했다. 正교수로 되려고 밤낮으로 학술논문을 쓰다가 지치여 죽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거렸다. 신문에는 현재 중국의 고급인테리의 70%가 과도 피로의 변두리에서 허덕인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위 고급인테리란 대학교 선생이 아니면 연구기관의 연구일군들이라 생각되는데 내가 보건대는 교육과 과학발전으로 나라의 진흥을 엿보는 중국으로서는 고급인테리야말로 참으로 보귀한 인력자원이 아닐수가 없다. 수많은 고급인테리가 해외진출을 하여 귀국을 포기하는 오늘날, 중국인구수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가냘픈 비률을 보이는 고급인테리들이 피로전으로 하여 생사를 다툰다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장래가 어딘가 근심스럽다.헌데 인테리들이라 말은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 그 나젊은 부교수의 폭사를 두고 << 야, 우리 학교 교장은 밥을 짖는 사람더러 금똥을 누라는게 아니야? >>하고 익살을 부린다. 밥을 짖는 사람더러 어서 뒤간에 가서 금똥을 누라는 이야기, 재미있는것 같지만 사실은 슬프고도 말못할 사연이 많이 깃들어있다. 교수든지 연구원이든지 연구를 하고 또 무슨 학술논문을 쓰려면 天時地理人合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착실하게 성사될것이라는 판단은 아주 상식적인 판단이다. 헌데 그러한 그러한 조화가 이루어지기전에 착실한 고급인테리로 되려니 ,좀 고급인테리답게 살려니 문제점이 많이도 생겨난다.봉급은 얼마 안되고 진테를 좀 많이 받아먹고 얼굴을 쳐들고 여유있게 살려니 직함승진과 박사공부 박사후공부 등 학위따기에 아글타글 전력해야한다. 직함승진을 이루려면 학술논문도 많이 발표해야 하고 연구항목도 있어야 하고 또 돈과 인맥의 받침도 있어야 하니 그들은 몹시 피곤할 것이다. 대학교에 근무하는 내 집사람도 무슨 논문을 쓰느라고 밤을 많이 패고 무슨 규획항목을 하느라 눈코뜰새가 없다. 내가 볼바에도 착실한 공부는 별로 없고 비교적 완숙된 생각도 없이 쓰기만 하니 좋은 학술논문이 나올리가 있을가?알아보니 그 대학교에서는 선생들의 직함은 승진할수도 있고 떨어질수도 있는데 직함보존과 승진을 하려면 교학도 어느 정도 해야 하고 일년에 A급 또는 B급 간행물에 논문을 얼마 발표해야 하며 또 어떤어떤 상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년말에는 상술한 규정에 따라 선생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점수에 따라 경제적인 보상과 기타 보상이 주어진다고 한다. 고급인테리들의 학문수준과 연구수준을 높이려면 여러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또 그 중의 하나가 상술한 점수제이기는 하겠지만 중국의 이상한 현상으로서는 목적 좋고 제도 또한 물샐틈없이 만들지만도 어찌하여 집행중에 변이가 많이 생길가? 현재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版面費라는 돈도 내구 원고료는 편집에게 양도하고 연구항목을 하나 신청하려면 여러가지 수단을 써야 하고 또 지도교수가 거느린 제자들에게 렴가의 봉급을 주면서 부려먹기에 "로반(사장)"이라고도 불린다는 이러저러한 현상은 우리의 고등교육과 학술제도가 목적과 목표와는 다르게 어딘가로 정처없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진다나노니 현재 중국의 고급인테리들은 사면초가에 깊이 묻혀있다. 그들이 직면하는 사회는 상업사회외와 관료사회와 그리고 건강볼손과 허약한 심리셰계이다 . 이러한 맹수무리가 이룬 사면초가앞에서도 고급인테리들이여 잘 지탱하라!
22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기타 댓글:  조회:2775  추천:140  2007-02-21
언젠가 한국에서 오신 분이 나하고 한국인과 중국인은 어떤 구별이 있는가 물은적이 있다. 너무나 엄청난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전혀 대답할수가 없지만도 어떤 문제이든 자신의 관점을 표명하기를 즐기는 나쁜 습관이 있는 나는 참지를 못하고 예, 한국인은 術적이고 중국인은 略적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물론 깊이 생각해본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한국의 력사 흐름이라든가 중국인과 한국인의 행동거지를 살펴보며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티벳에 여행갔을 때 중국은 가난하기는 하지만 중앙정부는 년간 수백억의 재정수입을 소비하면서도 이 불모의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이것이 중국인의 略입니다. 하고 손님들과 이야기 한적도 있다. 지구땅에 중국인처럼 눈앞의 리익과 작은 리익을 버릴수는 있지만 앞으로의 리익과 전민족적인 리익을 꾸준하게 추구하는 나라와 종족이 몇이나 있을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뒤 한무제시대에 이미 큰 국토의 륜곽을 지니게 되였고 또 수당과 청제국을 거쳐 광활한 국토를 정비했으며 무력과 민족융합을 변증적으로 리용하여 중화제국을 이루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나는 중국인의 뛰여난 略에 감복한다.중국에 여행하러 오셔서 지저분하고 가난하기는 하지만 땅이 넓어서 부럽다는 한국분들하고 우리 조상들은 왜서 땅을 조그만치 챙겼을가 하고 나도 함께 한탄한적도 있다. 추운 땅덩어리라 하더라도 그적의 생산력으로는 뭘 챙길것이 없는 땅이였다 하여도 조정의 국고가 비인다 하더라도 땅을 조금만 더 장만해주셨더면 하고 엉터리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인은 약삭바르고 성격이 급하여 극단적이며 지혜롭고 인정이 깊지만 중국인은 만만디고 중용적이고 인정도 인정이지만 리익앞에서는 게으르지 않다는 점도 나는 한국인의 術과 중국인의 略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한개 종족으로서 略과 철학이 없이는 번창할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한국의 <<해빛정책>>으로 하여 돈이 많이 나간다고 가슴아파하는 한국분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현재 나의 곁에는 중국대륙이 대만에 실리를 준다고 아웅다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略이란 하루아침사이에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아님을 느께게 된다. 하지만 독도에 대한 뉴스를 읽어보면서 오 이제는 하고 무릎을 탁 칠때도 있다.
21    영어붐 그리고 기타 댓글:  조회:2886  추천:158  2007-02-21
영어를 모르면 사람값도 못한다는 느낌이 올 정도로 영어붐이 중국을 기습한지가 이제는 몇해가 될가? 외국의 선진적인 과학기술과 관리법을 배워 잘 살겠다는 실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외국어를 배운다고 떠든지가 이제는 30여년이 된다. 대학입시는 물론 전공이나 료리사를 비롯한 직업도 직함(职称)승진을 하려면 외국어시험에 합격되여야 한다는 우스운(?) 말도 들었다. 이처럼 외국어공부가 형식주의에 물젖어 여러면에서 반면적인 영향도 끼치기는 했지만 현재도 외국어붐 특히는 영어붐은 중국을 크게 휩쓸고 있고 중국의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시간 그리고 정력을 크게 점하고 있다.오늘 석간지에 중국어가 영어에게 쓴, 장난끼가 어린 <<편지>>가 보인다. <<위대한 영어님, 저는 중국어인데 이제는 당신한테 백기를 들었습니다. 중국문학을 배우는 대학생도 중국문학은 락제를 맞아도 괜찮지만 4급영어를 통과못하면 졸업장과는 빠이빠이를 해야 하듯이 당신은 과연 대단합니다.>>고 말이다.5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지니고 있고 또 한자를 그 력사문화의 중심핵의 하나로 하는 나라에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국어 대신 영어가 거의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한다고 할 때, 나는 영어가 중국인의 거대한 자부심에 찍어놓는 상처의 흔적을 바로 보고있는듯한 느낌이다. 중국인으로서 또 한자와 중국어를 사용하는 자로서 나도 마음 한구석 어딘가 허전하다.하지만 영어붐이라는 사회현상을 정서적으로만 받아드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중국은 개혁개방전야에 대외무역액이 국민생산액의 2%도 안되였지만 현재는 40%라는 사람도 있고 70%라는 사람도 있듯이 중국의 국민경제는 경제세계화의 물결에 휘말린뒤부터는 대외무역을 떠날수가 없다. 중국은 대외무역이 없이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칭호도 있을수가 없고 우리의 물질생활 나아가서는 다채로운 정신생활도 상상할수가 없다. 영어권이 우리보다 선진적이고 또 우리의 사회변혁이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영어를 거절할수가 없다.언젠가 근처에 사시는 언어철학을 연구하시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적이 있다. 그 분의 이야기로는 상형문자인 한자와 자모문자인 영어를 비교하면 , 또 어법과 론리성이 결여된 중국어와 엄밀한 어법과 론리조직능력을 지닌 서구의 언어를 비교하면, 중국인은 상대적으로 경험실증주의정신이 결핍되여있고 사유가 상상적이고 직관적이며 정서적인 주요한 원인을 알수가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영어붐이 실리추구만이 아니라 중국인의 언어사유방식을 개조하고 풍부하게 하고 완숙하게 하는 효익도 가져다 주었으면 하는 엉뚱한 욕심도지니게 된다.
20    나에게 긴 겨울 댓글:  조회:2718  추천:128  2007-02-21
춥고도 공기가 혼탁한 겨울이 오면 마음이 좁아지고 무거워지고 곤혹스러워지면서 정신의 고갈을 느끼게 된다. 나의 이러한 무병신음은 이러저러한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나에게 아직도 精神家園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아판단을 해본다.동양인으로서 몸에 슴배여있는 종교의식이 박약하고 또 어느 정도 불교적인 습관사유라든가 습관정서가 다소 있기는 하겠지만은 흔한 이야기처럼 동양의 불교는 인도의 불교와 거리가 멀게 공리주의와 현실주의에 물젖었기에 인간의 마음을 깨끗하게 세탁하기 어렵다는 점을 나날이 느끼는듯하다. 나는 고독을 지키는 고질적인 무기인 독서라도 좀 하려면 독서가 전혀 생각처럼 진행이 안되고 의식은 계속 혼돈에 머물러있는 때가 많고 , 또 간혹 좋은 생각들을 적은 책이나 문장이 겨우 읽혀들었을 때면 거뿐한 쾌감을 느끼는 반면에 나는 왜서 이렇게 무식하고 생각들이 단순했을가 하는 괴로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일상이 좀 괴롭다. 천성적으로 그렇게 돼먹었는지 나를 개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밥먹고 할 짓이 없이 한가로우면 병이 난다는 말도 있듯이 어딘가 여행을 떠나기도 싶고 일을 마치면 금방 깊은 잠에 골아떨어지는 업종에도 종사해보고싶다.그래서 유물론과 유심론하고는 관계도 없이 무엇이든 믿어보려고도 생각을 하게 될때도 있지만 교회당에 다니는 일은 나에게는 <<형식주의>>로만 보여서 언젠가는 부담이 되리라는 판단이 먼저 나고 또 부처님앞에서 소원성취를 하는 일보다도 불경이나 좀 읽으면 어떠할가 생각되여서 한권 찾아내여 읽는 흉내를 내면 나에게는 문언문도 아니고 현대문도 아닌 불경들이 전혀 마음에 닿지를 못한다. 그러면서 한편 일반인으로서 종교는 리해를 하고 신앙하기보다도 우선 신앙하고 리해를 진행하는 편이 좋다는 말에 대해 사이비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또 현대어로 쓴 불경이 없는 일이 현재사회에서 불교가 성행하지를 못하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가 아닐가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하군 한다.농경사회로부터 현대상업사회로 질주하는 오늘날 , 나는 가끔 시골에서 자라던 먼 옛날에 대한 그리움이 번창하여지고 정신고갈증에 허덕이면서 또 신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짐을 느끼고 있다.공자는 인간생명의 초탈을 현실사회의 인간관계의 조화로움에 두었고 장자는 인간정신세계의 자유와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움에 두었다 한다. 나는, 나와 같은 인간들은 정신세계의 비상을 꿈꾸고 희망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비상의 길을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이 겨울이 참으로 길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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