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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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선족농민 10년후 자기땅 어딘지 모를수도 댓글:  조회:3509  추천:38  2010-08-13
조선족농민 10년후 자기땅  어딘지 모를수도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교수         2010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 사이에 필자는 동북지역의 부분 조선족농촌에 대한 방문에 나섰다. 연변 도문시 월청향,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진, 상지시 하동향으로 거친 방문을 통하여 도시화과정 속에서 조선족농촌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인구 유출이 심한 마을은 실제거주 인구가 호적인구의 1/8도 되지 않았으며, 많이 남아있는 마을도 호적인구의 1/3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50세 좌우가 젊은 층으로 분류될 정도로 노년인구위주로 되어 있어 조선족 농촌은 완전히 “노년생활형” 마을로 변화되어 있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5년 전만 하여도 고향에 가면 사람들로 북적이여, 정다운 농촌생활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현재는 사람을 찾아야 할 정도로 마을들이 텅텅 비어 있었다. 15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격세지감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조선족처럼 빠른 기간 내에 도시화를 경험하는 집단은 보기 드물다. 유례없이 빠른 도시화를 경험하였다는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와 지역도 30여년이라는 도시화의 단계를 경험하였지만 조선족은 15년 이라는 짧은 시간을 통하여 높은 도시화 단계로 진입하였다. 물론 도시화의 질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조선족농촌의 인구 유출상황을 감안해 볼 때, 현재 조선족 총인구의 75~80%가 장기적으로 도시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수치로만 본다면 이는 선진국들의 도시화율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의 조선족농촌의 해체는 조선족사회의 해체를 의미하기 보다는 도시화과정에서의 농촌사회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또한 도시화와 유리되어 조선족농촌문제를 고민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조선족사회의 중심은 이미 도시로 옮겨져 도시에서의 적응과 발전, 도시민족공동체의 창출과 네트워크형성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업으로 되고 있으며, 농촌의 관건적인 문제는 도시화에 의하여 초래된 후유증을 어떻게 정리、해소하는 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토지사용 문제이다. 도시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농민들이 다시 귀향하여 농사를 짓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또다시 영세농업의 길로 가서도 안된다. 따라서 조선족농촌의 핵심적인 과제는 이농한 상황에서 어떻게 토지의 경영권을 잘 지키고 활용하여 최대한의 임대수익을 확보하는 가에 있다.     농토의 중요성과 가치는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세계적으로 발전도상국가를 중심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공업화와 도시화、환경악화에 따른 수토유실로 양질의 경작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 식량안전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을 놓고 보면, 현재 일인당 경작지 면적이 세계적으로 최하권 6위를 차지하며, 국토의 64%차지하는 서부지역이 토지가 척박하여 5%인구만이 이 지역에서 생활하고,  95%인구가 국토의 36%차지하는 동부지역에서 생활하고 양질의 경작지가 점차 귀중한 전략자원으로 부상되고 있다.         따라서 농촌지역에서 토지의 임대비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가령, 현재 동북의 수전지역을 볼 때, 임대료가 높은 지역은 한쌍당 6500위안에 달하며, 대부분 지역의 임대료가 5500위안 정도 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임대료가 2000위안도 되지 않았 음을 감안하면 10년래 임대수익이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경제발전과 수요에 따른 양곡가격의 상승추세와 양질의 경작지의 감소추세를 감안할 때, 앞으로 경작지의 임대수익이 안정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의 사회복지체계가 낙후되어 있어 대부분 농민들이 노후보장이 없고, 앞으로도 짧은 기한 내에 그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한 세월이 변하여 자식에 기대에 노년을 보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토지를 잘 지켜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얻는 것이 농민들이 노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풍족하지 않더라도 최저생계비 정도는 확보하고 있는 셈이고,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마직막 삶을 터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부여한 이 토지경영권을 어떻게 잘 지키고 활용하는 가가 조선족농촌의 중요한 난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현재 마을에 남아 있는 농촌지도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기도 하다. 2009년 8월 동북지역 20여개 농촌 476농호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80%정도의 농호가 년 단위로 임대계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10년 이상 계약을 맺은 농호는 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농토경영권을 헐값으로 넘기거나 혹은 장기임대하는 것을 통한 농토상실의 위험은 현재로선 돌출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 큰 위험은 이농의 시간이 길어지고, 토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세대교체가 되면서 생기는 문제이다. “조선족은 이제 10년 정도 지나면 제 땅이 어딘지도 모를 사람이 많습니다. 농사를 지어온 부모세대들이 세상을 떠나면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땅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던 자식들이 자기집 땅이 어던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박선생님도 지금 고향에 가면 자기집 땅이 어딘지 알만 합니까? 아직까지는 어려서부터 농사로 뼈 꿁어온 일부 노인들이 마을에 계시고, 고향을 지키고 있으니 괜찮지만,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그때는 정말 제 땅이 어딘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할 것이고, 마을에도 알려줄만한 사람도 없게 됩니다. 결국 조선족이 제 땅이 어딘지 모르니 실제 농사짓던 사람들의 땅으로 되는 것이죠.?” 해림시 신안진 중화촌의 촌장의 말이다. 현재 이미 토지 임대에서 자기땅의 지경을 똑똑히 몰라 일부 토지를 떼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농촌의 고령화가 심해지고, 귀향하는 젊은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구경 누군가가 마을을 지키면서 토지임대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것이며, 누군가가 마을 사람들의 토지지경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정말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조선족농민들은 지금부터 이러한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여야 한다.     우선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농토에 관심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점검해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자식들에게 토지의 지경과 지도를 그려 똑똑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외 말뚝을 막아 지경을 표시하는 등 물리적인 방법들을 고려해볼 수 도 있다.     둘째는  아직까지 마을에 일부 경험있는 노인들과 촌간부들이 남아있는 기회를 잘 이용하여 마을의 토지 지경과 각 농호들의 토지지경을 소상한 그린 지도같은 것을 만들어 두어 이 후를 대비 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외지에 진출한 농호들에서 매년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촌정부와 노인협회 등 조직을 지원함으로써 상기와 같은 일들을 벌리고 고향을 지켜갈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줄 필요가 있다.       지금의 세상은 귀중한 자원을 놓고 혈투를 벌리는 시대이다. 한 집단의 힘은 얼마나 많은 중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가에 달려 있다. 조선족은 소수집단으로 현재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원확보전쟁에 가담할 만한 역량이 없다. 따라서 조상들의 피땀으로 일궈오고 지켜온 농토라도 잘 지켜가야 한다. 그것이 집단과 개인이 번성해갈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이다.
9    연변, 투망(投網)의 손잡이 역할을 해야 댓글:  조회:3600  추천:113  2008-10-10
제1회 조선족발전포럼-"연변의 의미와 가치 좌담회" 발표문 연변, 투망(投网)의 손잡이 역할을 해야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교사      현재는 무엇보다 정체성이 중요한 시대이다. 정체성이 명확해야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져 갈 길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개인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지역의 발전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 지역의 어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하여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큰 지역적 범위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부여 받고 있는 가가 명확해야 미래의 발전방향을 정확히 설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을 가? 이는 우리의 삶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예전에는 생활세계가 지역적 범위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타 지역과의 연관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타 지역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잡아야 하는 압력이 적었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화와 시장화 된 경제구조 속에서는 타 지역들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 처하여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비교우세를 발휘하여 지역적 분업체계 속에서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연변만 봐도 10여 년 전만 하여도 고향에서 자신의 직장생활과 생업에만 열중하면 되었지 다른 곳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이미 많은 주민들이 대량으로 외부로 진출하여 있고, 타지 나아가 타국과의 교류가 지역발전의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어 이러한 연결을 무시하고는 지역발전을 운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지역적 우세를 살릴 것인 가? 어떻게 역할을 확정해야 하는 가? 이와 같은 문제는 발전방향과 대책의 설정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변은 아직도 정체성을 찾고 있는 지역이다.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역적 특징과 우세에 대한 파악이다. 여기에는 자연적 우세, 역사 문화적 우세, 지정학적 우세, 인문적 우세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에 비추어 우선 연변의 자연적인 우세를 찾아본다면 다른 지역에 비하여 크게 내세 것이 없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라면 다른 지역도 다 그렇게 선전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연변이 크게 부각될 만한 것이 없다. 명산 장백산이 있지만 그것을 연변의 특징으로 부각하여 우세로 활용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크다.    역사 문화적으로 보아도 특히 부각될만한 것이 없다. 산마다 열사비라고 해도 중국에 너무 많은 역사유적과 역사사적이 숨 배어 있는 곳이 많아 거대한 것들과 비하면 오히려 초라한 감이 들며, 연변에서 특히 의미 있는 역사적 발견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문화적으로 조선족의 집거지로 조선족문화가 지역적 특색으로 될 수 있지만, 조선족문화를 산업화시켜 지역의 발전을 견인할 조건과 능력을 단 시기 내에 갖추기 어렵다. 지정학적으로 보아도 황금금삼각지역이요 동북아시대 전초기지요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화되기에는 너무나도 아득하고 요원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으로 들어오면서 연변의 특징으로 부각되어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연변조선족의 타지 진출이다. 이는 중국조선족사회변화와 연관되어 있지만 연변이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연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가령, 중국의 주요 시사지 "반월담" 2007년 22기에는 "연변의 노무경제가 백성을 부유하게 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글에서는 근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해외노무경제가 당지의 과학적 발전을 견인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부유하게 만드는 열점으로 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2006년에 해외노무수입이 10.6억불로서 전주GPD의 1/3차지하며, 해외노무진출자가 근 15만 명에 달해 총 취업인구의 17%달한다고 소개한다. 2001년 연변에서 "대외노무합작관리조례"를 반포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지방의 대외노무합작법규이며, 2004년부터 연변의 내륙지역에서 유일한 전국출입국중점관리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굳이 이런 것을 말하지 않아도 조선족의 외지진출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족의 이동은 진출지역이 넓고 이동강도가 높으며, 경제발전수준이 높은 대도시 지역에 집중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많은 조선족이 국내외의 대도시에 진출하여 있다. 또한 조선족의 이동은 계절에 따라 오가는 임시적이 이동보다 새로운 생활지역 개척이라는 장기적인 이동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기에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타지에서 주류사회로의 진출과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조선족은 현재 무궁한 가능성을 창조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한계는 이러한 자원을 조직화할 기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며, 소수집단의 경쟁력은 우선 집단의 협력체제에서 나온다는 것이 많은 소수집단에 대한 연구가 내놓는 결론이다.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로 연변은 이러한 조선족의 인문자원과 우세를 충분히 활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필자가 제기하는 것이 "투망손잡이론"이다. 어구인 투망은 물에 확산시켜 뿌려 넣어 물고기를 끌어낸다. 연변도 많은 주민과 유대관계가 있는 조선족을 외부로 확산시켰기 때문에 투망을 널리 던진 격이다. 관건은 어떻게 물고기를 잡아내는 가 즉 이를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사람을 다시 끌어들인다는 개념이 아니고, 어떻게 외부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지식, 자본, 정보, 인맥, 경영능력을 연변의 지역적 발전과 연결시키는 가하는 문제이다.    현재 연변에 있어 가장 큰 한계는 많은 인재와 청장년노동력의 유실로 사회적 활기를 잃어가는 문제이며, 가장 큰 우세는 조선족자치주로 정부의 정식적인 허가와 영도를 받고 공적인 기구들이 많다는 것이다. 외부에 진출한 조선족은 중심부에서 파생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빠른 개인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조직적인 기반이 없기 때문에 더욱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연변이 조직적인 힘을 이용하여 이를 역량화 시킨다면 연변도 외부의 힘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뿐더러 외부 조선족도 조직화됨으로써 민족공동체 내의 협력체계를 이용하여 더욱 큰 발전을 꾀할 수 있다.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선 정부의 허가를 받고 있는 많은 공적인 기구들이 나서서 네트워크화 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 필요도 없이 연변의 기구에 외부 회원제의 형식으로 외부의 사람들을 대거 참여시켜 협력의 장을 만들면 된다. 기업은 기업별로, 학문은 학문별로, 문화단체들은 문화단체별로 많은 네트워크화 된 조직을 구성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구성된 모임의 정기화를 통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중국조선족사회에서 네트워크화 된 조직운영을 가장 잘하고 있는 곳을 예 들면 "흑룡강신문"으로 볼 수 있다. 많은 독자층이 외부로 진출하자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외부로 진출하여 지사를 만들고, 부간을 만들어 당지 독자들에게 맞는 정보를 제공하고, 당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조직의 우세를 발휘하여 민간사회를 조직하여 민족공동체를 구성해가는 등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신문의 정보량과 학자들의 참여, 시장화사업과 더욱 효율화된 네트워크 조직운영에 정진해간다면 "흑룡강신문"은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네트워크구축에서 활약적인 것은 미국에 진출한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니카"이다. 국내 조선족 네티즌들은 물론 세계 각 지에 진출하여 있는 조선족유학생들이 사이트를 이용하여 각종 정보를 주고받고 생활수기와 같은 글들을 올려 명실공히 세계적 네트워크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온라인 활동을 통하여 여러 지역에서 동호회를 만들고 오프라인모임을 구성해가고 있다.    국내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는 곳은 "조글로"이다. 인터넷 미디어형식으로 뉴스와 정보를 다루는 외에도 각 계의 인사들을 참여하는 미니홈을 운영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형식의 포럼과 지역적 동호회를 구성하여 오프라인 모임까지 구성해가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앞서가는 위치에 있으며, 이 후 영향력의 계속 커질 것으로 예견된다.    연변의 많은 문화교육경제사업단위들은 지역에 국한되어 고사를 기다리지 말고 이러한 네트워크화 된 조직구성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 국내외에 자원을 지역발전에 충분히 활용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조선족자치주로서 조선족사회에서의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 세계 각 지와 국내 대도시에 진출해 있는 조선족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투망의 손잡이"가 된다면 연변의 새로운 僑鄕으로 태어날 수 있을 뿐더러, 동북지역 대외교류 창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변이 외부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사회와 문화의 질이 향상될 것이며, 이를 통하여 특색 있고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 중국조선족의 든든한 문화적 근거지로 될 것이다. 연변의 지성들은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세계적인 학자 다니엘 벨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08년 10월 3일 북경에서  
8    한국에서 번 돈 농업영역에 투자하라 댓글:  조회:3606  추천:103  2008-08-30
일전에 연변농촌을 방문하고 온 한 교수님과 식사를 하면서 그의 방문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연변 농촌의 한족남성들은 장가를 들기 위해 여성에게 10만원이라는 약혼예물을 줘야 하는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해결하는 가 물으니, 조선족의 땅을 많이 부치고 있어 괜찮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보통 10쌍, 많게는 20쌍까지 하는데, 많이 경작하는 경우 순 수입이 10만을 훌쩍 넘어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 간 조선족들이 일년에 15만원을 모을 수 있을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환율로는 부부가 한국에서 뼈빠지게 일해도 일년에 15만원을 저금하기 어렵다. 또한 한족들은 농사를 많이 하게 되면서 농기계를 꾸준히 갖춰 실물재산이 불고 있지만, 조선족은 현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물가 상승에 의하여 자산가치 하락을 겪어야 한다.    이는 요즘 얘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큰 추세로 보면, 중국은 세계공장이기 때문에 위안화의 절상이 필연적이며, 거대 경제체이기 때문에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력도 강하다. 따라서 위안화는 안정적인 통화로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의 개방 정도가 높기 때문에 투기 자본의 공격을 받기 쉽고, 따라서 한화의 파동이 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장기적은 안목으로 보아, 국내에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생업기반을 갖추는 것이 조선족에게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가 보건대, 농업영역이 중요한 기회로 되고 있다. 그 첫째 근거로, 현재 세계적으로 인구와 경작지의 비례가 심각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미 양곡생산이 수요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 하에서 앞으로 20년 간에 20억의 인구가 증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세계 각 국이 식량안전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다. 중국도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각종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양식가격을 높여 농업생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둘째로, 환경생태산업이 정보통신산업을 이어 새로운 산업혁명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견이 없으며, 많은 나라가 환경생태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환경생태 산업의 발전은 결코 농업을 떠나서는 운운할 수 없다. 이는 농업이 전통농업에서 첨단농업으로 거듭나면서 무궁한 잠재력을 발산할 것임을 설명해준다.    조선족은 농업에서 우세를 가지고 있다. 농경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잔뼈를 굳혀온 실농군들이 많아 농사만큼 자신 있는 영역도 없다. 또한 현재 조선족농촌에는 임대할 수 있는 농토도 많으며, 아직도 고향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아 일을 시작하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또한 많던 적던 외국에 가서 번 돈이 있어 농업에 투자할 여력도 있다. 따라서 앞 날이 안 보이는 막노동 판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번 돈을 과감히 고향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의 농촌을 다니다 보면, 이외로 고향에서 착실하게 기초를 다져가는 “농장주”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에게서 미래에 대한 야심 찬 구상도 읽을 수 있다.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몇 년 정도 외국으로 가서 막노동을 할 수 있지만, 시간을 너무 끌면 인생에 대한 낭비가 된다. 이제는 외국에서 번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여 도약의 기초를 마련할 때다.          
7    세계화시대 조선족의 의미 댓글:  조회:3768  추천:100  2008-08-26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이민이 증가일로에 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세계 이민자규모는 1970년의 8150만 명에서 2000년의 1억 7490만 명으로 3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민현상은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전통적인 이민 유입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세계화시대의 중요한 특징으로 되고 있다.    이민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세계이민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은 유입국의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젊은 이민자들이 노령화된 선진국의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러 넣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내 스페인에 일자리가 700만 개가 늘고, 프랑스와 호주에서 각각 200만개가 증가한 것은 외국 인력이 유입된 결과로, 외국인 노동자가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 투입되면서 또 다른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민자를 내보내는 개발도상국이 얻는 경제적 혜택도 크다. 이민자들이 선진국에서 취득한 기술과 자본, 아이디어를 갖고 귀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자들이 본국에 보내는 송금액은 엄청나다. 국제농업개발기금(IFAD)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이민자들이 2006년 한 해에 본국에 보낸 송금액이 3010억 달러에 달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나 원조규모를 초과하였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이민자들이 115개 개발도상국에 송금한 금액이 2003년보다 10%증가하였으며, 그 결과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자가 3.5%감소하였다.   이민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들어서면서 이민 집단이 형성하는 초국적인 네트워크와 그에 의한 다국 간 교류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에 있는 화교집단이 중국경제발전에 대한 공헌이나, 해외에 진출한 이민자집단이 인도의 사회발전에 대한 견인작용이 가시화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민의 초국적 네트워크와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화시대가 되면서 국제적인 네트워크구축은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적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이민 집단이 서있다.   조선족은 세계화의 붐을 타고 능동적으로 세계진출을 하고 있는 집단이며, 그 중의 일부 집단이 새로운 이주지에서 사업을 발판을 마련하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점차 초국적인 집단으로 변신하고 있다. “초국적 집단”은 소속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활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제3의 집단”을 가리킨다. “제1집단”이 국내에서 생활하는 집단이라면, “제2집단”은 타국에서 생활하는 집단이고, “제3집단”은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집단이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제3의 집단”의 존재가 점점 중요해진다. 조선족의 경우를 보아도, 외화를 벌이들일 뿐만 아니라, 외국의 선진기술과 상품을 국내로 인입하며; 국내의 질 좋은 상품을 국외로 수출하여, 소속국과 진출국의 하나의 연결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초국적 집단이 국가 간 교류를 촉진하는 하나의 통로임을 설명하며, 교류와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서는 이에 대한 활용이 중요함을 설명한다.            조선족은 급격한 사회변화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발굴하고 활용하여야지 평가절하 시켜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선 우선은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역사는 늘 위기 의식속에서 발전한다.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휘황한 역사발전의 절반은 망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으며, 실패한 역사의 절반은 휘황한 과거에 얽매인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변화 속에서 긍정적인 요인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요인이 최대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지, 위기 의식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선 지역적 사고나 과거에 얽매여 서는 안되며, 세계적 시야와 미래를 전망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6    박광성 프로필 댓글:  조회:3330  추천:140  2008-06-18
박광성 ---------------------- 흑룡강성 해림시 출생 1997년 연변대학 역사학부졸업 1999년 상해복단대학 사회학과 연수 2000년 연변대학 민족연구소 석사졸업 2003년 한국 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졸업 2006년 한국 서울대학교 사화학 박사졸업 2006.9~2007.5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 2007.7~현재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교사,부교수  
5    농토가 큰 재산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댓글:  조회:3708  추천:136  2008-05-16
농토가 큰 재산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박광성 중국 중앙민족대학 교수1950년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는 몇 천 년의 력사과정을 거쳐왔지만 인구규모는 17억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에 와서는 세계인구가 60억에 도달하였다. 즉 짧은 50년 간에 증가된 인구가 몇 천년 력사를 거쳐 형성된 인구규모의 2.5배에 달한 것이다. 인구학자들은 현재의 인구발전상황이 유지된다면 2025년경에 가서는 세계인구규모가 80억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장구간 인류역사를 조망해보아도 오늘과 같이 인류와 자원 간에 관계가 긴장했던 적이 없었다. 짧은 기간 내의 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자원에 대한 수요를 폭발시켰고 이로 인한 과도한 개발로 하여 인류생존의 물질적 기초인 자연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으로 들어오면서 국제시장에서 원자재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경제발전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곡물도 그 중의 하나에 속한다. 올해 초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돼지고기와 같은 농산품의 가격이 급속히 상승하고 현상이 나타났다. 육류가격의 급속한 상승의 배후에는 곡물가격의 상승의 자리잡고 있다. 2003년에 세계시장에서 밀과 옥수수와 같은 곡물가격이 상승하여 그 전 10년 내의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며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 동북지역의 밀 가격은 32%, 옥수수 가격은 100%, 쌀 가격은 13%상승하였다. 2007년 1~5월 사이 중국의 식품가격은 작년의 같은 시기에 비하여 6.8%, 곡물 가격은 6.4%상승하였다. 세계은행과 세계량곡조직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앞으로 수년 내에 세계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곡물가격의 상승이 자연재해와 같은 우발적 요인에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 없으나 현재 가격의 상승은 수요의 증가와 공급의 한계에 의한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농업전문가들은 현재 농산물가격 상승의 원인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면에서 찾고 있다. 첫째는 인구의 빠른 증가가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둘째는 중국과 인도와 같은 인구대국들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육류의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어 육류제품에 대한 시장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축사육에 필요한 사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셋째는 옥수수와 같은 곡물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과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곡물에 대한 잠재적 수요를 확대시키고 있다. 넷째는 석유와 같은 원자재의 가격상승으로 인한 생산비용의 상승과 연관되어 있다.   이로부터 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농산물가격상승은 생산의 단기적 파동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와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단기간 내에 해소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속한다. 농산물 가격의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을 증가해야 하며 공급의 증가를 위해서는 단위생산량의 증가와 경작면적의 확대에 의거하여야 한다. 그러나 농업기술의 큰 도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령 기술이 개발된다고 하여도 일정한 수준의 경작면적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현재 경작지면적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화로 인한 개발, 사막화, 토지유실 등 문제로 인하여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토자원부의 통계에 의하면 2005년 중국의 경작지면적은 18.3억 무로 일인당 평균 면적은 1.4무이다. 이는 세계평균경작지 면적 4.8무의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10여 년 간에 우리 나라의 경작지 면적이 1.2억 무나 감소되었다는 사실이다. 도시화로 인한 개발로 인하여 우리 나라의 경작지 면적은 계속 감소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18억 무의 경작지를 사수해야 한다는 방침까지 정해놓고 있다.   이는 수요의 급증에 비하여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토지자원이 큰 한계의 직면하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심각한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토지자원의 중요성과 가치가 급속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농토는 기존처럼 단지 농민들이 의존하여 생활하는 생산수단이 아닌 중요한 증식의 가치가 있는 큰 재부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의 현실은 어떠한 가? 사회의 큰 구조적 변화를 볼 때 이처럼 중요한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외지로 진출하면서 토지의 사용권을 헐값으로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혹은 아예 방치하는 경우도 많고, 임대해줘도 엄격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농민이라고 해서 대대손손 땅을 지킬 필요는 없다. 또한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도 가야 하고 도시로도 진출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의 것은 지키고 챙길 줄을 알아야 하며 토지와 같은 중요한 자산에 대해서는  더욱 중시를 돌려야 한다. 외지에 진출하여 있더라도 정부에서 새롭게 반포하는 정책에 대해 제때에 장악하여야 하며,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하여도 자산으로서 토지를 경영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국 문이 열렸다 해서 천년만년 외국에 나가 살 수는 없으며 설사 살수가 있다고 하여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 대도시가 좋다고 하지만 안정된 생업과 능력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공중누각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속하는 땅 한 무지를 지킨다는 것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된다. 큰 재산, 영원히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토지문제에 대하여 깊은 중시를 돌려야 한다.
4    중국조선족, 세계화 물결에 앞서가는 선두집단 댓글:  조회:3262  추천:102  2008-05-16
중국조선족, 세계화 물결에 앞서가는 선두집단 ◆ 《부모는 한국에, 형님은 상해에 동생은 일본에서 공부,친구는…》◆ 국외 진출자  45만명 육박 조선족 총 인구의 20%이상 규모◆ 세계적인 인적네트워크를 구축 지구촌에서 새 설자리 마련 요청 ○ 박광성 필자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조선족마을에서 누군가가 북경려행을 한번 다녀와도 대단한 뉴스거리로 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조선족의 생활모습은 어떠한가? 북경정도가 아니라 서울, 동경, 뉴욕과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 지역으로 대규모로 진출하여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공안국 출입국관리처의 2004년의 집계에 따르면 연변주민들이 세계 88개 나라에 진출하여 있다. 현재 한국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하고있는 조선족수는 근 27만명에 달하며 방문취업제의 실행으로 새로 진출하게 되는 사람들까지 예상하면 3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있다. 일본의 아세아경제문화연구소의 조사집계에 따르면 2005년경에 일본에 진출하여 있는 조선족수가 5만 3000여명에 달하였으며 미국에도 뉴욕과 LA지역을 중심으로 5만여명의 조선족들이 진출하여 있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 밖에 로씨야와 기타 유럽지역에도 3~4만명의 조선족이 진출해있는것으로 현지소식에 의하여 진해지고 있다. 상기의 국외지역에 한정하여 보아도 국외에 진출한 조선족의 규모는 45만명에 근접하고있으며 이는 총 인구의 20%이상에 달하고있다. 조선족은 국외에 진출하여 단순로무활동에만 종사하는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돈으로 창업까지 하고있다. 한국의 수도권지역에는 조선족의 자영업체들이 밀집되여 여러 개의 조선족타운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본에 진출한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서도 조선족에 의하여 경영되는 업체가 38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였다. 미국 뉴욕의 플러싱지역에도 최근 몇년간에 조선족에 의하여 운영되는 업체가 100개소로 증가하여 자체의 상권을 형성해가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국외지역에서의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조선족이 매년 국내로 송금하는 금액이 20억딸라에 달할것으로 추산되고있다. 조선족은 국외진출만 하는것이 아니다. 세계와 교류하는 전초기지인 국내 연해지역의 대도시에도 대규모로 진출하여 있다. 현재 주강삼각주, 장강삼각주, 산동반도, 발해만지역을 중심으로 40만명 이상의 조선족이 진출하여 있는것으로 추정되고있다. 현재 중국 국민총생산치의 70%정도가 대외교역에 의하여 실현되고있으며 이중 대부분은 상기 지역에 의하여 완성되고있다. 조선족은 세계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중심부지역에서 자신의 우세를 리용하여 국외와의 교류에 앞장서고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해지역에서의 조선족경제를 형성해가고있다. 이제 조선족은 더 이상 동북의 농촌지역에 집중되여 농사를 짓고있는 농경집단이 아니다. 오늘날의 조선족은 부모는 한국에 가 있고 형님은 상해에 진출하여 있으며 동생은 일본에서 공부하고있는 식으로 국제적인 맥락에서 활동하고있는 세계화의 선두에 서있는 집단이다. 기존에 한 마을에서 바글거리던 부모, 형제, 친척, 친구가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 전화로, 인터넷으로 련결되여 있는 세상이 되였다. 세계화는 이미 사회변화의 대세로 되여있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집단만이 더욱 좋은 발전의 기회를 가질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족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있다고 볼수 있다. 세계적인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국제교류와 협력에서 자신의 우세를 잘 발휘한다면 조선족에게 찬란한 미래가 있을것이다.  
3    “조선족 해외진출 위기 아닌 변화”… 댓글:  조회:3082  추천:109  2008-05-16
“조선족 해외진출 위기 아닌 변화”… “조선족 해외진출 위기 아닌 변화”… 서울대서 6년만에 박사학위 박광성씨 "일부 전문가들은 조선족들의 해외 진출을 조선족 사회의 위기이며 해체라고 진단하고 있지만,그것은 탈 지역적으로 네트워크화(다원화)된 민족사회로 재구축되고 있는 것입니다."오는 26일 서울대에서 '세계화 시대 중국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과 사회변화'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중국 조선족 박광성(33)씨의 주장이다. 2000년 서울대로 유학한 그는 6년 만에 한국인도 쉽지 않은 석사와 박사학위를 잇달아 따내 눈길을 끌고 있다.박씨는 "중국 조선족 노동자의 이동과 적응,정착 과정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다"며 "석사 논문은 한국을 중심으로,박사 논문은 한국을 비롯한 중국 연해지역과 미국,일본 등에 진출한 조선족을 중심으로 연구했다"고 말했다.헤이룽장성 하이린시가 고향인 박씨는 연변대학교 사학과와 민족연구소에서 재중동포 사회에 대한 역사 연구로 학사,석사과정을 밟았다. 직장까지 배치받았지만 조선족 사회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 서울대로 유학을 왔고,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꿔 권태환 교수 밑에서 연구를 진행했다.박씨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위촉됐다"면서 "내년까지 이곳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9월 학기부터는 중국에서 교수 자리를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베이징,톈진 등의 명문 대학에서 초빙하겠다는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교단에 서건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와 진로를 연구할 생각입니다."그의 아내도 충북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중이다. 그는 "아내는 중국 근대에서 여성과 가족에 관한 법률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다 출산을 위해 연변으로 돌아갔다"면서 이달말 아빠가 된다고 자랑했다.2006년 8월 2일 (수) 22:50   국민일보 김상기 기자
2    인터뷰:조선족출신 사회학자 박광성씨 댓글:  조회:3188  추천:113  2008-05-16
 KBS 1Radio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조선족출신의 사회학자 박광성씨8.9 (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행을 선택했던 중국 조선족들....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 조선족은 15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조선족들은 한국으로만 돈벌이에 나서는 것은 아닙니다.중국내에서도 농촌에서 도시로,또 일본과, 미국, 유럽 등지까지 진출하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탈 지역화 바람이 심각하게 일고 있는 중국 조선족들...일부에서는 조선족 사회의 붕괴를 우려하기도 합니다만최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과 사회변화에 대한 논문으로박사학위를 받은 조선족 출신 박광성씨는 조선족의 해외진출은 조선족 사회붕괴나 민족해체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박광성씨를 만나중국 조선족의 해외진출은 어느 정도인가.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조선족은 한민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조선족들이 우리사회에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등을 알아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조선족 출신 사회학자 박광성씹니다.   박광성씨는 1973년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출신으로 1997년 연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고 2000년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2000년 8월 서울 유학길에 올라 서울대학교 에서 『세계화 시대 중국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과 사회변화』 를 주제로 논문이 통과돼 이번 달 말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MC박인규:우선 박사논문 통과된 것 축하드립니다. 아직 학위를 받으신 건 아니죠?   박광성:고맙습니다. 학위는 8월 말에 받기로 돼있습니다.   MC박인규:조선족 출신으로 서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 이전에도 좀 있죠?   박광성:네. 여러 명 있습니다.   MC박인규:조선족 출신으로 유학오신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논문주제가 상당히 관심을 끕니다. '세계화 시대 중국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과 사회변화'. 쉽게 말하면 중국에 계신 우리 동포들이 많이 떠나고, 그러면서 조선족 사회가 어떻게 변하느냐 이런 얘기 같은데, 중국에 계신 조선족들이 외국이나 국내의 타 지역으로 많이 떠나고 있습니까?   박광성:조선족의 노동력 이동범위가, 근 10년 내에 조선족 총 인구의 근 50% 정도. 노동력의 근 70% 정도가 이동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동강도가 매우 높고, 이들의 진출지역은 중국 국내에서는 최남단의 주강 삼각주까지 퍼져있고, 국외로는 한국, 일본, 북한, 주변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많은 나라에 퍼져 있습니다. 2002년 연변공화국 출입국관리처 통계를 보면 조선족 자치주 지역주민이 88개 나라에 진출해 있는 상황입니다.   MC박인규:대단하군요. 그렇다면 지금 연변자치주에는 사람이 없겠네요?   박광성:연변자치주 같은 경우는, 대부분 농촌지역이나 소도시 지역은 많은 인구가 유출된 상태구요, 나머지 인구는 연길 같은 중심도시로 집결되고 있습니다.   MC박인규:이렇게 원래 삶의 터전을 떠나는 건 돈을 쉽게 말해서 돈을 좀 벌어보자는 겁니까?   박광성:그렇죠. 조선족이 원 거주지를 떠나는 건 전통적인 거주지가 그들의 발전적 욕구를 만족 못 시키는 게 주요 원인이죠. 지역경제가 낙후하고 경제기회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외지로 진출한다고 봅니다.   MC박인규:삶을 향상시킬 기회가 별로 없어서..그렇다면 연길 시나 연변자치주가, 조선족 사회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 이런 걱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광성:없어진다고는 보지 않는데,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해외에서 연변지역에 송금된 돈이 4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많은 돈이 지역에 흘러들면서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지역중심도시로의 인구집중. 따라서 오히려 농촌지역에 퍼졌던 인구가 해외송금으로 인해서 중심도시로 모이고 있지 않나. 중심도시 발전은 오히려 더 빨라진다. 이걸 우리가 조선족 사회의 해체라고 볼 수 있느냐. 이런 문제가 있거든요.   MC박인규:오히려 살기는 좋아졌다.   박광성:그렇죠. 중심도시가 발전하니까 오히려 조선족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MC박인규:98년부터 2002년까지. 4년 사이에 40억 달러면 한 해에 10억 달러씩 들어왔다는 얘기네요.   박광성:그 정도로 추산되는데, 해외송금액이 2002년 연변조세수입의 2.6배에 달합니다.   MC박인규:연변 자체 내에서 세금을 거둔 것보다 외국에 나간 조선족이 보낸 돈이 2.6배. 엄청나군요. 제기 15년 전쯤에 연길에 한 번 갔고 작년에 한 번 갔는데, 15년 전에 아주 시골스러웠던 연길공항이 작년에 가봤더니 장춘공항보다 크더군요.   박광성:이미 국제공항이 됐구요, 한국, 러시아, 일본의 항선이 개통될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국내에서도 베이징, 심양 두 개 항선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광주, 상해 등으로 확대되면서 연길공항이 그 지역 중심공항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MC박인규:노동력 인구의 70%가 원래 살던 곳을 떠나서 중국 내 도시나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외국으로 떠났다. 중국의 다른 사회에서도 이런 데가 있나요?   박광성:중국에서 조선족은 특이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소수민족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족같이 단시간 내에 이런 변화패턴을 보이는 소수민족이 드물기 때문에, 혹시 다른 민족에게서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고 할 때 이것이 중국사회 전반의 발전과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에서 지금 조선족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MC박인규:그러면 중국정부에서는 조선족들이 자꾸 해외로 나가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박광성: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워낙 나라가 크고 복잡하니까 별다른 태도를 명확히 표하진 않는데, 제가 보기에는, 외국에서 경제활동 해서 돈을 국내에 송금하고 특별히 정치적 분쟁의 소지가 없는 이상 그것에 대해서 별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MC박인규:제 기억으로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를 계기로 조선족들이 국내에 있는 친척을 찾아서 많이 오셨고. 90년대 초반에 덕수궁 앞에 가면 좌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뒤로 식당이나 건설현장에서 어려운 일들을 하시게 됐는데, 지금 조선족들은 다 그런 건 아니죠? 한국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 여러 가지라고 들었는데..   박광성:일단 한국에 오는 분들은, 유학생을 빼면 거의 대부분 노동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죠. 따라서 이 분들이 직종에서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건축업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여성들도 자영업 중심의 일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한국에 진출해 있는 조선족 노동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조선족에는 여러 집단과 계층이 있고, 거기에는 정치 경제 엘리트 집단도 있는데 한국의 조선족 이미지가 너무 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져서 형성되기 때문에..   MC박인규:조선족은 건축이나 서비스쪽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박광성:그렇게 이미지가 고착화 되는 게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MC박인규:지금 미국이나 일본 등 각 나라별로 조선족이 얼마나 나가 있는지 숫자가 좀 나옵니까?   박광성:한국을 보면, 2006년 5월 행정자치부에서 외국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조사에서 17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조사에서 이 정도 집계라면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세아 경제문화연구소에서 조사해서 대개 5만5천 명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구요, 미국에서는 뉴욕에서 조선족의 활동이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뉴욕에 한 3만명  있는 걸로 알려져 있고 뉴욕 조선족 동포협회, 전미 조선족 동포협회 등 단체들도 생겨서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MC박인규:뉴욕에서만 3만이라면 최소한 거기도 5만은 넘겠네요.   박광성:미국에 진출한 조선족의 80%가 한인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인이 집중된 LA같은 지역에는 조선족이 뉴욕보다 더 많을 수 있습니다.   MC박인규:유럽은 어떤가요?   박광성:유럽은, 프랑스 파리에 300여 명이 거주하면서 재불 조선족 동포협회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있구요. 한국 유학생들의 소식에 의해서 아일랜드에 조선족이 오히려 한국인보다 많다는 소식이 주간조선을 통해서, 한국 유학생이 현지 르포로 써서 난 적이 있습니다.   MC박인규:그렇다면 처음에는 코리안드림을 찾아오셨던 조선족들이 미국이나 일본으로 나가시는 형국입니까?   박광성:그렇습니다. 하나는 한국에서 가족들이 진출해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기타 가족과 자녀들이 그걸 밑천으로 제 3국에 진출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돈 번 걸 가지고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어서 조선족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MC박인규:조선족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국적은 중국이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시면서 불법체류 문제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문제는 잘 해결이 되고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박광성:불법체류는 아직까지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법무부에서 불법체류 구제프로그램을 여러 번 실시했고 조선족이 합법적으로 입국해서 취직할 수 있는 방법과, 체류에 대한 여러 가지 제도적 개선을 했습니다. 따라서 불법체류자 문제는 이후에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MC박인규:한때 불법체류 문제 때문에.. 조선족이 오시려면 상당한 수수료를 쓰고 들어오는데 1년만에 가야 되니까 문제가 있어서, 아예 조선족이 대한민국 국적을 받는 게 어떻겠느냐. 어떤 목사님이 주도해서... 그때 상당히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게 옳은 태도냐, 우리 동포니까 국적을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조선족 출신 사회학자로서,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국적을 받으려고 집단적인 운동을 하는 게 바람직한 겁니까?   박광성: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국적문제는 법적인 것으로 동포에 대한 사랑이나 감정으로 해결할 게 아니죠. 그리고 현실상에서 조선족이 이미 중국 국적을 갖고 근 100여 년을 생활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법적으로 합리적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게 사람을 동원해서 소위 운동식으로 국적회복을 주도하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국적을 달라고 소동부리는 거거든요. 한국 정부에서 봐도 국적은 달라고 요구한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외교분쟁의 소지도 있을 수 있고.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 모아놓고 떠들면 한국정부에서만 봐도 껄끄러운 일이거든요. 결과적으로 조선족은 중국 정부에서도 한국 정부에서도 껄끄러운 존재가 됩니다.   MC박인규:그렇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싶은 분들은 개인적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서 받는 게 좋지 집단적인 운동을 통해서 국적을 달라는 건 좀 무리한 거다?   박광성:무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한민국 국적을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지금 여러 가집니다. 혼인을 통해서, 동포 1세.. 이렇게 해서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부모가 동포1세로 국적을 올리면 자식들도 올릴 수 있게끔. 동포1세는 한국에 호적이 남아있거나 직계친척이 한국에 남아있어서 친척관계가 증명돼서..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집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한국국적을 법리적으로 가질 만한 신분이 되는 사람은 갖게끔 돼 있는데..   MC박인규:어떻게 보면 국적취득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박광성:합법적으로 조건을 갖추면 되는 거죠.   MC박인규:혹시 국내에 들어와 계신 조선족 중에 연간 몇 명이 국적을 취득한다는 통계가 있나요?   박광성:행자부 통계를 보면 혼인을 통한 방법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한 5천여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혼인을 통해서 온 분들은 한 6만 명 되는데, 그 외 다른 방법으로 올린 사람이 5천여 명 되는 걸로 행정자치부가 발표했습니다.   MC박인규:조선족에 관한 연구를 하셨으니까.. 국내에서 활동하시는 조선족 분들이 한국정부에 대해서 이런 걸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던가요?   박광성:그 분들의 제일 큰 희망사항은 한국에 좀 쉽게 진출할 수 있게..  합법적 체류의 길을 터주는 게 제일 큰 희망사항이겠죠.   MC박인규:아직도 한국에 오거나 여기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게 어려운 모양이죠?   박광성:여러 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에 오려면 여러 가지로 쉽게 못 옵니다. 한 번 오려면 일정한 방법이 규정돼 있는데 그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적으니까 한국진출이 자유스럽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에 체류를 해도, 합법적으로 체류할 때 정부에서 정한 법률을 따르려면 오히려 더 번거롭습니다. 업주의 신원보증을 갖고 와라. 여러 가지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사실 한국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하겠다고 찾아온 사람한테 여러 가지 법적인 담보를 해주기 어렵거든요. 이런 문제 때문에, 한국에 와도 한국의 법률을 다 따르다 보면 취직이 더 어렵고 번거로워서 자유롭지 못한 현상도 있구요. 그리고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기한도 한 1년 2년이라서 아직은 합법적 진출과 체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오늘은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조선족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광성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MC박인규: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2002년도에 오셨는데 어떻게 해서 서울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으셨습니까?   박광성:96년도에 연변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당시 자료를 찾으면서 서울대 사회학과 권태환 교수님이 쓴 '중국 연변의 조선족'이란 책을 봤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확실히 우리 조선족 학자들의 연구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을 발견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서울대학교에 가서 이런 교수님 밑에서 공부해서 조선족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서울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 합격돼서 들어오게 됐습니다.   MC박인규:석사과정은 원서만 내면 들어오는 건가요?   박광성:아니죠. 서울대학교 입학이 그렇게 쉬우면 문제가 있는 거죠.   MC박인규:연변대학에서는 역사를 공부하셨는데, 중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여기서 공부하는 게 차이가 많던가요?   박광성:공부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서울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교수님들의 강의입니다. 교수님들이, 난해한 이론을 학생들이 쉽게 할 수 있도록 많이 신경쓰시는 것 같아요.   MC박인규:대부분의 조선족들이 한국에 돈을 벌러 오는데, 지금은 박광성씨처럼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도 꽤 많은 것 같아요. 공부를 위해서 오시는 분들은 지금 어느 정도 됩니까?   박광성: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2004년까지 한 9800여 명으로 통계가 나와 있는데요, 그 중에서 한 40~50%. 한 5천 명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MC박인규:부인도 충북대학교에서 박사과정 밟는다고 들었습니다.   박광성:네. 충북대학교 사학과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MC박인규:부인도 조선족이시죠? 결혼을 중국에서 하신 겁니까?   박광성:네. 유학 오기 전에 했습니다.   MC박인규:유학 오기 전에 결혼을 하시고 혼자 나오신 겁니까?   박광성:혼자 와서 4년 동안 혼자 공부했습니다.   MC박인규:대단하시네요. 요새 한민족 네트워크라는 얘기도 많이 하고. 조선족뿐만 아니라 외국에 나가있는 한국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 나가있는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조선족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광성:조선족은 이미 여러 나라에 진출해 있고, 그 진출지에서 새로운 씨를 뿌리고 집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족의 대규모 분산이동은 민족사회의 해체가 아니라 결국 탈지역적 민족사회에서 탈지역적이고 네트워크화 된, 다원화된 민족사회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조선족은 현재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족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결성된다면 한국의 대외교류나 중국의 대외교류에서나 조선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세계화시대에는 네트워크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국제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결국 중국이나 한국의 국제교류에서..   MC박인규:말하자면 중국도 잘 알고 한국도 잘 아니까 한중간의 가교역할 같은 것도 할 수 있다.   박광성:그렇죠. 일본에 유학 간 조선족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 진출한 조선족 유학생들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시회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를 다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쉽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한테는 세 나라의 업무를 동시에 맡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일본에 간 유학생들은 일본사회에서 상당히 중시 받고. 그리고 일본에서 일부 학자들이, 앞으로 동아시아 시대에 한, 중, 일의 시장이 연결되는 통합시장 모델을 만들 때 조선족은 이런 연결 역할을 하는 주체가 되지 않겠나. 그래서 와다 하로키같은 저명한 학자들도 조선족 문제에 요즘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MC박인규:동아시아 3국간의 화해일 수도 있고. 상업경제활동에서도 조선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박광성:조선족같이 세 나라 말을 하는 언어조건을 갖고 있는 조건이 드물잖아요.   MC박인규:그렇다면 최근에는 일본으로 유학가는 조선족들도 많겠네요?   박광성:많습니다. 일본에는 지금 한 5만 명 정도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 진출한 조선족들은 거의 유학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본에는 한국처럼 일하러 못 가니까요.   MC박인규:조선족은 일본에서 취업은 안 됩니까?   박광성:불법체류도 하고 노동하는 분들도 있는데, 한국보다 그 장벽이 더 높아서 쉽게 진출을 못하니까. 언어적으로도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일본은 유학생들이 가면서 가족들이 가거나.. 이런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MC박인규:조선족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여러 가지로 한국을 위해서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저도 들었는데, 실제로 우리 사회나 정부에서 그런 데에 관심이 덜한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박광성:잠시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한국에서 조선족의 이미지는 결국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 노동자에 맞춰져 있지 조선족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에 기초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노동자도 중요하지만, 조선족의 인적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더 의미가 있거든요. 중국이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지만 그 나라에서 조선족이 제일 교육수준이 높은 민족입니다. 만약 10000명 당 박사학위 소유자를 따지면 한국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조선족들을 주목한다면.. 조선족의 인적자원과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지 방안을 연구하고 이걸 지지해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돈 벌려고 온 노동자 집단에 초점을 맞춰서 불법체류자다, 가정해체가 일어난다는 식으로 논의를 만들어 가니까 결국은 재외동포 사회의 소통에도 껄끄러운 부분이 생기고 재외동포 사회의 활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MC박인규:이달 말에 학위를 받으시면 바로 중국에 돌아가시는 겁니까?   박광성:학위를 받고 나서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1년 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1년간은 논문주제와 연관해서 연구를 계속하고, 내년 9월에 중국에서 대학교수로 취직할 생각입니다.   MC박인규:서울이나 한국보다 중구에서 대학교수르 하시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시는 모양이죠?   박광성:제가 중국에 가서 대학교수를 하는 게 중한 관계에서나 여러 모로 봐서 제 역할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서 귀국을 선택했습니다.   MC박인규:박사학위는 옛날에는 학문의 끝인 것 같았지만 요즘은 학문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얻은 거라고들 합니다. 조선족 출신으로서 조선족 문제를 연구하시니까, 앞으로 좀 더 연구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죠.   박광성:조선족이 초국적 생활공간을 어떻게 구성해 가는가. 조선족 연구에서 가장 시야를 바꿔야 될 것이 자꾸 지역에 국한돼서. 연변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을 벗어나서 여러 나라에서 형성되고 있는 이민집거지나 이민공동체에 주목해야 되고, 이런 공동체가 어떤 연결망을 통해서 초국적 생활공간을 구성해 가는가.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방면으로 제가 계속 연구를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MC박인규:세계화 시대를 어떻게 보면 선도할 수 있는 조선족들의 활약상.. 기대가 됩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1    “인구이동으로 조선족 초국적 집단으로 진화해” 댓글:  조회:3263  추천:111  2008-05-16
“인구이동으로 조선족 초국적 집단으로 진화해”박광성 중앙민족대 교수,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학술회의서 주장   [126호] 2008년 01월 31일 (목) 09:51:35 이현아 기자 yomikako@hanmail.net   중국 조선족 인구의 해외 이동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가운데, 각 지역별로 분화되고 있는 경제적 특성과 함께 지역별 상호연계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을 고찰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박광성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민족학-사회학학원 조 교수가 지난 달 24일 서울에서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정기학술회의에서 발표한‘초국적 인구이동과 중국조선족의 경제생활의 변화’는 한중수교 이후 세계화 물결과 더불어 조선족들이 많은 국가에 넓게 퍼져 이동을 하게 되면서, 본래 조선족 공동체 혹은 조선족 사회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밝힌 사회학 논문이다.박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조선족의 인구이동 형태를 들어 “어느 특정한 국가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여러 국가와 지역을 이동하면서 네트워크를 이루어가고, 이러한 네트워크가 집단의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민집단”이라며 이를‘초국적이민’으로 규정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조선족의 인구이동이 주로 경제활동을 목표로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이와 같은 인구이동으로 조선족 경제생활에 어떻게 변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문을 시작했다. 이는 최근 조선족 인구이동이 범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벌어지고 있는 급격한 변화에 대한 적극적 의문제기로써, 논문은 시종일관 이에 파생되는 다양한 변화양상과 더불어 문제점들을 심도 깊게 고찰하고 있다. 이번 논문에서 조사된 바에 따르면, 조선족 커뮤니티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중국 동북지역은 해외나 도시 등 조선족들이 진출한 외부 지역으로부터의 송금에 의해 생활하는 방대한 집단이 형성돼 있음이 드러났다. 조선족 사회가 노동력과 자금력을 상호 보완하면서 점차 거주 분포를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하여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다”고 설명해 이러한 현상이 상당 기간 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족경제생활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기존의 주요산업이던 농업을 대신해 일반 서비스업이 조선족 사회의 주요 경제활동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조선족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마다 식당 등 조선족이 운영하는 자영업 상권이 넓게 생겨나고 있는 점을 들어 “이는 조선족 경제활동의 주요 영역이 농업에서 일반 서비스업 위주의 자영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박 교수는 “조선족 경제생활이 기존의 안정된 구도에서 점차 불안정한 구도로 전환되고 있으며, 경제활동에 미치는 여성 노동력의 중요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들에‘세계화’라는 범세계적인 요인이 깊이 개입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조선족이라는 사회가 초국적인 집단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현재진행형이며,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를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발표된 연구는 2003년 1월과 2005년 2~8월 두 차례에 걸쳐러 흑룡강성 해림지역, 길림성 연변지역, 요녕성 심양지역, 산동성 청도지역, 한국의 서울 서남부지역에 대한 현지조사를 거쳐 정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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