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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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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    詩와 자연의 축복 댓글:  조회:6295  추천:0  2016-05-06
박남수의 '새' 그리고 시와 자연의 축복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새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 3연, 각 연 앞의 1,2,3 표시를 생략한 박남수의 '새......, 순수가치의 옹호와 추구를 주제로 하는 명편이다.  박남수는 평양 태생(1913)으로 일본 쥬우오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정지용의 을 통하여 1939년 박두진과 같은 해에 등단했다. 그 뒤 어떤 사유에선가 10수 년간 침묵타가 50년 대에 둘어 시작을 재개. 지적 서정의 새 경지에 힘써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즐겨 현실을 제재 삼았으나 앞의 시에서도 헤아려지는 바, 힘차거나 장엄하기보다는 매우 내향적인 것이 특색이다. 오영진 등과 협력, '문학예술'을 창간하여 상당 기간 편집을 주관했으며 제 5회 자유문학상(1957), 제1회 空超文學賞을 수상했다. 저서에 , 등 시집이 있으며 여러해 전 미국에 이주하여 살다가 그곳에서 타계(2001)했다. 김현승의 평설(한국현대시해설)을 보자. ......포수의 탄환으로 결국 붙잡는 것은 피에 젖은 새(육신)일 뿐 새의 순수는 아니라는 표현은 새의 진실을 잘도 표현하나 매우 시적인 표현이다. 시인 박남수는 순수 동경과 순수에의 지향을 그의 시 창작에까지 파급시켜, 되도록 의미를 배제한 언어와 언어의 엄밀한 결합으로서 예술적인 순수상태를 구축하여 그가 포착한 순수정신을 언어의 분야에서도 실현시키려 애쓴 듯 보인다...... 서두에 저 시편을 두게 된 것은, 지난 10월 하순, 도봉산 부근에서 있은 시낭송회(184회)에 초대시인 명색으로 과분 참여하여 새 소리를 들으며 대자연 순수무잡 가까이 자리했음에선가, 어린 날 가을 소풍 같은 싱그러움에 듬뿍 젖은 중에 아하 그렇구나 그렇구나 떠오른 것이 저 시편..., 그것은 작금 우리 시의 큰 낭패 중 하나인 애매모호 억지 꾸밈이 덜한, 맑고 깨끗한 자연에 동화 공존하는 우이시회 토속 서정에도 말미암았을 터이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우주의 지퍼를 내린다 대자연과 동화 공존하는 정성수의 환호'아침을 열다'..., 싱그럽다. 그리고 찬란하다. 김삼주의 '백로' 서두도 도봉 깊은 골짝 물 소리를 낸다. 이슬처럼 하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강심을 향하여 물비늘들을 다독이는 백로의 비 이따금씩 찬이슬 같은 바람이 강변을 훑어 수거되지 못한 빈 술병들은 휘파람을 흘리고 시심을 후련히 씻어 내리는 칼날 같은 것일 수도 있음인데...... 아이는 아이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볼 비벼대며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나뭇잎 사이로 틈틈이 아침해의 긴 다리는 흰 살을 보이면서 아기자기 뛴다 기억이 향기로운 돌 주위엔 거울을 보지 않는 작은 꽃들 단정히 서 있다 김정화의 '벚꽃나무 아래를 걷다' 16행 중 5~13행, 물기 흥건한 승그러운 자연의 수채화......, 그것이 흘러간 노래......늘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닌 추억에 밀리어 아무도 오지 않는 길을 걷는 세속으로 ......아하 허긴 이 또한 자연 아니던가. 임보의 '유리를 닦는 사내'에 이르면 그 자연 섭리는 밝은 거울이 되어 우리 앞에 선다. 보다 성실한, 보다 보람된 생을 위한 고뇌라 할 것이다. 사방 둬 뺨도 채 안된 작은 유리문을 닦고 있다 열리지 않는 한 영혼의 문 앞에 온종일 기대서서...... 볼이 깊은 젊은 사내 젖은 손수건이 아프다 납골당 위 6월의 하늘 저녁 구름이 붉다 생로병사의 자연 섭리를 알면서도 우리들 세속은 이를 앞질러 고뇌 비감 애통하며 영생 불사를 신앙에 의탁하기도 하거니와, 저 우리들 고뇌의 어떤 성취가 역사 발전의 공헌으로 이어지면 이 또한 견고한 자연 섭리일 터.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이었다 물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늘과 바다 가운데로 하얀 돛폭이 지나가다가 그만 삼키어지고 말았다 주체할 수 없는 열망도 그렇게 삼키어지고 말았다 조성심의 '수평선' 전문, 바다의 자연 풍광이 음양 낭만의 색조로 아름답다. 하늘과 바다의 합일인 수평선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의 절정 -사랑의 합일을 외치고 있음인데 그 낭만의 색조가 전문 7행 짧은 것으로 넓은 바다를 출렁이게 하고 있음이다. < 우이시>에 보이는 이 시인의 시 대부분이 잘 정리정돈된 어떤 신혼의 거실처럼 산뜻하고 밝아 두루 아름다웠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 작고 보잘것없는 흰 꽃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어찌 저것이 밀애를 했나 푸른 고추를 달고 소리 소문도 없이 속에 하얀 씨앗을 가득 담는지 햇빛 쨍한 날 어느새 검붉게 피를 토하며 시뻘건 독을 모아 씨앗들을 노랗게 영글리는지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내는지 참,  모를 일일세 허구한 날 하고많은 꽃 다 제쳐두고 오늘 내 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것은 내 버린 영혼을 네 매운 몸으로 비벼대고 싶어서일까 몰라 (이하 9행 생략) 홍해리의 27행 중 18행, 그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꽃이랄 것도 없는 고추꽃을 이토록 간곡히 이토록 황홀히 바라보는 눈빛이 은혜롭다. 자연에 대한 사랑의 일상이 이토록 싱그럽고 감개 깊음이다. -내 버린 영혼을 네 매운 몸으로 비벼대고 싶어서일까......부근의 전전긍긍은 눈물겹기까지 한 시인의 진실......거듭 아름답다. 받아 준다면 날마다 함께 하고 싶은 싱그러운 자연, 싱그러운 사람들......, 답례 축복이자 한 것이 되려 주옥에 흠집됨이나 아닐까 아수선하다. 시작 에세이 이달의 화제는 *시작 동기- 시는 어떤 때에 만들어지는가로 한다. 감흥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일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다. 이것이 솟아오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이 감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감흥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는 동서고금이 두루 같아서 옛적 어떤 부류 시인은 이를 인스피레이션-영감이라 하여 '신의 숨결'로 신성시......, 이 영감이 깃들어 들 때까지 한없이 기다렸다는 얘기조차 있다 하여, 평생토록 영감을 기다리다 덧없이 살다 간 자칭 시인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얘기다. 감흥이 솟아 오르지 않으면 시가 쓰여지지 않는다는 말에는 물론 일리가 있다. 누구나 경험한 바일 터이지만, 쓰고자 하는 일이 머리 속에 몽롱하여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쓰여지지 않는 경우라든지, 옳지 써야지... 했다가도 이내 멈춰버리게 되는 경우, 그리고 한참 써 나가다가 문득 그것이 공허한 낙서임을 깨달으며 망연자실하는 따위......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이를테면 감흥이 일지 않는, 또는 솟아오르지 않는 경우가 되겠는데, 아닌게 아니라 무엇인가 우리들 마음-내면의 리듬을 환기할 만한 감동이 없으면 사상이건 감정이건 말로 표출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저 감동이라는 것이 다만 그저 하염없이 기다린다고 해서 하늘에서 내려오듯 찾아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영감에 힘입는다고 해서 평소에 생각한 바 없는 시가 절로 생산되어 걸출한 작품이 된다는 사고방식을 우리는 경멸한다. 실상, 예술에 '우연'이란 결단코 없는 것으로, 언뜻 그렇게 보이는 경우에도 평소 부지 불식중 경험에 의한 것이나 심중에 잠재해 있던 것이 어떤 기회를 얻어 문득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시인의 민감성이 표현의 기회를 포착 그 통각력이 표현으로 인도하였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여, 이 기회를 포착하는 일이 감흥을 환기하는 일이 되는 것인데, 이 기회라는 것은 하나의 동기만 있으면 잡을 수 있다. 가령, 한 개 능금을 보는 경우에도 여러가지 연상을 환기하는 바, 능금 밭이 있는 고향에 돌아간 친구라던가, 그 친구와 주고 받은 작별의 밤의 대화라던가, 그때 시에 대하여 무슨 말을 했던가, 그 친구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저번 소식에 가정의 고민을 말했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등등 추억에서, 상상에서, 우정의 문제, 인생 문제까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거기 따라 사상도 감정도 흐르고 움직여서 그것이 마침내 언어가 되고 시가 되는 것이리 터다. 이 하나의 '동기'에서 비롯하는 가지가지 연상작용과 그것이 표현에 이르는 과정-거기에 시인의 활동이 있음일 터다. ===================================================================================   342. 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 한 알                                  장 석 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 시집 중에서                        
1402    연변작가협회에서 회원들 작품집 출간 전력 댓글:  조회:4447  추천:0  2016-05-05
연변작가협회가 호북성작가협회의 후원금 20만원으로 해마다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작품집 평선에 임은숙시인이 선정되여 시인의 작품집 《하늘아, 별아》가 일전에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발행되였다.   1971년에 화룡시에서 출생한 임은숙은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이며 2002년 《연변문학》에 “가을숲길(외3수)”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 2006년에 한국《대한문학세계》에 시 “그리움의 행선지”로 신인문학상, 2012년엔 연변작가협회 제2회 가야하인터넷문학상 등을 수상한바 있는 시적재능이 넘치는 시인이다.   “하늘이 허락한 사랑이 아니여도/ 사랑한다 말할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준 당신/ 잔잔히 흐르는 내물 같은 작은 고백 드릴수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머리글로 벌써 독자를 “사랑”속에 가두는 시집 《하늘아, 별아》에는 사랑을 주제로 아름답고 조용했고 아팠고 떠나보내고 추억하는 사랑려정을 시줄에 곱게 옮긴 146수의 아름다운 시들이 수록되였다.   2015년부터 연변작가협회는 호북성작가협회 후원금을 기초로 회원들의 작품집을 무료로 출간하고있는데 이번 시집은 리근영시인의 시집에 이어 두번째로 되는 시집이다. 박정근 ======================= 박장길의 시집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이 시집은 연변작가협회가 호북성작가협회의 후원금 20만원으로 해마다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작품집 평선에 선정되여 출간된 시집이며  리근영, 임은숙 시인의 시집에 이어 세번째로 되는 시집이다. 시집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는 5개 장절로 나뉘었다. 제1부는 '가슴의 북'으로 시내물, 여름강, 모래섬 등 자연을 소재로 했으며 2부는 '잡초의 가슴에 푸른 칼날이 자란다'로 '가락지', '부자의 독', '낚시줄의 긴 꿈' 등 희망을 그려보는 작자의 내심의 발로라 하겠다. 3부는 '아침이 흰옷 입고 춤춘다', 4부는 '내두산은 장백산의 안해이다', 5부는 '서산마루에 해바라기 피였다' 로 근 100수의 시가 수록되였다. 저자 박장길은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이며 연변작가협회 리사이다. 그는 아리랑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해란강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가야하문학상, 중앙급가사창작상 등 30여차 수상했다. 그의 저서로는 시집 《매돌》,  《찰떡》,《짧은 시 긴 탄식》;동시집《소녀의 봄》, 가사집《부부사이는 춘하추동》,수필집《어머니 시집 가는 날》등이 있다. 저자 박장길은 저서에서 "좋은 시를 읽으면 그렇게 기쁠수가 없다...후배가 선배를 본보기로만 대하고 '적수'로 대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선배를 초월하지 못한다...자기의 길을 찾는 과정이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조글로미디어 문야기자
1401    [한밤중 詩 읊다]- 詩 몇쪼가리 댓글:  조회:4982  추천:0  2016-05-05
“제발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필리핀 어느 대학 여자화장실 벽에 쓰인 낙서                    드니스 두해멀(D Duhamel·1961~)   잘 가꾸는 것을 잊지 마라. 멋 부리는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여드름투성이 여자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 입에서 박하향이 나게 하고 이빨은 늘 희고 깨끗하게. 열 개의 진주처럼 빛나게 손톱을 칠해라. (...) 갈망에 무릎 꿇지 말고 늘 날씬해야 DA 300   뽐내며 춤출 때 치맛자락을 들어 올릴 수 있지.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 교수와 결혼하지 말고 학장과 해라. 백작과 결혼하지 말고 왕과 해라. 희극적 묘사지만 이 시는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다양한 허상을 보여준다. 스스로 존엄한 여성(인간)이라면 이런 주문을 정면으로 거부할 것이다. 타자의 시선과 허영에서 벗어나 자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여성뿐 아니라 모든 존귀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 노마드 - 유경희(1964~ )   초지를 찾을 수 없어서 집을 짓기 시작했지 바닥을 놓으니 땅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기둥을 세우니 풍경이 상처를 입는다 DA 300   지붕을 만드니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낮에는 갈 곳이 없었고 밤에는 무엇엔가 쫓겼어 내가 지상에서 바라는 것 하나 우루무치행 편도 티켓 하나 질 들뢰즈에 의하면 진리는 늘 생성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구축(構築)의 감옥을 거부한다. 그것은 유목민(노마드)처럼 끝없이 탈주한다. 집을 짓는 정주(定住)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땅의 노래”를 들을 수 없게 하고 “풍경”에 상처를 입히며,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한다. 시인이 지상에서 바라는 유일한 것은 “우루무치행 편도 티켓 하나”이다. 그는 정주를 거부하며 고원(高原)에서 고원으로 이어지는 탈(脫)영토화의 삶을 꿈꾸고 있다. ///////////////////////////////////////////////////////////// 아이들 - 심언주(1962~ )   뭉텅뭉텅 쏟아 놓은 아이들 아침마다 피는 아카시아 꽃 앞산, 뒷산 정강이에 발등에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토끼풀 꽃, 찔레꽃 얼굴이 하얀 아이들 바람만 불어도 까르르 까르르 DA 300   들길을 흔들며 숲길을 흔들며 햇빛 공화국으로 햇빛 네트워크로 꽃들이 세상을 덮을 때, 세상은 유쾌한 악보가 된다. 어린 음표들이 “까르르 까르르” 웃는 “햇빛 공화국”에서의 한때는 얼마나 큰 위로인가.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아픈 텍스트이지만, 자연은 한 번도 어김없이 때맞추어 우리를 방문한다. 그중에서도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의 ‘위문공연’이 최고다. 잠시 위로받고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도 좋다. /////////////////////////////////////////////////// 박꽃  -신대철(1945~)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많은 것을 보려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박꽃은 소음(“벌떼”)과 “뜬소문”과 공격성(“침”)을 다 내려놓은 상태의 고요함을 상징한다. 내 안의 프리즘이 완벽하게 지워진 상태에서 사물과 만날 때 사물의 속이 들여다보인다. 그제야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망과 소음으로 어지러운가. 박꽃은 담비들도 다 돌아와 제 집에서 잠든 시간에 피어난다. 검은 밤과 흰 박꽃과 물소리로 단순화한 수묵(水墨)의 공간에서 나를 지우고 없는 듯 있기. 싸우지 않고 그냥 존재하기. 신대철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 수록.         어부(漁夫) -김종삼(1921~1984)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老人)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그 흔한 문학상도 별로 받지 못했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김종삼은 수많은 시인들로부터 오래도록 ‘내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순수하고 소박하고 맑고 따뜻하다. 바닷가에 매어진 채 외로이 출렁이는 작은 배 한 척의 풍경이 그대로 김종삼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풍경에는 삶의 난제(難題)와 희망이 고즈넉하게 들어가 있다. 존재를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풍랑”도 날을 세우지 않고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겠다는 포부도 요란하지 않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생각도 허풍스럽지 않다. 그러니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는 중얼거림은 얼마나 따뜻하고 아늑한가.     /////////////////////////////////////////////////       동물의 왕국 1 동물계 척추동물문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 52 - 권혁웅(1967~ )      소가 트림의 왕이자 이산화탄소 발생기라면 이 동물은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넓은 거실에 서식하면서 점점 소파를 닮아가고 있죠 중추신경은 리모컨을 거쳐 TV에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배꼽에 땅콩을 모아두고 하나씩 까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렇게 위장하고 있다가 늦은 밤이 되면 진짜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치맥이라고 하죠 치맥이란 술 취한 조류인데 날지 못하는 녀석입니다 이 동물의 눈은 카멜레온처럼 서로 다른 곳을 볼 수 있죠 지금 프로야구 하이라이트와 프리미어리그를 번갈아 보며 유생 때 활발했던 손동작, 발동작을 회상하는 중입니다  (......)     시는 새로운 렌즈로 세계를 읽는다. 이 시는 ‘고급 동물’인 “남자 사람”의 하루를 코믹하게 건드린다. 세상에, “치맥”이 “술 취한 조류인데 날지 못하는 녀석”이라니. 낄낄거리며 이 시를 읽다 보면 어느덧 “동물의 왕국”에서 지리멸렬한 생애를 보내고 있는 ‘내’가 보인다.       [출처] 박꽃/ 신대철 (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2015.11.12)|작성자 닳밤  
1400    정호승 - 별들은 따뜻하다 댓글:  조회:4994  추천:0  2016-05-01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일러스트=권신아 정호승(58)시인만큼 노래가 된 시편들을 많이 가진 시인도 드물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비롯해 28편 이상이다. 그의 시편들이 민중 혹은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는 따뜻한 서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슬픔'으로 세상을 '포옹'하는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좋은 서정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정화시키고 깊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그는 별의 시인이다. 그것도 새벽 별의 시인이다. 별이란 단어를 그보다 더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에는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새들이 날기도 한다. 그의 별은 강물 위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또한 별에 죽음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별들도 어둠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벽 별을 맞이할 수 없다.  이 시는 '하늘에는 눈이 있다'라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눈은 '보리밭길'을 덮는 눈(雪)이기도 하고 '진리의 때'를 지키는 눈(眼)이기도 할 것이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겠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기도 길겠다. '가난의 하늘'이니 더욱 그러하겠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겠다. 그런데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우리 생의 팔할은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별이 아닐까.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한('슬픔을 위하여')' 법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리라. 그 별들의 반짝임과 온기야말로 우리를 신(神)에 혹은 시(詩)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리라.  (정끝별·시인)    
1399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댓글:  조회:4936  추천:0  2016-05-01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일러스트=잠산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이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게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사귀고 웃고 슬프고 울고 아득히 사라질 때에도 물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왔으며 우리보다 먼저 사라졌으며 우리보다 먼저 다시 태어났으니, 유한한 우리에게 물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물은 불과 흙과 공기와 더불어 이 세계가 온존하는 한 온존할 것이다. 해서 물은 모든 탄생과 소멸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소생하고 순환하는 생명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선한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이 어떤 부정과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  강은교(62) 시인이 '사랑法'이라는 시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고 노래했듯이. 강은교 시인은 1968년에 등단해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초기에 발표한 시들이 강한 허무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를 '허무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해엔가 그녀가 시의 낭송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시 치료' 공연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데기의 현신이다.[문태준 시인]
1398    박인환 - 목마와 숙녀 댓글:  조회:4412  추천:0  2016-05-01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일러스트=권신아 시냇물 같은 목소리로 낭송했던 가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옮겨 적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류' 시인이 되었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 보이라 불렸던 박인환(1926~1956) 시인은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와 럭키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고 5개월 후 세상을 떴다.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었다. 이 시도 어쩐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로 쓴 듯하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로 요약되는 서사다.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요절했던 박인환의 생애와, 시냇물처럼 흘러가버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이미 죽은 그를 향해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애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인 것을,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정끝별 시인]  
1397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댓글:  조회:4805  추천:0  2016-05-01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일러스트 / 잠산   이 겨울에 사랑이 찾아온 연인들에게 이 시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선 어렵지가 않다. 쉽고, 리듬이 있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출렁한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눈이 쌓여 무게가 생기듯이 어느 순간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께를 누르며 묵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에도 '뜻밖의 폭설'은 내린다. 폭설이 내려 우리는 압도되어 이 시 안에 고립된다. 큰 고개를 넘으면서 느닷없는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좀 도발적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못 잊을 사람하고' 폭설에 갇히고 싶다고 말한다. 폭설에 갇히는 것이 고립의 공포로 엄습해오더라도. 사실 사랑만이 실용적인 것을 모른다. 사랑은 당장의 불편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고립의 추억을 갖고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가 있거든 꺼내서 다시 읽어보라. 연애편지는 고립의 기억, 고립의 문장 아닌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그러니 사랑에게 고립은 고립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한 기꺼이 고립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후일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더라도. 그것이 모든 길을 끊어 놓더라도. 사랑은 은밀하고, 은밀해서 환하다. 문정희(61) 시인은 여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었다. 백일장 당선시들을 모아서 여고 3학년 때 첫 시집을 냈다. 타고난 재기를 미쁘게 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서문을 썼고, '꽃숨'이라는 시집 제목도 달아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와 몸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발언해왔다. 그러면서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랑의 가치를 활달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왔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라는 그녀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어보라. 사랑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문태준 시인]
1396    기형도 - 빈집 댓글:  조회:4830  추천:0  2016-05-01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일러스트 / 권신아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정끝별 시인]
1395    박용래 - 저녁눈 댓글:  조회:4860  추천:0  2016-05-01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일러스트 / 잠산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저녁눈'을 읽으면 허름한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에 앉아 '탁배기'를 한 잔 하고 있는 박용래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말집에는 마차꾼과 지게꾼이 흥성흥성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나귀와 노새가 급한 숨을 내쉬느라 투루루 투레질을 하고, 누군가는 구유에 내놓을 여물을 써느라 작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호롱불 불빛을 받으며 떠도는 눈발을, 조랑말의 정처 없는 걸음처럼 난분분한 눈발을, 여물 써는 소리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붐비다'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動線)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퀭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물러나 앉아 늦은 저녁 눈발 내리는 그 풍경을 하나의 '공터'로 읽었을 것이다. 마차꾼과 지게꾼의 떠도는 삶과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네들의 노심초사와 나귀와 노새의 공복(空腹)을 읽었을 것이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대전시 오류동 17번지의 15호를 찾아가면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문태준 시인]  
1394    최승호 - 대설주의보 댓글:  조회:4989  추천:0  2016-05-01
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일러스트 / 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정끝별시인]
1393    노천명 - 사슴 댓글:  조회:4706  추천:0  2016-05-01
  사슴   노 천 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 일러스트=잠산 노천명(1911~1957) 시인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아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소생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을 '천명(天命)'으로 바꾸었다. 하늘로부터 다시 받은 목숨으로 천수(天壽)를 누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57년 타계했다. 노천명 시인은 고독의 차가운 차일을 친 시인이었다. 실제로도 고독벽이 있었다. 시 '자화상'에서 자신의 풍모를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라고 썼고,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라고 썼다. 이 시는 한 마리의 사슴을 등장시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시인은 사슴의 몸통과 다리를 배제한 채,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처럼 사슴의 목 윗부분을 그려낸다. 관(뿔)을 쓴 '높은 족속'으로 스스로를 도도하고도 고고하게 표현하지만, 2연에서는 물리칠 수 없는 마음의 통증을 보여준다. 마음의 통증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노천명은 많은 시편에서 어릴 때의 평온했던 시간으로 귀소하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우에 돋고", "삼밭 울바주엔 호박꽃이 화안한 마을"로 시인의 마음은 자주 이끌린다. 그 시간들은 화해와 무(無)갈등과 동화적인 세계이다. 그런 세계를 동경하는 화자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마음의 결손을 유발한다. 그 괴리의 거리와 슬픔의 크기를 시인은 가냘프고 긴 사슴의 목에 빗대어 말하고 있다. 삶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몸을 받을 때부터 고독의 의복을 입고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고독의 정면(正面)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독의 시간이라야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를 만날 수 있고, 그때 참회와 기도가 생겨나게 되지만. 해서 모든 종교적인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지만. 릴케의 표현처럼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이며, "(고독은)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을 이루어야 할 때"처럼 흔하게 찾아오는 것. 너무나 마음 쓸 데가 많아서 도무지 고독할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지 말자. 이 시를 애송하는 시간에라도 우리는 우리의 근원적인 고독의 시간을 살자. 나의 자화상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고립감이 자기애로 나아가더라도. 설혹 자기애에 빠져 나르키소스처럼 한 송이의 수선화로 피어나더라도. 남빛 치마와 흰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 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 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 시인이었다.[문태준시인]
1392    오규원 - 한잎의 여자 댓글:  조회:5242  추천:0  2016-05-01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일러스트=권신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1391    곽재구 - 사평역에서 댓글:  조회:5182  추천:0  2016-05-01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일러스트=권신아 조그만 간이역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막차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부려둔 보따리나 꾸러미에 기대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웅크린 채 쿨럭이기도 한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사내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시대적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되는 곽재구 시인의 데뷔작 '사평역에서'(1981)를 읽을 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아름다우면서 서럽고, 힘들지만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지난 시절의 희망과 절망이 눈보라로 흩날리고 있다, 모래처럼 톱밥처럼. 그 울컥함이 소설(임철우 '사평역에서'), 드라마(TV문학관 '사평역', '길 위의 날들'), 노래(김현성 '사평역에서')로 장르를 달리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했으리라. 이십대에 쓴 시답게 감각과 묘사가 풋풋하다. 깜깜한 유리창에 쌓였다 녹는 눈송이들은 흰 보라 수수꽃(라일락꽃)빛이다. 사람들이 그믐처럼 졸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확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난로 속 불빛은 톱밥을 던져 넣는 청색의 손바닥과 대조를 이룬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기침 소리는 '눈꽃의 화음'을 강조하고, 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회억(回憶)처럼 떠올랐다 가라앉곤 한다.  한줌의 톱밥을 던지는 '나'는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걸까? 기다리는 막차는 올까? 모든 역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한 지나감이고 경계이다. 하여 모든 역들이 고향을 꿈꾸는 것이리라. 사평은 나주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그 사평에 사평역이 없다니, 그토록 울컥하게 했던 사평역이 어디에도 없다니, 그래서 더욱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이겠지만.[정끝별 시인]
1390    서정주 - 동천 댓글:  조회:4764  추천:0  2016-05-01
   '冬天(동천)'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일러스트 / 잠산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 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젖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밭에 놓아 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문태준시인]    
1389    김춘수 - 꽃 댓글:  조회:4943  추천:0  2016-05-01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정끝별]
1388    황동규 - 즐거운 편지 댓글:  조회:5098  추천:0  2016-05-01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문태준 시인] 
1387    이성복 - 남해 금산 댓글:  조회:4635  추천:0  2016-05-01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일러스트=잠산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한 남자가 돌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돌의 연인이고 돌의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 돌 속에는 불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소금이 있고, 무심(無心)이 있고, 산 같은 숙명이 있었을 터. 팔다리가 하나로 엉킨 그 돌의 형상을 ‘사랑의 끔찍한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한 여자는 울면서 돌에서 떠났을까? 어쩌자고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주었을까?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한 남자를 남긴 채. 돌 속에 홀로 남은 그 남자는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면서 부풀어간다. 물의 깊이로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의 부재를 채우며. 그러니 그 돌은 불타는 상상을 불러일으킬밖에. 그러니 그 돌은 매혹일 수밖에.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80년대 시단에 파란을 일으킨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는,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와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를 통해 시대적 상처를 새롭게 조명했다. ‘남해 금산’은 그러한 실험적 언어가 보다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변화하는 기점에 놓인 시다. [정끝별 시인]
1386    김수영 - 풀 댓글:  조회:4590  추천:0  2016-05-01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 일러스트=권신아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문태준·시인
1385    박두진 - 해 댓글:  조회:4473  추천:0  2016-05-01
▲ 일러스트= 잠산   쥐띠 해가 밝았다.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킬 새해가 밝았다. 현대시가 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가 밝았다. 대통령 당선자는 근심과 탄식의 소리가 멈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어둠으로 점철된 현대사 속에서 우리 시는 시대의 고통을 살라먹고 ‘청산(靑山)의 해’를 예감하는 첨병의 정신을 놓지 않았다. ‘해’ 하면 떠오르는 시, 그것도 ‘새해’ 하면 떠오르는 시, 현대시에서 드물게 희망으로 충만한 시,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읽게 되는 시가 바로 박두진의 ‘해’이다. 1946년에 발표된 이 ‘해’가, 해방을 염원하던 해든 해방의 기쁨을 담은 해든, 솟지 않는 해를 향한 촉구든 솟고 있는 해를 향한 경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 해가 여전히, 지금-여기에서, 이글이글 솟구치고 훨훨훨 분방하고 워어이 워어이 불러모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막 솟는 해처럼, 말의 되풀이는 힘차고 뜻의 개진은 꿋꿋하다. 언어가 어떻게 되풀이되고, 그 되풀이가 어떻게 노래가 되고 주술에 가까워지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씻고’ ‘살라먹는’, 그 세례와 정화에 의해 날마다 생생(生生)하게 새로 뜨는 해. 그 해 아래 시를 살(生)고, 사는(生) 시를 꿈꿔 보는 새벽이다. 삶 속에서 이글이글 솟아나는 예의 그 생생지락(生生之樂)과, 시 속에서 훨훨훨 깃을 치는 시시지락(詩詩之樂)을 꿈꿔 보는 아침이다. 미움과 갈등의 시간을 버리고 강자와 약자가 워어이 워어이 더불어 상생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보는 새해다. 우리는 이제 달밤에 벌어진 상처,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일어난 죄악을 (불)살라 태우고 ‘앳된 얼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새해야 부디 ‘늬’도 그렇게 솟아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든 희망아, ‘늬’도 꼭 그렇게 고운 해처럼 오라. 삼백예순 날의 삶아, ‘앳되고 고운 날’들아, ‘늬’들도 꼭 그렇게만 좋아라. 백년의 백년 내내 낙희낙희(樂喜樂喜)하고 럭키럭키(lucky lucky)하게!  
1384    김삿갓 竹詩 댓글:  조회:4276  추천:0  2016-05-01
죽 시(竹詩)                           김삿갓(김병연)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풍타지죽랑타죽) -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 (반반죽죽생차죽) -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부피죽)  - 옳다면 옳거니, 그르면 그른대로 살며 賓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에 따라 市井賣買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것은 시세 대로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불여오심죽)  - 만사는 내 마음과 다르니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살아가세      * 한시의 음(竹:우리가 먹는 죽?)을 빌어 세상을 멋들지게 풍자한 압권(壓卷)의 시.    
1383    나래를 펴는 엉뚱한 상상 댓글:  조회:4341  추천:0  2016-05-01
엉뚱한 생각이 나래를 편다 아이가 갑자기 “속이 빨갛고 까만 씨가 있는 둥그런 과일을 사달라”고 했다고 하자. 적지 않은 부모들이 `얘가 왜 이러지' 또는 `장난치지 마'하며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는 분명히 창의성이 풍부한 아이다. `수박'이라는 기존 언어개념의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을 갖춘 것이다.  창의성 교육이 학부모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큰 이유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제7차 교육과정이 창의성 개발을 기본이념으로 내세우고 있고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더없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창의성을 가르친다는 학원, 학습교재, 학습지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창의성은 수학이나 영어 과외처럼 가르친다고 해서 느는 게 아니라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창의성이란 더 깊게 파고, 두 번 보고, 실수를 감수하고,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보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가보고, 잠긴 문 밖으로 나오고, 태양에 플러그를 꽂는 것”이라는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토랜스의 말을 받아들일 경우, 이런 것을 학습을 통해 습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창의성은 일상생활을 통해 체득하는 것이라고 재능대학 하종덕(아동교육상담학) 교수는 주장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석희 연구원도 “노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등 생활에서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창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이라며 일상 생활 속에서 창의성 교육을 권장한다.  창의적인 사고행위는 사물의 차별화된 특성에 주목하는 행위로부터 출발한다. 획일적이고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에서 사물을 관찰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호기심과 민감성의 기초로서, 호기심이 많고 사물들 사이의 차이점을 금방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진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아이가 된다.  이런 점에서 대화를 할 때 부모들은 `다르고 구체적인' 것에 신경을 써주는 것이 좋다. 가령 사물간의 차이점을 나타내지 않는 `수박'이라는 일반명사보다는 `수박'의 개념과 그 개념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리 방식대로 표현을 해보도록 하면 효과적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 아이는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다른 사물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피게 된다. 임선하 현대창의성연구소장은 이를 `개념해체적 대화'라고 부른다.  놀이를 통해서도 아이들은 창의성은 무럭무럭 성장한다. 아이들은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물들을 놀이 속의 주인공으로 참여시킨다. 나무 막대나 신발, 빗자루, 고무줄 등. 이 순간 사물의 고유용도는 중요하지 않다. 광주대 전경원 교수(유아교육학)는 “아이들은 가지고 노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서로 결합시켜 색다르면서 때로는 놀라운 것을 창출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놀이의 한 예로써 창의성을 키우는 활동으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게 `음식 만들기'다. 아이들은 과자나 빈대떡 만들기 등 음식 만드는 일을 아주 즐거워한다. 계량컵으로 양을 재보고, 물을 적당히 섞고, 계란을 휘저어 보기도 하면서 양에 대한 것도 터득하게 되고, 왜 영양소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알게 돼 호기심을 충족한다.  자녀와 함게 요리를 만들어 보면 신체발달은 물론이고 더 맛있고, 더 보기 좋은 요리를 만들려고 두뇌회전을 하게 돼 지적인 발달도 함께 이뤄진다고 전 교수는 말한다. 또 무게 크기 등 수학 및 과학적인 개념과 휘젓다, 어슷 썰다, 깎둑 썰다, 노릇노릇하다 등의 말을 통해 언어에 대한 개념 등이 발달한다. 자녀가 부엌에 들어와서 어지럽힌다고 굳이 꾸지람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창의성은 작은 물건 수집에서도 계발된다. 아이들이 더러운 돌맹이나 나무 조각, 길가에 휘날리는 새의 깃털을 들고 왔을 때 이를 야단쳐서는 아이들의 창의력이 키워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세계 각국의 병뚜껑이나 다양한 병을 몇만개 모아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자녀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군포 홍진중 김현옥 교장은 충고한다. 주위를 어질러놓을 자유나 자신만의 시간, 또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시간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스스로 탐색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 아이디어, 발견, 호기심 등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김재은 창의성교육연구소 소장은 “엉뚱한 질문이나 유별한 생각을 인정·존중해주고 정서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제안한다. 이럴 때 아이들은 실패나 불안 걱정 없이 자신의 독창성을 충분히 발휘한다는 것이다.  < 궁금해하고 따져보고 상상하고>  창의적 사고에서 요구되는 기능은 전반적인 사고과정에서 요구되는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선하 현대창의성연구소(www.hice.co.kr) 소장은 창의적 사고의 기능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첫째 민감성이다. 주변의 환경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보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탐색영역을 넓히는 능력을 말한다. 같은 대상을 보고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인식체계가 동일하다면 민감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하늘은 왜 푸른가 궁금해하고,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행동들이 다 민감성과 관련된다.  두번째로 유추성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두 개 이상의 대상이나 상황의 유사점을 뽑아내 새로운 추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고기를 보면서 잠수함을 떠올리거나, 구름 모양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는 것 등이 이와 관련된다.  세번째로, 특정한 문제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을 말하는 유창성을 들 수 있다. 초기의 아이디어가 최선의 아이디어인 경우는 드물며, 더 많은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더 질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가령 길을 잃었을 때 찾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유창성을 키울 수 있다.  네번째로, 임 소장은 고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시각 자체를 바꿔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융통성을 제시한다. 흔히 경직되고 상투적인 사고방식으로 사고를 하게 되면, 사고에서의 진전을 이룰 수 없으며, 편협되고 진부한 문제 해결을 하게 된다.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거리 풍경을 본다든지, 자동차 펑크를 해결하기 위해 튜브 자체를 없애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등이 융통성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다섯번째는 독창성이다. 기존의 것에서 탈피해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능력을 말한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게 생각하기, 기존의 생각이나 사물의 가치를 부정하고 생각하기 훈련을 하면 독창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여섯번째로 제시되는 능력은 정교성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는 힘들다. 은연중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라도 소중히 여기고 이를 발전시켜 훌륭한 아이디어가 되도록 정교하게 다듬는 활동은 창의적 사고의 최종적인 산물과 관련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상상력은 경험 세계의 범위를 벗어나 자기만의 생각을 해내는 능력이다.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이미지를 과장해 떠올리거나, 꿈속의 얘기를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 등이 모두 상상력과 관련된다.  ================================================================================   341. 희망 / 장석주                       희망                                장 석 주   아직은 무책임과 배반의 사랑을 조금 더 조금만 더 허용하자   그래서 나중에 견뎌야 할 삶의 무거움을 조금 더 조금만 더 무겁게 하자     장석주 시집 중에서  
1382    詩作은 온몸으로 하는것... 댓글:  조회:4188  추천:0  2016-05-01
시적 상상력과 인식의 탁월함                                       -백현국           메타포어를 잘 쓴 것은 좋은 시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다음의 진술은 유용하다고 본다. 롤랑바르트는 “세련된 언어, 잘 쓴 글이라는 표현은 비문학적인 진술이다”라는 말을 한다. 과연 잘 쓴 글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메타포어를 사용한다? 기실 언어의 세련도에 집중하여 작품을 분석하고 순위를 매기는 짓은 좀 웃기는 짓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메타포어는 제한된 언어의 카테고리 속에서 자신의 특별하고 다양한 욕망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데 좋은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메타포어의 과잉은 결국 난해성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면에서 詩作의 기술적인 면보다 詩作하는 태도나 세계관을 더 중요시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어라는 것이 사회적 활동의 매개이기에 사회의 제현상을 언표화 하는 것과 밀접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 사회의 제현상에 대한 인식을 특별한 감각으로 드러내는 것도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서 드러낸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과연 어떤 것에 초점을 두고 작품성을 따지게 되는 것일까? 때로는 샤토 브리앙(Chatearbriand)의 말처럼 차라리 남의 결점이나 잡아내는 사소하고 안이한 비평을 버리거나, 토마스 칼라일(Carlyle)의 말처럼 오직 시인의 독자적인 사고방식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비평의 목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평의 본성과 직책에 대해 구체적인 고찰을 남겼던 마거릿 풀러(Margaret Fuller)는 “비평가는 고찰하고, 비교하고, 체질(sift)하고 키질(winnow)하는 것이 비평가의 양심”이라고 한 바 있다. 개인적인 느낌에서 보면 수년에 걸쳐 본 결과, 매년 되풀이되는 신춘문예에 오르는 작품의 경우, 어느 신문사에서나 거의 비슷한 작품 양상, 특히 시어의 기술적 올가즘에 능숙한 작품들이 選作되는 것에 놀라고 있을 뿐이다.(고정된 심사위원들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신춘문예 뿐 아니라 현재 시중에서 발간되는 문예지들의 당선작도 거의 비슷한 양태를 갖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따라서 당선작에 대한 비평적 논의가 차단된 만큼 당선작에 대한 평가 역시 논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옳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입장인지도 모르겠다.  유럽처럼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시민의식이 어떤 나름대로의 순탄한 경로를 거쳐서 이루어진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로서는(일부에서 이러한 인식에 대해 서구 시스템에 대한 사대적 발상이라고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의 문학적 토대를 무시하는 발상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넘어간다) 아우구스트 빌헬름의 말(역사의 역할)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그 자체 내에 봉해져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연속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해야한다.” 이는 작품 속의 특수성, 독자성 못지않게 사회적이고 외면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문학은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언어의 절묘한(?) 표현의 백화를 보인 바 있다.(물론 외국 사조의 백과사전식 도입에 의한 결과겠지만)이러한 사조의 백화에 대하여 문학사적인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이면에는 남한의 식민지하 문학에 대한 평가상의 부정적인 논의(임종국의 친일문학론류)와 함께 북한 역시 사회과학원에서 발간된 『조선문학개관』 등에 나타난 대략적인 평가에 대하여 활발한 논의를 할 수 없었다는 문제도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작품의 내적인 자산(작품성)에 대하여 충분한 평가를 남북한 서로 이뤄내지 못한 상태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는 한국 근대문학이 시종일관 식민지의 검열에 시달려 온 점과 더불어 문학인들의 시대적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과 광복 이 후에도 현대문학의 평가가 분파주의와 편의주의에 의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광복 이후 식민지 시대의 문학적 과제를  재논의 하는 과정에서 그 평가가 엇갈리는 점과 남북간 전쟁으로 인하여 예술적 평가가 이데올로기적이었다는 문제 등,  문학적 평가에 있어서 갈등과 모순 등이 논자들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해소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詩作은 시인의 단순한 주관적 세계표현 이라는 초점과 시인 각각 개별적인 상상력 자체에만 미적인 관심이 집중하게 되었다.  작품에 대하여 파괴적인 비평을 할 것인가, 아니면 생산적인 비평을 할 것인가는 작자와 독자 그리고 당시대가 요청하는 다양한 전체성(Whole)을 각각의 미묘한 특성으로 지각, 재구성을 통해 해석해 내는 일일 것이다. 이는 역으로 면밀한 집중과 해석을 통해 전체를 해석해 낼 수 있다는 점과도 같다.  풍부한 어휘는 분명 사물에 대한 인식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눈(雪)에 대한 어휘를 70여종을 갖고 있다는 에스키모인들의 인식은 놀라운 것이다. 문병란이 시적 사명에 대해 얘기한, “시는 정서와 사상의 융합인 정서적 등가물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또 시는 시정신의 고양과 기법보다 밑바닥에 흐르는 도도한 사상적 힘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 다양한 어휘는 특히 시적 상상력으로 치부되는 시어의 상상력은 어떤 경로를 가져야 하는가?  미술평론가 유홍준씨의 송강 정철 「장진주사」에 대한 감회는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지적해 준다. 송강의 작품 중, 장진주사에 대하여 ‘원숭이 정서의 허구성’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한잔 먹새그려 또한잔 먹새그려  곳 것거 산 노코  무진무진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우해 거적더퍼 주리혀 매혀가나  뉴소보댱의 만인이 우러 녜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해 희달 가눈비 굴근눈 쇼쇼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쟈 할고  하물며 무덤우해 잔나비 파람불제 제 뉘우찬달 엇디리  당대 사람들은 알리 만무한 원숭이 휘파람을 슬쩍 끼워 넣는 행위를 일러 원숭이 정서의 허구성이라고 한 것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예술의 비인간화를 말해 보자. 우리나라 문인들은 심정적으로 모두 양반들의 풍류 내지는 選者의식들이 있는 것 같다. 당대의 동류와는 뭔가 다른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사람으로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예술가라는 명칭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당대의 현실과는 뭔가 다른 세계를 나름대로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뒤집어 보면, 결국 예술가와 현실은 서로의 괴리를 갖게 된다는 당위성이 전제된다. 따라서 현실적인 감각이 무디어질수록 환상적인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픈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 모순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태는 어떻게 변했을까? 서구자본주의가 선전하고 일깨워 준 절망적이고 비인간적 제 모순을 미적 세계로 도피하거나 아니면 현실 감각을 추상화 해버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개인의 힘으로 해석해 내기 힘든 권력에 의한 폭력과 비인간화, 물신화, 노동과 인간소외, 분단과 계층갈등 등의 부정적인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절망적이고, 순간적이고, 영적이며, 어둠과 죽음의 미학으로 표현해 버림으로써 反인간적, 反민중적, 反사회적 일탈이 예술적 고뇌로 꾸며지게 되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예술에 대해 서구 자본의 병폐(이데올로기)를 들어 비판하면서, 우리는 미처 체득되지도 못한 이론적 허구를 따라가다 보니 마침내 내용과 소재를 떠난 말초적 기교주의에 함몰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예술과 생의 거리를 없애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중(독자)은 어떤 상황을 운명적이고 예정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말한다. 이는 문학 현상이 결코 개인적인 산물이 될 수 없으며, 일정한 사회생활을 기반으로 하여 생기고 발전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 다르지 않다.  시작태도에 있어서 심미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은 예술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는 별개로 본다. 즉 고상한 예술적 취향을 계속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 당시대의 모든 제 모순에 대하여(노동/빈곤/학대/폭력/성/권력/문화)구체적인 논의를 피한다. 그만큼 현실 문제에 대한 느낌과 해석의 강도가 약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경험에 대한 통일된 지각을 거부하고 감정의 혼란을 다스리는 성숙한 관점에서 시작하는 기법은 없다. 단순한 수사와 아니면 현란한 수사로 자기 암시성을 강조할 뿐이다. 환언하면 공감력이 없다는 말이 된다. 하나의 관념임에는 틀림없으나 관념의 사회적 기반은 없다는 말이 된다.  소비예술의 측면에서 보면 단편적인 현실로써 전체적인 현실을 반영시킨다고 생각하는 한 현실적인 모순은 흔히 고급예술을 주장하는 예술가 사이에서 전혀 문제될게 없는 법이다. 결국 작품과 독자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상존하게 되는 것이다. 창작을 하는 이는 문화적 시혜성 발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독자는 예술작품에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곧 이는 순환적인 오류를 발생시키게 되는데 이를 일러 예술의 소외라고 하우저가 말한 바 있다. 플라톤이 ‘시인추방론’에서 밝힌 것처럼 예술이 사사로운 수단으로 추상화, 형식화 되어갈 때, 예술적 소외가 심해진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문학 활동이 극소수의 동호인 문학으로 전락하고 문학권력이니 출판 권력이니 나아가서는 학연과 지연 그리고 끌어주기식 풍토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 타인을 위한 문학을 주장했던 싸르트르/까뮈/리차드슨/필딩/디킨즈 등등이 설파한 예술의 기능은 가치가 없을 것이다.  예술가의 신념과 행동 인식의 탁월함은 작품의 탁월함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삶의 해석과 전망에 자신의 체험이 얼마나 공감대를 갖는가를 먼저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작자의 시적 상상력의 베이스가 곧 인식의 탁월함에 있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고자 장황하게 풀어 본 잡설이다. 끝으로 시인 김수영의 말을 빌어 보자 “시작詩作은 머리도 심장으로도 아닌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340. 바람 / 장석주                                                   바람                                         장 석 주   바람은 저 나무를 흔들며 가고 난 살고 싶었네   몇 개의 영원불멸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달리고 하늘엔 한 해의 마른풀들이 떠가네   열매를 상하게 하던 벌레들은 땅 밑에 잠들고 먼 길 떠날 채비하는 제비들은 시끄러웠네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의 바쁜 발길과 웃음소리 뜻없는 거리로부터 돌아와 난 마른꽃같이 잠드네   밤엔 꿈 없는 잠에서 깨어나 오래 달빛 흩어진 흰 뜰을 그림자 밟고 서성이네   여름의 키 작은 채송화는 어느덧 시들고 난 부칠 곳 없는 편지만 자꾸 쓰네   바람은 저 나무를 흔들며 가고 난 살고 싶었네     장석주 시집 중에서    
1381    [밤중 詩를 읊다]- 詩 몇토리 댓글:  조회:4764  추천:0  2016-05-01
옛집 마당에 꽃피다 - 김선태(1960~ )   옛집 마당을 숨어서 들여다본다 누군가 빈집을 사들여 마당에 텃밭을 가꾸었나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울며 맨발로 뛰쳐나왔던 내 발자국 위에 울음꽃 대신 유채꽃 고추꽃 환하다 어머니 아버지 뒤엉켜 나뒹굴던 자리에도 DA 300   언제 그랬냐는 듯 깨꽃 메밀꽃 어우러졌다 ( … ) 슬며시 옛집 마당에 들어가 꽃으로 서본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상처의 과거가 꽃의 현재로 치환되는 순간, 울음과 싸움이 “유채꽃” “깨꽃”으로 변한다. 과거의 상처가 부끄러워 “숨어서 들여다” 보던 주체가 그 과거로 돌아가 꽃으로 변신하는 순간, 세계는 꽃 천지가 된다. 주체를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꽃의 힘이다. 수조 앞에서 - 송경동(1967~ )   아이 성화에 못 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DA 300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수조 속 풍경이 끔찍한 것은 그것이 인간 세계의 폭력적 예각을 투명하게 되비쳐주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재화를 놓고 싸우는 승자 중심의 세상은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 “살아남은 것들만”의 평화라니, 얼마나 잔인한가. 짐승성의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조건 없는 환대의 법”을 모든 “조건적 법들”(데리다)의 위에 놓아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사랑’을 꿈꿀 때, 인간은 짐승의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슬픔의 진화 - 심보선(1970~ )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 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DA 300   이것이 내가 밤새 고민 끝에 완성한 문장이었다. ( … ) 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다! 책 읽기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는’ 유효한 방식이지만 아무리 책상에 “장기 투숙”을 해도 세계가 빠진 인식은 무의미하다. 세계는 “영원한 악천후”로서 “진화”의 마지막 목적지다. 책장을 넘어 세계의 고통을 만날 때 사유는 완성된다. 세계의 “벼락”이 달콤한 위로(“설탕”)보다 낫다. 백자 항아리 - 허윤정(1939~ ) 너는 조선의 눈빛 거문고 소리로만 눈을 뜬다 어찌 보면 얼굴이 곱고 어찌 보면 무릎이 곱고 오백년 마음을 비워도 DA 300   다 못 비운 달 항아리 백자 항아리는 비례와 대칭이 완벽하지 않다. 이 부정형의 백자 항아리는 크고 풍성한 보름달을 닮아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함으로 이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84)는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으로 이루어진 달항아리를 한국 미의 원형으로 꼽고 그 소박미를 찬미했다. 김환기(1913~74) 화백도 “내 예술의 모든 것은 달항아리에서 나왔다”고 말할 정도로 일그러진 백자 항아리를 사랑하고 즐겨 그렸다. “조선의 눈빛”이고 “거문고 소리”에만 반응하며 눈을 뜨는 이것! 이 달항아리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마음 비우기’다.    燈에 부침                    / 장석주                                       燈에 부침                                  장 석 주   1 누이여, 오늘은 왼종일 바람이 불고 사람이 그리운 나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고 싶었다. 벌써 빈 마당엔 낙엽이 쌓이고 빗발들은 가랑잎 위를 건너 뛰어다니고 나는 머리칼이 젖은 채 밤늦게까지 편지를 썼다. 자정 지나 빗발들은 흰 눈송이로 변하여 나방이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유리창에 와 흰 이마를 부딪치곤 했다. 나는 편지를 마저 쓰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려 혼자 울었다.   2 눈물 글썽이는 누이여 쓸쓸한 저녁이면 등을 켜자. 저 고운 불의 모세관 일제히 터져 차고 매끄러운 유리의 내벽에 밝고 선명하게 번져 나가는 선혈의 빛. 바람 비껴 불 때마다 흔들리던 숲도 눈보라 속에 지워져 가고, 조용히 등의 심지를 돋우면 밤의 깊은 어둠 한 곳을 하얗게 밝히며 홀로 근심 없이 타오르는 신뢰의 하얀 불꽃. 등이 하나의 우주를 밝히고 있을 때 어둠은 또 하나의 우주를 덮고 있다. 슬퍼 말아라, 나의 누이여 많은 소유는 근심을 더하고 늘 배부른 자는 남의 아픔을 모르는 법, 어디 있는가, 가난한 나의 누이여 등은 헐벗고 굶주린 자의 자유 등 밑에서 신뢰는 따뜻하고 마음은 넉넉한 법. 돌아와 쓸쓸한 저녁이면 등을 켜자.     장석주 시집 중에서         장석주 연보   1955년 1월 8일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시 부문 신인상 당선 후 등단.   1976년 해양문학상 수상.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입선(존재와 초월).        제1시집 간행.   1981년 제2시집 간행.   1984년 제3시집 간행.   1985년 제4시집 간행.   1987년 제5시집 간행.   1989년 제6시집 간행.   1991년 제7시집 간행.   1996년 제8시집 간행.   1998년 제9시집 간행.   2002년 제10시집 간행.        조선일보 이달의 책 선정위원 역임.   2005년 제11시집 간행.   2007년 제12시집 간행. KBS 자문위원 역임.   2010년 제13시집 간행. 계간 제1회 질마제문학상.   2012년 육필시집 간행.   편집장, 편집발행인 역임. 계간 및 계간 을 펴내며 기획과 편집주관 역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에서 소설창작과 소설이론 강의. 명지전문대와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시 창작 연구와 문예편집론 등 강의. 에서 , 등 진행. 현재 전업작가로 경기도 안성의 금광호숫가 에서 살고 있음.    
1380    소월 시 음미해보기 댓글:  조회:4912  추천:0  2016-04-26
[ 2016년 04월 26일 07시 57분 ]     중국 吉林성 延邊 和龍시에서 제8회 長白山진달래문화관광축제에서 높이 1메터, 직경 2메터짜리 비빕밥그릇...     [ 2016년 04월 25일 08시 16분 ]    [ 2016년 04월 25일 08시 16분 ]   [ 2016년 04월 25일 08시 07분 ]                 중국•화룡 제8장백산진달래국제문화관광축제--- 《전국10대매력촌>>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민속촌에서ㅡ        소월 시의 전통성과 창조성에 대한 일고찰 - 전통적 소재의 인유 방식을 중심으로 전도현 1. 소월 시와 전통 논의의 방향 김소월은 한국 근대시문학사에서 최초로 전통의 현대적 수용을 본격적인 경지에서 보여준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신문학 초기 우리 시인들은 전시대의 삶의 가치관과 형식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는 현실 속에서, 주체적으로 새로운 세계 인식 태도와 시적 방법을 확립하지 못하고 외부의 자극만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러나 시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나 전대 문학과의 관련을 상실한 채 추구되는 서구시의 수용과 모방은 주제적․양식적 측면에서 혼돈과 미숙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소월의 주된 활동 시기였던 1920년대 초반 역시 다양한 문예 사조가 혼류하는 가운데 많은 시인들이 서구시를 모델로 한 실험을 계속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소월은 우리 전래의 문학과 문화 유산을 폭넓게 계승하여 뚜렷한 시적 성취를 이룸으로써 한국 근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사적 위상으로 인해 소월의 작품은 전통 논의의 시금석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며 각별한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많은 소월 시 연구가 단절적인 문학사 인식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진행되며 전통성을 실증적으로 검증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그 결과 소월 시에 내재된 전통적 요소와 특성, 특히 민요적 성격과 ‘恨’의 정서에 대한 규명 노력은 상당히 다양하고 풍요로운 성과를 축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존 논의를 살펴보면, 지나치게 외래지향성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전통적 요소의 발굴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많은 연구들이 소재적 차원의 전통성 찾기를 넘어서지 못하거나, 전통성의 의미를 단순히 원론적인 차원에서 서구편향성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전통성에 대한 연구는 계승과 변용의 측면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당대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의 단순한 재현이나 답습은 무의미하며, 현재적 삶이나 미래의 창조적 비전과 관련되지 않는 전통지향적 태도는 과거지향적 복고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전통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창조되며 변화하는 어떤 것이며, 그 재창조와 변화의 동인은 전통을 계승하는 주체와 시대의 요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소월 시의 전통성에 대한 연구도 단순한 전통적 요소의 확인을 넘어서서 전통 계승의 방식에서 드러나는 창조성과 현재성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引喩의 시적 의미와 효과 소월 시의 전통성과 창조성을 고찰하고자 할 때, 다양한 전통적 소재를 작품 속에 수용하여 현재적 문맥 속에서 재창조하는 인유의 기법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인유는 어떤 인물, 장소, 사건, 또는 다른 문학 작품이나 그 구절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인용하는 문학적 기법을 말한다. 대개 인유의 원천은 독자에게 잘 알려진 허구적․역사적 인물과 사건, 지명, 고사, 어구, 문장, 작품 등이다. 시인은 이 같은 공공의 역사적․문화적 유산을 이끌어들임으로써 “경험과 지식, 그리고 가치의 근원으로서 문학적 전통을 독자와 공유” 김준오, ꡔ도시시와 해체시ꡕ, 문학과 비평사, 1992년, 201쪽.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인유는 기본적으로 전통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집단적인 민족 의식을 표출하는 주요한 수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유는 시인의 현재적 의도를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시적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시인은 일정한 시적 의도에 따라 과거의 유산들을 차용하고 변용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의미와 새롭게 변용된 의미가 중첩되어 새로운 문맥이 형성된다. 인유는 “유사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건 대조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건, 과거의 경험의 권위를 현재 사건에 갖다 붙여 시적 효과를 증대시킨다. 더욱이 과거와 연상의 고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그것들은 의미상의 남은 면까지도 구축하고, 현재 문맥의 의미를 확장” 유약우, ꡔ중국시학ꡕ, 이장우 역, 명문당, 1994년, 249-250쪽. 하는 것이다. 즉 인유의 시적 의미와 효과는 현재적 문맥의 확대와 심화에 있으며,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시인의 창조적인 의도와 동기인 것이다.  이 같은 인유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 시인이 구사하는 인유 방식에 대한 고찰은 그 시세계의 전통성과 현재성을 아울러 살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소월 시에서 다양한 전통적 소재, 특히 地名, 역사적 사건과 인물, 민간 풍속 등이 인유되는 방식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소월 시가 지닌 전통성의 의의를, 현재적 의식을 구현하려는 창조적인 의도와의 관련 속에서 규명해 보고자 한다.  3. 地名의 인유 방식 地名은 한 민족의 삶의 터전을 환기하며 역사적 삶의 자취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집단적이고 전통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는 모티프이다. 수많은 지명의 활용은 소월 시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로 인해 지명의 詩化는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그 시적 의미에 대해서는 대체로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한 민족의식의 발로로 설명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글을 들 수 있다.     김윤식, 「식민지의 허무주의와 시의 선택」, ꡔ문학사상ꡕ, 1973년 5월호.    김은전, 「소월시에 나타난 전통적 요소」, ꡔ김소월연구ꡕ, 김열규․신동욱 편, 새문사, 1982년.    이규호, 「소월의 한시번역과정」, 김영철․박진태․이규호 공저, ꡔ한국시가의 재조명ꡕ, 형설출판사, 1984년. 국권을 상실한 당대의 현실 속에서 민족의 삶의 터전을 지칭하여, 공동체의 역사적 의미와 민족 의식을 환기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한 편의 시에서 유난히 많은 지명을 열거하고 있는 다음 작품들을 살펴볼 때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평양, 대동강, 삼천리, 삼각산, 함양, 담양, 남원 - 「春香과 李道令」 신의주, 평양, 군산, 목포, 거제도 - 「봄바람」 한강, 대동강, 두만강, 낙동강, 압록강 - 「봄과 봄밤과 봄비」 위의 예에서 소월이 매우 의식적으로 거의 ‘조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도록 지명이나 산천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명의 인유 방식에서 민족의식의 표출이라는 소월의 시적 의도는 분명히 감지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작중 상황의 구체적인 현장성을 획득하려는 기본적인 의도도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월 시에서 地名이 인유되는 방식이 민족주의적 의도의 실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소월은 地名을 통해 시적 발상과 시상 전개의 계기를 얻기도 하며,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차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월의 지명 인유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술의 형식성과 창조성을 강조해 온 랭거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참조할 수 있다.  어떤 장소나 인물에의 언급이 하나의 예술적 목적에 기여할 때 시인은 그러한 언명을 아마도 표제, 직접적으로는 작품의 내용이 되게 자유롭게 처리할 것이다. …(중략)… 시인의 주요 의도는 단순히 개별적인 지시가 아니라, 그 외형semblance을 창조함에 있으며, 따라서 그는 무엇보다도 그 소리, 오직 일반적으로는 그 내포 때문에 고유명사들을 선택한다. Susanne K. Langer, Feeling and Form, 이승훈 역, ꡔ예술이란 무엇인가ꡕ, 고려원, 1982년, 160-161쪽. 이러한 견해에 의할 때, 시에서 地名의 詩化는 단순히 어떤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시적 의도와 ‘예술적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지명은 작품 속에서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기능보다는 예술적 형상의 창조라는 목적에 따라 자유로운 방식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소월 시의 지명 인유 방식 역시 이런 관점에서 조명될 수 있다.          가) 楚山지나 狄踰領            넘어선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                 - 「옷과밥과自由」 제3연                  나) 흐르는大洞江, 한복판에            울며 돌든 벌새의무리,             당신과離別하든 한복판에            비는 쉴틈도업시 나리네, 리네.                         - 「將別里」 제3연                  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왓스면죠치.                     여드래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햇지.            가도가도 往十里 비가오네.                         - 「往十里」 제1․2연 위 인용시들에서 地名은 모두 그 글자의 뜻을 활용하기 위해서 취택되고 있다. 가)에서 “狄踰領”은 실제로 존재하는 구체적인 고개를 지칭하기보다는 ‘오랑캐가 넘는 고개’라는 字意에서 ‘험난한 변방의 고개’라는 의미가 추상되어 활용되고 있다. “옷과밥과自由”를 잃어버리고 남의 나라 땅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 복잡한 서술을 생략한 채 “狄踰領”이란 지명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將別里”도 ‘장차 이별할 마을’이라는 의미를 차용하기 위해 인유되고 있다. “이 사건은 ‘장별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어 나온 사건” 김인환, ꡔ상상력과 원근법ꡕ, 문학과 지성사, 1993년, 41쪽. 이라는 지적처럼, 이 작품에서 님과의 이별이라는 상황 설정은 地名의 字意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소월 시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극적 상황 설정의 의도가 적절한 지명을 찾아냄으로써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에서 “往十里”라는 지명도 ‘십리를 더 가라’는 의미 때문에 작품의 제목과 무대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서 ‘가다’와 ‘오다’는 “가도가도”와 “온다”, “오누나”, “오는”, “올지라도”, “왓스면” 등으로 변주되며 음악적 효과를 창출하면서, 작품의 기본적인 의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대립되는 의미 구조를 통해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동일하거나 유사한 시어를 반복하여 시의 리듬을 창출하는 것은 소월이 즐겨 구사한 기법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가다’라는 뜻을 내포한 “往十里”라는 지명은 시의 착상과 전개에서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소월은 이들 시편들에서 地名의 字意를 통해 해당 작품의 시적 발상과 시상 전개의 계기를 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다른 시편들에서 소월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삶의 과정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함축하게 된 지명들을 그 상징적인 내포를 활용하기 위해 인유하기도 한다. 「山」과 「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에서 중심적인 모티프로 활용되고 있는 “三水甲山”과 「팔베개 노래調」의 “金剛 斷髮領”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三水甲山”은 우리 민족 전체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으로, 변경에 있는 첩첩산중의 유폐된 공간을 상징하는 지명이다. 그리고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金剛 斷髮領”은 그곳에서 동쪽으로 금강산을 바라보면 누구나 중이 되고 싶어한다는 고개로서, 역시 이를 알고 있는 한국인에게 보편적인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지명이다.  이 지명들은 단순히 어떤 고장의 이름을 넘어, 특히 민족의 전통적이고 집단적인 체험과 정서가 강하게 함축되어 있는 集團的 象徵物 여기서 ‘집단적 상징’이란 개인의 감수성이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개인적 상징과 구별하여, 한 민족이나 집단에서 널리 유포되어 사용되고 있는 공적인 상징을 가리킨다. 오세영은 소콜로브의 개념을 차용하여 ‘전형적 상징’이란 용어로 소월 시에 나타난 공적인 상징들을 살펴본 바 있다. (오세영, ꡔ한국낭만주의시연구ꡕ, 일지사, 1980년, 56-94쪽.) 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단적 상징물의 인유는 민족 고유의 생활 감정과 표현 방식을 차용하여 보편적인 정서를 환기하는 시적 효과를 갖는다. 초개인적인 상징 체계를 기반으로 독자 대중들이 지닌 집단적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시적 방법인 것이다. “三水甲山”과 “金剛 斷髮領”이라는 지명의 인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소월이 이러한 지명의 상징적 내포를 단순히 그대로 인유하지 않고, 시적 상황과 문맥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하여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三水甲山’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는 두 작품, 「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과 「山」을 비교해볼 때 잘 드러난다.          三水甲山 내왜왓노 三水甲山 이 어듸뇨         오고나니 奇險타 아아 물도 만코 山 쳡쳡이라 아하하                          … [중략] …         님게신곳 내고향을 내못가네 왜못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아 三水甲山이 날 가둡엇네 아하하                  내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三水甲山 날가둡엇네         不歸로다 내몸이야 아아 三水甲山 못버서난다 아하하                                 - 「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 제1․4․5연         눈은나리네, 와서덥피네.         오늘도 하롯길         七八十里         도라섯서 六十里는 가기도햇소.                  不歸, 不歸, 다시不歸,         三水甲山에 다시不歸.         사나희속이라 니즈련만,         十五年졍분을 못닛겟네                         - 「山」 제2․3연 ‘三水’와 ‘甲山’은 실제로 국경 지역인 함경남도에 위치한 고장의 이름이다. 하지만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하겠다’는 관용적 표현이 널리 쓰일 정도로 우리 민족에게 三水甲山은 극한적인 소외와 유폐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조선조에는 중앙정계에서 추방당한 정치인들의 대표적인 유배지이기도 했다.  「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에서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는 그 본래적 의미대로 인유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三水甲山’은 원래 의미 그대로 “물도 만코 山 쳡쳡”인 “奇險”한 고장으로서, “님게신곳”인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시적 주체를 가두는 幽閉의 공간으로 표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山」에 오면, 삼수갑산은 오히려 서정적 주체가 “十五年졍분을 못닛”어서 돌아가려 하는 지향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不歸, 不歸, 다시不歸,/ 三水甲山에 다시不歸”라는 구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시에서 “三水甲山가는 길은 고개의길”로서, 이 험한 고개를 넘어야 시적 주체는 자신이 갈망하는 삼수갑산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개는 매우 험준하고, 산에는 지금 눈마저 내려 덮여 시적 주체를 가로막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적 주체를 절망에 빠뜨리는 요소는 ‘삼수갑산’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험준한 지형과 불편한 교통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삼수갑산’은 공통적으로 시적 주체의 의지와 소망을 좌절시키는 시적 계기로서 인유되고 있지만, 그 양상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에서는 삼수갑산이 지닌 상징적 의미가 전체적 의미 그대로 인유되고 있다면, 「山」에서는 그러한 상징적 의미를 낳게 한 지리적 요인만이 인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동일한 시적 대상인 ‘三水甲山’이 서로 다른 시편에서 각각 ‘유폐’와 ‘갈망’의 장소라는 상반되는 의미를 표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소월이 인유 대상에 대해 충분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해당 작품의 시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우리는 소월 시에서 地名의 인유가 일정한 시적 주제와 예술적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소월은 민족 의식의 직접적인 표출을 위해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수많은 지명을 열거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 字意에 유의하여 시적 발상과 시상 전개의 계기로 삼기도 하였다. 또한 지명을 集團的 象徵의 하나로 인유하여, 공동체의 생활 감각과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주관적 정서를 표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특히 동일한 대상의 상징적 내포를 작중 상황에 따라 다르게 활용하여 상반된 시적 의미를 표상하고 있는 작품들은 창조적인 의도를 바탕으로 전통적 소재를 의식적으로 이끌어들이는 소월의 인유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336. 잠든 됫박 / 이운룡             잠든 됫박                                  이 운 룡   쌀뒤주는 구경도 못한 우리 집 뒤란에 채워도 채워도 배고픈 빈 항아리 하나   그 속에 너를 가두어 놓고 어머니는 노상 한숨만 퍼내셨다   상반신을 구부려야 손이 닿는 밑바닥 도둑맞을 쌀이 어디 있다고 숨겨 두면 내 아니 모를라고 세상없어도 뚜껑만은 열어 놓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인기척하고 드나드는 뒤란 길 어머니 검정 치맛자락만 슬프도록 어른거렸다.     이운룡 시집 중에서         4. 역사적 사건과 민간 풍속의 인유 방식 지명 이외에도 소월이 전통적 소재를 인유하는 대표적인 예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시화한 경우, 그리고 민간 풍속이나 신앙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시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소월의 시에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루고 있는 시편으로는 「물마름」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곳이 어듸드냐 南怡將軍이         말멕여 물엇든 푸른江물이         지금에 다시흘너 을넘치는         千百里豆滿江이 예서 百十里.                  茂山의큰고개가 예가아니냐         누구나 네로부터 義를위하야         싸호다 못이기면 몸을숨겨서         한의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누가 생각하랴 三百年來에         참아 밧지다못할 恨과侮辱을         못니겨 칼을잡고 니러섯다가         人力의다함에서 스러진줄을.                  부러진대으로 활을메우고         녹쓸은호믜쇠로 칼을별너서         茶毒된三千里에 북을울니며         正義의旗를들든 그사람이어.                  그누가 記憶하랴 茶北洞에서         피물든 옷을닙고 웨치든일을         定州城하로밤의 지는달빗헤         애친그가슴이 숫기된줄을.                  물우의 마름에 아츰이슬을         불붓는山마루에 픠엿든츨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일우며 못일움에 薄한이름을.                                 - 「물마름」 제3-8연 이 작품에는 크게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인유되어 있다. 하나는 세조의 중앙 집권 체제 강화에 반발해 세조 13년(1467년)에 일어났다가 南怡將軍 등에 의해 평정된 李施愛의 亂이고, 다른 하나는 西北人에 대한 차별과 부패한 세도정치에 항거해 순조 11년(1811년)에 平北 嘉山의 多福洞 작품에서는 ‘茶北洞’으로 나타나 있으나, 이는 소월의 착오로 보인다.  에서 봉기했다가 定州城에서 敗死한 洪景來의 亂이다. 한우근, ꡔ한국통사ꡕ, 을유문화사, 1987, 217-218쪽, 362-364쪽 참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인유를 통해 소월은 당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소월은 두 西北人이 일으킨 난을 부패한 중앙 정부가 강요한 차별과 모욕에 대한 항거로 해석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싸움과 이 싸움의 실패로 인한 수모를 당대에 대비시켜 3․1운동과 같은 민족적 운동이 실패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처한 굴욕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 최동호, 「김소월 시의 무덤과 부서진 혼」, ꡔ평정의 시학을 위하여ꡕ, 민음사, 1991, 14쪽. 는 것이다. 소월 시에서 전통적 소재의 인유가 민족 의식의 표출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이 작품 속에 인유되는 방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선 李施愛의 亂은 표면적으로 내세워진 南怡將軍의 故事 속에 숨겨져 있다. 제3연 제1-2행에는 남이장군의 逸話와 시구가 직접적으로 차용되어 있다. 장군의 이름이 명시되고 또 그가 지었다는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인 “말멕여 물엇든 푸른江물이”(豆滿江水飮馬無)가 직접적으로 인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남이장군의 고사는 이시애의 난을 떠올리기 위한 매개에 불과하다. 즉 시적 화자는 지금 “茂山의큰고개”를 넘으며, 이곳에서 불과 백여 리 떨어진 두만강과 남이장군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그리고 연상의 흐름을 따라 남이장군에 의해 평정 당한 이시애의 난을 떠올리게 되고, 이를 계기로 또다시 삼백여 년의 차이를 두고 같은 서북인에 의해 일어났던 洪景來의 亂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홍경래의 난 역시 작품 속에 그 사건이나 인물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茶北洞”(茶福洞)과 “定州城”이라는 지명을 통해서 다소 간접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기억하지 못하는 독자라면 인유된 사실을 쉽게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연구에서는 이 작품이 남이장군에 얽힌 단일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하였다.  이 두 사건은 이처럼 다소 복잡하고 분명하지 못한 형태로 함께 인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큰 무리 없이 전체 시의 의미 속에 용해되어 있다. 그것은 이 사건들이 지닌 역사적 의미의 동질성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에 근거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선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당대의 굴욕적인 현실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며, 그러한 인식을 역사적 사건의 인유를 통해 표출하려는 시인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 역시 뚜렷한 시적 의도와 목적 의식을 바탕으로 전통적 소재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인유하고 있는 예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소월 시에서 자주 인유되고 있는 전통적 소재로는 歲時風俗을 비롯한 民間 風俗이나 민중들의 생활 방식을 들 수 있다. 「널」, 「달맞이」, 「칠석」 등은 계절에 맞추어 관습적으로 되풀이하는 세시풍속과 관련된 시편들이며, 「후살이」는 민중의 삶의 방식과 생활 감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초혼」은 민간의 장례 풍습을 주요한 시적 모티프로 인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가운데 대조의 효과를 위해 인유 대상을 이끌어들이고 있는 「달맞이」와 대상의 본래적 의미를 변형시켜 현재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초혼」을 통해, 소월의 주제 의식과 이를 구현하는 인유 방식의 창조성을 살펴볼 수 있다.          正月대보름날 달마지,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새라새옷은 가라닙고도         가슴엔 묵은설음 그대로,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달마즁가쟈고 니웃집들!         山우헤水面에 달소슬,         도라들가쟈고, 니웃집들!         모작별삼셩이 러질.         달마지 달마즁을 가쟈고!         다니든옛동무 무덤에         正月대보름날 달마지!                         - 「달마지」 전문 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정월 대보름날에 행하는 달맞이 풍속이다. 이 행사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저녁 횃불을 들고 산이나 들로 나가 달을 맞이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일년 동안의 행운을 바라는 전래의 풍속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하는 행사로서 흥겹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축제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달맞이’ 행사는 민속적 축제 그 자체로서 조명되기보다는 “옛동무”를 상실한 슬픔에 잠겨 있는 시적 화자와의 대비를 위해 인유되고 있다. 산과 들에서 흥성거리며 달맞이를 하는 “니웃집”과 달리 시적 화자는 “다니든옛동무 무덤에”서 달맞이를 하며, 이로 인해 그의 슬픔은 더욱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대비적 의미 구조는 “새라새옷은 가라닙고도/ 가슴엔 묵은설음 그대로”라는 구절를 통해 반복되며, 작품의 의미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뼈대가 된다.  이러한 인유 방식은 민족 고유의 풍습을 통해 집단적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관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출하려는 시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님․고향․자연의 상실을 지속적으로 노래한 소월의 시세계의 이면에는 시대적 단절 체험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적 정서가 공동체의 집단이고 전통적인 정서를 매개로 표상됨으로써 더욱 보편적인 정서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소월의 대표작의 하나로 거론되는 「招魂」도 민간 풍속의 적극적인 인유를 통해 시인의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성취를 거둔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산산히 부서진이름이어!         虛空中에 헤여진이름이어!         불너도 主人업는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                  心中에남아잇는 말한마듸는         내 마자하지 못하엿구나.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붉은해는 西山마루에 걸니웟다.         사슴이의무리도 슬피운다.         러저나가안즌 山우헤서         나는 그대의이름을 부르노라.                  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         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눌과 사이가 넘우넓구나.                  선채로 이자리에 돌이되여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 「招魂」 전문 이 작품에서는 소월 시에서 되풀이되는 중심 테마인 님과의 이별이 가장 극한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절대적 한계인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시적 방법이 바로 민간에서 행해지는 ‘招魂’ 풍습의 인유이다.  초혼 풍습은 葬禮 節次의 일부로서, 인간의 영원한 문제인 죽음의 극복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삶의 가장 비극적 국면인 죽음이 주는 충격을 인간적으로 승화하기 위한 것이 초혼을 포함하는 장례 절차인 것이다. 이러한 葬禮 儀式의 의미는 원초적 민간신앙의 대상인 죽음의 문제를 문화적 제도 속에 포용해 놓는 일로도 설명된다. 김윤식, ꡔ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ꡕ, 일지사, 1978, 143-153쪽 참조. 김윤식은 이 글에서 소월의 「招魂」을 屈原의 「楚辭」와 연관지어 언급하고, ꡔ禮記ꡕ에 소개된 초혼 절차를 인용하여 이 일이 죽음의 문제를 문화적 제도로 포용하는 儀式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儀式을 통해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인하고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초혼 풍습이 갖는 이러한 의미는 의도적으로 거부된다. 시적 화자는 “불너도 主人업는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사랑하던 님의 죽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망부석 전설을 인용하고 있는, “선채로 이자리에 돌이되여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라는 구절에서 확인된다. 죽음의 결단으로 표명된 화자의 강인한 의지는 그 격앙된 어조만큼이나 치열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비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에 대해서도 체념하지 못하는 것은, ‘님’이 자기 삶의 절대적인 근거로서 어떤 경우에도 포기될 수 없는 본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소월 시에서 ‘님’이 지닌 근원적 가치로서의 상징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이별의 미학 밑바탕에는 근대 이후의 분열 체험과 시대적 단절감이 개재해 있음도 알 수 있다. 김인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이 시의 인물이 민간 의식을 그대로 따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화로운 시대에는 누구나 우주의 질서에 맞추어 살 수 있었다. 이제 그러한 조화와 질서는 파괴되고 말았다. 민중의 목소리와 인물의 목소리가 어긋나는, 이 시의 불협화음은 대립과 긴장으로 가득찬 극적 상황을 부각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김인환, 앞의 책, 40쪽.) 어쨌든 인유 방식의 측면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런 시적 의미를 형상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민간 풍속의 본래적 의미를 변형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혼 풍습이 장례 절차의 일부로서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제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인데도, 시적 화자는 이런 의미를 끝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초혼 행위가 원래 지붕이나 마당에서 행해지는 것임에도 이 작품에서는 산꼭대기에서 행해지고 있는 점도 인유 대상을 변형시킨 부분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처럼 소월은 이 작품에서 ‘초혼’이라는 민간 풍속의 적절한 인유를 통해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시적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자신의 시적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일정한 시적 의도에 따라 과거의 유산들을 차용하고 현재적 문맥 속에서 재창조하는 소월의 인유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마무리 지금까지 소월 시에서 전통적이고 집단적인 모티프들이 인유되는 방식을 고찰해 보았다. 이를 통해 소월 시에서 전통적 소재의 인유가 뚜렷한 현재적 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월 시에서 전통적 소재의 인유는 집단의 전통적 감수성을 강하게 자극하며 민족적 자기동일성을 환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의도와 함께 작품에 따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주제 의식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민족 의식이나 현실 인식인 경우도 있었고 근대적 분열 체험이 개재된 주관적 정서인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모두 소월 시의 전통 계승이 시대적 현실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월은 전통의 계승이 과거 유산의 단순한 재생산과 반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은 시적 문맥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유의 기법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집단적 유산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주관적 감정의 직접적인 토로에서 벗어나 시적 정서와 주제를 객관화시키고 보편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시작 방법의 측면에서 인유의 궁극적인 의미와 효과가 작품의 현재적 문맥의 확대와 심화에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특징들은 내용과 형식의 양면에서 소월 시의 전통성과 창조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민족의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의 기반 위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소월의 다양한 인유 방식은 한국 근대시 형성기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시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ꡔ金素月의 詩作方法과 詩意識 硏究ꡕ,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2002년)의 일부분을 발췌, 수정한 것이다.  =================================================================================   337. 역설 / 이운룡                                    역설                                           이 운 룡   오래된 슬픔은 향기를 품는다 슬퍼서 소금이 된 알갱이는 빛을 머금어 투명하지만 썩은 슬픔은 검은 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썩어서 흘러나온 눈물이 마음을 적시고 마음을 키우는 거름이 된다면 나 또한 그렇게 푹 썩은 슬픔에 젖어 뒤돌아 훔쳐낸 눈물이고 싶다 덜 썩어 비린 풋냄새 나기 전에, 혹시는 썩다가 원색의 악의 꽃이 번져 중독되기 전에 아랫목 술항아리 불룩하고 따뜻한 뱃속 사랑과 미움이 보글보글 끓다가 마침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몸싸움을 다 끝내고 나면 참 조용하게도 온전히 숙성된 슬픔의 향기로 말갛게 발효되어 한 세상 걸쭉하게 물들일 때 내 몸 어딘가에서는 생수 터져 솟아나고 조만간 슬픔의 향기에 취해 쓰러질 어떤 늙은 사랑도 있을 것이다.     계간 2003년 봄호 중에서  
1379    내 문학의 고향, 어머니의 詩心 댓글:  조회:4358  추천:0  2016-04-25
  [정호승 시인, 대구 범어천서 詩碑 제막식·문학기행 펼치다] 수성구, 범어천 생태복원 마치며 그곳서 자란 정호승 기려 시비에 시 '수선화에게' 새겨   "대구는 내 시의 어머니다. 나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대구 범어천(泛魚川)에서 보냈다. 나는 범어천에서 자연을 배웠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호승(66) 시인이 지난 23~24일 대구에서 독자들과 함께 시비(詩碑) 제막식을 갖고 문학 기행을 펼쳤다. 그는 23일 이야기 경영연구소(대표 이훈)가 주최한 '이야기 탐방 열차'에 참가한 독자 40여 명과 함께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갔다. 그날 오후 3시 대구 수성구 범어천 광장에서 정호승 시비(詩碑) 제막식이 열렸다. 대구 수성구가 2009년부터 225억원을 들여 시작한 범어천 생태 복원 사업이 올해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면서 범어천에서 자란 정호승 시인을 기리기로 한 것. 정호승 시인은 "내가 어릴 때 맑고 깊었던 범어천은 내 시의 고향이다"라며 "심하게 오염돼 버려진 범어천이 서울의 청계천처럼 되살아난 것을 보니 내 생명이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구 범어천 광장에 시비(詩碑)를 세운 정호승 시인은 “이 시비는 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이 세운 비석”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시비에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시작하는 시 '수선화에게'가 새겨졌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 시인은 "이 시는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노래한 것"이라며 "나는 잘 쓴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수많은 독자가 좋아한 덕분에 내 대표작이 됐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시비 제막식에서 올해 94세인 어머니(이태상)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범어천에 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는 남몰래 가계부로 쓰던 공책 귀퉁이에 몽당연필로 시를 쓰면서 그 고통을 견디셨다. 어머니는 범어천 돌다리를 건너서 교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본 조각달이나 보름달을 가슴에 품으셨다. 나는 고등학생 때 우연히 부엌에서 어머니의 시작(詩作) 노트를 읽곤 깜짝 놀랐다. 나중에 어머니는 '사는 게 슬펐지만 그 달을 보고 시를 쓰면서 견딜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공책은 세월의 풍파 속에 사라졌지만 정 시인은 몇 해 전 어머니가 구술한 시 세 편을 받아 적은 적이 있다. '가네 가네 한 여인이/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정 시인은 "어머니의 시와 마찬가지로 내 시도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말했다. 시비 제막식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대구 수성갑)와 이진훈 대구 수성구청장을 비롯해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97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김부겸 당선자는 "우리 세대는 정호승 시인을 좋아한다"라며 "외로울 때는 서정시를 찾게 되고, 술 한 잔 걸치면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를 읊조리곤 했다"고 말했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정호승 시비를 세움으로써 대구 수성못에 있는 이상화 시인의 시비, 범어천 건너편의 가수 김광석의 거리를 잇는 문학 벨트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24일 독자들과 함께 대구 중구의 김광석 거리도 찾았다. 그는 "내가 쓴 시 중 60여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라며 "특히 내 시 '부 치지 않은 편지'가 김광석의 마지막 노래가 됐다"고 말했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부치지 않은 편지' 뒷부분). 시인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났을 때 쓴 작품이지만, 꼭 그런 배경 지식으로 이 시를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정호승 시인이 23일 오후 고향인 대구시 수성구 범어천변 광장에 세워진 자신의 시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네 가네 한 여인이 가네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정호승 시인 어머니의 자작시 '여인' 전문) 23일 오후 고향인 대구시 수성구 중앙고등학교 인근 범어천변 광장에서는 정호승(66)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가 새겨진 시비의 제막식이 열렸다. 정호승 시인은 이 자리에서 "나는 이 범어천을 한순간도 잊은 적 없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시의 시작은 '어머니의 시'라고도 말했다. 수성구는 7년간 총 220여억원을 들여 대구의 도심을 흐르는 범어천의 강바닥을 정비하고 범어천 전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했다. 그리고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이 된 ‘수성들’ 등을 비롯해 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를 기려 '시문학벨트'를 구성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정호승 시인이 12년간 물을 따라 걸으며 통학했던 범어천 앞에 그의 시비도 세워지게 됐다. 정호승 시인이 말하는 그의 어머니는 범어천에 놓여진 돌다리를 건너서 교회에 갔다가 맑은 물에 비친 조각달이나 보름달을 마음에 품고 돌아와 가계부 여백에 연필로 시를 썼던 분이다. 수입이 없어 집의 본채를 세주고 닭장을 없앤 공간에 슬레이트 집을 지어 살던 시절, 간이 부엌에서 어머니는 가난한 생활의 고통을 시에 의지해 이겨냈다. 정호승은 "고단한 삶 속 슬픈 마음을 위로하며 그렇게 쓰는 것이 시라는 '시의 본질'을 어머니가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호승이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겠구나!' 선생님은 한번 슬쩍 쓰다듬는게 아니라 한참 동안 내 까까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한달에 한번 감을까말까 한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의 감촉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어지는 강연에서 정 시인은 어머니를 통해 갖게된 시의 첫마음이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 선생님의 말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다고 밝혔다. 범어천 안에 버려진 갓난아기들, 장대비가 내린 다음날 떠내려오는 젊은 송장, 가녀린 꽃대 위에 핀 연노랑색의 수선화, 저녁때 밥먹으러 오라고 외치던 어머니 목소리, 범어천변에서 가마니에 덮인 채 놓여진 동사자의 발, 옛집 장독대 위 소복이 내린 눈, 장마때면 산 채로 떠내려오던 돼지 등을 떠올리며 그는 자연의 무서움과 아름다움을 범어천과 범어동 고향집에서 배웠다고도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이어 "나이들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외로움의 원천이라는 것'"이라면서 "그 존재의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인은 "어머니는 현재 94세인데 과거를 아름답게 회상하신다"면서 외로움을 극복하는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실은 어떻든지간에 과거의 사진을 보면 인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인간의 의무다.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깨닫고 만드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세계는 정호승 시인의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3)와 두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1982)는 캄캄한 어둠 속에 쏘아올려진 조명탄같은 시집들이었다. 서울로 흘러들어온 밑바닥 인생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인식은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시 '슬픔이 기쁨에게' 일부)에서처럼 유약한 서정성을 넘어 사회에 대한 '결기'가 어려 있었다. 암울한 1970~80년대 시적인 현실반영과 비판은 '시인이며 예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낳으며 '목마를 때 소금을 주고/배부를 때 언제나 빵을 주는'(시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일부) 현실에 대한 분노로 표출됐다. 이들은 '북소리'같은 강하고 결의에 찬 것은 아니지만 '현악기'의 소리가 주는 애잔하고 긴 울림을 주며 오랫동안 독자들을 울고 전율하게 했다. 그후 시인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항아리' '새벽편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의 시집에 상처와 아픔, 고독한 인간의 숙명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담아냈다. 정호승 시인이 23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도서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자신의 시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 2016년 04월 25일 08시 34분 ]     산서성 개양(미자트) 황하수식부각관광지(黄河水蚀浮雕...2억년 력사)에서ㅡ //////////////////////////////////////////////////////////////// (자료) 안대회 교수, ‘내 생애 첫 번째 시’ 펴내 “통째로 남산을/옮기긴 어려워도/깨끗한 돌 하나는/가져가도 되겠지요/초가집 아래다/고이고이 놓아두면/흐르는 물소리/콸콸콸 들리겠죠.” 요즘 서울에 사는 아이가 쓴 동시 같지만 사실 조선 후기 사람인 김수약이 다섯 살 때 지은 시다. 요즘 동시처럼 조선 시대에도 아이들이 쓴 한시 동몽(童蒙)시가 있었다. 정갈한 한시 번역으로 정평이 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옛사람들의 동시 120여 편을 묶고 해설을 단 ‘내 생애 첫 번째 시’를 최근 냈다. 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안 교수는 “13년 전 ‘초등학생인 자식을 위한 책을 써보라’는 권유로 집필에 착수했는데, 문집에 산발적으로 나오는 동시를 모으다 보니 이제야 책을 낸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쓴 시이지만 수준이 놀랍다. “바다가 품어서/깨끗해진 하늘의 해/꽃처럼 뱉어 놓아/일년 내내 붉구나/강 위에 가득해라/고기 잡는 어부들/석양녘 바람결에/돛단배를 멈추었네.” 조선 후기 사람인 곽시징의 딸이 일곱 살 때 지은 이 시는 어부들이 돛배를 멈추고 해를 바라보는 고향 태안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이미지로 그려냈다. 동시에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시선과 솔직함이 드러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놀기만 좋아한다고 나무라자 ‘남들이 다들 정승감이래요’라고 읊은 시, 높이 열린 복숭아를 노래한 시 등이 그렇다. 안 교수는 “옛사람들은 잘 썼든 못 썼든 아이들이 시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힘을 키우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봤다”며 “요즘 교육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책에 실린 동시는 운자(韻字)를 맞추지 않았거나 대강만 맞춘 것들이 대부분이다. 안 교수는 “아이들이 형식에 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쓰도록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이라면 초등학생일 열세 살짜리가 소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는 흥취를 노래하는 등 옛 풍경을 보여주는 시도 많다. 안 교수는 책을 펴내기 위해 옛 문집 200여 권에서 시를 골랐는데 동시가 문집 초고의 필사본에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안 교수는 “동시를 쓴 본인은 추억이 있어서 문집에 넣었지만 사망 뒤 문집 간행 시에는 자식이나 제자들이 간행할 때 뺐기 때문으로 보인다”라며 “남아 있는 동시는 참 귀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1378    [출근족들 왁짝지껄 하는 이 시각, 詩 한컷]- 늦봄 댓글:  조회:4522  추천:0  2016-04-25
    늦봄 도꼬마리 털게다리가 물푸레나무 둥치를 타고 기어오른다. 보슬비 내린 후 적막강산 지나 쪽박넝쿨도 댕댕이덩굴도 두어 뼘 ―최명길(1940~2014) 이 시는 늦봄의 숲을 보여준다. 빳빳한 털이 나 있는 한해살이풀 도꼬마리가 있고, 물푸레나무가 있고, 쪽박넝쿨이 있고, 댕댕이덩굴이 있다. 줄기들은 길게 뻗어나가면서 다른 식물을 감기도 하고 땅에 퍼지기도 한다. 보슬비가 내린 후 덩굴들은 더 자라난다. 두어 뼘 더 자라고, 계속 자라나서 적막강산을 지나간다. 덩굴이 자라나며 적막강산을 지나간다니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무르고 약한 덩굴들이 자라나며 천지를 지나간다니 얼마나 호탕한 생각인가! 봄에는 생명이 자란다. 싹이 돋아 나온다. 우리에게도 기운이 새로이 일어난다. 연두의 색채가 번진다. 우리에게도 향기롭고 산뜻한 분위기가 옮아온다. 비 온 뒤에 세계는 풀잎처럼 더욱 싱그럽다. 어느 때나 늘 봄과 같다면 참 좋겠다. / 시평;- 문태준 시인
1377    [詩 미치광이]- 메아리 댓글:  조회:4144  추천:0  2016-04-25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지요. 우물은 단물을, 심연을 품고 있지요. 예사 우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고 가만히 물었습니다. 간절하게(천천히), 다급하게(벌컥벌컥), 내밀하게(가만히) 닿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큰 소리라서 메아리가 돌아오는 것은 아닐 거예요. 안에 들어있는 것이 울림이라서 그렇지요. 한 몸에서 나오죠. 전하고 싶은 소리와 듣고 싶은 소리. 소리가 가서 데리고 오는 소리. 몸은 사라져도 목소리로 남는 노래. 4월 22일은 최하림 시인의 기일이었어요. 어느덧 7년이 되었어요. 양평 문호리 산자락에 계실 때, 맑고 깊은 종소리 같으셨죠. 걸음걸이도 말소리도 눈빛도요. 우물에서 메아리를 길어 올렸던 시인. 최하림 선생님은 시인이 되었지만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은 채 세상을 놓아버린 제자의 시에 자신의 시를 잇대고 싶었던 것이지요. 제자의 시를 허공의 길로라도 오게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이유라도……오늘은 우리의 얼굴이 시인에게 번져가고 싶은 거예요. / 이원 시인  
1376    [기온차가 심한 아침, 詩 한컷]- 문신 댓글:  조회:3785  추천:0  2016-04-25
꽃잎과 푸른 잎은 이 봄의 문신이다. 봄은 그런 문신들의 세계다. 밤하늘 구멍 사이로 새어나오는 별빛을 떠올리면, 아직도 저 차디찬 맹골수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이름 석 자를 수놓아도 죄 되지 않을까, 이 봄은 노랗게 아프다. 사월은 그렇게 우리에게 문신 하나를 새겨두었다.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먼 바다의 파랑도 울고 있다. 이소연 시인
1375    [詩로 여는 월요일 아침]-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댓글:  조회:4324  추천:0  2016-04-25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 새가 뭐라고 말하는지 묻는 거니? 참새와 비둘기, 홍방울새와 개똥지빠귀는 말하지, “사랑해 사랑해!” 겨울엔 새들도 조용해―왜냐하면 바람이 너무 세거든; 뭐라고 말하는지 난 모르지만 바람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그러나 초록 잎이 나고 꽃이 피고 햇볕이 따뜻해지면, 노래와 사랑―이 모두가 함께 돌아오지. 종다리는 기쁨과 사랑이 넘치지, 초록 들판은 그 아래, 푸른 하늘은 그 위에 있고, 그는 노래 부르고 또 부르지; 영원히 부르지― “난 내 사랑을 사랑해요 그리고 내 사랑은 나를 사랑해요!” 프랑스 시인 랭보는 “사랑은 재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콜리지는 자연이라는 프리즘으로 사랑을 재해석하고 있다. 입만 열면 “사랑해”라고 노래하는 새들은 나무와 꽃과 햇볕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추운 겨울바람이 세게 불면 새들도 입을 다문다. 새들의 통역자인 “나”도 바람의 소리를 번역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랑의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1374    공룡아~ 발자국을 가져가거라... 댓글:  조회:4129  추천:0  2016-04-23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당돌한 문장이죠? 자기애덕후라고 농을 던질 수도 있어요.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제목입니다. 일단 재미있어요. 기분도 좋아져요. 제목 투로 농을 걸어본다면,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온 이가 반드시 미남이지는 않습니다. 기준미달로 추방당했을 수도 있어요.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이러면 우선은 웃게 됩니다. 천진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죠, 천진함은 어느 때는 참 무서운 것이기도 해요. 거두절미하고 ‘바로 그것’을 말해 버리니까요. 당황은 해도 천진한 말 앞에서는 꼼짝 못하게 됩니다. 맞는 말이니까요. 이 시는 아이의 천진한 말투로 진짜 어른을 얘기합니다. 진짜 어른이라면 사랑에 대해 꽃잎에 대해 생각할 줄 압니다. 사과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며 깨어있는 정신을 가지며 부하(어린 시절 병정놀이 할 때 쓰던 표현 아닌가요?)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문의 안과 밖처럼 부하도 그래야 공정한 것이고요. 천진한 말투만큼 진짜도 무섭습니다. 진짜, 강조할 때 써요. 주장할 때 써요. 패를 가를 때도 써요. 아닌 걸 우길 때도 쓰죠. 그럴 때는 주로 자신은 아는데 자신마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바람직하지 않은 어른입니다. 그렇게 하면 플라스틱 어른이 된다는 것입니다. 빛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건물이 아닙니다. 점점 더 할 말이 없어집니다. 몸집을 불리는 게 아니라 빛이 넘나들 수 있도록, 다리가 길어지면 인기가 더 많아지겠지만, 자라는 걸 그만둔 건 어른인 나, 자신이니까요. / 이원 시인   [ 2016년 04월 25일 08시 07분 ]     중국•화룡 제8회 장백산진달래국제문화관광축제ㅡ 《전국10대매력향촌》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민속촌에서               
1373    한 <단어>앞에 문득 멈춰서게 하는... 댓글:  조회:3592  추천:0  2016-04-23
수도 없이 써 온 단어가 낯설어질 때가 있어요. 대개 그것을 깊이 생각하게 될 때 그래요. 깊이 생각하면 뒤척임도 깊어져요. 뒤척임이 깊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단어를 들여다보면 담긴 것과 담고 싶은 것이 보여요. 우물 같아요. 안이 자꾸 궁금해져요. 한 단어 앞에 문득 멈추게 하는 시가 있어요. 이 시가 그래요. 인사. 가장 많이 건네는 자세예요. 말로, 목소리 없는 문장으로 건넬 때도 인사에는 자세가 들어있지요. 물론 생긴 모양도 뜻도 그러하지요. 시인은 인사를 말하지만 실은 시를 말하고 있어요. 반갑고 정답고 맑은 것이 시라고. 또 시를 얘기하지만 실은 인사 얘기예요. 세상일들과 사물과 마음들에 건네는 것이 인사라고. 그러니까, 인사가 아니면 시가 아니고 시가 들어있지 않으면 인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인사에는 시가, 시에는 인사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주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세상일들과 사물과 마음들에 건네는 것이 인사인데 말이죠. 사람에 대고 열심히 인사했지만 마음은 미처 못 보았어요. 세상일들에 나름의 인사를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인의 ‘모든 건 꽃핀다’에서처럼, “너의 고통에도 불구하고/내가 꽃피었다면?/나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네가 꽃피었다면?” 까지 살펴 들어가는 자세를 만들지 못했어요. 이런 곳에 살아있는 ‘눈짓’이 생겨날 리 만무죠. 반갑고 정답고 맑은. 지극히 간명한 단어들을 한참 뒤척였어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즉 정확하게 라는 것이죠. 안과 밖이, 앞과 뒤가 서로를 비출 때까지 맑아지는 것. 넘치면 좋은 줄 알았죠. 마음까지 파묻혀요. 흘러 넘쳐요. 그러고 보면 언제보다는 어떻게가 먼저인 인사, 참 어려운 것이에요. 인사가 너무 많아졌어요. 잠시 메일도 SNS도 멈추고(물론 이모티콘도요) 곰곰 생각해봐야겠어요. 인사 건네고 싶은 세상일과 사물과 마음들을요. 정답고 반갑고 맑은 자세가 서투르게나마 생겨날 때까지요. /이원 시인   ////////////////////////////////////////////////////////////////////////////////////// 시의 눈빛 / 이운룡                    시의 눈빛                                                    이 운 룡     난해한 시를 지하에서 맨손으로 캔다. 광맥은 캄캄하다 눈이 어둠처럼 조밀해야 보인다. 잠 속에서는 그 떨림을 눈감고 들어야 한다.     어둠 속에 눈빛이 있다. 위험을 감수한 첨단처럼 사는 상상력을 비틀어 어둠을 짜내야 속도를 옥죄는 진동이 우러나온다. 눈에 안 띄는 게 금이다.     추상화가 선과 색채의 장난이 아니 것처럼 시는 부피를 꿰뚫고 평면을 꿰매어 광맥을 숨겨야 빛을 품는다. 첨단화 눈이 아니면 빛을 캐낼 수 없듯이 막힌 것이 뚤린 길이다.     틈새의 빛은 버려진 어둠의 찌꺼기 이다. 눈빛만이 절대의 꿈이다. 광맥이 난해하듯, 칙칙한 눈에서 빛이 나듯 벗겨야 향기를 내쏜다. 어두워야 빛나는 우주 광년이 난해한 시의 눈빛이다.     중에서      
1372    흑과 백, 문밖과 문안 댓글:  조회:3859  추천:0  2016-04-23
알파고가 왔습니다. 열흘 사이 우리 앞에 나타난 가장 뜨거운 외계어입니다. 너도 나도 알파고 얘기입니다. 택시 기사 분은 바둑을 잘 아는 손님이 말해줬다는 정보를 쉴 새 없이 들려주고는, 그런데 기계하고 왜 싸우냐고 합니다. 다양한 분석과 뉴스, 네티즌의 반응, 이세돌 기사의 화법도 생각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계속 찾아보게 되었지요(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오랜만에, 대립되는 흑과 백이 아니라, 흑과 백이 만들어가는 기발함, 아름다움, 심오함을 본 듯합니다. 생각 못한 시를 쓴 시인이 이상이죠. 1910년에 태어나 37년에 생을 마감한 그가 여전히 한국 현대시의 전위에 있는 까닭입니다. 지금도 형식, 내용 모두 난해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이상의 많은 시가 그러하듯 이 시의 원문은 띄어쓰기를 안 합니다. 마치 알고리즘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면 이상만큼 선명한 시가 없어요. 바둑과 닮아 있죠. 한 수가 한 수를 뒤집는 방식입니다. 열어주려는 안의 나와 밖에서도 잠겨있는지 모르는 너가 있습니다. 너는 열라고 문을 두드립니다. ‘구태여’라는 단어는 여러 방향을 품고 있습니다. 단정적일 수도 있고 모험, 능청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계속 고수해온 것만이 기준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없던 것, 즉 새로운 것은 생생한 ‘정식’이 되는 것이지요. 너는 누구기에 구태여 닫힌 문 앞에 탄생하였느냐? 지금까지 없던 종입니다! 알파고는 ‘인간이 생각 못한 수를 두었다’고 하지요. 인간도 인간이 생각 못한 수를 두면서 인간을 보여주지요. 인간을 돌파하며 인간을 갱신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뉴스 헤드라인 중에서 ‘미안해 인간’에서, 아! 했지요. 알파고가 인간과 닮은 감정을 발설할 수 있다니요. 그 시간의 현실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곧 도착할 거라니요. 웰컴 알파고! 낙관도 비관도 아니죠. 생각의 대국이 시작되죠. / 이원 시인    
1371    [詩와 詩評으로 여는 토요일]- 봄 셔츠 댓글:  조회:3729  추천:0  2016-04-23
끝내 모를 것을 사랑하면   나의 시를 말한다, 이원     봄 셔츠     이 원     당신의 봄 셔츠를 구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만져 본 팔이 들어갈 곳이 두 군데 맹목이 나타날 곳이 한 군데 뚫려 있어야 하고 색은 푸르고 일정하지 않은 바느질 자국이 그대로 보이면 했습니다   봄 셔츠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차돌을 닮은 첫 번째 단추와 새알을 닮은 두 번째 단추와 위장을 모르는 세 번째 단추와 전력(全力)만 아는 네 번째 단추와 잘 돌아왔다는 인사의 다섯 번째 단추가     눈동자처럼 끼워지는 셔츠     들어갈 구멍이 보이지 않아도 사명감으로 달린 여섯 번째 단추가 심장과 겹쳐지는 곳에 주머니가 숨어서 빛나고 있는 셔츠를 입고     사라진 새들의 흔적인 하늘 아래에서 셔츠 밖으로 나온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목에서 얼굴이 뻗어나가며, 보라는 것입니다     굳지 않은 피로 만든 단추. 우리의 셔츠 가장 안쪽에 달려 있는     - 2014 여름호 수록     우선 발음해보자. 셔츠, 하고. 당겨진다. 팽팽해진다. 연이어 몇 번 소리 내어 부르면 찢어질 것 같다. 망설임도 없이. 한 방향으로 정갈하게. 셔츠. 셔츠. 다시 발음해보자. 베어질 것 같다. 깊숙이 아니고 슥슥. 사방으로 그어진다. 슥슥. 슥슥. 어디를 열심히 닦고 있는 것 같다. 펀치가 되려고 뭉치는 것 같다. 슥슥. 눈(眼)이다. 슥슥. 슥슥. 눈(雪)이다.   셔츠를 찬찬히 바라보면 비로소 셔츠가 보이기 시작한다. 셔츠를 구하려면 먼저 보이지 않는 셔츠부터 만나볼 것. 원하는 셔츠를 떠올려보자. 셔츠는 옷걸이에 걸려 있다. 옷걸이가 어디에 걸렸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꽤 넓은 곳이라는 것. 분명 ‘있다’는 것. 바람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것들에 셔츠는 흔들린다. 섞인 바람들 소리가 난 듯도 하다.   셔츠는 반으로 갈라진 옷이다. 온건한 듯 보이지만 맨 위에서 맨 아래까지 정중앙을 열어젖힌다는 면에서 조끼만큼이나 단호한 옷이다. 반반을 봉합하는 방법. 한쪽에는 단추. 한쪽에는 구멍. 둘은 영 다르다. 하나는 단단하고 동그랗고 하나는 비어 있고 길쭉하다. 다른 모양이 서로에게 개입되면 안이 생긴다. 단추가 떨어지면 구멍은 내내 단추를 기다린다. 구멍이 막혀 있다면. 단추는 그곳을 견디면서 수평의 연대를 기다린다.   셔츠를 옷걸이에서 꺼내, 반반에 각각 있는 단추와 구멍으로, 반반을 봉합한다. 이렇게 셔츠를 입을 사람과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상의 의 호흡을 빌린다면, 셔츠를 입은 사람은 셔츠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셔츠를 입은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과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서로 들여다보는 몰두를 알아채지 못하는 거울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과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   이쁘다. 마주 서서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줄 때.   잘 다녀와. 어깨를 쓸어줄 때. 알맞은 길이의 셔츠 소매를 괜히 걷었다 다시 내릴 때.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와. 채워진 단추에 시선을 주며 시간을 세어볼 때. 손 아니고 소매 깃을 살짝 잡아볼 때.   그리고는 금방 와. 구겨진 곳 없는 등을 쓰다듬으며 따라갈 때.   남겨지는 적막. 발소리. 슥슥. 슥슥. 셔츠의 팔 안쪽과 옆구리 스치는 소리.     조금만 더 보이지 않는 셔츠를 떠올리자. 보이지 않는 셔츠는 구하고 싶은 셔츠. 마음이 원하는 형상.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간절함 너머까지 닿아보자. 하나의 감각 기관이 박탈당하면 고도의 집중력이 생긴다. 이것은 절박한 생존이다. 비페이위 장편소설 에서, 눈먼 사람은 수술실에 들어갔고 눈먼 동료들은 수술실 앞까지 일렬로 손을 잡고 걸어간다. 손은 하나가 아니어서 오른손을 잡히면 왼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었다. 본 적 없는, 볼 수 없는 이들은 침묵한다. 전력을 다해 생각하기 위해. 생각의 형상에 닿기 위해, 생각의 형상을 만들 때까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눈먼 사람은 괴로워했다. 마사지센터에 온 영화감독이 눈먼 여자 마사지사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던진 한마디, 정말 아름다워라는 탄식을 들은 후부터다. 남자는 단 한순간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움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은 끝내 모를 것인가. 끝내 모를 것을 사랑하면 아름다움이 될 것인가. 시선을 조금 멀리 펼쳐 놓고. 셔츠가 나타날 때까지 셔츠를 떠올리는 일. 셔츠를 만지는 일. 셔츠가 생겨날 때까지 셔츠를 생각하는 일.   불쑥 팔부터 넣고 본 상태. 목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 그러므로 얼굴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그러므로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아니 그러니까, 맹목의 힘으로 셔츠, 발음하면 불모(不毛)가 찢어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불모를 찢고 나오는 눈빛. 새싹. 단추부터 하나 만들기 시작하자.   이원   이원 / 1992년 으로 등단. 시집 를 냈다.         텅 빈 주체의 얼굴을 그리다       “얼굴이 거울을 열고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얼굴은 어느새 거울을 잠가버린다”(‘얼굴이 그립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의 시선은/ 안으로 향해 있다 제 안의 어둠이 유일/ 한 경전이 되는 세계.”(‘얼굴 속으로’)   얼굴은 ‘나’를 앞서가거나 ‘나’의 뒤에, 너머에 남아 있다. ‘나’는 얼굴이 없는 대신, 잃어버린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선, 즉 눈을 갖고 있다. 얼굴 없이 홀로 방황하는 발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얼굴을 잃고 분해된 기관으로 존재-부재하는 ‘나’는 “제 안의 어둠”만을 들여다보며 그 어둠에 포위된다. 얼굴 없는 자의 어두운 내면은, 단적으로 말하면, 상실과 부재의 존재 방식을 주입하는 현대문명의 메커니즘의 산물로, 현대적 자아와 주체의 텅 빈 내부를 의미한다. 내면은 인간의 깊이와 인간성을 보장하고 시를 탄생시키는 무한한 심연에서, 인간 존재와 주체의 소멸이 진행되는 황폐한 사막으로 변했다. 시의 형질과 시 쓰기의 방법, 시적 주체의 위상이 달라져야 할 것은 자명하다.   디지털 시대의 초입에 이 원은 ‘클릭의 코기토’와 ‘마우스의 존재 선언’으로 이런 정황을 압축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집 속에 마우스와 내가 있다.” 클릭으로 존재 근거를 확보하고, 마침내 마우스와 등가의 존재가 된 ‘나’는 디지털이라는 거대 기계의 한 부품이다. 일상에서 종종, “가볍고 사소해/ 마치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비인간이다. 다음은 비인간 시인의 시적 신념의 한 대목. “내가 노래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닌 용접의 방식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언어에 함부로 피와 살을 이식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세계는 표현하는 만큼 존재한다’)     ‘나’의 부재를 응시하면서, 허구와 가상의 “없는 안을 만들어내”(‘살가죽이 벗겨진 자화상’)지 않고, 오직 표현함으로써 세계를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것. 이원의 시는 지금, ‘없는 나’가 건설하는 ‘있음의 세계’에 “불쑥 팔부터 넣고 본 상태. 목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 조만간 얼굴이 만들어질 상태.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1370    김수영 시인 대표작 시모음 댓글:  조회:6622  추천:0  2016-04-22
  ▶ 대표작 달나라의 장난 / 푸른 하늘을 / 풀 / 눈 / 사령(死靈) / 폭포(瀑布) / 꽃잎(ㅡ) / 꽃잎(二)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헬리콥터 / 그 방을 생각하며 / 敵 1 / 六法全書와 革命 / 敵 2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사령(死靈) ……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폭포(瀑布) 폭포 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꽃잎(ㅡ)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 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에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꽃잎(二)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 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 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 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싫은 노란 꽃을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헬리콥터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 1950년 7월 이후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 이것은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아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그렇지만 린드버어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를 그의 기체 안에 느끼고야 만다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설운 모양을 우리는 좁은 뜰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항아리 속에서부터라도 내어다볼 수 있고 이러한 우리의 순수한 치정을 헬리콥터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자유 ----비애 더 넓은 전망이 필요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우에서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게 손을 잡고 超동물세계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의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그 방을 생각하며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과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으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도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敵 1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 적에는 가벼운 적도 무거운 적도 없다 지금의 적이 제일 무거운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지만 이 적이 없으면 또 다른 적-----내일 내일의 적은 오늘의 적보다 약할지 몰라도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으로 내일의 적을 쫓으면 되고 내일의 적으로 오늘의 적을 쫓을 수도 있다 이래서 우리들은 태평으로 지낸다 六法全書와 革命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한 혁명을---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그놈들이 배불리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8,900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 28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정신으로 위정자가 다 잘해줄 줄 알고만 있다 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 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4.26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허기야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되지만 그보다도 창자에 더 메마른 저들은 더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 敵 2 제일 피곤할 때 적에 대한다 바위의 아량이다 날이 흐릴 때 정신의 집중이 생긴다 신의 아량이다 그는 사지의 관절에 힘이 빠져서 특히 무릎하고 대퇴골에 힘이 빠져서 사람들과 특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련을 해체시킨다 시는 쨍쨍한 날씨에 청랑한 들에 환락의 개울가에 바늘돋친 숲에 버려진 우산 망각의 想起다 성인은 차를 적으로 삼았다 이 한국에서도 눈이 뒤집힌 사람들 틈에 끼여사는 처와 처들을 본다 오 결별의 신호다 이조시대의 장안에 깔린 개왓장 수만큼 나는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가장 피로할 때 가장 귀한 것을 버린다 흐린 날에는 연극은 없다 모든게 쉰다 쉬지 않는 것은 처와 처들뿐이다 혹은 버림받으려는 애인뿐이다 넝마뿐이다 제일 피곤할 때 적에 대한다 날이 흐릴 때면 너와 대한다 가장 가까운 적에 대한다 가장 사랑하는 적에 대한다 우연한 싸움에 이겨보려고 ========================================================== 333. 郊外 / 이운룡 교외(郊外) 이 운 룡 마을의 집들이 도화지 안에 들어와 살고 있다 밭머리에는 어느새 가을볕들의 콩 타작이 한창이다 초등학교 때 어려워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노란 정답이 얼마든지 주머니째 털려 나와 있다 아이들이 열려 하느님이 손을 잡아 주시던 지붕 위 빨간 감나무 그 때문에 넘어진 참깨 다발 하나 아— 입 벌리고 웃는다. 이운룡 시집 중에서
1369    다시 떠올리는 전위시인 - 김수영 댓글:  조회:4375  추천:0  2016-04-22
김수영 [金洙暎 1921∼1968] 1950년대 말, 서울 명동의 한 술집에서 시인 몇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이미 술기운이 올라서 다들 붉어진 얼굴이다. 그들 사이에는 시며 잡지, 원고료, 문단 얘기들이 오간다. 다만 유난히 키가 큰 한 사나이는 좀전부터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다. 좌중의 화제가 사회와 정치 쪽으로 옮아가자 입을 다물고 있던 사나이도 말문을 연다. 웬간히 취기가 올라 있던 그는 ...을 향해 직설적인 비판과 함께 욕을 토해낸다. 한 시인이 제지하려고 들자 그가 대뜸 항의한다. "아니,자유 국가에서 욕도 내 마음대로 못 한단 말이오?" "글세,김형 말이 도에 지나치니까 하는 말이지." "도에 지나쳐? 그럼 이 썩어빠지고 독재나 일삼는 정부며, 늙은 독재자를 빼놓고 불쌍하고 힘없는 문인들 험담이나 해서 쓰겠어? 당신 시가 예술 지상주의 냄새가 나는 건 그 지나친 조심조심 때문이오!" 이에 상대방이 발끈해 말다툼으로 번지고 결국 술상까지 엎어져 술자리는 난장판으로 끝난다. 이 키 큰 사나이가 바로 시인 김수영(金洙暎.1926~1968)이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노고지리가 자유(自由)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革命)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이라고 노래한 김수영. 그는 현실의 전위에 선 시인의 불온성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도시 소시민의내면과 자의식을 까발려 내보이며,그때까지 한국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여성적 운율과 재래의 토속성을 벗어던지고 세련된 도시 모더니즘의 시세계로 나아갔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 6가에서 김태욱(金泰旭)의 셋째아들로 태어난다. 김수영네 집안은 본디 의관(醫官)이나 역관(譯官), 부상(富商)들로 이루어진 중인들의 주거지인 관철동에 있었다. 무반(武班) 계급에 속한 김수영네는 경기도 파주. 문산. 김포와 강원도 철원. 홍천 등지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해마다 4백여석을 거둬들이는 지주 집안이었으나, 일제의 침탈 뒤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그는 어의동공립보통학교(지금의 효제초등학교)를 전학년 우등으로 마치고 당대의 수재들이 진학하던 경기도립상업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진다.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알았던 집안은 낙방 소식에 울음바다가 된다. 2차로 응시한 선린상업 주간부에도 떨어져 결국 선린상업 전수과 야간부에 진학한다. 상급학교 입시에 거푸 실패한 것은 잔병치레가 잦던 그가 보통 학교를 졸업하던해에 폐렴과 늑막염으로 앓아 누워 1년쯤 학업을 쉰 탓이다. 1941년 김수영은 선린상업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도쿄성북(東京成北)고등예비학교와 도쿄상대(東京商大) 전문부에 적을 두고 공부한다. 그는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뒤 친구와 함께 일고여덟 달 동안 영어 학원을 경영하기도 한다. 이 무렵 연극에서 시 창작으로 진로를 굳힌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廷)의 노래"를 내놓으며 문단에 나온다. 그의 등단작인 "묘정(廟廷)의 노래"는 평론가 김현의 말처럼 "조지훈류(趙芝薰流)의 회고 취미가 압도적"인 작품이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 서울의대 부설 간호학교에서 영어 강사 노릇을 하고 있던 김수영은 피난을 가지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이 퇴각할 때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이북으로 끌려간다. 평남 야영 훈련장에서 1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뒤 북원(北院)훈련소에 배치된그는 유엔군이 평양 일대를 장악하면서 자유인이 되어 남하한다. 그런데 얼마 뒤 그는 서울 충무로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어스들과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고 스스로 전하듯이, 그는 포로수용소 야전 병원 외과 원장의 통역으로 있다가 풀려난다. 그는 이후 미8군(美八軍) 수송관의 통역,선린상고 영어 교사,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 등을 거친다. 서울 마포 구수동으로 이사한 1955년 무렵부터 그는 양계(養鷄)와 번역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한다. 4월 혁명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세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4월 혁명에 대한 자의식이 한결 강렬하고 이를 자신의 문학적 자산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으로는 시인 김수영과 신동엽, 소설가 최인훈, 평론가 김현을 꼽을 수있다. 4월 혁명 기간 내내 김수영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쏘다녔다. 거의 매일 만취되어 집에 돌아오고,어느 때는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가 날이 새면 또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4월 혁명을 통해 김수영은 비로소 시인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난해시에서 참여시로,서정시에서 혁명시로 나아가던 그는 4.19 전에 내놓은 "하.그림자가 없다"에서 이미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고 하며 혁명을 예감한다. 또 "진정한 시인이란 선천적인 혁명가"("시의 뉴프론티어")라고 선언한 바도 있다. 김수영은 혁명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 자유에 대한 느꺼움을 가누지 못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후 아침에 깨어나서는 말짱한 정신으로 시와 산문을 미친 듯이 썼다. 그리고 정치와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그는 자유와 정의,사랑과 평화,행복을 얻기 위한 혁명에는 피와 고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푸른 하늘을"에서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혁명은 본디 "고독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라벌예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서 시간 강사 노릇을 하던 그는 이혁명이 "미완"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예감에 사로잡힌다. 혁명이 좌절되었다고 느끼자 그는 "제2광화국!/ 너는 나의 적이다/ 나는 오늘나의 완전한 휴식을 찾아서 다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고 토로하거나,체제와 제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고 사람만 바뀐 현실 상황에 비애를 느껴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절규한다. 이듬해 5.16 군사쿠테타가 터지고 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자 현실에 대한 시인의환멸과 절망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시인을 정말로 괴롭힌 것은 그토록 혁명을 원했으면서도 스스로 혁명의주체가 될 수 없다는 소시민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현실의 피해자일뿐 아니라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뼈저린" 인식이다. 혁명의 장애 요소들이 우리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깨달음은 정치와 사회 현실에 주고 있던 그의 눈길을 다시 "안"으로 돌리게 한다. 그러나 "안",즉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라든지 헤어날 길 없는 소시민적 일상은나태와 허위로 감싸여 있고 이런 사실은 그를 못 견디게 만든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거지가 되고 싶다고 외치거나 가족이라는 속된 사슬에서 풀어달라고 미친 듯이 소리를 쳐서 잠자던 아내와 아이들을 깨워 울리는 등예전보다 심하게 식구들을 괴롭힌다. 언젠가는 술이 억병이 되어서 눈 위에 쓰러진 것을 지나가던 학생이 업어 가지고 경찰서에 데려다 준 일도 있었다. 술에 취한 채 경찰서에 업혀간 그는 순경을 보고 천연덕스럽게 절을 하고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하고 인사를 했다. 그는 이튿날 사지가 떨어져나갈 듯이 아픈 가운데에도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해듣고는 더럭 겁을 내기도 한다. 극심한 자기 비하나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이런 잦은 음주와 가정 폭력은 시에서 혁명의 좌절을 가져온 소시민 계급의 안일함과 소극성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야유와 욕설로 변용된다. 1968년 4월 13일, 김수영은 펜클럽이 마련한 부산의 문학 세미나에 참석해 "시여,침을 뱉어라"(원래의 제목은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이다)라는 제목으로 40분쯤 강연을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파격적이고 예기치 못한 발언으로 청중을 당혹에 빠뜨린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 김수영은 상업 학교를 나왔음에도 숫자를 극도로 싫어해 원고지에 매기는 번호도 아내나 여동생에게 부탁하곤 한다. 1968년 6월 15일,그는 이날도 아내가 번호를 매긴 원고를 들고 광화문 네거리에있던 신구문화사에 나갔다. 번역 원고를 넘긴 뒤 고료를 받은 그는 이날 밤 신구문화사의 신동문(辛東門),늦깎이로 등단한 신예 작가 이병주(李炳州), 한국일보 기자인 정달영(鄭達泳)과 어울려 청진동의 술집들을 옮겨다니며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다. 술에 취한 김수영은 좌충우돌하며 횡설수설하던 끝에 "야,이병주,이 딜레탕트야"하고 시비를 걸었다. 이병주는 "김 선생,취하셨구먼"하고 껄껄 웃어 넘긴다. 그들이 헤어진 것은 밤 이슥한 시각. 김수영은 이병주가 운전사 딸린 자신의 폭스바겐 차로 모시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시내 버스를 타고 서강 종점에서 내린다. 그 때 좌석 버스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하면서 인적 끊긴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김수영의 뒤통수를 들이받는다. 갈색 옷을 입고 있던 김수영은 "퍽!"하는 두개골이 파열되는 소리를 내며 멀찌감치 나가떨어진다. 밤 11시 30분께의 일이었다. 그는 적십자병원 응급실로 옮겨지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에 숨진다. 1969년 사후 1주기에 맞춰 그의 무덤에는 시비(詩碑)가 세워지는데, 이 시비에는"풀"이 육필(肉筆)로 새겨진다. 김수영은 죽은 뒤에 더 높이 평가를 받고 유명해진 시인이다. 그가 죽은 뒤 민음사에서는 1974년에 시선집 "거대한 뿌리",1975년 산문집 "시여,침을 뱉어라",1976년 시집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9년 산문집 "퓨리턴의 초상"을 잇달아 펴낸다. 이후에도 지식산업사, 창작과비평사, 열음사, 미래사 같은 여러 출판사에서 다투어시선집을 내놓았다. 김수영은 근대적 자아 찾기,온몸으로 자기 정체성 찾기의 한 모범을 보여준시인이다. 그는 이상(李箱) 이후 최고의 전위 시인이며 4월 혁명의 정치적 함의를 정확하게 읽어낸 명실 상부한 현대 시인이다. ▣ 비사(秘史) ▣ ≪ 마리서사 그리고 김수영과 박인환 ≫ 해방을 맞아 평양의학전문대학을 중퇴하고 서울로 돌아온 박인환은 부친과 이모로부터 차입한 돈 5만원으로 뒷날 월북한 시인 오장환(吳章煥)이 낙원동에서 경영하던 스무평 남짓한 서점을 인수한다. 얼마 뒤 초현실주의 화가 박일영(朴一英)의 도움으로 간판을 새로 달고 다시 문을 여는데, 이것이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했던 헌 책방 마리서사(茉莉書肆)이다. 서점 이름은 일본 현대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船衛)의 시집 "군함 마리(軍艦茉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을 땄다는 설로 나뉘어져 있다. 어느 게 정확한 것인지 확인은 불가능하다. "마리서사"의 서가에 진열된 책들 대부분은 박인환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인데,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을 위한 전문 서점이었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마리 로랑생, 장 콕토와 같은 외국 현대시인들의 시집, "오르페온" "판테온" "신영토" "황지"와 같은 일본의 유명한 시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리서사"에는 하루도 시인이나 소설가,화가들이 모여들지 않는 날이 없었다. 김광균(金光均), 이봉구, 김기림(金起林), 오장환, 장만영(張萬榮), 정지용(鄭芝溶), 김광주 등 시인 소설가들, "신시론(新詩論)" 동인 김수영(金洙暎), 양병식(梁秉植), 김병욱(金秉旭), 김경린(金璟麟)등, 조향, 이봉래 등의 "후반기"동인들, 화가 최재덕, 길영주 등이 "마리서사"의 단골손님이었다. 특히 김수영은 박인환과 동년배로 동인활동을 함께 하며 "새로운 도시(都市)와 시민(市民)들의 합창(合唱)"이라는 앤솔로지를 내기도 하는 등 두터운 교분을 가졌다. 그러나 나중에 둘 사이는 소원해졌다. 김수영은 서구적인 것에 경도된 박인환의 취향을 경박하며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몰아부치며 경멸하고, 박인환은 또 그대로 김수영이 세속적인 눈치만 보는 속물이라고 비난했다. 현실의 장벽을 향해 던지는 칼빛 언어, 자유의지 김수영은 '자유'의 시인이다. 그는 돌에서 피를 뽑아 낼 정도의 치열한 자유의지로 우리 근대사의 뼈아픈 역사와 삶의 생채기를 온몸으로 껴안은 시인이다. 따라서 자유란 테마는 그의 시세계 전체를 관통하며 끈질긴 탐구의 대상을 이룬다. 이런 자유의 정신으로 벼려진 칼빛 언어에는 시적 진정성을 구현하기 위한 김수영의 혹독한 자기 수련(修鍊)이 아로새겨져 있다. 결코 현실의 장벽에 굴복하지 않는 도저한 자유의지는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로 그려지곤 한다.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아슬아슬하게/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바뀌어진 지평선'). 삶의 자유로운 비상을 억압하는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돌, 무엇을 치어 받으려고 그토록 가열하게 날아가는가. 세상에 배를 밀착하고 날아가는 강인한 정신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듯, 그가 말하는 자유란 현실의 한계를 단박에 뛰어넘어는 '초월(超越)'의 희열이 아니다. 현실의 아픔과 상처, 갈등과 고통 위를 온몸으로 밀며 나가는 기어넘기, 즉 '포월(匍越)'이자 그 생채기를 안고넘는 '포월(抱越)'의 산고일 따름이다. 그러기에 자유, 그 반역의 정신은 좌절의 쓴맛과 직결된다.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자유//―비애"('헬리콥터'). 헬리콥터는 곤고한 지상과 결별하며 이륙할 수 있는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이나, 종래에는 어딘가 착륙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비애가 병존한다. 이런 시적 모반의 정신이 극단에 이르면 그의 시는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며 혁명을 꿈꾼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반항의 정신이 돛을 올리는 순간이다. 4·19 혁명 직전에 발표한 '하……그림자가 없다'와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가 그 대표적인 시라 하겠다. 그의 이러한 문학 정신은 소위 말하는 '반시론(反詩論)'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전복을 꿈꾸는 모든 전위 문학은 긍정이 아닌 부정의 정신을 근간으로 해야만 한다는 그의 헌걸찬 주장은 '지금 여기'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이여! 일상의 안일과 나태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그대들이여! 지금 어떤 모반의 전략을 꿈꾸고 있는가? 도대체 꿈꿀 수 있기는 한가? 류신(문학평론가) ▶ 작품 활동 - 1945년 [예술부락]에 시 를 발표. - 1949년 김경린(金璟麟), 박인환(朴寅煥) 등과 합동시집 을 간행. 모더니스트로 각광 받음. - 1950년대 :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을 모더니즘적인 감각으로 노래. 대표작 : , , 등. 1959년 그간의 발표작을 모은 시집 간행 및 제1회 시협(詩協)상 수상 - 4.19혁명 : 시의 전환점을 이루는 시기. 현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표현한 참여시를 쓰기 시작. 대표작 : , , 등. - 5.16 이후 : 대표작 : , 등.이후 그는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노래한 , , 등을 썼고, 은 1970년대 민중시의 길을 열어놓은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 그 외 등 - 사후 (1974), (1975)를 비롯,몇 권의 시선집과 산문집 발행.1981년 민음사에서 두 권의 이 간행 됨. ▶ 대표작 달나라의 장난 / 푸른 하늘을 / 풀 / 눈 / 사령(死靈) / 폭포(瀑布) / 꽃잎(ㅡ) / 꽃잎(二)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헬리콥터 / 그 방을 생각하며 / 敵 1 / 六法全書와 革命 / 敵 2 ===============================================================================   332. 눈물은 푸르다 / 최종천                 눈물은 푸르다       최종천       눈물은 푸른 색을 띠고 있다 멍을 우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열린 눈의 막막함 약속의 허망함 우리는 지난 세월을 憎惡에 投資했다 거기서 나온 이익으로 쾌락을 늘리고 문득 혐오속에서 누군가를 기억한다   너의 눈은 검고 깊었다. 그러나 그는 입맞춤으로 너의 눈을 퍼낸다 너는 다시는 달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최종천 시집 중에서  
1368    [밤에 올리는 詩 한컷]-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댓글:  조회:4463  추천:0  2016-04-22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박소유 채송화가 부서진 화분 밖으로 기어 나오고 오래된 골목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고층 아파트가 전기 끊긴 집에 달빛마저 끊는다고, 붉은 욕창처럼 문드러진 비닐장판에 누운 잠 다시는 깨지않기를 바라는 서러운 잠이라고, 재개발 때문에 떠나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조간신문 두 면에 가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창구멍 숨구멍도 없이 반지하방 쪼들리는 햇빛에 겨우 키가 크는 애들이 활개치고 놀던 골목에서 한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햇빛은 멀고 얼마나 걸어 나가야 이 골목을 빠져 나갈 수 있느냐고, 기어 나오다 기어 나오다 어느 날 멈춰 버린 키 작은 채송화처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시평/// 따스한 배려와 공감, 어떤 동정심마저도 가 닿지 못하는 안타까운 풍경을 본다. 재개발을 앞둔 이 땅의 많은 도시 빈민촌의 골목마다 이러한 그림은 살아있는 것이다. 햇빛은커녕 달빛도 잘 들지 않는 골목 깊이 피어난 키 작은 채송화로 평생 살아왔거나 살아가야하는 인생들이 아직도 이땅에는 많다. 안타깝게 아픈 풍경들을 눈 속에, 가슴 속에 담는 시인의 답답한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시다.
1367    [詩로 여는 금요일]- 앞날 댓글:  조회:3697  추천:0  2016-04-22
앞날          - 박소유 멈춰라! 그곳은 아직 멀고 꽃은 이제 막 피었다
1366    [안개 푹 낀 아침, 詩놈팽이 한컷]- 명함 댓글:  조회:4146  추천:0  2016-04-22
명함 - 함민복(1962~ ) 새들의 명함은 울음소리다 경계의 명함은 군인이다 길의 명함은 이정표다 돌의 명함은 침묵이다 꽃의 명함은 향기다 자본주의의 명함은 지폐다 명함의 명함은 존재의 외로움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J Derrida)는 이름이란 하나의 외적 통일체로서의 표피(表皮)이고, 그 안에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어떤 “심연(深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울음소리” “침묵” “향기” “지폐” 같은 이름(명함)들은 얼마나 넓고 깊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가. 이름의 문을 열고 그 심연으로 들어설 때, 존재 혹은 “존재의 외로움”이 보인다.  
1365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댓글:  조회:4319  추천:0  2016-04-21
작가 조정래의 부인은 시인 김초혜. 조정래는 시인이 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시인 부인을 '떠받들고' 산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대학 시절 그가 시인을 꿈꾸며, 1년여의 습작기간을 가지다 결국 소설로 돌아섰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이야기다. 신작 (창비. 2006)을 발표하며, 독자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소설가 박민규. 그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며 "언어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영역이 시"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도 습작 수준이지만 몰래 시를 쓰고 있다고 고백한다. 역사소설의 대가로 군림한 원로작가와,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고 있는 인기작가들. 소설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왜 시에 대한 '연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소설가가 흠모하는 시인, 그리고 그 시인이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문태준의 시를 통해서라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같다. 동서문학상(2004), 노작문학상(2004), 유심작품상(2004), 미당문학상(2005), 소월시문학상(2006) 등 내노라하는 상은 모두 '석권'하다시피 한 그이니, 시인 '대표' 삼아 그의 시를 살피는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여기 문태준의 시 한편이 있다.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老母')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이제 입가에 자글자글한 주름만이 남은 노모. 시인은 그녀의 주름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가 거진 다 빠져, 음식을 씹기 위해 열심히 움직거리는 입모양도 사랑스럽다고. 단 7행으로, 시인은 노모가 살아온 삶과, 자신이 그녀에게 품은 존경과 애정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골짜기'가 노모의 입가에 깊이 패인 주름을 연상시키고, '산새 소리'가 노모가 사는 곳을 짐작시킨다. 바로 이것이 소설가가 시인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닐까. 소설로 썼다면, 몇백매를 훌쩍 넘길 한 여인의 삶을, 2,3개의 시어로 표현해내는 '함축성' 말이다.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다면, 또 한편의 시를 살펴보자.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은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5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극빈') 열무를 심어 꽃을 얻기까지 그 계절의 변화와, 채소밭에 꽃을 가꾸냐는 사람들과의 문답, 어렵게 얻은 꽃을 보금자리 삼은 나비에 대한 '귀여운' 시기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추 . 한 편의 시에 이 많은 것을 녹아내리는 힘. 그 `응집력`이야 말로, 박민규의 표현을 빌자면 '작은 이야기(小說)를 길게 써야하는' 소설가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힘이 아닐런지. 문태준의 시집 (문학과지성사. 2006)엔 이처럼 소설가들이 '군침'을 흘릴, 시들이 가득하다. 삶과 사람, 이 방대한 주제를 한 편의 시로 '압축'해내는 시인의, 절정에 오른 능력을 보여주는 문장 하나가 있다.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자루' 중) 자루는 무얼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고, 시인을 무얼 써도 시가 된다. (사진 = KBS 제공)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 335. 충치 / 이운룡 충치 이 운 룡 어금니 하나를 뽑아 버렸다 아픔 한 점이 빠져나갔다 욱신욱신 들쑤시던 놈, 알게 모르게 파 먹은 벌레가 남긴 그 자리, 아픔이 응혈진 말을 악물고 있다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런 사기질의 벌레가 득실거려 아픔 밑에 허탈도 패이지만 그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나의 그림자, 그 자리에 새로 아픔 몇 점 무덤을 파고 들앉아 바늘 신경으로 솟아올랐다 집게란 것이 닿기만 하면 실핏줄이 뿌리째 까무러치고 전 생애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젖니를 뽑았을 때에는 순전히 젖빛의 피가 흘러서 푸른 하늘에 번지고 있었건만. 이운룡 시집 중에서  
1364    詩는 쓰는것이 아니라 받는것 댓글:  조회:4623  추천:0  2016-04-21
"작은 아버지 장례 때 우연치않게 고인의 종아리를 두 손으로 잡아봤습니다. 돌아가셨는데도 여전히 물렁물렁했던 종아리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KBS1라디오 '김영하의 문화포커스'(밤 10시10분)에 세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 2006)를 발표한 시인 문태준이 출연,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헤쳐졌다. 이날 초대손님으로 온 문태준은 표제작 '가재미'를 직접 낭송했으며, 다듬어지지 않은 시인의 육성에서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그는 '가재미'가 "어머니와 같았던 큰어머니가 위중하실 때 뵙고 나서 쓴 시"이며 '가재미2.3'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 후에 쓴 시"라고 밝혔다. "이번 시들이 많은 부분, 죽음에 관한 느낌들이 풍긴다"는 진행자 김영하의 말에 "옆에 계시던 분들이 떠나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입을 열었다. 문태준은 방송을 통해 시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드러냈다. 진행자가 뒷표지에 실린 시론을 화두로 꺼낸데에 대한 대답에서였다. 시론은 이렇다. "새와 아내와 한척의 배와 내 눈 앞의 꽃과 낙엽과 작은 길과 앓는 사람과 상여와 ...(중략)... 목탁과 낮은 집은 내가 바깥서 가까스로 얻어온 것들이다. 빌려온 것이다. 해서 돌려주어야 할 것들이다" 이에 대해 문태준은 "나 말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든지 다른 살아있는 것들의 소리를 열심히 부지런히 듣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본다"며 "그런 의미에서 받는다는 말이 적합하다"고 답했다. 이어 "'받는다'는 깨달음은 어릴 때 얻은 것"이라며 아버지 이야기를 소개했다. "논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마중나가면 '소를 받아라'고 말씀하셨고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하지. 가서 사오라고는 안하셨다"는 것. 이야기는 문태준이 요즘 일군다는 채마밭으로 옮겨갔다. 그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제 채소밭을 보고 웬 풀밭을 가꾸느냐고 묻는다"며 자신을 게으른 농사꾼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그 채마밭은 문태준에게 시의 영감을 준다. 그는 채마밭에 "꽃이 막 피고 그렇게 남아있었는데 그런 꽃에 나비들이 날아와서 앉는 걸 봤다. 내가 저처럼 다른 사람한테 다른 존재한테 쉴 자리를 내준 적이 있었나"하는 생각에 '극빈'을 썼다고 전했다. 문태준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시를 열심히 받는 일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짧고 명쾌한 답을 밝혔다. (사진 = KBS 제공)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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