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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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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    詩作은 온몸으로 하는 것 댓글:  조회:4637  추천:0  2016-05-29
시를 쓰는 목적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꺼내 삶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다른사람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다   -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할 덕목  ① 결실을 맺는 것은 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사과나 배는 결과물이 과실에 비해 꽃이 작다)  ② 수선화처럼 뿌리는 튼튼하고 꽃은 화려한 문학을 보자  ③ 비평가를 위한 꽉 찬 시보다는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는 것도 문학이다.  ④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 "담쟁이"의 시처럼 어려움을 처했을 때 읽고 가슴에 녹아들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 처럼)  ⑤  주위 환경이나 상황을 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바라보고 한 눈을 팔아야 함.    - 결론    시는 머리, 심장, 손 등 하나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하는 것.    즉  머리는 논리와 이론, 심장(가슴)은 정서와 감정,  손은 기교와 방법을 함께 녹여서    온몸으로 어우러진 시를 써야한다.     사물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움 돋는 나무들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흙 속에서 초록이 돋아나는 걸 보면 경건해진다 삭은 처마 아래 내일 시집 갈 처녀가 신부의 꿈을 꾸고 녹슨 대문 안에 햇빛처럼 밝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의 이름과 함께 생애를 살고 풀잎의 이름으로 시를 쓴다 세상의 것 다 녹슬었다고 핍박하는 것 아직 이르다 어는 산 기슭에 샘물이 솟고 들판 가운데 풀꽃이 씨를 익힌다   절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레 절망을 노래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꽃잎 하나씩은 지니고 산다 근심이 비단이 되는 하루, 상처가 보석이 되는 한 해를 노래할 수 있다면 햇살의 은실 풀어 내 아는 사람들에게 금박 입혀 보내고 싶다   내 열 줄 시가 아니면 무슨 말로 손수건만한 생애가 소중함을 노래하리 초록에서 숨쉬고 순금의 햇빛에서 일하는 생의 향기를 흰 종이 위에 조심히 쓰며.   ---이기철「생의 노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선경후정(先景後情) 정경교융(情景交融)   구체적 형상을 통해서 이야기하라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봉우리도 있고 바위너설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갈대밭도 있다 품안에는 산짐승도 살게 하고 또 머리칼 속에는 갖가지 새도 기른다 어깨에 겨드랑이에 산꽃을 피우는가 하면 등과 엉덩이에는 이끼도 돋게 하고 가슴팍이며 뱃속에는 금과 은 같은 소중한 것을 감추어두기도 한다 아무리 낮은 산도 알 건 다 알아서 비바람 치는 날은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햇볕 따스하면 가슴 활짝 펴고 진종일 해바라기를 하기도 한다 (......) 세상이 시끄러우면 근심어린 눈으로 사람들 사는 꼴 굽어보기도 하고 동네 경사에는 덩달아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출 줄도 안다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있을 것은 있고 갖출 것은 갖추었다 알 것은 알고 볼 것은 다 본다   ---신경림 「偶吟(우음)」 중에서       입상진의(立象盡意) 이리관물(以理觀物)                 대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가슴 깊은 곳에 숨겨놓은 그것을 써야 시가 된다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   ---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중에서     미적 거리를 잘 조정해야 한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유리창 1」       거리조정이 부족한 시(Under distancing) 거리조정이 지나친 시(Over distancing) 내가 발견한 것이 있어야 한다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로만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 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 「못 위의 잠」                 팔십년 전에 날카로운 첫 키스라고 썼다   계곡의 물소리에 실린 바람이 잠든 이슬을 깨우는 밤 어둠 속에 벌거벗은 나무들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쳐다보면 유성이 사랑에 밑줄을 그으며 사라져 간다   ---김동환 「유성」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정호승 「키스에 대한 책임」중에서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 또한 죽은 시인이다.”   ---빠블로네루다     상상력이 살아 있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만약 어느 여자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숲속 길이 있다면 난 그녀와 살림을, 다시 차리겠네.   개울이 오묘한 그녀에게 소리가 나는 자갈길을 깔아주고 군데군데 돌무덤을 예쁘게 쌓겠네. 아침이면 노란 새소리로 풀꽃들을 깨우고 낮에는 이깔나무 잎으로 하늘을 경작하다가 천마봉 노을로 저녁밥을 짓겠네.   가을이 되면 물론 나는 삽살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며 쓸쓸한 상상을 나뭇가지 끝까지 뜨겁게 펼치겠지만 모두 떠나버린 겨울에는 그녀를 더 쓸쓸하게 하겠지? 그러나 난 그녀를 끝까지 지키는 장사송(長沙松)으로 눈을 얹고 진흥굴 앞에서 한겨울을 품위 있게 나겠네. 설혹 그녀에게 가파른 절벽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는 그 위에 저렇게 귀여운 암자를 옥동자처럼 낳고 살 것이네.   ---김영남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   손으로 쓰는 시 가슴으로 쓰는 시 머리로 쓰는 시 온몸으로 쓰는 시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원고지 쓰기 Ⅰ. 짜임새 왜 원고지를 쓰는가? 원고지 쓰기의 원칙 본보기 원고지 쓰는 방법    첫머리    본문    문장부호 원고의 교정 [참고문헌] 장재성(1998), , 박문각 김봉군(1999), , 삼영사 김 선(1997), , 예문당 김형동외(1997), , 학지사 Ⅱ. 실재 ·왜 원고지를 쓰는가? 원고는 인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정한 규격을 가진 특수한 양식의 용지에 써야 한다. 그래야만 완결된 원고의 분량을 명료하고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문장의 여러 격식을 분명히 나타낼 수 있어 글쓴이의 의사가 정확하게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고지는 필요한 용도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100자, 200자, 300자, 750자, 800자, 1000자 등이 있다. 이것은 신문, 잡지 또는 사전 편집 등에 일정한 인쇄면에 필요한 분량을 써넣기 위하여 만든 용지이다. 이 가운데 200자 원고 용지가 가장 많이 쓰이기 때문에, 흔히 원고의 분량을 말할 때는 200자 원고 용지를 기준으로 해서 말하는 것이 통례도 되어 있다. 이러한 원고 용지를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편리함이 있다. 첫째, 원고의 분량을 쉽게 계산할 수 있고 조판, 인쇄를 위한 편집과 원고 배정이 쉽다. 둘째, 문장의 일정한 구정을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도 쉽게 나타낼 수 있다. 셋째, 행과 행 사이의 가느다란 여백을 이용하여 글다듬기와 교정을 할 수 있다. ·원고지 쓰기의 원칙 1. 칸쓰기 한 칸에 한 자 쓰기를 원칙으로 한다. 문장부호도 한 칸에 한 자 쓰기를 원칙으로 한다. 단, 행 끝에 치는 부호는 예외로 하고, 줄표(-), 줄임표(……)는 두 칸으로 한다. 로마자를 쓸 때는, 대문자는 한 칸에 한 자를 쓰고, 소문자는 한 칸에 두 자를 쓴다. 아라비아 숫자는 한 칸에 두 자를 쓴다. m, cm, mm, g, kg 따위의 단위표시는 한 칸에 쓴다. 새 단락으로 접어들 때는 언제나 첫 칸을 비운다.(줄갈이) 긴 인용단락을 쓸 때는 드러내기 위해서 그 단락 전체의 왼쪽 두 칸을 모두 비운다. (인용단락의 첫 글자는 넷째 칸부터 쓰게 됨.) 대화문은 독립된 단락은 아니나 준독립 단락으로 취급하여, 첫 칸을 비워 쓴다. 큰따옴표(" ")로 묶을 때도 그렇고, 줄표를 써서 대화문을 나타낼 때도 그러하다. 가닥치기(조목 벌임)의 번호 앞은 적당히 비운다. 인용할 때는 보통 두 칸 정도 비워 쓴다. 2. 줄 쓰기 제목의 앞뒤 줄은 비운다. 본문의 앞은 한 줄이나 그 이상 비운다. 다음과 같이 독립 단락임을 보일 때는 앞뒤 한 줄씩을 비운다.    *앞의 내용과 사뭇 달라서, 그냥 붙여 쓰면 문맥의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을 때     (시간의 변화, 공간의 변화, 화제의 변화)    *액자소설 등 이야기 속의 이야기임을 나타낼 때    *긴 인용단락일 때(이때는 두 칸씩을 비울 필요가 없게 됨.)    *시 따위를 인용할 때 원고지 끝줄로 독립단락이 마쳐질 때, 다음 장 첫 줄을 비우지 않고 앞 장 원고지 밑에 표로써 띄어쓰기를 나타낸다. 본보기 -문장표현사전, ·원고지 쓰는 방법 @첫머리 원고지의 첫머리에는 글의 종류, 제목 및 부제목, 소속과 이름 등을쓴다. 1) 글의 종류 원고지 1행의 두번째 칸부터 글의 종류를 쓴다. 2) 제목과 부제목 (1) 제목은 2행 중심부에 쓴다.     만약, 제목이 두서너 자일 때는 두어 칸을 벌려 써서 미적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2) 제목을 쓸 때에는 문장 부호에 유의한다.     마침표는 찍지 않는다.     물음표와 느낌표는 가능한 붙이지 않는다.     같은 계열의 낱말이 반복될 때는 쉼표 대신 가운뎃점을 쓴다.     줄임표(……)는 사용하지 않는다. (3) 긴 제목은 첫 행은 좌측으로, 둘째 향은 우측으로 해서 두 행을 잡아 쓴다. (4)부제는 양 끝에 줄표(-)를 표시하여 본 제목 아랫줄에 쓴다. 3)소속과 이름 원래는 제목 아래의 1행을 비우고 난 뒤(4행)부터 쓰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소속은 3행에,이름은 4행의 오른쪽에 쓴다. (1) 소속과 이름의 끝자는 2칸을 비우고 쓴다. 단, 이름은 소속 다음 행에 쓴다. 붙임> 성과 이름은 붙여 쓰지만,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띄어 쓴다. (2) 이름의 각 글자 사이는 한두 칸씩 띄어 써도 좋다. 붙임> 이름만 적거나, 소속·이름을 한 줄에 적을 때는 제목 아래 한 줄을 비운다. @본문 1) 글자는 한 칸에 한 자씩 2) 숫자와 알파벳 (1) 로마 숫자, 알파벳 문자, 낱자로 된 아라비아 숫자는 한 칸에 한 자씩 쓴다. (2) 두 자 이상의 아라비아 숫자나 알파벳 소문자는 한 칸에 두 자씩 쓴다. 3) 앞 칸 비우기 (1)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단락이 바뀔 때 둘째 칸부터 쓴다. (2) 대화는 둘째 칸부터 따옴표(")로 행을 바꾸어 시작하고 짧은 대화라도 한 줄에 같이 쓰지 않는다. (3) 본문에 인용문을 사용할 때에, 줄을 따로 잡아 쓰는 경우에는 인용문 전체를 한 칸씩 들여 쓴다. (4) 항목별로 나열할 때는 한 칸씩 비우고 쓴다. (5) 소항목, 단락 표제를 표시할 때도 한 칸씩 비우고 쓴다. (6) 인용문 내에서는 문단이 바뀔 때 앞의 두 칸을 비운다. (7) 시, 시조, 인용문에서는 앞의 두 칸을 비운다. 4) 첫 칸을 비우지 않을 때 (1) 단락이나 문장 내에서는 처음의 시작만 첫 칸을 비운다. 줄의 끝에서 비울 칸이 없을 때는 V을 하고 첫 칸부터 글을 써 나간다. (2) '-할, -(라)고, -하고, -등의, -하기에, -한다' 등 이어받는 말은 다음 줄 첫 칸 부터 쓴다. @ 문장 부호 1) 문장 부호도 한 칸에 하나씩 표기한다. 2) 물음표(?), 느낌표(!) 등의 문장 부호 다음은 한 칸씩 띄어 쓴다. 3) 줄표(-)는 두 칸에 쓴다. 4) 줄임표(……)는 한 칸에 세 점 찍는다. 5) 문장 부호, 숫자, 알파벳 등이 잇달라 올 때 각각 다른 칸에 쓴다. 6) 줄 끝에서의 부호 처리 (1) 문장 부호를 찍을 칸이 없을 때 끼움표(∧) 속에 처리한다. (2) 따옴표(""): 묶음표([])처럼 두 부호가 한 짝을 이룰 때는 줄 끝부터 시작되는 것을 피하여 끝 칸을 비우고 다음 줄 첫 칸부터 부호를 처리해도 된다. ④ 원고의 교정 @ 교정부호 원고를 쓸 때나 다 쓰고 난 뒤에 잘못된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 원고 교정을 한다. 원고 교 정에서는 글을 추가, 삭제, 정정은 물론, 문단의 설정 등을 자유롭게 진행,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약속된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진행하지 않으면, 필자의 뜻대로 정확하게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그 방식과 사용 부호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원고 정정에는 빨간 잉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편집자의 지정과 구분을 하기 위함이다. (2) 틀린 부분에는 '∨' 표를 하여 지움을 나타내고 그 위쪽 줄 사이에 고칠 내용을 적는다. 반드시 위쪽에 일률적으로 써 넣어야 한다. 그래야 혼선을 피할 수 있다. (3) 틀린 곳이나 불필요한 부분을 지우기만 하려면 그곳에 한 줄(또는 두 줄)을 긋는다. 만일 지운 것을 되살리고 싶으면 그은 줄 두어 군데에 'X'표시를 하거나 '生'이라 표시한다. (4) 삽입의 경우, 간단한 분량은 '-'로 가능하지만 분량이 많으면, 별면의 원고 용지를사용한다. 이때는 삽입한 원고 용지에 다른 원고와 분간할 수 있는 표시를 하고, 삽입할 위치에 이와 동일한 표시를 하여 구분한다. 삽입할 원고가 여러 장이면, 삽입할 위치에 '몇 장 삽입'이라고 명시하면 더욱 좋다. (5) 원고 교정 시 사용되는 몇 가지 부호는 다음과 같다. @ 교정의 본보기                                                                  
1482    노래하듯이 詩 랑송하기 댓글:  조회:4295  추천:0  2016-05-29
(1) 좋아하는 시 --> 시 낭송하기   (1) 내용과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읽습니다.   (2) 분위기와 느낌을 살려 알맞은 목소리로 읽습니다.   (3) 정확한 발음으로 리듬을 살려 노래하듯이 읽습니다.   (4) 반복되는 말이나 흉내내는 말을 실감나게 읽습니다.   (5) 행과 행 사이는 띄어 읽고, 연과 연 사이는 쉬어 읽습니다. 해야 나오너라 해야 해야 어서 나오너라. 참깨 들깨 볶아 줄게 복주깨로 물 떠 먹고 북을 치며 나와서 째앵 쨍.   해야 해야 어서 나오너라. 먹장구름 헤쳐 내고 제금 장구 울리면서 해죽 웃고 나와서 째앵 쨍.   해야 해야 어서 나오너라. 장맛비를 몰아 내고 먹구름도 쫓아 내고 화사하게 나와서 째앵 쨍. 노래하듯이 시 낭송하기 1. '해야 나오너라'의 특징   (1) 해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나타낸 시입니다.   (2) 이 시를 읽으면 냇물에서 놀다가 추위를 느껴 오들오들 떨며 해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    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이 시를 읽을 때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노래하듯이 낭송해야 합니다. 2. '해야 나오너라' 낭송   (1)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낭송합니다.   (2) 시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낭송합니다.     냇물에서 놀다가 추워 오들오들 떨며 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습   (3) 시에 나오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낭송합니다.     빨리 해가 나와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   (4)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노래하듯이 낭송합니다.     손뼉을 치며 운율을 살려 시를 읽습니다. 3. 시를 읽고 느낌 표현하기   (1) 재미있는 생각이 나타난 부분을 찾아봅니다.     참깨 들깨 볶아 줄게 복주깨로 물 떠 먹고, 해죽 웃고 나와서 째앵 쨍, 장맛비를 몰아      내고   (2) 시에 담겨진 마음을 알아봅니다.     아이들이 해가 나오기를 바라는 까닭은 계속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3) 아이들이 노래하는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빨리 해가 나와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   (4)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 여름 방학 때 물놀이를 하다가 소나기를 만났던 것이      생각납니다. 전학 두고 온 친구들은 신발장에 신발을 집어 넣으며 내 하얀 운동화를 기억할까. 누군가는 내 빈 자리에 자기 신발을 살짝 얹어 놓으며 나를 기억해 줄까.   새 교실 새 신발장에는 내 자리가 없다. 제일 끄트머리 아무도 봐 주지 않는 자리에 슬쩍 올려놓은 내 신발이 잘못 찾아온 손님 같다. 느낌을 살리며 시 낭송하기  1. 관련 경험을 떠올리며 '전학' 읽기   (1) '전학'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전학을 가기 전이나 갔을 때의 경험   (2) 시에 담긴 마음을 생각하며 소리내어 읽습니다.     시 속의 '나'의 마음은 새로운 학교이기 때문에 낯설고, 아는 친구가  없어서 쓸쓸하고,     두고 온 친구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3) 시에 담긴 마음을 살려 쓸쓸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시를 낭송합니다. 2. 시에 대한 느낌 나누기   (1) 시를 읽은 느낌을 말합니다.     내가 전학을 간다면 지금 친구들이 한 명이라도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학을 오면 쓸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시에 나오는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해 봅니다.     친구들이 너를 꼭 기억할 거야. 너무 섭섭해하지 마.            새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어 봐.           이제 새 학교도 곧 정이 들 거야. 내가 좋아하는 시를 옮겨 쓰고, 느낌을 살려 친구들과 함께 낭송하기  1. 좋아하는 시 고르기   (1) 자기가 좋아하는 시 중에서 친구들과 느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시를 고릅니다.   (2) 자기의 경험을 떠올려 보며 시 속의 인물의 마음이 되어 느낌을 살려 시를 낭송합니다.     새싹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땅 속에서 나오는 모습을 떠올리며 희망찬 느낌으로     낭송합니다.   (3) 내가 좋아하는 시   영치기 영차   깜장 흙 속의 푸른 새싹들이 흙덩이를 떠밀고 나오면서 히-영치기 영차! 히-영치기 영차!   돌팍 밑에 예쁜 새싹들이 돌팍을 떠밀고 나오면서 히-영치기 영차! 히-영치기 영차!   흙덩이도 무섭지 않고 돌덩이도 무섭지 않은 아기싹들이 히-영치기 영차! 히-영치기 영차! 2. 그 시를 좋아하는 까닭과 느낌 말하기   (1) 이 시를 좋아하는 까닭은 희망차기 때문입니다.   (2) 이 시를 읽으면 새싹들이 흙덩이를 떠밀고 나오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3) 시에서 나오는 사투리가 재미있습니다.   (4) 새싹들이 힘을 모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5) 새싹들에게 힘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1) 좋아하는 시 --> 새롭게 표현하기   (1) 사물의 움직임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2)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사람이 하는 일과 닮은 점을 찾아 냅니다.   (3) 사물의 움직임을 사람이 하는 것처럼 나타냅니다.   (4) 사물을 사람처럼 나타내면 새로운 느낌이 납니다.   (5) 사물을 사람처럼 나타내면 사물이 정답게 느껴집니다. '빨래집게'를 읽고, 사람이 하는 일과 닮은 점이 잘 드러나게 새롭게 표현한 부분 찾아보기    (1) 빨래집게가 빨래를 집은 것을 입에 물었다고 표현했습니다.   (2) 바람이 불어 바지가 날리는 것을 개구쟁이 바람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고 표현    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과 닮은 점이 잘 드러나게 글 쓰기 1.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는 것처럼 나타낼 수 있는 것 떠올려 보기   (1) 사람이 하는 일과 닮은 점이 있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냇물이 흐르는 것   (2) 사람이 한 일과 어떤 점이 닮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냇물이 사람처럼 소리를 냅니다.   (3) 사람이 하는 일과 닮은 점을 어떻게 나타내면 좋을지 생각해 봅니다.     냇물이 친구를 부른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2. 떠올린 내용을 바탕으로 써 보기   (1) 쓰고 싶은 것     냇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 냇물이 흐르며 만드는 물살   (2)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     소리를 내며 흐르는 냇물이 심심하여 친구를 부르는 것 같다.            냇물이 흐르며 만드는 물살이 어깨동무를 하는 것 같다.   (3) 사람이 하는 것처럼 나타내기     졸졸졸 냇물이 친구를 부른다.            냇물이 어깨동무를 한다. 3.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 써 보기        졸졸졸 냇물이 심심한가 봐요.     어깨동무하면서 친구를 불러요.        
1481    동시 지도안 댓글:  조회:4907  추천:0  2016-05-29
동시 [ 童詩 ]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시. 동시의 특색은 ‘어린이답다’는 데 있으므로 동시는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단순한 사상 및 소박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 동시의 모태는 동요이나 이 동요의 정형율을 깨뜨린 내재율(內在律)과 산문률을 지닌 시가 동시이다. 한국 동요는 1925년 무렵까지 창가조의 것뿐이었는데, 윤석중(尹石重)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1933)를 효시로 동시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동시의 형태도 서정시와 서사시 ·서경시로, 그리고 자유시와 산문시로 나눌 수 있다. 또 이들을 내용면에서는 동시와 동화시(童話詩)로, 형식면에서는 동시와 산문시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석현(李錫鉉)의 《원숭이의 꿈》(1967)은 동화시이고, 유경환(劉庚煥)의 《아이와 우체통》(1964), 박경용(朴敬用)의 《애드발룬이 띄우는 하늘》(1966) 등은 산문동시이다. 김영일(金英一)의 《자유시론》(1937) 이후 본격적인 동시가 출현하여 박영종(朴泳鍾:朴木月) ·이원수(李元壽) ·강소천(姜小泉) 등이 자유로운 형식의 동시를 썼고, 일제강점기 말에서 8 ·15광복 때까지 박화목(朴和穆) ·어효선(魚孝善) ·이응창(李應昌) 등이 활약했다. 1950년대에는 최계락(崔啓洛) ·이종택(李鍾澤) ·박홍근(朴洪根) 등이, 1950년대 말에 등단한 박경용 ·조유로(曺有路) ·신현득(申鉉得) ·김종상(金鍾祥) 등이 본격 동시운동을 일으켜 1960년대 동시문학의 꽃을 피웠다. 이때부터 1980년대까지 동시문학에 공헌한 작가는 석용원(石庸源) ·윤부현(尹富鉉) ·유경환 ·이상현(李相鉉) ·김사림(金思林) ·문삼석(文三石) ·권오순(權五順) ·이오덕(李五德) ·엄기원(嚴基元) ·김녹촌(金鹿村) ·하청호(河淸鎬) ·전원범(全元範) 등이 있다.   ////////////////////////////////////////// 1. 동시는 어떤 글인가?       마음 속이 일어난 깊은 느낌을 짧은 말로 노래한 글을 詩라고 한다. 그 중에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어린이를 위해 지은 시가 동시이다. 마음 속의 느낌이란 기쁜 일, 슬픈 일, 재미있는 일 신기한 일 등을 보거나 겪었을 때의 느낌을 말한다.   2. 동시의 종류   1) 형식 * 정형시 : 일정한 글자의 수나 형식을 갖춘 시(동요, 민요, 시조) * 자유시 :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시이거나 행과 연의 구별이 있는 시 * 산문시 : 행이나 연의 구분이 없이 산문(줄글)처럼 쓴 詩   2) 내용 * 서정시 : 지은이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낸 시 * 서경시 : 자연의 경치를 읊는 시 * 서사시 :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설 등을 객관적으로 나타낸 시 * 생활동시 : 어린이들의 실제 생활이 사실적인 표현에 의해 쓰여진 시 * 관념동시 : 어떤 사물이나 그 사물을 통해 인식된 결과를 직접적인 표현 보다는 마음 속에서 다시 여과되어 걸러진 이미지를 형상화한 추상성이 강한 시   3. 동시는 무엇을 쓸까?   1) 본 것을 쓴다. 2) 들은 것을 쓴다. 3) 상상한 것을 쓴다. 4) 직접 경험한 것을 쓴다. 5)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을 쓴다.   4. 동시는 어떻게 써야할까?   1)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져야 한다. 2) 느낌이나 생각을 정리하여 연과 행을 정한다. 3) 자기가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알맞은 쉬운 말을 찾아 쓴다. 4) 운율(리듬)을 살려서 쓴다. 5) 사람에 빗대어 쓴다. 6) 소리나 모양 흉내말을 쓴다. 7) 은유법과 비유법을 쓴다. 8) 솔직하고 분명하게 쓴다. 9) 간결하고 짧지만 그 속에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 담기도록 쓴다.   산은  초록 피라밋       같다.         거인의 고깔모자       큰 무덤       트라이앵글     아이는 하나님이다. 사랑은 용광로이다. 여름은 짠맛 나는 풍선껌이다. 추억은 말린 장미꽃이다.   5. 동시 짓기의 여러 가지 방법   1) 혼자 속으로 갈들을 겪은 일을 표현하기 2) 의인화해서 쓰기 :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까지도 사람처럼 똑같이 말을 하고 생각한다고 믿고 우리 주변에 있는 동, 식물, 무생물을 사람에 빗대 어 쓰는 것 3) 리듬을 살려 쓰기 4) 도치법으로 쓰기 : 나열해 놓은 문장들을 그대로 쓰지 말고 앞뒤문장을 바꿔 놓으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시에서는 도치법을 활용하면 시가 훨씬 돋보인다. 5) 의성어, 의태어로 쓰기 : 소리나 모습 모양을 흉내낸 말이 동시에 들어가면 운율이 살아나 명랑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며 읽는 사람들의 이해가 빠르다. 6) 생략법으로 쓰기 : 문장을 쓰다가 뒷말을 안 씀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것 읽는 사람 각자가 앞뒤의 내용을 상상하게 한다. 7) 재미있는 생각 쓰기 : 가끔 아주 기발하거나 엉뚱한 생각이 시의 글감이 될 때가 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읽는 사람들이 '그렇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8) 직유법으로 쓰기 : 어떤 사물이나 다른 사물에 빗대어 쓰는 것이다. ~와 같이. ~처럼, ~인양, ~듯이, ~모양 같은 말을 쓰는데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토란잎과 연잎   토란잎은 곤충들의 우산 같지요. 후두둑 비가 오면 여치, 메뚜기, 호랑나비 우산 밑에 숨어요.   연잎은 개구리들의 보트 같아요. 살랑살랑 연못물이 춤을 춰도 개구리는 연잎 위에서 보트놀이만 해요.           @초등학교 동시 지도안 ----------------------- 여러분이 어릴때 노랫말을 제멋대로 지어서 불러본적 있나요? 혹은 자신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적이 있는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짧게 노래하듯이 표현하여글쓰기를 시라고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아동문학가나 어린이들이 지은시를 동시라고 하지요. 여러분들이 동시를 쓸때는 꾸미지말고 보고,듣고 경험한대로 써야만 귀엽고 재미있어요. 너무 허풍을떨면 알맹이가 없어지고 어른들 흉내를내어 너무 꾸미면 화장을 한것 같이 천해보이거든요. 동시에는 어린이다운 귀여움과 앳된맛이 담겨 있어야 한담니다. ... ...먼저 무엇에 대한 시를 쓸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나 물건에서 글감을 찾으세요. 그 글감을 일기나 생활글처럼 길게 자세히 쓰기보다는 군말이 없이 꼭 할 말만으로 줄여서 짧게 표현하세요. 다음의 두 가지 보기글을 비교해 보면 동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요요라는 장난감이 유행이다. 가느다란 줄을 둥근 요요의 몸체에 감아서 던지면, 실이 감겼다 풀리는 대로 요요도 빙글빙글 돌면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우리는 요요 묘기에 깔깔대며 웃으며 신나 한다 빙그르르 빙그르르 가느다란 줄을 타는 요요. 돌고돌아도 어지럽지 않아요 요요. 요요 묘기에 나도 웃고 너도 웃고 같은 요요에 대해서 쓴 글이라도 보기글 1은 줄글로 풀어쓴 것이고, 보기글 2는 시로 짧게 표현한 것이에요. 느낌이 다르지요? 이처럼 동시는 짧게 줄여서 군더더기 없이 쓰는 것이 좋아요 ... ...시는 정직하게 마음을 그대로 내보여야 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털어 놓을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시가 된답니다. 다음 보기의 두 시를 읽고 어떤 시가 더 마음에 닿는지 느껴 보세요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 나는 나비는 어디로 날아갈까 생각하지요. 숲속에 가 보니 나뭇가지에 나비가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발자국 소리가 나니까 나비가 도망갑니다. .. ..두 시를 읽어 보았나요? 어떤 시가 더 느낌이 오나요? 첫 번째 시는 자신의 속마음을 정직하게 느끼는 대로 썼다는 느낌이 들지요. 두 번째 시도 생각한 대로는 썼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 같지 않나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덧붙여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을 쓰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 @7학년 동시 쓰는법지도안 ------------------------ 동시란? 마음속의 느낌을 노래 부르듯이 쓴글입니다. 길이가 짧으며 읽을때 가락이 생김니다. 동시쓰는 요령 ------------ 1.짧고 생생한 내용을 잡아 씁니다 예)단풍잎을 쫙 펼친 아기 손가락 2.소리나 모양을 흉내내는 말을 씀니다. 3.사물을 사람인것 처럼 씀니다 4,같은 말을 반복하면 가락이 살아 남니다. 예)아빠 배/하마 배/아빠 배/ 풍선 배 5.알기 쉽게 씁니다. *체크하고 넘어 갈것 -------------------- 1.이글의 글감은 무엇 입니까? 2.동시는 몇연,몇행인가? 3.동시에서 사람이 아니데.-사람인것 처럼 표현된것은 어느것 입니까? 4.흉내내는 말은 무엇 입니까? 예)재잘 재잘.깔깔.껄껄, 5.특징잡아 다른것에 빗대어 하는것 연습하기 예)*우리 선생님/ 무섭다 *일학년동생/귀엽다 *군인아저씨/씩씩하다 *시계/부지런하다- 개미처람 부지런한 시계 *연필깍기/매일매일 배가 고프다 - 돼지 같은 연필깍기 *우리 엄마/노래를 잘부른다 - 꾀꼬리 같은우리 엄마. @다음 줄글의 내용을 동시로 만들어 보자 *눈은 솜이불 같다.흰눈을 나무 들이 덮어 쓰고 쿨쿨자고. --------------------------------------------------- 항아리와 이불들도 덮어 쓰고 단잠을 잔다. -------------------------------------- 예문)송이 송이 내린 눈은 나무들의 솜이불 항아리도 덮어 쿨쿨쿨... 집들도 덮어 쓰고 쿨쿨쿨.. *참고:글감에 대하여 -------------------- *모양 -한손에 쏙 들어 갈것 처럼 귀엽다 *색깔 -막 피어난 개나리꽃 같은 노란 병아리 *느낌 -귀엽고 예쁘다. 동시는 대상의 특징을 담아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먼저 사물의 특징을 정리하고 짧은글로 표현 합니다. [주제별 문장 만들기 연습] ---------------------- 오늘의 문제 ------------ 1.읽기를 쓴 다음....동시로 바꾸어 써 보셔요 2.그림을 보고 한 문장으로 써보셔요 3그림을 보고 여러 문장으로 설명을 해보셔요 4.[상민이는 학원에 가기 싫었다. 주머니를 만저 보니 동그란 동전이 잡혔다 오락실을 갈까? 바람이 살랑 살랑 부드럽게 속삭였다 오늘만 딱 한번만 하고 안하면 되지..... 게임을 하기 시작하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밤 열두시였다.큰일 났다.....화내는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위의 문장을 읽고 그림을 그려보셔요. 5*[가족들은 모두 피서를 갔다 원두막에 빙 둘러 앉아 수박을 먹었다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위의 문장을 읽고 그림을 그려 보셔요. @소리나 모양을 흉내내는 말을 넣어서 문장 완성하기 1.아기가 (아장 아장 )걷고.... 2.개나리 새순이 (파릇파릇 ) 돋아 남니다. 3.해가 (둥실) 떴읍니다. 4.아빠가 (뚜벅뚜벅 )걸어 옵니다. 5.가랑비가 (보슬보슬)내림니다. 6.흰구름이( 두둥실) 떠 가고 있읍니다. 7. (뭉게뭉게) 피어 오름니다. 8.형아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잔다 @흉내내는 말을넣어 문장 만들기 ------------------------------- *나풀나풀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갑니다. *쏴아 -소나기가 쏴-아 쏟아 집니다. *뻘뻘 -땀을 뻘뻘 흘리며 거북이가 기어 옵니다 @다음글을 대화글이 들어간 문장으로 바꾸기 ------------------------------------------- !.나는 어머니께 머리가 아프다고 엄살을부렸다 -------"엄마!, 머리가 아파요" 나는 엄살을 부렸다 2*나는 몸도 아픈데 숙제를 꼭해야 되느냐고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몸도 아픈데 꼭해야 되요?"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오늘 연습할 단어들 ------------------- .@착한 엄마.스르르잠들다.달콤한향기.자박바박 발자국 소리. 아리따운 처녀.생글생글웃으며......여기에 있는말들로 각각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보셔요.
1480    동시 지도 요령 댓글:  조회:4138  추천:0  2016-05-29
1. 동시는 어떤 글인가?   마음 속이 일어난 깊은 느낌을 짧은 말로 노래한 글을 詩라고 한다. 그 중에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어린이를 위해 지은 시가 동시이다. 마음 속의 느낌이란 기쁜 일, 슬픈 일, 재미있는 일 신기한 일 등을 보거나 겪었을 때의 느낌을 말한다.   2. 동시의 종류   1) 형식 * 정형시 : 일정한 글자의 수나 형식을 갖춘 시(동요, 민요, 시조) * 자유시 :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시이거나 행과 연의 구별이 있는 시 * 산문시 : 행이나 연의 구분이 없이 산문(줄글)처럼 쓴 詩   2) 내용 * 서정시 : 지은이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낸 시 * 서경시 : 자연의 경치를 읊는 시 * 서사시 :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설 등을 객관적으로 나타낸 시 * 생활동시 : 어린이들의 실제 생활이 사실적인 표현에 의해 쓰여진 시 * 관념동시 : 어떤 사물이나 그 사물을 통해 인식된 결과를 직접적인 표현 보다는 마음 속에서 다시 여과되어 걸러진 이미지를 형상화한 추상성이 강한 시   3. 동시는 무엇을 쓸까?   1) 본 것을 쓴다. 2) 들은 것을 쓴다. 3) 상상한 것을 쓴다. 4) 직접 경험한 것을 쓴다. 5)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을 쓴다.   4. 동시는 어떻게 써야할까?   1)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져야 한다. 2) 느낌이나 생각을 정리하여 연과 행을 정한다. 3) 자기가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알맞은 쉬운 말을 찾아 쓴다. 4) 운율(리듬)을 살려서 쓴다. 5) 사람에 빗대어 쓴다. 6) 소리나 모양 흉내말을 쓴다. 7) 은유법과 비유법을 쓴다. 8) 솔직하고 분명하게 쓴다. 9) 간결하고 짧지만 그 속에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 담기도록 쓴다.   산은  초록 피라밋       같다.         거인의 고깔모자       큰 무덤       트라이앵글     아이는 하나님이다. 사랑은 용광로이다. 여름은 짠맛 나는 풍선껌이다. 추억은 말린 장미꽃이다.   5. 동시 짓기의 여러 가지 방법   1) 혼자 속으로 갈들을 겪은 일을 표현하기 2) 의인화해서 쓰기 :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까지도 사람처럼 똑같이 말을 하고 생각한다고 믿고 우리 주변에 있는 동, 식물, 무생물을 사람에 빗대 어 쓰는 것 3) 리듬을 살려 쓰기 4) 도치법으로 쓰기 : 나열해 놓은 문장들을 그대로 쓰지 말고 앞뒤문장을 바꿔 놓으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시에서는 도치법을 활용하면 시가 훨씬 돋보인다. 5) 의성어, 의태어로 쓰기 : 소리나 모습 모양을 흉내낸 말이 동시에 들어가면 운율이 살아나 명랑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며 읽는 사람들의 이해가 빠르다. 6) 생략법으로 쓰기 : 문장을 쓰다가 뒷말을 안 씀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것 읽는 사람 각자가 앞뒤의 내용을 상상하게 한다. 7) 재미있는 생각 쓰기 : 가끔 아주 기발하거나 엉뚱한 생각이 시의 글감이 될 때가 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읽는 사람들이 '그렇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8) 직유법으로 쓰기 : 어떤 사물이나 다른 사물에 빗대어 쓰는 것이다. ~와 같이. ~처럼, ~인양, ~듯이, ~모양 같은 말을 쓰는데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토란잎과 연잎   토란잎은 곤충들의 우산 같지요. 후두둑 비가 오면 여치, 메뚜기, 호랑나비 우산 밑에 숨어요.   연잎은 개구리들의 보트 같아요. 살랑살랑 연못물이 춤을 춰도 개구리는 연잎 위에서 보트놀이만 해요.           @초등학교 동시 지도안 ----------------------- 여러분이 어릴때 노랫말을 제멋대로 지어서 불러본적 있나요? 혹은 자신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적이 있는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짧게 노래하듯이 표현하여글쓰기를 시라고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아동문학가나 어린이들이 지은시를 동시라고 하지요. 여러분들이 동시를 쓸때는 꾸미지말고 보고,듣고 경험한대로 써야만 귀엽고 재미있어요. 너무 허풍을떨면 알맹이가 없어지고 어른들 흉내를내어 너무 꾸미면 화장을 한것 같이 천해보이거든요. 동시에는 어린이다운 귀여움과 앳된맛이 담겨 있어야 한담니다. ... ...먼저 무엇에 대한 시를 쓸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나 물건에서 글감을 찾으세요. 그 글감을 일기나 생활글처럼 길게 자세히 쓰기보다는 군말이 없이 꼭 할 말만으로 줄여서 짧게 표현하세요. 다음의 두 가지 보기글을 비교해 보면 동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요요라는 장난감이 유행이다. 가느다란 줄을 둥근 요요의 몸체에 감아서 던지면, 실이 감겼다 풀리는 대로 요요도 빙글빙글 돌면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우리는 요요 묘기에 깔깔대며 웃으며 신나 한다 빙그르르 빙그르르 가느다란 줄을 타는 요요. 돌고돌아도 어지럽지 않아요 요요. 요요 묘기에 나도 웃고 너도 웃고 같은 요요에 대해서 쓴 글이라도 보기글 1은 줄글로 풀어쓴 것이고, 보기글 2는 시로 짧게 표현한 것이에요. 느낌이 다르지요? 이처럼 동시는 짧게 줄여서 군더더기 없이 쓰는 것이 좋아요 ... ...시는 정직하게 마음을 그대로 내보여야 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털어 놓을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시가 된답니다. 다음 보기의 두 시를 읽고 어떤 시가 더 마음에 닿는지 느껴 보세요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 나는 나비는 어디로 날아갈까 생각하지요. 숲속에 가 보니 나뭇가지에 나비가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발자국 소리가 나니까 나비가 도망갑니다. .. ..두 시를 읽어 보았나요? 어떤 시가 더 느낌이 오나요? 첫 번째 시는 자신의 속마음을 정직하게 느끼는 대로 썼다는 느낌이 들지요. 두 번째 시도 생각한 대로는 썼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 같지 않나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덧붙여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을 쓰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 @7학년 동시 쓰는법지도안 ------------------------ 동시란? 마음속의 느낌을 노래 부르듯이 쓴글입니다. 길이가 짧으며 읽을때 가락이 생김니다. 동시쓰는 요령 ------------ 1.짧고 생생한 내용을 잡아 씁니다 예)단풍잎을 쫙 펼친 아기 손가락 2.소리나 모양을 흉내내는 말을 씀니다. 3.사물을 사람인것 처럼 씀니다 4,같은 말을 반복하면 가락이 살아 남니다. 예)아빠 배/하마 배/아빠 배/ 풍선 배 5.알기 쉽게 씁니다. *체크하고 넘어 갈것 -------------------- 1.이글의 글감은 무엇 입니까? 2.동시는 몇연,몇행인가? 3.동시에서 사람이 아니데.-사람인것 처럼 표현된것은 어느것 입니까? 4.흉내내는 말은 무엇 입니까? 예)재잘 재잘.깔깔.껄껄, 5.특징잡아 다른것에 빗대어 하는것 연습하기 예)*우리 선생님/ 무섭다 *일학년동생/귀엽다 *군인아저씨/씩씩하다 *시계/부지런하다- 개미처람 부지런한 시계 *연필깍기/매일매일 배가 고프다 - 돼지 같은 연필깍기 *우리 엄마/노래를 잘부른다 - 꾀꼬리 같은우리 엄마. @다음 줄글의 내용을 동시로 만들어 보자 *눈은 솜이불 같다.흰눈을 나무 들이 덮어 쓰고 쿨쿨자고. --------------------------------------------------- 항아리와 이불들도 덮어 쓰고 단잠을 잔다. -------------------------------------- 예문)송이 송이 내린 눈은 나무들의 솜이불 항아리도 덮어 쿨쿨쿨... 집들도 덮어 쓰고 쿨쿨쿨.. *참고:글감에 대하여 -------------------- *모양 -한손에 쏙 들어 갈것 처럼 귀엽다 *색깔 -막 피어난 개나리꽃 같은 노란 병아리 *느낌 -귀엽고 예쁘다. 동시는 대상의 특징을 담아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먼저 사물의 특징을 정리하고 짧은글로 표현 합니다. [주제별 문장 만들기 연습] ---------------------- 오늘의 문제 ------------ 1.읽기를 쓴 다음....동시로 바꾸어 써 보셔요 2.그림을 보고 한 문장으로 써보셔요 3그림을 보고 여러 문장으로 설명을 해보셔요 4.[상민이는 학원에 가기 싫었다. 주머니를 만저 보니 동그란 동전이 잡혔다 오락실을 갈까? 바람이 살랑 살랑 부드럽게 속삭였다 오늘만 딱 한번만 하고 안하면 되지..... 게임을 하기 시작하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밤 열두시였다.큰일 났다.....화내는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위의 문장을 읽고 그림을 그려보셔요. 5*[가족들은 모두 피서를 갔다 원두막에 빙 둘러 앉아 수박을 먹었다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위의 문장을 읽고 그림을 그려 보셔요. @소리나 모양을 흉내내는 말을 넣어서 문장 완성하기 1.아기가 (아장 아장 )걷고.... 2.개나리 새순이 (파릇파릇 ) 돋아 남니다. 3.해가 (둥실) 떴읍니다. 4.아빠가 (뚜벅뚜벅 )걸어 옵니다. 5.가랑비가 (보슬보슬)내림니다. 6.흰구름이( 두둥실) 떠 가고 있읍니다. 7. (뭉게뭉게) 피어 오름니다. 8.형아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잔다 @흉내내는 말을넣어 문장 만들기 ------------------------------- *나풀나풀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갑니다. *쏴아 -소나기가 쏴-아 쏟아 집니다. *뻘뻘 -땀을 뻘뻘 흘리며 거북이가 기어 옵니다 @다음글을 대화글이 들어간 문장으로 바꾸기 ------------------------------------------- !.나는 어머니께 머리가 아프다고 엄살을부렸다 -------"엄마!, 머리가 아파요" 나는 엄살을 부렸다 2*나는 몸도 아픈데 숙제를 꼭해야 되느냐고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몸도 아픈데 꼭해야 되요?"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오늘 연습할 단어들 ------------------- .@착한 엄마.스르르잠들다.달콤한향기.자박바박 발자국 소리. 아리따운 처녀.생글생글웃으며......여기에 있는말들로 각각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보셔요.
1479    동시 지도하는 방법 2 댓글:  조회:4175  추천:0  2016-05-29
1. 부분적 접근 방법 가. 시의 형식적 접근을 알아본다. (1) 연과 행의 배열을 살핀다. (2) 운율이 어떠한가를 살핀다. 나. 시의 함축적인 의미를 알아본다. 다. 때, 계절, 장소 등을 알 수 있는 구절을 살펴본다. 라. 작품의 소재를 찾는다. 마. 비유적인 표현을 찾아낸다. 바. 사실적인 표현과 상징적인 표현을 구별한다. 사. 비유, 반복, 상징적인 표현 내용의 의미와 효과를 알아본다. 아. 생략되어 숨겨져 있는 의미와 효과를 알아본다.   2. 전체적 접근 방법 가. 동시를 즐겨 읽게 한다. (1) 동시를 듣는다. (가) 동시와 관련된 생활 경험을 상기하며 듣는다. (나) 행과 관련된 시상을 상상하며 들어본다. (다) 아름다운 내용, 재미있는 표현을 밑그림 그려보며 듣는다. (라) 동시를 운율에 맞추어 읽는다 - 낱말 단위, 행 단위, 소문장 단위 등 나. 동시를 암송하게 한다. (1) 재미있는 부분을 암송하게 한다 (가) 어찌하여 재미있다고 느껴지는지 이유를 생각한 후 암송한다. (2) 재미있는 부분을 써보게 한다. (가) 재미있는 부분을 그래도 옮겨 써 보기 (나) 재미있는 부분을 줄 글로 풀이하여 써 보기 다. 동시를 감상한다. (1) 자기의 경험을 상기하며 감상한다. (2) 재미있는 부분의 장면을 상상하여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라. 동시 전체의 내용을 뜻을 살펴 본다. (1) 삽화를 보고 이야기한다. (2)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이야기한다.
1478    동시 지도하는 방법 댓글:  조회:4436  추천:0  2016-05-29
동시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가 尹 日 光 ·동아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아동문학평론》《시조문학》《월간문학》으로 등단 ·대한민국문학상 수상(86년) ·저서《구름속에 비치는 하늘》등 7권 ·한국문인협회 회원 ·부산문인협회 이사 ·동아대학교 출강 ·거제신문 논설위원 Ⅰ. 들어가기 - 그 몇가지 문제점- 시는 생활문과 함께 글쓰기의 핵심교재로 시의 기법상 특징으로는 첫째, 외형율이나 내재율의 리듬을 가진다는 점 둘째, 시를 예술답게 하는 상상력이 바탕이 된다는 점, 셋째,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동문학이라는 범주속에는 운문을「동시」「동시조」라 하고, 산문을「동화」「아동소설」로 구별하여 부르고 있으나 이를 구분하여 부르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몇 없다. 또한 동시의 작가에 대하여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동시의 주독자가 아동이라고 해서 아동이 쓴 시를 동시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동문학이 아동을 위한 문학이지 아동의 문학은 될 수 없다. 동심을 가진 시인이 아동을 위해 쓴 시가 동시이며, 아동이 쓴 시는 단지「아동시」일 뿐이다. 우리 교과서에부터 이 용어개념이 정확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학교교육에서의 문제점은 글쓰기 교육을 문학창작교육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소문사(小文士)를 양성하기 위한 문학지도가 시로부터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글은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사람만이 쓰는 것이 아니며, 특히 아동시는 자신이 체험한 사실을 진실되게 표현하는데 불과하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체험한 것을 정직하게 쓴다는 것은 어린이들의 글짓기 지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과제가 된다.』고 이오덕님은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을 의식하고 쓰지 않는다. 모든 사물과 언어가 통하고 정이 통하는 인간 본유의 천진성을 바탕으로 대화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아무리 졸렬하고, 구조가 맞지 않아도 어른이 손대어 첨삭하거나 덧붙이고 정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어린이가 쓴 글 그대로가 아니면 이미 그 작품은 아이의 것이 아니다. 어른이 손대어 표면적으로 그럴듯하게 다듬으면서 아동시를 죽이기 시작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동의 자유로운 상상을 외부의 간섭으로 조작하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도 아이들 생각에 맞추지 않고 어른의 생각속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는지 모른겠다.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혼의 소리를 듣게 한다. 진실만이 미의 본질이다. 학교 글짓기 교육으로 길러진 상상과 창작력이 후에 과학, 예술, 도덕,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Ⅱ. 좋은 시를 위하여 1. 문학은 삶의 이야기다.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a)에서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거쳐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과제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개념은 유보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고 문학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문학의 존재이유가 된다. 세상의 질서란 하나의 결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새롭게 전진하는 과정이며 진리란 결과의 끝이 아니라 과정속에서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다닐 때는 문학소년이나 소녀가 되었다가도 성인이 되면 문학에서 멀어지고 만다. 문학이 어려워지는 것은 문학을 가르친다는 빌미로 어렵고 난삽한 이론을 가르치는 일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반드시「이것이다」가 없다. 직접 문학을 접해보고 거기서 얻은 자기 감동과 정서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쾌락(katharsis)를 얻을 뿐이다. 문학의 삶의 이야기기 때문에 글감의 소재를 생활에서 발견하고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동시나 아동시에는 관념시(platonic poetry)보다 사물시(physical poetry)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사물시는 사물의 특징을 잘 파악하여 사물과 접촉을 통해 오관으로 묘사하거나, 자신의 경험으로 파악한 사물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 반면, 관념시는 윤리나 도덕 혹은 과학적 추상세계로 관념을 전제로 한다. 아동시는 대부분 사물성을 많이 띄게 되고, 성인시는 관념성을 많이 띄게 된다. 2. 시는 무엇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아이들에게도 시를 쓰는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시를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연이나 자기의 생활에서 받은 감동을 노래하는 순수한 시적행위 외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들이 시를 쓴다는 것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면이요, 시를 씀으로 즐거움을 느낀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시를 쓰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키는 일보다 시를 즐겁게 쓰도록 이끌어 주는 일이 중요하다. 만일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고 하자. 축구는 체력향상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운동이라는 이유(혹은 본질)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것 때문에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즐겁기 때문에 축구를 할 뿐이다. 아무리 체력단련에 좋은 운동도 즐겁지 않으면 시켜도 하지 않는다. 시는 언어속에 감추어둔 미로며 숨은 그림찾기다. 아이나 서투른 시인일수록 시를 설명하려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시인의 능력은 encode하는 작업이며 독자는 이를 decoding 해야 한다. 아동시가 시적맛을 잃는 것은 언어를 나열하려는 버릇 때문이다. 간결하게 필요한 언어 외는 과감하게 버리는 훈련을 시켜 나가야 한다. 일상어를 사용하되 정확한 말을 고르고 장식적인 말을 억제해야 한다. 우리 엄마 내가 오후반일 때 나는 우리 엄마 생각이 나요. 우리 엄마는 하루종일 용산시장에서 일하시지요. 엄마가 차려 놓고 간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까 엄마 생각이 나서 눈믈이 나려고 해요. (서울 난곡초등 2학년 김재식) 자기의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잘 나타낸 시다. 그러나 이 시를 이렇게 고쳐보면 보다 시적 느낌을 주게 된다. 오후반일 때 엄마 생각이 더 나요. 하루종일 용산시장에서 일하시는 엄마 엄마가 차려 놓은 밥상 앞에서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3. 시를 낯설게 하라. 동일한 사물에 대하여 우리의 지각이 반복되어 습관화 되었을 때 이를 인습의 자동화 곧 낯익음이 된다. 따라서 실용적 언어에서 이탈하여 왜곡시키는 방법을 시에서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 하며, 이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게 된다. 와 은 의미상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느낌상 아주 큰 차이를 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모더니즘 시에서 유사성이나 논리성이 전연없는 이미지들을 연결시켜는 것도 일종의 낯설게 하기다. 동시나 아동시에 있어 낯설게 하기는 새로운 소재의 발견, 남들이 이미 사용한 이미지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시를 통해 창의성이 길러진다고 한다. 이는 사물을 보는 눈이 남과 같지 않다는 의미다. 「비 온 뒤 하늘에 무지개 떴어요.」하고 표현했다면 이 시는 자연시간에 누구나 배워서 아는 일이다. 보이는 현상은 동일하다해도 느낌은 모두가 다르 듯, 보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옮겨가야만 창의성이 길러진다. 다음의 시는 초등학생의 작품이다. 엄마를 생각하는 갸릇한 마음이 잘나타나 있는 시다. 우리 엄마 엄마가 사다 준 딸기 엄마도 잡수셔요. 엄마는 괜찮다 하셨어요. 나는 엄마도 먹고 싶을 텐데 나 혼자 어떻게 하고 생각했어요. 시의 형식적 유형보다 생활 속에서 무난히 이루어지고 잇는 사소한 정서적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을 이렇게 바꾸어 보면 산문시같은 효과를 주면서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선명해진다. 엄마가 사다 준 딸기 "엄마도 잡수셔요." "괜찮다 어서 먹어라." 나는 '엄마도 먹고 싶을 텐데 나 혼자 어떻게……' 생각했어요. Ⅲ. 시 지도의 단계 1. 이해단계 이해단계는 시를 대하는 순간부터 암송하는 단계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번 읽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소리를 내어 읽어야 한다. 언어는 소리와 의미를 지닌다. 언어의 음악성과 의미가 하나로 합쳐질 때 시가 된다.(E.슈타이거) 물론 시적음악성은 의미, 문맥, 어조와 결합하여 음악적 효과를 준다는 뜻이다. 시인은 이 음악적 효과를 창조하기 위하여 소리를 모형화하고, 이 소리의 모형화가 바로 리듬이다. 리듬은 말소리의 나타냄은 물론 휴지(休止)와 의미, 분행(分行), 분절(分節) 구두점의 종류, 구두점의 유무, 한글과 한자의 시각적 효과까지 관련을 맺는다. 시지도의 첫번째 단계로 시를 여러번 읽게 해야 하고, 여러번 읽는 동안 몸으로 리듬을 느끼게 된다. 리듬은 심장의 고동, 호흡, 신체적 운동과 같은 생명의 기능이며, 시인과 독자의 내적 움직임이며, 사상과 감정의 흐름을 실어다 준다. 1980년 이후 한국 현대시는 시의 리듬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초승달 초가지붕 용마름 예쁜 입술 덧니로 쏘옥 솟은 하얀 초승달 고운 얼굴 살짝 웃는 영아의 덧니마냥 별이보면 어쩌나 웃는 덧니를 아랫입술 두둑히 치켜 세우면 밉지 않게 조금씩 가려지는 하얀 초승달 (1982년 한국시학 문학상 수상작) 2. 감상단계 보통 시 수업을 보면 시에 대한 주제를 찾고 글감을 찾고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 데 감상단계에서 중요한 조건을 교재에 나오는 한 편의 시에 국한되지 말고 많은 시를 접하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교사용 교과서에 참고작품이 몇 편씩 나오는 데 그걸 함께 읽는 일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 된다. 꿈나라 3. 창작단계 지금 우리 교육에 있어 큰 문제는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현대시는 행과 연의 구별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데도 줄글과 시글의 차이를 행과 연의 구분으로 강조하려는 데 있다. 특히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생각」이 어린이 다워야 하고, 표현하는「언어」가 어린이 다워야 한다. 그런데도 교과서에 나오는 어른시를 흉내 내려는 모습이 딱하기도 하다. 어른시에서 배울 것은 진실을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했는가, 어떤 생각을 어떤 방법으로 나타내었는가, 같이 나무를 봐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것 뿐이지 기법이나 사상까지 거기에 맞추려는 흉내는 금물이다.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완벽한 시가 아니라 서툴러도 그들의 눈에 비친 미의 발견이다. 채송화 어젯밤엔 그렇게 토라져 있더니 말도 않고 그렇게 토라져 있더니 아침엔 웃는다. 활짝 웃는다. 어느 날 내 짝꿍처럼 Ⅳ. 나가기 어린이가 시를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이상의 이유도 목적도 없다. 아마 어린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달이 밝은 밤에 아이와 함께 길을 가면면 아이가 달을 가르키며『엄마, 달이 자꾸 나를 따라 와.』하고 말하게 된다. 아이들의 눈에는 과학적 현상이나 관념적 이상 따위는 안중에 없다. 청정(淸淨)무사(無邪) 천진(天眞) 바로 그것 뿐이다. 아이들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가 어느 유명한 시인의 한귀절 시보다 놀라울 때가 있다. 그런데도 시교육을 한답시고 그들의 입을 틀어 막고, 생각을 고착시키고 어른시의 틀에 집어 넣으려는 우를 범하고 만다. 우리가 어린이에게 시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시인이나 작가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 취미와 시정(詩情)을 높이고, 사랑과 용기와 상상의 폭을 넓혀 주는 생명적 성장에 있다. 이제 우리의 시교육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끝.
1477    엄마도 동시를 지도할수 있다... 댓글:  조회:3620  추천:0  2016-05-29
동시 지도,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반드시 공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동시입니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동시를 공부하는 것은 그만큼 유아시절 감정 세계를 보다 풍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동시가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지도하는 엄마가 동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과서에 어떤 동시가 실려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겠죠. 지도하는 엄마 또한 동시에 대해 긍정적이며 좋아해야 합니다. 만일 엄마가 동시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싫어한다면 아이를 지도하기가 쉽지 않겠죠? ^^   동시의 특징 동시는 어린이를 위해 쓴 시입니다. 따라서 동심이 담겨 있어야 하며, 소리 또는 운율에 따른 음악성이 있고 함축적인 글로 이루어져 있어야 해요.   동시 낭송법 동시는 리듬이 있기 때문에 낭송의 맛을 살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선 낭송에 적합한 작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① 행과 연의 끝이 명사로 끝나는 경우가 적은 시 ② 행과 연의 끝이 모음이나 ‘-다’ ‘-요’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시 ③ 길이가 짧고 일정한 운율을 갖춘 시   ① 이미지가 서경보다는 서정성이 있는 시 ② 시의 내용을 들으면 그 정황이나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시 ③ 시의 내용이 비약이 심하거나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들으면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 ④ 아이들의 감정이나 정서, 생활과 밀착된 시 ⑤ 생활 속에서 건전 소재로 쓴 시라면 - 되도록 재미가 있는 시   둘째, 낭송하는 사람이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주제가 듣는 이의 가슴에 충분히 가닿을 수 있도록 자기 작품처럼 충분히 소화해야 하겠지요^^   동시 지도 방법과 유의점 ① 동시를 지도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정서를 전달하기 위함 ② 좋은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 ▶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는 작품, 독창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 낭송하기 알맞고 외우기 좋은 작품, 생활과 경험이 일치하여 공감하는 작품, 진실과 진정성이 있는 작품   ①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동시 ② 장식적인 작품 ③ 추상적인 작품 ④ 기계적인 작품 ⑤ 회고적인 작품    
1476    동시랑송법 2 댓글:  조회:4158  추천:0  2016-05-29
  1. 낭송할 시(詩)에 대하여 - 시작(詩作)을 할 때 낭송을 염두에 두고, 모음으로 끝이 나도록 작성한다.   예를 들면, “~니다. ~이다.”로 끝이 나도록 쓴다. - 1차적으로 듣는 사람들이 해석이 가능한 쉬운 시(詩)가 낭송에 적합하다. - 주어와 술어, 순(順)으로 된 문구가 좋다. - 한자어(漢字語)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낭송에는 덜 함축적인 시(詩)가 좋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것이 좋다. - 너무 짧지 않은 시(詩)가 좋다. 너무 짧으면 내용 전달이 되기도 전에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통 15줄에서 18줄 정도가 적합하고 길어도 22줄    정도 이면 무난하다. - 그리고 서정시,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분명한 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분명한 시가 좋다.   2. 시 낭송에 대하여 - 각자의 목소리에 적합한 시(詩)를 선택하여 낭송한다. - 때와 장소에 적합한 시(詩)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실내에서는   고백형 시, 실외에서는 명령형 시가 바람직하다.   3. 수필 낭독에 대하여   - 낭독할 수필의 내용을 산문시(散文詩) 형태로 요약하여 낭독하거나 수필   중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만 떼서하는 방법이 있다. 길이는 보통 15줄에서   20줄 정도 이면 좋다. - 낭독에는 차분하게 읽는 방법과 시처럼 낭송하는 방법이 있다. - 읽을 때는 어조를 살려서 낭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시와 수필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내용에 대하여     - 제목은 살짝 톤(Tone)을 올려서 발음하고, 하나, 둘 쉬었다가 본문을 읽도록   한다. 남의 시(詩)를 읽을 때는 지은이를 말하지만, 자신의 시(詩)나 수필을   낭송(낭독)할 때는 지은이는 생략한다. - 전체적으로 어조는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형태로 발음을 하면서 여유   있게 하는 것이 좋다. - 작품은 서정적, 격정적 등으로 분류하여 그 분위기에 맞게 낭송 또는 낭독한다. - 표준말을 사용하면서 발음은 장단(長短)과 고저(高低)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가능하면 크고 또렷하게 발음을 하도록 한다. - 입모양은 자유자재로 하면서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하다. - 점층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두 번째 어귀를 조금 더 높여서 강조하여 발음한다. - 열거형인 경우는 끝부분을 높여서 발음한다. - 낭송하는 중간 중간에 쉬는(休止) 부분을 두어 유용하게 활용하면 더   효과적이다. -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단위로 빗금을 그어서 구분하고, 내용에 따라 빗금 하나는    살짝 쉬는 곳의 표시, 빗금 두 개는 한 박을 쉬는 표시, 빗금 세 개는   두 박을 쉬도록 표시해 놓고 낭독한다(낭송 준비를 한다). - 감정을 너무 지나치게 넣는 것은 좋지 않지만, 낭송(낭독)하는 곳에 적절히   표시를 하여 감정이 이입된 형태로 낭송(낭독)하는데, 감정이 들어가기 전에   살짝 쉬고 톤(Tone)을 조금 높여서 낭송(낭독)하도록 한다. - 내용에 따라 생명이 있는(살아 숨 쉬는 듯한) 낭송(낭독)이 되도록 적절하게   장단고저(長短高低)를 조절한다. - 전체적인 톤(Tone)은 음계의 미(Mi)에서 시작하여 높이면 솔(Sol)까지로 하고,   끝날 때도 시(詩)나 수필의 내용에 따라 구별한다. - 표정은 낭송하는 시(詩)나 수필의 내용에 맞추도록 한다. 즐거운 시(수필)는   즐겁게, 고독한 시(수필)는 고독하게 낭송(낭독)하도록 한다.   5. 기타 - 시와 수필에 대해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한 작품에 대해 윤송(輪誦)을 하는   것도 시도해볼만하다. - 처음에는 낭송이나 낭독이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겠지만, 방법을 알고 꾸준하게   노력하면 멋진 낭송(낭독)을 할 수 있다. - 낭송(朗誦)과 낭독(朗讀)의 차이점은 낭송은 시나 수필을 음률적(音律的)으로   감정(感情)을 넣어 소리를 내어 외워서 전달하는 것이고, 낭독은 시나 수필의   원고를 보고 소리를 내어 밝게 읽는 것을 말한다.     동시 감상과 낭송   1. 동시 감상은 이렇게   동시 감상은 노래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동시는 어린이들 자신의 생활 세계는 물론 생각과 느낌을 노래하듯 표현한 글이다.  오늘날 시는 일정한 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지만  운율을 살려  행과 연을 구분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알고 감상해야 한다.  또 동시를 감상할 때는 제목을 살펴보고 전체 글의 분위기를 짐작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규칙적인 운율이 나타난 외형률의 시인가, 아니면 내용에 따라서 자유롭게 배열된 시인지 살펴본다.  실제로 동시를 감상할 때는 무엇보다도 시의 음악성(운율, 가락)을 따라서 노래하고, 그 시가 무엇을 말하는지 의미성(뜻)을 살피면서 감상한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구체적인 장면, 다시 말하면, 이미지를 느끼면서 낭송하는 시의 회화성(그림)도 떠 올릴 필요가 있다.  시 구성  단위인 단어나 낱말, 행과 연을 살피면서 시의 소재나 주제는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이나 느낌이 함축적으로 짧게 축소되었는가, 느낌과 감동을 담기 위한 비유법을 적절하게 이용했는지 살펴보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다.  시는 리듬을 살려 소리 내어 낭송하는 것이 시의 재미를 더해 준다.     2. 동시 낭송은 이렇게 -  동시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노래하는 글이기 때문에 낭송을 할 때는 그에 맞는    배경 음악이 있어야 한다. - 낭송하는 사람은 듣는 청중 앞에 나서서 예의를 갖추어 인시를 하고 동시   분위기에 빠지게 한다.   다시말해 적어도 4~5초 이상 청중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분위기를 무르익도록   한 다음에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 제목을 분명히   밝혀 준다. 듣는 이가 제목을 듣고, 어떤 주제가 담긴 동시일까,   또는 어떤 글감으로 노래할  것인가를 짐작해 볼 수 있도록 역시 4~5초 정도   시간차를 두는 것이 좋다.   - 제목을 밝힌 다음에는 지은 사람을 밝혀 주어야 한다. 작자가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주어야 듣는 청중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3초 내외의 사이를 두고 낭송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 실제로 본문을 낭송할 대는 시의 짜임을 먼저 살펴보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해    본 다음에 음의 높이를 정하여 노래하는 것이 좋다. - 될 수 있는 한 소리의 크기는 낮추고, 감정을 풍부하게 해 줄 필요가 있으며,      기, 승, 전, 결의 짜임에 따라 물결 흐르듯이 낭송해 나간다. - 행과 행의 사이는 자연스러운 쉼의 정도이며, 연과 연의 사이는 3초~ 5초   정도 쉬는 것이 좋다. - 처음 시작(기)은 대체로 자연스러우나, 다음(승)의 단계에서는 감정이 고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제가 담겨있거나 의미상 반전이 오는 단계(전)에서는   감정상 다른 분위기의 연출이 필요하며, 끝(결)의 단계는 차분하면서도   천천히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 발음상 주의할 점은, 대체로 부사(움직이는 말 즉 동사를 꾸미는 말)나 형용사    (낱말 즉 명사를 꾸미는 말) 동사에는 감정이 들어가지만,    명사에는 감정을 빼고 정확한 발음으로 해야 한다. - 낭송이 끝난 후는 처음 시작할 때처럼 청중에게 인사를 한 다음 낭송 전의   자리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1475    동시랑송법 댓글:  조회:4210  추천:0  2016-05-29
        동시낭송법                          / 권오삼        시 읽기와 낭송     시 읽기 - 말 그대로 시를 읽기 - 소리 내어 읽기. 눈으로 읽기    .시 낭독 - 그냥 소리 내어 읽는 것.    .시 낭송 - 시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듣는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시적 감동이 묻어나게 읽음으로서 시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과 회화성 중에서 음악성을 더 강조하는 예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낭독 - 선언문을 낭독하다(0) 낭송은 아니다.         낭송 - 자작시를 낭송하다(0) 낭독은 아니다.   시낭송은 시를 독자들에게(아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동시를 아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 -시화전시, 낭송 대회.     동시 낭송법       가. 동시 낭송에 적합한 작품 선택이 제일 중요하다    (형식)      ① 행과 연의 끝이 명사로 끝나는 경우가 적은 시    ② 행과 연의 끝이 모음이나「-다」「-요」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시    ③ 길이가 짧고 일정한 운율을 갖춘 것    (내용)    ① 이미지나 서경보다는 서정성이 있는 시    ② 시의 내용을 들으면 그 정황이나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시    ③ 시의 내용이 비약이 심하거나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들으면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    ④ 아이들의 감정이나 정서, 생활과 밀착된 시    ⑤ 생활 속에서 건진 소재로 쓴 시라면 - 되도록 재미가 있는 시   나. 낭송하는 이는 낭송하고자 하는 작품을 충분히 소화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작품을 감상한 뒤에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주제가 듣는 이의 가슴에 충분히 가 닿을 수 있도록 낭송하는 이가 그 작품에 감동되고 완전히 자기 작품처럼 소화해야 한다.   다. 장소는 실외보다는 실내가 좋고 산만하지 않아야 한다. 넓은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소란을 피우는 가운데 시 낭송을 한다는 건 무리다. 이런 경우에는 고성능 마이크가 효과적이고 낭송 시간이 길어서도 곤란하다.   라. 시 낭송이 아무리 소리를 중심으로 한 행위라고 해도 사전에 낭송하는 작품을 유인물로 만들어 청중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마. 청중의 수준(학년)에 맞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   바. 시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적절한 음악을 선택해서 배경 음악으로 까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경 음악은 경음악으로. 볼륨 조절이 쉽다.       동시 낭송 대회에 대하여   각 학교에서 열리는 동시 낭송 대회가 근본 취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 작품 선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따분하고, 재미없고, 선뜻 이해가 안 되는 작품을 선택하므로 출발부터 실패를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시라도 낭송에 적합하지 않은 시가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므로 도리어 그 시의 가치를 반감시키고 있다.   나. 작품의 충분한 소화 없이 낭송하고 있다. 성우들이 낭송하는 낭송 시집의 테이프를 들으면 목소리는 좋으나 시적 감동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목소리만 믿고 시가 지니고 있는 시적 감동은 제대로 살리지 못한 탓이다. 시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 자신이 받은 감동을 최대한 목소리를 통해서 표현해야 한다. 따라서 목소리만 곱다고 해서 낭송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낭송할 시에 취해서 받은 감동을 표현하려는 내적 열망이 따라야 한다.       다. 낭송법 지도와 시 지도 없이 낭송을 시키고 있다.         *낭송용으로 쓸 때는 낭송에 적합하게 원고를 좀 고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준 없이 선택하고 있다.    [출처] 동시낭송법-권오삼               여러 빛깔의 동시 읽기(알기)                                                                                  권오삼   1. 들어가는 말   동시의 첫 번째 독자는 누가 뭐라 해도 어린이이고 어른은 두 번째 독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어른 독자(*동시인, 동화작가, 평론가, 교사, 출판사 종사자, 글쓰기지도 교사, 학부모, 도서관 종사자, 일반인 등)가 첫 번째 독자인 어린이를 대리해 매우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연하면 동시의 두 번째 독자인 이 어른 독자가 동시의 으뜸 독자인 어린이를 대신해 검열관 노릇을 하고 있는 동시에 어린이에게 줄 시를 전달하는 전달자의 막중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독자로서는 이차 독자에 불과한 이 하위 어른 독자가 실제로는 두려울 정도로 막강한 자리에 있기에, 이들의 결정에 따라 힘없는(?) 독자인 어린이 -사실은 가장 막강한 자리에 있는 어린이- 에게 주어질 시들이 결정되고, 어린이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 어른이 골라주는 시에서 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자유가 꽉 막힌 불행한 처지에 있는 것이다. 단지 어리고 구매권이 없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그런데 이 막강한 어른 권력자가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향성에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어린 독자는 불행하게도 편식을 해야 하고 종내는 영양실조에 빠지든지 아니면 시란 음식을 아주 멀리 하는 길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방향의 여러 가지 동시를 읽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교과서에 수록된 동시가 어린이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하겠고, 한 방향에만 치우친 동시를 게재할 때에는 의외의 폐단을 가져 올 우려조차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내용이 될 소재의 다면 다양을 권해야 하겠다. 감각적인 시, 사유적인 시, 유희에서 얻은 시, 노동에서 얻은 시……그 외 온갖 방면에서 시를 찾아내게 할 일이다. 절대로 어느 한 종류의 시만 시로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이원수 아동문학전집 28권. 아동문학입문 317쪽)       이원수가 위의 글을 발표한 것이 1961년이니 이원수야말로 식견을 지닌 우리 동시문학의 선각자요, 어린이를 배려한 훌륭한 시의 교사라 하겠다.    우리 동시의 역사를 보면 늘 정치, 사회적인 영향에 의해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 불우한 환경에 있었다고 본다. 이원수가 ‘어느 한 종류의 시만 시로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사정과 무관치는 않다고 하겠다.    따라서 어린 독자들에게 다면 다양한 시를 주려면 시에 대한 일차 검열자요, 선택권을 지니 어른들이 편향성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를 보는 눈을 넓힐 필요가 있다.     2. 여러 빛깔의 동시 읽기(알기)             ⑴ 사물을 소재로 한 동시(사물동시 -이미지 동시)    사물동시(이미지동시)는 시인이 시심(동심)으로 어린이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계의 사물을 심상으로 표현하거나 또는 묘사한 시라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시에서는 시적 발견을 볼 수 있다.    가. 사물을 동심으로 보고 형상화한 것    풍경 소리          최새연    추녀 끝에    물고기 한 마리     죽었을까?    살았을까?    바람이 살짝 건드려 봅니다    땡그랑 땡그랑    물고기는 잔잔히    물결을 일으키며    맑고 고운 소리를 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죽은 물고기를    바람이 살려놓고 갔습니다.           눈꽃      이경애     소나무에 피어도   눈꽃   싸리 가지에 피어도   눈꽃   억새 줄기에 피어도   눈꽃   색깔도 하나   이름도 하나   백두산에도   한라산에도   똑 같이 피는 겨울꽃   눈꽃.    이 2편의 시들은 시심 혹은 동심의 순수한 눈으로 대상인 사물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다. 화자는 결코 어린이가 아니다. 시인 자신이다. 다만 시인이 동심의 눈으로 새롭게 발견한 사물을 단순소박하게 표현했기에 화자가 어린이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할 뿐이다. 이처럼 사물을 그린 사물동시에선 꼭 화자가 어린이일 필요는 없다. 시의 대상이 된 사물을 어린이들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도록 또렷하게 형상화만 잘하면 된다.        물총새         권정생         물총새가 날아간다.     비가 줄줄 쏟아지는데     물총새가 쪼꼬맣게 날아간다.     언덕 밑 둥지엔     아가들이     입을 쫙 쫙 벌리고     엄마한테 먹이를 받아먹는다.     빗줄기가 줄줄 쏟아지는 날     엄마 물총새가     물고기 먹이를 입에 물고     쪼꼬맣게 날아간다.          이 시는 앞서의 2편의 시와는 다르게 시적 대상인 사물을 발견한 것이라기보다 사물을 동심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화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 이처럼 사물의 모습을 관찰 묘사할 때에는 화자가 굳이 어린이일 필요는 없다.           나. 사물을 동심으로 의인화하여 형상화한 것       빗방울         권오삼     어, 어      나뭇잎에 떨어졌네!      그럼      또르르      구슬 되어 굴러가지         어, 어     전깃줄에 걸렸네!      그럼      어디 한번     매달려 볼까?         대롱대롱대롱      아이고     힘 빠졌다     톡―.    이 시는 화자가 분명하다. 바로 빗방울 그 자체다. 시인이 대상인 사물에다 동심을 입히고 말을 하게 한 것이다. 즉 대상에다 자신을 투사(投射)시켜 의인화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는 시적 대상에다 자신을 투사, 또렷하게 이미지화 하지 않으면 시가 유치해지거나 무미건조하게 될 우려가 있다.              ⑵ 생활이나 삶을 소재로 한 동시(생활동시, 삶의 동시)    생활이나 삶에서 소재를 얻어 아이 눈으로 표현한 유형의 시가 생활동시, 또는 삶의 동시라 하겠다. 이런 동시는 비유나 이미지보다 시가 지닌 진정성, 진실성 -즉 생활감동이 중요하며 표현은 진솔한 게 특징이다.    가. 시 속에 삶을 담은 것     밤중에        이원수         달 달 달 달……    어머니가 돌리는    미싱 소리 들으며    저는 먼저 잡니다    책 덮어 놓고.    어머니도 어서    주무세요, 네?    자다가 깨어 보면    달달달 그 소리.    어머니는 혼자서    밤이 깊도록    잠 안 자고 삯바느질    하고 계셔요.    돌리시던 미싱을    멈추시고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머니가 덮어 주는    이불 속에서    고마우신 그 말씀    생각하면서    잠들면 꿈 속에도    들려옵니다.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서 자거라……."     고무신 두 짝처럼            서정홍    아버지 밥상 펴시면    어머니 밥 푸시고    아버지 밥상 치우면    어머니 설거지하시고    아버지 괭이 들고 나가시면    어머니 호미 들고 나가시고    아버지가 산밭에 옥수수 심자 하면    옥수수 심고    어머니가 골짝밭에 감자 심자 하면    감자 심고    고무신 두 짝처럼    나란히 나가셨다가    나란히 돌아오시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위의 2편의 시는 삶의 한 단면을 말의 수사 없이 그냥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시는 생활감동을 잘 담아내지 못하면 평범한 생활 주변의 밋밋한 이야기로 되어 시가 평범한 일기문, 혹은 산문처럼 될 수 있다. 따라서 시를 선택할 때 신문기사 같은 시냐, 아니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나. 시 속에 아이 마음이나 심리를 담은 것     할아버지 요강            임길택     아침마다     할아버지 요강은 내 차지다     오줌을 쏟다 묻으면     더럽다는 생각이 왈칵 든다     내 오줌이라면     옷에 쓱 닦고서 덕도 집어먹는데     어머니가 비우기 귀찮아하는     할아버지 요강을           아침마다 두엄더미에     내가 비운다     붉어진 오줌 쏟으며     침 한번 퉤 뱉는다           시준이 그림일기                김은영     어젯밤     번개 치고 천둥 쳐서     우리 식구 모두     큰방에서 잤어요     형아가     내 자리 자꾸 샘내서     엄마 옆에     꼬옥 붙어 잤어요            이 두 편의 동시는 어른인 시인이 짐짓 아이가 되어 아이 마음이나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시인 자신이 경험한 것이거나 아니면,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보거나 들은 간접 경험을 시화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유형의 시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경험 없이 쓰면 어색하거나 유치할 우려가 있다.                ⑶ 정서를 표현한 동시(서정동시)               시가 이미지나 메시지가 배제된 채 오로지 정서로만 물들여진 동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시에서 시인이 아이가 아닌 어른의 감정을 삐죽 내밀게 되면 어른의 감정 흘림이 되어 비동시가 되거나 어린이 독자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줄 우려가 있다. 시점 설정과 감정 통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주정적인 동시라고 하겠다.           눈 내리는 밤            강소천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새와 산           이오덕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눈 내리는 밤」은 시인의 정감이 주된 색조로 짜여 진 시이고 「새와 산」도  대상을 보는 시인의 눈이 이지적이라기보다 역시 정감에 닿아 있기 때문에 두 편 모두 서정동시라 할 수 있다.          ⑷ 메시지를 담은 동시(메시지동시)        시인이 아이의 자리에서 아이처럼 말하든, 시인 자신이 직접 말하든 관계없이 시인의 관념(사상이나 윤리도덕, 가치관, 계몽, 가르침 등)을 은연중 표면에 드러낸 게 바로 메시지 동시라고 할 것이다. 서경에 詩言志란 말이 있다. 志 는 뜻이니까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시에서 메시지는 사회성을 띤다. 그러니까 가르치려는 의도가 있다. 독자를 자기 사상(관념)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주의할 것은 그것이 강요가 아닌 설득의 목소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른 되면                권태응    우리가 어서 자라     어른 되면은    지금 어른 부끄럽게    만들 터야요.         같은 형제 동포끼리     총칼질커녕     서로 모두 정다웁게     살아갈래요.           밭 한 뙈기            권정생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우리가 어른 되면」은 아이의 자리에서 아이가 되어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밭 한 뙈기」는 시인이 직접 말하고 있다. 다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눈높이를 낮추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두 편 모두 계몽의 의미를 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으나 강요가 아니라 설득의 목소리여서 무난하다.           ⑸ 생각이나 사색, 성찰에서 나온 동시(사유동시 / 의미동시)   생각에서 나온 동시도 생활 속에서 얻은 것이기에 그냥 머릿속에서 추상적, 개념적으로 쓴 관념시와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흔히 보면 이런 생각에서 나온 시를 관념시와 동일시하는 감상자들이 많다.       세상     김은영   나무도 나무도 혼자 살면 심심해서 숲에 모여 산단다 햇살도 햇살도 혼자 피면 쓸쓸해서 꽃들과 함께 핀단다 달님을 봐 달님을 봐 밤하늘 혼자 뜨면 무서워서 별들과 함께 뜨잖니 사람도 마찬가지야 먼 길 혼자 가면 외로워서 길동무들 찾잖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권오삼               여름 가뭄 때     물 한 통이라도 준 일 있니?     아―니요          비바람 몰아 칠 때     한번이라도 지켜 준 일 있니?     아―니요     그래도 가을되니     가져가라고     예쁜 열매 아낌없이 떨어뜨리는     밤나무 ․ 대추나무 ․ 도토리나무…….     두 편 모두 생활 속에서 건진 생각을 사물에 기탁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생각은 교훈이나 계몽과는 또 다른 것으로 어떤 의미나 사유를 시 속에 품고 있다. 그 의미는 주로 통찰이나 성찰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낡은 도덕적 교훈이나 추상적 의미를 담은 의미동시는 관념시로 떨어질 수 있다.            ⑹ 회화적 표현의 동시(서경동시)  언어로 그림을 그리 듯 사물의 모습이나 풍경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게 서경동시(회화동시)라 하겠다. 어린이시에서는 사생시로 나타난다.  나무가 있는 풍경             오규원          몹시 허리가 구부정한 한 그루 나무가  엉덩이를 불쑥 내밀고  다른 나무 사이에 생긴  그 초생달 같은 빈 틈에  파아란 하늘이 한줌 박혀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간들간들 흔들리는  조그만 나뭇잎 하나가  그 하늘을 잘랐다 붙였다 하고 있다.      저녁 풍경        권오삼   가로수 위로 땅거미 몰려드네   새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네   새하얗던 얼굴빛의 가로등들   호박처럼 발갛게 불을 켜고      높다란 아파트 창문마다    고양이 눈빛처럼 반짝이는 불빛들      하늘은 어느 새 문밖에다   작은 별 하나 촛불처럼 꺼내놓았네   두 편 모두 주관을 배제한 체 객관적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다. 시 제목 그대로 나무가 있는 풍경이요, 도시의 저녁 풍경이다.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하면 된다. 이처럼 말로 그림을 그리 듯 쓴 시는 대상이 눈앞에 또렷이  떠오르게 이미지가 선명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할 때에는 어린이들에게 난해한 시가 될 것이다. 이런 회화적 서경동시는 우리 동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간혹 나타난다. 감상 대상은 고학년 어린이가 될 것이다.         ⑺ 유희나 놀이적인 동시(유희동시, 놀이동시)    말 그대로 말유희 동시, 말놀이 동시라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동시는 발상이 기발하고 표현이 재미있어야 한다. 율동감이 있고 유머러스해야 한다. 아이들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운율을 지닌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동서가 똑 같다는 게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보들레르는 그의 산문시집 에서 ‘인생에는 단 하나의 매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장난의 매력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를 아이들에게 적용시켜 ‘어린이의 삶에서 진정으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장난의 매력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장난을 시에서 보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고 흥미 있는 일이다.               구구셈            김용택        이이는 누렁니        칠칠은 뺑끼칠        팔팔은 곰배팔        구구는 닭모시        어느새        구구셈을 다 외웠네         밥 먹기      권오삼 숟가락아  나 배고프다 빨랑 밥 떠넣어라       젓가락아 밥 들어왔다  빨랑 반찬 집어넣어라          이빨들아 일감 들어왔다 싸게싸게 움직여라 알았다 밥통아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잖니!       뻐꾸기     안도현 봄이 간다 뻐꾹 꽃이 진다 뻐꾹 알 낳았다 뻐꾹 남의 둥지에 뻐꾹 나는 아니다 뻐꾹 남의 둥지에 뻐꾹 알 낳지 않았다 뻐꾹 도리도리 뻐꾹 정말이다 뻐꾹 찾아봐라 뻐꾹             ⑻ 말 익히기를 위한 동시(말놀이동시)              유치원 단계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말 익히기 동시라 하겠다. 이런 동시는    내용이 엉뚱하고 난센스에 가까우며 운율이 있어 말 익히기 단계에 있는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사자    최승호 사자야 사자야 서커스 사자야 마술사 엉덩이를 왜 물었어? 엉덩이가 사과니? 엉덩이가 사탕이야? 사자야 사자야 마술사 엉덩이를 왜 물었어?   이 시는 ‘시옷’을 익히게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옷’이 들어간 단어를 동원하고 있다. 사자, 사과, 사탕, 서커스가 그러며 그 단어를 반복해서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도를 밖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에 말놀이 동시로서 성공했다고 본다.                       ⑼ 이야기를 시의 그릇에 담은 이야기 동시(동화시, 우화시)        동화와 우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으로 이야기가 있는 시라 하겠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동화적 요소를 담은 동화시와 우화적 요소를 담은 우화동시로 나눌 수 있다.       가. 동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창작동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가래떡(위기철) -전래동화를 재구성하여 시의 그릇에 담은 것                   나. 우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고양이 세탁          권오삼     털빛이 눈처럼 새하얀 고양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이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어요.        눈처럼 새하얀    나의 고양이    미로! 미로!    너는 나의 귀여운 친구            미로는 털빛이 새하얗다 보니    털이 금방금방 더러워졌어요.    아무리 물로 닦고 문질러줘도    본래대로 깨끗해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내 고양이를    눈처럼 새하얗게 해줄까?’    아이는 혼자 곰곰이 생각했어요.     ‘……아, 좋은 생각이 있네!’    아이는 곤히 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가슴에 안았어요.    그리고는 고양이를    세탁기 안에 넣은 다음    가루비누를 뿌리고    얼른 뚜껑을 닫은 뒤    살짝 스위치를 눌렀어요.    윙― 윙윙윙윙 윙윙윙윙    꿈나라에서    신나게 놀고 있던 고양이는    갑자기 온몸이 팽글팽글     머리가 어질어질    속이 능글능글    야옹! 야옹!    나 미로 죽어요 미로 죽어요     세탁기 안에서 죽는다고 울부짖었지요.    난데없는 미로의 비명소리에    아이 어머니가 달려왔어요.    어머니 아니었으면 빨랫감이 되어    죽을 될 뻔했던 미로    용케 목숨을 건졌어요.        그런 일이 있고나서    미로가 아이 보고 말했어요.    “나는 털빛 따위엔 관심 없어. 그건 사람들 맘이지. 그러니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 그게 나를 위하는 거야. 까딱하면 하늘나라로 갈 뻔했잖아!”    “그래도 나는 네 털빛을 새하얗게 해주고 싶어.”    “애야! 너는 사람이고 나는 고양이란다. 그러니 나를 좋아한다면 제발 이 고양이가 바라는 대로 좀 내버려 둬. 알겠지, 응! 야옹!”          산토끼랑 달팽이랑              오은영    허둥지둥    언덕길 뛰어가던    산토끼가 글쎄    달팽이 보고 혀를 찼대.    너처럼 느릿느릿 가다간    언덕 너머 산비탈 뒤덮은    진달래꽃 잔치 못 보겠다.    달팽이도 글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대!    너처럼 빨리빨리 가다간    제비꽃 깽깽이풀 얼레지 족두리풀 매미꽃 봄까치꽃 애기풀 들바람꽃……    언덕길 따라 줄줄이 핀    풀꽃 잔치 하나도 못 보겠다.        우화와 교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양이 세탁」은 인간 생활을 배경으로 한 철리(哲理)우화에 가까운 것이라면 「산토끼랑 달팽이랑」은 동물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솝 우화(원시동화)에 가까운 우화라 하겠다. 우화동시는 아무리 연과 행을 갖추어도 산문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우화동시는 걸음마 이전의 아주 낮은 단계에 있다고 하겠다. 보기 드물다는 것이다.                     ⑽ 실험성이 강한 동시(상상력에 바탕한 동시)       지금 까지 말한 여러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실험성이 강한 동시로 상상력(이미지)에 바탕하고 있는 동시다. 우리 동시에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 드물다.  실험성이라고 하여 어린이의 이해를 무시한다든가 의미 전개에서 논리적 질서가 없거나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면 전달성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말의 요설에 머문 것은 터무니없는 말장난 놀음이기에 거부감을 준다.             신발 속에 사는 악어                  위기철   악어야, 악어야,   신발 속에 사는 악어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더러운 발.   발을 씻지 않는 아이가 신발을 신으면,   발을 꽉 깨물어 먹어라.   생쥐야, 생쥐야,   베갯속에 사는 생쥐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놀이터는 때 묻은 얼굴.   세수 안 한 아이가 잠을 자면,   얼굴에 올라가 춤을 추며 놀아라.         공장 구경              -시간을 만드는 공장에 가다          권오삼  우랄랄랄 오늘 나 혼자 시간을 만드는 공장에 갔다네 공장은 전체가 둥그런 하얀 건물이었다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첫눈에 띄는 게  큼직한 12개의 숫자와 작은 눈금들 그리고 마중 나온 세 명의 안내원 첫째는 땅딸보  둘째는 키다리 셋째는 말라깽이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공장안은 온통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뿐이었다네 째깍째깍째깍 똑딱똑딱똑딱 땡땡땡땡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기계들과 가래떡처럼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 기계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최신 자동 기계였다네 생산되어 나오는 제품을 보니 구겨지거나 찌그러지거나 금이 가거나 흠이 난 불량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네 상표를 보니「명품 은빛시간」 (생략)     3. 맺는 말    내 나름대로 이러저런 동시들을 10가지로 분류하고 한두 작품을 예로 들어 보았다. 많은 동시들을 여러 빛깔로 분류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 어떤 작품은 작품 속에 빛깔이 겹쳐져 있어 경계가 모호하고 분류하기가 애매한 것도 있고, 또 어떤 작품은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예로 든 작품 외에 다른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예로 들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이 원고가 동시에 대한 토론을 위한 자리에 쓰일, 제한된 시간에 맞는 분량의 원고여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른이라는 그 특권(?) 하나만으로 어린이가 직접 선택해야 할 동시를 어린이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들이 독점, 선택 ‧ 공급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좋으나 잘못된 권력 행사가 늘 부작용을 낳듯 동시를 선택 ‧ 공급하는 과정에서도 독단적 권력 남용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단이 없으려면 여러 빛깔의 동시를 알아야 하며 또 제대로 감식하는 안목도 길러야 할 것이다. 시가 아무리 주관성이 강한 장르라 해도 경향성을 떠나 ‘시가 된 양질의 동시와 그렇지 않은 저질의 동시’ 쯤은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러려면 여러 빛깔의 동시를 선입견 없이 두루 맛 볼 필요가 있다.     저질의 동시든 고질의 동시든 자기 입맛에만 맞추려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완성도가 높은 동시라면 어떤 경향의 동시든 아이들에게 권하려는 소견 넓은 어른 독자, 안내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 졸고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474    랑송문화는 글자가 없던 오랜전부터 있어 왔다... 댓글:  조회:3898  추천:0  2016-05-29
시낭송특강 및 감상                        / 김춘경 1.머리말 시가 인간의 감정을 높인 감동의 소리, 즉 인간의 소리이고, 그 사람의 생각을 안으로 다지는 일이 시를 짓는 일이라면 시낭송은 활자화 된 시에 운율을 살려 그 시가 가지고 있는 시의 향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으로 실어 나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시를 하나의 악보라고 한다면 시낭송은 가수가 악보를 통해 자신의 노래로 소화해 내는 일일 것이다 이렇듯 시낭송이란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을 되도록 작게 함축시켜놓은 시를 긴 여운을 줄 수 있도록 노래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상실한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정체성을 시를 통한 감동으로 정화하고 회복함을 시문학의 한 목적이라 한다면 시낭송은 그에 부응하여 감동없는 사회에 마음의 위로가 되게하여 풍부한 감성과 사랑을 전하는, 보다 성숙한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낭송문화는 글자가 없던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시를 가리키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이라는 말의 음(吟)자의 뜻이 '읊다'인 것도 시는 글자로 쓰기 전에 먼저 소리내어 읊었음을 일러준다"....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글자가 없던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소리를 내어 가락과 장단에 맞춰 뜻을 전해왔다 구전으로 전해 오던 많은 고려가사나 판소리로 불려지는 장편서사시 등이 모두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낭송시라 할 수 있고 향가에서 비롯해 발전해온 시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낭송은 시보다도 오히려 오랜 역사를 가진 셈이다 낭송이 먼저이든 시가 먼저이든 간에 시는 작품으로써 시낭송을 통해서 비로소 더욱 향기와 빛을 발하고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중요한 시문학의 한 장르로써 인식되어야 할 시낭송에 대해 필자는 시낭송에 관한 이번 특강을 통하여 독자들이 보다 더 가까이 시와 시낭송 문학을 이해하고 다가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 동안 실제 체험해온 오랜 시낭송 경험과 적으나마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보다 아름답고 효과적인 시낭송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불어 필자의 실제 낭송작품들을 교재로 함께 사용하고자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참고로 [한국시낭송가협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시낭송의 효능성과 실용성에 대한 4가지 내용을 옮겨 본다 *시낭송을 하게 되면 (시낭송의 효능성과 실용성)* 첫째, 시낭송은 어떤 성악가의 노래, 어떤 배우의 명연기보다 훌륭한 예술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자리 매김은 공연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시낭송, 예술가로서의 낭송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혼으로 달궈진 시낭송만이 명시의 감동을 진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사랑의 회복으로 인해 자기 정화와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게 됩니다. 셋째, 이웃과의 단절로부터 관계성을 회복하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깨달음을 통하여 자기와의 대면에 이르게 하고, 나와 이웃, 나와 자연, 나와 나의 관계성의 회복을 유도합니다. 넷째, 시는 감동입니다.. 시의 정서는 정이며 사랑이고 우리가 상실한 정체성을 시를 통하여 회복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감동이 없는 사회를, 마음의 위로, 용서화 화해, 성숙한 인간성, 풍부한 감성과 사랑을 시낭송으로 감동을 줍니다. ....................................... 2. 낭송과 낭독의 차이 시를 보다 아름답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을 연구하기 전에 먼저 시낭송의 성격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그중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낭송과 낭독의 차이점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낭독(朗讀)이란 뜻은 말 그대로 밝게 소리내어 읽음을 말한다 낭독은 국어책을 읽 듯이 수필이나 소설들을 남 앞에서 목소리로 전달하는 행위일 뿐이다 감정이나 기교나 연기력이 배제된 그저 읽어 내려 가면서 독자나 청중에게 전달만 하면 된다 따라서 느낌이나 감동의 문제는 순전히 독자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낭송(朗誦)은 완성된 시를 시인 자신이나 제3자가 전달하는 행위로써, 읊조림을 넘어선 소리의 음악성을 뜻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을 낭송가는 자기 것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여 전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같은 시라 해도 낭송하는 사람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시가 들릴 수 있다 때문에 낭송가는 우선적으로 낭송할 시의 배경과 주제, 시를 쓴 시인의 시심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완성된 시는 낭독이 아닌 낭송을 해야 남에게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겠다 원래 시를 '읽는다'와 '외우다'와 '읊는다'는 각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본래의 낭송(朗誦)이란 어휘를 살펴보면 '높은 소리로 또랑또랑하게의 낭(朗)'과 '외울 송(誦)'자가 합쳐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높은 소리로 또랑또랑하게 외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낭송이라 함은 책이나 원고를 보고 읽는 낭독과는 다르다 시낭송이란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낭송자가 시를 목소리에 실어 독창적 해석과 가락으로 청중으로 하여금 감동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낭송대회에서는 암송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를 외워 전달하는 모임은 시낭독회가 아니라 시낭송회인 것이다 필자가 수집한 일부자료에 의하면 이런 이유로 시낭송은 반드시 외워서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을 감안할 때 필자는 이 부분에서 일부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시행되고있는 많은 시낭송회를 볼 때 여러 가지 실정상 상을 주고 규정을 정한 시낭송대회가 아닌 단순한 시문학 전파와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시낭송회의 경우라면 완전한 암송을 못해 낭송을 하다 실수를 하여 시의 뜻을 전달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지켜보는 청중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느니 원고를 보더라도 오히려 낭송할 시의 뜻을 낭송자가 해석한대로 충분히 편안하게 전달함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실제로 많은 시인들이 시낭송회에서 자기 시도 원고를 보고 하는경우가 많다 이는 물론 시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상호관계문제라 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필자는 반론의 목적이 보다 많은 시문학의 보급과 시낭송회의 많은 발전을 위함이라면 시낭송회에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말함임을 덧붙이는 바이다 물론 완벽한 암송으로 낭송에 있어 낭송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완벽한 무대매너로 전달한다면 그야말로 시가 하나의 예술로 다시 태어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낭송의 본래목적을 생각한다면 시인의 영혼의 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낭송자가 아름답게 재창조하여 그 뜻을 잘 전달하는 것이니 기본목적달성을 위해서 라면 약간의 편이성을 주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여하튼 낭송과 낭독의 기본차이점을 알고 낭송에 임하는 자세를 가짐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매스미디어(mass media)와 컴퓨터의 발달로 시문학도 대중매체와 더불어 발전하려는 조짐과 확산을 보이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시낭송을 오디오시디나 컴퓨터시디에 담아 전파하고 즐기려고 한다 때문에 무대에서 암송하여 시를 전달하려는 행사위주의 시낭송과는 달리 대중매체를 통해서 들으며 즐기기 위한 시낭송이 널리 보급 되고 있기 때문에 시낭송의 기본 개념도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낭송의 기본 뜻은 알고 이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실제에 있어서 적용은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현실에 맞게 함이 옳다고 본다.
1473    랑독과 랑송의 차이점 댓글:  조회:4202  추천:0  2016-05-29
낭독과 낭송의 차이점                                      우리말 사전에서 낭송과 낭독이란 단어를 찾아봤다. * 낭송(朗誦)이란:   1. 크게 소리를 내어 유창하게 글을 외우거나 2. 음율적으로 감정을 불어넣어 유창하게 읽거나        외우는 것이라했다.   * 낭독(朗讀)이란:   1. 글자 그대로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을 말한다. * 사실 詩 낭송이란    시 속에 담긴 깊은 의미와 감동을 청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감정이 닮긴 소리로 읊는 예술적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詩 낭송 운동이 활발해지더니 근래에는 문학 작은 동아리로부터 큰 단체에 이르기까지 낭송문학에 대한 생활이 점차 확산되고 있음은 우리 국민들 정서적인 삶을 위해서도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 낭독은 전자에서도 말했듯이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詩 낭송회"라 하면 당연히 낭독이 아닌 낭송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가끔 "시 낭송회"에 초대를 받아 참석을 하다보면 종종 낭송이 아닌 낭독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심지어 손바닥만한 종이위에 적힌 시를 더듬더듬 읽는 것을 볼때면 경망스러운 말 같지만 낭송회인지 낭독회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때도 있으니 낭송과 낭독의 차이는 어쩜 하늘과 땅의 차이쯤 될상 싶다. * 詩 낭송을 보다 잘하기 위해서는 1. 목소리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라     혹시, 아름다운 목소리만 가지고 시를 잘 낭송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 지적하고 싶다.    물론 목소리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만     낭송을 하다보면  색깔은 고울지 모르나 깊은 시의 향이 없어     보일때가있다    다시 말하면 귀에는 아름답지만 가슴에는 감동이 없다는 말이다.   2. 詩를 많이 읽고 먼저 이해하라.     내가 먼저 이해하고 감동을 받아야 그 감동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여러번 읽다보면 그 시가 전하는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다보면 스스로 먼저 감동을 받게되는 것이다.   3. 바른 소리로 말 맛을 살려라.     단어 하나하나의 소리가 바르고 정확하야한다    우리나라 말들 중에는 비슷비슷한 말들이 많아 자칫 잘 못     전달을 하면   낭송하고자 하는 그 시가 전하는 깊은 향기를    잃게되는 수가 있게된다     말 맛이란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계곡을 돌아갈 때의 물은 물만의 특이한 소리로 흐르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뛰어 내릴때는 힘찬 폭포의 소리로,    넓은곳을 흐를 때는 깊고 잔잔하고 평화롭게 흐르듯,    낭송도 물소리와 같이 그 맛을 살려 낭송을 할 때 듣는 청중들은     깊은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1472    詩랑송 아름답게 잘하는 법 3 댓글:  조회:4237  추천:0  2016-05-29
단숨에 말하는 연습 시낭송을 할 때 호흡이 짧아 중간에 감정이 끊어짐을 막기 위해 연습한다. ① 한 문장씩 끊어서 발성연습을 한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② 두 문장씩 끊어서 발성연습을 한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③ 세 문장씩 끊어서 발성연습을 한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④ 처음부터 끝까지 숨쉬지 않고 단숨에 말한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래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혼합연습 ① 싸 패 쑹 썬 쭉 헉 훅 땅 띤 ② 유 혹 혈 열 력 랙 퍽 탑 쾅 ③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④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량 셩 얄라리 얄라 ⑤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외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⑥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10의 음성 : 최저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25의 음성 : 저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50의 음성 : 중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75의 음성 : 고음) 날 어쩌란 말이냐.(90의 음성 : 최고음) 호흡 및 발성연습의 효과 ① 좋은 음질의 소리를 낼 수 있다. ② 내쉬는 숨이 길게 유지 된다. ③ 발음의 강약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④ 음폭이 넓고 풍부한 공명을 얻을 수 있다. ⑤ 음의 고저, 강약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⑥ 시를 단숨에 읊어야 하거나 감정을 길게 설정할 때 도움이 된다. ⑦ 시의 울림이 느껴지며 감동 있는 시낭송을 하게 된다. 시낭송 호흡법 호흡이란 목소리를 타고 나가는 생명력이다. 생명력 있는 시낭송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호흡이 필요하다. 특히 울림이 있는 시낭송을 하려면 소리를 나오는 대로 내는 것이 아니라 깊은 호흡을 이용하여 저장되어 있는 공기를 서서히 뽑아내야 한다. 호흡은 일차적으로 인체에 산소를 공급하고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주는 일종의 생리작용으로서 ‘들숨(공기를 들이마심)’과 ‘날숨’(공기를 내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말소리는 날숨을 이용하여 발음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휭경막과 흉근, 복근 등의 작용으로 폐를 통해 숨을 쉰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다면 아랫배(단전 이용)로 숨을 쉬느냐, 가슴으로 쉬느냐, 어깨로 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린이들은 모두 아랫배를 불룩거리며 숨을 쉰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면서 감정이 풍부해지고 예민해짐에 따라 숨이 가슴으로 뛰어 오르기 시작해서 청년시절에는 활발한 가슴 호흡을 한다. 장년이 되면 가슴의 움직임마저 없어지고 이윽고 노년이 되면 어깨를 들먹거리며 거칠게 숨을 쉬며 마침내 턱까지 숨이 차오르게 된다. 우리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극히 약한 운동이지만 복근에 의한 복식호흡을 한다. 그러나 잠을 깨어 일어남과 동시에 복식과 흉식으로 변한다. 복식 호흡 때는 복근은 물론 요근과 배근의 활동이 요구된다. 참고로 5~6세의 1분간 호흡수는 약 26회, 15~16세는 약 20회, 성인은 약 16회로 아동의 호흡수는 성인에 비해 많다고 한다. 1) 호흡의 종류 (1) 흉식 호흡 가슴만으로 숨을 쉬는 것을 단식 호흡이라 하고, 아랫배를 당겨 붙이고 앞가슴으로 숨을 쉰다하여 흉식(胸式) 호흡이라고도 한다. 여성은 주로 흉식 호흡을 많이 하고 남성은 복식호흡을 한다. 폐를 외부에서 둘러싸고 있는 늑골에 부착되어있는 근육을 주로 움직여서 가슴을 팽윤시켜 하는 호흡이다. 이 호흡은 어깨와 가슴이 위로 올라가며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휭경막이 위로 올라가 심장을 압축하게 되므로 음정이 불안하고 호흡이 짧아지기 쉽다. 또 정신적인 압박감과 긴장감, 불안감 등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며, 소심하고 소극적인 생각과 행동을 낳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2) 혼합식 호흡 가슴과 배로 동시에 숨을 쉬는 것을 호흡 또는 폐첨(肺尖) 호흡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숨을 들이마실 때 어깨와 가슴이 위로 올라가 폐를 수축시키는 호흡으로 가슴과 배를 동시에 혼용으로 숨을 쉰다. 보통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표현이나, 비판적이고 공격적일 때 이 호흡을 쓴다. (3) 복식 호흡 공기가 뱃속까지 가는 호흡으로, 들이마시고 내쉬는 힘에 의해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호흡을 말한다. 숨을 들이마셨을 때, 배꼽 위와 아래가 동시에 부풀어 오르고 배꼽 위와 척추에도 힘이 간다. 정산적인 본능호흡으로 냉철, 안정, 명상적 성격을 가졌으므로 설명 및 제안, 권고와 충고 등 일반적으로 말하는데 사용한다. (4) 단전호흡 단전호흡은 숨을 들이마셨을 때 배꼽 아랫부분만 부풀어 오르면서 척추에는 힘이 가지 않으며 퍼지는 것을 말한다. 단전이란 그 위치가 사람의 체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배꼽세치아래(약10Cm)에 위치하는 곳으로, 단전호흡이란 아랫배에서 나오는 소리를 말한다.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고 아랫배의 팽창과 수축으로 숨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들어오고 나가게 하는 호흡이다. 단전호흡은 공기가 4~6배정도 들어오기 때문에 세포가 활성화되고 휭경막 운동의 활성화로 복압을 증대시켜 기혈순화를 원활히 시켜준다. 2) 좋은 호흡법 ① 시의 내용을 생각하여 위의 여러 가지 호흡법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② 가슴이나 배의 균형을 잘 잡아 아랫배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③ 전신의 힘을 빼고 서서히 공기를 흡입하며 어깨를 올려서는 안 된다. ④ 가슴이나 턱을 내밀지 않도록 하며 배에 부분적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3) 단전 복식 호흡하는 방법 평소 음질이 잘 다듬어지고 음폭이 넓어지며 음의 강약이 조절될 수 있는 단점 복식호흡을 익히면 시낭송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단전 복식호흡이란 복식 호흡과 단전호흡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1) 자세 ① 먼저 베개를 베지 않고 누워서 눈을 감고 아랫배로 숨을 쉬는 연습을 한다. ② 발을 11자로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서서 전신의 체중을 발끝에 두고 앞쪽으로 약간 기울게 한 후 양손을 배 부위에 가볍게 대고 호흡한다. ③ 정신을 가다듬고 등뒤나 배꼽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간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충분히 마시고 토한다.(호흡기관이 아랫배에 있다고 생각하고 배꼽 아래 하복부로만 호흡한다. 먼저 풍선처럼 아랫배를 부풀려 숨이 들어오게 하고 수축해 숨이 저절로 내쉬어지도록 한다. 즉 아랫배의 팽창과 수축으로 숨이 저절로 들어오고 나가게 한다.) ④ 숨이 아랫배 깊숙이 내려오면 관원혈(하복부 앞쪽의 한 점)에 마음을 집중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셔 응축되는 힘을 가두었다가 천천히 토한다. (2) 방법 1단계 - 눈을 감고 코로 천천히 2~3초간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불룩해진 공기를 4~6초간 코로 숨을 천천히 내쉬다.(3회) 2단계 - 코로 숨을 깊숙이 들이마신 후에 배꼽 아래 하복부 단전에 4~5초간 숨을 멈추었다가 이와 혀 사이로 ‘s'의 자음인 ’쓰' 또는'f'의 자음인 ‘프’ 하는 소리를 동시에 6~8초간 천천히 내뿜는다.(5회) 3단계 - 코로 천천히 들이마신 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이와 혀 사이로 ‘쓰' 또는 ’프‘를 20초간 길게 내뿜는다. 4단계 - 숨을 멈추는 연습을 처음 15초부터 30초...계속 시간을 늘려 연습 한다. 5단계 - 호흡을 완전히 체득했는가의 여부를 알기 위해 스타카토를 해본다. (아, 아, 아...) 처음에는 천천히, 차츰 빠르게 소리를 낸다.  
1471    詩랑송 아름답게 잘하는 법 2 댓글:  조회:4579  추천:0  2016-05-29
  - 시낭송이란 시속에 담긴 의미와 시적인 감동을 청중들에게 내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이다 --- 시낭송을 잘하는 법--- 1. 행과 행사이는 짧게 띄어 읽고 연과 연사이는 조금 길게 띄어 읽는다 2. 시의 내용을 생각하고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는다 3. 시의 분위기에 맞는 목소리로 읽는다. 4. 리듬감을 살려 읽는다. 5. 시에 쓰인 재미있는 말과 반복되는 말을 살피며 읽는다. 6. 감정에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7.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상의 여유를 주어야 한다. 8. 낭송을 하면서 자기도 들어야 한다. 9. 느낌을 살려 읽는다. 10. 목소리를 너무 높이지 않는다. 11. 듣는 사람에게 부담이 가서는 안된다. 12. 여운을 주어야 한다. 13. 거칠거나 투박스러운 호흡은 빼고 산뜻하게 반호흡을 살려준다. --- 낭송시 유의할점 --- 사이띄기 장.단 고.저 강.약 완.급 - 낭송은  1.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는 촛불같이 사람의 마음을 밝혀 주어야 한다(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이 되기 싶다)  2. 영혼이 노래하듯 그윽한 향기로 다가가야 한다.  3. 시와 같이 절실한 갈망의 혼을 불어 넣는다.  4. 시의 언어가 곱고 예뻐야만 하지 않듯 목소리가 꼭 예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목소리에 맞게 발전시킨다. 모든 예술은 자연스러울 때 감동을 준다.  5 쉼(그림에 있어 여백과 같은 역할이다. 여백의 미가 있어야 한다.) -- 연의 구분  6. 힘있는 언어를 표현해야 한다.(정확한 발음을 위해 발음기관을 충분히 활용 해야 한다) -- 장.단 구
1470    詩랑송 아름답게 잘하는 법 댓글:  조회:4825  추천:0  2016-05-29
시낭송 아름답게 잘하는 법 1. 인위적이고 가공적인 목소리를 내지마라. 듣는 이에게 부담을 준다. 시를 제대로 분석하여 이해하여서 시가 지닌 의미를 맛깔스럽게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맛깔스럽고 아름답게 낭송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2. 시의 내용을 생각하고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낭송한다(시의 회화성) 3. 시의 분위기에 맞는 목소리로 낭송한다. (음색과 분위기) 4. 고저 장단음을 제대로 발음하여 리듬감을 살려 낭송한다. 5. 시에 쓰인 재미있는 말과 반복되는 말을 살피며 낭송한다.(반복어법 파악,점층법과 점강법을 구사한다.) 6. 감정에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7.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과 감상의 여유를 주어야 한다. 8. 낭송을 하면서 자기도 들어야 한다. (자신도 들어야 감정의 흐름과 연결을 제대로 할 수가 있다.) 9. 뉘앙스를 살려라.(분위기와 느낌) 10.목소리를 높이지 말 것. (초보자들은 대부분 강조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1. 듣는 사람에게 부담이 가서는 안 된다.(어떠한 표현의 방법이든 자연스러워야 한다.) 12. 여운을 주어야 한다.(흐름이 딱딱 끊겨서는 안 된다.) 13. 거칠거나 투박스러운 호흡을 빼고 산뜻하고 충분히 반 호흡을 살려줄 것. 14. 시가 그냥 좋아서 내 것으로 하고 싶을 때에는 100번을 읽는다. 15.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낭송할 것. 16. 올바른 발성과 단전호흡과 우리말을 제대로 읽는 방법등 기초를 제대로 배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리는 목의 소리가 아니고 단전의 소리이며 이는 곧 온몸으로 낭송하는 혼의 소리여야 한다. 17. 행과 행 사이는 짧게 띄어 읽고, 연과 연 사이는 행보다 조금 길게 띄어서 낭송한다. 18. 포즈를 최대한 활용하라.(일반적으로 포즈하면 사람들은 낭송가의 이미지나 카리스마를 생각하기 쉬우나 언어 표현예술에서의 포즈란 쉬어가는 테크닉을 의미한다.)     포즈를 잘 활용할 줄 알게되면 시낭송은 한결 더한층 멋지고 감동적인 아름다운 낭송이 될 수가 있다. ==============================               낱말 하나하나의 소리내기가 바르고, 그 높낮이와 길고 짧음이 정확해야 듣기 좋으며 뜻이 바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말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으며 마치 물 흐르듯 하면서 힘참, 고요함, 평화로움, 기쁨, 그리움 등을           나타내야 듣는 이가 느껴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이 시 낭송의 바탕입니다.                   시 낭독과 시 낭송은 다릅니다. 시 읽기가 아니라 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낭송하고 싶은 시를 여러 번 읽고 뜻을 새기다 보면, 그 듯을 목소리에 실을 수 있는 악보가 절로 가슴속에 떠오릅니다. 이 악보에 따라 듣는 이의 느낌에 깊이와 여운이 생겨나며, 거기다가 낭송하는 이의 개성이 살아 어울려 주면, ‘아, 아름답구나!’ 하는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당당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자연스러운 표정의 드러남이 중요합니다. 낭송하는 이의 들뜸이 지나쳐 불거지거나, 어색한 손짓 몸짓들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가짐이 반듯하고 옷차림도 단정하며, 무대 오르내리기와 인사법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애씁니다. 여기서 서로의 믿음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낭송하는 이의 이러한 모습에서 듣는 이들은 마음의 옷깃을 바로 잡게 될 것입니다.                   낭송하고 싶은 시를 수십 번 써 보고, 수백 번 외워 오랫동안 빈틈없이 준비해 나의 노래로 되살려야 맥박 같은 힘과 햇볕 같은 위안과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색깔이 있는 낭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연습을 되풀이 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낭송하다 막히거나, 잘못하는 것은 연습이 모자라는 탓입니다. 여럿이 함께 같은 시를 낭송하는 합송일 경우에는 소릿결, 숨결, 마음결가지 맞춰야 조화로움에서 아름다움을 풍기게 됩니다.                   시 낭송은 어떤 성악가의 노래, 어떤 배우의 명연기보다 훌륭한 예술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자리 매김은 공연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시 낭송, 예술가로서의 낭송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혼으로 달궈진 시 낭송만이 명시의 감동을 진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469    詩 랑송하는 법 2 댓글:  조회:4187  추천:0  2016-05-29
  시낭송하는 방법   시낭송대회 때마다 출전자는 떨리고 긴장한 나머지 자기의 실력을 제대 로 발휘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을 본다. 특히 내성적인 사람은 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예 진정제를 먹고 출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대 위에서 덜 떨리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무대 공포증을 제거하고 담력을 갖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짚어보기로 하자. 먼저 실습적인 방법과 심리적인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1) 실습적인 방법(경험으로 얻어지는 방법) (1) 무대 경험을 많이 쌓자. 과거에 무대에서 노래나 연기 등 무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시낭송을 하는 첫 무대에서 자기의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다. 그러나 무대 경험이 없는 출연자는 자신이 어떻게 낭송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된다. 왜냐 하면 시낭송은 단지 시낭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서 승화시켜 표현해 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두 번씩 무대에서는 경험을 갖게 되면 점차 자신감 이 붙게 되어 청중의 분위기 더 나아가 청중의 눈동자, 표정까지 읽게 되어 나의 낭송에 청중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공간의 숨결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무대에서의 담력을 기르는 최상의 방법은 무대에 자주 서 무대에 대한 두 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2) 충분히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선다. 아무리 무대 경험을 많이 쌓는다 하더라도 불충분한 연습은 오히려 불안감을 주고 자심감을 잃게 한다. 혹시 무대에서 시낭송을 하다가 틀려 중도에 내려오게 되면 그 뒤 무대 공포증 또는 기피증이 생길 수가 있다. 무대에서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의 실력을 제 대로 발휘하였을 때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된다.   (3) 무대 아래에서 천천히 숨쉬기를 하자. ① 코와 입으로 동시에 숨을 빨아들인다. ② 손을 가슴 양쪽에 얹고 다시 한 번 숨을 빨아들인 후 입술 사이로 내쉰다. ③ 다음에는 두 손을 아랫배에 대고 다시 숨을 한 번 들이 쉰 후 아랫배를 천천히 누르면서 입술 사이로 숨을 내쉰다. ④ 들이쉬는 숨은 코와 입으로 하고 내 쉬는 숨은 입술사이로 하면서 이것을 몇번 되풀이 한다. 이렇게 천천히 숨쉬기를 몇번 하고 나면 거친 숨결이 보통때처럼 되고 마음이 안정되어 조용하고 차분한 몸가짐이 된다.   (4) 무대에서 시작하기 전 심호흡을 하고 어깨를 내린 뒤 온몸의 근육을 푼 후 시작한다.     2) 심리적인 방법(마음속에서 결심하는 방법)   (1) 자신감을 갖는다. 자기 스스로 '나도 잘 할 수 있어.'하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즉 자신감 을 키우는 것이다. 어느 누구나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가 생각하 는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자신감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자신을 가지면 자 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2) 자기 최면 최면에는 자기 최면과 타인 최면이 있다. 자기 최면은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 을 거는 것이다. 무대에서 떨리지 않으려면 청중을 자기의 가족이라고 생각한 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가족은 자신을 사랑하며 많은 응원을 보내줄 것이라고 믿 기 때문이다. 그래서 낭송자는 청중을 자기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청 중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약 이것도 잘 되지 않고 가슴이 떨린다면 청중을 '돌'로 생각한다. '돌'앞에서는 내가 떨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낭송 몇 시간 전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병원에서 강심제를 맞는다든 지 진정제를 먹는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심리적으로 '약을 먹었 으니 괜찮겠지.'하는 자기 최면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줄 뿐이다.   (3) 타인 최면 타인 최면이란 타인 즉 가족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이 낭송자에게 잘 할 수 있 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실어주고 칭찬을 해주며 인정을 해 줄 때 자심감을 갖게 되어 자신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타인의 말 한마디가 대단한 힘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해 주어 자신감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기 최면과 타인 최면이 가슴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을 때 낭송자 는 무대에서 두렵지 않고 떨리지 않게 된다.   (4) 마음을 비우자 '이번에는 특별히 잘 해야 한다.' 혹은 '누가 와 있을 텐데.'하고 생각하면 오 히려 더 긴장이 되고 욕심은 정신의 산란을 가져온다. 오늘의 이 대회장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와 더불어 시의 잔치를 베푸는 향연의 장, 축제의 장이라고 생각하며 결과에 집착하지 말자. 그래야 오히려 시의 향기가 살아난다.   *   이제 시낭송할 준비가 되었다면 자신이 낭송할 시를 선택해야 합니다. 시낭송을 하려는 시는 시낭송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시낭송을 하게 될 관객들의 수준에 맞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라면 동시가 어울릴 것입니다. 또한 시낭송하는 시기와 계절에 관련 된 것도 좋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작시를 낭송하는 것입니다. 그 이뉴는 자신이 직접 쓴 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그 느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1468    詩 랑송하는 법 댓글:  조회:4484  추천:0  2016-05-29
시 낭송하는 법   첫째, 바른 소리로 말 맛을 제대로 살려야 합니다.    낱말 하나하나의 소리내기가 바르고, 그 높낮이와 길고 짧음이 정확해야  듣기 좋으며 뜻이 바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말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으며 마치 물 흐르듯 하면서 힘참, 고요함, 평화로움, 기쁨, 그리움 등을 나타내야 듣는 이가 매력을 느껴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은 시 낭송의 바탕입니다.   둘째, 마음의 악보를 가져야 합니다.    시 낭독과 시 낭송은 다릅니다. 시 읽기가 아니라 시 노래니까요. 낭송하고 싶은 시를 여러 번 읽고 뜻을 새기다 보면, 그 뜻을 목소리에 실을 수 있는 악보가 절로 가슴속에 떠오릅니다. 이 악보에 따라 듣는 이의 느낌에 깊이와 여운이 생겨나며, 거기다가 낭송하는 이의 개성이 살아 어울려 주면 '아, 아름답구나!' 하는 감동을 자아나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당당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같은 자연스런 표정의 드러남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안정감을 가지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낭송하는 이의 들뜸이 지나쳐 불거지거나, 어색한 손짓 몸짓들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예의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몸가짐이 반듯하고 옷차림도 단정하며, 무대 오르내리기와 인사법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애씁니다. 여기서 서로의 믿음이 싹트거든요. 낭송하는 이의 이러한 모습에서 듣는 이들은 마음의 옷깃을 바로잡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시인의 시를 빌려서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를 '나의 노래'로 만들어야 합니다.    낭송하고 싶은 시를 수십 번씩 써 보고, 수백 번 외워 오랫동안 빈틈없이 준비해 나의 노래로 되살려야 맥박 같은 힘과 햇볕 같은 위안과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색깔이 있는 낭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도 연습을 되풀이 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낭송을 하다 막히거나, 잘못하는 것은 연습이 모자라는 탓입니다. 여럿이 함께 같은 시를 낭송하는 합송일 경우에는 소리결, 숨결, 마음결까지 맞춰야 조화로움에서 아름다움을 풍기게 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시 낭송은 어떤 성악가의 노래, 어떤 배우의 명연기보다 훌륭한 예술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자리매김은 공연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시 낭송, 예술가로서의 낭송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혼으로 달궈진 시 낭송만이 명시의 감동을 진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 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침 / 박진환 푸석한 의식의 가장자리를 쪼아대는 새소리 부리 끝에 날이 물렸다 단단한 각질로 포장된 어둠의 껍질들이 물린 날에 다시 물려 산비늘로 깎여져 나갔다 매운 눈 비벼 잠깬 매화꽃 입술연지가 묻어나는 봉창에 향이 배었다 밤새 칠흑을 걸쳤다 벗어 던진 가지들이 발기한 알몸을 이슬로 닦아 목욕하는 아침 큰 기지개로 토해내는 한숨에 씹힌 노곤한 체온이 전신의 마디를 풀며 눈금으로 기어다녔다 한밤내 어둠을 헹궈내던 우물물로 주말의 고단한 잠을 닦아내며 놋대야에 넘쳐나는 금박된 아침을 가득히 퍼낸다 귀로(歸路) 아홉 / 박진환       하나씩 램프가 꺼져가고 있다 하나씩 새로 돋아나고 있다 나의 귀로는 불빛이 明滅하는 그런 뒤안길이다 한 생애를 불질러 어둠을 밝힌 더러는 작은 生命의 불꽃인 램프 창밖에 밀려든 四圍의 어둠은 크고 오늘의 램프는 파랗게 不安하다 하나씩 별이 떨어져 가고 있다 하나씩 새로 별이 돋아나고 있다 별은 어둠을 사는 오늘의 위안이다 명멸하는 별들의 뒤안길에서 별에 미치지 못하는 램프는 깜박이고 바람 이는 날엔 차갑게 흔들리고 있다 세 살짜리 꼬마가 그린 흑칠의 태양 한낮의 검은 태양을 자각한 저능의 내 세 살 유년의 망향(望鄕)이다 돌아서도 돌아서도 명멸하는 불빛의 뒤안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별아래 모일 행려(行旅)는 고달프고 꺼지지 않는 지혜의 램프가 걸린 고향은 아직 먼곳에 있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 김기림시                       들과 거리 바다와 기업도 모두다 바치어 새나라 세워가리 한낱 벌거숭이로 도라가 이나라 지주를 고이는 다만 쪼약돌이고저 원하던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 다 버리고 구름같이 휘날리는 조국의 기빨아래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저 맹세하던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어찌 닭 울기 전 세번 뿐이랴 다섯 번 일곱 번 그를 모른다하던 욕된 그날이 아퍼 땅에 쓰러져 얼굴 부비며 끌른 눈물 눈뿌리 태우던 우리들의 8월. 먼나라와 옥중과 총칼사이를 뚫고 헤치며 피흘린 열렬한이들 마저 한갓 겸손한 심부름꾼이고져 빌던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끝없는노염 통분속에서 빚어진 우리들의꿈 이빨로 묻어뜬어 아로새긴 형극 아무도 따를이없는 아름다운 땅 만들리라 하늘우르러 외치던 우리들의 8월. 부리는야 부리우는 이 하나 없이 화혜와 의리와 착한마음 꽃처럼 피어 천사들 모다 부러워 귀순하는나라 내 8월의 꿈은 영롱한 보석 바구니 오! 8월로 돌아가자 나의 창세기 에워싸던 향기는 계절로 썩은연기 벽돌데미 몬지 속에서 연꽃처럼 홀란히 피어나던 8월 오!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무슨 어둠과 함께 들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소리도 차츰차츰 멀어져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 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습니까?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깍아 드리며 / 이승하시                         작은 발을 쥐고 발톱을 깍아드린다 일흔 다섯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나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 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깍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깍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않는다 맞 닿은 창문이 온몸을 흔들며 몸부림 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 다섯 해 동안의 된 바람소리를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시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아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묻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 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츰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불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 비들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너는 늴 늴 늴 가락 맞춰 풀리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1467    청(靑)은 현(玄)과 흑(黑)과 통한다... 댓글:  조회:5027  추천:0  2016-05-29
18강] 시의 소재 (1) ** 가을 밤의 커피 ** 귀뚜라미 소리 유난히 들리는 가을날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고독한 시간에 벗해주는 한잔의 커피 우리들의 삶이란 언제나 동반자가 필요하다 쓰고 단맛이 어우러지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쓰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달기만 하면 무슨 느낌이 있겠는가 귀뚜라미 울어대는 가을 밤 한 잔의 커피는 다시 한 번 인생을 깨닫게 해준다 -용혜원- 오늘부터는 시의 소재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시의 소재 시의 소재란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이 모두 다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주위의 작은 돌맹이나 풀잎 하나부터 우주 삼라만상까지는 물론이요, 오늘의 일상의 문제 에서 부터, 지나간 날들이나 다가 올 미래의 문제까지가 모두 시의 소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에서는 특히 시의 소재를 자연에서 많이 찾고 있는데 이는 자연을 인간 삶 의 이용물로 치부하는 서양과는 달리,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즉 자연과 인간을 대등한 위치 에서 보려는 사고에서 오는 것입니다.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고 했는데 여기에서의 자연은 정신적인 자연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양 에서의 자연은 선비의 도도한 정신이었고, 정신 적 표상이 되기도 하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 다. 이성교 시인은 자연에 대하여 말하기를 자연은 우리에게 물질적으로 무한한 삶의 자원을 공급해 주며 또한 정신적으로 무한한 위안과 기쁨을 준 다고 말하였으며 자연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생 활의 대상이었으며 또한 정신의 고향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를 쓰는 사람들은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그 표현 에 많은 차이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바람직한 일입니다. 지난 번 강의에 "낯설게 하기"를 강의했지만 누군가 한 번 쓴 표현을 또 쓰면 이미 독자는 식상해버리고 그 시를 읽어보기를 거부하게 됩 니다. 그러니 늘 새로운 표현을 찾아야겠지요. 예를 들어 달에 대해서 그 표현을 보면 요즘은 아무도 달아 달아 밝은 달아,와 같은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달에 관한 시인들의 표현을 살펴볼까요? 성찬경의 의 일부입니다 달이여 달이여 쏘련제 로켓트로 Hymen을 찢긴 아름다운 아름다운 빛의 호수여 박성룡의 의 일부입니다. 청동빛 동전에 낮달만 푸르다. 동양의 과부처럼 낮달만 푸르다. 박재삼의 의 부분을 살펴보면 달이여 달이여 네가 나를 따라 올 때의 물같은 그림자는 어떻게 다르게 저 흉칙한 도둑놈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는가 김윤성의 에서 보면 이제는 신비의 베일도 벗겨지고 대재벌의 몰락처럼 쓸쓸한 얼굴 달 전봉건의 에서는 나의 손은 폐허, 그리고 나의 조국 세계가 아픈 눈물이 총알과 엮은 쇠줄기의 망, 길이 155마일의 검은 쇠가시와 가시 사이로 나의 해와 나의 달은 뜨고 지고, 이와 같이 달이란 이미지가 나타나 있는 시들이 그 표현이 각각 다른 것은 시인들이 달이라는 같은 소재를 두고 그 느낌이 다르고 표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박목월 시인은 시의 소재를 어 떻게 붙잡았는가 그의 목소리로 들어보겠습니다. < 청노루>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는 열 두 굽이를 청노루 밝은 눈에 도는 구름 작자가 자신의 작품에 구구한 해설을 늘어 놓는 일이 결코 작품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만일 지나치게 과장된 해설은 그 작품의 표현이 불충분함을 자인하는 일이며 미흡한 해석은 독자의 자연스러운 이해의 범위를 축소 한정시켜, 작품의 너른 공감권을 저해하게 된다. 하지만, 비평가의 편협한 견해에 대한 반발로서 자기 작품을 옹호 하려는 무모한 욕망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이 작품에 대한 비평가들의 편견이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을 노래한 것이라 우겼다. 그것이 해방 직후 의 정치적 공식적인 문학 이론에 눈이 어두운 좌익 계열들의 공격이고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청노루 밝은 눈에 도는 구름 이와 같이 동양적 관조적인 세계가 정치주의적인 편협한 문학관으로서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김동리씨는 다음과 같이 옹호해 주었다. "그들의 심안(心眼)은 어느 듯 으 로 기울어져 오늘의 정치청년들이 운운하고 애써 무시하려는 자연의 발견도 남이 몸으로 지키는 세기적 심연에 직면하여 절대 절명의 궁지에서 불러 본 신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라고 했다. 이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게 되자 가 어디에 있는 절이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해설서에서는 "경주지방의 산중에 있는 절 이름"이라고 친절하게 주해를 가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청운사는 실제의 절 이름이 아니다. 나의 환상의 지도 속에 있는 산중의 상징적인 절 이름이다. 그 당시 나는 나대로의 환상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어둡고 불안한 시대에 푸근하게 은신 할 수 있는 가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조국은 어디나 일본치하의 불안하고 되바라진 땅이었다. 강원도 태백산이나 백두산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우리가 은신할 수 있는 한 치의 땅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 여 나는 깊숙한 산과 냇물과 호수와 봉우리가 있 는 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지도중에서 주산이 태모산(太母山), 그 줄기를 따라 태웅산, 구강산, 자하산이 있으며 자하산 골짜기를 흘러 내려와 잔잔한 호수를 이룬 것이 낙산호, 영랑호였다. 영랑호 맑은 물에 그림자를 드리운 봉우리가 방초봉, 방초봉에서 아득히 바 라보이는 자하산의 보라빛 아지랭이 속에 아른거 리는 낡은 기와집이 청운사이다. 나는 마음의 지도라 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은 정 서가 아른거리는 꿈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러므 로 청운사는 완전히 허구적인 세계의 가공적인 것 임에 지나지 않는다. 청운사와 더불어 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푸른 노루나 사슴이 있을 수 있느냐, 혹은 청(靑)은 현(玄)과 흑(黑)에 통하는 것으로, 그것 은 거무스름한 노루나 사슴이라고 설명한 분이 있 기도 하였다. 물론 푸른 사슴이나 노루가 있을리 만무하다. 다만 노루나 사슴에 푸른 빛깔을 주어 정신적인 동물로서 서정화시킨 것이다. < 청록집>에 수록된 초기 작품에서는 청색을 유달리 좋아하였다. 청노루, 청운사, 자하산 맑은 눈, 흰구름-이 작품의 모든 이미지가 청색 계열이다. 이 것은 중기의 보라빛과 통하며, 나의 작품 세계 에 일관된 기본적인 색조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본질적 인 비밀이 간직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좀 인용이 장황하지만 선배 시인들의 이야기는 많 이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박목월님은 자연을 소 재로 할 뿐만 아니라 환상 속의 자연까지도 시의 소재로 삼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최근에 나온 시 편들을 감상하기로 하겠 습니다. 먼저 노명순님의 입니다. 지리산 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산새들이 바위의 품 속 안 보이는 곳에 알을 수북히 낳아 놓는다고 한다 그래 서 봄이면 이곳에서 노란 부리의 산새들이 부화된다고 한다 깨어지지 않게 살며시 다가가 바위의 품에 포옥 안기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나를 따뜻하게 품어 주면 날갯죽지가 자라 하늘을 훨훨 날으며 맑은 노래 뽑아내는 고운 새라는 것을 그도 모른다 다음에는 노향림 시인의 을 한 번 읽 어보기로 하지요. 불빛 반짝이는 오피스텔 옥상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산동네 골목길 헐벗은 나무들이 진눈깨비에 갇혀서 숨막혀 한다. 마음 지긋이 누르고 누군가 은밀히 견디고 있다. 지난 눈사태에 낮은 지붕들은 더욱 짓눌리어 있고 잡목숲 밑에는 마른 풀들이 목을 움추린다. 낮동 안 벗은 몸 맘껏 햇빛 쬐던 겨울나무들이 내리는 눈으로 막막한 꿈을 헤쳐놓고 잠든다. 가파른 곳엔 흰 파라티온 묻은 하늘이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헐린 한 시절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다. 남아 있는 꿈이 밤새워 뒤척거리다가 눈 속에 묻혀 눈으로 흔들린다, 마지막으로 노현숙님의 을 올리겠습니 다. 오늘은 우연히 여성 시인들의 시만 올리게 되었네요. 어떤 특징이 있는지 나름대로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건 숙제가 아니고, 또 정답 도 없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생각엔 어떤 시인의 시가 좋은가 살펴보십시오. 바다 속에 섬이 기우는 곰소를 지나 벼랑끝 등이 굽은 언덕길을 올라간다 허리를 휘어감는 연보랏빛 쑥부쟁이의 눈 속으로 황홀하게 달려가 빠지고 싶었는지 아슴하게 들려오는 내리막길 물소리 붉게 솟아오른 산들이 간지러운 살 속으로 뒹굴고 있다 너의 계곡 내가 흐를 수 있든지 나의 우물에 너를 배 대게 하든지 황혼의 척추와 척추 사이를 연골로 흔들어 놓기만 하는 가을 들녘, 억새풀 목마름의 시간 어둠이 가라앉아 발목이 돌아선다 가을 변산 까만 별들의 숨소리를 헤아리면서 ================================================   366. 잡초 / 마광수                                                잡초                                          마 광 수   얼마 전에 나는 마당의 잡초를 뽑았습니다 잡초는 모두 다 뽑는다고 뽑았는데 몇 주일 후에 보니 또 그만큼 자랐어요 또 뽑을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어느 누가 잡초와 화초의 한계를 지어 놓았는가 하는 것이에요 또 어떤 잡초는 몹시 예쁘기도 한데 왜 잡초이기에 뽑혀 나가야 하는지요? 잡초는 아무 도움 없이 잘만 자라 주는데 사람들은 단지 잡초라는 이유로 계속 뽑아 버리고만 있습니다     마광수 시집 중에서           마광수 연보   1951년 서울 출생.   1969년 대광고등학교 졸업.   1973년 연세대학교 국문어국문학과 졸업.   1975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1977년 에 시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9~1983년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   1980년 제1시집 발간.   1983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84년 문학이론서 발간.   1984~1995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1985년 제2시집 , 문학이론서 발간.   1986년 문학이론서 발간.   1987년 문학이론서 , 발간.   1989년 에 장편소설 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 등단.        제3시집 , 소설 , 에세이 발간.   1990년 소설 , 에세이 발간.   1991년 문화비평 발간.   1992년 소설 , 에세이 발간.   1994년 문화비평 발간.   1996년 소설 발간.   1997년 제4시집 발간. 문학이론서 , 발간.   1998년 소설 , 에세이 발간. 1998~현재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0년 소설 발간.   2001년 문학이론서 발간.   2005년 소설 , 에세이 발간.   2006년 제5시집 , 소설 , . 문학이론서 ,        에세이 발간.   2007년 제6시집 발간. 소설 , 에세이,        문화비평 발간.   2008년 소설 , 문화비평 발간.   2009년 소설 , 문학이론서 발간.   2010년 제7시집 발간.   2011년 소설 , , , 에세이 ,        , 화문집 발간.   2012년 육필시선집 발간.    
1466    프랑스 시인 - 라포르그 댓글:  조회:4937  추천:0  2016-05-28
라포르그의 시, 시인은 불우해야 제맛이다. 고뇌하는 달  - J. 라포르그             달이 구레나릇을 세운  검은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이  너희들에게 보이지,  바람이 그 3만 6천 개의 나팔을 불어대는 동안에!    잘 있거라 마굿간의 예수처럼  소중히 여겨지는 어린이의 마음이여,  너희들은 빵과자를 얻기 위해서  고아가 된 것을 자랑하고 있구나!  성난 바람 사이를 떠나,  내일이 없는 달 아래서,  하잘것없는 식사와 안식처  긴 베개의 달콤함을 찾아라.  그리고 구레나릇을 세운 구름이여,  비난하는 듯한 옆모습은 집어치워라,  나를 아주 겁쟁이로 만든 것은  3만 6천개의 나팔이다.  나는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보석상자에 넣은 달의 눈이  나의 어린이 같은 유산에  커다란 틈새를 만들었기 때문에  떠나거라, 떠나거라 먼동이 틀 때까지!  나의 비참한 꼴이 너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면  너희들의 얼굴은 긴 베개 속에 감추어라  순진한 타조들이여,  환상의 괴물 역시 비틀거린다.  영원하고 그리운 올가미여!                 제발 한마디만    오! 달 그리고 또 달  행복한 음악에 맞추어서  아! 이런 일 저런 일로  거장들의 높은 현에 맞추어서  아! 나는 백합꽃으로 여신女神 이시스의  오랑캐꽃을 성나게 하고 싶다.  아! 쉬지 않고 지쳐버리고 싶다.  나른함의 꽃장식이 되어 육체의 꽃  이상한 꽃 나의 뇌를!----  오 죽음이여, 그리고?  그러나! 나는 삶을 두려워한다.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아 정말로 나는 저 아름다운 결혼에는  나이가 어리다 ---.      오! 나는 나만의 이 생활에 타격 받는다.  얼마전, 일요일 들을 지나면서!  오! 나에게 호흡할 수 있게 해다오.  그리고 너희들은 결국 성실한 한 권의 책을 지닐 것이다.  그동안 나의 처절함에 대해서 위로해다오  내가 너희들 전체에게 환영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나의 진지한 영혼 때문에 내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그 진지한 나체 때문에 미기美妓 브류네가  용서받은 것처럼              희 롱  아! 나에게 달이 달라붙어서 ---.  무슨 좋은 묘안이 없을까?  죽었다고? 그녀가 우주의 크로르포름에 취해서  잠자는 것은 아닐는지?  대사원의 침묵  풍화작용에 의한 장미 모양의 창  너는 그 태도를 바꾸지 않는구나  내가 고독으로 인해서 숨이 막힐 때에도  그렇지, 그렇지 너는 아주 아름다운 가슴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내가 단 한번도 그 젖을 빨지 않을 바에는?  하루 저녁이면 나의 유치하고 무의미한 작품은  제멋대로 웃어대갰지  나의 당당한 프라토니즘을  낚시꾼의 황홀처럼 생각하다니!  안녕하세요, 여왕은  나는 나의 나방으로 너에게 구멍을 뚫고 싶다.  너의 슬픈 듯한 선체의 접시에 입맞추고 싶다.  성 요한의 머리를 잃은 접시여!  나는 노래를 되찾고 싶다. 너를 나의 입가에서  회유시킬 정도로 감동적인 노래를!  그러나 이미 달과 잘 어울리는 말을 찾아낼 수가 없다.  아! 그 얼마나 모자라는 슬픔인가!               어느 죽은 여인에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끼리의 이야기지만  어떤 우연의 형태를 빌어서만  나를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  -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같이 무릎 꿇기에 필요한 것을  그녀가 먼저 할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나 대신  A나 B, 또는 C를 만난다면  그 어느쪽이나 평생토록 사랑했으련만  나는 그 A나 B를 볼 수가 없다.  아니 그보다 나에게는 그 A나 B 또는 C와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며  그 중 어느 쪽이라도 그밖에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음을,  그녀의 모습으로 알 수 있다.  여자는 온순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  자기의 운명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틀림없이 그 남자를 상대로 여자는 말한다.          상대방은 불을 약간 어둡게 하고  여자를 자기 팔쪽으로 끌어 안는다.  그 이마와  여자의 심장이 외롭게 고동치는 곳에 입맞춘다.  그리고 슬픈 애무로 쓰다듬고  우리의 말을 해주고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관찰하고  모든 것에 맹세하고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흐른다.  나는 그 무렵 여자를 생각하며  밖에서 서성거리며  여자의 방에 불이 꺼져 있음을  이상히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방안의 자기 장소에 있고  지금까지 보았던 것처럼  그 밤의 아름다움으로  상대방을 충실히 사랑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본다. 정말 완전한 짝이다.  여자는 너무나도 충실한 모습 때문에  그 모습이 새로워지고  그 큰 눈이 반짝이고 있다.  나는 한 때의 필요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때의 필요물에 지나지 않고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나의 일생.  또 공간이라는 것을 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같은 것이다.  이처럼 심한 상태를  누가 견딜 수 있을까 ----  아니지! 아니지! 여자를 위해서는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도 미친 사람처럼  이윽고 오게 될 가을과  모든 것을 포함한 바람을 가로지르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  그녀는 멀리서 울고  바람도 흐느끼며  나는 나의 거주지에서 홀로  나의 고매한 마음은 얼어붙고,  사랑도 아무것도 없이 이 상태로,    모든 것은 처참하고 가을은,  다 굳어버리고 무자비하다고 자기에게 얘기하겠지.  그리고 만일 내가 당신을 이런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지나치게 친절하다고 생각하겠지요!  감사합니다!            달의 독주  달이 뜬다,  거리는 꿈결 같다! ---  이미 방직공장도 제재소도 지나  남은 것은 이정표뿐,  하늘에는 장미 빛깔의 과자같은  작은 구름이 흩어져 있을 뿐  거기에 섬세한 초생달이 뜨고  아! 음악도 없는 꿈의 거리 ----  태초에  언제나 어두운  소나무 밭에는 아늑하고 깨끗한  방이 수없이 많구나  하룻밤을 거기서 보낼 수 있다면,  나는 거기에서  멋진 두쌍의 연인이  감시를 벗어나 행동하고 있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지나  하늘을 바라보고 모로 눕는다.  길은 구부러지고 나는 아리엘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으니  호텔의 방만이 있을 뿐이다.  달이 뜬다.  꿈결같은 거리는  끝없이 계속되고  역이 있어 말을 바꾸고  마차에 등불을 켠다  손님은 우유를 가득 마시고  마부는 호차루를 치고  뀌뚜라미 소리와  7월, 밤하늘의 별을 스치며 마차는 나간다  달빛에  곤색의 불의 결혼이 나와 불행을 진정시키고  플라터너스의 그늘이 지고 ---  이 달빛의 홍수에  길가의 급류가  자기의 소리에 도취되어 있다 ---  이 달의 독주를,  나는 쓸 수가 없다,  아 밤의 거리 ;  모든 슬픈 별이 다 나와,  나는 슬퍼지누나  아, 이 시간의 덧없음이여  앞으로 다가올 가을에  지금의 이 기억을 잃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  아주 신선해져서  만일 이같은 시간에  그녀가 역시 숲에서 그 불행을  달빛 속에 가라앉히기 위해서  산보를 간다면  (그녀는 밤늦게 돌아다니기를 몹시 좋아하니까)         달이 뜨기 전의 대화  간절한 소망으로 살고 싶다. 하지만 진실로 꿈은  너무나도 융통성이 있다.  그것이 꿈인지 그 이름 자체가 그런 내용을 품고 있지,  그 무의미성 이외에 말이란 거짓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의 의견의 차이다 ; 책들은  마구 나와 서로 죽이니까    문명히 그렇다! 절대는 권리를 상실한다,  진리가 살아 있는 곳에서는  그리고 내가 만일 항복하여  허망함에 나의 무거운 짐을 되돌려준다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무한함은  하고 말하겠지 :  하지만 가능을 만드는 일터는  불가능을 향해서 울어댄다!  새벽에서 저녁까지  그처럼 많은 하나의 절차이지  실재한다는 것은 그것은 적어도  그 무엇에 어울리는 것인가?  그러니까 장미가  장미의 욕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월 광  그 천체에는 사람이 결코 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따금 나의 배에 심한 일격을 가한다.  아! 달이여, 너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8월의 저녁 침묵의 마술에 네가 떠오를 때!    그리고 구름들의 검은 암초를 뚫고 지나가  마스트를 잃고 바다를 방황할 때에!  오 기어올라가 너의 덧없는 행복을 가져오는 배에서  내 자신을 상실하고 싶다.  맹목이 되어버린 천사여 탄식하는 이스카르스의  회유선의 불행한 등대여!  자살과도 같은 불모의 눈이여  우리 권태로운 자들의 회의로다. 의장이 되어다오.  차가운 두 개골이여 우리의 고칠 수 없는 관료장치의  정치인들을 비웃어라.  오! 최후의 몽롱한 환각이여,  우리의 단단한 뇌수 속으로 들어오라!  오, 순수한 드리아식의 외투를 입은 디안느여,  큐피드의 눈을 뜨고 자고 있다. 너의 화살통을 들어 찔러다오.  아! 날개가 없는 존재에게 너를 감염시키는  하나의 화살로,  지상의 착한 뜻의 마음을!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홍수에 찢겨진 천체여,  너의 순수한 방사선의 한 줄기 빛이,  오늘날 나의 시-트를 적시기 위해서 곡절이 있겠지,  내가 인생으로부터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라포르그: 1860년 우르과이의 몽테비데오출생/ 6살에 프랑스의 타르브에 정착/ 26살에 첫시집 발표/  27세에 폐결핵으로 사망/ 죽은 뒤 1년 후에 발간, 유고집 발간  위험한 책이다.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음에도 그렇다. 나는 라포르그만큼 외롭고 처절하게달을 바라보며 살진 않았다. 그의 매력은 비관과 우울을 호소하거나 외치는 것이 아니라 피에로처럼 희롱하면서 노래하는데 있다. 마치 아주 위험한 외줄을 술에 취한채 타는것처럼. 위험하지만 마음은 불안하지 않다. 온갖 환상과 상념들이 뒤섞여 아름다운 넋두리가 된다. 필연적인 귀결이었는지 그는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다. 그의 시에는 태양의 찬란한 빛이 없다. 그는 달만을 보았다.
1465    詩人의 머리속은 하얗게 비어 왔었고... "그 불빛" 댓글:  조회:4158  추천:0  2016-05-28
그 불빛 - 김신용(1945~ )   청계천 노점에서 막걸리 몇 잔에 얼큰해져 돌아오는 길 꼭 거쳐야 할 경유지인 것처럼 그 불빛을 찾아 들어, 글만 쓰면 배가 고파진다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제에 글을 써야 하느냐고, --, 술주정 같은 푸념을 했을 때     그 서점의 여자는 묵은 책의 먼지를 털 듯 말했었다. 쓰고 싶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세요--. 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은 하얗게 비어 왔었고 눈앞이 아득히 흐려졌었다 언제부터, 왜, 시작(詩作)에서 내적 동기보다 외부 여건이나 환경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일까. 시인 라포르그는 “삶은 실제로 비열한 것이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시에서 나타날 경우에는 카네이션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고 했지만, ‘카네이션’의 의미를 겨우 생각한 오월에도 삶은 더 비참하게 느껴진다. 무지와 나태를, 아니 용기의 부족을 ‘아현동 굴다리 밑’의 ‘그 불빛’은 이 밤도 준엄하게 꾸짖는다. 궁극(窮極)은 멀리 있지 않다.  
1464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라... 댓글:  조회:4340  추천:0  2016-05-27
[17강] 시의 주제에 의한 분류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시의 소재에 대해서 계속 강의를 하겠습니다. 시의 주제가 인간의 정신 작용 중, 知, 情, 意의 어느 측면을 중심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主知 詩, 主情詩, 主意詩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시를 분류한다는 자체가 시를 이해하는데 아무 도움 이 안된다는 학자들도 있으나, 어떤 면으로는 일단의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류에 대해 오늘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1)主情詩(emotional poetry) 협의의 서정시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지요. 즉 인간의 정서적인 측면, 감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 춘 시입니다. 예를 들면 김소월님의 같은 시가 여기에 속하게 되겠지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시이지만 요즘 이제 진달래의 계절이 되었으니 한 번 읽어 보시기로 하겠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 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서정주님은 이 주정시를 다시 셋으로 나누어 ⓐ감각을 위주로 한 시 ⓑ정서를 위주로 한 시 ⓒ情燥(정조)를 위주로 한 시로 구별하였습니다만 너무 복잡하니 여기에선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감각이나 정서는 잘 알겠는데 정조란 무슨 말일까 의심이 되지요? 서정주님의 말을 빌리면 "축적하는 정서를 잘 종합하고 선택하면 정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각과 정서가 그 시간 상의 장단은 있을지언정 둘이 다 변하는 것인데 정조는 변하지 않는 감정 내용, 즉 恒情(항정)을 일컫는다. 성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일편단심, 여 말 정몽주의 한결같은 우국지정, 이조시인 정송강 의 불변하는 事君感情-이런 것들은 모두 다 정조 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시 한 편을 감상하고 다시 강의에 들어 가겠습니다.다만 제가 도중 도중 최근의 시를 올 리는 것은 해당 강의와 전연 관련이 없는 시들입 니다. 다만 많은 좋은 시들을 소개함으로써 지금 시를 쓰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조용미님의 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가시연은 제 어미의 몸인 커다란 잎의 살을 뚫고 물 속에서 솟아 오른다 핵처럼 단단한 성게 같은 가시봉오리를 쩍 가르고 흑자줏빛 혓바닥을 천천히 내민다 저 끔찍한 식물성을, 꽃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꽃인 듯한 가시연의 가시를 다 뽑아버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나는 오래 방죽을 서성거린다 붉은 잎맥으로 흐르는 짐숭의 피를 다 받아 마시고 나서야 꽃은 비명처럼 피어난다 못 가장자리의 방죽이 서서히 허물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금이 가고 있는 소리를 저 혼자 듣고 있는 가시연의 흑자줏빛 혓바닥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남진우님의 해설을 싣겠습니다. "식물이 고요와 평화의 전도사가 아니라 피와 비명 이란 공격적 동물성을 동반하고 현전할 때 사람들은 잠시 두려움 내지 혐오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화 자가 이라고 말한 가시연의 생 태는 극적으로 과장된 화자의 묘사력에 힘입어 생 생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읽는 사람에게 육박해 온다. 이 시엔 퇴폐적 정서라고 할 만한, 지나치게 농익은 존재가 부패하며 내는 병적 징후 내지 여성성에 대 한 혐오가 어른거린다." 다시 강의로 들어가겠습니다. 2)주지시(主知詩,intellectual poetry) 인간의 정신세계 중 지적인 면에 치중한 것을 지 칭하는 것이지요. 이런 시에서는 인간의 지적인 기능들 즉 위트, 아이러니, 패러독스, 말장난(pun) 등이 크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송욱 님의 같은 시 입니다. 솜덩이 같은 몸뚱어리에 쇳덩이 같은 무거운 집을 달팽이처럼 지고, 먼동이 아니라 가까운 밤 밤이 아니라 트는 싹을 기다리며, 아닌 것과 아닌 것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矛盾(모순)이 꿈틀대는 뱀을 밟고 섰다. 눈 앞에서 또렷한 아기가 웃고 뒤통수가 온통 피 먹은 白丁(백정)이라. 아우성치는 子宮에서 씨가 웃으면 亡種(망종)이 펼쳐가는 萬物相이여! 아무튼 무슨 뜻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정주는 이런 주지시를 또 역시 셋으로 나누어 진다고 하였습니다. 그 설명을 참고로 보면 ⓐ기지의 시-김삿갓의 한시, 라테퐁느의 우화시 ⓑ지혜의 시-릴케의 ⓒ예지의 시-구약성서의 향가중의 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주의시(主意詩 poetry of will) 인간의 정신세계 중 의지의 측면에 중점을 놓은 것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유치환님의 같은 시입니다. 잘 아는 시이지만 역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緘默(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오늘 강의는 너무 딱딱하지요? 이렇게 딱딱한 것은 반드시 시를 쓰는데 별 필요 없는 것들이기 쉽습니다. 그냥 이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지요, 시의 분류에 주지시, 주정시, 주의시라는 것이 있다는 것만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요즘 나온 시들을 몇 편 읽어보겠습니다. 김영남의 를 올립니다. 내 책상 앞에는 그림 한 장이 붙어 있는데 그건 한 스님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가시나무가 엉클어진 깊은 산 속 돌밭길을 홀로 묵묵히 가고 있는 뒷모습. 나는 그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붙여 놓은 그 그림은 이미 그림이 아닙니다. 이건 살아 있는 한 장의 풍경입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고 벽 속에서도 가고, 벽 바깥에서도 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저렇듯 영혼이 높고 깊은 사람은 훌륭한 뒷모습을 거느리나 봅니다. 그동안 이 地上의 앞모습만 보면서 가꾸어온 나는 세상을 갑자기 깨어나게 하는 뒷모습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저렇게 훌륭한 뒷모습도 가꿀 수 있다는 것을. 오늘부터 나도 나의 뒤란을 가꾸기로 합니다. 우선, 뒤란이 아름다운 말부터 구사하기로 합니다. 송수권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이런 여자라면 딱 한 번만 살았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하나 없는 계산도 할 줄 모르는 여자 허나, 세상을 보고 세상에 보태는 마음은 누구보다 넉넉한 여자 어디선가 숨어 내 시집 속의 책갈피를 모조리 베끼고 찔레꽃 천지인 봄 숲과 미치도록 단풍드는 가을과 내 시를 좋아한다고 내가 모르는 세상 밖에서 떠들고 다니는 여자 그러면서도 부끄러워 자기 시집 하나 보내지 못한 여자 어느 날 이 세상 큰 슬픔이 찾아와 내가 필요하다면 대책없이 떠날 여자, 여자라고 말하며 "여자"란 작품 속에만 숨어 있는 여자 이르쿠츠크와 타슈겐트를 그리워하는 정말, 그 거리 모퉁이를 걸어가며 햄버거를 씹는 전신주에 걸린 봄 구름을 멍청히 쳐다보고 서 있는 이런 여자라면 딱 한 번만 살았으면 좋겠다 팔십 리 해안 절벽 변산 진달래가 산벼랑마다 드러눕는 봄날 오후에.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공부란 원래가 좀 딱딱하고, 골치 아프고 그런 것 입니다. 도중 도중 나오는 좋은 시를 읽는 재미로 라도 끝까지 공부를 해보시면 여러분도 알지 못하 는 사이에 실력이 향상 되실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부은 만큼 물이 다 흘러버립니다. 그러나 콩나물은 쑥쑥 자라듯이 여러분이 강의를 받은 즉시 다 잊어 버린다고 해도 여러분의 지식은 쑥쑥 자랄 것입니다 ========================================================   365. 유등 연지 1 / 이태수                                               유등 연지·1                                 이 태 수   한여름, 마음이 먼저 간 뒤 발길도 슬며시 따라가 닿은 유등 연지. 비 그친 오후 한때 어깨 부딪히는 초록 저희 우산들 사이 연꽃들 환하다. 무더기로 환하다. 왜가리 떼 날아 내려 긴 부리 세우고 물 밑을 쪼아 대는 동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으로 밀어 올리는 불길, 불꽃들, 진흙 물 위를 밝히는 연등들은 그러므로 그윽하게 아프다. 햇살 뛰어내릴 때보다 해거름에 다가갈수록 환해진다. 그 아픈 언저리. 왜가리도, 내 마음도 마냥 붙박이가 되고 있다. 등 뒤에는 누군가의 아득한 독경 소리. 허공을 흔들고, 연꽃잎을 흔든다.     이태수 시집 중에서      
1463    詩作에서 관념은 가고 이미지만 남아라... 댓글:  조회:4494  추천:0  2016-05-27
[16강] 시의 소재와 주제 한 잔의 커피/ 용혜원 하루에 한잔의 커피처럼 허락되는 삶을 향내를 음미하며 살고픈데 자고나면 어느새 마셔버린 쓸쓸함이 있다 어느 날인가 빈잔으로 준비될 떠남의 시간이 오겠지만 목마름에 늘 갈증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 하루하루가 터져오르는 꽃망울처럼 얼마나 고귀한 시간들인가 오늘도 김 오르는 한 잔의 커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마시며 살고 싶다 오늘부터는 시의 소재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시의 주제와 소제 여러 책을 보아도 시의 소제(제제)에 대해서 설명 하지 주제에 대해선 따로 설명한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제와 소제는 엄연히 다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 동안 하던 공부와는 달리 조금 까다로울 수가 있습니다만, 늘 말씀 드렸지만 시험도 없으니 외울 필요도 없고 그냥 이해만 하시면 되니 걱정 마시고 강의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1)주제의 의미 먼저 영어의 테마(theme)와 서브젝트(subject)가 다 주제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문학비평 사전에서 보면 테마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섭의 [비평용어사전]을 살펴보면 "원래 테마는 나무의 잎과 잔가지들을 달고 있는 중심 줄거리란 뜻을 가진 낱말이다. 그러니까 문 학작품의 소리, 낱말,비유,문장 등의 요소들이 나뭇잎새와 잔가지라면, 그것들을 다 흩어지지 않게 하면서 그 자체는 눈에 뜨이지 않는 중심의 큰 줄기가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즉 테마는 구조 적 개념이다"고 설파되어 있습니다. 정한모 박사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에 있어서 테마라고 하면 보통은 시 가운데 표현된 기본적인 관념, 혹은 태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시 속에 형상화된 중심 사상 혹은 의미가 바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 문에 테마는 이미지나 상징, 비유 등에 대해서 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는 주제라는 것이 이처럼 관념, 태도, 사상 혹은 의미의 성격을 지니기는 하지만 시 속 에서 생경하고 직접적인 모습 그대로 드러나서 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기적인 총체로서의 시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면서 적절하게 용해될 필요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시를 보았을 때 그 시를 읽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중심 사상, 의미 그런 것들이 시의 주제 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제와 소제는 무엇이 다른가 알아보겠습니 다. 2)소제와 주제 김춘수님의 [시론]에 나온 이야기를 먼저 읽어보 지요. "시는 좁고 답답한 것이 아니라, 넓고 큰 것이다. 자연만이 또는 자연 중의 어떤 부분만이 또한 우리 행동의 어떤 부분만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든가 하는 구속은 원래 없는 법이다. 돌멩이와 같은 무기물에서부터 하루살이와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 지 시의 제재가 다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과 우리의 행위나 마음 먹은 것, 바라는 것, 느끼는 것 모두가 시의 소제가 된다고 할지라도 이 같은 것들이 그대로 머 무른다면 그 것들은 아직도 시 이전의 소재, 즉 제 재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그 소재를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고 들어와서 그 것을 시로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소재는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김현승님의 의 1.2연을 읽어보지요. 아,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잇발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충추는 땅-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이 시에서 소재는 제목 그대로 파도이겠지요. 그 러나 파도란 소재 자체만으론 아직 시가 아닙니다. 김현승의 상상력과 결부되어서 도취와 정열이라는 주제의 단계로 바뀌면서 시가 태어납니다. 이처럼 소재가 주제로 발전하는데에는 시인에 의한 동기화(motibation)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동기화는 낯설게하기를 주장했던 러시아의 형식 주의자들이 주장한 개념인데 여기에서는 생략을 하겠습니다. 3)주제의 내용 주제의 내용을 생각하는데에 있어서는 사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시에 있어서 주제란 한정이 있을 수 없기때문에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한모박사님의 분류 에 따르면 시의 주제가 인간의 정신작용 중, 知, 情, 意의 어느 측면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주지시, 주정시, 주의시 이 세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를 분류하고 이론화하는 것이 꼭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춘수님은 "시를 이해하는데 편리한 방법이란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유형학적 분류에 따라 시를 이해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단히 편리한 듯한 이 방법은 그러나 대단히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를 이해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공부하시는데 어려운 이론이 있더라도 너무 부담을 갖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십 시오.늘 말씀드리지만 많이 잊어버리시면서 공부하십시오. 참고만 하면 됩니다. 여기 이론을 다 외운다고 시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자기 나름대로 시를 많이 써보시고, 또 여러 사람 앞에 많이 발표해 보시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물론 소재들을 무심히 볼 것이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해야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요. 그러면 그런 의미에서 좋은 시 한 편을 읽어보기로 하지요. 안도현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살구꽃...... 살구꽃......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 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 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 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디엔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낮에도 살구꽃....... 밤에도 살구꽃....... 정효구님의 해설을 덧붙입니다. "안도현은 살구꽃 앞에서 을 한껏 가동시키고 있다. 그는 살구꽃을 보면서 수천,수 만 개의 알전구를 떠올린다. 그는 또한 살구꽃의 벌떼들을 보면서 전깃줄이 웅웅대는 소리를 떠 올린다. 그는 살구꽃을 매달고 있는 살구나무를 보면서 그 속에 들어 있음직한 발전소를 연상한다. 살구꽃은 이런 발전소를 숨기고 있기에 낮에도 피 어나고 밤에도 피어난다. 꽃 앞에서 불의 상상력이 자극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안도현이 가동시킨 불의 상상력은 진부하지 않고 이채롭다. 안도현님처럼 누구나 보는 살구꽃에서 이런 훌륭한 시를 상상해내듯,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시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알고 그 보는 눈을 먼저 길러야겠습니다. 그럼 다시 강의에 들어가겠습니다, 주제에 따른 시 분류를 시도한 학자들 가운데서 특히 개성있는 이론을 펼친 사람은 노드롭 프라 이(Northrop Frye)입니다. 그는 "劇은 서사적(이 야기 중심적)인 양식, 서정시는 주제적인 양식 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서정시의 주제를 무려 24개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는 다만 그의 분류를 제목 정도만 나열하니 이런 분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읽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託意的(탁의적)인 시-다른 것에 비기어 상징적 으로 나타낸 시 *공적인 종교시 *찬미시 *공동사회의 시 *참가의례:국가, 군가 등의 가사 *주문(술사들의 주문) *만가, 혹은 애가:애도시 *장송, 송시 *碑銘詩(비명시);비문 *영탄 *우울의 시 *경구 *풍자 *역설의 시 *전원시(pastourelle) *향락의 시 등 무려 24가지로 구분하였으나, 이는 프라이의 분류일 뿐입니다. 우리와 시대적, 지리적, 정신적 차이가 있으니 다만 이렇게도 나누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일고 싸악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주정시,주지시, 주의시에 대해선 내일 강의하겠습 니다. 오늘 너무 길어졌군요. 마지막으로 또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오규원님의 를 한번 읽어보지요.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한 여자가 흐르지 않고 강가에 서 있다 안고 있는 아이에게 한 쪽 젖을 맡기고 강이 만든 길을 보고 있다 길은 강에만 있고 강둑에는 흐린 하늘이 바짝 붙어 있다 아이는 한 손으로 젖을 움켜쥐고 넓은 들에서 하늘로 무너지는 강을 보고 있다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물속에는 날개가 젖지 않는 새 한 마리가 강을 건너가고 있다 정효구님의 해설입니다. "최근 들어 오규원은 를 이야기 하였다. 짧게 말하자면 그가 이야기한 란 진술이 배제되고 묘사(이미지)만 있는 시를 뜻한다. 오규원이 1999년도에 발간한 그의 시집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는 이런 로 이루어져 있다. < 날이미지의시>는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시인의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담담한 어조로 그 풍경만을 묘사하는 것이 시의 전부이기 때문 이다. 오규원의 시 도 이런 의 일종이다. 그는 이 시에서 강과, 그 강을 중심으로 한 주변 풍경을 파스텔풍의 울림을 독자들에게 은밀히 안겨 준다. 그가 묘사한 이런 풍경을 이 시에서 응시하는 기쁨은 그 어느 기쁨 보다도 진하고 오래간다. 잘 읽으셨습니까? 오규원 박사님의 란 그 분의 새로운 주장입니다만 매우 생경 하면서도 신선한 감각입니다. 앞으로 주의 깊게 그의 시들을 살펴 볼 일입니다. ===============================================================   364. 절망의 빛깔은 아름답다 / 이태수                                     절망의 빛깔은 아름답다                                 이 태 수   이룰 수 없는 꿈은 아름답다. 팔을 뻗고 발을 구르는 이 목마름은 아름답다. 뜬눈으로 밤을 건너거나 입술 깨물며 돌아서도 가눌 수 없는 이 눈물은 아름답다. 저만큼 가고 있는 네 등 뒤에 눈길을 주며, 강의 이쪽에서 돌이 되는 가슴은 아름답다. 지워도 지워도 되살아나는 아픔과 상처, 강의 저쪽과 이쪽, 그 사이의 하늘에 번지는 절망의 빛깔은 아름답다.     이태수 시집 중에서  
1462    시선과 시선 마주치기 댓글:  조회:4567  추천:0  2016-05-27
누군가의 시선이 살결에 닿을 때, 그게 느껴지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와서 만진 것도 아닌데, 그에 담긴 마음까지 느껴지는 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린 떨어져 있지만 시선과 시선으로 모두 이어져 있는 것 아닐까요. 따뜻한 시선이 더욱 필요한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박한신 기자  
1461    꼬맹이들의 동시모음 댓글:  조회:4582  추천:0  2016-05-27
    학교 가기까지의 방황과 유혹을 담담히 담아낸 시     진솔한 숨은 사랑이야기~~ㅎ       무모함을 경계하는 시~     어느 유치부 아이의 책임감이 돋보이는 시       자신에 대한 성찰.. 그리고 얻어낸 용기~ 그리고 반전 있음 ㅎㅎ       급식소 아주머니를 향한 냉철한 비판이 돋보이는 시       개인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고와 고찰을 요구하는 시~    
1460    <한글> 시모음 ///윤동주 년보 댓글:  조회:4928  추천:0  2016-05-26
    + 우리글 한글 1학년 교실에 가 보면 국어 책을 편 아이들 모두가 무궁화꽃이시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써야 한다고 세종 대왕님이 심으신 스물여덟 그루의 한 글 나 무 ...... 그 밑에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 잎사귀를 줍는다. ㄱ도 줍고 ㄹ . ㅁ 도 줍는다. 주운 것은 그들 몫. 처음으로 그들에게 빛깔이 생기고 처음으로 그들에게서 향내가 난다. 골목대장 상수도 오늘부터는 겨레의 아들이 된다. 울보 은옥이도 오늘부터는 겨레의 딸이 된다. 그들에게 꽃. 달. 별 ...... 이런 말을 쉽게 알고 쉽게 쓰게 하기 위하여 한글은 있고 한글을 위하여 이 땅에는 1학년 . 2학년 ...... 수많은 어린 세종 대왕님이 살고 계신다.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한글이 좋아요 ㄱ, ㄴ, ㄷ, ㄹ … ㅏ, ㅑ, ㅓ, ㅕ … 자음과 모음이 모여 글자를 이루니 이것이 한글이라.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이니라. 쓰기 편하고 읽기도 쉬우니 누구나 쉽게 배우리라. 다양한 표현도 가능하니 누구든 한글에 감동하리라. 한글이 쓰여 있는 옷을 입고 한글이 쓰여 있는 모자를 쓰고 하루를 생활하는 사람들 작은 실천이 곧 한글 사랑 나라 사랑이다. 끝말잇기, 빙고게임, 수수께끼 놀이 한글 게임을 하면 서로 친해지고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힘은 커진다. 2009년엔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의 공식문자가 되니 우리 한글의 자긍심도 뿌듯 "한글이 좋아요." 우리 모두 널리 알리고 마음껏 즐기자고요. (이제민·시인, 충북 보은 출생)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중 하나.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톤섬의 바우바우시가 이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도입. + 한글 예찬 반 천 년 넘는 이전 한반도 조선에 인류사에 우수성이 남을 소리글자 세종임금 삼십 년 고뇌로 빛을 발해 위대한 한글이 창제되었어라 두 획만 그어도 글자 되고 스물네 자 어울리면 못 쓸 말이 없는 민족의 말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이 보배로운 표음문자 세상의 글자 중 말소리를 가장 많이 적으며 감성을 가장 사실 가깝게 나타내니 그 독창성 과학적 우수성은 세계가 아네 유네스코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했네 이제, 소중한 민족 자산 긍지와 자부심으로 아끼고 살려 길이 보존해야 하리 글자 없는 소수민족 글눈이 되게 해야 하리 우리 한글이 세계 공통어 되는 날 오리니 세계로 나가자 한민족이여, 한겨레여 우리 미래는 밝다, 희망이 있다. (조남명·시인, 충남 부여 출생) + 우리말 네게는 불멸의 향기가 있다. 네게는 황금의 음률이 있다. 네게는 영원한 생각의 감초인 보금자리가 있다. 네게는 이제 혜성같이 나타날 보이지 않는 영광이 있다. 너는 동산같이 그윽하다. 너는 대양(大洋)같이 뛰논다. 너는 미풍같이 소곤거린다. 너는 처녀같이 꿈꾼다. 너는 우리의 신부(新婦)다. 너는 우리의 운명이다. 너는 우리의 호흡이다. 너는 우리의 전부이다.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이 일을 어쩌리. 네 발등에 향유를 부어 주진 못할망정, 네 목에 황금의 목걸이를 걸어 주진 못할망정, 도리어 네 머리 위에 가시관을 얹다니, 가시관을 얹다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세상에 이럴 법이... 우리는 못났구나, 기막힌 바보로구나. 그러나, 그렇다고 버릴 너는 아니겠지, 설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내 귀에 네 입술을 대어 다오. 그리고, 다짐해 다오, 다짐해 다오.   (김동명·시인, 1900-1968) + 훈민정음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세종대왕의 말씀 세계 60여국에서 400여개 대학에서 배우는 과학적이고 뛰어난 대한민국 글자 얘들아! 자음 모음 합해서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아름다운 글로 아름다운 동시를 쓰자. 우리말, 우리 글이 있는 나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얘들아! 땅, 하늘, 바다, 산 꽃, 토끼, 개, 물고기 자유로운 한글로 표현해보자. (박선자·시인, 전남 고흥 출생) + 한글 한글은 우리말의 집이다. 하늘의 뜻을 받아 우리말의 집을 지으신 분에게 나는 영원히 감사를 드린다. 영혼의 말을 적는 글은 한글이다. 내가 살아온 평생 나는 한글에서 우리들의 얼을 찾았고 겨레의 음성을 또 거기에서 들었노라. 지금 그는 어찌되었을까 43년 동경 신지꾸 작은 우리의 책방에서 최현배님의 '우리말본'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성도, 이름도, 고향도 모르면서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알고 싶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주시던 한글 그 글자 속엔 어머님의 음성과 아버지의 음성이 지금도 숨쉬고 있다. 한글의 모국어의 집이다. (황금찬·시인, 1918-) + 한글 이름 쓰기 좋고 읽기 좋은 과학적인 글 우리 한글 한글을 사랑해서 아들 이름도 한글로 큰 소나무처럼 자라 늘 푸르라고 "한솔" 우주처럼 큰마음의 사람 되라고 "한울" 이름 예쁘다고 누가 지었냐고 할 적마다 어깨가 으쓱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한글 이름 한글날 맞아 더욱 자랑스럽네. (이문조·시인) + 모국어 징용으로 끌려간 동포들이 일본 땅 탄광 합숙소 벽에다 '고향에 가고 싶어요'라든가 '배가 고파요'라고 모국어로 쓴 말들이 언뜻언뜻 와 닿으면서 동포들의 탄 묻은 얼굴에 맺힌 눈물방울이 구주 하늘 아래 얼어붙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마음이 몇 안 되는 글자를 벗어나 마구 가슴 벅차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내 가슴이 식지 않은 화로처럼 다독일수록 살아나는 불씨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까 내가 수없이 뱉어내는 말들이 그들의 절실한 말에 비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서투른 붓끝으로 밝히는 내 가슴은 아직 모국어의 깊은 맛에 닿지 못하고 껍질만 벗기고 있는 것인지 (강영환·시인, 1951-) + 말의 빛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며 자라는 고운 우리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 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푸르른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모국어 엄마(母)가 생명의 근원이듯이 모국어(母國語)는 겨레의 뿌리. 남의 나라 말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로 갖가지 감정을 표현하고 시를 쓸 수 있다는 것 크나큰 기쁨이다 놀라운 축복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아가들의 첫말 '엄마'라는 두 글자는 또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가. (정연복·시인, 1957-) ============================= 윤동주(尹東柱, 일본식 이름: 平沼東柱 히라누마 도슈[*]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9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은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사료된다는 견해가 있고 또한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몽규는 고종 사촌이었고, 가수 윤형주는 6촌 재종형제간이기도 하다. 목차    [숨기기]  1 생애 1.1 생애 초반 1.2 소년 시절 1.2.1 중학 시절 1.2.2 연희전문 시절 1.3 일본 유학 1.3.1 창씨개명 1.3.2 일본 유학생활과 체포 1.4 투옥과 최후 1.5 사후 2 작품 3 경향 및 평가 4 학력 5 상훈 경력 6 기념관과 기념물 6.1 기념관 6.2 기념물 7 가족 관계 8 기타 9 대중 문화에 나타난 윤동주 9.1 방송 10 같이 보기 11 주석 12 참고 자료 13 바깥 고리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당시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明東村, 지금의 지린 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지신진)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 본관은 파평으로 간도 이주민 3세였다. 19세기 말,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기근이 심해지자 조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도 집안을 이끌고 1886년경 함경도에서 만주로 이주하였다.[2]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은 함경북도 종서군 동풍면 상장포에 살다가 1886년 북간도 자동으로 이주하였으며 할아버지 윤하현은 명동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3] 아버지 윤영석은 1910년 독립지사인 김약연의 누이동생 김용과 결혼하여 명동촌에 정착하게 된다.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기숙사인 핀슨홀   친구들과 함께 가운데는 문익환, 오른쪽은 윤동주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고모 윤씨는 송신영에게 시집갔는데, 고모의 아들이 독립운동가이자 그의 친구였던 송몽규였다. 당숙은 윤영춘으로 후일 가수가 되는 윤형주는 그의 6촌 재종이었다. 소년 시절[편집] 1925년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에 입학하여 재학 시절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을 발간하였다.[4] 중학 시절[편집] 1931년 14세에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를 졸업하고,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학교(大拉子學校)에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여,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35년 소학교 동창인 문익환이 다니고 있는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하였다. 그해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가 간행한 학우지 숭실활천(崇實活泉) 제15호에 시 공상(空想)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어, 문익환과 함께 용정에 있는 광명중학교로 편입하였다. 광명중에서 그는 정일권 등을 만나게 된다. 연희전문 시절[편집]  연희전문학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37년 광명중학교 졸업반일 무렵,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의학과 진학 희망)과 갈등하나, 조부의 개입으로 연전 문과 진학을 결정한다. 1938년 2월 17일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京城)으로 유학, 그해 4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숙생활을 하며 그는 저녁밤 하숙집 근처를 산책하며 시상을 떠올리고 시를 짓거나 담론을 하였다.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기숙사를 나와 북아현동, 서소문 등지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친구 라사행과 함께 정지용 등을 방문, 시에 관한 토론을 하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 해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이 때에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본 유학[편집]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교대학(立敎)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10월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 영문학과에 편입하였다.[4] 도시샤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정지용이 다닌 학교로 일본 조합교회에서 경영하는 기독교계 학교였다.[5] 창씨개명[편집]   서시 육필 원고 (1942년)   윤동주의 원고 원본  창씨개명, 서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윤동주 집안은 1941년 말 '히라누마'(平沼)로 창씨한 것으로 돼 있다.[6] 일본 유학에 뜻을 둔 윤동주의 도일을 위해선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를 개명하게 되었다. 윤동주의 창씨개명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것이었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윤동주가 전시의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을 졸업하면서1941년 연말에 "고향 집에서 일제의 탄압과 동주의 도일 수속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했다[7][8] 는 것이다. 개명 후 윤동주는 매우 괴로워했다 한다. 창씨개명계를 내기 닷새 전에 그는 창씨개명에 따른 고통과 참담한 비애를 그린 시참회록을 썼다.[9] 윤동주의 창씨개명설은 해방 이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1990년대에 와서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유학생활과 체포[편집]   친구이자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앞줄 가운데가 송몽규, 뒷줄 오른쪽 맨 끝이 윤동주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중퇴하여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의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경내에 있는 윤동주 시비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1 형사부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 명의로 된 판결문은 징역 2년형을 선고하면서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적혀 있다.[10] 교토지방 재판소에서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투옥과 최후[편집]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룬 후간도 용정에 유해가 묻혔다. 향년 29세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오라' 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후,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는 주장 등 그의 죽음은 일제 말기에 있었던 생체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의문이 수차례 제기되었다.[11] 사후[편집] 1947년 2월 정지용의 소개로 경향신문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고 함께 추도회가 거행된다. 1948년 1월,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1962년 3월부터 독립유공자를 대량으로 발굴 포상할 때, 그에게도 건국공로훈장 서훈이 신청되었으나 유족들이 사양하였다. 1990년 8월 15일에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85년에는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윤동주문학상이 한국문인협회에의해 제정되었다. 작품[편집] 윤동주의 시집은 사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새 명동》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 유고시집에 실려 있다. 1948년의 초간본은 31편이 수록되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추가하여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리게 되었다.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경향 및 평가[편집] 민족적 저항시인,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되며,[12][13] 1986년에는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14] 북한에서는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15] 그의 시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서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1] 학력[편집] 만주 북간도 밍둥 소학교(명동소학교) 졸업 만주 지린 다라쯔 학교(대랍자학교) 수료 만주 북간도 언전 중학교(은진중학교) 수료 평안남도 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 수료 만주 지린 광밍 중학교(광명중학교) 졸업 경성 연희전문학교 졸업 일본 릿쿄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일본 도시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제적 상훈 경력[편집] 서울 숭실고등학교 명예 졸업장 추서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국민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기념관과 기념물[편집] 기념관[편집] 연세대학교   핀슨홀과 윤동주 연세대는 2013년 2월 6일, 캠퍼스 내의 핀슨홀을 윤동주 기념관으로 개편할 것을 발표하였다.[16] 종로구 종로구는 2012년 7월 25일,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윤동주 문학관의 개관식을 연다고 발표하였다.[17] 연변 연길의 용정 중학교에 윤동주 기념관이 있다.[18] 기념물[편집] 1968년 11월 2일 연세대학교 등이 모금한 성금으로 연세대에 유작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 시비(詩碑)’가 건립되었다. 1985년부터 《월간문학지》에서 그를 기념한 「윤동주문학상」 수상자를 매년 선정, 수상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19] 1992년 9월, 모교인 용정 중학교에 〈서시(序詩)〉가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20] 1995년 일본 도시샤 대학에 친필 〈서시〉와 일본어 번역본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21] 2005년에는 윤동주가 가장 좋아했던 시인 정지용의 시비가 그 옆에 건립되었다.[22] 또한 교토 대학 부근 그가 머물던 곳에 기념비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증조부 : 윤재옥(尹在玉, 1844 ~ 1906) 조부 : 윤하현(尹夏鉉, 1875 음력2.1 ~ 1948 9.4) 조모 : 강씨부인 고모 : 윤신영(尹信永) 고모부 : 송창희 고종사촌 : 독립운동가 송몽규 宋夢奎, 1917.9.28 ~ 1945.3.7) 내종조카 (송몽규의 조카) : 소설가 송우혜(宋友惠, 1947.12.5 ~ ) 부 : 윤영석(尹永錫, 1895 8.1 ~ 1965 4.20) 모 : 김용(金龍, 1891 10.1 ~ 1948 9.26) 누이 : (요절) 누이 : 윤혜원(尹惠媛, 1924 ~ 2011.12.11) 매제 : 오형범(1924 ~ 2015 3.11) 조카 : 오철주 남동생 : 윤일주(尹一柱, 아명 윤달환, 1927 11.23 ~ 1985 11.28 前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 제수 : 정덕희 조카 : 윤인석(尹仁石, 1956 ~ 現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남동생 : 윤범환 (요절) 남동생 : 윤광주 (尹光柱, 아명 윤성주, 1933.5.15 ~ 1962 11.30 시인) 외삼촌 : 독립운동가 김약연(金躍淵, 1868 9.12 ~ 1942 10.29) 당숙 : 윤영춘(尹永春, 1912 12.12 ~ 1978 4.29) 재종형제(윤영춘의 아들) : 가수 윤형주(尹亨柱, 1947 11.19 ~ ) 사돈 : 정병욱(鄭炳昱, 1922 4.21 ~ 1982 국문학자) 기타[편집] 윤동주의 창씨개명은 1990년대 이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창씨개명설을 지적받게 되자 윤동주를 연구하던 한 교수는 이를 언급하기를 꽤 난처해했다 한다.[6] 윤동주의 창씨개명설은 2005년 이후에 공식적으로 언급 인정되었다.
1459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댓글:  조회:5102  추천:0  2016-05-26
청산(靑山)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蒼空)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욕심(慾心)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보고 덧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 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나옹선사 (1262-1342) 고려 말기의 고승[공민왕의 왕사] ``````````````2016 / 1 / 8 등 이고진 저늙은이 짐벗어 나를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조차 지실까 정 철 (1536-1593) ; 조선대 문인 [송강가사로 유명함] 춘산에 눈녹인 바람 건듯불고 간데 없다 저근듯 빌어다가 머리 우에 불리고자 귀밑의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우 탁(1262-1342) 고려 말기의 학자 [성리학에 뛰어남] 짚 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희야 박주산챌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한 호 (1543-1605) 조선대 명필 한석봉 [떡장사 어머니 이야기가 유명함] 마음이 어린후니 하는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 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인가 하노라 서경덕 (1489-1546) 조선 전기의 대학자 [평생을 벼슬하지 않고 학문만 함] 장검을 빠혀 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대명천지에 성진이 잠겼에라 언제나 남북풍진을 헤쳐 볼까 하노라 남 이 (1441-1468) 조선초 장군 [유자광의 모함으로 죽음] 찬 날에 갓 피온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야 꽃이온 양 마라 임의 뜻을 알괘라 조 식 (1501-1572) 조선 전기의 큰 학자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전념함]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 겨워 하노라 송 순 (14 93-1583) 조선 전기 학자 [벼슬 그만 두고 독서와 문장을 즐김] 오리의 짧은 다리 학의 다리 되도록애 검은 가마귀 해오라비 되도록 항복무강하사 억만세를 누리소서 김 구 (1488-1543) 조선 전기 학자 [서예와 문장에 뛰어남] ```````````````이 래 2016 / 1 / 8 / 등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1517-1584) 조선 전기 학자 [서예에 뛰어남]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하리라 이 황 (1501-1570)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도산서원에서 후진 양성함]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 하노라 ````````````2016 / 1 / 8 / 등 임 제 (1549-1584) 조선 전기의 풍류남 샛별지자 종다리 떳다 호미메고 사립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뱅이 다젖는다 소치는 아이놈은 상기아니 일었느냐 재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가려 하느냐 김천택 (?-?) 조선 영조때 가인 [평민출신의 가객으로 청구영언등 많은 작품을 남김] 백두산 돌 칼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 말먹여 없애리 남아 나이 이십에 나라 평정 못할진데 후세에 뉘라서 대장 부라 하리요 남 이 (1441-1468) 조선초 장군 [남아의 기개로 우국충정을 그린 이 시한수 때문에 간신 유자광의 모함 으로 죽음] `````````````````2016 / 1 / 8 / 등 철령 높은곳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 원루를 비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정 철 (1536-1593) 조선 선조때의 문신 [시인]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등 가사집이 있음] 한손에 가시쥐고 또 한손에 막대들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 길로 오더라 우 탁 (1262-1342) 고려 말기 학자 [성리학에 뛰어남]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 놋다 왕방연 ( ? ) [사육신 사건 때 단종을 귀양지 영월까지 모셨던 사람]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 다 기울어 지단 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유응부 (?-1456) 사육신의 한사람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에라 김종서 (1390-1453) 세종 때의 뛰어난 장군 [뒤에 수양대군에게 죽음]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 (1570-1650) 조선 인조때의 절개곧은 선비, 청나라에 항거한 삼학사(윤집 오달재와 함께)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 (15??-?) 조선중기의 이름 난 기생 [시와 가무에 뛰어남]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지나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15??-?) 조선중기의 이름 난 학자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가마귀 힌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지은이가 정몽주의 어머니라고 하나 연산군 때 김정구라는 설이 확실함]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 재 (1353-1419) 고려 말의 학자 [고려가 망하고 고향에 숨어서 살았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이 색 (1328-1395) 고려 말의 학자 [조선 건국 후에 벼슬을 그만 둠] 내해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고 의 아녀든 좇지 마라 우리는 천성을 지키어 생긴대로 하리라 변계랑 (1369-1430) 고려말 조선 초의 학자 [시와 문장에 뛰어남]  
1458    詩를 쓸 때 마무리에도 신경 써야... 댓글:  조회:4528  추천:0  2016-05-25
[15강] 시의 마무리(3 ) 시의 마무리에 대한 강의는 사실상 어제 끝내야합니 다. 그러나 사실 어느 강의에도 시의 마무리에 대한 강의는 없기 때문에 선배시인들의 이야기를 여러분 께 전달해드리고 싶어서 한 시간을 더 잡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쓸 때 첫 시작 보다는 마 무리에서 늘 곤혹스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시의 시작은 이미 마음 속에 정해져 있기 때문 이지요. 그러나 시의 마무리에서는 여기서 그치면 너무 짧아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가지 않는 것 같고, 더 길게 쓰려면 중언부언하여 시가 그 맛 을 잃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 더 시간을 잡아 선배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럼 우선 홍윤숙 시인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작년에 예총 초청으로 목포에 오셔서 제가 사회를 보 고 강연회를 하셨는데 한 마리의 홍학처럼 고고하게 늙어가는 여성 시인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경이 그 자체이었습니다. "누구의 말이던가. [포에지는 지속하기를 원하는데 포엠은 완결을 운명으로 한다. 거기에 시의 종결의 어려움이 있다]고 한 것은, 한 편의 시에 흐르는 포 에지는 연소하는 불이다. 어디서 어떻게 그 불을 잡아서 꺼뜨리지 않고 더욱 압축하며 안으로 영롱 하게 마무려야 할 것인지.....자칫하면 산문으로 타락하고 해설로 죽여 버리기 쉬운 그것을, 하여 시의 마무리 문제는 열편의 시에 열번의 진통을 안고 번번히 새롭게 등장한다. 그야 물론 시의 종결부 몇 줄이 그 시 전체를 흘 러온 포에지에 완성의 불을 점화하는 결정적 작업 으로써 해설이나 산문으로 타락하지 말아야 하며 계속 연소도를 높여 보다 강하고 농밀하게 압축 해야 한다고 이론으로 알고 있지만 아는 것과는 상관없이 가끔 나는 국민학교 학생의 도화지처럼 마지막 부분을 엉망으로 망가뜨리곤 한다. 기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편의 시 속에 끊임 없이 포에지를 충전시켜 가야 한다는 일은. 나는 그 긴장과 피로에 나도 모르게 왕왕 종결을 서두르며 안일하게 불을 끄는 과오를 범하려고 한다 결국 시의 마무리를 짓는 몇 줄을 위해 나는 나의 남은 축전기를 최대한 높여 놓고 혼신의 힘으로 투신해야 한다. 대상을 향해 마지막 집중을 시도해야 한다. 무수한 언어와 이미지를 동원하고 다시 그 것들을 휴지처럼 버린다. 불과 두 세줄을 위해 열 번 스무번 원고지에 옮겨 쓰고, 50번 백번 입속 으로 읽어본다. 전편으로 흐르는 포에지의 혈맥을 놓치지 않고 다시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해 이렇게 진통하는 어느 순간 나는 문득 감전되듯 충전이 된다. 사실 한 편의 시 가운데 내가 만들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첫 줄과 마지막 줄이다. 어쩌면 그것은 신과 교감하는 영감적인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성교 시인의 주장까지 들어보고 가지요. "이 마무리 단계는 곧 연극에 있어서 닫는 막과 같다. 닫는 막이 좋지 않을 때는 전체 인상이 흐리고 만다. 흐린 인상은 곧 실패작이란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에 있어서 마무리가 잘 되어야 그 시의 빛이 나고, 향기가 난다. 다시 말해서 그 마무리는 곧 시의 성패 여부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무리하는 시간처럼 엄숙한 시간은 다시 없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 순간은 하나의 작품이 바로 완성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엄숙한 순간은 지극히 짧은 것 같지만 그와 반대다. 제일 많이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그저 헐줌하게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마무리하는 순간처럼 신경이 곤두세워지는 시간도 다시 없다고 하겠다. 그만치 고통스러운 시간임엔 틀림없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문득 떠올라 시를 마무리 하려고 오래동안 묵혀두었던 초고를 꺼내놓고 앉으면 신기하게도 그 생각이 한 마리 새처럼 포올 날라가 버린다. 이 때처럼 안타까운 순간은 없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그 생각이 다시 떠오르지 않을 때는 부득이 덮어버리고 만다 나는 이 것을 최소한도 방지하기 위하여 미리 한 생각 한 생각에다 번호를 매겨 둔다, 그래서 글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할 때, 이 번호를 가지고 앞 뒤를 꿰 맞춘다. 그럴 때 제일 마지막 번호(끝귀절)에 온통 신경을 더 쓴다. 이 끝 귀절을 그 작품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끝 귀정에 생명감을 불어넣기 위하여 되도록이면 상징적인 어휘를 쓰려고 한다. 그래 야만 운치를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어휘도 두 번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어쨌든 이 마무리 단계는 임부가 해산하는 단계와 같이 지극히 고통을 겪는 과정이다. 송찬호님의 입니다. 나뭇잎이 푸른 물결로 출렁거릴 때 강물은 부챗살처럼 하늘로 퍼져 흐르고 떠도는 땅에서 땅으로 사람들도 정처 없이 흘렀다 마주 보며 눕던 여자의 좁은 이마에 실핏줄같이 흐르던 작은 슬픔도 돌아누우면 먼 파도로 밀려와 흐득였고 깨어 보면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되어 흘렀다 거친 손금 속에 일확천금의 비밀을 숨긴 채 일엽편주를 타고 뿔뿔이 흩어져 떠나가던 사람들도 허리에 묶인 그물을 풀며 이마에 굵은 주름살을 지으며 흘러갔고 긴 강 돛에 매달려 벌레 먹은 바람으로 펄럭였다 가지마다 붉은 노을이 걸릴 때면 그들이 흘러간 강 한 줄기씩 어깨에 메고 돌아와 지나간 내력을 독한 입담으로 걸러내며 강물이 마르도록 술을 마셨다 나뭇잎이 푸른 물결로 출렁거릴 때 강물도 끊임없이 흘러갔지만 강물도 강을 찾기 위하여 뜨내기의 몸속으로 흘러갔는지 먼 길을 가는 물고기들도 쉬어가는 나무 밑에 물결이 철썩철썩 밀려와 쌓여도 한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남진우님의 해설을 싣습니다. "라는 말이 있다. 이 고풍스러운 사자 성어가 이 시에선 상상력이 촉발되는 수원지가 된 다. 물 위에 떠내려 가는 작은 나뭇잎처럼 세파에 시달리는 가련한 인생사. 시인은 이 표현이 품고 있는 비유적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 기에 더 확장된 상상력을 투여함으로써 삶의 이면 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다. 세상의 강물과 그 위를 떠도는 나뭇잎은 실은 하나다. 그 작은 나뭇잎에서 길고 긴 강물이 출렁이며 뻗어나온 것이다. 모든 존재는 흐름 속에서 서로 덧없이 멀어져 가고 있을 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선배시인들의 마무리에 대한 견해를 듣기로 하겠습니다. 유경환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내 나름의 습관이지만 자꾸 새 원고지에 베껴 가며 고쳐쓰기 때문에, 한편의 글을 마무리 짓기 위해선 열배 이상의 원고지가 든다. 정서를 해가며 마음에 걸리는 낱말을 솎아 내다 보면 생각의 체중이 해소되는 수가 많다. 때로는 아무리 새 원고지에 옮겨 써도 스스로 만족에 미흡감이 있어, 그대로 며칠동안 깨끗이 잊어 버려 본다. 내 글을 타인의 눈으로 보듯 하기 위해서는 깨끗이 한 번 잊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러나 우연한 때에 대부분 길을 가다가(걸으면서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문득 표현의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우연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읽었던 것, 언젠가 보았던 것, 또 언젠가 생각했다가 접어 두었던 의식이 무의식처럼 소생 해주는 것이리라. 마지막 구절이 되지 않아 마무리를 못하고 생각을 않는 것 보다는 시어를 제대로 못 골라 마무리를 못 맺는 경우가 더 내겐 많다. 그것은 마치 바닷가 모래 속에서 내가 꿈꾸어 오던 조개나 심산천에서 내가 생각해 오던 돌을 찾아 내는 그런 것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자물쇠에 제 열쇠가 들어 맞아야 열리듯이 꼭 맞는 낱말이어야 맥이 통하고 나타내려는 것이 그대로 담겨질 수 있다고 속으로 우기기 때문에 이건 괴 로운 추적이 아닐 수 없다. 좋고 나쁜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 선 타 인이 판단할 것이고, 쓰는 내 입장에선 우선 내 스스로가 만족스러워야 마무리가 지어진다. 스스로 만족스러워 지려면 [내 생각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내 생각이란, 전연 단절된 분위기나 또는 단속된 상황의식에서도 그대로 공감될 수 있 는 의도를 말한다. 시인은 결코 자기만을 위한 언 어의 연금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몇 분의 자료가 있으나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그러면서도 세 시간이나 시의 마무리를 강의한 것은 어느 책에서도, 어느 강의록 에서도 시의 마무리에 대한 강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시의 마무리는 여러가지의 형식과 형태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 리 많은 선배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도 우리는 거기 에서 하나의 공식을 도출해 낼 수도 없읍니다. 그 것은 오로지 우리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 진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의 마무리가 결코 수월하지 않다는 것과 그 것이 첨삭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변 화를 가져 온다는 사실만을 엿볼 수 있을 뿐입니다. 때론 최초의 작품이 완전히 다른 엉뚱한 작품의 모 습으로 변질되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란 결코 부분적일 수만 없고 오히려 전체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시고, 시를 쓸 때 마무리 에도 신경을 쓰시기 바랍니다. 이로소 시의 마무리에 대한 강의는 마치겠습니다. 좋은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신경림님의 입니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남진우님의 해설입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어가다가 한 번씩은 문득 사로잡 히게 되는 상념의 한 대목을 이 시는 간명하고 절 제된 어조로 형상화해 놓고 있다. 삶은 추구나 획 득의 여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실과 망각의 과정 임을 이 시는 알려 준다. 그 상실과 망각은 보다 확대하면 이 현생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 생과 후생을 이어 윤회를 거듭하며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연륜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는 수작이다. ===========================================================   363. 물속의 푸른 방 / 이태수                                 물속의 푸른 방                                 이 태 수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다. 서늘하고 둥근 물소리…… 나는 한참을 더 내려가서 집 한 채를 짓는다. 물소리 저 안켠에 날아갈 듯 서 있는 나의 집, 나의 푸른 방에는 얼굴 말끔이 씻은 실바람과 별빛이 술렁이고 등불이 하나 아득하게 걸리어 있다.     이태수 시집 중에서  
1457    <책> 시모음 댓글:  조회:4211  추천:0  2016-05-25
+ 책 우리를 저 먼 땅으로 데려다주는 데 책만한 순양함은 없어요. 춤추는 시의 페이지만한 정기선도 없지요. 아주 가난한 사람도 여비 없는 이 여행을 즐길 수 있어요. 인간의 영혼을 담은 수레는 얼마나 검소한지요. (에밀리 디킨슨·미국 여류 시인, 1830-1886) + 헌 책방 그래, 맞구나 어릴 적에 그리도 소원이었던 게 이다음 내가 어른이 되면 책방 주인이 되는 거였어. 소학교에서 돌아오는 한낮의 거리 두 평은 됨직한 긴 책방은 서대문 전찻길 옆에 기댄 채 늘 졸리운 듯 고즈넉했고 돋보기 안경 말고는 주인 모습조차 기억에 없지만 이 책 저 책 들치며 그 속에 주인공 되어 매일 즐겁던 그때, 그냥 책 속에 묻혀 얼른 크고만 싶었어. 그리도 즐겁던 날들은 어데로 사라지고 세월은 빈 껍데기만 내게 남겨 놓아 비좁은 방안에 키가 넘게 쌓아 올린 책은 읽을 엄두도 못 내니 끝내 묶은 다발로 내버리듯 비워내는 그런 허무(虛無)의 날들이여 이젠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그날의 헌 책방 오늘은 안개꽃으로 둔갑되어 그 앞에 가슴을 앓고 있구나. (장윤우·공예가 시인, 1937-) + 내 해묵은 책들이여 내 사윈 모습만큼이나 빛 바랜 넌 속으로 지닌 높은 뜻으로 하여 깊은 밤 잠 아니 오는 시각엔 인생을 채색하는 나를 위해 무시로 불 밝혀 주었는데 나는 언제나 너의 깊음 속으로 스미지 못하나 그 숱한 세월 남한 땅 구석구석 찾아 헤매면서도 용케도 널 보듬고 가까이 하여 오늘에 이르렀음은 세간살이도 그 속에 찬 것도 세간살이가 놓인 곳도 보잘것없지만 언제나 널 뉘일 공터는 있었으니 너로하여 그것만으로도 자위하고픈 내 해묵은 인생이여! (박귀훈·시인, 경북 영일 출생) + 잃어버린 추억 읽었던 책을 세월 지나 다시 읽는다. 그때 읽을 적 울었던 페이지에서 허허로이 웃음이 난다. 그때 울음이 그립다. 주-욱 읽다가 접혀 있는 페이지 이 한 장을 왜 접어두었는지 그때 내 마음 잃어버렸다. (이재봉·시인, 1956-) + 네가 찾는 것 여름날 오후 헌 책방에서 네가 찾은 건 책이 아니다 땀을 흘리며 네가 찾는 건 너의 마음인지 모른다 여름날 오후 모자를 쓰고 먼지 속에서 네가 부지런히 찾는 건 시간인지 모른다 흘러간 시간 헌 잡지를 뒤지며 헌 잡지에 문득 코를 박는 건 너의 가슴을 박는 건지 모른다 길모퉁이 허름한 책방에서 오늘도 헌 책을 뒤지는 너의 손과 가슴과 부르튼 입술은 달리던 버스에서 갑자기 뛰어내려 헌 책방으로 달려가 헌 책을 뒤지는 너의 얼굴은 문득 흐려진다 (이승훈·시인, 1942-) + 책 찾기 분명히 어딘가 잘 두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세 시간이 넘도록 구석구석 뒤져보았으나 헛수고였다 누구에게 빌려주지도 않았는데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겨우 잃어버린 책을 찾는 데 이렇게 바쳐야 하다니…… 지쳐서 의지등판에 기댄 채 졸다가 눈을 떠보니 바로 눈앞의 책상서가에 그 책이 비스듬히 꽂혀 있지 않은가 책 속의 진리처럼 (김광규·시인, 1941-) + 책 한 권이라도 지하철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아가씨 참 예쁘다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걷고 있는 모습보다 책 한 권 손에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핸드백에 몸치장 용품만 가득한 것보다 마음 가꿀 수 있는 책 한 권 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꼭 詩集이 아니어도 가벼운 월간지라도 한가한 시간 책을 보는 여유 마음을 가꾸는 모습 참 아름다웁지 않은가! (이문조·시인) + 책과 나 예쁜 여자 훔쳐 오듯 데려와 살았다 어느새 방 하나를 요구한다 저의 방 하나 마련하려 살아가는 나날이다 한때는 요행히 방을 준 적도 있었다 정중히 헤어질 것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남의 집에 저를 맡겨두고 먼데로 떠돌거나 가끔씩 들러 눈을 맞춰보기도 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정 깊어진 여자 허기사 깊이 사랑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였다 드디어 늙어서는 먼지만 쌓인 네 몸뚱어리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챙긴다 다시 욕구가 생길 때는 새 여자보다 헌 네 몸을 탐하게 될까 자식을 얻겠다는 생각은 웬만큼 사라지는 나이. (고운기·시인, 1961-) + 점자책 우체통에 매달 배달되어오는 점자책을 집어들 때마다 압핀을 밟은 듯 마음을 밴다. 동공이 손끝에 있어 요철의 점자들을 더듬어 읽을 적마다 손 끝 눈에도 모래알이 써걱거릴 아픔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 침묵의 문자는   목마름의 작은 등불로 기다림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나는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불록 점들을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내 속에 차오르는 슬픔의 언어로 한 장의 편지를 쓴다. (김상현·시인, 1947-) + 산수유라는 책   산수유에게도 말하고 싶은 입이 있는지 그 노란 언저리에 이야기가 두 권이다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는 봄나물 같은 이야기가 페이지마다 한 가득이다 햇살 올 때까지만 그늘을 빌려줘도 귓속에는 이야기가 한 밭뙈기다 저고리 고름 떨어질라 너무 당기지는 말아라 그 샛노란 저고리 반나절만 빌려 입었으면 닷새장에라도 남보란 듯 다녀오겠다 나보다 먼저 온 병아리도 제 먼저 빌려 입겠다고 종종이는 대낮 오늘은 작파하고 한 솥 가득 속이 노란   고구마나 삶고 싶은 봄날이다 (이기철·시인, 1943-) + 갓 태어난 책을 받아들고 제본소에서 막 나와 내 손에 올려진 너는 티없는 처녀다 꼬부라진 글자 하나도 담지 않고 아름다운 생각들로 가득 찬 손이 훤히 비친다 찌들은 시장바닥과 뒷골목의 삶 대신 깔끔한 카페의 식탁보가 펼쳐져 있는 게 잘 보인다 하지만 웬일이냐 너를 옥동자처럼 받아들고도 애비 모르는 아이를 안은 때처럼 불안한 것은 웬일이냐 무너지는 탄광촌에서 월급 한 푼 못 받고 쫓겨나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버려진 탄더미에 핀 꽃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했고 시장바닥에서 푸성귀 몇 날을 만지는 아주머니의 글은 무대접으로 안중에 두지 않았다 매끄럽게 한답시고 꾸부러진 것들 죄다 펴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책 깨나 읽은 나의 눈으로 다 뜯어 고쳐 정작 그들의 뜨거운 가슴은 다 도려내고 낯선 심장을 들어앉혔다 내 작은 손안에서 심장을 파닥이다가 저 낯설고 험한 세상으로 갈 너를 보며 미안하다 네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니 네 동생을 만들 때에는 내 칼을 거두고 네 심장으로 고동으로 네 꾸밈없는 그리움으로 생을 노래하게 하리라 (박몽구·시인, 1956-)
1456    미국 녀성 시인 - 에밀리 디킨슨 << 1775 : 7>> 댓글:  조회:6540  추천:0  2016-05-25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미국 시인   미국의 여성 시인. 매사추세츠 주 에머스트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지냈다.   에머스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마운트 홀리요크 신학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시쓰는 일에 전념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처자가 있는 목사와의 사랑이 실연으로 끝나자 그녀의 시적 재능은 둑을 터뜨린 봇물처럼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녀가 쓴 시 1775편 가운데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 7편에 불과하다.   그녀의 시는 자연과 사랑 외에도 퓨리터니즘을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운율에서나 문법에서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19세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미지즘과 형이상학파적 시의 유행과 더불어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작품으로는 〈상처난 사슴은 높이 뛴다〉 등이 있다.   주요저서 : 《전시집(全詩集)》(1855) 《전서간집 (全書簡集)》(1858)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길에 뒹구는 저 작은 돌   길에서 혼자 뒹구는 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출셀랑 아랑곳없고 급한 일 일어날까 두려움 없네   천연의 갈색 옷은 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혼자 살며 홀로 빛나는 태양처럼 다른 데 의지함 없이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살며 하늘의 뜻을 온전히 따르네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나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한듯 짐작되던 바로 그 날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인생은-장전된 총   내 인생은 - 장전된 총으로 구석에 서 있던- 어느 날   마침내 주인이 지나가다- 날 알아보고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국왕의 숲을 헤매면서 사슴사냥을 하고 있다.   내가 주인 위해 말할 때마다- 산들이 당장 대답한다.     내가 미소지으면 힘찬 빛이 계곡에서 번쩍한다.   베수비어스 화산이 즐거움을 토해내는 듯하다.     밤이 되어 멋진 하루가 끝나면 나는 주인님 머리맡을 지킨다.   밤을 함께 보내다니 푹신한 오리 솜털 베개보다 더 좋다.     그분의 적에게- 나는 무서운 적이다. 내가 노란 총구를 겨누거나   엄지에 힘을 주면 아무도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한다.     비록 그분보다 내가- 더 오래 살지 모르나 그분은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   나는 죽이는 능력은 있어도 죽는 힘은 없으므로-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무르면서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 멈추는 일이란 없다.     광풍 속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들린다. 폭풍우도 괴로워 하리라.   이 작은 새를 당황케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었는데.   얼어들 듯 추운 나라나 멀리 떨어진 바다 근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빵조각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황야를 본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히드 풀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파도가 어떤 건지 알고 있다오.     나 아직 하느님과 말 못 했어도, 저 하늘 나라에 간 적 없어도,   지도책을 펴놓고 보는 것처럼 그 곳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오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년~1886년)    3월                   에밀리 디킨슨   3월이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 걸어 오셨나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래서 3월,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나요? 아, 3월 바로 저랑 2층으로 가요 말씀 드릴게 얼마나 많은지요   내가 만일                 - 에밀리디킨슨       미국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내가 만일' 의 시를 읽노람, 우리는 얼마나 작은 것들에 신경을 쓰며 세심하게 배려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가장 작은 것에 충실한 자가 가장 잘 기도하는 자이다' 라는 말과 같이 작은 이슬 방울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맺혀져 있음을 깨닫고 내가 만일 천지 만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살아가도록 조금씩  자꾸 노력한다면  우리의 가슴은 우주를 품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   그녀의 재치는 야망과 공인으로서의 삶을 조롱한 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전 무명인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도 무명인인가요? 그럼 우린 같은 처지인가요? 입 다물고 있어요, 사람들이 소문낼지 모르니까 ─ 아시다시피. 정말 끔찍해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정말 요란해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에 존경심 가득한 늪을 향해 개골개골 제 이름 외쳐대니. ================================   에밀리 디킨슨은 19세기와 20세기의 문학적 감수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격한 개인주의자였던 그녀는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칼뱅주의 마을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던데다 외부적으로는 별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격렬한,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으며 뉴잉글랜드 시골의 새, 동물, 식물, 계절의 변화 등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디킨슨은 감수성이 너무 풍부했던 나머지 말년을 은둔자로 보냈다. 그녀는 아마도 시를 쓰기 위해 은둔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그녀는 하루에 시 한 편 정도를 쓰곤 했다). 그녀는 시를 쓰는 것 이외에도 변호사이자 애머스트의 유명 인사이며 후에 연방의원이 된 아버지를 위해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디킨슨은 독서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고전 신화 관련 작품들을 꿰뚫고 있었다. 디킨슨은 당시 가장 은둔하는 문학인이었기에 이러한 책들만이 그녀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수줍음 많았고,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도 않았으며, 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시골 여성이 19세기 최고의 미국 시들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은, 그녀의 시가 재발견된 1950년대 이래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디킨슨의 간결하면서 이미지즘적인 스타일은 휘트먼에 비해 더욱 현대적이며 혁신적이다. 그녀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결코 두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없었고, 거의 속담처럼 응축된 스타일로 추상적인 사고와 구체적인 사물을 결합했다. 그녀의 수작들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다수의 시들은 현 시대의 감수성을 조롱하고 있고, 어떤 시들은 심지어 이교도적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때로 놀라울 정도로 실존적인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포처럼 마음의 어둡고 감추어진 부분을 탐구하면서 죽음과 무덤을 극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꽃과 벌 같은 단순한 사물들도 찬미했다. 그녀의 시는 대단한 지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간에 갇힌 인간 의식의 한계에 대한 고통스런 역설을 일깨우고 있다. 그녀는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녀가 다루는 주제의 범위와 묘사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그녀의 시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토머스 H. 존슨이 1955년 표준판에서 할당한 번호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시는 불규칙한 대문자와 대시(dash, ─ )로 북적댄다. 소로처럼 불순응주의자였던 그녀는 단어와 문구의 의미를 뒤엎으며 역설법의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다음은 그녀의 시 435번이다. 구별할 줄 아는 눈으로 보면, 깊은 광기는 가장 신성한 감각이다. 깊은 감각은 순전한 광기일 뿐이다. 항상 그렇듯이 여기에서 우세한 것은 다수이다. 동의하면 당신은 제정신이다. 반대하면 당신은 즉각 위험한 존재가 되어 쇠사슬을 차게 된다.       디킨슨의 시 1,775편은 비평가들을 계속 자극하는데, 비평가들은 그녀의 시에 대해 대개 의견을 서로 달리한다. 어떤 비평가는 그녀의 신비로운 면을 강조하고 어떤 비평가는 자연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을 강조한다. 많은 비평가는 그녀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호소력에 주목한다. 현대 비평가 R. P. 블랙머는 디킨슨의 시가 때로 "고양이 한 마리가 영어를 말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하게 느껴진다고 논평했다. 디킨슨의 깨끗하고 투명하며 섬세하게 조각된 시들은 미국 문학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동시에 도전적인 작품들이다. ====================================================   에밀리 디킨슨의  詩와 삶   뉴잉글랜드의 신비주의자'라고 불렸으며, 시의 운율과 압운을 실험했다. 거의 모든 시가 죽은 뒤에 출판되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3남매 중 둘째였는데, 그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서도 우애가 두터웠다. 여동생 래비니아는 가족과 함께 독신으로 지냈고 오빠 오스틴은 에밀리의 친구와 결혼해 옆집에 살았다.  할아버지 새뮤얼 파울러 디킨슨은 애머스트대학의 설립자이며,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은 1835~72년에 이 대학에서 회계일을 맡았다. 1853~55년 의회에서 일하기도 한 변호사 에드워드 디킨슨은 엄한 아버지로서 인정없는 편은 아니었으나 거리감이 있었다. 에밀리의 어머니 역시 아이들과 가깝지 않았다. 에밀리는 애머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1847~48년에 '마운트 홀리요크 여자신학교'에 다녔는데 이 학교는 지적 성장뿐 아니라 종교적인 성장도 강조했기 때문에 그녀는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심한 부담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저항하여 많은 시에서 신에 대해 다루었지만 평생 회의주의자로 남았다. 이러한 회의 속에서도 강한 종교적 감정에 지배되었으며, 이 갈등이 시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1850년경 아마도 랠프 월도 에머슨과 에밀리 브론테의 시에 매료되었을 무렵,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법률을 공부하는 젊은이 벤저민 F. 뉴턴의 지도를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858년에는 전에 쓴 시 몇 편을 모아 손으로 꿰맨 소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1850년대에 쓴 편지들에는 생기와 유머가 넘치면서 수줍은 처녀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1855년에는 의회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만나려고 여동생과 함께 워싱턴 D. C.에 갔다.  여행 도중 필라델피아에 들러 설교를 듣게 된 유명한 목사 찰스 워즈워스는 그녀의 표현대로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워즈워스는 꽤 낭만적인 인물로, 큰 슬픔을 겪었다고 알려졌는데 강단에서의 웅변은 그의 외로운 침잠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에밀리는 그와 영혼의 문제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의 칼뱅주의적 정통주의는 그녀의 사색에 유용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단호하고 엄격한 믿음을 통해, 그녀는 에머슨을 비롯한 초절주의자들이 가졌던 자비로운 우주관이라는 안일한 가정을 잘 교정할 수 있었다. 1850년대에 조지아 G. 홀랜드 박사 부부 및 새뮤얼 바울스와 편지왕래를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은 문학에 관심을 두고 시를 싣기도 한 신문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컨 Springfield Republican〉의 편집자였다. 이들과는 여러 해 동안 편지왕래를 했는데, 1850년대 이후에는 주로 에밀리의 섬세함과 재치를 이해하는 이지적인 홀랜드 부인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에밀리는 바울스가 자신의 시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전통적 문학적 취향을 가진 그는 그녀의 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를 점점 많이 써나가던 1850년대 후반경에, 디킨슨은 3통의 편지에서 '선생님'이라고 표현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이미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바울스나 워즈워스일 가능성도 있다. 이 사랑은 시 속의 몇몇 행에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나는 자유롭다 세상에서 벗어났으므로", "너무 큰 기쁨이네! 매우 큰 기쁨이네", "그대는 감히 백열하는 영혼을 보려는가?" 같은 것들이다. 또다른 시들은 이 사랑의 좌절과 그것이 차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그와 영적인 결합을 이루는 것을 보여준다. 1850년대의 시들은 정서나 형식이 꽤 관습적이지만, 1860년부터는 영국 찬송가 작가인 아이작 와츠의 운율과 셰익스피어, 흠정역 성서에 영향을 받았으며 실험적인 언어와 작시법을 구사했다. 에밀리의 대표적인 시형식은 강약격 3음보로 된 4행시로서 집안의 서재에 꽂힌 워츠의 책에 설명된 형태이다.  이밖의 형식도 많이 썼는데, 단순한 찬송가 가사의 박자에도 변화를 부여해 그녀 생각의 보조에 맞도록 빠르거나 느린 또는 망설이는 듯한 운율을 사용했다. 또한 생각과 그 긴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원래의 압운을 변형하거나 파괴함으로써 시의 새로운 기초를 다졌다. 경구적인 간결성을 이루기 위해 쓸데없는 단어는 삭제했으며, 남은 단어들은 생생하고 정확한 것이 되도록 했다. 구문을 자유로이 변경하여 특별한 문맥 속에 평범한 단어를 놓는 것을 즐겨 독자들에게 관심과 신선함을 던졌다. 그녀는 1862년 4월 15일 4편의 시를 동봉한 편지를 문학가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에게 보내 자신의 시가 '살아 있는지'를 물었다. 히긴슨은 시 출판에는 반대했지만 시의 독창성을 인정했고 그뒤에도 계속하여 훈계자 역할을 했다. 1862년 이후 그녀는 시를 발표하라는 친구들의 모든 성의를 물리쳤으며, 그결과 생전에는 불과 7편의 시만 출판되었고 그 가운데 5편은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컨〉지에 실렸다. 약 800편에 이르는 많은 시를 쓴 최고 시작기는 남북전쟁 때이다. 시의 소재는 전쟁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것이었지만 전쟁중의 긴장된 분위기는 시작(詩作)의 긴박감을 고무했던 것 같다. 긴장이 가장 고조되었던 때는 1862년으로, 먼 거리와 조국의 위험이 에밀리의 친구들을 매우 긴장하게 만들었다. 당시 새뮤얼 바울스는 건강 때문에 유럽에 있었고, 찰스 워즈워스는 샌프란시스코의 갈보리 교회의 목사가 되어 떠났으며, T. W. 히긴슨은 군대의 장교로 있었다. 에밀리도 눈병이 낫지 않아 1864~65년에 치료를 받기 위해 메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몇 달을 지냈다. 애머스트로 돌아온 뒤 다시는 여행하지 않았으며 1860년대 후반부터는 가족의 농장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리 많이 쓰지 못했으나 더욱더 자신의 삶을 예술의 규율로 조절하려고 했다. 그녀의 편지들은 때로 예술성에서 시에 견줄 만한 것으로, 경구적인 문체로 일상적 경험들에 대해 썼다(서간체 문학). 예를 들어 한 친구가 에밀리와 여동생에게 한꺼번에 편지 1통만을 보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그녀는 대답하기를 "자두 하나가 둘다의 것이면 자두가 아니다. 나는 예의가 있어서 과육을 먹을 수 없고 씨는 좋아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다. 1870년경에는 흰 옷만 입었으며, 집으로 찾아온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는데, 이 은둔생활을 충실한 여동생이 잘 지켜주었다. 1870년 8월에 애머스트를 방문한 히긴슨은 당시의 에밀리를 빨간머리에 흰 옷을 입은 "소박한 작은 여자"라고 말했으며, 그에게 인사로 꽃을 주었고 "부드럽고 놀란 듯이 숨죽인 아이같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묘사했다. 말년에는 그녀가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이 죽어 슬프게 지냈다. 특히 가장 슬펐던 1874년의 아버지의 죽음과 1883년의 여덟살 난 조카 길버트의 죽음에 대해, 가장 뛰어난 몇 통의 편지를 썼다. 1878년 바울스, 1881년 히긴슨, 1882년 워즈워스와 어머니, 1884년 오티스 P. 로드, 1885년 헬렌 헌트 잭슨이 각각 죽어 슬퍼했다. 에밀리가 1878년경에 사랑한 로드는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 출신의 판사로서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로드에게 보낸 여러 편지에는 온화하고 성숙한 사랑이 담겨 있으며, 로드도 그 사랑에 응답했다. 한편 잭슨은 시인이자 인기 소설가였는데, 에밀리의 시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출판하도록 설득했었다. 그녀가 죽은 직후 동생 래비니아는 시를 출판하기로 마음먹었다. 1890년 T.W. 히긴슨과 메이블 루미스 토드가 편집한 〈에밀리 디킨슨 시집 Poems by Emily Dickinson〉이 선보였다. 이밖에도 주로 메이블 루미스 토드, 마사 디킨슨 비안치(에밀리의 조카딸)와 밀리슨트 토드 빙엄이 편집한 시집들이 1891~1957년에 출판되었고, 1955년에는 토머스 H. 존슨이 현존하는 모든 시들과 여러 이본(異本)들을 편집했다. 디킨슨의 시에서 친밀하고 익숙한 언어로 표현된 주제들은 사랑·죽음·자연 등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죽은 집에서 조용히 지낸 은둔생활과 간결한 시에 담긴 깊이와 강렬함 사이의 대조는 그녀의 성격과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1775편의 많은 시들과 비슷한 수에 달하는 편지들을 통해 본 에밀리는 열정적이고 재치가 있는 여성이며, 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철저한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희망은 한 마리 새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허나 아무리 절박한 때에도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  에밀리 디킨슨      ===========================================   바람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에밀리 디킨슨(1830~1886)-     바람이 피곤한 나그네처럼 문을 똑똑 두드렸다. 주인처럼 나는 근엄하게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그러자 발 없는 손님이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에게 의자를 내주려 했으나 그것은 공기에게 소파를 내주는 것처럼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손님은 몸을 지탱시켜 줄 뼈가 없었다. 그가 말을 꺼내면 우거진 수풀에서 수많은 벌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지나갈 때는 소용돌이치는 얼굴과 손가락이 유리컵 안에서 떨며 도는 바람의 곡조처럼 음악소리를 냈다. 우리 집에 와서 경쾌하게 날아다니다가 소심한 사람처럼 그는 당황스러워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바람에게서 뼈 없는 몸과 빠른 걸음을 보는 시인. 바람의 한 동작 한 동작에서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듣는 시인. 앉을 수만 있다면 바람에게 의자를 내주고 마실 수만 있다면 바람에게 차를 대접하고 싶어 하는 시인. 사소한 사물의 작은 움직임에도 온몸의 호기심이 일어나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이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귀엽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사물에게 생동감과 생명 력을 부여하는 섬세한 감각이 놀랍다.     바람조차도 찾아오면 반갑고 함께 놀고 싶어 보내기 싫어하는 장면에서 깊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마음으로는 친하고 싶어 하면서도 몸은 금방 숨어버리고 마는 바람의 모습이 시인을 꼭 닮은 것 같다. 시인으로 활동하지도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골방에서 시를 썼지만, 모든 사물과 자연이 친구였기에 마음은 풍요로웠으리라. 사후에 제목 없는 시 원고 이천편가량이 발 견되었다고 한다. 제목은 임의로 첫 행에서 따왔다. -김기택(시인)               은둔 속에 핀 예술혼,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년) 그리고 1775편의 시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800여 편에 달하는 시는 그저 혼자 내뱉은 독백 같았습니다. 사랑, 이별, 죽음, 영혼, 천국, 자연 등을 다룬 시는, 은둔생활 속에서 핀 꽃이었나 봐요. 그는 내내 고독했지만, 그 고독은 그의 모든 것이었던 시를 잉태한 동력이었습니다. 시와 고독을 평생 친구로 곁에 두고 지냈던 이 사람, 영문학사상 최고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입니다. 이상하고 의외의 일이죠? 그가 살아서는 별 볼 일 없는 시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에요. 하긴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그의 시를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겠지요. 에밀리를 얘기할 때, 가장 흔히 따르는 것은,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 그닥 부각돼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을 인류보편의 것으로 인식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독신생활하면서 시 짓기에만 몰두하다시피 한 그의 행보는,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입방아에 올릴 수 있는 호기심거리가 될 수 있었겠죠. 마치 시와 결혼한 듯, 자신만의 공간에서 치열한 문학적 열정을 불태운 그였기에, 보통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의 궤적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에밀리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엠허스트에서, 변호사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과 에밀리 노크로스의 둘째 딸로 세상과 접촉했습니다. 잘 보시면, 그의 이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하나씩 딴 것이죠.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신학교에도 진학했지만, 그는 보수적인 청교도 신앙에 그닥 흥미를 느낀 것 같진 않습니다. 청교도 정신부활을 위한 '영적대각성운동'이 있었을 때도, 그는 되레 청교도 신앙과 종교적 구원에 대한 회의를 숨기지 않았으니까요. 에밀리를 에워싸고 있던 종교가 시작(詩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반면, 한 만남이 그를, 그의 시상(詩想)을 일깨웠습니다. 설핏 짐작 가시죠? 맞아요. 역시나 사랑. 독신이었다지만, 설마 그가 사랑 한번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진 않으셨죠? 아버지가 하원으로 당선돼, 그의 가족은 1854년부터 이듬해까지 워싱턴에서 살았는데, 필라델피아의 한 장로교회에서 만난 찰스 워즈워스 목사를 만났습니다. 찰스 목사는 스승과도 같았습니다. 문학적인 설교와 칼뱅주의에 입각한 그의 웅변이, 에밀리의 머리와 마음을 흔들었던 거죠. 그것은 하나의 지적도전과도 같았고, 시작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받았고, 워싱턴을 떠나 다시 엠허스트로 돌아간 에밀리를 찰스 목사가 찾기도 했습니다. 에밀리는 여러 글에서 그를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러나 역시나 장벽은 존재했죠. 찰스 목사는 기혼자였고, 그가 1861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로 옮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났어요. 에밀리는 그를 정녕, 사랑했나봅니다. 친구부부와 동생에게 실연의 아픔을 토로했고, 더더욱 시에 매달렸습니다. 사랑의 아픔 때문인지 시는 봇물처럼 흘러넘쳤고, 좌절된 사랑으로 둘 곳 없는 마음은 작품 속에서 영적인 결합을 이뤘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을까요. 실연을 겪고 난 뒤, 그러니까 30세 이후 은둔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흰 옷만 입고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뉴잉글랜드의 수녀'라는 별명도 그래서 지어졌습니다. 시작도 계속했으나, 그는 출판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생전에 불과 7편의 시만 발표했을 정도로, 그는 철저히 고립된 속에서 시와 함께 했어요. 물론, 에밀리에게 사랑이 한번만 거쳐 간 것은 아니지만, 그는 독신생활을 청산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로드 판사와도, 사랑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의 서신에서도 서로 사랑했음이 충분히 드러나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독신생활을 버리지 못해, 그의 청혼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1884년 로드 판사가 죽자, 실의에 빠져 있던 에밀리는, 결국 건강 악화로 2년 뒤인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겪은 사랑의 아픔, 그의 전부였던 시도, 그를 더 이상 지탱시켜주지 못했나 봅니다.     에밀리가 죽은 뒤, 그의 동생이 1775편에 달하는 시를 묶어 발표했습니다. 그의 시는 1890~1945년 동안 8권의 시집으로 묶여 출판됐고,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시들은 20세기에 와서 제대로 평가를 받았어요. 그는 겉으로 보기엔 은둔자였지요. 가사 일을 끝내고 이층 방안에서 시작에만 몰두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시피 했으니. 그러나 시와 편지를 보자면 열정적이고 재치있는 예술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엔 친밀한 언어로 생과 죽음, 영원과 자연 등에 대해 무한한 상상과 사색, 사랑과 이별을 담았습니다. 그의 예술혼은 그래서 아직도 후세인들에게 전파되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 아니겠어요? ========================================= 절망과 고독 그리고 화해의 질서                                   - 姜銀蕎(시인) 1. 시인의 위치 라는 Allen Tate의 견해는 Emily Dickinson 이라는 한 신비한, 영원한 처녀 시인에게 있어 그 어떤 얘기보다 정당성을 지닌다. 그녀는 이 세상을 끝마칠 때까지 처녀였다. 현실적으로 결혼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사회, 또는 문학이라고 이름지어지는 모든 행위 가령 자신의 시를 발표한다거나, 저술을 한다든가, 명성을 기다린다든가 하는, 일체의 관습 (나는 이런 것을 감히 관습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에 타협할 것도 거부했다. 그리고 이런 거부는 물론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천성적, 또는 천부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겨우 7편 가량의 시를 으로랄까, 지면에 발표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발표를 포기하고 자기의 울타리 안으로 숨어 버렸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그녀의 시는 받아들여지기 곤란한 것이었고, 그 다음 그녀의 독특한 스타일 즉 dash의 사용과 대문자의 사용, 또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따위는 편집자의 기이한 눈총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홀로 시를 썼다. 문학적인 대화 같은 것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번 T.W.Higginson 에게 문학에 대한 충고를 요청하는 편지를 띄운 일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당시의 사회는 비평 의식이 그렇게 활발하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녀의 시는 완전히 가려진 채 시인의 고독 속에서 은밀히 창조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1700 여편의 원고 뭉텅이와 한 순수한 생애를 서랍속에 감추고 일생동안 거의 한 번도 떠나지 않은 고향집에서 소리없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부활했다. 이번에는 완전하고 위대한 한 시인으로서.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1955년이후, 그러니까 시인의 사후 69년이 되는 해의 일이었다. 그해에 비로소 그녀의 본격적인 시집이 3권으로 Havard에서 출판되었고, 그때부터 Emily Dickinson은 한 위대한 미국의여류시인으로서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흔히 시인의 최초, 최대의 허영 (정확한 묘사인지는 모르지만)은 발표 또는 어떤 식이든 간에 독자에의 전달에 있다고 말해진다 . 그래서 시인들은 현실적으로 돈이 되지 않더라도 대개 한 두 권끔 생전에 시집을 만들어 보거나 발표를 꿈꾸거나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밀리 디킨슨은 결코 스스로 시집을 만들지 않았다. 그녀의 근원적인 절망과 고독은 그런 최초의 허영마저도 극복해버리게 했고 그 때문에 문학 사상 에밀리 디킨슨처럼 사후의 시집 간행으로 시 자체에 수난을 당한 시인은 없게 된 것이다.  2. 생애 1830년은 영문학 사상 두 개의 별을 지상에 태어나게 한 묘한 인연의 해였다. 영국의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와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이 그 두 별이다. 같은 12월에 닷새의 간격을 두고, 로제티는 5일에 디킨슨은 10일에 한 사람은 런던에서 , 한 사람은 미국동북부 매사추세츠주의 Amherst에서 각각 출생하였던 것이다. 두 시인은 그러므로 자주 대조되어 얘기되는데, 로제티가 감성의 시인이라면 디킨슨은 지성의 시인으로 전자가 따뜻한, 음악적인 시를 썼다면 후자는 냉정하고 고독한, 은둔자의 시를, 또 전자의 시가 즐거움을 노래했다면 후자의 시는 깊은 비애를 노래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가계에서도 이런 대비는 성립되는데 로제티의 아버지가 이탈리아계의 학자였던 반면에 디킨슨의 아버지는 법률가로 그곳 Amherst의 유지였다. 디킨슨에게 있어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아버지 주위에는 친구들이 늘 많이 드나들고 있었고 이들은 대체로 상류층 사람들이었다. 또 집에는 아버지의 커다란 서재가 있었는데, 민감한 에밀리 디킨슨은 이 서재와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해서, 말하자면 세계를 엿듣고 있었다. 그녀는, 소녀시절에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 사이에서 재치있고 영리하며 호기심 많은 소녀로 평판이 나 있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외부세계, 또는 외부의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잃어갔다. 그리고 24세가 될 무렵에 이르러선 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차츰 그것은 현실이 되어 갔다. 그 녀는 잠시의 볼일 외에는 결코 일생 동안 집을 떠나지 않았으며, 아버지의 집 안에 스스로를 감금시켜 버렸다. 한정된, 현실의 육체적인 여행보다는 더욱 광대하고 본질적인 정신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스스로 둘러친 그 사소한 사물들의 울타리 안에서 그녀는 순간과 동시에 영원에 부딪치고, 삶과 함께 죽음을 깨달으며 자기의 궤적을 시화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이유만으로도 그녀의 생애는 다른 어떤 당대의 시인들보다 신비에 가려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편지라든가 산문 또는 시의 연대같은 것들의 증거에 의해서, 후세에 와선 1860년 경 그러니까 그녀가 30세가 되던 무렵에 그녀에겐 결정적인 어떤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풀이되곤 한다 . 그것은 사랑의 사건이었다. 30세란 여성에게 있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기이고, 이것은 한 여성으로서의 디킨슨에게나 또는 한 시인으로서의 디킨슨에게나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실패로 끝났다. 실연의 불꽃은 곧 시로 폭발되었고, 그녀의 절망은 시 속에서 하나의 세계로 승화되었다. 그 세계란 고독하고 비극적인, 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세계였다. 그녀는 그 속에 스스로를 감추고, 고독, 절망의 손길에 자기를 쓰다듬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녀는 현실에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 현실의 결혼도 물론 거부되었다. 그녀는 돌처럼 자연스레 인간과 삶, 시간, 우주 따위를 이해하여 갔고, 거기에 일푼의 항거도 없이 융화되어 갔다. 그녀는 대신 우주와 결혼했다. 그녀의 남성은 성스런 세계,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영원한 세계 속의 우주로 대체되었다. 그에게 그녀는 전신을 바쳤고, 소박한 옷을 차려 입었으며, 매일 기도의 노래를 지었다. 그 노래들은 그때로부터 6년 동안 거의 1000여편이 이어졌다. 그 숫자는 그녀의 일생동안의 작품 수의 반 이상을 넘는 것이었다. 1862년 한 해에만 그녀는 366편의 시를 썼다.  3. 시의 테마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여러가지의 분류방법으로 분류하지만 - 가령 사랑에 관한 것, 자연과 신에 관한 것, 경구, 단상 등 - 여기선 죽음을 주제로 한 것, 자연에 대한 이해에 관한 것, 시인의 개인적인 실연의 고백을 주제로 한 것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의 주제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일 뿐 아니라 1 800년대의 한 여류시인이 오늘날 어떻게 우리에게 공감과 애정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의 대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그녀에게 있어서 죽음의 주제는 거의 절대적이다. 그녀의 죽음은 보편적인 서구의 죽음 - 즉 기독교적인 고통의 죽음, 그리고 그 고통함으로써 극복하는 죽음과는 상당히 특이한 양상을 띤다. 그녀의 죽음은 따뜻한 구원자로서 꽃마차(carriage, chariot)의 이미지를 빌려 다가오는 끊임없는 원망(願望)의 대상이 된다. 그녀의 죽음은 어떻게 말하면 동양적인 자비, 구제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기다린다. 시간에 실려 끝없이 삶이라는 원 위를 돌면서 그 죽음의 꽃마차가 자기의 영혼을 실어주기를 꿈꾸는 것이다. Beacause I could ne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이하 생략)   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 친절하게도 죽음이 날 위해 멈추었네- 수레는 실었네, 우리들 자신은 물론- 또 영원을. 그녀의 시 중에 가장 완벽하게 써진 것으로 평가되는 이 시는 그런 죽음의 모습을 아주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죽음을 삶 속에서 늘 직관적, 또는 선험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므로 에밀리 디킨슨의 죽음은 동양의 죽음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죽음과의 친교 , 그것은 시인에게 하나의 질서를 요구한다. 그것은 즉 고독이다. 고독이 죽음에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독은 곧 시인의 절망을 합리화 하고 순화하며 이러한 절망의 순화를 통해 세계와의 화해, 또는 융화라는 에 시인은 성공적으로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쉽게 단계적으로 축소 한다면 < 시인--> 절망--> 고독--> 죽음--> 우주--> 화해 > 라는 표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연에의 통찰을 주제로 한 시의 그룹이 있다. 그녀에게 있어 자연은 그러므로 어찌할 수 없는 완벽한 세계이다. 자연은 그것 그대로 이다. 그 속에서 산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라고 (The Mountain grow unnoticed) 물은 끝없이 흐르며, 곳곳에서 화산이 터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목적은 물론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숨으려고 하지만 결코 숨을 수 없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인 것이다. 인간은 끝나지만 자연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시인에게 있어 절망이자 또 희망이 된다. 고통스런 희망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시인의 고독과 절망은 다시 한 번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개인적인 고백의 시, 즉 실연의 테마를 우린 배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실연의 시들은 모두 날짜가 써 있고, 빠른 필적으로 써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그녀에 대해 놀랄 정도로 에로틱하고 열정적이며 자기를 몰입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돌처럼 냉정하게, 하잘 것 없이, - 고통도, 비애도 넘어선 열정.     
1455    두 시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댓글:  조회:4634  추천:0  2016-05-25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 ㅡ 그 애틋한 사랑이야기 그리움/유치환                                                                              부산 용두산공원 산책길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ㅡ유치환 통영 앞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청마의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이영도-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드는지고". ~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달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 52년 6월2일 당신의 마(馬)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렇게 고운 보배를 나는 가지고 사는 것이다 마지막 내가 죽는 날은 이 보배를 밝혀 남기리라 -유치환-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1967년 2월 13일 저녁,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붓을 영영 놓게 된 것이다.       유치환 (柳致環 1908∼1967) 시인. 호는 청마(靑馬). 경상남도 통영(統營) 출신. 유치진(柳致眞)의 동생이다 8·15 뒤 청년문학가협회장 등을 지내면서 민족문학운동을 전개했으며, 6·25 때에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유치환 장년의 사랑 ㅡ그를 말할 때면 사람들은 항상 이영도라는 사람을 항상 말하고는 한다 황폐하지 않은, 불모의 사랑이 아닌, 소중하고도 행복한 사랑,         이영도 시조시인·수필가   △경북 청도 출생(1916~1976) △《죽순》에 , 를 바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시조집『청저집(靑苧集)』,『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등 △유고시집『언약』 △수필집『춘근집(春芹集)』,『비둘기 내리는 뜨락』,『머나먼 사념의 길목』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ㅡ생략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 길입니까? 끝내 만리 길의 세상입니까?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여기 청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정운 이영도님의 시조를 적어 본다. 사랑했음으로 행복했고 그 추억만으로도 구슬같은 시조를 읊을 수 있었으니 두 시인은 이미 천하를 얻은 자이다. 황혼에 서서 - 이영도 산(山)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沈默)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입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情)   ㅡ이영도 님& 유치환님 서간집     <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 - 청마 유치환 <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서 있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 정운 이영도   < 진정 마음 외로운 날은 여기나 와서 기다리자 너 아닌 숱한 얼굴들이 드나는 유리문 밖으로 연보랏빛 갯바람이 할 일 없이 지나가고 노상 파아란 하늘만이 열려 있는데>                                     - 우편국에서(청마 유치환)
1454    오누이 詩碑 댓글:  조회:4678  추천:0  2016-05-24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259번지 등록문화재 제 293호 ▲ 동상(소싸움) © 박태선기자 비 개인 햇볕이 쨍쨍 한 날. 우린 청도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있다는 시조시인 이호우님과 이영도 남매의 생가와 詩碑(시비)공원을 찾아 집을 나섰다. 남성현재를 구비돌아 올라 정상에 있는 휴계소에 잠시 쉬어가려 머물렸는데, 예전에 보았던 이호우님의 '살구꽃 피는 마을'의 詩碑(시비)는 없어지고, 그 자리엔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의 싸움하는 소 두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 이정표 © 박태선기자 다시 출발하여 용암온천도 지나 사거리...어디로 가야할까? 잠시 길가에 차를 정차시켜놓고 마침 옆을 지나치는 소년에게 물었다. 이호우님의 생가가 있다는 내호리를 물었더니 진영, 밀양쪽으로 직진해서 쭉 가면 된단다. ▲ 내호리 입구 © 박태선기자 밀양가는 쪽으로 죽 달렸지만, 내호리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더 가다가 길가 도로에서 복숭아를 팔고 계시는 아저씨에게 여쭈었더니, 여기서 한참을 더가면 검문소가 있는데....검문소를 지나 비스듬히 아래로 내리닫이 철길이 나오면, 곧장 좌회전으로 완전히 꺽어 들어 죽 가면 그곳이 내호리라고 하신다. 검문소도 지나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내리닫이 길이 보이며 좌회전표시판이 있다. 그때야 아하, 하고 깨달았다. 철길이 아니라 첫길이라고 말씀하신것을 우린 둘다 철길로 들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 안내 팻말 © 박태선기자 길가에 '이호우, 이영도시인 생가'팻말이 보였다. 조금 더 가서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해놓고 디카를 들고 생가로 향했다. 생가 대문 앞에 검은 차 한대가 주차해 있어서, 좁은 옆길로 안으로 들어가니, 담장에 길게 늘어뜨린 가는 줄 끝에 선홍색으로 곱게 핀 능소화가 우릴 반겨 주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질때는 시들어 보기싫어지지만, 능소화는 필때 모습 그대로 뚝! 떨어져 다시 한번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 이호우. 이영도 남매시인 生家(생가) © 박태선기자 이곳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조시인인 이호우와 그의 동생 이영도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다. 생가는 1910년경에 지어졌으며, 한옥기와집으로 건물 배치는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형으로 구성되어있다. 꽃들이 한창인 작은 정원에서...고요함으로 나그네를 맞이하는 생가. 인기척이 없는 고요한 생가에서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씨없는 감의 고장답게 감나무가 푸르게 서 있었으며 집 뒤에는 대나무가 푸른물결로 다가오고, 마당의 흙들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감꽃이 필 때면 떨어진 꽃으로 목걸이도 만들며, 오누이가 오손도손 소꼽장난도 하였겠지요. 여름이면 흐르는 강에서 물장구치며, 가을이면 붉게 익은 홍시도 먹었겠지요. 시인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꿈속을 가듯 가물가물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지는 상념들... ▲ 이호우. 이영도 시인의 약력 碑(비) © 박태선기자 사진으로 얼핏 보기엔 벌통같아 보이지만, 뜰안 한쪽으로는 두 사람의 약력을 알리는 碑(비)를 만들어 두었다. 비문의 내용을 올려보면.. 爾豪愚(이호우) 선생의 생가 이곳은 '開花(개화)' '살구꽃 피는 마을' '休火山(휴화산)' '달밤'등 서정을 바탕으로 주옥같은 현대 시조를 남김으로써 한국 현대 시조의격을 한차원 높인 李鎬雨(이호우,1912~1970) 시인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선생의 시혼이 감도는 유서깊은 생가이다.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선생의 업적과 격조높은 시정신을 기리고자 한국문인협회가 sbs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현대문학 표장사업의 일환으로 이 글을 새긴다. 1997년 9월 10일 社團法人 韓國文協會 理事長 黃 命 李永道(이영도)선생의 생가 이곳은 '보리고개' '달무리'등 민족고유의 情恨(정한)으로 단아하고 섬세한 가락으로 승화시켜 빼어난 시조를 남김으로써 현대시조사를 한층 빛낸 丁芸 李永道(정운 이영도, 1916~1976)시인이 태어나고 성장한 자리로 선생의 시혼이 살아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선생의 격조 높은 시업(詩業)을 기리고자 한국문인협회가 sbs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현대문학 표징사업의 일환으로 이 글을 새긴다. 1997년 9월 10일 社團法人 韓國文協會 理事長 黃 命 ▲ 남매시인 시비공원 © 박태선기자 행정상 주소는 청도읍 내호리이지만 청도에서는대부분 유천이라 부른다. 시와 조각과 경관 등 시비조형물에 역점을 두고 제작 설치했다고 한다. 이호우, 이영도 詩碑는 옛 추억속에 묻혀있는 우리들의 고향, 고향에서 바라보는 달무리의 형상을 원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나타내었다고 한다. ▲ 남매시인 시비공원 © 박태선기자 한 사람의 시인도 태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어찌 오누이 두 남매가 다 문장에 뛰어날까? 산세가 좋아서 일까? 명당이여서 일까? 살펴본 산세는 멋모르는 나그네의 눈에도 줄이어 선 산들이 마을을 감싸흐르는 강과 어울려 저절로 복사꽃 피는 마을을 연상하게 한다. ▲ 오누이 시비 © 박태선기자 이호우 시조시인은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고, 29년에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의 재발과 위장병으로 귀국하였다. 시작활동은 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고, 李秉岐(이병기)의 추천으로 '달밤'이 실리면서 본격화되었다. ▲ 이호우 시비(살구꽃 피는마을) © 박태선기자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도 참여하였으며, 55년 첫시조집 '이호우시조집'을 간행하였다. 그 후의 작품들을 모아 68년 '休火山(휴화산)' 을 발간하였다. '달밤'에서와 같이 범상한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초기 작품의 특징이라면 '휴화산'에서는 인간 욕망의 승화와 안주적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55년 첫시조집으로 제1회 경북문화상을 받았으며, 72년 大邱(대구) 남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편저로 '古今時調精解(고금시조정해)'가 있으며,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1968년에 펴낸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가 있다. 오후의 따가운 햇볕이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햇볕을 마주보고 찍을수 밖에 없어서...시가 그림자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밑에 크게해서 올려보았습니다. ▲ 살구꽃 피는 마을 © 박태선기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호우 시조시인의 '달밤'도 소개합니다. 洛東江(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風景)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 뒤지는 들과 산(山)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 할머니「趙雄傳(조웅전)」에 잠들던 그날밤도 /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이 시조를 쓴 이호우 시인은 이영도 시인의 친 오라버니이시며,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를 연상케 하는 이들 오누이 시인들로 말미암아 우리 시조의 맥이 더욱 영글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 ▲ 이영도 시비(달무리) © 박태선기자 丁芸(정운) 이영도시인에게 바쳤던 유치환의 연시를 떠올리게 했다. 스물한 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 하나만 길러온 이영도 시인에게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고 노래한 청마는 유부남이었다. 1945년, 해방되던 해 통영여중의 동료 교사로 청마와 정운은 만났다. 서른여덟 살의 청마는 스물아홉의 청상 정운을 만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고, 그녀에게 무려 5천 통에 가까운 사랑의 편지를 썼다. 1967년 2월. 청마가 교통사고로 숨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청마 유치환과의 플라토닉사랑입니다. 세상이 모두 알고 있는 것과 같이 그는 여류시인 이영도에게 무려 5천여통의 사랑의 편지를 띄웠었고 청마가 정운에게 준 연애편지를 청마가 돌아가신 후, 출판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책에 절절히 기록되어 모든이에게 읽혀졌습니다. 그 수익은 이영도의 뜻에 따라 후진 양성을 위한 '시조시인상' 기금으로 희사하였다고 한다. 청마유치환님이 정운이영도님께 보낸 사모의 시...를 올려봅니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숫한 사람들이 /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족한 얼굴로 와선 /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사람께로 /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시달리고 나부끼어 /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비귀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느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두사람의 로멘스(?) 그 뒤에는 그늘에서 가슴탔던 한 여인의 모습이...씁쓸하게한다. ▲ 남매시인 시비공원 © 박태선기자 이영도시인은 1945년 '竹筍(죽순)'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조 '除夜(제야)'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이어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부산여자대학에 출강하였고, 부산어린이회관 관장, '현대시학' 편집위원 등을 지냈다. 민족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가는 고유의 가락을 시조에서 재현하고자 힘썼으며, 간결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여성의 맑고 경건한 啓示主義(계시주의), 기다림 등의 정서를 다스리며 관조적인 인생관을 보여주었다. 1966년 제8회 訥月文化賞(눌월문화상)을 받았으며, 대표작품으로 '바람' '아지랭이' '황혼에 서서' '미소'등이 있으며, 시조집 '靑苧集(청저집)' '석류' 등과, 수필집 '春芹集(춘근집)' '비둘기 내리는 뜨락' '머나먼 사념의 길목' 등이 있다. 이영도 시조시인의 또 다른 시조 몇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단풍 너도 따라 여기 / 황홀한 불길 속에 사랑도 미움도 / 넘어선 정이어라 못내 턴 / 그 청춘들이 / 사뤄 오르는 저 향로! 황혼에 서서 산이여, 목메인 듯 /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 먼 침묵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 애모는 바다처럼 / 저무는데 비 그대 그리움이 /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 푸는 그 사연 / 장지 밖에 듣는다.
1453    청마 유치환 시인과 정운 이영도 시조시인와의 사랑詩 댓글:  조회:5509  추천:0  2016-05-24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 시   이영도 : 시조시인. 호는 정운(丁芸). 경상북도 청도(淸道) 출생. 시조 시인 이호우(李鎬雨)의 여동생이다. 1945년 [죽순]동인으로 활동하며 등단함.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가는 고유의 가락을 시조에서 찾고자 노력하였으며, 간결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줌. 시집으로는 《청저집》(1954),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1968) 등 정운(이영도)는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고 홀로 되어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부임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제하의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남보다 피가 뜨거운 서른 여덟 살의 청마는 스물 아홉의 청상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 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청마의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 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 이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3년 동안 편지를 쓰고 시를 써댔다.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 않던 정운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으니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 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달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1967년 2월 13일 저녁,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붓을 영영 놓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렇게 고운 보배를 나는 가지고 사는 것이다 마지막 내가 죽는 날은 이 보배를 밝혀 남기리라 - 유치환 -   통영 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 그녀는 일찍이 결혼하여 21살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기르고 있었다 청마는 1947년 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청마는 1967년 2월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 편지를 계속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 것은 전쟁때 불타 버리고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당시 이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5,000여 통 중 200통을 추려 단행본으로 엮었다.   이 청마의 사랑 편지가 책으로 나오자 그날로 서점들의 주문이 밀어 닥쳤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무명 중앙 출판출사는 대번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마땅히 인세는 청마의 유족에게 돌아 가야 할 것이나 정운은 시전문지'현대시학'에 '작품상'기금으로 기탁 운영해 오다 끝을 맺지 못하고 1976년 3월 6일 예순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뜬다. . 탑(塔) 詩/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시인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20여년에 걸친 플라토닉사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전설과 같을 것이다.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 시를 읊을 때마다 그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눈물겹다   불장난이 아닌 충실한 사랑을 짙게 물들여 그의 장년기를 수놓는 제2의 청춘 가로 채웠던 그는 외로운 사랑을 했으며 죽음도 그 안에서 너그러운 사랑 속에 안길 수 있었다. 바로 의 행복한 연가로 폭을 넓히고 무르익었다. 영원한 것, 平常無事의 터득 속에서 익힌, 온화한 자애의 소근거림을 펼쳐 보이고 있다.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같은 학교에서 만난 이영도를 정신적으로 무척 좋아하였다.... 이미 처 자식이 있는 상태였던 그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가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녀에게 200통의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이영도 정운 선생이 1976년 예순의 나이로 타계한 뒤 무남독녀 박진아씨가 유품을 정리하니 미리 써둔 유서가 나왔고 유서에는 딸에게 사위에게 외손에게 부탁하는 말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죽음을 알릴 사람의 이름과 화장해 달라는 말, 그리고 장례비에 써달라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남에게 신세지기를 꺼리고 신세를 지면 갚으려고 하는 분이었기에 당신의 죽음 역시 비록 딸이지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였던 모양이다. 근검절약으로 일생을 부지런히 살았던 그녀는 택시를 타는 일이 거의 없고, 값비싼 음식을 사먹는 일이 없고 물건을 쌌던 포장 노끈까지도 잘 간수했다가 재활용하고 원고지 뒷면의 활용은 물론 편지를 쓰다가도 틀린 곳은 다시 종이를 덧붙여 썼다. 철 지난 달력의 아름다운 그림들은 잘 손질하여 화장실 부엌 같은 곳에 진열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이렇게 근검 절약하면서도 남을 위한 배려는 돈독하였다. 후배 문인의 딱한 사정을 접하면 언제나 먼저 나서 도우고자 하였다. 냉기 속에서 청춘의 타오르는 불꽃을 오로지 시조로써 달래야 했던 정운 선생.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이것은 첫 시조집 '청저집(靑苧集)'(54년)에 실렸던 작품('무제Ⅰ')으로, 경남 통영시에서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정운 선생이 청마 유치환과의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이다.   정운 선생은 1940년 대말~50년 대말 통영에서 10여 년간 머물렀고, 50년 대 말에 부산으로 옮겨와서 67년 초까지 부산에서 생활했다. 일찍이 혼자가 되어 오직 시를 쓰는 일과 딸 하나를 키우는 일에 전념하면서 어느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이영도는 그 당시의 많은 남성 문우들로부터 선망을 받고 있었다. 이영도가 혼자의 몸으로, 그렇게 꿋꿋하게 그의 시와 딸을 지키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청마 유치환과의 애정에 크게 힘입었던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이영도로 하여금 외로움과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받쳐 주는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청마를 향한 그리움은 그의 시를 시들지 않게 해준 충분한 자양이 되었다.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 길입니까? 끝내 만리 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 값으로 사망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여기 지고지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정운 이영도의 시조를 적어 본다. 황혼에 서서 - 이 영도 산(山)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沈默)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입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情) 진달래 - 이영도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戀戀)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이 시조는, 산에 난만히 피어 있는 진달래로 부터 4·19 혁명 때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넋을 떠올리며 그들에 대한 추모와 자기 회한의 정을 읊은 작품이다. 선생의 무덤은 경북 청도군 내호 마을 선영 아래 오빠인 이호우 선생 곁에 있다. 정운 선생이 배출한 제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다들 괄목할만한 시인으로 성장하였다. 에필로그 ;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을 떠올리며 - 김남식 이루지 못할 사랑인 줄 알면서도 20년 간 지켜간 그네들의 사랑은 불륜이라 치부하기엔 진정한 사랑과 고통이 있었기 때문으로 흔히 나의 이야기는 '로맨스'고, 남의 이야기는 '불륜'이라지만, 이 두분의 사랑은 불륜이라 이름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청마가 유부남이고 자신은 딸을 둔 미망인이라는 이유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지만 청마는 3년 동안 혼자서 변함없는 사랑을 보였다. 흔히 이별의 가장 많은 원인은 자존심 때문이기에 진정한 사랑엔 자존심이 살아있지 않음을 혼자서라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 주는 청마가 곁에 있는 이영도 시인이 부러웠다. 과연 청마 외에 이런 남자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면 이영도의 가슴 아픔이 저려 온다. 싫어서가 아닌데..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 마음을 그 누가 알까요? 한편으론 행복하고 한편으론 아팠을 그 마음 변함없는 사랑에 어쩜 유치환 보다 더 울었을 이영도 사랑 한다고 할 만큼 아팠을 이영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픔이 얼마나 크게 아팠을까요. 그리고 바로 건너편 2층 집에 그토록 사랑 할 여인이 곁에 있었으니 어쩜 유치환은 행복하기만 했을까? 이영도가 있었기에 바위처럼 꿋꿋하기만 했던 청마도 애련의 글을 쓸 수가 있었다. 이영도는 청마의 시 세계를 넓혀주었다. 3년만에 청마에게 마음을 연 이영도로 인하여 그들은 20년 동안 사랑을 키웠다.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현대에서 분명 이들의 사랑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아마 유치환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지만 않았다면 더 긴 세월을 사랑했을 것이다.   유치환에게 받은 편지를 한 통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둔 이영도의 마음이 너무 예쁘다 훗날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모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거창하게 출판까지는 꿈꾸지 않았을것이다 유치환이 이영도를 사랑한 만큼 이영도는 유치환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 연서를 보낼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세간에서 불륜이라기 보다는 참 아름다운 숭고한 사랑이라고 이름해 주는 그런 사랑을 나의 태도에 상관없이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청마기념관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청마에 대한 대부분의 자료를 수집해 놓고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마 사후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님이 발간한 청마의 서한집(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모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라는 오래된 책자다. 1967년 청마가 교통사고로 죽은지 한달만에 발간되어 당시에는 기록적인 25,000부가 팔렷다는 베스트 셀러였다.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 이영도의 청마연서 출판사건 이란 글에 이책이 간행된 일화가 나온다.       청마 유치환은 세계에서 가장 긴 연서를 쓰고 간 시인이다. 아마 기네스북도 이런 고급스러운 기록을 발견했더라면 호재로 삼았을 것이다. 그가 40대 전후의 나이에서 운명한 60세까지 5000여 통의 간절한 연서를 한 여인에게 간단없이 띄웠으니 말할 나위없다. 그것은 하나의 일과였다. 시조를 정갈하게 써 온 정운 이영도는 누가 보더라도 청초한 아름 다움과 남다른 기품을 지닌 여인상이었다. 평생 한복을 입었다. 계절에 맞춰 하늘하늘한 옥색 모시적삼이나 하얀 모시 옷을, 진보라나 검정 한복을 즐겨 입었다. 머리 매무새는 조선조의 여인처럼 동백기름을 발라 뒤로 땋아서 말아 올렸다.  그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일 재혼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으로부터 손가락질은 젖혀두고라도 더 불행해졌거나 가여움을 받았을 것이다. 자신과 재혼을 주선했던 상대들이 모두 저명한 인사들이었는데 자신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란다. 그 가운데는 영문학자이며 시인 수필가인 이양하 교수가 있었다. 이를 두고 일찍이 타계한 예로 삼았다. 딸 하나 있는 청상으로서 불행한 재혼보다 청마와의 염결한 사랑의 지속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청마가 병마 아닌 교통사고로 운명했을 때 이왕 비극은 맞았지만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이영도는 우선 다른 젊은 여인들이 청마의 연서를 책으로 묶어 내는 것이 두려웠다. 이런 여인들 문제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서둘러야 했다. 이 지상에서 청마를 진정으로 사랑한 당사자는 자신이라는 징표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청마가 운명하자마자 연서 뭉치를 상품화하는 행위를 부도덕으로 밀어붙일 것이 염려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운명한 지 불과 한달 사이다.  이영도는 이 때 평소 청마와 자기 사이의 다리를 묵묵히 놓아 주던 최계락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계락은 당시 국제신보의 문화부장이었다. 이영도가 최 부장을 은밀히 만나 의논한 끝에 청마의 연서를 최계락의 안목으로 가려 뽑는 조건으로 책으로 묶기로 했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표제가 붙여졌다. 청마 시의 한 구절에서 따 왔다. 연서집은 2만5000부가량 팔려 나갔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다. 수익금은 뒷날 '현대시학사'에 넘겨져 정운 문학상의 기금으로 적립되었다.       청마가 통영여중에 근무할 당시인 1947년에는 국어 청마 유치환, 음악 윤이상, 미술 전혁림, 가사 정운 이영도 선생님이 가르 쳤다니 그당시 통영여중 학생들은 대단한 선생님들께 배운것이다.       1987년 청마 사후 한달만에 발간된 서한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청마의 유명한 시. 행복                  유명한 청마의 시들                                                              
1452    詩作에서 끝줄을 쓰고 붓을 놓을 때... 댓글:  조회:4708  추천:0  2016-05-24
[14강] 시의 마무리(2) 박두진 시인은 시의 마무리에 대하여 1)미리 시의 마무리를 생각하고 쓰는 일이 없다. 시를 쓰면 의례 마무리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하나의 필연적인 귀결이 될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시의 마무리를 시의 끝마무리의 수사적인 뜻으로 좁혀서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 시의 시작과 전개 와의 상관 관계를 생각함에 있어 단순한 수사보다 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이며 그 중심적인 외적 통일 성이나 일관성을 그 시 전체의 됨됨이에서 재량하 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 늘 그 마무리는 시의 근본 주제의 관련 아래서 되도록 자연스럽게 필연 적인 귀결이 되어지기를 기원하면서 쓰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3)그러므로 시의 끝마무리는 오히려 시작이며, 동 시의 전개이며 동 시의 귀결과 핵심과 같은 그런 비중을 두게 된다. 4)다시 말하면 단순한 기교로서 보다는 그 시 자체 (전체)의 의도나 성격에 대한 나 자신의 대응자세, 그 가장 정신적인 창조의 태세에서 볼 때, 그 자연 적이고 필연적인 시이고자 하는 관용성과, 조심성, 겸허와 양보를 전제로 해서 일하고 있다. 잔재주나 섣부른 운치, 여운 따위의 의식적인 기교보다는 더 초월적이 못되는 경우에는 차라리 진지한 시적 자 세, 시에 순응하는 담담한 자세로 임하고자 하고 있다. 5)결국 시의 끝마무리를 소급해 올라갈 때, 그 성 공의 여부는 곧 그 시 전체의 성과를 좌우하게 되고 또 그렇게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바로메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원칙이나 이론으로 마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 라 마무리의 중요성과 시인의 시에 임하는 자세를 오히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끝마무리는 어떻게 하는가? 이는 건축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리 건축을 잘 하였다고 하여도 끝마무리 공사가 미진하면 건축물의 기능, 특히 미적 아름다움은 상실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에서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총체적으로 주제는? 제목은? 연과 행의 구분은? 시어의 선택 은? 배열상의 문제는? 등등을 우리가 시를 쓸 때 마다 심혈을 기울이는 중요한 명제들입니다. 시의 마무리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작업 이며, 어떻게 보면 마무리가 잘 못되어 노력하여 써 놓은 시가 좋지 않은 시가 되는 등의 실패가 올 수 있으므로 시의 마무리 작업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한 편의 시가 일단 마무리되어 발표된다 하여도 언제나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 불과하 며 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가 항상 긴장과 흥 분을 동반하기 때문에 또 다른 시를 쓸 수가 있다 고 합니다. 잠시 쉬는 의미에서 최근에 발표된 시를 한 편 올릴 터이니, 첫 행은 어떻게 시작하며 이어지 는 행과 연의 관계, 마무리까지의 연관 등을 나름대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박영근 님의 입니다.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컬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업소,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 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저 눈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남진우님의 해설을 첨부합니다. "80년대 노동시가 한창 맹위를 떨칠 때 대할 수 있 었던 이 시인의 몇몇 시가 떠오른다. 노동 현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시대 현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것을 비교적 생경하지 않은 수사와 장면 제시를 통해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는 능력....... 오랜 세월이 흘러서 다시 만나게 된 그의 시편은 보다 침잠된 어조로 삶의 고단함과 정처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사회적 현실이 바뀐 탓일까 아니면 시인의 연륜 탓일까. 고향 집으로 여겨지는 집으로 돌아온 화자의 적막한 심사를 노래한다. < 길>에서 도 짙게 묻어나는 것은 삶에 대한 처연 한 응시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선뜻 장지문을 열지 못하고 자신이 과 맞닥뜨리고 있다. 화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숨죽인 울음이 읽는 사람에게도 전염을 일으킨다. 아주 잘 썼지요? 두 번, 세 번 읽으며,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려 보세요. 이런 시를 많이 읽어보는 것이 여러분의 시를 쓰는 솜씨에 많은 도움이 되리 라 믿습니다. 이어서 우리 선배 시인들은 시의 마무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어려운 이론이 아니므로 좀 길더라도 다 인용할 터이니 읽고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황금찬 시인의 마무리에 대한 변을 들어볼까요? "시작과 끝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작과 끝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작이 힘 들듯이 끝도 힘 들게 끝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시작에 있어 가장 힘에 부치는 것이 끝 줄 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의 끝 줄을 쓰고 붓을 놓기가 그리도 힘이 든다. 시의 끝 줄을 쓰고 붓을 놓을 때, 그 때의 기쁨은 실로 하늘 같은 것 이다. 써놓고 보면 하나도 끝 줄로써 안정된 것이 없다. 그럴 때 오는 불안은 실로 크고 고되다. 초고에서 다음으로, 그리고 다시 다음으로 옮겨 쓰고 그렇게 하기를 몇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항상 끝 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 줄이 제자리에 놓이게 되면 나의 시 는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가령 산중에서 군주가 되라. 아!종이 호랑이여 이 것은 [心想]의 끝줄이다. 그 빈 잔 속에 담기는 나비 한마리 [아침커피]의 끝 줄이다. 이것들이 모두 마음에 흡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망서리게 하던 마지만 끝줄임에는 틀림이 없다. 천마가 끄는 마차에 앉아 있다. [웨버의 주제와 변주곡]의 끝줄이다. 세상은 파문 파문 속에서 산다. [파문]의 끝줄이다.비교적 안도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끝줄이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어떤 경우 에는 끝줄이 미리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한편의 시는 쉽게 이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시의 마무리는 끝 줄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정착되면 붓을 놓아도 된다. 오늘은 예문으로 든 시가 너무 작아 여기 좋은시 최근작 한 편을 더 올려드리겠습니다. 박정대님의 입니다. 나는 [목련통신]을 만들며 4월을 다 보냈네. 그리운 꽃잎들은 창문 밖까지 왔다 간 한 척의 낮달 두 폭의 바람과 함게 멀어져 갔네 4월에는 이야기가 있었네 그러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말하지 않으려네 4월에도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음을 알았네. 그 틈서리에 깃들어 사는 새들의 어둠 그러나 새들도 어둠 속 침묵의 주인은 아니라네 어둠만이 어둠을 알아보는 어둠만이 간절히 별빛을 꿈꾸는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기타처럼 연주하던 어둠 속 침묵의 노래. 오래된 4월의 밤 이야기 이어서 이승훈님의 해설입니다. "4월에도 밤이 있는가? 3월밤은 춥고 4월 밤은 애매 하고 5월 밤은 따뜻하다. 물론 4월 밤은 피를 흘리 는 경우도 있다. 박정대는 4월 밤에 [목련통신]을 만든다. 그러나 꽃잎들은 멀어져 가고,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4월에 그가 보는 것은 간격, 틈, 사이이고, 이 사이가 4월을 만들고 새들을 만든다. 그러나 새들도 주인은 아니다. 왜 냐하면 새들도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가 4월 밤에 읽는 것은 사이이고 이 사이에 오랜 이야기가 있다. 이 사이는 오랜 흔적이고 역사이고 어둠이고, 이 어둠이 어둠을 알아본다. 지사와 본사 사이에 박정대가 있다. 그는 특파원이다. 요즘하는 강의는 책을 읽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셔도 될 것입니다. ============================================   362. 눈 위에 눈이 내리고 / 이태수                                 눈 위에 눈이 내리고                                 이 태 수   눈 위에 눈이 내린다. 이제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다. 물에 물을 붓듯이 상처에 상처가 깊어진다. 누가 아프다, 아프다고 소리 지른다. 하지만 그는 어디가 아픈지는 알지 못한다. 숨을 잠시 멈췄다 깊숙이 빨아들인다. 눈 위에 눈이 내리고 병든 시대에 병든 세월이 자꾸만 드러눕는다.     이태수 시집 중에서           이태수 연보   1947년 경북 의성 출생.        영남대학교 철학과 및 대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3~2007년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논설주간 역임.   1974년 에 시 외 5편 추천 등단.   1979년 제1시집 발간.   1982년 제2시집 발간.   1986년 제3시집 발간. 대구시문화상(문학부문) 수상.   1990년 제4시집 발간.   1993년 제5시집 발간.   1995년 제6시집 발간.   1996년 동서문학상 수상.   1997년 제7시집 발간.   1999년 제8시집 발간.   2000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   2001~2007년 대구한의대 국문과 겸임교수.   2004년 제9시집 발간. 대통령 표창.        미술 산문집 발간.   2005년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2008년 제10시집 발간. 대구예술대상 수상.   2011년 단행본 발간.     2012년 육필시선집 . 제11시집 발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시공직자윤리위원장 역임.   현재 금복문화재단 이사, 대구도시공자 이사, 육사시문학상 운영위원, 상화문학제 위원장. 동인.
1451    詩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댓글:  조회:4517  추천:0  2016-05-24
13강] 시의 마무리(1) 그 동안은 시의 시작, 행과 연에 관해서 공부를 했습 니다만 이 시간엔 시의 마무리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자 합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시에도 시작과 마 무리가 있습니다. 시를 시작하는 것이 곤혹스러웠 듯이 시의 마무리 또한 저를 무척 곤혹스럽게 하곤 합 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꼭 시가 아니라도 무슨 글을 쓰는데 마무리 짓기가 어려웠음을 경험 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몇시간 쯤 시의 마무리에 대해서 공부하기 로 합니다. 시의 마무리란 그 시의 완결을 의미합니다. 시를 어 떻게 끝낼 것인가 하는 것은 시를 어떻게 시작할 것 인가 하는 문제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시인들의 대부분은 첫 행의 이미지를 떠올리 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듯이 시의 마무리 작업도 그 만큼 중요시 합니다. 시의 마무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종결이 아니라 미완 성의 묘미를 갖게도 합니다. 그 것은 그 안에 여운 이 남기 때문입니다. 뭔가 말 할 것을 다 못한 듯한 미진한 아쉬움이 아니라, 시의 감동이 한 순간에 사라지지 않고 조용 히 남겨주는 그 여운이야말로 깊은 맛을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먼저 김춘수 시인의 마무리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기 로 할까요? 시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은 일정하지 않 다. 다만 한 가지 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것은 의미를 죽이더라도 리듬이나 멜러디를 살리려는 노력 을 하게 된다.리듬이나 멜러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 시는 미완성인 것으로 치부된다. 다음 과 같은 것은 그 한 예다. 잊어다오. 어제는 노을이 죽고 오늘은 애미메꽃이 핀다. 잊어다오. 늪에 빠진 그대의 아미, 휘파람 새의 짧은 휘파람. 의미가 자꾸만 자기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몹시 거북하다. 이런 모양으로 일단 발표는 했지만, 나로 서는 매우 불만이고, 따라서 지금도 그 마무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중간보고는 다음과 같다. 어제는 노을이지고 오늘은 애미메꽃이 핀다. 잊어다오. 늪에 빠진 그대의 아미 휘파람새의 짧은 휘파람 다음은 박이도 시인의 마무리에 관한 의견을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시 한 편을 마무리할 때 부딪치는 고충은 대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시 전 편에서 이야기하려고 한 내용과 감성이 어느 정도 정확히 표현되어 있는가를 독자의 입장에 서 감상해 보는 것이다. 이 경우 나는 흔히 마지막 연에서 많은 불만을 느끼 고 이를 수정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완전 삭제해 버리 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시의 내용성를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는 나 자신 의 좋지 못한 습관에서 연유된 것 같다. 어떤 때는 사상적 논문의 결론같이 엉뚱한 마무리도 되는 수가 있고, 무슨 표어같은 맺음이 되는 것을 흔히 발견하 게 된다. 청탁 받아 성급히 썼던 시편들속에서 이런 불만을 느낄 경우가 많다. 다음엔 언어의 문제다. 앞에 인용한 엘리어트의 말처 럼 이 시대의 호흡이며 이 시대의 지역성을 염두에 둔, 그러면서 내 자신의 감성을 가장 승화시킬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이 것이 시를 써 놓고 내가 가장 겁나게 생각하는 것 이다. 특히 언어 선택의 문제는 내 관심에 비해 지금 까지 너무 소홀이 다뤄졌다. 나는 이 문제를 내 시작 의 한 과제로 삼고 있기도 하다. 시를 써놓고, 혹은 이미 발표한 것이라도 다시 손대고 싶은 것은 항상 마음 구석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 이 어느 정도 시일이 경과한 다음에는 오히려 작품을 죽이는 행위임을 여러번 경험했다. 마치 물에 젖은 재목과 마른 재목이 그 기능에 차이가 나듯 한 작품에 대한 마무리는 단시일내에 완결짓느 것이 효과적인 것 같다. 우선 두 분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마무리에 대한 것은 특별한 이론이 있을 수 없으므로 가능하면 많은 분들 의 견해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시의 마무리에 대해서는 조병무 님의 라는 교재의 내용을 설 명 드리고 있습니다. 다시 교재의 본론으로 들어 갑니다. 천천의 빛이 일시에 갈라지며 치솟을 때 바다는 천편의 공중으로 떠 있다 -이규호 [바다]- 그 때 나는 열리라 바다의 문을. -조병무 [바다 앞에서]- 지금 잠들면 무서워, 지금 잠들면 무서워. -박재능 [지금 잠들면]- 나는 너에게 하늘 한자락 덮어 주리라 -김준식 [햇살에 기대어 꽃이 피면]- 시의 마무리에서도 전체를 단정적으로 맺음하는 요소 와 호소적인 요소, 전체에 공감하는 요소, 호응적인 요소 등 여러가지의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시의 마무리에서 그 한 행이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느 냐 한 연이 마무리에 들어 가느냐 하는 것은 시인들 의 각각의 특성에서 달라질 수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 끝마무리가 단정적으로 나타나거나 명 령형이나 의문형, 명사형으로 나타나는 등 여러 갈 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것은 시인이 갖고 있는 특성입니다만 다만 전체 시의 내용과 주제 언어의 율격과도 같아야 하니까 문제가 있긴 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도치현상으로 내는 것도 있읍니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김남조 [너를 위하여]- 이러한 마무리는 가 제일 끝행으로 와 있습니다. 사실은 의 앞에 가는 것이 정치법입니다만 도치 현상을 씀으로써 가 애절하고 강렬하게 확대되어 우리 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한성기 시인의 마무리는 어떠한가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대게 밤에 시를 쓴다. 써 놓고는 얼마동안 들 떠 있다가 잠을 잔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깨어 보고는 언제나 실망하고 만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요즘은 시가 되면 노트를 덮어 둔다. 이튿날 이 되어도 일부러 보지 않는다. 뜸 들이는 일. 아궁이 불을 걷고 밥이 퍼지기를 기다리는 시간..... 나는 노트를 덮어 두고 뜸이 들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내 책상에는 대학노트가 쌓여 있다. 생각날 때마다 적어둔 시작노트, 한달 전에 쓴 것이 있고 두 달 전에 쓴 것이 있고 두 달전에 쓴 것이 있다. 또 더 오래 된 것도 있다. 나는 심심하면 이것들을 뒤적 뒤적한다. 뜸이 들었나 하고 슬쩍 떠들어보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이제 손을 대도 괜찮겠다 싶은 것이 있으 면 나는 체크해 두고 노트를 덮어 둔다. 얼마뒤에 다 시 체크해 둔 것을 떠들어 본다. 그래서 두 번 보고 세번 보아도 괜찮은 것이 눈에 뜨이고 그 것부터 마무리를 시작한다. 시 나름이다. 첫줄이 나가면서 끝줄까지 나간 것이 있다. 대개 소품이지만 한 두자쯤 손을 보면 된다. 그러나 노상 그럴 수 없다. 대부분은 애를 먹인다. 헐거운데를 조이고 조인데를 풀고 잘라내고 붙이고 그러다 보면 노트가 빡빡해진다. 결판을 내지 못하고 도로 노트를 덮어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안되는 소리지만 청탁에 쫓길 때가 문제다. 작품은 보내야겠고 작품은 없고... 몸이 부쩍 단다. 이런 때 나는 흔히 둑으로 나간다. 둑길을 걸으면서 생각하는데 그래서 빠듯이 마감에 대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쫓겨서 쓴 작품은 대부분이 타작이다. 둑길, 나는 평소에도 둑길에서 시를 생각한다. 생각 하면서 걷고 걸으면서 생각하는 버릇,,, 내를 끼고 도는 둑길은 요즘 내게 둘도 없는 벗이다. 시는 내가 쓰면서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시는 누가 와서 거들어주는 것 같다. 내 경우 둑길과 같이... 어디서 붓을 뗄 것인가. 어려운 일이다. 마무리를 하다 보면 이 건 마무리가 아니라 대폭 수술을 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처음 발상과는 전연 다른 작품이 되는 수도 있고 또 조이고 잘라내다 보면 오히려 작품을 버려 놓는 일도 없지 않다. 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서둘지 말고 되도록 오래 두고, 그래서 원고지에 옮겨야 하는데..... 나는 언제 나 서둘다가 작품을 망치는 일이 많다. 제가 이 번 강의에 선배 시인들의 의견을 많이 올리 는 것은 어려운 이론 보다는 이런 경험담이 여러분 께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입니다. 말하자면 시의 시작이나 마무리가 어떤 이론이나 원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천이면 천, 작가에 따라서 그 견해가 다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올리는 선배 시인들의 글은 다만 참고 만 할 뿐이지 그대로 하라는 말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강의를 마치기 전에 좋은 시를 한 편 올리고 읽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김명리님의 입니다. 멀리 산그늘 속으로 새 두 마리 난다 텅 빈 이월 하늘에 물보라 친다 石間朱 빛깔로 꽁지가 얼어붙어 저 새들 아직 근육이 파아란 잔가지들을 물고 어디 어디까지 날아가나 일몰의 내 집 창유리에 성기게 붓질한 채색 세한도로 서려오는 천마산 며칠째 뒤숭숭하던 하늘이 천마산 팔부 등성이쯤에 한 줌 싸락눈을 뿌리고 간다 응혈에 좋다는 사슴을 백마리도 더 키우는 베델농원 위로 저녁밥 끓이는 매캐한 불빛들 唐草, 모란문[牧丹文]으로 겨루며 흩어지고 내달리던 天馬가 갈기를 곧추세우며 우뚝 멈추어 선 자리 듬성한 눈발 맞으며 교목의 가지들이 안으로 휘듯 웅크리듯 오롯 벌리어 있으니 문 처닫고 서서 짐짓 흔들어보는 萬里 밖 오래된 누옥의 서까래 들보 층층이 들썩거리고 그 아래 봄빛 사나워라. 내 집 창유리를 거듭 울리는 우당탕 쿵탕 저 또 雪害木 부러지는 소리 이해를 돕기 위해 남진우님의 해설을 곁들여 싣습니다. "자연 서경을 그리는 김명리의 필법이 한결 깊어 졌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로 그는 늦겨울 일몰 무렵 집 유리창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을 잔잔한 화폭에 담고 있다. 그 스산한 풍경 속에서 세상은 고요히 정화된다. 시의 결미를 장식하는 는 화자가 위치한 공간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발원한 억제할 수 없는 어떤 충동의 감각적 표상일 것이다." ==========================================================================   361. 눈물 / 오탁번                                                         눈물                                  오 탁 번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었던 나이가 그러한 맹랑한 자유가 흔하디 흔한 눈물만일 줄 알았다 쓸데없는 배설인 줄만 알았다   어젯밤 사랑하는 여자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도 울 수 없었을 때 툭툭털며 그냥저냥 일어섰을 때 눈물이 숨기고 있던 크나큰 자유를 순수를 알았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없는 나이가 되면서 이 시대의 밤은 높기만 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는 개똥같은 지성을 미워했다 눈물을 기구하며 개처럼 하루 한낮을 기어다녔다     오탁번 육필시선집 중에서  
1450    [비 추적추적 오는 아침 詩]- 련쇄 사랑사건 댓글:  조회:5107  추천:0  2016-05-24
    까치밥 - 김승기(1960~ )   빈 가지에 달린 누구의 빨간 심장 하나 어느 허기진 살림살이 한 두어 평, 넓어지겠다 제 부리에 묻은 선혈(鮮血)의 따듯함을     모르는 어리석음도 언젠가 누굴 위해 저렇게 제 심장 내걸 날 있을 테지 누군가 허공에 남겨 둔 까치밥은 굶주린 자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것으로 “허기진 살림살이”가 넓어진다. 놀랍게도 사랑은 감염이 잘되어서, “따듯함을 모르는/ 어리석음”도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하는 존재가 된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위해 허공에 “제 심장”을 내거는, 이 ‘연쇄 사랑사건’이야말로 희망의 도화선이다. ====================================== 노는 별들아 - 이승훈(1942~ )   시시덕거리며 노는 별들아. 닥닥거리며 엄마 찾아 달려가는 아기 별, 감자 먹고 방에서 자는 아빠 별, 여름밤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였네. 너희는 볕만 내리쬐는 더위는 몰라. 밤하늘이 온통 수박밭이고 참외밭이야. 몰래 들어가 수박 따 먹고 참외 따 먹는 밤, 시시덕거리며 노는 별들아.     일하는 인간(Homo Faber)이 성과와 효율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면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은 자유와 무(無)목적성, 그리고 상상력을 중시한다. 궁극적으로 ‘문화’를 이끄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다. 그리고 모든 노동은 최종적으로 놀이의 상태를 꿈꾼다. 경쟁과 효율의 이데올로기 앞에 “시시덕거리며” 자유롭게, 대가 없이 “노는 별들”은 늘 혐의가 된다. 문화의 풍요와 부재가 공존하는 시대다.     ===================================== 파문 -이영혜(1964~ ) 수심(愁心)만 가득한 수심(水深)을 알 수 없는 저수지 한 가운데 달이 빠졌다 저 달덩이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나 평생 파문을 끌어안고 살리라 시는 이미지로 말한다. 르장드르(Legendre)의 말마따나 “우리 사이에서 우리는 (이미) 이미지인 것이다”. “저수지” “달덩이”의 두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만나 이루는 “파문”을 보라.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愁心)”은 존재를 늘 파문 상태에 놔둔다. 근심이 완전히 가라앉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죽음이라는) 종점의 시간에나 가능하다. “평생 파문을 끌어안고 살리라”는 선언은, 근심을 아예 존재의 일부로 삼음으로써 그것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     시간 - 김승희(1952~ )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흑색 금색 창을 들고 사유의 들판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을 편들지 않으리. 죽음과 생을 모조리 나의 심장 속에 놓아 먹이리. 그러나 그때에는 달랐었다. 내가 아직 내 말(馬)의 고삐쥔 손을 느끼지 않았을 그때에는, 더 이상 생각지 말아라. 지금은 빛나고 휘날리는 金색의 깃발. 그러나 곧 정적이 와버리는 것을. 어렸을 때 시간은 신비 그 자체이고, 삶을 비옥한 꿈의 대지로 가꾼다. 어떤 악에도 물들지 않아 옳은 행동만을 일삼는 어린 인류는 천진무구한 채로 시간이란 말[馬]의 고삐를 틀어쥐고 달린다. 시간은 “금색의 깃발”로 나부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의 고삐를 틀어쥘 수가 없다. 순간들의 연쇄는 질서를 잃은 채 엉킨다.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제멋대로 달려가는 시간들! 누구나 시간이란 유한자원을 까먹으며 나이를 먹는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유한자산을 강탈하고, 노화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닿으면서 생의 주기라는 원을 닫는다. ====================================     순식간에 뽑혀 나와 부르르 떠는 배추 그렇다 분수처럼 절정에서 꺾이는 것 전율은 솟구친 몸이 떨어질 때 오는 거다.   고추 마늘 온갖 양념을 한 통속에 비벼서 덥고 춥고 맵고 짠맛을 한꺼번에 겪는 것 세상의 눈치 살피며 풀 죽을 수 있는 거다.   입 안에서 씹힐 때 마지막 숨 거두며 다섯 번을 죽어서야 맛을 내는 배추처럼 몇 번을 까무러쳐야 시 한 편이 되는 거다.   ///김삼환 ================================    박물관에서 뼈만 남은 고검 한 자루를 본다 피투성이 시간들 녹슬어 떡이 돼있고 첩첩한 어둠 한 가운데 무명 장수의 미라처럼 눕혀져 있지만 그의 뼈 속 어딘가 시퍼런 날이 숨어 있다.   ///이유경  ===========================     상치꽃 아욱꽃 ―박용래(1925∼1980)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네.  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잔 한잔 비우고  잔 비우고  배꼽  내놓고 웃네.  이끼 낀  돌담  아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다는  시인의 이름  잊었네.   아욱 잎은 국 끓여 먹고, 상추 잎은 생것을 쌈으로 먹고. 먹을거리로만 그 잎을 보아 온 사람들은 상추와 아욱도 꽃이 핀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기 쉬우리. 때는 한여름, 해는 저의 긴 날을 늘어지는 걸음으로 지나고 있었을 테다. 마루에 앉아 ‘잔 한잔 비우고/잔 비우’며 건너다보는 마당 텃밭에 ‘상치꽃은/상치 대궁만큼 웃네.//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웃네. 남겨진 대궁마다 함초롬히 상추꽃 아욱꽃, 화자가 보기 좋은 높이로 피었으리. 화자는 ‘배꼽/내놓고 웃네’. 자기 집에 있는데 무더운 날에 옷을 대충 걸친들 어떠랴. 화자는 러닝셔츠를 가슴께로 훌떡 걷어 올리고 있을 테다. 어쩌면 웃통을 벗고 있을지도. 상추와 아욱도 ‘배꼽/내놓고 웃네’. 꽃은 식물의 배꼽, 씨앗의 근원이라네. 꽃이 없으면 세대에서 세대로 어찌 이어지리. 그러니 상추와 아욱의 꽃은 임부의 자랑인 불룩한 배인 것, 그 배꼽인 것. 꽃 핀 텃밭을 정답게 완상하며 술을 마시는 나른한 흔쾌함이 ‘이끼 낀/돌담’부터 편치 않은 정조로 바뀐다. 하루 이틀 전까지 이어졌을 장마에 이끼 무성해진 돌담은 볕이 안 들어 축축하리라. 그 위로 저물어가는 하늘 동편에 실낱같은 달이 뜨고, 문득 ‘이즈러진 달이/실낱같다는’ 시구가 떠오르는데 그 ‘시인의 이름’ 떠오르지 않고. 어떤 부분은 더 선명하고 어떤 부분은 더 가물가물한 명정 상태에서 왠지 화자의 기분이, 술 잘 마셔놓고, 자욱이 가라앉는 듯. 박용래의 시들은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세계를 담는 게 미덕인 시의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독자는 그 간결한 시들이 우아하게 이끄는 정답고 소박한 세계에서 가슴 아릿한 원초적 향수에 젖어든다.  황인숙 시인  ==============================     희망(希望) ―전봉건(1928∼1988)  아름다운  어느 한 아름다운 날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가슴께에서  꽃과 사과이고 싶은 것은  꽃바구니의.  달빛에 씻긴 이슬을  이슬 머금은 배추가 진주(眞珠)처럼 아롱지며 트이는 아침을 푸른 바다 어리는 비둘기의 눈동자를  태양(太陽)이 웃으며 내려오는 하늘… 그 눈부신 계단에 핀 진달래를  또 신문(新聞)이 음악(音樂)처럼 뿌려지는 거리를  생각하는 것은.  여기  무수히 검은 총(銃)알 자국 얼룩진  나무와 나무 사이  눈이 깔린 밤  … 여기에서.    오 두 마리  버들강아지 꼼지락이는 은(銀) 목걸이를 생각하며,  꽃바구니의 꽃 그리고  사과이고 싶은 것은… 당신의  가슴께에서.  구름도  지구(地球)도  인간(人間)도  생활(生活)도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다 함께 그리운 내가  전쟁(戰爭)의 숯검정이 자욱이 얼어붙은  내 눈시울 속에  서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 겨울날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서 있는  까닭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의 소용돌이인데 겨울이 오고, 탄흔 무수한 ‘나무와 나무 사이/눈이 깔린 밤’, 깨어 있는 한 병사가 있다. 방한복이나 제대로 입었을까. 어쩌면 닳아진 군복과 군화, 배도 고플 테다. 떠나지 않는 공포와 고통이 병사에게 ‘아름다운/어느 한 아름다운 날을’ 절절히 떠오르게 한다. ‘꽃바구니’ 같았던 사랑의 시간, 아 너무도 그리운, 눈에 삼삼한 ‘당신의 가슴께’ ‘꽃과 사과’! 달콤한 안식과 평화의 그런 날이 다시 올까. ‘푸른 바다 어리는 비둘기의 눈동자’ 같은 그날이. 소중한지 모르고 흘려보내던 일상이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다 함께 그리운’ 병사다. ‘구름도/지구도/인간도/생활도’! 신문도 참 오래 못 보았구나. 신문 파는 소년들이 손님을 부르는 외침으로 들썩거리던 거리, 시내 한복판의 소요며 분답도 평화의 그것인 양 어찌나 가슴 저리게 그리운지 ‘신문이 음악처럼 뿌려’진단다. ‘전쟁의 숯검정이 자욱이 얼어붙은’ 병사의 눈시울에 이 모든 것이 꿈인 듯 ‘아스라이’ 들어선다.  시 속의 병사는 시인 자신일 테다. 시인은 살아남아 시를 쓰는데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병사,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욱신거리는 이 상흔이 전봉건의 많은 시에 담겨 있다. 황인숙 시인  ======================     옛 마을을 지나며 ―김남주(1946∼1994)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옛 마을 풍경의 서늘한 아름다움이여, 시인의 서늘한 시선이여. 10년이나 투옥 생활을 하도록 시대의 억압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온몸으로 ‘전사(戰士)의 시’를 쓴 ‘시의 전사’ 김남주. 격정적으로 독설을 분출하던 그 뜨거운 심장에서 이리 지순한 서정이라니. 시인 김남주에 대한 평가는 이념적 평가만이 아니라 예술적 평가도 엇갈린다. 그의 시가 예술에 미달한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시에 정치가 전면에 내세워져 있으며 시어가 사납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그의 시는 마디마디 장단이 딱딱 맞으며 리드미컬하다. 과격한 언어로 펼쳐지는 그 서사에 동의하건 반대하건 거기 뛰노는 맥, 줄기찬 가락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다.    ‘저렇게 많은 별이 있구나 하늘에는/그것도 모르고 갑석이 마누라는 일만 하는구나/늦도록 밤늦도록 아이고 허리야/허리 한번 못 펴고 손톱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저렇게 많은 논과 밭이 있구나 땅에는/그것도 모르고 바보 갑석이는 고향을 뜨자는구나/지게질을 해도 서울로 가서 하자고/품팔이를 해도 대처에 가서 하자고//저렇게 많은 학교가 있구나 도시에는/그것도 모르고 재순이 아버지 갑석이는/재순이를 공장으로 내모는구나/열 살 먹은 막내까지 내모는구나//저렇게 많은 불빛이 있구나 강 건너 마을에는/그것도 모르고 재순이네는 다리 밑에 자리를 까는구나/마침 겨울이라 함박눈이 와서 그들을 덮어주는구나.’(시 ‘재순이네’) 김남주는 약소국이었던 나라의 사회주의자답게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농촌과 도시에서 착취당하며 사는 힘없이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시인이 그토록 격렬하게 쟁취하고자 한 것은 이 하나,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조선의 마음’이었나.  김남주 같은 사람은 드물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불의가 없는 세상, 이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꿈을 갖고 있더라도 대개는 행동으로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주의자는 항상 패배하게 마련이다. 김남주가 꿈꾼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세상을 꿈꾸고 꾸준히 써왔기 때문에 반 발짝이라도 그 세상에 다가갔을 것이다. 황인숙 시인    ================================     밥 먹는 풍경 ―안주철(1975∼ )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 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을 먹고 있다   ///구멍가게는 누구나 수시로 드나들게 개방된 공간이다. 눈에 거슬리는 손님을 맞는 스트레스도 여간 아닐 테다. 이문이 많이 남는 물건을 얼른 사 가는 손님만 있으면 좋으련만, 동네 어느 집에 집들이라도 온 사람이 드문드문 그럴까, 코흘리개와 모주꾼이나 들락거린다. 종일 가게를 열고 있어도 장사가 별로이니 물건도 변변히 갖춰 놓지 못한다. 그러니 모처럼의 번듯한 손님도 그냥 나가버리고, 악순환이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러온 아이는 얼른 골라들지 않고 전기 닳게 냉장고 문을 오래도 열고 들여다본다. 사내들은 딸랑 소주 두어 병 사서는 평상에서 우렁우렁 오래도 떠들며 마시고 있다. 살림집에 ‘엄마’가 낸 구멍가게, 밥은 당연히 가게에 딸린 방에서 먹을 터. 코앞에서 펼쳐지는 단작스러운 장사, 외면할 수 없이 드러나는 제 가족의 생활 밑천에 화자는 울컥해서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에 대한 ‘엄마’의 즉각적인 대답은 아들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이놈아, 지금 네 목구멍에 넘어가는 밥이 어디서 난 줄 아느냐!’ 생의 구질구질함에 속이 꽉 막혔을 화자는 외려 후련하고 정신이 번쩍 났을 테다.   이런 구멍가게가 변두리 옛날 동네에는 아직 남아 있다. 시인은 대한민국의 빈곤을 모르는 첫 세대라는 1970년대생, 빈곤이 한층 싫고 힘들었을 테다. 이 시가 담긴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은 가난한 집에서 1막을 시작한 생은 2막도 3막도 똑같이 지리멸렬 이어지고, 그렇게 인생이 끝나리라는 비관적 세계관을 유머러스하고 서글프게, 또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독자 여러분께 작별인사를 드려야겠다. 오래도록 지면을 허락해준 동아일보에 감사드린다. 즐겁고 알찬 시간이었다. 여러분도 그러했기를!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황인숙 시인  ========================       정신의 열대 이기철(1943∼ )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거기 슬플 것 다 슬퍼해 본 사람들이 고통을 씻어 햇볕에 널어두고 쌀 씻어 밥 짓는 마을 있으리 더러 초록을 입에 넣으며 초록만큼 푸르러지는 사람들 살고 있으리 그들이 봄 강물처럼 싱싱하게 묻는 안부 내 들을 수 있으리 오늘 아침 배춧잎처럼 빛나던 청의(靑衣)를 물고 날아간 새들이여 네가 부리로 물고 가 짓는 삭정이 집 아니라도 사람이 사는 집들 남(南)으로만 흘러내리는 추녀들이 지붕 끝에 놀을 받아 따뜻하고 오래 아픈 사람들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는 아이 울음처럼 신선한 뜨락 있으리 저녁의 고전적인 옷을 벗기고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 살아서 깊어지는 노래 한 구절 보탤 수 있으리 오래 고통을 잠재우던 이불 소리와 아플 것 다 아파 본 사람들의 마음 불러 모아 고로쇠 숲에서 우는 청호반새의 노래를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말로 번역할 수 있으리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지그시 경락을 짚는 듯, 마음의 줄을 누르고 튕긴다. 아프고 시원하고 몽롱하다. ‘남(南)으로만 흘러내리는 추녀들이/지붕 끝에 놀을 받아 따뜻하고’ ‘오래 아픈 사람들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는/아이 울음처럼 신선한 뜨락’, ‘청의(靑衣)를 물고 날아가는’ 듯한 청호반새…. 이토록 생생한데, 이게 한갓 꿈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좋은 꿈을 꾸는 것 같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참으로 실감나는 꿈! ‘슬플 것 다 슬퍼해 본 사람들’ ‘아플 것 다 아파 본 사람들’에게 안식과 평화가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꿈!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살아서 깊어지는 노래’다. 이기철의 다른 시 ‘멱라의 길1’에는 ‘지상에서 얻은 병 모두 쓸어 저 강물에 띄우겠네’라는 구절이 있다. 멱라는 고대 중국 초나라의 시인 굴원이 조국이 패망의 길에 들어선 것에 울화가 치밀고, 비통해 몸을 던졌다는 강이다. 그걸 염두에 두고 읽으니, 운율도 아름다운 이 서정시에서 지사적 아픔과 비관도 설핏 느껴진다. ‘일생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일생이 노역(勞役)과 상처 아문 자리로 얼룩져 있어도/상처를 길들이는 마음 고와서 아름다운 사람은 있다’(시 ‘멱라의 길1’에서). 멱라를 ‘건너가야’ 닿을 수 있는 그곳이련가. 황인숙 시인 ===================================== 소문난 가정식 백반 ―안성덕(1955∼ ) 식탁마다 두서넛씩 둘러앉고 외따로이 외톨박이 하나,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와 나를 반 어거지로 짝 맞춰 앉힌다 놓친 끼니때라 더러 빈자리가 보이는데도 참, 상술 한 번 기차다 소문난 게 야박한 인심인가 싶다가 의지가지없는 타관에서 제 식구 아닌 낯선 아낙이 퍼주는 밥을 꾸역꾸역 우겨넣으며 울컥 목이 멜지도 모를 심사를 헤아린 성싶다고 자위해본다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 소문난 밥집 어머니뻘 늙은 안주인의 속내가 집밥 같다 잘 띄운 청국장 뚝배기처럼 깊고 고등어조림의 무 조각처럼 달다 달그락달그락, 겸상한 두 사내의 뻘쭘한 밥숟가락 소리 삼 년 묵은 갓김치가 코끝을 문득 톡, 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는 반찬 투정을 하며 먹었던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타관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절감할 테다. 한밤에도 배달시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번창한 외식문화 속에서 어머니가, 기혼 남자의 경우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담긴 ‘집밥’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요즘이다. ‘가정식 백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 밥이라는 어머니의 다습은 마음이 담긴 ‘집밥’을 표방하는 메뉴다. 화자는 끼니때가 돼도 밥 먹자는 사람이 없는 타관, 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에서 밥집에 찾아든다. ‘소문난 밥집’은 옥호이기도 할 테다. 그런데 빈자리도 많건만 밥집 안주인이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와 나를/ 반 어거지로 짝 맞춰 앉힌다’. 이런 야박할 데가! 밑반찬을 따로 담아내기도 아깝고 식탁을 하나라도 덜 치우려고 그러는가. 나, 손님을 허술히 보는구나. 마침 배도 많이 고파 예민할 화자는 기찬 상술로만 느껴져 기분이 상하다가, 얼른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니야, 혼자 밥 먹는 외로운 심사를 헤아린 처사일 거야. 어쨌거나 ‘겸상한 두 사내’는 끝내 ‘뻘쭘’ 하지만, 밥상이 모든 걸 용서한다. 잘 띄운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 무 조각이 달기도 한 고등어조림, 코끝을 톡 쏘는 맛의 삼 년 묵은 갓김치! 비록 돈을 받는 밥집이지만, 안주인의 속내는 지나가는 길손도 불러 앉혀 함께 참을 먹는 논둑 아낙의 그것일 테다. 황인숙 시인.
1449    詩공부는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격... 댓글:  조회:4498  추천:0  2016-05-21
12.이미지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2)    [12강] 이미지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2) 3. 이미지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이미지의 큰 단락이 하나의 연을 이루는 경우입니다. 강 의에 들어가기 전에 유근조 시인의 행과 연에 관한 견해를 우 선 들어보기로 하십시다. "시 한편의 구조는 이미지 리듬 논리성 또는 어조등의 요소들 로 이뤄지고 또 이같은 요소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전체 구조속에서 비로소 그 기 능이 발휘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요소들의 이상적 배합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의 한가지가 연이라고 할 수 있다면 연은 단순한 행의 집열 이상의 것이라야 옳을 것같다. 거대한 바다가 지구의 중력에 의하여 또는 달의 인력에 의하여 뒤척일 때 겉으로 출렁이는 파도의 주름살에나 비유 할 수 있을까. 말 하자면 시인의 어쩔 수 없는 내적 생명의 호흡이 생의 고뇌가 결과적으로 연의 생성을 초래한다는..... 그러나 연이 단순한 파도의 주름살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은 시인이 작품속에 담고자 하는 의미내용을 좌우할 수 있다 는 데 있다. 이 말은 연은 시의 의미내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가시적 현현물이 아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의 경우 시으 행이나 연구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아니고 시적 충동 이 강하고 쓰고자 하는 내용이 절실하여 그 첫행이 정해지면 연의 문제는 써가면서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하고 싶다. 보통 현대 자유시의 경우엔 시 한편이 한 연으로 이뤄진 경우 와 두 연이사으로 이뤄진 경우를 예상할 수 있고 그런 경우 는 드물지만 한연이 한 행으로 이뤄진 경우도 생각할 수 있는 데 정형시의 해체와 보편적 리듬의 극복이 시도된 이래 연 구 분 역시 조금은 자유스럽거나 무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허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연구분은 시 구조를 판가름하는 가장 경제적인 행의 집열이 돼야함은 물론 시 생명을 관장하는 섭 생의 논리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현대시가 아무리 의식의 소산물로서 불연속적 이질적 체험을 담는 경우가 있다해도 시의 행이나 연은 반드시 그 시 의 전달성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각별한 배려의 결과적 소산물 이어야함은 물론이다. 무릇 잘된 시작품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 봐야겠지만 편의상 예시를 하나 든다면 목월의 [청노루]와 같 은 작품은 행 구분이나 연 구분에 있어서 특별히 세심한 주의 를 경주한 대표적 작품이라 해도 좋을 듯 하다." 잘 들으셨지요? 그 동안 몇 분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만 이 말들을 다만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강의를 계속하겠습니다. 이미지에 대해선 우리가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미지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이미지의 단락에 의해 형성된 연 은 당연히 감각적인 특성과 모양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것입니다. 장만영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각각의 연들이 아주 좋은 이미지의 덩어리입니다. 아마 교과 서에 나왔던 시가 아닌가 합니다만 여러분들이 이제 이미지를 배우고 나서 읽어 본 감흥이 다를 것입니다. 어떻게 그 시절에 이렇게 멋진 이미지들을 끄집어 냈을까요. 현대 시인들이 따라가기 힘든 멋진 이미지들입니다. 제1연은 달빛이 배어 있는 뜰의 정경을, 제2연에서는 달의 시각적 이미지와 후각적 이미지를, 제3연에서는 "동해바다 물처럼/푸른" 가을 밤의 시각적 이미지를, 제4연에서는 포도 와 달빛이 혼연일체가 되고 있는 정경을, 제5연에서는 달빛 에 젖은 포도 넝쿨의 어린 이파리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연들이 회화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 는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박용래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한오라기 지풀일레 아이들이 놀다 간 모래城(성) 무덤을 쓰을고 쓰는 江둑의 버들꽃 버들꽃 사이 누비는 햇제비 입에 문 한오라기 지풀일레 새알, 흙으로 빚은 경단에 묻은 지풀일레 窓(창)을 내린 下行列車(하행열차) 곳간에 실린 한 마리 눈(雪)속 羊(양)일레. 이 시에서는 하나의 행마다 이미지의 단락에 의해서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을 먼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조태일님은 이 시를 마치 숱한 이미지들을 전시하거나 진열해놓은 이미지 전시회 같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그런 행들이 모인 연은 당연히 이미지의 덩어리가 모 인 이미지의 큰 단락이겠지요. 특히 첫 연과 끝 연을 보면 하나의 이미지가 한 행이면서 동 시에 한 연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첫연과 끝연은 이미 지 강조에 의해서 만들어진 연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시의 맨 처음과 맨 끝에 한 행짜리 연을 둠으로서 시각 적이미지의 효과도 충분히 노리고 있습니다. 4)마지막으로 강조의 큰 단락으로 연만들기를 공부하겠습니다. 이 경우는 각 연들이 서로 긴장한 상태로 배치 되는데, 이 긴장감 때문에 강조의 효과가 생겨 나고 시적 탄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시를 예로 들어가면서 알아보는 것이 이해 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김형수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내 육신에서 솟아나온 땀방울처럼 마른 갈대들이 서걱이는 땅거죽에서 물방울은 돋아 흐른다 어디로 가는가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저 흐르는가 숱한 중생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 사라지곤 하면서 역사를 이루고 흐르는 것처럼 물은 그렇게 흐른다 이끼 낀 바위틈과 금이 섞인 모래 위를 낮게 나직이 지형을 바꾸면서 제1연과 제2연을 보게 되면, 제1연의 끝행과 제2연의 첫행은 의미의 흐름상 하나의 문장 입니다. 즉 "마른 갈대들이 서걱이는 땅거죽에서 물방울이 돋아 흐른다" 이렇게 될 것입니다. 따 라서 의미의 단락으로 묶게 되면 하나의 연으로 놓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겠지요. 그러나 일부러 떼어 놓음으로써 두 연은 자석처럼 서로 붙으려는 긴장감을 자아내겠지요. 바로 이럴 때 강조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역시 같은 경우가 3연의 마지막 행과 4연의 첫행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움에서 벗 어남으로써 오히려 시 안에서는 탄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형태로 다시 조합 한다면, 이 시는 시적 탄력감이나 긴장감들이 사라져버리고 아주 느슨해지고 풀어져 버린 설명적 시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만, 좋은 시 읽기의 일환으로 소개해드리는 시로 마지막 겨울의 풍경을 노래한 시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김석규님의 입니다.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이 소매 끝에 시리다 가뜩이나 움추리는 목덜미를 꺾어 누르고 한 군데도 가릴 곳 없는 맨살을 저며 엔다. 그러나 어디엔가 매화는 피고 있으리라. 어녹는 땅 푸르게 번지는 대숲 그늘 아래서 해거름녘 산봉우리의 잔설을 바라보며 또 그 너머 어김없이 물들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암연히 수수로운 마음 정처없어라. 가다가 날 저물어 길마저 끊어져버리면 가시덤불 밑에 파릇이 돋아 있는 풀잎을 만날까. 멀리서 개짖는 소리로 따뜻한 불빛 사람 사는 외딴집이라도 나오면 구들목 펄펄 끓는 방이 있는지 하룻밤 자고 갈 것을 청해 볼까. 아무리 둘러 봐야 뒤숭숭한 세상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질까. 머흔 구름 걸려 있는 산봉우리의 잔설을 바라보며 밤낮없이 눈이 내리는 나라의 하얀 산과 들 이 밤에도 남은 겨울의 저 끝까지 달려간다 시 한 편을 더 올리지요. 나태주님의 입니다. 누구나 오래 안 잊히는 것 있다 낮은 처마 밑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던 생솔가지 태운 냉갈내며 밥 자치는 냄새 누구나 한 번쯤 울고 싶은 때 있다 먹물 와락 엎지른 창문에 켜지던 등불 두런대던 말소리 마음 먼저 멀리 떠나보내고 몸만 눕힌 곳이 끝내 집이 되곤 하였다. 이승훈님의 해설을 덧붙입니다. "귀소(歸巢)는 짐승들, 특히 새가 둥지를 찾아가는 것, 그러므로 나태주는 새이고 오늘 그의 둥지를 찾아간다. 그의 둥지에는 기억과 눈물이 있지만 이 둥지에는 과일이 있고, 둥지가 과일이고, 물론 둥지는 새집이고 큰 피리고 채소이다. 그가 꿈 꾸는 와 과 , 이런 기억.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그의 둥지이고 그의 과일이고 그의 피리 이고 그으 채소이다. 싱싱한 채소. 마음 먼저 가면 된다. 마음이 나이므로!" 해설이 시보다 더 어려워 보이네요. 이승훈님은 시도 참 어렵더라구요. 날마다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물을 주었다 안 주었다 하면 꽃나무는 일찍 시들고 말겠지요. 여러분도 꾸준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   360. 별다방 / 오탁번                                             별다방                           오 탁 번   시골 장터 골목이나 역전 거리에 있는 간판도 다 떨어진 호젓한 별다방을 보면 그냥 쑥 들어가고 싶다 대덕산 임야도 보여주며 한 오천평쯤 희떱게 뚝 떼어주면 낙낙한 마담은 자늑자늑 내 품에 안겨올까 살별처럼 흘러간 옛사랑 다시 만난 듯 '그냥 커피' 홀짝 마시면서 눈흘레나 하고 싶다     오탁번 시집 중에서    
1448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댓글:  조회:4640  추천:0  2016-05-20
[11강] 의미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1) 오늘은 어제에 이어 연은 어떻게 만드는가의 두 번째 시간으로 의미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늘 강조하지만 이 이론은 참고만 하시고, 일단 자유스럽게 시를 쓴 후에 교정하시면서 배운대로 잘 되었는가 확인하시 면 될 것입니다. 2.의미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오늘도 먼저 전에 선배 시인의 행과 연에 관한 견해를 든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윤삼하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시란 본질적으로 언어의 함축미와 정선된 형식을 갖추는 것이 므로 시의 행과 연은 산문과 구별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짤막짤막하게 행을 바꾸어 놓는다고해서 시가 되지 않을 뿐더러 연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록 현대시가 정형성을 벗어 버렸다고 해도 시의 생명은 그 리듬에 있으며 리듬이란 이미 시인의 정신 상태 속에 어쩔 수 없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시조의 장형식이라든가 서구시의 소네트에서 볼 수 있는 14행시, 다시 세분해서 말하면 전 8행과 후 6행 혹 은 3개의 4행시와 1개의 2행시(대구)의 형식은 아주 정교하게 짜여져 시행과 시상의 전개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좀 무책임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대체로 행과 연의 구별은 자연스럽게 되는 수가 많다. 가령 너무 인 위적으로 4.4조로 맞춘다든가 3행이나 4행으로 끊는다든가 하 지 않고 비교적 쉽게 잘 읽혀져 내려갈 수 있도록 적절히 행을 바꾸고 시상의 발전에 따라 연을 끊는다. 그러면 실제로 필자 의 근래의 시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숲속에 묻혀 숲이 보이지 않는다. 층층이 떠올린 초록빛 구름, 윤기 도는 흑백나무와 자작나무숲의 머리께 산봉우리의 떨기나무 숲도 바라볼 수 없다. 솔밭사이 달무리처럼 두르고 있는 남해바다도 보이지 않고 서러 다투어 키돋움하는 동백나무가지들이 사납게 뒤엉켜 밀치락 달치락 하고 있을 뿐(이하 생략) -[숲속에서] 첫연에서 에서 행을 바꿈으로서 문법적으로는 종속절 역할을 하면서 독립된 의미로서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둘째 연은 앞에서 제시한 시상의 전개로서 따로 구 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셋째 연에서는 남해라는 고유 명사가 행의 맨 앞에 옴으로서 숲을 두르고 있는 바다를 더 강조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되었던 것인다. 또한 넷째연 에서도 를 따로 행을 줌으로써 더욱 의미가 선명해지리라 생각했다. 만약 위에 든 시에서 연의 구분을 없에고 계속 행으로만 이어간다면 시의 호흡이 급해지고 훨 씬 싱거워질 것이다. 요즘 시의 행도 길고 연의 구분도 없는 시들이 많이 눈에 뜨 이는데 그러한 시들은 극시나 장시의 경우가 아니면 함축성 이나 압축미를 잃어 버릴 위험이 있지 않을까 한다." 시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와 연은 자 유스럽게 구분하되 필요에 함축성이나 압축미를 위해서 또는 선명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는게 좋다는 이야기 이지요.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가 연을 만들 때는 시적 내용이나 의미가 각각 한 단위가 되거나 또는 강조되어서 한 연을 구성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조태일님은 하나의 연을 하나의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 '의미의 큰 덩어리' 혹은 '의미의 큰 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백석님의 을 들어보겠습니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이 시의 연들은 하나의 독립적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심 내용에 따라 연을 구분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압축해 놓은 것 같은 것도 이렇게 의미별로 큰 단락을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위 시는 무엇보다도 의미의 큰 단락에 의해서 연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는 예가 될 것입니다. 박태일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어머니 눈물을 흘리지 않으신다 아버지 훌쩍 앵이에 얹혀 가셨을 때에도 너거 아버지 너거 아버지 하시다 앞산마루 가슴으로 받은 듯 아아 한 소리로 무너지셨다 봄 여름 너른 잎 조용히 밀쳐내리고 먼 하늘 모둠발로 올려보던 고향집 감나무 무른 속처럼 어머니 나날이 가벼워지신다. 낙매 보신 엉치뼈 속에 쇠나사를 끼워넣고서도 잘 주무시는지 밤에는 저승집 아버지를 뵙고 오시는지 아침까지 배갯버리 눅눅한 잠 어머니 생신 오늘은 창원서 과장댁 누이가 다니러 와서 소곤 소곤소곤 좋은 말벗인 듯도 싶은데 제 슬픔에 화들짝 놀라는 묵은 내 버릇은 어쩌지 못해 창을 열면 모감주 열매 까만 살빛을 뽐내며 어둠은 훅 달려들어 눈시울 지긋 눌러준다. 제1연에서는 지아비를 잃고 가슴이 무너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중심이고, 2연에서는 날로 가벼워지는 어머니의 모습, 3연에 서는 주무시는 어머니 모습, 4연에서는 생일날 찾아온 딸과 정답게 이야기하는 모습, 마지막 연에서는 화자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각각의 연마다 중심적 의미에 따라 독립적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 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화자의 연민의 정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 역시 의미의 큰 단락에 의해 연이 형성되고 있 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홍희표 시인의 행과 연에 관한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시에서 행과 연이란 리듬의 외적 조건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시에서 음악성의 존재를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시의 본질적 인 요소가 바로 리듬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어서 시의 리듬을 담은 방법은 주로 내재율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시에서 행과 연이란 언어에 의해 표현되는 음조적인 구성을 말 한다. 일정한 음향으로 표현되는 형상적인 언어 배열이 시의 시다운 구실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시에서 행과 연이란 시의 호흡, 템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의 밑바닥을 흐르는 언어의 억양과 색조가 빚어 내는 리듬이 시의 행과 연을 통해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적 표현이나 시적 아름다움을 운율형식에 담은 도구로써 시의 행과 연은 고대로부터 시의 가장 기초적인 요건이었던 것 이다. 당신은 바람처럼 앉아 싸늘한 수렁에서 묻어나는 나의 잠을 깨우고, 둔탁히 울리는 자정의 벽시계의 몸짓 속에서 보았지, 빗질하는 당신의 부드러운 머리 올의 빛남을, 초기의 시 [불면의 뜰에서(1)]의 첫부분이다. 대부분 그무렵의 시편을 보면 시에서 연이 없었다. 시행은 간결하면서도 짧고, 또한 움직이는 동사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시는 경쾌하고 이미지는 중층적으로 조직되어 갔다. 좀더 현대성 있는 오케스 트라로 연주해 보자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었다. 20대가 지나서 시에서 기승전결도 생각하고 동양적 아니 한국적인 리듬에도 접근해보고자 했다. 그래 시에서 호흡의 조절과 서술의 단절을 통한 연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즈음에 와서는 즐겨 산문시를 쓰고 있다. 이런 산문적인 잔 잔하고 호흡이 긴 가락이 부담없이 와 닿는다. 그러나 산문시 에서 가장 부담스런 산문성을 극복하기 위해 형태상 압축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좋은 시 한 편을 또 읽어볼까요? 강연호님의 입 니다. 문득 떨어진 나뭇잎 한 장이 만드는 저 물 위의 파문, 언젠가 그대의 뒷모습처럼 파문은 잠시 마음 접혔던 물주름을 펴고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파문의 뿌리를 둘러싼 동심원의 기억을 기억한다 그 뿌리에서 자란 나이테의 나무를 기억한다 가엾은 연초록에서 너무 지친 초록에 이르기까지 한 나무의 잎새들도 자세히 보면 제각기 색을 달리하며 존재의 경계를 이루어 필생의 힘으로 저를 흔든다 처음에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줄 알았지 그게 아니라 아주 오랜 기다림으로 스스로를 흔들어 바람도 햇살도 새들도 불러 모은다는 것을 흔들다가 저렇게 몸을 던지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모든 움직임이 정지의 무수한 연속이거나 혹은 모든 정지가 움직임의 한 순간이듯 물 위에 떠서 머뭇거리는 저 나뭇잎의 고요는 사라진 파문의 사라지지 않은 비명을 숨기고 있다 그러므로 글썽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뿌리가 젖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정효구님의 해설을 덧붙입니다. 이해의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물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한 장과, 그 나뭇잎 이 물 위에서 만들어 내는 파문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에 잠긴다. 물 위에 떠서 머뭇거리는 나뭇잎의 고요함 속에는 들던 비명이 숨어 있다는 것이며, 사라지는 파문 속에도 역시 존재의 뿌리 까지 뒤흔들던 격렬한 동심원의 기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강연호의 눈에는 모든 정적인 것들과 사라 지는 것들의 숨은 이면이 포착된다. 그가 포착한 이들의 숨은 이면은 눈물겹도록 자기존재를 지키고 키우려는 안간힘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존재의 그런 안간힘을 눈물 없이 바라볼 수 없다고 느낀다. 그가 바라본 , 그래 서. 늘 이어서 제가 우리나라 여성 시인 중에서 참 좋아하는 문정희님의 최근 시 을 올리겠습니다 어린시절 나는 어서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두 팔 안에 꼭 안기는 아이를 낳아 젖을 주고 싶었다. 그런에 아이 낳아 미처 다 키우기도 전에 어느새 할머니가 곁에 와 계셨다. 어미만 되지말고 당신처럼 어서 할머니도 돼보라고 성화를 부리셨다. 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깊은 주름살 눈 어둡고 귀 어두워 편안한 대지를 선물처럼 나누어 주시려고 했다. 귀여운 손자들을 안을 수 있도록 안방도 서둘러 물려주시려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멀스멀 기어드는 이별의 예감. 예의는 차리되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고독한 경로석 같은 잊혀진 연인의 퇴락한 집 같은 그런 주소를 할머니는 나에게 물려주려 하셨다. 기다리기도 전에 너무 빨리 당도한 선물처럼, 오오 그렇게 ====================================================================   359. 백담사 / 오탁번                 백담사                                   오 탁 번   선정(禪定)에 든 스님 손바닥에 쉬파리 한 마리가 앞다리 싹싹 비비며 쉬슬고 있다 동자승이 파리채 들고 꼬나 볼 때 아서 아서 부처님이 금빛 손가락 치켜든다 그사이 항하사(恒河沙)만한 시간이 흘러가서 은하수 물녘에 물결이 좀 인다 목숨 거친 쉬파리가 천축(天竺) 너머 서방정토까지 파리똥 한 번 싸지 않고 광속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가 이내 되돌아와서 스님의 손바닥에 내려앉는다 백담계곡 물소리에 놀라 비오비오 솔개가 운다     오탁번 시집 중에서                                                    
1447    우리는 귀향선을 모른다... 댓글:  조회:4741  추천:0  2016-05-20
[10강] 시의 연은 어떻게 만드는가 안녕하세요. 이번 강의를 받으시면서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꼭 지난 42강을 독학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러면 훨씬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오늘은 시의 연에 대해서 공부할 계획인데요. 연도 행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로 구분하여 공부하기로 하겠 습니다. 조태일님은 강희근 시인의 주장대로 강조의 단락 으로 행을 구분하고 또 강조의 큰 단락으로 연을 구분하지만 우리는 행에서 공부한대로 리듬과 이미지, 의미의 단락으로 나누어 배우기로 하겠습니다. 시의 구조에서 행이 하나의 작은 단락이라면, 연은 이 작은 단락이 모여서 만든 큰 단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은 시의 구절이며 가락, 의미, 이미지 등 내용의 통일성을 가지 는 시의 단위입니다. 1.리듬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우선 황금찬 시인은 행과 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본 인이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행은 언제나 시각적인 효과와 청각적인 효과를 같이 생각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각적인 효과만을 노리는 경우 그 예로서 귀향선의 한 귀절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거북처럼 남태평양을 헤치며 귀향선이 온다. 최초에는 이렇게 행을 벌렸던 것을 다시 청각적인 효과를 같 이 노리기 위하여 시각 위주로 했던 것을 고쳐 본 것이다. 거북처럼 남태평양을 헤치며 귀향선이 온다. 시에 있어서 음악성과 회화성이 어디에서 올 수 있을까. 그 것은 행을 고정시킬 때 음악적인 효과와 회화적인 효과를 같 이 노려야 한다. 오래 전 시는 회화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가령 나비라는 소재로 시를 쓴다고 하면 나비의 날개 모양으로부터 글자를 배열하여 한편을 완성시켜 놓고 보면 꼭 나비의 모양 대로 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시를 시도 하는 사람이 없 지 않지만, 그것은 회화성을 중시했고 음악성을 무시한 행위 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말이 시작하여 끝이 날 때까지 그 말이 지니는 리듬이 있 게 마련이다. 그 리듬을 살리는 면에서 글자를 나열하여 행을 구성시켜야 할 것이다. 연의 경우에는 한 연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도록 완성 상 태여야 한다. 가령 한 연에다 시제를 달면 한편의 시가 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비가 온다. 목련화 마른 가지를 촉촉히 적시며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이럴 경우 여기에 시제를 달면 한편의 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 나 제2연은 같은 조건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누님이 가시던 날 아침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멎자 어머니 눈물 안에서 목련이 피어 났다. 각각 제목을 달면 두편의 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것은 완성된 시가 아니라 누님으로 제한 4연으로 된 시의 1연이다. 행과 연은 역시 음악적인 면과 회화적인 면을 생각하여 나열 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리듬의 큰 단락이 하나의 연을 이루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행을 이루는 리듬의 작은 단란이 운율을 형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리듬의 큰 단락에 의한 연의 형성 역시 시의 운율, 음악적인 부분에 중심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김억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은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이 시를 읽어보면 각 연들이 시의 운율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자세히 분석하기 전엔 좀 난해한 시입니다만, 소리 내어 읽 어 보십시오. 운율감이 잘 살아난 시라는 것은 그냥 느낄 수 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제1연부터 제3편을 살펴보지요. 첫 음절은 '밤', '봄'. '날' 같은 비슷한 소리를 배치하여 두운의 효과와 울림소리의 음악적 효과를 살리고 끝 음절 역시 '다', '데'의 똑같은 음 운으로써 각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제4연은 자연스럽게 2행 모두 3음보율을 살리고 있습니다. 제 5연 역시 2음보율과 각운으로 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제6연 은 2행 모두 음절 수가 똑같고 음보율도 똑 같습니다. 역시 울 림소리의 효과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강의를 하면 어떤 분들은 그렇게 일일이 서로 맞는 두운 이나 각운으로 또는 유성음끼리, 단어를 배치하여야 하는 줄 아는데 그렇게 하려면 어학을 또 따로 공부해야지요.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시를 쓰면서 서로 어울리는 말끼리 모으면 자연히 서로 맞게 배치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 훌륭하게 우리 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우리가 시를 쓰면 음율이 잘 맞게 되어 있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한직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높새가 불면 唐紅(당홍)연도 날으리 향수는 가슴 깊이 품고 참대를 꺾어 지팽이 짚고 짚풀을 삼어 짚새기 신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슬프고 고요한 길손이 되오리 높새가 불면 黃(황)나비도 날으리 생활도 갈등도 그리고 산술도 다아 잊어버리고 白樺(백화)를 꺾어 墓標(묘표)를 삼고 凍原(동원)에 피어오르는 한떨기 아름다운 백합꽃이 되오리 높새가 불면 이 시 역시 리듬의 큰 단락에 의해서 연이 형성되고 있음을 우리는 그냥 알 수가 있습니다. 2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2음보 율을 지니며, 음절의 글자 수도 또한 서로 비슷비슷해 음수율 까지 형성하고 있습니다. 끝 음절의 동일한 소리가 빚는 각운 도 각 연들이 운율을 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김종님의 의 일부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의 가슴을 내 것으로 할 수가 없다. 당신의 심장을 내 것으로 할 수가 없다. 당신의 온 몸을 내 것으로 할 수가 없다. 눈썹이 부족하고 입술이 부족하고 갈증이 부족하고 건네는 눈길이, 정열이 사랑이, 허리가 그리고 질투가 부족하여 웬지 당신의 사투리가 웬지 당신의 영혼이 웬지 당신의 행복이 내 것이 아니다 당신의 갈증이 질투가 내 것이 아니다. 겨울날 방패연처럼 바람을 타고 공중에 떠올라 황홀한 얼굴 진정 내 것이 아니다. 각각의 연들이 아주 음악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리듬을 형성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 반복과 변화라고 볼 때 이 시의 각 연들은 이 반복과 변 화를 중심으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공채시인의 행과 연에 대한 견해를 본인의 말로 듣고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연은 한뭉텅이로 뭉뚱거려진 행의 집단으로서 연으로 나눠지 기도 하고 연이 없이 행으로만 전체의 시를 이루기도 한다. 또 어떤 작품은 불과 한행이 하나의 연으로 돼 있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에 연이 너댓 내지 대여섯이 모여져 있음이 많은 시들의 보편적인 형태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굳이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되란 시 법은 없는 줄 안다. 시의 연과 행은 시가 대상으로 한 주제의 구성이나 처리, 그리 고 시의 흐름을 숨쉬게 하는 리듬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구분되 기도 하고 결합되기도 하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는 어디까지나 언어작품이기 때문에 언어의 연결로 이뤄지고, 이 언어의 연결은 어차피 행을 이루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행 은 또 연으로 이뤄져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고 반문할 수 있겠 으나, 그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단 한행 의 시행이 형태상으로는 연으로 보긴 어렵다 할지라도 얼마든 지 연의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이 행으로 나열된 행의 집합으로서의 독립형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독립형태는 완전독립형태는 아니고 그 다음 연으로 연결지어 나가는 중간숙주같은 독립형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의 주제를 모두 표현하면서 완전 전달하는 기능을 다 갖춘 것이 아니라, 가교로서의 구실을 한다고 봐야 하겠다. 하지만 반개의 꽃망울같고 미완의 도정같은 이 연이 굳이 그 시 작품의 결연까지 다 이르지 않더라도, 손색없는 독립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흔하다. 시의 형태로서 그리고 호흡의 [일 단멈춤]에서 요긴하게, 어쩌면 필요불가결의 수법으로 쓰이고 있는 연에 대해서 필자는 이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며, 그렇 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자연으 흐름같이 그냥 놔 두면서, 그래로의 흐름에따 라 행을 이루고 연을 이루기도 한다. 그래서 단 한행이 하나의 연의 구실을 할 수 있으면, 이것으로서 연은 이뤄진 것으로 한 다. 때문에 필자의 시작법에서는 행을 더 중시하면서 한행 한 행을 이뤄가다 보면, 연은 행의 멈춤에서 자연적으로 이뤄짐 이 대부분의 경우이기도 하다. 이같은 작법이 어쩌다간 연이란 것이 전혀 없는 [줄행]으로 한 작품을 끝까지 이뤄두기도 한다." 이 번 강의에서는 선배 시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싣는 것은 여러분께서 더 피부에 와닿지 않겠느냐 해서입니다. 많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시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늘 강조하지만 좋은 시를 읽는 것은 이론 강의를 듣는 이상의 중요한 것이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김기택님의 를 올립니다. 유리창에 송충이 한 마리 붙어 있다 아파트 10층 창문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송충이가 기어 온 긴 높이를 생각해 본다 오를수록 더 높아지는 높이 아무리 힘차게 꾸물거리며 기어도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온몸이 허리로 된 송충이는 그래도 부지런히 뒤 허리로 앞 허리를 밀어 올린다 허리 밑 다닥다닥 점 같은 다리들이 유리창에 아슬하게 붙어 있다 흰 갈대잎 같은 털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몸도 털이 휘어지는 방향으로 기우뚱거린다 습관의 힘이 아니었다면 송충이는 벌써 10층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떨어져도 부러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이다 그러다 갑자기 허리걸음을 멈추고 송충이는 허리로 된 머리를 높이 들어 여기 저기 허공을 한참 더듬는다 이 나무는 가도가도 거대한 평면 사각뿐이다 이파리 하나도 없이 어떻게 광합성 하나 아무래도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허리를 늘였다가 깊은 주름이 생기도록 줄이면서 송충이는 11층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남진우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김기택의 시선은 사물의 세부를 더듬는 탐정을 닮았 다. 그는 일상의 한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로 보고한다. 아파트 유리창에 붙은 송충이의 짐짓 무용해 보이는 동작을 화자의 시선은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까마득히 높은 유리창을 기어오르는 송충이의 은 일상에 매달려 사는 화자의 삶의 힘겨움을 반영하고 있다. 화자는 어쩌면 송충이가 자신이 오르고 있는 아파트 를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도시의 소 시민은 이 불가능한 나무에 매달려 사는 송충이와 다르지 않다." 비교적 리듬에 신경을 써서 연을 구분 지은 곽재구님의 을 올립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 건너는 이름도 모르는 바람 같아서 가지와 가지 사이 건너며 슬쩍 하늘의 초승달 하나만 남겨두는 새와 같아서 나는 당신을 붙들어 매는 울음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한 번 떠나간 나루터의 낡은 배가 될 수 없습니다 ================================================================= 358. 가는귀 / 오탁번                       가는귀                           오 탁 번   나이 육십, 가는귀 먹어 오는 말 알아듣지 못하네   내 핸드폰 벨 소리는 듣지 못하고 옆 사람 핸드폰 벨이 울리면 내 핸드폰 꺼내다가 나 홀로 싱거워지네   이해나 분석은 엄두도 못 내고 이냥저냥 지레짐작 시늉하며 웃네   가는귀 먹어 오는 말 들리지 않는 아아 이순의 아침     오탁번 시집 중에서      
1446    진짜 시인, 가짜 시인, 시인다워야 시인 댓글:  조회:4230  추천:0  2016-05-19
  나는 두 종류의 시인이 있다고 본다. 시인다운 시인과 시인처럼 보이는 시인, 즉 진짜 시인과 가짜 시인이 있다라는 말이다. 이것을 어떤 학자는 심리적 시인과 사회적 시인으로 나누는데, 시인이 됨직한 특질과 서정성, 그리고 인간 됨이 자기가 쓴 시에 값할 수 있는 사람일 때 심리적 시인으로 보는 것이고, 필요에 의해서 시를 배워 시는 그런대로 쓰지만 그 생각과 행동과 말이 시에 값하지 못하고 시를 장신구처럼 자기를 꾸미는데 이용하는 사람을 사회적 시인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자기 시를 자랑하고 싶어서 같은 시를 여기저기 퍼지르듯 게시하기도 하지만 시인의 진정성이나 겸손, 작품을 귀히 여기는 자세에선 한참 비껴난 행동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몇십 년간 시단의 인정을 받는다는 각종 매체에서 내어 놓은 시인들의 대부분은 작품의 질에 초점을 맞추어 뽑은 사람들인데 그 중 상당 수는 시인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그 사람의 피치못할 사연과 환경 탓도 있겠지만 그런 유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등단을 위한 반짝시를 썼거나 시는 좋은데 사람 됨됨이가 따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풀에 지쳐서 시를 쓰지 못하거나 사사건건 사람들과 부딪혀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기 스스로 상처를 받고는 그 원인을 상대방에게 있는 것인 양 매도하고는 잠수를 해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자기의 시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공동체적 노력이나 시대적 소명감 보다는 자기 잘난 맛에 시를 쓰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너무 강한 시인들이 양산된 데는 지금의 등단 제도가 시에 값하는 인성을 지닌 시인다운 시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시를 잘 쓰는 사람, 심하게 말하면 시 기술자나 시 노동자를 뽑게 되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시만 잘 쓴다고 시인인가? 시인다워야 시인이지" 시인다움에 대해서는 앞 강좌를 통해서 여러 번 말했지만 "벌말을 마구 휘두르지 않는 시인, 시에 대해 말과 행동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벌말이란 말 같지 않게 함부로 해대는 말이다. 시인 스스로 제 시의 주인은 고사하고 머슴으로도 살지 못하는, 시와 삶이 일치하지 않는 시인은 그 시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벌말을 남발한 경우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삼류 시인축에도 끼이지 못할 가짜 시인이라는 말이다. 시를 좀 못 쓰면 어떻고 잘 쓰면 어떤가? 일류 시인이거나 이류, 삼류 시인이라는 것은 시단에서 함부로 구분 짓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품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읽혀지지 않는 어려운 시, 전문가적인 높은 수준이라야 좋은 시라면 그것 나름대로의 가치가 크다고 치더라도 특수 계층이나 시 전문가를 위한 전유물이 되어버려서 사회의 신선한 공기로, 국민 대중에게 널리 읽히거나 정서에 이바지하는 것이 되기는 힘든다. 그것은 결국 시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거나 버림을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나는 시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고 삼라만상의 아름다움과 방언을 새롭게 해석하여 그것을 미학으로 요리할 수만 있다면, 그 시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훌륭한 시인이라고 정의한다. 사람의 인품에 상관 없이 시 짓는 전문적인 기술을 익혀서 매끈하게 내어놓은 화려한 시, 자기도 설명 하기가 쉽지 않은 난해한 시를 수준 높고 좋은 시라고 쓰는 시인과, 인생을 살아 오면서 체험하고 발견한 새로운 이야기를 약간 서툴게라도 그 사람의 냄새가 나도록 쓰는 시인 중에서 당신은 어느 시가 진짜 시라고 생각 하는가? 물론 오랜 세월 자기 단련을 거친 후 실험적이거나 패기가 있는 훌륭한 시를 발표하며 혜성처럼 등장하는 신인도 있긴 하지만 나는 자기 연륜에 맞는 시, 자신의 삶에서 진솔하게 뽑아낸 자기만의 시를 쓰되 결국 사람을 이롭게 하는 시인이 최고의 시인, 생명의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을 제안 하는 것이다. 1. 간사하거나 사특하지 않는 사무사(思無邪)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시를 쓰자 2. 삶의 현장에서 덧샘으로 기여하는 시대정신을 담은 새롭고 진솔한 시를 쓰자 3.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약손 같은 시를 쓰자. 4.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시를 쓰자. 한 마리의 나비는 가볍고 하찮아 보인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지난 어느 날,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나비의 뒤에는 찬란한 봄이 따라 오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최고인 양 가르치는 교육현장처럼 시를 잘 쓰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인 양 가르치고 흘러가는 시단에서 좀 더 밝고 진취적이며 세상에 기여하는 시를 읽고 써보자라는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일의 진의를 왜곡 해석하면 시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염려와, 시단 어른들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은 서툴고 하찮아서 더 다듬어야 할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를 진정으로 사랑하자는 것이요 어줍잖은 시인이 되기 보다는 진정한 독자가 되자는 운동이고, 가슴에 품은 용암 같은 것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여 답답해 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시로 분출 할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고자 하는 운동인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사람들을 행복에 젖게하고 치열한 삶의 숨 소리를 같이 느끼며 함께 웃고 울고 싶은 것이다. /- 이어산
1445    천재 녀류시인 - 옥봉 / 詩가 내게... 댓글:  조회:5379  추천:0  2016-05-19
  낮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해가 떨어지자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거세지자 천둥번개까지 요란하다. 이따금씩 벼락 치는 소리도 들렸다. 옥봉은 불안한 표정으로 방안을 오갔다. 결혼 후엔 시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애걸복걸하여 소실로 들어간 자리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소실자리를 주었기 때문에 약속을 깼으니 집을 나가라 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도 조원은 기척이 없다. 자정이 지나 새벽이 되어가도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옥봉은 자리에 들수가 없다. 평소 조원의 성격으로 봐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어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그칠 기세가 아니다. 어둡고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여명이 동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도 차츰 기세가 꺾여갔다. 그때다. 조원이 들이닥쳤다. 어제 오후부터 밤새 기다린 남편이 들이닥치자 옥봉은 전신이 얼어붙었다. 평소 같았으면 “왜 이렇게 늦었어요?”라고 짜증을 부릴 상황이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몸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소? 이리 와서 앉으시오...” 조원의 입에선 술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평소와 너무나 다르다. 옥봉은 남편의 행동에 겁이 났다. 이미 자신이 시를 써서 파주 친척이 누명을 벗고 방면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어서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남편의 맨송맨송한 운우지정이다. 옥봉도 작심하고 온몸의 정기를 모았다. 부부는 여명이 동창으로 들어오고 있는데도 뜨겁게 운우지정을 즐겼다. 옥봉도 첫날밤 보다 더 따뜻하고 뜨겁게 사내물건을 받았다. 지금의 운우지정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렇다고 요란한 몸짓으로 사내의 욕정을 북돋우는 여자로 인식되기는 싫었다. 온몸의 기를 옥문(玉門)으로 모았다. 뜨거운 정화수(井華水)같이 잔잔하지만 힘찬 파도가 일 듯 사내 심볼을 조였다. 조원의 자식을 갖고 싶은 욕망이 갑자기 커졌다. 마침 배란기다. 사내도 새벽 욕정이 꿈틀댔다. 하주종일 수창(酬唱)으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 풍류를 즐기느라 육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그런데 뜻밖에도 옥봉이 뜨겁게 맞아줘 애액(愛液)이 폭포수처럼 나왔다. 옥봉이 기대했던 대로다. 애액은 옥봉의 옥문을 넘어 사타구니에 까지 넘쳐 나왔다. 아이를 가지려는 여자의 본능이다. 여자보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 사랑의 파트너인 동시에 소실의 의무이기도 하다. 아들을 낳아 당당하게 소실의 두 가지 의무를 다 하려는 야무진 속내다. 풍류 반려를 뛰어 넘으려는 것이다. 날이 밝자 조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엇에 쫓기듯 방을 빠져 나갔다. 잠자리엔 쪽지 하나가 놓였다. 금시맹약(禁詩盟約)이다. 소실의 의무다. 약속을 어겼다는 통보다. 의무를 어겼으니 소실의 자격이 상실됐다는 얘기다. 옥봉은 파주에 있는 친척에게 써준 시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위인송원≫(爲人訟寃)이다. ‘洗面盆爲鏡:세면분위경·얼굴을 씻는 동이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머리를 빗는 물로 기름을 삼아도/ 妾身非織女:첩신비직녀·이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郞豈是牽牛:낭기시견우·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오리까.’ 사연인 즉 이러하다. 소를 훔쳤다는 남편이 누명을 쓴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 써준 시다. 마침 칠석날 일어난 사건이다. 견우와 직녀를 활용한 시다. 견우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소를 끌고 갈 수 있겠느냔 것이다. 사또는 화들짝 놀라 누명을 쓴 주인공을 즉각 방면시켰다. 하지만 옥봉은 소실의 자격을 잃어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떻게 얻은 소실의 자리인가... 옥봉의 부친 이봉이 조원의 장인 이 준민을 찾아가 자신의 딸이 비록 한번 결혼에 실패했으나 춤과 노래, 시에도 재주가 있어 ‘풍류반려’가 될 만하니 며느리로 받아 줄 것을 애걸복걸하여 얻은 자리다. 그런데 지금 쫓겨나는 신세가 된 가여운 운명이 되었다. 옥봉이 조원의 소실에서 자격을 잃고 다시 청상과부가 되면 아버지 이봉은 가슴앓이를 또 다시 할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하였다. 시를 쓰면 안 된다는 약속을 어겼으니 소실의 자격이 상실되었다. 옥봉은 뚝섬에 우거(寓居)를 마련했다. 일선에는 조원이 옥봉을 소실에서 내쫓은 것은 시 실력이 뒤져서란 얘기도 있다. 남편이 아내, 그것도 소실만 못해 자격지심이 발동하여 내쫓았다는 풍문이다. 옥봉이 조원의 소실이 되기 전에 이미 그녀의 시 실력은 널리 알려져 사내가 알고 있었을 터다. 하지만 장인이 ‘풍류반려’로는 안성맞춤의 여자라고 강력히 권하여 마지못해 맞아들였는데 ’위인송원‘을 써 파주사또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편의 체면을 깎았다는 이유다. 아녀자는 관가의 일에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시 된 조선시대의 사회 흐름이다. 하지만 옥봉은 샘솟듯 하는 시심의 발로를 주체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집을 나설 때 역시 시 한편을 남겼다. ‘임 그리는 깊은 마음 어이 쉽게 변할 손가/ 다시 또 말하려니 부끄러워요/ 행여나 임께서 내 소식 물으시면/ 옛 화장 그대로 난간에 기대어 있다 전해주오...’ ≪이원≫(離怨) 이별의 슬픔이다. 그랬다. 옥봉은 아버지가 조원의 장인에게 간곡한 부탁으로 소실의 자리에 들어갔으나 그녀는 운강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조원의 소실로 들어가 풍류반려로 살아갈 것을 강력히 권고했으나 옥봉은 거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조원을 뜨거운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었던 처지였었다. 친정에서 아버지가 시회를 열었을 때 첫눈에 사랑의 꽃을 화사하게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쫓겨 나갈 신세가 되었다. 등 떠밀려 내쫓겨 떠나가도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애절한 시다. 비록 몸은 내쫓기는 신세로 떠나가도 마음은 가져가지 않고 두고 간다는 이별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읊었다. 성리학이 지배하는 남존여비사회의 여자의 숙명이다. 아니 소실의 천형(天刑)같은 굴레다. 그러나 옥봉은 자신의 문재(文才)를 썩히지 않았다. 소실의 자리는 잃었어도 샘솟듯 발로하는 시심을 잠재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 2016년 05월 18일 09시 02분 ]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2 / 1   湖南 平江 石牛寨 음악유리잔도(音乐玻璃栈道)에서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2 / 10   기 획 특 집 - 나에게  시는 무엇인가   신경림 스스로 충만한 한 그루 나무 천양희 내 삶의 단독정부 김혜순 리듬의 신에 붙들리다 장석남 “시가 나를 이만큼 지켜 주었다”라는 말씀 이원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편집자주 -  80년대는 시의 시대였고 90년대는 소설의 시대였다. 그럼 2000년대는? 물론 소설의 시대는 아니지만 시의 시대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시에 있어 시대의 아이콘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호사스런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고 이제는 그 온전한 생존조차도 의심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시인으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 틀림없는 5명의 시인으로부터 ‘나에게 시는 무엇인가’라는 자기고백을 들어본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과 성향을 가진 이들의 고백으로부터 독자들이 우리 시의 앞날을 내다볼 조그만 단초를 발견하게 되길 기대한다.   스스로  충만한 한  그루  나무   글 신경림_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1936년생. 시집 『농무』 『남한강』 『가난한 사랑 노래』『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등 내가 시를 쓰는 일에 회의를 느낀 것은 문단에 나온 직후로서, 내 등단 작품은 「낮달」 「갈대」 「석탑」 등 이른바 순수시였다. 그 무렵 서울은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곳곳에 폭격이나 포격으로 허물어진 집이 즐비하고, 팔이나 다리가 잘린 젊은이들이 길거리에 넘치고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절망감이었지만, 실제로 내 시는 이러한 내 감정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내 시가 우리가 또는 내가 사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런 회의에 사로잡히면서 나는 차츰 시에 게을러졌다. 내 시뿐 아니라 그 무렵 우리 시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는 신이니 존재니 하는 외국서 들어온 관념이 아니면, 사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전통적 서정 일색이었던 터다. 그때 내가 즐겨 다니던 곳은 동대문과 청계천 일대의 고서점들이었다. 거기서 이미 읽은 바 있던 백석의 『사슴』이며 이용악의 『낡은 집』 등의 시집을 구해 읽으며 막연히 내 시가 계속 이럴 수는 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내 생각을 크게 바꾼 것은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의 『가난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고 나자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말끔히 걷힌 것 같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이때부터 문학하는 친구들 대신 고서점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문학 따위 하지 않은들 어떠냐 하는 건방진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럴 때 고서점에서 만나 사귄 한 선배가 조봉암의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골 내려와 10년 가까이 살게 된다. 겁이 많은 나는 무작정 서울을 탈출하고 본 것인데, 일단 시골로 오고 보니 영 서울 갈 기회가 오지 않아, 대학을 다니고도 밥벌이도 못하는 미운 털이 되어서 거의 10여년을 시골서 떠돌게 된 것이다. 이미 아버지가 사업이다 자식들 학비다 해서 전답을 거의 팔아 없애 농사거리도 제대로 없는 데다, 아버지는 아직 일할 나이에 일찌감치 실업자가 되고 집안 살림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오죽 어려웠으면 이른 봄 마당 한구석에 무리를 이루었던 작약 뿌리를 캐어 보리쌀과 바꾸었겠는가.   나는 밖으로 떠돌 수밖에 없었다. 공사장으로 건달 친구를 찾아가 신세를 지기도 하고 광산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아가 한 달씩 공밥을 얻어먹기도 했으며, 장돌뱅이 친구가 있어 며칠 따라다닌 일도 있다. 그러면서 세상 공부를 다시 했다. 농사고 장사고 노동이고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이때 비로소 제대로 알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곳곳에 역사가 할퀴고 간 자국이 너무 깊이 흉측하게 남아 있는 것도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가령 어떤 동네에 가보면 같은 날 아버지나 형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남은 집씩 되었으며, 또 어떤 동네는 온통 과부천지였다. 보도연맹이다 부역자다 해서 같은 날 학살당하기도 하고 또 그 보복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한 것이다. 한 동네 살면서 서로 보지도 않고 사는 경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내게 다시 글 쓸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다시 글 쓸 기회가 온다면 이런 사람들의 정서, 설움이며 한 같은 것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그래도 그 10년 동안 시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단 한 편도 발표하지 못하면서도 어쩌다 노트 조각 같은 데 시를 끄적였으니 말이다.   우연히 김관식 시인을 길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를 다시 쓸 기회를 영 놓치고 말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다지 믿을 바가 못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그를 따라 무작정 상경했고, 상경해서 처음 쓴 시가 「겨울밤」이다. 이 시가 신문에 나오자 친구들은 시가 이래도 되는가 의아하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시골서 다시 내게 시를 쓸 기회가 오면 쓰겠다고 생각한 대로 시를 썼다. 이때 내가 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시는 그 시대의 요구에 대한 대답이 되지 않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이 생각은 날이 가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시대의 요구란 유신, 긴급조치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에 대한 반대나 저항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시는 그 시대의 요구에 대한 대답이 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나는 한동안 이 명제에 충실했다. 그러나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아름다운, 더 많은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 시를 쓰고 싶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이것이 드러나면 친구나 후배들은 나를 문학주의자로 매도했다. 이 매도를 감수하면서 내 시는 경직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시 쓰기가 싫어졌고 지루해졌다. 내가 민요에 몰두한 것은 이 무렵부터가 아니었나싶다. 민요적 정서를 시 속에 도입, 내 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보자는 의도였는데, 민요와의 접목은 내 시 쓰기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민요적 정서는 역시 지난날의 정서요 그 말을 가지고는 생동감 있는 현실을 포착한다는 일이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시 쓰기가 더 싫어졌고 더 지루해졌다. 80년대 전 기간이 내게는 시 쓰기가 가장 어렵고 지루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시집 『길』 속의 시를 쓰면서 나는 서서히 민요의 중압에서 벗어났다. 고지식하게 민요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민요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고 배울 것이 없으면 배우지 말자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시대의 요구에 대한 대답이란 명제도 그렇다. 그 시대의 삶에 깊이 뿌리박는 것으로 충분하지 그 이상의 대답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나의 삶, 우리들의 삶에 충실한 시를 쓰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시 쓰는 일이 조금씩 편하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또 생각했다, 내가 시를 쓰는 한 내게는 시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은 없다고.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 문학주의자로 자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최근 나는 나무를 심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내가 심은 나무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단 열매를 맺어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보고도 그것이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들 무슨 상관이랴, 그 나무는 있을 것이요 그것을 보는 사람 아는 사람에게는 큰 기쁨을 줄 터인데. 하지만 그 나무는 오늘의 나의 삶, 우리들의 삶이 심은 나무요 키워낸 나무일 때 그것이 주는 기쁨도 진정한 기쁨이 되리라. ※ 이 글은 2002년 한국일보에 게재되었던 글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내  삶의 단독정부 글 천양희_시인. 1942년생.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都市』『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등   나는 왜 시를 쓰는가? 나에게 시는 무엇이며 시를 통해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시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시가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왜 나를 이 고통스럽고도 피 말리는 일에 등을 떠미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각만 바꾸면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다른 직업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왜 시인으로만 살려고 하는지 자신에게 묻게 된다. 그때 나는 주저없이 잘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잘 산다는 것은 시로써 내 삶을 살리고, 나를 살린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해도 시만큼 나를 살려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시인된 지 올해로 40년이 되었지만 시를 못쓰고 산 얼마 동안은 살고 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생활 때문에 시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어떤 시인은 ‘시가 곧 생활’이고 ‘시 쓰는 일이 숨을 쉬는 일’이라고 했는데 나는 생활 때문에 시를 버렸던 것이다. 내 자책인지 그땐 그 말들이 어떤 말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고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시가 더 이상 내 삶 속에 무엇이 되지 못한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살기 위해 나는 나를 바꿔야만 했다. 그때부터 시가 내게로 올 수 있는 어떤 것이든 발견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여러 곳을 떠돌았다. 직소폭포에서 수수밭으로, 동해에서 몽산포로, 원근리에서 고하리로, 무심천에서 소리봉으로, 버스 종점에서 새벽시장으로 발품을 팔 듯 돌아다녔다. 수없이 돌아다닌 끝에 비로소 시의 본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 만난 모든 것들이 새로운 시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 시들은 죽음에서 다시 쓴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다. 나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내가 하던 일과는 다른 어떤 것, 내 몸과도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그때처럼 삶이 수난인 적은 없었고 불행했던 적이 없었다. 내 시는 어쩌면 신산스런 내 삶의 절망이 부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절망이 키운 내 시를 내 팔자로 생각하고 생업(生業) 또는 시업(詩業)이라 생각한다. 시업과 사업을 혼돈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즈음, 시집이 너무 많고 시인도 너무 많아 가끔 시멀미가 날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삶에서 시가 주는 의미는 아직도 크다. 시는 내가 사는 이유이며 살아 낼 가치이며 일생의 표지이다. 쌀이 농부들의 손을 여든여덟 번이나 거친 뒤에 밥이 되듯이 내 시도 한 편의 시를 완성하려면 수십 번의 파지를 버려야 한다. 그 과정과 완성이 나에게는 괴로운 기쁨이다. 시를 쓸 때는 괴롭지만 좋은 시가 되었을 때는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그처럼 시는 나를 찢고 나온 내 분신이다. 그 분신은 나를 아프게도 믿게도 한다. 내가 시에 헌신하면 몇 배로 기쁨을 주고 조금만 소홀히 하면 영락없이 앙갚음을 한다. 시는 그렇듯 내 삶에서 여러 모습으로 존재한다. 시는 내 삶에서 끊임 없이 나를 격려해 주고 내 슬픔까지도 등에 지고 가는 친구 같은 존재다. 시는 나를 부추겨 주고 깊은 우정으로 나를 채찍질해 주며 끊임 없이 나를 충전시켜 주고 갖가지 매혹으로 나를 사로잡기도 하고 때론 환멸을 주기도 한다. 시는 내가 본 만큼 쓰게 하고 내가 발견한 만큼 또 쓰게 하는 내 삶의 저자(著者)다. 그래서 나는 시와 소통할 때 가장 덜 외롭다. 지금은 시 외에 어떤 삶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시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시는 이제 내 삶에서 떼어내 버릴 수도 어쩌지도 못하는 운명처럼 되어 버렸다. 마치 한 집에서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며 끈질기게 살아온 조강지처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시는 변함없이 나를 격려해 주는 친구로 끊임 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애인으로 평생을 질긴 끈처럼 묶여 있는 운명 같은 존재다. 만약에 시가 아니었으면…… 그러나 운명에 만약이란 없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운명을 거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운명을 걸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토록 고통스런 일에 혼신을 바칠 수 있었으며 돈도 밥도 안되는 시가 무슨 재미가 있었을까. 나를 끌고 가는 시가 없었다면 따라가는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내 삶에서 시는 단독정부의 수반처럼 무서운 권력을 쥐고 있다. 좋은 시는 내 정신의 르네상스를 맞게 해 주고, 나쁜 시는 나를 정신의 이방인으로 왕따시킨다. 시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살아 있는 자로서 나를 늘 질문자의 위치에 서게 하고 각성자의 위치에 서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시가 잘 쓰여지지 않을 때, 발표한 시도 버리고 싶을 때, 발표한 시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괴로워할 때 ‘이 끝없는 덧없는 짓을 왜 하지’라며 잠깐 정신을 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시처럼 지독한 형벌이 없고 시처럼 지독한 천형도 없다. 첫 시집을 내고 몇 년이 걸려 낸 새 시집이 별다른 변모가 없고 전 시집의 연장선상에 머물러 있을 때는 시가 구원이다가도 지옥처럼 느껴진다. 수없이 파지를 내고도 시 한 편을 제대로 얻지 못할 때는 시가 두려워지고 이러다간 시를 영영 못쓰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지고 조바심이 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새벽시장에 가거나 버스 종점에 간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는다. 밤 12시에서 그 이튿날 1시까지 꼬박 12시간 넘게 자지도 않고 깨어 있는 그들을 보면 그 상인들이 마치 용맹정진하는 수행자들 같고, 차들의 떠남과 돌아옴이 되풀이되는 시 쓰기와 같아 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떤 고통도 고뇌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정신의 끝을 조여 맨다. 정신이 느슨해진다 싶으면 나는 또 베란다에 매달아 놓은 풍경을 힘껏 친다. 그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용맹정진하는 수행자가 생각나고 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가 떠오른다. 풍경 끝에 물고기를 매달아 놓은 것은 물고기처럼 깨어 있는 정신으로 정진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때마다 나도 깨어 있는 정신으로 치열하게 시에 매달려야겠다고 다짐한다. 고통 없는 성장이 없듯이, 고통을 통하지 않고 좋은 시를 얻겠다는 생각부터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고통을 통하지 않고 좋은 시를 얻겠다는 것은 인생을 절망해 보지 않고 진실한 삶을 알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시도 내 삶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그때의 시는 절실하고 진정한 내 삶의 다른 모습이다. 새 중에서 가장 작은 벌새도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바다는 하루에 70만 번씩이나 파도를 쳐서 새로워진다고 한다. 나는 내 몸을 얼마나 쳐서 시를 쓰며, 쓰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시인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때 시는 내 자작(自作)나무이며 내 전집(全集)이다. 그러니 시여, 제발 날 좀 덮어다오.     리듬의  신에 붙들리다 글 김혜순_시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1955년생. 시집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등   시를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한 번만 대답하면 될 것을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전에 대답한 적이 있다고 해도 신문하듯 자꾸 묻는다. 질문을 받으면 생각한다. 저장된 답변 항목 몇 번에서 답을 꺼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로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대답을 듣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서. 아니면 질문을 한 사람의 진정성의 정도에 따라서. 아니면 그 때 나의 기분에 따라서. 또 아니면 질문이 던져진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이번에 질문을 던진 사람은 나에게 ‘시가 죽었다, 아니다, 아직도 살아 있다 라는 말이 팽배한 시대다. 너는 이런 시대에 왜 시를 쓰고 있는가’ 라고 물었다. 이번에 나는 아무래도 죽거나 상한 말의 성찬을 앞에 두고 그것만으로도 여전히 배부르다고 말하는 사람의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부산국제영화제엘 다녀왔다. 나는 3일간 도합 9편의 영화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개봉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영화적 변방의 나라 작품들만 골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시가 죽었다, 혹은 아니다,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시가 꼭 종이 위에서만 살아 있어야 하는가, 저렇게 영화 속에서 몸을 바꿔 살아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라고 시 나라의 방관자처럼 생각했다. 토니 갓리프가 만든 이라는 영화는 리듬에 관한 영화다.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 커플 자노와 나이마는 알제리로 떠난다. 말하자면 알제리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를 찾아 떠나온 길을 그들은 거꾸로 간다. 그것도 걸어서 간다. 그들의 귀엔 2004년의 젊은이답게 테크노 리듬이 현란한 이어폰이 꽂혀 있다. 그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안달루시아를 지나 모로코를 거쳐 알제리로 간다. 가는 길에 프랑스에서 불법 체류자가 되려고 하는 무수한 젊은이들을 만나 함께 농장에서 노잣돈을 벌기도 하고, 노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로드 무비를 지배하는 것은 음악이다. 그들이 가는 길은 음악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에 다름없다. 그들은 파리의 테크노에서 안달루시아의 12박자 플라멩고를 거쳐 모로코의 민속 음악, 최후로는 고향 알제리의 굿판에 이른다. 굿판에서 두 젊은이가 리듬의 엑스터시 속으로 빠져들어 온몸을 흔드는 장면은 무려 12분 이상 계속되는 데도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우리나라의 굿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주술적 리듬의 엑스터시에 저절로 동참해버리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지나가자 두 청춘 남녀의 얼굴엔 몸속에서 자신의 근원을 마주해 본 자의 해탈한 표정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는 고향을 찾아 떠나지 않아도 되리라. 리듬이 두 젊은이를 근원, 떠나온 땅의 원초적 이미지 속으로 끌어들인다. 리듬의 신에 붙들림으로써 연인은 개별적 동일성을 상실해 버리고, ‘우리’라는 드넓은 내적 동일성의 세계에 익사해 버린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진정한 엑스터시가 솟아오른다. 비로소 개별자를 해탈하고 그들은 경계없는 세계에서 해탈한다. 이 굿판에 참여하고 나서 두 젊은이는 할아버지의 묘비에 테크노 음악이 쏟아지는 이어폰을 꽂아두고 참 평화를 맛본 자의 미소를 지으며 고향을 떠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 시 속에서 내쉬어지고 들여 마셔지는 리듬, 그 리듬을 생각한다. 시의 리듬에 ‘나’가 실리면 ‘나’는 사라진다. 나는 ‘나’로부터 익명으로 이행한다. 나는 내 언어 속에, 내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리듬의 매혹에 빠져 시를 쓴다. 리듬 속에서 내가 지워지고 경계 없는, 명명할 수는 없지만 드넓은 ‘우리’라는 대양이 나타난다. 그것이 내 시의 주제이며, 의도이며, 인식 내용의 파도다. 나는 완전하게 ‘익명적 있음’이 되려고 시를 쓴다. 그것도 한국말로 쓴다. 그러니까 나는 한국말 속에서 완전하게 익명적으로 드넓게 퍼져 있으려고, 드넓게 퍼져서 내가 이 개별자의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며 우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시를 쓴다. 내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맨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골치 아픈 영화, 그가 올해에 74세의 나이로 제작한 이었다. 고다르는 아마도 자신이 현대의 단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신 스스로를 21세기의 단테라고 믿는 모양이다. 영화는 지옥, 연옥, 천국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언술(이 영화의 시추에이션들을 장면들이라고 말하면 안될 것 같다. 그는 영화에서 ‘보여 주기’보다는 ‘말하기’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되고 있다. 지옥 편에서 그는 디졸브로 연결된 짬뽕을 보여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각종 전쟁 자료가 뒤섞여 있다. 쓰러져 피 흘리는 사람들이 화면 가득 넘쳐난다. 이 때 감독은 웅변가다. 연옥 편에서 고다르는 질문자가 된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사라예보의 재건 현장에 있다. 바벨탑이 막 무너지기라도 했는지 각 나라 언어와 각 시대 언어들이 번역 없이 쏟아진다. 마지막으로 천국 편에서 감독은 시인이 된다. 주인공인 올가가 미군이 보초서고 있는 어느 해안가에서 죽음 후의 평안을 얻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때 어디선가 섬광이 비추는 것도 같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한 편의 시론을 완성했다. 그는 이 영화 속에서 우리 인간은 이 세계에 있지 않고, 각자가 인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시의 세계 속에서 시적으로 살다 간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 같다. 고다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가 있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영화 속에서 소리친다. ‘시가 없는 나라는 망한다’라고도 한다. ‘눈을 감고 보라’고 하기도 하고 ‘눈을 뜨고 상상하라’고 하기도 한다. ‘천국은 멀리서 온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천국은 멀리서 온 것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늙은 고다르가 영화 속에서 줄곧 우리 각자에게 이미지의 세계를 가져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고다르는 이 영화 속에서 우리가 개념 혹은 이데올로기에 함께 있는 것을 반대한다. 우리가 개념과 함께 하면 우리에게서 능동성이 나온다. 그 능동성이 우리를 전쟁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지와 함께 하면 우리는 멀리서 온 것에 지배를 받는다. 이미지와 함께 있는 우리에게선 우리의 근본적인 수동성이 드러나면서, 우리는 그 수동성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야만 멀리서 평화의 섬광이 온다. 나는 고다르의 영화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시 속에 구축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모든 대상을,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헛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내 옆에 있는 대상을 멀리서 온 것으로 덮어 씌워 그것들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내 시에 들어오면 누구나, 어느 것이나 헛것이 된다. 그것은 이미지라는 부재하나 존재하는 것, 익명적으로 있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경계 있는 것을 시 속에서 허문다. 경계란 무엇인가. 경계는 몸으로 다가가보면 가장 넓은 곳이 아니던가. 하늘과 땅을 나누는 지평선을 밟겠다고 걸어가 보라. 영원히 지평선은 밟히지 않고, 결국엔 지구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지평선이 지구만큼 넓어진다. 나는 멀리서 온 것,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 부재하나 익명적으로 있는 것을 지금 여기 내 앞에서 보려고 시를 쓴다. 나는 있는 것 속에서 일평생 살다가는 것이겠지만 시인으로 사는 동안 없는 것 속에서, 멀리서 온 것 속에서 일평생 살다 가는 것이다.     “시가  나를  이만큼 지켜  주었다”라는  말씀 글 장석남_시인,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1965년생.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등 내가 시라는 이름으로 처음 글을 쓴 것이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못한다. 몇 편 써 두었다가 그중 하나를 고른 것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는데 다니던 학교 신문(1년에 한 번 나오는 소식지)에 투고를 했었다. 내 앞 자리에 앉았던 아이가 나를 다시 보면서 ‘너 같은 애가 이런 글을 다 쓰냐?’ 하는 내용을 가진 표정으로 “정말 좋은 것 같다. 한 번 내봐” 했다. 그는 공부를 꽤 잘 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막상 학기말에 나온 그 소식지에 내 글은 없었다. 일언반구 가타부타 아무런 통보도 소식도 뭣도 없이 나의 글은 어디론가 침몰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침몰? 어린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내가 알기로 자발적인 투고는 거의 나 혼자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일언반구도 없이 실리지도 않았고 되돌아오지도 않았고 읽어보았다는 풍문도 없었으니 그러한 심정이 될 만하지 않은가? 그저 형식적으로만 아이들에게 글을 내라고 한 것이지 사실 제출된 글을 어느 누가 눈여겨 읽어보았을 성싶지도 않았다. 읽어보았다면 내 시가 실리지 않을 이유란 없다고 굳게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거기에 실린 글들은 그저 공부 잘 하는 아이들 내지는 호국단 간부생들의 시덥잖은 독후감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보나마나 그것도 죄다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기보다는 써오라고 해서 그렇게 실었을 것이 뻔했다. 하여튼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고 약간의 분노 같은 것도 없지 않았다. 다행히 앞 자리에 앉았던 그 아이는 내가 투고했던 사실에 대해서 일부러 그랬는지 상기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그 시를 투고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내 마음은 여간 설레는 것이 아니었음을 역시 잊지 못한다. 과장하여 말하자면 한 구절을 쓰면 그 구절을 둘러싸고 그때까지 알고 느끼고 있던 여러 가지 빛과 바람들이 몰려들었고 또 한 구절을 써놓으면 또 다른 빛과 그늘과 물기들, 별들이 나란히 놓인 두 문장 위에 어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참을 그 마술 같이 몰려든 풍경과 느낌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 안타까움의 심정 같은 게 없을 수 없었다. 근원적인 향수가 그런 것일까? 그마저도 행복의 조바심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소년 시절을 회상해보는 것은 시에 관한 최초의 기억의 설렘과 씁쓸함이 선연한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차원은 좀 달라졌겠지만 비슷한 두 감정이 대립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당시 투고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상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남 몰래 시를 쓰면서 그 미묘한 설렘의 행복감 같은 걸 지속시켰을 지는 의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마저도 든다. 그때 이미 내가 하고 있는 시의 흉내를 누군가와 함께 보고 있다는 착각이 당시의 설렘 속엔 섞여 있지 않았을까? 소년이 청년이 되고 또 세상의 종이에다 시를 발표한 지 17년이 되었다. 이른바 등단이란 것은 내가 사는 명분을 찾아야 할 세속적 절실함이 없지 않았으니 그렇다 치고 나는 시가 내게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놓아본 적이 없다. 시를 발표할 기회마다, 청탁을 받아들일 기회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이건대 이러나’ 하는 적이 가벼운 상념에서부터 그것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 잡지 같은 데서 만나게 되는 형편 없는 시들과 시를 둘러싼 난삽한 속물적 거래들을 접할 때도 그렇다. 드물지만 내 삶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시를 만날 때 환기되는 시의 가치는 새삼 즐겁고 귀한 것인데도 여전히 내 시업의 지지부진은 내게 시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곰곰 따져보게 한다. 언젠가 존경하는 선생님을 모신 소박한 강연 시간에 ‘시가 나를 이만하게 지켜 주었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처음 그 말뜻은 내게는 좀 과장되거나 낭만적으로 들렸다. 시라는 것이 어떤 행위나 일상생활의 판단의 지침이 되는 것이 아닐 바에야 그것이 한 인생을 지켜주었다는 말씀은 시를 너무 숭고한 자리로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부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내 그 말씀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시가 삶을 지켜준단 말인가? 그 실마리는 가장 오랜 시의 정의 중 하나인 사무사(思無邪)라는 말로 이어진다. ‘거짓 없는 생각’이라 풀이할 만한 이 말은 시의 정의로서는 아주 알맞지는 않은 도덕성이 너무 많이 차지한 말이지만 나이가 들은 탓인지 그 뜻의 고리타분을 털어내며 자꾸만 내 생각에서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어갔던 것이다. 이 말을 좀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면 시는 남을 속이려는 그 어떤 것에게도 저항하는 것이며 특히 스스로에게는 더더욱 거추장스럽게 따라다니며 경계하는 언어인 것이다. 시는 늘 새로워야 한다는 것과 시의 정의 내지 의미는 가장 오랜 도덕적 정의와 단절되지 않는다는 시의 태생적 이중성과 그 간격의 긴장된 끈, 형식과 내용의 길항 관계는 늘 흥미롭고도 괴로움을 안겼다. 어쩌면 그러한 도발적인 발언은 그분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이기도 했고 또 그분의 신조였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만한 절제된 삶과 너그러움과 속되지 않은 자리가 아마도 시를 공부하고 쓰고 하는 과정의 영향 하에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의 노경은 시가 삶으로까지 이어진 예증이기도 하다. 흔히 시와 삶이 유리된 인생을 지적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친일시를 거론할 때도 그렇고 민중시를 거론할 때도 그렇고 순수시를 거론할 때도 해당된다. 원칙에서야 틀리지 않겠지만 그러나 시와 삶이 직선으로 연결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곡선으로서, 먼 우회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는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고 또 삶은 다시 시 속으로 스며들어가면서 서로의 삶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또는 질타하면서 가꾸어주는 것이리라. 그 맥락에서 ‘시는 이만한 나의 삶을 지켜 주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과장도 아니고 낭만도 아니다. 나와 같은 흔들림이 많은 천학(淺學)에게 그 말씀은 앞으로도 내내 되새겨질 것이다. 시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투명한 창이고 눈이어야 한다. 그 눈은 세상의 어떤 색과 틀과 때도 거부한 가장 투명한 본성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엔 적잖이 써서 내보낸 내 수준 낮은 시들을 들여다볼 일이 있었다. 혼자 하는 일이었음에도 계면쩍은 일이었다. 그곳엔 일말의 움직임이 없지도 않았다. ‘망명’이라고 이름 붙인 첫 시집과 ‘번짐’이라고 이름 붙인 맨 마지막 시집 속의 시 사이에 달팽이 기어간 자국 같은 것이 있어서 내 생각의 일말을 짚어보기도 했다. 시로써, 세상은 망명으로 견뎌내야 할 엄살의 장소가 아니라 어떻든 ‘번져가’ 봐야 할 장소로 인식하고 발표한 장이었다는 사실의 발견은 그나마 위안이었다. 내게 시는 그래서 저 거창한 말, 청춘 시절엔 별 뜻 없이, 그러나 비장하게 사용하던 말, 여전히 얼마쯤은 유효한 ‘구원’의 일말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시가 이만하게라도 내 삶을 지켜주었다’는 완료형의 말씀이 앞으로도 진행형인 내 시와 삶 앞에서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글 이원_시인. 1968년생.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등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오빠가 죽고 중학교 1학년 겨울 아버지가 죽었다. 오빠가 죽었을 때는 바랜 가을 햇빛이 가득했고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희디흰 폭설이 가득했다. 그때 반짝이는 것은 햇빛이거나 눈이었고 나도 그들의 죽음 밖에 있었으므로 반짝였다. 오빠가 죽고 나서 아버지는 심하게 우울해 했고 술을 많이 마셨다. 크면서 아버지가 없는 것이 늘 불편했다(슬펐다기보다는 불편했다). 아버지가 있는 것처럼 말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죽은 아버지가 정말로 살아 돌아올 것 같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던 것처럼, 다시 아버지가 돌아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집 밖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면서 집 밖으로 난 길로 들어서지도,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집 밖과 집 안의 가파른 경계에서 왔다 갔다만 했다. 꿈에 날이 새도록 한 이불을 덮고 밤새 글짓기를 가르치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아버지가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꿈속에서 나는 졸면서도 아버지의 얘기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 발과 아버지의 발이 닿자 차가웠다. 누구의 발이 차가웠는지는 알 수 없었고 꿈에 찾아온 아버지는 생시보다 덜 낯설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은 말했지만 오빠가 죽은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게 그런 피붙이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자주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정말 그렇게 믿어지기도 했다. 재수할 때 친구 엄마를 따라 점쟁이에게 갔는데 형제 중에 먼저 죽은 사람 있지, 라는 점쟁이의 도식적인 한 마디에 지레 놀라 내가 먼저 훼손되어버린 가족사를 다 얘기해버렸다. 즉각적으로 심장판막증을 앓던 오빠가 내 몸 속에서 다시 부활했다. 오빠의 입술은 여전히 새파랬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조심스럽지만 낭패감이 뒤덮인 얼굴로 정말이니 하고 묻던 친구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예대 2학년 때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 1969」를 읽고 숨겨둔 가족사를 「소곡」이라는 제목의 시로 썼고 수업 시간에 합평도 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쓰지 않으면 계속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한번도 정면으로 쳐다본 적이 없는 그 죽음들을 통과하지 않으면 시는 내게 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용기가 생겨났고 그 시를 쓰고 나서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 두 개의 무덤이 들어와 있는 내 몸도 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처는 어두운 것만이 아니라 반짝이기도 한다는 것을, 어둠과 햇빛은 한 몸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여전히 안과 밖의 어느 곳으로도 들어서지 못하는 경계에 있었지만, 불안을 겹겹으로 껴입고서도 자꾸 시가 쓰고 싶어졌다. 시를 쓰면, 내가 세상의 어딘가와 닿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내게는 늘 세상이 낯설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창 밖이 낯선 것이 아니라 내 두 다리로 딛고 서 있는 창 안이 낯설었다. 잘 모르는 사람보다는 바로 옆 사람이 더 낯설었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느낌은 죽음을 겪기 전부터 시작된, 태생적 불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상 속으로 몸을 쑥 집어넣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직감했던 것 같다. 뒤뜰의 햇빛 속에 쪼그리고 앉아 깨진 유리병 조각을 한 없이 들여다보던, 방에 웅크리고 앉아 퍼담아 온 색색의 흙을 한 없이 들여다보던 그 시간들부터. 그리고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그 사실을 더 명확하게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내가, 시를 쓸 때만은 세상에 닿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니, 분명 내 몸은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그렇다, 시 쓰는 순간의 나는, 살고 있었다! 자라면서 내가 꾸며댔던 거짓말처럼 어느 날 나는 시 쓰는 사람이 되었다. 시 쓰는 사람이 되어 여러번 아버지의 죽음을 말했고 오빠의 죽음을 밝힌 연보도 썼다. 「소곡」을 썼던 그 순간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내 몸 밖으로 꺼낸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은 박제되었고 패턴이 되었고 그것을 말하는 나는 점점 아프지도 않아졌다. 나는 오빠와 아버지의 죽음의 무덤인 내 몸을 싫어했지만 죽음이 사라진 텅 빈 몸은 더 싫어졌다. 나는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을 살리기 위해 내 몸 속에 다시 넣었다. 내 몸에서 사라지지마, 말 안 할게.   유목민은 자신들 스스로를 유목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의 몸에는 유목의 대척점인 정주의 흔적이 없는 까닭이다. 한 곳의 집과 뿌리를 가졌던 자만이, 그러나 어느 날 그것에 온몸이 통째로 타본 자만이, 그리고 흉터가 뒤덮인 그 몸으로 세상을 떠돌게 된 자만이, 유목민이라는 말을 새로운 유전자로 갖는다.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나서도 낮에는 햇빛이 낯설고 밤에는 불빛이 낯설다. 아니 점점 더 낯설어진다. 어느 곳에도 온전하게 속하지 못하는 나는 이제 부재만이 나의 유일한 존재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 느닷없이 죽음과 함께 살게 된 어렸을 때보다 지금의 몸이 더 많은 비명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뿌리를 갈망한 적이 있었다고 그러나 그것을 가질 수 없는 존재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1444    [화창한 초여름 아침 詩 한컷] - 졸업 댓글:  조회:4474  추천:0  2016-05-19
KTX 말고 옛 기차를 타라고 하시네요. 장난감과 시집과 안짱다리 고양이를 데리고 가라고 하시네요.   나이가 많아도 입학이 되는 곳이라네요. 이곳에서 주셨던 가르침과 똑같은 가르침을 주시네요. 호그와트로 가겠다고 한 것은 물론 저 자신이지만 선생님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각종 생존 마법을 익히라고 하시면서, 거기서도 흑마술을 잘 막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시다니요. 좋은 선생님들은 호흡과 행동과 말이 일치하는 신공을 갖고 있지요. 마치 들숨과 날숨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요. 한 대학의 문예창작과에 계시는 김사인 선생님도 그러하지요. 공부를 처음 배우는 학생처럼 살그머니 쥔 손을 양쪽 무릎 근처에 하나씩 놓고 이야기를 골똘히 들으시죠. 학자금, 보증금, 알바, 난처함에는 한숨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큰 숨을 들이쉬고는 한동안 가만히 계시죠. 그때 알았지요. 김사인 선생님이 불사조기사단의 수장 덤블도어 선생님이라는 것을요. 빛의 속도로 호그와트를 오갈 때마다 쓰는 마법. 뜬금없다고요? 대학생들 입에서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세상이지만요. 시집 속에서 터득한 안짱다리 고양이를 돌보는 비법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걸 보면, 덤블도어 선생님은 생각보다 멋지게 퍼져 있다는 게 증명되는 셈이지요. 그 수가 얼마만큼이냐고요? 글쎄요. 아마 투명 망토만큼요! /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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