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오규원 - 한잎의 여자
2016년 05월 01일 18시 50분  조회:5271  추천:0  작성자: 죽림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년>


 

▲ 일러스트=권신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403 詩와 자연의 축복 2016-05-06 0 6343
1402 연변작가협회에서 회원들 작품집 출간 전력 2016-05-05 0 4475
1401 [한밤중 詩 읊다]- 詩 몇쪼가리 2016-05-05 0 5016
1400 정호승 - 별들은 따뜻하다 2016-05-01 0 5008
1399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2016-05-01 0 5113
1398 박인환 - 목마와 숙녀 2016-05-01 0 4446
1397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2016-05-01 0 4826
1396 기형도 - 빈집 2016-05-01 0 4844
1395 박용래 - 저녁눈 2016-05-01 0 4883
1394 최승호 - 대설주의보 2016-05-01 0 5024
1393 노천명 - 사슴 2016-05-01 0 4785
1392 오규원 - 한잎의 여자 2016-05-01 0 5271
1391 곽재구 - 사평역에서 2016-05-01 0 5203
1390 서정주 - 동천 2016-05-01 0 4856
1389 김춘수 - 꽃 2016-05-01 0 4972
1388 황동규 - 즐거운 편지 2016-05-01 0 5132
1387 이성복 - 남해 금산 2016-05-01 0 4679
1386 김수영 - 풀 2016-05-01 0 4615
1385 박두진 - 해 2016-05-01 0 4517
1384 김삿갓 竹詩 2016-05-01 0 4296
1383 나래를 펴는 엉뚱한 상상 2016-05-01 0 4372
1382 詩作은 온몸으로 하는것... 2016-05-01 0 4207
1381 [밤중 詩를 읊다]- 詩 몇토리 2016-05-01 0 4875
1380 소월 시 음미해보기 2016-04-26 0 5026
1379 내 문학의 고향, 어머니의 詩心 2016-04-25 0 4386
1378 [출근족들 왁짝지껄 하는 이 시각, 詩 한컷]- 늦봄 2016-04-25 0 4533
1377 [詩 미치광이]- 메아리 2016-04-25 0 4233
1376 [기온차가 심한 아침, 詩 한컷]- 문신 2016-04-25 0 3946
1375 [詩로 여는 월요일 아침]-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2016-04-25 0 4348
1374 공룡아~ 발자국을 가져가거라... 2016-04-23 0 4257
1373 한 <단어>앞에 문득 멈춰서게 하는... 2016-04-23 0 3675
1372 흑과 백, 문밖과 문안 2016-04-23 0 3885
1371 [詩와 詩評으로 여는 토요일]- 봄 셔츠 2016-04-23 0 3752
1370 김수영 시인 대표작 시모음 2016-04-22 0 6673
1369 다시 떠올리는 전위시인 - 김수영 2016-04-22 0 4402
1368 [밤에 올리는 詩 한컷]-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2016-04-22 0 4496
1367 [詩로 여는 금요일]- 앞날 2016-04-22 0 3728
1366 [안개 푹 낀 아침, 詩놈팽이 한컷]- 명함 2016-04-22 0 4180
1365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2016-04-21 0 4369
1364 詩는 쓰는것이 아니라 받는것 2016-04-21 0 4679
‹처음  이전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