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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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설픈 조선족 경어에 대하여 댓글:  조회:5991  추천:87  2007-10-21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3부  조선족의 언어변화실태에 대하여     1. 어설픈 조선족 경어에 대하여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1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조선족은 독특한 언어문화를 형성해오면서 본래 조상들이 쓰던 경어를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 문이 열리면서 상호 내왕이 빈번해짐에 따라 경어가 회복되어가는 추세인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회복단계에 처해 있는 조선족 경어는 매우 어설프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언어표현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 여기서 먼저 조선족사회가 경어를 상실하게 된 이유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첫째 19세기 60년대부터 만주 땅에 이주해간 조선족 1세들은 조선시대에 자연재해와 조정의 부패 때문에 파산된 농민 출신이였다. 그러므로 지식수양이 매우 결핍한 그들은 후대들에게 체계적이고도 예의적인 경어 교육을 전수해 줄 수가 없었다. 일제 시대에 훌륭한 지식인들이 만주 땅에 많이 갔었으나 그들은 해방을 맞아 절대다수가 한반도로 돌아갔고 남은 사람들은 피땀으로 개간한 땅이 아쉬워 떠나지 못했던 농민출신이여서 역시 경어를 후대들에게 정확히 가르칠 수준을 갖지 못했다. 둘째 조선족 1세들은 타향에서 정착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자식을 귀워여 하였을 뿐 ‘회초리’로 엄하게 다스리지 않았고, 따라서 조상들이 사용해왔던 경어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셋째 특히 연변조선족은 함경도 출신이 대다수인데 함경도언어는 사투리가 심하고 경어가 취약하다.  넷째 경어체계가 없는 한족들과 어울려 살면서 점차 언어체계도 동화되어 조선족은 자체의 경어를 상실하게 되었다.  다섯째 10년 동란이라 일컬어지는 문화혁명을 겪은 조선족은 가뜩이나 취약했던 경어가 완전히 박산나고 말았다. 당시 제자가 스승을 타도하고 자식이 부모를 적으로 대하고 형제간에도 등을 돌리는 등 전통예의는 설자리를 완전히 잃게 되었고 따라서 경어는 씨베리아 한파를 맞아 시들어 버렸다. 이상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경어를 상실했던 조선족은 한국인과의 상호 왕래를 통해 경어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으나, 경어가 한국말이라는 착각을 갖고 한국말을 흉내내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조선족의 경어표현이 서툴고 심지어 코미디 같은 언어표달이 튀어나와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현재 조선족들의 잘못된 경어표달에 관해 아래와 같은 몇가지로 정리할수 있다.  첫째 ‘씨(氏)’의 개념을 모르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  씨는 상대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경어다. 예를 들어 성에다 씨를 붙여 ‘김씨’ ‘이씨’ ‘최씨’라 할 때, 이는 상대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경어이다. 허나 조선족들은 흔히 상대가 “성이 뭐냐?”고 물으면 “저의 성은 ‘정씨’, ‘유씨’”라고 대답하는데 이는 실례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나의 성을 말할 경우 성에다 씨를 붙인다면 자신절로 자신을 높이는 꼴이 되기 때문에 마땅히 “저의 성은 ‘김갗, ‘임갗”라고 대답해야한다.  그리고 이름 뒤에 씨를 붙일 경우도 마찬가지로 상대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경어이다. 때문에 상대에게는 이름 뒤에 씨를 붙일 수 있으나 자신을 상대에게 소개할 경우 절대 자기 이름 뒤에 씨를 붙여서는 안된다. 허나 조선족들은 전화할 때와 타인 앞에서 자기 소개할 경우 “저는 신옥화 씨예요.”라고 하는데, 이는 매우 실례되는 말이다. 또 타인 앞에서 “저는 신옥화 씨 언니예요.”라는 표현도 실례되는 말이다.  둘째 ‘분’의 개념을 모르고 잘못 사용하는 경우  “여보세요, 저는 한국분인데요.” “한국분이 아니라 조선족이구만.” “어머, 어떻게 아세요?” “한국사람은 저절로 00분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분’도 ‘씨’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사용하여 존경을 나타내는 경어이다. 허나 조선족들은 흔히 “제가 방금 전화했던 분이예요.”, “이분이 나의 동생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언어표현이다.  셋째 ‘나’와 ‘저’의 구분  조선족사회는 ‘저희’라는 말이 이미 사라진지가 오래되었다. 아무리 상대가 교수이든 할아버지벌이든 전부 ‘나’ ‘내’라는 말을 사용해왔다. 그러다가 최근 10여 년래 ‘저’ ‘저희’라는 말이 살아나고 있기는 하나 아직도 매우 서툴다. 낯선 사람이거나 윗사람 앞에서는 ‘나’를 쓰지 말고 ‘저’ ‘저희’라는 표현을 사용해야한다.  넷째 ‘님’의 표현이 익숙치 않다  조선족사회는 본래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의 경우 ‘님’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최근 들어 ‘님’이란 말도 다른 경어와 마찬가지로 살아나고 있으나 역시 매우 익숙치 않아 ‘님’을 사용하면 마치 상대를 아부하기 위한 표현으로 간주하여 웬만해서는 사용하기를 꺼린다.  다섯째 ‘하시다’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  “여보세요, 제가 지금 신문사에 찾아가시려고 하는데,” 이는 분명히 틀린 말이다. 지난 겨울 필자는 연길아리랑방송을 청취하면서 아나운서마저‘하시다’라는 경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 아나운서가 청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하는 말이 “우리도 크게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또 기자가 노래클럽을 취재할 시 “이 클럽에 다니신지가 얼마되었습니까?”라고 물으니 “예, 제가 다니신지 벌써 3개월이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였다. 또한 필자가 중국동포타운센타에서 동포들로부터 “내 아침에 가셨던 분임다.” 와 비슷한 표현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하시다’는 상대를 높이기 위한 경어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여섯째 ‘요’를 붙이면 한국말이 된다는 착각  10년 전에 연변의 코미디 배우 오선옥이 “한국말은 뒤에다 ‘요’만 붙히면 한국말이 된다는 내용의 소품을 연기한 적이 있다. 이는 조선족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이기 때문에 이런 소품도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는 분명히 틀린 인식이다. 한국어의 표준경어는 우리 조선족언어와 마찬가지로 역시 ‘습니다’ ‘습니까?’이며 ‘요’는 상투적인 일반언어일 뿐이다. 대다수 동포들이 한국인과 대화를 나눌 때 말 끝에다 ‘요’만을 쓰고 표준경어를 사용하지 않아 상대로 하여금 반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경어는 우리 조상들이 사용해왔던 것이지 결코 경어는 곧 한국어라는 인식을 버려야하며, 경어란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생겨난 언어체계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행위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경어는 예의민족의 필수적인 언어체계이기 때문에 경어를 잘 사용하면 사회생활이 원활해지지만 잘못 사용하면 웃음꺼리가 되어버린다.  
15    조선족과 한국인사이 이혼절차에서 드러나는 문제점 댓글:  조회:5671  추천:77  2007-10-20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2부  재한조선족의 삶의 실태      7. 조선족과 한국인사이 이혼절차에서 드러나는 문제점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요 몇 년 동안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국제결혼 건수가 급증함에 따라 이혼율도 급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국제결혼에 있어서 위장결혼 수가 60% 넘을 것으로 보고, 진짜 결혼으로 왔으나 가출하여 별거상태에 있는 자가 많아 잠재적 이혼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짐작되어 실제 큰 말썽이 없이 살고 있는 비례가 20% 미만일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미 이혼했거나 현재 이혼 중에 있거나 앞으로 잠재적으로 이혼할 수를 합치면 80%나 된다는 얘기가 된다.  필자는 일선에서 결혼자들과 상담하고 실제 일처리(이혼)를 해준 경험을 소재로 조선족(한족을 포함해서)과 한국인 사이 국제결혼의 폐단에 관해 이미 칼럼이나 기사 형식으로 10여 편을 발표하였기 때문에, 여기서 이혼하는데 있어서 알아야 할 상식과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지적해보려 한다.  가. 서류준비  이혼에 필요한 서류, 이를테면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국인 배우자의 주민등록번호도 모르고 있다. 이럴 경우 중국에서 호구변경수속을 밟을 때 당지 파출소에 한국인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이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복사해서 보내오면 된다. 나. 이혼여부를 모를 경우  가출하여 일정한 시간이 지났으나 자신이 이혼되었는지 여부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을 Ep어 보면 알 수 있다. 다. 이혼절차를 모를 경우 이혼에 관한 법적인 상식을 모르면서 무작정 법원에 이혼소송을 접수할 경우 불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법무사 혹은 변호사를 찾아 자문을 구하거나,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이 문턱이 높아 접근하기를 꺼려한다면 조선족을 위해 일을 하는 신문사나 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라. 결과문제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출할 경우 결과는 판결 혹은 화해권고조정으로 나온다. 판결은 피고의 귀책사유(잘못)가 뚜렷해야 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 화해권고조정으로 나온다. 마. 원고의 의지문제 피고의 귀책사유가 뚜렷하더라도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으면 판결이 아니고 화해권고조정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위자료를 청구하였으나 원고가 의지가 약해 법정에서 위자료를 포기한다고 답변할 경우 역시 화해조정으로 끝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바. 판결과 화해권고조정이 어떻게 다른가?  화해권고조정은 실질적으로 협의이혼과 같은 성질이며 원고는 한국에 계속 체류할 명분이 없어지며 더욱이 귀화신청을 제출할 수가 없게 된다. 만약 한국에서 계속 체류하고 싶고 귀화신청까지 바란다면 피곤하더라도 끝까지 싸워 판결을 얻어내야 한다. 사. 국적취득문제  만약 만 2년이 되지 않았거나 이미 귀화신청을 제출해놓은 상태에서 이혼할 경우 반드시 판결을 얻어내야 국적취득이 가능하다. 아. 협의이혼문제  어떤 경우든지 협의이혼을 하면 한국에 남아 있을 수 없거니와 귀화신청이 불가능하다. 만약 협의이혼을 하고 또 다시 다른 한국인과 재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자. 위장결혼문제  위장결혼사실이 법적으로 밝혀지면 한국에서 이혼 후 다른 남자와 혼인신고는 되지만 체류변경은 불가능하다. 오직 귀국했다가 다시 남편의 초청으로 재입국해야 한다. 차. 체류연장문제  체류연장이 되지 않아 불법이 된 자들은 이혼소송을 제출하고 법원의 접수증명원을 갖고 한국국적이 있는 분의 신원보증을 받으면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3개월씩 연기가 가능하다. 다만 불법시간을 따져 벌금을 물어야 한다.  위의 지적 외에도 이혼은 복잡한 법적절차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자문을 구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카. 한국에 혼인신고가 되어있으나 비자가 기각되어 한국에 오지 못해 호적정리 할 경우  만약 원고가 한국인이고 피고가 중국인(조선족)일 경우 이는 국제이혼에 속하므로 서울가정법원에서만 접수가 가능하고 시간이 1년 반 정도 걸린다. 만약 원고가 중국인(조선족)이고 피고가 한국인일 경우 원고가 한국에 합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친인척에게 소송대리위탁(중국 측에서 공증을 거쳐야 함)을 해야 하며 한국인 배우자에게 소장부분이 송달되면 6개월 이내에 끝나고 소장부본이 송달되지 않을 경우 1년 정도 걸린다.
14    “우리 동포끼리 서로 헐뜯지 맙시다.” 댓글:  조회:5663  추천:82  2007-10-1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2부  재한조선족의 삶의 실태      6. “우리 동포끼리 서로 헐뜯지 맙시다.”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단합심이 부족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를테면, 옛날 조정에서는 외적을 눈앞에 두고도 당파싸움에 빠져 있었고, 한반도는 남북으로 쪼개졌고, 남쪽에서는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하면서 차별을 두고, 일본열도에서는 조총련과 민단이 대립해온 역사가 있다.  조선족사회는, 조선족이 집결된 연변사람들이 흑룡강성, 요녕성, 길림성내의  타지방(이하 연변을 제외한 조선족을 타지방 조선족이라 표현함)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아니’라 하고 타지방 조선족들은 연변사람이라 하면 나쁜 허물만 캐기 일쑤다. 이러한 서로 흉보기는 수도 북경의 조선족사회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한반도내에서나 일본열도에서 자민족끼리 서로 다투는 데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향토적 원인이 있겠으나 조선족사회는 그러한 요소를 떠나서 그냥 사소한 허물을 갖고 서로 흉을 보면서 단합되지 않는 것 같다. 조선족사회의 단합되지 않는 기풍이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사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조선족동포끼리 헐뜯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예를 들면 연변사람은 약아빠지고, 사기치고, 남의 등을 쳐 먹기 좋아하고, 한탕치기를 하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며 심하게 헐뜯기도 하고, 심지어 중국식품가게에서 목격한 일인데 흑룡강 사람끼리 이렇게 헐뜯는 것이었다.  “너 왜 약속을 안 지켜, 너 연변사람이냐?”  문제는 연변사람에 대한 이런 편견 때문에 연변출신 사람들이 한국에서 적지 않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취직할 때 속이고 흑룡강성이나 요녕성에서 왔다고 꾸며댄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가 이러한 사람을 몇 명 만나보았는데, 왜 연변출신이라는 것을 속이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서는 연변사람을 쓰게(곱게) 안 봐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연변사람도 마찬가지다. 타지방 조선족의 흉을 보는 경우가 있다. 타지방 조선족은 다수가 남선(南鮮)출신이어서 연변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는 이유로 한국인 행세를 하면서 연변사람을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서로 흉보기는 사소한 일로 인하여 생겨난 편견이라고 본다. 사람은 다 허물이 있기 마련이고 또 연변사람이 갖고 있는 허물이 타지방사람에게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한두 사람의 허물을 갖고 마치 전체가 다 그러한 것처럼 매도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타지방 조선족은 나 보고 “연변사람은 소문과 다르네요. 착실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연변남자를 애인으로 소개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지방 조선족들이 이 분들처럼 연변사람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없을까? 마땅히 바꿔야 한다. 연변사람도 마찬가지로 타지방 사람에 대한 편견을 바꿔야 한다. 이런 편견을 버려야 만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사회가 뭉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은 앞으로 고향에 돌아가 전반 조선족사회를 바꾸어 나아갈 주역이다. 마땅히 한국인이 IMF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귀걸이, 목걸이, 장롱속의 금부치를 나라에 바치는 단합정신과 2002년 한일월드컵 때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한국인의 똘똘 뭉치는 응집력도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13    “재한조선족은 한족에게 한 수 배워야…” 댓글:  조회:5844  추천:66  2007-10-1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2부  재한조선족의 삶의 실태      5. “재한조선족은 한족에게 한 수 배워야…”  -조선족은 ‘현재형’, 한족은 ‘미래형’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현재 한국에는 조선족이 22만, 한족이 11만이 살고 있다. 그러니 중국에서 한국에 온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조선족이고 한 사람이 한족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족은 설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어 조선족의 눈에 한족이 아주 적어 보인다.  실제로 가리봉시장 일대에서는 하루저녁에 3건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선족들은 설치고 있다. 이곳 상인들은 벌써부터 조선족이 체류가 합법화되면 시름 놓고 술 마시고 싸울 것이니 큰 걱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조선족들의 한국생활은 여러모로 복잡하다. 이에 비해 한국에 온 한족은 그 절대다수가 돈 벌이를 왔기 때문에 다년간 일관하게 쓸데없는 일에 눈을 팔지 않고오로지 일만 꾸벅꾸벅 해서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있다.  금천구 가산동의 한 비좁은 쪽방에 서로 타지방에서 온 한족이 셋이 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수년간 일당 일을 하고 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하도 꾸준하게 출근하니인력회사에서 겨울에도 별로 쉴 사이 없이 일감을 준다고 한다. 뿐더러 아침점심은현장에서 먹고 저녁은 윤번으로 가장 값싼 채소를 골라 사서 해먹는다고 한다. 부지런히 일을 하고 아껴 먹고 아껴 쓰고 해서 매달 평균 집에 120만 원 씩 꼭꼭 부쳐 보낸단다. 필자가 농담으로 여자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돈을 벌려고 왔는데 웬 여자예요? 꾸준히 벌어 모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요.”라고 대답했었다. 물론 조선족들도 처음에 한국에 오면 ‘감옥’에 온 셈치고 열심히 산다. 그러다가 거퍼 1년 지나기 바쁘게 이리저리 눈을 팔고 돈을 헛되이 써가면서 ‘향수’를 추구한다.  연변에 가면 ‘한족들이 조선족들의 돈을 번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 온 한족여성들은 조선족남성들을 애인으로 사귀기를 선호하고 있는 데, 그 이유는 한족남성들이 너무 짠데 반해 조선족남성들은 여자를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고 돈을 펑펑 쓰기 때문이라 한다. 연길에서 온 박모(32세)는 5년 전에 총각으로 심양에서 온 4살 연상인 한족 아줌마와 동거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매달 번 돈을 꼬박꼬박 여자에게 바쳐 보관하게 했다. 남자는 여자의 “앞으로 결혼해주겠다”는 감언이설을 믿고 ‘밸까지 빼’주었으나 그녀는 남자의 돈 6천여만 원을 갖고 홀랑 도망가 버렸다. 다음 한족은 친척초청이 안되어 결혼으로 한국에 온 수가 많은데, 이민족 간의 국제결혼이라 혼인생활에 갈등도 많아 이혼건수도 많다. 그런데 한족여성들 중 십중팔구는 이혼소송에 반드시 필요한 한국남성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을 착실하게챙겨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조선족여성들 중 십중팔구는 아무 서류도 챙기지 않고 무작정 가출하거나 이혼소송을 제출하려고 하는데 남편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을 손에 쥐지 않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이 곧바로 예로부터 문서에 대한중요성을 알고 살아온 한족과 문서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온 조선족의 큰 차이점이다. 한 때 중국에서 단일적인 사회주의체제하에서 조선족이 한족보다 우수해 보였을지는몰라도 경제시대에 들어서 조선족이 한족보다 많이 낙후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다. 혹자는 재한조선족이 한족보다 돈을 더 잘 벌고 있지 않느냐? 고 반문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확실히 재한조선족이 한족보다 여러모로 따지면 돈을 훨씬 더 많이 벌고 있다. 허나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아껴 쓸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때 조선족은 ‘하루살이’ 생활관습에서 여전히 못 벗어나고 있어 ‘현재형’인데 반해, 한족은 여전히 멀리 보고 살아가는 ‘미래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해보자. 현재 한국에는 한문판 신문으로서 ‘신화보’, ‘대기원보’, ‘手拉手’ 등이 있다. 이들 신문들은 <삼자경(三字經)> 풀이를 비롯해서 중국역사문화에 대한 글을 부지런히 싣고 있다. 이탈리아 철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말을 “모든 현대사는 역사관성의 표현이다.”고 바꿔 말하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이 문화제국으로 수천 년 뻗혀 온 이유와 앞으로 뻗혀 나아 갈 수 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들 한문판 신문을 통해 알아야 한다. 이에 비에 현재 재한조선족 관련신문들은 전혀 그 역사관성의 무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는 중국에서 살아왔지만 ‘염황’도 모르고, 명색이 조선민족이지만 단군역사도 몰라 역사관성의 힘을 갖지 못해 한국생활도 ‘보따리 민족’으로 어정쩡하게 살고 있으니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은 한때 중국에서 한족을 깨지 못했다고 비웃으면서 살아온 적이 있다. 허나 이젠 거꾸로 한족이 조선족을 깨지 못했다고 비웃을 시대가 온 것 같다. 
12    “돈 많이 벌어도 부부조차 믿지 못하는 세상…” 댓글:  조회:5494  추천:45  2007-10-1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2부  재한조선족의 삶의 실태      4."돈 많이 벌어도 부부조차 믿지 못하는 세상..."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지난 일요일(29일) 오후 퇴근시간 무렵, 한 쉰 넘어 보이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필자를 찾아왔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가 물었더니,  “저의 친동생의 일이라 말하기가 부끄러워 망설이다가 얘기하기로 결심했어요. 억울하게 이혼당한 제 동생의 사연을 선생님께서 들어보시고 글로 발표해 조선족사회에 ‘경종’이 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생 김철(가명)은 27세(1999년)에 결혼하여 이듬해에 메주 같은 아들애를 낳았다. 그는 앞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려고 한국에 가서 돈을 벌기로 맘을 먹었었다. 출국수속이 의외로 순리로워 아들애가 태어 난지 6개월 만에 한국에 입국하는데 성공했다.  김철은 몇 년 동안 감옥에 온 셈치고 악착스레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술 담배를 좋아하던 것을 끊었고, 웬만한 거리는 버스비마저 아까워 걸어 다녔으며 건설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휴일이면 친인척의 집에서 보냈다. 동포들이 흔하게 하는 ‘애인 찾기’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여자란 손도 만져보지 못한 채 몇 년 동안 ‘스님’으로 살았다. 그에게 유일한 오락은 한 달에 한 번씩 영화구경을 하는 것, 되도록 소비를 줄이느라 근사한 양복 한 벌조차 사지 않고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이렇게 6년 동안 한국에서 열심히 번 돈을 꼬박꼬박 전부 집에 부쳐 보냈었다. 아내도 남편이 보내준 돈을 헛되이 쓰지 않고 모아서 아파트도 사놓았고 아들애의 미래 학비로 정기저금도 해놓았다.  김철은 이렇듯 한 눈 팔지 않고 돈 벌면서 아내와 아들애를 사무치게 그리워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 남편이 하루속히 귀국하기를 바랐다. “인젠 돈도 많이 벌었으니 당신이 더 그리워나네요. 아들애가 더 커서 아빠와 정이 멀어지기 전에 어서 귀국해 우리 세 식구 단란하게 살아요.” 부부의 뜻이 같아 김철은 지난 해 10월 두 번째 고향인 한국을 떠나 귀국했다.  김철이가 고향에 오니 아내와 아이는, 처음에는 서먹서먹해 하다가 금세 불이 붙을 정도로 화끈해졌다.  젊은 부부는 6년 만에 처음으로 ‘신혼’을 맞게 되어 몸과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런데 김철은 마음뿐이지 아무리 애써 봐도 거시기가 발기되지 않았다. 밤새껏 시도해보았으나 몸만 지쳤을 뿐 헛수고였다. 이튿날 아침 애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부부가 또 시도해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거시기가 오래 동안 써먹지 않아 병신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는 의심을 갖고 거침없이 남편에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얼마나 여자들과 ‘그 짓’을 많이 했으면 시들어버려 발기조차 되지 않지요?”  남편은 아내의 말에 화가 상투밑까지 치밀었으나 여하튼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라 아내에게 그동안 정조를 지켜온 과정을 차근차근 이야기 해주었다. 아내는 남편의 말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냥 남편을 의심하였다.  부부는 매일 이 일 때문에 크게 다투게 되었고, 다툼으로 스트레스가 심해 거시기는 끝내 고개를 쳐들지 못한 채 급기야 이혼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남편의 잘못 아닌 잘못으로 이혼하게 된 것, 아내가 아이를 키우는 조건으로 집과 돈을 전부 아내에게 주게 되었다.  김철은 6년 동안 모국 타향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고 뼈 빠지게 일을 하여 돈을 벌었으나, 앞으로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려던 꿈은 뜻하지 않게 깨졌었다. 그런데 그를 더욱 화나게 만든 것은 친인척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이 진짜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 지나치게 여자를 밝혀서 결국 몸이 상해 아내에게 이혼당한 줄로 믿고 뒤에서 쉬쉬한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김철은 당지에서 살아갈 체면이 없어 형제들한테서 돈을 빌려 갖고 한국으로 재입국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억울하다고 여겨 병원에 가서 검사받고 치료했다. 기적은 있는 법이다. 그의 거시기의 발기가 회복된 것이다.  김철은 지나간 일들을 떠올리면 악몽과도 같아 “이제부터 정조고 뭐고 되는대로 살아야지.”라는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안한 것도 한 것’으로 인정되는 판에 “차라리…”, 하고 남의 말 듣던지 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 온 조선족 중에 정직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 다녀온 사람은 거개가 ‘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재한조선족사회에 “한 것도 했다하고 안 한 것도 했다고 떠드는 판에 차라리 하고 말 듣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 유행되고 있다고 한다.  위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는 김철의 아내를 나쁘다고 탓할 것인가, 아니면 김철의 비극이 곧 전체 우리조선족의 코리안드림으로 빚어진 비극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김철의 누나는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이 무엇인지? 돈을 많이 벌었어도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는 세상, 이 한심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 참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1    “제 마누라 찾아주세요!” 댓글:  조회:5230  추천:72  2007-10-06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2부  재한조선족의 삶의 실태      3. “제 마누라 찾아주세요!”  -코리안드림의 비극을 짚어본다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열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조선족 박모가 중국동포타운센터를 찾아와 “저의 마누라를 추적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무슨 사연인가고 물었더니, 그는 “창피하기도 하고 그년이 괘씸해서······”라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박모는 7년 전에 한국에 왔다. 첫 1년은 열심히 일해 올 때 진 빚을 갚았다. 이듬해부터 매달 100만원 넘게 꼬박꼬박 집에 부쳐 보냈다. 그러다가 4년이 접어들면서부터 일한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해 수개월 한번 씩 돈을 보내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마누라가 “한국에서 애인을 친해 사느라 돈을 안 보내는 거 아니냐?”면서 걸고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 한국에 와 있는 친구를 스파이로 내세워 남편의 사생활을 추적했다. 친구가 “별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고 회보하니, 그녀는 남편과 전화통화 시 하다못해 식당여종업원의 말소리가 나도 “당신이 바람피우는 것이 틀림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또 “만약 당신이 당금 집에 오지 않으면 이혼하자”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박모는 가정파탄이 두려워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헌데 그는 기절초풍할 일에 부딪쳤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한국에 떠난 이듬해부터 외간남자와 살림을 차렸고 남편이 피땀으로 번 돈으로 새살림의 생활비로 충당했고 나머지 돈을 챙겨갔고 그 외간남자와 함께 한국수속을 마치고 떠나려는 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한국에 있는 것이 껄끄러워 얼려 귀국하게 만들고 자신은 외간남자와 같이 한국에 와서 재미를 보려는 계산이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귀국한 남편은 그녀의 한국행을 놓치고 말았다. 박모는 할 수없이 또 친인척들의 돈을 빌려 갖고 한국에 재입국했다. 하지만 아무리 한국 땅이 좁다고 한들 마누라를 찾는 것이 바다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도움을 받으려고 신문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필자는 박모의 사연을 듣고 나니 친구 동생인 김철(가명)의 일이 떠올랐다.  김철은 5년 전에 한국에 왔다. 그도 돈을 벌어서는 마누라한테 부쳐 보냈다. 그러다가 노임을 제때 받지 못하게 되자 꼬박꼬박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의 마누라는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하다못해 고향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실 때 전화에서 여자소리가 나도 남편이 한국에서 바람피운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이 때문에 김철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필자가 김철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야, 너의 처가 중국에서 바람피우고 있으니 너한테 선수를 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라고 했더니, 그는 “간대르사(설마하니)?”하면서 마누라를 믿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했다. 헌데 몇 달 후에 나의 말이 사실로 밝혀졌다.  한 달 전에 김철은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되어 귀국해보니 마누라가 외간남자와 붙은지가 3년이 넘었고 얼굴부터 튼 뱃살, 보이지 않는 음부까지 성형수술 하느라 숱한 돈을 써버렸다. 그가 집에 도착한 다음날 마누라가 나머지 돈을 챙겨갖고 집을 나간 이후로 들어오지도 않고 이혼을 제기했다고 한다. 위의 두 사례는 매우 공통한 점이 있다. 첫째 남편이 한국에서 피땀으로 번 돈으로 외간남자와 재미를 본다는 것. 둘째 두 여자는 자신이 바람피우고 있으면서 근거 없이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떠드는 것으로 이혼조건을 삶으려는 것. 셋째 두 여자 모두 돈을 챙겨갖고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 것이다. 박모가 찾아온 날 한 할머니가 사위와 5살 먹은 손자를 데리고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돈을 몽땅 갖고 다른 사내와 사분(私奔)해버린 저의 딸년을 찾아달라고 우리 센터에 방문했다.  연길아리랑방송을 청취해보면 위의 사례와 같은 일이 허다하다. 이는 조선족여성들의 가치관과 가족관이 엄청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코리안드림으로 빚어진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와, 개개인의 소통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10    답답한 재한조선족 댓글:  조회:5428  추천:68  2007-10-06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2부  재한조선족의 삶의 실태      1. 답답한 재한조선족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지난 6월 어느 토요일 오후 6시경 비가 출출히 내리고, ‘해도 지지 않은 시간대’에 남구로역 4번 출구에서 좌측으로 굽어드는 골목길 어구에서 40대로 보이는 조선족남녀 각각 2명이 술에 만취해 ‘길이 좁다’고 비틀거리면서 걷다가 흰바지를 입은 한 여성이 흙탕물이 질퍽한 길바닥에 덜컥 주저앉는다. 동행하던 여성이 “야, 창피하지도 않아!”라고 말하니, 그녀는 “야, 좋은 내 돈으로 술을 먹었는데 뭐가 창피하냐!”고 큰소리친다. 길을 오가던 손님들이 그녀의 흙탕물에 적신 흰바지가 구경거리였던지 모두 돌아다본다.  시선을 그녀에게 집중하던 길손들이 바로 지나가던 중국음식점에서 갑자기 우장창 땅땅, 쾅쾅하면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서로 목소리를 높여 “죽이네, 살리네.”하며 야단법석이어서 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겨 일제히 그리로 눈길을 돌린다.  두 볼거리를 구경하던 부근의 한국인노점상주인이 “조선족들이 갈 데까지 갔구먼.”라고 말하면서 혀를 찬다.  조선족들의 이러한 추태는 조선족집거지인 가리봉, 대림, 안산, 안양 등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젊은 조선족남자(28세)가 버스요금을 내지 않겠다고 기사와 신랑이를 벌이다가 70세 되는 한국노인이 “우리 한국 사람은 버스요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그 노인을 때려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언론이 보도했다.  며칠 전 대림의 00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던 조선족여성끼리 말다툼하다가 25살 먹은 여자가 주방식칼로 상대를 찔러 경찰에 잡혀갔는데, 그녀의 엄마가 “우리 딸을 구해줄 수 없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하여튼 조선족들이 한국 땅에서의 여러 가지 추태상을 글로 옮기자면 몇 권의 책은 족히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즉 만약 한국에 와 있는 조선족들이 미국이나 일본에 갔다면 ‘시름 놓고’ 추태를 부릴 수 있을까? 답은 뻔하다. “어림도 없는 소리!”  그렇다면 왜? 이 문제에 관해 네 가지 측면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에 와 있는 조선족은 미국이나 일본에 간 조선족에 비해 소질이 차하기 때문이고, 둘째 언어가 통하니 행동이 자유스러운 것이고, 셋째 고국이니 같은 민족이니 하면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넷째 조선족이 미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한국인을 만만하게 보는 면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돈벌이를 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러한 추태를 저도 모르게 부리게 될 것”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허나 이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세상에 없다. 총적으로 말해서 조선족의 소질문제다. 조선족 소질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해보자.  작년 제2차 동포 자진귀국지원프로그램 시행 시, 등기부를 저절로 작성할 줄 아는 조선족은 불과 5~10%밖에 안 되고, 대다수는 말귀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반 정도는 자기주장만을 하고, 일부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일보려 다니고, 만취한 상태에서 경찰조사 받으러 가겠다하고, 일부는 중국에서 밑바닥에서 헤매던 분들도 한국에 와 돈을 좀 벌었다고 사무원에게 큰소리치고··· 아무튼 참말로 답답한 면이 많다.  조선족 가운데 비행기표를 예약해주는데 똑 부러지게 한두 마디로 끝날 수 있는 분이 극히 드물고, 대다수는 불필요한 말을 길게 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비행기표 값이 얼만가?” “어디로 가려합니까?” “중국에요” “중국 어디예요?” “연길에요” “어느 날 가십니까?” “8월 10일이요” “왕복으로, 아니면 편도로 해드릴까요?” “가는 것만” “한국비행기로 할까요? 중국비행기로 해드릴까요?” “아무거나”  만약 “자리가 없다”고 하면 “서서가는 표라도 괜찮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처음에 농담인줄로 알고 “바쁘니까 죄송합니다. 농담할 시간이 없습니다.”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내가 왜 당신과 농담을 하겠느냐? 기차는 서서가는 표가 있는데 왜 비행기는 없느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국 내에서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고 밀입국이거나 배를 타고 한국에 온 분 중에 비행기도 기차처럼 서서갈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있구나고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한국 분의 경우 “몇 월 며칠, 인천-연길, 대한항공 (혹은 중국민항), 왕복 (혹은 편도)” 이렇게 한마디면 끝난다.  출입국 공무원을 비롯해서 무릇 조선족을 상대로 사무를 보는 일이 실로 쉽지 않다는 것을 필자는 체험으로 느꼈다.  재한조선족은 앞으로 귀국하여 조선족사회를 이끌어갈 주력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어두운 면만 보고 “한국도 별거 아니다”고 거만을 떨지 말고, 한국의 선진적인 것을 열심히 배워 스스로 소질을 높이기에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9    한 한국 남자의 국제결혼 신세담 댓글:  조회:5537  추천:70  2007-10-0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9.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당하고 보니···”  -한 한국 남자의 국제결혼 신세담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내가 조선족여성과 재혼한다고 하니 나의 친인척과 친구 중에 “조선족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오면 도망가는 사례가 많은데···”라고 말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었다. 허나 나는 그것도 사람의 나름이겠지, 만약 내가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여러모로 잘해준다면 도망갈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결혼하기로 작심했다.  2006년 여름 나는 중국 용정에 가서 조선족여성 이미화(가명)를 만났고 혼인을 약속했다. 그 후 나는 이미화가 2007년 5월 20일경 한국에 오기 전까지 다섯 차례 중국에 갔고 그녀의 명의로 115평방짜리 아파트를 사주었다. 당시 나는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집까지 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 오기 전에 여러 차례 나의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이 있었고, 이 때문에 서로 말썽도 있었다.  5월 중순경 비자를 발급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다음 달에 중국에 가서 이미화를 데리고 한국에 오겠다고 알렸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남편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미화는 2007년 5월 20일 나와의 결혼비자로 한국에 오면서도 나에게 온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또 한국에 도착해서는 친언니 집에 가서 하루 묵고 이튿날 아침에 나한테 전화로 한국에 이미 왔다고 알려왔다. 나는 마치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틀 후 이미화가 나를 만자고 해서 만났더니, “앞으로 벌어서 집값을 갚을 테니 외국인등록증을 내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결국 그녀는 나와 결혼생활을 보낼 의도가 없었다.  나는 인내성이 있게 이미화를 달랬다. 만약 같이 얼마간이라도 살다가 정말 맞지 않는다면 그때 헤어져도 좋다. 그리고 나의 잘못으로 헤어진다면 집을 줄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아예 살아보지도 않고 집은 선물로 알고 있다느니, 외국인등록증부터 빨리 내달라느니, 서울에 가서 일을 하면서 주말이면 보러 오겠다느니 등 횡설수설하는 것을 용납 못하니 일단 살림을 차리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2007년 6월 6일 수원시 병점에 집을 맡고 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이미화는 15일 동안 언니네 집으로 간다, 친구 만나러 간다는 등 이유로 7~8 차례 밖에 나갔고 심지어 이튿날에 귀가할 때도 있었다.  밤에 잠자리를 거부하는 등 아무튼 여러모로 보아 나와 진실로 혼인생활을 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이미화가 심장병 때문에 잠자리를 거부한다고 했다. 내가 “그럼 중국에 가서 병을 고치고 나와 살거냐 말거냐를 결정하고, 만약 살지 않겠다면 내가 사준 집을 나의 명의로 돌려놓고, 너를 한국에 데려올 테니 1년 체류를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듣지 않았다.  이미화는 아내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의무는 지키지 않은 채, 맨날 외국인등록증을 내달라는 타령이었다. 만약 이미화가 한국에 올 때부터 나에게 알리고 왔거나, 또 와서도 진실성이 있게 처사했다면 왜 내가 외국인등록증을 협조해주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녀를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7월 6일 외국인등록증을 협조해주기로 했다. 허나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7월 5일 끝내 가출하고 말았다. 가출 후 이미화의 전화 통화내역을 보니 조선족 남자 강모와 하루 평균 7~8 차례 통화했다. 나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이미화가 호프집에서 강모와 키스하고 끌어안고 등 추잡스런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나는 강모에게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아 음성메세지로 “나는 내 여자를 찾자는 것이 목적이니 모든 것을 따지지 않겠으니 여자만 보내 달라.”고 했다. 이튿날 강모는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 만약 이미화와 강모 사이가 떳떳한 관계라면 왜 전화를 받지 않거나, 굳이 전화를 바꿔버리겠는가?  나는 오는 8월 5일까지 이미화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것을 그녀의 오빠와 언니에게 알렸다. 허나 그들은 자신들도 이미화가 연락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도 이미화를 달래고 욕하고 욱박지르고 하면서 나와 살기를 권유해보았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미화는 한국에 오기 위해 나를 이용해 사기결혼을 한 것이고, 한국에 와서도 같은 조선족 남자와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급기야 그 남자에게 도망갔다. 나는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집도 사주고 한국에 데려다 잘살아보려고 했으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예전부터 조선족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오면 도망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내가 조선족여성과 재혼한다고 하니 말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조선족여성들이 도망가는 데는 한국인남자들에게 문제가 있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잘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도망갔으니, 나의 맘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제1부 끝)
8    "중국동포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나요?" 댓글:  조회:5558  추천:83  2007-10-0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8."중국동포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나요?"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중국동포타운신문입니다.” “여보세요, 저는 한국 사람인데요, 한 가지 여쭈어 볼 일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중국동포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나요?”  하느님 맙소서. 한국 땅이 아무리 작다고 한들 도망가면 어디에 가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일단 중국동포가 가출한 이유부터 물었더니 한국분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정씨인 한국분이 올해에 44살이고 이혼자이며 아이는 엄마가 부양하고 있단다. 홀로 2년간 쓸쓸하게 지내다가 한국에 있는 엄씨라는 조선족 젊은 여인을 통해 중국심양에 있는 그녀의 친구 한모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  한모 여인은 25살이고 심양예술대학 졸업생이며 누가 봐도 탐낼 정도로 인물체격이 잘 빠진 처녀다.  정씨는 첫눈에 한모 여인에 홀딱 반했고 한모 여인도 별로 싫은 기색이 없이 혼인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한모 여인은 한국에 입국해서 1개월만에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자 이튿날로 짐을 챙겨갖고 가출해 버렸다. 정씨는 마누라가 십중팔구 엄씨 여인을 찾아갔다고 판단하고 전화해보았더니 벌써 전화번호를 바꿔버려 헛물을 켜고 말았다. 그래서 정씨는 마누라를 찾을 단서가 끊어졌고 마치 바다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워졌다.  정씨는 어려운 생활 형편에서 1000만원의 돈을 들여 한모 여인을 한국에 데려왔다. 자신은 진짜 결혼이라 생각하고 한 혼인인데 이제와 보니 여자는 처음부터 위장결혼이였다. 즉 남자는 진심이였으나 여자는 오로지 한국 땅을 밟으려는 목적으로 국제결혼이란 수단으로 남자를 이용했던 것이다.  정씨는 돈도 떼우고 사람도 떼우고 남은 것은 허탈감 뿐이다. 그는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사실 필자는 같은 조선족 입장이라 참으로 대답하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한국분들이 여러 통의 전화를 걸어왔다. 그중에 묘하게도 위의 사례와 비슷하게 조선족 여성이 한국 남성을 사기 친 내용이 하나 있었다.  전화상의 목소리를 듣건대 50대 한국 남성이였는데, 1년 전부터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입국한 30세의 중국동포여성과 사귀어왔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1000만원의 현금과 세집을 마련해 주었고 자주 용돈도 주었다. 물론 무작정 준 것이 아니라 본마누라와 이혼하면 자신과 결혼한다는 각서까지 받고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이혼을 추진했으며 이혼서류를 손에 쥔 날 들뜬 마음을 안고 여자를 찾아갔더니 그녀가 하는 말이 중국에 잠깐 다녀와서 함께 살림을 차리자고 했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곧이 듣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손꼽아 기다렸으나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의심이 들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알아본 결과 그녀는 아예 중국에 가지 않았다. 틀림없이 잠수해 버린 것이였다.  남자가 일이 꼬이고나니 대충 짐작이 가는 데가 있었다. 즉 어느 한번은 자기가 마련해준 집에 갔더니 젊은 사내와 지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열 받은 남자는 자기가 준 돈을 도로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여자가 잘못했다고 무릎 끓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남자는 그 일을 떠올리면서 틀림없이 그 사내와 함께 도망갔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시 필자에게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러한 내용의 전화를 받는 순간 필자의 심리는 매우 모순적이다. 같은 조선족의 입장에서 ‘경찰에 신고해서 손해배상을 받아내고 강제추방 시키라’는 말도 못하고 말이다. 그래도 믿고 전화를 걸어왔는데 시원한 대답도 드리지 못하고 참으로 딱한 일이다.  전화는 그런대로 대충 넘겼으나 나의 생각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일면 일차적으로 볼 때 조선족 여성들이 오로지 한국 땅을 밟으려는 목적과 또한 한국 땅에 와서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고, 거꾸로 한국 남성들이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꽃다운 조선족 여성들을 탐내는 자체가 틀려 먹었다고 지적하고 싶다.  조선족 여성들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후 도망간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또 그 비례가 많아 한국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문제는 이러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방적으로 조선족 여성들만 나쁘다는 결론뿐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물론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행을 목적으로 한국남성들을 사기 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일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국 남성들이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짝이 엄청 기울게 조선족 여성들을 데려온다면 그 혼인이 유지될 리가 만무하다는 점을 념두에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도망가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감한하고 혼인을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쉽게 말해서 한국남성들은 아무리 훌륭한 옷도 나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좋은 옷이 아니라는 도리를 염두에 두고 조선족 여성과의 결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기 친 자와 사기당한 자는 모두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것이다. 즉 사기당한 한국남성들은 물심양면으로 손해를 보았고 ,사기행각을 벌인 조선족 여성들은 비록 일시적 목적으로 자존심을 꺽는다고는 하지만 근본 맘에도 없는 한물 건너간 남성들한테 몸을 망친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또 사기 친 행위로 인하여 한국생활이 떳떳하지 못할뿐더러 한국 땅을 떠나기 전까지 굉장히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그녀들은 천국의 꿈을 안고 왔으나 지옥 같은 세월을 기약 없이 보내야 한다.         
7    무지한 계약결혼자들 (김정룡) 댓글:  조회:5282  추천:65  2007-10-0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7. 무지한 계약결혼자들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 국제결혼을 대체로 진짜결혼과 위장결혼으로 나누어 왔었는데, 요 몇 년 사이 계약결혼이란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국제결혼방식은 가지각색이다.  계약결혼이란 브로커가 나서서 한국인남성(이하 남자로 간칭 함)과 조선족여성(이하 여자로 간칭 함)을 계약을 맺어주고 하는 혼인을 말하는 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자가 브로커에게 소개비(한화로 300~400만원)를 지불하며 출국수속비는 여자가 별도로 부담한다.  둘째 여자는 남자에게 결혼해주는 조건으로 사례금 (한화로 300~400만원)을 준다.  셋째 여자가 한국 땅에 도착하면 브로커에게 성공대가로  한화로 300~400만원을 추가로 지불한다.  넷째 여자가 한국에 오면 남자와 반드시 살아야 한다. 대신 남자는 반드시 여자의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게끔 해준다.  다섯째 여자는 반드시 국적을 취득할 때까지 남자와 살아야 한다. 만약 사는 도중에 가출하거나 이혼신청을 하면 남자에게 위자료 금 300~400만원을 지불한다.  여섯째 만약 여자가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 남자가 여자를 쫓아내거나 이혼을 제출하면 여자에게 위자료 금 300~400만원을 지불한다.  일곱째 여자가 국적을 취득하면 남자와 헤어져(이혼)도 남자는 여자의 의도대로 해준다. 여덟째 만약 남녀양방 중 어느 일방이 계약조건을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진다.  이상 내용은 필자가 여러 명의 결혼계약서를 친히 보고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자아! 우리 모두 한번 평심하게 생각해보자. 감정과 애정을 토대로 이루어진 국제결혼도 이혼율이 하늘을 치솟고 있는 마당에 사랑이 전혀 전제되지 계약결혼이 어떻게 남녀가 함께 3~4년을 한 이불을 덮고 살 수가 있을까? 물론 같이 살다보면 정이 들어 계속 살아가는 경우도 간혹 있을 수는 있으나 그 비례가 1%나 될까?  문제는 여자는 한국에 와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돈을 벌고 국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남자는 먹고살기조차 어려운 처지이기에 계약결혼을 통해 돈이나 벌고 홀애비가 성욕도 해결할 겸, 이런 목적으로 계약결혼을 하기 때문에 사는 중에 갈등이 많아 3~4년을 뻗힌다는 것이 실로 하늘에 별따기다. 그래서 여자들이 한국에 온지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2년을 살다가 뻗히지 못해 가출하거나 이혼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흑룡강성 상지에서 온 서모 여인(31세)은 계약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상욕을 먹고 생활비를 주지 않고 과도한 섹스에 시달리는 등 참다못해 5개월 만에 가출하고 이혼을 생각하고 있으나 주저한다. 그 이유는 계약을 위반하는 후과에 대해 몹시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계약결혼이란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브로커가 개입해서 맺어진 계약은 법정효율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녀 어느 일방이 계약을 파기하더라도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러한 법률상식을 모르고 있는 여성들은 계약결혼에 목을 매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참으로 한심스럽다.  허나 누구를 탓하랴! 법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그 놈의 국적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을.    
6    위장결혼자들의 착각 (김정룡) 댓글:  조회:5103  추천:67  2007-10-0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 6. 위장결혼자들의 착각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결혼이란 본래 두 남녀가 결합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또 유교문화권에서 결혼은 남녀 당사자 간의 결합뿐만 아니라 가문과 가문사이의 결합이기도 하다. 중국과 한국은 전통사회에 있어서 결혼을 두 남녀 당사자 사이의 결합보다 두 가문의 결합에 비중을 더 두었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에 비중을 더 두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가부장적 혼인으로 인하여 비극이 초래된 경우가 매우 많았으나 필경은 진짜 결혼일 뿐 위장결혼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족사회의 결혼에 무슨 진짜요, 가짜요 라는 시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위장결혼이란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필자가 알기로는 조선족사회 위장결혼은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이후에 나타난 새롭고 특이한 현상이며, 이 위장결혼 때문에 수많은 조선족들이 웃고 울었다.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위장결혼은 그 절대다수가 틀에 맞추고 판에 박힌 듯한 ‘공식’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위장결혼을 새로운 돈벌이로 간주한 한국과 조선족사회의 일부 브로커들이 개입해서 짝을 묶어준다. 한국사회 밑바닥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위장결혼을 통해 2~3백만이란 돈도 벌고 중국에 ‘관광’을 다녀올 수 있어 호적을 더럽히면서까지 위장결혼에 나선다. 한편 조선족은 위장결혼을 통해 코리안드림이란 꿈을 이룰 수 있고, 따라서 돈을 벌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한국국적도 취득할 수 있다.  허나 이는 표면에 드러난 ‘화려한’ 이미지일 뿐 실제 내막은 위장결혼을 한 사람들 중 60%이상이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심적인 고통이 심하고, 빚을 갚기도 전에 강제추방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수의 위장결혼자들은 장밋빛 환상을 품고 ‘천국’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아니라 ‘지옥’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극이 초래된 원인은 위장결혼에 나서는 당사자들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착각을 갖고 한국에 오기 때문이다. 첫째 브로커들의 감언이설을 액면 그대로 믿고 한국에 온다. 위장결혼 당사자들은 브로커들의 “결혼수속 시 일정 금액(인민폐7~10만원)을 내면 한국에 도착해서는 더 돈이 들지 않고 체류연장도 되고 국적도 취득할 수 있다.”라는 그럴듯한 감언이설을 액면 그대로 믿고 온다. 즉 이미 브로커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했으니 한국에 오면 더는 돈이 들지 않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허나 실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자면, 1년 후 체류연장허가를 받으려면, 2년 후 한국국적허가신청을 제출하려면 한국남자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되는데, 한국남자들이 돈을 받거나 ‘잠을 자는’ 등 대가가 없이는 협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아까워 주지 않거나 ‘잠을 자기’가 싫어 불법이 된 조선족 여성들이 허다하다. 안도에서 온 탁모 여인(38세)은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본신문사에 방문하여 첫마디로 하는 말이 “그 XX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는 3년 전에 브로커의 감언이설을 철석같이 믿고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왔다. 헌데 오자마자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는데 한국남자가 100만원을, 두 번째 체류연장 시 200만원을, 국적취득허가신청을 하는데 400만원을, 그리고 세 번 ‘잠을 자’야만 협조해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국적취득허가신청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온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국적까지 취득하려면 한국남자한테 일정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위장결혼자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둘째 브로커가 잡히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위장결혼자 중 일부는 브로커가 잡혔거나 결혼대상자인 한국인이 잡히면 따라서 수배자가 되고 단속에 걸리면 강제추방 된다. 문제는 이럴 경우 위장결혼자들이 숨어 살아야 하고 이혼을 하고 싶어도 매우 힘들다. 필자가 지난 2006년 제2차 동포자진귀국 프로그램 시행 시 이 부류의 위장결혼자 100여 명을 일처리 해주는 과정에서 그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시달려 대다수가 ‘바보’로 될 정도로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셋째 위장결혼이 범죄라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법에 의하면 위장결혼은 형사범죄에 속하며 일단 법적으로 위장결혼사실이 판명되면 100~300만원의 벌금을 물게 하거나 혹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1년이란 판결이 선고된다. 허나 위장결혼자 중 대다수는 자신의 위장결혼 행위를 한국에 오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여기고 있을 뿐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사법당국을 욕하고, 브로커나 한국인을 고발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거나, 돈만 날리고 결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법에 신고하여 돈을 되돌려 받겠다고 한다. 뇌물을 받은 자만 위법행위일 뿐만 아니라 뇌물을 준 사람도 똑같이 법적제재를 받는다는 도리마저 모르고 있다. 타인을 물에 빠뜨리려면 자기 자신의 발부터 물에 적셔야 한다는 도리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넷째 한국인에게 여러모로 시달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온다. 위장결혼을 한 한국남자들은 한국에서 직업이 없거나 신용불량자이거나 장애인이거나 심지어 엉덩이를 들이밀 곳조차 없는 노숙자 등 가장 밑바닥에서 헤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부류의 한국인들이 200~300만원이란 돈을 받아먹고 호적을 더럽히면서까지 조선족여성들과 위장결혼을 한다. 이들은 조선족여성들이 한국에 오기만 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거나 ‘잠을 잘’ 것을 요구한다. 때문에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온 조선족여성들은 그들에게 여러모로 끊임없이 시달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치도 않은 논리이지만 위장결혼에 나선 한국인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즉 브로커가 잡히면 따라서 잡히는데 300만 원 정도의 벌금을 물고 나면 버는 것이 전혀 없을뿐더러 호적만 더럽히고 만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욱이 조선족여성들한테서 보상을 받으려고 ‘목을 조이고 있다.’ 다섯째 도박성으로 위장결혼에 임한다. 일단 한국에 와보고 남자가 괜찮다 싶으면 같이 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위장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위장으로 시작한 혼인이 결국 진짜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허나 끝까지 살아가는 부부는 극히 드물다. 여섯째 이중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온다. 중국에서 남편과 가짜로 이혼하고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온 후 남편이 따라서 한국에 온 조선족여성들은 한국남자와 본남편과의 사이에서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이중고통을 겪게 된다. 일단 한국에 왔으니 합법으로 체류해야 하고 내친김에 국적까지 취득하려면 한국남자를 잘 대해주어야 하는데 중국에서 따라온 본남편은 여러모로 ‘어찌는 갗고 살피기 때문이다. 아무튼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온 조선족여성들은 한국생활이 몹시 고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장결혼 건수는 늘어나고 있고 천국이 아닌 지옥에 빠져드는 조선족여성들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으니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극이 줄어들게 하려면 조선족이 자유로 한국에 왕래할 수 있게끔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H-2비자의 시행이 실로 값진 것이라 인식된다.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 5.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결혼하고 있는 조선족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연변여성(2007.1)'에 조선족 소설가 허련순 씨가 <더 크고 소중한 것은 우리가 버리고 있는 것들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저자가 한국인이 조선족여성과 결혼하려고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연길시 00결혼소개소를 찾았다. 00결혼소개소의 사무원은 한국인을 보자마자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이 열정적으로 맞았고 한국인 한 사람에 무려 10여 명의 조선족여자를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헌데 한국인은 10여 명의 조선족여성을 상대로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거꾸로 10여 명의 조선족여성은 모두 가 결혼할 대상자의 그 어떠한 조건도 따지지 않고 무작정 OK라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사례는 비단 허련순 씨 한 사람만 목격한 일이 아니라 한국인이 중국결혼소개소를 통해 조선족여성을 소개받을 경우 거의 다 똑 같이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조선족은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을 코리안드림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결혼할 대상자의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릇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OK 싸인을 보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10여명의 조선족여성가운데 하나 점찍으면 당일로 혼인약속을 하고 당일로 여자 측의 부모를 만나고 당일로 잠자리를 같이 하는 등 번개부부가 된다.  일부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조선족여성들을 농락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 한 사람이 조선족 여러 명을 상대로 ‘잠도 자고’, 여러모로 환대를 받고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혼인을 포기해버리면 조선족여성들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만다.  또 일부 한국인은 여자 집에 머무르는 불과 7~8일 되는 동안에도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리거나 여러 가지 추태를 부려도 여자는 임시적으로 기분만 상해할 뿐 개의치 않고 한국에 시집온다.  이렇게 애정이 배제된 채 번개 불에 콩을 굽듯 이뤄진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혼인은 결혼생활에 있어서 당연히 말도 많고 탈도 많기 마련이다.  용정시에서 온 박모 여인(40세)은 보험회사에 근무했고 5년 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딸애를 키우면서 살다가 2년 전에 연길00결혼소개소를 통해 60세인 한국인을 결혼대상자로 소개받았다.  한국인은 박모 여인을 만난 이튿날 하루 종일 여자를 옷을 못 입게 하고 섹스를 요구했다. 박모 여인은 한국인을 변태라 욕하면서 거절하니 남자는 창문유리를 부셔버리면서 “나와 결혼할거냐? 말거냐?”면서 큰소리 쳤다. 그녀의 엄마가 “유리를 부수는 자가 앞으로 사람도 때리지 않겠느냐면서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고 하자, 한국인은 “저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태껏 여자를 때려본 적이 없고, 댁의 따님은 하늘이 저에게 내려준 선물이니 잘 대해줄 것을 맹세한다.”고 삭삭 빌었다. 한국인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모녀는 결국 결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조선족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즉 만약 같은 조선족 남자가 여자를 만난 이튿날부터 한국인처럼 추태를 부린다면 그 결혼이 성사될까? 두말할 것 없이 모두 답은 “NO"일 것이다. 허나 그 결혼이 성사된 가장 기본 요소는 남자가 어떻게 어떤 일을 저지르든 간에 그는 한국인이니깐!  만약 중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간에 여자가 한국에 와서 잘 지낸다면 왈가왈부할 것이 없지만 그녀는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상욕을 먹기 시작하고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당해왔으나 국적 때문에 2년 가까이 뻗히다가 끝내 가출하고 말았으며 현재 정신마저 이상해졌다. 그녀는 필자보고 “저의 국적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왕청에서 온 강모 여인(35세)은 한국인이 중국에 가서 처음 만나고 혼인을 약속하고도 그 며칠을 못 참아 술집 여자와 놀다가 임질에 걸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강모 여인이 한국에 와서 아이까지 낳았다. 허나 남편은 자주 외박하면서 그녀를 속태우게 하더니 반년 전부터 아예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놓고 집에 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필자가 “왜 이혼소송을 제출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이혼하면 국적을 취득할 수 없지 않나요. 참고 기다렸다가 국적이 나오면 이혼할 타산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상시에서 온 조모 여인(29세)은 1년 10개월 동안 직업도 없고 아무런 생활력도 없는 한국인 남편을 벌어서 먹여 살리고도 욕먹고 매 맞으며 ‘비인간적’으로 살아왔다. 허나 그녀는 이제 2개월만 지나면 국적취득허가신청을 제출할 수 있으므로 그때까지는 참고 견디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상 세 가지 사례와 서두에서 말한 사례로부터 볼 수 있듯이 조선족은 오로지 한국 땅을 밟기 위해 또 오로지 한국국적을 위해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결혼하고 있다.  실제로 진짜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남편과 갈등이 심하면 돈도 못 벌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망가지고 나서 국적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도대체 국적이 뭐길래 조선족들이 그토록 ‘목숨을 걸고 있는지?’   이제부터 조선족은 국제결혼에 나서더라도 한국과 결혼할 생각을 버리고 진정한 감정과 애정이 토대로 된 한국인과 결혼할 생각을 갖는 자세로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4    "이제는 낯 뜨거운 일 그만, 자성해야"(김정룡) 댓글:  조회:5315  추천:82  2007-10-0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 4. "이제는 낯 뜨거운 일 그만, 자성해야"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2007년 새해 첫 출근인 1월 2일 아침 아홉시 반, 중국동포정책민간연구소에 첫손님으로 고희(古稀)에 가까운 늙은 양주가 찾아왔고, 두 분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으며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필자가 찾아오신 영문을 물었으나 두 분은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듯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두 분은 찻물을 마시고 나서 한참 후에 겨우 말문을 연 얘기의 내용이 아래와 같다.  따님이 12년 전 여권을 위조(가명으로)하여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30일 만에 아주 식은 죽 먹기로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국적취득목적이 달성되자 곧바로 이혼수속을 해버렸는데 수년 전에 조선족 남자 1명을 위장으로 결혼대상자로 한국에 데려오고 이혼한 것이다. 이런 수단을 이용하여 그녀는  얼마간 돈을 벌었다. 이번(2005년 3월)에는 친오빠를 자신의 위장결혼대상자로 한국에 데려왔다. 그러니까 친 오누이가 호적상으로 부부가 된 셈이다. 여기까지는 일이 '잘된 편'이었다.  그런데 작년 12월 20일 누군가 친 오누이의 위장결혼사실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하는 바람에 오빠가 잡혔고 여동생은 도피중이라고 한다.  늙은 내외분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지으면서 "이제 우리 아들과 딸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들의 결과에 대해 대충 짐작이 가면서도 "글쎄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고 대충 얼버무려 넘겼다.  이 일이 있고나서 며칠 후, 30대 중반의 한 조선족여인이 찾아와서 무작정   "단속에 걸려 잡힌 사람을 구해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무슨 사연인지 차분하게 말씀하십시오."라고 했더니  "구해준다는 확답을 받아야 얘기하겠다."고 하면서 자기고집만 부렸었다. 그날 어렵게 그녀의 말문을 열게 하였는데 사연이 이러했다.  그녀는 4년 전에 결혼으로 한국에 왔고 국적을 취득한 후 한국인 남편과 이혼했다. 그러다가 2006년 9월에 중국에 있는 친정아버지를 자신의 배우자로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입국시켰다. 그러니까 부녀가 법률상으로 부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3개월도 안 돼 부녀간의 위장결혼사실이 들통 나 아버지가 잡혔다.  여기서 위 두 사례의 당사자들의 결과에 대해선 잠시 접어두고 이 사건과 또 이와 유사한 조선족들의 위장결혼바람에 대한 필자의 소감을 얘기해 보려한다.  필자는 중국동포타운신문사에서 일을 하면서 조선족 위장결혼자 100여명을 상담해 보았는데 한 가지 유감으로 남는 것은 위장결혼당사자들이 위장결혼을 한국에 오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여기고 있을 뿐 이에 대해 양심적, 도덕적으로 죄책감이나 수치심이라곤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 오누이, 부녀 간 혹은 처제와 형부…사이에 위장결혼으로 호적상으로 부부가 된데 대해서 아무런 거리낌이나 수치심이 없는 듯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조선족은 중국 56개 민족가운데서 여러모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인정을 받고 살아왔다. 따라서 조선족은 결혼관과 정조관이 여타 민족에 비해 가장 순결하고 깨끗했다. 그토록 자타가 인정하던 조선족의 결혼관과 정조관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우리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심사숙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위장결혼이 한국에 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운이 좋으면 한국 국적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가세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모두 잘되어 뜻대로 돈을 팡팡 잘 벌어서 근심걱정 없이 잘 살수만 있다면 그나마 도덕이고 양심이고 운운할 것 없이 ‘잘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장결혼을 알선하는 소개자들은 자신들의 장사수익을 위해 “위장결혼도 결혼이기에 한국에 가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당사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허나 실제는 위장결혼자의 50% 이상이 한국에서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고 심지어 본래 중국에서 교사 혹은 공직에 있었던 분들이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머리가 혼란스러워 정신이 이상해져 이제는 말귀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바보’로 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 이유는 위장결혼대상자인 한국인으로부터 쩍하면 “돈을 달라” “같이 자자” “신고해 중국에 돌려 보내겠다” 등의 시달림과, 상대를 찾을 수 없거나 상대가 협조해주지 않아 체류연장이 되지 않기에 맨 날 허구한 날 경찰만 눈에 띄면 간이 콩알만 해져 불안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결혼 자들은 2년이 되어야 국적취득허가신청을 제출할 수 있게끔 되어 있어 ‘그놈’의 국적 때문에 모진 무시와 냉대와 차별과 폭력까지 당하면서도 참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이 수두룩하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도 위장결혼자들 처럼 ‘바보’가 된 자가 굉장히 많다. 필자는 같은 조선족으로서 이러한 분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말 못할 감정이 솟구친다. 조선족들이 ‘그놈’의 국적 때문에 발목이 묶이어 이러한 비극이 초래된 것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랴!  사실 위장결혼이든 진짜결혼이든 당사자들이 한국국적취득을 원하는 것이 한국에 영원히 뿌리박고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합법체류와 또 가족 혹은 친인척들을 한국에 친척방문으로 초청하기 위해서가 절대다수일 것이다.  필자는 조선족들의 위장결혼이든 진짜결혼이든 그 숫자가 줄어들게 하려면, 첫째 한국정부가 H-2비자를 발급, 혹은 이보다 더 입국규제를 완화해서 조선족들이 수월하게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해어야 하고, 둘째 중국이 하루빨리 잘 살아야 되며, 셋째 조선족 남자들이 타민족보다 백배의 노력을 경주하여 조선족 여성들을 지켜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3    다문화시대 국제결혼실태 (김정룡) 댓글:  조회:5220  추천:77  2007-10-0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 3. 다문화시대 국제결혼실태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1989년 동서독일이 통일되고, 1991년 쏘련이 해체됨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이 불러왔던 냉전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상과 이념의 대결도 무의미해져 세상은 다문화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다문화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타부로 취급되었던 이질적인 여러 가지 문화가 병존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했고 따라서 금지사항으로 취급되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국가 간의 국제결혼이 그 장벽이 허물어져 불과 10여년 사이에 대폭 증가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개혁개방 이래 한족이 대만에 시집간 수가 20여 만 명이고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이 한국에 시집온 수가 6만 여 명이다.  다문화시대의 국제결혼의 급증은 국제화를 추진하는 선봉꾼, 평화를 도모하는 천사, 이질적 문화를 전하는 전도사의 역할이라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여기서 거론하려는 국제결혼은 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단절되었던 대만인과 대륙인(중국), 한국인과 조선족사이 동족간의 국제혼인 실태를 의미한다.  민족이란 개념은 혈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즉 같은 종교, 언어, 생활관습 등을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족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동족 내의 문화의 동질성이 다문화시대에 동족간의 국제결혼 건수가 급증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학자들은 동서독일의 결혼이 통일에 기여하고 통일 후 동서화합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는 점을 거울로 삼고 대륙인과 대만인의 국제결혼을 양안화합과 미래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0년 중반에 <<중국의 꿈(中國夢)>>의 저자(중국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대륙에서 대만으로 시집간 수가 5만 여 명에 이르며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양안 간에 매일 전화 통화하는 수가 10만 여차에 달한다. 이미 그들은 양안교류의 활성화와 양안의 평화를 도모하는 선봉꾼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현재 대만인과 대륙인의 결혼 수가 20여 만 명에 이르니 그들을 통해 양안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되었고 양안간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중국의 00학자는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치고 싶어도 이미 대만에 시집간 20여만 명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의미심장하게 지적했다.  지금의 추세대로 양안간의 국제결혼 수가 급증한다면 양안은 ‘결혼통일’, 즉 결혼이 통일을 촉진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는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대만인과 대륙인사이 국제결혼실태는 결코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한국인과 조선족간의 국제결혼은 앞으로 남북한 사이 ‘국제결혼’의 전주곡으로 보아야할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한국정부 당국자들은 한국인과 조선족간의 국제결혼실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연구하여 좋은 방향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려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족은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문화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상과 이념이 북한인과 비슷하거나 같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조선족은 언어사용이 북한인과 비슷하다. 셋째 조선족은 생활관습이 북한을 많이 닮았다. 넷째 조선족여성과 북한여성은 사회참여도가 높다.  다섯째 조선족과 북한인은 성격상 비슷한 점이 많다.  모두어 말하자면 조선족, 남한, 북한은 모두 동족이지만 문화, 언어, 생활관습, 성격 등 여러 면에서 조선족은 남한보다 북한 쪽과 동질성이 강한 반면에 남한과는 이질성이 많다.  그러므로 한국은 마땅히 조선족과의 국제결혼을 앞으로 남북한의 ‘국제결혼’의 전주곡으로 삶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언젠가는 남북한도 결혼이 성사된다고 본다면 마땅히 이것을 대만과 대륙처럼  결혼이 남북교류의 활성화와 통일을 촉진하는 촉매제, 즉 ‘결혼통일’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키를 잡아야 할 것이다. 물론 동족간의 국제결혼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예하면,  첫째 국제결혼이 부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제가 낙후한 나라(중국)에서 경제가 부유한 나라(대만과 한국)에 대량 시집간다. 거의 일방통행 결혼이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부유한 나라에서 이런저런 여건이 여의치 않아 내국인과의 결혼이 어려운 사람들이 국제결혼을 이용하여 장가갈 수 있는 문제가 해소되고 있으나 이 부류의 사람들이 차원이 낮은 탓으로 시집온 여성들의 이런저런 조건을 만족 줄 수가 없어 이혼율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위장결혼 비례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대만인과 대륙인의 국제결혼이 하도 위장결혼 수자가 많아 대만에서는 입국 후 8년이 지나야만 국적취득허가신청을 제출할 수 있게끔 법으로 제정해 놓았다. 한국에서는 현재 2년이 되면 국적취득허가신청을 제출할 수 있게끔 되어 있으나 지금 추세대로 위장결혼이 급증한다면 본래 2년이 3년, 4년으로 법이 바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설사 위장결혼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위장이란 사실이 들통나지 않으면 국적취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위장결혼 건수가 모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넷째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다문화시대에 국제결혼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나라, 이질적인 문화 환경에서 살아왔던 동족간의 국제결혼은 더욱 증가될 추세이다. 이는 서로 단절되어 있던 단일 문화에 다문화 요소가 증가되고 결혼 당사자들을 통해 국가 간의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이렇듯 문제점이 많은 동족간의 국제결혼실태를 어떻게 올바른 방향에로 이끌어 나아갈 것인가? 이에 관해선 다음 호에서 논해 보려한다.   
2    한국인의 삐뚤어진 국제결혼관 (김정룡) 댓글:  조회:5689  추천:61  2007-10-01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 2. 한국인의 삐뚤어진 국제결혼관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한국은 조선조 500여 년을 통해 유교를, 본산지인 중국보다 아주 뼈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받아들여, 유교중심의 전통국가로 되어버렸다. 유교문화는 여러모로 폭이 넓지만 한마디로 줄여 말하자면 곧 ‘씨’를 철저하고도 깨끗하게 만들려는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전통 결혼관과 정조관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깨끗했다.  이를테면 한국인은 본래 세상에서 가장 자민족끼리만의 결혼을 고집했고 한번 결혼하면 이혼불가, 재가불가가 전통이었고 바람피우는 자를 가장 파렴치한 인간으로 취급했었다.  이렇듯 고상하고 순결하고 깨끗했던 한국인의 결혼관과 정조관이 1990년대부터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어나고 이혼율이 세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애인이 없는 사람은 바보로 취급될 정도로 성적문란이 심한, 등등 부정적인 면으로 많이 전환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한국인의 국제결혼이 급증하는 이유는 바깥세상에 눈을 돌리는 세계화 의식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주요하게는 경제적인 문제가 많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결혼에 나서는 한국인은 그 다수가 시골총각, 도시의 경제가 넉넉지 않는 노총각 혹은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않는 도시의 재혼자들이라는 사실이 충분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국제결혼에 나선 한국인 중 다수가 자신의 처지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내국인과의 혼인이 어려워 혼인대상자로 한국보다 경제가 낙후한 중국, 베트남, 몽골 등 나라의 여성들을 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부류에 속한 한국인 중에 외국여성을 데려다 잘 살아가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지만, 이와 반면에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부작용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국제결혼은 내국인과의 결혼과 달리 서로간의 요해나 이해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혼인을 서두르다 보니 애정이란 중요한 요소가 개입될 틈도 없이 ‘남녀’의 결합만 있을 뿐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하자면 혼인소개소에서 미리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집단적으로 한 장소에서 선을 보고 물건을 고르듯 고르고는 당일에 여자의 부모를 만나고 당일 밤에 잠자리를 같이 하고 며칠 내에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마친다. 개별적인 소개에 의한 국제결혼도 역시 이와 같은 리듬으로 비슷하게 혼인이 추진된다. 여기서 지나친 비유이긴 하나 노신(魯迅)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마치 두 마리의 암컷과 수컷을 한 돼지우리에 처넣고 이제부터 니네는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과 패턴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벼락적인 혼인이 이루어지게 된 이유는 한국 남성들은 무작정 여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강박관념, 당지 여성들은 무작정 한국 땅을 밟고 보자는 의욕이 지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부 부도덕한 자들은 혼인당사자들의 강박관념과 의욕을 이용하여 돈을 뜯어내려 하거나 돈을 들이지 않고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 수단으로 삶고 있어 국제결혼은 사기성으로 변질된 사례도 적지 않다.  설사 진짜결혼에 임하는 한국 남성의 경우도 반드시 여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첫 만남에서부터 실제와 다르게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좋은 직장에 출근하고, 시골에 땅도 있고, 경제상에는 아무 걱정 없고 등등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늘여놓는 사례도 허다하다. 요해가 전무한 당지 여성들은 한국남성의 말에 대해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이 곧이 듣고 한국에 와보니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는 순간 속아왔다는 배신감부터 앞서면서 도망갈 생각을 갖게 된다.  설 아무개 여인(35세, 서란현)은 중국에서 첫선을 볼 때 한국 남자로부터 “서울의 모 대기업에 근무하고, 나의 명의로 된 큰집이 있고, 돈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되고......”라는 말을 믿고 왔는데, 실제는 엉덩이를 겨우 들여놓을만한 쪽방 세집이었고 고정 직업도 없는 백수였다. 그녀는 속아왔다고 집을 나가려고 하니 남편은 그녀를 위장결혼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가령 첫선을 볼 때 한 말들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열심히 살려고 든다면 모를까, 조선족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중에 경제력이 부족하고 생활력이 모자라 부모형제들의 도움으로 장가가고 결혼생활을 일정기간 지탱하다가 돈줄이 끊기면 돈을 벌려고 들지 않고 마누라를 부려먹을 생각을 굴리다가 결국 혼인이 파탄나게 된다.  김아무개 여인(28세, 용정시)은 한국 남편이 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짓만 하면서 장인 장모가 한국에 와서 번 돈마저 3천만 원이나 써버리고도 아예 갚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국제결혼을 한 일부 한국 남성들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우월감을 갖고 못사는 나라에서 온 여성들을 무시하거나, 마누라와 연령차이가 많거나 외모상 마누라보다 못할 경우 의처증이 심하고, 매달 생활비를 얼마간 준다던 약속을 깨버리거나,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오면 도망간다는 선입견 때문에 체류연장에 협조해주지 않거나, 2년이 넘었으나 국적취득을 방해하는 등 행위로 인하여 혼인이 파탄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아무개 여인(45세, 목릉시)은 2년 동안 한국 남편과 같이 살면서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이 곧 남편이 입만 벌리면 상욕을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아무개 여인(31세, 오상시)은 한국에 와서 90일 동안 하다못해 동네 슈퍼가게마저 혼자서 다녀본 일이 없이 일단 집문을 나서면 늘 남편 혹은 시어머니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고 한다.  최아무개 여인(24세, 목단강)은 시집올 때 한국 남편으로부터 매달 70만원의 생활비를 보장받기로 했다. 허나 6개월이 지나도록 용돈 만원도 가져본 적이 없다. 매달 생리가 올 때면 시어머니에게 회보하고 ‘필수품’을 살 돈만 갖는다. 여성으로서 최저한도의 필수품마저 마음 놓고 살수 없는 것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장아무개 여인(30세, 산동성)은 한국 남편과 아이까지 낳고 4년이나 살았는데도 남편이 귀화신청에 협조해주지 않아 불법으로 체류하다가 300만원을 남편에게 주고 체류연장을 할 수 있었다.  모두어 말하자면 한국 남성들이 조선족 여성들을 무시하고 내심으로 대접을 안 해주는 것이 혼인이 파탄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에 시집온 이혼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편이 잘해준다면 왜 가출하고 굳이 도망 다니면서 불안하게 살려고 하겠어요.”  국제결혼이 이러한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주요 이유가 바로 한국 남자의 여자를 데려오려는 강박관념과 조선족 여자의 코리안드림 의욕으로 혼인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이는 마치 기초가 없는 건물과도 같아 쉽게 깨지게 마련이다.                          
1    무너진 조선족사회 결혼관 (김정룡) 댓글:  조회:5749  추천:97  2007-09-23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국적이 뭐길래? 1. 무너진 조선족사회 결혼관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한국통계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5년도 한국 남자와 외국 여자의 혼인은 총 31,180건으로 그중 중국 여성과의 혼인이 20,635건(66.2%)이며, 2005년도 한국 남성이 외국인 처와의 이혼은 2,444건으로 전년 1,611건에 비해 51.7% 증가하였고 그중 중국 여성과의 이혼이 1,431건(58.6%)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 여성은 그 절대다수가 조선족이며, 이 통계수치는 조선족 여성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수도 많고 이혼한 수도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 시집온 조선족 여성 중에 위장결혼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또 진짜결혼으로 왔으나 가출하여 이혼하게 될 여성까지 포함하면 정부가 통계한 한국인 배우자와 조선족 여성간의 9%의 이혼율보다 잠재적 이혼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에 “조선족 여자들이 한국에 시집오면 거개가 도망간다.” “조선족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족은 본래 중국이란 거대한 다민족 국가에서 살아오면서 개혁개방 전인 1970년대 말까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다 공산주의 금욕사상이 뿌리 깊어 결혼관과 정조관이 가장 보수적이였다. 그리하여 조선족 사회는 중국 내의 타민족에 비해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조선족여성들은 가장 순결하고 ‘깨끗하다’는 호평이 자자했다.  그러던 조선족 사회가 개혁개방을 맞아, 특히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결혼관과 정조관은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일례로서 이혼한 조선족 여성은 물론이고 남편과의 생활에서 자그마한 마찰이 생겨도 재빨리 이혼정리하고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으로 코리안드림에 나섰다. 더욱이 멀쩡하게 잘살던 부부가 부인이 한국에 오기 위해 가짜이혼하고 위장결혼으로 한국행에 가세한 수도 적지 않다.  조선족 여성들이 앞다투어 결혼으로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유형 1.> 한국인과 결혼하면 한국행이 쉽다.  김아무개 여인(연길시)은 한국에 오려고 수차례 이리저리 수속을 접수시켰으나 ‘퇴자’를 맞고 돈만 날렸었는데 남편과 가짜이혼하고 한국인과의 결혼수속으로 한국행을 이루었다.  <유형 2.> 한국입국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장아무개 여인(안도현 )은 한국에 오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지만 수속비를 마련할 돈이 없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역시 남편과 이혼하고 15년 연상인 한국인과 결혼하여 전혀 돈을 들이지 않고 한국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유형 3.> 한국인의 경제적인 덕을 보기 위해서.  한아무개 여인(오상시 )은 한국에 온지 7년이나 되는데 여태껏 일을 하지 않고도 해마다 중국에 보낸 돈이 천만원이 된다고 한다. 허나 그녀의 걱정은 남편이 다른 애인을 사귀고 남편의 자식들이 새엄마를 못마땅하게 여겨 언제 쫓겨날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결국 그녀도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정아무개 여인(가목사)은 남편이 번 돈으로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자기가 버는 돈은 몽땅 중국에 송금하는데 2년반 동안 4천만원을 챙겼다. 그녀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든 무슨 불쾌한 일이 있든 참고 견디면서 돈을 착실히 벌고 또 이미 국적취득을 신청해 놓았는데 일단 국적을 취득하면 남편과 이혼할 타산이다.  <유형 4.> ‘아들만 둔 집은 망하고 딸을 둔 집은 부자가 된다.’ 딸을 한국에 시집보내고 잇따라 부모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부자가 된 사례도 많지만 강아무개양의 가족처럼 박산난 사례도 적지 않다. 강아무개양(용정시 )은 20세 나이에 대학입시에 낙방되자 부모들의 압력에 못 이겨 18살 연상인 한국인과 결혼했다. 그녀는 소개받을 때 들었던 한국 남자의 생활조건이 정작 한국에 와 보니 완전히 다르게 몹시 구차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를 초청하기 위해 꾹 참고 살다가 나중에 이혼하고 말았으며 윤락업소에 전전했고, 엄마는 한국에 와서 한국 영감과 바람이 나서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병든 남편을 버렸다. 애초에 딸을 한국에 시집보내고 잇따라 덕을 보면서 잘살아보려는 꿈은 다 깨지고 단란하고 오붓하게 살아오던 가족이 한국바람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유형 5.>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오는 것은 한국국적취득이 목적.  한국에 시집온 조선족 여성 중에 물론 결혼생활이 순탄하게 국적을 취득한 분들도 있지만 어떤 여성들은 매 맞고 무시당하고 살면서도 불구하고 지옥 같은 생활을 꾹 참고 있다가 일단 국적을 취득하면 곧바로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박아무개 여인(심양시)은 국적은 취득하였으나 남편에게 심한 학대를 당해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정신이 이상해졌다. 페인이 되고나서 국적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사례분석> 이상과 같이 조선족 여성들이 결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결혼으로 코리안드림에 나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추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조선족 사회는 경제보다 체면을 더 중히 여기고 얼굴이 깎기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였다. 심지어 강력한 종교를 갖고 있는 위글족, 짱족, 회족 등 소수민족들은 한족과의 통혼이 잘되고 있는데 반해 조선족은 그렇다고 할만한 자체 종교도 없으면서도 불구하고 한족과의 통혼이 극히 드물 정도로 자민족끼리만의 혼인을 고집해 왔다. 그래서 조선족 결혼관과 정조관은 매우 순결했다.  그러나 한국에 시집온 조선족 여성들의 이혼율이 높아져 한국 남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을뿐더러 조선족 사회는 막대한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순결했던 조선족 사회 결혼관과 정조관이 제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게끔 하고 또 순결한 결혼관과 정조관으로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에 임하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한국과 조선족 사회가 깊이 고민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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