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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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고용허가제의 십폐(十弊)(김정룡) 댓글:  조회:5825  추천:71  2008-06-13
2. 고용허가제의 십폐(十弊)   김정룡  우리 중국동포정책 민간연구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용허가제가 존재하고 있는 폐단에 대해 아래와 같은 열 가지 사례를 임시 지적하니, 동포 분들은 이와 같은 사례에 해당되거나 혹은 여기서 지적한 것 이외의 사례가 있어 고충을 받고 있다면 속히 방문하여 반영해주시기를 바란다. 첫째 입국한 동포들이 2~3개월 가까이 일을 못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규정에 따르면 입국한 동포들은 1주지나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고 3주 뒤에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으면 취업교육신청을 해야 한다. 1주지나 3~4일간 교육을 받고나서 구직신청을 해야 한다. 일자리는 물론 고용안전센타에서 알선해준다. 허나 고용안전센타를 통해 일자리를 해결한 동포는 실제로 10%도 되나마나 하다. 연길에서 온 박모는 고용안전세타에서 알선해준 회사 수십 곳에 알아본 결과 절대다수가 사람을 이미 구했다는 대답이거나 혹은 일자리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포들은 이런저런 연줄을 달아 저절로 일자리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려면 2~3개월이란 시간이 걸려야 한다. 동포밀집지역인 가리봉시장 일대에는 고용허가제의 이러한 폐단으로 인하여 놀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둘째 벌금문제  동포들이 한국에 오는 목적이 그 절대다수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고용계약이 없이 일을 하다가 단속에 걸릴 경우 100만원이란 범칙금을 내야 한다.  산동성에서 온 최모는 4개월 동안 가리봉시장 동네에서 놀고 있다. 영문을 물었더니 3개월 전에 고용계약이 없이 일을 하다가 잡혀 120만원의 벌금을 물고 나니 겁나서 일을 감히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최모는 작년 자진귀국 전에 2년간 취직했던 회사에서 취업교육을 받기 전에 고용계약이 없이 일을 하다가 단속에 걸렸다. 본래 회사 사장이 고용계약을 해줄 생각이였지만 사장도 함께 120만원이란 벌금을 물고나니 열받아 최모를 내쫓았다고 한다. 한국말이 잘 통하지 않는 최모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 고용계약을 얻기가 너무 어려워 놀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의 모 음식점에서는 교포 일꾼 10명 쓰고 있다. 주인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지 않으려고 작년에 쓰던 교포들을 동원해서 자진귀국 시켰다. 그들이 금년에 재입국하자마자 그 음식점에서 일을 하였고 동시에 취업교육과 E-9로 변경하고 있는 와중에 단속에 걸려 일꾼과 주인이 모두 벌금을 물었다. 사실 주인과 일꾼들이 모두 정부정책에 호응하려고 노력하였는데도 벌금을 문다는 것은 너무한 일이라고 그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셋째 고용계약이 너무 어렵다.  대다수의 고용주들은 웬만해서는 고용계약을 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용주들이 부담하는 비용도 그렇거니와 계약이 이루어지면 노동부문의 간섭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설사 고용주가 계약 의사가 있다하더라도 일정 기간 테스트가 필요한데, 이 기간 단속에 걸리면 주인과 일꾼이 다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서로 불안하다.  대련에서 온 설모는 테스트기간에 잡혔는데, 주인은 이 때문에 “니는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 계약하고 쓰려고 해도 앞으로 계속 재수없는 일만 생길 것 같다.”면서 그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후 설모는 이곳저곳 일자리는 쉽게 찾았으나 고용계약은 끝내 손에 쥐지 못했다. 고용계약이 너무 어려워 많은 동포들은 아예 포기하고 되는대로 일을 하고 있고 주인들도 그냥 F-1-4비자를 갖고 있는 일꾼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넷째 건설업에서 나타나는 수요와 공급 문제  필자가 알아본데 의하면 현재 건설업에서 일꾼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공급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국제노동재단에서 건설업종 취업교육을 받은 수자를 갖고 건설업이 수요하는 인력이 넘쳐났다는 통계를 기준으로 수개월 전부터 건설업종 취업교육을 중지 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업교육을 받은 자가 전부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문제는 작년에 자진귀국 하였다가 올해에 재입국한 동포들 중 건설업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있는 자가 굉장히 많지만, 그들은 건설업에 갈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섯째 일부고용주의 악덕행위 일부 고용주들은 고용계약을 악용하여 동포들을 착취하고 있는 사례도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동포들의 입장에서는 한번 계약을 얻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라 여기고 억지로 참고 견디다 보면 물심양면으로 망가진다.  임모 여인은 주인과의 계약에 하루 노동시간이 10시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주인은 매일 14~16시간 노동을 시켰다. 그녀는 엄청 힘들고 또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겨우겨우 얻은 계약 때문에 4개월 뻗히고 나니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가 병 치료하고 재취업을 신청하니 고용안전센터에서 하는 말, “아주머니는 직장무단이탈자이므로 현재 불법체류자입니다.” “하느님 맙소서.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쓰러졌건만 끝내 역시 불법체류자로 전락되고 말았구나!”  여섯째 2개월이란 재취업시간이 너무 짧다.  동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본래 일자리를 그만두면 2개월이란 재취업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2개월 동안에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으나 고용계약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본신문사에 2개월 안에 고용계약이 되지 않아 곧 불법체류가 될가봐 발을 동동 구르는 동포들이 매우 많다. 일곱째 병이 나면 곤란하다.  노동부는 한번 E-9로 변경한 자는 가령 병 때문에 다른 비자로 고쳤다가 다시 E-9로 재변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강모는 E-9로 변경하고 일을 하고 있는 중 위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한국에서 치료받으려면 1000만원이란 거액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에 돌아가서 치료하려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청하였더니 G-1(사유로 재입국할 수 있는 비자)비자를 받았다. 다행히 위암이 아니라 위게양수술을 받고 건강이 빨리 회복되어 재입국하여 E-9로 고치고 일을 하려니까 노동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허락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책이 도대체 무슨 놈의 정책인지?” 이것이 강모의 하소연이다.  여덟째 일단 E-9로 변경하면 임시귀국이 어렵다.  E-9로 변경하지 않고 F-1-4로 있는 자는 단기임시귀국이 쉽지만 일단 E-9로 변경하고 나면 단기임시귀국이 어려워진다. 그 이유는 E-9는 고용주의 허가서가 있어야만 임시귀국이 가능하다. 실제로 대다수의 고용주들은 일꾼이 떠나면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임시귀국 하려면 일자리를 그만두고 고용계약을 해제하고 가라고 한다. 만약 고용해제를 하고 2개월이란 재취업 동안에 임시귀국할 수 있어도 괜찮지만, 이것도 불가능하다.  연길에서 온 박모 여인은 오는 10월 1일 딸의 결혼식 때문에 집에 잠깐 다녀오려고 주인과 얘기했더니 주인은 일자리를 그만두고 가라고 하길래 고용계약을 해제하고 재취업 기간에 다녀오려고 고용안전센터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찾아 갔더니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아홉째 E-9자는 쩍하면 출국명령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번 신문에 <<동포들과의 약속을 깨버린 정부정책>>이란 글에서 든 실례의 채모 여인의 경우와 E-9로 일하다가 화상을 입고 병원 치료중인 성모 여인은 갑자기 출국명령을 받았다. 본인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출입국에 문의하면 절차상에 문제가 있다는 대답뿐이다. 이럴 경우 동포들이 출입국관리사무소나 고용안전센터에 찾아가 하소연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좀 심한 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정책당국에서는 꼬투리 아닌 꼬투리를 잡고 동포 한 명이라도 집에 돌려보내지 못해 안달을 떨고 있는 듯하다.  열 번째 3차 이상 일자리를 옮기면 불법 고용허가제의 규정에 따르면 E-9로 변경을 해도 3차 이상 일자리를 옮기면 불법이다. 실제로 많은 동포들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일자리를 여러 차례 옮겨 다니게 된다. 특히 건설업과 간병 일을 하는 동포들은 더구나 일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흔하다. 기타 업종도 한 일자리에 오래 종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성을 무시하고 관련당국에서는 위와 같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재입국한 탁모 여인은 간병 일을 하면서 환자들의 단기입원 때문에 5개월 동안에 이미 3차례 일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앞으로 2년 반이나 더 체류해야하는데 고용허가제 때문에 불법으로 체류하면서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위에서 나열한 열 가지 폐단 외에도 존재하는 문제가 많다고생각된다. 이렇듯 폐단이 많은 정책이 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고용허가제로 인하여 동포들의 불법이란 터널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35    동포들과 약속을 깨버린 정부정책(김정룡) 댓글:  조회:5451  추천:67  2008-06-13
제6부 고용허가제와 H-2에 대하여 1. 동포들과의 약속을 깨버린 정부정책김정룡  법무부는 2005년 제1차 불법체류동포 자진귀국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6개월 혹은 1년 후 재입국하는 동포들은 한국에서 3년 동안 체류가 보장된다고 하였다. 허나 법무부의 이러한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노동부의 고용허가제 때문에 재입국한 동포들이 3년 체류보장은 고사하고 6개월 혹은 1년 사이에 무더기로 불법체류자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 제2차 불법체류동포 자진귀국프로그램이 실시되는 기간에 F-1-4로 재입국한 동포들이 재차 자진출국을 원하는 자가 매우 많았다. 그 이유는 재입국 할 때는 3년 합법체류라는 꿈을 안고 왔으나 고용허가제로 인하여 이미 불법체류가 되었거나 곧 불법으로 되는 처지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재입국 한 동포들이 일자리를 찾았다 해도 업주들이 고용계약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어렵게 고용계약이 되었다 해도 단기간 내에 일이 끝나버리거나 고용주와 피고용인사이에 이런저런 갈등이 생겨 일을 그만두면 또 새로 취직하고 다시 고용계약을 맺는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노동부는 재취업 재계약 시간을 보통 2개월로 제한해 놓아 동포들은 그 기간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하고 기대하고 있다가 역시나 하고 불법체류가 되어버리고 만다. 현재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포들이 본센터에 하루 평균 3~4 정도 방문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용안전센터는 동포들을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포들을 불안 속에 몰아넣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요녕성 철령시에서 온 채모 여인은 서비스업종 취업교육을 받고 E-9로 변경하고 1년 동안 식당일을 하다가 다시 건설업종취업교육을 받고 건설현장에서 잡부일을 4개월 남짓이 하는 도중에 지난 8월 30일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러 이튿날 가보았더니 9월 14일까지 무조건 귀국하라는 출국명령서를 받았다. 오는 10월 13일까지 체류연장이 되어 있는 그녀에게 있어서 출국명령은 청천벽력이었다. 허나 본인절로 고용안전센터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아무리 억울하다고 따지고 들어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결국 본센터 고충상담실을 찾아서 도움을 청하여 문제해결을 받을 수 있었다. 흑룡강성 아성시 강모 여인은 E-9로 변경하고 가정집에서 일을 하다가 10월1일에 있을 딸 결혼식 때문에 잠간 중국에 다녀오려고 하였는데 업주가 허가를 주지 않아 할 수 없이 고용계약을 해제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고용안전센터에 신고했더니 “아주머니는 출국하면 재입국이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다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문의하였더니 역시 재입국이 안 되다는 대답이었다. 문제는 본신문사에서 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 문의해보았더니 고용주와 함께 고용안전센터에 고용해제를 신고하고 2개월이란 재취업 기간에 잠깐 중국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가 이렇듯 재입국한 동포들에게 까다롭다보니 일부 동포들은 아예 E-9로 변경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F-1-4로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합법체류자라 하더라도 E-9로 변경하지 않고 일을 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1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므로 늘 불안 속에서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재입국한 동포들은 F-1-4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보통 1년이므로 체류만료가 다가오기 전에 E-9로 변경해야하는데 변경이 쉽지 않거니와 어렵게 변경되어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불법체류자로 전락될 확률이 매우 높다. 때문에 F-1-4로 일하고 있는 동포들은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정부는 말로는 불법체류를 해소하기 위해 자진귀국지원정책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현실상황은 한쪽으로는 불법체류를 양산해내고 있으며, 결국 동포들로 하여금 고국에서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며 동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34    단편기사모음(김정룡) 댓글:  조회:6227  추천:87  2008-06-13
9. 단편기사 모음 김정룡  <1>어느 불법체류동포여성의 복잡했던 사연  중국 길림성에서 온 장도 여인은 2001년 3월 결혼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3개월 만에 가출하여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그 후 2002년 1월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을 당했다.  그녀는 2003년 7월 다른 이름으로 여권을 위조하여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재입국에는 성공했지만 남자가 체류연장을 해주지 않아 또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이번 자진귀국정책에 호응하여 자진출국 하려니깐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즉 위조여권에 대해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고 위장결혼사건에 관해서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 또 위장결혼상대와 이혼정리를 해야 한다. 또한 첫 번에 결혼했던 한국인 남자와의 호적정리까지 마쳐야 한다.  이러한 복잡한 절차에 겁먹고 까무러칠 지경으로 심경이 혼란스러워 그녀는 처음에 자진귀국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살아가려고 생각했었다. 허나 본센터의 자세한 상담을 받고나서 그녀는 자진귀국 하기로 마음먹고 복잡한 절차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그녀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재입국을 보장받을 수 있어 “숨 막힐 듯 가슴이 답답했었는데, 이제는 마치 목을 조이던 멍에를 벗어버린 듯 홀가분하네요.”라고 말하면서 밝게 웃었다.    <2> 어느 위장결혼자의 ‘喜’와 ‘悲’  중국연길에서 온 차모 여인은 한국생활을 포기하고 무작정 귀국하려고 지난 6월 20일 인천공항에 갔었는데 출국금지를 당해 발길을 되돌리는 순간 하늘땅이 뒤집어지는 듯 앞이 캄캄해났다.  그녀가 출국금지를 당한 이유는 이렇다. 2001년 12월에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입국한 후 3개월 만에 브로커가 잡히는 바람에 경찰서에 체포되어 갔다가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해버렸다.  출국금지를 당한 그날 저녁 그녀는 맥 빠진 기분으로 안양에 있는 동생 집에 머물면서 밥 한 술,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동네 중국식품가게에 먹거리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중국동포타운신문에 위장결혼자들이 자진출국에 관한 절차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본센터에 달려왔다. 이리하여 그녀는 본센터의 도움을 받아 이혼절차도 마쳤고 경찰수배도 풀리어 1년 후 재입국할 수 있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  당초에 그녀는 불법체류라는 딱지 때문에 늘 숨어살아야만 했고 더욱이 수배자라는 멍에가 싫어서 아예 한국생활을 포기하고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을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모든 것이 풀리고 나니 1년 전에 빨리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이 없느냐고 필자에게 묻고 있다.  그녀는 지난 1개월 동안 복잡했던 한국생활을 회상하면서 “참으로 ‘희’와 ‘비’가 엇갈리고 마치 천당과 지옥을 오간 심정입니다. 어찌되었든 결과가 좋으니 기분이 참 좋네요.”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3> 불법체류 결혼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말  필자는 현재 불법체류동포들의 자진출국에 관한 상담을 맡으면서 생각 밖으로 불법체류로 전락된 결혼자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법체류 결혼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이혼이 된 줄도 모르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족여성들이 한국남자와의 결혼생활을 접고 가출했을 경우 남자 측에서 가출신고를 하고 3개월이 지나 이혼소송을 제출하고 또 3개월이 지나면 이혼판결이 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본센터에 찾아온 가출여성들 가운데 90%는 이미 이혼된 상태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를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혼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즉 남자의 본적지와 주민등록번호를 알아가지고 대한민국의 아무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을 떼어보면 이혼 여부가 드러난다.  만약 이미 이혼이 되었으면 이혼한 법원에 가서 이혼판결서(혹은 이혼확인서)를 받아갖고 호적등본과 함께 중국어로 번역하고 공증하고 외교통상부와 중국영사관의 인증을 받아야 절차가 끝난다. 만약 이혼이 안 되었으면 이혼소송을 제출하고 나머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4> 두 위장결혼자의 ‘천당’과 ‘지옥’  중국동포 이모 여인과 장모 여인은 서로 친구사이이자 같은 브로커를 통해 3년 전에 위장결혼으로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 그들은 한국에 온지 1년 만에 브로커가 잡히는 바람에 수배자가 되어 체포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매일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 제2차 자진귀국프로그램이 실시되어 그들 두 여인은 중국동포타운센터에 출국신고를 해놓아 구제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모 여인은 중국동포타운센터의 역할에 대해 반신반의 하고  있다가 검찰청의 거듭되는 출국명령에 못 이겨 그냥 무작정 귀국하였고, 장모 여인은 운명을 중국동포타운센터에 맡기기로 마음먹은 결과 모든 것이 잘 풀려가고 있는바 그 내막을 자세하게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장모 여인은 중국동포타운센터의 안내로 경찰서에 자수하여 조사를 받고 수배가 풀렸으며 현재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한 결과 장모 여인은 1년 후 재입국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법적으로 다른 남자와의 결혼도 가능해졌다. 이에 비해 이모 여인은 검찰청의 압력에 못 이겨 무작정 귀국하다보니 이혼절차와 나머지 공증, 인증절차를 밟지 않은 탓에 재입국의 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黑人’, 즉 어느 나라 공민도 될 수 있으며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모 여인은 이제 20대 후반으로 너무 일찍 ‘黑人’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정정당당하게 인간의 삶을 잃고 말았다.  허나 한국경찰과 검찰 및 법무부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동포여성들의 미래 운명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강제추방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5> 헛소문만 믿고 자진출국을 망설이는 한 여인  흑룡강성 목릉시에서 온 김모 여인(여권위변조자)은 본센터에 자진출국신고를 하였다가 취소하는 행위를 세 번이나 반복하던 끝에 끝내 귀국하기로 결심을 내렸다. 그녀가 이렇게 오락가락 망설이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한국정부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고, 두 번째는 여권위변조자와 밀입국자가 귀국할 경우 중국 측에서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헛소문을 믿게 된 것이고, 세 번째는 이번 제2차 자진출국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귀국하는 모든 동포는 아예 재입국이 되지 않도록 중국 측에서 일률로 막아버린다는 얼토당토한 헛소문을 믿게 된 탓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불법체류동포들이 중국동포타운센터에 자진출국신고를 하는 수가 매일 늘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결국 귀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현재 김모 여인처럼 이런저런 헛소문을 믿고 자진출국을 망설이고 있는 동포들이 엄청 많다는 것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불법체류동포들은 마땅히 한국정부와 중국정부를 믿고 또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 모든 절차를 완벽하게 마치면 재입국이 보장된다는 것을 믿고 이번 기회에 귀국하였다가 1년 후 재입국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6>“두 번 울고 있는 국제결혼 이혼자들”   한국인과 조선족 간의 국제결혼건수가 폭증함에 따라 한사람 건너 헤어질 정도로 이혼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 국제결혼으로 왔다가 이혼한 조선족들은 그 이혼사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인생에 오점을 남겼다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겪게 된다. 문제는 이혼자들이 한 번의 울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이혼만 하면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이혼서류(판결문, 호적등본)를 중국어로 번역공증하고 대한민국외교통상부와 중국대사관영사부의 인증을 받아 중국에 돌아가서 중국호구에 적힌 한국인과의 결혼기재를 정리해야 전부 정리가 된다.  그런데 연변을 제외한 기타 지방에서는 이혼자들이 판결문과 호적등본 중 어느 하나만 번역공증인증을 받아 가면 호구정리가 된다. 허나 연변에서는 판결문과 호적등본 두 가지를 반드시 번역공증인증을 받아와야만 호구정리가 된다고 강요한다. 당연히 하나보다 둘이 비용이 곱절로 든다. 그러므로 연변출신 이혼자들은 타지방 이혼자들보다 돈을 배로 써야한다.  중국은 지방마다 자체 ‘토정책(土政策)’이 있어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연변주법원의 아래와 같은 일 처사는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 법에 의하면, 이혼은 대체로 협의이혼과 소송이혼 두 가지이며, 위장결혼의 경우 법적으로 위장이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혼인무효소송 혹은 호적정정허가신청을 제출하게끔 되어 있다. 만약 혼인무효소송을 제출하여 이혼되면 판결문이 나오고 호적등본에 말소로 기재되며, 호적정정허가신청을 제출하면 재판을 열지 않기 때문에 판결문 대신에 ‘결정문’이 나오고 호적이 말소된다. 이럴 경우 ‘결정문’도 판결문과 똑같은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연변주법원에서는 위장결혼자들이 이혼 ‘결정문’을 번역공증인증을 받아갈 경우 “우리 법원에서는 판결문만 접수할 뿐 ‘결정문’은 접수하지 않는다. 다시 판결을 받아 와라”고 하면서 처리해 주지 않아 일부 조선족 이혼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럼 왜 연변을 제외한 타지방에서는 ‘결정문’을 판결문과 똑같이 취급하고 호구정리를 해주고 있는데 하필 연변만은 안 되는가? 도리대로 말하자면 조선족집거지인 연변주가 마땅히 타지방보다 조선족에 대한 일련의 정책조례가 더 완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타지방보다 가슴에 멍까지 든 조선족들을 울리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고집하고 있는 처사에 대해 지방정부는 이제 마땅히 참다운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7> 한국 ‘스승의 날’ 맞아 살펴보는 중국 ‘교사절’  한국에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중국은 9월 10일이 교사절이다. 교사절이란 말 그대로 스승의 날이다. 이 날은 학교에서 행사도 하고 TV에서도 하루 종일 스승과 제자에 대하여 다룬다. 참고로 유네스코가 선포한 세계 스승의 날은 10월 5일이다.  중국의 교사절은 중국의 3대 전문직업과 관련된 명절 중의 하나인데 다른 두 개는 간호사절(護師節)과 기자절(記者節)이라고 한다. 그 중 1200만의 방대한 대오를 구유하고 있는 교사절이 가장 각광받고 있다.  중국교사절은 1983년에 출범했으며 매년 9월 10일로 제정되었다. 그 유래와 의미를 간단히 짚어본다면, 중국은 공자의 집도수학(聚徒授學) 행위를 본격적인 교육의 출범으로 간주하여 중국교육역사를 2500년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인 유교국가로서 교육을 매우 숭상해왔으며 따라서 스승도 가장 존경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왔다. 이러한 우량한 전통이 문화혁명을 맞아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게 된다. 당시 교사를 ‘고린내 나는 아홉째(臭老九)’라 몰아붙이고 타도대상이 되었다. 스승과 제자는 한 전호 속의 전우라 하여 제자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없어지고 심지어 제자들이 스승을 때리는 한심한 일도 벌어졌던 것이다. 교사의 위망은 바닥으로 완전히 추락하고 말았다.  1978년부터 개혁개방 노선이 추진되면서 상황이 급전한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이 주목받게 되었고 따라서 교사를 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이윽고 1983년에 첫 교사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해마다 교사절이 오면 학교별로 제자들이 스승을 윌ㄹ로하는 행사가 있고, 또 학교마다 그리고 행정구역에 따라 층층이 위로 중앙교육부에 이르기까지 우수교사를 선출하고 표창한다.  교사절이 오면 학부모들도 선생님에게 고마운 맘의 성의를 전달하는 의미에서 정도가 부동하게 선물을 증송한다. 중국은 교사절의 출범을 계기로 교육을 숭상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옛 전통이 회복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코리안드림’의 여파로 교사직을 버리고 한국에 나온 조선족 ‘선생님들’이 많다. 이로 인해 조선족사회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교사부족난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출산율의 저하와 도시로의 대이동으로 인하여 조선족학교에 학생 수가 줄고 폐교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교사절이면 한국에 나와 일을 해 돈을 번 학부모들이 선생님에게 촌지를 바치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 건전한 교사절의 의미가 퇴색해 가고 있다. ‘교사가 떠나고 아이들도 사라져가는 조선족학교의 미래를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3    정책은 좋았으나 혼란도 많았다.(김정룡) 댓글:  조회:5643  추천:85  2008-04-20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8. 정책은 좋았으나 혼란도 많았다.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제2차동포귀국지원프로그램이 남긴 ‘아쉬움과 바램’ 이제 며칠 후이면 동포사회를 크게 들끓게 만들었던 법무부의 제2차 불법체류동포 자진귀국지원 프로그램이 곧 막을 내리게 된다. 필자는 중국동포타운센터에서 동포들의 자진귀국에 관한 상담을 맡으면서 이번 정부정책이 획기적으로 좋은 점도 많지만 동시에 또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등 불법입국자들에게 자진출국을 할 경우 재입국이 되게끔 혜택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한국정부가 동포들에게 베푼 큰 은혜라고 말할 수 있다. 허나 한국정부가 이렇듯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서 사전에 주도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대충 큰 틀만 잡아놓고는 세부적인 면을 홀시한 탓으로 동포들이 혼란스러워 우왕좌왕하고 불이익을 크게 당하고 심지어 동포들이 한국정부에 대해 실망하는 결과를 낳아 몇 가지 아쉬움과 바램을 남기게 되었다. 첫째 프로그램 성격이 애매모호하다 법무부는 이번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대상을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등 불법입국자라고 하였다. 이번 프로그램은 불법체류동포를 위한 특별사면정책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해각도에 따라 불법입국한 자 중 포함되는 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도 있어 많은 혼란이 조성되었다. 예를 들어 불법입국이란 개념은 본인의 여권에 정상적인 비자를 받아 입국한자를 제외하고 모두 불법입국에 속한다. 이를테면 호적세탁을 거쳐 허위친척초청으로 불법입국한자들도 구제대상에 포함되어야 마땅하지만 재입국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위장결혼도 불법입국에 속하는데 법무부는 역시 재입국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고집한다. 이리하여 일부 허위친척초청과 위장결혼으로 입국한 자들이 자진귀국을 하려고 경찰에 자수하고 검찰로부터 기소유예를 받아 자진출국을 하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어떤 경우 경찰 검찰 법원 등 관계기관에서는 동포의 자진귀국을 도와주려고 나서지만 오히려 법무부가 발목을 붙잡는 현상도 볼 수 있다. 둘째 여권위변조동포들 상황을 잘 몰랐다 여권위변조자는 경찰조사를 받아야만 재입국이 가능하다. 그런데 조사를 받으려면 입국 시의 위조여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저런 원인으로 인하여 입국 시의 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분들이 대략 삼분의 일이나 된다. 그 이유는 여권위변조자는 100% 브로커를 통해 출국수속을 밟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여권사항에 관해 잘 모르거나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브로커가 나타나 여권을 몰수해 버리거나 혹은 부주의로 분실했거나 또는 과거에 본인의 이름으로 여행증을 발급받을 때 영사관에서 몰수해버린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경찰조사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동포들이 매우 많다. 이럴 경우 법무부의 관계부문에 문의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그럼 집으로 갈 수 없지요.”라는 한마디뿐이다. 결국 입국 시의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있는 동포들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제외된 셈이다. 셋째 정부관계부처간 이해 및 협조체제가 미흡했다. 한 예로 위장결혼자가 5월초에 자수하여 경찰조사를 마쳤는데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검찰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해두고 있다. 이리하여 호적정정신청을 제출할 수가 없어 당사자는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 그리고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가 조사받은 여권위변조자 동포에게 300만원이란 거액의 벌금을 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초 법무부는 불법체류동포들이 자수하면 그 어떤 불이익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법무부의 정책이 그 산하기관인 법원과 검찰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넷째 동일한 사건이 지역에 따라 처리방식이 달라 혼돈을 야기했다 본센터에서 위장결혼자를 경상도지역과 전라도지역에 각각 수십 명씩 자수하여 경찰조사를 받게 하였는데, 경상도지역에서는 전부 검찰에서 불기소유예처분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은데 반해 전라도지역에서는 법원에까지 넘겨져 100~300만원의 범칙금을 내게끔 판결을 내린 사례가 허다하다. 왜 똑 같은 사건인데도 지역에 따라 이렇듯 엄청나게 처리결과가 다를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결론은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곧 법무부의 일관된 정책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다섯째 정책실시기간이 너무 짧다 이번 정책은 그 포함된 대상이 광범위하고 수속절차가 복잡한데 반해 실시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 유감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같은 경우에 포함된 대상이 단순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실시기간이 짧아도 자진출국 수가 법무부가 예기했던 목적에 도달하였으나 올해는 마땅히 정책실시기간을 늘려 더 많은 동포들이 자진귀국 할 수 있도록 시간적인 여유를 주어야 한다. 실제로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위장결혼자들은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가 숨어 지내고 있어 자진귀국프로그램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8월에 이르러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들이 집에 가려고 할 때는 이미 시간이 그들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위장결혼자에 대한 적극적인 구제정책이 필요하다 본센터에서 여지껏 160여 명의 위장결혼자를 접수하여 수배대상은 경찰에 협조를 구하여 수배를 풀어주었고 호적정리가 안 된 자는 호적정리를 마치게끔 도와주었으며 그 중 100여 명이 이미 출국확인서를 받아갖고 귀국하였다. 출국확인서만 발급받으면 재입국이 된다는 뜻이며 그들은 확실히 구제대상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명백한 사례가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위장결혼자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바라건대 위장결혼자도 확실하게 구제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규명하기를 바란다. 이상 이번 법무부 정책에 대해 동포들의 평가는 ‘정책자체는 좋으나 정부가 동포들에 대해 성의가 없다.’는 것이 대체로 지배적이다.  
32    동포귀국정책과 고용허가제는 빛(明)과 어둠(暗) 댓글:  조회:5389  추천:82  2008-04-09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 7. 동포귀국정책과 고용허가제는 빛(明)과 어둠(暗)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작년(2005년)에 자진귀국 하여 6개월 혹은 1년 뒤에 재입국한 동포들 중에 상당수가 현행 고용허가제 때문에 또 다시 불법체류자로 전락되고 있다. 이런 명백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법무부가 좋은 정책으로 내놓은 동포 자진귀국지원프로그램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따라서 자진출국을 망설이는 동포들은 “1년 후에 재입국하더라도 역시 불법체류자로 전락될 거라면 아예 그냥 불법으로 있다가 잡혀갈지언정 뻗힐 수 있을 때까지 뻗혀보자.”는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고용허가제 때문에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면치 못할 거면 자진출국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럼 고용허가제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살펴보자. 우선 재입국한 동포들은 1주 뒤에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해야 한다. 2주 뒤에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으면 취업교육신청을 해야 한다. 취업교육신청을 하면 곧바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주를 또 기다려야 한다. 3~4일간 교육을 받고나면 곧바로 취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다수가 저절로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또 고용주와 고용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고용계약을 갖고 다시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E-9로 변경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려면 3개월이 수요 된다. 문제는, 첫째 이 3개월 동안 만약 일을 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100만원 벌금을 내야하며, 둘째 취업교육을 받고나서 일자리를 찾았다 해도 고용주가 고용계약을 해주지 않아 대다수가 또 불법체류자로 전락된다. 물론 고용안전센터에서 2개월이란 재취업 시간을 주지만 고용계약은 여전히 어렵다.  그리고 재입국한 동포들이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는데 4만원, 취업교육비 10여 만원, 4대보험비와 귀국담보, 비행기표값 80여 만원, 고용계약이 된 분들은 E-9로 변경하는데 6만원, 방세, 생활비까지 합치면 도합 300여 만원 정도는 입국 시에 들고 와야 하며 일하다가 단속에 걸려 벌금까지 내려면 400여 만원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재입국한 동포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까먹더라도 취업이 보장되고 꾸준히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괜찮지만 많은 동포들이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고용허가제가 여러모로 이미 재입국한 동포들의 목을 조이고 있기 때문에 불법체류동포들이 이번 좋은 정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법무부의 제2차 자진귀국 프로그램이 좋은 정책이라는 것은 동포들이 한결 같이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의 고용허가제는 분명히 법무부의 좋은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으며 수많은 동포들을 불안과 혼란 속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법무부는 이번에 자진귀국하는 동포들이 내년 재입국할 경우 F-1-4가 아닌 방문취업비자(H-2)를 실시하여 지금보다 자유로운 정책을 펼치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래의 그림의 떡일 뿐 동포들의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31    동포들이 자진출국에 소극적인 다섯 가지 이유(김정룡) 댓글:  조회:5679  추천:80  2008-04-0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 6. 동포들이 자진출국에 소극적인 다섯 가지 이유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법무부는 지난해(2005년)부터 불법체류동포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즉 지난해는 동포들에게 자진출국 할 경우 6개월 혹은 1년 후에 재입국이 보장되는 제1차 동포 자진귀국 프로그램을 실시하였고 올해는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혼인해소자들에게 8월말까지 자진출국 할 경우 1년 후에 재입국할 수 있는 획기적인 좋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실시한 제1차 동포 자진귀국 프로그램에서는 5만8천 명 귀국, 그 중 불법체류자가 2만6천여 명이 동참하여 정부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정책에서는 8월 4일 현재까지 자진귀국자가 1만2천여 명을 웃돌아 당초 법무부가 목표한 3만 명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어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본래 이번 정책에 상상도 못했던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위장결혼자가 포함되어 그들이 구제받을 수 있어 동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동포들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무부는 그 이유를 단순하게 정부정책에 대한 반신반의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강압적인 수단 즉 ‘단속강화’방침으로 급선회하여 동포들이 자진귀국길에 오르도록 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는 법무부가 동포들의 실태를 외면하고 억지로 선택한 궁여지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지난 4월 24일 시행 때부터 중국동포타운센터에서 2000여 명(실제 귀국자는 1100명)의 불법체류동포들을 상대하며 자진출국에 관한 상담을 해온 필자는 동포들이 이번 정부정책은 좋다고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자진출국에 소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집중 분석해보았다. 첫째 죄인의식에서 비롯된 반신반의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위장결혼자들이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구제를 받아 재입국할 수 있다는 것에 쉽게 믿음이 가지 않고 정부정책에 반신반의하는 심리가 동포들의 자진귀국을 가로막고 있다. 실제로 본센터를 방문하여 자진출국의사를 밝힌 동포 중 절대다수가 반신반의하는 심리를 밝혔다. 그러면서 재입국이 보장된다는 증거가 확실해야만 자진신고를 하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둘째 중국현지의 각종 ‘괴소문’ 영향 커 동포들이 중국현지에서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위장결혼 등 위법자들을 재입국할 수 없게끔 가로막을 것이라는 억측, 입국 시에 벌금을 심하게 때릴 것이라는 두려움 등이 자진귀국을 저조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진귀국에 관한 상담을 맡으면서 이 방면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받아왔다. 셋째 1년이란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작년에 재입국조건으로 귀국했던 동포들이 이번에 자진귀국하려는 동포들에게 귀국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냐하면 1년 동안 집에 가서 할 일은 마땅치 않고 돈만 까먹고 또 술판 노래방 마작 판에 빠져 물심양면으로 피폐해진다는 것이다.  연길시 염모 씨는 지난해에 자진귀국 하여 1년 동안 이래저래 까먹은 돈이 천만 원이었다. 대다수 동포들이 500만원을 까먹는 것이 상례이며 1년 동안 벌지 못한 것까지 앞뒤로 계산하면 보통 천만 원에서 2천만 원을 손해 본다는 것이 동포들의 생각이다.   넷째 경(검)찰조사와 신고서 작성이 부담스럽다 밀입국자는 출국 시에 공항, 항만에서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진술서를 써야 한다. 문제는 학력이 낮은 동포들이 이런 간단한 신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여권위변조자는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찰서가 동포들에게 잘 대해주어 대한민국 경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 경찰들의 무뚝뚝한 태도와 A경찰서에서는 조사가 가능하지만 B경찰서는 조사가 되지 않아 이리저리 축구공처럼 여러 경찰서에 굴러다녀야 하는 경우도 발생해 부담이 컸다. 심지어 여권위변조자가 자수할 경우 불이익이 전혀 없다고 법무부가 말하고 있으나 요녕성 영구시에서 온 윤모 씨는 지난 5월 23일 서울 모경찰서에 자수하여 조사를 받았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300만원의 벌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위장결혼자 중에 자수하여 구제를 받으려 하였으나 100~300만원이란 벌금이 내려진 경우도 여러 명이다. 만약 동포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가 자수하려 하겠는가? 가뜩이나 경찰조사가 싫어서 자진출국을 망설이는 동포들이 많은 현실에서 말이다. 다섯째 현행 고용허가제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내년에 재입국이 보장되더라도 고용허가제 때문에 일자리도 그렇고 또 다시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에 자진귀국 했던 동포들이 현재 거의 다 재입국했으나 그들 중 상당수가 합법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이미 불법체류자가 되어가고 있다. 3년 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가 낭패를 본 동포들이 다수 발생하면서 ‘뭣하러 자진출국하려 하느냐’는 불만이 동포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요즘 동포밀집지역인 가리봉 일대 음식점에 모인 동포들이 고용허가제의 이런저런 폐단 때문에 자진귀국 해야 할지 말지를 의논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흑룡강성 목릉시에서 온 석모 여인은 4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견출 일을 하여 두 아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해주고도 남음이 있어 자진귀국 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나 현재 건설 분야의 취업교육이 정지된ㄴ 사실을 알고 만약 내년에  재입국하여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역시 불법체류자가 될거라면 아예 귀국을 포기하고 1~2년은 더 버티다가 집에 돌아가는 편이 유리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기까지 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동포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상담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이상 다섯 가지 이유가 동포들의 자진출국을 발목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0    이해력 부족으로 유언비어 확산(김정룡) 댓글:  조회:5563  추천:72  2008-04-01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 5. 이해력 부족으로 유언비어 확산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필자는 중국동포타운센터에서 불법체류동포 자진출국에 관한 상담을 맡으면서 여러모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이번 자진출국 프로그램에 있어서 여권위변조자는 경찰조사를 받는 절차가 있지만 밀입국자는 경찰조사를 받지 않는다. 일부 여권위변조자들이 정부의 이러한 정책을 이용하여 경찰조사를 피하려고 밀입국자로 신고하는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그런데 밀입국자는 경찰조사를 받지 않는 대신 출국 시에 공항, 항만에서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개별적으로 조사를 받기도 한다. 만약 밀입국 경험이 없는 자가 조사를 받을 경우 어김없이 허위라는 것이 들통나 출국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한다. 이들은 할 수 없이 경찰조사를 다시 마치고 출국해야만 재입국이 된다. 실제로 지난 7월 5일 길림성 반석시에서 온 김모 여인(여권위변조자)은 공항에서 밀입국에 관한 조사에 걸려 출국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경찰조사를 받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의 말에 의하면 밀입국자로 신고한 사람들 중에 매일 3~5명이 조사에 걸려 출국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여권위변조자로서 밀입국으로 신고하였다면 이제라도 솔직히 여권위변조로 신고하고 절차를 완벽하게 마치고 출국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번 자진출국 프로그램에 여권위변조자, 밀입국자, 위장결혼자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한 것은 물론이고 동포들이 이해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더욱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예하면 자진출국신고기간이 분명히 오는 8월 31일까지인데도 TV자막을 잘못 이해하고 7월 31일 전으로 귀국하는 자만이 재입국이 된다는 헛소문이 나돌아 8월에 출국하려는 동포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또 친척, 친구들이 귀국자를 배웅하러 공항에 갔다가 8월 15일부터 한국인이 출국 시에 출국신고서가 필요하지 않다는 자막을 잘못 이해하고 불법체류동포들이 8월 15일까지 출국하지 않으면 재입국이 안 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동포들이 이해력 부족으로 매번 혼란을 일으킬 경우 동포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또 동포를 돕는 단체의 사무원들이 불필요한 대답과 해석을 하느라 무척 애를 먹고 있다. 일부 동포들은 00단체에 회원가입만 하면 여행증도 발급받고 경찰조사도 대신해서 받아준다든가 결혼자는 가만히 앉아서 이혼절차를 다 해준다든가 불법체류자는 합법으로 만들어준다든가 합법체류자는 국적까지 따준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예전에 조선족이 문화가 제일이라고 모두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는 이미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얘기로 되어버렸다. 한국인이 조선족을 무시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한다. 조선족이 타향에서 떳떳하게 살아가려면 스스로 자질을 높이기에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9    외나무다리에서 우왕좌왕하는 동포들 (김정룡) 댓글:  조회:5282  추천:79  2008-03-30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 4. 외나무다리에서 우왕좌왕하는 동포들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이번 제2차 자진귀국지원 프로그램에 중국조선족과 러시아고려인이 포함되었으나 러시아고려인은 그 수가 매우 적어 사실상 중국조선족을 위해 마련한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실로 한국정부가 중국조선족을 위한 한차례의 큰 배려와 관심을 보인 실질적인 조치라고 말할 수 있다. 허나 유감스러운 것은 불법체류동포들은 마땅히 기뻐하고 따라야 할 대신 정부정책에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적극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6월 30일까지 만 명도 안 되는 적은 수가 귀국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또 필자가 자진출국을 원하는 동포들과의 상담과정에서 정부정책에 반신반의하는 심리를 확연하게 읽을 수 있었다. 불법체류동포들이 한국정부정책을 믿지 못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믿음을 가로막게 하고, 다른 하나는 조선족과 한국인이 비록 같은 핏줄이라고는 하지만 필경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불법체류동포들이 자진출국을 망설이게 하는 더 큰 용인은 중국 측에 대한 온갖 억측이 헛소문으로 퍼지고 또 각종 유언비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째 자진출국자가 중국해관심사원에게 출국확인서를 내보일 경우 그들이 찢어버리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악의적인 태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한글을 모르고 또 입국심사에 불필요한 종이짝이라 판단해서 찢어버린 것이지 결코 조선족을 미워서 취한 행위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이 결국 조선족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소문이 잘못 퍼지고 있다. 둘째 자진출국자가 여행증을 갖고 귀국하였을 경우 중국 측에서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헛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말부터 귀국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여권을 신청한 사례가 극히 적거니와 중국공안당국에서 여권을 발급하지 말라는 조치가 없는데도 그냥 불법체류동포들이 자신들의 억측으로 하는 말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밀입국자는 나라를 배반한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중국 측에서 다시는 그들을 출국시키지 않는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떠돌고 있는데 이는 실로 한심한 억측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헛소문이 자진출국자들의 발목을 크게 잡고 있다. 요즘 들어 8월에 자진출국 하는 자는 재입국이 될 수 없다는 황당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필자는 7월 3일 하루에만 이런 내용의 전화를 십여 통이나 받았다. 분명히 자진출국 프로그램 실시일이 8월 31일까지인데도 일런 어처구니없는 소문이 8월에 자진출국을 원하는 동포들을 크게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한국 내 불법체류동포들 사이에 퍼지고 있던 각종 헛소문이 중국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지금은 중국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이 만일 귀국하면 다시는 출국할 수 없으니 오지 말라고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귀국을 가로막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조선족은 분명히 한국인과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의 너그러운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를 믿지 못하고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있는데 있다. 만약 조선족이 지금 상황처럼 한국정부도 중국정부도 믿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다면 자신을 외나무나리에 몰아넣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앞으로 동포들이 떳떳이 살아가려면 자신을 샌드위치로 여기지 말고 ‘주인공’의식을 갖고 한국정부와 중국정부를 믿고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28    ‘혼란’과 ‘안타까움’(김정룡) 댓글:  조회:5451  추천:78  2008-03-26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 3. ‘혼란’과 ‘안타까움’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법무부에서 제2차 불법체류 동포 귀국지원 프로그램이 불안 속에서 살아오던 수많은 동포들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혼란과 안타까운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사전에 주도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추진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이번 정책을 내놓은 주역인 법무부는 큰 틀만 마련해 놓았을 뿐 세부적인 부분을 홀시한 탓으로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그 실례로서 자진출국대상자들의 이런저런 의문에 A출입국관리소의 말과 B출입국관리소의 답이 다르고 또 같은 출입국관리소의 공무원에 따라 말이 다르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권위변조자 가운데 입국하자마자 브로커한테 여권을 빼앗겨버렸거나 분실한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입국 시의 여권이 없어 경찰조사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밀입국으로 신고해서 출국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A출입국관리소는 그렇게 하라 하고 B출입국관리소 어찌되었든 경찰조사 절차가 없이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결국 인천공항자진출국신고 카운터에서 출국확인서를 발급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출국을 포기하고 그냥 불법체류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위장결혼자들은 이혼절차와 공증 인증절차를 마치지 않고 귀구하면 ‘흑인(黑人)’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어떤 출입국관리소의 상담실무자들은 이러한 상식마저 모르고 재입국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출입국관리소의 상담실무자라면 반드시 동포들의 출입국에 관련된 세부적인 문제까지 파악하고 실수 없이 확답을 주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 심지어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를 경우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연변에서 온 서모 여인은 번역공증을 마치고 외교부에 가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모르고 출입국관리소에 잘못 찾아갔다. 출입국관리소의 상담실무자는 이에 관한 절차를 모르고 그냥 출국하면 된다고 했다. 이에 좀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본 센터에 전화문의해서 출국해도 되냐고 물어서 출국하지 않고 나머지 절차를 마저 마쳤다. 만약 그대로 믿고 따랐더라면 중간낭패가 될 뻔했다. 또 묘하게도 지난 4월 24일이면 체류만료일이 되는 실례가 있는데 인천출입국관리소의 A와 B의 상담원이 답이 상반되게 “된다.”와 “안 된다.”로 나타났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다음은 이번 프로그램에 있어서 여권위변조자와 위장결혼자는 반드시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있는데 실제로 경찰조사에서도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여권위변조라는 개념은 이름, 생년월일, 거주지 가운데 어느 한곳만 고치면 여권위조에 속한다. 그러나 많은 경찰서에서는 이름만 같고 생년월일 혹은 주소가 엉뚱하게 틀리는데도 여권위조가 아니라고 취급하면서 조사를 접수하지 않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들은 재입국이 보장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특히 구로경찰서와 금천경찰서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경찰서에서는 조사를 마치고는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끊어주지 않는다. 어느 지방경찰서에서는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끊어주는 것은 편법이라 말하면서 기어코 발급해주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지방경찰서는 이번 정책을 모르고 있어 동포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는 실례도 발생하고 있다. 수원, 천안 등 일부지방경찰서에서는 비행기표와 여행증을 갖고 와야만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곳도 있다. 동포들은 법무부와 경찰서 일선 공무원들이 이번 정책을 잘 모르고 있다는데 대해 매우 의아해하며 불안함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법무부와 경찰청은 하루속히 통일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세부적인 문제까지 파악해서 자진출국하려는 동포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해소해 주는데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27    ‘죄의식 떨쳐버리고 정부정책 믿고 따르자(김정룡) 댓글:  조회:5594  추천:72  2008-03-24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 2. ‘죄의식 떨쳐버리고 정부정책 믿고 따르자.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법무부의 제2차 자진출국 프로그램이 실시 된지 45일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동포들이 귀국하려는 마음은 간절하나 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직도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진출국대상자 중, 특히 여권위변조자 밀입국자 위장결혼자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담하게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구체적인 실례로서 중국동포타운센터에 찾아오는 동포 중에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일이지만 친척 혹은 주변 사람들의 일 때문에 알아보려고 온 척 하다가, 자세한 상담을 거친 후 사실대로 고백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해서 그냥 돌아갔다가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분들은 하루 속히 죄의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 중국동포타운센터는 중국동포들의 권익과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라는 확신을 갖고 대담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진정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둘째 아직도 정부정책에 반신반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진출국하려는 동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확실히 재입국이 보장되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재입국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밀입국자 여권위변조자 위장결혼자들은 자신들이 구제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또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류의 분들은 우선 자신들이 “구제”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정부정책을 믿고 따라 움직여야 한다.  만약 정부에서 제정한 절차에 따라 움직이면 재입국이 보장되는 것이고 그러지 않고 맹목적으로 귀국하면 재입국의 길이 막혀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 모든 절차를 완벽하게 마치면 재입국이 보장된다고 믿어야 한다. 셋째 아직도 중국 측에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권위변조자, 밀입국자, 위장결혼자들은 자신이 “죄인”이란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돌아가면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과 막연하게 중국 측에서 재입국을 협조해주지 않으리라는 억측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언비어로 떠돌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중국 측 어느 한 공항에서 벌금을 심하게 때렸던 사실을 가지고 이번해도 그러하리라는 막연한 추측을 가지고 귀국을 주저하거나 귀국하되 어느 공항을 선택하느냐는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것이다. 장춘과 연길공항에서는 여권위변조자와 밀입국자에게 최하 5백원 최상 2천의 범칙금을 책정하였으나 실제로 벌금을 낸 자는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1일 길림성반석시에 거주하고 있는 김모 여인은 장춘공항에서 벌금을 심하게 때린다는 헛소문을 듣고 심양으로 갔다가 오히려 5천이라는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 요녕성 사람에게 심양에서 5천원의 벌금을 안겼다는 사실을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방보호주의가 짙기 때문에 그래도 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의 공항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모두어 말하자면 과거에 지니고 있던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정부정책을 믿고 또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 출국절차를 완벽하게 마치면 재입국이 보장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중국 측에 대한 막연한 추측이 자진출국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26    너무도 감개무량하여 목이 멘다(김정룡) 댓글:  조회:6089  추천:84  2008-03-18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제5부 제2차 동포자진출국 시 정부정책 허점과 동포들의 반응 1. 너무도 감개무량하여 목이 멘다.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지난 4월 24일부터 불법체류 동포자진출국 프로그램이 실시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동포타운센터에 전화를 걸어오고 또 직접 찾아 방문하고 있다. 처음 15일 동안에는 자진하러 센터에 찾아가면 잡아가지 않느냐는 전화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하는 전화는 기본상 사라지고 출국하는데 어떤 절차를 밟아야 되느냐는 질문이 위주이다. 이는 동포들이 자진출국정책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고 믿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변화는 작년 이맘때에 비해 훨씬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자진출국 프로그램에 밀입국자, 위장결혼, 여권위변조자를 포함시킨데 대해 동포들이 대단이 기뻐하고 있음을 정리할 수 있다.  <밀입국자들의 표정> 본센터를 방문하는 자진출국 대상자 가운데 반 이상이 밀입국자이다.  이는 이번 정책에 가장 반기는 것이 밀입국자임을 말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밀입국자들이 ‘죄의식’ 때문에 귀국하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일로 생각해왔었는데, 이번 정책에 의해 정정당당하게 비행기를 타고 집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고, 또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연길에서 온 박모 씨는 지난 5월 10일 귀국하기 전날 KBS2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정정당당하게 집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자주 되묻게 된다.”면서 “이번 정책에 너무도 감개무량해서 목이 멘다.”고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흑룡강성 밀산시에서 온 김모 씨는 “세 번째로 밀입국 했었는데 드디어 정정당당하게 집에 다녀올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꿈만 같다.”고 매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밀입국자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만약 이번 정책이 아니었다면 출국해서 가족과 상봉하고 일정기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밀입국할 타산이었는데, 참으로 좋은 기회를 만나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밀입국자는 경찰서 조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에 대해 상당히 기뻐하고 있으며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라고 말하고 있다. <위장결혼자들의 표정> 불법체류자 가운데 위장결혼자가 상당히 많은 수자를 차지하고 있다. 위장결혼은 브로커가 잡히거나 동행 중 한 사람이 잡혀 기타 사람들을 고발할 경우 외국인등록증과 무관하게 이 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불법체류자로 취급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인 남자 측에서 체류연장수속 시에 돈을 요구하거나 잠자리를 하지 않으면 체류연장에 협조해주지 않겠다고 협박하여 결국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이 두 가지에서 첫째 부류는 수배자이며 그들은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두 번째 부류는 수배자는 아니지만 불법체류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아예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귀국하였다가 일년 후에 다시 재입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어 자진출국을 원하고 있다. 요녕성 심양에서 온 신모 여인은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온지 6개월도 채 안 되어 브로커가 잡히는 바람에 수배자로 되고 말았다. 올 때 천만 원을 들여왔으니 집에 돌아가면 갚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숨어 사는 것보다 어차피 귀국했다가 일 년 후에 정정당당하게 한국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진출국을 결심했다고 한다.  길림성 매화구에서 온 기모 여인은 첫 번째 체류연장 때 한국남자가 4백만 원을 내라고 협박했고, 일 년 후 두 번째 연장 때는 5백만 원을 내야만 협조해주겠다고 하기에 아예 포기하고 자진출국에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진짜 결혼자도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해 이런저런 이유로 별거상태거나 아예 한국남자와 거래를 중단하여 체류연장이 되지 않아 불법체류자로 전락된 경우가 많다. 이 부류의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자진출국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고 있다.  길림성 화룡시에서 시집온지 일년이 되는 성모 여인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지만 국적에 발목이 묶여 그런대로 참고 견디려고 했으나, 이번 기회에 아예 국적을 포기하고 재입국해서 자유의 몸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여권위변조자들의 표정> 여권위변조들은 밀입국에 비해 올 때 고생을 덜 했고 위장결혼자에 비해 가슴을 덜 조이고 있다. 허나 그들은 남의 머리를 바꿔왔다는 심리적 부담이 있고 또 이번에 경찰조사대상에 포함되어 정신적으로 홀가분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여권위변조들은 이번 기회에 남의 이름으로 살아온 비정당한 생활을 청산하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자진출국에 나서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번 정부정책은 동포들에게 비정당하게 살아온 부끄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정정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25    조선족은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가? 댓글:  조회:5475  추천:75  2008-02-26
재한조선족문제연구자료집제4부 조선족문제에 대한 논과 쟁 10.조선족은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가?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수년 전에 한국 KBS에서 주한외국인을 모여 놓고 설맞이오락프로를 열었다. 그 때 죤슨이란 미국인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양인이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부자간에도 경쟁의식으로 살아가는 서양인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말은 우리민족이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봐주는 심리를 가장 잘 반영한 속담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민족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할까?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은 몇 가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평균의식 우리민족은 본래 평균주의의식이 강한 민족이었다. 예하면 고대조선에 두레문화가 있었다. 두레문화란 마을사람들의 노력의 다소를 막론하고 또 심지어 장애인가족의 노동참여여부를 따지지 않고 공동으로 경작해서 나온 이윤을 오락기구와 음식을 만드는데 소비하며 전체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나눠 먹고 함께 오락을 하는 활동이었다. 두레문화를 쉽게 이해하면 원시공산주의사회형태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민족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정신이 일면 두레문화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레문화는 전체 마을성원들의 화목을 추구했다. 이 두레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마을사람 중 가령 그 누가 사심이 있어 제 욕심을 채우려 들면 공동으로 공격하고 창피를 두었다. 바꿔 말해서 가령 그 누가 기타 사람들보다 뾰족하게 앞서거나 소총명(小聰明)하게 놀아도 안 되며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잘살아도 안 된다. 모든 것이 비슷비슷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우리민족이 남이 잘되면 깎아내리려고 애쓰는 성격이 이러한 평균주의의식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우리”라는 개념 “우리”라는 말은 분명히 혼자가 아니고 두 사람이상의 복수를 뜻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공통된 개념이다. 허나 우리민족은 예외다. 이를테면 조선민족은 나 대신에 우리를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 처’ ‘우리 나그네(남편)’ ‘우리 아버지’ ‘우리 아들’ 등등이 그것이다. 부모나 자식 형제를 말할 경우 ‘우리’라는 말을 써도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물론 기타 민족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부모 형제자매 자식은 복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허나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우리 처’ ‘우리 남편’라고 말하면 마치 여럿이 공동으로 처 혹은 남편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분명히 ‘나의 처’ ‘나의 남편’이지 결코 ‘우리 처’ ‘우리 남편’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민족사회에서는 이러한 말들이 허물이 아니라 그냥 너도나도 그렇게들 말하고 있다. 본래 틀린 말이 바른 말로 사용되고 있다면 분명히 그 속에는 문화적인 유래가 있다. 우리민족은 가정도 하나의 두레문화처럼 가정 내에서 평균주의를 강조했다. 옛날에는 팔촌까지 한온돌에서 살았다고 하니 가족성원이 수십 명에 달했을 것이다. 이 수십 명이나 되는 가족성원을 제대로 이끌어 나아가려면 평균주의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매시에 폭풍이 휘몰아칠 것이다. 그리고 가정 내의 모든 것은 ‘우리’ 것일 뿐 ‘나’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우리’ 것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혔기 때문에 ‘나’란 개념이 소실되고 ‘우리’라는 개념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민족은 심지어 남편, 부인을 말할 때 나를 쓰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다. ‘우리’라는 개념자체가 이미 평균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팔촌까지 이 ‘우리’ 안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똑 같아야지 그 누가 기타 가족성원보다 뾰족하면 안 된다. 가령 그 누가 뾰족하게 나오면 ‘우리’를 배반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런 생활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민족은 가령 그 누가 잘되면 있는 말 없는 말까지 보태가면서 깎아내리려고 애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바로 이 ‘우리’라는 개념에서 유래된 것이다. 셋째 멋의 민족 우리민족이 멋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생활종교이자 생활철학이다. 우리민족이 진취심이 많고 상향심이 높고 똑똑한 등 원인이 곧바로 멋에 대한 추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멋은 이러한 장점이 있는 동시에 여러 가지 단점도 있다. 이를테면 우리민족은 남이 자기보다 더 앞서거나 훌륭하면 질투하고 남이 자기보다 못하면 업신여긴다. 우리민족의 질투심과 시기심의 생성의 기본요소가 바로 멋이다. 즉 남이 나보다 멋이 있으면 용납 못하고 남이 나보다 멋이 없으면 쓰게 보지 않는다. 세상에서 우리민족만큼 친구사이 친척사이 동창사이 등 가까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흉을 보기 좋아하고 헐뜯기 좋아하는 민족은 없다. 친구가 잘되면 축복해주는 것이 도리이건만 우리민족의 축복은 내심의 축복이 적고 뒤에서 깎아내리려고 애쓴다. 친구란 말 그대로 오래 친하다(親舊)는 뜻이다. 허나 우리민족은 흔히 오래 친하려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더우면 친구가 되고 차면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사람을 쉽게 친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허나 일단 친하면 끝까지 믿고 지내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민족은 사람을 쉽게 친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친척 간에도 잘사는 사람끼리 친하고 못사는 사람끼리 뭉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형제 중 친척 중 어느 한 사람이 출세하면 벌떼처럼 모여들어 이런저런 도움을 받다가도 일단 그 사람이 꼬꾸라지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있는 말 없는 말까지 만들어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필자는 소학교는 조선학교, 중학교는 한족학교를 다녀서 조선족동창도 있고 한족동창도 있다. 중학교 때 낙후분자여서 남들이 다 드는 공천단조직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후에 대학을 나온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한족동창들은 비록 학교 때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후에 대학을 나왔다고 모두 내심으로 축복해주고 내심으로 존중해준다. 이에 비해 조선족동창들은 그 애가 학교 때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헐뜯는 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아마 이런 현상은 필자뿐만 아니라 ‘출세’한 모든 조선족이 다 경험해본 일일 것이다. 동양의 정조관념은 유교에서 유래되었으나 오히려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여자들은 정조관념이 희박하다. 일본에서는 마누라가 잠자는 자세가 곱지 못하다고 이혼하는 사례는 있어도 정조관념은 희박하다. 동양에서 여성들의 정조를 가장 강조한 것이 곧 조선민족이다. 옛날에 마누라가 청나라 소금장수한테 손목을 잡혔다고 청나라사람한테는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기 마누라를 쥐어 팬 일이 있었다. 힘이 없어 자기 마누라를 지켜주지 못한 주제에 오히려 자기 여자를 압박하고 박대한 것이 곧 조선남자들이다. 우리민족은 여자의 멋(매력)은 곧 정조에 있다고 여겨왔다. 다시 말해서 정조관념이 희박한 여자는 멋(매력)이 없는 여자라고 평가했다. 이슬람사람들은 여자들이 바람피우면 돌로 쳐 죽이는 관습이 있다. 이는 이슬람경전인 <<코란>>에 그런 대목이 있기에 종교를 지키는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민족은 강력한 종교도 없이 흔히 멋을 잣대로 사물을 판단한다. 이를테면 중국에서 강력한 종교를 갖고 있는 회족, 장족, 중국을 268년이나 통치했던 만주족, 중국을 80여 년이나 통치했던 몽골족은 한족과의 통혼이 잘되고 있다. 이에 비해 강력한 자민족의 종교도 없는 조선족이 오히려 한족과의 통혼이 잘되지 않고 있다. 그 주요 원인이 바로 한족은 조선족과 멋이 다르다는데 있다. 이렇게 보면 조선족의 멋은 기타 민족의 그 어떤 종교보다 더욱 종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조선족의 멋에 비록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파다’는 등 폐단이 있으나 확실히 자민족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넷째 단합심의 부족 단합심이 부족한 것이 우리민족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조선시대에 조정에서 왜놈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내부 당파싸움에 빠져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평화가 회복되니 당파싸움이 더욱 심했다. 우리민족이 단합심이 부족한 원인가운데 풍수이론으로 지역과 지역사이 사람을 갈라놓은 사례가 있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죽을 때 전라도 나주지역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훈(訓)을 남겼다. 그 이유는 나주지역은 지세가 활모양처럼 구불게 생겼으니 그 지역사람들의 심리도 배역적이라는 것이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 전라도 지방 사람들이 출세 길이 막혔다. 해방 후 한국사회는 경상도사람들의 천하가 되면서 전라도사람들이 천대를 받고 살아왔다. 우리민족은 나라적으로 단합심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모인 곳이면 거개가 단합이 되지 않는다. 한국 관광단을 접대해보면 셋이든 삼십 명이든 늘 싸움이 있다. 조선족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족은 서로 뭉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족이 뭉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 지가 잘났다고 여기고 너나없이 제멋대로 하려 하기 때문이며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질투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문화혁명 때 조선족은 기타 민족에 비해 가장 발 벗고 혁명에 앞장섰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과거 잘살았던 지식인, 지주, 부농을 타도하는 바람이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파’하는 심리가 폭발하게끔 기회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 나보다 잘살던 사람들을 은근히 배 아프게 생각해왔는데 그 배 아팠던 심정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조선족이 가장 혁명에 앞장섰던 것이다. 이제는 혁명바람도 지나갔고 다시는 그 어떤 거대한 폭풍에 휘말릴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가만히 앉아서 배만 아파할 것이 아니라 나도 땅을 사려고 분투해야 한다. 배 아파하던 질투심리가 사려고 하는 경쟁의식으로 전환된다면 조선족의 앞날은 한결 더 밝게 될 것이다.            
24    공부란 무엇인가?(김정룡) 댓글:  조회:5997  추천:82  2008-02-25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9. 공부란 무엇인가?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조선족은 부모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을 공부시킨다.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킨다. 그래서 조선족은 56개 민족가운데서 유일하게 문맹이 없고 대학입학률이 가장 높고 평균문화수준도 가장 높다. 이는 실로 조선족의 자랑이다. 그런데 공부란 도대체 무엇인가?  중국인은 공부를 학습, 독서, 책읽기(念書)라고 한다. 옛날 중국인은 공부한 사람을 독서인(讀書人)이라 하고, 공부하지 못한 사람을 책을 읽지 않았다(沒念過書)라고 했다. 일본인은 공부를 벤쿄(べんきキょウ)라 하는데 한자로 ‘면강(勉強)’ 이라 적는다. 이‘면강(勉強)’이란  어휘는 글자 그대로 억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일본인은 공부를 일종 억지행위라고 간주한 것이다. 어찌 보면 공부는 억지로 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특히 공부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공부한다는 것이 실로 죽을 맛이 나는 억지노릇이다. 중, 한, 일 3국 세 민족가운데서 유일하게 조선민족만이 공부란 말을 쓰고 있는 데, 이 공부란 어휘는 중국어 쿵푸(工夫)에서 유래되었다.  쿵푸(工夫)는 노련함과 공력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에 주자학(신유학:新儒學)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 이 쿵푸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조선민족이 지식습득을 공부(工夫)라고 표현한 것은 조선조 5백 년 동안 주자학 을 뼈가 절도록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어찌되었든 조선민족이 쓰고 있는 공부란 말에는 상당히 넓고도 깊은 뜻이 담 겨져 있다. 우선 우리선조들은 공부를, 현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단순히 책 읽는 행위 혹은 대학에 붙기 위해 교실학습에 충실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은 수신(修身)을 위한 것으로 간주했다. 수신이란 몸과 마음의 수련을 뜻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수신이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수신 즉 사람이 되는 것은 가정을 고르게(옳바르게)하기 위해서이다. 옛날 가정 에는 수십 명의 가족성원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 대가정을 고르롭게 한다는 것은 실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부를 통해 수신이 잘 된 사람이 이 대가정을 고르롭게 하는 일을 떠맡게 되었다. 조설근의《홍루몽》이나 파금의《집》을 읽어보면 대가정을 고르롭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정을 고르롭게 하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보탬이 된다. 나라를 국가라고 하는 데, 즉 나라란 ‘국(國)’과 ‘가(家)’가 합쳐진 개념이다. 공자님은 “가정 내의 화목이 사회에 퍼지면 그것이 곧 치국의 토대”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되어 가정을 고르롭게 하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그러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이것이 곧 공자님의 공부이론이자 목적이자 이상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감스럽게도 공부에 담겨진 본래 뜻이 왜곡되어 공부가 말이 아니게 변질되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을 살펴보면 현대인의 공부는 단순히 자신의 출세에  그 전부 목적이 있다. 이를테면 공부하는 가장 주요목적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데, 현대인의 공부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다지 중요치 않다. 옛날사람들이 사람이 된다고 하는 기준은 어질고(仁), 의롭고(義), 예의 바 르고(禮), 지혜롭고(智), 믿음(信)이 있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사람이 되는 기준은 공부를 통해 갖추어진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소학교에 수신과목이 있는데 학생 들이 이 다섯 가지 사람이 되는 기준을 배우고 있다. 물론 중국에도 사상 품덕과 목이 있기는 하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메마른 이론뿐이어서 사람이 되는 기준 과는 거리가 멀다. 소학교에 다니는 김양은 길거리에서 엄마가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동학들 에게 “우리 마다매(큰엄마)”라고 인사시켰다고 한다. 중학생인 최군은 역시 길거리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자 친구들한테 “우리 아버지 친구”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지금 학생들은 자기 부모가 가난하거나 늙어 보이면 창피하다고 학부모회의에 참가 못하게 한다고 한다. 동네 세탁소에 가보면 여학생들이 심지어 자기 팬티 나 양말짝조차 세탁소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유사한 실례는 한도 끝도 없이 많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학생들도 명색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부모도 모르고 제 손으로 팬티 짝도 빨지 않는 학생들이 공부를 해서 뭘 하느냐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쩍하면 “지금 애들은 글러먹었다”고 푸념한다. 위에서 말한 실례의 학생들의 그릇된 행위거나 현재 학생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는 그 근원이 오히려 “지금 애들이 글러 먹었다”고 푸념하는 부모세대들에게 있다고 본다. 조선족기성세대들의 대다수가 자식을 공부시키는 목적이 단순하게 아래와 같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신분상승이요, 다른 하나는 체면의식 때문이다. 신분상승이란 출세를 의미하는데 옛날에는 출세하려면 과거시험에 합격되는 길밖에 없었다. 과거시험이란 본래 중국에서 생겨난 것을 우리 조상들이 도입해서 실시한 관리 선발 제도다. 문제는 중국에서는 짚세기 고무신출신 할 것 없이 무릇 양민이면 전부 과거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었던데 비해, 조선에서는 양반가문, 그것도 양반가문의 본처의 자식(적자)만 응시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판에 짚세기 고무신출신인 상농(쌍놈:常奴)의 자식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자식은 출세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하도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심해서 절대다수 인구비례를 차지하고 있는 상놈들은 출세에 대해 뼈에 사무치는 한을 품고 있었다. 우리 중국조선족 일세들은 조선에서 파산된 농민출신이었다. 그래서 우리조선 족에게는 현재 한국이나 조선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출세에 대한 한이 더 크다. 거기다 이국땅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자식의 출세문제가 더욱 긴박해졌다. 우리조선족 일세와 이세는 절대다수가 문명이었다. 자신들이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려고 하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러한 한의 마음만 갖고 있었을 뿐 지식이 전혀 없는 부모들은 자식을 교육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고 오로지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심지어 소를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키는 열정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식을 공부시키는 목적이 출세에만 초점이 맞추어졌을 뿐 자식을 어떻게 사람이 되게 하느냐에 대해선 관심이 적었다. 이렇게 하는데서 위에서 말한 공부의 본래 뜻이 상실되고 오로지 공부가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되었다. 현재 연변일중을 비롯한 중점고중에 다니는 학생들의 부모들은 절대다수가 자식을 아무것도 상관 말고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라고 교육시킨다. 그리하여 어떤 학생들은 어른을 만나 인사조차 할줄 모른다. 필자가 연변일중 교사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경비실에 네명의 여학생이 선생님을 빤히 쳐다 볼뿐 누운 채로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 여학생들의 예절 없는 행위는 순전 히 가정에서 그렇게 바르지 못한 교양을 받아온 탓이다. 연변일중에 다니는 학생들은 거개가 대학에 붙는다. 하지만 최저한도의 예절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에 진출해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우리부모들은 그러한 문제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직 대학에만 가면 만사 오케라고 만 생각할 뿐이다. 다른 면에서 볼 때 조선족은 체면의식이 대단히 강하다. 이는 매우 좋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체면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상향심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열심히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도 일종 상향심이 높은 표현이다. 이는 매우 제창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체면의식이 지나치면 역작용을 놀게 된다. 예하면 우리부모들은 “공부를 안 하면 앞으로 소궁둥이나 두드리겠느냐?”, “삼륜차나 끌겠느냐?”는 등 이러한 비하적인 말밖에 할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물론 첫째는 자식의 장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지만 다른 하나는 자식이 소궁둥이나 두드리거나 삼륜차를 끌게 되면 부모의 낯이 깎인다는 체면의식이 내포도어 있다. 우리조선족은 부모들한테서 이런 비하적인 말을 많이 들어왔기에 대학에 가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대학에 못가면 그러한 사회밑바닥 일에 종사하려고 하지않는 다. 그러한 일을 하면 체면이 깍인다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한족들은 어릴 때 부터 공부할 감이 못되면 밖에서 돌아올 때 하다못해 나ant가지라도 손에 들고 오도록 생활력을 높이는 교육을 시킨다. 필자는 4인방 시절에 한족중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그 애들은 과일 철이면 등에 과일을 지고 아침시장에 넘겨주고는 등교했다. 만약 조선족학생이 그렇게 한다면 부모들이 난리를 피울 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무슨 짓이냐?”고 말이다. 조선족은 어릴 때부터 생활력을 높이는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단 대학에 못가면 천한일은 하기 싫어하고 높은 데는 바라볼 수 없고 해서 집에서 놀거나 사회말썽꾸러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부모들은 확실히 자식교육에 있어서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예하면 어린 이절이면 아이한테 용돈을 주거나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해주고는 어른들이 먹을 것을 한보따리 싸가지고 맥주상자를 둘러메고 공원에 가서 실컷 두드려 먹고 마시고 논다. 아이의 명절을 빌어 어른들이 오히려 한바탕 명절을 쇠고 있다. 유태인은 어린이 절이면 부모가 아이한테 장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만약 아이가 왕이 되고 싶다고 하면 소박한 왕 옷을 지어 입히고 부모가 아이 앞에서 “마마”하고 절을 하는 것으로 어린이절을 보낸다. 듣는 말에 의하면 어떤 가정에서는 예배 돈을 수천원 심지어 만원까지 준다고 한다. 이는 순전히 미친 짓이다. 아이에게 예배 돈을 주겠으면 적당히 학습용품을 살 돈을 상징적으로 주면 되는 것이지 수천 원 만원을 준다면 그 아이가 앞으로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할 것인가? 현재 한국에 가있는 부모들은 자식한테 전부 돈으로 행세하고 있다. 한국에 시집간 한 여인은 아이가 중학생인데 매달 60만원 을 보내고 있다. “왜 그렇게 엄청난 돈을 보내느냐?”고 물었더니 “아이와 함께 있지도 못하니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부모가 한국 간 아이들은 대다수가 돈이 무엇인지 모르고 흥창만창 쓰고 있다. 돈을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할 것인가? 사람이 되면 얼마나 될 것인가?학생교육에 있어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진짜 공부가 부족한 상황이다. 예하면 아이가 학교에 붙어서 첫 학부모회의에 참가해보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다. 물론 고학년에 올라가서도 매번 학부모회의는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유태인은 첫 학부모회의에 대학교수를 청해놓고 어떻게 아이의 미래를 바로 잡아줄 것인가는 공부를 한다. 예하면 만약 성격이 발랄한 아이면 방에다 어두운 색을 선택해서 장식하고 만약 우울한 성격의 어린이면 밝은 색을 선택해서 방을 꾸미도록 하는 공부를  한다. 조선족은 학교 붙기 전에 구구를 외우고 철자를 쓰면 마치 천재인양 떠들고 난리다. 유태인은 소학교3학년이 되어도 구구단을 모른다고 한다. 그들의 소학교 저학년의 교육은 주로 사람이 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교사에게 돈을 주는 행위는 필자가 알건대 전세계에서 아마 한국과 중국조 선족뿐이다. 한국에서는 교사한테 주는 돈을 촌지(寸志)라고 하는데, 촌지바람이 심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지도 오래되었건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조선족도 마찬 가지다. 아무리 교육국에서 명문을 내려 막으려하고 있으나 마치 고양이가 있다 고 해서 쥐가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여전히 부모들은 돈을 주고 있고 교사들은 돈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시대학생들이 아는 것은 많지만 어른들의 눈에 거슬리는 일이 굉장히 많다. 무엇 때문일가? 이는 지(知)만 있고 식(識)이 없는 잘못된 공부 때문이다. 지(知)가 아무리 풍부해도 식(識)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죽은 공부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마땅히 지(知)와 식(識)이 결합된 공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에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그래야만 공부가 진정한 사람이 되는 공부로 될 수 있다.   
23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출국바람 (김정룡) 댓글:  조회:5908  추천:92  2008-02-22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8.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출국바람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출국바람.  출국바람이 하도 말도 많고 탈이 많아서 십여 년래 조선족사회의 가장 큰 화제 거리로 되고 있다. 이 출국바람에 관해 여태껏 얼마나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모른다. 필자는 기왕의 출국바람에 관한 글들과 각도를 달리하여 말하고 싶다. 즉 조선족은 왜 너나없이 출국바람에 뛰어드는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출국바람이 바람직한 일인가? 부부간의 어느 일방이 출국했을 경우 어떻게 마음가짐을 바꿔야하는가? 이 세 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얘기하려고 한다. 조선족이 너나없이 출국바람에 뛰어드는 데는 외적원인과 내적원인이 있다.먼저 외적원인을 살펴보면 연변의 도시특징은 산업형이 아니고 소비형이기 때문에 실업자가 매우 많다. 게다가 돈이 될 만한 기업과 예전에 철밥통이라 여겨오던 공공부문에서조차  점차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이러한 객관적인 원인을 따져보지 않고 그냥 출국바람 때문에 초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만 꼬집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시시민들이 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생활수준 격차가 점점 더 커짐에 따라 농민들은 땅을 버리고 너나없이 출국바람에 뛰어들고 있다. 내적원인으로는 조선족은 한족처럼 자아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맨날 타인과 비기면서 인생을 살기 때문에 남들이 출국해서 돈을 벌면 너나없이 따라서 춤을 춘다. 다시 말해서 조선족은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성격이 있다. 그래서 심지어 먹고 사는데 별로 지장이 없는 사람도 출국바람에 뛰어들고 있다. 미자(가명)는 연길에서 미용원을 운영하여 매달 3천원이란 짭짤한 순수입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이렇게 벌어선 어느 천 년에 부자가 되겠느냐?”면서 미용원을 때려치우고 한국에 갔다. 해월(가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남편과 함께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녔는데 매달 월급이 합치면 4천원이나 된다. 4천원이면 연길에서 먹고 쓰고도 얼마쯤은 저축할 수 있다. 그런데 중학교동창이 본래 자기네보다 형편없이 구차하게 살았었는데 부부가 한국에 갔다 온 후 큰집을 장만해놓고 번듯하게 사는 것을 보고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에 갔다. 직장이 없거나 월급이 낮은 사람들이 출국바람에 뛰어드는 것은 제창할 일이지만 충분히 먹고살 여유가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출국바람에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미자와 해월과 같은 경우의 사람은 비례가 적을 것이고 대다수가 생활이 어려워서 출국바람에 뛰어든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래저래 출국하다보니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조선족만 약 15만 명에 달한 다. 이미 전에 한국에서 몇 년 간 묵어 있다가 돌아온 사람 , 일본, 싸이판, 아프리카 및 기타 나라들에 다녀온 사람이거나 현재 머물고 있는 사람을 합치면 30만 명 정도 될 것이다. 이는 200만 조선족인구를 볼 때 실로 엄청나다. 일부에서는 출국바람 때문에 초래되는 리혼, 자녀교육, 부모양로 등 문제가 하도 심각해서 출국하지 말고 본고장에서 열심히 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렇게 호소하는 분들의 주장은 이렇다. 한족들은 왜 출국하지 않고 본고장에서 잘살고 있는데, 조선족은 출국에만 몰두하고 있는가? 출국해서 돈은 벌었으나 가정불화가 생기거나 자녀교육이 바로 되지 못한다면 돈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인가? 이러한 호소는 소귀에 경 읽기라고 생각한다. 조선족이 본고장에서 더러운 일, 힘든 일 등 사회최하층의 일거리에 나서면 쪽팔린다는 체면의식 때문인 건만 사실이지만, 확실히 그러한 막노동은 아무리 힘들게 해봐야 월급이 적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아무래도 힘들게 할 바엔 목돈을 벌 수 있는 외국에 가는 것이 최선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너나없이 출국바람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야 어떻든 간에 조선족사회는 한족들보다 소비수준이 훨씬 높기에 적은 월급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너나없이 출국하려고 애쓰고 있다. 출국바람 때문에 이혼율이 높고 자녀교육이 문제되고 있지만 또한 돈이 적거나 없어도 가정불화는 면치 못한다. 이미 사회가 그렇게 변화 된 만큼 과거처럼 적게 벌면 적게 쓰고 없으면 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는 이미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얘기로 되어버렸다. 때문에 가령 출국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더라도 역시 출국할 수만 있다면 외국에 가야 한다. 출국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출국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은 마치 비행기가 사고 날 확률이 높다고 해서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처럼 설득력이 없다. 출국하되 좋기는 부인보다 남편이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예로부터 남자는 나돌고 여자는 집에 있는 것이 전통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남자가 가정을 떠메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남자가 벌면 말썽이 적지만 여자가 벌고 남자가 집구석에 쑤셔 박혀 있으면 말썽이 많을뿐더러 남자가 병신 되기 마련이다. 현재 조선족사회 가정불화는 남편이 부인보다 돈을 적게 벌거나 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남편들이 제구실을 하려면, 특히 출국문제에 있어서 남자들이 나서고 여자들을 집에 있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현재 조선족이 출국한 남녀비례를 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많다. 이 때문에  특히 이혼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다. 예하면 남자는 부인이 자기보다 못하거나 돈을 벌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경우가 적은데 비해, 여자는 자기보다 남편이 못하거나 돈을 벌지 못하면 투정하기 마련이다. 특히 여자들이 밖에 나가서 눈을 뜨고 나면 또는 자기 남편보다 썩 훌륭한 남자들을 접촉하게 되면 남편이 눈에 차지 않아하는데서 이혼율이 높아지게 된다. 필자가 한국에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조사한데 의하면 거의 40%에 가까운 여성들이 귀국 후 남편과 계속 살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고, 거꾸로 80%의 남자들은 계속 가정을 유지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예로부터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아무리 지랄하다가도 나중에는 제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들은 일단 변하기 시작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 가정유지관념에 있어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경솔해진 것만 사실이다. 옛날에는 남자들이 밖에서 나돌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면서 여자들도 남자들 못지않게 나돌고 있다. 그릇이 나돌면 깨지듯이 현재 수많은 여자들이 깨지고 있다. 한국에 가 있는 조선족사회에 ‘애인’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 임시부부현상에 관해 이미 여러 편의 글들이 발표되었기에 여기서 현상라열은 그만두고 각도를 달리하여 얘기해보자. 남나든 여자든 모두 한국에 떠날 때에는 몇 년 간 감옥에 간 셈치고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꾸벅꾸벅 열심히 일만해서 돈을 벌자고 결심한다. 바꿔 말하자면 출국하는 모든 사람은 처음부터 내가 외국에 가서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임시부부를 맺거나, 도박놀이 하거나. 기생놀이 하거나, 한국영감과 친하려는 목적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국은 필경 감옥이 아니고 또 출국하는 사람들은 필경 불교스님처럼 무아(无我)경지에 이른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인 유혹에 나의 욕구를 억제할 수 없다. 한 해 두 해 지내다보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특히 홀로 출국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이겨내기 힘든 것이 고독이다. 멀리 있는 물이 가까운 갈증을 풀어주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멀리 헤어져 있는 남편이거나 부인은 현재 갈증을 풀어줄 방법이 없으므로 가까운 물을 구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경(가명)이란 연길여성은 집에 장독이 어디에 있는지 김치 그릇이 어느 것인지조차 모를 지경이었으며 심지어 남편이 발까지 씻겨주고 안마까지 해줄 정도로 편안하고 행복스러웠다. 그토록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살던 여자가 막상 타향에서 홀로 지내자니 고독을 못 이겨 3개월도 안되어 임시남편을 찾아 생활하기 시작했다. 한국 간 사람들이 거개가 임시부부를 맺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남편이 전화로 “내가 그토록 너를 사랑하는데 만약 니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날이면 때려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문경이 하는 말이 “당신이 나를 때려죽일 힘이 있으면 왜 당신이 나와서 돈을 벌지 않고 나를 외국에 보냈느냐”고 오히려 남편을 원망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아무리 금슬이 좋던 부부라도 일단 일방이 출국하면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수수하게 지내던 부부가 일방이 출국했을 경우에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더욱 없다. 변하는 것을 제창하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 어찌 보면 정상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여자냄새도 모르고 수년간 꾸벅꾸벅 일만하고 있는 남자들을 만나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허나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거꾸로 임시부부를 맺고 사는 남자들은 우울증이 없이 모두 활기찬 모습이다. 7년간 여자 손도 만져보지 못한 창수(가명)는 귀국해서 부인과 잠자리를 하려는데 거시기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이 “드문드문 써먹을 것이지 왜 병신이 되도록 놔두었느냐?”고 애탄 어투로 말했다. 의학상식으로 말하면 창수처럼 오래 동안 써먹지 않으면 병신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남자든 여자든 써먹어도 말썽거리요, 안 써먹어도 말썽거리다. 창수처럼 한국에서 오래 동안 써먹지 않는 남자는 적다.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써먹지 않는 자의 비례는 적다. 이는 20~40대 남녀를 대상해서 하는 말이다. 이 연령층에 있는 사람들은 한창 성적욕구가 강할 나이에 안 써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때문에 어찌 보면 출국한 사람들이 변하는 것은 정상이다. 그리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부부가 헤어져 있으면 자연히 마음이 멀어지게 되고 따라서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정상이다. 그래서 출국한 남녀들이 임시부부를 맺는 경우가 많다. 만약 남편 혹은 부인이 출국해서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아예 보내지 말라. 괜히 보내놓고 변할까봐 속 태우면서 살 거면 아예 보내지도 말라는 뜻이다. 일단 보내기로 마음먹었으면 될 대로 되라고 속편하게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 세월에 남편 혹은 부인을 출국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도박과 마찬가지다. 운이 좋으면 돈을 벌어 와서 함께 살것 이고, 운이 나쁘면 좇 떼이고 불 떼이고 다 떼이고 만다. 변하는 것은 집에 있는 남편 혹은 부인도 마찬가지다. 요즘 아리랑방송을 들어보면 한국에서 열심히 번 돈을 전부 집에 보냈는데 정작 귀국해보니 돈이 다 날아나 없어진 실례가 많다. 대개 도박이나 유흥에 탕진해버린 경우가 많고 다른 남자나 여자를 만나 새살림에 탕진한 경우도 적지 않다. 철호(가명)는 한국에서 6년간 열심히 번 돈을 몽땅 집에 보냈다. 얼마 전에 귀국해보니 마누라가 얼굴만 뜯어고친 것이 아니라 심지어 아이를 난 여성이라면 뱃살이 트기 마련인데 새 남자한테 처녀처럼 보이려고 튼 뱃살까지 수술했다. 남편이 그토록 힘들게 번 돈을 다른 남자한테 잘 보이려 이리저리 뜯어고치는 데만 20만원을 소비해버렸다.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이혼을 제기해놓고는 아예 집으로 들지도 않는다. 사실 출국한 사람들은 힘들게 돈을 번다. 그러나 집에 있는 사람들은 맨날 술판과 노래방 및 동네 마작 판에 빠져있다. 옥화(가명)는 4년 동안 동네 마작 판에 처넣은 돈이 20만 원 정도나 된다. 남편이 전화 오면 새 아파트를 사놓았다고 거짓말을 해댄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면 어떻게 교대해야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하지만 마작은 여전히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김표(가명)는 마누라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여자와 4년 반이나 살면서 15만원을 소비했고 그 여자가 출국하게 되니 8만원을 대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출국 후 감감무소식이다. 마누라가 애써 번 돈을 다른 여자한테 날려 보냈다.  출국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철칙이 있어야 한다. 즉 남편 혹은 부인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번 돈을 몽땅 집에 보내지 말고 적당히 생활비만 보내라. 그렇지 않고 일단 힘들게 번 돈을 몽땅 보냈다가 집에 있는 사람이 다 날려 보내면 좇 때이고 불 떼이고 남는 것은 병든 몸뚱아리 뿐이다. 세월이 변했으면 사람도 변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해가 서산에 기운 후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록 출국바람이 말고 많는 탈도 많지만 그래도 외화가 연변경제가 돌아가는데 크게 한몫을 하고 있으며 외국에 가서 몇 해 있다가 돌아오면 여러모로 삶의 의식이 변화되는 등 좋은 점도 많다.
22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김정룡) 댓글:  조회:6995  추천:103  2008-02-22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5월 6일 중국동포큰잔치 참관인상기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우리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니장백천리 해란강반 붉은 기발 물결치네천만송이 해바라기 태양따라 활짝 피고연변인민 한맘으로 모주석을 노래하네 아~~~ 모주석 우린그대 열애하며그대교시 명심하리연변인민 그대의 만수무강 축원하네만수무강 축원하~네~  지난 5월 6일 오후 1시, 중국동포의집 주최로 연변구연단의 배우들을 초청해 고척교 안양천 체육장에서 중국동포잔치 행사를 했다.  5천여 명의 중국동포들이 모여든 이번 행사는 한국 땅에서 모처럼 고향의 조선족배우들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날 공연은 구연단의 소품이 위주였는데 출현한 프로 대다수가 10년 전에 이미 연변에서 수없이 무대에 올랐던 내용들이었다. 고향땅에서 본 소품을 여기 서울에 와서 보게 된다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모처럼 한국 땅에서의 공연을 맞아 새로운 프로를 창작하여 재한조선족들에게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겨주었다.  묵은 프로도 녹쓸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생명력 있다. 그 한 예가 사회자 김문혁 씨가 마지막으로 부른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노래였다.  전주곡이 시작되자 수십 명의 남녀가 얼싸 신나게 춤판을 벌린다. 기자도 가슴이 뭉클해나면서 어깨가 들썩들썩해지는 기분을 갖게 한다. 춤판에 뛰어들어 옛솜씨를 뽐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술 한 잔 거치지 않고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구경만 하고 말았다.  공연이 끝나고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맴 도는 것이 있었다. 귀가 길에 내내 ‘나를 비롯해 왜 조선족들이 아직도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노래에 열광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조선족에게 모택동은 누구인가?’ 모주석은 인간이자 신이였다. 조선족들의 가슴속에는 모주석의 형상이 뿌리 깊다. 특히 문화혁명을 통해 모주석은 우리 삶 속에 너무 깊게 너무 굳건하게 자리잡아왔다. 조선족이라면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였다.  기자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연변가무단의 대형가무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처럼 감동적인 가무를 감상해 본 적이 없다. 개혁개방이래 모주석의 사상과 이념이 많이 부정되어왔으나 아직도 ‘그때가 좋았지!’하면서 모주석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한국에 와있는 조선족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식 생존경쟁방식, 차별적 대우, 지하철에서 뛰어다닐 정도로 채바퀴 돌듯 바쁘게만 살아가는 각박한 삶, 배금주의와 용모제일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의 병폐 때문에 모주석을 더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날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자 열광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참고문 : 조선족 가슴속의 모택동 20세기 초 중화민국정부와 장개석정부는 조선인이 만주에서 개간한 토지가 불법행위라 취급하고 토지사용권을 몰수하려고 했다. 이와 반대로 공산당은 조선인이 항일혁명을 같이 하면 해방을 맞아 토지사용권을 경자(耕者)의 소유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해방 후 공산당정부는 약속대로 조선인에게 토지를 돌려주었다. 1952년 연변에 조선족자치주정부까지 세워주었고 조선인을 중화인민공화국공민으로 인정해주었다.  1945년 광복 시에 만주의 조선인이 210만이었으나 반 정도인 100만이 한반도로 돌아갔고, 나머지 110만의 대다수는 피땀으로 개간한 땅이 아쉬워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눌러 살게 되었으며 이들은 공산당의 조선족에 대한 정책에 감지덕지하면서 살아왔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모주석에 대한 개인숭배가 ‘예수’를 능가했다. 조선족은 공산당의 덕분을 모주석의 한 몸에 돌리게 되면서 여타 민족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주석 찬양에 발 벗고 나섰다. 조선족이 모주석 찬양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노래가 나왔고 또 가무로 만들고 보급시켜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입을 가진 조선족이라면 빠짐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
21    "‘生母’한테 ‘養母’ 흉 보면 못난 자식…" (김정룡) 댓글:  조회:5708  추천:74  2008-02-15
4. "‘生母’한테 ‘養母’ 흉 보면 못난 자식…"  김정룡    “얘야, 인간이 똑똑하다는 기준이 뭔지 알아? 매사에 앉을 자리 설자리를 제대로 똑바로 알고 처신하는 자가 똑똑한 거야!” 이것은 내가 어릴 때 마을에 ‘교수’라는 별명을 갖고 계시는 식(識)이 뛰어난 노인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말을 예수의 어록처럼 받들고 살아왔다.  사실 인간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려면 우선 나의 처지부터 똑바로 인식해야만 앉을 자리 설자리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우리조선족은 참으로 자신의 처지(정체)에 대해 혼란스럽고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故정판룡 교수는 조선족의 정체를, 한반도에 친정을 두고 중국에 시집온 며느리와 같다고 지적하면서 시댁에서 소외되지 않게끔 며느리 노릇 잘하려면 친정에만 치우치지 말고 시댁의 법도를 잘 지키고 시댁식구들과의 화목에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김강일 교수를 비롯한 소장학자들은 우리조선족은 엄연한 중화인민공화국공민으로서 응당 주인공 의식을 갖고 떳떳하게 살아야지 웬 눈치 보는 ‘며느리’를 들먹이느냐면서 반박하고 나섰다.  필자는 이상의 학계 어르신님들 간의 논쟁에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다. 다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진리라면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지키면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이 우리조선족의 입장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조선족지성인들은 키운 정을 헌 신발을 버리듯 하면서 ‘양모’의 흉을 보고 있는 것에 좀 싱거운 소리를 해보려 한다.  <<한겨례신문(2007-03-12)>>에 <우리말 소설근원은 소수민족 슬픔>이란 제목의 글에 조선족 작가 허XX의 다음 같은 말이 실려 있다.    “······중국이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펴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표면적으로만 그렇다. 소수민족 우대정책이란 것 자체가 실은 완전히 중국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역설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늘 소수자의 외로움, 고독을 느낀다. 우리 문학을 우리말로 써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실은 그게 슬픔이다. 차라리 중국인으로 태어나거나 한국인으로 태어났어야지. 난 뭔가? 중국 주류도 한국 주류도 될 수 없는 이방인이다.”    소수민족으로 태어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따라서 조선족이 정부당국으로부터 우대정책을 받고 사는 것도 역시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세상에서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이 으뜸이라는 것을 세인이 모두 긍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감사한 맘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표면적인 것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 허XX 씨의 말대로 “조선족이 영원히 한족이 될 순 없는 존재다.” 조선족이 한족이 될 수 없을 바엔 우대정책을 받고 사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  필자가 이해력이 모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허XX씨는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사실본질이 그것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으로 불만을 갖도록 부채질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서글프다.  허XX 씨는 우리말로 문학을 하는 것이 슬픔이라 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말로 문학을 하는 것은 개개인의 취미에 따른 것도 있겠으나, 이는 ‘우리 것’을 지켜가는 데 소중한 기여이기도 하다. 만약 그것을 슬픔으로 표현한다면 시장이 너무 좁아 아무리 써내도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조선족 작가들이 원고료를 상징적으로 받네 하고, 단행본을 내려면 후원이 없이는 매우 힘들고 어렵게 책을 내도 팔리지 않아 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윤림호와 같은 쟁쟁한 작가도 가난에 쪼들려 딸애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글쓰기를 못하게끔 쥐어 패면서까지 말렸다고 한다. 가령 조선족 작가들이 돈을 팡팡 벌 수 있다면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상기 신문기사에 따르면 허XX 씨는 국가 1급 작가로서 환화로 환산하면 25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뭐가 모자라서 ‘양모’에 대해 불평을 부리고 있는지? 그녀는 이렇듯 엄청난 대우를 받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3개월만 있으면 한국에 오고 싶어 못 견디고 1년에 적어도 3개월 비자로 2번 정도 한국에 온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인정이 많고 아기자기하고 서비스도 좋고 남자들이 너무도 친절한(중국에 비해) 한국은 천국”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녀의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라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조선족들의 한국에 대한 인상도 알아보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즉 한국에 온 대다수 조선족들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정이 메마르고 무시와 냉대와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허XX 씨는 한국을 중국에 비해 천국이라고 칭찬했는데, 그렇다면 중국은? 중국에서 250만 원 정도의 녹을 받고 있는 그녀가 중국을 여지없이 보고 한국을 천국이라고 칭찬한 것은 지나친 행위가 아닐까?  상기 신문에 실린 허XX 씨의 지나친 언행들이 본의 아니게 잘못 전달 되였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으므로 필자는 그저 신문만 보고 느낀 것을 두서가 없이 적었을 뿐이다. 그리고 가령 허XX 씨와 같은 지나친 언행들이 조선족의 입에서 나왔다 손치더라도 한국 언론들은 중한교류, 나아가서 남북통일의 가교역할을 할 조선족을 ‘생모’와 ‘양모’ 사이에서 잘 처사하게끔 밀어주는 것이 올바른 처사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 반세기 떨어져 있던 ‘생모’가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찾아온 자식이 ‘양모’의 흉을 보는 것을 귀엽다고 떠든다면 잘 대해주었던 ‘양모’가 얼마나 서러울까? 이런 일이 잦아지면 결국 ‘양모’는 키웠던 애를 멀리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나는 한국 언론이 자기 목적을 위해 특정인을 너무 띄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임도 250만원이 아닌 25만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나저나, 언론에 보도된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니 나는 허 작가에 대해 반론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앉을 자리 설자리를 살피면서 산다는 것이 피곤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우리 조선족의 운명이라면 스스로 똑똑하게 살기에 노력할 수밖에!…                               
20    사십대의 조선족‘노인층’, 인생설계 다시 해야 댓글:  조회:5072  추천:80  2008-02-03
제4부 조선족문제에 대한 논과 쟁 1. 사십대의 조선족‘노인층’, 인생설계 다시 해야   김정룡 재한 조선족칼럼니스트  1889년, 프로시아를 통일했던 비스마르크 총리는 당시 독일인의 평균수명이 60세가 되나마나 한데도 '65세 정년퇴직 법'을 제정했다. 이에 비해 현재 조선족은 평균수명이 75세가 넘는데도 45세이면 노인으로 취급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실로 조선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그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가. 1990년대 중반부터 연변에서는 은행을 비롯한 일부 공공기관에서 45세 기준으로 직원을 퇴직시키는 바람이 불었다.  나. 연길 시에는 골목마다 노인활동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총 1000여 곳), 간판을 보면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남여젊은이(노인이10% 정도)들이 모여 마작을 노는 장소이다. 이런‘풍경’은 용정, 도문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아마 전 세계에서도 연변이 가장 진풍경일 것이다. 노인활동실에 모이는 사람들은 돈내기를 하는데 가끔 경찰에 신고를 당할 때가 있다. 경찰은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한다. 만일 45세 이상이면 그 자리에서 풀어주고 45세 이하이면 연행해서 자료도 씌우고 50위안의 벌금을 안긴다. 뜻인즉 45세이면 노인활동실에 출입할 자격이 된다는 것이다. 다. 연길시내 도로변에는 장기판을 벌려놓고 '장군, 멍군'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런 장소에도 45세 중장년들이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라. 연길시 근교에 개인 양로원이 많이 섰다. 헌데 양로원에 노인들만 가는 것이 아니라 부인이 한국 간 45세 이상의 남자들도 한 달에 500원을 내면 양로원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조선족은 45세가 되면 노인 취급당하고 있다. 이런 비극이 생겨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객관적으로, 시베리아 한파처럼 불어 닥친 구조조정에 의해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데 있고, 재 창업이 마땅치 않아 적지 않은 이들이 할 일을 포기한데 있다.   주관적 원인은, 개혁개방 후 조선족들이 무작정 도시에 밀려들거나 한국 등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 와서는 도시에다 집을 사놓고는 할 일이 없어 '노인' 노릇을 하게 된 데 있다. 큰일은 못하고 작은 일은 시시하게 여기며, '새우벌이'는 우습게 여기고 덕대(한국어로는 선반이라고 함)돈만 바라보고, 없어도 폼을 잡만 잡고 오늘이랴 내일이랴 허망하게 한국행을 꿈꾸고 있는 데 있다. 근래에는 재입국으로 머물면서 놀고 있는 등 하도 놀고 있는 사람이 많아(중국 각 지방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평균 실업율이 3~4%이지만 조선족의 실제 실업률은 평균수치의 10배도 될 것이다.) 아예 45세가 되면 노인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원래 근면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났던 조선족들이 반은 놀부가 되고, 45세이면 노인취급당하는 현상은 이제 크나큰 비극이고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조선족의 평균수명은 근 80세, 45세이면 겨우 인생 반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님은 40대면 불혹(不惑-2~30대에 닦아놓은 토대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했는데, 조선족사회 40대는 불혹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게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40대이면 아래로는 자식이 커가고 위로는 부모를 모셔야 하는 등 어깨가 무겁고 의무가 막중하며, 지나간 세월을 총화하고 앞날을 보람 있게 보낼 계획을 해야 할 연령대이다. 설령 퇴직을 했다고 해도 제2의 인생에 도전해야 마땅한 것이다. 허나 적지 않은 조선족 40대는 자식과 부모를 책임질 의무와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제2의 인생도약에 전념하지 않고 허황하게 세월을 보낸다. 조선족사회 이혼율이 급증하는 데는 40대 남자들이 제 노릇을 못하는 원인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참'한 처지를 타개해 보려고 외국으로 떠나는 40대 조선족도 많다. 물론일부는 외국에 나가 피와 땀으로 열심히 돈도 벌고 선진문화도 배우면서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40대의 조선족은 한국에 와서도 열심히 일하지 않고 마작이나 경마, 다단계 판매 등에 빠져 자신의 신세를 망치고 있다. 또 한국에 온 일부 40대 지식인과 공무원출신의 조선족들은 묵은 터에서 이밥 먹던 흥타령이나 하면서 자존심만 내세우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환상만 갖고 살아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40대는 우리 조선족사회의 기둥이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의 역할을 못한 채 노인 아닌 '노인'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40대여, 인생은 이제 막 시작이란 것을, 당신의 경험과 지식이 새로운 인생의황금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19    ‘계산’이면 어떻고 ‘결산’이면 어떠냐? 댓글:  조회:4861  추천:58  2008-01-30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3부  조선족의 언어변화실태에 대하여     4. ‘계산’이면 어떻고 ‘결산’이면 어떠냐?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며칠 전 나는 내가 한턱 쏠 일이 있어 한국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모두 기분 좋게 먹었다. 헌데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뜰 무렵 나는 내가 돈쓰고도 기분이 되게 나쁜 일을 당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식사가 끝나자 내가 “결산합시다.”고 말했더니 좌중의 한국인들이 “계산이지, 뭐 결산이요?”라고 나를 나무랬다. 나는 화가 나서 “계산이든 결산이든 다 중국어 단어에서 온 말이지 순수 우리말이냐? 같은 중국어에서 온 말을 습관상에서 한국에서는 ‘계산’이라 하고 조선족은 ‘결산’이라고 할 뿐이지 내 말이 뭐가 틀렸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날 나는 마치 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해 뒤가 찜찜한 기분이었다. 나는 1990년부터 여행사 일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한국인과의 접촉이 많아 한국인의 언어습관에 대해 알고 있다. 예하면 한국인은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게 돈을 지불할 때 ‘계산’이란 말을 쓰고 연말총결 같은 ‘거창’한 일에 ‘결산’이란 말을 쓴다. 이렇게 같은 중국어에서 온 단어지만 조선족과 한국인이 다르게 사용하는 말들이 많다. 허나 평생 나의 몸에 배어온 ‘조선어’가 한국인과의 대화에서도 많이 튀어나온다. 이는 인지상정이다. 이런 것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고 살 필요가 없고 위축될 필요성은 더욱 없다. 언어표현은 습관상의 문제일 뿐 한국말이 맞고 조선족의 말이 틀렸다는 도리는 없다. 같은 언어도 지역공동체에 따라 서로 표현법이 다르며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다는 법은 없다. 언어란 서로 표현법이 달라도 알아들을 수 있고 의사소통이 되면 그만이다. 조선족도 분명히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조선족의 언어가 틀리고 한국말이 맞다는 법이 없다. 문제는 한국인은 조선족을 대함에 있어서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이다. 연변대학 우상렬 교수는 본 학교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1993년 한국에 와서 어학시험을 봤는데 불합격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조선족이 배운 것은 조선어지 한국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조상의 언어를 물려받았으나 단지 지역 언어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한국인은 조선족을 마치 다른 민족을 대하듯 이질감을 갖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한국인은 조선족이 자신들과 언어표현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조선족은 촌스럽고 한국인은 세련되고, 조선족을 마치 ‘맛이 없는 중국산’처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가지 부질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한국인이 통일을 원하지만 앞으로 조선족을 대하듯 북조선인민들을 대할 것은 뻔한데······. 
18    “자기야"…"메스껍다” 댓글:  조회:5589  추천:57  2008-01-13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3부  조선족의 언어변화실태에 대하여     3. “자기야"…"메스껍다”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필자는 작년 겨울 조선족문제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취재 차 사람들이 모여서 마작을 노는 연길시 00노인활동실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거기서 다음과 같은 눈길을 끄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국에서 수년 간 체류하고 귀국한 젊은 두 조선족여성이 한국말 어투로 대화를 나눈다. 곁에 있던 한 남자가 “저것들이 한국에나 갔다 왔다고 한국말 하면서 티를 내는 꼬락서니를 못 봐주겠다.”라고 싱거운 소리를 한다. 잠시 후에 두 젊은 남녀가 들어오더니 서로 “자기야”하면서 말을 주고받는다. 다른 한 남자가 “저것들도 한국에 다녀왔다고 메스껍게 노네(조선족들은 비위에 거슬리는 언행을 메스껍다고 표현한다).”라고 면박을 준다. 또 다른 한 남자가 “우리 안까이(아내)두 한국에 갔는데 전화 오면 글쎄 나를 ‘자기야’고 부른다니까, 더러워서 나 원 참.”라고 떠든다.  이는 조선족들이 한국나들이를 통해 언어가 변화되어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족의 고유 말과 한국어 사용이 갈등을 격고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언어도 문화와 같이 물의 흐름처럼 높은 곳(선진적인 것)에서 낮은 곳(후진적인 것)으로 유입됨에 따라 ‘힘이 센 언어’는 점점 넓게 퍼져가는 데 반해 ‘힘이 약한 언어’는 점차 유실되어가는 사례가 허다하다. 물론 이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이 소요되며 또 이 과정에서 자 언어와 타 언어 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드러난다. 10여 년래 조선족은 200만 중에 한국에 다녀간 사람과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사람을 합치면 무려 50만 명이 된다. 이 어마어마한 수자가 한국나들이를, 또한 많은 한국인이 중국나들이를 통해 한국어가 조선족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조선족언어가 점차 한국화 되어가고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추세이다.  문제는 한국어도 장단점이 있고 조선족언어도 마찬가지로 장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조선족들이 일방적으로 한국말을 받아들이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말하자면 부부간의 “자기야”라는 호칭은 서로 “야, 자.”하는 내림 말을 사용하는데서 생겨난 것을, 부인이 남편에게 존대 말을 쓰고 남편이 부인에게 보통 말(소, 오)을 사용하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자기야”라는 호칭에 대해 거부감이 크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도 보편적으로 부모들에게 “야, 자”라는 내림 말을 사용한다. 한국위성방송이 조선족가정안방에 침투되었고 한국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이 왕창 늘어남에 따라 조선족어린이들도 부모에게 “야, 자”라는 어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현상이 잘못된 언어흡수라고 본다. 왜냐하면 조선족어린이들이 본래 부모에게 존대 말을 쓰는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서 계속 지켜가야 ‘미풍양속’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한국인 친구한테서 들었던 얘기다. 그 친구는 15세와 9세의 아들딸이 있는데 절대 부모에게 내림 말을 사용 못하게 교육시켰다고 한다. 어느 날 네 식구가 택시 타고 가는데 애들이 하도 부모에게 꼬박꼬박 존대 말을 쓰니까 택시기사가 “요즘 세월에 이런 애들이 참 드물다”고 칭찬하면서 택시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독자들도 잘 알리라고 믿는다.  현재 조선족이 한국을 본받아 ‘스트레스’, ‘섹스’ 등등의 외래어를 쓰는 것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한국 말 어투를 사용하거나 본래 조상의 언어가 상실되었던 어휘의 회복, ‘저, 저희’와 같은 낮춤 말, ‘드리다, 하시다’와 같은 존대 말의 회복은 바람직하다. 허나 조선족 언어에 족보가 없는 “자기야”라는 호칭이거나, 아이들이 부모한테 내림 말을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7    한국식, 조선족식, 피곤하다 댓글:  조회:6404  추천:92  2008-01-05
재한조선족문제연구제3부  조선족의 언어변화실태에 대하여     2. 한국식, 조선족식, 피곤하다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인간의 몸에는 관성의 체계라는 것이 있다. 오른손 왼손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밥 먹고 글을 쓰는 등 주요하게 오른손에 의해 움직인다. 가령 오른손이 탈이 나서 부득불 왼손을 사용하면 습관이 되지 않아 나의 몸에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인간의 몸에 배인 관성의 체계이다. 우파(기존의 체제를 답습하려는 보수세력)와 좌파(기존의 체제를 개혁 혹은 뒤엎으려는 혁명세력)라는 개념이 곧 인간의 오른손 왼손의 관성체계에 의해 유래된 것이다.  인간은 몸에 배인 관성의 체계가 유지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반해 관성의 체계가 파괴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괴롭다.  우리민족은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고 따라서 남과 북 및 조선족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문자가 다르다. 이리하여 조선족은 관성의 체계가 파괴되는 체험을 많이 하게 되며 삶이 고달프다. 지난 4월 중순 연변 <<문학과 예술>>잡지 조일남 사장으로부터 내가 작년 2월 기고한 <<성과 씨의 구분>>이란 글을 2007년 2기(격월간)에 실으려고 하는데 원고를 다시 한 번 손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의 손에 그 원고가 없으니 보내 달라고 했더니, 조선족문장식으로 타이핑해서 이메일로 보내왔다. 다시 말해서 어휘선택, 철자, 두음법칙, 뛰어 쓰기, 부호용법 등 많은 면에서 한국에서 쓰는 문장과 조선족식이 많이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주로 글을 쓰다 보니 한국식이 이미 몸에 배어버려 갑자기 조선족식의 문장을 접하니 읽고 쓰기가 갑갑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식으로 손을 보아 보내면 틀림없이 조사장이 다시 조선족문장식으로 고쳐야 한다. 나는 이런 점을 고려해 아예 힘들더라도 조선족문장식으로 맞춰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엄청 힘들었다. <<문학과 예술>>은 문화연구 중심을 취지로 하는 유일한 조선족인문잡지이며, 기고자들은 모두 연변대학과 중앙민족대학 교수, 출판사와 신문사의 유명지식인 및 쟁쟁한 조선족작가들이다. 나와 같은 무명인은 눈을 씻고 봐도 나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작품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이런 요인은 내가 글을 쓰기로 맘을 먹은 이상 나에게 스트레스는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한국식과 조선족식을 오가려니 나의 몸에 배인 관성체계가 파괴되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글을 발표하려면 우리민족을 조선민족이라 해야 하고 따라서 이북을 조선, 우리글을 조선글 등등 ‘韓’을 쓰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글을 쓰려면 조선민족, 조선사람, 조선글 등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글을 쓰는데 글 자체가 다른 것에 신경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인소’까지 감안해야 한다. 이렇게 조선족은 타민족이 겪지 않고 있는 문화적,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 조선족 몸의 관성체계를 파괴시키고 억제시킨다. 또 이러한 몸의 관성체계가 파괴되고 억제되는 과정을 오래 겪게 되면 조선족은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참으로 비극이다. 이것은 조선족만의 비극이 아니라 전체 우리민족의 비극이다. 나는 이것이 분단민족의 비극적인 문화라 생각한다. 문장을 쓰는데 있어서 남이 다르고 북이 다르고 조선족이 다른 것처럼 우리민족의 현실이 분열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상을 탓하는 자는 가장 못된 놈이라는 도리를 알고 있지만 나는 조상들을 탓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종대왕이 1446년에 만들어 낸 훈민정음이 유생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보급되지 못했다. 일제시대에 이르러서야 한문과 병행해서 쓰게 되었고, 우리글이 완벽한 정착이 되기도 전에 분단되었으며, 남이든 북이든 70년대 후반부터 우리글사용 단일화가 실시되었으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제나름대로 놀다보니 오늘과 같은 비극이 초래되었다. 앞으로 남과 북이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되면 홍역을 치르듯이 서로 한바탕 관성의 체계가 파괴되는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조선족의 언어문자는 이북을 따랐으나 이북과도 다른 점이 많다. 나는 조선족이 비록 남과도 다르고 북과도 다르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체언어문자를 지켜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굉장히 보귀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민족이 타민족들이 겪지 않는 괴로움을 겪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토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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