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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어문교수와 연구에 몰부어온 20여년 댓글:  조회:1148  추천:0  2010-03-02
  조선어문교수와 연구에 몰부어온 20여년 기자: [김정섭 특약기자] ㅡ룡정시교원연수학교 조선어문교연원 정룡철의 이야기 조선어문교수에 매료되여 자기의 청춘과 모든 정열을 조선어문교육사업에 바쳐온 우수한 조선어문교원이 있다. 1988년에 교육사업에 참가한 이래 남다른 노력과 열정으로 조선어문교학연구와 실천활동을 진행, 동료교원들의 찬양과 학계의 인정을 받는 우수한 교원으로 성장한 그가 바로 농촌중학교 조선어문교원으로부터 교연조장, 정교처주임을 거쳐 현재는 룡정시교원연수학교조선어문교연원, 룡정시 조선어학회 비서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정룡철교원이다. 룡정시 교원연수학교 조선어문교연원 사업을 맡은 10여년래 그는 교연원의 능력이 전체 조선어문교사대오의 소질제고를 결정하고 교연원의 리념이 조선어문 교수개혁의 방향을 결정한다는것을 깊이 인식하고 자신의 업무수준을 제고하기 위하여 각종 업무서적, 교육서적을 탐독하여 새로운 교육사상으로 자신을 무장하기에 힘썼다. 그는 자금이 부족한 형편에서도 해마다 전 시 조선어문교원들의 년차회의를 조직하여 교수연구모임을 가지였고 전 시 조선어문교원들의 랑송, 랑독 훈련강습회의를 조직하여 전 시 조선어문교원들의 업무소질제고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수시로 기층학교에 내려가 기층학교교원들과 함께 소반화교수모식을 연구하고 교수를 내놓아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교수참관은 그에게 있어서 필수로 되였고 그가운데서 전 시 매개 교원들을 료해하고 그 가운데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는 사업방침을 견지하였다. 해마다 그는 18차례 기층학교에 내려가 교수지도를 하고있는데 교수참관만해도 40여차씩 하고 있다. 고중입시때면 시제분석을 제때에 진행하여 전 시 교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것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연변교육출판사의 위탁으로 초중조선어기본기능훈련집 집필에 참가하였는데 임무를 훌륭히 완성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고 자신의 업무수준도 새로운 전업수준으로 비약하게 되였다. 조선어문교연원인 그의 조직력과 열정은 2009년 일년동안 룡정중학에 《하향》교원으로 파견되여 온 뒤 그의 사업실적에서 여실히 과시되였다. 룡정중학에 내려온 그는 학교실제에 결부하여 착실하게 각종 사업을 밀고 나아갔다. 그의 사업업무량은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매주 월요일 학교지도부회의에 참석하여 지난 한주의 공작을 회보하고 다음주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자신의 견해를 내놓고 실천을 선도하였다. 학교와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그는 학교에서 조직하는 《골간교원회보과》, 《청년교원평의과》 등 교수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새로운 교수리념으로 평의를 진행하였다. 그는 선후하여 6개과당의 《선후배공개과》의 평의공작을 맡고 교수안쓰기로부터 과당교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지도해주었다. 《룡정시중학교조선어문학과 소인수학급교수연구토론모임》에서 그가 지도한 3명교원의 교수는 전 시 조선어문교원들로부터 배울 내용이 많은 훌륭한 과당이였다고 한결같은 인정을 받았다. 그는 조선어문교연조에 깊이 심입하여 매개 단원마다 한번씩 집체비과를 조직하고 그에 따르는 교수활동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매번 교수에서 존재하는 문제를 제때에 지적해주어 시정하게 하였다. 뿐만아니라 8학년의 품사부분의 교수 12교시, 9학년의 복습지도과 5교시를 책임졌으며 병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교원의 교수도 담당해주었다. 그외에도 5차의 리론강좌와 1차의 고중입시시험분석과당을 조직하였으며 7, 8학년 100여명 학생들의 작문 을 검사수정해주기도 하였다. 그는 교수참관, 교수지도를 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내여 단원질량검사문제를 4차례, 3학년의 질량검사시제 5차례, 룡정중학제1기《독서왕》경색문제를 출제하였다. 길림성조선어문제21차회의에서 그가 지도한 허복순, 최미라 두 교원의 론문이 각각 1등상을 받았고 룡정중학 교간지 《별천지》잡지 약 12만자의 문자교정을 두차례 보았으며 학교와 교연조에서 조직하는 각종 활동(향진련환모임, 교사절활동, 국경60돐경축활동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그의 업무량과 업무소질 그리고 속도는 주변의 사람들을 놀래웠고 감동시켰다. 민족문화교육의 발전과 진흥을 위해 조선어문교수에 매료되여 열심히 뛰고있는 정룡철교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선후하여 룡정시 우수교원, 우수당원으로 평의받았고 제1차 중국조선족교육교안평선 1등상, 주급골간교원회보과 우수지도교연원의 영예를 지녔다.  
3    즐거운 려행 안타까운 현실 댓글:  조회:1149  추천:1  2010-02-16
                                           즐거운 려행 안타까운 현실                               ---조선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함경북도청진지구 려행을 끝맞치고    지난(2007년) 7월16일 나는 룡정해란강 려행사와 조선 칠보산려행사가 주체로하는 제33차 려행단의 일원으로 즐겁고 흥겨운 마음으로 동족애의 심정을 지니고 고국으로 향한 관광뻐스에 몸을 싫었다. 난생 처음으로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함경북도 청진지구 관광을 떠나게 되였다.  청진시는 함경북도수부로서 조선에서 세번째 큰 도시이며 인구가 80만이나 되는 성급도시였다.    칠보산려행사 제33차 려행단 성원들은 도합 33명이였다.  우리 교직원 19명, 화룡집단 로인들 11명, 룡정에 거주하는 정선생, 김룡남, 리희자부부 등 33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을 싫은 관광뻐스는 일정에 따라 제시간에 삼합교두를 향해 떠났다.  가이드 강씨 젊은이는 이번 려행에서의 주의 사항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흥미진진하게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서 관광뻐스는 어느새 오랑캐령을 넘어 삼합교두에 도착하게 되였다.  나는 관광단성원  2호로 우리측의 검역을 맞치고 조선측 입구에 이르렀다. 조선측 당직군인의 지시에 따라 다리우에 머무르게 되였다. 나는 통행증만 있으면 되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절차가 몹시 번다스러웠다. 우리일행은 번호대로 줄을 서서 입구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의 압록강축구팀이 우리쪽으로 느러지게 넘어온 다음 우리의 입구가 허락되였다. 조선의 검역은 매우 엄했다. 통행증만 검역하는게 아니라 소지품을 하나하나 세심히 검역하고 지어는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인민페 액수도 검사하고 기록하였다. 드디여 지루한  검역을 끝마치고 우리를 영접하려온 조선칠보산 려행사의 관광뻐스에 몸을 싫었다.   관광뻐스가 떠나면서부터 조선의 안내원 강동지가 자기 소개와 더불어 려행로정과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호주머니까지 검역을 받은 언짢는 기분을 다잡기도 전에 뻐스는 회령군에 들어섰고 오산덕에 정중히 모셔진 김정숙동상앞에 이르렀다.  하늘에선 이슬비가 잔잔히 내렸다. 한복을 산뜻하게 차례입은 접대원녀성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김정숙동상앞에 모여서게 한다음 꽃을 드리고 정중히 묵도를 드렸다. 접대원의 잔잔하고 고운 음성으로 률동있게 김정숙에 대한 사적을 이야기 하였다. 집체적인 기념촬영을 하고 서둘어 안내원을 따라 오산덕층계를 오르면서 보니 주위엔 온통 살구나무들이 였다. 회령은 백살구 기지로서 소문이 높다고 한다. 오산덕언덕을 넘어 아담하게 꾸려진 초가집이 보였는데 그 집이 바로 김정숙동지가 생활했던 집이였다. 접대원의 해설을 들으면서 나는 초가집 우측  돌비앞에서 기념찰영을 남겼다. 다음 <<은덕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청진시를 향해 떠났다.    회령시에서 청진시까지는 92키로메터라 한다. 관광뻐스는 회령시을 떠나 부령군에 들어섰고 부령군을 지나 무산령을 톺아오르고 있었다. 무산령 중턱 샘물터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음 뻐스는 다시 청진시를 바라고 떠났다. 뻐스에서 스쳐지나는 조선의 산천을 두루 살펴보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조선의 이름모를 마을들을 굽어보면서 마음은 개운하지 못했다. 해방을 맞아 반세기 세월이 넘어 흘렀건만  조선은 아직도 전쟁후 복구건설시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느낌에 서운한 기분을 다잡기 어려웠다. 안내원 강동지가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들도  다 같이 <<김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김장군의 노래>>는 명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악되고 포만한 정서로 노래선률은 정서가 높았다.    드디어 청진시에 들어서게 되였다. 관광뻐스는 청진시중심에 거연히 솟아있는 김일성의 동상앞에 멈추어섰다. 하늘에선 계속하여 잔잔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체관광단 성원들은 안내원의 안내하에 김일성동상앞에  꽃을 드리고 숙연히 묵도를 드린다음 기념찰영을 남기고 청진시제강소 유아원으로 향하였다. 유아원원장이  반갑다면서 열정적으로 맞이하였다. 3층에 이르러 제강소유아원 어린이들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였다. 자고로 조선은 집체무로 세계에 이름을 자랑하고 문화예술의 긍지로 자랑이 높다. 제강소 유아원 어린이들의 공연은 잠시나마 우리일행의 정서를 높여주었다. 4-5세되는 어린이들의 세련된 공연은 자못 이채로웠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훈련을 시켰고 배양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도살리고 있는데 공연은 서서히 막을 내리였다. 50여명의 어린이들이 무대에 나와서 환영의 인사를 올리는 것이였다 우리들은 기념품과 례물을 안겨주고 그들과 합영하여 기념찰영을 하였다. 미래를 위해 땀을 흘린 교양원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올리고 칠보산 려행사 본부에 도착하였다. 몇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우리들의 려행종점인 숙영지 경성이란 곳을 향해 떠나야 했다.    경성은 청진시에서 50키로메터 떨어져 있다고 한다. 조선경내에 들어서면서부터 또한 청진시에서 경성으로 가는 로정에서 밖을 내다보면 표어가 많았고 표어의 내용들은 아주 특이하였다.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내용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내용들이 아주 많았다. <<조선을 위해 배우자!>>, <<미래를 위해 더 땀을 흘리자!>>이런 표어들은 그래도 마음에 들어왔다. 경성으로 달리는 로정에서 더욱 희귀한 일들을 목격하였다. 양로공들도 알쭌한 녀성들이였고 사람들은 자전거에 무건운 짐을 실고 오갔다. 녀성들은 네바퀴구르마에 도목나무를 가쯘하게 박아실고  힘겹게 끌고 다녔다. 차량이라해서 목탄트럭들이였다. 짙은 연기속에 앉아다니는 군인들의 모습은 너무 군상스러웠다. 사람마다 배낭을 잔등에 메고 다니는 모습에서 어려운 생존의식을 감득하게 되였다. 더욱 한심한것은 네바퀴구르마에 남편인듯한 남성이 앉고 가냘픈 녀성이 끄는 모습은 참으로 꼴불견이였다. 이런 현실에서 핵무기를 운운한다는것이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았고 어째서 촬영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지? 그 원인을 알것 같았다. 대 남자주의가 성행하고 봉건세습습관이 농후한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관광뻐스가 <<샘비령>>을 넘고있을 때 안내원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샘비령이란 힘겁게 령을 넘을때 샘물을 마시면 힘이 솟아서 한달음에 넘는다는 간단한 이야기로부터  <<뻑국새를 왜 뻑국새라고 했는가?>> 하는 유머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원도 풍부하고 기름진 옥토가 잠자는 조선의 현실에 서글픈 마음을 억제할수 없었다.  나는 우리 고국이 잘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드디여 경성 칠보산려행사 분사 숙영지에 도착하여 행장을 내려놓고 하루의 스트레스와 피곤을 해소하면서 하루저녁을 묵게되였다.    이튼날 아침식사를 끝맞치고 서둘러 새날의 려행이 이어졌다. 관광뻐스가 경성에서 15분정도 달려 처음으로 이른곳이 <<집삼혁명전적지>>였다. 세영웅이 모여 나라를 구하기 위한 대사를 담론했다고 해서 <<집삼>>이라고 했다는 바다기슭의 자그마한 어촌이였다. 안내원의 뒤를 따라  김정숙 사적이 새겨진 비석도 보고 우물도 마시고 바다를 향해 기념촬영도 남기였다. 다음에 이른곳이 <<연분>>이란 곳이였는데 소금이 많다는 동해바다 기슭이였다. 한눈에 동해바다의 넓디넓은 검푸른 장관이 안겨오고 기복을 이룬  절벽과 바위이며 거세찬 바다물은 기가막혔던 우리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듯이 시원하였다. 우리들은 바다가 백사장에서 조수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바다물과 유희를 놀면서 한창 즐겁게 보냈다. 마음은 한결 젊음으로 설레였다. 그래도 바다가 우리들의 려행의 종착역이였다. 마음껏 즐기고 감상하고 얼마나 좋은가? 드디여 바다와의 리별을 하고 고국땅을 떠나야하는 시각이 닥쳐왔다. 조선국민은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사상을 갱신해야 하고 분발해야 한다. 왜 공기가 좋고 옥토가 기름진 광활한 고국이 생존앞에서 허덕여야 하는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양분을 흡수해야 한다. 어느때까지 항일유격대식으로 굶주려야 하겠는가? !  번영창성한 조선의 미래를 약속하면서  조선이여 잘 있으라.  마음속으로 웨치면서 귀로에 올랐다.   
2    밀 회 댓글:  조회:1051  추천:0  2010-02-04
밀 회   말회는 일찍 눈에 익혀둔 여기 한그루 앵두나무 파란 꿈밭   가장자리끝에 해달같은 사랑을 초롱초롱 달아매놓고 사이사이   탐스럽게 연분홍미소 그리며 볼연지 곱게 빠알갛게 순정을 태우다.
1    불로그 교류에 대한 옅은 소견 댓글:  조회:1064  추천:0  2009-05-15
불로그 교류에 대한 옅은 소견                                                                 룡정중학 조선어문 교연조 김정섭   오늘날 우리의 불로그현장은 선진국에 비하여 많이 떨어져 있지만 나름대로 불로그 교류를 통하여 자신의 지식수준을 제고시키며 자신의 업무수준제고와 자질과 시야를 넓히고 교류의 향상으로 인간의 감정과 우의를 돈독히 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여 서슴없이 저의 불로그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를 열심히 다듬는 가운데서 교류를 통하여 받은 몇가지 옅은 소견을 숨김없이 여쭈어 보려한다. 첫째: 불로그교류는 자신의 업무지식수준 제고와 교수생활의 《다시다》로 되였습니다.   블로그편집에 집념하고 불로그려행을 하노라면 집에 앉아서 세계를 관광할수 있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많은 언론계, 학술계, 문학계, 사회인, 외국인, 네티즌, 교육인사들의 미니홈페지와 접촉하게 되며 그들의 풍부한 지식과 연박한 견해를 습득하게 됨을 세인들이 모두 긍정하는 현실이다. 특히 교육계인사들의 경험성적인 론문과 미래지향의 교육리론은 저와 같은 아마추어교원들에게 크나큰 계발과 감촉을 받게 한다.   우리 교원들이 반드시 소유해야 할 교수품격, 교수내용, 교수언어면에서 향도적 작용은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것이다. 지금도 저는 성교육학원의 신기덕선생의 “교수언어는 지식을 전수하는 중요한 도구이고 교원의 교수임무를 완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사생지간에 정보와 정감을 교류하는 중요한 뉴대이다. 교수언어는 응당 시가언어처럼 세련되여야 하고 소설언어처럼 생동해야 하며 수필언어처럼 우아하고 희곡언어처럼 집중되여야 하며 재담언어처럼 흥미롭고 웅변가의 언어처럼 설복력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음미하면서 실천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불로그 교류는 사생지간의 정보와 정감을 이어주는 뉴대이다.   교수활동에서 사생지간의 교류는 서로의 나눔이고 서로의 배려이고 서로의 믿음이며 서로간의 관계를 편하게 부담없고 허물없이 화기롭게 하는 윤활유이며 학습생활에서의 뉴대이자 관건적인 활동으로서 그 향연은 유난히 향기롭다.   학생들에게 이메일, 불로그, 싸이월드를 공개하고 작문을 위주로 활발한 교류를 기대했을 때 한 학생이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다.   학생들의 반응은 초반에 내가 상상했던것 이상이였다. 평소 글짓기수업에서 무표정하던 학생들도 이메일을 리용하여 글을 써 보내왔고 복도에서 얼굴을 마주쳐도 어색해하던 학생들이 마음의 창을 열어보이기 시작했다.   글짓기에 무관한 생활속의 이야기거나 마음의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부탁하는 학생도 있었다. 공부성적은 그닥 우수하지 못해도 미래에 대한 고운 꿈을 품고있고 또 꿈과 현실이 너무 동떨어져 있는것에 곤혹을 느끼고 지난날에 대한 뼈저린 후회에 젖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의 고민을 이름을 밝히지 않고 믿는 선생님한테 솔직히 털어 놓을수 있어 좋아하는 모양들이였습니다.   학생들 마음의 지기처럼 다가가고 그들의 성장과 진보에 정말 힘이 되고 뒤떨어진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교원으로 거듭나야겠다는 다짐을 굳힌 나는 저녁마다 이메일로 들어 온 작문을 세심히 읽고 열심히 평어를 써주고 진보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면서 늘 한밤중까지 모니터앞을 떠나지 못했다.   학생들의 작문이 륙속 중학생신문, 중학생잡지들에 발표됨에 따라 글짓기 흥취나 열정이 한결 높아졌고 성적도 제고되였다.   컴푸터가 생기면서 이메일, 메신저, 싸이월드, 불로그, 카페, 플래닛등등의 거래통로가 생겨나 교육마당에서도 새로운 사물인 사생간에 이메일, 메신저,싸이월드 대화가 조화롭게 진행될것이며 또 앞으로 교육은 이 길을 갈것아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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