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걷기가 목적이 된 시대를 산다
지금 있는 자리와 가서 닿으려는 자리의 간격, 그곳으로 가야 하는 목적이 있을 때 비로소 걷는다. 오랜 역사 동안 걷기는 수단이었다. 걸어가서 말하고 걸어가서 전한 것들이 모여서 세상을 움직였다. 세상은 빠르고 편해졌다. 두 다리를 쓰지 않아도 당신을 저 먼 곳으로 데려다 줄 수단은 많다. 걸음보다 빠르고 쾌적한 탈것들이 사방에 널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걷기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이동하기 위해 걷지 않고 걷기 위해 걸음보다 빠른 탈것들에 오른다. 산으로 가서 걷고, 섬으로 가서 걷는다. 관광도 아니고 미식도 아니다. 오로지 걷는다는 행위를 위해서 움직인다. 걷기가 목적이 된 시대를 사는 셈이다. 이런 시대에 신발을 만드는 사람, 그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가죽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Jack Peng은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구두를 OEM 방식으로 제작하는 구두회사에서 20대 초반을 보냈다. 세계적인 구두를 만들면서도 중국이 가진 세계적인 구두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이 그를 자극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2006년, 20대의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브랜드 이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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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Peng |
- 처음 만들었던 구두를 기억하나?
J- 아주 단순한 모양의 갈색 구두였다. 내가 만든 구두를 처음 신은 고객은 프랑스인 디자이너였다. 석고로 족형을 떠서 신발을 만드는 주문 제작 방식에 큰 인상을 받았고 디자인도 마음에 들어서 좋다고 했다. 샘플로 만들었던 첫 구두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지난 구두 스타일은 남겨두지 않는 편이다. 우리는 언제나꾸준히 새로운 구두를 만들고, 예전에 만들었던 구두를 남겨두어야 할 이유는 없다. 잭이 신고 있는 구두도 본인의 공장에서 직접 만든 것이다. 짙은 갈색의 단순한 표면의 옆선을 따라 실크로드 지도가 새겨져 있다.
J- 중국의 전통 문화에 관심이 많다. 실크로드를 걸었던 장건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루어진 그의 서역행은 중국 대륙에 적지 않은 자극이 되었다. 그가 걸었던 지도 위의 길과 그가 몸으로 살아낸 역사의 길을 중국 브랜드의 구두 위에 구현해 내고 싶었다. 더불어 요즘의 기업가들이 걸어가는 길 역시 장건이 걸었던 것처럼 이정표 하나 없는 도전의 길이지 않은가. 이 구두에 그들의 정신을 지지하고 또 응원을 보내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이 구두를 신는 사람들이 그런 도전의 길 위에 기꺼이 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2. 당신의 구두 한 켤레
상하이 외곽에 있는 그의 공장은 작업장만큼 큰 창고가 있다. 창고 안에는 그동안 Jack Peng을 구입한 사람들의 족형 모형이 모두 보관되어 있다. 족히 5000개가 넘는 족형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부드럽게 길든 구두를 신고 있을 족형의 주인들을 생각했다.
고객이 매장에서 구두를 결정한 후 완성된 구두를 받는 데까지는 보통 2주일 정도가 걸린다. 실제 제작에는 1주일 정도가 걸린다. 300여 가지가 넘는 세부 공정을 단순하게 보면,
①석고로 발 모형을 뜬다. 주문 제작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②고객이 선택한 디자인을 족형에 맞춰 종이에 본뜬다.
③가죽을 선별하고 자르고 무늬를 새기고 각 조각을 조립한다. 이때 밑창을 제외한 윗부분이 기본 형태를 갖춘다.
④고객의 족형에 가죽을 감아 형태를 잡고 밑창을 조립한다. 굵은 실을 이용해 손으로 꿰매는데 전체 공정 중에서 가장 어려워서 15년 이상의 경력자들이 작업한다.⑤측면을 갈아내고 가죽에 색을 낸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전체 공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가죽과 가죽, 가죽과 밑창 사이에는 어떤 접착제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280바늘을 꿰매 한 켤레 구두를 완성한다.
- 한 켤레의 구두가 완성되는 과정이 아름답다. 하지만 한 켤레의 구두를 만드는 것과 그 구두가 온전히 주인의 구두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 디자인만 보고 새 구두를 사서 몇 번 신지 못 하고 넣어둔 기억도 있다. 좀처럼 불편하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한 켤레 구두가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떤 것인가?
J- 본인의 발에 맞게 주문 제작한 구두는 매장에서 구입한 구두와 첫 느낌부터 다르다. 새 신발이지만 내 발에 잘 맞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나는 내 고객들에게 구두를 구입한 후 처음 3주 정도는 신발을 너무 많이 신지 말라고 조언한다. 갓 완성된 구두의 가죽은 신발 고유의 형태로 굳어있다. 그래서 갑자기 강한 힘을 받으면 구두가 힘겨워한다. 천천히 부드럽게 길들여야 한다. 첫 한 주 동안은 겨우 한 두 번만 신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다음 2주 동안도 한 번에 오랜 시간을 신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3주 정도가 지나면 주인의 발에 꼭 맞는 또 하나의 피부가 된다.
바닥은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Jack Peng의 모든 구두는 바닥창에 코르크가 들어간다. 코르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주인의 발 모양에 맞춰진다. 신으면 신을수록 나와 꼭 맞는 신발이 되는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몇 년 전 내 구두를 신고 타이완의 아리산을 올랐다. 내 발에 잘 길든 구두는 산길에서도 거침없었다.
-구두와 산이라니 의외의 조합이다. 구두가 가장 어울리는 장면은 어디일까?
J- 음, 손님을 수행하거나 친구와 걸을 때, 나는 내 구두를 보고 또 그들의 구두를 본다. 우선 마음에 드는 구두를 신고 있으면 내 자신감은 배가 된다. 그리고 잘 손질된 구두를 신은 사람은 참 아름답다. 좋은 구두는 사람을 빛나게 하고 또 걸음을 즐기게 한다. 구두가 어울리는 무대? 본인에게 잘 맞는 구두를 신고 있다면 그게 어떤 길이든 상관없이 어울린다. 좋은 구두는 당신을 더 멀리 걷게 할 거다.
-덧붙여 묻는다. 남자에게 한 켤레 구두는 어떤 의미인가?
J- 흠,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여자가 처음 남자를 만날 때, 여자는 수줍어서 상대의 정면을 볼 수 없다. 고개 숙인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은 상대방의 구두다. 남자의 구두란 그런 거다. 하하.
#3. 가죽으로 발을 감싸던 원시의 기억
가장 원시적인 신발은 아마도 식물의 잎이나 동물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형태였을 것이다. 오늘날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원래의 목적 외에 다양하고 특수한 기능들을 덧댄 것들이 많다. 산을 오르는 신발, 달리기하는 신발, 운동하는 신발이 모두 다르고 산을 오르는 것도 큰 산을 가는 신발, 작은 산을 가는 신발, 바위를 오르는 신발이 모두 다르다.
온갖 목적으로 세분되고 온갖 기능으로 차별화된 신발이 넘치는 세상에서 가죽으로 만든 구두의 생명력은 여전해 보인다. 잭은 가죽이라는 소재의 특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사람의 피부에 덧댄 동물의 피부는 그 성질이 가장 닮은 것이고, 그래서 가장 안정적이고 편하다는 말이다.
-걷기가 유행하는 시대다. 당신의 구두를 신고 걷고 싶은 길은 어떤 길인가?
J- 가깝게는 여기에서 가까운 서산이다. 작은 산이지만 그곳을 걸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온갖 자연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을 걷고 싶다. 산업화 이전의 풍경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심지어 시장에서 물물교환도 가능한 그런 마을들이 있다. 그곳을 느리게 걸으면 좋겠다.
내가 태어나던 무렵 중국은 막 고도성장을 시작했다. 빠른 발전으로 금전적 이익은 커졌지만, 심리적 상실감 역시 함께 커졌다. 속도가 가져온 현기증 같은 것이다. 걷기 열풍이라는 것도 아마 비슷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멈춰서서 돌아보아야 한다는 자각 말이다.
- 당신의 구두는 이런 시대, 그런 자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J- 고객들은 신발을 주문하는 순간부터 멈춤과 기다림, 느려짐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매장에서 구입해 바로 신는 신발과 다르다. 완성되어 나올 신발에 대해 기대하고 그 시간을 즐겁게 기다리며 함께 입을 옷도 고민한다. 시간과 함께 애착도 생겨난다. 내 신발에 대한 애착, 나아가 내 주변에 대한 애착이다.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 그것이 주문 제작을 통해 나오는 구두가 줄 수 있는 매력이라고 믿는다.
Jack Peng매장은 우루무치루(乌鲁木齐路) 85호에 있다. Jack Peng은 주로 남성 구두를 만든다. 가격은 가죽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4200위안 정도이다.
에피소드
인터뷰 가는 날에 나는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우습지만, 구두를 신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구두장이 앞에 구두를 신고 간다는 것은 질문도 던지기 전에 내가 가진 패를 모두 드러내는 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대는 나를 파악하지 못 해야 하고 내 질문은 그런 상대의 허를 찔러야 한다. 인터뷰 내내 생각했다. ‘구두 안 신고 오길 참 잘 했다.’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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