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축구에 외항이고 팬도 아닌, 연변축구의 怒와 哀를 글로 쓰는 정도다.
일례로.1998년 갑A경기 때5월 6일과 31일 연변팀의 홈장에서 “검은호르개기”의 수난을 당했을 때 필자는 《연변일보》기자로 “잔디밭 민족기시”란 내용과 사진을6월 2일 등록우편으로 주용기총리에 올렸다(당년 국가축구협회가 연변축구협회에 공개사과를 했음) 오늘도 필자는 연변팀의 성적으로 안타깝게 모대기는 사람들의 “ 연변팀 ”사로”에 도움을 주고자 필을 들었다.
분수(分数)를 삶의 자대라고 한다. 분수란 “어떤 수를 다른 수로 나눈 몫을 분자와 분모로 나타 내는 것”, “분”은 곧 “몫”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팀도 자기가 치켜야 할 분수(자리)가 있다.
필자는 연변팀의 분수를”룡미”가 아닌 “사두”라고 주장한다. 이는 연변팀의 처지, 실력, 연변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 현대축구팀의 강약비교는 정신력만이 아닌 경제력의 비교다.
연변경제의 현실은 자체로 “룡”을 키울수도 없고 거금으로 외적을 사올수도 없다. 하여 연변팀이 계속하여 분에 넘치는“ 룡”마당싸움을 한다면 정부, 코치, 운동원, 축구팬 및 모든 州민들이 한동안은 그냥 “보급(保級)”을 위한 축구마당에서 목을 말이고 속을 태워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연변팀이 분수에 맞는 “뱀” 마당 싸움에서 “사두”를 목적으로 향기가 넘치는 축구마당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력사적으로 봐도 “사두”가 맞다. 길림(연변)팀이 지난 세기에 돋보인 것은 우리 민족의 선천적이고 전통적인 축구기질이 있은 것 외 그 때는 축구를 말하면 대국의 한족들이 “잠든 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국가주석이 축구팬이 되여 “잠에서 깨여난 사자”의 축구강국의 꿈을 현실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지난날의 찬송가“조선족이 뽈을 잘 찬다”는 오늘에 “흘러간 노래”로 거의 되고 있다. 분수를 삶의 자대라면 “분수에 넘친다“ “분수를 모른다“ “분수를 지킨다“는 평가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분수에 맞게 그칠 줄 알고(知止) 분수에 맞게 만족을 아는 지족(智足)적 삶이 분수있는 삶이다. 월전에 인터뷰한 50년대 조선족축구명장의 걱정이다. “연변이 경제력이 약한데다가 체력과 속도가 좋은 한족들이 잠에서 깼고 그에 비춰 50년대 주덕해마냥 축구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적은데서 연변축구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한동안의 시간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 오기활
2017-10-22 길림신문
朝闻体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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