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필자는 리광남대좌(67세)를 만나 ‘효'를 화제로 대담을 하였다.
특수 사정외에 해마다 청명, 추석에 조상 성묘를 한다는 공군대좌의 이번 걸음도 추석성묘를 위해서 였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교육으로 뼈를 굳혔고 민족의 혼을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늘 ‘남의 물건은 벼짚 한오리라도 집에 가져와서는 안된다’, ‘내 가정 일부터 잘 해야 한다’, ‘가족, 국가, 민족에 효도 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참군하는 것을 부모와 나라에 효도하는 것이라면서 군대는 ‘종합대학’이요, 군대에 가 자기만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다 배울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님을 그리는 공군대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970년 11월에 제가 입대하자 아버님은 생산대로부터 분배 받은 저의 몫의 1년 량식을 수레에 싣고 애국량으로 바쳤습니다. 돌아오던중 찬바람을 맞고 중풍으로 쓰러졌답니다. 제 한테는 소식을 알리지 않아서 몰랐지요…”, “…중풍으로 3년간 시달리다가 63세에 타계했는데 그때도 저는 아버님 곁에 없었지요… 생전에 부모님께 효도를 못한 것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남의 물건은 벼짚 한오리도 집에 가져 오면 안된다는 아버님께서 입대한 아들 몫의 량식을 애국량으로 바치다가 쓰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때부터 나는 ‘가족, 국가, 민족에 효도 해야 한다’는 아버님의 부훈(父訓)에 따라 나라에서 맡긴 일을 잘 하는 것으로 하늘 나라에 계시는 아버님께 효도 하리라고 결심하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리광남은 효자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초중 문화수준밖에 안되는 문화기초로 해방군 ‘종합대학’에서 모든 일에 미친듯 배우고 일하며 공군장비고급공정사, 과학기술발명가, 국무원 특수보조향수자,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 전국로력모범 등등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참군할 때 어머님은 “군대에 갔다 와서 조선말을 안하면 동네에서 너를 ‘덜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하기에 40여년간 군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말을 잊지 않았고 한족들속에 묻혀 있는 두 자식들도 우리 말을 잘 배우도록 강요한 그다.
‘효’는 부모를 섬기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충’은 ‘효’의 정성으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덕을 근본으로 안으로는 ‘효’를 다하고 밖으로는 ‘충’을 다하는 것이 리광남대좌가 말하는 ‘효’의 실질이라 하겠다.
길림신문 (2017-11-08) 길림신문 칼럼리스트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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