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도 자신을 나라 법을 지키고 국민의무를 리행하며 사회질서를 준수하는 공민으로 자신한다.
그런데 근년에 종종 “나는 중간부류사람인가? 아니면 나쁜부류의 사람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원인은 이렇다.
최근 2, 3년간 필자는 도시의 공공장소나 신문지면에서 “좋은사람”(..好人), “좋은 사람협회(호인협회)”라는 프랑카트, 선전판, 신문기사를 보게 되였다.
도문기차역광장의 대형선전간판ㅡ“도문좋은사람 도시문명 새풍조를 이끌어 간다”가 일례다(사진제공).
알아 본데 따르면 한 개 지역에 “좋은 사람”의 수자가 “0 0 10대 호인”선발… 으로 지역주민의 총수에 비해 아주 소수적이였다.
무릇 사람이 사는 곳에는 세개 부류(상, 중, 하)의 사람이 있다. 즉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중간부류사람으로 분류하게 된다. 그러니까 0 0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에 비춰 기필코 “ 나쁜사람”, “중간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까지나 좋은 사람과 중간사람이 많고 나쁜 사람이 극히 적다. 그래서 동네가 사람이 살아가는 향기가 풍기고 사회가 발전하게 된다.
한개 지역에 응당 많은 “좋은 사람”들이 적은 수자로 불리는 것은 “좋은 사람”을 선정하는 관계부문의 인위적인 행위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개 지역의 “비(非)좋은” 사람들이 “그럼 나는 나쁜사람인가, 아니면 중간사람인가?” 는 반문을 하거나 불만을 갖는다.
지난 세기 60년대에 모주석께서 전국 인민들에게 “뢰봉을 따라 배우자”고 호소하니 전국민들은 “뢰봉동지의 좋은 본보기를 따라 배우자”(學習雷鋒好榜方樣)며 “혁명에 충성하고 당에 충성하며 애증이 분명하고 립장이 견정한,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뢰봉동지의 “좋은 본보기”를 노래로 부르며 따라 배웠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부터라도 “0 0 좋은 사람(호인)”을 “0 0좋은 본보기”로 개칭하자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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