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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에서 열리는 명동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연길공항에 나갔더니 평소와 달리 공항이 몹시 북적거렸다. 알고 보니 한국정부가 제정한 무연고 동포 방문취업제 정책의 덕택으로 또 한 그룹의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떠나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실시된 무연고 동포 방문취업제에 의해 매일 많은 조선족들이 꿈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직접 목격하기는 처음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그 장면은 더욱 가관이었다. 많은 조선족들은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연세가 꽤 되어 보이는 분도 있었지만 젊은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동정과 연민의 마음으로 하나 하나 설명해 드리고 또 일부는 직접 써 넣어 주기까지 하였다. 공항을 빠져 나와 호텔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몹시 착잡하고 무거웠다. 누가 뭐라 해도 현재 중국 조선족사회는 엄연히 격변기에 처해 있다. 300여년 전, 고국으로부터 만주땅에 이주하여 줄곧 전통적인 농경문화 속에서 살아 오던 조선족들은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현재 타의반 자의반으로 정든 마을을 떠나고 있다. 보다 윤택한 삶을 위해 한국으로, 또는 중국관내 지역으로, 또 한 시대의 인구유동을 시작한 것이다.
피를 나눈 동포이니 어떻게 보면 이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찾아 가는데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전공관계로 옌볜을 포함한 중국 동북지방 여러 조선족마을들을 답사한 적이 있는 나는 그들이 떠난 후 황폐화되거나 주인이 바뀐 마을을 목격하고서 마음이 몹시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까지도 조선족 냄새가 풍기는 이런 마을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극복하면서 억센 두 손으로 힘겹게 마련한 안식처였다. 그들이 개척한 토지는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따뜻한 삶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을들이 이젠 조선족들이 거의 다 떠나고 주인이 바뀌었으니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중국조선족들은 오직 고향을 버리고 한국에 가야만 윤택한 삶을 이룰 수 있고 다른 방도는 없을까. 솔직히 말해 중국조선족사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지성인들도 확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누가 보아도 현재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개혁 개방 이후, 특히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중국에서는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많은 치부의 길이 생긴 것이다. 부지런하고 능력이 있는 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남아 보다 높은 이윤으로 누구에게도 못지않은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족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과감하게 시장경제에 뛰어들어 스스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해 승자가 된 것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승자가 조선족들 가운데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날, 중국조선족들은 민족교육이 거둔 성취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도취되어 있었다. 중국조선족사회는 조선족들만 상대로 하는 학교교육과 문화생활, 다시 말해 유아원부터 대학교 교육까지, 그리고 각종 문화 매체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장기간 조선족들은 바로 이런 좁은 민족문화교육구조와 그 공간 속에서 생활하고 교육을 받아 왔으며 타민족과 타문화와의 교류는 적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 민족교육과 문화생활은 당시 조선족농촌에 사회적 기반을 둔 상황에서 가능하였고 또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중국이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경제정책을 이행하자 중국조선족들은 사회적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낙오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타민족문화에 대한 무지, 인적교류에 필수적인 언어소통의 빈약, 현대생활에 필요한 기능의 부족 등은 대표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조선족들이 직면한 이런 현실은 지난날 너무 민족교육만 고집하고 배타적 교육을 진행한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히 중국조선족은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이란 고국이 있어 동포란 차원에서 조선족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면서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다만 조선족들은 이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안주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국에서 준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여 일정한 기능도 배우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후, 반드시 중국에 돌아가 새로운 삶을 개척할 의식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고국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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