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과 조선족
손춘일 연변대학 민족연구원 교수
조선인은 남·북한인 지칭 조선족은 중국내 당당히 인정받는 한 민족
작년 말, 필자는 한국에서 열린 어느 한 학술세미나에 참가하여 한국 모 대학교 교수가 중국조선족 현실문제에 관하여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경청하게 되었다. 중국조선족 현실문제, 특히 조선족 인구 유동을 연구한 그 교수의 논문은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계발을 주었다. 다만 발언을 종결지을 때, 조선족 호칭에 대해 다분히 중국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지적하면서 '재중조선인' 혹은 '재중고려인' 식으로 개칭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적지 않은 한국사람들이 현재까지도 조선족이란 호칭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런 표현이 한민족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런 인식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조선인과 조선족 호칭의 차이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중 수교 이전, 중국에서 조선인이라고 하면 우선 남북한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였다. 과거 중국은 중국경내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시기에 따라 '조선간민(墾民)', '범월인(犯越人)', '한인(韓人)', '한교(韓僑)', '재만조선인', '동북조선인', '동북고려인' 등으로 지칭하였다. 이 중 조선인이라는 명칭이 주로 통용되었기에 용어로 굳어졌다고 봐야 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중국매체에서 한국인이라는 지칭이 자주 등장하게 되면서 중국인들은 요즘 조선인을 한국인과 북조선인으로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중국에서 조선인이라 하면 어쨌든 외국인으로 간주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와 달리 중국에서 조선족이라고 지칭하는 경우, 이것은 법적상 이미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을 가리키며, 이들은 중국 56개 민족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족들은 광복 후, 한반도에 귀환하지 않고 중국에 잔류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에 큰 공헌을 한 까닭에 민족 정체성을 인정받았다. 1949년 9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직전, 북경에서 열린 전국정치협상회의 제1차회의에 전국적으로 10개 소수민족대표가 정식으로 초청받았는데 여기에 동북조선인 대표도 포함되었다. 조선족 대표가 처음으로 국가적인 행사에서 다른 민족들과 함께 국가대사를 상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국민당 시절, 중국정부는 중국 국내의 민족으로 '5족'(漢族, 滿族, 蒙古族, 回族, 藏族)만 인정하였지 다른 민족들은 아예 인정하지도 않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후, 중국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변하기 위해 1950년부터 많은 학자들을 동원하여 민족 식별사업을 한 뒤 나중에 56개 민족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한인(漢人), 몽골인(蒙古人), 만인(滿人) 등 다른 민족들도 이때부터 인(人)이 아니라 족(族)을 붙여 서로를 구분하였던 것이다.
다만 신중국 초기, 중국경내 조선인을 일반적으로 조선족 혹은 조선민족으로 혼동하여 사용하였는데, 요즘은 대체적으로 조선족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조선민족이라 지칭할 경우, 혈통적으로 해내외 모든 조선인들을 포함할 수 있으므로 만약 중국경내 조선민족들만 지칭할 경우, 그래도 중국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돌이켜 보면 신중국에서 조선족들은 당당히 한 민족으로 인정을 받은 데 대해 매우 큰 자부감을 느꼈다. 지난 반일 무장투쟁과 동북지역 경제건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에 상당한 기여를 한 조선족은 다른 민족들 못지않은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거기에다 지난 50여 년 동안 조선족은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 평균문화수준이 가장 높고 예절이 바르며, 위생수준이 높아 늘 조선족으로서의 자존심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개혁 개방 후, 중국조선족의 이런 자부감과 자존심은 약간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많은 중국조선족들이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문화적 충돌로 인해 한국인들에게 주는 조선족들의 이미지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조선족들로서는 고국이 같은 민족으로서 좀 더 배려를 해주지 못하는 데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피를 나눈 민족으로서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