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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아침'은 우리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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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태초의 아침
태초(太初)의 아츰 봄날 아츰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날 아츰도 아닌 아츰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前)날 밤에 그 전(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
이 시는 사랑과 죽음은 태초의 아침 전날 밤에 마련된 것이다는 내용이다.
화자는 세상이 창조된 ‘태초(太初)의 아츰’은 ‘봄날’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생기기 전의 아침이며 그날 아침은 ‘햇빛이 푸’르른 아침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침에 ‘하와’를 의미하는 아름답고 ‘어린 꽃’인‘빨-간 꽃이 피어났’고, ‘뱀’은 ‘어린 꽃’를 사랑하여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불륜을 저지른 존재이며, 이로 인해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온 ‘독’은 ‘어린 꽃’인 하와로 인해서 생긴 것이나 이 모든 것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날 밤에 창조주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고 바이블의 창세기 설화를 해석을 하였다.
‘태초(太初)의 아츰’은 ‘하늘과 땅이 생겨난 맨 처음’ 맞이 하는 ‘아침’이다. 이 아침은 우리가 알고 있는 ‘봄날 아츰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의 ‘아츰도 아닌 아츰’으로 우리는 모르는 아침이다.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는 도치된 문자이다. 화자가 생각는 ‘태초(太初)의 아츰’은 ‘햇빛이 푸’르게 빛나는 맑은 아침이다. ‘푸른데’의 ‘-데’는 사전에 ‘하게할 자리에 쓰여, 과거 어느 때에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사실을 현재의 말하는 장면에 그대로 옮겨 와서 말함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이다. 그러나 ‘-데’는 ‘-데’ 앞에 붙은 어간의 의미와 배치되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이 생겼다는 느낌을 풍긴다. 이 일이 ‘빨-간 꽃이 피어났네’이다. ‘빨-간’은 ‘빨간’을 강조하는 말이며, ‘푸른’과 색이 대비되어 ‘정열, 아름다움, 유혹’의 느낌을 주는 색이다. ‘푸른’이 주는 ‘차분함, 맑음, 이성’과 대비된다. ‘꽃’은 관습적 상징으로 ‘여자’를 의미한다.
‘그 전(前)날 밤에/ 그 전(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는 연이 도치되었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에서 ‘뱀’은 바이블 ‘창세기’에 에 기록된 설화에 나오는 뱀이다. 이 설화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는데 뱀이 하와에게 신이 먹지 말라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게 하고 하와가 짝인 아담에게 이를 먹게 해서 신에게 죄를 짓게 했고 그 결과 죽음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화자는 ‘뱀’이 ‘하와’에게 신이 먹지 말라한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한 행위를 ‘하와’를 사랑하여 유혹한 것으로 본 것이다. ‘뱀’의 ‘사랑’의 대상은 ‘빨-간 꽃’인 매우 아름답고 정열적이며 유혹적인 ‘하와’이다. ‘하와’는 짝이 있었으므로 지금의 윤리로 보면 ‘뱀’의 ‘사랑’은 불륜의 사랑이다. ‘독(毒)’은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으로 중독(中毒)되면 죽음에 이른다. 그러므로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온 ‘뱀’의 ‘독’은 불륜으로 생긴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인간의 죽음이 온전히 ‘뱀’에게서만 온 것으로 보지 않고 ‘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기 짝을 신에게 거역하게 한 ‘하와’에게서도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린 꽃’은 하와를 말하는데 여기서 ‘어린’은 하와의 정신적 성숙도를 말하는 것이다. 아직 하와는 어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불륜인지 모르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뱀의 사랑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죽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전(前)날 밤에/ 그 전(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는 화자가 바이블을 해석하는 관점을 나타낸다. 신의 명령을 어기게 만든 뱀과의 불륜의 ‘사랑’을 한 죄와 죽음을 가져오는 ‘독’이 ‘뱀’과 ‘하와’에서 온 것이라 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이’ 그 근원을 탐구하면 ‘태초(太初)의 아츰’이 오기 전인 ‘그 전(前)날 밤에’ 이미 신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는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사상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기독교는 ‘뱀’을 신에 대항하는 적대 세력인 ‘사탄’으로 보고 인류가 영생하지 못하고 신의 명령을 거역한 죄를 지어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화자는 이 모든 죄와 죽음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마련된 신의 계획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시를 쓴 윤동주를 기독교 시인이라 하는 주장이 있는데 이 시를 보면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인 윤동주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으나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였고 기독교의 모티브를 차용하여 시를 썼으나 기독교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윤동주를 기독교 시인이라 하는 항간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전한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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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가 1942년 유학했던 일본 도쿄의 릿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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