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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 - 강천 려행 떠난 바람 이야기 / 박문희
2018년 03월 18일 23시 53분  조회:2572  추천:0  작성자: 죽림
[장시]
강천 여행 떠난 바람 이야기
박문희



 

        초장

무지개 우거진 이 땅 위에

 

억겁 묵은 바람 등에

우주가 실려 간다.

해토머리 채운 편대

넘고 있는 수림 건너

설산이 막아도 날아 넘었던 곳

양떼가 흘러가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노루, 사슴 뛰놀던 곳

멸종된 지도 까마득한 태곳적 공룡,

공룡 꿈속 후예가

갑자기 들이닥쳤나?

이 땅 산허리에 감도는

구름 가지 잡아타고

강천 여행 떠난 바람 이야기……


      제1장
아리랑의 향연


       가슴 뛰는 고향

빨간 상처 아릿한 꽃으로 피어오를 때

강바닥에 묻어 두었던 그리움

쓰린 발자국 지우면서

머나먼 길 굽이돌아 이곳까지

애련한 슬픔으로 파랗게 돋아났다네.

나뭇잎 자는 뿌리마다에

태를 묻은 언덕 꼬리표 달려 있었고

모래알 하나하나에는 꽃들이며 곤충이며

그 이름들 또렷이 새겨져 있었네.

 

마가을 날 풀메뚜기

이른 봄날 개불알꽃

앞산 동대 개살구

뒷산 마루 멧돼지

흰 자갈밭 꽃배암

노들강수 버들치
 

……
 

열린 거미발에 스며든 가냘픈 명주실

바람 타고 구름 타고 수륙만리

배부른 아지랑이 만나면

노래 한 곡에 물 한 모금 얻어 마시고

굶은 벼락 만나면

꼬리 베어 주고 젖가슴 건졌네.

이 세상 개미와 꿀벌들

머리와 손과 발과 꼬리와

볏과 부리와 날개로

꿀물 흐르는 큰 나무

보듬어 키우고 있었네.

  

——용이 날아올랐다는 우물에선

다발 꿈 보여주더군요.

열두 색 꿈 사 가지고 실컷 놀다 왔지요.

  

——정수리 빠개고 보세요.

할아버지 발자취와 숨결

두개골 안쪽에 넓적 글로 새겨져 있죠?

보이죠? 정수리 위로 항상

기회의 태양 빛나고 있잖아요?
 

——방금 전

바람이 풍향기에 전하더군요.

시간, 공간 고루 쪼개서

한 잎은 산과 물 등에 얹어 주고

한 잎은 제비 부리에 물려 주고

한 잎은 개미 허리에 동여매 주고

한 잎은 붕어 꼬리에 달아 주고

한 잎은 나리꽃 머리에 꽂아 주라고요.

  

머릿속에 잠자던 해맑은 사색

잣송이 색동별로 빛나는 아침

강변 자갈밭에는

마흔 가지 색 쓴

기역, 니은, 디귿 옥돌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네.

모래 속으로부터 삐어진 돌 하나

홀연 날개 돋치더니

하늘로 솟구치며 날아올랐네.

궁전 기둥 석순으로 솟고

아치는 사슴뿔로 퍼져 올랐네.

아리랑 명창으로 아롱진 두루미

상모 돌리는 해와 달 사랑에 취했는데

눈부신 진달래 요정

조각달에 걸터앉아

유유히 거문고를 타고 있었네.

 

잔디밭 상공에 걸린 야명주 노려

호랑이와 독수리 벌인

피비린 전쟁.

휘몰아치는 발톱과 깃털

즐거운 비명 속에 교향악 연주할 때

백산 호랑이 청산 독수리 한쪽 날개 꺾어

활활 저으며 가파른 태산 위로

뗏목 저어 가고 있었네.

  

누에는 거룩한 입으로

시상 깃든 색실 뽑아 내며

햇빛 밝은 마을 짜기 시작했다네.

아침노을에 밤하늘 달빛 띄우고

바다의 하얀 파도 소리 북방의 눈꽃

진달래 내음도 두툼하게 따다 넣고

여름밤 반딧불 가을 새벽 찬이슬

노고지리 지저귀는 노들강변 봄노래

범바위 쿵쿵 찧는 폭포수꺼정 집어 넣고

왁자지껄 온 동네 웃음꽃 짜 넣었네.

  

하이퍼시 뒤질세라 목청을 세웠네.

엉덩이에 솟은 꼬랑이

‘모험 여행’ 깃발 나부끼며

싱싱한 아치 쳐 가는 목청 맑은 우물에서

이파리 피우고 시어 길어 올렸네.

 

자 이제 타임머신 잡아타고

청룡이 쩌―억 입 벌린 까마아득한

옛 우주에로 불굴의 탐험 떠난다네.

블랙홀 할아버지 암흑 에너지 움켜쥐고

신비한 우주 서사시 캐러 가네.


     제2장
물레방아와 부엉이의 대화

 

구름 꽃바람 타고 흐르던 날

기린 앞에서 얼굴이 가마우리해지면서

고래 보이지 않는 자기 목 자랑 늘어놨다네.

——당신과 꼭 같이 내 목뼈도 일곱 개라오.

  

왜가리 흐르는 내 밟고 서서

다리 없는 물고기 한 마리 잡아먹고

흰자위로 개구리 째려봤다네.

개구리 혀초리 기다랗게 쏘아

왜가리 콧등에 앉은 파리 귀뺨 후려쳤네.

머리 받쳐 주는 개구리 목 안에서

제1목뼈 뒷다리 도와

쉼 없이 도약 준비하고 있었네.

  

보이지 않는 목 안 웅숭깊은 터널

하늘땅 돌아가는 웅글진 소리들.

저 하늘에 떠도는 뿌리 없는 섬

바다에 뜬 별들 그림자 주무르며

눈에다 세계를 새겨 넣는 위대한 방랑.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은 먹장구름에서

뛰어내린 우박과 쑥대밭 대결이요

하늘가에 펼치는 오색구름

대안 두드리려는 질주라네.

미지의 선지자들 뇌까리는 대재앙 예언에

배에 오른 신자들 흰 토끼 따라

청림 도사 찾아가더라.

  

뿌리와 잎 달걀과 암탉

중심은 노상 주변 돌아치며

위와 아래 물과 불에 구멍을 빼고

쐐기 박는 일에 땀 동이 쏟았네.

  

——뿌리는 이 세상 초석이요

뿌리가 없으면 하늘도 땅도 없노라.

  

빨간 벌레 선생 토하는 열변에

까만 벌레 선생 머리를 절레절레.

  

——하늘 날면서 바다 안으면

우주 자궁 보이니라!

잎 한 방울로 녹음방초 깨워

하늘도 땅도 물들일 수 있거늘 

임자는 어이하여 뿌리만 뿌리라

고집하는고? 바람 불어 바다 낳고

시간, 공간 부챗살로 휘저으면

손톱눈만한 씨 갈아 줄기세포에……

  

저 수평선과 지평선 경계에서

별안간 기린과 고래 길길이 날치며

서로 면상 치고 박고 야단법석.

기우뚱한 학술 논쟁 서까래

꽈배기로 비틀리며 증발하고

가람과 불 난투극에

하얀 피 꽃불처럼 터지며 

바람벽은 한 폭의 수채화 되었네.

물과 불의 불행한 혼인 영원한 동거로

막을 열고 닫기를 거듭했다네.

  

숲의 깡마른 볼에 키스하며

블랙홀에 함몰하는 성좌의 손사래는

난바다에 뛰어드는 별찌의 유언!

출렁이는 젊음이 잔솔밭 샘물로

갈한 목 축일 때

그 위를 스치는 거친 바람에도

가지와 이파리는 피어올랐네.


     제3장
추락하는 복숭아

 

불타는 집안에서

즐거운 공간 찾는 행복한 미소

윤회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짓궂은 퐁퐁 뜀으로 건너온

유년 그림자 긁어모아

저울판에 뭉뚱그려 올려 놓고

바람의 무게 떠 본다.

  

하늘 감싸고 돌아가는

바람 시대, 할아버지 손자 되고

손자가 할아버지 되다.

말쑥한 벽에 내쏜 침방울 막말덩이

돌아온 부메랑에 낯가죽이 벗겨져

엉덩이 오려다 기워 매는.

  

아 거미, 알 주머니에서 깨어난

아기 거미들에게 제 몸 찢어 먹이며

숨 꼴깍 넘기는 엄마 거미.

등때기에 암컷이 낳아 준 알집

멍에처럼 짊어지고 끝까지 가는

아빠 물자라!

  

천사 날갯짓에 악마의 심성

캡슐 먹인 메리야스

죽간과 붓 자루로

살가죽 찢고 기우며

혈관 속에 흐르는 금맥 찾아

오불꼬불 밤길 헤쳐 온

하얀 사포 천사.

 

아스라하니 깊은 심연으로

추락하는 세기 양심!

 

바다 위 빙산 뿌리 면사포

쪼르륵 찢어발기고

밑굽 나간 욕망 항아리에 꽃불 지펴

눈부시게 터뜨린다.

밤 언덕에서 굴러내린 저울추

종추(鐘錘) 되어 이 넓고 환한 개활지

천년 거목의 팔 받쳐든

눈 뜬 대문 탕탕 두드린다.


      제4장
물욕의 계절

 

아직 개구리, 배암 통잠에

빠져 있을 무렵

파랗게 물 오른 물욕이

먼저 깨어나 꿈틀거리며

활화산으로 타오른다.

 

천도(天)의 도마 위에

물고기와 지갑 몇 마리

비장하게 누워 있다.

잉어 배 짜개니 삭은 금덩이

쉰 소금 쏟아져 나오고

붕어 배 짜개니 남산더기

세기 낙원 굴러 나온다.

초어는 칼 대기도 전에

노을 동산 한 채 왈칵 게운다.

 

지하 세계 비쳐 주는 까만 신호등

메뚜기 대군 틈새로 쏟아지는 낯선 바람

쑥대밭으로 향한 표식 없는 길 어귀에서

갈팡질팡하는 송충이 무리 흐름

시간 비에 씻겨 색 바래진 입김

아픈 발자국에 주사바늘 꽂고

꿈 시궁창 빠져나온 겨울밤

날카로운 절벽 아래 혼불

빨간 혀 휘두른다.

  

감자 싹눈 거슴츠레 열고

혼돈의 지하 세계 내다보고 있다.

깊은 잠에서 깬 배암 두 가닥 혀로

이빨 감빨며 미소 짓는데

‘첩자방범(諜者防犯)’ 네 글자 새겨진

시퍼런 두 발톱눈으로

두더지, 지렁이 꼬리마디 짚어 본다.

나무뿌리 건너 너럭바위 건너 진흙탕 건너

호수 밑에서 야명주 반짝인다.

호수와 핏줄 통하는 지하수

그 새까만 빛깔 읽어 낸다.

  

쿵―! 

  

지상의 햇빛 밝은 도시

미래 그룹에 일대 소동 벌어졌다.

  

뻥―! 

  

지도에 구멍 뚫리고

도시 하나 구멍 아가리로 사라졌다.

뼉다구도 지푸라기도 남기지 않고!

  

도시 실종에 대하여 착한 단풍은

계절이 흘린 바람쯤으로 착각하는가?


      제5장
침묵하는 나팔꽃

 

나팔꽃 나팔소리 저당 잡히고

파리 씨 홍보에 나섰다.

황제 옷 걸친 알몸 마네킹들

몽환의 기억 풀어 개울물에 띄운다.

매미 그룹 구름 꽁무니에 밧줄 드리우고

뫼 허리 억겁 동굴에 새어들어 파르르 떨고

인공 지능 장착한 달변 두뇌는

겨울 서정 쪼아 먹기에

뇌즙 짜 붓더라.

  

완강한 침묵이 하품하는 틈에

집채 바위 여러 덩이 던졌건만

작은 물방울 하나 튕기지 아니하고

얄팍한 입술 통째로 뜯어다

생돌솥에 구겨 넣고 석 달 열흘 삶았어도

뜬김 한 오리 서리지 않더라.

그렇거나 말거나  

침묵 속에 얼어붙은 둥지에서도

복숭아는 복숭아대로

만발하더라. 

  

뿌―웅― 

  

자기 부리 깔고 앉아

고약한 냄새 먹이는 엉덩이 횡포에도

옴폭한 보조개 가여운 홍조 띠우며

‘무향은 호소식’이라 읊조리더라.

신종 곤충 챠챠족은

때묻은 ‘오늘 날씨 하하하’를

몽둥이 한매로 뒷간에 처넣고

‘물불 결혼 챠챠챠’란 눈부신 신조어를

깃발에 새겨 높이높이 추켜들더라.

 

개척의 용사

스포트라이트(聚光灯) 아래 내세우고

꽃 달아 주며 짓패 준 논자들 새 이야기도

한창 구수하게 구워지고 있었더니라.

산불 무리 향해 오연히 나래치는

오동나무 잎사귀 발언에

솔개천 은하수 값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더라.

맑은 소리 달여서 약에 쓰고자

온 세상 휘저으며

소리 동냥 다녔거늘 얻은 것이란

고양이 짝짓기 울음소리뿐……

  

자 이제 꿈결의 지층에서

푸른 횃불 추켜들고 먼 하늘

깊은 지심 울리는

신비한 소리에 귀 기울이라.

그림 속에 갇혀 있는 토끼나무 가지에

조약돌도 깨물어 먹는 꿈을 피우라.

사품치며 불타는 장마철 강물에

저 썩은 언어를 가차 없이 띄워 보내라.


     종장
봄은 가을 꼬리 물고 찾아온다

 

이른 아침

구름 넘어온 설산기슭에

하얀 양떼 흐른다.

동충하초 숨 쉬는 언덕

납작 엎드린 물안개 속을 뚫고

작은 산새들 이름 모를 풀잎 위로

찬이슬 맺힌 하루 시작을

지저귀누나. 

구겨진 햇살 살며시 들고

종알대는 개울물 들여다보는데

사시 윤회의 동음이

치마폭 날리며 달려오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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