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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잘하기와 관찰 잘하기...
2016년 12월 10일 20시 17분  조회:2939  추천:0  작성자: 죽림

 2. '감동'을 주는 시

  신춘문예 당선작 중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 시로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흔히 꼽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 자리에서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영산포]를 감상해볼까 합니다. 

  1
  배가 들어/멸치젓 향내에/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울었다.//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늘 같이 흐르고/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청무우를 먹으며/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빈손의 설움 속에/어머니는 묻히시고/열여섯 나이로/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강심을 높이고/황시리젓배는 곧 들지 않았다.//포구가 막히고부터/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누님은 오지 않았다./잔칫날도 큰집의 제삿날도/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들은 비워지고/강은 바람으로 들어찰 때/갈꽃이 쓰러진 젖은 창의/얼굴이었지/십년 세월에 살며시 아버님을 뵙고/오래도록 소리 죽일 때/누님은 그냥 강물로 흐르는 것/같았지.//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누님은/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말했지.//갈꽃이 쓰러진 얼굴로/영산강을 걷다가 누님은/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파도처럼 산불처럼/흐느끼며 울었지.

  2
  개산 큰집의 쥐똥바퀴새는/뒷산 깊숙이에 가서 운다./병호 형님의 닭들은/병들어 넘어지고/술 취한 형님은/강물을 보러 아망바위를 오른다/배가 들지 않는 강은/상류와 하류의 슬픔이 모여/은빛으로 한 사람 눈시울을 흐르고/노을 속에 雲谷里를 적신다./冷山에 누운 아버님은/물결 소리로 말씀하시고/돌절벽 끝에서 형님은/잠들지 않기 위해 잡풀처럼/바람에 흔들린다./어머님 南平아짐은 마른 밭에서/돌아오셨을까,/귀를 적시는 강물 소리에/늦은 치마품을 움켜잡으셨을까,/그늘이 내린 九津浦/형님은 아버님을 만나 오래 기쁘고/먼발치에서/어머님은 숨죽여 어둠에/엎드린다.
                                     ―나해철, [영산포] 전문
  
  이 시의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입니다. 경기가 제법 좋았던 영산포가 근대화 과정에서 낙후되고 마는데, 한 가족이 그 여파로 절대빈곤에 노출되면서 몰락하고 맙니다. 특히 화자의 누님은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하고(1번), 다른 식구들도 죄다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합니다(2번). 참담한 현실상황을 들려주면서도 이 시는 시종일관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한 가족의 비극이 잔잔하게 기술됨으로써 비극성이 더욱 강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2번 시에는 많은 지명이 제시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의 구체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시의 내용은 어느 일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산업화 시대였던 60년대와 70년대를 통과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농촌이나 어촌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이농의 대열에 섰습니다. 도시에 와서 산동네 주민이 되어 살길을 찾았지만 허기는 여전합니다. 농촌사회에서는 그나마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도시에 나와서는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이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관계가 되고 만 것이 더 큰 비극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노동판에 가서 일용직 노무자라도 할 수 있었지만 여자는 그 시절에 공장 노동자가 아니면 버스 차장, 그도 아니면 직업여성이라도 되어 살길을 찾아야 했었지요. 이 시는 가족사와 사회사가 함께 다뤄지고 있으며, '체험의 진실성'에 서정성과 비극성이 보태져 진한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 시를 쓴 나해철 시인은 전남의대를 나와 지금은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 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 얼굴의 여성을 미모의 여성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지닌 의사 시인이기에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시인의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연간 수입이 얼마인지 간에, 그 사실로 인해 이 시가 지닌 체험의 진실성이 흔들릴 수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시인은 이웃 혹은 일가친척 중 누군가의 체험을 진솔하게 묘사해 냈기 때문입니다.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는 제 후배여서 시 창작의 내밀한 부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아내가 운다/반지하의 네 평 방을 방을 모두 치우고/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 눈금을 만질 때 풀썩/습기 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이쪽 벽에서는 당신과 나 그리고/천장은 동생들 차지/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아랫목은 안 되잖아, 아, 아버지,//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중력을 벗어난 새 떼처럼 눈이 날린다/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덜컹거리는 사람들이 떠다니고 있다//눈발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고개를 돌렸다, 아참/장판 밑에 장판 밑에/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강을 건너 마악 변두리로/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쉽게 살아지는 것임을//성냥불을 그으며 아내의/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원동우, [이사] 전문

  요즈음에는 한국도 포장이사를 하기 때문에 가재도구를 잔뜩 싣고 이사하는 광경은 궁벽한 시골이 아닌 다음에야 보기 어렵습니다. 셋방살이를 하던 가난한 일가가 주인집 아들의 이른 제대로 말미암아 황급히 방을 비워주게 됩니다. 눈발이 날리니 초겨울인가요, 서울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로 이사를 하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습기 찬 천장 벽지가 떨어지는 반지하의 네 평 방, 그나마 연탄가스가 새던 방을 비워주게 되었으니 일가의 마음이 참담할 수밖에요. 장판 밑에 두고 온 복권에 연연할 정도로 이들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절박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이런 비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진한 감동을 주는 한 장면에 있습니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려고 성냥불을 키자 바람이 방해를 합니다. 차창이 조금 열려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 아내의 작은 손이 다가와 성냥불을 꺼트리려고 하는 바람을 막습니다.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 을씨년스런 이사 풍경을 따뜻하게 밝히고, 독자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험해도 가족 상호간에 사랑과 정이 변치 않는다면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이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이 시는 마지막 연이 백미입니다. 
  그런데 이 시로 등단한 원동우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입사하여 10년 정도 근무하였고, 퇴사한 뒤에는 벤처기업을 꾸려갔습니다. 벤처기업이 잘 안 되어 한동안 방황하다가 지금은 어떤 회사에 들어가 잘 다니고 있습니다. 시 속의 상황 중에 본인이 직접적으로 체험한 부분은 1%나 될까요? 이 작품은 시인의 완벽한 허구와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퇴근길에 차를 몰고 가면서 무심코 본 광경이 바로 이삿짐을 싣고 달리는 소형 트럭 한 대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보며 지나쳤던 이삿짐 실은 트럭을 원동우는 유심히 보았던 것이고, 곰곰이 생각했던 것이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로 써보았던 것입니다. 
  시는 이렇게도 탄생할 수 있습니다. 실체험보다 간접체험이 더욱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례를 [이사]라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등단작이 아닙니다. 함민복 시인이 시골에 계신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화가 좀체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 시는 앞의 시처럼 비장하거나([영산포]) 을씨년스럽지([이사]) 않고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 감각을 보여주어 아주 은근하게 감동을 줍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도 적절히 사용되어 재미를 배가시키지요. 

  여보시오―누구시유―
  예, 저예요―
  누구시유, 누구시유―
  아들, 막내아들―
  잘 안 들려유―잘.
  저라구요, 민보기―
  예, 잘 안 들려유―
  몸은 좀 괜찮으세요―
  당최 안 들려서―
  어머니―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전화 끊지 마세요―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쇠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함민복,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전문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만 끝끝내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아니, 모자가 일종의 동문서답을 했지요. 시인은 아무튼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었던 것이고, 소처럼 무심한(미련한?) 나에게 귀 어두운 어머니가 경을 읽어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가슴 찡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이 시를 읽으면 '아, 어머니!' 하고 마음속으로 한번쯤 외쳐보게 됩니다. 충격도 주지 않고, 이런 작은 감동도 주지 않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어렵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93년, 계간 {창작과 비평}은 김진완이 쓴 아래의 시를 투고된 많은 작품 가운데 신인 추천작으로 뽑습니다. 대학생이었던 김 시인이 어쩜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구사하게 하는지, 읽고 감탄해마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화자의 외할머니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머니를 출산하는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혜자는 엄마 이름. 귀가 얼어 톡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쥔 곳은 기차 안. 놀란 외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 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데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정을 향해 입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예편네가 피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차― 안 딸이거든요.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제가 연전에 시와시학사를 통해 낸 {백 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라는 시 해설서에서 한 적이 있으므로 그것을 그냥 적습니다.  
  시는 화자의 외할머니가 하필이면 한겨울에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달리는 기차 안에서 엄마를 낳게 된 광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승객이라고는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을 가진 농투성이들뿐이지만 이들은 낯선 아주머니의 차내 분만에 한마음으로 동참합니다. 아낙들은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고, 남정네들은 뜨신 물을 구해오고, '벙거지'는 미역 살 돈을 내놓고, 두꺼비상 여편네는 산파 노릇을 해 무사히 한 생명은 '으왕!' 울음을 터뜨리며 탄생합니다. 이런 여러 사람의 은혜로 태어났다 하여 엄마 이름이 다혜자가 되었다는 것이나, 마지막 3연이 보여주는 모성적, 혹은 한국적 건강함은 가슴 훈훈한 감동을 전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또한 꽤 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1연과 3연 사이에 위치한 '으왁!'이란 의성어가 환기하는 생명 탄생의 고통(낳은 고통만이 고통이랴, 태어나는 고통도 고통이며 지켜보는 안타까움도 고통이리)과 경이로움, "기찬"과 "기―차― 안"이라는 비슷한 음을 이용한 유머 감각 등은 이 시를 명작의 반열에 올리는 데 합심하여 공헌하고 있습니다. 
  이상 4편 시에는 가족애라는 숭고한 사랑이 담겨 있어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밑바닥 인생의 불결한 섹스조차 시인의 손에서 잘만 묘사된다면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시도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와 같이 등단작은 아닙니다. 
  
  공중변소 속에서 만났지. 그녀
  구겨버린 휴지조각으로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어.
  가는 눈발 들릴 듯 말 듯 흐느낌 흩날리는 겨울밤
  무작정 고향 떠나온 소녀는 아니었네. 
  통금시간을 지나온 바람은 가슴속 경적소리로 파고들고
  나 또한 고향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미아,
  배고픔의 손에 휴지처럼 구겨져, 역 앞
  그 작은 네모꼴 공간 속에 웅크려 있었지.
  사방 벽으로 차단된 변소 속, 
  이 잿빛 풍경이 내 고향
  내 밀폐된 가슴속에 그 눈발 흩날려와, 어지러워
  그 흐느낌 찾아갔네.
  그녀는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어도
  새벽털이를 위해 숨어 있는 게 분명했어. 난 눈 부릅떴지.
  그리고 등불을 켜듯, 그녀의 몸에
  내 몸을 심었네. 사방 막힌 벽에 기대서서, 추위 때문일까
  살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지만
  솜털 한 오라기 철조망처럼 아팠지만 
  내 뻥 뚫린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머리 위
  작은 창에는, 거미줄에 죽은 날벌레가 흔들리고 있었어. 그 밤.
  내 몸에서 풍기던,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던 악취는
  그 밀폐의 공간 속에 고인 악취는 얼마나 포근했던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네. 마약처럼
  하얀 백색가루로 녹아서 내 핏줄 속으로 사라져간
  그녀,
  독한 시멘트 바람에 중독된 그녀.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
  그녀의 품속밖에 없네.
                                     ―김신용, [공중변소 속에서] 전문

  이 시를 쓴 김신용 시인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으니 무학입니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생을 영위해온 시인의 젊은 날의 로맨스인지 모르겠습니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의 공중변소가 많이 청결해졌는데 그 전에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공중변소에서 화자는 한 여자를 만나 정사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녀는 마약중독자였고 도둑이었습니다. 거지 행색을 하고 있었을 텐데 악취를 풍기기까지 했으니 보통사람 같았으면 가까이 가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날 무엇에 홀린 듯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던 것이고, 화자는 두고두고 그날을 못 잊어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그녀의 품속밖에 없다"고 애틋해하는 것입니다. 독자에 따라서 이 시를 읽고 역겨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성간의 사랑이 반드시 플라토닉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밑바닥 인생들의 하룻밤 풋사랑도 당사자에게는 애틋한 추억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음습한 그곳에 희미한 빛을 비춰보고자 했고, 두 사람이 나눈 사랑도 충분히 따뜻한 것이었다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감동의 결은 다르지만 저는 이 시를 감동적인 시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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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 장석주(1955∼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좋은 시인이 지닌 몇 가지 덕목이 있다. 그중의 하나는 ‘관찰 잘하기’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세상 만물을 당연하지 않게 보라. 이것이 시를 쓰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흔한 것을 새롭게 보라니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읽어 보면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작은 대추 한 알로 꽉 채워져 있는 이 시는 대추를 잘 관찰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원래 대추는 비싸고 귀한 과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를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비싼 것이 대수일까. 그와 상관없이 분명 대추는 귀하고 장한 과일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그 증거들을 조목조목 찾아냈다. 대추는 지금 한창 익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익는 것이란 얼마나 장한 일이냐. 태풍, 천둥, 벼락, 번개를 대추는 비명 하나 없이 견디어 냈다. 고생을 견딘 대추는 붉게 익을 수 있었다. 
 

 

 대추의 모양이 점점 둥글어 가는 것 또한 몹시 장한 일이다.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닌데 대추는 저 혼자 열심히 크고 있다.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을 꿀꺽꿀꺽 먹고 대추는 둥실둥실 자라났던 것이다. 고맙고 기특한 일이다. 시인은 감탄과 경외감을 담아 대추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대단하구나, 너는 세상을 잘 살아냈구나. 

 이쯤 되면 이 시가 대추에서 시작하지만 대추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의 쓴 것과 단 것을 제 안에 품고 자라나는 모든 존재는 훌륭하다. 엄마가 일해도 무럭무럭 자라주는 아이는 벌써 훌륭하다. 취업하려고 애쓰면서 자책하는 젊은이는 이미 훌륭하다. 많은 것을 잃어가며 세상을 알아가는 어른들 역시 훌륭하다. 천둥 같은 시련에 붉어진 얼굴과, 땡볕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깨는 훌륭하다. 믿지 못하겠거든 대추를 바라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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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시를 "감춤"과 "드러냄"의 사이에서 맛갈스레 빚어야... 2016-12-12 0 2458
22 시인은 늘 예민한 촉수로 훌륭한 시를 빚기 위해 정진해야... 2016-12-12 0 2571
21 시쓰기는 "참 나를 찾고자"하는 고행이다... 2016-12-12 0 2559
20 시인도 "완전무장"을 해야 좋은 시를 쓸수 있다... 2016-12-12 0 2587
19 "썩을 놈! 어떻게 요런 시를 다 썼을깜?!..." 2016-12-11 0 2809
18 시작은 "가장 쉬운 말로, 최대한 짧게, 가장 깊은 울림"으로... 2016-12-11 0 2562
17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시인이 쓰는것... 2016-12-11 0 2666
16 참 시인 되자면... 2016-12-11 0 2707
15 시 "승무"를 삭히는데 3년이나 걸리다... 2016-12-11 0 2430
14 <술> 시모음 2016-12-11 0 2537
13 [시문학소사전] - 실존주의란?... 2016-12-11 0 4517
12 詩作 잘하기와 관찰 잘하기... 2016-12-10 0 2939
11 詩人은 관찰력과 상상력이 진부해서는 절대 안된다... 2016-12-09 0 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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