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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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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 되는것보다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게 낫다"...
2018년 03월 06일 20시 58분  조회:2421  추천:0  작성자: 죽림

<문명에 관한 시 모음> 

+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한 물 두 물 사리 한개끼 대개끼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함민복·시인, 1962-) 


+ 참다운 문명 

참다운 문명은 
산을 파괴하지 않고 
강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을 망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하리 
(다나카 쇼조·일본의 정치가, 1841-1913) 


+ 문명은 

우리는 문명이 생명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수도는 멸균되었지만 물맛을 잃었다. 
형광등은 밝지만 세포를 파괴한다. 
차는 빠르지만 걷기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야마오 산세이·일본 시인) 


+ 참된 삶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 
(체 게바라·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 1928-1967) 

  
+ 거인 아파트 

우리 집 옆에 
키가 40층이나 되는 
거인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2층짜리 우리 집은 
난쟁이처럼 작아졌습니다. 

거인 아파트는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햇볕을 꿀꺽꿀꺽 삼켜 버리고 
바람도 후룩후룩 마셔 버립니다. 

우리 집에는 이제 
음지 식물만 키워야겠습니다. 
(박승우·아동문학가) 
  

+ 고기만 먹을 거야 

-난 야채 안 먹을 거야 

고기만 먹을 거야 

-그러면 야채가 서운하지 

상추가 밭에서 꿀꿀, 기어다닐지도 몰라 

쑥갓이 꼬끼오, 목을 빼고 울면 어떡할래? 

시금치 이파리에 소뿔이 돋는다구! 
(안도현·시인, 1961-) 


+ 도시와 시골 

같은 비행기 소리라도 
우리 마을에선 
집이 흔들리며 시끄러운데 
시골 할아버지 댁에선 
풀 뽑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며 
허리를 펴게 한다. 

같은 자동차 소리라도 
우리 마을에선 
창문을 꼭 닫아걸고 
소리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 
시골 할아버지 댁에선 
누가 오려나 
자동차 소리를 기다린다. 
(최갑순·아동문학가) 


+ 신축 건물 철근 속에 둥지 튼 까치 신혼부부 

까치는 이젠 더 이상 
좋은 새가 아니다 

인간 근처에서 내몰린 
까치 한 쌍이 
4월 봄  
예전엔 찬란했을 백제 궁궐터 
왕궁에 
함박눈발이 세차게 내린 날 
엮어진 철근이 벌겋게 녹슬고 
바람에 흔들려 위태로운 꼭대기에 
새신랑 까치 
나무줄기를 연신 나른다 

먼 발치서 
불안하게 
지켜보던 
새색시 까치 
슬픈 눈하고 
만삭 몸으로 둥지로 날아든다 

내일 
모레면 
공구리칠 테고 
쎄멘 속에 잠길 
까치 신혼 둥지 속 
아빠, 엄마 따사한 온기 속에 
커가는 
까치 알들이 
슬프다 
(고영섭·시인, 1963-) 


+ 마음의 방  

방문을 열면 
그 너른 들판이 펄럭이며 다가와 
내 이야기를 듣는 벽이 된다 

그저 떠돌던 바람도 
큰 귀를 열고 따라 들어온다 
커피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노라면 

나는 잊혀진 왕족처럼 적막한 고독감과 함께 
잃을 뻔한 삶의 품위를 기억해낸다 
마음의 4분의 1은 외롭고 또 4분의 1은 가볍고 
나머지는 모두 
무채색의 따뜻함으로 차오른다 

두어 개 박힌 대못 위에 
수건 한 장과 거울을 걸어두는 것 
그리고 몇 자루의 필기구만으로 
문명은 충분한 것임을 깨닫는다 

마음속이 
작은 방만큼만 헐렁했으면 
(김수우·시인, 부산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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