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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야, 나와 놀자...
2017년 06월 19일 22시 48분  조회:2437  추천:0  작성자: 죽림

민들레 시 모음

 

              

민들레
- 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민들레 
- 류시화​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민들레 홀씨 되어

박미경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모를 꽃을 보면서

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
산등성이의 해 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 님의 두 눈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되어
강바람 타고 훨 훨 네 곁으로 간다

 

민들레

조 현경

지나는 사람마다 이리 저리 밟고
그 모진 발길 질 참고 참으며
너하나 키우려고 터잡으니 갓길에

고생끝에 피운 하이얀 꽃
어이 아름답지 않으리
이 시련의 세월이

애지중지 키운 봄바람속 홀씨들
훨훨 창공을 날아가려므나
너희들 자유찾아 행복을 찾아
굿세게 자리 잡고 살아 가거라

내 곁을 떠나가네
사랑하는 나의 홀씨들
바람따라 그리우면 하늘을 보리
창공을 날아 갔던 그 푸른 하늘을

 

민들레

겨우내 어두운 땅 속에 누워있다
얼굴 내밀어 봄 소식을 알려요.
기쁜 마음으로 전하고 싶은 소식
봄은 따스한 금빛 햇살로 오고
떠났던 것 돌아 와 세상 밝아져요. 
햇살이 꽃 잎에 내려와 앉아
얼어붙은 땅과 가슴을 녹여요.
고만한 키와 얼굴의 친구들 보며 웃고
봄이 왔음을 온 들에 알리고 난 후
작은 꽃으로 할 일 다 했다는 듯
어렵게 찾은 자리 미련 없이 떠나지요. 
멋적은 이별의 말도 없이,
씨앗을 품고 바람에 날려 가며
어느 외로운 가슴에 뿌리내려 웃을지 
잘 꾸며진 화단이 아니면 어떤 가요?
버려진 땅, 어둡고 그늘진 구석이라도 
민들레 가면 햇볕 따라가 어느 땅이고
민들레 웃으면 환하게 밝아지지요.

 
 

+== 민들레 ==

민들레는 왜 
보도블록 틈 사이에 끼여 
피어날 때가 많을까 

나는 왜 
아파트 뒷길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날이 많을까


(정호승·시인, 1950-)


+== 민들레 == 

우리 집 앞
시멘트 틈 사이
민들레 한 포기.

쇳덩어리도 아니고
돌덩어리도 아닌데

승용차가 지나가도
죽지 않고
짐차가 지나가도 
죽지 않고.


(서정홍·농부 시인, 1958-)


+==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곽재구·시인, 1954-)


+== 너 닮은 꽃 민들레 ==

돌 틈에 피어 있는
너 닮은 꽃 민들레
시멘트 담 사이로 고개 내민
훤하고 착한 얼굴
작지만 약하지 않은
네 웃는 모습 보며 나는
네 노란 웃음 보며 나는
네게 가 안기고 싶다.
힘들어도 표 내지 않는, 
밟혀도 꺾이지 않는,
네 얼굴 보며 나는
한 아름 하늘을 안고 싶다


(김재진·시인, 1955-)


+== 민들레 == 

이 봄 무슨 죄가 방마다 차고 넘치길래
감금할 방도 없나 

구치소 처마 밑 
노오란 빈혈이 동전처럼 번지는 얼굴들 
삼삼오오 머리 맞대고 앉아서
돌려피우는 담배 한 대

담배 꼬나물고 있던 그 자리에
빛바랜 수의 고스란히 벗어두고
낙하산부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구치소 담벼락을 훌쩍 뛰어 넘고 있다

무슨 죄가 저리 가벼울까


(김나영·시인, 경북 영천 출생) 


+== 민들레처럼 ==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할 저 투쟁의 길에 
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아­아 민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 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박노해·시인, 1958-)


+== 민들레 ==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내 인생의 백지 위에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진술 같은 
착한 시 몇 줄 쓰고 싶네 

흙먼지 풀풀 나는 길섶에 
가난하게 자리 비비고 
기침 콜록이며 한세월 살았어도 
밟히고 밟힌 꽃대궁 힘겹게 일으켜 세워선 
어느 날 아침 노랗디노란 꽃 한 송이 피워 
그 누가 보든 말든 
민들레라 이름지어놓고 홀씨나 되어 
바람 좋은 날 있으면 그냥 서운할 것도 없이 
이 세상 홀홀이 떠나면 그만이듯 

버리고 버린 나날 끝에 
그런 시 몇 줄 쓰고 싶네


(이인해·시인, 1945-)


+== 별과 민들레 == 

파란 하늘 그 깊은 곳
바다 속 고 작은 돌처럼
밤이 올 때까지 잠겨 있는
낮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꽃이 지고 시들어 버린 민들레는
돌 틈새에 잠자코
봄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
튼튼한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가네코 미스즈·27살에 요절한 일본 여류 동요시인)


+== 민들레의 노래 == 

나의 자리가
아무리 낮다고 해도

하늘 아래
땅 위인 것이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높은 산도 

지상에서  
우뚝 키가 큰 꽃도 

까마득히
하늘 아래 있듯이

나 또한 
그렇게 있는 것이다.


(정연복·시인, 1957-)

 

 

 

+== 민들레 == 

은밀히 감겨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차라리 입을 다문 노란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없어
하얗게 머리 풀고 솜털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바람한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민들레 홀씨 == 

홀씨 몇 개 구름으로 떠간다 
어딘지 모르지만 그 막막함을 이기고 
하 깊은 세상을 향해 
훌훌 떠나간다 
홀로 선다는 건 외롭고도 두려운 일 
그 굴레를 벗어 던지고 지금 가는 저 길을 
홀씨의 무한도전이라 말하면 안 되나 

으라차차 
바람의 화랭이가 되어 
가벼웁게 날아가는 처녀비행 
그 거리낌없는 솟구침, 
그러나 홀씨에게도 
절묘한 타이밍이 있다 
제 몸 우주로 뽑아 올릴 최적의 바람이 불 때까지 
끈덕지게 기다리는 인내가 있다 

홀씨 깊숙이 따라가 보면 
오늘을 있게 한 민들레의 아픔이 있다


(신종범·시인, 1960-)


+== 하얀 민들레 ==  

이제는 짐을 줄여야 할 나이 
날아갈 듯 가벼워야 하리라 

버릴 것 찾아 창고를 뒤지다 마주친 
전기밥솥, 점잖게 앉아 있다 
보름달처럼 둥실한 몸통에 앉은키도 의젓한 십인 용
그만은 해야 두 애들 도시락에 남은 식구 점심이 되었지 
오로지 취사와 보온에만 속을 달구던 것이 
쥐 빛 머리 위로 먼지가 보얗다 

저녁에 쌀 씻어 앉혀 놓고 
새벽에 단추만 살짝 눌러 주면 
밥물 넘을 걱정 없이 단잠 한숨 더 재워 주고 
추운 겨울 따시게 밥 품어 주던 
저것이 언제 창고로 밀려났더라? 

쌀도 웬만한 열로는 응어리가 안 풀려 
압력으로 암팡지게 열을 올려야 
찰진 밥이 되는 세상에서 
찰기 없는 밥 품고만 있던 어느 날 
날벼락 맞듯 창고로 밀려났으리라 

오늘도 청암 양로원 담장 밑엔 
나란히 나부끼는 하얀 민들레들


(조미자·시인)


+== 민들레 압정 ==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이문재·시인, 1959-)


+== 민들레와 제비꽃 ==

보도블록 
틈새를 뚫고

세상에 얼굴을 내민
작고 낮은 꽃

진노랑 민들레와
연보라 제비꽃

오순도순 
다정한 동거 속에

더없이 밝고
행복하게 웃고 있네.

너도 작고
나도 작지만

너도 낮고
나도 낮지만


나란히 함께 있어 
참 좋다고.

 

(정연복·시인, 1957-)

+ 서울 민들레  

보도블럭 틈새에 
노랗게, 목숨 걸었다 
코흘리개 아이들 등교길 따라가다 
봄 햇살 등에 업고 장난치며 
놀다가, 길을 놓쳤다 
꿀꺽-- 서산으로 넘어가는 
봄.
(김옥진·시인, 1962)

 

+ 꽃의 자존심

뭉쳐놓은 듯 버려놓은 듯 땅에 바짝 엎드려
꽃자루 없이 앉은 앉은뱅이 꽃 피우는 노랑 민들레

흔해서 보이지 않고 흔해서 짓밟히는 꽃이 제 씨앗
은빛으로 둥글게 빚는 바로 그 순간

하늘로 꽃대 단숨에 쑥쑥 밀어 올리는 꽃의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정일근·시인, 1958-)


+ 민들레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홀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홀씨들의
여려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윤학·시인, 1965-)


+ 민들레

풀씨로 흩날려 
산천을 떠돌다 
못 다한 넋이 되어 
길가에 내려앉다 

곧은 심지를 땅 속에 드리우고 
초록이 어두워 대낮에도 노랗게 불 밝히며 
겸손되이 자세 낮춘 
앉은뱅이 꽃이여! 

불면 퍼지는 하이얀 씨등 
바람결에 흩날려도 
머무는 곳 가리지 않는 
떠도는 넋이여, 
끝없는 여정이여! 

뜯겨도, 짓밟혀도 
하얀 피로 항거하며 
문드러진 몸을 털고 
다시금 고개 드는 끈질긴 생명 
(손정호·시인)


+ 신기한 노랑 민들레 하나 
  
3월 14일
따뜻한 오후
2004년

신기하다 
노랑 민들레 하나

잎은 바짝 땅에 붙고
꽃대도 없는
노랑 민들레 하나

자갈 깔린 마당
돌 사이에 피어난
노랑 민들레 하나

놀랍다는 느낌이
가슴에서 배로
스쳐 간다

정말 처음이야
저 노랑 민들레는
정말 신기해
(김항식·시인, 1925년 만주 흑룡강성 출생)


+ 민들레꽃 연가
   
한적한 논둑 길
이름 없는 들풀 속에 자라나서
어느 봄날 
노란 꽃잎 곱게 펼쳐
미소를 보낼 때
그때도 당신이 모른 척하시면

그리움으로 맺힌
씨앗 하나하나에
은빛 날개를 달아서
그대 창에 날려보내노니
어느 것은 바람에 방향을 잃고
어느 것은 봄비에 쓸려가기도 하겠지만

간절한 그리움의 씨앗 하나
그대 창에 닿거든
무심히 버려둬서 
척박한 돌 틈에 자라게 하지 말고
그대 품 같은 따스한
햇살 잘 드는 뜨락에 심어서
이듬해 봄 화사하게 피어나면
내 행복의 미소인냥 아소서 
(이임영·시인)


+ 나는 민들레를 좋아합니다 

꽃집에는
민들레꽃이 없습니다.

그것은
팔 수 있는 꽃이 
아닌가 봅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과 다정함
우정과 소중한 사람을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야생으로 자라나
한적하게 꽃을 피우고
마침내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힐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나는 당신에게
민들레꽃 하나를
꺾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몹시 원망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았습니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드레아 슈바르트·독일)


+ 앉은뱅이 부처꽃 

천지 사방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지은 그는 
이름 없는 목수였다 
갈 봄 여름 없이 
연장통을 옆에 끼고 
삼천대천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암자를 지었고 
지붕 위로 날려온 흙 위에도 초가를 지었다 
눕는 곳이 집이었고 
멈추는 곳이 절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요사채 말석에 
가부좌를 틀고 웅크리고 앉아 
문득 한 소식을 얻었는지 
노오란 안테나를 하늘로 띄우며 
꽃씨 몇 개 날리며 천리 길을 떠나는 그는 
제 앞으로 등기한 집 한 채 없이도 
바닥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오늘은 민들레꽃이 세운 집 한 채를 보았다. 
(고영섭·시인, 1963-)


+ 작은 잎사귀들이 세상을 펼치고 있다

시멘트 블록과 블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돋아있는 민들레 잎사귀들이 작은 실톱 같다
이제 막 시멘트 블록을 힘들게 톱질하고 나온 듯하다 
무엇이 저렇듯 비좁은 공간을 굳이
떠밀고 나오게 했을까
저 여리고 푸른 톱날들을 하나도 부러뜨리지 않고 
시멘트 블록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다
이제 꽃대를 올리면 금빛 꿈의 꽃망울이 허공에 반짝
피어나겠지
시멘트 불록과 불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작은 민들레 한 포기 푸르게 펼쳐놓은 세상을 본다
저 푸른 세상 속 그 무엇이 이렇듯 나를 잡아끌고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짐짓 끌려가 또 한 세상 깜빡 빠져드는 것일까
시멘트 블록과 블록 사이 가느다란 틈 사이
실톱 같은 작은 잎사귀들이 푸르게 세상을 펼치고 있다 
(이나명·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민들레 압정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이문재·시인, 1959-)



+ 민들레, 너는 

돌부리 널브러진 땅 
온 힘 다해 내린 뿌리,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서로를 껴안으며 
겹겹이 돋아 
노랑 꽃대를 
밀어 올렸다. 

민들레, 너는 
금메달에 빛나는 
역도 선수다. 
(장화숙·아동문학가, 1960-) 


+ 아기 손바닥 

아까부터 
담을 넘으려는 
민들레 홀씨 하나 

어른들 모두 
그냥 가는데 

엉덩이 
살짝 들어 
넘겨 주고 가는 
아기 손바닥 
(안영선·아동문학가) 


+ 민들레꽃 

노란 신발 신고 
나에게 
가만가만 다가와서 
봄햇살 쬐고 있는 
쬐고만 여자 아이.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낙하산 

까만 몸 
머리엔 하얀 솜깃 꽂고 
나는야 한 알 민들레 꽃씨. 

동네 아가들 
호, 입김에 
하늘에 둥실 

<민들레 낙하산>
<민들레 낙하산>

예쁜이, 그 고운 입으로 
붙여준 이름 

한길가 
먼지 속에 누웠어도 
지금, 나는 
아흔 셋 
알알이 흩어진 
내 형제들 생각 

꽃구름 보며 
별을 헤며 
돌아올 봄 기다려 
노란 꽃잎 
노란 나비떼 꿈꾸는 
나는야 
낙하산을 타고 온 
한 알, 민들레 꽃씨. 
(윤두혁·아동문학가) 


+ 민들레 

누가 불렀니 

가난한 시인의 
좁은 마당에 
저절로 피어난 
노오란 민들레 

해질녘 
골목길에 울고 섰던 
조그만 애기 

두 눈에 
눈물 아직 매달은 채로 
앞니도 한 개 빠진 채로 
대문을 열고 들어섰구나 

만 가지 꽃이 피는 
꽃밭을 두고 
가난한 시인의 
좁은 마당에 

환하게 불을 켠 
노오란 민들레. 
(허영자·시인, 1938-) 



+ 민들레꽃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시인, 1920-1968) 


+ 민들레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신용목·시인, 1974-) 


+ 민들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송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둘러앉아 
둥글고 낮은 한 생애를 피워낸다 
노랗게 화장한 얼굴들 뒤로 
젖은 거울 한 개씩을 숨기고 
원무를 추는 시간의 舞姬들 
깊은 바람을 품고 사는 꽃들일수록 
낮은 땅에 엎드려 고요하다 
한 계절의 막이 내리고 
텅 빈 무대 위에서 화장을 지울 때면 
삶이란 늙은 여배우처럼 쓸쓸한 것 
무거운 욕망들을 게워낸 무희들은 
하얀 솜털 날개 속에 
부드러운 씨앗들을 품고 
허공으로 가볍게 솟아오른다 
허공 속에서 바람과 몸을 섞고 
바람의 아기들을 낳는다 

오,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에 매달려 
다시 지상으로 탯줄을 묻는 
삶, 무거운 꽃 
(이경임·시인, 1963-) 


+ 민들레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홀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홀씨들의 
여려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윤학·시인, 1965-) 


+ 민들레 

영문도 모르는 눈망울들이 
에미 애비도 모르는 고아들이 
담벼락 밑에 쪼르르 앉아있다 

애가 애를 배기 좋은 봄날 
햇빛 한줌씩 먹은 계집아이들이 
입덧을 하고 있다 

한순간에 백발이 되어버릴 
철없는 엄마들이 
(정병근·시인) 



+ 민들레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퉁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친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 중에 수천 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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