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속에 무르녹아 있는 시어와의 만남을 류의하라...
2017년 04월 19일 01시 29분  조회:2707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창작 강의-
많이 읽기와 모든 것들에 대한 사유 / 김송배

1-2. 詩를 많이 읽어 보자

시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독자로서의 시읽기가 아니라 시에의 올바른 접근을 위한 정독(精讀)을 말합니다. 하루에 몇 권의 시집을 독파하는 것이 아니라, 시 속에 무르녹은 의미와 시어에 유의하면서 음미해보는 것이 시와의 만남을 더욱 가깝게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 읽기에서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유의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① 시를 정독하라
시는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시 속에 함축된 의미의 암시나 상징. 그리고 의미의 변용을 통해서 정서적, 감각적인 미적 감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 시인의 시를 통해서 시인의 미적 감동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책을 읽고 간접적인 체험으로 지식과 인격을 느끼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의식으로 지식을 넓혀나가는데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독은 시를 이해하는데는 가장 효과적이며 적절한 방법입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 속에 감춰진 함축적 의미의 발견이나,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무엇인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감명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② 감명을 받았거나 감동을 준 부분은 다시 읽고 재해석을 해보라
  시집 한 권을 읽다보면(시집 한 권에는 60~70편의 시가 수록됨) 그 중에 유독 몇 편은 친근감이 가고 감동을 받는 시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일은 내가 직접 쓴 것 같은 것이거나 내가 간직한 시적 상상력, 또는 체험 속에 곰삭은 어떤 의지가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이 유사성은 시와의 친숙한 정감을 불러 일으켜서 시인이 그런 체험을 어떤 방법으로 해서 시창작을 성공시키고 있느냐하는 관심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시가 마치 스스로 쓴 듯이 뜯어보고 분석해보며 음미하는 일이 계속되면 스스로 자신이 시작과정을 재구성해 본 것과 같이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상상력이나 사물을 보는 시각, 그리고 표현하는 방법 등이 부족함을 절감하면서도 이렇게 쓰는 것이 감동을 주는 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바로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하는 잠재력이 이미 발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③ 마음에 새겨지는 시의 행(行)이나 연(聯)은 그냥 음미로 그칠 것이 아니라, 노트에 옮겨 써보는 일도 중요하다.
  물론 외워버리면 더욱 좋겠지만 이때 옮겨 적는 과정에서 문득 새로운 무엇을 발견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렇게 옮겨 적는 일이 많아지면 자신이 생각했던 시어(詩語)들을 동원하여 바꾸어 본다든지, 몇 마디를 생략해 본다든지, 또는 새로운 이미지(image)를 첨가해주는 일 등은 시창작 연습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한편 이런 것들이 모작(模作)이건, 창작(創作)이건 간에 시 쓰는 행위가 될 것이며 이 행위야말로 바로 시 쓰기의 경험으로 연결되는 시적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시편들도 그냥 던져버릴 것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항상 필요합니다. 어떤 형태의 해석이든 자신의 의식으로 접근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1-3. 모든 것들에 대한 많은 사유(思惟)가 필요하다.

시는 어쩌면 많은 사유에서 탄생되는지도 모릅니다. 많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곧 사유하고 사색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력이 동반하게 됩니다. 조그마한 일상생활에서부터 차원 높은 우주관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은 사유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유 속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인생관이 있으며 일생동안 기필코 성취되어야 할 목표인 꿈과 희망도 있습니다. 시 쓰기에서 많은 사유가 필요한 점도 시인의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많이 사유한다는 것은 많은 상상력을 빚어낸다는 뜻입니다. 이 상상력도 진실된 인생의 고민이 담겨져야 합니다. 상상은 결국 나 자신의 정서와 밀접한 관계에 놓입니다. 정서는 모든 사상(事象)에 부딪혀을 때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을 말합니다.
  심리적으로는 자극이 되는 대상에서 강하게 일어나는 감정으로서 또는 신체적인 변화가 뚜렸한 것으로서 일정한 상태로 지속되다가 끝나거나 다른 정신상태로 옮겨가는 의식의 과정을 말합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慾)의 칠정(七情)이 우리의 오관(五官-눈, 귀, 코, 혀, 피부. 우리 몸에서 감각을 일으키는 다섯 개의 기관)을 통하여 경험하는 정신적인 산물이 됩니다.
이러한 정서의 올바른 비축을 위한 사유는 창조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르테면 '겨울나무'를 응시하면서 시적인 사유로 발전하려면 그 추운 겨울을 인내하면서 새봄의 루르름을 꿈꾸는 희망으로 바꾸어보는 사유, 즉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과 미래의 유추로 연관짓는 사유가 필요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잠시 조병화 시인의 말을 들어 봅시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내면의 고독과 싸워 왔다. 그 생(生), 애(愛), 사(死) 그 존재와 생존, 그 순수허무와 그 순수고독과 싸워 왔다. 항거와 순응, 그걸 살아오고 있는거다. 그게 나의 시이며 시론이며 존재 양상인 거다.
인간은 누구나 한정된 자기 수명을 살다 가는 거다. 그 한정된 시간을 견디고 살다간, 또 다른 세계로 이사를 가야하는 거다.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 죽음이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이 나의 테마이며 나의 작업인 거다 때문에 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나를 철학하기 위해서 오로지 사색해 왔을 뿐이다. 나를 세우기 위한 철학, 그 발견과 창작의 철학 속에서 시를 배회했고 시의 이치를 찾았고 그것으로써 시를 써 왔다.

이와같이 어떤 사물이건 관념이건 간에 모든 것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의미를 찾아보는 사유, 이러한 사유야말로 시를 쓰기 위한 사유가 아닐까 싶다

======================================================================

 

 

 

애가(哀歌) 제14 
―프랑시스 잠(1868∼1938)

“나의 사랑하는 이” 너는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이” 나는 말했다.

“눈이 오네.” 너는 말했다.
“눈이 오네.” 나는 말했다.

“좀더, 좀더” 너는 말했다.
“좀더, 좀더” 나는 말했다.

“이렇게, 이렇게” 너는 말했다.
“이렇게, 이렇게” 나는 말했다.

 

 

그런 뒤, 너는 말했다.
“난 네가 정말 좋아.”

그리고 나는 말했다.
“난 네가 더 정말 좋아.”

“여름은 갔어.” 너는 말했다.
“가을이 왔어.” 나는 답했다.

그 뒤 우리의 말은
처음처럼 비슷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너는 말했다.
“내 사랑아, 네가 참 좋아.”

매맑고 숭고한 가을날의
노을 눈부신 저녁빛을 받으며.

나는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주렴.”



 

 

조흔파 선생의 한 명랑소설에 이 시의 첫 연이 실려 있었다. ‘이게 다야? 별 싱거운 시도 다 있네’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내 감상이었다. 그런데 그 시구가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나의 사랑하는 이, 너는 말했다./나의 사랑하는 이, 나는 말했다.’ 짧고 쉽기도 했지만 뭔가 새콤달콤한 맛이 감돌았기 때문이리라. 제목도 지은이도 몰랐던, 내 어린 날의 사랑의 시여라.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게 ‘너를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이런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좀더, 좀더” “이렇게, 이렇게” 연인 둘이 동시에 같은 말을 웅얼거린다. 보는 이가 수줍어지도록 숨 가쁘게 펼쳐지는 사랑의 정경을 시인은 간결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처리한다. 그런데 제목이 왜 애가일까? 그러고 보니 둘째 연에서는 눈이 온단다. 시의 배경은 이제 막 여름이 지난 가을인데 눈이 오다니…. 베개라도 터진 걸까? 아니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횡설수설일까? 어떤 말도 맞장구치던 연인들이 제가끔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는 건 사랑이 기우뚱거리는 조짐일지도. 그러다 할 말이 뚝 끊기겠지. 사랑의 조락(凋落)을 암시하듯 때는 가을날 저녁, 창밖 하늘에 진홍빛 노을이 가슴을 죄며 퍼져 나가네. 내 사랑아, 다시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해주렴!
 

시창작 강의-1 (나도 시를 쓸 수 있을까...)  

ㅁ 강의를 시작하면서

  안녕하십니까? 김송배 시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삶에 있어서 가장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이러한 의문은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21세기 과학과 물질문명 그리고 황금만능의 참 살기좋은 세상에서도 우리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답답하다고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마음 한쪽에 응어리진 그 무엇을 풀어봅시다. 여기 문학이라는 약발 좋은 처방이 있으니 이리로 오십시오. 우리는 그토록 쓸모 없을 것이라고만 여겼던 시 한편이 우리의 쳇증을 맑끔히 씻어내리는 비방이 숨어 있었음을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부터 cyan,co.kr에서 새롭게 기획하는 '시창작 강의'에 동참하여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시창작의 세계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지 않으시렵니까? 시창작에 대한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서 나도 시를 쓸 수 있게 되고 나아가서는 시인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향제시와 그 비법을 공개하리다.
  이제부터 차근차근하게 그리고 열과 성으로 강의를 경청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맞게될 것을 확신하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같이 본인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수료하고 박목월 선생님이 주관하신 월간 <심상>에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서울허수아비의 수화><안개여, 안개꽃이여><백지였으면 좋겠다><황강><춤추는 이방인><시인의 사랑법><시간의 빛깔, 시간의 향기>등의 시집과 <허물벗기 연습>시선집과 <화해의 시학><체험의 시학>등 시론집, <시인, 대학로에 가다><그대 빈 가슴으로 대학로에 오라><시보다 어눌한 영혼은 없다><지성이냐, 감천이냐>등 산문집 그리고 <시가 보인다, 시인이 보인다>는 시창작법을 간행하고 제6회 윤동주문학상과 제1회 탐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는 한국예총에서 발간하는 월간 <예술세계>주간직을 맡고 있으면서 KBS방송문화센터 시창작반에서 강의를 6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함께 시창작에 대한 문제들을 풀어봅시다.  

1. 나도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도 과연 시를 쓸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시를 처음 배우고자하는 시람이나 시를 처음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공통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한 마디로 이것이다하고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사람을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시 쓰는 일이 수학문제를 풀 듯이 어떤 공식이 있거나 어떤 일정한 틀에 맞추어 넣는 그런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선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여 유심히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시인이었다.(C.D 루이스)
  젊어서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R.M 릴케)
  인간은 사랑을 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플라톤)
  이렇게 본다면 누구나 시적인 자질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젊을 때에는 시적인 감성이나 정서 또는 시적인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넘쳐나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이라고 해서 특이한 감정을 가지고 태어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보다 좀 다른 정서의 반응은 있을지 몰라도 시적인 관심으로 정서를 쌓아서 집중시키면서 성숙되기까지는 많은 수련과 노력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면 나도 시를 쓸 수 있다는 강한 의지와 집념으로 몇 가지 단계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1-1. 詩 쓰기에 앞서서

  시를 배우고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 유형에 심리적인 취향이 발동해야 할 것입니다.

  ① 시를 우선 좋아해야 한다.
  ② 시를 써 보고 싶은 충동이 있어야 한다.
  ③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다.    
  ④ 모든 사물을 보는 것이나 느낌 등이 아름답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올바르게 사유(思惟)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전제가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심성에 가득 차 있어야 할 것입니다.이런 것들은 막연한 동경 속의 낭만이나 취향, 그리고 멋이나 사치가 아니라 아주 절실한 표현의 욕구로 인생을 풍요롭게 충족시키는 일생의 각오로 출발되져야 합니다.
  흔히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시에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를 가까이 하다보면 시의 모습도 이해하게 되고 시의 내용이나 진실에 대하여 쉽게 친근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일종의 믿음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믿음은 진실에 대한 시적인 약속이며 시에 대한 약속의 이행으로써 상호 신뢰의 바탕에서 출발하는 시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시적인 관심이나 시적인 생활이 없이는 시에의 접근이 어려우며 또한 친숙해 질 수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시를 쓰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시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에 대한 많은 사유(思惟)가 필요하며 그후에는 시 쓰는 연습을 많이 해 보는 것 뿐입니다. 글 쓰기에서 공통으로 제시하는 다독(多讀), 다사(多思), 다작(多作)이 시 쓰기에의 절대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얘기를 나누어 봅시다. 첫 시간이라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는데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만 그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안녕히. 


=======================================================================

 

 

바람
―신경림(1935년∼ )

산기슭을 돌아서 언 강을 건너서 기름집을 들러 떡볶이집을 들러 처녀애들 맨살의 종아리에 감겼다가 만화방도 기웃대고 비디오방도 들여다보고

큰길을 지나서 장골목에 들어서서 봄나물 두어 무더기 좌판 차린 할머니 스웨터를 들추고 마른 젖가슴을 간질이고 흙먼지를 날리고 종잇조각을 날리고

가로수에 매달려 광고판에 달라붙어 쓸쓸한 소리로 축축한 소리로 울면서 얼어붙은 거리를 녹이고 팍팍하게 메마른 말들을 적시고



‘시인 신경림’ 하면 시 ‘농무(農舞)’를 떠올리는 독자가 많을 테다. 특히 ‘민족문학권’ 후배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농무’를 비롯한, 기층 서민들의 한과 애환을 ‘우리끼리 퍼질러 앉으면 삶은 편하고/더러는 훈훈하기도 해서’(시 ‘진도 아리랑’에서)의 정조로 꽹꽹 울리는 농악 리듬이나 남도민요 가락에 담은 선생의 시편들은 ‘원한도 그리움이 되던가?’(시 ‘연어’에서), 그 삶을 지긋지긋하게 잘 아는 이들에게는 물론이고 모르는 이들에게도 가슴 시큰하거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바람은 안 가는 데 없겠지만 시인의 바람은 나지막하고 허름하고 흔한 곳, 이름 없는 곳으로 간다. 시인의 마음 가는 곳 따라, 돌아서, 건너서, 들러, 감겼다가, 기웃대고, 들여다보고, 지나서, 들어서서, 들추고, 간질이고, 날리고…. 종결 어미 없는 동사(動詞)들로 이어지는 바람의 행로에 재개발이 되려다 만 우리 동네같이 친근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도록 비어 있는 점포 유리문에는 지금도 ‘비디오’라는 글자가 적혀 있지. 윤기 없이 까칠한 거리를 ‘흙먼지를 날리고 종잇조각을 날리고’ 달리는 바람. 그러나 봄바람이다. ‘봄나물 두어 무더기 좌판 차린 할머니 스웨터 들추고 마른 젖가슴을 간질이는.’

삶의 모든 습기 다 거둬가 먼지처럼 가벼이 말라가게 하는 바람, 언젠가부터 선생 시에서 종종 만나는 바람이다. 허무가, 따뜻한 허무가 깃든 바람…. 그러나 인생무상이거나 말거나 삶은 무상하지 않다고, 선생의 시는 그침 없이 거침없이 ‘쓸쓸한 소리로 축축한 소리로’ 우는 바람처럼 ‘팍팍하게 메마른’ 세상을 적신다.


 

시창작 강의-3(시 쓰는 연습을 많이 해 보자)  / 김송배   

1-4. 시 쓰는 연습을 많이 해 보자

처음부터 시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아주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그냥 메모하는 식으로 써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하여 감동했던 것이나 마음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일들부터 자신의 생각으로만 하나씩 적어 봅니다.
어떤 형식에는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문체나 형식이 일기문이 되거나 편지글이 되거나 상관 없이 글로 옮겨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전번 시간에도 말한 바와같이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난 후에 내 생각을 가미하여 모방해보려는 의지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 부딪치는 어려운 점은 언어의 부족입니다.(이 언어문제는 다음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물론 언어뿐만 아니라 표현반법이 여러모로 서툴지만 읽고 생각한 자신의 진실을 글로 적어봄으로써 자기 세계가 열리고 시 쓰기에 대한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옛날 선배 시인들은 시인이 되기 위하여 습작 원고지 3만장 정도를 휴지가 되도록 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의 쓰라린 습작기를 거쳤던 것입니다.
시 쓰기에는 유형(有形)적인 소재이거나 무형(無形)적인 소재이거나 간에 많이 느껴본 습성이 중요하지만 이 느낌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는 느낌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느낌이란 많은 형태의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이 느낌이 깊은 곳에서 받아들여 미적인 감정과 미적인 언어의 조화로 한 편의 시 작품이 창작되는 것입니다.
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 앞에서 하는 속임없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구약성서의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하야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의 말처럼 어떤 소재에서 느낀 솔직하고 진지한 나의 진실이 글로 표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시입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어떻습니까. 어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유히 갈 길을 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밤 하늘에 뜬 구름 사이로 흘러가듯 떠 있는 달의 모습은 얼마나 고적하고 유유합니까. 이런 달의 형상이 작품 속에서 나그네와 연관됨으로써 다른 사람이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며 나그네의 구체적인 모습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옛말에 시이도지(詩爾志)란 말이 있습니다. 시를 쓰거나 읊조리는 것은 자기의 지닌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종호 교수는 정규 문과 대학생 조차도 우리 근대시의 고전인 <청록집>(박목월, 조지후, 박두진 3인 시집)을 읽어본 경우가 희소하다고 개탄하면서 우리 문학 교육의 현실을 말하고 있어서 위의 [나그네]같은 작품은 겨우 교과서에 수록된 것을 읽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옛날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시 쓰기에는 이런 일도 있구나하는 도움이 될까해서입니다.
고려 때 문신인 정지상과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과는 서로 시적(詩敵)이었습니다.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의 사령관이었던 김부식은 정지상이 이 난에 관련되었다하여, 평소에 시 쓰기에 있어서 숙적이었던 정지상을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 뒤 어느 봄날 김부식은 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지었습니다. 봄의 정경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시입니다.

버들은 일천 가지로 푸르고(楊柳千絲綠-양류천사록)
복숭아는 일만 송이로 붉구나(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

그런데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서 김부식의 빰을 갈기며 호령했습니다. 
"이놈아, 버드나무가 일천 가지인지, 복숭아가 일만 송이인지 네가 세어 보았느냐? 왜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숭아는 송이송이 붉다(楊柳絲絲綠-양류사사록,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라고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나중에 김부식은 어느 절간 화장실에서 정지상의 귀신에게 불알을 잡아당겨 죽었다는 일화가 <동인시화>라는 책에 전해오고 있습니다.
참 절묘한 표현의 차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드나무 가지의 표현이 일천 개보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표현이 더욱 좋다는 것입니다. 복숭아꽃의 일만 송이보다는 점점이 그러니까 송이송이 이것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와같이 시 쓰기의 연습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언어를 매체로 해서 표현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결국 많이 읽어보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써보는 것만이 '나도 시를 쓸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길일 것입니다.
앞으로 강의하는 시의 모든 것과 시 쓰기의 모든 것은 나도 시를 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며 기필코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역량을 길러 줄 것입니다. 지금부터 시의 형상과 그 길이 겨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음 시간에......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1960∼1989)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근 25년 만에 기형도 시집을 다시 읽는다. 푸른, 누추한, 구름, 희망, 고통, 불안, 사랑, 청춘, 머뭇거리다, 헤매다, 저녁, 탄식, 죽음…. 이런 시어들이 구름처럼 시인 기형도 형상을 이루며 흘러간다. 내 세대 시인들에게 ‘우리들 청춘은 끝났다’는 고지(告知)이기도 했던 기형도의 죽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기형도 시 ‘빈 집’)

그를 묻은 날, 간소한 추도식에서 시인 하재봉이 송별사로 이 시를 읽었다. 그렇게 그는 청춘으로 남고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어떤 소설엔가 이런 구절이 있다. ‘죽은 사람은 외롭다. 아무도 그와 사귀려들지 않아.’ 기형도가 살아 있으면 킬킬 웃으며 이런 대구를 지었을 테다. ‘늙은 사람은 외롭다. 아무도 그와 사귀려들지 않아.’ 수많은 독자와 후배 시인이 그의 시를 사랑하고 사귀기 원하니 지금 기형도는 그리 외롭지 않으리라. 
 

 

화자는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머뭇거리고 헤맨다. 몸은 지상에서, 영혼은 공중에서. 왜? 기형도에게 청춘의 화두랄까 상투어는 ‘사랑’이었던 듯하다.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나’ 그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인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그런데 사실 자기조차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자조와 탄식이 자욱하다. 질투밖에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대해, 어떤 인생에 대해 젊은 시인에게 늙은 내가 들려줄 말이 있을 듯하네….
 

2. 시는 무엇 때문에 쓰는가

  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쓰는가?  이런 우둔한 질문은 시인들 스스로가 품을 때도 있지만, 일반 사람들로부터 흔히 질문을 받게 됩니다. 분명히 시는 모든 예술의 중심되는 꽃입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때로는 무용지물로 낙인이 찍히기도 하는 서글픈 시대에 시인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적정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러한 염녀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키고 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데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되었거나 이땅에는 시인이 시를 쓰고 시를 읽는 독자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시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마는 그림은 무엇 때문에 그리느냐, 노래는 왜 부르느냐라는 질문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임니다.

2-1. 시인과 독자

  눈을 뜨면 나에겐 풍경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나에겐 사랑하는 당신의 얼굴이 보인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필립 샤보네의 시입니다. 당신의 사랑스런 얼굴로 변하는 풍경이 눈을 감고 뜨는 순간의 차이가 바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느끼는 시인과 독자의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황폐되고 삭막한 세상일수록 그 무엇인가가 내 가슴을 데워주고 위무해주는 따스함이 그립습니다. 그림도 있어야 하고 노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문학, 특히 시가 차지하는 그리움의 비중은 상당합니다.
  [말테의 수기]를 쓴 릴케는 아무것도 더 쓸 것이 없는 허탈에 사로잡혀 이 상태를 벗어나 보려고 두이노 성(城)을 찾아 갔습니다. 추운 겨울날 이 성에서 방파제를 왔다갔다 하던 중 그의 머리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고 그는 수첩을 꺼내어 "누군가가, 설령 내가 외친다고 해도 천사들들의 서열 속에서 그것을 들어줄 것인가?"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것이 그날 밤 완성한저 유명한 <두이노의 비가(제 1의 비가)>라는 작품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릴케도 절망과 허탈의 극한 상황에서 천사를 통해서 정신의 폭풍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하듯이 시를 쓰는 이유라고 할까, 시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이야기로 풀어 보고자 합니다.

①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말하고 싶습니다.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감상함으로써 마음 속에 솟아 오른 슬픔이나 공포의 기분을 토해내고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가 지은 <시학>에서 '비극은 어떤 행위를 모방한 것으로서 애련(哀憐)과 공포에 의하여 이것들의 정서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말한데서 유래되었지만, 시를 쓰고 때로는 시를 읽음으로써 자신의 정서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② 나르시스(또는 나르시시즘-narcissism)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르시소스라고 하는 미청년이 산의 요정 에코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샘물에 비춰지는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여 영원히 뜻을 이룰 수 없는 운명이 주어졌고 마침내 샘물에 빠져 죽어서 수선화가 되었다는 신화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자신의 용모나 능력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황홀해 있는 마음의 경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도취(陶醉)입니다.

  이렇게 시를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가 시를 통하여 정화하거나 도취에서 어떤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시가 이 시대에 필요하거나 또 시를 써야 한다는 어눌한 생각에서 시쓰기의 출발은 시작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탈리아에서는 사분오열(四分五列)된 땅덩어리가 통일을 갈망하는 그 나라 국민에게 '이탈리아 자신'이라고 외친 단테(유명한 <신곡>의 저자) 뿐만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때 러시아가 독일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가 되었을 때 스탈린은 반동 시인으로 낙인을 찍었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푸쉬킨의 애국 시집을 황급히 인쇄하여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읽게 하여 병영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시인들도 일제 강점기때 장한 모습들을 살필 수 있습니다. 잘 아는 바와같이 '황홀한 천재' 이상(李箱)과 뮤우즈의 사도(使徒) 운동주는 이름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왜경에게 피검되어 옥중에서 조국의 제물이 되었으며 이상화의 피끓는 애국시는 당시 나라를 잃은 국민들에게 꿈을 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돈도 되지 않고 명예도 되지 못하는 시쓰기는 여러 가지 악조건에서도 여전히 시를 버리지 못하고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큰 보람과 희열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2-2. 시의 목적

  시는 아름다움이나 진실, 나아가서는 구원을 찾는 인간의 순수하고 진솔한 표현입니다. 시는 그만큼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떤 목적을 염두에 두고 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컨대 '사회의 병폐를 '뿌리 뽑기 위해서'라든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라든지 하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시를 쓰는 사람이 간혹 있을지 몰라도 만약 있다면 이는 정치인이나 종교인이 되었어야지 굳이 시인이 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는 어디까지나 시적인 감동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서 쓰게 되는데 이 감동은 바로 표현의 의욕을 자아내게 되며 한 편의 시가 씌어졌을 때 비로소 이 표현 의욕은 충족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쯤에서 김광균의 시 [설야](雪夜) 한 편을 읽어 보면서 다음 이야기를 계속 합시다.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함밤 소리 없이 흩날리뇨

처마끝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자췬 양 흰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졸로 가슴이 메어
마음 공허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라

밤 사이 흰 눈이 내리는 것을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과 '서글픈 옛자췬 양' 감동하기도 하고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로' 감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눈'이라는 통속적인 소재가 시인의 감동과 만나면 무한대의 신비한 표현의 의욕과 그 표현을 통한 우리의 정신적인 충족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함께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안녕히.   


==============================================================================

 

 

 

찾습니다 
―이영혜(1964∼ )

부풀린 어깨에 가끔씩 포효 소리 제법 크지만, 낮잠과 하품으로 하루를 때우는, 허세의 갈기 무성한 수사자 말고

해만 넘어가면 약한 먹잇감 찾아 눈에 쌍심지 돋우는, 뱃속까지 시커먼, 욕망의 윤기 잘잘 흐르는 음흉한 늑대 말고

훔친 것도 좋아, 높은 놈 먹다 버린 것도 좋아, 패거리로 몰려다니길 즐겨 하는, 웃음도 비열한 하이에나 말고

수천 권 뜯어먹은 지성인 척 턱수염 도도하게 으스대지만, 강자 앞에선 아첨의 목소리로 선한 초식동물인 척하는, 이중인격 비굴한 염소도 말고

 

 

아무 데서나 혀 빼고 군침 흘려 대며, 할 소리 안 할 소리 쓸데없이 짖어 대거나 아무나 물어뜯는, 날카로운 야성의 송곳니는 유전자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잡개는 더욱 말고

높은 하늘 향해
한 자세로 한 몸 꼿꼿이 세운
한 향기 한 품위로 천지를 채운
저 키 큰 금강송 같은

식물성 남자 하나 찾습니다
평생 배필로 삼아
생을 다해 자취도 없이 사라져 그 몸 이룬 탄소 원자 소멸할 때까지
한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

 

 

연락 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배필을 구하는 광고 형식으로 남자들의 지질함을, 행갈이 하기도 아깝다는 듯이 줄줄이 산문으로 성토하는, 아니 한탄하는 화자다. 숫기라고는 하초에만 몰려 있지, 그 무책임과 허세와 위선과 비열함과 약삭빠름이라니! 멀쩡한 여자는 많은데 멀쩡한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결혼을 원하면서 미혼으로 서른을 훌쩍 넘긴 여자 후배에게 마땅한 상대가 없나 머리를 모으는 자리에서 나온 우리 여자들의 중론이다. 일찍이 소설가 우선덕 선생님의 할머니께서도 “세상에 여자만 한 남자는 없다”고 하셨다지. 그럼 이 세상에 멀쩡한 남자는 아주 없단 말인가? 있긴 있으나 일찌감치 ‘여우들’이 낚아채 갔다. 화자가 운문으로 각별히 흠모의 정을 바치는 ‘저 키 큰 금강송 같은 남자’도 이미 장가를 갔을 테다. ‘동물의 왕국’ 인간사여라. 여자들은 다 멀쩡하냐고 입술을 삐죽거리고 실룩거릴 남자들이여, 물론 그렇지 않다. ‘남자 같은’ 여자도 드물지 않다. 뭐, 우리들 여자끼리의 지나가는 이야기.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50 수필의 허구문제를 알아보다(2) 2017-05-05 0 3031
449 수필의 허구문제를 알아보다(1) 2017-05-05 0 2842
448 시인은 자국자국마다 시향을 흩날려야... 2017-05-05 0 3069
447 시의 파문이 느리게 오래 지속되는 시를 써야... 2017-05-05 0 2693
446 시인은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2017-05-05 0 2727
445 시는 자기 자신의 삶을 발견하는것이다... 2017-05-05 0 2364
444 [고향문단소식] - 시내물 흘러 흘러 강물이 되여 바다로 간다... 2017-05-04 0 2581
443 시인은 령혼이 없는 시, 5차원이 없는 시를 쓰지 말아야... 2017-05-04 0 2483
442 시인은 함께 하는 눈과 멀리 보는 눈이 있어야... 2017-05-04 0 2533
441 시인은 화폭같은 이미지를 잘 구사할줄 알아야... 2017-05-02 0 2859
440 시는 짧은 속에서 시인의 시력과 시야가 압축되여 있어야... 2017-05-01 0 2704
439 시인은 언어란 이 괴물을 쉽게 휘여잡을줄 알아야... 2017-05-01 0 2762
438 시인은 고독한 원을 긋으며 도망친다... 2017-05-01 0 2798
437 시란 잘 고양된 수학이다... 2017-05-01 0 3332
436 [시문학소사전] - "이미지스트"란?... 2017-05-01 0 4047
435 [시문학소사전] - "무운시"란?... 2017-05-01 0 3997
434 시인은 자기자신만의 시론으로 시창작에 림하면 행복하다... 2017-04-30 0 2175
433 시의 정신활동은 가장 중요하게 통찰력과 상상력 이다... 2017-04-30 0 2527
432 시를 배울 때 이전에 배운 지식들을 다 버리시ㅠ... 2017-04-30 0 2415
431 시를 공부하는 과정에는 "이미지"가 한 필수조건 이다... 2017-04-30 0 2502
430 시지기라는 눔에게 "치매 걸린 엄마"라도 있었으면... 2017-04-30 0 2383
429 시인은 고독을 줄기차게 친구 삼고 문제의식을 늘 가져라... 2017-04-30 0 2215
428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2017-04-24 0 3487
427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크릴로프의 우화를 읽게 해야... 2017-04-24 0 3350
426 시란 무경계 세상에서 희노애락의 꽃을 꽃피우는 행위이다... 2017-04-24 0 2653
425 시인은 자기자신만의 시를 찾아야 생명력이 있다... 2017-04-23 0 2187
424 "시인"이랍시고?-, 당신의 "구두"는 젖어보았는가... 2017-04-21 0 2520
423 윤동주 묘비의 각인을 살펴보다... 2017-04-21 0 3694
422 아프리카 세네갈 대통령 시인 - 상고르 2017-04-20 0 2813
421 시인은 시를 오랫동안 삭힐줄 알아야... 2017-04-20 0 2074
420 [쉼터] - "연변말"이 "마지막 수업"으로만 되지 말기만을... 2017-04-19 0 2576
419 아리랑은 영원한 아리랑이다... 2017-04-19 0 2402
418 시속에 무르녹아 있는 시어와의 만남을 류의하라... 2017-04-19 0 2707
417 [시문학소사전] - "산문시"란?... 2017-04-19 0 3238
416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이다... 2017-04-19 0 2688
415 절대적으로 정신을 차려야 할 편집들께= "표절은 절대 금물" 2017-04-18 0 2970
414 그대들의 마음속엔 어떤 나무를 심었는가?!... 2017-04-18 0 2285
413 <화투> 잡설시 2017-04-18 0 2620
412 서사시는 敍事詩로서 장시(長詩)이다... 2017-04-18 0 2353
411 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서사시를 지은 시인 - 호메로스 2017-04-18 0 2801
‹처음  이전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