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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뒷모습 보는 순간, 그 누군가가 또 그 뒷모습 보기까지...
2016년 10월 29일 21시 57분  조회:3563  추천:0  작성자: 죽림
살바도르 달리 〈창가의 인물〉
살바도르 달리 〈창가의 인물〉

1925, 카드보드에 유채, 105x74.5cm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는 인기가 많은 화가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관에 가 보면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옛날 사람들만 그려져 있질 않나, 추상화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려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처럼 단순해 보이기 일쑤인데, 달리의 작품을 보면 정교한 그림 솜씨는 기본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하고 들여다볼수록 신기하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미술 애호가, 혹은 예비 미술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나의 눈길을 처음 사로잡았던 달리의 작품은 그가 스물한 살 때 그린 여동생의 뒷모습이다.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 묘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면 나도 그녀가 보고 있는 강변(혹은 바다의 만(灣)일 수도 있겠다)을 더 넓게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살짝 보이는 볼살이 꽤 통통하기 때문이다) 소녀와 여인의 중간인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 그러다 보면 이 소녀를 보고 있는 나를 누가 뒤에서 또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등으로 한참 동안을 이 앞에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훗날 달리는 같은 자세로 서 있는 부인 갈라(Gala)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는데, 여동생을 그릴 때와는 달리 꽤 선정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달리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피게라스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다가 마드리드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그 후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로 유명한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 극작가이자 시인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 달리와 가르시아 로르카는 매우 친밀한 사이였고 루이스 부뉴엘과는 함께 영화 제작도 할 정도였는데, 결국에는 셋 다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 중에 공화국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는데,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몇 년 뒤 달리는 파리를 방문해서 호안 미로의 소개로 피카소와 알게 되었고, 당시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면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림을 그렸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 즉 계산하고 측정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기존의 방식에 반대하여 예술가의 무의식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의식을 의식 밖으로 꺼내기 위해 초현실주의자들은 최면 상태 또는 수면부족으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시를 쓰기도 하고, 카다브르 엑스키(cadavre exquis, ‘우아한 시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라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종이를 사람 수만큼 접고, 각자 주어진 한 칸에만 그림을 그려 나가되, 다음 칸으로는 연결선만을 남겨둔다. 다음 사람은 앞에 그려진 그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연결된 선에서부터 다른 그림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음 칸으로는 연결선만을 남겨둔다. 이렇게 해서 참여자가 각자 그림을 그린 후 펼쳐 하나의 완성 작품을 만드는 것이 ‘카다브르 엑스키’라는 놀이인데, 초현실주의자들은 이 방식이 집단 무의식,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이므로 그들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에 가까운 것을 꺼낸 그림이 〈위대한 수음자의 얼굴〉이다.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달리의 얼굴과 흡사하다. 머리에서는 금발 여인이 솟아나고 여인의 얼굴은 남자의 사타구니 근처에 머물러 있다. 달리는 자신의 성적인 집착을 그림으로 그려서 내놓았다. 어떤 초현실주의자도 달리만큼 대담하게 스스로의 집착과 무의식을 드러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혼자서 시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작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개한 것으로 보아서는 달리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남자의 얼굴은 건축 장식의 일부처럼 생긴 것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여인의 몸과 꽃은 은근슬쩍 합쳐졌다. 앞서 말한 카다브르 엑스키의 달리 버전이다. 달리는 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를 그렸지만 정교한 화법으로, 진짜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그려서 꿈과 실제 세계의 사이를 모호하게 흐려 놓았다.

살바도르 달리 〈위대한 수음자의 얼굴(Rostro del Gran Masturbador)〉
살바도르 달리 〈위대한 수음자의 얼굴(Rostro del Gran Masturbador)〉

1929, 캔버스에 유채, 110x150cm

정치적으로 단호하게 좌파였던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에 비해 달리의 정치적 입장은 모호했고, 이로 인해 초현실주의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그를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쫓아냈다. 이에 대한 달리의 반응은 ‘내 자신이 초현실주의다’였다. 달리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오브제 등의 다양한 시각예술, 영화, 연극, 사진, 패션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심지어는 초콜릿 광고에 출연하기도 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책은 그를 화가로 소개하지만 사실 달리는 회화라는 것을 뛰어넘은 특별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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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극장박물관 전경. 건물의 붉은 빛과 지붕 위의 달걀 모양이 시선을 끈다

스페인의 유명 화가로는 고야,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를 꼽고 그 차세대로는 입체파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야수파 화가인 호안 미로를 손꼽는다. 모두가 세기를 빛낸 화가들로 이들의 이야기들이 영화, 소설로 다뤄졌지만 그중 달리와 갈라의 사랑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달리가 나고 죽은 스페인 피게레스에는 ‘달리 극장 미술관’이 있다.

기괴한 창조성 집대성…달리 극장박물관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을 걷다 보면 피카소, 후안 미로, 그리고 콧수염을 기르고 포마드 기름으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가운데 가르마를 탄, 독특한 모습의 달리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한번 보면 절대 잊혀지지 않을, 그런 스타일을 가진 달리다. 히로나(Girona)에 숙소를 정하고 피게레스(Figueres)로 여행을 떠난다. 순전히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를 만나기 위해서다.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나 주의 피게레스는 달리의 고향이며 히로나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다. 역에 내렸을 때, 급작스레 비가 내린다. 4km 떨어진 ‘달리 극장 박물관’(Teatre Museu Dali)까지 빗 속을 가르며 달려간다.

박물관에 도착하기 전, 성 페레 교회(Esglesia de Sant Pere)가 눈길을 끈다. 9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진 이 교회는 펠리페 5세와 왕비 마리아가 결혼식(1701년)을 올린 곳이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 화재로 역사적 기록들도 많이 사라졌다. 이후 1941~1948년 사이 네오고딕 스타일로 재건축됐다. 이 교회는 달리와도 무관치 않다. 그는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장례식도 치렀다.

오래전, 이 교회 바로 맞은편에는 피게레스 공립 극장이 있었으나 스페인 내전 때 불타버렸다. 극장 재건 당시 피게레스 시장은 달리에게 전시실을 하나 마련해 줄테니 작품을 기증해 달라고 제안한다. 당시 달리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극장 옆에 있는 탑(토레 갈라테아)에 살고 있었다.

이때 달리는 본인의 작품 전체를 기증하겠다고 말했고 그것이 계기가 돼 1974년에 ‘달리 극장박물관’이 오픈하게 된 것이다. 박물관이 완공되기까지 달리는 전시실 전부를 관여했다. 심지어 살기까지 한다. 이후 갈라-달리 재단의 소장품을 전시할 공간의 필요성에 의해 점차 박물관이 확장돼 현재는 두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 형태가 됐다. 달리가 살던 집의 탑도 달리 극장 박물관의 일부가 됐다. 
박물관 입구부터 달리의 기괴한 창조성이 보여진다. 건물의 붉은 빛과 지붕 위의 달걀 모양이 시선을 끈다. 그래서 ‘계란의 집’이라고도 부른다. 건물 벽에는 피게레스의 전통 빵 모양이 붙어 있다.

박물관 건물 속 야외 공간에는 ‘대부’ 알카포네의 캐딜락과 고기잡이 배가 놓여 있고 쇠줄에 감싸인 큰 여인상이 있으며 담장이 넝쿨이 올라간 사이사이로 눈코입이 없는 금색의 나녀상이 마치 영화 ‘오스카 상’을 시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캐딜락 몸체에는 거대 여인상이 비춰지고 깨진 차 유리 안으로는 잘생긴 남자 운전자 디오라마가 있다. 그 어떤 것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창조적이다. 달리 시각의 ‘링컨(1977년)’의 작품은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갈라의 뒷모습을 놓치게 될 것이다.

또 ‘바람의 궁전’의 작품들 또한 경이롭다. 달리의 유명 작품인 ‘기억의 고집(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년)’은 물론 그가 53년간이나 해로했던 갈라의 모습이 아주 많다. 또 1930년대에 세계적 섹스 심벌이었던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입술을 본떠 만든 ‘메이 웨스트 입술 소파’(Mae West lips sofa,)라는 작품은 차라리 경이롭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사각틀 액자 안에 얌전하게 있지 않다. 정형화를 거부하고 있다.

달리의 삶은 어땠나?
20세기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달리. 그의 작품들은 커다란 명성을 얻었고, 그의 기벽들은 전설이 됐다. 살아생전 그는 스스로를 천재라 했으며 최고의 그림 값을 받으며 생을 누리고 살았다. 살바도르 달리는 피게레스에서 공증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달리는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그는 그곳에서 입체주의를 실험하고 마드리드의 아방가르드 모임에 참가했다. 시인 로르카와 동성 연인관계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리틀 애쉬(Little Ashes, 2008)가 있다.

달리는 이후 파리로 여행을 가,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했다. 그리고 194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1941년에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열었다. 달리는 뉴욕에서 영화, 연극, 패션,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히치콕 감독이 만든 ‘스펠바운드’(1945)에서는 미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달리 인생의 영원한 뮤즈, 갈라
달리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인이 갈라(Gala)다. 갈라의 본명은 엘레나 디미트리예브나 디아코노바(1894∼1982)로 볼가강 근처에서 태어난 슬라브계 여인이었다. 그녀는 폴 엘뤼아르(1895∼1952)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슬하에 세실이라는 딸을 두었다. 하지만 갈라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아이 돌보는 것을 싫어했고 거기에 남편의 동료인 독일 출신 화가 막스 에른스트(1891∼1976)와는 불륜관계였다.

엘뤼아르를 따라 스페인에 갔다가 젊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게 됐다. 스물다섯살 달리는 카다케스(Cadaques) 해변에서 반라(半裸)의 갈라를 보고 홀딱 반했다. 갈라는 달리보다 10살 연상의 유부녀였다. 긴 이야기가 있지만 그 둘은 53년간을 해로했다. 갈라는 달리의 뮤즈였다.

“나는 갈라를 아버지보다도, 어머니보다도, 피카소보다도, 심지어 돈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달리의 시신은 피게레스 극장 미술관 제7전시실에 있다. 또 시간의 여유를 갖고 달리가 갈라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카다케스 바닷가에서 낙조까지 본다면 더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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