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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뿌리 알아보기- 대륙의 문학
2016년 03월 21일 02시 54분  조회:5268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03월 28일 10시 19분 ]

 

 

西藏 拉薩시 포탈라궁 광장에서ㅡㅡㅡ 



中國-文學

〔槪說〕 4천 년의 중국문학사는 황허(黃河)처럼 굽이쳐 왔다. 한자의 특질을 살려 대륙적인 민족기질과 방대한 산하(山河)에서 성장한 문학사는 시(詩)를 주류로 삼는 반면 소설·산문을 지류로, 서정과 자연영탄(自然詠嘆)을 본바탕으로 삼은 반면 서사(敍事)와 사회 고발을 그 운영(運營)으로 삼아 온 것이다. 고대 중국의 문학 형식은 시가(詩歌)로서 그 대표가 주대(周代)에 씌어진 시경(詩經)이다. 풍(風)·아(雅)·송(頌)의 세 가지 체재(體裁)와 부(賦)·비(比)·흥(興)의 세 가지 작법을 운용한 305편은 대부분 연애·수렵·농작과 제사·전쟁을 주제로 했다. 주로 사언체(四言體)의 소박한 형식으로 씌어진 시경이 '사무사(思無邪)'란 중국 시의 본질적인 사실주의·낭만주의 전통을 수립했다. 시경이 북방 문학으로 토대를 닦은 뒤 춘추시대 이후로는 양쯔강 이남의 새로운 시가인 초사(楚辭)가 시경에 상대적인 문학으로 등장했다. '혜(兮)사(些)지(只)' 따위 어조사를 곁들여 비교적 자유스러운 형식인 초사는 비로소 사언(四言)의 구속에서 벗어났고, 정열과 환상 그리고 충정과 비분(悲憤)의 사상을 응합(凝合)시킨 작품들은 중국 시상(詩上) 최초의 서정시인 굴원(屈原)에 의해 가장 많이 남겨졌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변체시(變體詩)가 생겼으니 하나는 조정(朝廷) 문학으로 민중을 떠나서 가송적(歌頌的)인 부(賦)가 있었고, 하나는 악부(樂府)다. 시경(詩經)과 초사(楚辭)의 전통을 이은 악부는 민가(民歌)로서의 상화가(相和歌)·청상곡(淸商曲)·잡곡(雜曲)과 외국에서 전래한 고취곡(鼓吹曲)·횡취곡(橫吹曲)과 사대부들의 교묘가(郊廟歌)·연사가(燕射歌)·무곡(舞曲)들로 엮어졌고 무엇보다 음악을 배합한 신형식은 오언시(五言詩)의 기초를 세웠다. 한말(漢末)에서 위(魏) 초기에 정형(定型)된 오언시는 이미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와 조씨 부자(曺氏父子)·건안칠자(建安七子) 등의 시와 최장편 서사시인 공작 동남비(孔雀東南飛)에 점숙(漸熟)됨을 알 수 있다. 위진(魏晋)과 남북조(南北朝)는 정치적으로는 혼란했으나 문학상으로는 대조적으로 찬란하여 문학이 학문과 분리되었고 유가(儒家)의 교조적(敎條的)인 전통에서 벗어나 자연을 제재(題材)로 한 성정(性情) 문학이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다. 또 하나의 공헌은 칠언체(七言體)의 성립이겠고 그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시인으로는 도연명(陶淵明)·사영운(謝靈運) 등이 있다. 중국 시의 전성기는 역시 당대(唐代)이다. 그 시체(詩體)도 오언(五言)·칠언(七言)·고체(古體)·근체(近體)·절구(絶句) 따위로 분망했거니와 2천 2백여의 많은 시인에 의해 4만 9천 수(首) 정도의 작품을 남겼다. 제왕(帝王)의 제창과 불교가 개척해 준 시의 의경(意境)으로 극성한 원인도 있겠지만 당대를 통하여 드물게 보는 천재적 시인 이백(李白)·두보(杜甫)를 비롯하여 고적(高適)·잠삼(岑參)·왕창령(王昌齡)·맹교(孟郊)·장적(張籍)·원진·백거이(白居易)·왕유(王維)·이하(李賀) 등의 군출(群出)이 세(勢)를 북돋우었다. 송(宋)에 이르러서는 비록 소식(蘇軾)·황정견(黃庭堅)·육유(陸遊)·왕안석(王安石) 등 시인이 불교적이면서도 주지적인 시를 써서 시사(詩史)의 명맥을 이었지만 전고(典故)를 애용하면서 부염(浮艶)의 폐(弊)를 면하지 못했고 오히려 사(詞)의 흥성(興盛)으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 성당(盛唐) 때 발아한 사는 송에 이르러 위장(韋莊)·이후주(李後主)·온정균(溫庭筠) 등을 중심으로 그 사용 음조(音調)가 칠궁 십이조(七宮十二調) 사패(詞牌)가 9백여 종에 다다랐고 그 풍격(風格)도 완약(婉約)과 호방(豪放)으로 갈라져 각각 음악의 시로 흥성케 했다. 원·명에 이르러 시는 모방의 길에서 진전하지 못한 채 답보했고 원대에는 오히려 '곡(曲)'으로 시사(詩詞)의 전통이 옮겨졌다. 역시 완약과 호방의 풍격을 지닌 곡은 '노래하는 희곡'으로 널리 불려졌으니 마치원(馬致遠), 관한경(關漢卿), 정광조(鄭光祖), 백박(白樸)을 비롯하여 작가가 187인에 이르렀다. 명대(明代)의 시는 전후칠자(前後七子)를 중심으로 성당시(盛唐詩)를 모방한 복고풍이 짙다가 청대(淸代)에 와서는 전대의 시를 총집성하여 각 시체(詩體)가 부흥하였다. 강좌삼대가(江左三大家)를 중심으로 한 시인들은 여러 시형식과 풍격을 시도했다. 시작과 시이론이 겸출했던 청대에는 왕사정(王士禎)의 신운설(神韻說)과 거기에 반동했던 심덕잠(沈德潛)의 격률설(格律說), 옹방강(翁方綱)의 기리설(肌理說)과 원매(袁枚)의 성령설(性靈說)이 특기할 만하다. 청말(淸末) 황쭌셴(黃遵憲)은 시의 생활화·자유화를 제창했고, 외국시의 번역에 힘입어 또 하나의 시대의 문학으로 신시(新詩)가 혁명적으로 등장했다. 중국의 산문(散文)은 시에 비해서 순문학의 본질상 적은 편이며 대부분이 설리적(說理的)이거나 기사적(記事的)인 것들이 많다. 설리적인 것이 사상가로부터 나왔다면 기사적인 것은 역사성을 띠고 있다. 그 최초로 상서(尙書)와 좌전(左傳)을 들 수 있으며, 철리적(哲理的)인 것으로는 논어(論語)와 도덕경(道德經)을 들 수 있다. 양한(兩漢)에 이르러서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등이 불후의 작품으로 남았지만, 비교적 순문학성을 띤 것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산문을 들 수 있다. 비록 복고적인 경향을 면할 수 없었지만 예술성을 띤 영주팔기(永州八記 ― 柳宗元), 적벽부(赤壁賦 ― 蘇軾),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 ― 韓愈), 추성부(秋聲賦 ― 歐陽修) 따위를 남겼다. 산문(散文)에 소조(蕭條)한 명대를 거쳐 청대에는 방포(方苞), 유대괴, 요정 등을 중심으로 한 동성파(桐城派)는 문도합일(文道合一)을 주장하는 고문 부흥에 경주(傾注)케 되어 결국은 산문이 역사적·철리적 굴레를 끝내 벗어날 수 없었다. 중국의 소설은 훨씬 늦고 더딘 것이다. 고사성(故事性)을 띤 소설들이 형성된 것은 당대의 전기소설(傳奇小說)에 이르러서야 볼 수 있다. 물론 한대에도 설원(說苑), 신서(新序), 열녀전(烈女傳)이 소설의 전신임을 발견할 수 있고 더구나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의 열이전(列異傳), 박물지(博物志), 수신기(搜神記), 신선전(神仙傳), 술이기(述異記), 십유기(拾遺記) 등의 신괴소설(神愧小說)은 허구성(虛構性)이 있으나 그 구성이 '잡기(雜記)'식인 졸렬을 면치 못했다. 그것은 중국이 일찍부터 소설을 '가담항어(街談巷語)'의 '도청도설(塗聽塗說)'이라고 경시하여 왔고 과거(科擧)에도 씌어오지 않았다는 데 원인이 있다. 당대의 전기(傳奇)는 소설로서의 체재와 인물묘사, 스토리의 구성 등에 있어 오늘날의 소설에 접근했으나 그 내용은 연애·검협(劍俠)·신괴(神怪) 등에 불과했다. 대표작품으로 고경기(古鏡記)·유의전(柳毅傳)·잡혼기(雜魂記)·이왜전(李娃傳)·유씨전 (柳氏傳)·장한가전(長恨歌傳)·침중기(枕中記)·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 등이 있다. 송대에는 전기소설(傳奇小說)이 몰락하고 또다시 '평화(平話)'로 대체되었는데 평화는 평민화한 전기로 남에게 읽히고 들려주던 것으로 은자아(銀字兒)·설공안(說公案) 등과 같은 탐정류와 강사(講史)와 같이 역사성을 띤 허구류(類)가 있었다. 원대에는 비록 잡극(雜劇) 시대였지만 수호전(水滸傳),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같은 백화(白話)로 된 장회소설(章回小說)이 처음으로 등장하여 명·청대의 본격적인 소설의 시대를 이룩하게 했다. 명대는 장회소설의 발달기였다. 봉신연의(封神演義)·서유기(西遊記) 따위의 신괴소설을 비롯하여 기서(奇書)로 알려진 금병매(金甁梅)를 빼놓을 수 없다. 청대는 소설의 전성기다. 그 제재나 기교가 뛰어나, 유림외사(儒林外史), 노잔유기(老殘遊記)·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 따위의 사회풍자소설이 있고 야수폭언·경화연(鏡花緣) 등의 이상소설(理想小說)이 있고 홍루몽(紅樓夢)을 대표로 내놓을 수 있는 애정소설이 있고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삼협오의(三俠五義) 등의 무협소설이 있다. 청말에 이르러 임서를 비롯 구미 소설의 번역물이 쏟아져 나오고 한편 어문(語文)일치운동의 물결을 타고 장회소설(章回小說)의 허물을 벗고 신소설이 나오게 되었다. <許 世 旭>

 대륙에서 문자의 등장

文字-登場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중국의 황허(黃河) 상류·중류에 걸친 광대한 지역에 채색토기(彩色土器)를 특색으로 하는 반렵·반농(半獵半農)의 신석기(新石器) 문화의 층이 퍼져 있었다. 이것이 전설에서 이른바 '하(夏)'의 시대에 해당하는 태고의 문화층(文化層)이다. 이 채색토기에는 선(線)을 겹친 부호와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것도 있으나, 아직 문자는 발견할 수 없다. 한편 중국의 연해(沿海)지구에서 화중(華中)에 걸쳐서 회도(灰陶)나 승문토기(繩紋土器)를 가진 반어반농(半漁半農)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이것이 후의 동이(東夷)·회이(淮夷) 및 만(蠻) 등의 조상인데, 그들도 문자를 갖지 못했다. 이 두 개의 문화층이 황허 하류의 삼각주에서 혼교(混交)되어 생긴 것이, 기원전 15세기에서 5백 년에 걸쳐 허베이(河北)·허난(河南)에서 번영한 은(殷)의 문화이다. 은나라 사람은 황허의 홍수를 피해서 여기저기 도읍을 옮기면서, 산둥(山東)에서 일어난 견직(絹織) 기술을 도입하여, 채도(彩陶)나 회도보다 고온에서 구운 경질의 흑도(黑陶), 나아가서 유약(釉藥)을 칠한 우미한 백도(白陶)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어느덧 청동(靑銅)의 주조(鑄造)를 시작했다. 진(秦)나라 19대 왕인 반경(盤庚)은 지금의 허난 북부인 안양(安陽)에 도읍을 정하고 기원전 1026년 서쪽에서 진격해 온 주(周)나라에게 멸망당하기까지 약 300년에 걸쳐 고도의 청동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들은 조상의 혼이나 산천(山川)의 영을 모시고, 우주의 최고 우두머리로서의 '제(帝)'를 믿었다. 또한 귀갑수골(龜甲獸骨)을 태워서 매일같이 신들에게 점(占)을 물었는데, 그 내용을 무당이나 사생(史生=書記)이 갑골(甲骨)에 새겨서 보존해 두었다. 1893년에 안양에서 이 갑골문자가 발견되어, 지금까지 십수만 조각이 수집되어 있다. 갑골복사(甲骨卜辭)에서 볼 수 있는 한자(漢字)의 자종(字種)은 약 4천, 이것이 중국 최고의 문자이다. 그 자체는 아직 그림에 가까운 상형(象形)문자가 많고, 회의(會意)문자가 그 다음이며, 해성(諧聲)문자는 극히 적다. 주대(周代)의 금석(金石)문자는 분명히 갑골문자의 계통을 잇는 것이며, 후에 진(秦)대의 소전(小篆)→한대(漢代)의 예서(隸書)를 거쳐 드디어 직선화하여 간명한 오늘의 해서(楷書)가 되었다. 복사에는, "乙丑卜王貞 翌伐#方 天又我 天不我又"(을축일에 점을 쳤다. 왕이 묻건대 내일 서북방을 정벌하고자 하는데 하늘이 우리를 도울 것인가, 돕지 않을 것인가)라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비록 단문(短文)이나, 당시에 은나라 사람이 이미 한자에 의해 기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석문과『서경』

金石文-書經 주대(周代)의 청동기나 석각(石刻)에는 '모공정(毛公鼎)'의 명문(銘文)처럼 300자가 넘는 기록이 있고, 후에는 <서경(書經)>이라는 최고의 산문 문헌이 등장한다. 금석문과 <서경>의 문체에는 복사의 표현상의 특색이 남아 있으나, 용어는 난해한 것이고 표현도 어설프다. <서경>의 현존 원전(原典)인 <진고문상서(眞古文尙書)> 58편 중 28편이 진본(眞本)이고 5편은 동일편을 양분하여 된 분본(分本)이며, 나머지 25편은 동진(東晋) 때의 위작(僞作)이다. 진본 가운데도 <요전(堯典)>(및 舜典), <우공(禹貢)> <홍범(洪範)> 등은 전국(戰國)시대의 학자가 추기(追記)한 의고문(擬古文)일 것이다. <서경>은 서약하는 글과 고시(告示)하는 글(誓와 誥)이 주가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은대의 고시를 주(周)나라 사람이 추기한 <반경>, 주나라 무왕의 서문(誓文)인 <목서(牧誓)>, 주나라 때 고시문인 <낙고(洛誥)> <강고(康誥)> <주고(酒誥)> 등이 그 전형적인 것으로, "今豫發 恭行天之罰"(지금 나(發=武王이 공손히 하늘의 벌을 행하고자 한다. <牧誓>)와 같이 조상신(祖上神)이나 상제(上帝)에 대한 신앙과 노예사회에서의 왕의 권력을 노출시킨, 어둡고 엄격한 색조(色調)로 일관되어 있다.

 

 
아언과 산문의 등장편집

雅言-散文-登場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서경>과 같은 옛 문체로부터 훨씬 발전된 자유로운 산문이 등장하였다. <논어> 20편은 공자(孔子)와 그의 문하생의 언행록으로서, 앞의 10편이 고문체이고 뒤의 10편이 다소 새로운 것이다. 공자는 <서경> <시경> <예경> <춘추> 등을 교정(校定)하여 주대 문헌의 계승에 큰 공적을 남겼다. <논어>의 문체는 "有朋自遠方來 不亦悅平"(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왔으니 이 아니 기쁠 소냐)와 같이 조사(助詞)를 많이 활용하여 이른바 고전문법(古典文法)의 전범(典範)이 되는 표현을 확립하였다. 당시 화중(華中)에 실재한 문장어(文章語)의 공통형을 아언(雅言)이라 하고, 이 아언에 좇아서 뜻대로의 산문을 쓸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논어>를 필두로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산문이 일제히 나타났다. <맹자(孟子)>(7편, 현재는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14권)는 맹자(기원전 390-305)의 언행을 문하생이 기록한 것으로서, <논어>가 단문(短文)을 모아 놓은 것인 데 대해, <맹자>는 비유(比喩)나 역설(逆說)을 삽입한 장문으로 설득(說得)의 어구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유가학파(儒家學派)의 산문으로는 <예기(禮記)> 중에 포함되어 있는 <단궁(檀弓)> <중용(中庸)> <대학(大學)> <효경(孝經)>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2권)은 공자와 거의 동시대의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노자(老子, 기원전 5세기∼4세기)의 사상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작위(作爲)를 무가치한 것이라 하고, 우주를 망망한 '무(無)'의 진행이라 생각하였다. 그 사상이 "도가도 비상도야(道可道 非常道也)"(道가 道라 할 수 있는 것은 常道가 아니다)와 같은 운문(韻文)에 가까운 짧은 경구로 엮어져 있다. 노자의 경력이 불분명한 데서 갖가지 전설이 전해져, 공로상면(孔老相面)의 이야기(<莊子>나 <史記>), 또는 노자 출관(出關)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묵자(墨子)>(53편)는 묵자(기원전 480∼390)의 소설(所說)을 그의 문하생이 집록(集錄)한 것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박애와 비전론(非戰論)을 주장하고, 근로를 중시하며, 각지를 유세(遊說)하였다. <장자(莊子)>(33편)는 장자(기원전 365∼290)의 허무의 사상을 많은 우화(寓話)를 삽입하여 설술(說述)한 것으로 특히 환상과 풍자에 차 있고 문학적인 사상의 서적이라 호칭될 만한 것이다. <순자(荀子)>(32편)는 순자(기원전 315?∼230?)의 저작으로 성악론(性惡論)을 비롯하여, 천명(天命), 언어, 사회적 습관 등의 본질을 경험주의에 입각하여 합리적으로 논한 달의(達意)의 문장이다. 또한 그 중에 부(賦) 5편과 시 2편을 포함하여 이것이 한대(漢代)의 부의 원류(源流)가 되었다. <한비자(韓非子)>(55편)는 한비(?∼기원전 233)가 부국강병(富國强兵)과 법치엄형주의(法治嚴刑主義)를 서술한 것으로, 그의 문장은 독자를 경도(驚倒)케 하는 과장과 야유로 충만해 있다. 그 <제설(儲說)> 부분에는 설득과 화술(話術)에 필요한 이야기의 비결이 수록되어 있다. <여씨춘추(呂氏春秋)>(8覽 6論 12紀, 計 26篇)는 진(秦)의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자기의 식객들에게 편집케 한 중국 고대사상의 총집(叢集)이다. 유가(儒家), 노장(老莊),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 등의 사상을 망라하고 있는 외에 특히 신화나 전설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점에서는 전한(前漢)의 <회남자(淮南子)>와 비견할 귀중한 책이다.

 

 
역사의 문장편집

歷史-文章 <춘추>는 노나라(魯國)의 간단한 편년사(編年史)였으나, 노의 사관(史官) 좌구명(左丘明)이 거기에 전기를 첨가하였다. 이것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기원전 722-468까지의 記事를 포함한다)이며 이 속에는 각국 사신들의 언동이나 진나라 문공(文公)의 방랑의 일생, 성박의 전쟁 등 박진(迫眞)한 문학적 묘사가 거의 포함되어 있다. 그는 또한 주(周), 노(魯), 진(晋) 등 8개국의 역사를 나라별로 편찬하여 <국어(國語)>를 만들었다. 예양(豫讓)의 복수나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복수 등이 내용으로서 <좌전(左傳)>에 뒤떨어지지 않는 문학적 작품이다. <국어>의 뒤를 이어 전국 제국(戰國諸國)의 흥망을 기술한 것이 <전국책(戰國策)>(저자 불명. 전한의 劉向이 정리한 33편)이다. 동주(東周), 서주(西周), 진(秦), 제(齊) 이하 12개국에 걸쳐 종래의 도의관을 버리고 실리와 책략으로 승패를 짓는 정객(蘇秦, 張儀 등)과 무장(龐涓 吳起 등)의 언동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후세에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흡사한 소설 형식의 역사적 서적이다.

 

 
운문의 발달편집

韻文-發達 중국 최고의 시집인 <시경>에는 서주의 말기로부터 동주에 걸쳐(기원전 9세기-7세기) 나온 시 305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지방의 사랑노래나 농촌의 민요, 궁정시인의 시, 주·송나라의 개국전설을 노래한 시 등 다채로운 내용을 포함하며, "桃之夭夭 灼灼其華…"(복숭아는 싱싱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꽃…)와 같이 사언사구(四言四句)를 기본형으로 하여, 소박한 기쁨이나 노여움이 약동하고 있다. 단음절어(單音節語)인 한어는 저절로 2음절의 숙어를 만들며 그것이 중첩되어 사언일구(四言一句)가 되어 안정된 리듬을 낳았다. 그러나 은말(殷末)로부터 주대(周代)에 걸친 400-500년간에 발달한 가요를 한자로 훌륭히 표현하는 지혜가 성숙한 것은 경탄할 만한 것이다. 한편 기원전 4세기에는 양쯔강(揚子江) 중류의 초(楚)나라에서 '초사(楚辭)'라고 불리는 시가가 등장하였다. 굴원(屈原)과 그 후계자 송옥(宋玉)과 경차(景差)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것은 "帝高陽之苗裔兮(<離騷>)"와 같이 조사(助詞) 之나 兮를 삽입하면서 3언→3언, 4언→3언의 리듬을 구성하여, 1구가 6언 또는 7언이 된다. 그래서 "悲莫悲兮生離別(<少可命>)"(슬픔은, 생이별의 슬픔보다 더한 것은 없다)과 같은 형태로 고정되어 후에 한대(漢代)의 초조(楚調)의 노래, 예를 들면 한고조(漢高祖)의 "大風起兮雲飛揚(<秋風辭>)" 등의 격조(格調)를 낳고, 칠언부(七言賦) 또는 후세의 칠언사(七言辭) 등으로 발전해 갔다. 1구 7언이 된 결과 <시경(詩經)>의 4언 7구에 비해 훨씬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시경(詩經)편집

중국의 가장 오래 된 시집이다. 서주(西周) 말기로부터 동주(東周)에 걸쳐(기원전 9세기-7세기) 있던 시로서 305편을 수록하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공자가 주대의 시를 편집하여 공자 문하의 교양서적으로 삼았으며 그 문하생인 자하(子夏, 기원전 507- ?)가 <대서(大序)>를 붙이고 또한 전한(前漢) 초의 모향(毛享), 모장 부자가 <소서(小序)>를 추가하고 동시에 비(比)·부(賦)·흥(興) 등의 구별과 극히 간단한 주석을 첨가하였다. 이것을 <모시(毛詩)>라고 한다. 한대에는 별도로 <제시(齊詩)> <노시(魯詩)> <한시(韓詩)> 등 삼가(三家)의 원전도 있었다. 오늘날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은 <모시>에다 후한(後漢)의 정현(鄭玄, 127-200)이 주석을 붙인 <모시정전(毛詩鄭箋)>이 있다.

내용편집

內容 풍(風)·아(雅)·송(頌)의 3부로 나뉜다. 풍이란 민풍(民風) 또는 풍(諷=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의 의미로 주남(周南), 소남(召南), 왕풍(王風), 정풍(鄭風) 등 15개국의 민요와 남녀 군무(群舞) 중의 연가(戀歌) 160편을 수록하고 있다. 아란 뾰족한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모습이나 말이라는 뜻으로, 주의 왕조 시인(王朝詩人)과 도시 지식인의 작품 105편을 싣고 있다. 그 중 대아(大雅)에는 연회(宴會)나 제례(祭禮)의 노래가 많고, 소아(小雅)에는 말세의 유전(流轉)과 멸망을 슬퍼하는 노래가 많다. 송이란 송(誦)과 같은 뜻(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고 노래하는 것)으로,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 등 합계 40편을 싣고 있으며, 제례의 가락이나 신악(神樂)이 많다. 그 중 상송은 은나라의 말손(末孫)이 건국한 송(宋)의 제사의 노래이다. 다만 풍, 아, 송의 구별은 편의에 의한 것으로서 아 중에도 연가나 장편의 서사시를 포함하며, 송 가운데도 제례에 관계 없는 노래를 포함시키고 있다. <시경>이 유가(儒家)의 경전으로 되었기 때문에 대서(大序), 소서(小序), 정전(鄭箋) 모두 연가를 도덕적인 계고(戒告)라고 설명한다든가, 무명작가의 작품을 옛 성현이나 역사상 저명한 인물의 작품이라고 단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송(南宋)의 주희(朱憙, 1130-1200)의 <시경집전(詩經集傳)>은 이러한 무리를 정정하려 시도하였으나, 역시 상당히 구설(舊說)에 젖어 있으므로 후세 사람들의 많은 해설이 나와 자유로운 입장에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시경>의 내용은 (1) 연가(<靜女> <將仲子> 등), (2) 애도나 하송(賀頌)의 노래(<蔘莪> 등), (3) 농촌의 노래(<七月> <甫田> 등), (4) 종묘(宗廟)의 찬가(<思文> <雲漢> 등), (5) 연회(宴會)의 노래(<鹿鳴> <伐木> 등), (6) 수렵(狩獵)과 전쟁의 노래(<車行> <常武> <東山> 등>로 분류할 수 있다.

표현편집

表現 <시경>의 시는 4언 1구가 기본이며, 4구 1장이 한 장면을 이루어 반복되는 것이 가장 소박한 형태이나 그 중에는 당당한 장편도 있다. 연가에는 "一日不見 如三月兮"(하루만 못 보아도 석 달이나 못 본 것 같다<靑靑子衿>)라든가, "子不我思 豈無他人"(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남과 무엇이 다르겠소<蹇裳>) 등의 솔직한 마음의 실토를 볼 수 있다. 원망을 표현하여 "不稼不穡 胡取禾三白廛"(벌지도 않고 농사도 안 지었으면서 왜 벼 3백 전을 가져갔느냐 <伐壇>)에서는 지배자의 착취를 나무라고, "取彼讚人 投界豺虎"(저 거짓말하는 놈을 늑대나 호랑이에게 던져 버리련다 <巷伯>) 따위와 같이, 교사(巧詐)한 무리를 심하게 저주하고 있다. 농촌의 시에는 "칠월유화(七月流火) 구월수의(九月授衣)"와 같은 수를 세는 노래도 보인다. 또한 <생민(生民)> <면> <공유(公劉)> 등은 주나라 개국(開國) 이야기를 서술한 장편 서사시로서 그리스의 <오디세이아>와 유사한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운(韻)의 밟음은 연속 압운(押韻), 격구(隔句)압운 등 갖가지이며, 來 ― 子 ― 母 등의 후세에서 압운한 것 같지 않는 자가 압운되어 있다. 그 압운자 2천여 자가 계30부로 분류되는 점에서 상고 한어의 운모(韻母)의 체계가 복원, 고대 한어의 어음을 재현하는 부산물도 가져왔다.

영향편집

影響 <시경>은 춘추시대에는 사대부 필독의 교양서적이 되어 <춘추좌씨전>에 의하면, 외교의 응대에도, 사대부의 변론에도 그 마음의 지주(支柱)로서 인용되고 있다. 또한 <논어> <맹자> <묵자(墨子)> 등의 제자백가의 서에도 도리를 설명하는 열쇠로서 인용되고, <시경>의 발상(發想)이나 머리말에 의한 도입의 수법은, 후한 이후의 악부(樂府)에 그대로 계승된 외에도 조식(曺植)의 <원회(元會)>, 도잠(陶潛〓도연명)의 <정운(停雲)> 등 3국 6조의 시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 후한 이후에 발달한 5언시는 <시경>의 4언구의 후반에 한자를 첨가하는 데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수많은 <시경>의 말은 성어(成語)로서 전승되어 요조(窈窕)는 미인, 집가(執柯)는 약혼 따위로 전고(典故) 있는 어휘가 되었다.

 

 
초사편집

楚辭 (기원전 3세기) 굴원(屈原)에 의해서 창시된 운문이다. 화베이(華北) 지방에 상고 때부터 있던 <시경>의 시가 4언 1구를 기조(基調)로 하였으나, 어느덧 양쯔강 중류에는 6언 또는 7언을 1구로 하는 민요가 생겨났다. 굴원은 초나라의 성직(聖職)이었던 무당의 가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갖가지 고래의 전승(傳承)이나 신화에 능통하여, 풍부한 사조(辭藻=말의 수식)에 힘입어 훌륭하게 초나라 민요조를 문인(文人)의 작품에까지 정화(淨化)시켰다. 전한(前漢)의 유향(劉向, 기원전 77?-6?)이 굴원과 그 후계자 송옥(宋玉), 경차(景差) 등의 작품 25편을 모아서 '초사'라고 이름붙인 것이 그 기원이다. 현존하는 <초사>(한나라 王逸이 註를 단 17권)는, 한대의 작품까지도 포함되는데 구본의 25편이란 <이소(離騷)> 등 5편, <9가>(九歌=2편), <9장>(九章=9편)일 것이다. 굴원의 작품은 <이소>와 <9장> 및 <천문(天問)>의 일부이며, <복거(卜居)> <어부(漁夫)> 등의 편은 분명히 초나라 사람이 추기한 것이다. 굴원은 초나라 신직(神職) 가계의 출신으로서, 성직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권모·공리(功利)의 무리에게 쫓기는 비운(悲運)을 절절히 기술하고 있다. <이소>에서는 먼저 자기의 깨끗한 생장(生長)을 자랑하고, 참언(讖言)에 의해서 몰려난 통분을 술회한다. 이어서 혼탁한 세상을 버리고 천계(天界)로 올라가 전세의 지혜자 영분(靈雰)과 무함(巫咸)에게 비운을 호소한다. 멀리 서왕모(西王母)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러운 하계(下界)에 마음이 끌려 돌아온다. 그리하여 "已矣哉國人莫我知兮"(이젠 마지막이로다. 백성 가운데 나를 아는 자가 없으니) 하며 몸을 숨기고 유망(流亡)하려고 결심하는 데서 끝난다. 무당의 환상과 현실이 교착(交錯)된 장편 서정시이다. <9장> 가운데, <귤송(橘頌)>은 청초한 영물(詠物)의 시로 별격(別格)이며, <석송(惜誦)> <추사(抽思)> <비회풍(悲回風)>은 <이 소>의 연장선(延長線)상에 있고, <회사(懷沙)>에 이르러 드디어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될 심정을 말하고 있다. <9가>는 초나라에 유전(流傳)되고 있던 연가와 제신송사(祭神送死)의 노래를 굴원이 채록(採錄)한 것으로서, <이소> 이하의 여러 편과는 별개의 계열에 속한다. 그 중 <상군(湘君)> <상부인(湘夫人)> <소사명(小司 命)> <대사명(大司命)> <하백(河伯)> <산귀(山鬼)> 등은 연가이며, 또한 남녀 무당이 신전에서 춤추는 신악(神樂)의 연곡(戀曲)인지도 모른다. <운중군(雲中君)> <동군(東君)> <동황태일(東皇太一)> <예혼(禮魂)> 등은 앙신송신(仰神送神)의 노래이다. <천문(天問)>은 고대신화의 신들과 영웅의 고사(故事)를 열거하여 질문한 것으로서, 거기에 대한 답이 별도로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에 질문의 부분만 남은 것 같다. 이것도 신전에서의 헌납(獻納)행사의 하나였는지 모르겠으나, 고대신화의 몇 안 되는 기록의 하나로서 진중(珍重)한 것이다. 송옥, 경차 등은 굴원보다 후에 초의 양왕(襄王)을 섬긴 궁정시인이었다. 송옥의 작품으로서는 <구변(九辯)>이 있고, 경차의 작품에는 <대초(大超)>가 있는데, 내용은 온아(溫雅)하고, 굴원과 같은 절실함이 없다. 송옥이 양왕과 운몽(雲夢)에서 지냈을 때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고당부(高唐賦)> <신녀부(神女賦)> 등은 신녀와의 밀회의 고사(故事)로서 후세의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나, 이것은 송옥보다 후세 사람의 작품인 것 같다. <초사>는 한대(漢代)의 초(楚) 가락의 원류(源流)로서, 항우(項羽, 기원전 232-202)의 "力拔山兮氣蓋世"(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도다)나 고조(高祖)의 "大風起兮雲飛揚" 등은 유명하다.

 

 
굴원편집

屈原 (기원전 343-290) 중국 고대의 시인. 이름은 굴평(屈平), 자는 정칙(正則) 또는 영균(靈均). 초나라의 귀족으로서 아마도 무당과 사관(史官)을 겸한 성직(聖職) 가문에 속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 초나라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았으나, 같은 귀족의 상관대부(上官大夫)의 중상(中傷)으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회왕은 서북(西北)의 신흥국인 진(秦)의 사자 장의(張儀)의 변설(辯舌)에 속아 살해되고, 회왕의 장자 경양왕(頃襄王)의 시대가 된다. 굴원은 다시 기용되어 동쪽의 제(齊)나라와 협력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고 노력했으나 회왕의 막내아들 자란(子蘭)의 방해로 다시 실각하여, 드디어 강안(江岸)에서 동정호(洞廷湖)로 유랑하다 멱라에서 투신자살했다. 그 비분을 초나라 민요가락에 실어, 풍부한 신화적 환상을 짜넣어서 노래한 것이 장편시 <이소(離騷)>이며, <석송(惜誦)> <회사(懷沙)> 등은 그 속편이다. 후에 초나라는 드디어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는데 초나라 사람은 굴원의 죽음을 애도하여 5월 단오절에 호반에 송편을 던져 위로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송옥편집

宋玉 (기원전 3세기) 중국 고대의 시인으로 굴원의 초사의 후계자이다.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16편의 작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4편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 <구변(九辯)>만이 확실히 그의 작품이다. 세상의 쇠망과 자신의 불우함을 탄식하고, 가을의 쓸쓸함을 슬퍼하는 구절이 있는데, 굴원과 같은 절실함이 없다. 오히려 초나라 양왕과 운몽의 신녀와의 밀회를 노래한 <고당부> <신녀부>가 유명한데, 이것은 송옥보다 후대의 작인 것 같다. 그러나 후세에는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의 밀회)이라는 성어(成語)가 되어, 송옥은 색정적인 서정작가로서 지목받게 되었다.

산해경(山海經)편집

(기원전 3세기?-1세기?) 중국의 옛 신화와 지리(地理)에 대한 서적. 우(禹)의 협력자 백익(伯益)의 저서라고도 전하나 이것은 추측이고, 전국시대부터 한대(漢代)에 걸쳐서 호기심 많은 학자가 한 가지씩 첨가한 것인데, <남산경(南山經)>을 비롯하여 <해내경(海內經)>으로 끝나는 18권이다. 진(晋)나라 곽박(郭璞, 3세기-4세기)의 주서(註書)로서, <초사>의 <천문>과 함께 중국 신화를 기록한 귀한 고전이다. 가령 "동쪽 끝 탕곡(湯谷)에 부상(扶桑)의 나무가 있다. 10일간 햇빛을 받는데, 9일은 하지(下枝)에 받고 1일은 상지에 받는다."(<海外東經>)란 태양에 관한 이야기이고, "서쪽에 왕모(王母)의 산이 있어… 봉황의 알을 먹고, 감로(甘露)를 마시고"(<大荒東經>)란 서왕모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와 싸웠을 때, 풍우를 진압하기 위해서 왕녀인 발(魃)을 하계에 내려 보냈는데, 전후(戰後)에 발이 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전조(田祖)인 숙균(叔均)의 권유로, 발을 적수(赤水)의 북쪽으로 쫓았다"(<大荒北經>)라고 한 것은, 한발(旱魃)이란 말의 유래를 설명한 것이다. 또한 곤륜(崑崙)의 위치나 약수(弱水)의 원류(源流) 등을 설명한 점은 <우공(禹貢)>과 비슷한 지리(地理) 서적이며, 순초(荀草)가 미인이 되는 약이라는 등 많은 약초를 소개하는 것은, 후세의 <본초(本草)>(한방의 약학)의 원류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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