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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슬픈 바퀴벌레 일가□이진우, 세계사시인선 36, 세계사, 1994 거침없이 내달리는 상상력과 모든 체험을 시로 만들어버리는 과감성이 돋보인다. 이런 것이야말로 젊음의 패기이리라. 그런데 좀 가볍다. 이 가벼움이 의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것은 성급함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시로 써도 되지 않을 것들을 시로 만드느라고 고생한 작품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애써 쓴 작품들이 가벼움으로 기화하지 않으려면 인식의 깊이가 문제가 된다. 가볍게 떠오르더라도 시인의 인식은 지구의 핵까지 닿아있어야 한다.★★☆☆☆[4336. 11. 17.]
122□사랑을 위한 아침□서석화, 세계사시인선 38, 세계사, 1994 시에서 쓰이는 발언과 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쓰이는 발언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이 시인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이다. 그냥 묘사와 그냥 발언이 시집의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시는 절약해야 할 말이 있고, 풀어야 할 말이 있다. 그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며 이미지를 전개하고 할 말을 펼쳐야 하는데, 무엇이 시가 되는지 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구별이 없다. 묘사되는 대상이 어떤 정서를 환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냥 대상에 대한 단순하 묘사로 남는 경우가 많다.★☆☆☆☆[4336. 11. 17.]
123□우리 낯선 사람들□이하석, 세계사시인선 3, 세계사, 1989 도시 문명 속으로 침몰 당하는 자연인의 마지막 세대라고나 할까? 자연이 준 추억과 비정한 도시의 관계를 아주 독특한 시각으로 노래한다. 노래하는 방법과 시각이 확고하게 서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고 할 말을 다하고 있다. 다만 자신의 정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비정한 문명을 비판하려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흠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설명으로 대신한 경우가 있어서 옥에 티라고 하겠다. 이미지들을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상징으로 읽히게 만드는 방법도 눈여겨볼 만하다.★★★☆☆[4336. 11. 17.]
124□잠언집□박상배, 세계사시인선 39, 세계사, 1994 인식은 없고 기교가 살아서 시를 이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든 간에 그것이 깊은 울림을 주기는 어렵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절실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오는 시는 거짓이나 허풍이다. 그것이 형식의 문제이든 인식의 문제이든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그 자유를 박탈할 권리는 없지만, 그것이 도달해야 할 어떤 세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변이다. 그런 궤변을 도와주는 자가 있다면 그건 평론가들이리라.★★☆☆☆[4336. 11. 17.]
125□지상의 인간□박남철, 문학과지성시인선 36, 문학과지성사, 1984 서정시가 가슴속에서 마그마처럼 꿈틀거리는 감정을 어떤 형식에 기대어 분출시키는 것이라면 그 형식이 어떤 것이든 이 시집의 시들은 순수한 서정시로 보인다. 그 만큼 시속의 정서가 순수하다. 다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법이 기존의 시들과 판이하게 다른데, 그렇다고 해도 그런 파괴된 형식 속에서 시인이 표출하고자 하는 것들이 너무나 순수한 감정들이어서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스한 느낌이 들게 한다. 진정한 형식 파괴가 되려면 그 안에 깃든 정서까지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아직 거기까지 가 닿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형식 파괴로 본다면 기성세대의 마지막 주자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4336. 11. 17.]
126□묵을 갈다가□김상옥, 창비시선 21, 창작과비평사, 1980 이 시집 속의 시들을 보면 시인의 절제된 감정이 돋보인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서 인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아주 오랜 전통을 볼 수가 있다. 바로 자연과 동화를 꿈꾸는 그 노력 때문에 언어조차도 엄정한 절제미를 갖추게 된다. 이 시집에서도 그런 전형을 엿볼 수 있다. 이 점은 그 후 세대들이 완전히 잃어버려서 영원히 복구하지 못할 세계관이다. 우리가 옛날 성리학자들이 보던 자연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간해서는 흉내내기 힘든 세계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상상력 역시 그 진폭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고고하고 깨끗하되 답답한 것이다. 한자 역시 답답함을 일조한다.★★☆☆☆[4336. 11. 17.]
127□마지막 지상에서□김현승, 창비시선 3, 창작과비평사, 1975 우리가 옛 시조나 옛날 봉건시대의 시를 비판할 때 가장 먼저 들이댄 말이 영탄조에 시대의식이 증발했다는 것이었는데, 그 비판을 그대로 되돌려 받아야 할 시집이다. 시의 방법론이나 현실인식 어느 곳에서도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비유체계는 긴장을 잃고 할 말도 뚜렷하지 않다. 신에 대한 믿음을 노래한 작품은 찬송가의 가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가 되는 것과 시가 될 수 없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한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업보이니 굳이 시인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건질 것이 있다면 사물과 세상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다.★☆☆☆☆[4336. 11. 17.]
128□트렁크□김언희, 세계사시인선 61, 세계사, 1995 섬뜩한 느낌이 들도록 과감하게 한 주제를 향해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높이 살 만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성욕과 성풍속에 칼끝을 들이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용기 또한 살 만하다. 이들이 이렇게 황폐하고 섬뜩한 것은 어쩌면 시인이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어떤 권위에 대한 도전의 형식일 때는 그것이 형식마저도 황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가 인식만으로 이루어지면 너무 깡마르고 메마르게 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시는 칼날이 아니라 칼을 든 사람의 마음이어야 하는 것이다.★★☆☆☆[4336. 11. 18.]
129□무림일기□유하, 세계사시인선 50, 3쇄, 세계사, 2000 좀 산만하다. 그 산만함은 주제가 통일되어 있지 않는 까닭도 있지만, 어법과 발상 자체가 산만한 까닭이다. 이 산만함은 좋은 의미라면 발랄함이라고 해도 되겠다. 발랄함은 시인의 기본이다. 발랄하지 않으면 이미 고착된 관념과 말의 관계를 뚫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발랄함을 김현은 ‘키치’라고 했지만, 그건 포장지를 싸들고 다니며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버릇이 몸에 밴 평론가들의 입방아일 뿐이다. 이 시집은 목소리가 크다. 그래서 허풍을 떤다. 아마도 이 시에서 노래한 우리 시대의 경망스러움을 보여주려는 뜻일 것이다. 무림일기 같은 경우 얼마나 화사하고 화려한 문장으로 되어있는가? 기실 쪼개보면 아무 것도 아닌 내용인데 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말투로 시대의 정곡을 찌르고 있으니, 이것이 발랄함의 힘이다. 한자는 이 발랄함에 발을 건다. 중간의 영화론은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다. 시를 영화로 보고자 하는 사람은 있어도 영화를 시로 보고자 하는 사람은 없는 시대가 아닌가? 남의 장르에다가 아무리 시를 옷 입혀봤자 허수아비 꼴을 면할 수 없다. 시집 전체가 초점이 흩어져서 산만하다. 맨 뒤쪽의 시 몇 편은 차라리 해프닝이다.★★☆☆☆[4336. 11. 18.]
130□자본주의의 약속□함민복, 세계사시인선 31, 세계사, 1993 전략을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 수다스러움을 이 시집의 한 특징으로 보아도 되겠지만, 수다스러움은 능력 없음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싸우기에는 너무나 맥빠진 방법이다. 자본주의는 그런 수다스러움에 넘어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거꾸러지는 꼴을 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성질을 타고났다. 박노해와 백무산을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좀 더 뿌리를 흔들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온몸으로 자본주의의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시인의 노력이 경탄스럽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기어다닐 수만은 없는 것이 삶이고 시이다. 이제 칼을 뽑아도 된다.★★★☆☆[4336.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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