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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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관찰해 본 중국의 변화
2011년 01월 21일 15시 53분  조회:5771  추천:45  작성자: 김광림

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광림의 보스턴통신14

                                           

              외부와 내부의 시각으로 본 오늘의 중국(4)


일본에서 관찰해 본 중국의 변화



최근 중국의 호금도(후진타오)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을 미국과 더불어 초대강국으로 지칭하는G2(Group of Two)라는 신조어가 서방세계에서 회자되다싶이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존재감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30년간 지속돼온 중국경제의 고도성장, 2010년에는 GDP가 일본을 앞질러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가까운 장래에 미국을 앞질러 세계1위의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측도 많이 나오고 있다. 세계최대의 외환보유액, 미국국채의 최대구입자 등 수치도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부상(浮上)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이 글에서는 이런 거대한 수치상의 중국만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중국의 모습과 변화를 20여년간 외국에서 거주하며서 관찰해본대로 적어보겠다.

1976년에 중국에서 모택동의 부인 강청을 비롯한 소위  ‘‘4인방’이 제거되고 문화대혁명이 정식으로 종결됐을 때 중국의 국고가  완전히 바닥이 낮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경제나 사회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던 것이다. 1970년대 말기부터 등소평이 주창한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중국은 우선 사회주의 집단농장을 과감하게 해체하고 개인영농을 허락하면서 농민들의 노동의욕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농촌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다음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개인장사가 허락되고, 해외화교나 외국인을 상대로 한 외자유치정책이 실시되어 중국에서 개인장사붐, 외자유치붐이 일어났다. 내가 일본으로 유학한 1988년이 바로 이런 시점이었다. 

내가 1988년에 일본에 유학했을 그 당시, 중국사회가 개혁개방정책으로 많이 봐뀌어간다는 인식은 일본에서도 했지만 가까운 장래에 일본을 초과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때는 일본경제가 한창 버불의 절정기에 있었고, 국제사회가 일본을 보는 눈도 대단히 좋았다. 그러다가 1989년에 중국에서 천안문사건이 터졌는데 일본의 대다수 중국전문가들이 이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실패하고 다시 농업국으로 회귀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그 무렵 일본의 슈퍼나 옷가게에 가면 되면 중국제복장이 눈에 많이 뛰어 중국의 성장이 결코 멈춰서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슈퍼에 가봤더니 중국제 청바지가 있어 중국도 청바지를 만드는 나라냐고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 그 때이다. 

  그러다가 1992년에 일본유학 4년만에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출신인 나로서도 중국인들의 마인드가 너무나도 바뀐 점에 놀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돈 얘기를 하고, 사람들 사이의 인사가 돈 잘 버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중국조선족사회에서는 한국으로 돈벌이 나가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1989년의 천안문사건이 중국인들의 의식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이 사건 이전에는 사회주의적 의식이 아직 깊이 남아있었고 정치에 대하여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천안문사건이후 중국인들 의식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꺼져가고 경제일변도로 바뀐 것 같아 보였다. 

그 다음에도 90년대에 중국을 몇차려 방문했는데 가 볼 때마다 많이 바뀌고 있었고, 사회전체가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그 때부터 농민들이 농촌을 많이 떠나고 농촌에 폐가가 생기고 자식들이 떠난 마을에서 노인들이 고독하게 집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값싼 중국제품이 넘쳐날 정도로 많아서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불렀다. 
2001년에는 기회가 있어 할빈, 장춘, 연변, 내몽골, 북경을 방문했는데 중국의 도로사정이 획기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중국의 주요도시 구간에는 도속도로가 달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일본못지 않게 보급돼간 것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북경에서 놀라웠던 것은 가는데마다 주택융자를 해준다는 광고판이 나붙어있어 중국의 도시에서 마이홈시대의 열기를 실감했다. 일본과 한국의 고도성장기가 바로 이런 식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북경에서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나갔는데 호텔보이가 잡아준 택시가 알고보니 정부기관의  공용차였다. 정부기관의 공용차 기사가 새벽에 일어나서 공용차로 택시운전을 하고 그리고나서 아침에 출근하는 모양이었다. 그 때는 중국의 공무원들도 부업을 많이 하는 시기여서 합법이던 아니던간에 그런 식으로 수입을 늘려가고 있었다.

2003년에 상해를 방문하니 소문그대로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듯이 상해시가 크게 변하고 있었다. 황포강(黃浦江)변의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보면 상해시의 신개발구가 마치 미래도시처럼 보이고 국제대기업의 광고가 황포강변에 많이 나붙었다. 신기하기도 하구나, 도대체 중국에 무슨 매력이 있길래 국제대기업들이 이렇게 많이 진출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나 서울에 가봐도 상해처럼 국제기업들의 광고가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에 이미 상해의 번화거리는 도쿄나 서울보다 더 활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중국에 갈 때마다 상대적으로 좋은 모습을 많이 봤지만, 동시에 국영기업의 직원들이 대량으로 해고되여 살길이 막막하다든가, 가난한 사람들은 설이 다가와도 고기도 구경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들렸다. 농촌에서는 자녀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미국에서 발견하는 중국의 존재감

재작년에 미국에 와서 일본보다 다른 시각으로 중국의 존재감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1년가 체류했던 UC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대)의 동아시아연구소에는 중국, 한국, 일본연구센터 등이 있는데 수적으로도 중국연구자가 많고 연구활동도 중국에 관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번에 하버드대학교에 와보니 여기도 역시 동아시아연구하면 중국연구가 중심이 되고, 연구활동에 있어서도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버드대 케네디행정스쿨에는 중국의 관료들이 연수차 많이 다녀가는데 중국인 스스로 케네디행정스쿨을 중국의 제2중앙공산당학교라고 농담조로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 전략적으로 중국의 행정관료들을 미국의 명문대학교에 불러서 연수시키면서 지미파(知美派)를 키우고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하는것으로 보인다.

단지 미국의 대학교에서의 연구나 연수에서 중국이 두드러지는 것만이 아니고 미국의 미디어에서는 중국에 관한 화제가 거의 끊기지 않고 있다. 미국정부에서도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부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중국과의 관계설정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인들이 미국에 와서 투자한다거나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은 이제는 신선한 화제거리도 아니다. 미국의 관광지들을 다녀보아도 가는데마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다닌다. 중국인들이 미국에서도 활보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내부의 눈으로 보는 중국의 실상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날로 커져가는데 비하면 실지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의 실상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 두가지 실례를 들고 싶다. 

하나는 해외에 나와있는 중국인들이 중국에 귀환하기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 일본에 유학한 중국인들이 공부를 마치고 가능하면 일본에 남으려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미국에 와보니 여기서도 중국인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나서 될수록 미국에 남으려고 한다. 왜서 일까 생각하는데 단지 경제문제만이 아니고 사회전체의 환경과 관계된다. 사회의 공평성과 투명도, 안전한 식품, 자녀들의 교육환경, 의료문제 등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이나 미국같은 나라들과 비하여 너무나 차이를 많이 느끼기에 귀국하기를 주저한다. 서방의 민주주의를 체험했던 유학생들이 아직도 통제사회인 중국에 가서 새초롱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

또 하나는 중국에서 관료들이나 부유층가운데 자녀들을 해외에 거주시키거나 변상적인 방법으로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신분보장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니 안전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그만큼 중국의 엘리트들이 중국의 장래에 확신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중국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모순도 너무 많다. 가까운 문제로는 급속한 산업화를 위한 농촌에서의 토지강제징수문제가 농민들의 불만을 크게 사고 있고, 때로는 농민들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물가와 주택가격의 급등에대한 도시주민들의 불만도 크다.

빈부격차의 확대, 관료들의 부패, 심각한 환경오염, 식품안전에 대한 불안감, 민족관계 등 오늘의 중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다 해결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GDP가 세계2위로 됐다고 하지만 국민 1인당의 GNP는 4천불미만으로 아직도 세계하위권에 속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위상이 제고되고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과 국민의 행복지수는 꼭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노자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이상사회라고 말했듯이 중국같이 과도한 인구를 가진 나라는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기 참으로 힘든 과업이다. 그러기에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올리거나 영향력을 늘이는 일보다 국민들이 보다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 순위가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2010년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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