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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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횡단해본 미국(1)
2010년 09월 04일 11시 01분  조회:4050  추천:46  작성자: 김광림

                                             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광림의 보스턴통신1

 

                    기차로 횡단해본 미국(1)

 

정든 고장을 아쉽게 떠나면서

나는 일본에서 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작년 9월부터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대학(UC Berkeley) 동아시아연구소에서 1년간 방문학자로 체류했다. 1년만으로는 자신의 연구를 충실하게 하고, 영어의 벽을 넘어서기까지는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금년 8월부터 하버드대학교 중국학연구센터(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에서 방문학자로서 1년간 체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7월말에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에서 매사추세츠의 보스턴에 이사하게 되었다. 버클리는 미국 태평양연안에 있는 서부의 도시이고, 보스턴은 대서양연안에 있는 동부의 도시이다. 미국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사하게 것이다. 중국으로 말하면 신강의 서쪽 도시 호탄에서 대련으로, 또는 해남도에서 연길로 이사하는 정도의 거리이다. 버클리에서 보스턴까지의 거리는 대체로 4,700km 비행기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미국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사하는데 비행기를 타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지난 다는 것은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번쯤은 광활한 미주대륙을 기차로 횡단해보고 싶은 꿈이 나의 마음에 꿈틀거렸다. 그리하여 버클리에서 보스턴까지 기차로 가는 방법을 알아봤더니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Emeryville역에서 기차를 타고 52시간이 걸려서 미국 중부의 대도시 시카고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기차를 바꾸어타고 23시간 걸려서 보스턴역까지 토착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시간만 75시간 정도이니 옹근 3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거기다 침대차는 워낙 가격이 비싼데다 침대 두개나, 세개가 달린 침대방 하나를 통채로 구입하는 방식이기에 혼자서 여행하면서 침대차를 타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따랐다. 나이가 40 후반에 들어선 내가 침대도 없는 기차에서 3일간이나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혹시나 병이 들지 않겠는가 하는 근심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에 미주대륙을 횡단해보 싶은 충동을 금할 없었다. 여러 생각끝에 기차로 보스턴에 가기로 했다. 

725 오전, 버클리에 1 체류하는 사이 물심양면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한국 출신의 선일박사 (UC 버클리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연구원)가 자가용차로 기차역까지 바래주었다. 오전 10시경에 내가 몸을 담은 시카고행 기차가 샌프란시스코 외곽의Emeryville역을 출발했다. 정작 기차가 서서히 떠나니 1년간 살았던 버클리에 대하여 수많은 감회가 떠올랐다. 영어도 변변히 통하지 않고, 아는 지인도 없는 낮선 곳에 공항에서 마중해주는 사람도 없이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찾아왔던 것이 바로 1년전이었는데, 와보니 너무나 좋은 곳이었고, 1년간 방문학자로 체류한 UC 버클리는 정말 좋은 대학이었다.

버클리는 인구 10만명 정도되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있는 도시인데 태평양을 바라보는 느슨한 산비탈을 타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1 사계절이 마치도 가을과도 같이 서늘하고 태평양에서는 언제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때문에 나는 일본에서 준비해간 1 사계절  옷을 서로 바꾸어 입을 필요 없이 항상 가을 옷만 입고 지냈다. 아마 자연조건만 따진다면 지역만한 도시가 미국에서 그리 흔하지도 않을리라. 

 UC 버클리는 학생이 35천명 정도의 종합대학교인데 미국내에서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대학이기에 해외에서도 많은 유학생, 학자들이 모여오는 대학교이다. 1년간 나는 UC 버클리의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수십번 이상 다양한 학술활동에 참가하면서 동아시아연구의 최신연구동태를 알게되고, 미국과 중국, 한국, 일본에서 학자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학문을 하는 경우도 자기 혼자서 책을 보고 사색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고 거기서 계발받고 아이디어를 얻는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UC 버클리의 대학생, 대학원생 수업도 자주 방청했는데 수업중에 토론이 많은 점이 동아시아의 대학들과의 다른 점이었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 도중에 학생들이 불쑥 질문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교수들도 그런데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학생들이 다양한 인종이나 국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미국 대학교의 특색이라 있겠다. UC 버클리의 교실앞에서는 수업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복도의 바닥에 않아서 공부를 하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목격된다. 역시 미국 대학생들은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었다. 수업을 방청하면서 재미있는 현상도 목격했다. 아무리 미국의 대학생들이라도 항상 수업이 재미있을 수만 없지 않는가? 그럴 경우 일본의 대학생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문자메시지를 전하거나 다른 장난을 친다. 여기 학생들은 컴퓨터를 켜놓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교수보기에는 수업에 열중하는 같고 본인들은 지루함이 없이 시간을 보내는 묘책같다.

버클리 성인학교의 영어교실도 나에게는 좋은 추억을 남긴다. 1년간 저녁마다 거기에 나가서 영어공부를 했는데 영어공부도 중요했거니와 중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나 난민들과 격의없이 지내면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것이다. 고상하게 말하면 이문화를 제대로 체험했던 것이다. 버클리의 YWCA (세계기독교여자청년회) 영어회화자원봉사프로그램도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존재이었다. 프로그램을 통하여 나는 정년 퇴직한 미국 노인과 매주 한번 영어회화연습을 있었다. 노인은 나만이 아니라 매주 대여섯 명의 외국인을 상대로 무료로 영어회화파트너를 해주고 있었다. 자원봉사란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는가. 한두번의 이벤트를 통한 남에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고, 조용하고 꾸준하게 남이 필요한 일을 해주는 그런 것이 참다운 자원봉사라 하겠다.     

버클리에 1년간 있는 사이에 여러 기회가 생겨 미국 서부지역을 두루 관광하였다. 가까운 곳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는 여러번 다녀왔고, 로스안젤스, 샌디에고, 라스베가스에 가보고 서부의 유명한 자연경관인 그랜드캐니언, 요세미테 (미국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유명한 ) 구경하고 태평양 양안에서만 생성하는 세계에서 제일 높이 자라는 나무라는 세쿼이아 (평균 나무 높이 80m) 보았다. 수령 1800년이 된다고 하는 세쿼이아수는 나무 자체에 신령이 들어있는 같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었다. 필경 나다니면서 구경하는 , 자체도 하나의 좋은 공부이었다.

  1년간 정든 버클리에 여러가지 상념에 젖는 사이 기차는 캘리포니아의 평야를 한창 달리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농업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태평양의 바닷물이 내륙으로 깊게 파고들어와 넓은 () 이루고 있다. 기차가 출발하여 한창동안 왼켠에 호수처럼 보이는 만이 이어지고 다음 Sacramento라고 불리우는 강이 내륙지역에서 바다를 향하여 흐르고 있었다. 버클리에 있을 때에는 산업시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버클리를 벗어나면서부터 만과 연안에 석유정제시설이 많이 보이고 바닷물과 강을 따라 대형 석유탱크가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다음부터 캘리포니아의 풍부한 곡창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버클리를 벗어나면서부터 캘리포니아의 주도(州都) 있는 Sacramento 지나기까지 기차로 2시간 정도를 달리는 사이 만이나 강물외에는 드넓은 평야이고 여기저기에 채소밭, 과수원, 화혜농장, 그리고 목초지가 펼쳐진다. 목초지에서는 대체로 검은 색의 소들이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Sacrament 평야지대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유명한 곡창지대인데 여기서 남쪽으로 수백킬로 이상 평야를 따라 Central Valley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농업지대가 이어진다. 나는 금년 2월말부터 3 초순사이에 중국계 여행사의 버스를 타고 1주일간 미국 서부지역을 관광했는데 샌프란시스코 남쪽에서 고속버스로 낮을 달려도 드넓은 평야에 끝없이 펼쳐지는 전원풍경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이른 봄철에 여기저기 과수원에서 과일 꽃이 피어나는데 끝머리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이번에는 버클리에서 기차를 타고 동북쪽으로 북상하면서 다시 캘리포니아의 곡창지대를 보게 것이다.   

Sacrament 주변을 기차가 통과하면서 눈여겨 보았더니 논밭이 나타났다. Sacrament주변은 수원이 풍부하여 논농사를 많이 짓고 있고,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쌀은 대부분 여기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시아 농업의 대표작이라 있는 논밭을 미국땅에서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그러나 알고보면 미국도 세계적으로 쌀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이라면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산업이나  로스안젤스에 있는 헐리우드의 영화산업을 떠올릴 있다. 그러나 실상 알고보면 캘리포니아의 제일 산업은 농업이다. 캘리포니아는 하나의 면적이 일본이나 조선반도 전체의 국토면적보다 휠씬 크다. 캘리포니아주의 GDP 세계 10위라 하고(어떤 자료에는 9위라고도 ), 농업규모가 세계 6위라고 한다. 내가 직접 눈으로 Central Valley라고 불리우는 캘리포니아주의 중심에 위치한 분지형의 곡창지대만도 남북길이가 아마 800km 되는 같은데 이만하면 어지간한 나라의 국토면적에 맞먹는다.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농축산품도 류가 미국에서 제일 많다고 한다. 곡물부터 과일, 화혜, 소고기로 대표되는 가축류, 웬만한 것은 거의다 여기서 생산된다고 한다. 다만 캘리포니아 농업에도 걱정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것인즉 수원의 부족이다. 캘리포니아지역이 워낙 건조하고 강우량이 적기에 멀리서 수로로 물을 끌어다 하는 관개농법이 보편적이다. 때문에 물부족이 캘리포니아 농업을 제약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국가경쟁력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이 농업과 대학교육이라고 본다. 대학교육은 시대에 따라서는 다른 나라에 뒤질 수도 있겠으나 농업만큼은 미국의 천혜의 자원이어서 어느 나라가 쉽게 대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구의 온난화가 이어지고 이상기후 때문에 장래에는 식량문제가 세계적으로 제일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장래도 결코 무시할 없는 나라일 것이다.

최근에 조글로포럼에서 어느 분이 조선족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농경문화를 페쇠적이고 낙후한 것으로만 취급하고, 그런 관점에서 구조선족, 신조선족 운운하는 같은데 나는 관점이 극히 천박하며 조선족의 미래에 전혀 책임감이 없는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조선족이 피땀으로 개척하고 목숨으로 지켜온 소중한 땅을 기약없이 버리고 도시에 들어가서 떠도는 영세민으로 살아야만 현대적이고 문명개화인가? 또는 제땅을 다버리고 한국이나 다른 외국에 노무자로 다녀야 행복한가? 일본의 재일교포가 도시에 산다고 행복했는가? 전후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은 도시의 최하층에서 페물수거로 생계를 유지했고, 오늘날에도 직업적으로 기시를 받는 빠찐꼬업으로 살아가는 교포가 허다하다. 미국의 한인들도 세탁소나 채소가게가 이들의 주요업종이다. 이들이 일본이나 미국의 농민들보다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장담할 있는가? 나는 중국 조선족들도 물론 도시에도 진출해야 하지만 지혜를 살려서 되도록 농촌의 생활터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변지역은 그런 농촌이 있어서 조선족 공동체가 기능하고 조선족자치주가 존립해온 것이 아니겠는가.        

                                                  (20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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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1 ]

11   작성자 : 문의 사항
날자:2010-09-04 11:51:55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시간을 내서 언젠가 꼭 기차로 미국대륙 횡단을 해 볼 참임니다. 김광림선생은 버클리에서 북상을 하며 기차여행을 하셨다니 시애틀에서 기차를 갈아 타셨는지요? 그러면 버클리 -> 시애틀 -> 시카고 -> 와싱턴 디시 -> 뉴욕 -> 보스턴 이런 여정을 택하셨는지요? 그리고 기차를 갈아타게 되는 도시에선 어떻게 시간을 보낼 수있는지요? 또 기차에서 식사문제, 샤워는? 그리고 일반석 손님도 짐을 보관할 열쇄있는 락커를 가질 수있는지요?
10   작성자 : 이송
날자:2010-09-04 17:53:46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기차를 타고 서부에서 동부까지 려행한다는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닙니다.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를 인식하는데는 도움이 될즐로 믿습니다. 이제 보스턴에 가서 하버트대학에 일년 계신다니 더 많은 견문이 있을것이니 많이 소개하여 주십시오.기대합니다.
9   작성자 : 시골사람
날자:2010-09-04 14:41:54
좋은 글을 읽으면서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사진까지 첨부하여 글을 엮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요 ㅎㅎㅎㅎㅎ
8   작성자 : 바른 생각
날자:2010-09-04 14:06:0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삶의 터전을 지키자는 말씀에도 동감입니다. 농촌에 있든 도시에 나가든 우리 민족이 진정 행복한 민족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7   작성자 : 김광림
날자:2010-09-04 12:32:38
질문에 대답드립니다. 저는 7월25일에 버클리에서 기차를 타고 약 52시간 달려서 27일에 시카고에 도착했습니다. 시카고에서 2박을 하면서 시카고대학교, 시카고미술관등을 견학하고 29일에 시카고에서 다른 기차를 타고 약 23시간 걸려서 보스턴에 직행했습니다. 30일 밤에 보스턴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에서 식사는 식당차에서 제공해주는데 저는 거의다 자기가 준비해 간 음식을 먹었습니다. 도중의 역에서 간이음식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걸 기대는 안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차를 타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샤워를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자주 가서 얼굴을 씻고, 저녁에 자기전에 발을 씻었습니다. 비좁은 공간에서 발 씻는 것도 참 힘듭니다. 짐은 큰짐 세개까지 수화물로 부칠수 있어 저는 버클리에서 보스턴까지 부쳤습니다. 나머지 작은 짐 두개를 직접 휴대할 수 있습니다. 승객이 짐을 보관하는 락커는 달리 없고 수화물외에는 자기 짐은 자기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합니다. 차안에서 짐이 분실되는 경우, 또는 짐이 바뀌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일반좌석을 이용했는데 침대차는 생각보다 비좁은 공간같았습니다. 연재를 이어가면서 그런 얘기도 올리겠습니다. 관심주셔 고맙습니다.
6   작성자 : 한심하군
날자:2010-09-04 12:26:29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모조리 뜨는 버클리 서부 그리고 보스톤의 정보들을 그대로 통째로 퍼다놓고 꼬리에다가 몇마디 자기 말을 달았군요. 이것이 학자들이 글 쓰는 공통적인 스타일이지요.
5   작성자 : 세탁업
날자:2010-09-04 12:14:02
미국의 한인들이 많이들 운영하는 세탁소는 사업체가격이 보통 최소 50만불 이상은 되니 결코 작은 사업은 아닌 것같읍니다. 그리고 규모가 큰 세탁공장, 세탁소 재료 도매업, 여러군데의 세탁소를 동시운영, 세탁소 설치업 등 미국의 한인 세탁업은 전국적으로 네트워트가 잘 형성되어 있고 세탁업에 대하여 한인사회 안에 일종의 노우하우가 잘 형성되있다고 봅니다.
4   작성자 : 말의 뜻
날자:2010-09-06 03:01:42
김광림씨가 왜 도시로의 진출이 중요한 것을 모르겠읍니까? 단지 도시로 진출을 하되 조선족 농촌기반을 내팽게치진 말고 지혜롭게 함께 유지하는 방법도 찾는게 필요하다는 말이죠. 풍요로운 캘리포니아의 농촌을 보면서 황폐해진 조선족의 농촌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생각이들지 않을까요? 조선족이 성공적 도시민족으로 거듭나야 되는 것은 김광림씨 포함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고 꼭 그래야만 됨니다. 김광림씨의 좋은 생각을 격려해 줍시다. 농촌에서 자라 도시에서 성공한 김광림씨니 도시생활, 농촌생활을 다 보고 하는 얘기입니다.
3   작성자 : 여론을 호도하네
날자:2010-09-05 20:13:32
이글 마지막부분---- 최근에 조글로포럼에서 어느 분이 조선족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농경문화를 페쇠적이고 낙후한 것으로만 취급하고, 그런 관점에서 구조선족, 신조선족 운운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 관점이 극히 천박하며 조선족의 미래에 전혀 책임감이 없는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조선족이 피땀으로 개척하고 목숨으로 지켜온 소중한 땅을 기약없이 버리고 도시에 들어가서 떠도는 영세민으로 살아야만 현대적이고 문명개화인가? 또는 제땅을 다버리고 한국이나 다른 외국에 노무자로 다녀야 행복한가? 일본의 재일교포가 도시에 산다고 다 행복했는가? 전후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은 도시의 최하층에서 페물수거로 생계를 유지했고, 오늘날에도 직업적으로 기시를 받는 빠찐꼬업으로 살아가는 교포가 허다하다. 미국의 한인들도 세탁소나 채소가게가 이들의 주요업종이다. 이들이 꼭 일본이나 미국의 농민들보다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나는 중국 조선족들도 물론 도시에도 진출해야 하지만 지혜를 살려서 되도록 농촌의 생활터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변지역은 그런 농촌이 있어서 조선족 공동체가 기능하고 조선족자치주가 존립해온 것이 아니겠는가. 이게 김광림씨의 관점???? 이것이면 김광림씨 글도 볼멋이 없구만. 기대가 컸었는데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임.
2   작성자 : 연길~상하이와 버클리~보스톤
날자:2010-09-06 10:58:32
구글맵(지도)로 찾아보니 차로 운전할 경우 연길에서 상해 운전거리가 (연길-장춘-심양-천진-상해)가 2488 km고 버클리에서 보스톤 운전거리가 4988 km 로 딱 두배가 됨니다. 연길에서 신장 우루무치까지의 운전거리가 4570 km 입니다. 운전거리에 대해 대충 감이 잡히리라 봅니다. 자동차 운전거리 : 버클리~보스턴 4988 키로 연길~상해 2488 키로 연길~신장 우루무치 4570 키로
1   작성자 : 김광림씨 비판자에게
날자:2010-09-06 03:48:16
김광림선생이 학자적 양심에서 한 김문학 비판은 조선족 모두가 걱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학자로 활동하며 발견한 근래 김문학의 글이 일본 우국지사의 글인 것은 당연히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죠. 김문학씨는 이것이 오해라고 자신이 생각한다면 이를 분명히 밝히는 입장을 밝혀야 되겠는데 아직 가장 중요한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말이 없고 김문학씨가 써논 책은 증거로 남아 있읍니다. 김광림씨가 김문학씨의 일본 우국지사로서 글 쓴 것에 대한 비판을 두고 몇몇분이 김광림씨를 비판하는 것은 이치에 않맞읍니다. 그런 그분들도 혹시 일본 우국지사 아님니까? 김광림씨의 김문학 비판을 비판하려는 분들은 먼저 김문학이 일본 우국지사로서 글 쓴 것을 조선족들에게 설명해 주시죠. 모두가 궁금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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