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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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늘에 해볕을
2006년 05월 10일 00시 00분  조회:2966  추천:118  작성자: 안병렬
이 그늘에 해볕을

안병렬


20년쯤 전이라 기억한다.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딸아이가 버스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 그때는 버스가 아주 복잡하였다. 아침 등교 시에는 버스 타는 것이 전쟁이었다. 서로 타려고 밀고 밀치고 아우성이요 야단이었다. 이런 와중에 버스 차장은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 마구잡이로 사람을 밀어 넣었다. 딸아이도 이렇게 밀어 넣음을 당하여 겨우 타기는 하였다. 그러나 워낙 사람이 많은지라 버스 문을 잘 닫지도 못한 채 차장은 버스를 출발시켰다. 그러다 얼마를 가지 못하여 버스가 일렁이는 바람에 딸아이는 떨어졌다. 그리고 머리를 크게 다쳤던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어떤 때인가? 하루 한 시간을 다투는 때에 병원에서 2주간을 허송세월을 하였으니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병원에서 허송세월만 한 것이 아니었다. 퇴원하여서도 머리가 아파 제대로 공부가 안 되었다. 아이는 제 나름으로 짜증이요, 엄마는 한숨이라 옆에서 보는 나는 원통하여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판에 더욱 사람을 분개토록 만드는 것은 그 버스 회사에서 겨우 병원비만 물고는 한번 와보지도 않는 것이다. 그때는 아직 보험제도가 정착이 안 되어 이런 교통사고는 전적으로 회사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일언반구 말도 없는 것이다. 전화를 걸면 담당자가 없다고 하고 사장을 찾으면 바쁘다고만 하고 연결도 시켜주지 않고 끊는다. 이건 완전히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물론 법원을 통하여 소송을 하는 방법이야 있겠지만 이 사소한 일로 어찌 법원까지 가겠는가? 속만 태우고 있는데 이를 본 선배 교수님 한 분이 자기가 그곳의 경찰서장을 잘 아는 처지라 전화를 하였으니 한번 가보란다. 경찰서장이라니 그 관료적이고 위압적인 인상이 떠올라 별로 내키지는 않았으나 하도 답답하니 이튿날 바로 갔다. 예상대로 서장실로 가는 데까지는 몇 곳을 거치는데 꼬치꼬치 캐물어 귀찮았다.

그러나 찾아가니 서장은 아주 겸손하였다. 얘기를 들었는데 얼마나 상심하시겠느냐 하며 한참이나 연하인 나에게 “교수님”이라고 깍듯이 예우를 해준다. 경찰관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싶었다. 차를 내오고 곧 담당 경찰관을 불렀다. 불려온 경찰관은 자기로서는 수사를 공정하게 하여 개문 발차(開門發車)한 버스회사에 전적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어 마무리를 하였다고 대견스러이 말하였다. 설명을 다 들은 서장은 “자네 조사를 잘 하였네. 수고가 많았구먼.” 하고는 다시 “그런데 그 회사에서 피해자에게 어떤 보상을 하였는가?” 하고 물었다. 그 경찰관은 치료비나 보상 문제 같은 것은 자기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 모른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서장은 한참이나 부하 경찰관을 보더니 “자네 요즘 우리 경찰이 무엇이 된다고 하지?” 하였다. 이 엉뚱한 질문에 당황한 경찰관 멍하니 있으니 “이 사람아, 우리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가? 지팡이가 무언가? 도와주는 게 아닌가? 이런 교수님 같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책상 앞에만 계신 분들을 도와드려야지.” 하였다. 나는 내 일로 죄 없이 상사에게 야단을 맞는 그 경찰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대신 뭐라고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뜻밖의 꾸중을 듣고 머쓱하게 서 있는 경찰관에게 서장은 점잖게 “가보게.” 하였다. 경찰관을 내보낸 서장님, “아직 우리 경찰관들의 머리가 잘 돌아가지 못해 이렇게 어려운 걸음까지 하시게 되어 미안합니다.”고 사과를 하였다. 오히려 내가 할 사과를 그가 하는 것이다. 나야! 말로 관계도 없는 일로 경찰을 귀찮게 하는 게 아니던가? 나는 그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만 되풀이 하고 나왔다. 잘 좀 처리하여 달라는 말도 못하였다.

그런데 집에 막 들어서는데 버스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요즘 일이 바빠 죄송하게 되었다며 완전 저자세이다. 그리고는 금방 찾아오겠다고 한다. 만났더니 180도 변한 자세이다. 보상도 애초에 예상하였던 금액보다도 훨씬 많았다. 그러나 나중 안 사실이지만 그보다 배는 더 받아야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디 돈 벌려고 한 일이더냐?

이 일을 경험하면서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도 부끄럽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정당한 보상도 힘이 없으면 받지 못하는 이 부조리한 사회는 정말 미개한 사회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힘이 있든 없든 어떤 사람에게나 정당한 대우가 주어져야 하고 또 저저로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전에는 그렇게 힘없다고 눌려놓더니 이젠 힘 있다고 찾아와 굽실거리며 아첨하는 이 세태를 보며 나는 참으로 이런 우리 사회에 부끄러움을 느끼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서글픔을 느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을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 중국에서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에 더욱 놀라움을 겪는 것이다.

아내가 얼마 전, 정확히 지난 10월 21일 오전 9시경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뭐 교통사고랄 것도 없이 가벼운 것이다. 인도로 걷고 있는데 택시가 와서 정차하며 문을 열다 받은 것이다. 요추에 조금 이상이 있기는 하나 곧 낫는다고 담당의사는 말하였다. 그래 불행 중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나 보름이 지난 아직까지 꼼짝을 못하고 대소변을 받아낸다. 그런데 이 병세보다 더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애초 그 기사가 자기는 택시를 몬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돈이 없으니 우선 1,500원만 야진(일종의 보증금)을 하겠으며 또 자기 부인을 시켜 환자 간호를 하겠다고 아주 상냥하게 말하므로 나는 참으로 착한 사람이라 여기었다. 그래 돈은 우선 되는 대로 야진을 하고 간호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는 어떻게 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며칠 뒤 알고 보니 그는 택시를 몬지 5년이나 되었으며 또 환자가 차도로 걸어가다 정차한 차에 받혔다고 우긴다기에 괘심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경찰에서도 일방적인 말만 듣는지 조사도 오지 않았다. 이에 우리 학부의 젊은 교수가 찾아가 어떻게 일방적인 말만 듣느냐고 항의를 하였더니 경찰에서 병원으로 조사를 왔다. 환자는 차도에는 물이 고여 있어 걷지를 못하고 인도에는 주차한 차가 많아 부득이 인도의 가장 자리로 걸었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곧이 믿어주지를 않는 것 같았다. 이에 환자는 짜증을 내지만, 그리고 현장의 사진도 보이건만 경찰은 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섭섭하였다.

이런 소문에 대학의 어느 동료가 고맙게도 시 공안국의 높은 분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분이 곧 담당과장에게 이야기 하였다고 하니 가보란다. 높은 사람에게 이런 사소한 일을, 게다가 어차피 치료비 등 돈에 관계되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일을 이야기하였다니 미안하였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은 일인 것이다. 그러나 형편이 이러니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20년 전 한국에서 서장을 찾아갔던 일을 기억하고 일선에서 수고하는 경찰관에게 누가 되지 않고 또 그 기사도 크게 다치지 않게 이야기하여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교통경찰의 사고처리과란 곳을 찾아갔다. 과장이란 분과 또 직접 담당하는 경찰관에게 나는 솔직하게 말하였다.

“나는 처음 기사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속이고 우기니 괘심합니다.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낍니다. 일단 사건을 정당하게 조사하여 주십시오. 절대로 차도로 걷지는 않았습니다. 거기는 물이 있었습니다. 처음 현장 검증을 온 경찰관도 물 있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잘 조사하여 주십시오.”

나의 부탁에 그들은 우리도 결코 차도로 걸었다고 단정을 하지는 않았다며 정중하고 친절하게 다시 잘 조사하겠다고 약속하여 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돈이 떨어져 치료할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왔다. 기사는 전혀 나타나지도 않았다. 부득이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다시 떼었다. 경찰관을 찾아갔다. 나는 툭 터놓고 심경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 일로 두 번 찾아오게 되니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없고 병원에서는 치료비 독촉을 하므로 부득이 왔습니다. 나는 기사가 피해를 많이 당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치료비가 200원 정도 드는데 한 달이라야 6,000원 정도 됩니다. 그 기사에게야 큰 돈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큰 돈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기사가 솔직히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소식이 없습니다. 자꾸 괘심한 생각이 듭니다. 이 경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경찰관은 전혀 뜻밖의 말을 한다. 그도 솔직히 하여주는 말이다. 보험도 안 든 상태라 돈이 없다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을 통하여도 그에게 돈이 없다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험에도 안 든 차가 영업을 하느냐 하니 보험 가입 여부는 아직 임의라 들 수도 있고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럼 차주는 책임이 없느냐 하니 물론 책임은 있지만 수속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속도 귀찮지만 그 차주는 또 그 돈을 모두 기사에게 물릴 것이니 월 1,000원 남짓 받는 기사는 그 돈에 매여 얼마를 허덕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걸 알면서 내 어이 차마 그리 야박하게 하랴? 도저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나는 허탈하였다. 20년 전 그때는 한국에도 보험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가 책임을 졌다. 그런데 지금 여기 이 경우는 보험에 안 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결국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니 더 기가 차 할 말이 없다. 20년 전 찾아와 빌던 그 모습을 그리며 기대하던 나의 꿈은 그대로 백일몽이었다. 그리고 나의 백일몽을 비웃는 듯 그 기사는 오늘까지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 이 문명천지 중국에 이런 일도 있던가?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를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경우 경상이요 또 자비 치료의 능력도 어느 정도는 갖추었으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중상이요 가난하다면 어떻게 할까? 그럴 경우 그럼 가만 누워 죽어야 하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처가 입원한 병실에 한족 여자 한분은 3년 전 어느 화물차에 다리를 크게 다쳐 벌써 세 번째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는데 그 엄청난 치료비를 모두 자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그 기사가 자기 차인데도 한 푼도 없는 가난뱅이라는 것이다. 옛말에 뺨을 맞아도 금가락지 낀 손에 맞아야 한다는 말이 그대로 진실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올림픽을 개최하고 세계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선 이 중국에 아직 이런 그늘진 구석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하필 그 그늘진 곳에 외국인인 우리가 갇히어야 하던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원망스럽다. 하루 빨리, 올림픽보다 더 빨리 이 그늘에 햇볕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환자는 육신의 고통보다도 기사를 용서해야만 하는 마음의 고통이 더 커 괴로워하고 있다. 정부가 그 그늘에 햇볕을 보내기를 기다리기 전에 기사가 나타나 “저를 용서하여 주세요.” 하면 우리의 그늘은 쉬이 걷히련만 기사도 그럴 용기가 없고 그리고 경찰도 그런 설득력이 없는가 보다. 참으로 안타깝다.

0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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