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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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聖女)
2013년 07월 14일 10시 57분  조회:2090  추천:1  작성자: 안병렬

소설이 아닙니다.무더운 여름 건승 하세요

 

성녀(聖女)

 

안병렬
 

“오빠요!”

그 한마디에도 벌써 나는 그녀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그 음성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은 그 음성이 들떠 있었다. 아주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민환이 경대 국문과에 붙었어요.”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그래? 반갑다.”

“오빠, 고마워요.”

“고맙긴, 내가 무얼 했다고.”

“그래도 오빠 덕에 우선 제가 마음을 잡았고 민환이도 용기를 얻었지요.”

“아니야, 그놈 정신 차린 탓이지. 그래 내가 뭐라고 하던? 민환이는 괜찮다고 하지 않던?”

“오빠, 언니랑 저희 집에 오세요. 한 턱 쓸게요. 언니한텐 벌써 약속 받았어요.”

“알았다.”

“저녁에 김 서방 오면 민환이도 데리고 같이 나가서 근사하게 식사 헌 번 같이 해요.”

“그래 그러자.”

나는 수화기를 놓으며 후유 한숨이 나왔다. 무슨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정말 긴 터널이었다. 이제 앞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속으로 민환이, 민환이, 하며 부르짖었다.

 

나를 오빠라 부르는 그녀, 한 권사는 내 외사촌 동생이다. 외가에는 외삼촌이 6,25때 군대에 나가 돌아가시고 젊은 외숙모께서 어린 아이 삼남매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몇 대를 외동으로 겨우 이어온 집안이라 조카는 물론 4촌, 6촌도 없는 아주 고적한 집안이었다. 이렇게 외로운 집안이라 가면 아주 반가운 손님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래 나는 자주 갔다. 또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이웃 마을이라 나는 어려서부터 툭하면 외가엘 갔다. 가면 외할머님이야 물론이지만 외숙모님도 반겨주시었다. 그보다 어린 동생들이 아주 잘 따랐다. 제일 위 언니도 나보다 열 살이나 아래였지만 내가 가기만 하면 모두들 졸졸 따르며 좋아하였다. 이 어릴 적의 정이 그대로 이어져 지금껏 평생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오늘 통화한 둘째인 한 권사는 나에게 다른 두 동생보다 더 진한 친밀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나와 같은 신앙을 가진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르게 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녀 역시 그 언니처럼 겨우 중학교나 마치고 촌에서 지내다 시집갈 준비나 하고 말걸 내가 외숙모를 설득하여 대학에까지 보내었고 대학에서 예수를 믿었고 그 연유로 졸업하자마자 그 대학과 같은 재단의 여학교의 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 나에게는 늘 고마운 감정을 가지었는데 특히 민환이 일 이후에는 더 가까워진 것이다. 민환이 하면 자꾸 그의 근본부터 떠오른다. 하도 내 동생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그래도 그날의 기억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또렷이 떠오른다. 이리 저리 하다 보니 거의 몇 달이나 그녀를 만나지 못하다가 그날 그녀의 청으로 그녀를 만난 것이다. 이상하게 얼굴이 많이 수척하여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듯 괴로운 듯해 보이었다. 커피 잔을 든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바로 이웃하여 살기에 스스럼없이 찾아오던 그녀가 그날따라 특별히 다방에서 만나자는 게 이상하였고 더구나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비밀로 하여 달라는 게 더욱 이상하였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너무도 긴장되어 그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였다. 오랜 침묵이 이어지다 드디어 그녀의 입이 열리었다. 착 가라앉은 차분한 음성이었다.

“오빠, 나 이혼해야겠어요.”

멀리, 아득히 어디 꿈결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내 혼이 빠져 나갔다고 할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나의 멍청한 모습에 답답하였던지 다시 한 번 더 말하였다. 아까와는 달리 더 강한 톤이었다.

“오빠, 나 이혼하여야겠어요.”

그제서야 나는 제 정신이 든 듯

“왜 무슨 일이 있니?”

“그 사람, 사람이 아니에요.”

“한 권사답지 않군. 이혼이라니.”

나는 일부러 “권사”에다 악센트를 높이며 비아냥거리는 조로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일이 있든 그녀는 절대로 이혼할 여자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기에 일부러 그런 능청을 부린 것이다.

“오빠, 그게 아니에요.”

하며 그녀는 다시 더 가까이 의자를 당기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덩달아 나도 긴장이 되었다. 다시 커피 한 잔을 더 시켜 마시더니 그녀는 천천히 그리고 또렷이 이야기를 하였다.

 

한 달쯤 전이란다. 느닷없이 김 서방이 우리 어린 아이 하나 데려다 입양할까 하더란다. 그래 하도 기가차고 또 화도 나서 “날 그만큼 부려먹었으면 되었지 이제 겨우 숨 좀 돌리니 배가 아픕니까?” 하고 웃고 넘겨버렸단다. 이제 아이들이 다 자라 대학을 가게 되니 집이 헐렁하고 적적하여 그러는가 보다 하고는 곧 잊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어제 저녁 웬 갓난 아이 하나를 포대에 안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놀라 어인 일이냐 하니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여보, 나 실수하였어.” 하더란다.

 

“오빠, 아무래도 이혼해야겠지요?”

그녀는 이제 완전히 애원을 하고 있었다.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설마 그 신실한 김 서방이 그럴 리가 있을까 믿어지지를 않았다. 한 학교의 교장이요, 게다가 교회의 장로인 그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내가 만나보고 아는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 것이다. 아주 얌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실체를 보이며 증거를 들이대니 어쩌랴? 나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계속 울고 있었다. 아주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나는 가만 내버려 두었다. 차츰 그 김 서방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자기에게 어떤 부인인데 그런 배은망덕을 하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생각하니 동생이 참 불쌍하였다.

그녀는 그 남편과 그 아이들 삼남매를 위하여 완전히 자기 한 몸을 희생하였던 것이다. 처녀 교사인 그녀는 누가 보아도 탐을 낼 만큼 부족함이 없었다. 그 늘씬한 키에다 그 보름달같이 푸근해 보이는 얼굴, 거기에 무엇보다 그 착한 마음씨가 알려지고 게다가 주일학교 학생을 열심히 가르치니 온 교회에 칭찬이 자자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꽤 큰 그 교회에서도 일등 신부 감으로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더러는 노골적으로 중매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 그 한 선생이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10년이나 연상인 홀아비에게. 그 홀아비가 바로 지금의 김 서방인데 당시 그는 다섯 살 아들, 세 살 아들, 그리고 갓 낳은 딸, 이렇게 셋을 두고 아내가 갑자기 죽은 것이다. 게다가 그는 어머니도 없었다. 당장 아이를 돌 볼 그 누구도 없었다. 그야말로 앞이 캄캄하였을 것이다. 그 서른 남짓한 홀아비 꼴이 어떠하였으랴? 이때 내 동생 한 선생이 나서서 시집을 간 것이다. 교회에서는 시글벌적하였다. 고귀한 희생정신이라며 칭찬을 하는가 하면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대개는 눈독을 들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리 그 두 사람이 사귀고 있었을 것이라고 숙덕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혼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만약 그녀의 어머님이 계셨더라면 절대로 될 수 없었을 터인데 바로 그 전 해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물론 그 언니며 동생도 극력 말렸지만 그녀의 뜻을 꺾지는 못하였다. 화가 난 그들은 결혼 당일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하도 억울하고 안타까워서였을 것이다. 이를 아는 나는 억지로 가자고 권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결혼은 동정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타이르고 말렸지만 이미 그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내 하나 희생하면 네 생명 살리게 될 것이라며 기어이 강행하는 것이었다. “네가 꼭 살린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며 야단까지 치며 말렸지만 하는 수가 없었다.

교회에서 김 서방은 주일학교 부장이요, 학교에서는 같은 학교의 교사라 내 동생과는 잘 아는 사이이긴 하였다. 그러나 그 세 아이 가진 홀아비에게 어찌 처녀가 자진하여 시집을 갈 줄이야 상상이나 하였으랴? 그것도 혹 처녀의 가정이 구차하다면 돈을 바라서 갈 수도 있겠지마는 내 동생 한 선생은 완전히 자기 한 몸 희생하여 그 가족을 살리러 간 것이다. 그래 자기 아이는 하나도 낳지를 않고 그 아이 셋 키우느라 온 젊음을 다 희생한 것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처녀가 결혼을 하면 으레 다니던 직장은 그만 두는 것으로 여기던 때라 내 동생 한 선생도 곧 교사를 그만 두고 가정에 틀어박혀 그 아이들 다 기른 것이다. 그리고 그 남편 출세시켜 학교에서는 교장이 되게 하고 교회에서는 장로로 떠받들림을 받게 하였다. 또 자신도 권사의 직분을 받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모범되는 가장이요, 주부로서 모범 가정을 꾸린 것이다. 여기 이르도록 내 동생의 고생이 어떠하였으랴? 이제 겨우 숨 돌릴만한데 이 기막힌 일을 당한 것이다. 그 남편을 죽이고 싶을 것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이 동생에게 무어라 위로하지?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지?

그 아이를 맡아 기르라고는 차마 못하겠고 그렇다고 거절하라면 그 뒤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지? 차라리 이 동생 말처럼 이혼하면 깨끗하지 않을까? 애초부터 정상적인 가정을 꿈꾼 건 아니지 않으냐? 그 아이들 불쌍하여 한 결혼이 아니던가? 그럼 그 아이들 이제 다 자라 대학생까지 되었으니 자기의 목표는 이룬 게 아닌가? 그럼 헤어져도 되잖은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그녀의 말처럼 이혼이 옳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또 새로 생긴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김 서방은 어떻게 되는가?”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그렇게 되면 그 옛날 처음 결혼할 때와 같은 형편이 또 재현되지 않은가? 불쌍한 아이에 불쌍한 홀아비. 더구나 이번에는 그 홀아비는 한 인간으로서 완전 매장되는 게 아닌가? 하기야 자기가 뿌린 씨앗 자기가 거두라 하면 문제는 간단할 것 같으나 그럼 애초 그 가정 살리러 간 뜻이 희석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아, 이 사람 김 서방. 그렇게도 염치가 없는 사람이던가?”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그저 그녀가 그 울음 멈추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도 한 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드디어 그녀는 울음을 그치었다. 그리고 얼굴을 들었다. 나는 얼른 내 손수건을 건네었다. 그녀의 그것은 이미 흥건히 젖었던 것이다. 눈물을 닦은 그녀의 모습은 차마 보기 민망할 정도로 창백하였다.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오빠, 요즘도 미국 비자 받기 힘드나요?”

“글쎄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은 왜?”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살고 싶어요. 여기선 부끄러워 못 살 것 같아요.”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하긴 그녀가 영어 교사였으니 미국 가면 적응이야 좀 쉬울 것이다. 그럼 이혼을 전재하는 말이 아니더냐?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 사람 말대로 실수라니 그 실수는 용서하고 아기는 고아원 같은 데 맡기고 ---”

“저도 그이가 그렇게 처리를 하고 와서 실수하였다고 고백한다면 별 수 없이 용서하였을 거예요. 하지만 그 아이를 안고 와서 저에게 떠맡기는 그 심보는 완전히 저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닙니까? 그 무시하는 처사가 더욱 분해요. 그 동안 제가 너무 착하게 살아서 속도 없는 여자인 줄 아나 봐요.”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그 눈에 불이 이는 듯하였다. 이럴 때 흔히 치를 떤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오빠요.” 하더니 앉은 채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만 실신을 하는 것이다.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나를 제치고 마담이 달려와 냉수를 붓고 바늘로 손가락을 따고 한참을 야단법석을 한 뒤에야 겨우 깨어났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였다.

“오빠,. 죄송해요.”

“야야, 정신 차려라. 그러다 네가 쓰러지겠다.”

“그만 그대로 쓰러져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얘.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나도 나지만 저 마담이 얼마나 놀라고 수고를 하셨는데.”

“아이고 참. 너무 죄송해요.”

“아주머니.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 같은 년도 다 사는데 왜 그러세요? 괴롭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사는 것 아닙니까? 살기가 쉬우면 오히려 많이 죽었을 겁니다.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 가운데 산에 오르는 분들이 많은데 산에 오르는 것도 그래요. 오르기 어렵기에 산을 자꾸 오르잖아요? 살기가 어려우니 억지로라도 사는 겁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억지로라도 살다보면 살아지는 거지요. 나도 두 번이나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곤 이제껏 이렇게 사는 겁니다.”

어느덧 마담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하여졌다.

나는 속으로 “살기가 어려우니 산다는 그녀의 역설을 되뇌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오기가 아닐까? 오기지. 오기로나마 산다는 거지. 그래도 어쨌거나 무엇으로 살든 사는 것 자체가 귀한 것이라는 말이지. 맞아 산다는 것 자체는 귀한 것이지. 그렇게라도 살아야 한다는 거로구나. 얘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얼마만인가? 그녀가 일어섰다.

“오빠, 나 가봐야겠어요. 아주머니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우리는 그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곧 교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생각하여서인지 전화를 받는 그의 음성도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아주 급한 일이니 곧 만나자며 중심가의 다방을 가리켜주고는 곧 끊었다. 이 사람을 만나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니 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하는 그의 말투는 여전하나 얼굴은 창백하였다. 그도 무슨 일인지 짐작하였으리라. 자리에 앉아서도 그는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다 마시면서도 서로가 말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걸어오면서 하던 생각의 연속이었다. 먼저 내가 입을 열었다.

“한 권사를 만났네. 자네도 알다시피 그로서는 내가 어른으로서는 유일한 피붙이가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 가깝게 지나지 않았는가? 내가 아무런 도움은 못 주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오빠로서 사랑하고 있지. 그래서 나에게 찾아온 게지. 하도 억울하고 딱하니까?”

“저도 잘 알지요. 집 사람뿐 아니라 저 역시 형님을 몹시 존경하고 있지요.”

그의 음성은 가늘면서도 착 가라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하였다. 나도 더욱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내가 참 답답한 건 자네가 실수는 하였지만 그 실수를 그렇게도 수습을 못한단 말인가? 그래 갑자기 아기를 데리고 오면 누군들 어떻게 수용을 한단 말인가? 자네 어머님이라도 안 될 거야. 어찌 그리도 서툴게 하는가? 그래도 사전에 미리 좀 이해를 구하고, 아니 이해에 앞서 사죄를 하고 그리고 데리고 오든 고아원엘 보내던 의논하여 하였더라면 이리 되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내 동생도 자네의 그 소행, 곧 자기를 완전 무시하는 그 마음이 더욱 괘씸하고 억울하다며 이혼하겠다고 저렇게 야단하니 어쩌지?”

“형님 낯을 못 들겠습니다. 무어라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실수는 하였으나 그 실수를 수습하려는데 일이 그만 완전 틀리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여자가 말을 듣질 않아요. 아이를 고아원에 못 보네는 정도가 아니고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돈을 주겠다고 하니 그도 안 된다고 하며 기어이 결혼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 설득을 하는 중인데 바로 어제는 만나자 하여 나갔더니 글쎄 아기를 안고 와서 이야기 하다 중간에 사라진 겁니다. 그래 엉겁결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안고 갔지요.”

“아니 그럼 그 여자는 어떤 여자인데 그리 고집이 센가?”

“자세히는 모르나 시청교향악단에서 같이 노래하다 만났지요. 이 대학 저 대학 강사로 나가는 모양인데 돈은 군색하지 않은가 봐요. 근래에 저도 좀 안 일인데 이 사람 저 사람 잘 사귀는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그래 자네는 어쩔 셈인가?”

“제가 무슨 셈이 있겠습니까? 집사람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이혼 하자면 당해야지요. 무슨 변명이 있겠어요?

형님 저는 지금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합니다. 처음엔 이 사실을 아내에게 어떻게 고백할까 무척 괴로웠습니다. 또 실은 형님을 어이 대할까? 고민하였는데 이제 다 알려졌으니 오히려 홀가분하네요. 형님 저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안고 어찌 살겠습니까?”

그는 허탈해져 있었다. 기진맥진 될 대로 되라는 심정 같았다. 이혼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대로 두다간 더 큰 일이 벌어질 것도 같았다. 나는 정색을 하며 정면으로 그를 보며 준엄하게 말하였다.

“이 사람, 김 교장, 아니 김 장로. 자네 왜 이리 비겁한가? 일을 수습할 생각은 없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죽는다는 거야? 자네 한 사람 죽으면 해결이 되는가? 그렇기만 하다면 당장이라도 죽어. 그렇지만 남은 가족은 그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어떻게 살라는 거야? 그리고 교회는? 학교는? 하나님 이름에 그 더러운 욕을 돌려야만 속이 시원하겠는가? 어찌 그 따위 생각만 하는가? 이보다 더 비겁한 일이 어디 있는가?”

내 음성이 높았던지 옆 테이블의 손님마저 돌아본다. 그러나 그는 아무 반응이 없더니 한참만에야

“형님, 그럼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고개를 숙이더니 훌쩍이었다. 내려다보려니 그도 딱했다. 어쩌다 일은 저질렀고 그 일은 더욱 어렵게 꼬이고 ---생각하니 그도 불쌍하였다. 순간 나는 내가 무슨 보살이라도 된 양 동생도 불쌍하고 매부도 불쌍하고,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깐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였다. 일을 풀려고 이 사람을 만났는데 오히려 날 보고 어쩔까요? 하며 저리 울기만 하니 기가 차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헤어진다면 나는 그저 야단치러 온 사람밖에 안 되는 게 아닌가? 쓴맛을 다시며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순간 영감같이 지혜가 떠올랐다.

“맞아. 그 방법을 써 보자.”

나는 김 서방에게 더욱 다가가 소곤소곤, 그러나 차근차근 최후의 비상수단을 쓰자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내 진지한 이야기에도 그는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 수단이란 게 너무 유치하게 여겨졌으리라. 그래도 나는 꼭 그렇게 하라고 ,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헤어져 돌아왔다.

 

그 뒤 며칠간 그녀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으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행이라 여겨졌다. 궁금하긴 하지만 내가 먼저 전화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사흘째 되던 날이던가? 시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흥분하고 있었다. 한 권사를 만났는데 아기용 분유를 사기에 웬일이냐 하니 아이가 하나 생겼다고 하더라나. 웬 아이냐 하니 적적하여 입양을 시켰다고 하는데 뭔가 좀 이상하더라는 것이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요? 적적하면 입양을 할 수도 있지. 우리도 아이 하나 입양을 할까? 요즘 고아들 수출한다고 온 세계로부터 욕을 먹는 판인데.”

“아니에요. 무언가 좀 이상해요. 그렇게 떳떳하면 왜 죄지은 표정을 지어요?”

“아마 그런 큰일을 하면서 사전에 아무런 의논도 드리지 못하여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렇겠지.”

“그럴까요? 그래도 어이 그리도 당황하며 난처해할까?”

아내는 혼자 중얼거리다 말끝을 흐리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는 저간의 일을 상상하여 보았다. 내 계책이 잘 먹혀 들어간 것이리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바로 이튿날이었다. 그날따라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일찍 집으로 오니 그녀가 와 있었다. 그녀도 아내도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아내는 어째 오늘은 이리 일찍 오느냐며 짜증 비슷하게 말한다. 나는 웃으며 아니 내 집에도 내 마음대로 못 오느냐고 하며 앉았다. 그녀는 “오빠 없는 시간에 언니와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들켰네요.” 한다.

“그래 비밀이라면 내 방에 들어가 귀 막고 있을 테니 실컨 하라구,”

하며 일어서려는데

“아닙니다. 어차피 오빠도 다 아실 일, 오히려 잘 되었네요. 실은 전에 오빠에게 말씀 드렸던 그 일 말이에요. 그 얘기 언니에게 하고 있었어요.”

한다. 나는 궁금하여 다시 앉으며 그래 어떻게 정리하였느냐?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그럼 상당 부분 재방송을 하지요. 하며 물 한 컵을 다 마시더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조용히 그의 입을 주시하였다.

그날 오빠를 만나고 가면서도 도무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집으로 가는데 억지로라도 산다는 그 마담의 말이 자꾸 기억되더라는 것이다. 나도 그 말을 오래 잊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다 집에 막 들어서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자기도 모르게 막 뛰어 들어가니 아기가 자꾸 울더라는 것이다, 그제야 젖병을 보니 이미 빈병, 곧 우유를 넣어 물리니 그렇게 잘 먹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핏덩이를 차마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러다 남편이 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만 또 마음이 강하여져 약이 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래 대뜸

“나 이혼해 주세요.”

하였더니 그 남편이 왈

“당신이 원하면 내 무엇을 하지 않겠소? 원하면 그 보다 더한 것도 다 해 드리지요. 그리고 또 다른 요구는 더 없소? 이 집도 달라면 드리지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꿇어 엎드려 잘못했다며 빌더라는 것이다. 그 말에, 그 태도에 그만 맥이 탁 풀리더라는 것이다. 안 된다고 해야 이야기가 되겠는데 다 된다 더 주겠다. 하고 또 자꾸 빌어대니 그만 올랐던 약이 풀려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라 마음을 독하게 다지고 그럼 여기에 그 약속 적으세요. 하며 종이를 내 밀었더니 거기에 적기를

“소인은 죄인이라 아내가 무엇이든 요구하면 그대로 다 듣겠습니다.”

라고 쓰며 싸인을 하는데 그만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듣고 있던 아내도 나도 그 장면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래도 그녀는 억지로 참고 그럼 내일 법원으로 가자고 하고 자는데 밤중에 남편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기에 들으니 저의 죄를 저에게만 돌리시고 죄 없는 아내와 아기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며 눈물로 기도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못 들은 척 자고 났는데 아침에 남편이 출근은 안하고 자꾸 미적거리는데 아마 법원부터 가자는 것 같아 오히려 난감하더라는 것이다. 그때 마침 또 아기가 울어 젖통을 들고 먹이고 하는 사이 남편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제서야 후유 한숨이 나오는데 무슨 큰 짐을 벗은 듯 후련하더라는 것이다. 그래 그만 오늘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젠 아기와 정이 들어 절대로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내 계략이 이렇게도 신기하게 맞아지는데 놀랐다.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또 그 동안의 사실을 오빠에게는 이야기를 하면서 언니에게는 하지 못해 늘 죄송하였는데 그만 그날 백화점에서 만나니 너무 죄송스러워 오늘 이렇게 찾아왔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참 편안하여 좋다고도 하였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언니, 내가 슬게 없는 년이지요?”

하며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참으로 위대하네. 어떻게 그렇게 될까?”

아내는 그녀의 등을 도닥여 주었다. 그리고는

“그렇게 착한 분이 왜 그 실수를 저질렀을까? ”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는 뭔가 좀 부족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럼 앞으로 그렇게 계속 살거야? 법원에도 안 가고”

“법원요? 그 종이 찢어버렸어요. 오빠, 나 강하게 살거예요. 언니, 기도해 주세요. 십자가 질 수 있게. 오빠 고마워요.”

“그래? 무슨 말이지?”

그러나 그녀는 내 말에 대답도 없이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 것 같다며 일어서더니 또 잘 가라는 우리 인사도 못 들은 채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강하게 살 것이라는 말과 십자가란 말이 무엇인가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강하게 산다는 게 그리 쉽지를 않았다. 그리고 십자가는 너무 무거웠다. 엉뚱하게도 그 강하게 살려는 그녀의 의지를 꺾는 것은 그 아이 - 민환이었다. 그놈은 아기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아파서 속을 썩이더니 조금 크면서는 또 빗나가 애를 먹이었다. 중학생 때 벌써 담배를 피우더니 고등학생 때는 이웃 여학생을 건드려 임신을 시키는 등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하루도 예사로이 보내는 날이 없었다. 그래 매일이다시피 학교에 불려가야 하였고 가서는 손이야 발이야 빌어야 하였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하거나 혹은 찾아와서 울며불며 하소연을 하였다. 나는 자주 민환이를 만났다. 상담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민환이란 연구 대상자가 있어 반가웠던 것이다. 내가 본 민환이는 그저 좀 인정에의 욕구가 강할 뿐 머리는 명석하고 상상력은 아주 풍부한 좋은 학생이었다. 지나치게 내성적인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 빗나갈 아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장래성이 있다고 걱정 말라며 한 권사를 달래었다. 그러면서 그놈과 자주 어울렸다. 같이 놀러도 다니고 탁구도 치고 볼링장에도 가고 영화관에도 갔다. 그럼에도 그놈은 나에게도 숱한 고통을 주기도 하였다. 내 주머니의 돈은 마치 제 돈인 양 가져가기도 하고 엉뚱한 질문으로 나를 골려주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는 그놈을 포기하지 않았다. 늘 끼고 돌며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랬는데 그놈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또 한 1년 쯤 방황하더니 작년인가 교회 수련회에 다녀오고서는 마음을 잡아 기어이 오늘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나는 민환이에 대한 나의 눈이 정확하였다는 자부심에 기분이 더욱 좋았다. 그리하여 저녁에 아내와 나가면서 “민환이는 내가 잘 지도하였지?” 하며 자랑을 하는데 아내는 반색을 하며

“여보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지도를 잘한 게 아니고 한 권사의 기도 덕분이랍니다. 한 권사가 그 아이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새벽마다 매달리어 울었답니다. 온 교회가 다 알아요.”

하였다. 나는 머쓱하였다. 연이어 아내는 말하였다.

“당신의 동생이지만 나는 한 권사는 성자라고 생각해요. 요즘에 그런 사람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모르지만 그 김 서방, 김 장로란 사람 말이요, 아주 저질 인간이에요. 그 후에도 그 아이 엄마랑 데이트 계속하다 아마 근래에 와서야 이제 끝난 모양이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게 사실이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오?”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야기하니 알지.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였으면 나에게 와서 몇 번이고 울며 그 간의 이야기를 하였을까요? 하도 오빠에겐 비밀로 해달라기에 내 지금껏 참느라 혼났어요.”

나는 황당하였다.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저질스러울 수가 있으랴 싶었다. 그리고 내 동생이지만 그렇게까지 참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지나친 칭찬에 조금 반발이 생겼다. 이게 내 못된 버릇인 줄은 나도 안다. 그러나 고치지를 못한다. 그런 병으로 인하여 이죽거려 보았다.

“성자는? 진짜 성자라면 그렇게 울고불고도 말아야지.”

하였다. 한데 아내는 걸음을 멈추더니 정색을 하며

“그러기에 성자인 거예요. 너무 너무 억울하고 분하여 울고불고 하면서도 그래도 남을 위해 끝내 참고 견디니 그래 성자인 거예요. 아니 여자이니 ‘성녀’라고 해야겠네. 진짜로 성녀예요. 아예 그런 억울하고 분한 감정마저 없다면 그건 신이지 사람이 아니지요. 사람으로서 그만큼 참으니 확실히 성녀예요, 테레사 수녀보다 더 위대한 성녀예요.”

하였다. 나는 “성녀” “성녀” 하며 성녀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는 “맞아 성녀야.” “그녀는 정말 성녀야.” 다시 읊조리었다.
 

2013년 5월 24일 소하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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