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 넘치는 개혁개방 일번지 광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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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저우에도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식당 `대장금'이 생겨 손님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
중국 경제의 견인차로 나선 광둥(광동)성은 인구 8642만명, 면적 17만8000제곱킬로미터로 각각 중국 전체의 5.8%, 1.85%에 불과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국민총생산(GDP) 1위, 외자유치 1위, 대외교역 1위를 자랑하며 지난 10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다.
광둥성은 중국 최초의 개혁 개방지역으로 초기부터 대만, 홍콩, 마카오를 비롯한 화교자본(전체 외국자본의 60% 이상)과 미국, 일본, 유럽 등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한국기업은 정치적, 지리적 요인 등으로 산둥(산동), 랴오둥(요동)반도 쪽에 비해 이 지역과의 교역이나 투자는 미미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과 광둥성의 직교역 비중은 30% 미만에 머물렀고 대부분이 홍콩을 통한 간접교역 방식이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 뒤 한국과 광둥성의 교역은 급물살을 탔고, 2000년대 들어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광둥성의 생산 및 기반시설을 활용하려는 한국기업의 투자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현재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30% 이상이 광둥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동포의 광둥지역 진출도 크게 늘고 있고 아울러 중국동포의 동반 진출도 붐을 이뤄 활력 넘치는 광둥 한겨레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동포 약 6만여명, 한국동포 약 4만5천여명 모두 11만여명 넘어
1980년대만 해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동포 사회는 2005년 말 현재 12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한국총영사관, 현지 한국인(상)회, 조선족기업연합회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광둥지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는 약 6만여명, 한국동포도 약 4만5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선전(심천)에 중국동포 3만여명 한국동포 2만여명, 광저우(광주)에 중국동포 1만여명 한국동포 8천여명, 둥관(동관)에 중국동포 8천여명, 한국동포 5천여명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 개방 시범도시 선전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동포는 1982년 당시 건축공정병으로 이곳에 파견돼 심천 도시건설에 앞장섰던 김재광씨 등 5명의 군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심천실업유한공사 총경리(사장)인 김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같이 온 동료들은 고생만 실컷 하고 다들 돌아 가버렸지요. 나는 그때 공정부대가 일반 회사로 전환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 남았죠”라고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 사실 그는 심천의 경제발전 과정을 직접 보고 느끼며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대표적 초기 정착민이다.
그 이전에도 광둥지역에 배치받은(중국은 대학생이 졸업하면 당에서 특정 지역 특정 회사를 지정해 그곳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도록 배치를 한다) 조선족도 몇몇 있었으나 이들 대부분은 중국동포로 알려지지 않고 신분증마저도 한족으로 바뀌어 한족화됐다고 한다.
1988년 하얼빈공대를 졸업한 뒤 선전에 배치받은 광둥조선족기업가연합회 최용균 회장은 “당시 이곳에는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도 없었고 제대군인이나 대학생을 포함해서 동포는 고작 몇 십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1993년에 연변을 떠나 광저우에 정착한 광저우스피드물류유한회사 김철룡 대표도 “동포들의 이 지역 진출은 선전보다 더욱 늦어 초창기 동포 관련 기업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1995년 서울~광저우 직항로 개설로 물꼬가 터이고, 2001년 8월 광저우한국총영사관 설립 등을 계기로 2000년대에 들어서 한국동포와 함께 중국동포가 몰려와 최근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일본기업과 한국기업 뒤따라 진출
중국동포가 이곳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전 등 이 지역 경제특구에 몰려온 일본기업 때문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한 중국동포는 이곳에 진출한 일본기업의 통역, 총무업무를 맡아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도 중국인들보다는 말도 통하고 일처리가 빠른 중국동포를 고용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러다가 한-중 수교 이후 한국기업이 들어오면서 중국동포의 진출은 급격하게 늘어난다.
200년대엔 중국동포오 한국동포가 운영하는 서비스업소와 임가공 제조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오늘의 한겨레 사회로 발전했다.
교역규모 크게 늘어, 투자는 아직 미미
광저우코트라 자료를 보면 2004년 11월 말까지 한국의 대광둥성 수출은 132억1천만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29.1% 늘어났으며, 중국수출액 453억달러의 약 30%, 흑자규모 186억달러 가운데 51억1천만달러가 광둥성과의 교역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교역규모에 비해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광동성 진출 한국기업은 319개(순 투자기준), 총투자액은 3억8600만달러로 광둥성 외자유치 가운데 건수기준 3%, 금액기준 4%에 그친다.
광둥성에 가장 많이 투자한 기업은 삼성그룹으로 선천, 둥관, 혜주 등지에 총 6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현대 포철 LG전자 LG화학 등이 진출해 있다.
중국동포 기업으로는 1000여개로 추산되나 그중 1000만위안 이상 규모를 갖춘 업체는 100여개에 이른다.
광둥지역은 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초기 일본이나 한국기업에서 근무하다 독립해 가방, 완구 등 봉제업으로 성공한 중국동포들이 많다. 이밖에 사출, 금형업체와 식품가공 등에 종사하는 기업인도 나타나고 있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이학철씨의 선전한융유한회사는 ‘상가김치’를 광둥지역은 물론 홍콩과 마카오까지 수출하고 있다. 또 서비스업 가운데 음식점, 노래방, 식품가게,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중국동포들이 많다. 이 가운데 김용수씨가 운영하는 선전 이화원 한식당은 자산가치가 1천만위안을 넘으며 2개의 분점을 두고 있다.
중국 최대 물류 유통 집산지답게 물류분야에 활약하는 중국동포 기업도 40여개나 된다. 김철룡씨의 광저우스피드물류유한공사는 선전 광저우 웨이하이에 3개 지사를 두고 영업력을 키워가고 있다.
전자분야에 종사하는 중국동포 기업은 80% 이상이 한국, 일본, 대만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엔 고학력, 첨단기술 소유자들이 독립해 휴대폰 배터리, 주변기기, 가전, 광전자, 신소재 등 분야에서 연변 출신의 남화섭 회장이 이끄는 선전할루야전자유한회사와 최영균 사장의 선전승합테크놀로지유한회사 등 점차 규모화하고 있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중국동포 현재 만족, 미래 낙관, 민족 교육 및 문화 아쉬움 커
광저우 바이윈(백운)구 운천취정아파트에서 명월민박을 하고 있는 윤덕화 박수자씨 부부는 “주변에 아파트를 임대해 민박을 경영하거나 사무실을 운영하는 동포들이 20여가구에 이른다”고 말했다. 선전 바오안(보안)구 도원거에는 헤이룽장성 계서 출신 중국동포 30여가구가 모여 산다. 이렇게 광저우 원경로, 광원신촌 부근, 선전 사정, 도원거 , 화교성, 동해화원 등지에 중국동포와 한국동포가 모여 식당, 식품점, 노래방 등 업소가 늘면서 소규모 한겨레 사회(코리아 타운)이 형성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월소득 1만위안 이상 한국동포가 50% 이상이었으며, 중국동포는 5천~1만위안 소득계층이 반 이상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는 대기업의 주재원이나 중소기업 사주인 한국동포들은 대부분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기타 물류, 유통분야에 종사하는 한국동포는 아파트를 임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동포의 경우 선전이나 광저우에 온 지 7~15년인 35살 이상은 대부분 할부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아파트 값에도 거주조건이나 환경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생활에는 대부분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이나 걱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자녀 교육문제와 문화생활에 있어서는 불만을 나타냈다.
한국동포 자녀들은 대부분 국제학교나 주변 한족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선전의 경우 영어교육을 강조하는 리중, 백석주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많았다. 중국동포의 경우 대부분 거주지 한족학교에 다니고 있어 민족언어 교육이 발등에 떨어진 불로 떠올랐다.
몇몇 인사들이 중국동포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설립을 말은 하지만 가시화하려면 재정이 뒷받침되고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일이어서 2세 교육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아울러 먼저 정착한 자녀들을 따라 이곳에 온 기성세대나 노인들은 따로 즐길만한 문화활동이 거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한국인(상)회와 조선족기업가연합회 지역사회 구심점으로
한국인(상)회나 조선족연합회가 지역 한겨레 사회의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
선전 광저우 둥관 혜주에 각각 있는 한국인(상)회는 한국동포의 화합과 단결을 이루고 있다. 강희방 선전한국인(상)회 회장은 “한국기업의 현안문제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동포 자녀를 위한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등 각종생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현혁 광저우한국인(상)회 회장은 “중국 진출 한국기업의 창구가 되도록 하겠다”고말했다. 이한성 둥관한국인(상)회 회장은 “주강삼각주의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제조업체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기업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활발한 한국인(상)회의 활약에 현지 정부에서도 투자유치나 투자환경 평가 등에 많이 기대를 하고 있다.
반면 중국동포의 경우 초기 대거 진출에 따른 부작용으로 자질이 낮은 일부 동포의 추태, 범죄률 증가 등으로 이미지가 추락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최용균, 김재광, 태백, 김용수, 유성호, 김철룡, 남화섭, 최춘서 등 동포 기업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광동조선족기업가연합회는 2003년 출범시켰다. 이후 연합회는 2003년 10월1~3일 ‘광둥조선족 제1회 운동회’를 개최해 5천명의 중국동포가 참가하는 대성황을 이뤘으며, 2004년 1월엔 ‘제1회 광동 조선족문예공연’ 행사도 성공적으로 치러 부정적인 중국동포 이미지를 불식시키며 현지 정부의 인정을 받아 각종 행사에 공식 초대되고 있다.
연합회는 또 민족전통문화계승, 자녀교육, 취직, 결혼 등 문제까지도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선전 금봉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해 전문인력 2명을 뽑아 홈페이지(http//:www. gdclweb.com)를 개설해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고 있다.
한겨레 사회 화합과 공생의 미래 밝다
광둥 한겨레 사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사업 마인드가 높고 수준 있는 한국동포와 조선동포가 많아 서로 화합과 공생이 가능한 협력관계를 만들어가기가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남상욱 광저우 총영사는 이 지역 중국동포 기업인의 자질을 인정하면서 한국 기업의 현지 정착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함정오 광저우코트라 관장은 “중국동포는 중국 진출 한국동포에 무형자산”이라며 “서로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고 믿음을 키우면서 방해되는 요소를 하나하나 제거한다면 좋은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화섭 선전할루야전자유한공사 회장은 “중국동포는 반드시 한국과의 교류와 협력이 있었기에 오늘 같은 중국동포의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한국동포와 중국동포의 모순은 가치관과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워도 다시한번, 못해도 다시한번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세계가 하나가 되는 마당에 편견을 버리고 공존, 공생, 공영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광둥조선족기업가연회 상무부회장이며 비서장인 김용씨는 “ 호에 대한 비방과 질책에 앞서 자기 문제점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다 보면 원망과 반목이 사라질 것”이라고말했다.
한국기업에서 오랜 동안 인사담당을 맡아온 이춘재씨는 “한국기업에서 중국동포를 채용할 때 고교 졸업생도 대학 졸업생 이상의 대우를 해주는 사례를 들면서 중국동포도 스스로 실력과 자질을 키워야 상호 돈독한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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