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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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맨땅에 헤딩으로 떼돈 번 하이난섬 한국농장
2007년 10월 05일 20시 55분  조회:2957  추천:93  작성자: 차한필

 중국속에 일떠서는 한민족(2)

맨땅에 헤딩으로 떼돈 번 하이난섬 한국농장

차한필 한겨레신문 기자




관광 왔다 들른 열대농장에 반해 삶의 방향 바꿔

“1997년 중국 하이난(해남)섬에 관광을 왔다가 아름다운 풍경과 열대과일을 재배할 수 있는 기후 조건에 반해 이곳에 농장을 꾸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이난성 산야(삼아) 근교에서 열대과일 농장을 개척해 2006년 봄 첫 수확을 앞두고 있는 경남 진주 출신의 김용선(54)씨가 미소를 머금은 채 하는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장사를 해 모은 돈으로 고향 근처 지리산 자락에 농장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땅값이 워낙 비싸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가 이곳에 관광을 와 여행사에서 관광코스로 넣어놓은 열대과일 농장을 둘러보다가 ‘이거다’라는 생각에 삶의 방향을 중국 최남단 섬으로 돌리게 된다.


무모하기보다 위험하기까지 한 도전

“그 뒤 해마다 두세 차례 이곳을 찾아 농장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농사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인데다 더욱이 이곳에서 나는 열대과일은 먹어보지도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한 셈이죠.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시행착오 정도가 아니라 무모하기까지 한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급한 마음에 농장부터 사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땅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김씨 같은 경우는 백발백중 사기당하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씨는 통역을 하던 중국동포에게 사기당하고, 이곳 관리와 주민으로부터도 땅 소개, 계약서 작성, 재료구입 과정 등에서도 피해를 보아 농장을 차리기도 전에 200여만위안(한국돈 약 3억원)이나 되는 돈을 날리는 등 엄청난 ‘학비’를 치렀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김씨는 우여곡절 끝에, 2000년 6월 삼아시 교구에 350무(1무는 중국평수로 약 1000평, 한국평수로는 약 300평, 미국평수로 1아르에 해당)의 땅을 30년간 임대해 농장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는 김씨가 절망 속에서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쓰러워하던 연변 왕청 출신 중국동포 김영옥씨의 도움이 컸다. 현재 농장 총경리를 맡고 있는 김영옥씨는 당시 김씨 집에 파출부로 오가며 그의 사정을 알게 됐다. 김 총경리는 “김씨가 이곳 법규와 절차, 관습을 전혀 모르고 좌충우돌 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도와주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농장 일 전문가가 돼버렸다”며 웃는다.

김 총경리의 도움으로 농장을 확보한 그는 한국에 있던 집과 밭을 다 팔아 ‘마지막 도박’을 걸었다. 산비탈을 파헤치며 언덕 위에 텐트를 쳐놓고 잠을 자며 ‘하면 된다’는 억척스러운 의지 하나로 버텼다.


억척스런 의지로 파파야 첫 재배 성공해


첫해 집과 창고 등 생활공간을 마련하고, 2001년 망과 묘목을 심는 동시에 수박을 재배해 약 5만위안의 수익을 올렸다. 이를 파파야 종자를 사는 데 재투자했다. 담배연기를 쐬어도 죽는 파파야는 재배하기 극히 어려운 작물로 어지간한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엄두도 낼 수 없다고 한다.

근처 대만 농장주한테서 파파야 종자를 구입해 기술지도를 받는 한편, 파파야를 재배하는 주변 농장을 찾아다니며 경험을 귀담아 듣고 정성껏 재배에 나섰다. 대체로 몇 차례 실패 끝에 싹을 틔우는데도 김씨는 첫 재배에서 기적처럼 성공을 했다. 같은 종자로 아홉 차례나 실패한 현지 한 농장주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기술지도를 요청할 정도였다. 김씨의 재배 방법을 들은 그 농장주는 “한국인은 참으로 대단한 민족”이라며 혀를 내두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더욱이 그는 다른 농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비료 대신 한국식 퇴비를 자체 생산해 해마다 두 차례씩 거름을 주며 유기농법을 고집했다. 그 결과 3년 산 망과 나무의 굵기와 높이가 다른 농장의 7, 8년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가 재배한 파파야는 하이쿠농산물시장에서 도매상들이 가장 앞다투어 구매하려는 ‘한국농장’ 과일로 이름 나 있다.


현지 주민과 일꾼을 식구처럼 삼아 동고동락


그가 농장 경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주민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고용인들을 제 식구처럼 대하며 함께 동고동락했기에 가능했다.

초기 농장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것은 주변 주민들이 농장 물건을 마치 제집 물건처럼 가져가는 것이었다. 농장 주변 주민은 하이난섬 원주민 가운데 하나로 대륙의 한족과 달리 이족이라는 소수민족이었다. 이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김씨가 농장을 만들기 위해 돈 들여 마련해놓은 각종 장비나 시설을 몰래 가져가버리는 것이었다. 공안(경찰)에다 신고를 해도 전혀 해결되지도 않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한국식으로 돼지도 잡고 음식을 만들어 마을 잔치를 벌이며 ‘신고식’을 마친 뒤, 마을 사람들을 농장에서 고용하겠다고 제안해 그 문제를 해결했다.

또 그는 일꾼들을 위해 자신의 집보다 먼저 고용인 숙소부터 지었다. 숙소에 위성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갖추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급여도 다른 농장보다 높게 주고, 보름마다 한번씩 회식도 하며,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옷이나 시계 등 선물도 챙겨주며 관리했다. 그 결과 지난 4년 동안 일꾼이 한 명도 바뀌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농번기엔 다른 농장은 일꾼을 못 구하지만 이곳엔 일꾼이 찾아왔다.

2002년엔 ‘붉은 악마’ 티셔츠로 일꾼들의 복장을 통일시키자 평소 주말에 집으로도 가지 않고 숙소에만 머물던 이들이 이 옷을 외출복으로 입고 마을에 나가 자랑하며 다녔다고 한다.

그는 게으르고 불성실한 그들에게 참된 농사꾼의 길을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앞장서서 나무뿌리를 줍고 쓰레기를 모아 태우며 근면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깨끗하고 부지런하며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야 만다는 한국인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 결과 그는 18개 이족 마을에서 모두 인정하는 지역 유지로 대접받고, 해당 공관과 관계자들로부터도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300만위안(한국돈 약 4억5천만원)을 들여 건설한 한국농장엔 망과, 파파야 등 1만3천여그루의 열대과일과 식물이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앞으로 열대과일을 한국과 일본 등지로 수출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맨 땅에 헤딩으로 일군 농장의 땅값도 크게 올라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찾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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