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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默言)
2015년 06월 21일 11시 43분  조회:2440  추천:0  작성자: 行者金文日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에어컨을 켰더니 대뜸 시원해난다. 벗어두었던 웃옷을 다시 껴입으며 이런 사치가 어디있을까 싶다. 아마 옛날의 제왕들도 여름밤에는 더위에 시달렸으리라. 그런데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현대문명의 산물로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고 있다. 시원한 여름밤을 보낼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이튿날 아이들 전부가 코물을 흘리며 기침이 멎지 않는다. 감기에 걸린것이다. 안해는 내가 밤새 에어컨을 켠탓이라고 말했다. 여름감기가 훨씬 무서운듯 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무더운 여름밤을 그냥 보낼 자신이 없었다. 밤새 샤워를 세번이나 하고났지만 그래도 무더위는 물러가지 않는다.
이튿날 일찍 백화점에가서 선풍기 하나를 사왔다. 백오십원하는 자그마한 선풍기다. TV를 놓은 작은 탁자 옆에 선풍기를 놓고 돌리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런데 한참을 바람앞에 앉아 있을라니 저도 몰래 기침이 났다. 선풍기의 머리를 돌려서 바람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게끔 해놓았더니 아까보다는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기침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자연은 그런것인가 본다. 억지로 만든 시원함이나 억지로 만든 바람 모두가 그렇게 좋은것만은 아닌듯싶다.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모든 물건에는 반대되는 면이 있기 마련이다. 음양학자들은 그런것을 음양의 법칙이라고 하고 주역학자들은 그런것을 역(易)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즉 변화의 법칙이라는것이다. 모든것은 변화하고 고정불변의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십여년전에 장춘에 있는 사찰 반야사(般若寺)에 갔다가 얻어온 “육조법보단경” (六祖法寶壇經) 이란 책을 읽었었는데 거기에 있는 한구절이 오래동안 기억에 남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쉽게 변하는것이 바로 마음이다” 는 말이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아주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전까지는 내 자신의 마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가장 쉽게 변하는것이 마음이라는”그 말이 너무나 맞는 말이여서 더 충격이 컸었던것같다. 우리의 마음은 가만히 앉아있는 순간에도 수백가지 생각으로 충만되였다 사라진다. 마치 하늘가득 뭉게구름이 피였다가 사라지듯이, 바다의 물결이 넘실대듯이, 절주가 없고 규칙도 없다. 그냥 왔다가 사라지는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마음은 믿을수가 없고 뜬구름같다. 수천만번 사랑한다고 외치다가도 또 다른 사랑이 생기는 순간 어이없이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듯이 우리 마음속의 사랑이나 우정이나 모든 감정들은 저 바다속의 파도나 하늘가의 구름처럼 넘실댈뿐이다. 그렇게 변화가 빠르고 변덕스러운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을 대표하는것 중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우리의 말이다.
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항상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이다. 그만큼 비밀은 없다는 말이 되겠다.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심신이 피곤할때면 어김없이 목욕탕을 찾는다.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속에 잠겨서 지친 피부를 쉬우고  휴식실에서 한숨 자면서 밀린 피로를 풀고나면 몸과 마음 모두 거뜬해진다. 그런 즐거움도 요즘은 제대로 누릴수 없게 되였다.
  지난번 있었던 일이다.  목욕을 마치고 가운으로 갈아입고 휴계실에 들어갔더니  휴일이 아니여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편한 자리를 찾아서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뒤따라 들어온 아줌마 둘이 앉아서 입담을 벌여놓기 시작한것이다. 각자 아이들 자랑에서부터 남편자랑을 해대더니 이어서 시누이 욕을 해대기 시작한다. 도무지 참을수 없어서 몸을 뒤척이면서 돌아 누웠지만 막무가내이다. 이어서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흉을 보고 욕을 하는데 도무지 사람의 입을 가지고는 담지 못할 욕까지 곁든다. 내가 잠든줄 아는지 하는 말들이 꺼리낌이 없다. 그렇게 욕을 해댄다해서 마음이 후련해질지는 모르나 자신들의 인생이나 주변에는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는지는 모르는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불평과 불만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상대의 나쁜면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코하는 말이건 뜻을 담은 말이건 간에 든는 귀가 바로 곁에 있다.
불교의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은 태여날때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기 자신을 찍고 만다.”
우리는 말을 안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경우가 더 많다.
불교 일화가 한편 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중의 하나로서 신통제일로 알려진 “목련존자”에게는 구설이 많은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생전에 남을 비방하고 헐뜯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점이 있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욕설로 비난하기를 업으로 삼았다한다. 그런 그녀의 아들이 부처님에게 출가하여 큰 능력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염려되여 능력을 열어서 세상 뜬 어머니의 영혼을 살폈는데 어머니는 죽어서 이미 지옥으로 내려갔고 생전에 남을 헐뜯고 욕한 대가로 지옥에서 엄청난 고통에 모대기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구하려고는 하나 자신의 힘이 부족하여 부처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빌었더니 부처님께서 친히 제를 지내서 그의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출했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해마다 한번씩 꼭 진행하는  “우란분회”의 유래라고 한다.
그만큼 불교에서는 우리의 말을 단속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의 관상수도자였던 토마스 머톤 신부는 그의 <관상기도>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침묵으로 성인들이 성장했고, 침묵으로 인해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침묵안에서 하느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다” 그만큼 그는 침묵을 칭찬하고 웅변을 거부했던 사람이였다.
어느 마을에 화를 잘내는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조금만 비위가 상해도 화를 버럭버럭 내고 자신의 생각과 조금만 틀려도 남을 비난하고 욕을 했다. 그러다나니 진정한 친구 한명도 옆에 남지를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청년의 아버지가 그의 그런 나쁜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아들을 불렀다. 그는 아들에게 매번 화가 날때면 다른 사람에게 화낸것만큼 나무담장에 하나씩 못을 박으라고 하였다. 아들은 아버지 의 말대로 매번 남들에게 화를 내고는 담장에 못을 하나씩 박아나갔다. 그렇게 자신을 단속하다나니 이제는 점점 못을 박는것이 줄어들게 되였다. 이번에 그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네가 매번 다른 사람들로 화가 일어났으나 한번 잘 참았다면 절로 저기 박힌 못을 빼도록하거라.”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기로 약속하고 언행에 주의하고 화를 참고 다른 사람에게 심하게 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나니 담장에 가득 꽂혀있던 대못들도 점차 줄어들게 되더니 어느덧 하나도 남지 않고 깨끗하게 되였다. 아버지에게 와서 그 아들은 기쁜 심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덕분에 이제는 내 마음을 다스려서 내 언행에 무척 주의할수가 있게 되였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담장에 꽃혀있는 못은 다 빼냈지만 그 못자리는 남아있는 법이란다. 니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도 비록 치유되겠지만 그 자국은 남는법이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언행에 더욱 조심하도록 하거라.”
그 말에 그 아들은 더욱 열심히 수련하여 나중에 큰 인물이 되였다고 한다.
   나는 매년 여름휴가철이면 여기저기 사찰을 돌면서 심신을 쉬우면서 수행연습을 하군한다. 지난 여름 서울에 출장차 다녀오다가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짤막한 수련을 했던적이 있다. 담당스님이 묵언패를 줄때까지만해도 심심찬게 받았는데 정작 그걸 실행하려니 여간 불편한것이 아니였다. 이것저것 궁금한걸 물어볼수도 없고 한방에 든 수행자한테도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지 물어볼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일을 보내는 동안 휴식시간이면 신도들이 가끔씩 길을 물어보거나 스님들의 행방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묵언수련중이라고 패쪽을 보여주면 모두들 잘 아는지 벙긋 웃고는 떠나간다. 그곳에서는 몇일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묵언을 실행하면서 명상수련을 했는데 더없이 큰 도움이 되였다. 그때 비로서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열마디 말보다 자기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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