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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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두음 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과 우리글 댓글:  조회:34665  추천:47  2011-04-02
            두음 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과 우리글 필자는 '두음현상'이 아닌 이른바 ‘두음 법칙’의 필요성과 그 존재를 철저히 부인하였지만 한국의 여러분들의 검독(檢讀)에 편리를 드리고자 지금까지의 한국의 현행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습관을 존중하여 아래 글 전문에서 본의(本意)를 꺾고 기왕의 한글 ‘두음 법칙’에 따라 기술함을 특히 첨언하는 바이다. 우리 민족 학계(세계적인 범위)에서 두음 법칙에 대한 찬반 논란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또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두음 법칙 반대론만 나오면 ‘알타이제어(Altai諸語)’론을 걸고넘어지거나, 또는 ‘조선문제’와 혼돈 시켜 정치와 체제를 거론하며 말씨부터 거칠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줏대 없는 어용 문인마냥 감언이설로 그 어느 누구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아가며 본문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공정성을 기하여 아주 기초적이고 상식적이며 기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찬반의 공방과 우리 언어 규범의 득과 실을 밝히는데 필요와 도움이 될 듯싶어 본문이 좀 길더라도 보다 상세하고 자세하게 기술하려 노력하였음을 특히 명시하는 바이다. 실은 먼저 ‘두음 법칙’과 그 유래를 밝히며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겠지만 우리 생활에 푹 젖어든 두음 법칙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을 해치며 우리의 인명, 지명을 벌집으로 만들다시피 한 현상이 너무 심각하여 두꺼운 표피부터 하나하나 파헤쳐 낱낱이 열거하고 밝히며 차차 ‘두음 법칙’의 원초(유래)를 찾아보기로 한다.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중국 인명 표기”와 “중국 지명 표기” 원칙에 따라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를 종전의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물론 현대인과 현재 지명과 동일한 지명은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원지음(외래어)으로 취급한다고 치더라도 종전의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대로 과거인의 인명, 현재 쓰이지 않는 역사 지명을 표기함에도 모순투성이어서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의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국어 대사전』에 오른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예로 들어본다. 먼저 지명을 보면 중국의 하남성 북서부에 있는 성 직할시 ‘洛陽’을 옛 지명 그대로 표기할 때는 ‘낙양’이라고 올랐다. 중국 길림성의 ‘룡정촌(龍井村)’은 외래어로는 ‘룽징춘’으로, 옛 지명으로는 ‘용정촌’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외에 ‘려대(旅大)’를 ‘여대’로, ‘려순(旅順)’을 ‘여순’으로 표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료녕성(遼寧省)’을 외래어로는 ‘랴오닝성’이라고 하며 옛 지명으로는 ‘요령성’이라고 올랐다.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중국 지명 표기” 규정으로 보면『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료녕성(遼寧省)’은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이기에 응당히 이른바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원지음을 본 따 ‘랴오닝성’이라는 지명을 올리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사전에서는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처럼 ‘료녕성(遼寧省)’을 새삼스레 한자어 ‘요령성’이라고 예스럽게 낱말을 더 새기어 사전에 불필요한 동의어가 범람케 하고 있다. 하여 사전 사용자들은 ‘랴오닝성’, ‘요령성’ 또는 ‘료녕성’가운데서 바른 지명을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위의 예문에서 또 동일한 한문자 지명 ‘遼寧省’임에도 ‘료녕성’과 ‘요령성’이란 두 낱말로, 석자 중에서 두자나 서로 다르게 올랐음을 볼 수 있다. 인명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인물로 된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라는 규정을 무시하고 [ㄹ], [ㄴ] 소리를 앞세운 인명은 어느 하나도 옛 이름, 종전의 한자어 원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예하면 중국의 당나라 태종 ‘리세민(李世民)’은 [이]씨 성으로 바뀌어 ‘이세민’으로 되고, 당나라 문인 ‘류종원(柳宗元)’은 [유]씨 성으로 바뀌어 ‘유종원’으로 되었고, 원말 명초의 소설가 ‘라관중(羅貫中)’이 언제부터인지 [나]씨 성으로 바뀌어 현재는 ‘나관중’으로 둔갑(遁甲)되었다. 이러고 보면 나관중의 작품 속의 수많은 인명, 지명도 하나하나 점검해서 바뀌어야 될 것인데; 예하면『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역사 인물−중국의 삼척동자들에게도 너무 귀에 익은 삼국 시대 촉한의 ‘현덕−류비(劉備)’가 고인이 되어 1,800여 년 만에 ‘유비’(『국어대사전』2006년 2914쪽)로 불리고, ‘사람 중에 려포요,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할 정도로 무용이 뛰어난 ‘맹장−려포(呂布)’가 성씨를 바꾸어 ‘여포’로 둔갑이 되었으니 만고에 없는 변란으로 고혼도 혼비백산 할 것이 아닌가. 다음,『수호전』의 몇몇 인물만 대조해 본다. ‘로지심(魯智深)’은 ‘노지심’으로, ‘림충(林冲)’은 ‘임충’으로, ‘로준의(盧俊義)’는 ‘노준의’로, ‘리규(李逵)’는 ‘이규’로, ‘구문룡(九紋龍)’은 ‘구문용’으로, ‘류당(劉唐)’은 ‘유당’으로 의기지용으로 의기충천하여 호풍환우하던 영렬들이 몸담고 있던 량산박(梁山泊)은 벌써 양산박(『국어대사전』(2006) 2516쪽)으로 변명(變名)이 되었으니 위의 108명 영웅의인(義人)들도 자연히 양산호걸로 길이길이 전해 져 한국의 후세들은 ‘양산호걸’ 하면 경상남도에 있는 통도사, 내원암, 홍룡 폭포 등 명승지가 있는 양산(지난날의 양산군, 오늘의 양산시)의 호용(豪勇)으로 여길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일 경우도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원지음을 적용한답시고 현지 발음답게 엮노라 흉내 내는 것도 어렵지만 현지 음을 찾기 전에 두음 법칙을 우선(전제)으로 중요시 하는 한국으로부터 이중의 세례(‘외래어 표기법’과 ‘두음 법칙’)를 받게 될까 두렵다. 실례로 ‘류소기(劉少奇)’를 한국에서는 ‘류 사오치[『국어대사전』(2006) 1117쪽]’라고 한다. 두음 법칙에 따라 ‘류소기’를 ‘유소기’로 바꾼 다음 중국 현지 음으로 ‘유 사오치’로 해야 될 것이 아닌지. 외래어엔 두음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 중국 송나라 사람인데 상선을 타고 들어와 고려에 귀화한 ‘유재(劉載)’와 ‘유소기’는 같은 [유]씨이고 모두다 벼슬이 높아 ‘유소기’는 나라 주석을 지녔고 ‘유재’는 정이품으로 우복야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워낙 다 같은 중국 사람인 ‘유소기’와 ‘유재’는 성씨 만으로나마 같은 대접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림표(林彪)’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한국의『국어대사전』(2006)에서는 ‘림표’를 ‘린 퍄오(1130쪽)’라고 올렸고『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린뱌오’로 표기되었다. 한자어 ‘림(林)’은 한국의 두음 법칙으로 하면 ‘임’으로 되어야 할 터이고 ‘림(林)’씨가 ‘임(任)’씨네 댁으로 가야 될 터인데 황천객이 된 ‘림표’가 오늘 한국의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림’씨가 ‘임’씨네 댁을 못 찾아 ‘린(吝・燐・躪?)’씨로 변성(變姓)이 되었다. 한국의 “두음 법칙”과 “중국어 표기법”이 결합되어 [종전의 한자음+두음 법칙]으로 이루어진 림(林)→임(任)→린(躪)과 같은 방정식이 머잖아 [ㄹ] 소리를 버리는 두음 법칙이 [린]을 그만둘리 없어 [린]이 다시 [인]으로 될 터이니 림(林)→임(任)→린(躪)→인(忍)으로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성씨를 따라 함께 돌아야 할 혼백도 얼마나 고달프랴. 조선시대의 임득명(林得明), 임백령(林百齡), 대한 제국 때의 의병장 임병찬(林秉瓚)의 성씨도, 조선 명종 때의 임꺽정의 성씨도 두음 법칙이 나오기 전에는 모두 [수풀 림(林)]씨이다. 원훈원음으로는 ‘림득명’, ‘림백령’, ‘림병찬’, ‘림꺽정’이라는 것이다. 생전의 여러 ‘림씨’가 사후(死後․亡後)에 선대조상(先代祖上)을 떠나 ‘임씨’ 댁에서 떠돌아다니는 망령음귀(亡靈陰鬼)로 되었다. 중국어 원지음과 두음 법칙이 서로 엇갈리어 [수풀 림(林)]이 수풀마냥 복잡하고 다양하게 쓰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림표의 이름 ‘표(彪)’는 사전마다 제 나름으로 ‘퍄오’로도 오르고, ‘뱌오’로도 표기하고 있다. 중국 인명 하나를 두고도 이렇듯 뒤죽박죽이다. 최근에 출판된 한국의 여러 국어사전들과 출판물들, 지어는 학교들과 방송들에서도 위와 똑 같은 사정이다. 위의 예문에서 지명 ‘洛陽’의 한문자 [洛]의 우리 훈의 음(으뜸소리)은 분명히 [물 이름 락]이고 ‘遼寧省’의 [遼]의 우리 훈의 음은 [멀 료]이고 [寧]의 훈의 음은 [편안할 녕]이며 ‘龍井村’의 [龍]의 훈의 음은 [룡 룡]이다. 인명 ‘李世民’의 [李]의 우리 훈의 음(으뜸소리)은 [오얏 리]이고 ‘柳宗元’의 [柳]의 훈의 음은 [버들 류]이며, ‘羅貫中’의 [羅]의 훈의 음은 [벌릴 라]이고 ‘劉少奇’의 [劉]의 훈의 음은 [죽일 류/묘금도 류]이다. 물 이름 락(洛)자가 ‘낙’자로, 멀 료(遼)자가 ‘요’자로, 룡 룡(龍)자가 ‘용’자로, 오얏 리(李)자가 ‘이’자로, 버들 류(柳)자가 ‘유’자로, 벌릴 라(羅)자가 ‘나’자로, 묘금도 류(劉)자가 ‘유’자로 둔갑되었다. 이변(異變)이 아닐 수 없다. ‘락양(洛陽)’이 ‘낙양’으로 되고 ‘료녕(遼寧)’이 ‘요령/요녕’으로 되며 ‘리세민(李世民)’이 ‘이세민’으로 될 수 있는 이른바 합리적인 구실(핑계・이유・근거)이라면 한국의 많은 중한사전(옥편)들에서 언제부터인가 한자어 중에 [ㄹ], [ㄴ] 소리를 앞세운 낱말의 으뜸소리−정훈(正訓)에다 보충 훈과 음독(音讀)을 가첨했고 첨가된 보충 독음(讀音)이 정훈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어연구소”에서 발행한『한국 어문규정 해설집−한글 맞춤법 해설−』(2006) 제16쪽에서는 “음소 문자인 한글은 원칙적으로 1자 1음(소)의 체계를 취하지만, 표의 문자인 한자의 경우에는, 국어의 음운 구조에 따라 두 가지 형식을 취한 것이다”고 씌어져 있다. 예하면 “본음이 ‘녀, 뇨, 뉴, 니’인 한자가 첫머리에 놓일 때는 ‘여, 요, 유, 이’로 적는다.”는 것이다. 두음 법칙에만 특별히 베푸는 너그러운 관용(寬容)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 지켜오며 굳어진 우리 음운(音韻)과 음훈(音訓)의 원칙과 기준마저 깨뜨리면서라도 두음 법칙에만 켜 준 푸른 등을 바라보노라니 비감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이로 하여 두음 법칙은 활개 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1자 2음, 지어는 1자 3음의 표기 형식을 마구 만들어 나가고 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이른바 일명 “어두음 법칙” 또는 “머리소리 법칙”이라는 “두음 법칙”이 떠도는 나그네를 안방의 주인으로 모시고 멀쩡한 원주인은 쫓아버린 셈이다. 예: 한문자 [洛]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물 이름 락 (낙)]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락]을 버리고 [낙]을 취하며, 한문자 [遼]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멀 료 (요)]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료]를 버리고 [요]를 취하고 있고, 한문자 [李]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오얏 리 (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리]를 버리고 [이]를 취하고 있다. 위에서 실례 든 훈과 음의 전자는 종전의 한자음, 또는 우리 한자음의 정훈(正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후자는 변이음(變異音)도 아니요 속음(俗音)도, 연음(連音)도, 음편(音便)도 아닌 괄호안의 보자(補字)와도 같은 보충(補充)자는 한자 또는 한자어, 한자음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른바 한국에서만 성행하는 두음 법칙(頭音法則)이 낳은 신어(新語)라고 봐야겠다. 정실(正室)에서 태어난 정훈(正訓)은 정적(正籍)임에도 쫓겨나고 소실(小室)의 의자(義子)도 아니요, 소첩의 서자(庶子)도, 얼자(孽子)도 아닌, 그래서 명실(名實)이 없어 실명(實名) 확인도 할 수 없는 떠도는 나그네와 같은 자를 세자(世子)로 봉하여 훈과 음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정훈의 자리를 “찬탈(簒奪)”한 훈과 음(괄호안의 훈)만을 인정한다면 천자문의 새김말(훈음)도 이제는 고쳐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예: ==============         ==========================죄송합니다.   본 단락의 내용을 수정 축소하고 있는중입니다. ======================         =====================법과 규칙은 사회적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혼란이 생기고, 그로 인해 질서가 무너져 모두가 불편하고 지어는 위험해진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일은 공동생활을 하는 인간사회의 필수불가결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법과 규칙을 잘 지키는 전제 조건은 우선 그 법과 규칙이 보다 과학적이고 보다 일관적이며 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통일된 올바른 규범이어야 하고 그로 하여 밝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준칙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필자는 한자어에만 국한되고 적용된 이른바 ‘두음 법칙’으로 인하여 형태를 걷잡을 수 없는 오자(誤字)와 와자(訛字), 와음(訛音)의 만연을 막자면 반드시 참담한 현실과 현상의 근원인 바로 왜곡 된, 불완정한 우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의 개념과 새김(주석・註釋)을 바로잡아 한자와 한자어는 곧 우리의 글과 말임을 인정하고 아울러 한자의 원래의 훈(訓)과 원래의 음(音) 내지 한자어의 원래의 형태를 지켜야 한다고 거듭 지적한다. 한국의 두음 법칙과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은 전 세계 한민족간의 우리말과 글의 통일을 이룸에 걸림돌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한국에서는 이른바 말썽 많은 ‘두음 법칙’과, 폐단만 갖고 있는 현행 ‘중국어 표기법’을 하루 속히 폐지하고 그 폐허 위에 8급, 9급 지진에도, 12급 태풍에도 끄떡없을 ‘겨레말과 겨레글의 맞춤법’이라는 기초를 박고 우리의 고운 말 바른 글로 크고 높은 집을 지어 우리말과 글이 건전히 발전하여 진정으로 우리 겨레말(한글・조선글)로 하여금 세계화의 국력신장(國力伸張)에서 일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당초 1930년으로부터 1933년 사이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 학회) 총회의 결의로『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이른바 ‘[ㄹ] 소리 버릇’이 ‘두음’이란 법으로 치닿기에 앞서, 즉 백흑이 전도 된 ‘두음법칙’을 내놓을 대신 오늘에 까지도 우리 발음에 힘든 [F] 소리 현상(순치성(脣齒聲)의 주음부호 [ㄈ]와 한어(漢語) 병음자모 [f]와 웨이드식 로마자 [F] 발음이 우리말 발음에 없는 현상을 검토하고 그에 해당된 음(자모음)을 첨가했더라면 청사죽백(靑史竹帛)에 길이 남을 업적으로 기리고 또 기리었을 것을, 어렵고도 긴 숙제로 남는, 오래 끌어 온 숙제를 풀지 못하는 유감을 남기며 본문을 마무리한다.
8    음운법칙과 어음 순화를 무시한 표기 규정 댓글:  조회:31411  추천:36  2011-04-02
                          음운법칙과 어음 순화를 무시한 표기 규정 역사적, 인문적, 민족적, 영토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시간과 공간적인 의미는 잠시 접어두고 다만 어음론(음성학)적 측면에서 풀어 보더라도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의 표기”와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기준과 규범은 우리말과 글의 음운법칙과 어음 순화를 무시한(비과학적) 규정으로서 천부당만부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음 순화에 앞서 어음변화 즉 음운변화를 간추려 알아본다. 음운변화란 음운 체계안의 어떤 음운 또는 그 체계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일을 일컫는다. 즉 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음운론상의 최소단위인 음소들이 모여서 음절을 이루고 나아가 단어를 형성하여 문장이 될 때 음소가 놓이는 자리에 따라 제약을 받거나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을 음운변화(어음변화) 또는 음운법칙(음운 대응 법칙)이라고 한다. 본문의 취지와 주제, 범위를 고려하여 본 장절에서는 우리말의 연음(음소가 인접한 음소와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음. 동화(同化), 탈락(脫落), 첨가(添加) 따위의 음운 현상)과 같은 음운변동에 대한 진술은 생략한다.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을 적는다. 제2항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제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다음 제3장 표기 세칙의 제7절 중국어의 표기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1항 성조는 구별하여 적지 아니한다. 제2항 ‘ㅈ, ㅉ, ㅊ’으로 표기되는 자음 뒤의 ‘ㅑ, ㅖ, ㅛ, ㅠ’ 음은 ‘ㅏ, ㅔ, ㅗ, ㅜ’로 적는다. 보다시피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제2항에는 위와 같이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현행 중국어의 한글표기는 ‘1음운 1기호’원칙이 아니며 가령 ‘1음운 1기호’원칙이라 하더라도 같은 한자문화권의 중국말과 글을 ‘주음부호-중국어 표음기호’와 ‘한어병음자모’, ‘웨이드식 로마자’ 즉 로마문자에 의한 웨이드식 한자음의 1음운을 우리글 1기호로 옮겨 적는다는 것이 과연 과학적일까, 우리의 음운법칙에 어울리고 우리의 어음 순화에 이로울까 의문이다. 본디 한 뿌리를 두고 있는 한자, 한문, 한자어가 인위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힘들게 교류하고 소통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외래어 표기는 중국 한자음과 웨이드식 한자음이 없는(적용되지 않는) 영어권에서는 1음운 1기호 원칙이 가능할 것이다. 먼저 “1음운 1기호 원칙”을 어기거나 무시한 실례를 들어본다. 지난 2008년 7월 12일 15시(한국시간) 한국의 국민의 중심채널에서 “중국−대만 59년 만에 열린 하늘 길”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송 되었다. 방송에서 나오는 공항명칭만 보더라도 ‘타오위안 국제공항’, ‘타이베이 국제공항’, ‘베이징 쇼우두 공항’이라는 자막과 함께 해당 공항 역명 화면과 해설이 수차 거듭 되었다. ‘타오위안’은 한문자로 ‘桃園’ 두자이고 발음은 ‘tao−yuan’이며, ‘타이베이’는 한문자로 ‘台北’ 두자이며 발음은 ‘tai−bei’이고, ‘베이징쇼우두’는 한문자로 ‘北京首都’ 넉자이며 발음은 ‘bei−jing−shou−du’이다. 한국에서는 ‘1음운 1기호’ 원칙이라며 ‘桃園’을 중국어의 한글표기로 ‘타오위안’이라고 한다. 음운(音韻)이란 우리말(한국어・조선어)에서는 뜻을 구별하여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이지만 한어(漢語)에서의 음운의 뜻은 우리글과 많이 다르다. 우리말의 음운은 음소(音素)에 가깝지만 한국에서 외래어로 취급하는 상기의 예로 ‘桃園’ 등 한문자의 음운은 음절(音節)에 가깝다. 한문자의 음운을 중국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音韻 漢字字音中聲、韻、調三要素的總稱。−『辭海』上海辭海出版社1979年板(下冊 제4665쪽) 즉 음운이란 한자(글자)의 음(자음・字音)가운데 성, 운, 조 삼 요소의 총칭이라는 것이다. 한문자 음운의 삼요소를 아래 필자가 만든 도표로 살펴본다.       성(소리-聲)           운(운-韻)                  조(고를-調) 성(소리-聲)     ① 성음(聲音). ② 성모(聲母). ③ 성조(聲調). 성모: 첫 음의 보조 음(輔音), 초성. ① 어음의 운모(韻母) ② 성모이외의 부분. ③ 성모(초성)와 개음(介音) 이외의 부분. 성조(聲調) ① 글소리의 높낮이; 음평, 양평, 상성, 거성, 경성 따위. ② 말과 낭독의 어조; 평(平),상(上), 거(去), 입(入) 사성 음운을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음(音)이란 넓은 의미에서 자음(字音) 즉 글자의 음−한문자를 읽는 소리를 일컫고 운(韻)이란 한문자에서의 음절에서 성모(聲母)를 제외한 부분을 이른다고 한다. 한어 음절의 앞부분을 제외한 중국어 음절의 뒷부분−운모(韻母)를 이른다고 한다. 즉 한자의 음(音)과 운(韻)을 아울러 이르는 말. 어두 자음은 음, 나머지 부분은 운이다. 위의 중국『사해(辭海)』의 주석에 따르거나 필자가 만들어 본 도표를 보더라도 한문자에서의 음운이란 성, 운, 조 삼 요소의 총칭이라는 것이다. 즉 한문자의 첫 음(초성)인 성모(聲母), 어음의 운모(韻母)(성모이외의 부분) 및 성조(聲調) 등을 한데 모은; 공식(公式)으로 풀어보면 성모+운모+성조라는 것이다. 위의 지명 ‘桃園’의 ‘園’자를 ‘1음운 1기호’로 하자면 한문자 ‘園’자의 발음 ‘yuan’의 성모 ‘y’ + 운모 ‘uan’ = ‘yuan’ + 상성(二聲)이 곧 한문자의 음운이다. 비교대조문법으로 음운학적인 각도에서 본다면 중국어의 음운은 어쩌면 우리글의 자음과 모음 및 발음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한문자 ‘園’을 ‘1음운 1기호’로 표기해야 한다면 한국의 현행 중국어의 한글표기 식으로 ‘위안(yu−an)’이라는 두 음절보다는 ‘원’이라는 전통 한자어를 취하지 않더라도 ‘왠’, 또는 ‘웬’이라는 한 음운, 한 음절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성모 ‘y’에 운모 ‘uan’의 첫 음소 ‘u’만을 취해 ‘y+u’라는, 완전히 다른 이른바 ‘위’라는 음운으로; 또 완정한 운모 ‘uan’에서 초성 ‘u’를 버리고 나머지 ‘an’만으로 이른바 ‘안’이라는 음운을 ‘위’ 뒤에 붙이어 ‘위안’이라는 두 음절로 만드는; 한문자를 이처럼 우리글로 옮기는 신조어(新造語) 실례는 고금에 드문 잘못된 방식이다. 때문에 필자는 중국어의 한글표기(외래어 표기)는 ‘1음운 1기호’로나 또는 ‘1음소 1기호’로나 모두 부당함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음소와 음운, 음절의 구별 및 ‘1음소 1기호’ 실례는 생략) 실은 ‘음운’이란 사람들이 같은 음이라고 생각하는 추상적인 소리이다. ‘음운’은 사람들의 관념에 따라 그 수가 달라질 수 있다. 예하면 중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기차의 기적소리, 닭울음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서도 판이하게 인식하고 표현하고 있다.(예문 생략) 중국인들의 ‘發展’의 첫 자 ‘發’, 음절로 ‘fa’에서 성모(聲母) ‘f’ 음을 한국인에게는 음절로는 ‘파’로, 첫 음(초성)은 ‘ㅍ’ 발음으로 들려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문자 ‘桃園’의 ‘園’자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들은 한문자 ‘園, 原, 元, 員, 院……’ 등을 한 음절 ‘yuan’으로 발음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위안’이라고 두 음절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음운은 웨이드식 한자음과 다르고 음절수 또한 같지 않다. 음운(음소)의 차이는 물론, 음절의 차이로 하여 ‘1음운 1기호 원칙’은 중국어의 한글 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는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는 규정을 한문자, 중국어에 적용한다는 자체가 크게 문제로 되고 있다고 본다. 웨이드식 한자음으로 중국어의 한글 표기를 하면 벌써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닦고 다져온 한문자와 우리 한자어의 전통적인 지름길을 버리고 생뚱스레 멀고 거친 로마문자를 에돌며 괜히 우리도, 남도 알쏭달쏭한 말로, 따져보면 사이비한 말로 옮기는 셈으로 된다. 필자는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표기의 기본 원칙에서 한문자는 ‘1음운 1기호(1문자)’ 표기원칙보다는 한문자 한 음절(1자)을 우리글 1기호로 표기할 것을 제의한다. 즉 중국어의 한글표기는 1음절 대 1기호(1音節對1記號)를 원칙으로 할 것을 간권한다. 물론 극히 개별적인 이중모음, 삼중모음과도 같은 복운모(複韻母) [ao, ou, ai, ei, iu, ui, iao……] 등과 같은 경우는 별도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중국어의 낱내・소리마디(음절)를 단위로 옮겨 적어야 말과 글속에 뜻하고 있는 음훈(音訓)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명 ‘桃園(tao−yuan)’을 1음절 1기호 원칙에 따르려면 ‘타오위안’이라는 넉자(4음절−7음소)보다는 현지 원음에 가까운 ‘토웬’, 또는 옛날 한어표기로 썼던 ‘톼왠’이라는 두자(2음절)가 마땅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주장은 그래도 우리 현대 한자어 그대로 [복숭아−도(桃)]에 [동산−원(園)]이라는 뜻을 머금은 ‘도원’이라고 옮김이 어떻게 봐도 오히려 ‘1음절 1기호’ 지킴의 기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방금 위의 예문에서 취급한 이른바 외래어 ‘桃園−타오위안’ 등의 뿌리는 우리 한자문화권의 한문자임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다음, 세계의 모든 외래어 표기법은 모두 다 현지발음에 준하도록 원칙을 정하지만 중국어에 대한 특별 조항인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제3항 제7절에서는 현지 발음−원지음을 중요시한다는 규정의 전제에 어긋남을 볼 수 있다. 중국의 현지 원음(원지음)을 따르려면 원래는 ‘쟝’ 또는 ‘쨩’으로 표기하고 발음되어야 할 것이 ‘장’으로만 표기되고 있다. 중국어 발음에 ‘姜, 江, 獎, 講, 降, 將, 疆, 僵……’해서 원음대로라면 ‘jiang−쟝, 쨩’으로 발음되는 한문자만 해도 수 십자나 된다. 우리 한자음으로는 ‘강, 장……’ 등등으로 매 한문자마다 형태와 정훈(正訓)을 바로 가려서 써왔지만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아무런 뜻도 없는 발음으로 만의 ‘장’이라는 한글자로 몰아서 써야만 하게 되어 있다. 해당 규정 “‘ㅈ, ㅉ, ㅊ’으로 표기되는 자음 뒤의 ‘ㅑ, ㅖ, ㅛ, ㅠ’ 음은 ‘ㅏ, ㅔ, ㅗ, ㅜ’로 적는다”는 기준으로 ‘신강(新彊−xin jiang−신쟝, 씬쨩)’은 ‘신장’으로 되어 중국어 현지원음도 아니며 우리 한자음도 아닌; 말을 하는 이(화자・話者)와 말을 듣는 이(청자・聽者) 및 그 말을 글로 적는 이(寫者)와 옮기(전달자・傳者)는 이들 모두에게 아리송한 이른바 신형의 외래어를 무더기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강남(江南−jiang nan−쟝난, 쨩난)이 ‘장난’으로 되고 ‘강택민(江澤民-jianh ze min)’이 ‘장쩌민’, ‘장저민’으로 성을 갈아 ‘장’씨성을 쓰게 되었다. 이 밖에 길 [장(長−chang−창)]자와 베풀 [장(張−zhang−짱)]은 위에서 실례를 든 ‘姜, 江, 講, 降……’자와 중국어 발음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웨이드식표기를 따른답시고 한글로는 ‘장’으로 표기하게 되어 있다. 아마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한글 자모음만으로는 중국어의 현지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인 모양이다. 현재 한국에서 쓰이는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은 1986년 1월 문교부가 고시한『외래어 표기법』제2장 표기 일람표, 표5의 “중국어의 주음부호와 한글 대조표”를 1991년에 수정한 것이다. 표기법을 보면 실제 중국어 발음과 큰 차이가 있다. 여기에 ‘최영애・김용옥의 중국어 표기법’과 ‘중국어 한글 표기 방안 연구’가 추가 발표되면서 중국어의 한글 표기는 더욱 혼선을 빚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에서 실례를 들었던 ‘桃園(tao−yuan)’의 마감 자의 한어 병음 ‘yuan’이다. ‘yuan’으로 발음된 한문자는 ‘原, 元, 員, 院, 源, 援, 遠, 園, 媛, 願, 怨, 苑, 猿, 寃, 鴛……’ 등 부지기수이다. 중국어 발음은 ‘原, 元……−yuan−웬’으로 나지만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으로 읽으면 ‘위안’으로 발음돼 중국인도 알아듣지 못한다. 문제의 근원은 한국의 외래어 표기의 ‘1음운 1기호’ 원칙밖에도 또 한 규정인 ‘한글 대조표’에 있다.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중국어의 주음부호와 한글 대조표” ‘표 5’에서는 결합운모(結合韻母) 촬구류(撮口類)의 주음부호 ‘ㄩㄢ’와 한어병음자모 ‘yuan’과 웨이드식 로마자 ‘yün’은 한글로 ‘위안’으로 표기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대조표’를 보면 틀과 골격으로 이미 중국어 ‘yuan−原, 元, 員, 院……’을 한글로는 반드시 ‘위안’으로만 표기하고 발음해야 한다는 규정이 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으로 중국어 ‘委員(위원)’, ‘支援(지원)’, ‘志願(지원)’ ‘病院(병원)’, ‘學園(학원)’, ‘鴛鴦(원앙)’, ‘原來(원래)’ 등과 같은 단어의 ‘원’의 중국어 병음발음 (yuan)’은 모두다 ‘위안’으로 한다면 ‘委員’은 ‘워이위안’으로, ‘支援’은 ‘즈위안’으로, ‘志願’도 ‘즈위안’으로, ‘病院’은 ‘빙위안’으로, ‘學園’은 ‘쉐위안’으로, ‘鴛鴦’은 ‘위안양’으로, ‘原來’는 ‘위안라이’로 표기하고 발음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이니 그런대로 참고 견디라고 ‘위안’하고 싶지만 눈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임에 얼마나 ‘위안’되며 또한 이러한 현상이 얼마나 오래 가랴 싶다.(본문의 ‘1음운 1기호 원칙’을 반대하는 필자의 주장 참조) 한문자 ‘元(yuan)’이 [훈음 으뜸 원]으로부터 ‘위안’으로 둔갑되니 중국 화폐 단위 ‘元’ 아래 ‘角(jiao)’도 수백 년간 줄곧 [훈음 뿔 각]이던 것이 이제부터 우리말과 글로는 ‘자오’로, ‘角’ 아래 화폐 단위 ‘分(fen)’도 줄곧 [훈음 나눌 분]이던 것이 이제부터는 우리말과 글로 분분히 ‘펀’으로; 모두 눈을 펀히 뜨고 체계 없고 두서없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덩달아 따라야 한다.(『표준국어 대사전』참조) 언어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대안을 마련해 풀어나가는 것이 이치다. 중국어의 한글 표기가 혼란을 겪는 이유는 중국어를 ‘한국어식 표기법’이나 ‘영어식 표기법’으로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제일 긴 하천인 ‘장강(長江)’이란 단어를 보자.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창장・창쟝(長江)’보다는 ‘양쯔장(揚子江)’으로 쓴다. 이것이 한국식 표현이다. 그러나 중국인들 가운데 90% 이상이 ‘양쯔장’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長江’의 발음을 살펴보면 長은 한어 병음 ‘chang 2성’이고 江은 ‘jiang 1성’이다. 소리 나는 대로의 정확한 한글 표기는 ‘창쨩’이 더 가깝다. 그러나『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의 주음부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르면 ‘ㅉ’이 음이 세고 듣기나 쓰기에 익숙하지 않다며 ‘jiang 1성’을 ‘쨩’으로 표기하지 않고 ‘쟝’도 아닌 ‘장’으로만 표기한다. 예로 ‘炸醬麵/炸酱面−zhajiangmian−짜쟝몐’이 ‘짜장맨’, ‘짜장면’을 거쳐 지금의 ‘자장면’으 바뀌었다. 한국어에서는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는 소리가 없기 때문에 다만 ‘자, 저, 조, 주, 차, 처, 초, 추’로 발음된다고 한다. (실은 훈민정음에서 온 우리글은 세계문자 가운데서도 가장 독창적인 글자이며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다. 글자를 구성하는 자음과 모음의 수가 적고 간편하여 배우기가 쉬우며, 그러면서도 1만 2천 768자의 소리값을 가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로서 세계에서 으뜸으로 가는, 인류문자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는 가장 훌륭하고 우수한 문자이다. 본문에서 진술을 생략) 이로 말미암아 ‘주스’의 원음은 ‘juice’이지만 ‘쥬스’의 ‘ㅠ’ 발음을 쓰지 않고 ‘주스’라고 하듯이 ‘江−jiang’의 발음이 ‘쟝’에 가깝지만 ‘ㅑ’음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蔣介石(장개석)−jiang−jie−shi’이 ‘쟝졔스’가 아닌 어색한 ‘장제스’가 된다.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는 소리가 없어 ‘자, 저, 조, 주, 차, 처, 초, 추’로 발음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현시대에 꼭 필요 되지도 않는 [옌], [볜], [뎬], [톈], [롄], [룽], [뤄], [뤼]와 같은 발음은 어찌하여 억지로 무더기로 만드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실은 아무리 된소리와 거센 발음을 허용한다고 한들 ‘長江’을 ‘창장’으로, ‘창쟝’으로, ‘창쨩’으로 하고 ‘延邊’을 ‘옌볜’으로, ‘옌뼨’으로, 또는 ‘얜뱬’으로 별난 소리로 맞추어 보아도 ‘長江’은 그래도 우리 한자어로 ‘장강’으로, ‘延邊’은 여전히 우리 한자어로 ‘연변’으로 표기하고 발음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미 우리말과 우리글로 갈고 다듬어 습관 되고 굳어진 한자어로 익숙하게 명명된 지명, 인명과 산, 강, 호수의 명칭은 반드시 관용을 존중할 것을 권고한다. 중국어에도 한글의 모음 ‘ㅘ’나 ‘ㅝ’와 마찬가지로 ‘ㅗ’와 ‘ㅏ’를 동시에 발음하여 한 음절로 소리가 나는 것들이 있다. 예하면 작을 소(小)자를 한글로 표기하면 ‘샤오’라는 두 음절로 된다. 하지만 중국어에는 ‘ㅅ’와 ‘ㅑ’, ‘ㅗ’를 동시에 발음하는 것을 한 음절(xiao−小)로 표기할 수 있는 기호가 있다. 중국어의 한음절의 단어가 한글의 두 음절 내지 그보다 더 많은 음절로 표기되고 있다. 예하면 ‘毛(모)’가 ‘마오’로, ‘周(주)’가 ‘저우’로, ‘來(래)’가 ‘라이’로 표기되어 원래는 한문자나 한자 모두가 한 음절이던 것이 한글에서는 음절도, 그 뜻도 파괴되고 있다. 때문에 중국어표기를 1문자 1음절로 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에 우리 한자, 한자어 내지 정음자가 전대미문의 피해를 입고 재난을 당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어를 모르는 대다수의 한국인뿐만 아니라 정작 중국인이 보고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지금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이다. 중국의 현지 한문자 발음을 중시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져 버린 것이다. 중국어 병음 발음을 우리글과 말로 그대로 옮기려는 그 자체가 음성학(어음학)이나 음의학(音義學) 견지에서 볼 때 과학적이 못된다. 필자가 강조하는 비과학적이라는 범위는 우리말과 우리글에 이미 굳어져 오랜 세월 우리의 것으로 익히 써오던 우리 한자어 단어를 오늘에 와서 중국 현지 음에 준한다면서 음소체계로부터 음운 및 음절문자 내지 형태소를 무시하고 다만 중국어 병음 발음만을 따르려는 한문자에 한해서일 뿐이다.(꼭 받아들여야 할 외래어는 다른 장에서 별론) 한문자를 중국어 발음(병음 발음)에 따라 한글로 적는다면 우선 어음법칙을 어기어 단음절어로 된 한자가 두, 세 개 음절로 나뉘질 뿐만 아니라 품고 있던 뜻도 잃어버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성조(聲調−음절 안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높낮이. 단어의 뜻을 분화하는 변별적 기능을 가진 중국어 사성)를 가를 수 없어 한자어도 아니요 고유어도 아니며 더구나 외래어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닌 언어의 기능을 잃게 된다. 여기서 잠시 우리말 음운법칙과 어음 순화의 준칙여부는 뒤로 미루고 단순히 ‘중국어 표기법’의 발음 한 가지만 따져보아도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원칙의 폐단을 무더기로 찾을 수가 있다. 예하면 송화강(松花江)을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숭화장 강’으로 표기해야 한다. 소나무 송(松), 꽃 화(花), 강 강(江)자 해서 소나무꽃향기로 그윽한 강이라는 아름다운 ‘송화강’이라는 이름을 수백 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외래어 표기법』이 ‘숭화장 강’이라는 낯선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 『국어 대사전』(2006)의 2363쪽에는 ‘송화강’이 낱말 ‘쑹화 강’으로 올랐다. 그 주석을 옮겨보면: 쑹화 강: ……천지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흐르고, 후이파 강(輝發河)・이퉁 강(伊通河), 넌장(嫩江)강・후란 강(呼蘭河) 등과 합류하여 헤이룽 강(黑龍江)에 합류함. 사전에서는 낱말 ‘송화강’의 풀이 한 단락에서만도 ‘송화강’이 ‘쑹화 강’으로, ‘휘발하’가 ‘후이파 강’으로, ‘이통하’가 ‘이퉁 강’으로, ‘눈강’이 ‘넌장강’으로, ‘호란하’가 ‘후란 강’으로, ‘흑룡강’은 ‘헤이룽 강’ 이렇게 수많은 하천이 한국인한테는 서툴고 중국인들은 못 알아들을, 내게도 네게도 무용한 이름들로 둔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제4장, 제3절의 제4항의 “한자 사용 지역(일본, 중국)의 지명이 하나의 한자로 되어 있을 경우, ‘강’, ‘산’, ‘호’, ‘섬’ 등은 겹쳐 적는다”는 규정과 제5항의 “지명이 산맥, 산, 강 등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은 ‘산맥’, ‘산’, ‘강’ 등을 겹쳐 적는다”는 규정을 좇아 지명이 하나의 한자로 되어 있을 경우, “……강 등은 겹쳐 적는다”는 제3절의 제4항 해당 조목에 따라 강이름 ‘嫩江’이 ‘넌장 강’, ‘長江’은 ‘창장 강’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명이 “……강 등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은…… ‘강’ 등을 겹쳐 적는다”는 제3절 제5항의 해당 조목에 따라 ‘黑龍江’은 ‘헤이룽쟝’이 아니고 ‘헤이룽 강’이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명이……강 등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은……‘강’ 등을 겹쳐 적는다”는 조목을 더 철저히 따르려면 위의 사전풀이마냥 ‘嫩江’을 ‘넌장 강’이라고 한 것처럼 ‘黑龍江’을 ‘헤이룽 강’이라고 보다는 ‘헤이룽장 강’이라고 표현을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제4장, 제3절의 제4항에서는 ‘한자 사용 지역(일본, 중국)’이라는 전제(前提)가 있지만 제3절 제5항에는 그 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기에 통상 같은 장(章)과 절(節)에서는 특정(특설)된 기준이나 설명이 없을 경우 전후 장절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제4장, 제3절의 제4항과 제5항의 표기방식(표현방법)은 영어식 표현 방법이다. ‘長江’을 실례로 든다면 영어에서는 ‘chang jiang river’라고 표현한다. 이는 중국어 ‘長江(장강)’을 ‘江’자 까지 녹아 붙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보고 거기에 [흐름] 또는 [시내]라는 뜻으로의 ‘river’를 붙였기 때문이다. 영어에서의 ‘river’는 ①강, 하천 ②(물 이외의 것의) 흐름 ③대량의 유출, 다량의 액체,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이 문맥에서의 ‘river’는 분명히 강이나 하천을 뜻하는 것이다.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은 이런 표현으로 인해 중국어의 한글 표기에 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로 하여 본문 위의 장절에서 언급된 ‘해남도(海南島)’를 ‘하이난도 섬’, ‘대만도(臺灣島)’를 ‘타이완도 섬’, ‘서사군도(西沙群島)’를 ‘시사치윈도 섬’, ‘태산(泰山)’을 ‘타이산 산’, ‘장강(長江)’을 ‘창장 강’, ‘태호(太湖)’를 ‘타이후 호’, ‘백산(白山)’을 ‘바이산 산’이라고 부르고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두만강’은 ‘투먼장 강’으로, ‘천지’는 ‘텐츠 호’ 또는 ‘톈츠 호’로 둔갑하다 못해 육갑 떨게 될 일만 남았다. 전형적인 한국식의 신조어이다. 단어마다 외래어와 한자어가 결합된 합성어이고 외래어에서 못다 한 해석(설명, 보충)을 뒤따라 붙은 한자어가 군더더기 식으로 감당하고 있다. 외래어에 꼭 한자어가 붙어 신식 합성어를 이루는 신기한 신조어라 하겠다.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의 표기”와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가 낳은 외래어+한자어는 쌍둥이 기형아임이 틀림없다. 이제 앞으로 기형아가 다시 기형아를 낳는다면 과연 그 가족과 가문의 장래가 얼마나 오래 가랴! 인명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모택동(毛澤東)’을 ‘마오쩌둥’이라 하는데 터럭 ‘모(毛)’의 중국어 병음 발음은 ‘mao’로서 ‘마오’보다는 ‘모’가 원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모택동’의 ‘동(東)’자는 ‘둥’으로, ‘동북(東北)’도 ‘둥베이’라고 하는데 동녘 ‘동(東)’자의 중국의 현지 발음은 [둥]이라는 음보다는 원음 ‘dong’에 가까운 [뚱]이 더 근접하다고 할 수 있다. ‘故宮(고궁)’을 ‘구궁’보다는 ‘gugong’[꾸꿍]이 더 옳다고 해야겠다. 마찬가지로 ‘대련(大連)’을 ‘다롄’, ‘대경(大慶)’을 ‘다칭’이라고 표기하는데 클 대(大)자의 중국어 발음은 [다]가 아니라 ‘da’에 가까운 [따]라는 발음이 더 근접하다. 하지만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현행 제1장 제4항의 규정에 따라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목이 취소되기 전에는 ‘ㄲ, ㄸ, ㅃ……’와 같은 음이 허용되지 않아 아무리 중국 현지 발음에 접근하려 해도 어렵게 되어 있다. 이 또한 인위적인 장애가 아닐 수 없다. 대충 중국의 지명 몇 곳의 한국식 발음과 중국에서의 현지 발음(원음)을 대조해 보면 북경(北京)은 베이징보다는 베이찡/뻬이찡으로, 상해(上海)는 상하이보다는 쌍하이로, 연변(延邊)은 옌볜보다는 옌뼨, 또는 얜뺀으로, 심양(瀋陽)을 선양보다는 썬양으로 발음하는 것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어(漢語)에 된소리와 순한 소리의 구별이 별로 없지만 현지 한어발음을 감안하여 한마디 덧붙일 뿐이다. 하지만 ‘심양(瀋陽)’을 ‘선양’이라고 하든 ‘썬양’이라고 하든 아니면 ‘센양’, ‘써냥’, ‘션양’, ‘셴양’이라 하든 아니면 ‘세이양’이라 하든 한문자 ‘沈陽 Shen−Yang’이라는 단어에 성조(聲調)는 그만 두고라도 우선 중국어 원음에 접근하기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한문자 [沈]자의 음, Shen에서도 Sh(ㅅ)의 발음은 혀를 말아 내는 소리, 즉 권설음이기 때문에 중국인이나 전문 외국어(중국어)공부를 하지 않은 한국 사람이 발음하기에는 아주 어렵다. 어려운 발음도 문제려니와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해당 조목이 현지음(원지음) 주장에 더 무서운 장애로 되어 있어 실로『외래어 표기법』은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실은 우리말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자랑스러운 표음문자와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인 우리한자의 장점을 갖고 있다. 음운이론의 기초위에 만들어진 우리의 말과 글은 닿소리(자음) 14자와 홀소리(모음) 10자를 조합하면 중국어를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 말 뿐만 아니라 세상의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정서, 정감까지 재치 있고 슬기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훌륭한 우리의 말과 글이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에서 인위적으로 정한 제한과 규제로 말미암아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토록 현지 음(원지음)을 강조한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중국어 표기법에 ‘ㅈ, ㅉ, ㅊ’으로 표기되는 자음 뒤의 ‘ㅑ, ㅖ, ㅛ, ㅠ’ 음은 물론, ‘져, 챠, 쳐, 쵸, 츄’와 ‘ㄲ, ㄸ, ㅃ, ㅆ, ㅉ’와 같은 된소리 표기를 허용, 인정, 적용토록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면 자연히 毛澤東(모택동), 東北(동북), 大連(대련), 故宮(고궁), 北京(북경), 上海(상해), 延邊(연변)과 같은 인명, 지명의 발음이 위의 실례에서처럼 너무 어색하고 서글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4년 12월 30일자로 한국 문화관광부에서는 동남아시아 3개 언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타이어는 ‘ㄲ, ㄸ, ㅃ, ㅉ’, 베트남어는 ‘ㄲ, ㄸ, ㅃ, ㅆ, ㅉ’와 같은 된소리 표기를 허용하면서 중국어 표기법에는 아무런 수정을 하지 않았다. 이른바 중국어 표기법에서만은 파열음 표기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외래어 표기법』원칙을 굳게 지키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는 듯싶다. 하지만 이로 하여 중국어를 잘 모르는 대다수의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사는 조선민족 내지 순 토착 중국인이 듣고도 오리무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지금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이다. 본토 중국어의 발음(원음)을 기준으로 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하긴 된소리 몇 개를 더 넣어 수정을 하기보다는『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를 철저히 개혁하다 보면 중국의 지명, 인명 표기의 관련 조목을 폐지하는 것이 추세이고 또한 더 바람직하오니 좀 더 기다리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을는지도 모르겠다. 거듭 언급하지만 명종기주(名從其主)원칙이 국제통용 관례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관건은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외국어 과목으로 선정된 영어나 일본어, 독일어, 러시아어를 전문 전공하는 것과 다르고 또한 소수민족 언어를 학습하는 것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관건은 한자권(漢字圈), 한문자권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언어와 구별이 되는 문제의 핵심이다. 필자는 모택동, 동북, 대련, 고궁, 북경, 상해, 연변, 송화강, 흑룡강과 같은 인명, 지명과 하천 명을 우리글로 표기해야 할 시에는 계속 우리한자나 우리 한자어 관용을 적용하고 발음하며 중국어로서의 毛澤東, 東北, 大連, 故宮, 北京, 上海, 延邊, 松花江, 黑龍江과 같은 인명, 지명 내지 하천명은 일그러지고 서툰 외래어로서가 아니라 익은 외국어로 다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글은 음소 문자이면서도 낱글자를 음절 단위로 네모지게 모아씀으로써 음절문자의 효과를 낸다. 세종대왕을 위시한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겨레한자 한 음절과 한문한자 한 음절이 일대일로, 1자 1음으로 대응되면서 한자가 개입될 여지를 충분하고 충만하게 만들었다. 이는 우리 한자음을 중국 한문자음에 가깝게 고치고 싶다는 욕망의 실현일 것이다. 비록 고유명사의 경우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의 대원칙이라지만 한자문화권에서 한자어와 우리 한자음을 버리고 정음자로 중국 고유명사를 중국의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는데 있어 겪는 혼란은 훈민정음 창제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관습(관용)에 위배되고 또한 우리의 전통 습관과 버성기고 있다. 필자는 지금 우리가 익히 쓰고 있는 우리 한자음 역시 한자를 처음 받아들여 한자어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그 초창 때는 분명히 그 때의 중국의 현지 발음을 많이 본 땄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北京’이 중고에는 ‘ㅂ+아래 ㅏ+ㅇ’이라는 발음으로부터 중고 후기에 와서는 ‘북경’으로, 근대에 와서는 ‘베이깅’으로 발음되다가 당대에 와서는 ‘베이징’으로 변화되고; 근대시기의 구개음화를 거쳐 오늘의 ‘천지’도 처음 ‘天地’가 ‘텬지’→‘쳔지’→‘천지’로 형태소 내부의 바뀜 현상이 끝나는 단계다. 필자의 주장이라면 이미 오랜 세월 익히 써오며 우리의 것으로 정착되고 오늘의 음으로 굳어지어 우리의 현대 한자음으로 표기하게 된 한자와 한자어를 버려서는 아니 되거니와 그에 따른 어음 법칙을 어기어서는 더구나 아니 된다는 것이다. 아래, 어음 법칙을 어기어 단음절어로 된 한자가 두, 세 개 음절로 나누어질 뿐만 아니라 품고 있던 뜻도 잃어버리게 된 실례다. 예: ‘내(內)’가 ‘네이’로, ‘상해(上海)’를 ‘상하이’로, ‘초당(草堂)’을 ‘차오당’으로 위의 예문에서 보다시피 안, 또는 속이라는 뜻으로의 ‘내(內)’라는 한자어가 원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네이’라는 두 음으로 변한다. 섬이라는 뜻으로의 ‘도(島)’를 ‘다+오’라고 한다고 해서, 다락 ‘루(樓)’를 ‘러+우’로, 북녘 ‘북(北)’을 ‘베+이’라고 한다고 해서, ‘원예박람원’이 ‘위+안+이+보+란+위+안’으로 고쳐 부른다고 해서 본 뜻은커녕 중국어 사성성조(聲調)를 따를 수 없는 데다 한자와 정음자의 절음법칙, 두음법칙, 말음법칙, 연음법칙이 무시되어 중국어도 아니요 한국어도 아닌 사이비한 말이 되고 만다. 한문자, 한자, 한자어는 단음절어의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어근, 어간의 근저어(根底語) 작용을 부인할 수 없기에 한문자를 외래어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렵다는 다른 한 원인도 있거니와 황차 많은 한문자는 우리가 벌써 우리글로 받아들여 익히 쓰는 우리 문자이기에 오늘 우리글을 남의 글로 취급하고 외래어 범위로 넣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중국어 병음 발음으로 지명, 인명을 표기하고 그대로 읽고 쓰면 그 나라, 그 고장의 말과 비슷하게 가까워져 의사소통과 문화 교류에 이로울 것 같지만 실은 중국어에는 사성성조(聲調)뿐만 아니라 한국어・조선어 자음과 모음에 없는 발음이 있어 한국식으로 중국어 병음 발음을 하면 오히려 어색하거나 교류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예: 화국봉(華國峰)→파아궈펑→화아궈펑/훠구어펑? 풍만발전소(豊滿發電所) →펑만파아덴숴? 복건성(福建省) →푸젠성? 위의 예문에서 峰(feng)자와 豊(feng)자, 福(fu)자의 초성 [F] 음, 發(fa)자의 첫 음 [F] 같은 발음은 한국인이 전문 외국어를 배우듯이 중국어 병음(漢語拼音)을 전공해도 바로 장악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제2장 표기 일람표, 표5의 “중국어의 주음부호와 한글 대조표”를 보면 한글 자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ㅈ, ㅊ, ㅋ, ㅌ, ㅍ, ㅎ’ 등 13자가 한어 병음자모 ‘b, p, m, f, d, t, n, l, g, k, h, j, q, x’ 등 14자의 음을 감당하고 있다. 바꾸어 풀어보면 한글의 어느 자음 한자가 한어 병음자모의 두 음의 역할을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간 한국어 자음체계와 중국어의 성모를 살펴본다. 1.한국어 자음체계 1). 한국어 19 자음 중 ‘ㅎ’은 [+막음, -고정자리]로 따로 분리하여 조직에서 일단 빼놓고 나머지 18 자음의 조직을 아래와 같이 구성한다. 18 자음은 ‘장애’의 있음 -없음으로 ‘장애음’[+(막음, 고정자리, 장애)]과 ‘향음’[+(막음, 고정자리), -장애]으로 크게 나뉜다. 2). 장애음의 조직: 장애음을 분화하는 조건은 자리와 공깃길과 내는 힘 이 세 가지인데 자리는 입술[+입술]: 혀끝(앞혀)[-(입술, 뒤혀)]: 뒤혀[+뒤혀]로 대립하며, 방법은 터짐[+터짐]:붙갈이[+(터짐, 갈이)]:갈이[갈이]로 대립하며, 내는 힘은 약한[-(된, 거센)]: 된[+된]: 거센[+거센]으로 대립한다. 이러한 변별적 대립으로 장애음 체계를 만들면: /ㅂ/: [+터짐],[-(된, 거센)],[+입술] /ㅃ/: [+터짐][+된][+입술] /ㅍ/: [+터짐][+거센][+입술] /ㄷ/: [+터짐][-(된,거센)][-(입술, 뒤혀)] /ㄸ/: [+터짐][+된][-(입술, 뒤혀)] /ㅌ/: [+터짐][+거센][-(입술, 뒤혀)] /ㄱ/: [+터짐][-(된, 거센)][+뒤혀] /ㄲ/: [+터짐][+된][+뒤혀] /ㅋ/: [+터짐][+거센][+뒤혀] /ㅈ/: [+(터짐, 갈이)][-(된, 거센)][-(입술, 뒤혀)] /ㅉ/: [+(터짐, 갈이)][+된][-(입술, 뒤혀)] /ㅊ/: [+(터짐, 갈이)][+거센][-(입술, 뒤혀)] /ㅅ/: [+갈이][-(된)]/ㅆ/:[+갈이][+된] 3). 향음의 조직: 향음은 자리와 방법으로 분화되는데 자리는 장애음과 같고, 방법은 코로[+코로]:흐름[-코로]으로 대립한다. /ㅁ/:[+코로][+입술] /ㄴ/:[+코로][-(입술, 뒤혀)] /ㅇ/:[+코로][+뒤혀] /ㄹ/:[-코로][-(입술, 뒤혀)] 위의 자음체계를 다시 발음부위에 따라 살펴본다면: 양순음 /ㅂ/, /ㅍ/, /ㅃ/, /ㅁ/ 치경음 /ㄷ/, /ㅌ/, /ㄸ/, /ㄴ/ -혀끝, 잇몸 경구개음 /ㅅ/, /ㅆ/: -혀끝, 경구개 경구개음/ㅈ/, /ㅊ/, /ㅉ/ -혀끝, 경구개 경구개음/ㄹ/ -앞혓바닥, 센입천장 경구개음/ㅎ/ -뒤센입천장 연구개음 /ㄱ/, /ㅋ/, /ㄲ/ -뒤혀, 여린 입천장 연구개음/ㅇ/ -여린 입천장 2. 중국어 성모(聲母) 1). 발음부위에 따라 양순음(双脣) b[p] p[p’] m[m] 순치음(脣齒) f[f] 혀끝소리(舌尖前) z[ʦ] c[ʦ’] s[s] 혀끝소리(舌尖中) d[t] t[t’] n[n] l[l] 혀끝소리(舌尖后) zh[ʦ] ch[ʦ’] sh[ʂ] r[ʐ] 혀바닥소리(舌面) j[ʨ] q[ʨ’] x[ɕ] 혀뿌리소리(舌根) g[k] k[k’] h[x] 2). 발음방법에 따라 ①. 장애방식에 따라: 파열음(터짐): b[p] p[p’] d[t] t[t’] g[k] k[k’] 파찰음(붙갈이-터짐, 갈이): j[ʨ] q[ʨ’] zh[tʂ] ch[tʂ’] z[ʦ] c[ʦ’] 마찰음(갈이): f[f] h[x] x[ɕ] sh[ʂ] r[ʐ] s[s] 비음(콧소리): m[m] n[n] 설측음(혀옆소리): ㅣ[ㅣ] ②. 기의 강약에 따라: (이 음은 파열음과 파찰음에만 한정됨) 송기음(送氣音)(파열음이나 파찰음을 발음할 때 내보내는 기류가 비교적강함): p, t, k, q, ch, c 약송기음(弱送氣音・不送氣音)(파열음이나 파찰음을 발음할 때 내보내는 기류가 비교적 약함): b, d, g, j, zh, z 아래 한국어와 국제음성기호를 대조해 본다.(19자음) ㄱ[k] ㄷ[t] ㅂ[p] ㅈ[ʧ] ㅅ[s] ㅇ[ɳ] ㅎ[h] ㄴ[n] ㄹ[l] ㅁ[m] ㄲ[k’] ㄸ[t’] ㅃ[p’] ㅉ[ʧ’] ㅆ[s’] ㅋ[kh] ㅌ[th] ㅍ[ph] ㅊ[ʧh] 한국어 자음은 [기]의 유무에 따라 순한소리와 거센소리로 나뉘고, [후두켕김]의 유무에 따라 순한소리와 된소리로 나뉜다. [-기,-켕김] ㅂ ㄷ ㄱ ㅈ ㅅ [+켕김] ㅃ ㄸ ㄲ ㅉ ㅆ [+기] ㅍ ㅌ ㅋ ㅊ 다시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의 주음 부호와 한글 대조표”를 보자. 성모(聲母) 중 순성(重脣聲)의 주음부호 [ㄆ]와 한어 병음자모 [P], 웨이드식 로마자 [P‘]는 한글 [ㅍ]으로 표기한다고 규정이 되어 있음에도 순치성(脣齒聲)의 주음부호 [ㄈ]와 한어 병음자모 [F]와 웨이드식 로마자 [F]도 마찬가지로 한글 [ㅍ]으로 표기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한글 음에는 한어 병음자모 양순음 [P]와 순치음 [F] 두 음 가운데 어느 한 음이 없거나 어렵다는 것, 그래서 한어 병음자모 [P]와 [F]를 한글에서는 모두 [ㅍ] 하나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소견에는 한어 병음자모 [P]가 한글・조선글의 [ㅍ]의 음과 근사한 점을 감안하면 중국어 성모 마찰음(갈이소리)・순치음(이입술소리・치순음)에 해당한 f [f] 음, 즉 한어(漢語) 병음자모 [F]에 해당되는 한글 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어 자음체계의 장애음 분화 조건으로 볼 때 자리와 방법, 내는 힘에 따라 [ㅍ]의 음은 /ㅂ/, /ㅃ/, /ㄷ/, /ㄸ/, /ㅌ/, /ㄱ/, /ㄲ/, /ㅋ/, /ㅈ/와 마찬가지로 [+(터짐]을 같이 하면서도 [된], [뒤혀], [갈이], [코로] 등에 [+-]이 없이 다만 [+터짐][+거센][+입술]만을 이루고 있다. 다음 발음부위에 따라 분류해 보면 [ㅍ] 소리는 /ㅂ/, /ㅍ/, /ㅃ/, /ㅁ/ 소리와 함께 양순음이고 발음의 장애방식에 따라 보면 [ㅍ] 소리는 파열음(닫음소리・정지음・터짐소리・폐색음・폐쇄음)이다. 하지만 한어 병음자모 [F] 음은 발음방법에 따르면 h[x] x[ɕ] sh[ʂ] r[ʐ] s[s]와 함께 마찰음(갈이)이며 발음부위에 따르면 순치음이다. [ㅍ] 음은 양순음이고 파열음이다. [F] 음은 순치음이고 마찰음이다. 한국어 자음 양순음 [ㅍ] 소리는 중국어 성모 양순음 b[p] p[p’] 등 소리에만 해당될 뿐 순치음 [F] 음과는 거리가 멀다. 이로부터 한글 양순음 [ㅍ]의 음과 중국어(한어) 순치음 [F] 음은 서로 같지 않은, 한데 묶을 수 없는 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두 입술 사이에서 나는 소리, 순성・순음・순중음・입술소리인 양순음(兩脣音)과 아랫입술과 윗니 사이에서 나는 소리, 순치성・이입술소리・치순음인 순치성(脣齒音)은 성질이 다른 두 가지 음이다. 순치음은 다만 영어나 중국어 성모(한어 병음)의 [v], [f] 따위 발음에서만 있을 뿐이다. 파열음인 [ㅍ] 소리는 마찰음의 성질도 함께 갖고 있는 파찰음(破擦音)의 기능도 없고 더구나 양순음의 [b], [p] 발음이나 순치음 [f] 발음의 변이음(變異音)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말(한글・조선글) 발음에 순치성(脣齒聲)의 주음부호 [ㄈ]와 한어 병음자모 [f]와 웨이드식 로마자 [F] 발음이 없는 현상, [F] 발음과 근사(해당)한 자음과 모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의 표현력은 중국어를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 말 뿐만 아니라 자연의 “바람소리, 천둥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다”고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자부했었지만, 그리고 무려 1만 2천 768자의 소리값을 가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로서 세계에서 으뜸으로 가는, 인류문자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는 가장 훌륭하고 우수한 문자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부득불 우리글과 우리말과 글에 웨이드식 로마자 [F] 발음이 없음을 유감으로 자인(自認)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중국어뿐만 아니라 모든 외래어의 [F] 발음을 한국어・조선어로 받아들일 때, 즉 외래어 표기로 옮길 때 큰 문제로 되고 있다. 한어 병음 [f] 발음과 같은 아직 풀지 못한 문제를, 숙제로 남아있는 문제(모순)를 우리말글살이의 규범으로 적용하거나 규정으로 강요함은 장래의 더 큰 문제를 야기(惹起)시킬 수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한글의 자모를 40개로 막아놓고 그 이외의 글자는 한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제한된 글자(자모)의 종류가 빌린 말 표기(외래어표기)를 잘 할리 만무하다. 한글 자모를 40개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예를 들면 국제음성기호의 [b], [v]를 우리글 [ㅂ] 한 가지로, 국제음성기호의 [f], [p]를 우리글 [ㅍ] 한 가지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실은 국제음성기호의 [f], [v], [l], [ð], [Ɵ]의 소리글자만 있으면 영어를 포함한 모든 외국어 발음을 95%까지 올바르게 표달(表達)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극히 중요한 것은 이에 가까운 발음과 문자들이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로 필자는 중국어(한어) 병음 자모 [f]를 앞세운 단어나 단어음절, 또는 단어사이에 [f]음을 한자어(한글・조선어)로 바로 표기해야 함은 한국・조선의 외래어 표기에 어려운 숙제로 뿐만이 아니라 560여 년 전의 훈민정음의 원음가운데 국제음성기호의 [f], [v], [l], [ð], [Ɵ] 등 음에 가까운 자모음을 찾아 새로이 밝혀 오늘에 응용해야 함이 더더욱 십분 중대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본다.(훈민정음” 참조) 이외에 우리 음, 우리말 음운대응법칙, 우리말 어음습관에도 없고 음운상통(音韻相通)과 음운첨가(音韻添加), 또는 음운동화현상도 아닌 중국의 지명 ‘옌지(延吉)’의 [옌], ‘옌볜(延邊)’의 [볜], ‘지우뎬(酒店)’의 [뎬], ‘톈츠(天池)’의 [톈], ‘롄윈강(連雲港)’의 [롄], ‘젠다오(間島)’의 [젠]과 같은 음과 글은 전에 없는 생뚱맞는 글자여서 발성, 발음부터 너무 어렵고 글자꼴도 너무 어색하다. 한글 맞춤법의 “제1장 총칙”의 제1항에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비록 외래어는『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고 하지만 그『외래어 표기법』이 우리 어문 어법을 무시하여 한글(조선글)과 한국어(조선어)를 망쳐버리도록 방관하거나 묵과해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외래어도 한국어・조선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반드시(필히) 한글・조선글의 표기 규범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 [옌지], [옌볜], [지우뎬], [톈츠], [롄윈강]과 같은 음은 음운 교체는 고사하고 형태소(形態素)를 떠나서 단지 음절, 음성과 음운, 음소만으로도 우리 음과 너무 먼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옌], [볜], [뎬], [톈], [롄] 등등 글자에서 우리는 매자마다에 [ㅖ]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음 [ㅖ]는 한글・조선글 자모의 [ㅕ]와 [ㅣ]의 합한 글자이며, 모음의 하나로서 [ㅣ]와 [ㅔ]의 복모음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중국어의 표기’에서는 “‘ㅈ, ㅉ, ㅊ’으로 표기되는 자음 뒤의 ‘ㅑ, ㅖ, ㅛ, ㅠ’ 음은 ‘ㅏ, ㅔ, ㅗ, ㅜ’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ㅈ, ㅉ, ㅊ’이 아닌 ‘ㅇ, ㅂ, ㄷ, ㅌ, ㄹ’으로 표기되는 자음 뒤에는 ‘ㅑ, ㅖ, ㅛ, ㅠ’ 음이 마음껏 붙고 받침까지도 서슴없이, 꺼림 없이 붙어도 되기에 상술한 [옌], [볜], [뎬], [톈], [롄] 등과 같은 못난 음과 자가 제한 없이 범람해도 무방하다는 것인가. 필자는 한국어사전편찬회에서 펴낸『국어대사전(1989년)』과 한국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어국어 대사전(1999년)』을 펼쳐 어두(語頭)가 [예]자로 시작된 낱말을 훑어보았는데 어림잡아도 올림말이 무려 800여개나 되었다. 모음 [ㅖ]자에 자음까지 앞세운다면 올림말이 수천을 헤아릴 것이지만 [ㅖ]에 따르는 받침은 고작해서 [ㅂ]자는 ‘곕시다’라는 단어 하나뿐이고 [ㄴ]받침은 ‘셴−괴’라는 옛말로 흰 고양이를 뜻하는 단어(그나마 낱말 ‘곕시다’, ‘셴−괴’는『국어대사전』(1989)엔 없음)와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욕으로 하는 ‘옌장’이라는 두 단어에만 국한되었다. 그밖에 [ㅅ], [ㅆ]로 된 받침이 더러 있을 뿐이다. 필자는 (『삼국사기』,『삼국유사』등에 나타나는 인명, 지명, 관직명의 표기)의 음운체계−토착한자음을 빌어서 고유어를 표기(이두식 표기)한 고대 고유어의 음운적 특성과 중세기와 근대 음운체계와 어음변화 및 어휘구성을 두루 살펴보아도 초성과 중성의 결합에 이중모음(겹모음)중 [ㅖ]가 붙는 것은 많이 보아왔지만 모음 [ㅖ] 다음에 종성(끝소리)으로 어떠한 받침이 오는 자는 보지 못했다. (극히 제한된 영어표기를 보충한 외래어를 제외 함) 그만큼 복모음 [ㅖ]는 [ㅒ]와 마찬가지로 받침이 지정되다시피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 표기법’이 살판 치면서부터는 [옌], [뎬], [톈], [롄], [룽], [뤄], [뤼]과 같은 음(音)과 자(字)가 새로운 단어 무더기를 이루어 한글과 한국어를 어지럽히고 있다. 조선의『조선어 맞춤법(1987년)』 제7장 제26항에도 한자말에서 모음 [ㅖ]가 들어 있는 소리마디로는 [계], [례], [혜], [예]만을 인정한다는 제한된 규정을 볼 수 있다.아래 한국의『국어대사전(2006)』에 새로 오른 일부 낱말 중에서 몇몇만 추려 본다.예: 옌: 옌볜대학(연변대학 2689쪽), 톈: 톈안먼(천안문 4006쪽) 롄: 롄윈강(련운항連雲港 1098쪽) 뤼: 뤼순(여순旅順 1117쪽) 룽: 룽징춘(룡정촌龍井村 1116쪽) 뤄: 뤄양(낙양洛陽 1116쪽), 어떤 언어가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음 변화를 할 때 그 사실을 방식화(方式化)하여 기술한 것을 음운법칙, 또는 음운대응법칙이라고 한다. 같은 언어집단의 모든 인간의 발음습관이 변화하는 일이 있지만 그 법칙성은 결과적인 것으로서 항상 일정한 때와 장소에 제약된다.(한국『세계백과대사전』제15집 제221쪽 참조) 필자는 이 법칙을 떠나 복모음 [ㅖ]의 받침 결합이 극히 제한된, 우리 음에 종래로 없었던, 그리고 또 현시대에 꼭 필요 되지도 않는 [옌], [볜], [뎬], [톈], [롄], [룽], [뤄], [뤼]와 같은 발음을 억지로 만든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현상과 행위라고 여겨진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내용에 표음주의(表音主義)를 원칙으로 취하지만 어법(語法)에 맞도록 쓴다는 규정이 있거니와 문자체계에서 18―19세기에 벌써 ‘ㅺ⋅ㅼ⋅ㅽ⋅ㅾ’과 ‘ㅄ’으로 일반화되었던 것을 각자병서(各自並書)로 ‘ㄲ⋅ㄸ⋅ㅃ⋅ㅆ⋅ㅉ’로 표기하도록 규범을 지어 우리말을 바로 쓰도록 이끌고 있듯이 우리 음도 기준에 맞게 써야 할 것이다. 실은 표음주의 원칙을 따른다 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으려 하지만 위에서 실례 든 한문자의 [F] 음을 [ㅍ] 음으로 표기하는 것 마냥 실상 많은 경우 중국 현지 발음과 너무나 같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먼 거리가 있다.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중국의 인명, 지명에서의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이 큰 산실이라면 새로 태어난 [옌], [볜], [뎬], [톈], [롄], [룽], [뤄], [뤼]와 같은 낯선 기형아 1세가 이제 [톍], [뱮], [릙], [ᄬ], [ᅗ]과(와) 같은 방고(訪古・倣古)문자를 등극(登極)시켜 기형 2세를 낳고, 뒤따라 ‘귀여운’ 자모묶음 ㅩ, ㅫ, ㅭ, ㅬ, ㆇ, ㆈ, ㅵ, ㆋ 등을 군림(君臨)시켜 기형 3세에 이어 또 이른바 ‘국제화’, ‘세계화’ 라는 기치아래 아르메니아어,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타아나어, 신할라어 등등의 문자와 부호를 포함한 각종기호를 모셔와 옌Ӝسصの볜, 톈৯ᏪㅬC찡, 뱮ቛשㅫඖඣ, 또는 릙むאַᏑᄬ, 톍Ѭ뱮ÆĦㅭѬ와(과) 같은 희한하고 기구한 외계어(外界語)의 조합으로 인명, 지명과 신조어를 낳는다면, 또 그 기형아가 낳을 후세의 모양새는 과연 또 어떤 꼴일지? 또한 예로 ‘나쁜글자 뿐이다’의 [ㄴ]와 [ㅏ], [ㅂ]을 어울러 쓴 [ㅃ], [ㄱ]와 [ㅡ], [ㅜ]와 [ㄴ], [ㄷ]와 [ㅏ] 등이 녹아 붙어 한 자모로 보이는 간판 글은 우리글을 배웠다는 외국인은 물론 우리도 알아보기 힘들다.(우리글과 외국문자와의 혼용(混用)표기 반대 입장 참조) 이러한 심각한 비규범 문자 실태는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지만 그 평은 생략한다. 그렇다고 필자는 오랜 세월 이미 우리에게 정착되고 귀화된 우리 문자나 다름없는 아라비아숫자, 각종 도량형표기, 일부 영문자, 일부 기호와 우리 문자와의 결합까지 몰아서 모두 기형이라고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필자는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오늘날 한국의 외래어 현상을 그대로 묵과하고 방과하며 그 범람을 과감히 막지 않는다면 위의 우리말과 글의 각종 기형아 추태의 출현이 현실로 될 것이라 의심치 않고 있다. 그에 대한 추측과 예측이 전혀 무근거(無根據)한 억측(臆測)이 아님을 본문의 상기 실례로 증시(證示)하고자 한다. 인명, 지명을 앞세운 이른바 ‘중국어표기법’이 이제 장차 고유명사뿐만 아니라 보통명사까지도 기형으로 만들다 보면 그 온역이 독버섯마냥 모든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까지 옮아 한글・조선글의 대를 끊고 수를 마감하도록 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된다. 표음주의 원칙을 취한다 해서, 원지음을 기준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어색하거나 전혀 없는 음을 본 따거나 바르지 못한 소리, 착각을 주거나 오해를 주는 소리나 문자, 기호를 함부로 만들지 말아야 하거니와 더욱이 한자문화권에서 익히 쓰던 우리의 한자 ― ‘한문한자(韓文漢字 일명 朝鮮漢字・朝文漢字)’와 우리 한자어를 버리고 형태를 가릴 수 없는 낱말을 마구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7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얼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118037  추천:44  2011-03-15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얼에 대한 단상 필자는 국제 통용관례에 따라 세계화에 따르자면 외국의 인명 지명은 객수주편(客隨主便), 명종기주(名從其主)의 원칙으로 손은 주인에 따라야 한다는 통념(通念)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본문의 전 편에서 언급되고 강조되다시피 한자문화권에서의 한문 또는 한자, 한자어로 명명된 지명, 인명은 국제통상(國際通常)과 달리 우리 문화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피력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지명 표기는 끊임없이 변해 왔는데 공식, 비공식 지명만도 수십 개에 이른다. 역사를 거슬러 백제 때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 고구려 때는 ‘남평양(南平壤)’, 신라 때는 ‘한산주(漢山州)’, ‘신주(新州)’, ‘남천(南川)’, ‘한양(漢陽)’, 고려 때는 ‘양주(楊州)’, ‘남경(南京)’, ‘한양(漢陽)’, 조선조에는 다시 ‘한양’ 다음에 ‘한성(漢城)’,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京城)’으로 불렸다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한글・조선어의 고유명사 ‘서울’로 명하고 로마문자로는 ‘SEOUL’로, 한문자로는 ‘漢城(한성)’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공식 지명 말고 별칭도 많았다. ‘수선(首善)’, ‘목멱양(木覓壤)’, ‘경도(京都)’, ‘경사(京師)’, ‘경락(京洛)’, ‘도하(都下)’, ‘장안(長安)’, ‘황성(皇城)’, ‘경조(京兆)’, ‘문안(門內)’ 등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중국도 서울 명칭이 바뀔 때마다 따라서 ‘한양(漢陽)’, ‘한성(漢城)’, ‘경성(京城)’, ‘한성(漢城)’으로 표기하고 불러 왔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 한중수교에 즈음하여 ‘서울−(ㅅㅓ,ㅇㅜㄹ)’의 발음에 가까운 한자를 선택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을 중국말 표기로 ‘수오이(首塢爾−서우−우−얼)’라고 하다가 ‘수무이(首無二−서우−우−얼)’로, 다시 ‘수옥(首沃−서우−워)’으로, 항간에서는 또 ‘西蔚(서울)’, ‘色窝兒(색와아)로, 한동안은 한문한자 ‘중경(중징・中京)’으로 거론 되다가 결국은 ‘서울’을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로 확정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최종이 아니라 당분간이라고 보고 있다. 실은 서울시가 서울에 대한 한문표기를 ‘수이(首爾)’로 정하고 외교문서로 중국더러 한문 발음 그대로 ‘首爾−SHOUER−서우우얼’로 써줄 것을 요청했었고 중국도 한국의 청을 쾌히 받아 들였다고 한다. 2005년 1월 19일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에서 서울의 중문(中文−漢文)지명을 ‘首爾’로 개칭하고 ‘漢城’은 다시 쓰지 않는다는 소식 발표에 따라 한성‘漢城’은 세 번째를 거듭하며 역사 속으로 다시 사라져버렸다. 아마 서울 어르신들이 중국에서 한국의 수도를 ‘한성(漢城)’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긴 모양이다. 그 원인의 하나는 이웃 나라는 ‘북경(北京)’이요 ‘동경(東京)’이요 하면서 수도에 모두 서울 경(京)자가 들어갔는데 우리는 흙토변이 붙은 재 성(城)자, 성곽 성(城)자가 들어 있어 ‘한성(漢城)’이라는 부름이 아주 격이 떨어지는 것 같고 촌스럽게 여겨진 모양이다.(한문자 ‘漢’자와 ‘城’자 및 지명으로서의 뜻풀이는 생략함) 다른 하나는 ‘한성(漢城)’이라는 한(漢)자가 중국의 한(漢)나라를 뜻하는듯하여 기분이 적이 아니 좋은, ‘대한족주의’의 뜻이 다분히 담긴, ‘문화패권’ 의식이 짙은 듯한 ‘한(漢)’자를 뿌리 채로 뽑아버리고 중국더러 ’서울‘이라는 발음이 나오도록 ‘수이(首爾)’라고 불러달라고 간청한 모양이다. 또 다른 하나의 원인은 아마 필자가 본문 전편에서 언급한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 그 중에서도 “중국어의 표기”와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규정을 모범적으로 적용하여 중국더러 ‘서울’의 원지음(原地音)을 기준하여 표기하라고 시도한 모양이다. 대한민족(大韓民族)의 정신을 고양(高揚)하며 한문자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쏟은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자는 ‘서울’의 중국어 지명개칭을 위의 여러 가지 원인이면 충분하고 정당하리라 보겠지만 문제가 그렇듯 단순하지 않다.(지명과 역사, 지명과 문화에 대한 이해는 생략) 필자는 서울은 ‘漢’자가 붙은 ‘漢城(한성)’을 ‘漢’을 버리고 ‘首爾(수이)’라고 고칠 때 ‘漢江(한강)’, ‘한라산(漢拏山)’, ‘남한산(南漢山)은 물론; 중국의 당나라를 뜻한다는 ‘唐’자가 붙은 충남의 지명 ‘唐津(당진)’, 우리 낱말 ‘당나발(唐喇叭)’, ‘당나귀(唐나귀)’,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당황(唐惶・唐慌・唐黃)’, 그리고 강원도와 평안도의 방언 ‘당가지(唐가지)’, 지어는 우리 민족 복장−한복・조선옷의 하나로서 여자들의 저고리 위에 덧입는, 앞길과 뒷길이 저고리보다 길고 도련은 둥근 곡선으로 되어 있으며 옆은 진동선 아랫부분이 트여 있는 예복의 하나−당저고리 즉 ‘당의(唐衣)’까지도 ‘唐’자를 버리고 다른 낱말로 고쳐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감내, 감수하고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비록 한국의 간청으로 ‘서울’의 중국어 지명은 겨우 ‘首爾−SHOUER−서우우얼’로 고쳤지만 중국은 아직도 서울의 많은 명칭을 오늘도 그냥 중문(中文)으로는 ‘漢城市政廳−서울시청’, ‘漢城大學−서울대학’, ‘SBS漢城廣播電視台−SBS서울방송’, ‘漢城中央郵局−서울중앙우체국’, ‘漢城中華靑年會議所−서울중앙청년회의소’, ‘漢城海關’, ‘漢城酒店’, ‘漢城高速客運站’ 등등으로 일컫고 있다. 다만 ‘서울’만 ‘首爾’이라고 고치였을 뿐 나머지 모두는 여전히 ‘漢城(한성)’이라고 명하고 있다. 다원화, 다문화의 개념에서 보면 한자문화권에서의 ‘한자’는 중국뿐이 아닌 동아시아 모두의 것이고 ‘한자’는 반만년간의 동아시아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다.(필자의 ‘한자문화권에서 한자의 공유(共有)와 공용(共用)의 우세’, ‘한자의 유래’, ‘우리한자’ 등 참조) 한국인, 또는 한문자를 배워서 아는 사람들이 한글・조선글로 ‘서울’하면 [서울 경(京)]자가 떠올라 ‘수도’로 연상이 될는지 모르지만 중국 글자, 또는 우리 한문한자로 ‘首爾(수이)’라고 쓰고 그 중국 병음 발음으로 ‘서우우얼(首爾−SHOUER)’이라고 부른다면 한문으로는 오히려 아무런 뜻이 없다. 중국 사람은 지난날 한국의 수도 서울을 ‘漢城’이라고 부를 때에 ‘漢’자에 대한 우월감이나 ‘패권감각(覇權感覺)’이 전혀 없었거니와 오늘 ‘SHOUER−서울’이 무엇을 뜻하는지, ‘首爾(수이)’라고 새로 도시 명을 바꾼다 해서 그 단어가 서울 경(京)자와 무슨 관련이 되는지 전혀 모르거니와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왕 중국에서 서울을 ‘首爾−SHOUER’로 표기하기로 확정되었으니 우리 한문자 문화권에서 사는 동양인(특히 한국인)들은 반드시 ‘수이’와 ‘首爾’이라는 단어가 도대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그 뿌리(근원)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글 낱말로서의 ‘수이’는 ①물엿. ②다른 것보다 매우 뛰어나다. ③특별히 다르다. ④수입・수출에 따라 화물을 여기저기로 옮김을 뜻한다. 한문자 ‘首爾’는 옥편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首爾’의 첫 자 ‘首’는 훈과 음으로 [머리 수]이고 뜻풀이로는 ①머리. ②우두머리. ③첫째. ④첫머리. ⑤칼자루. ⑥근거하다. ⑦자백하다. ⑧향하다. ⑨나타내다 등 이고; ‘爾’자는 훈과 음으로 [너 이]이고 뜻풀이로는 ①너. ②같이. ③그러하다. ④가깝다. ⑤어조사. ⑥그(其). ⑦이(此) 등 이다. 우리글 낱말 ‘수이’나 한문자 ‘首爾’의 모든 풀이를 아무리 정밀 분석하여 훑어보고 뜯어보고 맞추어 보아도 ‘서울’하고는 사돈에 팔촌도 안 된다. 한문자는 무엇보다 표의적 음절문자로서 문자나 부호로 뜻을 나타내는데 ‘首爾’라는 지명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필자는 지명이라면, 특히는 한국・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의 지명이라면 그 고장의 전설이나 유래, 역사나 연유, 또는 어떠한 까닭이나 모양, 형태나 지향 등을 뜻해야만 지명답다고 해야 할 것이지만 ‘首爾(수이)’는 발음으로만 ‘쉬이’와 가까울 뿐 뜻하는 바를 쉬이 알 수가 없다. 지명으로서의 ‘首爾(수이)’는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삼천리금수강산에서−고유어로나 한자어로나 둘도 없는(유일한) 속이 텅 빈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저 너무 쉬이 이루어진 것은 또한 쉬이 무너지는 법이여서 ‘首爾(수이)’가 얼마나 오래 갈까 근심스럽다. 수천 년 표의문자로만 알고 있던 한문자였었는데 새 단어 ‘首爾(수이)’만은 문자의 뜻은 버리고 한문 발음만 빌려서 우리 한글마냥 표음문자(表音文字)로 융합시켜 고유어 ‘서울−SEOUL’을 한자어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로 둔갑시킨 것이 아닐까? 실로 대단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표의문자인 한문자로 하여금 이웃 다른 나라에서 표음문자로 태어나게 한 산실(産室), 태어난 산물이 순산이든 난산이든 그 산실이 있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줄기세포 연구의 성취보다 더 대서특필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마술이 아니고서는 불가사의하여 훈민정음도 놀라 혼도(昏倒)할 지경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서울을 ①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곳. 도읍, 수도, 수부. ②우리나라의 수도 이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서울’은 우선 고유어이고 낱말 풀이를 보면 전자는 보통명사이고 후자는 고유명사다. 보통명사와 고유명사가 서로 헛갈리는 낱말을 지명으로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낱말은 고유명사에 앞서 보통명사로 널리 풀이된다. 고유명사로 지명 ‘한성(漢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쓰는 고유어를 중국에서는 외래어나 다름없을 ‘서우우얼(首爾)’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국의 지명 ‘인천’도 중국에서 지금까지 불러오고 써온 ‘仁川(renchuan)’을 버리고 우리발음(ㅇ+ㅣ+ㄴ,ㅊ+ㅓ+ㄴ)에 가깝게 중국더러 ‘yinchen’발음으로 표기를 ‘淫沉’으로나 또는 ‘陰沉’, ‘陰塵’, ‘因臣’,‘銀沉’, ‘飮晨’, ‘因沉’, ‘淫晨’, ‘淫臣’ 등으로 고쳐달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필자는 우리말을 옳고 바르게 하는 원칙중의 하나가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차용어, 외국어, 방언(사투리) 등 많은 말들 가운데서 우선 고유어를 살려 쓰고 다음 우리말에 굳어진 한자어를 쓰며 우리말에 없는 외래어는 되도록 우리말로 귀화, 또는 순화, 동화 시키고 부득불 쓰지 않으면 아니 될 극히 제한 된 외래어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은 저의 수도명칭 ‘首爾(수이)’를 외래어로 부득불 조심히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고유어로 ‘서울’이 있고 한자어로 ‘한성(漢城)’이 있음에도 스스로 외래어 ‘首爾(수이)’를 만들어 남 보고 불러달라고 간청한 것이었다. 사전에는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 ‘서울’이라고 풀이했다. 그렇다면 ‘파리’는 프랑스의 ‘서울’일 것이고 ‘로마’는 이탈리아의 ‘서울’이며, ‘북경’은 중국의 ‘서울’이고 ‘한성(漢城)’은 한국의 ‘서울’이요,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서울’일 뿐이다. 이렇듯 각 나라마다 중앙정부가 있듯이 ‘서울’은 사전 풀이 그대로 도읍, 수도, 수부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다만 ‘서울’이라는 낱말이 우리의 고유어라고 해서 세계 각국더러 ‘서울’을 한국의 한성(漢城)한테만 맞추어 부르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한 억지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서울’을 보통명사보다는 고유명사로 더 쓰인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나라(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더러 한국의 수도를 ‘서울’로 불러 달라고 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우리말 사전 풀이에서는 ‘서울’을 ‘나라의 수도 이름’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그렇다면 ‘한성(漢城)’을 ‘서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국적이 어떠하든 간에 각자 모두 자기 입장에서 제 마끔 자기 나라의 수도로, 즉 세계 각국에서 모두 ‘한성(漢城)’을 ‘서울’로 부른다면 ‘한성(漢城)’은 세계의 수도를 뜻한다는 것이다. 별로 안 좋을 일은 아니지만 국제 상식과 국제 관계를 먼저 고려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아무리 우리의 국어사전이라 하지만 사전을 이용하는 대상이 꼭 한국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외국의 학자, 전문가, 외교가, 특히는 같은 글(한글・조선글)을 쓰는 북녘에 조선이라는 국가가 있는 남북사정을 헤아려서라도 낱말 ‘서울’을 ‘나라의 수도 이름’보다는 응당 ‘한국의 수도 이름’이라고 주석을 달아야 더 객관적일 것이다. 필자는 우리 민족의 한(漢)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한양(漢陽), 한성(漢城), 한강(漢江)과 마찬가지로 한자(漢字)의 한(漢)이라는 글자는 중국의 한(漢)나라를 뜻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당시 한(漢)이라는 중국 문자만 빌려서 썼을 뿐 그 본뜻은 우리말의 ‘한’의 뿌리 말인 어간(語幹) ‘하’라는 발음과 ‘하’가 갖고 있는 뜻을 밝히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는 예로부터 ‘아주’, ‘몹시’, ‘크다’, ‘밝다’, ‘넓다’, ‘바르다’, ‘가득하다’, ‘하나’라는 여러 뜻을 담고 있다. 당시 말만 있고 문자가 없을 때 중국 글 한(漢)자의 음을 빌려서 한−을 넓게 써온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리라. 이는 마치 우리 겨레를 “배달민족”이라고 할 때, ‘배달’이라는 단어를 한문자(漢文字)의 문자만 빌려 ‘倍達’이라고 표기하는 것과도 같은 연유(사유)라고도 할 수 있다. ‘田畓(전답)’, ‘溫突(온돌)’, ‘䭜饑(요기)’, ‘食口(식구)’, ‘兩班(양반)’, ‘開川(개천)’, ‘引絶味(인절미)’, ‘千葉(천엽)’; ‘古斯(구슬)’, ‘阿嫫(어미)’, ‘阿旦(아들)’바다(波旦), 벼랑(比烈), 서늘히(沙熱伊), 구슬(古斯), 어미(阿嫫), 아들(阿旦), 바람(把倫), 구름(古論); 서리(色立), 이슬(以沁), 머리(墨立), 눈(嫩) (『삼국사기』,『삼국유사』,『계림유사』에서) 바로 이 같은 견지에서 필자는 오히려 중국어에서는 아무런 뜻도 없는 ‘수이(首爾)’보다는 한자문화권에서 서로 소통이 잘 되는 한자어로서의 유서 깊은 한성(漢城)― 천년 옛 도시, 옛 고을을 자랑하는 ‘한성(漢城)’이라는 지명이 더 힘 있고 기백이 넘친다고 본다. 그래도 기어코 수도를 꼭 ‘서울’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한국에서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옮기게 될 곳의 본래의 도시 이름이 없어질 것이고 그 곳을 또 ‘서울’이라고 명명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떠나간 옛 서울에는 ‘서울’이라는 이름까지 전이해 갔으니 이름 없는 도시가 있을 수 없고 하니 다시 도시 명을 지어서 세계 여러 나라더러 한국 지도의 지명을 또 고쳐달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마치도 중국의 북경을 ‘北京’이라는 지명보다 중국의 도읍, 중국의 서울이고 중국의 수부이고 수도이니만큼 ‘북경(北京)’을 ‘수도(首都)’라고 개칭하고 전 세계더러 모두 중국어 발음 ‘首都−Shoudu’라고 불러달라는 격과도 같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수도(首都)’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새로 옮겨진 도시의 원지명은 버리고 대신 ‘首都’로 명명할 것이고 ‘首都’를 떠나보낸 원래의 옛 ‘수도’에는 또 새로운 지명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두다 제가끔 자기 나라의 수도를 중국에서는 ‘首都’라는 발음으로, 한국어・조선어로는 ‘서울’이라는 발음으로, 일본에서는 ‘しゅと/しゅふ’라는 발음으로, 영어권에서는 ‘Capital’이라는 발음으로 불러달라고 한다면 과연 세계지도의 모양새는 어떠할 것이며 세계 각국의 수도가 바뀔 때마다 따라가며 본래 지명을 짓뭉개버리고 새로이 그 나라의 ‘서울’이라는 뜻으로, 그 나라의 발음으로 명명해나간다면 세계 문화유산과 함께 고풍 찬연한 지명들이 얼마나 오래 버틸까?! 지명은 역사와 문화의 맥을 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머나먼 훗날에도 청사에 길이 전승되어야 할 것이다. 혹시 한국의 수도를 ‘首爾(서우우얼)’로 불러줄 것을 간청하고 그것이 허락된 대가로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모조리 깡그리 무더기로 중국어 발음으로 고쳐주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어딘가 중국에 필요도 되지 않는 대접을 너무 잘 해 보이는 듯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호(相互)주의 원칙에도 위반되는 자존심이 깎이는 행실이 아닐 수 없다. “중국어 표기법”이랍시고 한자문화권을 무시하고 오랜 세월 굳어진 관용마저 버리며 중국의 지명, 인명을 마구 고쳐버린 한국에서 이젠 이웃 나라에 자국의 수도명칭까지 외래어로 지어 주고 그대로 불러 달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한강’, ‘대한민국’, ‘금수강산’ 등등도 단두대 앞에 섰다. 중국에서는 ‘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는 단어를 수입했다고 볼 수 있겠다.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니 당연히 외국어가 아니면 바로 외래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귀화시키거나 순화시키지 않은 순 외래어로는 흔치 않은 실례이다. 한국에서는 ‘首爾−SHOUER’이라는 외래어를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하고 중국은 그 수입품을 재가공도 하지 않고 다시 국사로, 외교행사로, 경제−문화교류로, 민간왕래로 한국에로 수출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SEOUL’이 마침내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로 되어 그 과정을 방정식으로 정리해 보니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만약 한국에서 ‘서울’이라는 단어를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고 이름 지어 중국으로 수출하지 않고, 중국더러 한국 서울의 명칭을 ‘漢城’이 아닌 서울을 뜻하는 다른 단어로 바꾸어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더라면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중국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우선 오늘도 한국에서는 ‘서울’을 뜻하는 한자 ‘경(京)’을 넣어 ‘경부고속(京釜高速)’, ‘경의선(京義線)’, ‘경춘선(京春線)’, ‘상경길(上京길)’ 따위로 ‘서울’을 한자로는 ‘경(京)’으로 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고; 동방의 예의지국−천년 고도(古都)인 ‘한양(漢陽)’이 ‘한성(漢城)’으로, ‘한성(漢城)’이 근대의 ‘경성(京城)’으로, ‘경성(京城)’이 다시 ‘한성(漢城)’으로 불리어 온 역사를 감안해 서울 ‘경(京)’을 뜻하는 경자(京字) 돌림의 옛 서울 명칭들인 ‘경궐(京闕)’, ‘경락(京洛)’, ‘경련(京輦)’,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읍(京邑)’, ‘경조(京兆)’ 또는 ‘경도(京都)’, ‘경성(京城)’가운데서 하나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도(京都)’, ‘경성(京城)’을 제외하고는 모두 옛 서울의 명칭이고 너무 예스러운 풍취나 정서여서 ‘경도’, ‘경성’이 적임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그 둘 중에서 ‘경도’라고 하면 서울이라는 뜻도 있긴 하나 일본의 ‘교토’를 연상케 하여 언짢을 수도 있으니 그래도 ‘경성(京城)’을 택할 확률이 앞설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옅은 소견에도 서울을 뜻하는 ‘경성’ 또한 1910년에 일제 강점기에 명명 되었다 하여 식민지 정서가 깔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누울 수도 있다. 정 그렇다면 10여 년 전에 서울의 중국어 명칭을 ‘중경(中京−중징)’으로도 공식 거론 되었었다고 하니 아예 가운데 중(中)자에 서울 경(京)자로 ‘중경(中京)’도 괜찮을 듯싶다. 필자는 여전히 한국의 지금 수도 명을 고유어 고유명사로는 ‘서울’로, 한자어 고유명사로는 ‘한성(漢城)’으로 변함없이 표기할 것을 주장한다. 필자는 우리 정음자(正音字)와 한자(漢字) 모두 우리 문자이며 고유어와 한자어 모두가 우리의 말이며 우리 역사와 문화를 엮고 담는 연모라고 강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자’는 수천 년간, 수많은 민족에 의해 형성되고 오랜 세월 부단히 완성되며 발전된 문자이며, 그 문자를 우리 음으로 옮겨 쓰면 우리 글자이기도 하며, 마찬가지로 중국의 음으로 쓰면 중국문자, 일어 음으로 옮겨 쓰면 일본 한자, 베트남의 음으로 옮겨 쓰면 베트남 한자이기도 한 동방문자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최근 한자의 기원이 중국의 권위적인 고고학연구가들로부터 새로이 밝혀지고 있다. 중국 산동성 정부 웹 사이트 ‘山东省情网(WWW.infobase.gov.cn)’의 ‘省情网’으로 서명한 글 ‘东夷及其文化发展(2007-07-31)’을 방문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뚜렷이 눈에 띈다. “最早的文字,当是东夷人的创造。《潜夫论·五德志》有“少皞始作书契”,的说法。这一说法得到了考古发现资料的证明。” 필자의 얕은 수역(修譯)으로 그 뜻을 헤아려보면 “최초의 문자는 동이사람들이 창조하여 ‘소호시작서계(少皞始作书契)[적을 少, 밝을 皞, 처음 始, 지을 作, 글 書, 새길 契 -어려서부터 사리에 밝아 시작부터 부절(符節)을 새겼노라]’설이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일부 자료에서는 소호(少皞)를 동이족의 영수 인물인 소호(少昊)로 보고 있다.(少昊又作少皞,是古东夷族的另一位领袖人物) (山东省情网http://xz7.2000y.net/mb/1/ReadNews.asp?NewsID=518766 山东省情网http://tieba.baidu.com/f?kz=684118068 등 웹페이지 참조.) 중국의 ‘齐鲁晚报’ 2008년 10월 27일의 글 ‘神秘东夷甲骨文现山东-疑比殷墟甲骨早千年’, 또는 산동성사회과학원(山东省社会科学院) 방진호(逄振镐) 연구원의 글 ‘从图像文字到甲骨文-史前东夷文字史略’(2002年 02期 中原文物 Cultural Relics of Central China http://d.wanfangdata.com.cn/Periodi cal_zyww200202008.aspx 참조)을 보면 골각문자(骨刻文字)인 동이문자(東夷文字)가 지금까지 알려진 은허(殷墟)의 갑골문자(甲骨文字)보다 무려 1000년 내지 1500년 전으로 알려져 산동대학 고고미술학연구소 유봉군(劉鳳君)소장은 얼마 전에 “20세기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갑골문자 발견이었다면 이번 골각문자 발견은 중국 역사를 지금보다 천여 년 이전으로 돌리는 21세기 중국 고고학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齐鲁晚报 http://news.qq.com/a/20080815/001934.htm 등 웹페이지 참조.  http://news.sina.com.cn/c/2008-08-15/073714314025s.shtml-中國大众网-齐鲁晚报 웹페이지 참조. http://www.mychangle.cn/wenhua/lishi/2010/1215/3836.html中國昌樂网 http://www.hudong.com/wiki/%E9%AA%A8%E5%88%BB%E6%96%87 http://www.china.com.cn/culture/guoxue/2010-03/04/content_19520569.htm 文化中國 웹페이지 참조. http://blog.artintern.net/blogs/articleinfo/litaimo/130517中國藝術國際 참조 지극히 중요한 것은 은허의 갑골문자 이전에 동이문자가 골각문자로 먼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자는 동이문자의 맥을 이어 발전되어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문자의 시조(始祖)와 같은 [집 家], [새길 契]와 같은 문자에 역사와 문화가 역력히 남아있고 지혜가 넘쳐남에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집 [가 家]자만 보더라도 글의 창제(創製) 원리와 머금고 있는 뜻이 한없이 깊다. 갓머리 [ ]에 시[豕]를 합하여 이루어진 가[家]는 바로 집안에서 돼지를 기른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 家]에 [돼지 豕]가 없어서는 아니 될 정도로 중요시됨은 그 시기 그 고장에 뱀이 엄청 많았을 것이며 사람은 뱀의 천적인 돼지를 가까이 하여 뱀의 침습을 막았으리라. 집 [가 家]자에는 사람 [인 人]자 보다 돼지 [시 豕]자가 필수불가결이다. 돼지를 부엌 바닥이나 집안 마루 밑에 기르든 아니면 다락집의 아래 움막에 가두어 기르든 항상 돼지가 집을 지키고 있어야 집안이 편안하며 안전하다는 뜻이다.(한국 제주의 시골 민속촌의 민가에서 답사할 수 있음) 이러한 글(契)들이 동이와 은허(殷墟)의 맥을 이어 오늘의 한자(漢字)로 발전되어왔다는 것을 중국이 주축이 된 동양의 고고학 전문가들이 대서특필하고 있다.(글 契, 맺을 契, 새길 契, 부족 이름 契, 사람 이름 契 풀이 약함) 동이문자를 파고들자면 우선 ‘동이’라는 낱말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중국 대사전『辭海(사해)(1979년 판)』제46쪽에 “東夷”라는 낱말을 보면 ‘見 “夷”(“이”를 보라)’라고 올랐다. 다시 제644쪽에 오른 낱말 “夷”를 보면 “中國古代對東方各族的汎稱…舊時亦往往用以称外國人。)라고 풀이하고 있다. 뜻인즉 ‘동이’란 바로 ‘중국고대에 동방의 각 민족들을 두루 일컫는 범칭…옛적에 또한 외국인을 일컫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말 사전 낱말 풀이대로 “동이”라면 “동쪽의 오랑캐”,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이고 “동이문자”라면 바로 “동녘의 오랭캐문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한국의 모든『국어사전』, 중국 연변인민출판사『조선말사전』1992’ 참조) 중국의 한문(중어)사전들에서보다 오히려 우리말 사전들에서 “동이”를 “동쪽의 오랑캐”니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니 하며 그 옛날 발해만(渤海灣)에 뿌리내린 조상들을 욕보이고 있다. ‘동이골각문자’를 정설(定說)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동이(東夷)’라는 낱말을 한국의 우리말 사전들에서 바로 새겨야 할 것이며 특히 옥편에서 [夷]를 [오랑캐 이]로 한 훈(訓)을 고쳐야 할 것이다. 실은 한문자 [夷]는 [클 大]와 [활 弓]의 합자(合字)로서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 뜬 글이며 ‘화험위이(化險爲夷)’에서 ‘夷’자 마냥 ‘온화’, ‘평탄’, ‘안온’, ‘기쁨’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역사를 바로 잡고 비록 늦었지만 당대발복(當代發福)으로 조상을 정히 모시면서 급격물실(急擊勿失)로 명분을 되찾아야할 것이다. 필자는 “동이・東夷”를 “동방의 큰 활을 쏘는 어진 민족”으로 칭하고자 한다. 아울러 [夷]의 훈과 음은 [夷 = 활 이]로 새기고자 한다. 고로 필자는 나름대로 ‘겨레한자(일명 諺文漢字・正音漢字)’와 ‘한문한자(韓文漢字 일명 朝鮮漢字・朝文漢字)’라는 별도의 작명(作名)으로 우리 훈(訓)과 음(音)이 있는 한자는 ‘우리한자―우리의 한자어’임을 첨언, 강조하고 입증하고자한다 예하면 우리한자어: 겨레한자어: 단군왕검 이씨조선 대한민국 금수강산 한문한자어: 檀君王儉 李氏朝鮮 大韓民國 錦繡江山 겨레한자어: 숭례문 광화문 세종대왕 국민 국회 한성 한문한자어: 崇禮門 光化門 世宗大王 國民 國會 漢城 필자는 본문 전편의 논점과 논거로 ‘서울’도 ‘한성’도 ‘漢城’도 모두 정정당당한 우리말과 우리글이라고 높이 외쳐 주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서울)의 어르신님들의 뜻이 한사코 서울 경(京)을 넣고자 한다면 필자도 본의를 꺾고 기꺼이 따를 것이로되, 왈(曰); 북경(北京)이요 동경(東京)이요 하는 다른 나라 수도의 서울 경(京)자가 부러워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는 이름을 지어 우리식의 ‘서울’이라는 뜻에 자아 만족, 자아도취에 빠지지 말고, 서울로서의 명실상부로 ‘서울 경(京)’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처럼 북(北)도 아니요 동(東)도 아닌, 가운데−중(中)자를 앞세우고 뒤따라 경(京)을 넣어 이제부터라도 자신 있게, 당당하게 우리 서울을 ‘중경(中京)’이라 함이 얼마나 의젓하고 자랑스러우랴고 미언(微言)으로 미언(美言)을 드리는 바이다. 하루 속히 서울 경(京)자를 되찾아 체면을 추세우려면 중국 사람에게는 뜻도 글도 모르는 ‘SHOUER−서우우얼’ 보다는 우리에게는 ‘서울’이고 중국인에게도 ‘수도’라는 뜻 문자 ‘京’을 채택하기 바란다. 비록 ‘서울-경(京)’이 지명의 첫 음은 아닐지라도 한국의 수도명은 여전히 한글・조선글로는 떳떳하게 ‘서울’이고 국제 명으로는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공인 된 ‘SEOUL’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中京’으로 명명하도록 한다면,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가운데에 위치한 서울(수도)이라는 뜻으로 칭한다면 중국을 비롯한 한문자를 통한 이들에게는 앞 못 보는 장님이나 말 못하는 벙어리며 귀머거리 농자라 할지라도 지금의 알고도 모를 이른바 소왈(所曰)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는 부름보다는 천만배로 낫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서울’을 중국말 표기로 ‘首塢爾(수오이)−서우−우−얼’, ‘首無二(수무이)−서우−우−얼’, ‘首沃(수옥)−서우−워’, 또는 ‘西蔚(서울)−시−웨’, ‘色窝兒(색와아)−서−워−얼), ‘首爾(수이)−SHOUER−서우우얼’로 변하고 있다. 이제 또 어떻게 변하려는지…… 오랜 세월 남이 익히 알고 또 친절히 잘 부르고 있는 뜻 깊은 좋은 호칭(지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레 남이 알지도 못하는, 아무런 뜻이 부여됨이 없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를 아리송한 폄칭(貶稱), 비칭(卑稱)보다 못한 별명, 별호와도 같은 새 부름을 마구 지어서 남더러 불러 달라 하며 그 부름을 듣고 스스로 자고자대(自高自大)하다 보면 정중지와(井中之蛙)의 좌정관천(坐井觀天)이나 마찬가지로 되어 자칫하면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평을 받지나 않을까 적이 불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다시는 지명이 정치적인, 또는 실용주의, 현실주의의 희생제물로 되어 역사와 문화가 단절되면서까지 마구 고쳐지지 말아야 한다.
6    북한, 남조선, 한문, 중문, 한글, 조선글에 대한 사색 댓글:  조회:31220  추천:86  2011-02-01
한문, 중문, 한글, 조선글, 북한, 남조선에 대한 사색 필자는 “오랜세월 이미 우리에게 정착된 한자와 한자어는 오늘에 와서 바로 우리말이고 그 말을 적으면 바로 우리글이며 그 말을 읽으면 바로 우리 음이다”고 정의(正義)로 정의(定義)를 내렸다.아울러 낱말 ‘한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주석을 새겨보았다.그리고 이왕의 우리말 사전들에서의 낱말 ‘한자’ 새김과 풀이에 대응, 대등한 낱말을 ‘한자’ 대신 ‘한문자’로 선택했었다.(필자의 "우리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 상편 참조) 하지만 수천 년 전의 낱말 ‘한자’와 ‘한문자’, ‘한문’의 개념이 창해상전을 겪은 오늘에 와서 그 시초(始初)에 비해 너무도 변하였다. 필자는 낱말 ‘한자’를 기계적으로 모조리 낱말 ‘한문자’로 고쳐 올리기에 앞서 그 낱말의 사용 환경과 실태를 감안하여 때로는 지난날의 낱말 ‘한자’를 오늘의 ‘중문’ 또는 ‘중어’로 바로 개칭함도 아주 적절할 듯싶다고 건의하고 권려(勸勵)한다. 영어(英語), 영문(英文), 일어(日語), 일문(日文), 불어(佛語), 불문(佛文), 노어(露語), 노문(露語), 독어(獨語), 독문(獨文)하는 것처럼 중국어를 중어(中語) 또는 중문(中文)으로 규범화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언어와 문자 및 남북의 서로 다른 방언, 동서지역의 서로 다른 심한 사투리도 역시 광의적으로는 모두 ‘중국의 말’이고 또한 ‘중국어’, ‘중국글’의 범주에 속하지만 본문에서는 별도로 중국의 소수민족 언어와 문자 및 방언의 취급을 제외하고는 통상 ‘중국어’를 다만 중국의 공식 관용문자인 ‘한자(漢字)’와 ‘한어(漢語)’에만 귀결한다.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 나라들에서 게르만 어파의 서게르만 어군에 속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실례, 인도・유럽 어족의 이탤릭 어파에 속한 에스파냐어가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이는 실례와 프랑스어가 벨기에 남부, 스위스 서부에서 쓰이는 실례를 제외하고는 지난날 어느 한 민족의 고유 언어가 오늘날 어느 국가의 유일한 법정 언어와 문자로 규정되어 국어로 되었다면 해당 국가명의 첫 음이나 첫 자를 달아 그 언어를 칭함이 국제 관습인 듯싶다. 러시아어, 일본어, 베트남어, 몽골어, 말레이어, 터키어(토이기어), 루마니아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와 같이 해당 언어와 문자에 그 해당 국가의 성씨(姓氏)를 달아 준다는 것이다. 같은 우리말과 우리글이지만 조선에서는 조선어(朝鮮語) 또는 조선말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한국어(韓國語) 또는 한국말이라고 하듯이, 한(漢)민족의 언어인 한자(漢字), 한어(漢語), 한문(漢文)을 이제부터는 어느 한 민족의 언어라고 하기보다는 중국이라는 국가(나라)의 문자로 칭하여 중국문자, 중어(中語), 중문(中文)이라고 표기해야 옳다고 본다. 필자가 이왕의 우리말 사전에 오른 낱말 한자(漢字)의 새김을 낱말 한문(漢文) 또는 한문자(漢文字)로 옮기는 것도 좋지만 오늘의 사용 환경과 실태를 감안하여 많은 경우에는 낱말 ‘한문’과 ‘한문자’보다 중문(中文)으로 개칭할 것을 굳이 주장하는 데는 위에서 실례를 든 바와 같이 중국(中國)이라는 나라 글이기에 ‘중(中)’자를 앞세워 ‘중문’, ‘중어’로 정하자는 원인도 있지만 다른 중요한 이유가 또 있기 때문이다. 한문과 중문 사이에는 미세한 구별이 있다. 낱말 한문(漢文)은 ①한문자라는 뜻도 있지만 ②중국 고전(古典)의 문장이라는 뜻으로도 널리 쓰이고 ③한자(漢字)만으로 씌어 진 문장이나 문학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러나 중문은 다만 중국 글자로 쓴 글이란 풀이만 있을 뿐이다. 낱말 ‘한문’은 문자이기도 하면서 문장이기도 하고 문학이기도 하지만 낱말 ‘중문’은 중국 글일 뿐이다. 하물며 최근에 출판된 한국의 우리말 사전들에서도 ‘중어’와 ‘중문’이 사전의 낱말로 많이 오르고 있는 실정이여서 낱말 ‘중문’이야말로 지난날의 낱말 ‘한자’의 구실을 감당함이 적중하다고 본다. 아래 낱말 ‘중어’와 낱말 ‘한자’간의 구별을 사전 풀이로 본다. 『국어대사전』(2006)에서는 낱말 ‘중어’를 ‘중국어(中國語)’라고 주석을 달았고 낱말 ‘중국어’(3543쪽)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중국어 中國語 중국・타이완 및 해외의 화교(華僑) 등이 쓰는 한민족(漢民族)의 언어. 시노티베트 어족에 속하며 고립어(孤立語) 중의 단철어(單綴語)로, 베이징어 등의 북방(北方), 상하이 등의 오(吳), 샤먼어 등의 민(閩), 광둥어 등의 월(粤), 객가(客家)의 오대(五大) 방언이 있으며, 북방 방언을 기초로 한 공통어가 널리 쓰이고 있음. 예로부터 문어(文語)와 구어(口語)의 분리가 심했으나 1917년 문학(文學) 혁명 이후 구어, 곧 백화(白話)에 의한 문학이 전통적인 고문(古文)을 대신하여 정당한 문학의 용어(用語)가 되었음. 한어. 화어. 차이니스. 중어(中語) 같은 사전에 ‘한자’라는 단어 해석은 다음과 같다. 한민족(漢民族)사이에 발생한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의 고유의 문자. 그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기원전 10수세기의 은(殷)나라 때 이미 사용되었음. 이것은 또 주변의 여러 민족에게도 채택된 표어문자(表語文字)로, 한국・일본・베트남 등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서하문자・거란문자・여진문자 등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어찌 보면 낱말로서의 한어(漢語), 한자(漢字) 풀이는 문자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강조하였다면 낱말 ‘중어(中語)’, ‘중문(中文)’은 오늘날 쓰이고 있는 중국어의 형성과 사용을 보다 더 현대적 시각에서 더 현실적으로 풀이한 것 같기도 하다. 『표준국어 대사전』(1999)에서는 ‘중어’를 ‘중국어’라고 풀이하고 “중국어는 중국에서 쓰는 말. 중어(中語)・지나어・화어(華語).”라고 주석을 달았다. 같은 사전에서 ‘중문’은 “중국 글자로 쓴 글”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 ‘중문’, ‘중어’야말로 이왕의 낱말 ‘한자’ 새김 대신 안성맞춤으로 시비가 없는 정당한 용어(用語), 둘도 없는 적당한 낱말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거듭 첨부하거나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언어 역시 광의적으로는 ‘중국어’이지만 본문에서는 ‘중국어’를 다만 중국의 공식 관용문자인 ‘한자(漢字)’와 ‘한어(漢語)’에만 귀결한다. 한국의 최신판『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에는 낱말 ‘한어’가 둘 올랐는데 그중 하나는 “중국인이 쓰는 말”이라고 주석을 달았고 다른 하나는 “‘한국어’의 준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밖에 낱말 ‘한문’은 “한자로 쓴 글”, ‘한자’는 “중국의 글자”, ‘한자어’는 “한자로 된 낱말”로 풀이하고 있다. 『국어대사전』을 비롯한 많은 사전들의 주석도 위의 풀이와 대동소이하다. 만약 한국의 우리말 사전들에서 “중국인이 쓰는 말”을 낱말 ‘한어’로서가 아니라 낱말 ‘중어’ 또는 ‘중국어’로 새겼더라면 “‘한국어’의 준말”인 낱말 ‘한어’와 혼선, 혼돈이 없을 것이 아닌가.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중국어 강습반”이요 “중국어 학원”은 많아도 “한어 강습반”, “한어 학원”, “한문 학원”, “한자 학원”, “한문자 학원” 따위는 거의 없다. ‘중화요리(中華料理)’라고는 하지만 ‘한요리(漢料理)’ 또는 ‘한식요리(漢式料理)’라고는 하지 않는다. 중국에도 ‘중의(中医)’, ‘중약(中藥)’은 있어도 ‘한의(漢医)’, ‘한약(漢藥)’은 없다. 필자가 다녀온 세계 20여개 나라들의 중국어・화어(華語) 방송국들 간판과 명칭도 “000中文電台”, “00中文電視台”, “00華語電視台”, “000華語廣播”로 일색이다. “000漢文電台”나 “000漢語電視台”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라 간에 국명의 첫 음이나 첫 자를 택해 국어명을 칭한다면 한국어와 중국어간의 숱한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번역사전 하나만을 보더라도 지난날의『한한사전(韓漢辭典)』또는『한한사전(漢韓辭典)』,『한조사전(漢朝辭典)』,『조한사전(朝漢辭典)』등을 앞으로는『한중사전』또는『중한사전』,『중조사전』또는『조중사전』이라고 보다 규범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문자의 도움이 없이 낱말 ‘한어’, 또는『한한사전』이라고만 하면 도저히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만약 ‘중어’, ‘중국어’, ‘중문’이나 ‘한중’, ‘중한’ 하면 이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시장의 최근 시판(市販)에 나온 사전류를 보면『중한사전』,『한중사전』,『중문 유사어 사전』,『중문 관용어 사전』,『중문표현사전』,『중일사전』,『일중사전』,『중영사전』,『영중사전』등등 ‘중(中)’이 ‘한(漢)’을 대체하는 대거(大擧) 바꿈의 붐이 일고 있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우리말 사전들이 취급하든 낱말 ‘한자’의 구실을 이제부터는 ‘한문’, 또는 ‘한문자’로, 가장 좋기는 ‘중문’, ‘중어’로 개칭할 것을 권간하고 보니 오늘까지 줄곧 중국 글이라고 무작정 밀어버리던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 온 듯싶어 유난히 친절해 보인다. 더구나 ‘漢字’에 앞서 6천여 년 전에 결승문자, 그림문자, 설형문자와 동이(東夷)의 골각문자, 은허(殷墟)의 갑골문자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한자(漢字)’보다 오늘날 ‘중문(中文)’, ‘중어(中語)’가 더 맞춤하다.한자는 한자로 되기전에 먼저 동이문자였고 한자(漢字)의 시조(始祖)와 정초(定礎)와도 같은 동이문자(東夷文字)를 부정한다면 바로 역사와 민족과 조상을 버리고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고유어와 우리 한자어는 모두 우리 민족의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고유어와 한자어는 한 부모가 낳은 쌍둥이 형제와도 같은 존재다. 필자는 해외 적자로서 혈혈단신의 연약한 힘으로나마 동이문자의 맥을 이어온 한자와 한자어는 다만 중국 글, 중국말이라는 수백 년, 수천 년 된 무겁고도 억울한 멍에를 기어코 벗겨버리고야 말 것이다. 우리 음으로 옮긴 한자는 일어 음으로 옮긴 한자나 마찬가지여서 다시는 단지 중국의 글만은 아님을 거듭 호소하고자 한다. 인습의 굴레를 벗은 한자가 드디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환성(喚醒)된 ‘한자’가 환성(歡聲) 높이 우리 품으로 찾아오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 한자는 곧 우리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생소하고 서먹하지만 아득한 그 옛날 우리가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익히 쓰기 시작한 그 때부터 벌써 우리 식솔, 우리 가족이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과실을 깨닫고 뉘우치노라면 우리글로 된 우리 한자를 뉘라서 학대(박대)하며 뉘라서 소홀히 하고 또 뉘라서 귀엽게 여기지 않으리오. 이제부터 우리글이라고 이름 짓고 보니 ‘우리한자’가 여간 예쁘지 않고 여간 늠름하지 않구나!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되찾은 기쁨과 보람도 즐거우려니와 이제 우리 문화유산을 전승 발전시켜야 할 과업이 더더욱 막중하다. 다음, 별도의 문제인 듯싶으나 본문에서 반드시 꼭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 하나 더 있다. 본 장절의 표제에 ‘북한’, ‘남조선’을 넣고 보니 자연히 ‘한국’과 ‘조선’이 연상되고 ‘한국’, ‘조선’이라고 하니 ‘한반도’, ‘조선반도’가 떠오르며 우리 ‘반도’라고 하니 동해바다 붉은 노을에 둥근 대망의 해가 뜨는 아침의 나라, 희망의 나라, 무궁화 만발하는 삼천리금수강산이 연상된다. 그러면서도 ‘북한’, ‘남조선’이라하면 저도 모르게 우리 고국의 산명수려(山明秀麗)와 어울리지 않게 손바닥만 한 반도 땅에서 남이 북을 ‘북한’이라, 북이 남을 ‘남조선’이라며 상대가 갖고 가꾸는 땅이며 지어는 이고 사는 하늘마저 서로 내 것, 네 것이라 아옹다옹하고 으르렁대며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우리 고국, 동족상잔으로 분단되고 동강난 고국의 어제와,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오늘의 참담한 현실에 가슴이 째지고 미어지는 듯 아프고 쓰리다. 주의나 사상, 이념과 체제를 따지기에 앞서 겨레의 치욕이 아닐 수 없는 허리 잘린 분단얘기만 나오면 서리고 맺힌 천추의 원(怨)과 한(恨), 억(臆)이 막히고 분이 터져 분기충천함을 금할 수 없다. 필자는 본 장절의 취급 내용이 남과 북의 수화상극에, 마치도 끓는 물에 손을 넣는 것이나 다를 바 없고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코 까닭 없고 실속 없는 괜한 근심과 걱정이 아니며, 공연한 노릇이라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사안이 워낙 거창하고도 엄숙하고 너무도 심각하고 복잡한 통일문제와 관련되기에 아직은 어떤 결실을 기대하기엔 너무 묘망하고 묘연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에 의해 필히 풀려야 할 난제이고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기에, 강 건너 불 보듯이 구경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기에 멀리서 돌을 던져 길을 묻고 공황에 기죽어 막대기를 휘둘러 어둠을 쫓기보다 필자가 스스로 투신불사(投身不辭)로 먼저 가시덤불을 헤쳐 보고 낭떠러지에 뛰어들어 구경(究竟)을 얻고자 한다. 분기(分岐・憤氣)와 분쟁(分爭・忿爭・紛爭)으로 얼룩지고 대립과 대치(對峙)로 맞선 남북문제를 아무리 조심히 다룬다고 해도 남북과 안팎에 모두 다 만족스럽지 못하여 괜한 미움을 스스로 자초(自招)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버성기고 곪아 터지고 썩어가고 있음을 뻔히 보고만, 무한정 미루기만 할 수 없지 않은가. 통일이 되어야만 풀릴 것이라고 미루고 무작정 통일이 될 때 까지 무한정 오금이 저리도록 꿇어 빌며 기다릴 수는 없다. 엄연한 현실, 미룰 수 없는 현상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기에 필자의 사색과 고민을 일가견으로 본 장절에서 전문 남북과 북남의 호칭 내면의 핵(核)을 파고들고자 한다. ‘한국’과 ‘조선’, ‘한반도’, ‘조선반도’를 국제사회에서는 Republic of Korea 또는 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Korean Peninsula라고 칭한다. 필자는 우리 고국은 왜 남북이 함께 사용해도 될 만한 ‘Korea’와 같은 호칭을 우리말로 남북・북남이 하나로 ‘000’라고 이름 지어 편히 부를 대신 항상 ‘북한’이니 ‘남조선’이니 하며 서로 제가끔, 각자의 주장과 정서, 정동 내지 충동을 섞어 폄론(貶論)으로 폄칭(貶稱)과 비칭(卑稱)을 지어 따로따로 상대방에 저주(詛呪・咀呪)를 퍼붓다시피 불러야 하나 하고 사색하고 고민하게 된다. 해외동포의 입장에서 보면 고국은 분명히 하나인데 나라는 ‘한국’과 ‘조선’ 둘이고, 우리는 반만년 백의겨레로 단일민족이지만 고국에는 ‘한민족’과 ‘조선민족’이 따로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만이 육지에 이어진 땅을 ‘반도’라고 하며 우리 해외동포들은 고국을 친절하게 ‘우리 반도’하고 하는데 고국에서는 제가끔 ‘한반도’, ‘조선반도’라고 일컫는다. 필자는 본문을 쓰면서 요즈음 불현듯 스스로를 ‘조선민족’이라고 해야 할지 ‘한민족’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에 좇아 ‘朝鮮族−ChaoXianzu−초우세엔주우’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필자의 "우리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 상편 제24, 25쪽, 하편 제11절 제304쪼 참조--이하 "우리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를 "본문"으로 약칭함 ) 중국 연변대학에는 조선-한국학원이 있고 세계 각국에도 ‘조선・한국’ 또는 ‘한국・조선’이라고 명명한 학술단체나 연구모임이 많다. 고국의 남북문제 연구를 위함이 아니라 고국의 같지 않은(서로 다른) 국명(國名)을 염두에 둔 단체와 모임들이다. 중국의 조선민족들은 새 중국 건립(1949년) 후 중국의 소수민족정책 배려(본문 하편 제12절 제322쪽∼제330쪽 참조)에 감개무량하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떠넘긴 이중, 삼중의 무거운 짐을 더 짊어지고 있어 너무 힘들다.(재일동포들의 민족으로서의 ‘조선’에 얽힌 사연은 생략) 한국의 문법, 어법을 따르려고 하니 중국 조선민족의 현실을 너무 떠나게 되는 것도 어렵거니와 지금껏 갖고 있고 지키고 있던 너무 소중한 참된 도리를 저버리고 잃어버리는 듯싶어 가슴이 미어지고, 중국의 조선어사정위원회의 규정을 지키려고 하니 고국과 멀어지는 듯싶어 참으로 “위엄은 상설 같고 은혜는 태산 같아 아니 가기 어려웁고 가기 또한 어려워라”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언어도 민족과 마찬가지로 단일민족에게는 으레 말도 하나, 글도 하나로 일컬어야 함이 당연한데 왜서, 무슨 까닭으로 우리민족에게는 인위적으로 ‘한글’ 따로 ‘조선어’ 따로 인가?!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이를 ‘한글’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조선글’이라고 해야 할지, 같은 동포끼리 만나서도 주고받는 말이 ‘한국어’인지 ‘조선어’인지 갈래와 두서를 잡지 못하겠다. 당분간 분단 된 현실을 감안하여 나라 명(國名)은 잠시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민족명(民族名)과 말과 글의 언어(言語・語言)명(名)만은 통일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하루 빨리 힘써 통일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선 우리 고국의 기구하고 복잡한 국명(國名・國命)부터 보자. 한국의 거의 모든 사전들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는 낱말은 없고 다만 대신 ‘북한’이라는 단어가 있다.『국어 대사전』에서는 ‘북한’을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고 풀이하고(1677쪽),『새국어사전』(1994년)에서는 “①(광복 후의)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국. ②(6・25 사변 후의) 휴전선 이북의 한국”(941쪽)이라고 새겨져 있다. 조선의 사전들에는 ‘대한민국・한국’이라는 단어가 없고 대신 ‘남조선’이라는 낱말이 올랐다.『조선말사전』(1962)에서는 ‘남조선’을 ‘남부조선’(제1권 제712쪽)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칭으로 ‘조선’을 ‘북한’ 즉 대한민국의 일부분이며 방위(方位)로 북녘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로 ‘북한’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고로 한국사전에서는 ‘북한’을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괴뢰정권이며 주권국가인 저희(자기)들 ‘한국’의 북반부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는 ‘대한민국’을 괴뢰정권으로 치부하며 ‘남조선’ 즉 조선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조선의 남녘땅이란 의미로 ‘남조선’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로 조선의 사전에서는 ‘남조선’을 ‘남부조선’으로 풀이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은 주권국가인 저희(자기)들 ‘조선’의 남반부라는 뜻이다. 남(南)은 반도 전체를 ‘한반도’로 명하고 북(北)은 반도 전체를 ‘조선반도’로 명하며 서로 원하지 않는 폄격(貶格)된 별명(別名)을 지어 ‘북한’, ‘남조선’ 으로 일컫고 있다. 남과 북 모두 대상국을 자기의 영역, 영지, 영토의 일부분으로 주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영유권, 영도권, 지배권을 꼭 되찾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받침 되어 있다. 이는 분기와 분쟁, 대립과 대치만 야기(惹起)시킬 뿐이다. 필자는 한국의 많은 사전들에 오른 ‘남침(南侵)’이라는 낱말 풀이와 예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서림에서 펴낸『국어 대사전』(제676쪽)과 『엣센스 국어사전』(제408쪽), 동아출판사에서 펴낸『새국어사전』(385쪽)에서는 ‘남침’을 “남쪽을 침략함”이라고 풀이하며 예문으로 “북괴의 남침”이라고;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국어 대사전』(1999년)에서는 ‘남침’을 “북쪽에서 남쪽을 침범함.”이라고 풀이하며 “북한의 남침 야욕”, “북한 공산군은 38선을 넘어서 남침을 감행하였다”고 예문을 달았다. 필자는 낱말 ‘남침’의 사전 풀이를 “남쪽을 침략함”이라고 함에는 틀림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남쪽을 침략함”에서 ‘침략(侵略・侵掠)’이라는 단어가 고국의 6・25전쟁(육이오 동란, 한국 전쟁)에 인용되고 있다는 점에 소름이 끼친다. 우리한자 [侵]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침노할 침], 뜻풀이와 해설에서는 “사람이 남의 땅으로 진입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낱말 ‘침략’을 ①“남의 나라를 불법으로 쳐들어가서 약탈함.” ②“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나라에 쳐들어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밖에 침경(侵耕), 침경(侵境), 침공(侵攻), 침노(侵擄), 침벌(侵伐), 침범(侵犯), 침습(侵襲), 침월(侵越), 침입(侵入), 침점(侵占), 침해(侵害); 침략국, 침략군, 침략기, 침략배, 침략상, 침략성, 침략자 등 단어풀이를 보면 모두 다 ‘남의 땅’, ‘남의 지경’, ‘남의 영역’, ‘남의 나라’를 범하고 해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있다. 그렇다면 ‘남침’은 “남쪽을 침략함”이고 “북한 공산군은 38선을 넘어서 남침을 감행하였다”는 예문은 “… 북한 공산군은 …남쪽에 있는 ‘남의 나라를 불법으로 쳐들어가서 약탈’을 감행하였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침략’은 ‘남의 나라를 쳐들어간다’는 뜻임을 거듭 강조) 한국의 ‘남침’이라는 용어(用語)대로라면 62・5전쟁 당시부터 남(한국)과 북(조선)은 벌써 서로를 남의 나라라고 승인하고 인정하는 듯싶다. 그러나 만약 한국의 사전 새김대로 ‘북한’을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면 ‘북한 공산군’은 남의 나라가 아닌 ‘한강 이북의 한국 공산군’이기에 남의 나라 군으로 볼 수 없다. 때문에 한나라의 군과 군의 전쟁에 ‘침략’이라는 단어가 너무 적절치 않다. 지난세기 50년대 초 당시 남의 나라를 통일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 전쟁이 아닐 터이니 ‘남침’이라는 용어를 ‘북한’이라는 호칭과 함께 쓰지 말아야 한다. ‘한강 이북의 한국’인 ‘북한’과 ‘남쪽에 있는 남의 나라를 쳐 들어간다’는 ‘남침’이라는 두 단어에 내포된 함의(含意), 즉 전자는 남과 북은 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후자는 남과 북은 한 나라가 아님을 시사(示唆)하는 듯한 자초한 자기모순(자체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6・25전쟁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쳐들어가는 ‘침략’ 성질의 전쟁이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내전(內戰)’으로 보고 있다. 중국도 공산당과 국민당과의 전쟁을 누가 누구를 침략하는 전쟁이 아닌 ‘국공내전’, 또는 ‘국내해방전쟁’이라 하며 미국도 1860년의 ‘남북전쟁’도 미국의 내전으로 일컫는다. 필자는 이러한 ‘북한’, ‘남조선’ 등 국명 호칭과, ‘남침’과 같은 용어는 일반 상식을 넘어 국제공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남북화해와 협력 내지 궁극적인 통일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한국에서 조선을 ‘북한’으로 일컫자 한국과 가까운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와 유럽에서도 덩달아 ‘북한’으로 부르고, 조선에서 한국을 ‘남조선’으로 일컫자 조선과 가까운 나라들에서도 덩달아 ‘남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형제간이 반목(反目)하여 서로 별명을 지어 부르니 동네에서도 덩달아 제가끔 짝을 나누어 별명을 지어 놀리는 격이다. 중국도 한국과의 수교(修交) 전까지는 줄곧 ‘남조선’이라고 일컫다가 수교 후부터 국명을 ‘대한민국’, 약칭으로 ‘한국’으로 공식 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반도’만은 ‘한반도’가 아니라 ‘조선반도’라고 명하고 있다. 분단된 고국은 세계 두 진영의 냉전의 현대판 축도(縮圖)로 되었다. 어느 한 집안의 알력과 불화가 온 동네의 심심찮은 소일(消日)거리가 되고 지어는 남의 행실을 빌미로 삼아 서로 제 속셈(꿍꿍이셈)을 채우듯이 고국의 남과 북의 냉전과 대립은 국제사회의 초미(焦眉)의 관심사로 되고 있다. 반도 땅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풍운은 세계 정치, 외교, 군사의 초점으로 되어 고국은 편한 날 하루 없이 수십 년간 세계 몇몇 대국의 힘겨루기의 격투장(格鬪場)으로 되어버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무고한 우리 겨레만 당하고 있다. 남북과 북남의 반목의 화근(禍根)은 곧 ‘북한’이요, ‘남조선’이요 하는 서로의 호칭부터이다. 남과 북 모두가 상대방을 괴뢰정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한국 사단법인・공산권문제연구소에서 펴낸『북한대사전』(1974), 조선 사회과학출판사에서 펴낸『정치사전』(1973) 참조) 한국과 조선은 휴전(1953년 7월 27일) 후 반세기 넘어 오늘날 모두다 세계 정치무대에서 주권국가로서 각자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 특히 1973년 육이삼 평화 선언 후 두 나라는 모두 국가의 삼 요소 즉 국토, 국민, 주권을 갖고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절대적 힘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을 가졌다. 필자는 위에서 피력한 ‘6・25전쟁 당시의 남북관계’와 광복 후 60여년, 휴전 후 50여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과 조선의 주권 및 통일문제’를 동일시(同一視)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 결정에 따른 반도의 3・8선 문제, 8・15 광복 직후 신탁 통치를 반대한 국민운동, 남측의 1945년∼1948년 사이 ‘군정시대’와 북측의 1946년∼1947년 사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시기, 당시 반도의 상황은 일제 식민 통치로부터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되찾은 주권은 우선 나라와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을 전제로 삼아야할 과업이라면(김구의 “나의 소원”,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참조); 유엔 동시가입(1991년 9월 17일)이 된 오늘의 남북은 장기적인 평화정착을 전제로 한 서로간의 체제유지와 주권인정, 상호 승인과 존중 내지 평화통일을 위한 준비가 으뜸 과제라고 보고 있다. 낱말 ‘주권’을 한국『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제25권 제345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주권 主權 sovereignty 국가 구성요소의 하나인 최고・독립・절대의 권력. ①국가권리의 최고・독립성을 뜻할 때가 있다. 주권국(主權國)이라고 할 때의 주권은 이 뜻이며, 국제법상으로는 특히 다른 어떠한 국가의 권력에도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②국가의 최고의사를 의미할 때가 있다. ③국가권력 또는 통치권 그 자체를 가리킬 때가 있다. 영토주권이 있다 할 때의 주권은 이 뜻이며, 국민주권 또는 군주주권이라 할 때의 주권은 이 뜻으로 해석된다. … … 한국의『세계백과대사전』(제17권 제290쪽)은 낱말 ‘주권’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어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어떤 형세 하에서나 자치(自治)하는 모든 국가는 주권을 가지고 있다, 주권의 개념은 <자치>와 <독립>의 특징으로서 표현 된다… 자치라는 것은 주권의 내면을, 독립이라는 것은 주권의 대외적 면을 의미하고 있다… 주권은 영토주권 및 국민의 불가침권이 있다.……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1981)(제1842쪽)에서는 낱말 ‘주권’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어느 한 계급이 자기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사회를 통일적으로 움직여나가는 국가권력으로서 그 무엇에 의해서도 제한받거나 침해당하지 않는 국가통치의 최고권력.…… 같은 사전에서 ‘주권국가’의 풀이는 “정치적자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라고 해석하고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나라는 모두 국제 사회에서 당당한 국가적 협약의 권리와 능력을 갖춘 주권국가라고 본다. 필자는 본문에서 남과 북의 국책과 시책 운운은 피하고 다만 각자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국명(國名), 국어명(國語名), 민족명(民族名)을 바로 새기고 서로 옳게 호칭하는 길을 찾고자 할뿐이다. ‘조선’은 현재 세계 161개 나라와, ‘한국’은 188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무려 158개국과 동시수교(교차수교)가 되어있다. 유엔에도 ‘대한민국’ 국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가 한 하늘아래 한 청사에 가지런히 나부끼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도 공식으로 나라명칭을 각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남과 북을 상대한 국가 원수들 간의 상호 내방(순방)과 정상회담 내지 국가적 외교,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올림픽경기장에도 두 나라 국기가 함께 오르내리고 두 나라 국가가 주악되고 6자회담에서도 각 주권국가 대표들이 국가의 공식대표의 자격으로 수차 허심탄회하게 무릎을 맞대고 있다. 한국과 조선의 현행 체제의 상호인정은 남북・북남 간에만 남아있다. 실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남북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하 ‘협정’이라고 약함) 서언과 총5조, 63조목으로 된 ‘협정’ 전문에 이미 ‘조선’이라는 호칭(互稱・呼稱)이 여러 번 제시(提示)되었다. 아래 ‘협정’ 서언의 첫 대목을 인용해 본다.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一方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 인민 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一方으로 하는 下記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   ‘협정’ 제3조 제57조목 (ㄱ.)의 첫대목이다.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즉시로 국제연합군에 군대를 제공하고 있는 각국의 적십자 대표를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 대표와 중화인민공화국 적십자 대표를 다른 일방으로 하여 조직되는 공동적십자소조를 설립한다.… ‘협정’ 마감의 서명을 보자.  이 3개 국어에 의한 각 협정의 본문은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 국제연합군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최고사령관             사령관          미 육군대장          조선민주주의인민    팽 덕 희마크 W.클라크      공화국원수                            김 일 성 위키백과―“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에서 “대한민국”을 찾아보면 “동아시아의 한반도 남부에 자리한 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동쪽으로는 일본이 있으며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맞닿아 군사적으로 대치중이다.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진작 두 나라(남북)간에도 공식 인정(認定)된 상태이다.   2007년은 중국의 ‘중−한 친선의 해(中韓友好年)’이었고 2009년은 ‘중−조 친선의 해(中朝友好年)’였다. 반세기 넘는 조선과 쏘련의 친선관계, 낮과 밤이 상반되는 조선과 꾸바의 친선을 “조선이 잠을 잘 때에는 꾸바가 사회주의를 지키고 꾸바가 잘 때는 조선이 사회주의를 지키면서 혁명의 먼 길을 걸어왔다.”는 두 나라 관계에서의 ‘조선’은 주권국가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일컫는 ‘북−미 외교’, ‘북−일 관계’ 등에서의 약칭 ‘북’은 ‘한강 이북의 한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는 곧 ‘조선과 미국외교’, ‘조선과 일본관계’를 뜻하는, 주권국가로서의 ‘조선’으로 알고 있다. 다만 당사자들 간의 알력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하여, 서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서로 자기만이 유일한 주권국가, 유일한 주권정부라고 자처한다고 하여 상대 국가와 상대 정부가 없어지는 법이 아니다. 남북(북남) 정상이 만나는 자리에서만 체면에 겨우 ‘북측’, ‘남측’ 하다가 돌아서서 수만 틀리면 다시 ‘북한’, ‘남조선’ ‘북괴’, ‘남조선괴뢰도당’, ‘북한 괴뢰군’, ‘남조선 괴뢰군’, 서로 ‘괴뢰정부’, ‘역적패당’이라고 비방, 중상함은 일괄적이 되지 못한 통일과 안보 및 외교의 혼선과 허점을 보여 준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이−1971년 유엔의 2758호 결의에 따라 유엔에서 축출되고 중국과 공식 외교관계가 있는 모든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는, 또한 인정해서는 아니 되는 중화민국−대만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동시에 둘을 다 인정해서는 아니 된다는 중국정부의 엄정한 입장은 국제사회의 공인된 인식이며 규례이다.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종래로 대만당국을 ‘대만괴뢰정부’ 또는 ‘대괴(臺傀)’라고 비방하지 않는다. 비난과 중상 대신 오히려 자유왕래, 경제 협력 내지 문화교류 등 제반분야의 합작을 활발히 벌려 상호 요해와 신임 및 평화를 쌓고 있다. 필자는 복잡하고 심각한 남북(한반도・조선반도)문제를 본문에서 몇 마디로 쉽게 풀어보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필자는 다만 남북이 함께 수긍할 수 있는, 서로 편하게 호칭할 수 있는, 만난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돌아선 자리에서도, 헤어진 자리에서도, 좋아도 나빠도 서로 변함없이 호칭할 수 있는 공식부름(이름씨)을 찾고자 할 따름이다. 필자는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한호석씨의 ‘완충기적 중간 상태’에서 ‘국가연합 단계’가 아닌 ‘연방국가 초기 단계’설과; 강정구씨의 ‘접합론’; ‘상호주의적인 변혁의 요청’을 주장한 리영희씨의 견해; ‘수렴형통일 모델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손호철씨의 통일론을 서로 시야비야하며 수긍하거나 찬성 또는 반대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고국의 통일을 가로막고 남북 서로에 알력, 불화, 적대시로 반목만 쌓는 분단선에 서린 ‘휴전’과 ‘정전’ 상태를 그대로 묵과하고 묵인한다면, ‘휴전’과 ‘정전’ 상황을 외면하거나 회피한 모든 설은 공담에 불과하다고 본다. 고국은 반세기 넘어 줄곧 휴전(休戰)과 정전(停戰)이라는 인위적으로 설정한 무섭고 살벌한 분위기를 감내・감인(堪耐・堪忍)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스스로 자초한 것은 아니지만 그 쓰디쓴 분단의 악과는 장장 반세기 넘어 남북을 괴롭히고 있다.(전쟁의 시종(始終)과 원인, 배경 등은 생략함) 교전국(交戰國)이 서로 합의하여, 전쟁을 얼마 동안 멈추는 일을 휴전이라 하고, 교전 중에 있는 쌍방, 또는 다방이 합의에 따라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일을 정전이라 한다. 고국의 남과 북은 아직도 정전 상태에 머물러 있고 고국의 허리는 아직도 휴전선(休戰線−1953년 7월 27일, 6・25 전쟁이 낳은 군사 경계선)에 감겨 있으니 고국은 여전히 전시(戰時)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전쟁의 전투가 끝나지 않았고 다만 다시 싸우기 위해 서로 칼을 갈며 좀 쉬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라면 교전국이 휴전과 정전 상태이니 언제든지 다시 싸울 수 있고, 또한 최후 승전(勝戰)을 위해서는 서로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고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는 이치다. 휴전선이 있는 한 교전국 쌍방은 항상 비상에 걸려 서로 전쟁준비와 전투태세를 갖춤은 당연지사이며 그 누구도 비방할 바가 못 된다. 승전을 위한 전비(戰備)에 왈시왈비는 내정간섭(內政干涉)과도 같다. 정전과 휴전 상황에서는 선전(宣戰)포고에 관계없이 항상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각종 군사훈련을 포함한 무력시위, 무력시탐, 무력도발, 지어는 교전(交戰), 교화(交火)로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교전 쌍방 또는 교전 다방이 정전에 따른 협정을 굳게 지켜야하겠지만 정전협정은 어디까지나 평화협정과 달리 정세에 따라 승전승산(勝戰勝算)만 있다면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국제공법(戰時國際公法)’에도 ‘휴전’ 및 ‘종전’과 ‘포로’에 대한 법은 있어도 ‘개전(開戰)’을 다룬 법은 없다. 고국의 남북은 아직 정전 상태이니 휴전은 상대적인 잠시 현상일 뿐 서로 다시 싸워 전쟁을 끝내거나 아니면 평화선언으로 휴전, 또는 정전 체제, 냉전 체제를 종식시켜야만 하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시점에 왔다. ‘휴전’과 ‘정전’, ‘휴전선’은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의미할 뿐이다. 바로 ‘휴전선’이 있기에 호시탐탐 ‘북한’과 ‘남조선’이 생기게 되었다. 서로 헐뜯고 폄하(貶下)된 별명(別名)이 아닌 공식 정명(正名), 대명(大名)을 서로 호칭(互稱)할 수 있어야만 상호 소통과 교류, 신임과 존중이 가능하다. 필자는 정전담판을 종전(終戰)담판으로, 정전협상을 종전(終戰)협상으로, 휴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꾼 새로운 토대에서 평화선언으로 ‘연방국가 초기 단계’든지, 또는 ‘공화국 연방 방식’이든지 아니면 다른 어떠한 방식과 어떠한 수준에서라도 일단은 당장 서로 주권과 당국, 체제를 인정하는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기를 간권한다. 철천(徹天)의 대결이 아닌 상호 인정과 평화 공존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만 종당에는 전쟁이 아닌 평화로써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 필자는, 고국에서 다시는 동포상잔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남북이 모두 평화를 갈망한다면 전쟁을 뜻하는 휴전선을 하루 빨리 걷어버리고 당금 통일을 맞을 수는 없는 정세에, 휴전과 정전 대신 전쟁을 종말 짓고 평화가 깃든다는 뜻으로 지금의 ‘휴전선’ 명칭을 삼팔선이 조국의 허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으로 ‘허리선’ 또는 ‘허리띠’ 아니면 ‘지경선(地境線)’, 좋기로는 ‘통일선(統一線)’, 아니면 통일의 길로 가닿는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지름선’으로 개칭하도록 합의를 볼 것을 간권하다. 남북선(南北線), 화합선(和合線), 인내선(忍耐線), 당분선(當分線), 아니면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곳을 뜻하는, 그보다 일의 중요한 고비나 절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뜻으로의 ‘고개’를 택하여 ‘고개선’, 또는 생사의 고비, 통일의 고비를 뜻하여 ‘고비선’ 등등도 권장해 본다. 다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장기적인 평화가 정착될 것이고 그로 하여 절감되는 서로의 엄청난 대남・대북 비상금과 해마다 늘어나는 국방비를 군축하여 남북 경제와 문화 협력을 추진하며 남과 북이 뭉친 힘으로 국제사회에서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 하며 아울러 북과 남이 손잡고 함께 모든 해외동포들을 배려하고 포섭하다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 겨레는 자연히 말도, 글도, 민족도, 고국의 호칭도 하나로 다시 통합될 것이고 종당에는 평화통일을 이룰 것이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근이 오르내린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서로 인정하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공경하는 호칭이 어쩌면 남북의 상호 화해와 상호 접촉 내지 상호 교류와 상호 협력의 물꼬가 될는지도 모른다. 국명호칭에서 국가연합 단계가 아닌 연방국가 초기 단계로, 또는 공화국 연방 방식으로 서로 상대 정부(당국)를 공식 인정함으로 인해 영구 분열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越南・Vietnam)의 남과 북으로 갈라졌던 남베트남(南越)과 북베트남(北越) 역시 제각기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라는 국명을 가진 주권국가였지만 1976년에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일이 되었고, 독일(獨逸・Deutschland)의 동과 서로 분단 되였던 동독(東獨)과 서독(西獨) 역시 제가끔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으로 국명을 지닌 주권국가였지만 1990년에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서로 상대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상대의 국토를 자기의 영토의 일부분으로 주장하는, 그로 하여 북에서는 ‘한국’을 ‘남조선’, ‘남조선괴뢰도당’, 남에서는 ‘조선’을 ‘북한’, ‘북괴’라고 빈정대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상호양해와 상호접촉, 화합협력을 이루는데 장벽이 아닐 수 없다. 이로 하여 조성된 냉전보다 더 긴장한 서로에 대한 호시탐탐하는 분위기가 주변 국가와 세계평화에 끼치는 영향도 문제려니와 이 기회에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보려는 암특한 놈들의 만만찮은 간계 또한 가볍게 봐서는 아니 된다. 반세기 넘어 줄곧 우리 무고한 남북 겨레만 도탄에 빠져 동족상잔에 희생되고 있다. 삭막하고 피폐해진 민생의 비애는 단장(斷腸)의 아픔과도 같다. 고국의 문제는 결국 남북의 문제이고 남북문제는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남북의 우리 동포들끼리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제 다시는 꼭두각시가 되지 말아야 하고 또 서로 꼭두각시라는 폄박(貶薄)한 누명(陋名)으로 상대를 질책, 질타(叱咤)하지 말아야 한다. 본시(本始)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本是同根生) 왜 이리도 상잔(相殘)함이 심(甚)하고 또한 끝이 없는가. 남북(북남) 당국은 분단 60여년의 현실을 정시(正視)하고 국제공법과 국제공약, 국제관례에 따라, 겨레의 마음을 담아 하루 빨리 한국은 ‘북한’이라는 호칭(呼稱)을 폐지하고 ‘조선’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표기하고 불러야 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조선은 ‘남조선’이라는 호칭을 폐지하고 반드시 ‘한국’ 또는 ‘대한민국’으로 표기하고 불러 상호인정, 상호평등, 상호신임, 상호존중, 상호공영의 토대에서 장기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공존번영 끝에 마침내 통일을 이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평화정착에 의한 상호 주권인정은 모든 갈등과 알력, 불화, 반목, 대결과 적대시를 해소하고, 지어는 전쟁을 막는 영단명약으로 될 것이다. 정전협정이 아닌 평화협정, 어쩌면 바로 이 영단명약으로 냉전을 종결짓고 평화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당금 그때그때 비상에 대처하여 비료, 식량, 석유, 약품, 생필품 등 지원도 요긴하고 고위급 회동과 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장기적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이룩하고 정착시킴이 으뜸이고 선참이며 우선이다. 상호간의 가장 값진 선물과 지원은 평화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다. 평화체제정착은 정부당국 도량의 시금석이요 지도자의 좌우명이다. 평화를 떠난 통일은 아니 이루기만 못하다. 다음 ‘한글’과 ‘조선글’을 보자. 필자는 역사적인 원인, 고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원인으로 하여 현재 서로 국명이 다름에 따라 ‘한글’과 ‘한국어’, ‘조선말’과 ‘조선어’라고 불리어지고 있지만 실은 이는 광의(廣義)로 보면 팔일오 광복 전후까지는 본질적인 동일한 언어에 대한 서로 다른 명칭이라고 본다. 필자는 우리글이 태어나면서(훈민정음, 정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님을 밝혀 한국에서의 ‘한글’ 새김을 시정(是正)할 것을 간권(諫勸)한다. 한국의 많은 사전들은 ‘한글’을 1446년 즉 조선 제4대 세종 28년의 ‘훈민정음’이라고 새기고 있는데 필자는 이를 오류(誤謬)로 된 오판(誤判)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서 잠시 한(韓)글의 유래를 밝혀 본다. 많은 사람들은 ‘한글’의 옛 명칭은 ‘훈민정음’이었고 ‘훈민정음’의 현대명칭은 바로 ‘한글(현재 조선에서는 조선글)’이라고 한다. 즉 ‘훈민정음이 곧 한글이고 한글은 곧 훈민정음’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훈민정음이 생기면서부터 우리글과 함께 이름씨 ‘한글’이 나온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韓)글의 유래를 밝히자면 한(韓)글과 함께 한(韓)국의 한(韓)자 돌림 역사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은 1948년 8월 15일에 완전독립을 선언하면서 부터였고 그 바로 전 광복 후 3년간은 유엔의 감시 하에 총선거 과정이었다. 또 그 전의 1919년 4월부터 1945년까지는 중국 상해에서 조직 선포한 한국의 임시 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시대였는데 임정(臨政)은 중국 중경(重慶)으로 옮겼다가 본국으로 입국해서 후에 해체되었다. 역사를 거슬러 1897년 8월 16일, 조선 왕조 말 고종 30년에 열국의 승인을 얻어서 제정한 국호가 바로 대한제국(大韓帝國1897-1910)이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나라 글을 한(韓)글로 했었지만 이 한글 이름은 주시경(周時經)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어린이 잡지『아이들 보기』(1913)의 끝에 횡서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훈민정음으로부터 꼬박 467년이 지난 후 한글이라는 부름말(호칭)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되기에는 조선어학회가 주동이 되어 훈민정음 반포 8주갑(周甲)이 되는 해에 음력으로 9월 29일을 반포 기념일로 정하고 그 이듬해인 1928년에는 ‘가갸날(1926년)’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 부터이다. ‘한글’이란 말 자체의 뜻은 ‘한(韓)나라의 글’, ‘큰 글’,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뜻이다. 훈민정음으로부터 꼬박 482년이 지난 후 한글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에 우리말을 무엇이라고 이름을 달았을까? 한(韓)이라 하면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여 삼한 시기가 있긴 하나 그땐 상고시대여서 오늘의 한(韓)글의 유래와는 관련이 없는 듯싶다. 기재를 보면 훈민정음으로부터 한글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 언문(諺文), 언서(諺書), 정음(正音), 반절(反切), 암클, 아햇글, 가갸글, 국서(國書), 국문(國文), 조선글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이고 권위적인『국어대사전(2006)』에서는 낱말 ‘한글’(제4265쪽)의 주석을 다음과 같이 달고 있다. 한글  한국의 고유한 문자. 조선 제4대 세종(世宗) 28년(1446) 음력 9월 상한(上澣)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이름으로 국자(國字)로서 반포된 것으로, 처음에는 자모가 28자였으나… 위의 사전풀이를 보면 ①‘한글’은 마치도 ‘훈민정음’과 함께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②‘한글’이 유일하게 ‘훈민정음’이란 이름을 이어받은 것 같기도 하여 마치도 ‘훈민정음’과 ‘한글’사이에는 종래로 다른 이름씨가 없는 듯싶다. 하지만 방금 전에 실례를 들었던 언문, 언서, 정음, 반절, 암클, 아햇글, 가갸글, 국서, 국문, 조선글과도 같은 우리글을 일컫는 명사가 ‘훈민정음’이 태어나서 ‘한글’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까지 많고도 많았다. 필자는 ‘한글’ 풀이를 응당히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20세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달리 이르는 국자”라고 새겨야 한다고 본다. 더 간단히 새긴다면 “대한민국의 국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우리글이 생겨서 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글 명칭(1913년)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안 되지만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겨레한자는 훈민정음부터 우리글을 적기 시작해서는 금년(2009년)이 563년이요, 우리글이 생기기 전에는 한문한자가 우리 문자 역사에서 무려 수 천여 년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해야겠다. 하오니 우리가 오래전부터 우리의 것으로 익히 써오던 선택되고 정착된 한문한자도 우리글이라고 해야 하며 우리 국자로 명분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전에서의 낱말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의 새김 역시 오류로 된 오판임을 밝히고자 한다.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1999)』에서는 낱말 ‘조선글’과 ‘조선문’을 “‘한글’의 북한어”라고 풀이하였고 ‘조선말’은 = ‘조선어’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낱말 ‘조선어’를 찾아보면 “①일제 강점시기에, ‘우리말’을 이르던 말. ②조선 시대의 언어”라고 주석을 달았다. 한국의『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는 낱말 ‘조선어’를 한동안은 “한국어”라고 주석을 달다가 최근에 와선 “북한이나 해외 일부에서 쓰는 한국어”라고 풀이하고 있다. 실은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는 ‘조선’에 뿌리를 둔 ‘조선’에서 사용하는 글과 말이다. 즉 조선의 글과 조선의 문자 또는 조선글로 된 문장, 그리고 조선말이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단군(檀君-기원전 2333년)의 ‘고조선’과 1392년부터 1910년 사이의 이씨 근세조선도 ‘조선’이며 지금 반도 땅의 이북의 국명도 ‘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이다. 우리는 위의 사전풀이에서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를 한국에서 ‘한글’의 북한어, 또는 ‘한국어’라고 함에 1910년 전까지의 수백, 수천 년간 조선 시대의 ‘조선어’를 적어온 우리문자가 진노(震怒)하지 않음에 진노(瞋怒・嗔怒)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100년도 안된 ‘한글’이 수백 년, 수천 년도 더 된 ‘조선어・조선글・조선말’을 “‘한글’의 북한어”, “한국어”라고 딱지를 붙여 삼켜버리려 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을 비롯한 모든 국어사전들에서 시급히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는 ‘한글’도 ‘한국어’도 아니며 더구나 이른바 ‘북한’의 글이 아닌 말 그대로의 조선의 글과 조선의 문자 또는 조선의 문장이라고 바로 잡기를 호소한다. 낱말 풀이를 필요에 따라 ‘조선’의 시대, 유래나 배경을 밝히면 그만일 뿐이다. 조선에서 펴낸『조선말사전(1962)』제4권 제299쪽을 보면 낱말 ‘조선어’를 = ‘조선말’이라고 풀이하고 있고 다시 ‘조선말’ 풀이를 찾아보면 다만 “조선 사람의 말”이라고 새겨져 있다. 문제로 된 우리글의 새김을 찾으려고 아무리 샅샅이 훑어보아도 낱말 ‘조선글’은 전연 없고 다만 낱말 ‘조선문’만이 있을 뿐이며 ‘조선문’ 풀이는 ‘조선글’이라고 했을 다름이다. 말하자면 ‘조선글’ 풀이를 찾아보라는 뜻이겠지만 사전에서는 낱말로 올린 ‘조선글’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조선말사전』(1981)에는 아예 ‘조선글’, ‘조선글자’뿐만이 아니라 ‘조선문’이라는 단어도 오르지 않았다. 사전의 부실함에 유감천만이다.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에서는 오히려 2291쪽에 ‘한글’이라는 낱말을 “‘우리 나라 글자’를 이르던 말”이라고 유표하게 새겨져 있다.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에서 낱말 ‘조선글’과 ‘조선문’을 ‘한글’의 북한어라고 풀이하는 식으로라면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도 ‘한글’을 ‘조선글’의 남조선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만 ‘지난날 일컫던 우리나라 글자의 이름’일 다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필자는 이처럼 우리글을 현재 남에서는 ‘한글’ 또는 ‘‘한글’의 북한어’, 북에서는 ‘조선어’라고 칭함에 남들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 고국을 ‘한반도’라고 칭함은 ‘대한제국’, ‘대한민국임시정부’ 또는 ‘대한민국’의 국명을 의미하고 인정하는 뜻에서 [한]을 첫 자 또는 첫 음으로 선정한 것이고 따라서 말과 글도 나라말, 나랏글이기에 ‘한글(1913)’, ‘한국어’라고 칭한다고 본다. 혹자는 한(韓)을 삼한 시기를 연상하여 한(韓)글의 유래를 그때와 관련시키려 하나 아득한 그땐 상고시대여서 고증할 길이 없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고국을 달리 ‘조선반도’라고 칭하며 ‘고조선’과 ‘근세조선’, 지금의 ‘조선’이라는 국명을 의미하고 인정하는 뜻에서 나라말과 나랏글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의 일부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조선말’, ‘조선글’, ‘조선어’, ‘조선문’이라고 칭함을 잊거나 무시해서도 아니 됨을 강조한다. 실은 국가명과 관계없이 국어(國語)를 영어(영문)로 쓰는 나라(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등)가 부지기수이고 수많은 나라(캐나다, 인도, 싱가포르 등등)들에서는 영어와 함께 불어, 힌디어, 말레이어를 비롯한 두세 가지 문자와 언어를 국어로 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지난 날 동서로 분단되어 냉전 속에 수십 년이 지났지만 언어는 여전히 ‘독일어’ 하나로 통일을 맞이했고 베트남도 남북으로 갈라져 수십 년이었지만 ‘베트남어’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소련(蘇聯)이 해체되어 십여 개 나라로 갈라졌지만 제가끔 나라이름(國名)이 다르다고 하여 새로 선 나라이름으로 신국어(新國語)를 명명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나라들에서는 원래부터 익히 써오던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국어로 칭하며 쓰고 있다. 이에 비교해 분명 같은 우리말과 우리글임에도 오늘 날 우리 고국에서는 임시 국명이 다르다고 하여 국어 명까지 서로 달리하여 ‘한글’, ‘한국어’, ‘조선말’, ‘조선글’, ‘조선어’라고 해야 함에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하여 우리 반도(半島)땅도 ‘한반도’와 ‘조선반도’, 심지어 반만년 단군의 피를 이어받아 줄곧 한 겨레이고 단일민족임에도 ‘조선민족’, ‘한민족’이라는 같지 않은, 서로 다른 부름을 갖고 있음에 마음을 조이고 있다.(1947년 고국의 남북 정부수립 전의 재일동포들은 국적으로서의 ‘조선’보다는 민족으로서의 ‘조선’을 선택, 생략) 지난 수백 년간 동일 대상에 단일 명사로 교제가 충분했던 우리말이 ‘한복’과 ‘조선옷’, ‘한지’와 ‘조선종이’, ‘한국김치’와 ‘조선김치’, ‘조선냉면’과 ‘한국냉면’, ‘동양화’와 ‘조선화’, ‘한와’와 ‘조선기와’, ‘한옥’과 ‘조선집’같은 수많은 동의어로 범람하고 있다. 언젠가 고국이 통일되면, 아니 나라는 잠시 통일이 못 되더라도 우리말과 글이나마 먼저 통일이 되어 함께 ‘겨레말’, ‘겨레글’로 이름 짓고 우리 모두가『겨레말 큰 사전』에 통일 된 우리 국어, 우리 국문을 기준으로 하나로 된 우리말과 글을 자랑스럽게 쓸 그 날이 기어코 오리라는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는 우리말과 글을 통일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고국의 남과 북의 호칭(互稱・呼稱)부터 바로 잡고 필히 시정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남에서는 ‘조선’을 ‘북한’으로, 북에서는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호칭함에 궁극적인 문제가 있음을 거듭 지적하고자 한다. 고로 우리 해외동포들에게는 ‘북한’과 ‘남조선’을 함께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거슬려 필자의 실경(失敬)이 되겠는지 모르겠지만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부족한 주제꼴을 무릅쓰고 다음과 같은 호칭을 생각해 본다. 필자는 남의 주권국가와 국토를 호시탐탐 자기 영역과 영토로 영유하려는 시비 가득한 ‘북한’, ‘남조선’이라는 서로 따로따로의 호칭을 피하고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각자가 ‘대한민국’ 약칭으로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칭으로 ‘조선’으로 서로 호칭함과 아울러 필요에 따라 오늘날의 ‘북한’, ‘남조선’이라는 호칭을 대체하여 ‘조국’ 또는 ‘우리반도’라는 관형어(규정어)를 취할 것을 간권한다. 사전에서 낱말 ‘조국’은 “①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②자기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③민족이나 국토의 일부가 떨어져서 다른 나라에 합쳐졌을 때에 그 본디의 나라”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 반도’를 관형어로 쓰자는 주장은 지정학(地政學)적으로 우리 고국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해본 호칭이다. 남에서 북의 국명호칭을 공식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고 칭한다. 부득이할 경우에는 ‘북한’ 즉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고 풀이할 것이 아니라 응당히 ‘우리 조국의 북부지역’ 또는 ‘우리 조국의 북반부’ 아니면 ‘우리 반도의 북부지역’으로, 아울러 줄여서 약칭으로 ‘북한(北韓)’ 대신 당분간 새로운 적당한 이름씨(新造語)가 없다면 ‘조북(祖北)’ 또는 반도(半島)를 염두에 두고 [섬 도]를 넣어 ‘도북(島北)’으로; 마찬가지로 북에서는 남측의 국명호칭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한국’이라고 칭한다. 다시는 ‘남조선’으로, ‘남조선’을 ‘남부조선’으로 풀이할 것이 아니라 응당히 ‘우리 조국의 남부지역’ 또는 ‘우리 조국의 남반부’ 아니면 ‘우리 반도의 남부지역’으로, 아울러 줄여서 약칭으로 ‘남조선(南朝鮮)’ 대신 당분간 새롭고 신통한 이름씨(新語)가 없다면 ‘조남(祖南)’ 또는 ‘도남(島南)’으로 풀이하고 호칭함이 더 적절(適切)하다고 본다.(‘고국’, ‘조국’과 ‘국가’의 개념 구별은 별론) 만약 위의 두 가지 호칭이 모두 시답잖다면 통일이 되기 전까지라도 당분간 분단선(分斷線), 3.8분계선(分界線) 또는 ‘허리선’, ‘지경선’, ‘통일선’을 염두에 두고 ‘선남(線南)’, ‘선북(線北)’, 또는 국토의 ‘지름’과 ‘허리’를 염두에 두고 부드럽게 ‘지름남’, ‘지름북’, 또는 ‘허리의 띠’라는 의미로 ‘띠남(∼南)’, ‘띠북(∼北)’이라고 호칭함도 ‘북한’, ‘남조선’이라는 서로 폄(貶)하고 지어는 주권에 상해(傷害)를 주는 호칭보다는 훨씬 낳으리라고 본다. 실은 고국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호칭을 ‘남측’, ‘북측’으로 공식화되어 있다. 남북 모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한다. 하다면 남북 모두 통일될 그날을 위해 말도 하나로, 글도 하나로, 민족도 하나로, 조국도 하나로, 뿌리-근본도 하나로 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통일이 소원이라는 말뿐만이 아니라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실속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 조국의 말에는 겨레의 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살아 숨 쉬는 우리 겨레가 얼 빠지지 않고서야 어찌 고국이 둘일 수가 있으랴! 모국도 둘, 조국도 둘, 민족도 둘, 말과 글도 둘이다 보면 이제 우리 혼과 얼은 몇이나 되어야 하나. 친형제간, 같은 혈육종친, 대대손손의 대통을 이어갈 성씨(姓氏)와도 같은 우리 고국의 경칭(敬稱)은 오로지 하나만이여야 한다. 아무리 부자간에, 형제간에 알력이 심하기로 혈맥(血脈), 혈통(血統)을 끊고 성씨까지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위에서 실례 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한강 이북의 한국’으로, ‘대한민국’을 ‘남부조선’으로, ‘조선글’과 ‘조선문’을 “‘한글’의 북한어”로, ‘괴뢰’, ‘도당’으로… 라는 상식을 떠난 비방과 비난, 중상 내지 도발과 도전(挑戰)에 가까운 낱말 풀이와 해석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필부의 힘으로 그 하나하나를 다는 바로잡지 못할지라도 필생을 걸고 이처럼 잘못된 원천을 찾고 그 못된 뿌리 하나만이라도 뽑아 밝혀보고자 한다. 이제 우리 모두 팔 걷고 애벌김에 부지런히 무성한 잡초를 뽑아버리고 억세게 두벌김, 세벌 김을 거듭하여 깊이 뿌리내린 독초를 뽑아버리노라면 아무리 거칠고 삭막한 폐허라 하더라도 문전옥답이 안 될 리 없다. 대대손손 땀 흘려 가꾼 삼천리금수강산은 먼 훗날 풍요로 가득할 것이고 그로 한 남북 겨레 서로가 더더욱 평화롭고 우리 동포들의 담소(談笑) 또한 얼마나 화기애애(和氣靄靄)하랴.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이 되고 통일 될 고국의 호칭 또한 통일에 앞서 하나로 통일을 이루리라는 밝고 환한 희망과 전망(展望)을 내다보면 이 한 신명(身命) 다 바쳐도 사뭇 신나는 신명을 금할 수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무릇 천하대세란 나뉜 지 오래면 합하는 법이고 합한 지 오래면 나뉘는 법이라고 했거늘 긴긴 고조선(古朝鮮)이 삼한(馬韓, 辰韓, 弁韓)과 삼국(新羅, 百濟, 高句麗)을 거쳐 고려(高麗)로 통일이 되었고 고려가 다시 조선(朝鮮)시대로 바뀌어 장장 오백여년 전성기를 누리다가 조선이 다시 깨지고 부서져 오늘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나뉘어졌다. 이제 우리 고국도 분단(分斷) 60여년의 아픈 상처가 아물고 가실 때가 되었다.
5    천자문-만자문(萬字文)-잡탕문(雜湯文) 댓글:  조회:3147  추천:88  2011-01-26
  천자문−만자문(萬字文)−잡탕문(雜湯文) 천자문이란 본디 중국 남조 양무제시기(南朝梁武帝時期) 양나라 주흥사(周興嗣)가 기원 502년부터 549년 사이에 지은 책으로서 사언(四言) 고시(古詩) 250구로 모두 1,000자(字)로 되어 있으며, 자연현상으로부터 인륜도덕에 이르는 지식용어를 수록하였고, 줄곧 한문 학습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천자문에는 같은 글자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네 글자가 모여 온전한 뜻을 담은 한 구를 이루며 두 구절이 모여 서로 의미가 통하는 하나의 문장이 되고 또한 이 문장들이 전체 맥락 안에서 서로 호응하면서 거대한 한 편의 서사시가 된다. 특히 한국・조선에서는 한자 학습의 교과서와도 같은 천자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과 중국 연변에서 출판되어 일반에 알려진 천자문과 그 해례(解例)를 보면 중국의 천자문 원작 본문과 차이가 크다. 한국과 중국 연변의 우리글 판본사이에도, 한국의 여러 출판사들이 펴낸 서로 다른 판본들 사이에도 천자문 구절을 두루 비교, 대조해보면 동일한 구절 동일한 위치, 동일한 대목에 같지 않은 한자가 많다. 서로 엇갈리는 문자와 해례가 너무 많다. 필자는 중국에서 출판된 천자문 10여 가지 판본, 한국에서 출판된 천자문 10여 가지 판본과 중국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조선어 판본(한국 판본과 연변 판본을 통합하여 이하 ‘우리글 판본’으로 생략함)을 종합, 비교하여 주제넘지만 필자 나름대로 한자와 그에 따른 훈과 음을 선택하여 바로 새기고 아울러 두음법칙을 피한 천자문 해례본을 작성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천자문 뒷부분(제100구 이후)의 해당 한문자 선택에서 중국의 여부소(如怀素), 구양순(歐陽詢), 조맹(赵孟), 문징명(文徵明), 손과정(孫過庭) 등의 천자문 서예작품을 기준으로 여러 판본의 천자문 가운데서 해당 한자 위치에 가장 많이 쓰인 동일한 한자와 훈독, 음독은 해당 한문자 자리에 먼저 새기고; 우리글 판본 천자문의 같지 않은, 다르게 오른 일부 한자와 훈독, 음독은 참고로 해당 한자 위치 뒤에 괄호 안에 보충으로 실었다.(같은 자리에 같지 않은 수많은 한자(문자)가운데서 제한된 몇 자만 선택했음) 예하면 중국에서 출판된 대부분 판본의 천자문 제33구엔 [鳴] [鳳] [在] 다음에 [竹]자로 되어 한 절을 이루고 있다.(千字文_百度百科 http://baike.baidu.com/view/23443.htm 웹페이지 등 참조.) 하지만 우리글 판본의 대부분 천자문에는 [鳴] [鳳] [在] 다음에 [樹]자로 되어 한 구절을 묶고 있다.(여러 판본 간체자천자문 포함)(http://deungdae.hihome.com/chunjamun.htm 웹페이지 등 참조.) 각자 판본의 해례문도 서로 달라서 중국의 판본은 대나무 숲−죽림(竹林)으로, 우리글 판본은 나무−수목(樹木)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로 필자는 천자문이 본디 중국에서 편찬되었고 또한 중국 천자문의 본문 해례 원뜻이 거의 다 [竹]을 의미하므로 필자는 먼저 [竹]자를 택하고 다음 해당 한자 위치 뒤에 괄호 안에 [樹]자를 보충하였다. 실례로 [鳴(울 명) 鳳(봉황새 봉) 在(있을 재) 竹(대 죽)(樹(나무 수))]와 같은 방식을 취하였다.(본 장절 제415쪽 참조 *** 본문에서의 '000쪽(페이지) 참조' 는 필자의 "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의 원문에 기준한 것임) 그리고 한국 “새문社”, “태극 천자문”, “마법 천자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펴낸 천자문의 이 대목의 해례문 “명군 성현이 나타나면 봉이 운다는 말과 같이 덕망이 미치는 곳마다 봉이 나무 위에서 울 것이다”와 중국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천자문”(2008-6)의 이 대목의 해례문 “성인이 세상에 나오다”를 필자는 나름대로 중국의 역대(歷代) 대표적인 다수 판본을 기준으로 참작 개편하여 “명군 성현이 나타나면 봉이 울고 덕망이 미치는 곳마다 대나무 숲(나무 위)에서 봉황새 지저귀며 임금의 성은과 공덕을 기린다”로 고쳐 새겼다. 이외에도 동일한 양나라 주흥사의 “천자문”이라지만 판본이 다름에 따라 동일한 구절과 문맥, 위치에 같지 않은 한자, 지어는 없는 문자(한자?)와 서로 다른 훈독과 음독이 무더기로 많다. 천자문에 동일한 한문자를 중복 새긴 실례는 본문 본장절의 제449쪽에서 밝힌다. 아래는 필자가 위의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선택한 동일한 구절과 문맥, 대목과 위치에 같지 않은 판본의 같지 않은 한자, 서로 다른 훈독과 음독 묶음이다. 전자는 필자가 옳다고 여겨 우선 선택한 한자, 훈과 음이고; 후자는 한국에서 출판된 여러 판본의 천자문의 한자가 중국의 다수 판본의 한문자와 서로 다른 한자, 그 한자의 훈과 음 및 본문 본장절의 참고 쪽이며; 마감은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천자문의 해당 구절의 해당 위치의 해당 한자와 해당 책자의 참고 쪽을 (해당 한자 연 ××쪽)으로 표한 것이다. 彩(무늬 채・채색 채)(綵(비단 채))(본 장절 제427쪽 참조) 稿(볏짚 고) (藁(마를 고))(본 장절 제429쪽 참조) (槀 연 61쪽) 岫(산굴 수) (峀(묏부리 수))(본 장절 제435쪽 참조) (峀 연 81쪽) 慼(슬플 척) (戚(겨레 척))(본 장절 제438쪽 참조) 搖(흔들릴 요) (颻(날릴 요))(본 장절 제439쪽 참조) (颻 연 97쪽) 鵾(댓닭 곤)(鯤(곤새 곤, 곤이))(본 장절 제439쪽 참조) (鯤 연 98쪽) 舊(옛 구) (久(오랠 구)) (본 장절 제441쪽 참조) 床(상 상) (牀(평상 상)) (본 장절 제442쪽 참조) 弦(시위 현) (絃(악기 줄 현))(본 장절 제442쪽 참조) (絃 연 107쪽) 宴(잔치 연)(讌(잔치 연))(본 장절 제442쪽 참조) (讌 연 107쪽) 箋(편지 전) (牋(장계 전))(본 장절 제443쪽 참조) (牋 연 111쪽) 竝(나란히 병) (幷(아우를 병))(본 장절 제445쪽 참조) 顰(찡그릴 빈) (嚬(찡그릴 빈)撒(뿌릴 살))(본 장절 제445쪽 참조) 曦(햇빛 희) (羲(복희 희)) (본 장절 제446쪽 참조) (羲 연 119쪽) 曜(빛날 요) (耀(빛날 요)) (본 장절 제446쪽 참조) 劭(아름다울 소 힘쓸 소)(曆(아름다울 소/력)) (본 장절 제446쪽 참조*** 본문에서의 '000쪽(페이지) 참조' 는 필자의 "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의 원문을 기준한 것임)위의 마감 예문 [劭(아름다울 소 힘쓸 소)(曆(아름다울 소/ 력))]은 본 장절의 천자문 제446쪽 [永(길 영) 綏(편안 수) 吉(길할 길) 劭(아름다울 소 / 힘쓸 소)(曆(아름다울 소 / 력))]이라는 구절의 잘못 새긴 한자 [曆]자를 밝히기 위함이다. 실은 [曆]자의 훈은 [책력, 역법(曆法), 수(數), 수효]를 뜻하며 음독은 [력]으로서 [劭(아름다울 소 / 힘쓸 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외에도 항간(巷間)에 떠도는 천자문을 두루 뒤져보면 [齎(가져올 재)]가 [顙(이마 상)]자리에, [槐(홰나무 괴)]가 [驤(머리 들 양)]자리를 차지하는 등등 오자(誤字) 가 부지기수이다. 우리글 판본의 천자문 해례본 한문자가 혹은 많이, 혹은 적게 중국의 천자문과 완전히 다르고 틀리며, 그에 따른 훈독이나 음독도 잘못 새겨져 그 뜻이 엉망인 실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가려내어 평을 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우리 한자도 아니며 우리 훈도 없고 음도 없는 문자(한자?)가 천자문에 끼여 해례 구절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예하면 중국 천자문의 다수 판본은 [驢(나귀 려) 騾(노새 라) 犢(송아지 독) 特(특별 특)]인데, 우리글 판본의 일부 천자문에는 [驢(나귀 려) 岲(노새 라) 犢(송아지 독) 特(특별 특)]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의 두 번째 문자 [岲]자는 우리 훈도, 음도 없는 우리 한자가 아니며 또한 중국 원문의 [노새 라 (騾)]와 아무른 연관도 없다. 하나만 더 실례 든다면, 중국의 여러 판본의 천자문은 [嵆(산 이름 혜) 琴(거문고 금) 阮(악기 완) 嘯(휘파람 소)]인데, 우리글 판본의 일부 천자문에는 이 구절을 [笩(산이름 혜) 琴(거문고 금) 阮(악기 완) 嘯(휘파람 소)]이라고 새기고 있다. 여기의 첫 번째 문자 [笩]는 역시 우리 훈도, 음도 없는 우리 한자가 아니며 또한 중국 판본의 [산 이름 혜 (嵆)]와 아무른 연관도 없다. [岲], [笩]를 비롯한 오가잡탕 글을 무더기로 찾아볼 수 있다.http://kr.blog.yahoo.com/jkjohn723/folder/28.html?m=lc&tc=17&tt=1278116033 웹페이지 참조. 실은 [岲]자와 [笩]자는 중국 판본의『천자문』에선 물론, 중국 흑룡강출판사에서 우리글로 펴낸『만자옥편』(2008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이며 중국의 여러 자전(字典)과 사전(辭典), 사해(辭海), 사원(辭源)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중국에서도 전혀 아니 쓰는 문자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한자가 두음법칙의 피해로 말미암아 음이 모두 망가지고 있는데 오늘 또 한국식 천자문으로 인하여 종래로 없던 글과 훈(訓)과 음(音)이 가세(加勢)하여 살판 치며 천자문을 만자문, 잡탕문(雜湯文)으로 흐리고 있다. 문제의 핵은 중국에도, 한국에도 애당초 없는 문자가 천자문을 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유행되는 여러 판본의 천자문을 자세히 살펴보고 대조해 보면 위와 같은 실례가 한 두 곳이 아니다. 필자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없는) 문자를 한국에서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그 희귀한 문자(기호?)를 중국의 천자문에다 끼어 쓰고 있는 분들이 있으니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만약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에게만 있는 한자, 이를테면 돌(乭・이름−돌)이나, 답(畓・논−답), 갈(乫・땅이름−갈), 걱(巪・사람이름−걱), 묠(乮・봉호−묠), 쇠(釗) 등과 같은 문자라면 그 또한 모두, 여전히 우리 훈독과 음독이 있으련만 [岲]자와 [笩]자 같은 문자(기호?)는 아무른 우리 훈과 음이 없을뿐더러 그것도 우리 한자어에서가 아니라 중국의 천자문에 억지로 끼어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이런 현상을 그대로 묵과한다면 우리글에 [옌], [볜], [뎬], [톈], [롄], [뤼]와 같은 낯선 문자에 이어 [톍], [뱮], [릙]과 같은 문자의 군림(君臨)이 대두(擡頭) 되고 있듯이(본문 하편 제9절 참조) 이제 또 이른바 ‘국제화’, ‘세계화’ 라는 기치로 중국의 천자문을 개혁하여 한자 아닌 한자를 마구 섞다보면 천자문이 만자문으로 커갈 것이 아닌가. 중국의 천자문이 일부 글쟁이들에 의해 무작정(無酌定) 커가며 각자 임의로 우주와 삼라만상을 다 담으려 하다 보면 그 내용 또한 오가잡탕으로 버성길 것이니 장차 그 꼴을 어떻게 보며 천여 년 전의 중국의 본디 천자문이 천여 년 지나서 한국의 만자문(萬字文)−또 한국에 의해 만국문(萬國文)으로 둔갑됨을 세상 사람들은 또 어떻게 평가할지 심히 우려된다. 필자는 천자문이 장차 먼 훗날 어떻게 변천(變遷)될까 걱정하기 보다도 우선 당금 이처럼 오자와 오서(誤書), 와음(訛音)투성이로 된 천자문을 본으로, 교과서로 한문 학습을 하다보면 자연현상으로부터 인륜도덕에 이르는 지식용어를 수록한 중국 천자문의 진의(眞意・眞義)의 터득은 그만두고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한문(漢文)도 바로 익히기 힘들 것이라고 대성질갈(大聲叱喝)하고 싶다. 아무리 언론자유요, 출판자유라고 하지만 천고(千古)의 유작(遺作)이 오늘 불손(不遜), 불효(不孝), 불법(不法)자들에 의해 오자, 오서로 출판되고 산포(散布)되도록 허락한다면 우리 문화 전승(傳承)의 기준과 거울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 필자로서도 오리무중이다. 나라와 민족의 어제를 위해서도, 살아가는 오늘을 위해서도, 내일과 미래를 위해서도 출판심의나 쇄행심사를 엄히 할 것을 간권하고자 한다. 저작권에 관계없이 양나라 주흥사의 “천자문”이라면 반드시 한자도, 한 획, 한 점도 틀림없이 원작 본문과 같아야 하고 그 해례(解例)는 한자의 훈과 음에 따라 편자(編者)의 이해(理解)에 따라 제가끔 다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천 가지 판본에 천 가지로 해례를 하더라도 천자문의 한문자만은 원작 원문을 기준으로 반드시, 일률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서점과 인터넷사이트에 오른 천자문을 보면 중국에서 편찬한 천자문의 다수 판본과 다른, 한국식의 천자문이 점점 더 성행하고 있다. 서로 학문과 학식, 박식과 견문을 비기는 듯 지난 것과 남의 것은 죄다 부정하고 모두 다 자기의 새 것만을 옳다고 강조하며 ‘놀라운 창의력’으로 서로 ‘신작(新作)’을 내어놓기에 급급하다. 하기에 판본이 많고 판본마다 다른 천자문은 한국뿐이다. 천자문이 유독 한국에서 만 가지 판본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의 천자문이 한국에서 자유자재로 기형아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한국에서 제가끔 임의로 보탠 한자, 중국에도 없는 문자를 마구 삽입 가첨하며, 천자문을 무진장 확대하여 현대판 한국식 만자문, 잡탕문이 나오기 전에 필자는 중국의 역대 대다수 판본의 한문자를 참조하고 그에 따른 두음법칙을 피한 정훈(正訓)과 정음(正音)을 고르고 선택하여, 기성(旣成)의 잘 된 우리말 천자문 해례를 그대로 참조하고 전승하여 아래와 같이 다듬어 본다. 天(하늘 천) 地(따 지 / 땅 지) 玄(검을 현) 黃(누를 황) 하늘은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그윽하며) 땅은 아래 있어서 그 빛이 누르다. 宇(집 우) 宙(집 주) 洪(넓을 홍) 荒(거칠 황) 하늘과 땅 사이는 넓고 커서 끝이 없다. 즉 세상의 넓음을 말한다. 日(날 일) 月(달 월) 盈(찰 영) 昃(기울 측)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점차 이지러진다. 즉 우주의 진리를 말한다. 辰(별 진) 宿(잘 숙 별 숙) 列(벌릴 렬) 張(베풀 장) 성좌(별자리)가 해 달과 같이 하늘에 넓게 벌려져 있음을 말한다. 寒(찰 한) 來(올 래) 暑(더울 서) 往(갈 왕) 찬 것이(추위가) 오면 더운 것이(더위가)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간다. 즉 사철(계절)의 바뀜을 말한다. 秋(가을 추) 收(거둘 수) 冬(겨울 동) 藏(감출 장) 가을에 곡식을 거두고 겨울이 오면 그것을 감춰(저장) 들인다. 閏(윤달 윤) 餘(남을 여) 成(이룰 성) 歲(해 세) 일년 이십사절기 나머지 시각을 모아 윤달로 하여 해를 이루었다. 律(곡조 률 가락 률) 呂(음률 려) 調(고를 조) 陽(볕 양) 천지간의 양기를 고르게 하니 즉 률은 양이요 려는 음이다. 雲(구름 운) 騰(오를 등) 致(이를 치) 雨(비 우) 수증기가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랭기(찬기운)를 만나 비가 된다. 즉 자연의 기상을 말한다. 露(이슬 로) 結(맺을 결) 爲(할 위 될위) 霜(서리 상) 이슬이 맺어 서리가 되니 밤기운이 풀잎에 물방울처럼 이슬을 이룬다. 金(쇠 금) 生(날 생) 麗(고울 려) 水(물 수) 금은 려수에서 나니 려수는 중국의 지명이다. 玉(구슬 옥) 出(날 출) 崑(산 이름 곤 메 곤) 岡(산 이름 강 메 강) 옥은 곤강에서 나니 곤강은 역시 중국의 산 이름이다. 劍(칼 검) 號(이름 호) 巨(클 거) 闕(대궐 궐) 거궐은 칼이름이고 구야자가 지은 보검이다. 즉 조나라의 국보다. 珠(구슬 주) 稱(일컬을 칭) 夜(밤 야) 光(빛 광) 구슬의 빛이 밤의 낮 같은 고로 야광이라 칭하였다. 果(과실 과) 珍(보배 진) 李(오얏 리) 柰(능금나무 내) 과실 중에 오얏(자두)과 능금나무의 그 진미가 으뜸임을 말한다. 菜(나물 채) 重(무거울 중) 芥(겨자 개) 薑(생강 강) 나물은 겨자와 생강이 중하다. 海(바다 해) 鹹(짤 함) 河(물 하) 淡(맑을 담 묽을 담) 바다 물은 짜고 민물은 맛도 없고 맑다. 鱗(비늘 린) 潛(잠길 잠) 羽(깃 우) 翔(높이 날 상) 비늘 있는 고기는 물 속에 잠기고 날개 있는 새는 공중에 난다. 龍(룡 룡) 師(벼슬 사 스승 사) 火(불 화) 帝(임금 제) 복희씨는 룡으로써 벼슬을 기록하고 신농씨는 불로써 기록하였다. 鳥(새 조)官(벼슬 관) 人(사람 인) 皇(임금 황) 소호(小昊)는 새로써 벼슬을 기록하고 황제(皇帝)는 인문을 갖추었으므로 인황이라 하였다. 始(비로소 시 처음 시) 制(지을 제) 文(글월 문) 字(글자 자) 복희의 신하 창힐이라는 사람이 새의 발자취를 보고 글자를 처음 만들었다. 乃(이에 내) 服(옷 복) 衣(옷 의) 裳(치마 상) 이에 의상을 입게 하니 황제가 의관을 지어 등분을 분별하고 위의(위엄이 있는 몸가짐이나 차림새)를 엄숙케 하였다. 推(밀 추) 位(자리 위) 讓(사양 양) 國(나라 국) 벼슬을 미루고 나라를 사양하여 제요가 제순에게 전위(傳位)하였다. 有(있을 유) 虞(나라 우) 陶(질그릇 도) 唐(당나라 당) 유우는 제순(舜임금)이요 도당은 제요(禹임금)이다. 즉 중국 고대 제왕이다. 弔(조상 조 슬퍼할 조) 民(백성 민) 伐(칠 벌) 罪(허물 죄) 불쌍한 백성은 돕고 죄지은 백성은 벌주었다. 周(나라 줄 두루 주) 發(필 발) 殷(나라 은) 湯(끓을 탕) 주발은 무왕의 이름이고 은탕은 왕의 칭호이다. 坐(앉을 좌)朝(조정 조 아침 조)問(물을 문) 道(길/말할 도) 좌조는 천하를 통일하여 왕위에 앉은 것이고 문도는 나라 다스리는 법을 말한다. 垂(드리울 수) 拱(팔짱낄 공) 平(평할 평) 章(글 장) 밝고 평화스럽게 다스리는 길을 겸손히 생각함을 말한다. 愛(사랑 애) 育(기를 육) 黎(검을 려) 首(머리 수) 명군(明君)이 천하를 다스림에 백성(衆民)을 사랑하고 양육함을 말한다. 臣(신하 신) 伏(엎드릴 복) 戎(오랑캐 융) 羌(오랑캐 강) 위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에 융과 강도 항복하고야 만다. 遐(멀 하) 邇(가까울 이) 壹(한 일) 體(몸 체) 멀고 가까운 나라가 전부 그 덕망에 귀순케 하며 일체가 될 수 있다. 率(거느릴 솔/비률 률) 賓(손 빈) 歸(돌아갈 귀) 王(임금 왕) 백성을 거느리고 복종하여 왕에게 돌아오니 덕을 입어 복종치 않음이 없음을 말한다. 鳴(울 명)鳳(봉황새 봉)在(있을 재)竹(대 죽)(樹(나무 수)) 봉이 울면 명군 성현이 나타나듯이 덕망이 미치는 곳마다 봉이 대나무 숲(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임금의 성은과 공덕을 기린다 白(흰 백 흴 백) 駒(망아지 구) 食(먹을 식) 場(마당 장) 평화스러움을 말한 것이며, 즉 흰 망아지도 감화되어 사람을 따르며 편안히 마당 풀을 뜯어먹게 한다. 化(될 화) 被(입을 피) 草(풀 초) 木(나무 목) 덕화가 사람이나 짐승에게만 미칠 뿐 아니라 초목에까지도 미침을 말한다. 賴(힘입을 뢰) 及(미칠 급) 萬(일만 만) 方(모 방) 만방이 극히 넓으나 어진 덕이 고루 미치게 된다. 蓋(대개 개 덮을 개) 此(이 차) 身(몸 신) 髮(터럭 발) 몸의 털은 대개 사람마다 없는 이가 없다. 四(넉 사) 大(큰 대) 五(다섯 오) 常(항상 상) 네 가지 큰 것과 다섯 가지 떳떳함이 있으니 즉 사대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요, 오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다. 恭(공손 공) 惟(오직 유) 鞠(기를 국 공 국 국문 국) 養(기를 양) 국양함을 공손히 하라. 이 몸은 부모의 기르신 은혜이기 때문이다. 豈(어찌 기) 敢(감히 감) 毁(헐 훼) 傷(상할 상) 부모께서 낳아 길러 주신 이 몸을 어찌 감히 훼상할 수 있으랴. 女(계집 녀) 慕(사모할 모) 貞(곧을 정) 烈(매울 렬) 녀자는 정조를 굳게 지키고 행실을 단정하게 해야 함을 말한다. 男(사내 남) 效(본받을 효) 才(재주 재) 良(어질 량) 남자는 재능을 닦고 어진 것을 본받아야 함을 말한다. 知(알 지) 過(지날/허물 과) 必(반드시 필) 改(고칠 개)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 得(얻을 득) 能(능할 능) 莫(말 막) 忘(잊을 망)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罔(없을 망) 談(말씀 담) 彼(저 피) 短(짧을 단) 자기의 단점을 말 안하는 동시에 남의 잘못을 욕하지 말라. 靡(아닐 미) 恃(믿을 시) 己(몸 기) 長(길 장) 자신의 특기(장점)를 믿고 자랑하지 말라. 그럼으로써 더욱 발달한다. 信(믿을 신)使(하여금 사)可(가할 가 옳을 가)覆(뒤집힐 복 실천할 복) 믿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고 또한 남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器(그릇 기) 欲(하고자할 욕 탐할 욕) 難(어려울 난) 量(헤아릴 량) 사람의 기량은 깊고 깊어서 헤아리기 어렵다. 墨(먹 묵) 悲(슬플 비) 絲(실 사) 染(물들일 염) 흰 실에 검은 물이 들면 다시 희지 못함을 슬퍼한다. 즉 사람도 매사를 조심하여야 한다. 詩(글 시 시 시) 讚(칭찬할 찬) 羔(새끼양 고 염소 고) 羊(양 양) 시경 고양편에 문왕의 덕을 입은 남국 대부의 정직함을 칭찬하였으니 사람의 선악을 말한 것이다. 景(볕 경 경치 경 클 경)行(다닐 행/항렬 항)維(오직 유 바 유)賢(어질 현) 행실을 훌륭하게 하고 당당하게 행하면 어진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克(이길 극) 念(생각 념) 作(지을 작) 聖(성인 성) 성인의 언행을 잘 생각하여 수양을 쌓으면 자연 성인이 됨을 말한다. 德(덕 덕 큰 덕) 建(세울 건) 名(이름 명) 立(설 립) 항상 덕을 가지고 세상일을 행하면 자연(저절로) 이름도 서게 된다. 形(모양 형 얼굴 형) 端(바를 단) 表(겉 표) 正(바를 정) 몸 형상이 단정하고 깨끗하면 마음도 바르며 또 표면에 나타난다. 空(빌 공) 谷(골 곡) 傳(전할 전) 聲(소리 성) 산골짜기에서 크게 소리치면 (울려 퍼져)그대로 전해진다. 즉 악한 일을 당하게 된다. 虛(빌 허) 堂(집 당) 習(익힐 습) 聽(들을 청) 빈방에서 소리를 내면 울려서 다 들린다. 즉 착한 말을 하면 천리 밖에서도 응한다. 禍(재앙 화) 因(인할 인) 惡(악할 악/미워할 오) 積(쌓을 적) 재앙은 악을 쌓음으로 인한 것이므로 재앙을 받는 이는 평일(평소)에 악을 쌓았기 때문이다. 福(복 복) 緣(인연 연) 善(착할 선) 慶(경사 경) 복은 착한 일에서 오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경사가 온다. 尺(자 척) 璧(구슬 벽) 非(아닐 비) 寶(보배 보) 한 자 되는 구슬이라고 해서 결코 보배라고는 할 수 없다. 寸(마디 촌) 陰(그늘 음) 是(옳을 시 그럴 시)競(다툴 경) 한 자 되는 구슬보다도 잠깐의 시간이 더욱 귀중하니 시간을 아껴야 한다. 資(자료 자 재물 자 자뢰할 자)父(아비 부)事(일 사 섬실 사)君(임금 군) 아비를 공경하듯 임금을 섬길지니 아비 섬기는 효도로 임금을 섬겨야 한다. 曰(가로 왈) 嚴(엄할 엄) 與(더불 여) 敬(공경할 경) 임금을 대하는 데는 엄숙함과 공경함이 있어야 한다. 孝(효도 효) 當(마땅할 당) 竭(다할 갈) 力(힘 력) 부모를 섬길 때(효도할 때)에는 마땅히 힘을 다하여야 한다. 忠(충성 충) 則(법 칙 곧 즉) 盡(다할 진) 命(목숨 명) 충성함에는 곧 목숨을 다하여야 하니 임금을 섬기는 데 몸을 사양(아껴서는)해서는 안된다. 臨(림할 림) 深(깊을 심) 履(밟을 리) 薄(엷을 박) 깊은 곳에 림하듯 하며 얇은 데(얼음)를 밟듯이 세심 주의하여야 한다. 夙(일찍 숙 이를 숙)興(흥할 흥溫(따뜻할 온)凊(서늘할 청/정) 일찍 일어나서 추우면 덥게, 더우면 서늘케 하는 것이 부모 섬기는 절차이다. 似(같을 사) 蘭(란초 란) 斯(이 사) 馨(향기 형/향) 란초같이 꽃다우니 군자의 지조를 비유한 것이다. 如(같을 여) 松(소나무 송) 之(갈 지) 盛(성할 성) 솔 나무같이 푸르러 성함은 군자의 절개를 말한 것이다. 川(내 천) 流(흐를 류) 不(아니 불) 息(쉴 식) 내가 흘러 쉬지 아니하니 군자의 행지(행동거지)를 말한 것이다. 淵(못 연) 澄(맑을 징) 取(취할 취) 暎(비칠 영) 못이 맑아서 비치니 즉 군자의 고요한 마음을 말한 것이다. 容(얼굴 용) 止(그칠 지) 若(같을 약) 思(생각 사) 행동을 덤비지 말고 형용과 행지를 조용히 생각하는 침착한 태도를 가져라. 言(말씀 언) 辭(말씀 사) 安(편안할 안) 定(정할 정) 태도만 침착할 뿐 아니라 말도 안정케 하며 쓸데없는 말을 삼가라. 篤(두터울 독) 初(처음 초) 誠(정성 성) 美(아름다울 미) 무엇이든지 처음에(시작할 때) 성실하고 신중히 하여야 한다. 愼(삼갈 신) 終(마칠 종) 宜(마땅 의) 令(하여금 령) 처음뿐만 아니라 끝맺음도(신중히 하며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 榮(영화 영) 業(업 업) 所(바 소) 基(터 기) 이상과 같이 잘 지키면 번성하는 기본이 된다. 籍(서적 적 문서 적)甚(심할 심)無(없을 무)竟(마침내 경)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스러운 이름이 길이 전하여질 것이다. 學(배울 학) 優(넉넉할 우) 登(오를 등) 仕(벼슬 사) 배운 것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를 수 있다. 攝(잡을 섭) 職(벼슬 직 일 직) 從(좇을 종) 政(정사 정) 벼슬을 잡아 정사(政事)를 좇으니 국가 정사에 종사하니라. 存(있을 존) 以(써 이) 甘(달 감) 棠(팥배나무 당 해당화 당) 주나라 소공이 남국의 아가위나무 아래에서 백성을 교화하였다. 去(갈 거) 而(말 이을 이 어조사 이) 益(더할 익) 詠(읊을 영) 소공이 죽은 후 남국의 백성이 그의 덕을 추모하여 감당시를 읊었다. 樂(풍류 악/즐길 락/좋아할 요)殊(다를 수)貴(귀할 귀)賤(천할 천) 풍류는 귀천이 다르니 천자는 팔일, 제후는 륙일, 사대부는 사일, 서민은 이일이다. 禮(례도 례) 別(다를 별) 尊(높을 존) 卑(낮을 비) 례도에 존비의 분별이 있으니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의 차별이 있다. 上(윗 상) 和(화할 화) 下(아래 하) 睦(화목할 목) 위에서 사랑하고 아래에서 공경함으로써 화목이 된다. 夫(지아비 부) 唱(부를 창) 婦(며느리 부 지어미 부) 隨(따를 수) 지아비가 부르면 지어미가 따른다. 즉 원만한 가정을 말한다. 外(밖 외 바깥 외) 受(받을 수) 傅(스승 부) 訓(가르칠 훈) 나이 팔세면 바깥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入(들 입) 奉(받들 봉) 母(어미 모) 儀(거동 의) 집에 들어와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모시며 종사(교육을 받아라)하라. 諸(모두 제)姑(시어미 고 고모 고)伯(맏 백) 叔(아재비 숙 아저씨 숙) 고모, 백부, 숙부 등 집안 내의 친척 등을 말한다. 猶(같을 유) 子(아들 자) 比(견줄 비) 兒(아이 아) 조카들도 자기의 아들과 같이 취급(보살펴야)하여야 한다. 孔(구멍 공) 懷(품을 회) 兄(맏 형) 弟(아우 제) 형제는 서로 사랑하여 의좋게 지내야 한다. 同(한가지 동 같을 동) 氣(기운 기) 連(이어질 련) 枝(가지 지) 형제는 부모의 기운을 같이 받았으니 나무의 가지와 같다. 交(사귈 교) 友(벗 우) 投(던질 투) 分(나눌 분) 벗을 사귈 때에는 서로가 분수에 맞는 사람끼리 사귀어야 한다. 切(끊을 절/모두 체) 磨(갈 마) 箴(경계 잠) 規(법 규) 서로 열심히 닦고 배워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仁(어질 인)慈(사랑할 자 인자할 자)隱(숨을 은 측은히 여길 은)惻(슬플 측)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또는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한다. 造(지을 조 만들 조)次(버금 차)弗(아닐 불 말 불)離(떠날 리) 남을 위한 동정심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항상 가져야 한다. 節(마디 절) 義(옳을 의) 廉(청렴 할 렴) 退(물러갈 퇴) 청렴과 절개와 의리와 사양함과 물러감은 늘 지켜야 한다. 顚(엎드러질 전 꼭대기 전)沛(자빠질 패)匪(아닐 비)虧(이지러질 휴) 엎어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지지 않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 性(성품 성) 靜(고요할 정) 情(뜻 정) 逸(편안할 일) 성품이 고요하면 뜻이 편안하니 고요함은 천성이요 움직임은 인정이다. 心(마음 심)動(움직일 동)神(귀신 신)疲(지칠 피 고달플 피)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하다. 守(지킬 수) 眞(참 진) 志(뜻 지) 滿(찰 만)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하다. 逐(쫓을 축) 物(만물 물) 意(뜻 의) 移(옮길 이) 마음이 불안함은 욕심이 있어서 그렇다. 너무 욕심내면 마음도 변한다. 堅(굳을 견)持(가질 지)雅(맑을 아 우아할 아 초오 아)操(잡을 조 지조 조) 맑은 절조를 굳게 가지고 있으면 나의 도리를 극진히 함이라. 好(좋을 호)爵(벼슬 작)自(스스로 자)縻(고삐 미 얽을 미) 스스로 벼슬을 얻게 되니 찬작을 극진하면 인작이 스스로 이르게 된다. 都(도읍 도) 邑(고을 읍) 華(빛날 화) 夏(여름 하) 도읍은 왕성의 지위를 말한 것이고 화하는 당시 중국(또는 중화)을 지칭하던 말이다. 東(동녘 동) 西(서녘 서) 二(두 이) 京(서울 경) 동과 서에 두 서울(수도)이 있으니 동경은 락양이고 서경은 장안이다. 背(등 배) 邙(산이름 망 터 망) 面(낯 면) 洛(강이름 락 락수 락) 동경인 락양은 북에 북망산이 있고 앞쪽인 남에 락천(락수)이 있다. 浮(뜰 부)渭(강이름 위 위수 위)據(의거할 거 웅거할 거)經(통할 경 경수 경 날 경) 위수에 뜨고 경수를 눌렀으니 장안은 서북에 위수(위천), 경수, 두 강물이 있었다. 宮(집 궁) 殿(큰집 전 대궐 전) 盤(서릴 반) 鬱(답답 할 울) 궁전은 울창한 나무 사이에 (서린 듯)정하고 樓(다락 루) 觀(볼 관) 飛(날 비) 驚(놀랄 경) 궁전 가운데 있는 루각과 관대는 높아서 올라가면 나는 듯하여 놀란다. 圖(그림 도) 寫(베낄 사) 禽(새 금 날짐승 금) 獸(짐승 수) 궁전 내부에는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 조각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畵(그림 화)彩(무늬 채 채색 채)(綵(비단 채))仙(신선 선)靈(신령 령) 신선과 신령의 그림도 (비단마냥)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다. 丙(남녘 병) 舍(집 사) 傍(곁 방) 啓(열 계) 병사 곁에 통고를 열어 궁전 내를 출입하는 사람들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甲(갑옷 갑)帳(휘장 장 장막 장)對(대답할 대 대할 대)楹(기둥 영) 아름다운 갑장이 기둥을 대하였으니 동방 삭이 갑장을 지어 임금이 잠시 정지(머무르는)하는 곳이다. 肆(베풀 사) 筵(자리 연) 設(베풀 설) 席(자리 석) 자리를 베풀고 돗자리를 펴(베푸니) 연회하는 좌석이다. 鼓(북 고 두드릴 고)瑟(비파 슬)吹(불 취)笙(생황 생 저 생) 비파를 치고(뜯고) 저(생황)를 부니 잔치하는 풍류이다. 陞(오를 승) 階(뜰 계) 納(바칠 납) 陛(섬돌 폐) 문무백관이 계단을 올라 임금께 납폐하는 절차이니라. 弁(고깔 변) 轉(구를 전) 疑(의심할 의) 星(별 성) 많은 사람들의 관(冠)에서 번쩍이는 구슬이 별안간 의심할 정도이다. 右(오른 우) 通(통할 통) 廣(넓을 광) 內(안 내) 오른편에 광내가 통하니 광내는 나라(임금) 비서를 두는 집이다. 左(왼 좌) 達(통달할 달) 承(이을 승) 明(밝을 명) 왼편에 승명이 사무치니(이어지니) 승명은 사기를 교열하는 집이다. 旣(이미 기) 集(모을 집) 墳(무덤 분) 典(법 전) 이미 분과 전을 모았으니 삼황(三皇)의 글은 삼분(三墳)이요 오제(五帝)가 남긴 글은 오전(五典)이다. 亦(또 역) 聚(모을 취) 群(무리 군) 英(꽃부리 영) 또한 여러 영웅을 모으니 분전을 강론하여 치국하는 도를 밝힘이라. 杜(막을 두)稿(짚 고)(藁(마를 고))鍾(쇠북 종)隸(글씨 례) 초서를 처음으로 쓴 두고와 례서를 쓴 종례의 글로 비치되었다. 漆(옻 칠) 書(글 서 쓸 서) 壁(벽 벽) 經(날 경 경서 경) 한나라 영제가 돌벽에서 발견한 칠서(대쪽에 글자를 새기고 그 위에 옻칠을 한 글자)와 공자의 집 벽에서 발견한 륙경(6경)도 비치되어 있다. 府(마을 부) 羅(벌릴 라) 將(장수 장) 相(서로 상) 마을 좌우에 장수와 정승이 벌려 서 있었다. 路(길 로) 夾(낄 협) 槐(홰나무 괴) 卿(벼슬 경) 길에 고위 고관인 삼공, 구경의 마차가 렬지어 궁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戶(지게 호 문 호) 封(봉할 봉) 八(여덟 팔) 縣(고을 현)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여덟 고을 민호를 주어 공신을 봉하였다. 家(집 가) 給(줄 급) 千(일천 천) 兵(군사 병) 제후 나라에 일천 군사를 주어 그의 집을 호위시켰다. 高(높을 고)冠(갓 관)陪(쌓아올릴 배 더할 배 모실 배)輦(손수레 련) 높은 관을 쓰고 련(수레)으로 모시니 제후의 례로 대접했다. 驅(몰 구) 轂(바퀴 곡) 振(떨친 진) 纓(갓끈 영) 수레를 몰며 갓끈이 떨치니 임금 출행에 제후의 위엄이 있다. 世(대 세 인간 세 세상 세)祿(록 록)侈(사치할 치)富(부자 부) 대대로 록이 사치하고 부하니 제후 자손이 세세 관록이 무성하여라. 車(수레 거) 駕(멍에 가) 肥(살찔 비) 輕(가벼울 경) 수레의 말은 살찌고 (달리는 것은 가볍다)몸의 의복은 가볍게 차려져 있다. 策(꾀 책) 功(공 공) 茂(무성할 무) 實(열매 실) 공을 꾀함에 무성하고 충실하니라(쌓은 공이 무성하고 충실하니). 勒(굴레 륵) 碑(비석 비) 刻(새길 각) 銘(새길 명) 비를 세워 이름을 새겨서 그 공을 찬양하며 후세에 전하였다. 磻(강이름 반 돌 반) 溪(시내 계) 伊(저 이) 尹(다스릴 윤) 문왕은 반계에서 강태공을 맞고 은왕은 신야에서 이윤을 맞이하였다. 佐(도울 좌) 時(때 시) 阿(언덕 아) 衡(저울대 형) (위급한) 때를 돕는 아형이니 아형은 상나라 재상의 칭호이다. 奄(문득 엄) 宅(집 댁/택) 曲(굽을 곡) 阜(언덕 부) 주공에게 큰 공이 있는 고로 로국을 봉한 후 곡부에다 궁전을 세웠다. 微(작을 미 없을 미) 旦(아침 단) 孰(누구 숙) 營(경영할 영) 주공의 단이 아니면 어찌 누가 큰일을 할고(큰 궁전을 세웠으리요). 桓(굳셀 환) 公(공변될 공 귀인 공) 匡(바를 광) 合(모을 합) 제나라 환공은 (많은 제후들을)바르게 하고 모두었으니(화합시켜) 초를 물리치고 란을 바로잡았다. 濟(건널 제 구제할 제)弱(약할 약)扶(도울 부 붙들 부)傾(기울 경) 약한 나라를 구제하고 기울어지는 제신(나라)을 도와서 붙들어 주었다. 綺(비단 기) 回(돌아올 회) 漢(나라 한 한수 한) 惠(은혜 혜) 한나라(때) 네 현인의 한 사람인 기가 한나라 혜제를 회복시켰다. 說(기쁠 열 말씀 설 달랠 세)感(느낄 감)武(호반 무)丁(장정 정 고무래 정) 부열이 들에서 역사하매 무정의 꿈에 감동되어 곧 정승에 되었다. 俊(준걸 준) 乂(어질 예) 密(빽빽할 밀) 勿(말 물) 준걸과 재사가 조정에 빽빽할 정도로 모이고. 多(많을 다) 士(선비 사) 寔(이 식) 寧(편안할 녕) 훌륭한 선비가 조정에 많으니 국가가 태평함이라. 晋(나라 진) 楚(나라 초) 更(다시 갱 번가를 경) 覇(으뜸 패) 진과 초가 다시 으뜸이 되니 진문공 초장왕이 패왕이 되니라. 趙(나라 조) 魏(나라 위) 困(곤할 곤) 橫(비낄 횡) 조와 위는 횡에 곤하니 륙군때에 진나라를 섬기자 함을 횡이라 하니라. 假(거짓 가 빌릴 가)途(길 도)滅(멸할 멸)虢(나라 괵 자국 괵) 진헌공이 우국길을 빌려 괵국을 멸하였다(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멸하였다). 踐(밟을 천) 土(흙 토) 會(모일 회) 盟(맹세 맹) 진문공이 제후를 천토에 모아 맹세하고 협천자영을 제후로 봉하니라. 何(어찌 하) 遵(좇을 준) 約(묶을 약 언약 약) 法(법 법) 소하는 한고조(류방)와 더불어 약법삼장을 정하여 준행하였다. 韓(나라 한) 弊(해질 폐) 煩(번거로울 번) 刑(형벌 형) 한비는 진왕을 달래 형벌을 펴다가 그 형벌에 죽는다. 起(일어날 기) 翦(자를 전) 頗(자못 파) 牧(칠 목) 백기와 왕전은 진나라 장수요 염파와 이목은 조나라 장수였다. 用(쓸 용) 軍(군사 군) 最(가장 최) 精(정교할 정) 군사 쓰기를 가장 정결히 하였다. 宣(베풀 선) 威(위엄 위) 沙(모래 사) 漠(아득할 막) 장수로서 그 위엄은 멀리 사막에까지 퍼졌다. 馳(달릴 치) 譽(기릴 예 칭찬할 예) 丹(붉을 단) 靑(푸를 청) 그 이름은 생전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전하기 위하여 초상을 기린각에 그렸다. 九(아홉 구) 州(고을 주) 禹(하우씨 우 임금 우) 跡(자취 적) 하우씨가 구주를 분별하니 기, 연, 청, 서, 형, 양, 예, 량, 옹, 구주이다. 百(일백 백) 郡(고을 군) 秦(나라 진) 幷(아우를 병) 진시황이 천하봉군하는 법을 폐하고 일백군을 두었다. 嶽(큰산 악 산마루 악)宗(마루 종)恒(항상 항)岱(뫼 대 대산 대) 오악은 동 태산, 서 화산, 남 형산, 북 항산, 중 숭산이니 항산과 태산이 조종이라. 禪(봉선 선 선위할 선 터닦을 선)主(임금 주)云(이를 운)亭(정자 정) 운과 정은 천자를 봉선하고 제사하는 곳이니 운정은 태산에 있다. 雁(기러기 안) 門(문 문) 紫(자줏빛 자 붉을 자) 塞(변방 새) 안문은 봄기러기 북으로 가는 고로 안문이고, 흙이 붉은 고로 자색이라 하였다(붉은 흙으로 만든 요새 만리장성). 鷄(닭 계) 田(밭 전) 赤(붉을 적) 城(성 성) 계전은 옹주에 있는 고을이고 적성은 기주에 있는 고을이다. 昆(맏 곤) 池(못 지) 碣(돌 갈) 石(돌 석) 곤지는 운남 곤명현에 있는 련못이고 갈석은 부평현에 있는 돌이다. 鉅(클 거) 野(들 야) 洞(골 동 꿰뚫을 통) 庭(뜰 정) 거야는 태산 동편에 있는 광야, 동정은 호남성에 있는 중국 제일의 호수이다. 曠(빌 광) 遠(멀 원) 綿(이어질 면 솜 면) 邈(멀 막) 산, 벌판, 호수 등이 아득하고 멀리 그리고 널리 줄지어 있음을 말한다. 巖(바위 암)岫(산굴 수)(峀(묏부리 수))杳(아득할 묘)冥(어두울 명) 큰 바위와 산굴이며 메뿌리가 묘연하고 아득함을 말한다. 治(다스릴 치) 本(근본 본) 於(어조사 어) 農(농사 농) 다스리는 것은 농사를 근본으로 하니 중농 정치를 이른다. 務(힘쓸 무) 玆(이 자 이에 자) 稼(심을 가) 穡(거둘 색) 때맞춰 심고 힘써 일하며 거두는데 힘써야 한다.(많은 수익을 거둔다) 俶(비로소 숙) 載(실을 재) 南(남녘 남) 畝(이랑 묘) 비로소 (봄이 오면)남양의 밭에서 농작물을 배양(심기 시작)한다. 我(나 아) 藝(재주 예) 黍(기장 서) 稷(피 직) 나는 기장과 피를 심는 일에 열중하겠다. 稅(부세 세 징수할 세 구실 세)熟(익을 숙)貢(바칠 공)新(새 신) 곡식이 익으면 부세하여 국용을 준비하고 신곡(햇곡식)으로 종묘에 제사를 올린다. 勸(권할 권) 賞(상줄 상) 黜(물리칠 출 내칠 출) 陟(오를 척) 농민의 의기를 앙양키 위하여 열심인 자는 상주고 게을리한 자는 출척하였다. 孟(맏 맹) 軻(수레 가) 敦(도타울 돈) 素(흴 소) 맹자는 그 모친의 교훈을 받아 자사문하(성품이 두텁고 유순)에서 배웠다. 史(력사 사) 魚(물고기 어) 秉(잡을 병) 直(곧을 직) 사어라는 사람은 위나라 태부였으며 그 성격이 매우 강직하였다. 庶(여러 서 거의 서)幾(기미 기 몇 기 거의 기)中(가운데 중)庸(떳떳할 용) 어떠한 일이나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일하면 안 된다. 勞(일할 로 힘쓸 로 수고할 로)謙(겸손 겸) 謹(삼갈 근)勅(조서 칙 경계할 칙 칙서 칙) 근로하고 겸손하며 삼가고 신칙(경계)하면 중용의 도에 이른다. 聆(들을 령) 音(소리 음) 察(살필 찰) 理(다스릴 리 도리 리) 소리를 듣고 그 거동을 살피니 조그마한 일이라도 주의하여야 한다. 鑑(거울 감) 貌(모양 모) 辨(분별할 변) 色(빛 색) 모양과 거동으로 그 마음속을 분별할 수 있다. 貽(끼칠 이 줄 이) 厥(그 궐) 嘉(아름다울 가) 猷(꾀 유) 도리를 지키고 착함으로 자손에 좋은 것을 끼쳐야 한다. 勉(힘쓸 면) 其(그 기) 祗(공경 지) 植(심을 식) 착한 것으로(덕을 쌓아) 자손에 줄 것을 힘써야 좋은 가정을 이룰 것이다. 省(살필 성 덜 생)躬(몸 궁)譏(나무랄 기)誡(경계 할 계) 나무람과 경계함이 있는가 염려하며 몸을 살피라. 寵(괼 총 사랑할 총)增(더할 증)抗(막을 항 겨룰 항)極(다할 극 극진할 극) 총애가 더할수록 교만한 태도를 부리지 말고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殆(위태할 태)辱(욕되게 할 욕)近(가까울 근) 恥(부끄러울 치) 총애를 받는다고 욕된 일을 하면 머지 않아 위태함과 치욕이 온다. 林(수풀 림) 皐(언덕 고) 幸(다행 행) 卽(나아갈 즉 곧 즉) 부귀할지라도 겸퇴하여 산간 수풀에서 편히 지내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兩(두 량)疏(트일 소 성글 소)見(볼 견)機(틀 기 기미 기) 한나라의 소광과 소수는 기틀을 보고 상소하고 락향(귀향)했다. 解(풀 해) 組(끈 조 짤 조) 誰(누구 수) 逼(핍박할 핍) 관의 끈을 풀어 사직하고 돌아가니 누가 핍박하리요. 索(찾을 색)居(살 거)閑(한가할 한)處(살 처 곳 처 거처할 처) 퇴직하여 한가한 곳에서 세상을 보냈다. 沈(잠길 침)默(잠잠할 묵)寂(고요할 적)寥(쓸쓸할 요 고요 요) 세상에 나와서 교제하는 데도 언행에 침착해야 한다.(번뇌를 피하여 은거하니 조용하기만 하구나.) 求(구할 구) 古(옛 고) 尋(찾을 심) 論(의론할 론) 예(옛 것)를 찾아 의논하고 고인을 찾아(만나) 토론한다. 散(흩을 산)慮(생각할 려)逍(거닐 소 노닐 소)遙(멀 요 노닐 요) 세상(바깥)일을 잊어버리고 자연 속에서 한가하게 즐긴다. 欣(기쁠 흔)奏(아뢸 주)累(묶을 루 루끼칠 루 여러 루 벌거벗을 라)遣(보낼 견) 기쁨은 아뢰고 더러움은 멀리 보내니. 慼(슬플 척 근심 척)(戚(겨레 척))謝(사례 사 하직할 사)歡(기뻐할 환)招(부를 초) 겨레 마음의 슬픔과 근심은 없어지고 즐거움만 부른 듯이 오게 된다. 渠(개천 거) 荷(연꽃 하) 的(과녁 적 분명할 적) 歷(지낼 력) 개천의 연꽃도 아름다우니 향기를 잡아볼 만하다. 園(동산 원) 莽(풀 망) 抽(빼낼 추) 條(조목 조 가지 조) 동산의 풀은 땅속 양분으로 가지가 뻗고 크게 자란다. 枇(비파나무 비) 杷(비파나무 파) 晩(늦을 만) 翠(푸를 취) 비파나무는 늦은 겨울에도 그 빛은 푸르다. 梧(오동나무 오)桐(오동나무 동)早(새벽 조 일찍 조 이를 조)凋(시들 조 마를 조) 오동잎은 가을이면 다른 나무보다 먼저 마른다. 陳(늘어놓을 진 묵을 진 베풀 진)根(뿌리 근)委(맡길 위)翳(가릴 예 일산 예) 가을이 오면 오동뿐 아니라 고목의 뿌리도 시들어 마른다. 落(떨어질 락)葉(잎사귀 엽)飄(나부낄 표 회오리바람 표)搖(흔들 요)(颻(날릴 요)) 가을이 오면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락엽이 날리며 떨어진다. 遊(놀 유)鵾(댓닭 곤)(鯤(곤이 곤)獨(홀로 독)運(돌 운 임직일 운) 곤새(고니새)가 자유로이 높은 하늘에 홀로 날개를 펴고 운회(헤엄치고)하고 있다. 凌(업신여길 릉) 摩(갈 마 문지를 마 만질 마)絳(붉을 강)霄(하늘 소) 적색의 大空(붉은 노을이 진 하늘)을 업신여기는 듯이 선회하고 있다. 耽(즐길 탐)讀(읽을 독 이두 두)翫(가지고놀 완 장난할 완)市(저자 시 시장 시) 후한의 왕총은 독서를 즐겨 저자(락약의 서점)에 가서 탐독하였다. 寓(붙일 우 머무를 우)目(눈 목)囊(주머니 낭)箱(상자 상) 왕총이 한번 읽으면 잊지 아니하여 글을 주머니나 상자에 둠과 같다고 하였다. 易(쉬울 이/바꿀 역) 輶(가벼울 유)攸(바 유) 畏(두려워할 외) 매사를 소홀히 하고 경솔함은 군자가 진실로 두려워하는 바이다. 屬(붙을 속 엮을 속 이을 촉)耳(귀 이) 垣(담 원) 墻(담 장) 담장에도 귀가 있다는 말과 같이 경솔히 말하는 것을 조심하라. 具(갖출 구) 膳(반찬 선) 飧(저녁밥 손) 飯(밥 반) 반찬을 갖추고 밥을 먹으니 適(마침 적) 口(입 구) 充(채울 충) 腸(창자 장) 훌륭한 음식이 아니라도 입에 맞으면 배를 채운다. 飽(배부를 포)飫(물릴 어) 烹(삶을 팽) 宰(재상 재) 배부를 때에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맛을 모른다. 飢(주릴 기) 厭(싫을 염) 糟(재강 조) 糠(겨 강) 반대로 배가 고플 때에는 겨와 재강도 맛있게 되는 것이다. 親(친할 친)戚(겨레 척)故(연고 고)舊(옛 구)(久(오랠 구)) 친은 동성지친이고 척은 이성지친이요 고구는 오랜 친구를 말한다. 老(늙을 로) 少(젊을 소) 異(다를 이) 糧(량식 량) 늙은이와 젊은이의 식사가 다르다.(로인을 공경하여 좋은 음식 대접하라) 妾(첩 첩) 御(모실 어) 績(길쌈 적) 紡(길쌈 방)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길쌈을 짜니라. 侍(모실 시) 巾(수건 건) 帷(휘장 유) 房(방 방) 유방(안방)에서 모시고 수건을 받드니 처첩이 하는 일이다. 紈(흰비단 환) 扇(부채 선) 圓(둥글 원) 潔(깨끗할 결) 흰 비단으로 만든 부채는 둥글고 깨끗하다. 銀(은 은) 燭(촛불 촉) 煒(빨갈 위 빛날 위) 煌(빛날 황) 은촛대의 촛불은 빛나서 (그 불꽃이)휘황 찬란하다. 晝(낮 주) 眠(잘 면) 夕(저녁 석) 寐(잘 매) 낮에 낮잠 자고 밤에 일찍 자니 한가한 사람의 일이다. 藍(쪽 람)筍(죽순 순)象(코끼리 상)床(상 상)(牀(평상 상)) 푸른 대순과 코끼리 상이니 즉 한가한 사람의 침대이고 마루다. 弦(시위 현)(絃(악기 줄 현))歌(노래 가)酒(술 주)宴(잔치 연)(讌(잔치 연)) 거문고를 타며 술과 노래로 잔치하니. 接(이을 접) 杯(잔 배) 擧(들 거) 觴(잔 상) 작고 큰 술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즐기는 모습이다. 矯(바로잡을 교) 手(손 수) 頓(두드릴 돈) 足(발 족) 손을 들고 발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悅(기쁠 열) 豫(미리 예) 且(또 차) 康(편안 강) 이상과 같이 마음 편히 즐기고 살면 단란(평안한)하고 기쁜 삶이다. 嫡(정실 적) 後(뒤 후) 嗣(이을 사) 續(이을 속) 적자된 자, 즉 장남은 뒤를 계승하여 대를 이룬다. 祭(제사 제) 祀(제사 사) 蒸(찔 증) 嘗(맛볼 상) 제사하되 겨울 제사는 증이라 하고 가을 제사는 상이라 한다. 稽 (조아릴 계) 顙(이마 상) 再(둘 재) 拜(절 배) 이마를 조아려 선조에게 두 번 절한다. 悚(두려워할 송)懼(두려워할 구)恐(두려워할 공)惶(두려워할 황) 송구하고 공황하니 엄중, 공경함이 지극함이라.(3년상 이후의 제사시의 몸가짐이다.) 箋(찌지 전)(牋(장계 전))牒(편지 첩)簡(편지 간)要(중요 요) 글과 편지는 간략함을 요한다. 顧(돌아볼 고) 答(대답 답) 審(살필 심) 詳(자세할 상) 편지의 회답도 자세히 살펴 써야 한다. 骸(뼈 해) 垢(때 구) 想(생각할 상) 浴(목욕할 욕) 몸에 때가 끼면 목욕하기를 생각하고. 執(잡을 집) 熱(더울 열) 願(원할 원) 凉(서늘할 량) 더우면 서늘하기를 원한다. 驢(나귀 려)騾(노새 라) 犢(송아지 독) 特(특별 특) 나귀와 노새와 송아지, 즉 가축을 말한다. 駭(놀랄 해) 躍(뛸 약) 超(넘을 초)驤(달릴 양 머리 들 양) 뛰고 달리며 노는 가축의 모습을 말한다. 誅(벨 주) 斬(벨 참) 賊(도적 적) 盜(도적 도) 역적과 도적을 베어 물리침. 捕(잡을 포) 獲(얻을 획) 叛(배반할 반) 亡(망할 망/없을 무) 배반하고 도망하는 자를 잡아 죄를 다스린다. 布(베 포) 射(쏠 사) 僚(벗 료) 丸(알 환) 한나라 려포는 화살을 잘 쐈고 의료는 탄자(쇠구슬)를 잘 던졌다. 嵆(산 이름 혜) 琴(거문고 금) 阮(악기 완) 嘯(휘파람 소) 위국 혜강은 거문고를 잘 타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恬(편안 념) 筆(붓 필) 倫(인륜 륜) 紙(종이 지) 진국 몽념(봉념)은 토끼털로 처음 붓을 만들었고 후한 채륜은 처음 종이를 만들었다. 鈞(고를 균) 巧(공교할 교) 任(맡길 임) 釣(낚시 조) 위국 마균은 지남거를 만들고 전국시대 임공자는 낚시를 만들었다. 釋(놓을 석)紛(어지러울 분)利(리로울/날카로울 리)俗(풍속 속) 이상 팔인의 재주를 다하여 어지러움을 풀어 풍속에 이롭게 하였다. 竝(나란히 병)(幷(아우를 병))皆(다 개)佳(아름다울 가)妙(묘할 묘) 모두 아울러 아름다우며 묘한 재주였다. 毛(털 모) 施(베풀 시) 淑(맑을 숙) 姿(모양 자) 모는 오의 모타라는 녀자이고 시는 월의 서시라는 녀자인데 모두 절세 미인이었다. 工(장인 공)顰(찡그릴 빈)(嚬(찡그릴 빈)撒(뿌릴 살))姸(고울 연) 笑(웃을 소) 웃는 모습이 매우 곱고 아름다워 찌푸린 얼굴조차 흉내 낼 정도였다. 年(해 년) 矢(화살 시) 每(매양 매) 催(재촉 최) 세월이 빠른 것을 말한다. 즉 살같이 매양 재촉하니 曦(햇빛 희)(羲(복희 희))暉(빛날 휘)朗(밝을 랑)曜(빛날 요)(耀)(빛날 요) 태양 빛과 달빛은 온 세상을 비추어 만물에 혜택을 주고 있다. 璇(구슬 선) 璣(구슬 기) 懸(달 현) 斡(빙빙돌 알) 선기는 천기를 보는 기구이고 그 기구가 높이 걸려 도는 것을 말한다. 晦(그믐 회) 魄(넋 백) 環(고리 환) 照(비칠 조) 달이 고리와 같이 돌며 천지를 비치는 것을 말한다. 指(손가락 지) 薪(섶나무 신) 修(닦을 수) 祐(복 우) 불타는 나무와 같이 정열로 도리를 닦으면 복을 얻는다. 永(길 영)綏(편안 수)吉(길할 길)劭(아름다울 소, 힘쓸 소)(曆(아름다울 소/력)) 그리고 영구히 편안하고 길함이 있으리라. 矩(법 구) 步(걸음 보) 引(끌 인) 領(거느릴 령) 걸음을 바로 걷고 따라서 얼굴(행실)도 바르니 위의가 당당하다. 俯(굽을 부) 仰(우러를 앙) 廊(행랑 랑) 廟(사당 묘) 항상 낭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숙여 례의를 지키라. 束(묶을 속) 帶(띠 대) 矜(자랑 긍) 莊(씩씩할 장) 의복에 주의하여 단정히 함으로써 긍지를 갖는다.(예의를 갖추라) 徘(배회 배) 徊(배회 회) 瞻(쳐다볼 첨) 眺(바라볼 조) 같은 장소를 배회하며 선후를 보는 모양이다.(이리저리 거닐면서 두루 살펴라) 孤(외로울 고) 陋(더러울 루) 寡(적을 과) 聞(들을 문) 하등의 식견도 재능도 없다.(천자문의 저자가 자기 자신을 겸손해서 말한 것이다.) 愚(어리석을 우) 蒙(어릴 몽) 等(등급 등) 誚(꾸짖을 초) 적고 어리석어 몽매함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謂(이를 위) 語(말씀 어) 助(도울 조) 者(놈 자) 어조라 함은 한문의 조사, 즉 다음 글자이다. 焉(어찌 언) 哉(어조사 재) 乎(어조사 호) 也(어조사 야) ‘언재호야’ 이 네 글자는 어조사이다. 필자는 위의 글에서 비록 중국의 양나라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의 원작 본문과 한자도, 한 획, 한 점도 틀림없이 따르려고 했지만 워낙 항간에 저마다 천자문 원본저고(原本底稿)의 판본이라고 자처함이 너무 많고, 그러면서 또한 한문자 새김이 제각기여서 우선은 구경 어느 판본이 원작, 원문인지 가려내기가 아주 어려웠다. 필자는 부득이 중국에서 출판된 역대 천자문과 한국과 중국 연변에서 출판된 우리글 천자문 각기 10여 가지 판본을 종합, 비교하여 필자 나름대로 동일한 구절과 위치, 동일한 대목에 같지 않은 판본에 따라 같지 않은 한문자일 경우에는 중국에서 출판된 여러 판본의 천자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쓰인 한자와 그에 따른 우리 훈독, 음독은 먼저 해당 자리에 새기고 다음, 한국에서 출판된 판본의 같지 않은, 다르게 오른 한자(문자)와 훈독, 음독은 미리 선택된 해당 한문자 위치 뒤에 참고로 괄호 안에 보충으로 실었음을 거듭 첨언한다. 주흥사의 “천자문” 원작 본문외의 한문자 가첨과 기타 문자의 협세(協勢・挾勢)와 합류(合流)로 인한 천자문이 장차 만자문으로 될까 괜한 걱정으로 필자는 많고도 많은 판본의 부지기수의 오자와 오서, 와음 및 새로 만들어낸 없는 한문자(기호?)는 무시하고 다만 그중에서 참고로 천자문 뒷부분(제100구 이후)의 제한된 몇 자만을 선택해 삽입했음을 부언해 둔다. 필자는 위의 글에서 기성(旣成)의 잘 된 우리말 천자문 해례를 그대로 전승하려했었고, 원작 원본에 가깝게, 중국의 다수 판본의 집중된 한문자와 그에 따른 필자의 이해에 따라 두음법칙을 피한 정훈과 정음을 선택하려 힘썼음을 특히 성언(聲言)한다. 본문 본 장절 서두에서 필자는 “천자문에는 같은 글자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네 글자가 모여 온전한 뜻을 담은 한 구를 이루며 두 구절이 모여 서로 의미가 통하는 하나의 문장이 되고 또한 이 문장들이 전체 맥락 안에서 서로 호응하면서 거대한 한 편의 서사시가 된다”고 피력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같지 않은 판본을 대조, 비교하면서 같지 않은 한문자가 어느 한 같은 위치에 섞갈리어 가려내기 어려울 경우엔 나름대로 우선 중국의 역대 판본을 종합하여 그 가운데서 그 대목, 그 위치, 그 자리에 가장 많이 쓰인 한문자를, 중복되지 않은 한문자를 선택하여 해당 자리에 새기려 하였지만 그렇다고 중국 역대 판본 “천자문”이라고 하여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중국의 무려 10여 가지 천자문 판본을 이리 저리 서로 대조하며 살피는 가운데 거의 모든 판본마다 제188구의 첫 번째의 한문자 [戚](본문 제438쪽)과 제205구의 두 번째의 한문자 [戚](본문 제441쪽)은 똑 같은 한문자이며-동일한 한문자를 중복하여 새겼음을 시인(是認)하고 인정(認定)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위의 두 구절의 [戚]자 대목 그 위치에 [戚]자가 아닌 다른 한문자를 찾으려 했지만 그냥 헛물만 켰다. 거의 중국 판본마다 [戚]자가 중복되었다. 간혹 천자문의 제188구의 [戚 謝 歡 招]를 [感 謝 歡 招]라고 고쳐 이 구절의 첫 자를 [戚]자 대신 [感]자로 새긴 판본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이는 [謝]자 앞에 자연히 [感]자가 붙게 되여 [感謝]의 뜻을 이루겠거니 한 추측일 뿐, 이는 천자문 해례와는 얼토당토않은 억측이다. 그리고 한문자 [感]자 또한 천자문의 제140구의 [說 感 武 丁]의 두 번째 자 [感]과 중복이 된다. 하니 [感]자일 수가 없다. “천자문”에 같은 한문자가 중복되어 있다니?! “천자문”의 유래를 아는 이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다행이도 1400여년 후에 왈가왈부하기 요행이지 천자문 편찬 당시라면 글 한자 두자 틀린 실수가 아니라 하늘같은 임금을 속인 기편죄, 기만죄로 구족이 멸 당하는 역사에 사무치는 죄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중국 상해사서출판사(上海辭書出版社)에서 펴낸『사해(辭海1979)』『사해(辭海)』(1979년) 상편 제270쪽에 오른 낱말 ‘천자문(千字文)’ 주석에 따르면: 천자문: 중국 옛적의 어린아이들이 공부를 시작하는 입문서(몽학과본-蒙學課本)로서 같지 않은 천자(不同的字一千個)를 사언운어(四言韻語)로 자연, 사회, 역사, 윤리, 교육 등 방면의 지식을 서술하였다…… 한국의 교육도서에서 펴낸『국어대사전』(1989) 제1979쪽에서는 ‘천자문’을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다. 양나라 주흥사가 엮은 책. 우주 삼라만상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사언고시 250구 1천자로 쓴 것인데, 전체를 통하여 한자의 중복도 없음. 중국의 권위적인 사전이나 한국의 대표적인 사전이나 또한 필자의 주장이나 모두 양나라 주흥사가 엮은『천자문』에는 같은 글자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네 글자가 모여 온전한 뜻을 담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존 중국에서 출판되는 천자문에는 거의 판본마다 중복된 한문자가 있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혹자의 믿지 못함을 해소하고자 필자는 중국의 몇몇 천자문 관련 권위적인 웹 사이트, 웹페이지를 소개해 드리니 몸소 방문해 보시고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百度百科-千字文:(http://baike.baidu.com/view/23443.htm)天涯在線書庫:(www.tianyabook.com/gudian/qianziwen.htm)國學网-國學入門: (www.guoxue.com/gxrm/gx_qzw.htm勸學网: (www.quanxue.cn/CT_RuJia/Meng/Meng04.html)千字文全文及解說: (www.disound.com/blog/article.asp?id=428) 필자는 중국의 역대 천자문 서예와 한국의 천자문 해례를 참작하여 천자문의 제205구의 두 번째의 한문자인 [戚]은 분명히 원작 본문의 한문자와 같은 자로 판정하고자 한다. 문제는 천자문의 제188구의 첫 번째의 한문자 [戚]이다. 천자문의 이 구절 [戚 謝 歡 招]의 해례는 ‘겨레 마음의 슬픔과 근심은 없어지고 즐거움만 부른 듯이 오게 된다’로 되어있다. 하다면 [겨레 척(戚)]에 슬픔과 근심을 더 할 자는 [슬플 척/근심 척(慼)]보다 더 안성맞춤한 한문자가 없다. 혹자는 [戚]자는 [慼]자의 간체자(簡體字)일 뿐이라고 여기겠지만 중국『사해(辭海1979)』제1656쪽의 해당 주석을 보면 [戚]자와 [慼]는 미세한 구별이 있다. 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우리글로 펴낸『만자옥편(2008년)』제181쪽의 [慼=슬플 척]자와 제188쪽의[戚=겨레 척]자는 서로 다른 뜻을 지닌 다른 문자로 취급하고 있다.한국의 일부 천자문 판본에서도 제188구 [戚 謝 歡 招]가 [ 慼 謝 歡 招]로 편찬되어 있다. 중국의 옛 천자문 서예도 혹간 [慼 謝 歡 招]로 된 작품이 더러 있음을 참작하고 또한 천자문에 따로 [慼]자가 없음을 감안하여 필자는 천자문 본문이 [戚 謝 歡 招]가 아니라 [慼 謝 歡 招]였을 것임을 피력한다. 고로 필자는 거의 모든 중국 판본의 천자문의 제188구가 [戚 謝 歡 招]로 통일됨에도 불구하고 본 장절, 해당 구절의 천자문을 조심히 [慼 謝 歡 招]로 새겨보았다.(본문 본 장절 제438쪽 참조) 아울러 필자는 천자문의 제188구가 [慼 謝 歡 招]로 밝혀지고 확인된다면 모든 천자문에서는 다시는 제188구를 [戚 ……]로 새기지 말 것을, 아울러 이미 [戚 ……]로 새긴 판본들도 모조리 [慼 ……]로 개정하기를 호소한다. “천자문”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출판된 천자문도 진위(眞僞)를 밝혀가며 선택해야 하나보다. 구경 천자문의 원작 본문에서는 어느 한문자였는지 독자들에게, 역사에 맡기고자 한다.*** 본문에서의 '000쪽(페이지) 참조' 는 필자의 "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의 원문을 기준한 것임.
4    창씨개명 반부활론 댓글:  조회:28374  추천:130  2011-01-14
              창씨개명 반부활론---한국에서 불거지는 '창씨개명'식의 우리 동포 민족과 지명, 인명표기 참황‘창씨개명(創氏改名)’을 옥편(玉篇)으로 한자 한자 풀어보면 [創]의 훈음은 [비롯할 창]이며 뜻풀이로는 ‘비롯하다’, ‘시작하다’, ‘만들다’, ‘상하다’, ‘다치다’ 등등이며 유의자로는 [始], [作], [初] 등이다. [氏]의 훈음은 [각시 씨/ 성씨 씨]이며 뜻풀이로는 ‘각시’, ‘성씨’, ‘호칭’, ‘존칭’ 등이며 유의자로는 [姓]이다. [改]의 훈음은 [고칠 개]이며 뜻풀이로는 ‘고치다’이고 유의자로는 [變]이다. [名]의 훈음은 [이름 명]이며 뜻풀이로는 ‘이름’, ‘공적’, ‘사람’, ‘글자’, ‘이름 나다’, ‘이름 짓다’ 등이다. 낱말 그대로 풀이해보면 ‘창씨(創氏)’란 곧 ‘성씨를 만들다’이고 ‘개명(改名)’이란 곧 ‘이름을 고치다’이다. 우리 민족 반만년 력사에선 물론, 기나긴 인류 력사에서 수많은 민족과 부족들은 없었던 성씨를 많이도 만들었고 고금중외로 이름 또한 많이도 고쳐왔다. 성씨와 이름뿐만 아니라 나라명(國名)도 만들고, 바꾸고; 국기(國旗)의 모양과 이름도 만들고 바꾸고; 당파(黨派) 이름도 그냥 새로 만들고 바꾸어온 세월에 어찌 보면 ‘창씨’와 ‘개명’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문명개화현상이며 력사의 변천과 발전 및 진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난세기 기나긴 일제강점기를 겪어온 우리민족에게는 ‘창씨’와 ‘개명’이 ‘창씨개명’이라는 하나의 합성어(合成語)를 이루면서 다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명개화현상이나 력사의 발전과 진보의 상징이 아니였다. 낱말 ‘창씨개명’이라는 단어에는 식민지통치를 받은 설움과 수치로 얼룩진 가슴 아픈 상처를 함께 하고 있다. 한국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낱말 ‘창씨개명’을 “일본식 성명 강요”라고 풀이한다. 다시 “일본식 성명 강요”를 찾아보면 “일제가 강제로 우리나라 사람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일. 1940년에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실시하였으나, 광복 후 1946년 조선 성명 복구령에 따라 무효가 되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이 시기의 ‘창씨’와 ‘개명’은 더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자원(自願)으로 취해진 문명개화현상이 아니라 침략자 일제의 강요(强要)에 의해 감행된 전 사회적, 전 민족적, 전 국가적인 피해와 재난인 것이다. 문제의 핵은 일제침략자에 의해 억지로, 강제의 요구로 강구(强求)된; 인권 박탈과 탄압, 민족말살정책 음모를 전제로 한; 하늘에 사무치는 식민지통치를 영구화 하려는 무서운 죄악을 바탕으로 한; 국제 공법을 무시한 고금천지, 전대미문의 범행으로 우리의 해내외 모든 동포들이 수난을 겪도록 한; 삼천만 우리 동포를 겨냥한 일제의 일방적이고 강박적인 ‘창씨개명’이라는 점이다.(일제시기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창씨개명’을 맞선 우국지사(憂國志士)의 시말과 참황 약함) 력사는 인류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70여 년 전의 이른바 '창씨개명'을 탈바꿈시켜 다시 재생, 재현시켜 등장토록 하는 듯싶다.  다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를 뿐이다.  무릇 우리 동포며 우리 겨레라면 광복을 맞은 삼천리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무상의 긍지로, 무상의 영광과 기쁨으로 여길 것이다. 그 열광 속에는 그에 못지않은 가슴 아픈 상처를 가시는 통감도 함께 하고 있다. 기나긴 일제 강점 35년간의 식민지통치를 받은 설움과 수치를 잊지 않고 있다면 그 암담한 세월 일본식 성명 강요로 실시된 일명 ‘창씨개명’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옛날의 '창씨개명'은 악착같은 일제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려고 갖은 탄압과 강박으로 우리 겨레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요하여 삼천만 해내외 동포들이 거국(擧國)적의 수난을 당하도록 하였다면; 오늘은 오히려 그 피해를 입었던 한국이 중국의 200만 우리 동포들로 하여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姓)과 부모가 지어준 이름(名), 지어는 오랜 세월 뿌리내려 정착한 정든 고장의 명칭도 모조리 버리고 바꾸도록 핍박하고 있다. 중국의 우리 동포들은 광복 전에는 일제의 ‘창씨개명’에 수난을 겪었다면 새천년 오늘에 와선 고국에서 불어온 느닷없는 ‘창씨개명’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이중 삼중으로 거듭되는 참황에 시달리고 있다.   70년 전에 일제가 강요한 우리 겨레의 인명은 일본식이였지만 오늘 한국이 강요하는 우리 겨레의 인명, 지명은 중국 현지음-원지음이란다. 필자는 국제 통용관례에 따라 세계화에 따르자면 외국의 인명 지명은 객수주편(客隨主便), 명종기주(名從其主)의 원칙으로 손은 주인에 따라야 한다는 통념(通念)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한자문화권에서의 한문 또는 한자, 한자어로 명명된 지명, 인명은 국제통상(國際通常)과 달리 우리 문화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고자 한다.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개념을 새로 재정립, 규회(規誨)하고 우리 한자의 관적(貫籍)과 본향(本鄕)을 찾아 옳고 바른 우리말과 우리글로 우리 력사와 우리 문화를 지켜가야 할 것이다.(필자의『우리 한자 규명과 바른 우리 말과 글』- “필자가 보는 한자, 한자어, 한자음” 참조) 아래 한국판의 ‘창씨개명’을 살펴본다. 2007년 10월 12일자 한국『문화일보』의 인터넷뉴스(전자신문)에 “제4회 ‘홈타민컵’ 전국조선족어린이방송문화축제”라는 기사가 올랐다. 아래는 기사에 오른 우리민족(조선족) 인명이다. ‘장숴저우’, ‘진위화’, ‘진제’, ‘진후이전’, ‘퍄오샹스’, …… 우리 동포들의 인명이 다음과 같은 방정식으로 둔갑되었다. 한자명 ‘張碩宙’ → ‘장석주’ → ‘장숴저우’로, 한자명 ‘金玉華’ → ‘김옥화’ → ‘진위화’로, 한자명 ‘金杰’ → ‘김걸’ → ‘진제’로,한자명 ‘金慧珍’ → ‘김혜진’ → ‘진후이전’으로, 한자명 ‘朴香實’ → ‘박향실’ → ‘퍄오샹스’로 …… 고향이 경상북도 예천이며 본이 안동인 필자 ‘장석주(張碩宙)’가 ‘장숴저우’로 불리고 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01201033224072002 웹페이지 참조. “중국 길림성교육대표단, 도교육청 방문”이라는 제목을 한『한국교육신문』웹 사이트(2006-09-27)에서는 중국 연변대학의 조선민족 ‘김병민(金柄珉)’ 총장이 ‘진빙민’으로 올랐다. http://www.edum21.com/paper/news/view.php?papercode=news&newsno=2293§no=1§no2=0 참조 『한국대학신문』웹 사이트(2008-07-25)에는 ‘연변대학’ ‘김병민’이 ‘옌벤대’ ‘진빙민’으로 올랐다. 인명뿐만 아니라 지명까지도 모조리 ‘개명’하고 있다. 한국의『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국민일보』들은 앞 다투어 해외 우리 동포가 가장 많이, 또 가장 오래전부터 살아온 중국 ‘연변(延邊)’을 ‘옌볜’으로, ‘연길(延吉)’을 ‘옌지’로, ‘룡정(龍井)’을 ‘룽징’, ‘도문(圖們)’을 ‘투먼’이라고 별명지어 부르고 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6/2010091600097.html 등 웹페이지 참조.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457412 참조.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0304178&code=41121111&gstatus=no 참조. 한국의 민중서림에서 최근에 펴낸『국어대사전』(2006)의 2689쪽에도 낱말 옌볜과 옌지 그리고 옌볜대학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올랐다. 한국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낱말 지명 ‘연변’과 ‘연길’, ‘도문’이 ‘옌볜’과 ‘옌지’, ‘투먼’으로 올랐다. 지난 2008년 7월 12일 15시(한국시간) 한국의 ‘국민의 텔레비전중심채널’이라고 자부하는 ‘KBS’에서 “중국−대만 59년 만에 열린 하늘 길”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송 되었다. 방송에서 ‘베이징쇼우두 공항’이라는 자막과 함께 해설이 수차 거듭 되었다. 그 다음 달 같은 방송국의 ‘2008북경올림픽’ 소개 화면에 오른 ‘서우두공항’이라는 자막을 보면서 필자는 ‘쇼우두’와 ‘서우두’가 도대체 무슨 말이며 두 낱말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여 사전까지 뒤지며 그 뜻을 헤아리려 했었다. 방송화면을 유심히 살펴보니 글쎄 ‘수도공항’의 ‘수도(首都−shoudu)’를 한문자발음을 본 따느라고 ‘쇼우두’, ‘서우두’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날 같은 방송에서 “제5의 도시”라는 표제로 중국의 “漢王科技”회사를 소개하는 화면에서는 ‘한왕커지’라는 자막이 여러 번 흘렀다. ‘과학기술’이라는 준말(약어) ‘과기(科技-keji)’가 우리말로 ‘커지’로 둔갑되었다.(한나라 왕이 크냐고 문의하는 듯하다) 2007년 9월 3일자 “Daum아고라”(Daum한메일) 웹 사이트와 2008년 5월 17일자 한국『전국경제인연합회(FKI)』를 비롯한 일부 언론과 책자들에서는 ‘조선족(朝鮮族)’을 ‘차우센주’, ‘초센주, 초우센주, 센주’로 표기하고 있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8987 등 웹페이지 참조. 한국의『chosun.com라이프』웹 사이트에서는 2010.01.11자로 “[중국의 소수민족]⑨ 차오시엔족(朝鮮族)”이라고 제목 한 기사는 “최고위 인사는 소수민족 정책 총괄했던 장관급 리더주(李德洙)”……“한반도계 중국인을 뜻하는 차오시엔족은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독특한 존재다”라고 서두를 떼고 있다. 조선민족 ‘리덕수’가 ‘리더주’로, ‘조선족’이 ‘차오시엔족’으로 둔갑되고 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1/2010011100452.html 참조. 참으로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마치도 한국이 70년 전의 피해자로부터 오늘의 가해자로 군림 되어 일제의 ‘창씨개명’을 본받아 그 때를 답습이라도 해보고 싶은 듯이, 무고한 해외동포들과 동포들이 뿌리내린 고장의 인명, 지명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벌하게 마구 ‘개명(改名)’을 강요, 감행하고 있다. 인명, 지명은 물론 보통명사와 수사(數詞)에 이르기까지도 마구 ‘개명’을 감행하고 있다. 례하면: 뎬신(点心)(270쪽), 지우지아(酒家), 러우와이러우(樓外樓), 지우뎬(酒店), 상뎬(商店), 구러우(鼓樓), 바이훠(百貨), 거우우중신(購物中心)(219쪽), 원우상뎬(文物商店)(219쪽), 와이탄(外灘)(186쪽), 우이판뎬(五一飯店)(368쪽) …… 지어는 외국의 국가 명칭과 종교 이름도 중국어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면서 마구 고친다. 례하면: ‘러시아(俄羅斯)’가 ‘어루어쓰’로(136쪽) ‘기독교회(基督敎會)’가 ‘지두지아오후이’로(152쪽) …… (한국 시공사 편『해외여행 가이드북』⑥ ) 한국의 시공사에서 2007년 3월에 펴낸 이『해외여행 가이드북』⑥ 책자가 얼마나 많이 탐독되었으면 2007년 3월 9일 개정판으로 7쇄 인쇄되었고 같은 해 3월 16일자로 7쇄 발행 될 만큼 인기가 높다는 것에 마음이 더 무거워 진다. 문제는 우리말과 우리글에 이미 정착되어 굳어져 있고 오래전부터 익히 써오던 한자어 인명, 지명을 모조리 버리고 대신 말을 하는 이(화자・話者)와 말을 듣는 이(청자・聽者) 및 그 말을 글로 적는 이(寫者)와 옮기(전달자・傳者)는 이들 모두에게 아리송한 ‘창씨개명’으로 이른바 신형의 외래어를 무더기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말을 하는 이나 듣는 이, 또는 적는 이나 옮기는 이 모두가 우리 동포가 아니면 우리말을 배워 우리말을 기준으로, 우리들 사이에 주고 받아야함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알고도 모를 조어(鳥語・造語)로 지껄거려야 할 리유가 무엇인지 못내 궁금하다. 지난 세기말부터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과 『한글 맞춤법』의 ‘두음법칙’으로 하여 금이 생긴 한자 문화가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한자, 한자어의 빙소와해(氷消瓦解)와 균열(龜裂)의 진통을 겪다가 끝내는 이른바 ‘외래어’를 몰고 온 해일(海溢)로 하여 풍비박산이 되어가고 있다.(필자의『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제10절 “두음 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과 우리글” 참조) 우리 반도에서 시단(始端)된 한자와 한자어의 변탈(變脫)과 붕괴가 동북아를 넘어 환태평양으로 번지어질까 적이 불안하다.   일제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삼키고 동화시키려는 속셈으로 우리 겨레들에게 일본식 인명을 강요했었다.   하다면 복수로, 분풀이로, 앙갚음으로라면 피해자였던 한국은 가해자였던 일본을 겨냥해야 했을 것이고, 가령 일본이 아닌 누구를 상대로 했든지 간에 우리 겨레말 보급을 추진했어야 할 텐데 하필이면 전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재외동포들보다, 그리고 그 어느 민족들보다 자기 력사와 문화 내지 겨레말과 글을 으뜸으로 잘 지켜온 두만강, 압록강을 사이에 둔 우리 겨레들만을 선택하여 겨레말을 버리도록, 피나는 상처에 소금을 퍼부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혹여 힘없는 해외동포라고 얕보거나 업신여기거나 귀찮아서가 아닐 터인데 어찌하여 구국간성(救國干城)을 그대로 지키며 겨레의 얼과 독립 혼을 그대로 물려받은, 해외동포들의 생명으로 지켜온 동족어(同族語)를 깡그리 말살하려 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오리무중, 가슴이 뭉개지는듯하다.   력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해외 우국단충(憂國丹忠)의 뜻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한자(漢字)의 시조(始祖)와 정초(定礎)와도 같은 동이문자(東夷文字)의 발상지(http://d.wanfangdata.com.cn/Periodical_zyww200202008.aspx www.hanja-edu.com/renew/education/necessity_3.htm참조)에서 온 중국의 조선민족들이 한국에서 국적이나 영주권 또는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거나 발급받을 때에 받는 가장 큰 충격과 심한 자극은 우리말과 우리글의 성명(姓名)을 급기야 버려야하고 더구나 집안 족보(族譜)나 가보(家譜)에 오를 때에도 자기 성과 명이 아닌, 한자어도 고유어도 아닌, 영어도 로마자도 아닌 자기도 모를 이름(이른바 영문부호조합)으로 취급당하는 수모를 격을 때이다. 례하면; 본관은 밀양 박(朴)씨이건만 ‘박수운(朴秀云)’이 ‘퍄오슈윈’으로, 본관은 김해 김(金)씨이건만 ‘김대환(金大煥)’이 ‘진다환’으로, 본관은 안동 권(權)씨이건만 ‘권오송(權五松)’이 ‘췐우수웅’으로, 본관은 수원 백(白)씨이건만 ‘백태봉(白泰峰)’이 ‘표타이펑’으로, 본관은 신안 주(朱)씨, 상주 주(周)씨인데 불현듯 ‘저우’로 변하고, 본관은 광주 모(毛)씨, 함평 모(牟)씨인데 불현듯 ‘마오’로 변하고, …… 동족 간의 지역시기(地域猜忌) 내지 열등차별보다 더한 모욕(侮辱)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잉태하고 움튼 이른바 새로운 외래어 기형아가 일제의 ‘창씨개명’보다 더 앙탈을 부리며 해내외에서 우리의 굳어진 한자어 인명, 지명을 좀먹고, 삼키며 가족과 혈육상봉에마저 끼어들어 마구 제멋대로 길길이 자라고 있다. 필자는 상술한 기형아의 산실(産室)은 우리 한자와 한자어를 도외시하고 외면하고 뭉그러뜨린 한국의『외래어 표기법』, 그 중에서도 “중국어의 표기”와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규정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비극적인 잉태와 생산(生産)이 가능토록 여건을 지어줌은 바로 우리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개념과 풀이에 문제가 있고 한국과 조선 및 해외를 비롯한 지금까지의 모든 우리말 사전들의 해당 낱말에 대한 주석(새김)에 문제가 있으며 아울러 그로인한 한자 문화권에 대한 이해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사전에서의 잘못된 ‘한자, 한자어, 한자음’ 주석; ‘한자 문화권’에 대한 리해와 역할에 대한 진술은 생략함, 필자의『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상편 참조) 아래 한자의 유래를 간추려 본다. 한자(漢字)는 한어(漢語)를 기록하는 문자이다. 세계적으로 아주 유구한 문자의 하나로서 이미 60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보존하고 알아 볼 수 있는 문자는 3000여 년 전의 은(殷), 상(商)나라의 갑골문(甲骨文)과 그 뒤로 발굴된 금문(金文)이라고 한다. 최근 한자의 기원이 고고학연구가들로부터 새로이 밝혀지고 있다. 중국 산동성 정부 웹 사이트 ‘山东省情网(WWW.infobase.gov.cn)’의 ‘省情网’으로 서명한 글 ‘东夷及其文化发展(2007-07-31)’을 방문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뚜렷이 눈에 띈다. “最早的文字,当是东夷人的创造。《潜夫论·五德志》有“少皞始作书契”,的说法。这一说法得到了考古发现资料的证明。” 필자의 얕은 수역(修譯)으로 그 뜻을 헤아려보면 “최초의 문자는 동이사람들이 창조하여 ‘소호시작서계(少皞始作书契)[적을 少, 밝을 皞, 처음 始, 지을 作, 글 書, 새길 契 -어려서부터 사리에 밝아 시작부터 부절(符節)을 새겼노라]’설이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중국의 ‘齐鲁晚报’ 2008년 10월 27일의 글 ‘神秘东夷甲骨文现山东-疑比殷墟甲骨早千年’, 또는 산동성사회과학원(山东省社会科学院) 방진호(逄振镐) 연구원의 글 ‘从图像文字到甲骨文-史前东夷文字史略’(2002年 02期 中原文物 Cultural Relics of Central China http://d.wanfangdata.com.cn/Periodical_zyww200202008.aspx 참조)을 보면 골각문자(骨刻文字)인 동이문자(東夷文字)가 지금까지 알려진 은허(殷墟) 갑골문자(甲骨文字)보다 무려 1000년 내지 1500년 전으로 알려져 산동대학 고고미술학연구소 류봉군(劉鳳君)소장은 얼마 전에 “20세기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갑골문자 발견이었다면 이번 골각문자 발견은 중국 력사를 지금보다 천여 년 이전으로 돌리는 21세기 중국 고고학의 력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지극히 중요한 것은 은허 갑골문자 이전에 동이문자가 먼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자는 동이문자의 맥을 이어 발전되어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문자의 시조(始祖)와 같은 [새길 契], [집 家]에 대한 원초(原初)적 연구로 동의문자의 정초(定礎)를 잡고 있는 한국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진태하회장의 주장을 찬성하며 본문에서는 략한다.(www.hanja-edu.com/renew/education/necessity_3.htm참조) 동이문자를 파고들자면 우선 ‘동이’라는 낱말을 바로 리해해야 한다. 중국 대사전『辭海(사해)(1979년 판)』제46쪽에 “東夷”라는 낱말을 보면 ‘見 “夷”(“이”를 보라)’라고 올랐다. 다시 제644쪽에 오른 낱말 “夷”를 보면 “中國古代對東方各族的汎稱…舊時亦往往用以称外國人。)라고 풀이하고 있다. 뜻인즉 ‘동이’란 바로 ‘중국고대에 동방의 각 민족들을 두루 일컫는 범칭…옛적에 또한 외국인을 일컫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말 사전 낱말 풀이대로 “동이”라면 “동쪽의 오랑캐”,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이고 “동이문자”라면 바로 “동녘의 오랭캐문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한국의 모든『국어사전』, 중국 연변인민출판사『조선말사전』1992’ 참조) 중국의 한문(중어)사전들에서보다 우리말 사전들에서 “동이”를 “동쪽의 오랑캐”니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니 하며 그 옛날 발해만(渤海灣)에 뿌리내린 조상들을 욕보이고 있다. ‘동이골각문자’를 정설(定說)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동이(東夷)’라는 낱말을 한국의 우리말 사전들에서 바로 새겨야 할 것이며 특히 옥편에서 [夷]를 [오랑캐 이]로 한 훈(訓)을 고쳐야 할 것이다. 실은 한문자 [夷]는 [클 大]와 [활 弓]의 합자(合字)로서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 뜬 글이며 ‘화험위이(化險爲夷)’에서 ‘夷’자 마냥 ‘온화’, ‘평탄’, ‘안온’, ‘기쁨’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력사를 바로 잡고 비록 늦었지만 당대발복(當代發福)으로 조상을 정히 모시면서 급격물실(急擊勿失)로 명분을 되찾아야할 것이다. 필자는 “동이・東夷”를 “동방의 큰 활을 쏘는 어진 민족”, “동방의 큰 활을 쏘는 슬기로운 민족”으로 칭하고자 한다. 아울러 [夷]의 훈과 음은 [夷 = 활 이]로 새기고자 한다. (사전(辭典)에서의 한자, 한자어, 한자음 주석(註釋) 규명과 규회 및 한문자의 력사와 그에 앞선 인류력사에서 문자의 출현은 필자의『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상편 참조) 여기서 잠시 한국에서 ‘창씨개명’ 수단으로 중국의 이른바 ‘차우센주’, ‘초센주, 초우센주, 센주’로 일컫는 조선족과 이른바 ‘옌지’, ‘옌볜’, ‘옌볜대학’이라 일컫는 연길, 연변과 연변대학을 간략히 소개한다. 중국 조선족은 ‘인터넷 다국어 백과사전’이라 일컫는 ‘위키백과’에서 풀이한 것처럼 ‘한국계 중국인’도 아니고 ‘조선계 중국인’도 아니며 더구나 많은 재일동포들처럼 국적이 없는 섧은 ‘조선’인이 아니다.(일본의 ‘조선인’, ‘제일동포’, ‘무국적 장기거주인’ 등 력사와 현황 생략) 중국의 조선족은 우선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의 당당한 일원이다.(호칭 ‘조선인’, ‘조선민족’, ‘조선족’, ‘한국인’, ‘한민족’, ‘배달민족’의 구별; 민족 기원설, 민족 전이설과 민족 변천 설 생략) 중국의 조선족은 결코 한국 일부에서 보는 눈높이의 헐벗고 굶주린, 품 팔고 약 파는, 귀숙 할 곳 없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고달프고 불쌍한 시골뜨기 불법의 ‘초우센주’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의 대상이 아니라 단군의 고조선과 근세조선의 피를 물려받은, 적장(嫡長)의 정통(正統)과 대통(大統)을 이은, 광개토대왕릉비와 발해의 옛터에 뿌리를 내려 반만년 찬란한 력사를 지키며 오늘에 와서 고국의 남북과 해내외 어디와도 다른, 남다른 철학과 우수한 문화 내지 근면한 성격과 아름다운 품행, 훌륭한 인격을 갖춘 조선민족의 략칭−조선족으로서 조선어를 자랑스럽게 쓰며, 동이문화(東夷文化)와(http://baike.baidu.com/view/1605857.htm 웹페이지 참조) 동이문자(東夷文字)(http://baike.baidu.com/view/1798462.html참조)의 맥을 이은 한자문화권에서 드넓은 마음에 산과 바다를 담고 13억과 어울려 친구로, 형제로 사귀며, 정정당당히 중국 및 동아시아와 세계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제반 무대에서 큰 꿈을 이루며 머지않아 세계의 주축에서 주류를 주름잡을 억만 장자들이다. 중국 길림성민족연구소 차철구 연구원은 중국의 조선족 현황을 다음과 같이 종합하고 있다. “중국조선족들은 글로벌경제 추세와 대외개방의 유리한 시기에 지연상근, 친연상련, 문연상통한 독특한 우세를 활용하여 해외에 가 로무에 종사하고 실업회사(현대공업과 상업을 망라)를 세우고 도시에 거주하는 등 대외개방의《3부곡(三部曲)》을 성공적으로 연주하여 바야흐로 개방민족으로, 산업민족으로, 도시민족으로 힘차게 발전하고 있다. 2008년 세계지식출판사에서 출판한《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목전 전국 조선족들이 설립한 중소기업은 이미 2만 여개에 달한다. 연변지구에는 조선족이 경영하는 기업이 대략 2000개 된다. 주요하게 특산물, 제조업, 복장업, 오락음식업 등 각종 서비스업을 경영하고 있다. 연변지구외의 길림성내에는 조선족기업이 또 800여개 된다. 그중 부동산개발, 자동차부품, 광전자산업과 서비스업은 길림성 조선족기업의 주류이다. 흑룡강성에는 조선족기업이 2000여개 된다. 그중 기계생산, 급수설비, 보이라 등 제조업이 200여개 된다. 대 한국, 대 조선, 대 러시아, 대 일본 등 국제무역에 종사하는 기업도 있다. 료녕성에는 조선족기업이 약 3000여개 된다. 주로 심양, 대련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 총 자산이 1억 원 이상 되는 기업이 10여개, 1000만 원 이상 기업이 50여개 된다. 북경, 천진 지구에는 조선족기업이 약  3000여개 있고 산동성에는 조선족기업이 약 400O여개 있다. 주요하게 청도, 위해와 연태 등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 청도조선족기업협회에에 등록한 기업만 해도 1170여개나 된다.  그들이 경영하는 주요항목으로는 제조업, 수출입무역, 수출입대리, 화물운수대리, 수산물가공 등이다. 상해, 절강 등 화동지구에도 조선족기업이 2000여개, 광동성에도 조선족기업이 2000여개 있다. 그중 총자산이 1000만 원 이상 되는 기업이 200여개 있다. 조선족들이 중국의 서부지구에 들어가 창설한 기업도 100여개 된다. 조선족들은 또 운남성, 중경, 성도 등지에서도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정신으로 기업을 창설하고 창업의 길에 들어서서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중국의 조선민족은 역동의 동포사회를 이끌어 산업민족으로 궐기하고 거듭날 뿐만 아니라 마침내 고국의 평화통일을 이끌 선구자들이기도 하다. 조선과 한국을 한눈에 바라보며, 분단된 남과 북의 허와 실을 누구보다 환히 알며, 고국의 남과 북을 누구보다 배려하며, 남북의 겨레들이 항시 함께 편히 만날 수 있는 따뜻한 품을 마련해드리며, 그로 하여 고국의 평화통일을 누구보다 갈망하며, 자주통일을 장만하며, 어쩌면 고국의 통일을 먼저 잉태 할런지도 모를 연변과 중국의 조선민족은 세계 모든 해외동포들의 부러움과 긍지를 갖는, 마음으로 따르고 배워야 할 본보기 겨레들이다. 연변과 중국 조선민족의 꿈과 희망은 해외동포사회의 찬란한 내일과 미래다.(중국 조선민족의 수백년 력사와 변천은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중국조선족사료전집』참조) 연길(延吉)은 2,000년이 넘는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1860년 이래 조선북부에 해마다 흉년이 들었으며 1869년에는 재해가 더구나 심하여 살길이 막힌 조선농민들은 두만강북안으로부터 부르하통하, 가야하 류역으로 몰려들었다. 1885년 청(淸)정부는 두만강이북 길이 7백여리, 너비 40∼50리 지역을 조선이민특별개간구로 정하고 월간국(越墾局) 일명 간무국(墾務局)을 설치, 때문에 국자가(局子街)라고도 불렀다. 1902년 연길청(延吉廳)이 설치되고 1909년 부(府)가 되었으며 중화민국 수립 후 현(縣)이 되었다. 1909년 간도협약(間島協約)이후에 교역주로서 개방되자 많은 우리 동포(당시 당지인구의 76.6%로 9만 8천여명)들이 이주하여 연길과 그 주변 지역을 개척하였다. 1931년에 이르러 우리 민족인구는 40만 6천명, 1944년엔 무려 63만 1700명에 달하여 중국 동북3성 조선민족인구 총수의 38%를 점했다. 이 고장은 조선반도(한반도)와 력사를 같이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활약했으며 그로 하여 청산리항일전승지(靑山裏抗日戰勝地), 봉오동(鳳梧洞)항일승지, 일송정(一松亭) 등 유적지가 많다. 연변(延邊)은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의 략칭으로서 중국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조선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4만 3547평방킬로미터, 인구는 219만 여명 정도이고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조선족이 40%이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민족자치구로 설립되였고 1955년 12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칭되였다. 산하에 연길(延吉), 도문(圖們), 돈화(敦化), 화룡(和龍), 룡정(龍井), 훈춘(琿春) 등 6개 시와 왕청(汪淸), 안도(安圖) 등 2개 현으로 구성되여 있다. 하천으로는 송화강(松花江), 목단강(牡丹江), 수분하(綏芬河) 등이 있고 두만강 류역에는 “동북아 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 불리는 국제 개발구, 훈춘경제개발구가 있다. 2009년 9월 중국 국무원이 비준한 “중국 두만강지역 개발규획 개요”로 선행선제(先行先制) 시험권을 부여받게 된 장춘·길림·도문개발개방선도구(長·吉·圖開發開放先導區)는 연길·룡정·도문(延·龍·圖) 일체화를 비등(沸騰)시키고 있다. 연변대학은 산하에 19개 학원, 10개 학과류, 70개 본과전업에 재학생 2만 6,000여명, 학교 종업원은 2,700여명에 교수와 부교수 750여명, 18개 나라에서 온 류학생 500여명, 박사지도교수 56명에 박사연구생이 130여명, 석사지도교수 378명에 석사연구생이 2,490여명, 건교 이래 10여만 명에 달하는 졸업생을 배출한 규모로 2001년 중국 교육부로부터 서부개발 중점건설 대학으로 확정된 명문대학이다.(2009년 10월 통계) 지금 중국교육부에 등록된 중국 복단대학, 중앙민족대학, 북경대학 그리고 흑룡강, 산동, 상해, 절강 등 성과 시의 대학교의 본과, 단과, 사립대학의 조선・한국어학과가 80여개소가 있는데 이들 학과의 교사들 절대 대부분은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중국국가급중점학과와 국가급 특색전업−조선언어문학학과, 조선어전업)을 졸업한 학생들이거나 그 학생을 스승으로 모신 학생의 학생들이다. 연변과 연길, 연변대학의 우리 동포들은 세세대대로 우리 민족의 문자와 언어를 우선적으로 잘 씀으로써 세계 그 어느 나라의 해외동포들보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잘 지켜왔다. 하여 세계 방방곡곡의 우리 동포들에게 연변과 연길, 연변대학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중서림에서 최근에 펴낸『국어대사전』(2006)의 2689쪽에는 낱말 옌볜과 옌지 그리고 옌볜대학이라는 단어가 올랐다. 한국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낱말 지명 ‘연변’과 ‘연길’이 ‘옌볜’과 ‘옌지’로 올랐다. 전대미문이고 금시초문이다. 기절초풍으로 환장(換腸)할 노릇이다. 천둥소리에 놀라 어리둥절하다가 불시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이제 ‘옌볜’, ‘옌지’와 같은 관형어(규정어)를 앞세운 단어들이 정든 우리의 ‘연변’, ‘연길’은 물론, ‘연변’, ‘연길’을 앞세운 부지기수의 인명, 지명 내지 차차 모든 우리말과 글로 된 호칭과 단어를 소멸하고 ‘옌볜(연변)’을 발판으로 숨 가쁘게 더 넓은 ‘젠다오(間島)’와 ‘만저우(滿洲)’벌판의 우리 동포가 사는 방방곡곡을 샅샅이 훑으며 우리말과 글을 무차별로 무자비하게 침입(侵入)할 것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중국에 예나 지금이나 우리말과 글로 ‘옌지’라는 지방이나 지역이 없다. 그런데 난데없는 ‘옌지’라니? 아마 연변을 ‘옌볜’으로 둔갑시켰으니 200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연길도 졸지에 ‘옌지’로 둔갑이 되고 따라서 1949년에 설립된 ‘연변대학’도 그 ‘세례’를 입어 예순 환갑에 즈음하여 ‘옌볜대학’으로 딱지를 붙였을 것이라고 짐작이 간다. 필자가 연변대학을 졸업했고 필자의 대학 동기 동반생이 지금 현재로 연변대학의 총장임에도 필자도, 현임 연대 총장도 ‘연변대학’이 급기야 ‘옌볜대학’으로 둔갑한 것을 모르고 있으니 하긴 한국의『외래어 표기법』과『국어대사전』이 귀신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도깨비의 조화(造化)라고 해야 할까? 중국의 조선민족에게 보이는 학교 간판은 분명히 지금 오늘 이 시각에도 세종대왕님께서 만드신 한글・조선글로 또박또박 박아 쓴 ‘연변대학’이고, 중국 연길시 공원거리 상공에 펄펄 휘날리는 교기(校旗)는 어제도 오늘도 우리글 ‘연변대학’ 그대로이며, 연변대학 교사(校舍)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청사와 가지런히 푸른 하늘 아래 두만강 기슭에, 백두산과 함께 마냥 거연히 솟아있다.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 우리 동포 학도들의 뜨거운 가슴에 단 흉장(胸章)・마크도 ‘연변대학’이며 60년간의 모든 졸업증, 학사증, 박사증에 찍은 관인(官印)보다 소중한 대학공인-교인(校印)도 당당히 세계의 인증을 받고 있는 ‘연변대학’이다. 이 고장 우리 동포들에게는 자랑찬 60성상(星霜)을 이어온, 마음의 거룩한 성상(聖像)인 ‘연변대학’임에도, 연변대학의 장래가 곧 중국과 해외동포들의 민족교육의 자랑이고 희망임에도 글쎄 한국의 일부 어학자들의 눈에는 그 것이 불현듯이 ‘옌볜대학’으로 보이니 참으로 그들의 두 눈을 안과의에게 정밀 검진을 맡기든가 아니면 정신질환으로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고국의 외래어 제정 대감들의 심기(心氣)를 건드려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저지를지라도 ‘옌볜’은 얼토당토 안은 망발(妄發)이고 망언(妄言)이라고 지적하련다. 연변대학은 중국 조선민족교육의 간판이며 해외동포 교육의 간판이고 자랑이다. 한국에서 함부로 동포 교육의 간판−재외동포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상처 난 가슴을 도려내고 에어내고 거기에다 소금을 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이 우리 연변대학 예순 돌에 축하문은 보내지 못할망정 장장 60년간 우리 동포들이 애지중지 정으로 목숨으로 잘 키우고 지켜온 ‘연변대학’의 성스러운 성씨와도 같고 명줄과도 같은 ‘연변’을 뿌리 채로 뽑아버리고 바로 그 자리에다 대신 입에도 올리기 거북한 ‘옌볜대학’을 등극시켜 염병으로 우리의 ‘연변대학’을 일조에 짓뭉개버리려는 것은 아닐 터인데. 있지도 않을, 또 있어서도 아니 될 폐교식에서나 쓸 조문(弔文)마냥 ‘연변’을 영결(永訣), 영별(永別)시키려 하고 ‘옌볜’이라는 알고도모를 조어(鳥語)(사전에서는 낱말 ‘조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지껄이는 말소리”라고 풀이하고 있다)로, 초상(初喪)의 조화(弔花)마냥 불미하고 불길한 ‘옌볜대학’ 딱지를 보내어 민족대학의 민족정기(精氣)와 겨레정기(正氣)를 꺾고 모름지기 수정주의(修正主義)마냥 중국어발음을 본 딴, 다시는 우리의 민족대학과 별로 관련이 없는, 다만 ‘옌볜’에 자리 잡은 ‘대학’이라는 의미로 ‘옌볜의 대학’ 즉 ‘옌볜대학’으로 치부하려 함이 아니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어떻게 하든 름름한 연변대학의 기강을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연변대학(延邊大學)’의 략칭(略稱)을 ‘연대(延大)’라고 친절히 부른다. 하다면 한국에서 별명을 달아 선물하려는 ‘옌볜대학’의 략칭은 ‘옌대’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옌다’, ‘옌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략칭이란 대저 한자어에만 통하지만 고유어도 한자어도 아닌 ‘옌볜’은 간사(奸邪・奸詐)하고 암특(暗慝)하게 한자어 ‘대학’을 둘러업고 어떤 수로도 략칭, 략어로 둔갑되어 더더욱 기구망측한 신조어로 창씨개명을 하려고 설칠 것이다. 해당 학교나 이 지역 동포들은 바라지도 않는데, 아니 오히려 반감을 쌓고 있는데 고국에서는 무슨 영문인지, 어떻게 된 감투끈인지 괜히 연변대학을 뿌리 빼고 따돌려 ‘옌따’로 만들려 하고 있다. 만약 낱말 ‘연변대학’이 우리글의 맞춤법에 어긋나기에 옳게 바로잡으려고 한국이 새로운 개명이나 개칭을 시도했다면 모르지만 우리 한자어 낱말 ‘연변대학’은 우리 겨레의 같은 문자로, 같은 우리 한자음으로 조선어나 한국어의 맞춤법에 추호(秋毫), 일호(一毫)의 어김이 없음에도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한자어 ‘연변’을 버리고 ‘조어’와 같은 혐의를 받으면서까지 ‘옌볜’이라고 개명, 개칭할 리유가 무엇일까. 연변대학을 중국어로, 영어로, 러시아어로, 일어로, 불어로 또는 그 어떤 국가나 민족의 문자와 언어로 어떻게 표기하고 호칭함은 전적으로 연변대학의 관련 기준에 따라야 한다. 세계 각국과 각 민족은 반드시 연변대학의 자기 학교명 호칭에 관한 결정과 결의 및 의사에 따라야 할 것이고 혹여 혹자가 별다른 명으로 호칭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선 연변대학의 동의를 거치고 연변대학과 합의서를 체결하거나, 또는 연변대학에 서약서를 바쳐야 할 것이다. 이는 마치도 한국의 수도 ‘서울’을 중국에서는 ‘漢城’이라고 부르고 표기하던 것을 한국의 요구에 따라 ‘서울’을 한국어로는 ‘ㅅㅓㅇㅜㄹ’로, 영어로는 ‘SEOUL’로 발음하니 중국도 중국어로 ‘서울’ 발음에 가까운 ‘首爾(수이)−SHOUER−서우얼’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여, 중국에서 ‘오냐 알았다’는 식으로 그리하고 있지만(필자의『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얼에 대한 단상” 참조) 수도명 ‘서울’을 제외하고는 기타 한국의 ‘서울’을 앞세운 공관, 기관, 학교, 병원, 협회, 회사, 회관, 공원, 호텔, 거리 등의 호칭은 해당 부서나 부처 및 단체나 단위들에서 중국어로 개명, 개칭을 요구하지 않는 한 원래의 호칭을 원칙으로 지키는 것과 같은 리치고 도리이다. 례하면: 한국의 많은 관광지도나 려행안내문에는 오늘에도 중문(中文)으로 ‘漢城市政廳−서울시청’, ‘漢城大學−서울대학’, ‘SBS漢城廣播電視台−SBS서울방송’, ‘漢城中央郵局−서울중앙우체국’, ‘漢城中華靑年會議所−서울중앙청년회의소’ ‘漢城海關’, ‘漢城酒店’, ‘漢城高速客運站’…… 등등으로 일컫고 있는데 모두 ‘서울’을 ‘서우얼-首爾’이라고 고치지 않고 여전히 ‘한성(漢城)’이라고 명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무리 ‘연변’을 ‘옌볜’으로, ‘연길’을 ‘옌지’로, ‘연변대학’을 ‘옌볜대학’으로 크나 큰 국어대사전에 낱말로까지 주석을 달아 새겨 ‘창씨개명’식으로 올렸다 할지라도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위치한 연변과 연길의 행정도시 명칭과 관공부서 명칭을 비롯한 모든 명칭은 그 지역의 정부나 관계부서에서, 그리고 그 고장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부르고 있는 한, 그리고 대외적으로 중국어발음으로 고쳐 불러달라고 간청하지 않는 한 여전히 변함없이, 동요 없이 원래대로 영원할 것이다. ‘연변대학’을 ‘옌볜대학’으로, ‘연길’을 ‘옌지’로 일컫게 됨은 단순히 학교와 지명의 개명(改名)과 개칭(改稱) 문제가 아니다. ‘연변’과 ‘연길’은 한자어이고 ‘옌볜’과 ‘옌지’는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법’에 따른 중국의 지명이라는 해석과 같은 약은 수로 얼버무릴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너무도 심각하고 엄숙한 시비(是非)와 조백(皁白), 백흑지변(白黑之辨)이 있다. 력사적인 지정학(地政學)적 시비, 어학적인 시비, 한자어와 외래어간의 선택우선 시비, 신조어 원칙과 기준의 시비, 동일민족 타국적(他國籍)의 인명, 지명 기준과 원칙 및 규범에 대한 시비 등등 많은 시비는 그만 두고 다만 같은 민족 한 겨레의 정감(情感) 하나만이라도 ‘연변’이냐 아니면 ‘옌볜’이냐 함에 백흑이 분명하고 리치가 충분하다. 아무리 남의 나라라고 하지만 그 고장의 해외 동족, 동포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라도 이른바『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같은 겨레가 반세기전에 벌써 명명한 행정도시의 명칭과 관공부서 명칭, 명문대학 명칭을 함부로 굳이 자기네만의 ‘규정’에 따라 제 비위(脾胃)에 맞추어 바꾸려거나 고치려 드는 것을 무례(無禮)와 무정(無情), 무식(無識), 무모(無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벼운 질책이다. ‘연길’과 ‘연변’, ‘연변대학’은 지명이나 학교명으로서 보다 우선 중국 조선민족의 력사이고 미래이며, 자존심, 자부심, 자긍심이기도 하기 때문에 중국의 조선민족은 우리의 뼈를 갈며 지켜오고 피와 살로 가꾸고 키워 온 우리 연변의 지명과 인명을 지킴에 그 누구와 한 치의 타협도, 양보도, 아첨도, 아부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로 태어난 그날부터 수십년간 줄곧 최고 관원(官員)인 자치주 주장(州長)은 물론 각 시와 현의 시장, 현장 및 행정기관의 모든 부처(部處)의 주요 책임자 모두가 우리 민족이고 모든 관인(官印)과 공문서(公文書), 관공부서(官公府署)와 행사장, 공공장소며 길거리 안내문도 모두 우리글-조선글이 당당하게 위에 있고 먼저 있다. 이는 한국이나 고국에서 중국정부와 교섭(交涉)해서 챙겨준 대우(待遇)가 아니라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이고 중국의 조선민족이 한 세기의 피와 땀으로 노력하고 쟁취한 결실이고 보람이다.(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편찬한『연변조선족사』참조) 이는 세계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前例)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나라에 있기 힘든 전례(典例)일 것이다. 연변은 이제 단순한 중국 길림성의 어느 지명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이 고장 200만 중국 조선민족 동포와 겨레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사랑과 애정을 넘어 가슴깊이 간직한 ‘마음의 고향’이며 연변은 ‘중국의 조선족’을 상징하는 대명사와도 같다. 연변은 이제 더는 한국 일부에서 보는 눈높이의 가난하고 락후한 중국 변강의 산간벽촌이 아니라 고풍 찬연한 우리의 민족전통과, 구국, 독립을 위한 선철, 선현, 선렬, 선구자의 넋과 얼을 전승(傳承)함과 아울러 오늘은 창의력으로 차 넘치는 정신(鼎新)과 혁신으로 웅비(雄飛)하는, 미래지향(未來指向)을 의식하며 발전하고 약동하는 고장이다. “공 든 탑이 무너지랴”고 200만 중국의 동포겨레가 주축이 되고 십억이 어울려 한 세기를 넘어 피와 땀으로 쌓고 쌓은 탑인데, 하늘높이 쌓은 탑에 새겨진 비문(碑文), 비명(碑銘), 비지(碑誌)가 빛나는 ‘조선족’임을 뉘라서 감히 헐뜯고 마구 헐어버리고 대신 당치도 않을 이른바 ‘차오시엔족’, ‘차우센주’, ‘초센주’, ‘초우센주’, ‘센주’로; ‘연변’, ‘연길’을 이른바 ‘옌볜’과 ‘옌지’로 허수아비마냥 내세우려 하는지 참으로 망연자실(茫然自失), 통탄(痛嘆)과 비탄(悲嘆)을 금할 수 없다. 고국의『외래어 표기법』“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를 정한 대감들은 동근련지(同根連枝)와 동족동포(同族同胞)임은 인정하면서도 오늘날 마치도 동질이상(同質異像)이나 동질다상(同質多像)으로 된, 흡사 정적(正籍)을 이어가는 정실(正室)의 적자(嫡子)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배타(排他)적 정서에서 기인된 소실(小室)의 의자(義子)나 서자(庶子), 얼자(孽子)나 별자(別子)를 얕보며 경계(警戒)하듯이, 또 그 옛날 량반(兩班)어른이라도 된 듯 한 기분으로 상놈을 취급하듯이 마지못해 사돈의 팔촌 대접보다 못한 별명(別名) 비칭(卑稱)으로 폄박(貶薄)한 ‘창씨개명’을 락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조선족과 연변이 있음으로 하여 응당히 무한하고 무상한 자랑을 느끼고 보람을 가져야 할 대신 ‘조선족’과 ‘연변’을 에누리 없이 파헤쳐버리고, 송두리채로 뿌리 뽑아 버리고, 력사의 폐허 속에 무참히 던져버리고, 대신 자타(自他)에게 아무른 도움도 없는, 만민의 질타 속에 만신창이가 된 조어(鳥語) ‘차오시엔족’과 ‘옌볜’을 꼭두각시로 내 세울 연유가 과연 무엇일가.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제4장, 제2절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제1항을 한 번 베껴 본다.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 한다.”(‘과거인’과 ‘현대인’ 구분 생략. 필자의『우리 한자 규명과 바른 우리 말과 글』제7절 참조) 바로 이 조목이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무리로 말살하는, 너무나도 무서운 ‘창씨개명’을 부추기고 강요하는 주목받는 문제의 한 법적 대목이다. 법칙이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을 뜻한다. 부당한 법으로 하여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개울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봇물로 터져 홍수로 번지여지고 있다.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은 지난날 괴나리봇짐 하나로 떠돌아다니며 류랑인생으로 살아온 고조나 증조부모의 찾기 힘든 출생서류를 확인하고서야 그 인명을 한자음으로 써야 하는지, 아니면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으로 원지음(현지음)으로 써야 하는지를 가려낼 수 있게 시달구고 있다. 지난날 타향, 타관, 타국에서 리산가족의 떠돌이 신세로 생존만도 어려웠었는데 언제 그때의 그 시절 의원(醫院・醫員)을 찾고 의관(醫官)을 찾고 의사(醫師)를 찾아 출생서류를 갖추며 족보, 가보를 챙기랴.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러한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은, 아니 ‘한국어의 중국어표기법’은 그 자체가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라 해야겠다. 출생년도나 사망년도는 잠시 그만 두고 만약 부모 중에 어느 한 쪽이 다른 민족일 경우에는 또 어느 기준을 따라야 할까? 진뢰(陳雷) 중국 흑룡강성의 전임 성장과 리민(李敏) 전임 흑룡강성정치협상위원회 부주석은 가렬 처절한 항일투쟁의 참호 속에서 우정과 사랑을 맺어 부부가 되었다. 진뢰는 1911년 후의 중국인(한족)이고 리민은 조선민족이다. 그렇다면 진뢰는 중국 현대인이니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한다는 규정에 따라 ‘陳雷’의 중국어 발음은 ‘chen lei’이니 우리 글로 ‘천래이/천레이/처언례이’로 표기하고 리민은 조선민족이니 우리 한자음으로 표기 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한국의 현행 두음법칙으로 인명 ‘리민(李敏)’을 ‘이민’으로 표기하고 발음해야 할 폐단은 생략함) 진뢰・리민 금혼식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들, 며느리, 딸과 사위, 손자, 손녀들의 이름을 한국에서는 어떻게 부를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필자는 상기 한국의『외래어 표기법』규정에는 중국 국내의 조선민족을 포함한 기타 민족에 대해서는 별도의 표기 기준을 정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문제는 중국 국적으로 된 중국의 조선민족은 한족(漢族) 및 중국의 기타 소수민족과 함께 광의(廣義)적으로 보면 모두 중국 공민(公民), 중국 사람이다. 때문에 상기 규정대로라면 중국의 조선민족에 대한 인명표기도 구분과 구별 없이, 가차 없이 “중국 인명은 …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는 기준에 따라야 할 것이다. 례하면 ‘김(金−jin)’씨는 ‘진・지이인・찐’씨로, ‘박(朴−piao)’씨는 ‘피이아오・퍄오・표’씨로……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 기준은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이 되어 이제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일 마다 여간 심각하고 복잡하지가 않다. 례하면: ①광복 전 중국에서 활동하거나 머물러 산(주거) 중국 국적이 아닌 조선인(한국인)의 인명 표기, ②광복 후, 중국 국적으로 된 소수민족으로서의 200만 중국 조선민족의 인명 표기 기준 문제, ③부모 중에 아버지가 조선민족이며 아버지 성을 따른 자식의 인명 표기, ④부모 중에 어머니가 조선민족이지만 조선민족이 아닌 아버지 성을 따른 자식의 인명 표기, ⑤아버지가 조선민족이 아니지만 조선민족인 어머니를 따라 호구(호적)에 조선민족으로 된 인명 표기, ⑥아버지가 분명 조선민족인데 자식은 호구에 조선민족이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라 한족(漢族)이 아닌 다른 민족으로 올렸을 때의 인명 표기, 또는 한족이 아닌 아버지의 민족으로 올렸을 때의 표기. ⑦먼 조상은 분명히 조선민족・한민족인데 호구에 조선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으로 올랐을 때의 인명 표기, ⑧한국(조선) 국적을 소지한 분이 중국 경내에서 한국인(조선인, 조선민족)이 아닌 중국인이나 기타 민족과 혼인하여 태어난 자식의 인명 표기 기준, ⑨한국인이 중국 조선민족과 혼인하여 태어난 자식이 중국 국적으로 올랐을 때의 인명 표기 기준, ⑩중국인이 한국인에게 시집을 갔거나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시집을 갔을 경우 우리 겨레의 피가 반으로, 또는 네 등분의 일로, 여덟 등분의 일로 섞여 출생한 후세가 중국 국적으로, 또는 한국 국적으로, 또는 중국도 한국도 아닌 다른 나라의 국적으로 오른 사람들의 인명 표기 기준은? 그리고 한국인이 중국 국적에 입적하여 중국정부의 관원, 중국의 외교관이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기타 중국인과의 인명 표기 기준과 구별은… 그리고…… 그리고…… 위의 실례에서 인명 표기 기준과 규정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엄숙한 출생 성분뿐이 아니라 국제 혼인과 그에 따른 민족 성분과도 관련되어 문제가 몹시 심각하고 복잡해져 인권문제에 까지 치닿고 있다. 같은 중국 사람인데도 오래 전에 한국에 가 정착해 있는 화교는 대접을 달리 해서 성과 명을 분명하게 나누어 주민 등록증을 보면 모두 한자어로 되어있고(비단장사 왕서방까지) 최근에 한국에 시집을 가면 외국 이름(초지민・焦芝敏・쟈오즈민)이 따라 붙는다. 그렇다면 한국인 안재형과 혼인한 중국인 쟈오즈민의 자손들이 어느 국적을 택하고 어디에서 살며 또 그 자손의 자식이 누구와 혼인하고 어느 나라 국적을 지니며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인명 표기 기준이 다를 텐데 이처럼 끝없는 수수께끼만 남기는 표기법의 과학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중국은 한국의 경우와 많이 다르다. 한국은 워낙 단일 민족(최근 국제 혼인으로 다문화가정이 늘긴 하나)이여서 구태여 꼭 민족을 밝히지 않아도 되기에 주민등록과 호적에 민족 성분이 제시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은 호구책은 물론이고 주민신분증 내지 학적 등록, 취직 등록, 사망 등록에 이르기까지도 민족 성분을 꼭 밝혀야 하는 공란이 있다. 때문에 중국을 알려면 우선 56개 민족의 풍속습관과 례의범절에 대한 파악도 중요하지만 22개 성, 4개 직할시, 5개 자치구의 혼인을 통한 많은 가정은 다민족과의 혈연관계를 맺어 다문화 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정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중국을 알려면 먼저 31×56(31개성, 직할시, 자치구×56개 민족)부터 시작해보라는 권설을 아끼지 않는다. 한자로 명명된 인명, 지명은 한자문화권에서의 상호 리해와 공통된 문화요소의 핵인 한자의 공용과 공유를 기본 바탕으로 하여 그 공유 력사는 세월을 같이 하고 있다. 우리는 한문을 배워 한자를 알게 되였고 우리 한자로써 한문을 통하는 지름길을 갖고 있다. 이 역시 세종대왕께서 후세에 물려준 소중한 무형의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가운데서의 인명, 지명의 표기법이 몰고 온 또 하나의 ‘창씨개명’의 현상을 파헤쳐 본다. 2008년 북경올림픽경기에 참가한 중국 선수들 명단을 실례로 보자. 야오밍, 왕즈즈, 정제, 허커신 등이 姚明, 王治郅, 鄭潔, 何可欣 등이란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요즘 중국 인명 표기에 회오리바람마냥 새로운 붐이 일고 있다. 징징 궈, 민샤 우, 하오 왕, 리친 왕, 난 왕, 위에 궈, 이닝 장, 옌칭 천, 셰샤 천, 잉 천, …… 위의 인명을 뉘라서 郭晶晶, 吳敏霞, 王皓, 王勵勤, 王楠, 郭躍, 張怡寧, 陳艶靑, 陳燮霞, 陳穎이라고 감히 련상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이의 성씨가 이름 뒤에 붙어 있다. 성명(姓名)이 아니라 명성(名姓)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한문자 인명 표기는 성(姓)과 명(名)이 아주 분명하고 성이 앞서고 이름이 따라 붙는 것이 법이다. 한국・조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요즘 중국인들의 인명 표기를 어디까지가 성씨이고 어디까지가 이름인지 분간키 어렵게 표기 하거니와 이제 와서는 똑 마치도 잔뜩 양기(揚氣−洋氣)를 뽐내는 양키(Yankee)들 마냥 중국인들까지 양(洋)무리에 가두어 넣고 ‘미스터 장’, ‘미스 왕’ 하는 식으로 폼을 잡는 품이 마치도 조상 때부터 영어권에서 물젖어 있은 듯싶다. 하기야 언제부터인지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성명도 영어명으로 생감(省減)시켜 제법 우리 이름처럼 만들어 잘도 부르고 있다. 례하면 리명박은 ‘M・B’로, 김대중은 ‘D・J’로, 김영삼은 ‘Y・S’로, 김종필은 ‘J・P’라는 별명으로 잘도 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분들의 조상 무덤 비석의 비명(碑銘)과 족보(族譜)도 ‘M・B’, ‘D・J’, ‘Y・S’ 등 영문 생감 식으로 모조리 고쳐 새길 수 있거니와 또한 당금 돌아간 이들과 돌아가게 될 이들의 비명과 령위(靈位), 위패(位牌), 명부(冥府)에도 위에서처럼 낯 선 자로 새기든가 등록을 하여도 무방하다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 중국의 인명이 ‘징징 궈(郭晶晶−곽정정)’, ‘민샤 우(吳敏霞−오민하)’, ‘하오 왕(王皓−왕호)’… 이런 식으로 류행이 되어 번지다 보면 머지않아 성명이 명성으로 순서가 바뀌어 다음과 같은 해괴한 현상이 범람하게 될 것이다. 례하면: 孫文→ 손문→ 쑨원→ 원쑨 魯迅→ 로신→ 루쉰→ 쉰루 毛澤東→ 모택동→ 마오쩌둥→ 쩌둥마오 周恩來→ 주은래→ 저우언라이→ 언라이저우 蔣介石→ 장개석→ 장제스→ 제스장 …… ‘孫文’이 ‘원쑨’으로, ‘魯迅’이 ‘쉰루’로, ‘毛澤東’이 ‘쩌둥마오’로, ‘周恩來’가 ‘언라이저우’로 ‘蔣介石’이 ‘제스장’으로 요신일변(妖神一變)하여 표기(둔갑) 된다는 것인데 참으로 전대미문의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문자로 똑 같은 성씨가 우리글 표기로는 다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례하면 한국에서는 중국 선수 ‘劉子歌’를 ‘리우쯔거’라고 하고 ‘劉翔’을 ‘류샹’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한문자 성씨는 모두 ‘劉’자이지만 전자는 성씨를 ‘리’, ‘리우’, ‘리우쯔’ 등 여러 가지로 짐작(착각)할 수 있게 하고 후자는 ‘류’씨로 하고 있다. 보통명사 ‘수도(首都)’가 ‘쇼우두’ 또는 ‘서우두’로 혼란스럽게 표기되는 실례와 마찬가지이다.……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낱말 ‘창씨개명’을 “일본식 성명 강요”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위의 례는 실로 “일본식 성명 강요”를 뺨칠 정도로 경발(警拔)하게 혁개(革改)하고 변개(變改)하여 왜놈들이 무색해 울고 갈 지경으로 고약하고 괴팍하니 이제 이를 이대로 묵과하고 내버려 둔다면 장차 또 어느 식의 무슨 형태의 ‘창씨개명’이 생겨날지 보통 고민이 아니다. 한국의 한 두 학자가 중국 대만에서 싹 틔워 만들었다는 한국의 이른바 ‘중국어 표기법’이 중국의 대륙에서도 신통하려니 함은 오산이다. 만약 그 것이 오산이 아니라면, 필자가 너무 무식해서인지 한국의『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표기가운데서의 인명, 지명의 표기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한국에서 중국의 200만 동포를 겨냥한 ‘창씨개명’은 삭풍(朔風)마냥 혹한(酷寒)으로 우리 발해력사와 동이문화(東夷文化)를 송두리째 삼켜 랭동시켜버리고, 사악한 암류(暗流)마냥 해외 동포들의 동족어와 동포들의 민족적 일체감과 동질성(同質性) 및 유구한 문화를 삼켜 뭉개고 좀 먹이고 있다. 말이나 글이나 력사나 문화나 모두 지키지 않으면 잃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키지 않는데 남이 지켜줄리 만무하고 우리가 주장하지 않는 것을 남이 인정해 줄 리 만무하다.   때문에 사라지고 소실되기 전에, 있을 때 찾고, 있을 때 굳게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을 비롯한 우리의 문자, 우리의 말과 글로 이어온 우리의 문화유산은 이제 우리가 지키지 않아 주인 없고 임자 없고 거처마저도 없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령마냥, 귀숙을 모르는 망령마냥 어둡고 찬 구천에서 헤매고 있다.     우리 동포가 개척하고 우리 겨레가 이름 짓고 수백 수천 년 말 달려 주름잡고 지켜왔던 광활한 대지, 훗날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태어나고 활동한, 오늘도 수백만 우리 겨레가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이 유서 깊은 고장의 지명, 인명이 다만 오늘의 지경이 다르다고 하여 최근 고국에 의해 외국어도 아니고 외래어도 아니며 중국어도 아니고 오랑캐말도 아닌, 귀신이 곡해도 모를 소리로 불리고 있다.   워낙 우리의 것임이 분명하여 이역만리에 뿌리내린 지명, 인명으로 력사를 밝히고 명분을 지키기도 힘겨운데 오늘날 나와 상관없다며 되는대로 이름 지어 팽개쳐버리고, 달라고도 않는데 공물마냥 두 손 들어 공손히 누구에겐가 바쳐드리려 하다니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세세만년 살아온 이 고장 저 동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정다운 푸른 산과 맑은 내, 크고 작은 신작로며 굽이굽이 오솔길, 우리 동포들이 몸소 세운 기관, 단체, 학교들이 마냥 우리 몸으로 낳고 우리 손으로 키운, 우리 피와 땀으로 살찌운 애지중지 어린애와 같고 대를 이어갈 소중한 씨앗과도 같아 그 하나하나가 우리 동포들의 뼈이고 살점이로되 그 많은 우리 산촌수곽, 정든 동네며 고장들, 길거리며 학교, 회관도 모두 낯선 이름에 외롭고 적적하여 스산하다 못해 쓸쓸하고 한산하고 삭막하기가 그지없게 되였다. 고국에서 퍼 붓는 불문곡절 불벼락에 급기야 우리 해외 동포들의 삶의 터전은 황폐되고 대를 이을 씨는 말라버리여 수백만 해외동포는 줄 끊어진 풍연의 신세가 되여가고 있다.    성도 설고 이름도 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면목까지 설고 마음마저 설다보면 서로 남남이 따로 있으랴, 마침내 ‘재외동포’가 ‘제외동포’로 전락되여버리고 고국의 해외 적자가 부모 잃은 고아신세로 되여버리고, 효자 렬녀가 장차 고국도 조상도 모를 후레자식으로 번져 질까 심히 우려된다. 필자는 우리 한문자(漢文字)의 시조(始祖)와 원초(原初), 정초(定礎)와도 같은 동의문자(東夷文字)의 발굴(發掘)과 고고(考古) 및 인증(認證)과 전승(傳承)에 힘 다하여 동이의 맥락(脈絡)을 이어온 우리의 력사적인 위치확립(位置確立)은 하지 못할지언정 이른바 창씨개명(創氏改名)으로 원체(元體) 우리의 인명, 지명, 명사(名詞), 지어는 모든 품사(品詞)까지도 마구 고쳐 력사와 미래, 자타(自他)와 안팎, 상하(上下)와 내외(內外) 모두에게 해(害)와 악(惡)만 끼치는 무모(無謀)를 당장 멈추라고 질호(叱號)하고자 한다. 중국도 만약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중국 인명 표기”와 “중국 지명 표기” 규정과 원칙을 본받고 인용하여 “한국어의 한문 표기법”을 제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규칙으로 될 것이다. “한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한국어 발음에 따라 표기하고 한국의 력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한국어 발음에 따라 표기한다.” 중국도 한국마냥 상술한 원칙과 기준을 따른다면 력사 기준을 어느 시대 어느 년대로 가를지는 몰라도 아마 ‘세종대왕’은 력사인물로 취급이 되어 ‘世宗大王’이라고 표기할 것이지만 광복 후의 현대인들에 한에서는 한국에서 중국의 ‘모택동(毛澤東)’을 이른바 ‘마오쩌둥’이라고 중국의 원지음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중국도 한국의 전임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아마 한국의 원지음인 한국어발음으로 ‘ㅂ+ㅏ+ㄱ, ㅈ+ㅓ+ㅇ, ㅎ+ㅢ’를 흉내 내여 중국식으로 ‘怕正黑’로나 ‘pakzenghi’로,마찬가지로 ‘노무현(盧武玄)’은 ‘孬母和恩’으로나 ‘鬧沫恨’, 또는 ‘nomuhen’으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의 인명 ‘박정희’를 한국어 발음으로가 아니라 한문자 ‘朴正熙(piaozhengxi)’로, ‘노무현’을 한국어 발음으로가 아니라 한문 그대로 ‘盧武玄(luwuxuan)’이라고 표기하고 부르고 있다. 더구나 유엔의 현임 사무총장 ‘반기문’의 경우 영어권에서는 모두 "Ban Ki-moon"으로 표기하지만 중국에서는 영어발음 ‘ㅃ ㅏ ㄴ, ㅋ ㅣ, ㅁ ㅡ ㅜ ㄴ’식으로가 아니라 한국인 외교관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인명표기의 전통 관용(慣用)에 따라 반기문이 한국에서 써오던 한자명 그대로 ‘潘基文’이라 표기하고 한문 한자음 ‘panjiwen’이라고 발음하고 있다. 위의 실례로 한국인 인명 ‘朴正熙’, ‘盧武玄’, ‘潘基文’ 등 표기에서 한국・조선에서의 한문자 표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성(姓) 따로 이름 따로 형태와 체면을 다 봐주고 있다. 일본인의 인명도 과거 ‘이토히로부미’를 일본어 발음으로가 아니라 한문으로 ‘伊藤博文’이라고 표기하고 중국 발음‘yitengbowen’ 그대로 읽으면 그만이고, 지금 현재 인명도 ‘고이쯔미 쥰 이찌로’라고 하느냐 아니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라고 하느냐며 논쟁하지 않고 ‘小泉純一郞’이라고 쓰고 중국 문자 그대로 발음하고 ‘아베 신조’ 역시 ‘福田’이라고 표기하면 그만이다. 역시 일본의 한문자 표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베트남의 고인 ‘호지명(胡志明)’, 현임 주석 ‘원명철(遠明哲)’, 싱가폴의 ‘이광요(李光耀)’ 전임 총리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우리말 방송과 우리글 신문, 출판도 ‘胡志明’을 ‘후치민’이 아니라 한자어 그대로 ‘호지명’으로, ‘阮明哲’을 ‘응우옌 민 찌엣’으로가 아니라 ‘완명철’으로 표기하고 ‘李光耀’는 ‘리광요’로 표기하고 있다. 지명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중국의 지명 ‘북경(北京)’을 ‘베이징’으로, ‘상해(上海)’를 ‘상하이’로, ‘연변(延邊)’을 ‘옌볜’으로 표기하는 기준과 원칙을 본받는다면 중국에서도 으레 한국의 지명 ‘인천(ㅇ+ㅣ+ㄴ,ㅊ+ㅓ+ㄴ)’을 한국의 이른바 원지음을 기준으로 ‘淫沉’으로나 또는 ‘陰沉’, ‘陰塵’, ‘因臣’,‘銀沉’, ‘飮晨’, ‘因沉’, ‘淫晨’, ‘淫臣’ 등 한국어 발음에 따르거나 아니면 아예 중국어 병음‘ yinchen’으로 표기해야 좋으련만 중국은 한국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항상 중국어, 중국 음 그대로 ‘仁川(renchuan)’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일본의 ‘本州’, ‘仙台’, ‘大阪’ 등, 베트남의 ‘河內’, ‘海防’, ‘提岸’, ‘順化’, ‘歸仁’, ‘榮市’ 등, 러시아의 ‘海參葳’, ‘双城子’, ‘海蘭泡’ 등, 미국의 ‘眞珠灣’, ‘舊金山’ 등, 호주의 ‘黃金海岸’, ‘金島’, ‘東南角’, 등등 한문자로 된 지명이 부지기수인데 일본 또는 베트남, 러시아, 미국, 호주의 지명이 각자 그 나라마다 나름대로 어떻게 발음 되든 지간에 중국은 아랑곳 하지 않고 중국 나름대로 쓰고 부르고 있다. 중국 대사전『辭海(사해)(1979년 판)』1919쪽에는 ‘아메리카합중국・유에스에이(USA)’를 ‘美利堅合衆國’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외교적 특례를 제외하고 13억 중국인은 다만 ‘美國’으로만 부르고 있다. 이미 관용으로 명명된 지명을 구태여 새삼스레 외국어니 외래어니 고주알미주알 따지지 않고 부르던 대로 그냥 편히 부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가 국제화폐기금조직을 ‘IMF’로, 세계 무역기구는 ‘WTO’로, 국제연합기구는 ‘United Nations’로, 또는 ‘UN(유엔)’이라고 하지만 중국만은 영어발음으로가 아니라 자체로 명명한 단어로 각각 ‘國際貨幣基金組織(국제화폐기금조직)’, ‘世界貿易机構(세계 무역기구)’, ‘聯合國(련합국)’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NBA’, ‘CBA’, ‘F1’, ‘DNA’, ‘GDP’, ‘WHO’, ‘FTA’, ‘CPI’와 같은 영문략어도 반드시 규범 된 중국어 명칭인 ‘美國職業藍球聯塞’, ‘中國男子藍球職業聯塞’… 등으로만 쓰도록 되여 있다. 중국어에 ‘United Nations’, ‘UN’, 또는 ‘유엔’이라는 단어를 외래어로 받아들이는 음과 문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UN’이라는 영문과 그 발음보다는 여러 나라의 모임조직이라는 뜻으로의 중국 단어 ‘聯合國(련합국)’이 더 알기 쉽게 머리에 쏙 들어오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자기 나라 사전 속의 순 중국어 단어로서의 역할, 자기가 지은 이름으로 력사에 영원히 남기려는 그 무게가 가늠할 수 없으리만큼 크고 사려와 웅심 또한 너무도 깊다. 다만 한국의 수도 ‘서울’을 지금까지 ‘한성(중국어발음으로는 한청−漢城hancheng)’이라고 불러오다가 몇 해 전에 대한민국의 서울시가 ‘서울’에 대한 한문(漢文)표기를 ‘수이(首爾)’로 정하고 중국에서 한문 발음 그대로 ‘首爾(shouer→서우얼)’로 써줄 것을 요청해 중국도 쾌히 받아 들였다고 한다. 중국의 인명, 지명을 모조리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바꾼 한국의 엄청난 대가에 중국이 한국의 도시명 하나 바꾸어 불러 베푼 대접이리라. 그러나 서울 지명 ‘한성(漢城)’을 제외하고 ‘漢城海關’, ‘漢城酒店’, ‘漢城高速客運站’…… 등등의 ‘한성(漢城)’은 ‘서우얼-首爾’이라고 고치지 않고 여전히 ‘한성(漢城)’이라고 명하고 있다.(본문 위의 실례 참조) 중국은 저희들의 글과 발음으로는 [박], [희], [현]…과 같은 음을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려워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 외국의 인명, 지명 표기 원칙을 고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은 ‘朴正熙’, ‘胡志明’ 같은 인명과 한국의 ‘仁川’, 조선의 ‘新義州’, 일본의 ‘東京’ 등; 베트남의 ‘河內’, ‘榮市’ 등; 러시아의 ‘海參葳’, ‘双城子’, 미국의 ‘眞珠灣’, ‘舊金山’ 등, 호주의 ‘金島’, ‘東南角’, ‘黃金海岸’ 등등을 외래어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문자로 이미 함축된 뜻을 갖춘 특정되고 인정된 인명, 지명을 품사로서의 기능과 형태로서의 소임뿐이 아니라 오래오래 불리며 특유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고 있다. 인명, 지명 그것이 자국이든 타국이든 그 곳이 내국이든 외국이든 그 이름을 내가 지었든 남이 지었든 일단 한문자의 뜻을 갖고 명명이 되었다면 중국은 외래어가 아니라고 본다. 이 견해의 핵은 인명, 지명을 비롯한 한자어 단어는 그 낱말을 이루는 최초부터 한문으로 결합(합성)되었고 또한 오로지 한문화로만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뿐이 아니라 한문화권에 포괄(포함)된 한자 문화권인 한국(조선)도 마찬가지로 지켜야 할 준칙이라고 본다. 중국은 옛날도 그렇게 쓰고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냥 그렇게 쓰고 부를 것이다. 이는 중국의 한자문화권의 영향이 짙기 때문인 것도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력사적인 혈연, 줄곧 내 것 네 것이었던 령토, 또는 령역을 의식하고 과거와 오늘, 미래를 갈라놓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뿌리 의식을 자손만대로 키워가고 이어가자는 속셈, 오늘은 천리만리 타향, 타국에 멀어진 지명이지만 버리지만 않고 지켜 간다면 그 언젠가는 종당에 내 품에 돌아오리라는 그 철심석장(鐵心石腸)에 오히려 마음이 경건해진다. 참으로 웅심이라고 해야겠는지 야심이라고 해야겠는지 아니면 꿍꿍이셈이라고 해야겠는지는 두었다 평가하고 한국도 다른 나라의 무엇이나 크게 보고 멀리 보며 넓게 보고 깊이 보는 넉넉한 마음가짐은 비교해 볼 바라고 여겨진다. 중국은 외국어와 외래어를 귀화와 순화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아울러 자국의 낱말 ‘茶(차)’, ‘陶器(도기)’, ‘武術(무술)’, ‘京劇(경극)’과 같은 무수한 단어를 문물과 함께 수출해 기타 나라, 다른 민족이 널리 차용하도록 한다. 남들은 이처럼 자국의 지명, 인명은 물론, 바다 너머 수 천리 다른 나라의 지명에도 자기의 문자와 언어로, 자기의 독특한 문화로 이름 지어 흔들림 없이 자기의 것으로 잘도 지키고 키우는데 우리 고국(한국)은 워낙 우리의 것이었음에도 불고하고 나와 관계없다고 도리질하며 왜 스스로 부셔버리고 무너뜨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는 남들(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심계고산(深計高算)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마땅히 우리로서의 연모지책(淵謨之策)으로 우리의 것을 찾고 지켜야 할 것이다.   해내외의 모든 동포들의 마음을 모아 당장 무모한 ‘창씨개명’ 불장난을 멈추라고 대성질호하고 아울러 하루 빨리 잃어버린 것, 바수고 부수고 버리고 던진 것, 낡고 헤어진 것이라도 무릇 우리의 력사와 현실과 미래에 유조하고 유리하다면 에누리 없이 모두 다 구조하고 복구하고 수선하여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운 원형을 되찾을 것을 간절히, 간곡히 간촉하고자 한다.    수천 년의 문화유산이 우리 세대에 와서 아차 실수와 불찰로 영영 사라지고 소실되여 국맥이 끊어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 액운이 없도록 우리 해내외 동포들도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위기일발인 시각에 어찌 태만히 관망만 하랴. 고로 필자는 비록 고국의 시민권자도 아니요, 영주권자도 아닌 한 해외 동포 3세에 불과하지만 보잘 것 없는 필부의 힘으로나마, 우리 고국의 휘황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의 소실과 류실을 막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을 구국의 횃불로 지펴 두려움과 송구함을 무릅쓰고 이 한 몸을 태우면서 감히 이글을 간간(懇諫)의 진정(陳情)서로 사랑하는 고국에 삼가 드리는 바이다. *** 『음운법칙과 어음순화를 무시한 한국의 ‘중국어표기법’』, 『‘현지음-종잡을 수 없는 중국의 원지음’ 원칙(주장)의 중국어 인명지명 표기의 폐단』, 『‘두음 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과 우리글』 등은 생략 함--필자                           2011년 1월 11일
3    꿈은 이루어 진다 댓글:  조회:28629  추천:113  2011-01-06
모교 60돌에 드리는 글 사랑하는 나의 모교-할빈시 조선족제1중학교가 어언간 환갑 찬치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기별을 듣는 순간 금석지감으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진다. 하늘 높고 구름 맑은 풍작의 계절, 결실의 계절, 산과 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에 나의 모교 환갑연이 우리 동포사회의 문화행사로 이루어짐에 다함없는 경의를 드리며 삼가 축하와 축복, 축원의 인사를 드린다. 유수 같은 세월, 살 같은 광음에도 나의 마음 한가운데는 항상 나의 중학시절의 모교가 그대로 든든히 자리 잡고 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그간 모교도 모름지기 여섯 번 정도는 바뀌었을 것 이지만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정다운 모교의 스승님, 다정다감한 선후배들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실은 모교 예순 돌이 가까워 옴에 따라 내 마음도 웬지 설레이기 시작했다. 나를 길러준 모교에 무엇으로 내 마음의 선물을 마련해 볼까 고민하던 끝에 몇 달간의 신고를 거쳐 나는 우리 방송국 동료들과 함께 지난해 7월5일 끝내 중한방송사상 최초로 한국KBS와 손잡고 아름다운 송화강반에서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건교 60돌을 경축하는《우리 동포 노래자랑》공연을 성황리에 치루었다. 관중들은 평생 친 박수와 평생 외친 환성을 다 합쳐도 오늘만큼 못하다며 감격과 감동을 금치 못했고 한국가수와 KBS행사진에서는 세계 어디를 다 돌았지만 오늘 만큼 뜨거운 성황은 처음이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뜻 깊고 색다른 방식으로 모교 예순 돌을 기꺼이 경축할 수 있게 됨을 긍지로 느꼈다. 그로부터 달포를 지난 8월 13일엔 우리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방송합창단 일행 50여명이 천리도 더 되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가서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75개 팀과 각축을 벌린 끝에 영광스럽게 전국조선족청소년음악제의 대상을 따오게 되였다. 이제 명년 이맘때면 한국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서 국제 초청공연에 참가하게 된다.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이 전국조선어방송계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외둥이라는 점도 자랑거리가 되겠지만 둘도 없는 대상을 따 온 이번 원정의 어린 투사들 모두가 바로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의 기특한 학생들이란 점을 대서특필하고 싶다. 어린 꼬마들로 하여금 노력과 분투, 화합과 협력으로 모교 예순 돌에 올리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을 마련하게 했다. 합창단 창단 반년나마에 방학기간을 빼고 근근이 두석달간의 강훈련을 거쳐 이처럼 실력을 키우기란 참으로 조련찮았다. 치치할시에서 유명한 합창지휘를 모셔온다, 오상시에서 음악지도를 청해온다, 할빈대학에서 피아노반주를 초빙한다, 조선민족예술관의 협조를 청한다 하며 우리 방송국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계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최선을 다 했다. 김춘산, 엄광렬, 리성환, 최용남, 최설화, 김홍란, 김옥화.. 수많은 분들의 피땀이 슴베여 더더욱 무거워진 영예의 액자가 모교 어린이방송합창단의 연습실에서 꼬마들을 격려하며 빛을 뿌리고 있다! 모교에 드리는 선물이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오로지 사랑의 마음이 깃들었다면 모두 다 소중하다고 해야겠다. 모교의 예순 돌을 경축하기 위한《우리 동포 노래자랑》공연이며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이 마련한 축하선물 얘기를 하다 보니 불현 듯 까마득한 나의 중학시절의 옛 추억이 주마등마냥 눈앞을 스쳐 지난다. 제자들을 위해 베푼 은사님들의 은혜와 크나 큰 공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받고 받은 스승님의 은총 또한 내나 네나 이를데가 없을 것이기에 그건 잠시 접어두고 나 혼자만의 추억, 이를테면 40년 가까이 숨겨 두었던《천기》를 모교 예순 돌에 즈음하여 드디어 터뜨리려 한다. 40년 전의 어느 가을날인 것 같다. 학교에서는 전교문예선전대를 묶고 있었다. 한 고향친구들인 변덕수, 손명헌 한 학급의 김동철, 리태환, 전옥희, 하옥진, 방성자 등 여러 낯익은 학생들이 문예선전대에 뽑혀 우쭐하고 있는데 똑 마치 전교에서 나만 빠진 것만 같았다. 문예선전대 대원들은 매일 악기를 다룬다, 춤을 배운다,노래를 부른다 하며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나는 풀이 죽어 기숙사에 푹 박혀 있거나 긴 복도를 힘없이 거닐군 하였다. 사춘기 때라 춤추고 노래하는 여학생들과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도 은근했었지만 그 보다 나는 트럼펫을 불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음색이 높고 날카로우며 명쾌한 남성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트럼펫이 나를 매료했다. 내 눈에는 트럼펫을 부는 악사는 마치도 악대중의 기치처럼, 령혼처럼 돋보였다. 가끔 명상에 잠기면 기사처럼 대오의 앞장에 서서 진군의 나팔을 높이 불며 천군만마를 이끄는 나의 영웅형상을 꿈꾸어 보군했다. 만약 트럼펫이 안 차례지면 색소폰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도 좋았지만 색소폰의 생긴 모양이 신기하게 나의 마음을 끌었다. 선전대에만 들어 갈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번씩 둥둥 치는 징도 좋았고 육중하게 보이는 첼로가 차려져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학교문예공연을 관람하거나 또는 공연 끝에 기쁨에 들떠 왁자지껄이며 쓸어나오는 문예선전대원들을 볼 때마다 샘이 많은 그 어린나이에도 시기와 질투 대신 항상 자기를 그 집단속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몰래 흥분에 들떠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내 차례가 안 되었을 뿐이지 나는 조만간에 문예선전대 대원이 되리라는 것을 속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예선전대 김철호지도선생님께서 선전대활동실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더니《넌 입술이 얇아 트럼펫을 불면 제격일 것이야》라고 하기에 나는 하마트면 환성을 지를번 했다. 감격에 목이 메여 설레이는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나는 그로부터 몇몇일을 김철호선생님의 거동만 눈치보며 지냈었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났건만 야속하게도 선생님은 끝내 나를 찾아 주시지 않으셨다. 기나긴 중학시절이 다 끝나도록 나는 끝내 학교문예선전대 일원이 되지 못했다. 졸업 후, 아주 먼 훗날 담임선생님한테서 들은 얘긴데 실은 그때 한창《문화대혁명》난리여서 학교에서는 매일이다 시피 투쟁대회요, 경축대회요, 어록학습, 활용좌담회요 하면서 공부는 뒤전으로 하고 행사와 활동이 많았었다. 그 북새판에서도 담임선생님께서는 학반장인 나를 학급이나 잘 이끌어 가라고, 그리고 학교 최준호선생님이 이끄는 무선전반도체실험서클의 조장인 내가 이미 맡은 일만 잘 감당하기에도 힘겨울 텐데 다른 잡념이 있어서 되겠냐며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문예선전대 대문에 미리 빗장을 걸어놓았던 것이다. 그때 만약 내가 학교문예선전대의 대원으로 쉽게 되었더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오늘까지 남아 있을가? 이루지 못한 것, 아쉽게 잃어버린 것, 다시는 되돌릴 수 없었기에 그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가?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쉽지만 난 그래도 그 꿈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꿈 많은 나의 사랑하는 모교를 더 사무치게 그리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시골에서 하향단련기간 농촌문예선전대에 자진해 들어 색소폰을 열심히 불었다. 밤이면 밤마다 고요한 달빛아래 친구들과 모여 너는 손풍금, 나는 색소폰, 동네형님은 클라리넷을 불고 동생은 트럼펫을 불며 북두칠성이 기울고 아침노을이 붉을 때까지 청춘을 불태웠다. 그로부터 나는 기타며 바이올린, 젓대, 퉁소, 단소, 가야금에 하모니카며 소고, 대고, 새장구까지 닥치는데로 불고, 켜고 치며, 대학에 가서는 피아노에까지 손을 대며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악기를 이것저것 다루어도 지도선생님이 안계신 탓인지 아니면 끈기 없는 아마추어의 부족한 열성 때문인지 또는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과목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인지 중학교 시절의 악기에 대한 그 뜨거운 사랑과 정열은 식고식어 결국은 한낱 장난에 불과했었다. 세월이 흘러서 정열은 식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 굳게 자리 잡은 중학시절에 피우지 못했던 꿈은 잊어 본적이 없었다. 그 꿈이 드디어 움트고 있었다. 그 꿈이 싹으로 되살아나서였다고 해야 할까 꼭 곁들여 소개하고픈 것이 있다면 위에서 말씀드린《우리 동포 노래자랑》공연의 기획과 어린이방송합창단의 단장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중학시절 그렇게도 문예선전대에 들고 싶었던 나 장석주가 오늘날 이렇게 이러한 방식과 수단으로 꿈을 이루어보려고 안깐힘을 다 쓰는 것이 참으로 나 스스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 옛날 나의 모교의 문예선전대와 오늘 모교에 뿌리내린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은 서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내용이나 형식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각자가 꿈을 이루어 보려는 노력과 민족문화를 전승, 창달시키려는 사명은 마찬가지일 것이 아닌가. 참으로 감구지회로 가슴이 뻐근하다. 오늘 수많은 어린이들의 꿈이 무르익어감과 더불어 나의 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릇 아름다운 꿈을 가졌다면 우리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좋은 꿈은 좋은 인생을 가꾸어가는가 본다. 성인이 이르기를 삼십이립이요, 사십불혹이라 했지만 모교는 이미 이삼십대 젊은 청춘시절에《문화대혁명》난리에 곤혹과 진통을 거쳐 그 미열이 사십대까지 오랜세월 다사다난이였다면 오십지천명, 륙십이이순이라 모교의 오륙십대는 천지신명이 도와나서서 민족인재양성의 요람으로, 동포문화행사의 기지와 중심으로 크게 육성되고 있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후배학우들은 이 천재일우의 시기와 기회를 바로 잡고 누구나 아름다운 꿈을 현실로 키워가도록 노력에 노력을 곱해야 할 것이다. 모교 예순 돌을 경축하는 성스러운 나날에 새삼스레 나의 담임선생님들이 그리워진다. 나에게 꿈을 주고 힘을 주신, 나를 가르치고 키워주신 이미 하늘나라에 계신 담임선생님-김복순, 김창재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나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담임선생님 남윤원은사님과 모든 스승님께 축주를 올리며 모교 륙십성상 축연의 자리를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바라보니 복숭아며 오얏향기로 만천하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로구나. 꿈과 땀으로 이룬 태평성대를 즐기며 우리 어찌 하늘과 땅에 감사하지 않으리오! 이 성스러운 감은계절에 모교 선생님들은 손수 가꾸신 무릉도원에서 길이길이 건강장수 하시고 사랑하는 모교는 더더욱 번영 창성하라! 찬란한 모교의 미래를 위하여 건배!                                         학생 장 석주
2    모교 페교식에 즈음하여 댓글:  조회:30727  추천:159  2010-12-26
모교 페교식에 삼가 드립니다 할빈시 향방구 성고자진에 자리 잡은 우리 동포학교가 문을 닫게 되였다. 슈퍼나 가게가 경영부진으로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키우는 학교가, 우리 민족의 래일을 키우는 학교가 문을 닫게 되였다. "굶어죽어도 자식 공부는 시킨다"는 우리 민족이다. 지난날 우리 동포들은 삶의 터전을 잡아 괭이와 삽을 박을 때 살림집보다도 학교가 우선이다. 그래서 무릇 동포들이 사는 동네라면 으레 학교가 있기 마련이여서 중국 전역에 많을 때는 무려 수천개소나 되던 우리 동포 학교, 조선족 산재지구 흑룡강성에만 해도 500여개소나 되던 조선족학교가 최근 10여년간에 기하급수로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다. 웬만한 한 개 시(현)에만 해도 10여개소나 되던 우리 학교가 최근에 와서는 겨우 하나도 있을까 말까 하는 신세로 되여 지금 흑룡강성에 겨우 버티고 있는 동포 소학교가 십자리 수 안이다. 학교가 세워지는 건교식이며 개교식, 학교운영 몇 주년 기념식이면 축하와 축복, 축원으로 하객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꽃다발이며 축의금이 빗발치듯 하건만 문을 닫는 학교마당은 싸늘하고 쓸쓸하다 못해 삭막하고 서글프기 짝이 없다. 농경문화의 기틀이 흔들리면서 어쩔 수 없이 학교가 하나씩 문을 닫고 있지만 필자는 어느 학교 하나도 폐교식을 가졌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여서 그냥 마음으로 묵새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나도 우리 학교요, 못나도 우리 학교였는데, 부모와도 같고 자식과도 같은 학교였는데 마지막 길을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부디 잘 가시라!"라고 고이 인사라도 올리고 낡은 문고리라도 한번 더 잡아 보고 싶은 마음 세상사람 한결 같으련만······ 새 학기 개학을 앞두고, 아니 지난 학기 마감 긴긴 방학을 고하면서 마련된 할빈시 성고자조선족소학교의 폐교식은 우리들에게 많은 사색과 고민, 반추 내지 향수를 주고 있다. 영결식을 련상케하면서도 추모의 정만이 아닌 폐교식에서 력대의 100여명 졸업생들은 모두 다 석별지정으로 사라지는 학교를 가슴에, 마음에 새겨 넣으며 장차 새마을 건설과 함께 머잖아 신형의 새로운 학교를 세우리라 꿈을 무르익히며, 밤을 지세우며, 희붐이 동틀무렵까지 새날을 밝혔다. 아래 폐교식에 드린 필자의 글이 결코 조상(弔喪)의 제문(祭文)이 아님을 명시하며 사랑하는 모교에 삼가 드린다.                       =======         =======존경하는 고향의 부모형제 여러분, 존경하는 모교의 선생님 여러분, 존경하는 모교의 선후배 여러분, 존경하는 손님 여러분; 이제 지금 이 행사가 막 끝나면 안개타고, 노을타고, 바람타고, 구름타고 저-멀리 하늘나라를 찾아 떠나게 될 사랑하는 나의 모교가 간판 하나만을 이 땅에 남겨놓고 이 고장과 석별을 고하게 되겠지요. 자기 얼굴과도 같고 자기 의상과도 같은 간판에 긴긴 세월의 모든 것을 무겁게 벗어놓고, 힘겹게 실어놓고 홀몸으로 홀가분하게 떠나 가겠지요. 사랑하는 모교는 이제 곧 우리와도 헤어져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지만 우리 모두의 축복과 축원을 순풍으로 받아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하얀 쪽배마냥 저-멀리, 그 옛날 이 학교를 손수 세우시고, 이 학교를 몸소 키워주시고, 또 이 학교 문을 나오신 우리 동네 고인들이 미리 가 계신 하늘나라 무릉도원으로 서서히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늘나라 어디에서 별무리를 모아놓고 샛별학교를 꾸리노라면 해님, 달님이 도와 주시겠죠······ 사랑하는 모교- 성고자 우리 학교여 부디 잘 가시라! 머나 먼 그 옛날, 낯설고 물 선 이 땅을 찾아 삶의 첫 삽으로 거친 이 땅을 개척하신 선인, 선철들의 넋과 뜻으로 세운 모교- 성고자 우리 학교가 어언간 일흔 고개를 넘어 수를 다 하게 되었다니 금석지감으로 무량한 감개 금할 수가 없습니다. 칠십여 성상 수많은 꽃봉오리 고이고이 길러 마침내 만천하게 오얏 꽃, 배 꽃향기로 그윽한데 묻노니, 사랑하는 모교여 굳이 어디로 가시려하느냐?! 초라하고 보잘 것 없던 초가집에 앞뒤방살이의 서당-글방에 불과했던 초창기의 우리 성고자학교는 태어난 그 날부터 오붓한 이 동네, 이 마을의 꿈이였고 희망이였고 씨앗이였고 미래였습니다. 너무 가난했기에 부족함이 많았고 너무 부족했기에 째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그래도 아련한 추억 속에 아름다움만 가득한 그 시절, 아득하게 멀어지고 희미하게 사라지건만 마냥 그 때가 좋았고 항상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긴긴 세월 비록 가난과 함께 자라온 우리 학교였지만 학교는 이 고장의 문명과 문화의 꽃을 떨기 떨기로 피워 복된 우리 삶을 누리도록 하는 필수불가결의 물이였고 공기였으며 우리 생활의 피와 살이였습니다. 광복과 해방을 맞고 새 농촌 건설을 맞아 우리 학교는 제법 규모를 갖추어 린근에 소문난 명문학교로 자라 ‘막니까’, ‘싼쟈즈’, ‘싸리툰’, 훗날에는 ‘석조’를 비롯한 이 넓은 지역의 문화, 교육의 중심이 되어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 중학생, 대학생의 싹을 키웠고 또한 고향건설의 문화역군을 키우는 배움의 요람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교정에서 랑랑하게 울려오는 ‘1, 2, 3, 4...’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고 ‘아, 야, 어, 여, 가, 갸, 거, 겨...’는 우리에게 겨레의 말로 인생의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동포와 민족의 피가 대를 이어 세세대대를 이어가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우리는 망망창해의 등대와도 같은 목표가 있게 되었고,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이 고장 어제 날 농부의 아들딸들이 오늘은 교육가, 과학가, 예술가, 기업가로 자라났고 더 많은 이 고장의 아들딸들이 성고자의 자랑을 떨치며 떳떳이 세계를 주름잡을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였습니다.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뭇별과도 같은 불씨들이 모여 모닥불이 되고 그 모닥불이 피여 올라 우리 동네의 모든분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횃불이 지펴지고 마침내 그 횃불이 꺼질줄 모르는 거화로 활활 타올라 장장 칠십여년간 이 동네, 이 고장을 ‘살기 좋은 성고자’라는 무형의 재부로 만들어 세상에 우리 성고자를 자랑함을 무상의 긍지로, ‘성고자 정신’을 고양함을 사명을 넘어 숙명으로 여기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성고자 학교가 오랜 세월 너무너무 지쳐서 도저히 팔십에 가까운 노구로 더는 홀로 지탱키가 어려워 푹 쉬고자,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비록 오복중의 마감인 고종명으로 편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만 우리 모든 학생들은 뼈를 깍는 아픔으로 모교의 마감을 지키며 삼가 그 명복을 빌고자 오늘 구름같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옛날, 사랑하는 나의 모교 앞뜰의 귀뚜라미 우는 소리, 뒷울안 늪가의 개구리 우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선생님의 자애로운 꾸중소리, 흑판에 쓰시는 분필소리, 발풍금, 손풍금소리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학습의 긴장을 풀어주는 중간체조시간 종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싸포자’, ‘구지보’, ‘탕창보’, ‘아성강’으로 산보가고 원족가던 그 시절, 그 때가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 들창가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너무나 정답고 그립습니다. 우리말에 삼십이립, 사십불혹, 오십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고래희라고 우리 성고자 학교도 칠십성상을 마무리하고, 나이 칠순에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제 가야 할 곳으로 곧 가게되였습니다. 필히 떠나야 할 성고자 학교는 이제 갈 곳으로 가더라도 지금껏 학교와 함께 고향을 지켜온 우리 성고자의 부모형제분들께서는 짝을 잃은 외로움과 괴로움이 오죽하랴만 슬픔과 그리움을 힘으로 바꾸어 고향산천을 상전벽해로, 새로운 창의력과 궐기로 천지개벽을 안아온다면 언젠가는 신형의 우리 성고자학교가 다시 이 땅에 뿌리 내리리라는 것을 굳게 믿어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멀리 멀리 사라지는 우리 학교가 머나먼 하늘 길에서 마침내 봉이 되고 황이 되여 봉황열반(鳳凰涅磐)으로 우리 사는 온 세상에 상서로움과 행복을 안겨주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각까지 성고자 우리 학교의 마감을 지켜온, 최후를 지켜온 성고자조선소학교 전체 선생님들에게 머리 숙여 삼가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 고향을 지켜 오신, 또 앞으로도 지켜 가실 고향 여러분들의 강녕, 수복과 행복을 길이길이 기원합니다!                                         학생 장 석 주
1    장석주(張碩宙) 프로필 댓글:  조회:29260  추천:143  2010-12-23
장석주(張碩宙)     본(貫鄕): 안동(安東) 고향(鄕關): 경상북도 례천(醴泉) 1952년 중국 할빈에서 해외3세로 출생. 1978년 8월 중국 연변대학교 조문학부 졸업. 1978년부터 중국 흑룡강인민방송국 기자, 편집.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흑룡강조선어방송국 국장. 고급편집.   중국 방송(라디오부문)계에서 가장 선참(1984년)으로 사회자방송을 펴내었고 또한 첫 프로사회자로 등장. 중국 조선어방송계에서 가장 이르게 정기적인 생방송특집(1993) 프로듀서(PD) 및 주간 생방송사회(MC-180’)를 력임. 중국 최초의 우리글 대형 종합 월드와이드웹 사이트 WWW.873K.COM 구축, 운영. 중국의 유일한 현존 우리말 방송합창단-유나이티드어린이방송합창단(2006년 설립, 2007년 전국조선족청소년음악회 대상, 2010년 할빈시 중소학교합창콩쿠르 대상 수상, 한국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세계어린이합창축전'에 중국대표단자격으로 합연, 청와대 초청방문; 2012년 서울 금천 금나래아트홀에서 "부모님 사랑합니다"-방문공연, 'KBS아침마당', 'KBS한민족방송', 'KBS 스페셜'에 방송, 월드비전선명회합창단과 자매결연 ) 단장. 중국에서 사상 최초로 한국 방송공사와 손잡고 대형 문화행사 “우리동포 노래자랑”을 기획, 조직, 공연. 10여년간 료녕, 길림, 흑룡강 등지에서 수십차의 "동포 노래자랑" 등 대형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조직, 공연.   『나의 방송생애』,『간간의 여쭘―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의 진상 규명』,『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등 저서와 많은 방송작품, 논문, 수필을 발표.   한국 세계한국어방송인대회 운영위원 력임. 저자의 Mail: sz99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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