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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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음 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과 우리글 댓글:  조회:34665  추천:47  2011-04-02
            두음 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과 우리글 필자는 '두음현상'이 아닌 이른바 ‘두음 법칙’의 필요성과 그 존재를 철저히 부인하였지만 한국의 여러분들의 검독(檢讀)에 편리를 드리고자 지금까지의 한국의 현행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습관을 존중하여 아래 글 전문에서 본의(本意)를 꺾고 기왕의 한글 ‘두음 법칙’에 따라 기술함을 특히 첨언하는 바이다. 우리 민족 학계(세계적인 범위)에서 두음 법칙에 대한 찬반 논란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또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두음 법칙 반대론만 나오면 ‘알타이제어(Altai諸語)’론을 걸고넘어지거나, 또는 ‘조선문제’와 혼돈 시켜 정치와 체제를 거론하며 말씨부터 거칠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줏대 없는 어용 문인마냥 감언이설로 그 어느 누구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아가며 본문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공정성을 기하여 아주 기초적이고 상식적이며 기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찬반의 공방과 우리 언어 규범의 득과 실을 밝히는데 필요와 도움이 될 듯싶어 본문이 좀 길더라도 보다 상세하고 자세하게 기술하려 노력하였음을 특히 명시하는 바이다. 실은 먼저 ‘두음 법칙’과 그 유래를 밝히며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겠지만 우리 생활에 푹 젖어든 두음 법칙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을 해치며 우리의 인명, 지명을 벌집으로 만들다시피 한 현상이 너무 심각하여 두꺼운 표피부터 하나하나 파헤쳐 낱낱이 열거하고 밝히며 차차 ‘두음 법칙’의 원초(유래)를 찾아보기로 한다.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중국 인명 표기”와 “중국 지명 표기” 원칙에 따라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를 종전의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물론 현대인과 현재 지명과 동일한 지명은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원지음(외래어)으로 취급한다고 치더라도 종전의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대로 과거인의 인명, 현재 쓰이지 않는 역사 지명을 표기함에도 모순투성이어서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의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국어 대사전』에 오른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예로 들어본다. 먼저 지명을 보면 중국의 하남성 북서부에 있는 성 직할시 ‘洛陽’을 옛 지명 그대로 표기할 때는 ‘낙양’이라고 올랐다. 중국 길림성의 ‘룡정촌(龍井村)’은 외래어로는 ‘룽징춘’으로, 옛 지명으로는 ‘용정촌’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외에 ‘려대(旅大)’를 ‘여대’로, ‘려순(旅順)’을 ‘여순’으로 표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료녕성(遼寧省)’을 외래어로는 ‘랴오닝성’이라고 하며 옛 지명으로는 ‘요령성’이라고 올랐다.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의 “중국 지명 표기” 규정으로 보면『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료녕성(遼寧省)’은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이기에 응당히 이른바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원지음을 본 따 ‘랴오닝성’이라는 지명을 올리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사전에서는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처럼 ‘료녕성(遼寧省)’을 새삼스레 한자어 ‘요령성’이라고 예스럽게 낱말을 더 새기어 사전에 불필요한 동의어가 범람케 하고 있다. 하여 사전 사용자들은 ‘랴오닝성’, ‘요령성’ 또는 ‘료녕성’가운데서 바른 지명을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위의 예문에서 또 동일한 한문자 지명 ‘遼寧省’임에도 ‘료녕성’과 ‘요령성’이란 두 낱말로, 석자 중에서 두자나 서로 다르게 올랐음을 볼 수 있다. 인명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인물로 된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라는 규정을 무시하고 [ㄹ], [ㄴ] 소리를 앞세운 인명은 어느 하나도 옛 이름, 종전의 한자어 원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예하면 중국의 당나라 태종 ‘리세민(李世民)’은 [이]씨 성으로 바뀌어 ‘이세민’으로 되고, 당나라 문인 ‘류종원(柳宗元)’은 [유]씨 성으로 바뀌어 ‘유종원’으로 되었고, 원말 명초의 소설가 ‘라관중(羅貫中)’이 언제부터인지 [나]씨 성으로 바뀌어 현재는 ‘나관중’으로 둔갑(遁甲)되었다. 이러고 보면 나관중의 작품 속의 수많은 인명, 지명도 하나하나 점검해서 바뀌어야 될 것인데; 예하면『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역사 인물−중국의 삼척동자들에게도 너무 귀에 익은 삼국 시대 촉한의 ‘현덕−류비(劉備)’가 고인이 되어 1,800여 년 만에 ‘유비’(『국어대사전』2006년 2914쪽)로 불리고, ‘사람 중에 려포요,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할 정도로 무용이 뛰어난 ‘맹장−려포(呂布)’가 성씨를 바꾸어 ‘여포’로 둔갑이 되었으니 만고에 없는 변란으로 고혼도 혼비백산 할 것이 아닌가. 다음,『수호전』의 몇몇 인물만 대조해 본다. ‘로지심(魯智深)’은 ‘노지심’으로, ‘림충(林冲)’은 ‘임충’으로, ‘로준의(盧俊義)’는 ‘노준의’로, ‘리규(李逵)’는 ‘이규’로, ‘구문룡(九紋龍)’은 ‘구문용’으로, ‘류당(劉唐)’은 ‘유당’으로 의기지용으로 의기충천하여 호풍환우하던 영렬들이 몸담고 있던 량산박(梁山泊)은 벌써 양산박(『국어대사전』(2006) 2516쪽)으로 변명(變名)이 되었으니 위의 108명 영웅의인(義人)들도 자연히 양산호걸로 길이길이 전해 져 한국의 후세들은 ‘양산호걸’ 하면 경상남도에 있는 통도사, 내원암, 홍룡 폭포 등 명승지가 있는 양산(지난날의 양산군, 오늘의 양산시)의 호용(豪勇)으로 여길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일 경우도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원지음을 적용한답시고 현지 발음답게 엮노라 흉내 내는 것도 어렵지만 현지 음을 찾기 전에 두음 법칙을 우선(전제)으로 중요시 하는 한국으로부터 이중의 세례(‘외래어 표기법’과 ‘두음 법칙’)를 받게 될까 두렵다. 실례로 ‘류소기(劉少奇)’를 한국에서는 ‘류 사오치[『국어대사전』(2006) 1117쪽]’라고 한다. 두음 법칙에 따라 ‘류소기’를 ‘유소기’로 바꾼 다음 중국 현지 음으로 ‘유 사오치’로 해야 될 것이 아닌지. 외래어엔 두음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 중국 송나라 사람인데 상선을 타고 들어와 고려에 귀화한 ‘유재(劉載)’와 ‘유소기’는 같은 [유]씨이고 모두다 벼슬이 높아 ‘유소기’는 나라 주석을 지녔고 ‘유재’는 정이품으로 우복야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워낙 다 같은 중국 사람인 ‘유소기’와 ‘유재’는 성씨 만으로나마 같은 대접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림표(林彪)’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한국의『국어대사전』(2006)에서는 ‘림표’를 ‘린 퍄오(1130쪽)’라고 올렸고『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린뱌오’로 표기되었다. 한자어 ‘림(林)’은 한국의 두음 법칙으로 하면 ‘임’으로 되어야 할 터이고 ‘림(林)’씨가 ‘임(任)’씨네 댁으로 가야 될 터인데 황천객이 된 ‘림표’가 오늘 한국의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림’씨가 ‘임’씨네 댁을 못 찾아 ‘린(吝・燐・躪?)’씨로 변성(變姓)이 되었다. 한국의 “두음 법칙”과 “중국어 표기법”이 결합되어 [종전의 한자음+두음 법칙]으로 이루어진 림(林)→임(任)→린(躪)과 같은 방정식이 머잖아 [ㄹ] 소리를 버리는 두음 법칙이 [린]을 그만둘리 없어 [린]이 다시 [인]으로 될 터이니 림(林)→임(任)→린(躪)→인(忍)으로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성씨를 따라 함께 돌아야 할 혼백도 얼마나 고달프랴. 조선시대의 임득명(林得明), 임백령(林百齡), 대한 제국 때의 의병장 임병찬(林秉瓚)의 성씨도, 조선 명종 때의 임꺽정의 성씨도 두음 법칙이 나오기 전에는 모두 [수풀 림(林)]씨이다. 원훈원음으로는 ‘림득명’, ‘림백령’, ‘림병찬’, ‘림꺽정’이라는 것이다. 생전의 여러 ‘림씨’가 사후(死後․亡後)에 선대조상(先代祖上)을 떠나 ‘임씨’ 댁에서 떠돌아다니는 망령음귀(亡靈陰鬼)로 되었다. 중국어 원지음과 두음 법칙이 서로 엇갈리어 [수풀 림(林)]이 수풀마냥 복잡하고 다양하게 쓰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림표의 이름 ‘표(彪)’는 사전마다 제 나름으로 ‘퍄오’로도 오르고, ‘뱌오’로도 표기하고 있다. 중국 인명 하나를 두고도 이렇듯 뒤죽박죽이다. 최근에 출판된 한국의 여러 국어사전들과 출판물들, 지어는 학교들과 방송들에서도 위와 똑 같은 사정이다. 위의 예문에서 지명 ‘洛陽’의 한문자 [洛]의 우리 훈의 음(으뜸소리)은 분명히 [물 이름 락]이고 ‘遼寧省’의 [遼]의 우리 훈의 음은 [멀 료]이고 [寧]의 훈의 음은 [편안할 녕]이며 ‘龍井村’의 [龍]의 훈의 음은 [룡 룡]이다. 인명 ‘李世民’의 [李]의 우리 훈의 음(으뜸소리)은 [오얏 리]이고 ‘柳宗元’의 [柳]의 훈의 음은 [버들 류]이며, ‘羅貫中’의 [羅]의 훈의 음은 [벌릴 라]이고 ‘劉少奇’의 [劉]의 훈의 음은 [죽일 류/묘금도 류]이다. 물 이름 락(洛)자가 ‘낙’자로, 멀 료(遼)자가 ‘요’자로, 룡 룡(龍)자가 ‘용’자로, 오얏 리(李)자가 ‘이’자로, 버들 류(柳)자가 ‘유’자로, 벌릴 라(羅)자가 ‘나’자로, 묘금도 류(劉)자가 ‘유’자로 둔갑되었다. 이변(異變)이 아닐 수 없다. ‘락양(洛陽)’이 ‘낙양’으로 되고 ‘료녕(遼寧)’이 ‘요령/요녕’으로 되며 ‘리세민(李世民)’이 ‘이세민’으로 될 수 있는 이른바 합리적인 구실(핑계・이유・근거)이라면 한국의 많은 중한사전(옥편)들에서 언제부터인가 한자어 중에 [ㄹ], [ㄴ] 소리를 앞세운 낱말의 으뜸소리−정훈(正訓)에다 보충 훈과 음독(音讀)을 가첨했고 첨가된 보충 독음(讀音)이 정훈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어연구소”에서 발행한『한국 어문규정 해설집−한글 맞춤법 해설−』(2006) 제16쪽에서는 “음소 문자인 한글은 원칙적으로 1자 1음(소)의 체계를 취하지만, 표의 문자인 한자의 경우에는, 국어의 음운 구조에 따라 두 가지 형식을 취한 것이다”고 씌어져 있다. 예하면 “본음이 ‘녀, 뇨, 뉴, 니’인 한자가 첫머리에 놓일 때는 ‘여, 요, 유, 이’로 적는다.”는 것이다. 두음 법칙에만 특별히 베푸는 너그러운 관용(寬容)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 지켜오며 굳어진 우리 음운(音韻)과 음훈(音訓)의 원칙과 기준마저 깨뜨리면서라도 두음 법칙에만 켜 준 푸른 등을 바라보노라니 비감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이로 하여 두음 법칙은 활개 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1자 2음, 지어는 1자 3음의 표기 형식을 마구 만들어 나가고 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이른바 일명 “어두음 법칙” 또는 “머리소리 법칙”이라는 “두음 법칙”이 떠도는 나그네를 안방의 주인으로 모시고 멀쩡한 원주인은 쫓아버린 셈이다. 예: 한문자 [洛]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물 이름 락 (낙)]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락]을 버리고 [낙]을 취하며, 한문자 [遼]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멀 료 (요)]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료]를 버리고 [요]를 취하고 있고, 한문자 [李]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오얏 리 (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리]를 버리고 [이]를 취하고 있다. 위에서 실례 든 훈과 음의 전자는 종전의 한자음, 또는 우리 한자음의 정훈(正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후자는 변이음(變異音)도 아니요 속음(俗音)도, 연음(連音)도, 음편(音便)도 아닌 괄호안의 보자(補字)와도 같은 보충(補充)자는 한자 또는 한자어, 한자음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른바 한국에서만 성행하는 두음 법칙(頭音法則)이 낳은 신어(新語)라고 봐야겠다. 정실(正室)에서 태어난 정훈(正訓)은 정적(正籍)임에도 쫓겨나고 소실(小室)의 의자(義子)도 아니요, 소첩의 서자(庶子)도, 얼자(孽子)도 아닌, 그래서 명실(名實)이 없어 실명(實名) 확인도 할 수 없는 떠도는 나그네와 같은 자를 세자(世子)로 봉하여 훈과 음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정훈의 자리를 “찬탈(簒奪)”한 훈과 음(괄호안의 훈)만을 인정한다면 천자문의 새김말(훈음)도 이제는 고쳐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예: ==============         ==========================죄송합니다.   본 단락의 내용을 수정 축소하고 있는중입니다. ======================         =====================법과 규칙은 사회적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혼란이 생기고, 그로 인해 질서가 무너져 모두가 불편하고 지어는 위험해진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일은 공동생활을 하는 인간사회의 필수불가결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법과 규칙을 잘 지키는 전제 조건은 우선 그 법과 규칙이 보다 과학적이고 보다 일관적이며 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통일된 올바른 규범이어야 하고 그로 하여 밝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준칙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필자는 한자어에만 국한되고 적용된 이른바 ‘두음 법칙’으로 인하여 형태를 걷잡을 수 없는 오자(誤字)와 와자(訛字), 와음(訛音)의 만연을 막자면 반드시 참담한 현실과 현상의 근원인 바로 왜곡 된, 불완정한 우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의 개념과 새김(주석・註釋)을 바로잡아 한자와 한자어는 곧 우리의 글과 말임을 인정하고 아울러 한자의 원래의 훈(訓)과 원래의 음(音) 내지 한자어의 원래의 형태를 지켜야 한다고 거듭 지적한다. 한국의 두음 법칙과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은 전 세계 한민족간의 우리말과 글의 통일을 이룸에 걸림돌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한국에서는 이른바 말썽 많은 ‘두음 법칙’과, 폐단만 갖고 있는 현행 ‘중국어 표기법’을 하루 속히 폐지하고 그 폐허 위에 8급, 9급 지진에도, 12급 태풍에도 끄떡없을 ‘겨레말과 겨레글의 맞춤법’이라는 기초를 박고 우리의 고운 말 바른 글로 크고 높은 집을 지어 우리말과 글이 건전히 발전하여 진정으로 우리 겨레말(한글・조선글)로 하여금 세계화의 국력신장(國力伸張)에서 일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당초 1930년으로부터 1933년 사이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 학회) 총회의 결의로『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이른바 ‘[ㄹ] 소리 버릇’이 ‘두음’이란 법으로 치닿기에 앞서, 즉 백흑이 전도 된 ‘두음법칙’을 내놓을 대신 오늘에 까지도 우리 발음에 힘든 [F] 소리 현상(순치성(脣齒聲)의 주음부호 [ㄈ]와 한어(漢語) 병음자모 [f]와 웨이드식 로마자 [F] 발음이 우리말 발음에 없는 현상을 검토하고 그에 해당된 음(자모음)을 첨가했더라면 청사죽백(靑史竹帛)에 길이 남을 업적으로 기리고 또 기리었을 것을, 어렵고도 긴 숙제로 남는, 오래 끌어 온 숙제를 풀지 못하는 유감을 남기며 본문을 마무리한다.
5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얼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118038  추천:44  2011-03-15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얼에 대한 단상 필자는 국제 통용관례에 따라 세계화에 따르자면 외국의 인명 지명은 객수주편(客隨主便), 명종기주(名從其主)의 원칙으로 손은 주인에 따라야 한다는 통념(通念)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본문의 전 편에서 언급되고 강조되다시피 한자문화권에서의 한문 또는 한자, 한자어로 명명된 지명, 인명은 국제통상(國際通常)과 달리 우리 문화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피력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지명 표기는 끊임없이 변해 왔는데 공식, 비공식 지명만도 수십 개에 이른다. 역사를 거슬러 백제 때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 고구려 때는 ‘남평양(南平壤)’, 신라 때는 ‘한산주(漢山州)’, ‘신주(新州)’, ‘남천(南川)’, ‘한양(漢陽)’, 고려 때는 ‘양주(楊州)’, ‘남경(南京)’, ‘한양(漢陽)’, 조선조에는 다시 ‘한양’ 다음에 ‘한성(漢城)’,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京城)’으로 불렸다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한글・조선어의 고유명사 ‘서울’로 명하고 로마문자로는 ‘SEOUL’로, 한문자로는 ‘漢城(한성)’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공식 지명 말고 별칭도 많았다. ‘수선(首善)’, ‘목멱양(木覓壤)’, ‘경도(京都)’, ‘경사(京師)’, ‘경락(京洛)’, ‘도하(都下)’, ‘장안(長安)’, ‘황성(皇城)’, ‘경조(京兆)’, ‘문안(門內)’ 등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중국도 서울 명칭이 바뀔 때마다 따라서 ‘한양(漢陽)’, ‘한성(漢城)’, ‘경성(京城)’, ‘한성(漢城)’으로 표기하고 불러 왔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 한중수교에 즈음하여 ‘서울−(ㅅㅓ,ㅇㅜㄹ)’의 발음에 가까운 한자를 선택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을 중국말 표기로 ‘수오이(首塢爾−서우−우−얼)’라고 하다가 ‘수무이(首無二−서우−우−얼)’로, 다시 ‘수옥(首沃−서우−워)’으로, 항간에서는 또 ‘西蔚(서울)’, ‘色窝兒(색와아)로, 한동안은 한문한자 ‘중경(중징・中京)’으로 거론 되다가 결국은 ‘서울’을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로 확정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최종이 아니라 당분간이라고 보고 있다. 실은 서울시가 서울에 대한 한문표기를 ‘수이(首爾)’로 정하고 외교문서로 중국더러 한문 발음 그대로 ‘首爾−SHOUER−서우우얼’로 써줄 것을 요청했었고 중국도 한국의 청을 쾌히 받아 들였다고 한다. 2005년 1월 19일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에서 서울의 중문(中文−漢文)지명을 ‘首爾’로 개칭하고 ‘漢城’은 다시 쓰지 않는다는 소식 발표에 따라 한성‘漢城’은 세 번째를 거듭하며 역사 속으로 다시 사라져버렸다. 아마 서울 어르신들이 중국에서 한국의 수도를 ‘한성(漢城)’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긴 모양이다. 그 원인의 하나는 이웃 나라는 ‘북경(北京)’이요 ‘동경(東京)’이요 하면서 수도에 모두 서울 경(京)자가 들어갔는데 우리는 흙토변이 붙은 재 성(城)자, 성곽 성(城)자가 들어 있어 ‘한성(漢城)’이라는 부름이 아주 격이 떨어지는 것 같고 촌스럽게 여겨진 모양이다.(한문자 ‘漢’자와 ‘城’자 및 지명으로서의 뜻풀이는 생략함) 다른 하나는 ‘한성(漢城)’이라는 한(漢)자가 중국의 한(漢)나라를 뜻하는듯하여 기분이 적이 아니 좋은, ‘대한족주의’의 뜻이 다분히 담긴, ‘문화패권’ 의식이 짙은 듯한 ‘한(漢)’자를 뿌리 채로 뽑아버리고 중국더러 ’서울‘이라는 발음이 나오도록 ‘수이(首爾)’라고 불러달라고 간청한 모양이다. 또 다른 하나의 원인은 아마 필자가 본문 전편에서 언급한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 그 중에서도 “중국어의 표기”와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규정을 모범적으로 적용하여 중국더러 ‘서울’의 원지음(原地音)을 기준하여 표기하라고 시도한 모양이다. 대한민족(大韓民族)의 정신을 고양(高揚)하며 한문자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쏟은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자는 ‘서울’의 중국어 지명개칭을 위의 여러 가지 원인이면 충분하고 정당하리라 보겠지만 문제가 그렇듯 단순하지 않다.(지명과 역사, 지명과 문화에 대한 이해는 생략) 필자는 서울은 ‘漢’자가 붙은 ‘漢城(한성)’을 ‘漢’을 버리고 ‘首爾(수이)’라고 고칠 때 ‘漢江(한강)’, ‘한라산(漢拏山)’, ‘남한산(南漢山)은 물론; 중국의 당나라를 뜻한다는 ‘唐’자가 붙은 충남의 지명 ‘唐津(당진)’, 우리 낱말 ‘당나발(唐喇叭)’, ‘당나귀(唐나귀)’,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당황(唐惶・唐慌・唐黃)’, 그리고 강원도와 평안도의 방언 ‘당가지(唐가지)’, 지어는 우리 민족 복장−한복・조선옷의 하나로서 여자들의 저고리 위에 덧입는, 앞길과 뒷길이 저고리보다 길고 도련은 둥근 곡선으로 되어 있으며 옆은 진동선 아랫부분이 트여 있는 예복의 하나−당저고리 즉 ‘당의(唐衣)’까지도 ‘唐’자를 버리고 다른 낱말로 고쳐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감내, 감수하고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비록 한국의 간청으로 ‘서울’의 중국어 지명은 겨우 ‘首爾−SHOUER−서우우얼’로 고쳤지만 중국은 아직도 서울의 많은 명칭을 오늘도 그냥 중문(中文)으로는 ‘漢城市政廳−서울시청’, ‘漢城大學−서울대학’, ‘SBS漢城廣播電視台−SBS서울방송’, ‘漢城中央郵局−서울중앙우체국’, ‘漢城中華靑年會議所−서울중앙청년회의소’, ‘漢城海關’, ‘漢城酒店’, ‘漢城高速客運站’ 등등으로 일컫고 있다. 다만 ‘서울’만 ‘首爾’이라고 고치였을 뿐 나머지 모두는 여전히 ‘漢城(한성)’이라고 명하고 있다. 다원화, 다문화의 개념에서 보면 한자문화권에서의 ‘한자’는 중국뿐이 아닌 동아시아 모두의 것이고 ‘한자’는 반만년간의 동아시아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다.(필자의 ‘한자문화권에서 한자의 공유(共有)와 공용(共用)의 우세’, ‘한자의 유래’, ‘우리한자’ 등 참조) 한국인, 또는 한문자를 배워서 아는 사람들이 한글・조선글로 ‘서울’하면 [서울 경(京)]자가 떠올라 ‘수도’로 연상이 될는지 모르지만 중국 글자, 또는 우리 한문한자로 ‘首爾(수이)’라고 쓰고 그 중국 병음 발음으로 ‘서우우얼(首爾−SHOUER)’이라고 부른다면 한문으로는 오히려 아무런 뜻이 없다. 중국 사람은 지난날 한국의 수도 서울을 ‘漢城’이라고 부를 때에 ‘漢’자에 대한 우월감이나 ‘패권감각(覇權感覺)’이 전혀 없었거니와 오늘 ‘SHOUER−서울’이 무엇을 뜻하는지, ‘首爾(수이)’라고 새로 도시 명을 바꾼다 해서 그 단어가 서울 경(京)자와 무슨 관련이 되는지 전혀 모르거니와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왕 중국에서 서울을 ‘首爾−SHOUER’로 표기하기로 확정되었으니 우리 한문자 문화권에서 사는 동양인(특히 한국인)들은 반드시 ‘수이’와 ‘首爾’이라는 단어가 도대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그 뿌리(근원)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글 낱말로서의 ‘수이’는 ①물엿. ②다른 것보다 매우 뛰어나다. ③특별히 다르다. ④수입・수출에 따라 화물을 여기저기로 옮김을 뜻한다. 한문자 ‘首爾’는 옥편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首爾’의 첫 자 ‘首’는 훈과 음으로 [머리 수]이고 뜻풀이로는 ①머리. ②우두머리. ③첫째. ④첫머리. ⑤칼자루. ⑥근거하다. ⑦자백하다. ⑧향하다. ⑨나타내다 등 이고; ‘爾’자는 훈과 음으로 [너 이]이고 뜻풀이로는 ①너. ②같이. ③그러하다. ④가깝다. ⑤어조사. ⑥그(其). ⑦이(此) 등 이다. 우리글 낱말 ‘수이’나 한문자 ‘首爾’의 모든 풀이를 아무리 정밀 분석하여 훑어보고 뜯어보고 맞추어 보아도 ‘서울’하고는 사돈에 팔촌도 안 된다. 한문자는 무엇보다 표의적 음절문자로서 문자나 부호로 뜻을 나타내는데 ‘首爾’라는 지명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필자는 지명이라면, 특히는 한국・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의 지명이라면 그 고장의 전설이나 유래, 역사나 연유, 또는 어떠한 까닭이나 모양, 형태나 지향 등을 뜻해야만 지명답다고 해야 할 것이지만 ‘首爾(수이)’는 발음으로만 ‘쉬이’와 가까울 뿐 뜻하는 바를 쉬이 알 수가 없다. 지명으로서의 ‘首爾(수이)’는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삼천리금수강산에서−고유어로나 한자어로나 둘도 없는(유일한) 속이 텅 빈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저 너무 쉬이 이루어진 것은 또한 쉬이 무너지는 법이여서 ‘首爾(수이)’가 얼마나 오래 갈까 근심스럽다. 수천 년 표의문자로만 알고 있던 한문자였었는데 새 단어 ‘首爾(수이)’만은 문자의 뜻은 버리고 한문 발음만 빌려서 우리 한글마냥 표음문자(表音文字)로 융합시켜 고유어 ‘서울−SEOUL’을 한자어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로 둔갑시킨 것이 아닐까? 실로 대단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표의문자인 한문자로 하여금 이웃 다른 나라에서 표음문자로 태어나게 한 산실(産室), 태어난 산물이 순산이든 난산이든 그 산실이 있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줄기세포 연구의 성취보다 더 대서특필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마술이 아니고서는 불가사의하여 훈민정음도 놀라 혼도(昏倒)할 지경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서울을 ①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곳. 도읍, 수도, 수부. ②우리나라의 수도 이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서울’은 우선 고유어이고 낱말 풀이를 보면 전자는 보통명사이고 후자는 고유명사다. 보통명사와 고유명사가 서로 헛갈리는 낱말을 지명으로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낱말은 고유명사에 앞서 보통명사로 널리 풀이된다. 고유명사로 지명 ‘한성(漢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쓰는 고유어를 중국에서는 외래어나 다름없을 ‘서우우얼(首爾)’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국의 지명 ‘인천’도 중국에서 지금까지 불러오고 써온 ‘仁川(renchuan)’을 버리고 우리발음(ㅇ+ㅣ+ㄴ,ㅊ+ㅓ+ㄴ)에 가깝게 중국더러 ‘yinchen’발음으로 표기를 ‘淫沉’으로나 또는 ‘陰沉’, ‘陰塵’, ‘因臣’,‘銀沉’, ‘飮晨’, ‘因沉’, ‘淫晨’, ‘淫臣’ 등으로 고쳐달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필자는 우리말을 옳고 바르게 하는 원칙중의 하나가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차용어, 외국어, 방언(사투리) 등 많은 말들 가운데서 우선 고유어를 살려 쓰고 다음 우리말에 굳어진 한자어를 쓰며 우리말에 없는 외래어는 되도록 우리말로 귀화, 또는 순화, 동화 시키고 부득불 쓰지 않으면 아니 될 극히 제한 된 외래어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은 저의 수도명칭 ‘首爾(수이)’를 외래어로 부득불 조심히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고유어로 ‘서울’이 있고 한자어로 ‘한성(漢城)’이 있음에도 스스로 외래어 ‘首爾(수이)’를 만들어 남 보고 불러달라고 간청한 것이었다. 사전에는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 ‘서울’이라고 풀이했다. 그렇다면 ‘파리’는 프랑스의 ‘서울’일 것이고 ‘로마’는 이탈리아의 ‘서울’이며, ‘북경’은 중국의 ‘서울’이고 ‘한성(漢城)’은 한국의 ‘서울’이요,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서울’일 뿐이다. 이렇듯 각 나라마다 중앙정부가 있듯이 ‘서울’은 사전 풀이 그대로 도읍, 수도, 수부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다만 ‘서울’이라는 낱말이 우리의 고유어라고 해서 세계 각국더러 ‘서울’을 한국의 한성(漢城)한테만 맞추어 부르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한 억지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서울’을 보통명사보다는 고유명사로 더 쓰인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나라(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더러 한국의 수도를 ‘서울’로 불러 달라고 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우리말 사전 풀이에서는 ‘서울’을 ‘나라의 수도 이름’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그렇다면 ‘한성(漢城)’을 ‘서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국적이 어떠하든 간에 각자 모두 자기 입장에서 제 마끔 자기 나라의 수도로, 즉 세계 각국에서 모두 ‘한성(漢城)’을 ‘서울’로 부른다면 ‘한성(漢城)’은 세계의 수도를 뜻한다는 것이다. 별로 안 좋을 일은 아니지만 국제 상식과 국제 관계를 먼저 고려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아무리 우리의 국어사전이라 하지만 사전을 이용하는 대상이 꼭 한국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외국의 학자, 전문가, 외교가, 특히는 같은 글(한글・조선글)을 쓰는 북녘에 조선이라는 국가가 있는 남북사정을 헤아려서라도 낱말 ‘서울’을 ‘나라의 수도 이름’보다는 응당 ‘한국의 수도 이름’이라고 주석을 달아야 더 객관적일 것이다. 필자는 우리 민족의 한(漢)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한양(漢陽), 한성(漢城), 한강(漢江)과 마찬가지로 한자(漢字)의 한(漢)이라는 글자는 중국의 한(漢)나라를 뜻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당시 한(漢)이라는 중국 문자만 빌려서 썼을 뿐 그 본뜻은 우리말의 ‘한’의 뿌리 말인 어간(語幹) ‘하’라는 발음과 ‘하’가 갖고 있는 뜻을 밝히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는 예로부터 ‘아주’, ‘몹시’, ‘크다’, ‘밝다’, ‘넓다’, ‘바르다’, ‘가득하다’, ‘하나’라는 여러 뜻을 담고 있다. 당시 말만 있고 문자가 없을 때 중국 글 한(漢)자의 음을 빌려서 한−을 넓게 써온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리라. 이는 마치 우리 겨레를 “배달민족”이라고 할 때, ‘배달’이라는 단어를 한문자(漢文字)의 문자만 빌려 ‘倍達’이라고 표기하는 것과도 같은 연유(사유)라고도 할 수 있다. ‘田畓(전답)’, ‘溫突(온돌)’, ‘䭜饑(요기)’, ‘食口(식구)’, ‘兩班(양반)’, ‘開川(개천)’, ‘引絶味(인절미)’, ‘千葉(천엽)’; ‘古斯(구슬)’, ‘阿嫫(어미)’, ‘阿旦(아들)’바다(波旦), 벼랑(比烈), 서늘히(沙熱伊), 구슬(古斯), 어미(阿嫫), 아들(阿旦), 바람(把倫), 구름(古論); 서리(色立), 이슬(以沁), 머리(墨立), 눈(嫩) (『삼국사기』,『삼국유사』,『계림유사』에서) 바로 이 같은 견지에서 필자는 오히려 중국어에서는 아무런 뜻도 없는 ‘수이(首爾)’보다는 한자문화권에서 서로 소통이 잘 되는 한자어로서의 유서 깊은 한성(漢城)― 천년 옛 도시, 옛 고을을 자랑하는 ‘한성(漢城)’이라는 지명이 더 힘 있고 기백이 넘친다고 본다. 그래도 기어코 수도를 꼭 ‘서울’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한국에서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옮기게 될 곳의 본래의 도시 이름이 없어질 것이고 그 곳을 또 ‘서울’이라고 명명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떠나간 옛 서울에는 ‘서울’이라는 이름까지 전이해 갔으니 이름 없는 도시가 있을 수 없고 하니 다시 도시 명을 지어서 세계 여러 나라더러 한국 지도의 지명을 또 고쳐달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마치도 중국의 북경을 ‘北京’이라는 지명보다 중국의 도읍, 중국의 서울이고 중국의 수부이고 수도이니만큼 ‘북경(北京)’을 ‘수도(首都)’라고 개칭하고 전 세계더러 모두 중국어 발음 ‘首都−Shoudu’라고 불러달라는 격과도 같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수도(首都)’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새로 옮겨진 도시의 원지명은 버리고 대신 ‘首都’로 명명할 것이고 ‘首都’를 떠나보낸 원래의 옛 ‘수도’에는 또 새로운 지명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두다 제가끔 자기 나라의 수도를 중국에서는 ‘首都’라는 발음으로, 한국어・조선어로는 ‘서울’이라는 발음으로, 일본에서는 ‘しゅと/しゅふ’라는 발음으로, 영어권에서는 ‘Capital’이라는 발음으로 불러달라고 한다면 과연 세계지도의 모양새는 어떠할 것이며 세계 각국의 수도가 바뀔 때마다 따라가며 본래 지명을 짓뭉개버리고 새로이 그 나라의 ‘서울’이라는 뜻으로, 그 나라의 발음으로 명명해나간다면 세계 문화유산과 함께 고풍 찬연한 지명들이 얼마나 오래 버틸까?! 지명은 역사와 문화의 맥을 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머나먼 훗날에도 청사에 길이 전승되어야 할 것이다. 혹시 한국의 수도를 ‘首爾(서우우얼)’로 불러줄 것을 간청하고 그것이 허락된 대가로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모조리 깡그리 무더기로 중국어 발음으로 고쳐주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어딘가 중국에 필요도 되지 않는 대접을 너무 잘 해 보이는 듯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호(相互)주의 원칙에도 위반되는 자존심이 깎이는 행실이 아닐 수 없다. “중국어 표기법”이랍시고 한자문화권을 무시하고 오랜 세월 굳어진 관용마저 버리며 중국의 지명, 인명을 마구 고쳐버린 한국에서 이젠 이웃 나라에 자국의 수도명칭까지 외래어로 지어 주고 그대로 불러 달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한강’, ‘대한민국’, ‘금수강산’ 등등도 단두대 앞에 섰다. 중국에서는 ‘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는 단어를 수입했다고 볼 수 있겠다.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니 당연히 외국어가 아니면 바로 외래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귀화시키거나 순화시키지 않은 순 외래어로는 흔치 않은 실례이다. 한국에서는 ‘首爾−SHOUER’이라는 외래어를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하고 중국은 그 수입품을 재가공도 하지 않고 다시 국사로, 외교행사로, 경제−문화교류로, 민간왕래로 한국에로 수출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SEOUL’이 마침내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로 되어 그 과정을 방정식으로 정리해 보니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만약 한국에서 ‘서울’이라는 단어를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고 이름 지어 중국으로 수출하지 않고, 중국더러 한국 서울의 명칭을 ‘漢城’이 아닌 서울을 뜻하는 다른 단어로 바꾸어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더라면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중국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우선 오늘도 한국에서는 ‘서울’을 뜻하는 한자 ‘경(京)’을 넣어 ‘경부고속(京釜高速)’, ‘경의선(京義線)’, ‘경춘선(京春線)’, ‘상경길(上京길)’ 따위로 ‘서울’을 한자로는 ‘경(京)’으로 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고; 동방의 예의지국−천년 고도(古都)인 ‘한양(漢陽)’이 ‘한성(漢城)’으로, ‘한성(漢城)’이 근대의 ‘경성(京城)’으로, ‘경성(京城)’이 다시 ‘한성(漢城)’으로 불리어 온 역사를 감안해 서울 ‘경(京)’을 뜻하는 경자(京字) 돌림의 옛 서울 명칭들인 ‘경궐(京闕)’, ‘경락(京洛)’, ‘경련(京輦)’,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읍(京邑)’, ‘경조(京兆)’ 또는 ‘경도(京都)’, ‘경성(京城)’가운데서 하나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도(京都)’, ‘경성(京城)’을 제외하고는 모두 옛 서울의 명칭이고 너무 예스러운 풍취나 정서여서 ‘경도’, ‘경성’이 적임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그 둘 중에서 ‘경도’라고 하면 서울이라는 뜻도 있긴 하나 일본의 ‘교토’를 연상케 하여 언짢을 수도 있으니 그래도 ‘경성(京城)’을 택할 확률이 앞설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옅은 소견에도 서울을 뜻하는 ‘경성’ 또한 1910년에 일제 강점기에 명명 되었다 하여 식민지 정서가 깔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누울 수도 있다. 정 그렇다면 10여 년 전에 서울의 중국어 명칭을 ‘중경(中京−중징)’으로도 공식 거론 되었었다고 하니 아예 가운데 중(中)자에 서울 경(京)자로 ‘중경(中京)’도 괜찮을 듯싶다. 필자는 여전히 한국의 지금 수도 명을 고유어 고유명사로는 ‘서울’로, 한자어 고유명사로는 ‘한성(漢城)’으로 변함없이 표기할 것을 주장한다. 필자는 우리 정음자(正音字)와 한자(漢字) 모두 우리 문자이며 고유어와 한자어 모두가 우리의 말이며 우리 역사와 문화를 엮고 담는 연모라고 강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자’는 수천 년간, 수많은 민족에 의해 형성되고 오랜 세월 부단히 완성되며 발전된 문자이며, 그 문자를 우리 음으로 옮겨 쓰면 우리 글자이기도 하며, 마찬가지로 중국의 음으로 쓰면 중국문자, 일어 음으로 옮겨 쓰면 일본 한자, 베트남의 음으로 옮겨 쓰면 베트남 한자이기도 한 동방문자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최근 한자의 기원이 중국의 권위적인 고고학연구가들로부터 새로이 밝혀지고 있다. 중국 산동성 정부 웹 사이트 ‘山东省情网(WWW.infobase.gov.cn)’의 ‘省情网’으로 서명한 글 ‘东夷及其文化发展(2007-07-31)’을 방문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뚜렷이 눈에 띈다. “最早的文字,当是东夷人的创造。《潜夫论·五德志》有“少皞始作书契”,的说法。这一说法得到了考古发现资料的证明。” 필자의 얕은 수역(修譯)으로 그 뜻을 헤아려보면 “최초의 문자는 동이사람들이 창조하여 ‘소호시작서계(少皞始作书契)[적을 少, 밝을 皞, 처음 始, 지을 作, 글 書, 새길 契 -어려서부터 사리에 밝아 시작부터 부절(符節)을 새겼노라]’설이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일부 자료에서는 소호(少皞)를 동이족의 영수 인물인 소호(少昊)로 보고 있다.(少昊又作少皞,是古东夷族的另一位领袖人物) (山东省情网http://xz7.2000y.net/mb/1/ReadNews.asp?NewsID=518766 山东省情网http://tieba.baidu.com/f?kz=684118068 등 웹페이지 참조.) 중국의 ‘齐鲁晚报’ 2008년 10월 27일의 글 ‘神秘东夷甲骨文现山东-疑比殷墟甲骨早千年’, 또는 산동성사회과학원(山东省社会科学院) 방진호(逄振镐) 연구원의 글 ‘从图像文字到甲骨文-史前东夷文字史略’(2002年 02期 中原文物 Cultural Relics of Central China http://d.wanfangdata.com.cn/Periodi cal_zyww200202008.aspx 참조)을 보면 골각문자(骨刻文字)인 동이문자(東夷文字)가 지금까지 알려진 은허(殷墟)의 갑골문자(甲骨文字)보다 무려 1000년 내지 1500년 전으로 알려져 산동대학 고고미술학연구소 유봉군(劉鳳君)소장은 얼마 전에 “20세기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갑골문자 발견이었다면 이번 골각문자 발견은 중국 역사를 지금보다 천여 년 이전으로 돌리는 21세기 중국 고고학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齐鲁晚报 http://news.qq.com/a/20080815/001934.htm 등 웹페이지 참조.  http://news.sina.com.cn/c/2008-08-15/073714314025s.shtml-中國大众网-齐鲁晚报 웹페이지 참조. http://www.mychangle.cn/wenhua/lishi/2010/1215/3836.html中國昌樂网 http://www.hudong.com/wiki/%E9%AA%A8%E5%88%BB%E6%96%87 http://www.china.com.cn/culture/guoxue/2010-03/04/content_19520569.htm 文化中國 웹페이지 참조. http://blog.artintern.net/blogs/articleinfo/litaimo/130517中國藝術國際 참조 지극히 중요한 것은 은허의 갑골문자 이전에 동이문자가 골각문자로 먼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자는 동이문자의 맥을 이어 발전되어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문자의 시조(始祖)와 같은 [집 家], [새길 契]와 같은 문자에 역사와 문화가 역력히 남아있고 지혜가 넘쳐남에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집 [가 家]자만 보더라도 글의 창제(創製) 원리와 머금고 있는 뜻이 한없이 깊다. 갓머리 [ ]에 시[豕]를 합하여 이루어진 가[家]는 바로 집안에서 돼지를 기른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 家]에 [돼지 豕]가 없어서는 아니 될 정도로 중요시됨은 그 시기 그 고장에 뱀이 엄청 많았을 것이며 사람은 뱀의 천적인 돼지를 가까이 하여 뱀의 침습을 막았으리라. 집 [가 家]자에는 사람 [인 人]자 보다 돼지 [시 豕]자가 필수불가결이다. 돼지를 부엌 바닥이나 집안 마루 밑에 기르든 아니면 다락집의 아래 움막에 가두어 기르든 항상 돼지가 집을 지키고 있어야 집안이 편안하며 안전하다는 뜻이다.(한국 제주의 시골 민속촌의 민가에서 답사할 수 있음) 이러한 글(契)들이 동이와 은허(殷墟)의 맥을 이어 오늘의 한자(漢字)로 발전되어왔다는 것을 중국이 주축이 된 동양의 고고학 전문가들이 대서특필하고 있다.(글 契, 맺을 契, 새길 契, 부족 이름 契, 사람 이름 契 풀이 약함) 동이문자를 파고들자면 우선 ‘동이’라는 낱말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중국 대사전『辭海(사해)(1979년 판)』제46쪽에 “東夷”라는 낱말을 보면 ‘見 “夷”(“이”를 보라)’라고 올랐다. 다시 제644쪽에 오른 낱말 “夷”를 보면 “中國古代對東方各族的汎稱…舊時亦往往用以称外國人。)라고 풀이하고 있다. 뜻인즉 ‘동이’란 바로 ‘중국고대에 동방의 각 민족들을 두루 일컫는 범칭…옛적에 또한 외국인을 일컫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말 사전 낱말 풀이대로 “동이”라면 “동쪽의 오랑캐”,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이고 “동이문자”라면 바로 “동녘의 오랭캐문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한국의 모든『국어사전』, 중국 연변인민출판사『조선말사전』1992’ 참조) 중국의 한문(중어)사전들에서보다 오히려 우리말 사전들에서 “동이”를 “동쪽의 오랑캐”니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니 하며 그 옛날 발해만(渤海灣)에 뿌리내린 조상들을 욕보이고 있다. ‘동이골각문자’를 정설(定說)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동이(東夷)’라는 낱말을 한국의 우리말 사전들에서 바로 새겨야 할 것이며 특히 옥편에서 [夷]를 [오랑캐 이]로 한 훈(訓)을 고쳐야 할 것이다. 실은 한문자 [夷]는 [클 大]와 [활 弓]의 합자(合字)로서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 뜬 글이며 ‘화험위이(化險爲夷)’에서 ‘夷’자 마냥 ‘온화’, ‘평탄’, ‘안온’, ‘기쁨’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역사를 바로 잡고 비록 늦었지만 당대발복(當代發福)으로 조상을 정히 모시면서 급격물실(急擊勿失)로 명분을 되찾아야할 것이다. 필자는 “동이・東夷”를 “동방의 큰 활을 쏘는 어진 민족”으로 칭하고자 한다. 아울러 [夷]의 훈과 음은 [夷 = 활 이]로 새기고자 한다. 고로 필자는 나름대로 ‘겨레한자(일명 諺文漢字・正音漢字)’와 ‘한문한자(韓文漢字 일명 朝鮮漢字・朝文漢字)’라는 별도의 작명(作名)으로 우리 훈(訓)과 음(音)이 있는 한자는 ‘우리한자―우리의 한자어’임을 첨언, 강조하고 입증하고자한다 예하면 우리한자어: 겨레한자어: 단군왕검 이씨조선 대한민국 금수강산 한문한자어: 檀君王儉 李氏朝鮮 大韓民國 錦繡江山 겨레한자어: 숭례문 광화문 세종대왕 국민 국회 한성 한문한자어: 崇禮門 光化門 世宗大王 國民 國會 漢城 필자는 본문 전편의 논점과 논거로 ‘서울’도 ‘한성’도 ‘漢城’도 모두 정정당당한 우리말과 우리글이라고 높이 외쳐 주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서울)의 어르신님들의 뜻이 한사코 서울 경(京)을 넣고자 한다면 필자도 본의를 꺾고 기꺼이 따를 것이로되, 왈(曰); 북경(北京)이요 동경(東京)이요 하는 다른 나라 수도의 서울 경(京)자가 부러워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는 이름을 지어 우리식의 ‘서울’이라는 뜻에 자아 만족, 자아도취에 빠지지 말고, 서울로서의 명실상부로 ‘서울 경(京)’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처럼 북(北)도 아니요 동(東)도 아닌, 가운데−중(中)자를 앞세우고 뒤따라 경(京)을 넣어 이제부터라도 자신 있게, 당당하게 우리 서울을 ‘중경(中京)’이라 함이 얼마나 의젓하고 자랑스러우랴고 미언(微言)으로 미언(美言)을 드리는 바이다. 하루 속히 서울 경(京)자를 되찾아 체면을 추세우려면 중국 사람에게는 뜻도 글도 모르는 ‘SHOUER−서우우얼’ 보다는 우리에게는 ‘서울’이고 중국인에게도 ‘수도’라는 뜻 문자 ‘京’을 채택하기 바란다. 비록 ‘서울-경(京)’이 지명의 첫 음은 아닐지라도 한국의 수도명은 여전히 한글・조선글로는 떳떳하게 ‘서울’이고 국제 명으로는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공인 된 ‘SEOUL’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中京’으로 명명하도록 한다면,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가운데에 위치한 서울(수도)이라는 뜻으로 칭한다면 중국을 비롯한 한문자를 통한 이들에게는 앞 못 보는 장님이나 말 못하는 벙어리며 귀머거리 농자라 할지라도 지금의 알고도 모를 이른바 소왈(所曰) ‘수이−首爾−SHOUER−서우우얼’이라는 부름보다는 천만배로 낫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서울’을 중국말 표기로 ‘首塢爾(수오이)−서우−우−얼’, ‘首無二(수무이)−서우−우−얼’, ‘首沃(수옥)−서우−워’, 또는 ‘西蔚(서울)−시−웨’, ‘色窝兒(색와아)−서−워−얼), ‘首爾(수이)−SHOUER−서우우얼’로 변하고 있다. 이제 또 어떻게 변하려는지…… 오랜 세월 남이 익히 알고 또 친절히 잘 부르고 있는 뜻 깊은 좋은 호칭(지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레 남이 알지도 못하는, 아무런 뜻이 부여됨이 없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를 아리송한 폄칭(貶稱), 비칭(卑稱)보다 못한 별명, 별호와도 같은 새 부름을 마구 지어서 남더러 불러 달라 하며 그 부름을 듣고 스스로 자고자대(自高自大)하다 보면 정중지와(井中之蛙)의 좌정관천(坐井觀天)이나 마찬가지로 되어 자칫하면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평을 받지나 않을까 적이 불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다시는 지명이 정치적인, 또는 실용주의, 현실주의의 희생제물로 되어 역사와 문화가 단절되면서까지 마구 고쳐지지 말아야 한다.
4    북한, 남조선, 한문, 중문, 한글, 조선글에 대한 사색 댓글:  조회:31221  추천:86  2011-02-01
한문, 중문, 한글, 조선글, 북한, 남조선에 대한 사색 필자는 “오랜세월 이미 우리에게 정착된 한자와 한자어는 오늘에 와서 바로 우리말이고 그 말을 적으면 바로 우리글이며 그 말을 읽으면 바로 우리 음이다”고 정의(正義)로 정의(定義)를 내렸다.아울러 낱말 ‘한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주석을 새겨보았다.그리고 이왕의 우리말 사전들에서의 낱말 ‘한자’ 새김과 풀이에 대응, 대등한 낱말을 ‘한자’ 대신 ‘한문자’로 선택했었다.(필자의 "우리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 상편 참조) 하지만 수천 년 전의 낱말 ‘한자’와 ‘한문자’, ‘한문’의 개념이 창해상전을 겪은 오늘에 와서 그 시초(始初)에 비해 너무도 변하였다. 필자는 낱말 ‘한자’를 기계적으로 모조리 낱말 ‘한문자’로 고쳐 올리기에 앞서 그 낱말의 사용 환경과 실태를 감안하여 때로는 지난날의 낱말 ‘한자’를 오늘의 ‘중문’ 또는 ‘중어’로 바로 개칭함도 아주 적절할 듯싶다고 건의하고 권려(勸勵)한다. 영어(英語), 영문(英文), 일어(日語), 일문(日文), 불어(佛語), 불문(佛文), 노어(露語), 노문(露語), 독어(獨語), 독문(獨文)하는 것처럼 중국어를 중어(中語) 또는 중문(中文)으로 규범화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언어와 문자 및 남북의 서로 다른 방언, 동서지역의 서로 다른 심한 사투리도 역시 광의적으로는 모두 ‘중국의 말’이고 또한 ‘중국어’, ‘중국글’의 범주에 속하지만 본문에서는 별도로 중국의 소수민족 언어와 문자 및 방언의 취급을 제외하고는 통상 ‘중국어’를 다만 중국의 공식 관용문자인 ‘한자(漢字)’와 ‘한어(漢語)’에만 귀결한다.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 나라들에서 게르만 어파의 서게르만 어군에 속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실례, 인도・유럽 어족의 이탤릭 어파에 속한 에스파냐어가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이는 실례와 프랑스어가 벨기에 남부, 스위스 서부에서 쓰이는 실례를 제외하고는 지난날 어느 한 민족의 고유 언어가 오늘날 어느 국가의 유일한 법정 언어와 문자로 규정되어 국어로 되었다면 해당 국가명의 첫 음이나 첫 자를 달아 그 언어를 칭함이 국제 관습인 듯싶다. 러시아어, 일본어, 베트남어, 몽골어, 말레이어, 터키어(토이기어), 루마니아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와 같이 해당 언어와 문자에 그 해당 국가의 성씨(姓氏)를 달아 준다는 것이다. 같은 우리말과 우리글이지만 조선에서는 조선어(朝鮮語) 또는 조선말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한국어(韓國語) 또는 한국말이라고 하듯이, 한(漢)민족의 언어인 한자(漢字), 한어(漢語), 한문(漢文)을 이제부터는 어느 한 민족의 언어라고 하기보다는 중국이라는 국가(나라)의 문자로 칭하여 중국문자, 중어(中語), 중문(中文)이라고 표기해야 옳다고 본다. 필자가 이왕의 우리말 사전에 오른 낱말 한자(漢字)의 새김을 낱말 한문(漢文) 또는 한문자(漢文字)로 옮기는 것도 좋지만 오늘의 사용 환경과 실태를 감안하여 많은 경우에는 낱말 ‘한문’과 ‘한문자’보다 중문(中文)으로 개칭할 것을 굳이 주장하는 데는 위에서 실례를 든 바와 같이 중국(中國)이라는 나라 글이기에 ‘중(中)’자를 앞세워 ‘중문’, ‘중어’로 정하자는 원인도 있지만 다른 중요한 이유가 또 있기 때문이다. 한문과 중문 사이에는 미세한 구별이 있다. 낱말 한문(漢文)은 ①한문자라는 뜻도 있지만 ②중국 고전(古典)의 문장이라는 뜻으로도 널리 쓰이고 ③한자(漢字)만으로 씌어 진 문장이나 문학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러나 중문은 다만 중국 글자로 쓴 글이란 풀이만 있을 뿐이다. 낱말 ‘한문’은 문자이기도 하면서 문장이기도 하고 문학이기도 하지만 낱말 ‘중문’은 중국 글일 뿐이다. 하물며 최근에 출판된 한국의 우리말 사전들에서도 ‘중어’와 ‘중문’이 사전의 낱말로 많이 오르고 있는 실정이여서 낱말 ‘중문’이야말로 지난날의 낱말 ‘한자’의 구실을 감당함이 적중하다고 본다. 아래 낱말 ‘중어’와 낱말 ‘한자’간의 구별을 사전 풀이로 본다. 『국어대사전』(2006)에서는 낱말 ‘중어’를 ‘중국어(中國語)’라고 주석을 달았고 낱말 ‘중국어’(3543쪽)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중국어 中國語 중국・타이완 및 해외의 화교(華僑) 등이 쓰는 한민족(漢民族)의 언어. 시노티베트 어족에 속하며 고립어(孤立語) 중의 단철어(單綴語)로, 베이징어 등의 북방(北方), 상하이 등의 오(吳), 샤먼어 등의 민(閩), 광둥어 등의 월(粤), 객가(客家)의 오대(五大) 방언이 있으며, 북방 방언을 기초로 한 공통어가 널리 쓰이고 있음. 예로부터 문어(文語)와 구어(口語)의 분리가 심했으나 1917년 문학(文學) 혁명 이후 구어, 곧 백화(白話)에 의한 문학이 전통적인 고문(古文)을 대신하여 정당한 문학의 용어(用語)가 되었음. 한어. 화어. 차이니스. 중어(中語) 같은 사전에 ‘한자’라는 단어 해석은 다음과 같다. 한민족(漢民族)사이에 발생한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의 고유의 문자. 그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기원전 10수세기의 은(殷)나라 때 이미 사용되었음. 이것은 또 주변의 여러 민족에게도 채택된 표어문자(表語文字)로, 한국・일본・베트남 등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서하문자・거란문자・여진문자 등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어찌 보면 낱말로서의 한어(漢語), 한자(漢字) 풀이는 문자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강조하였다면 낱말 ‘중어(中語)’, ‘중문(中文)’은 오늘날 쓰이고 있는 중국어의 형성과 사용을 보다 더 현대적 시각에서 더 현실적으로 풀이한 것 같기도 하다. 『표준국어 대사전』(1999)에서는 ‘중어’를 ‘중국어’라고 풀이하고 “중국어는 중국에서 쓰는 말. 중어(中語)・지나어・화어(華語).”라고 주석을 달았다. 같은 사전에서 ‘중문’은 “중국 글자로 쓴 글”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 ‘중문’, ‘중어’야말로 이왕의 낱말 ‘한자’ 새김 대신 안성맞춤으로 시비가 없는 정당한 용어(用語), 둘도 없는 적당한 낱말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거듭 첨부하거나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언어 역시 광의적으로는 ‘중국어’이지만 본문에서는 ‘중국어’를 다만 중국의 공식 관용문자인 ‘한자(漢字)’와 ‘한어(漢語)’에만 귀결한다. 한국의 최신판『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에는 낱말 ‘한어’가 둘 올랐는데 그중 하나는 “중국인이 쓰는 말”이라고 주석을 달았고 다른 하나는 “‘한국어’의 준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밖에 낱말 ‘한문’은 “한자로 쓴 글”, ‘한자’는 “중국의 글자”, ‘한자어’는 “한자로 된 낱말”로 풀이하고 있다. 『국어대사전』을 비롯한 많은 사전들의 주석도 위의 풀이와 대동소이하다. 만약 한국의 우리말 사전들에서 “중국인이 쓰는 말”을 낱말 ‘한어’로서가 아니라 낱말 ‘중어’ 또는 ‘중국어’로 새겼더라면 “‘한국어’의 준말”인 낱말 ‘한어’와 혼선, 혼돈이 없을 것이 아닌가.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중국어 강습반”이요 “중국어 학원”은 많아도 “한어 강습반”, “한어 학원”, “한문 학원”, “한자 학원”, “한문자 학원” 따위는 거의 없다. ‘중화요리(中華料理)’라고는 하지만 ‘한요리(漢料理)’ 또는 ‘한식요리(漢式料理)’라고는 하지 않는다. 중국에도 ‘중의(中医)’, ‘중약(中藥)’은 있어도 ‘한의(漢医)’, ‘한약(漢藥)’은 없다. 필자가 다녀온 세계 20여개 나라들의 중국어・화어(華語) 방송국들 간판과 명칭도 “000中文電台”, “00中文電視台”, “00華語電視台”, “000華語廣播”로 일색이다. “000漢文電台”나 “000漢語電視台”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라 간에 국명의 첫 음이나 첫 자를 택해 국어명을 칭한다면 한국어와 중국어간의 숱한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번역사전 하나만을 보더라도 지난날의『한한사전(韓漢辭典)』또는『한한사전(漢韓辭典)』,『한조사전(漢朝辭典)』,『조한사전(朝漢辭典)』등을 앞으로는『한중사전』또는『중한사전』,『중조사전』또는『조중사전』이라고 보다 규범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문자의 도움이 없이 낱말 ‘한어’, 또는『한한사전』이라고만 하면 도저히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만약 ‘중어’, ‘중국어’, ‘중문’이나 ‘한중’, ‘중한’ 하면 이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시장의 최근 시판(市販)에 나온 사전류를 보면『중한사전』,『한중사전』,『중문 유사어 사전』,『중문 관용어 사전』,『중문표현사전』,『중일사전』,『일중사전』,『중영사전』,『영중사전』등등 ‘중(中)’이 ‘한(漢)’을 대체하는 대거(大擧) 바꿈의 붐이 일고 있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우리말 사전들이 취급하든 낱말 ‘한자’의 구실을 이제부터는 ‘한문’, 또는 ‘한문자’로, 가장 좋기는 ‘중문’, ‘중어’로 개칭할 것을 권간하고 보니 오늘까지 줄곧 중국 글이라고 무작정 밀어버리던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 온 듯싶어 유난히 친절해 보인다. 더구나 ‘漢字’에 앞서 6천여 년 전에 결승문자, 그림문자, 설형문자와 동이(東夷)의 골각문자, 은허(殷墟)의 갑골문자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한자(漢字)’보다 오늘날 ‘중문(中文)’, ‘중어(中語)’가 더 맞춤하다.한자는 한자로 되기전에 먼저 동이문자였고 한자(漢字)의 시조(始祖)와 정초(定礎)와도 같은 동이문자(東夷文字)를 부정한다면 바로 역사와 민족과 조상을 버리고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고유어와 우리 한자어는 모두 우리 민족의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고유어와 한자어는 한 부모가 낳은 쌍둥이 형제와도 같은 존재다. 필자는 해외 적자로서 혈혈단신의 연약한 힘으로나마 동이문자의 맥을 이어온 한자와 한자어는 다만 중국 글, 중국말이라는 수백 년, 수천 년 된 무겁고도 억울한 멍에를 기어코 벗겨버리고야 말 것이다. 우리 음으로 옮긴 한자는 일어 음으로 옮긴 한자나 마찬가지여서 다시는 단지 중국의 글만은 아님을 거듭 호소하고자 한다. 인습의 굴레를 벗은 한자가 드디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환성(喚醒)된 ‘한자’가 환성(歡聲) 높이 우리 품으로 찾아오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 한자는 곧 우리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생소하고 서먹하지만 아득한 그 옛날 우리가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익히 쓰기 시작한 그 때부터 벌써 우리 식솔, 우리 가족이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과실을 깨닫고 뉘우치노라면 우리글로 된 우리 한자를 뉘라서 학대(박대)하며 뉘라서 소홀히 하고 또 뉘라서 귀엽게 여기지 않으리오. 이제부터 우리글이라고 이름 짓고 보니 ‘우리한자’가 여간 예쁘지 않고 여간 늠름하지 않구나!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되찾은 기쁨과 보람도 즐거우려니와 이제 우리 문화유산을 전승 발전시켜야 할 과업이 더더욱 막중하다. 다음, 별도의 문제인 듯싶으나 본문에서 반드시 꼭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 하나 더 있다. 본 장절의 표제에 ‘북한’, ‘남조선’을 넣고 보니 자연히 ‘한국’과 ‘조선’이 연상되고 ‘한국’, ‘조선’이라고 하니 ‘한반도’, ‘조선반도’가 떠오르며 우리 ‘반도’라고 하니 동해바다 붉은 노을에 둥근 대망의 해가 뜨는 아침의 나라, 희망의 나라, 무궁화 만발하는 삼천리금수강산이 연상된다. 그러면서도 ‘북한’, ‘남조선’이라하면 저도 모르게 우리 고국의 산명수려(山明秀麗)와 어울리지 않게 손바닥만 한 반도 땅에서 남이 북을 ‘북한’이라, 북이 남을 ‘남조선’이라며 상대가 갖고 가꾸는 땅이며 지어는 이고 사는 하늘마저 서로 내 것, 네 것이라 아옹다옹하고 으르렁대며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우리 고국, 동족상잔으로 분단되고 동강난 고국의 어제와,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오늘의 참담한 현실에 가슴이 째지고 미어지는 듯 아프고 쓰리다. 주의나 사상, 이념과 체제를 따지기에 앞서 겨레의 치욕이 아닐 수 없는 허리 잘린 분단얘기만 나오면 서리고 맺힌 천추의 원(怨)과 한(恨), 억(臆)이 막히고 분이 터져 분기충천함을 금할 수 없다. 필자는 본 장절의 취급 내용이 남과 북의 수화상극에, 마치도 끓는 물에 손을 넣는 것이나 다를 바 없고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코 까닭 없고 실속 없는 괜한 근심과 걱정이 아니며, 공연한 노릇이라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사안이 워낙 거창하고도 엄숙하고 너무도 심각하고 복잡한 통일문제와 관련되기에 아직은 어떤 결실을 기대하기엔 너무 묘망하고 묘연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에 의해 필히 풀려야 할 난제이고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기에, 강 건너 불 보듯이 구경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기에 멀리서 돌을 던져 길을 묻고 공황에 기죽어 막대기를 휘둘러 어둠을 쫓기보다 필자가 스스로 투신불사(投身不辭)로 먼저 가시덤불을 헤쳐 보고 낭떠러지에 뛰어들어 구경(究竟)을 얻고자 한다. 분기(分岐・憤氣)와 분쟁(分爭・忿爭・紛爭)으로 얼룩지고 대립과 대치(對峙)로 맞선 남북문제를 아무리 조심히 다룬다고 해도 남북과 안팎에 모두 다 만족스럽지 못하여 괜한 미움을 스스로 자초(自招)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버성기고 곪아 터지고 썩어가고 있음을 뻔히 보고만, 무한정 미루기만 할 수 없지 않은가. 통일이 되어야만 풀릴 것이라고 미루고 무작정 통일이 될 때 까지 무한정 오금이 저리도록 꿇어 빌며 기다릴 수는 없다. 엄연한 현실, 미룰 수 없는 현상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기에 필자의 사색과 고민을 일가견으로 본 장절에서 전문 남북과 북남의 호칭 내면의 핵(核)을 파고들고자 한다. ‘한국’과 ‘조선’, ‘한반도’, ‘조선반도’를 국제사회에서는 Republic of Korea 또는 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Korean Peninsula라고 칭한다. 필자는 우리 고국은 왜 남북이 함께 사용해도 될 만한 ‘Korea’와 같은 호칭을 우리말로 남북・북남이 하나로 ‘000’라고 이름 지어 편히 부를 대신 항상 ‘북한’이니 ‘남조선’이니 하며 서로 제가끔, 각자의 주장과 정서, 정동 내지 충동을 섞어 폄론(貶論)으로 폄칭(貶稱)과 비칭(卑稱)을 지어 따로따로 상대방에 저주(詛呪・咀呪)를 퍼붓다시피 불러야 하나 하고 사색하고 고민하게 된다. 해외동포의 입장에서 보면 고국은 분명히 하나인데 나라는 ‘한국’과 ‘조선’ 둘이고, 우리는 반만년 백의겨레로 단일민족이지만 고국에는 ‘한민족’과 ‘조선민족’이 따로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만이 육지에 이어진 땅을 ‘반도’라고 하며 우리 해외동포들은 고국을 친절하게 ‘우리 반도’하고 하는데 고국에서는 제가끔 ‘한반도’, ‘조선반도’라고 일컫는다. 필자는 본문을 쓰면서 요즈음 불현듯 스스로를 ‘조선민족’이라고 해야 할지 ‘한민족’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한국의 현행『외래어 표기법』에 좇아 ‘朝鮮族−ChaoXianzu−초우세엔주우’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필자의 "우리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 상편 제24, 25쪽, 하편 제11절 제304쪼 참조--이하 "우리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를 "본문"으로 약칭함 ) 중국 연변대학에는 조선-한국학원이 있고 세계 각국에도 ‘조선・한국’ 또는 ‘한국・조선’이라고 명명한 학술단체나 연구모임이 많다. 고국의 남북문제 연구를 위함이 아니라 고국의 같지 않은(서로 다른) 국명(國名)을 염두에 둔 단체와 모임들이다. 중국의 조선민족들은 새 중국 건립(1949년) 후 중국의 소수민족정책 배려(본문 하편 제12절 제322쪽∼제330쪽 참조)에 감개무량하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떠넘긴 이중, 삼중의 무거운 짐을 더 짊어지고 있어 너무 힘들다.(재일동포들의 민족으로서의 ‘조선’에 얽힌 사연은 생략) 한국의 문법, 어법을 따르려고 하니 중국 조선민족의 현실을 너무 떠나게 되는 것도 어렵거니와 지금껏 갖고 있고 지키고 있던 너무 소중한 참된 도리를 저버리고 잃어버리는 듯싶어 가슴이 미어지고, 중국의 조선어사정위원회의 규정을 지키려고 하니 고국과 멀어지는 듯싶어 참으로 “위엄은 상설 같고 은혜는 태산 같아 아니 가기 어려웁고 가기 또한 어려워라”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언어도 민족과 마찬가지로 단일민족에게는 으레 말도 하나, 글도 하나로 일컬어야 함이 당연한데 왜서, 무슨 까닭으로 우리민족에게는 인위적으로 ‘한글’ 따로 ‘조선어’ 따로 인가?!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이를 ‘한글’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조선글’이라고 해야 할지, 같은 동포끼리 만나서도 주고받는 말이 ‘한국어’인지 ‘조선어’인지 갈래와 두서를 잡지 못하겠다. 당분간 분단 된 현실을 감안하여 나라 명(國名)은 잠시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민족명(民族名)과 말과 글의 언어(言語・語言)명(名)만은 통일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하루 빨리 힘써 통일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선 우리 고국의 기구하고 복잡한 국명(國名・國命)부터 보자. 한국의 거의 모든 사전들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는 낱말은 없고 다만 대신 ‘북한’이라는 단어가 있다.『국어 대사전』에서는 ‘북한’을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고 풀이하고(1677쪽),『새국어사전』(1994년)에서는 “①(광복 후의)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국. ②(6・25 사변 후의) 휴전선 이북의 한국”(941쪽)이라고 새겨져 있다. 조선의 사전들에는 ‘대한민국・한국’이라는 단어가 없고 대신 ‘남조선’이라는 낱말이 올랐다.『조선말사전』(1962)에서는 ‘남조선’을 ‘남부조선’(제1권 제712쪽)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칭으로 ‘조선’을 ‘북한’ 즉 대한민국의 일부분이며 방위(方位)로 북녘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로 ‘북한’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고로 한국사전에서는 ‘북한’을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괴뢰정권이며 주권국가인 저희(자기)들 ‘한국’의 북반부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는 ‘대한민국’을 괴뢰정권으로 치부하며 ‘남조선’ 즉 조선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조선의 남녘땅이란 의미로 ‘남조선’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로 조선의 사전에서는 ‘남조선’을 ‘남부조선’으로 풀이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은 주권국가인 저희(자기)들 ‘조선’의 남반부라는 뜻이다. 남(南)은 반도 전체를 ‘한반도’로 명하고 북(北)은 반도 전체를 ‘조선반도’로 명하며 서로 원하지 않는 폄격(貶格)된 별명(別名)을 지어 ‘북한’, ‘남조선’ 으로 일컫고 있다. 남과 북 모두 대상국을 자기의 영역, 영지, 영토의 일부분으로 주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영유권, 영도권, 지배권을 꼭 되찾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받침 되어 있다. 이는 분기와 분쟁, 대립과 대치만 야기(惹起)시킬 뿐이다. 필자는 한국의 많은 사전들에 오른 ‘남침(南侵)’이라는 낱말 풀이와 예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서림에서 펴낸『국어 대사전』(제676쪽)과 『엣센스 국어사전』(제408쪽), 동아출판사에서 펴낸『새국어사전』(385쪽)에서는 ‘남침’을 “남쪽을 침략함”이라고 풀이하며 예문으로 “북괴의 남침”이라고;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표준국어 대사전』(1999년)에서는 ‘남침’을 “북쪽에서 남쪽을 침범함.”이라고 풀이하며 “북한의 남침 야욕”, “북한 공산군은 38선을 넘어서 남침을 감행하였다”고 예문을 달았다. 필자는 낱말 ‘남침’의 사전 풀이를 “남쪽을 침략함”이라고 함에는 틀림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남쪽을 침략함”에서 ‘침략(侵略・侵掠)’이라는 단어가 고국의 6・25전쟁(육이오 동란, 한국 전쟁)에 인용되고 있다는 점에 소름이 끼친다. 우리한자 [侵]의 옥편 훈과 음을 보면 [침노할 침], 뜻풀이와 해설에서는 “사람이 남의 땅으로 진입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에서는 낱말 ‘침략’을 ①“남의 나라를 불법으로 쳐들어가서 약탈함.” ②“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나라에 쳐들어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밖에 침경(侵耕), 침경(侵境), 침공(侵攻), 침노(侵擄), 침벌(侵伐), 침범(侵犯), 침습(侵襲), 침월(侵越), 침입(侵入), 침점(侵占), 침해(侵害); 침략국, 침략군, 침략기, 침략배, 침략상, 침략성, 침략자 등 단어풀이를 보면 모두 다 ‘남의 땅’, ‘남의 지경’, ‘남의 영역’, ‘남의 나라’를 범하고 해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있다. 그렇다면 ‘남침’은 “남쪽을 침략함”이고 “북한 공산군은 38선을 넘어서 남침을 감행하였다”는 예문은 “… 북한 공산군은 …남쪽에 있는 ‘남의 나라를 불법으로 쳐들어가서 약탈’을 감행하였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침략’은 ‘남의 나라를 쳐들어간다’는 뜻임을 거듭 강조) 한국의 ‘남침’이라는 용어(用語)대로라면 62・5전쟁 당시부터 남(한국)과 북(조선)은 벌써 서로를 남의 나라라고 승인하고 인정하는 듯싶다. 그러나 만약 한국의 사전 새김대로 ‘북한’을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면 ‘북한 공산군’은 남의 나라가 아닌 ‘한강 이북의 한국 공산군’이기에 남의 나라 군으로 볼 수 없다. 때문에 한나라의 군과 군의 전쟁에 ‘침략’이라는 단어가 너무 적절치 않다. 지난세기 50년대 초 당시 남의 나라를 통일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 전쟁이 아닐 터이니 ‘남침’이라는 용어를 ‘북한’이라는 호칭과 함께 쓰지 말아야 한다. ‘한강 이북의 한국’인 ‘북한’과 ‘남쪽에 있는 남의 나라를 쳐 들어간다’는 ‘남침’이라는 두 단어에 내포된 함의(含意), 즉 전자는 남과 북은 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후자는 남과 북은 한 나라가 아님을 시사(示唆)하는 듯한 자초한 자기모순(자체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6・25전쟁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쳐들어가는 ‘침략’ 성질의 전쟁이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내전(內戰)’으로 보고 있다. 중국도 공산당과 국민당과의 전쟁을 누가 누구를 침략하는 전쟁이 아닌 ‘국공내전’, 또는 ‘국내해방전쟁’이라 하며 미국도 1860년의 ‘남북전쟁’도 미국의 내전으로 일컫는다. 필자는 이러한 ‘북한’, ‘남조선’ 등 국명 호칭과, ‘남침’과 같은 용어는 일반 상식을 넘어 국제공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남북화해와 협력 내지 궁극적인 통일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한국에서 조선을 ‘북한’으로 일컫자 한국과 가까운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와 유럽에서도 덩달아 ‘북한’으로 부르고, 조선에서 한국을 ‘남조선’으로 일컫자 조선과 가까운 나라들에서도 덩달아 ‘남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형제간이 반목(反目)하여 서로 별명을 지어 부르니 동네에서도 덩달아 제가끔 짝을 나누어 별명을 지어 놀리는 격이다. 중국도 한국과의 수교(修交) 전까지는 줄곧 ‘남조선’이라고 일컫다가 수교 후부터 국명을 ‘대한민국’, 약칭으로 ‘한국’으로 공식 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반도’만은 ‘한반도’가 아니라 ‘조선반도’라고 명하고 있다. 분단된 고국은 세계 두 진영의 냉전의 현대판 축도(縮圖)로 되었다. 어느 한 집안의 알력과 불화가 온 동네의 심심찮은 소일(消日)거리가 되고 지어는 남의 행실을 빌미로 삼아 서로 제 속셈(꿍꿍이셈)을 채우듯이 고국의 남과 북의 냉전과 대립은 국제사회의 초미(焦眉)의 관심사로 되고 있다. 반도 땅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풍운은 세계 정치, 외교, 군사의 초점으로 되어 고국은 편한 날 하루 없이 수십 년간 세계 몇몇 대국의 힘겨루기의 격투장(格鬪場)으로 되어버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무고한 우리 겨레만 당하고 있다. 남북과 북남의 반목의 화근(禍根)은 곧 ‘북한’이요, ‘남조선’이요 하는 서로의 호칭부터이다. 남과 북 모두가 상대방을 괴뢰정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한국 사단법인・공산권문제연구소에서 펴낸『북한대사전』(1974), 조선 사회과학출판사에서 펴낸『정치사전』(1973) 참조) 한국과 조선은 휴전(1953년 7월 27일) 후 반세기 넘어 오늘날 모두다 세계 정치무대에서 주권국가로서 각자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 특히 1973년 육이삼 평화 선언 후 두 나라는 모두 국가의 삼 요소 즉 국토, 국민, 주권을 갖고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절대적 힘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을 가졌다. 필자는 위에서 피력한 ‘6・25전쟁 당시의 남북관계’와 광복 후 60여년, 휴전 후 50여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과 조선의 주권 및 통일문제’를 동일시(同一視)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 결정에 따른 반도의 3・8선 문제, 8・15 광복 직후 신탁 통치를 반대한 국민운동, 남측의 1945년∼1948년 사이 ‘군정시대’와 북측의 1946년∼1947년 사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시기, 당시 반도의 상황은 일제 식민 통치로부터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되찾은 주권은 우선 나라와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을 전제로 삼아야할 과업이라면(김구의 “나의 소원”,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참조); 유엔 동시가입(1991년 9월 17일)이 된 오늘의 남북은 장기적인 평화정착을 전제로 한 서로간의 체제유지와 주권인정, 상호 승인과 존중 내지 평화통일을 위한 준비가 으뜸 과제라고 보고 있다. 낱말 ‘주권’을 한국『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제25권 제345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주권 主權 sovereignty 국가 구성요소의 하나인 최고・독립・절대의 권력. ①국가권리의 최고・독립성을 뜻할 때가 있다. 주권국(主權國)이라고 할 때의 주권은 이 뜻이며, 국제법상으로는 특히 다른 어떠한 국가의 권력에도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②국가의 최고의사를 의미할 때가 있다. ③국가권력 또는 통치권 그 자체를 가리킬 때가 있다. 영토주권이 있다 할 때의 주권은 이 뜻이며, 국민주권 또는 군주주권이라 할 때의 주권은 이 뜻으로 해석된다. … … 한국의『세계백과대사전』(제17권 제290쪽)은 낱말 ‘주권’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어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어떤 형세 하에서나 자치(自治)하는 모든 국가는 주권을 가지고 있다, 주권의 개념은 <자치>와 <독립>의 특징으로서 표현 된다… 자치라는 것은 주권의 내면을, 독립이라는 것은 주권의 대외적 면을 의미하고 있다… 주권은 영토주권 및 국민의 불가침권이 있다.……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1981)(제1842쪽)에서는 낱말 ‘주권’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어느 한 계급이 자기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사회를 통일적으로 움직여나가는 국가권력으로서 그 무엇에 의해서도 제한받거나 침해당하지 않는 국가통치의 최고권력.…… 같은 사전에서 ‘주권국가’의 풀이는 “정치적자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라고 해석하고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나라는 모두 국제 사회에서 당당한 국가적 협약의 권리와 능력을 갖춘 주권국가라고 본다. 필자는 본문에서 남과 북의 국책과 시책 운운은 피하고 다만 각자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국명(國名), 국어명(國語名), 민족명(民族名)을 바로 새기고 서로 옳게 호칭하는 길을 찾고자 할뿐이다. ‘조선’은 현재 세계 161개 나라와, ‘한국’은 188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무려 158개국과 동시수교(교차수교)가 되어있다. 유엔에도 ‘대한민국’ 국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가 한 하늘아래 한 청사에 가지런히 나부끼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도 공식으로 나라명칭을 각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남과 북을 상대한 국가 원수들 간의 상호 내방(순방)과 정상회담 내지 국가적 외교,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올림픽경기장에도 두 나라 국기가 함께 오르내리고 두 나라 국가가 주악되고 6자회담에서도 각 주권국가 대표들이 국가의 공식대표의 자격으로 수차 허심탄회하게 무릎을 맞대고 있다. 한국과 조선의 현행 체제의 상호인정은 남북・북남 간에만 남아있다. 실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남북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하 ‘협정’이라고 약함) 서언과 총5조, 63조목으로 된 ‘협정’ 전문에 이미 ‘조선’이라는 호칭(互稱・呼稱)이 여러 번 제시(提示)되었다. 아래 ‘협정’ 서언의 첫 대목을 인용해 본다.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一方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 인민 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一方으로 하는 下記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   ‘협정’ 제3조 제57조목 (ㄱ.)의 첫대목이다.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즉시로 국제연합군에 군대를 제공하고 있는 각국의 적십자 대표를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 대표와 중화인민공화국 적십자 대표를 다른 일방으로 하여 조직되는 공동적십자소조를 설립한다.… ‘협정’ 마감의 서명을 보자.  이 3개 국어에 의한 각 협정의 본문은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 국제연합군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최고사령관             사령관          미 육군대장          조선민주주의인민    팽 덕 희마크 W.클라크      공화국원수                            김 일 성 위키백과―“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에서 “대한민국”을 찾아보면 “동아시아의 한반도 남부에 자리한 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동쪽으로는 일본이 있으며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맞닿아 군사적으로 대치중이다.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진작 두 나라(남북)간에도 공식 인정(認定)된 상태이다.   2007년은 중국의 ‘중−한 친선의 해(中韓友好年)’이었고 2009년은 ‘중−조 친선의 해(中朝友好年)’였다. 반세기 넘는 조선과 쏘련의 친선관계, 낮과 밤이 상반되는 조선과 꾸바의 친선을 “조선이 잠을 잘 때에는 꾸바가 사회주의를 지키고 꾸바가 잘 때는 조선이 사회주의를 지키면서 혁명의 먼 길을 걸어왔다.”는 두 나라 관계에서의 ‘조선’은 주권국가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일컫는 ‘북−미 외교’, ‘북−일 관계’ 등에서의 약칭 ‘북’은 ‘한강 이북의 한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는 곧 ‘조선과 미국외교’, ‘조선과 일본관계’를 뜻하는, 주권국가로서의 ‘조선’으로 알고 있다. 다만 당사자들 간의 알력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하여, 서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서로 자기만이 유일한 주권국가, 유일한 주권정부라고 자처한다고 하여 상대 국가와 상대 정부가 없어지는 법이 아니다. 남북(북남) 정상이 만나는 자리에서만 체면에 겨우 ‘북측’, ‘남측’ 하다가 돌아서서 수만 틀리면 다시 ‘북한’, ‘남조선’ ‘북괴’, ‘남조선괴뢰도당’, ‘북한 괴뢰군’, ‘남조선 괴뢰군’, 서로 ‘괴뢰정부’, ‘역적패당’이라고 비방, 중상함은 일괄적이 되지 못한 통일과 안보 및 외교의 혼선과 허점을 보여 준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이−1971년 유엔의 2758호 결의에 따라 유엔에서 축출되고 중국과 공식 외교관계가 있는 모든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는, 또한 인정해서는 아니 되는 중화민국−대만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동시에 둘을 다 인정해서는 아니 된다는 중국정부의 엄정한 입장은 국제사회의 공인된 인식이며 규례이다.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종래로 대만당국을 ‘대만괴뢰정부’ 또는 ‘대괴(臺傀)’라고 비방하지 않는다. 비난과 중상 대신 오히려 자유왕래, 경제 협력 내지 문화교류 등 제반분야의 합작을 활발히 벌려 상호 요해와 신임 및 평화를 쌓고 있다. 필자는 복잡하고 심각한 남북(한반도・조선반도)문제를 본문에서 몇 마디로 쉽게 풀어보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필자는 다만 남북이 함께 수긍할 수 있는, 서로 편하게 호칭할 수 있는, 만난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돌아선 자리에서도, 헤어진 자리에서도, 좋아도 나빠도 서로 변함없이 호칭할 수 있는 공식부름(이름씨)을 찾고자 할 따름이다. 필자는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한호석씨의 ‘완충기적 중간 상태’에서 ‘국가연합 단계’가 아닌 ‘연방국가 초기 단계’설과; 강정구씨의 ‘접합론’; ‘상호주의적인 변혁의 요청’을 주장한 리영희씨의 견해; ‘수렴형통일 모델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손호철씨의 통일론을 서로 시야비야하며 수긍하거나 찬성 또는 반대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고국의 통일을 가로막고 남북 서로에 알력, 불화, 적대시로 반목만 쌓는 분단선에 서린 ‘휴전’과 ‘정전’ 상태를 그대로 묵과하고 묵인한다면, ‘휴전’과 ‘정전’ 상황을 외면하거나 회피한 모든 설은 공담에 불과하다고 본다. 고국은 반세기 넘어 줄곧 휴전(休戰)과 정전(停戰)이라는 인위적으로 설정한 무섭고 살벌한 분위기를 감내・감인(堪耐・堪忍)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스스로 자초한 것은 아니지만 그 쓰디쓴 분단의 악과는 장장 반세기 넘어 남북을 괴롭히고 있다.(전쟁의 시종(始終)과 원인, 배경 등은 생략함) 교전국(交戰國)이 서로 합의하여, 전쟁을 얼마 동안 멈추는 일을 휴전이라 하고, 교전 중에 있는 쌍방, 또는 다방이 합의에 따라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일을 정전이라 한다. 고국의 남과 북은 아직도 정전 상태에 머물러 있고 고국의 허리는 아직도 휴전선(休戰線−1953년 7월 27일, 6・25 전쟁이 낳은 군사 경계선)에 감겨 있으니 고국은 여전히 전시(戰時)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전쟁의 전투가 끝나지 않았고 다만 다시 싸우기 위해 서로 칼을 갈며 좀 쉬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라면 교전국이 휴전과 정전 상태이니 언제든지 다시 싸울 수 있고, 또한 최후 승전(勝戰)을 위해서는 서로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고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는 이치다. 휴전선이 있는 한 교전국 쌍방은 항상 비상에 걸려 서로 전쟁준비와 전투태세를 갖춤은 당연지사이며 그 누구도 비방할 바가 못 된다. 승전을 위한 전비(戰備)에 왈시왈비는 내정간섭(內政干涉)과도 같다. 정전과 휴전 상황에서는 선전(宣戰)포고에 관계없이 항상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각종 군사훈련을 포함한 무력시위, 무력시탐, 무력도발, 지어는 교전(交戰), 교화(交火)로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교전 쌍방 또는 교전 다방이 정전에 따른 협정을 굳게 지켜야하겠지만 정전협정은 어디까지나 평화협정과 달리 정세에 따라 승전승산(勝戰勝算)만 있다면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국제공법(戰時國際公法)’에도 ‘휴전’ 및 ‘종전’과 ‘포로’에 대한 법은 있어도 ‘개전(開戰)’을 다룬 법은 없다. 고국의 남북은 아직 정전 상태이니 휴전은 상대적인 잠시 현상일 뿐 서로 다시 싸워 전쟁을 끝내거나 아니면 평화선언으로 휴전, 또는 정전 체제, 냉전 체제를 종식시켜야만 하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시점에 왔다. ‘휴전’과 ‘정전’, ‘휴전선’은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의미할 뿐이다. 바로 ‘휴전선’이 있기에 호시탐탐 ‘북한’과 ‘남조선’이 생기게 되었다. 서로 헐뜯고 폄하(貶下)된 별명(別名)이 아닌 공식 정명(正名), 대명(大名)을 서로 호칭(互稱)할 수 있어야만 상호 소통과 교류, 신임과 존중이 가능하다. 필자는 정전담판을 종전(終戰)담판으로, 정전협상을 종전(終戰)협상으로, 휴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꾼 새로운 토대에서 평화선언으로 ‘연방국가 초기 단계’든지, 또는 ‘공화국 연방 방식’이든지 아니면 다른 어떠한 방식과 어떠한 수준에서라도 일단은 당장 서로 주권과 당국, 체제를 인정하는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기를 간권한다. 철천(徹天)의 대결이 아닌 상호 인정과 평화 공존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만 종당에는 전쟁이 아닌 평화로써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 필자는, 고국에서 다시는 동포상잔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남북이 모두 평화를 갈망한다면 전쟁을 뜻하는 휴전선을 하루 빨리 걷어버리고 당금 통일을 맞을 수는 없는 정세에, 휴전과 정전 대신 전쟁을 종말 짓고 평화가 깃든다는 뜻으로 지금의 ‘휴전선’ 명칭을 삼팔선이 조국의 허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으로 ‘허리선’ 또는 ‘허리띠’ 아니면 ‘지경선(地境線)’, 좋기로는 ‘통일선(統一線)’, 아니면 통일의 길로 가닿는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지름선’으로 개칭하도록 합의를 볼 것을 간권하다. 남북선(南北線), 화합선(和合線), 인내선(忍耐線), 당분선(當分線), 아니면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곳을 뜻하는, 그보다 일의 중요한 고비나 절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뜻으로의 ‘고개’를 택하여 ‘고개선’, 또는 생사의 고비, 통일의 고비를 뜻하여 ‘고비선’ 등등도 권장해 본다. 다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장기적인 평화가 정착될 것이고 그로 하여 절감되는 서로의 엄청난 대남・대북 비상금과 해마다 늘어나는 국방비를 군축하여 남북 경제와 문화 협력을 추진하며 남과 북이 뭉친 힘으로 국제사회에서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 하며 아울러 북과 남이 손잡고 함께 모든 해외동포들을 배려하고 포섭하다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 겨레는 자연히 말도, 글도, 민족도, 고국의 호칭도 하나로 다시 통합될 것이고 종당에는 평화통일을 이룰 것이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근이 오르내린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서로 인정하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공경하는 호칭이 어쩌면 남북의 상호 화해와 상호 접촉 내지 상호 교류와 상호 협력의 물꼬가 될는지도 모른다. 국명호칭에서 국가연합 단계가 아닌 연방국가 초기 단계로, 또는 공화국 연방 방식으로 서로 상대 정부(당국)를 공식 인정함으로 인해 영구 분열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越南・Vietnam)의 남과 북으로 갈라졌던 남베트남(南越)과 북베트남(北越) 역시 제각기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라는 국명을 가진 주권국가였지만 1976년에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일이 되었고, 독일(獨逸・Deutschland)의 동과 서로 분단 되였던 동독(東獨)과 서독(西獨) 역시 제가끔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으로 국명을 지닌 주권국가였지만 1990년에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서로 상대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상대의 국토를 자기의 영토의 일부분으로 주장하는, 그로 하여 북에서는 ‘한국’을 ‘남조선’, ‘남조선괴뢰도당’, 남에서는 ‘조선’을 ‘북한’, ‘북괴’라고 빈정대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상호양해와 상호접촉, 화합협력을 이루는데 장벽이 아닐 수 없다. 이로 하여 조성된 냉전보다 더 긴장한 서로에 대한 호시탐탐하는 분위기가 주변 국가와 세계평화에 끼치는 영향도 문제려니와 이 기회에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보려는 암특한 놈들의 만만찮은 간계 또한 가볍게 봐서는 아니 된다. 반세기 넘어 줄곧 우리 무고한 남북 겨레만 도탄에 빠져 동족상잔에 희생되고 있다. 삭막하고 피폐해진 민생의 비애는 단장(斷腸)의 아픔과도 같다. 고국의 문제는 결국 남북의 문제이고 남북문제는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남북의 우리 동포들끼리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제 다시는 꼭두각시가 되지 말아야 하고 또 서로 꼭두각시라는 폄박(貶薄)한 누명(陋名)으로 상대를 질책, 질타(叱咤)하지 말아야 한다. 본시(本始)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本是同根生) 왜 이리도 상잔(相殘)함이 심(甚)하고 또한 끝이 없는가. 남북(북남) 당국은 분단 60여년의 현실을 정시(正視)하고 국제공법과 국제공약, 국제관례에 따라, 겨레의 마음을 담아 하루 빨리 한국은 ‘북한’이라는 호칭(呼稱)을 폐지하고 ‘조선’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표기하고 불러야 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조선은 ‘남조선’이라는 호칭을 폐지하고 반드시 ‘한국’ 또는 ‘대한민국’으로 표기하고 불러 상호인정, 상호평등, 상호신임, 상호존중, 상호공영의 토대에서 장기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공존번영 끝에 마침내 통일을 이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평화정착에 의한 상호 주권인정은 모든 갈등과 알력, 불화, 반목, 대결과 적대시를 해소하고, 지어는 전쟁을 막는 영단명약으로 될 것이다. 정전협정이 아닌 평화협정, 어쩌면 바로 이 영단명약으로 냉전을 종결짓고 평화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당금 그때그때 비상에 대처하여 비료, 식량, 석유, 약품, 생필품 등 지원도 요긴하고 고위급 회동과 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장기적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이룩하고 정착시킴이 으뜸이고 선참이며 우선이다. 상호간의 가장 값진 선물과 지원은 평화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다. 평화체제정착은 정부당국 도량의 시금석이요 지도자의 좌우명이다. 평화를 떠난 통일은 아니 이루기만 못하다. 다음 ‘한글’과 ‘조선글’을 보자. 필자는 역사적인 원인, 고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원인으로 하여 현재 서로 국명이 다름에 따라 ‘한글’과 ‘한국어’, ‘조선말’과 ‘조선어’라고 불리어지고 있지만 실은 이는 광의(廣義)로 보면 팔일오 광복 전후까지는 본질적인 동일한 언어에 대한 서로 다른 명칭이라고 본다. 필자는 우리글이 태어나면서(훈민정음, 정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님을 밝혀 한국에서의 ‘한글’ 새김을 시정(是正)할 것을 간권(諫勸)한다. 한국의 많은 사전들은 ‘한글’을 1446년 즉 조선 제4대 세종 28년의 ‘훈민정음’이라고 새기고 있는데 필자는 이를 오류(誤謬)로 된 오판(誤判)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서 잠시 한(韓)글의 유래를 밝혀 본다. 많은 사람들은 ‘한글’의 옛 명칭은 ‘훈민정음’이었고 ‘훈민정음’의 현대명칭은 바로 ‘한글(현재 조선에서는 조선글)’이라고 한다. 즉 ‘훈민정음이 곧 한글이고 한글은 곧 훈민정음’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훈민정음이 생기면서부터 우리글과 함께 이름씨 ‘한글’이 나온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韓)글의 유래를 밝히자면 한(韓)글과 함께 한(韓)국의 한(韓)자 돌림 역사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은 1948년 8월 15일에 완전독립을 선언하면서 부터였고 그 바로 전 광복 후 3년간은 유엔의 감시 하에 총선거 과정이었다. 또 그 전의 1919년 4월부터 1945년까지는 중국 상해에서 조직 선포한 한국의 임시 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시대였는데 임정(臨政)은 중국 중경(重慶)으로 옮겼다가 본국으로 입국해서 후에 해체되었다. 역사를 거슬러 1897년 8월 16일, 조선 왕조 말 고종 30년에 열국의 승인을 얻어서 제정한 국호가 바로 대한제국(大韓帝國1897-1910)이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나라 글을 한(韓)글로 했었지만 이 한글 이름은 주시경(周時經)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어린이 잡지『아이들 보기』(1913)의 끝에 횡서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훈민정음으로부터 꼬박 467년이 지난 후 한글이라는 부름말(호칭)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되기에는 조선어학회가 주동이 되어 훈민정음 반포 8주갑(周甲)이 되는 해에 음력으로 9월 29일을 반포 기념일로 정하고 그 이듬해인 1928년에는 ‘가갸날(1926년)’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 부터이다. ‘한글’이란 말 자체의 뜻은 ‘한(韓)나라의 글’, ‘큰 글’,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뜻이다. 훈민정음으로부터 꼬박 482년이 지난 후 한글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에 우리말을 무엇이라고 이름을 달았을까? 한(韓)이라 하면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여 삼한 시기가 있긴 하나 그땐 상고시대여서 오늘의 한(韓)글의 유래와는 관련이 없는 듯싶다. 기재를 보면 훈민정음으로부터 한글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 언문(諺文), 언서(諺書), 정음(正音), 반절(反切), 암클, 아햇글, 가갸글, 국서(國書), 국문(國文), 조선글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이고 권위적인『국어대사전(2006)』에서는 낱말 ‘한글’(제4265쪽)의 주석을 다음과 같이 달고 있다. 한글  한국의 고유한 문자. 조선 제4대 세종(世宗) 28년(1446) 음력 9월 상한(上澣)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이름으로 국자(國字)로서 반포된 것으로, 처음에는 자모가 28자였으나… 위의 사전풀이를 보면 ①‘한글’은 마치도 ‘훈민정음’과 함께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②‘한글’이 유일하게 ‘훈민정음’이란 이름을 이어받은 것 같기도 하여 마치도 ‘훈민정음’과 ‘한글’사이에는 종래로 다른 이름씨가 없는 듯싶다. 하지만 방금 전에 실례를 들었던 언문, 언서, 정음, 반절, 암클, 아햇글, 가갸글, 국서, 국문, 조선글과도 같은 우리글을 일컫는 명사가 ‘훈민정음’이 태어나서 ‘한글’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까지 많고도 많았다. 필자는 ‘한글’ 풀이를 응당히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20세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달리 이르는 국자”라고 새겨야 한다고 본다. 더 간단히 새긴다면 “대한민국의 국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우리글이 생겨서 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글 명칭(1913년)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안 되지만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겨레한자는 훈민정음부터 우리글을 적기 시작해서는 금년(2009년)이 563년이요, 우리글이 생기기 전에는 한문한자가 우리 문자 역사에서 무려 수 천여 년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해야겠다. 하오니 우리가 오래전부터 우리의 것으로 익히 써오던 선택되고 정착된 한문한자도 우리글이라고 해야 하며 우리 국자로 명분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전에서의 낱말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의 새김 역시 오류로 된 오판임을 밝히고자 한다.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1999)』에서는 낱말 ‘조선글’과 ‘조선문’을 “‘한글’의 북한어”라고 풀이하였고 ‘조선말’은 = ‘조선어’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낱말 ‘조선어’를 찾아보면 “①일제 강점시기에, ‘우리말’을 이르던 말. ②조선 시대의 언어”라고 주석을 달았다. 한국의『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는 낱말 ‘조선어’를 한동안은 “한국어”라고 주석을 달다가 최근에 와선 “북한이나 해외 일부에서 쓰는 한국어”라고 풀이하고 있다. 실은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는 ‘조선’에 뿌리를 둔 ‘조선’에서 사용하는 글과 말이다. 즉 조선의 글과 조선의 문자 또는 조선글로 된 문장, 그리고 조선말이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단군(檀君-기원전 2333년)의 ‘고조선’과 1392년부터 1910년 사이의 이씨 근세조선도 ‘조선’이며 지금 반도 땅의 이북의 국명도 ‘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이다. 우리는 위의 사전풀이에서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를 한국에서 ‘한글’의 북한어, 또는 ‘한국어’라고 함에 1910년 전까지의 수백, 수천 년간 조선 시대의 ‘조선어’를 적어온 우리문자가 진노(震怒)하지 않음에 진노(瞋怒・嗔怒)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100년도 안된 ‘한글’이 수백 년, 수천 년도 더 된 ‘조선어・조선글・조선말’을 “‘한글’의 북한어”, “한국어”라고 딱지를 붙여 삼켜버리려 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을 비롯한 모든 국어사전들에서 시급히 ‘조선글’과 ‘조선문’, ‘조선어’는 ‘한글’도 ‘한국어’도 아니며 더구나 이른바 ‘북한’의 글이 아닌 말 그대로의 조선의 글과 조선의 문자 또는 조선의 문장이라고 바로 잡기를 호소한다. 낱말 풀이를 필요에 따라 ‘조선’의 시대, 유래나 배경을 밝히면 그만일 뿐이다. 조선에서 펴낸『조선말사전(1962)』제4권 제299쪽을 보면 낱말 ‘조선어’를 = ‘조선말’이라고 풀이하고 있고 다시 ‘조선말’ 풀이를 찾아보면 다만 “조선 사람의 말”이라고 새겨져 있다. 문제로 된 우리글의 새김을 찾으려고 아무리 샅샅이 훑어보아도 낱말 ‘조선글’은 전연 없고 다만 낱말 ‘조선문’만이 있을 뿐이며 ‘조선문’ 풀이는 ‘조선글’이라고 했을 다름이다. 말하자면 ‘조선글’ 풀이를 찾아보라는 뜻이겠지만 사전에서는 낱말로 올린 ‘조선글’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조선말사전』(1981)에는 아예 ‘조선글’, ‘조선글자’뿐만이 아니라 ‘조선문’이라는 단어도 오르지 않았다. 사전의 부실함에 유감천만이다.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에서는 오히려 2291쪽에 ‘한글’이라는 낱말을 “‘우리 나라 글자’를 이르던 말”이라고 유표하게 새겨져 있다. 한국의『표준국어 대사전』에서 낱말 ‘조선글’과 ‘조선문’을 ‘한글’의 북한어라고 풀이하는 식으로라면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도 ‘한글’을 ‘조선글’의 남조선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만 ‘지난날 일컫던 우리나라 글자의 이름’일 다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필자는 이처럼 우리글을 현재 남에서는 ‘한글’ 또는 ‘‘한글’의 북한어’, 북에서는 ‘조선어’라고 칭함에 남들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 고국을 ‘한반도’라고 칭함은 ‘대한제국’, ‘대한민국임시정부’ 또는 ‘대한민국’의 국명을 의미하고 인정하는 뜻에서 [한]을 첫 자 또는 첫 음으로 선정한 것이고 따라서 말과 글도 나라말, 나랏글이기에 ‘한글(1913)’, ‘한국어’라고 칭한다고 본다. 혹자는 한(韓)을 삼한 시기를 연상하여 한(韓)글의 유래를 그때와 관련시키려 하나 아득한 그땐 상고시대여서 고증할 길이 없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고국을 달리 ‘조선반도’라고 칭하며 ‘고조선’과 ‘근세조선’, 지금의 ‘조선’이라는 국명을 의미하고 인정하는 뜻에서 나라말과 나랏글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의 일부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조선말’, ‘조선글’, ‘조선어’, ‘조선문’이라고 칭함을 잊거나 무시해서도 아니 됨을 강조한다. 실은 국가명과 관계없이 국어(國語)를 영어(영문)로 쓰는 나라(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등)가 부지기수이고 수많은 나라(캐나다, 인도, 싱가포르 등등)들에서는 영어와 함께 불어, 힌디어, 말레이어를 비롯한 두세 가지 문자와 언어를 국어로 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지난 날 동서로 분단되어 냉전 속에 수십 년이 지났지만 언어는 여전히 ‘독일어’ 하나로 통일을 맞이했고 베트남도 남북으로 갈라져 수십 년이었지만 ‘베트남어’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소련(蘇聯)이 해체되어 십여 개 나라로 갈라졌지만 제가끔 나라이름(國名)이 다르다고 하여 새로 선 나라이름으로 신국어(新國語)를 명명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나라들에서는 원래부터 익히 써오던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국어로 칭하며 쓰고 있다. 이에 비교해 분명 같은 우리말과 우리글임에도 오늘 날 우리 고국에서는 임시 국명이 다르다고 하여 국어 명까지 서로 달리하여 ‘한글’, ‘한국어’, ‘조선말’, ‘조선글’, ‘조선어’라고 해야 함에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하여 우리 반도(半島)땅도 ‘한반도’와 ‘조선반도’, 심지어 반만년 단군의 피를 이어받아 줄곧 한 겨레이고 단일민족임에도 ‘조선민족’, ‘한민족’이라는 같지 않은, 서로 다른 부름을 갖고 있음에 마음을 조이고 있다.(1947년 고국의 남북 정부수립 전의 재일동포들은 국적으로서의 ‘조선’보다는 민족으로서의 ‘조선’을 선택, 생략) 지난 수백 년간 동일 대상에 단일 명사로 교제가 충분했던 우리말이 ‘한복’과 ‘조선옷’, ‘한지’와 ‘조선종이’, ‘한국김치’와 ‘조선김치’, ‘조선냉면’과 ‘한국냉면’, ‘동양화’와 ‘조선화’, ‘한와’와 ‘조선기와’, ‘한옥’과 ‘조선집’같은 수많은 동의어로 범람하고 있다. 언젠가 고국이 통일되면, 아니 나라는 잠시 통일이 못 되더라도 우리말과 글이나마 먼저 통일이 되어 함께 ‘겨레말’, ‘겨레글’로 이름 짓고 우리 모두가『겨레말 큰 사전』에 통일 된 우리 국어, 우리 국문을 기준으로 하나로 된 우리말과 글을 자랑스럽게 쓸 그 날이 기어코 오리라는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는 우리말과 글을 통일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고국의 남과 북의 호칭(互稱・呼稱)부터 바로 잡고 필히 시정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남에서는 ‘조선’을 ‘북한’으로, 북에서는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호칭함에 궁극적인 문제가 있음을 거듭 지적하고자 한다. 고로 우리 해외동포들에게는 ‘북한’과 ‘남조선’을 함께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거슬려 필자의 실경(失敬)이 되겠는지 모르겠지만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부족한 주제꼴을 무릅쓰고 다음과 같은 호칭을 생각해 본다. 필자는 남의 주권국가와 국토를 호시탐탐 자기 영역과 영토로 영유하려는 시비 가득한 ‘북한’, ‘남조선’이라는 서로 따로따로의 호칭을 피하고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각자가 ‘대한민국’ 약칭으로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칭으로 ‘조선’으로 서로 호칭함과 아울러 필요에 따라 오늘날의 ‘북한’, ‘남조선’이라는 호칭을 대체하여 ‘조국’ 또는 ‘우리반도’라는 관형어(규정어)를 취할 것을 간권한다. 사전에서 낱말 ‘조국’은 “①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②자기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③민족이나 국토의 일부가 떨어져서 다른 나라에 합쳐졌을 때에 그 본디의 나라”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 반도’를 관형어로 쓰자는 주장은 지정학(地政學)적으로 우리 고국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해본 호칭이다. 남에서 북의 국명호칭을 공식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고 칭한다. 부득이할 경우에는 ‘북한’ 즉 ‘한강 이북의 한국’이라고 풀이할 것이 아니라 응당히 ‘우리 조국의 북부지역’ 또는 ‘우리 조국의 북반부’ 아니면 ‘우리 반도의 북부지역’으로, 아울러 줄여서 약칭으로 ‘북한(北韓)’ 대신 당분간 새로운 적당한 이름씨(新造語)가 없다면 ‘조북(祖北)’ 또는 반도(半島)를 염두에 두고 [섬 도]를 넣어 ‘도북(島北)’으로; 마찬가지로 북에서는 남측의 국명호칭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한국’이라고 칭한다. 다시는 ‘남조선’으로, ‘남조선’을 ‘남부조선’으로 풀이할 것이 아니라 응당히 ‘우리 조국의 남부지역’ 또는 ‘우리 조국의 남반부’ 아니면 ‘우리 반도의 남부지역’으로, 아울러 줄여서 약칭으로 ‘남조선(南朝鮮)’ 대신 당분간 새롭고 신통한 이름씨(新語)가 없다면 ‘조남(祖南)’ 또는 ‘도남(島南)’으로 풀이하고 호칭함이 더 적절(適切)하다고 본다.(‘고국’, ‘조국’과 ‘국가’의 개념 구별은 별론) 만약 위의 두 가지 호칭이 모두 시답잖다면 통일이 되기 전까지라도 당분간 분단선(分斷線), 3.8분계선(分界線) 또는 ‘허리선’, ‘지경선’, ‘통일선’을 염두에 두고 ‘선남(線南)’, ‘선북(線北)’, 또는 국토의 ‘지름’과 ‘허리’를 염두에 두고 부드럽게 ‘지름남’, ‘지름북’, 또는 ‘허리의 띠’라는 의미로 ‘띠남(∼南)’, ‘띠북(∼北)’이라고 호칭함도 ‘북한’, ‘남조선’이라는 서로 폄(貶)하고 지어는 주권에 상해(傷害)를 주는 호칭보다는 훨씬 낳으리라고 본다. 실은 고국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호칭을 ‘남측’, ‘북측’으로 공식화되어 있다. 남북 모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한다. 하다면 남북 모두 통일될 그날을 위해 말도 하나로, 글도 하나로, 민족도 하나로, 조국도 하나로, 뿌리-근본도 하나로 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통일이 소원이라는 말뿐만이 아니라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실속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 조국의 말에는 겨레의 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살아 숨 쉬는 우리 겨레가 얼 빠지지 않고서야 어찌 고국이 둘일 수가 있으랴! 모국도 둘, 조국도 둘, 민족도 둘, 말과 글도 둘이다 보면 이제 우리 혼과 얼은 몇이나 되어야 하나. 친형제간, 같은 혈육종친, 대대손손의 대통을 이어갈 성씨(姓氏)와도 같은 우리 고국의 경칭(敬稱)은 오로지 하나만이여야 한다. 아무리 부자간에, 형제간에 알력이 심하기로 혈맥(血脈), 혈통(血統)을 끊고 성씨까지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위에서 실례 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한강 이북의 한국’으로, ‘대한민국’을 ‘남부조선’으로, ‘조선글’과 ‘조선문’을 “‘한글’의 북한어”로, ‘괴뢰’, ‘도당’으로… 라는 상식을 떠난 비방과 비난, 중상 내지 도발과 도전(挑戰)에 가까운 낱말 풀이와 해석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필부의 힘으로 그 하나하나를 다는 바로잡지 못할지라도 필생을 걸고 이처럼 잘못된 원천을 찾고 그 못된 뿌리 하나만이라도 뽑아 밝혀보고자 한다. 이제 우리 모두 팔 걷고 애벌김에 부지런히 무성한 잡초를 뽑아버리고 억세게 두벌김, 세벌 김을 거듭하여 깊이 뿌리내린 독초를 뽑아버리노라면 아무리 거칠고 삭막한 폐허라 하더라도 문전옥답이 안 될 리 없다. 대대손손 땀 흘려 가꾼 삼천리금수강산은 먼 훗날 풍요로 가득할 것이고 그로 한 남북 겨레 서로가 더더욱 평화롭고 우리 동포들의 담소(談笑) 또한 얼마나 화기애애(和氣靄靄)하랴.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이 되고 통일 될 고국의 호칭 또한 통일에 앞서 하나로 통일을 이루리라는 밝고 환한 희망과 전망(展望)을 내다보면 이 한 신명(身命) 다 바쳐도 사뭇 신나는 신명을 금할 수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무릇 천하대세란 나뉜 지 오래면 합하는 법이고 합한 지 오래면 나뉘는 법이라고 했거늘 긴긴 고조선(古朝鮮)이 삼한(馬韓, 辰韓, 弁韓)과 삼국(新羅, 百濟, 高句麗)을 거쳐 고려(高麗)로 통일이 되었고 고려가 다시 조선(朝鮮)시대로 바뀌어 장장 오백여년 전성기를 누리다가 조선이 다시 깨지고 부서져 오늘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나뉘어졌다. 이제 우리 고국도 분단(分斷) 60여년의 아픈 상처가 아물고 가실 때가 되었다.
3    꿈은 이루어 진다 댓글:  조회:28629  추천:113  2011-01-06
모교 60돌에 드리는 글 사랑하는 나의 모교-할빈시 조선족제1중학교가 어언간 환갑 찬치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기별을 듣는 순간 금석지감으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진다. 하늘 높고 구름 맑은 풍작의 계절, 결실의 계절, 산과 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에 나의 모교 환갑연이 우리 동포사회의 문화행사로 이루어짐에 다함없는 경의를 드리며 삼가 축하와 축복, 축원의 인사를 드린다. 유수 같은 세월, 살 같은 광음에도 나의 마음 한가운데는 항상 나의 중학시절의 모교가 그대로 든든히 자리 잡고 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그간 모교도 모름지기 여섯 번 정도는 바뀌었을 것 이지만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정다운 모교의 스승님, 다정다감한 선후배들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실은 모교 예순 돌이 가까워 옴에 따라 내 마음도 웬지 설레이기 시작했다. 나를 길러준 모교에 무엇으로 내 마음의 선물을 마련해 볼까 고민하던 끝에 몇 달간의 신고를 거쳐 나는 우리 방송국 동료들과 함께 지난해 7월5일 끝내 중한방송사상 최초로 한국KBS와 손잡고 아름다운 송화강반에서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건교 60돌을 경축하는《우리 동포 노래자랑》공연을 성황리에 치루었다. 관중들은 평생 친 박수와 평생 외친 환성을 다 합쳐도 오늘만큼 못하다며 감격과 감동을 금치 못했고 한국가수와 KBS행사진에서는 세계 어디를 다 돌았지만 오늘 만큼 뜨거운 성황은 처음이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뜻 깊고 색다른 방식으로 모교 예순 돌을 기꺼이 경축할 수 있게 됨을 긍지로 느꼈다. 그로부터 달포를 지난 8월 13일엔 우리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방송합창단 일행 50여명이 천리도 더 되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가서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75개 팀과 각축을 벌린 끝에 영광스럽게 전국조선족청소년음악제의 대상을 따오게 되였다. 이제 명년 이맘때면 한국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서 국제 초청공연에 참가하게 된다.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이 전국조선어방송계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외둥이라는 점도 자랑거리가 되겠지만 둘도 없는 대상을 따 온 이번 원정의 어린 투사들 모두가 바로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의 기특한 학생들이란 점을 대서특필하고 싶다. 어린 꼬마들로 하여금 노력과 분투, 화합과 협력으로 모교 예순 돌에 올리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을 마련하게 했다. 합창단 창단 반년나마에 방학기간을 빼고 근근이 두석달간의 강훈련을 거쳐 이처럼 실력을 키우기란 참으로 조련찮았다. 치치할시에서 유명한 합창지휘를 모셔온다, 오상시에서 음악지도를 청해온다, 할빈대학에서 피아노반주를 초빙한다, 조선민족예술관의 협조를 청한다 하며 우리 방송국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계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최선을 다 했다. 김춘산, 엄광렬, 리성환, 최용남, 최설화, 김홍란, 김옥화.. 수많은 분들의 피땀이 슴베여 더더욱 무거워진 영예의 액자가 모교 어린이방송합창단의 연습실에서 꼬마들을 격려하며 빛을 뿌리고 있다! 모교에 드리는 선물이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오로지 사랑의 마음이 깃들었다면 모두 다 소중하다고 해야겠다. 모교의 예순 돌을 경축하기 위한《우리 동포 노래자랑》공연이며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이 마련한 축하선물 얘기를 하다 보니 불현 듯 까마득한 나의 중학시절의 옛 추억이 주마등마냥 눈앞을 스쳐 지난다. 제자들을 위해 베푼 은사님들의 은혜와 크나 큰 공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받고 받은 스승님의 은총 또한 내나 네나 이를데가 없을 것이기에 그건 잠시 접어두고 나 혼자만의 추억, 이를테면 40년 가까이 숨겨 두었던《천기》를 모교 예순 돌에 즈음하여 드디어 터뜨리려 한다. 40년 전의 어느 가을날인 것 같다. 학교에서는 전교문예선전대를 묶고 있었다. 한 고향친구들인 변덕수, 손명헌 한 학급의 김동철, 리태환, 전옥희, 하옥진, 방성자 등 여러 낯익은 학생들이 문예선전대에 뽑혀 우쭐하고 있는데 똑 마치 전교에서 나만 빠진 것만 같았다. 문예선전대 대원들은 매일 악기를 다룬다, 춤을 배운다,노래를 부른다 하며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나는 풀이 죽어 기숙사에 푹 박혀 있거나 긴 복도를 힘없이 거닐군 하였다. 사춘기 때라 춤추고 노래하는 여학생들과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도 은근했었지만 그 보다 나는 트럼펫을 불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음색이 높고 날카로우며 명쾌한 남성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트럼펫이 나를 매료했다. 내 눈에는 트럼펫을 부는 악사는 마치도 악대중의 기치처럼, 령혼처럼 돋보였다. 가끔 명상에 잠기면 기사처럼 대오의 앞장에 서서 진군의 나팔을 높이 불며 천군만마를 이끄는 나의 영웅형상을 꿈꾸어 보군했다. 만약 트럼펫이 안 차례지면 색소폰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도 좋았지만 색소폰의 생긴 모양이 신기하게 나의 마음을 끌었다. 선전대에만 들어 갈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번씩 둥둥 치는 징도 좋았고 육중하게 보이는 첼로가 차려져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학교문예공연을 관람하거나 또는 공연 끝에 기쁨에 들떠 왁자지껄이며 쓸어나오는 문예선전대원들을 볼 때마다 샘이 많은 그 어린나이에도 시기와 질투 대신 항상 자기를 그 집단속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몰래 흥분에 들떠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내 차례가 안 되었을 뿐이지 나는 조만간에 문예선전대 대원이 되리라는 것을 속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예선전대 김철호지도선생님께서 선전대활동실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더니《넌 입술이 얇아 트럼펫을 불면 제격일 것이야》라고 하기에 나는 하마트면 환성을 지를번 했다. 감격에 목이 메여 설레이는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나는 그로부터 몇몇일을 김철호선생님의 거동만 눈치보며 지냈었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났건만 야속하게도 선생님은 끝내 나를 찾아 주시지 않으셨다. 기나긴 중학시절이 다 끝나도록 나는 끝내 학교문예선전대 일원이 되지 못했다. 졸업 후, 아주 먼 훗날 담임선생님한테서 들은 얘긴데 실은 그때 한창《문화대혁명》난리여서 학교에서는 매일이다 시피 투쟁대회요, 경축대회요, 어록학습, 활용좌담회요 하면서 공부는 뒤전으로 하고 행사와 활동이 많았었다. 그 북새판에서도 담임선생님께서는 학반장인 나를 학급이나 잘 이끌어 가라고, 그리고 학교 최준호선생님이 이끄는 무선전반도체실험서클의 조장인 내가 이미 맡은 일만 잘 감당하기에도 힘겨울 텐데 다른 잡념이 있어서 되겠냐며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문예선전대 대문에 미리 빗장을 걸어놓았던 것이다. 그때 만약 내가 학교문예선전대의 대원으로 쉽게 되었더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오늘까지 남아 있을가? 이루지 못한 것, 아쉽게 잃어버린 것, 다시는 되돌릴 수 없었기에 그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가?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쉽지만 난 그래도 그 꿈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꿈 많은 나의 사랑하는 모교를 더 사무치게 그리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시골에서 하향단련기간 농촌문예선전대에 자진해 들어 색소폰을 열심히 불었다. 밤이면 밤마다 고요한 달빛아래 친구들과 모여 너는 손풍금, 나는 색소폰, 동네형님은 클라리넷을 불고 동생은 트럼펫을 불며 북두칠성이 기울고 아침노을이 붉을 때까지 청춘을 불태웠다. 그로부터 나는 기타며 바이올린, 젓대, 퉁소, 단소, 가야금에 하모니카며 소고, 대고, 새장구까지 닥치는데로 불고, 켜고 치며, 대학에 가서는 피아노에까지 손을 대며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악기를 이것저것 다루어도 지도선생님이 안계신 탓인지 아니면 끈기 없는 아마추어의 부족한 열성 때문인지 또는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과목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인지 중학교 시절의 악기에 대한 그 뜨거운 사랑과 정열은 식고식어 결국은 한낱 장난에 불과했었다. 세월이 흘러서 정열은 식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 굳게 자리 잡은 중학시절에 피우지 못했던 꿈은 잊어 본적이 없었다. 그 꿈이 드디어 움트고 있었다. 그 꿈이 싹으로 되살아나서였다고 해야 할까 꼭 곁들여 소개하고픈 것이 있다면 위에서 말씀드린《우리 동포 노래자랑》공연의 기획과 어린이방송합창단의 단장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중학시절 그렇게도 문예선전대에 들고 싶었던 나 장석주가 오늘날 이렇게 이러한 방식과 수단으로 꿈을 이루어보려고 안깐힘을 다 쓰는 것이 참으로 나 스스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 옛날 나의 모교의 문예선전대와 오늘 모교에 뿌리내린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은 서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내용이나 형식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각자가 꿈을 이루어 보려는 노력과 민족문화를 전승, 창달시키려는 사명은 마찬가지일 것이 아닌가. 참으로 감구지회로 가슴이 뻐근하다. 오늘 수많은 어린이들의 꿈이 무르익어감과 더불어 나의 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릇 아름다운 꿈을 가졌다면 우리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좋은 꿈은 좋은 인생을 가꾸어가는가 본다. 성인이 이르기를 삼십이립이요, 사십불혹이라 했지만 모교는 이미 이삼십대 젊은 청춘시절에《문화대혁명》난리에 곤혹과 진통을 거쳐 그 미열이 사십대까지 오랜세월 다사다난이였다면 오십지천명, 륙십이이순이라 모교의 오륙십대는 천지신명이 도와나서서 민족인재양성의 요람으로, 동포문화행사의 기지와 중심으로 크게 육성되고 있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후배학우들은 이 천재일우의 시기와 기회를 바로 잡고 누구나 아름다운 꿈을 현실로 키워가도록 노력에 노력을 곱해야 할 것이다. 모교 예순 돌을 경축하는 성스러운 나날에 새삼스레 나의 담임선생님들이 그리워진다. 나에게 꿈을 주고 힘을 주신, 나를 가르치고 키워주신 이미 하늘나라에 계신 담임선생님-김복순, 김창재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나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담임선생님 남윤원은사님과 모든 스승님께 축주를 올리며 모교 륙십성상 축연의 자리를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바라보니 복숭아며 오얏향기로 만천하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로구나. 꿈과 땀으로 이룬 태평성대를 즐기며 우리 어찌 하늘과 땅에 감사하지 않으리오! 이 성스러운 감은계절에 모교 선생님들은 손수 가꾸신 무릉도원에서 길이길이 건강장수 하시고 사랑하는 모교는 더더욱 번영 창성하라! 찬란한 모교의 미래를 위하여 건배!                                         학생 장 석주
2    모교 페교식에 즈음하여 댓글:  조회:30727  추천:159  2010-12-26
모교 페교식에 삼가 드립니다 할빈시 향방구 성고자진에 자리 잡은 우리 동포학교가 문을 닫게 되였다. 슈퍼나 가게가 경영부진으로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키우는 학교가, 우리 민족의 래일을 키우는 학교가 문을 닫게 되였다. "굶어죽어도 자식 공부는 시킨다"는 우리 민족이다. 지난날 우리 동포들은 삶의 터전을 잡아 괭이와 삽을 박을 때 살림집보다도 학교가 우선이다. 그래서 무릇 동포들이 사는 동네라면 으레 학교가 있기 마련이여서 중국 전역에 많을 때는 무려 수천개소나 되던 우리 동포 학교, 조선족 산재지구 흑룡강성에만 해도 500여개소나 되던 조선족학교가 최근 10여년간에 기하급수로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다. 웬만한 한 개 시(현)에만 해도 10여개소나 되던 우리 학교가 최근에 와서는 겨우 하나도 있을까 말까 하는 신세로 되여 지금 흑룡강성에 겨우 버티고 있는 동포 소학교가 십자리 수 안이다. 학교가 세워지는 건교식이며 개교식, 학교운영 몇 주년 기념식이면 축하와 축복, 축원으로 하객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꽃다발이며 축의금이 빗발치듯 하건만 문을 닫는 학교마당은 싸늘하고 쓸쓸하다 못해 삭막하고 서글프기 짝이 없다. 농경문화의 기틀이 흔들리면서 어쩔 수 없이 학교가 하나씩 문을 닫고 있지만 필자는 어느 학교 하나도 폐교식을 가졌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여서 그냥 마음으로 묵새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나도 우리 학교요, 못나도 우리 학교였는데, 부모와도 같고 자식과도 같은 학교였는데 마지막 길을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부디 잘 가시라!"라고 고이 인사라도 올리고 낡은 문고리라도 한번 더 잡아 보고 싶은 마음 세상사람 한결 같으련만······ 새 학기 개학을 앞두고, 아니 지난 학기 마감 긴긴 방학을 고하면서 마련된 할빈시 성고자조선족소학교의 폐교식은 우리들에게 많은 사색과 고민, 반추 내지 향수를 주고 있다. 영결식을 련상케하면서도 추모의 정만이 아닌 폐교식에서 력대의 100여명 졸업생들은 모두 다 석별지정으로 사라지는 학교를 가슴에, 마음에 새겨 넣으며 장차 새마을 건설과 함께 머잖아 신형의 새로운 학교를 세우리라 꿈을 무르익히며, 밤을 지세우며, 희붐이 동틀무렵까지 새날을 밝혔다. 아래 폐교식에 드린 필자의 글이 결코 조상(弔喪)의 제문(祭文)이 아님을 명시하며 사랑하는 모교에 삼가 드린다.                       =======         =======존경하는 고향의 부모형제 여러분, 존경하는 모교의 선생님 여러분, 존경하는 모교의 선후배 여러분, 존경하는 손님 여러분; 이제 지금 이 행사가 막 끝나면 안개타고, 노을타고, 바람타고, 구름타고 저-멀리 하늘나라를 찾아 떠나게 될 사랑하는 나의 모교가 간판 하나만을 이 땅에 남겨놓고 이 고장과 석별을 고하게 되겠지요. 자기 얼굴과도 같고 자기 의상과도 같은 간판에 긴긴 세월의 모든 것을 무겁게 벗어놓고, 힘겹게 실어놓고 홀몸으로 홀가분하게 떠나 가겠지요. 사랑하는 모교는 이제 곧 우리와도 헤어져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지만 우리 모두의 축복과 축원을 순풍으로 받아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하얀 쪽배마냥 저-멀리, 그 옛날 이 학교를 손수 세우시고, 이 학교를 몸소 키워주시고, 또 이 학교 문을 나오신 우리 동네 고인들이 미리 가 계신 하늘나라 무릉도원으로 서서히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늘나라 어디에서 별무리를 모아놓고 샛별학교를 꾸리노라면 해님, 달님이 도와 주시겠죠······ 사랑하는 모교- 성고자 우리 학교여 부디 잘 가시라! 머나 먼 그 옛날, 낯설고 물 선 이 땅을 찾아 삶의 첫 삽으로 거친 이 땅을 개척하신 선인, 선철들의 넋과 뜻으로 세운 모교- 성고자 우리 학교가 어언간 일흔 고개를 넘어 수를 다 하게 되었다니 금석지감으로 무량한 감개 금할 수가 없습니다. 칠십여 성상 수많은 꽃봉오리 고이고이 길러 마침내 만천하게 오얏 꽃, 배 꽃향기로 그윽한데 묻노니, 사랑하는 모교여 굳이 어디로 가시려하느냐?! 초라하고 보잘 것 없던 초가집에 앞뒤방살이의 서당-글방에 불과했던 초창기의 우리 성고자학교는 태어난 그 날부터 오붓한 이 동네, 이 마을의 꿈이였고 희망이였고 씨앗이였고 미래였습니다. 너무 가난했기에 부족함이 많았고 너무 부족했기에 째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그래도 아련한 추억 속에 아름다움만 가득한 그 시절, 아득하게 멀어지고 희미하게 사라지건만 마냥 그 때가 좋았고 항상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긴긴 세월 비록 가난과 함께 자라온 우리 학교였지만 학교는 이 고장의 문명과 문화의 꽃을 떨기 떨기로 피워 복된 우리 삶을 누리도록 하는 필수불가결의 물이였고 공기였으며 우리 생활의 피와 살이였습니다. 광복과 해방을 맞고 새 농촌 건설을 맞아 우리 학교는 제법 규모를 갖추어 린근에 소문난 명문학교로 자라 ‘막니까’, ‘싼쟈즈’, ‘싸리툰’, 훗날에는 ‘석조’를 비롯한 이 넓은 지역의 문화, 교육의 중심이 되어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 중학생, 대학생의 싹을 키웠고 또한 고향건설의 문화역군을 키우는 배움의 요람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교정에서 랑랑하게 울려오는 ‘1, 2, 3, 4...’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고 ‘아, 야, 어, 여, 가, 갸, 거, 겨...’는 우리에게 겨레의 말로 인생의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동포와 민족의 피가 대를 이어 세세대대를 이어가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우리는 망망창해의 등대와도 같은 목표가 있게 되었고,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이 고장 어제 날 농부의 아들딸들이 오늘은 교육가, 과학가, 예술가, 기업가로 자라났고 더 많은 이 고장의 아들딸들이 성고자의 자랑을 떨치며 떳떳이 세계를 주름잡을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였습니다.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뭇별과도 같은 불씨들이 모여 모닥불이 되고 그 모닥불이 피여 올라 우리 동네의 모든분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횃불이 지펴지고 마침내 그 횃불이 꺼질줄 모르는 거화로 활활 타올라 장장 칠십여년간 이 동네, 이 고장을 ‘살기 좋은 성고자’라는 무형의 재부로 만들어 세상에 우리 성고자를 자랑함을 무상의 긍지로, ‘성고자 정신’을 고양함을 사명을 넘어 숙명으로 여기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성고자 학교가 오랜 세월 너무너무 지쳐서 도저히 팔십에 가까운 노구로 더는 홀로 지탱키가 어려워 푹 쉬고자,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비록 오복중의 마감인 고종명으로 편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만 우리 모든 학생들은 뼈를 깍는 아픔으로 모교의 마감을 지키며 삼가 그 명복을 빌고자 오늘 구름같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옛날, 사랑하는 나의 모교 앞뜰의 귀뚜라미 우는 소리, 뒷울안 늪가의 개구리 우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선생님의 자애로운 꾸중소리, 흑판에 쓰시는 분필소리, 발풍금, 손풍금소리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학습의 긴장을 풀어주는 중간체조시간 종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싸포자’, ‘구지보’, ‘탕창보’, ‘아성강’으로 산보가고 원족가던 그 시절, 그 때가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 들창가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너무나 정답고 그립습니다. 우리말에 삼십이립, 사십불혹, 오십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고래희라고 우리 성고자 학교도 칠십성상을 마무리하고, 나이 칠순에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제 가야 할 곳으로 곧 가게되였습니다. 필히 떠나야 할 성고자 학교는 이제 갈 곳으로 가더라도 지금껏 학교와 함께 고향을 지켜온 우리 성고자의 부모형제분들께서는 짝을 잃은 외로움과 괴로움이 오죽하랴만 슬픔과 그리움을 힘으로 바꾸어 고향산천을 상전벽해로, 새로운 창의력과 궐기로 천지개벽을 안아온다면 언젠가는 신형의 우리 성고자학교가 다시 이 땅에 뿌리 내리리라는 것을 굳게 믿어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멀리 멀리 사라지는 우리 학교가 머나먼 하늘 길에서 마침내 봉이 되고 황이 되여 봉황열반(鳳凰涅磐)으로 우리 사는 온 세상에 상서로움과 행복을 안겨주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각까지 성고자 우리 학교의 마감을 지켜온, 최후를 지켜온 성고자조선소학교 전체 선생님들에게 머리 숙여 삼가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 고향을 지켜 오신, 또 앞으로도 지켜 가실 고향 여러분들의 강녕, 수복과 행복을 길이길이 기원합니다!                                         학생 장 석 주
1    장석주(張碩宙) 프로필 댓글:  조회:29260  추천:143  2010-12-23
장석주(張碩宙)     본(貫鄕): 안동(安東) 고향(鄕關): 경상북도 례천(醴泉) 1952년 중국 할빈에서 해외3세로 출생. 1978년 8월 중국 연변대학교 조문학부 졸업. 1978년부터 중국 흑룡강인민방송국 기자, 편집.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흑룡강조선어방송국 국장. 고급편집.   중국 방송(라디오부문)계에서 가장 선참(1984년)으로 사회자방송을 펴내었고 또한 첫 프로사회자로 등장. 중국 조선어방송계에서 가장 이르게 정기적인 생방송특집(1993) 프로듀서(PD) 및 주간 생방송사회(MC-180’)를 력임. 중국 최초의 우리글 대형 종합 월드와이드웹 사이트 WWW.873K.COM 구축, 운영. 중국의 유일한 현존 우리말 방송합창단-유나이티드어린이방송합창단(2006년 설립, 2007년 전국조선족청소년음악회 대상, 2010년 할빈시 중소학교합창콩쿠르 대상 수상, 한국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세계어린이합창축전'에 중국대표단자격으로 합연, 청와대 초청방문; 2012년 서울 금천 금나래아트홀에서 "부모님 사랑합니다"-방문공연, 'KBS아침마당', 'KBS한민족방송', 'KBS 스페셜'에 방송, 월드비전선명회합창단과 자매결연 ) 단장. 중국에서 사상 최초로 한국 방송공사와 손잡고 대형 문화행사 “우리동포 노래자랑”을 기획, 조직, 공연. 10여년간 료녕, 길림, 흑룡강 등지에서 수십차의 "동포 노래자랑" 등 대형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조직, 공연.   『나의 방송생애』,『간간의 여쭘―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의 진상 규명』,『우리 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등 저서와 많은 방송작품, 논문, 수필을 발표.   한국 세계한국어방송인대회 운영위원 력임. 저자의 Mail: sz99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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